의학계열 뺀 ‘전임교원 확보율’ 보셨나요?…비정년트랙이 급속하게 느는 이유

위기의 사립대학, 법인평가로 극복하자

❹ 전임교원 확보율의 불편한 진실

안현식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

동명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전임교원 확보율은 대학평가의 필수적인 지표이고 비교우위를 판가름하는 데 유용해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 대학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이 지표는 순기능과 실효성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대학사회에 신분제를 낳고 분열을 조장하고 실상을 왜곡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 1면에서이어짐

전임교원 확보율을 충족하기 위한 대학의 노력은 대학병원 임상교수와 관련하여 심각한 통계 왜곡으로 드러난다. [표2]에서 우리는 실제로 강의를 담당하지 않는 임상교수의 포함 여부에 따라 전임교원 확보율이 얼마나 심하게 요동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왜곡은 전임교원 확보율 통계의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 교수 1인당 학생 수 8명 내외의 의학계열과 25명 정도의 인문·사회계열을 뒤섞어 통계를 낼 때, 의과대학이 있는 대학과 없는 대학의 편차는 클 수 밖에 없다. 즉 대규모 부속병원을 운영하는 대학은 전임교원 확보율에서 통계상의 이익을 보기 때문이다.

이들 대학의 전임교원 확보율에서 의학계열의 전임교원 거품을 거둬내면 지표는 곤두박질친다. 가톨릭대는 206.86%에서 78.64%로 무려 128% 감소하는 반면, 조선대는 75.99%에서 67.05%로 고작 8.04%만 감소하는 큰 편차로 드러난다. 최종적인 전임교원 확보율은 한림대(81.32%)부터 계명대(63.27%)까지 추락한 결과를 보인다. 의과대학에 의하여 왜곡된 대학통계의 진면목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심각한 재정난에 휩싸이고 있는 사립대학 부속병원이 전공의의 값싼 인력에 의존하여 병원을 운영해 온 것과 마찬가지로, 사립대학도 비전임교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어서 전임교원 확보율만 강조할 일은 결코 아니다.

전임교원에 포함된 ‘비정년트랙’ 확산 우려

전임교원 확보율과 관련하여 주목할 요소가 바로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이다. 2003년 연세대가 최초로 도입한 이래 전국의 사립대학으로 확산한 새로운 교원 고용 형태는 사립대학 교원의 지위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들은 계약제로 임용되어 1~3년마다 재계약을 체결하지만, 승진의 기회가 제한되고 불안정한 지위에 놓여 있다. 더욱이 상한선을 적용받는 연봉 수준은 재직 기간이 같은 정년트랙 교수와 비교하면 대체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심지어 40% 미만에 머물기도 한다. 지역 사립대학의 경우 전체 교원 중 비정년트랙 교원의 비중이 2/3를 넘기도 하고, 심지어 교수 전원을 비정년트랙으로 임용한 대학도 있다.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은 2012년에 도입된 반값 등록금 정책과 긴밀하게 연계하여 확산했다. 이들의 고용은 등록금 수입 감소로 재정난에 처한 사립대학에게 인건비를 줄이는 합법적인 수단이었고 교육부는 이들을 전임교원의 범주에 포함시켜주어 확대를 묵인·조장했다. 따라서 교육부의 무책임하고 맹목적인 정책과 사학법인의 교활한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져 탄생한 대학사회의 새로운 신분이 바로 비정년트랙 교원이라 할 수 있다.

우려스러운 수준의 확산 속도와는 대조적으로 교육부는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에 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도 하지 않고, 최소한의 자격과 처우 기준도 마련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 현재까지 유일한 자료는 2021년 더불어민주당 윤영덕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로 생성된 ‘2016~2020년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이다. 그런데 4년제 대학 가운데 절반 정도만 자료를 제출하여 전모를 밝히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따르면, 2020년 86개 4년제 대학에서 임용한 전임교원 1천740명 가운데 비정년트랙이 833명(47.9%)으로 이미 절반에 육박하고 있었다. 그후 4년간의 확산 추세를 고려할 때, 전임교원의 전반적인 상황 악화가 얼마나 빠르고 광범위하게 나빠지고 있는지 가늠할 기초자료조차 없다는 점에서 교육부의 직무유기는 심각한 수준이다.

강사법 제정 이후 겸임교수 제도 왜곡

전임교원에 대비되는 비전임교원의 전형으로 서 대학에는 적잖은 수의 겸임교수가 있다. 겸임교수는 본래 각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하여 현장실무능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도입되었다. 그러나 「강사법」의 제정을 계기로 겸임교수 제도는 심하게 왜곡된다. 상향 조정된 강사료의 적용을 피해서 다른 사업장에서 4대 보험을 해결한 겸임교수를 채용함으로써 사학법인은 비용을 절감하였다. 강의의 질적 하락은 뒷전이고 누구든 값싼 비용으로 강의를 채우기만 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런 비교육적인 폐단을 인지하면서도 사학법인의 입장을 충직하게 대변한다. 지난해 「대학설립·운영규정」 개정 당시 전체 교원의 비중에서 겸임교수의 한계를 기존의 1/5에서 1/3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이런 조치를 취할 때마다 교육부는 전가의 보도처럼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조치라고 강변하지만, 사실은 법인의 재산권 행사의 자율성만 주장하면서 대학의 본질을 훼손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비정년트랙 자격·처우 기준 마련…실태조사 전면 실시를

전임교원 확보율은 대학평가의 필수적인 지표이고 비교우위를 판가름하는 데 유용해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 대학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이 지표는 순기능과 실효성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대학사회에 신분제를 낳고 분열을 조장하고 실상을 왜곡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제라도 교육부는 전체 대학 교원에 관한 실태조사를 전면적으로 실시하고 대학사회에 만연하는 신분제의 폐해를 제거하고 대학 교육과 연구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정년트랙과 비정년트랙 교원의 통계를 구분하고, 비정년트랙 교수의 실태조사 결과를 천하에 공개해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법적 근거도 없는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의 고용 형태를 근절해야 마땅하지만, 현실적인 임시 조치로서 그들의 자격과 처우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여 연구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나아가 전임교원 확보율은 계열별 교원 임용 기준을 고려하여 적용하여야 하며, 더욱 실효성 있게 적용하려면 전임교원 강의 비율과 함께 학생 대비 강좌 수도 평가 지표로 반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사항은 전임교원의 절대적 부족이다. 초·중등학교의 교원 1인당 학생 수를 훨씬 상회하는 대학의 현실은 선진국 대한민국 대학의 초라한 민낯이라 할 수 있다. 교육부의 사업마다 ‘세계적인 대학 육성’이라고 표방하지만, 실제로 세계 유수의 대학만큼 교수 1인당 학생수를 맞추려고 한 적이 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우수 교원의 충분한 확보 대신 사학법인의 이해타산과 교육부의 묵인 아래 양산된 비정규직 교원과 비정년트랙 교원 문제는 한국 대학의 미래를 위해 하루빨리 해결되어야 한다.

경북대에서 전자공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연구원을 거쳐 동명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부산경남사립대학 교수회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표 1] 서울 주요 사립대학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 및 전임교원 확보율 (단 위 : 명, %)

순위 학교 재학생(A) 전임교원 (B) 법정기준 (C) 전임교원 1인당

학생수(B/A)

전임교원 확보율

(B/C*100) 비고

1 성균관대 31,646 1,520 1,464 20.82 103.83 의학계열

2 연세대 37,667 1,746 1,849 21.57 94.43 의학계열

3 고려대 34,705 1,525 1,616 22.76 94.37 의학계열

4 이화여대 24,707 981 1,135 25.19 86.43 의학계열

5 한양대 28,527 1,150 1,350 24.81 85.19 의학계열

6 동국대 19,878 681 895 29.19 76.09  

7 경희대 37,851 1,396 1,842 27.11 75.79 의학계열

8 중앙대 32,721 1,152 1,526 28.40 75.49 의학계열

9 한국외대 20,696 633 854 32.70 74.12  

10 국민대 20,015 663 912 30.19 72.70  

11 서강대 13,791 413 598 33.39 69.06  

12 홍익대 23,647 721 1,128 32.80 63.92  

출처: 대학알리미 2023년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 및 전임교원 확보율

[표 2] 의대를 보유한 대규모 사립대학 전임교원 확보율 (단위:명, %)

전임교원 수·교원법정 정원·전임교원 확보율의 상단은 의학계열을 제외한 수

학교명

재학생

전임 교원 수 교원법정 정원 전임교원 확보율 의학계열 제외 여부

확보율 차이

3년 평균

학부 대학원 전임교원 확보율

가톨릭대 8,343 3,650 1,236964 651021 20768..8664 128.22 80.3

인제대 7,574 1,617 933379 447496 19756..6021 119.61 76.8

한림대 7,594 1,028 724986 433614 17831..5352 92.23 80.7

울산대 11,268 2,470 1,140409 669255 15781..2874 86.43 73.8

순천향대 10,803 1,518 934959 651433 15743..1468 80.68 74.8

건국대(글로컬) 6,844 732 421396 338349 10699..1612 39.49 74.6

성균관대 19,173 12,473 11,,502208 11,,436941 10733..8930 29.93 74.8

건양대 6,474 821 326463 337314 9782..6755 25.90 73.1

아주대 9,715 5,989 754366 775120 9795..2409 23.71 76.6

대구가톨릭대 10,980 2,066 547200 661194 9628..0480 23.68 69.6

고려대 20,114 14,591 11,,512255 11,,651261 9743..3976 20.41 74.9

연세대 20,279 17,388 11,,714761 11,,854892 9744..4032 20.41 76.2

연세대(미래) 6,832 1,627 329669 432690 9724..3712 17.59 76.9

한양대 16,492 12,035 1,185701 11,,325803 8657..1899 17.30 68.5

이화여대 15,938 8,769 978710 11,,103950 8760..4634 15.79 72.5

계명대 20,789 2,702 864548 11,,009460 7673..0217 13.74 66.1

인하대 17,758 5,057 879306 11,,006393 8731..2265 12.01 69.8

동아대 17,812 2,846 767494 996204 8619..1750 11.45 69.3

영남대 20,292 3,598 972741 11,,102789 8711..9416 10.45 72.4

중앙대 24,014 8,707 1,195525 11,,542569 7655..4496 10.03 66.5

단국대 22,223 5,906 1,082505 11,,323651 7667..4800 8.60 69.8

조선대 18,305 1,846 766169 1,090181 7657..9995 8.04 69.3

의대와 한의대를 보유한 대규모 사립대학 전임교원 확보율

원광대 13,066 1,798 750036 779011 8782..8178 16.69 74.6

가천대 20,167 3,996 973186 11,,103882 8626..4137 16.26 68.1

경희대 25,960 11,891 11,,309566 11,,864125 7655..7399 10.40 65.5

동국대(WISE) 6,861 537 321591 337344 8755..2195 10.14 75.8

출처: 한국대학평가원 대학통계, 대학알리미 2023년 전임교원 1인당 학생수 및 전임교원 확보율(대학)

*재학생 7천 명 이하의 대학과 한의대만 보유한 대학은 제외함

인사이트

학술총서 01역설적이지만,

제5공화국은 한국 민주화에 중요한 시기였다

이 책은 제5공화국의 정치사적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 시도이다. 어두운 기억과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고 해도, 제5공화국 7년 동안 우리 사회는 그 나름의 변화를 겪었다.jj

140×210 ] 536쪽 ] 32,000원 ] 979-11-5707-613-0저자 강원택

현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이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석사를 마친 후 영국 런던정경대학(-4&)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서출판04000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19길 52-7 PS빌딩 4층 문의]02-725-8806

이메일]jhs8807@hanmail.net 블로그]blog.naver.com/jgonggan

“‘대학생 저작권 상식’ 읽고 수강 신청할 수 있도록”

문체부·한국저작권보호원

‘대학생이 지켜야 할 저작권 상식’ 발간

▶1면에서 이어짐

‘대학생 저작권 상식’ 자료집은 저작권에 대한 핵심 요약 설명과 대학 생활·일상 생활에서 궁금해할 수 있는 저작권 관련 내용 Q&A, 저작권 침해 걱정 없이 저작물을 이용하는 방법 등 크게 3가지 목차로 구성돼 있다.

자료집에 따르면 저작권은 저작물을 만들었을 때 만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권리다. 이는 저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 정신적·인격적 이익을 법률로 보호받는 '저작인격권'과 경제적 이익을 보호받는 ‘저작재산권’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저작권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저작권 침해로 창작자의 창작 행위가 줄어들면 대중이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도 감소할 뿐만 아니라 정당하게 콘텐츠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부담 비용 또한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Q&A에서는 교재를 제본하는 행위, 교재를 스캔해 PDF 파일을 만들어 공유하는 행위, 해당 PDF 파일을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행위 등이 모두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교재나 도서를 통째로 제본하는 경우 창작자가 정당하게 저작권 사용료(인세)를 받을 수 없게 되므로 제본 비용을 지불하더라

김기태 세명대 교수가 최근 문체부와 한국저작권보호원이 발간한 『대학생이 반드시 지켜야 할 저작권 상식』을 집필했다.

도 저작재산권 침해다.

교재를 스캔해 디지털 파일 형태로 바꾸는 건 저작물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시 제작할 수 있는 권리인 ‘복제권’ 침해 행위이고, 이를 온라인에서 사고파는 행위는 공중이 수신하거나 접근하게 할 목적으로 송신·제공할 수 있는 권리인 ‘공중송신권’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 또한 교수의 동의 없이 강의를 녹음하거나 녹화하는 행위, 시험 기출 문제인 일명 ‘족보’를 돈 받고 팔거나 돌려보는 행위, 무료 사이트에서 웹툰·웹소설·동영상 등을 소비하는 행위 등도 저작권 침해 행위라고 서술했다.

자료집은 저작권 침해 걱정 없이 저작물을 이용하는 방법도 안내한다. 저작재산권 보호기간은 저작자 생존 기간 및 사망 후 70년이므로 보호 기간이 만료된 저작물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국가 또는 지방자

치단체가 업무상 작성해 공표한 저작물이나 계약에 따라 저작재산권 전부를 보유한 저작물도 허락 없이 이용할 수 있지만 저작물의 출처를 구체적으로 표시해야 한다.

‘대학생 저작권 상식’ 집필자인 김기태 세명대 교수(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는 정부가 해당 자료집을 단순히 도서관에 비치하거나 대학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대학생들이 강제로라도 읽어볼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학생들이 학기가 끝나고 자신의 학점을 확인하려면 꼭 강의 평가를 해야 하는 것처럼 수강 신청 시 ‘대학생 저작권 상식’ 내용을 읽어야만 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요즘 대학생들이 디지털 문화에 익숙해 긴 글을 읽기 힘들어하니 장황하게 늘어놓기보다는 핵심만 설명하려고 했다”면서 “또 이론적인 내용이 들어가면 어려울까 봐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문답 형식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많은 부분을 빼기는 했지만 대학생들이 이 정도 내용만 지켜줘도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분량이 많지 않으니 해당 자료집 내용을 모두 읽고 간단한 퀴즈로 확인 작업까지 거쳐야 대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해 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장성환 기자 gijahwan90@kyosu.net

지자체 전문대학 지원, 정부 지원 9.6% 수준

전문대교협, ‘정부·지자체 재정지원 현황·분석’

“정부·지자체, 재정지원 2배 이상 확대해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고등직업교육연구소가 지난 5일 이슈 브리프 제11호 ‘정부·지자체 재정지원 현황·분석’을 발간했다.

연구책임자인 주홍석 인덕대 교수는 “전문대학과 4년제 일반대학 수를 기준으로 전문대·일반대간 비율은 4:6, 재학생 수 기준 2:8인 점을 고려할 때, 전문대학에 대한 중앙 정부의 재정지원 증액이 전체 대학 지원 예산 가운데 약 10% 수준 가량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주 교수는 “전문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일반대학 진학생 대비 정부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에서 정부의 전문대학 재정지원 규모를 현 수준에서 최소 2배 이상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지자체가 전문대학에 지원한 금액은 1천751억7천200만원으로 정부가 지원한 예산의 9.6% 수준에 그쳤다. 지자체가 전문대학에 지원한 사업 건수는 1천56건으로 정부 지원 건수 대비 43.5% 규모로 나타났다.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22회계연도 기준 지자체의 불용액은 27조5천억원, 사고이월액은 7조4천억원으로 이·불용액 비율이 5.32%에 달했다.

주 교수는 “이를 고려할 때 지자체의 불용예산을 활용해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전문대학과 협업하는 방안을 발굴하고 모색할 필요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문대학이 지자체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기회는 각 지역마다 차이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 타 지역의 사업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각 전문대학들은 타 지역에서는 어떤 사업을 통해 지자체와 협력하고 있는지 벤치마킹하여 대학에서 지역사회에 사업 신설을 건의하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전문대 직업교육, 지역 성장 강화에 직접 관련”

오병진 고등직업교육연구소장은 “전문대학은 각 지역에서 기술·산업 변화에 대응해 양질의 직업교육을 제공한 결과, 중소기업의 산업수요 맞춤 인재 양성, 청년실업 완화와 계층 사다리 역할을 수행해왔다”라고 강조했다.

오 소장은 “최근 전문대학은 지역소멸 완화와 지역산업 발전을 위해 성인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전환에 따른 직무역량 재교육을 추진하고, 우수 외국인 유학생에게 뿌리산업 관련 교육을 통해 국가산업 발전, 지역 정주 여건 개선에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문대학 재정 지원 필요성에 대해 오 소장은 “학령인구 감소에도 매년 1만명 이상 유턴 입학자가 직업교육을 지원하고, 비수도권 소재 전문대학은 성인만학도가 입학해 직업교육을 선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국가 차원의 정책적,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답했다.

오 소장은 “이번 연구를 통해 직업교육은 미래 국가 경쟁력과 지역의 지속 성장강화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분석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현지용 기자 editor@kyosu.net

몰디브는 관광업 호황에도 왜 국가 부채 시달리나

글로컬 오디세이

한진원

한국외대 인도연구소 HK연구교수

몰디브는 남아시아 인도양에 위치한 섬나라다. 수도 섬인 말레(Malé)·환초(atolls), 그리고 다수의

섬(island)으로 이뤄진 몰디브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어 관광지로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하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관광산업은 몰디브 국가 GDP의 약 30%를 차지할 만큼 핵심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2021년 몰디브는 약 37%라는 높은 GDP 성장률을 기록하며 경제적 반등에 성공했는데, 이를 견인한 것이 바로 몰디브 관광산업이다. 물론,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감소한 GDP 성장률이 평년 수준으로 회귀한 현상이라 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37%라는 수치는 코로나 이전 GDP 성장률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다.

몰디브 관광산업이 이처럼 성공한 데에는 고급화 전략이 한몫했다. 몰디브 정부는 ‘한 섬당 리조트 하나(one island, one resort)’ 전략을 통해 타국 관광산업과의 차별점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었다. 결과적으론 이 전략이 유효하게 작동하며 해외투자도 다수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 몰디브의 GDP 대비 FDI 유입 비율은 역내 최대 투자처인 인도를 상회하고 있을 만큼 매우 높은 편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렇게 수익성 좋은 관광산업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몰디브는 높은 국가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알자지라(Al Jazeera)>에 따르면 올해 몰디브 국가 부채는 GDP의 약 113%에 달한다.

이러한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주요 원인으로 몰디브의 대(對) 중국 부채를 꼽을 수 있다. 몰디브는 2014년 압둘라 야민(Abdulla Yameen) 전 대통령 재임 시 다수의 인프라 개발 명목으로 중국 정부 차관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를 통해 얻게 된 대중국 부채가 약 16억 달러(한화 약 2조 2천224억 원)에 이른다는 점이다. 이는 몰디브 GDP의 약 40%에 이르는 수치다.

더 심각한 것은 이렇게 대규모 차관을 들여 착수한 인프라 프로젝트의 수익성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훌후말레(Hulhumalé) 인공섬 사례를 들 수 있다. 훌후말레는 수도 말레의 인구를 분산시키는 동시에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섬이

다. 매립은 1997년 시작됐으나 2013년 야민 전 대통령이 이곳에 주거 단지를 만들겠다고 공언하며 본격적 공사가 시작됐다. 이 공사에 중국은 약 11~12억 달러(한화 약 1조 4천억 원)를 대출해 줬다. 그러나 해당 프로젝트가 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수익성 있는 사업이라기보단 공공사업에 가깝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그러나 상기 언급한 몰디브의 높은 대중국 부채 요인은 ‘몰디브의 높은 국가 부채’ 자체는 설명할 수 있으나, “왜 관광산업으로 인한 수입이 지속해서 증가함에도 높은 국가 부채에 시달리는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실제로 1980년대 부터 중국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시작한 2014년 그리고 야민 전 대통령이 실각한 2018년까지 몰디브 국가 부채 비율은 완만하게 증가하고 있음에도 동기간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 몰디브 관광 수입은 이를 상쇄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몰디브 관광산업엔 어떤 본질적 한계점이 존재할까?

첫째, 몰디브 관광산업은 수입 의존적 특성이있다. 이 때문에 몰디브에서 창출되는 관광 수입 중 상당 부분이 국외로 유출돼 신속한 부채 상환이 어려울 수 있다.

둘째, 몰디브 관광산업 종사 노동자 중 외국인 이주 노동자 비율이 높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때문에 국가부채 상환을 위한 세입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몰디브 관광산업 시설 대부분은 수도 말레 주변에 집중돼 있다. 몰디브 정부 입장에선 이 소득 양극화 때문에 국가부채 상환을 위한 균일한 세입 구조를 갖기 어려울 것이며, 이는 국가부채 상환 개선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몰디브 관광업 자체가 환경 및 기후 문제로 인해 붕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예로써, 지난해 몰디브 관광 리조트의 약 45%가 해안 침식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이에 따라, 몰디브 정부의 국가부채 상환은 앞으로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몰디브 재무부는 올해 예산안에서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를 줄이는 데 우선순위를 둘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보다 더 효과적으로 국가 부채를 줄이기 위해선 이번 조치와 더불어 핵심 산업인 관광산업의 근본적 한계점을 개선하는 노력 또한 이행돼야 할 것이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인도 정치를 세부 전공으로 국제지역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관심 분야는 인도 및 남아시아 지역 내 정치 현상이다. 관련 연구로는 「Examining Determinants of Corruption at the Individual Level in South Asia」 (2023) 등이 있다.

일반인공지능 시대, 과학기술이 인문사회에 묻는 것

미래를 준비하는 인문사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❽

장원호

한국사회과학협의회 회장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

최근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지난 2년간 반도체공학과 인공지능(AI)관련 학과의 정원을 대폭 늘렸다.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산업 분야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한국연구재단의 R&D 예산 중에서 과학기술 관련 연구비의 비중은 95퍼센트가 넘는다. 이 또한 과학기술연구에 사용되는 고가의 장비 등을 고려할 때 이해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과학기술의 발전만이 우리 사회가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가 허버트 마르쿠제가 『일차원적 인간』에서 가장 우려했던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술 합리성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자유와 창의성이 통제되고 인간 본성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이었다. 지금 전지구 자본주의 세상은 이미 이러한 ‘일차원적 인간’으로 가득 차 있고, 우리 사회는 그 첨단의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특히, AI로 대표되는 새로운 디지털 사회는 과학기술 합리성의 질주가 인간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길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

인문사회의 ‘대안’이 궁금했던 과기정통부

필자는 한국 사회과학계 15개 주요 학회의 공동 연구 및 교육을 지원하는 한국사회과학협의회의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는데, 최근 사회과학협의회는 과기정통부와 ‘인간과 사회 중심의 디지털화(Human and Social Centered Digitalization)’라는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사회과학협의회가 과기정통부에 이러한 프로그램을 제안하였을 때, 과기정통부의 고위 관료들은 한결같이 이 제안을 과기정통부가 먼저 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우

AI대학장을 맡고 있는 오랜 친구를 만났다.

일반인공지능시대의 인간과 사회에 관한 대화 중에 친구가 묻는 말,

“장 교수, 휴매니티는 정말 뭘까?” 과학기술이 인문사회에 계속 질문할 것 같다.

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을 책임지는 공무원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기뻤고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과학기술 정책의 선단에 서 있는 그들이었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 더 깊이 우려했고 책임감을 느꼈을 것 같다. 반도체와 AI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담론들이 우리 사회에 팽배하고 있지만, 실제 정책 담당자들의 입장에서는 일반 사람들이 AI의 현 상황과 향후의 모습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걱정이 많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과기정통부의 고위 관료는 인문사회과학의 주요 학회에 참석해서 현재의 과학기술 발전 상황, 특히 AI와 관련된 상황을 설명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것은 물론 인문사회과학 학자들의 AI 리터러시를 높이고자 하는 것이지만, 더 중요한 목적은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어떠한 의견을 내놓을지 알고 싶은 것이라고 한다. 참으로 옳은 생각이다.

AI의 발달은 이제까지의 과학기술 발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기존의 과학기술은 인간 외부에서 인간을 돕는 것이라면, AI는 인간의 영역에 침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AI 임계점(Singularity)을 넘어선 슈퍼 인텔리전스의 시대에서는 일반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이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재 정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과학협의회가 과기정통부에 제안한 내

용은 다음과 같다. 인간중심 AI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경제적 회복탄력성 방안, 디지털 디바이드를 극복할 수 있는 포함적 디지털화 방안, 인간 중심적 AI와 지속가능한 환경 문제, 평생교육과 교육평등을 위한 인간중심 AI 활용, 인간중심 AI를 통한 젠더 불평등 해소 방안, 지역 활성화와 지방소멸 문제를 위한 인간중심 AI 활용 방안, 인간중심 디지털화를 통한 스마트 도시 구축 방안 등이다.

포기할 수 없는 ‘인간·사회 중심 디지털화’

요약하면,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종합적인 인간 및 사회 중심의 디지털화 방안이라 할 수 있다. 하나하나의 내용이 너무나 시급한 것이지만 쉽게 연구될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니다. 하지만, 어렵다고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연구 과제들이다. 이러한 과제의 해결 없이, 과학기술의 발전만으로 정말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아마 과기정통부에서 도 이러한 내용을 많이 고민했을 것이고,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인문사회과학에게 물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인문사회과학을 위한 한국연구재단의 R&D 예산은 전체 R&D 예산의 4퍼센트 정도이다. 이 예산으로 위에서 열거한 연구를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까? 참고로 일본 문부과학성의 과학연구조성금 중 인문사회과학의 R&D 예산은 전체 예산의 18% 정도를 차지한다. 과학기술 분야에 집중해 온 중국도 전체 R&D 예산 중에서 인문사회 연구 예산이 6% 정도로 우리보다 높다. 우

리 연구재단에서 참고하고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인간·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는 더 필요해졌다

얼마 전, 한 OTT 사이트에서 네안데르탈인의 모습을 탐구하는 고고학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고고학자들의 힘든 노력 덕택으로 네안데르탈인과 현 인류의 공통점, 특히 꽃 무덤을 통해 죽음을 바라보는 인류의 공통점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꽃 무덤이 현재 고고학적 쟁점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만약 당신이 이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인류는 여러 세대가 지나도록 이 사실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학문에 종사하는 자의 사명감과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실제로, 천체물리학의 많은 발견이 없었다면 인류는 오랫동안 우주에 대해 모른 채 살아갔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 발견이 없었다면 우리는 인류를 설명하는 중요한 특징을 알지 못한 채 몇 세대를 살아갔을 것이다.

이렇듯 인류와 사회를 위한 발견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과학은 똑같이 의미있는 연구를 하고 있다. 특히 인간과 사회에 관한 깊은 숙려가 필요한 일반인공지능(AGI)의 시대에서는 인문사회과학의 역할과 책임은 더욱 커질 것이다.

최근 모 사립대학에서 AI대학장을 맡고 있는 오랜 친구와 식사를 했다. AI대학장과의 식사답게 우리가 반찬으로 사용한 대화는 주로 AGI 시대에서의 인간과 사회에 관한 것이었다. 그 대화의 마지막에 AI대학장 친구가 한 말이 아직도 귓가에 울린다.

“장 교수, 휴매니티(humanity)는 정말 뭘까?” 과학기술이 인문사회과학에 계속 질문할 것 같다.

광운대·서강대·전주대 등 ‘인문사회 융합인재’ 신규 선정

교육부,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사업’

지역, 사회구조, 글로벌·공생 분야 90억 지원

광운대·서강대·전주대가 주관하는 2024년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사업’ 연합체 3곳이 새로 선정됐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지난달 31일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사업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에는 지역, 사회구조, 글로벌·공생 3개 분야에 19개 연합체가 신청해 이 가운데 3개 연합체를 선정했다. ‘지방시대에서의 지역가치 창출’ 주제는 전주대가, ‘공동체의 건강한 생태계 구축을 통한 사회구조 변화 대응’ 주제는 서강대, ‘인류와 자원의 지속가능성 및 글로벌 공생’ 주제는 광운대가 주관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사업 신규 연합체(2024년~)

대주제

연합체(컨소시엄)

주관대학 참여대학

지방 시대에서의 지역가치 창출 전주대 경북대, 동국대, 한남대, 한림대

공동체의 건강한 생태계 구축을 통한

사회구조 변화 대응 서강대 단국대, 대전대, 상명대, 원광대

인류와 자원의 지속가능성 및 글로벌 공생 광운대 국민대, 선문대, 영남대, 호남대

대학을 맡았다.

2023년부터 추진 중인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사업(HUSS)은 대학 내 학과(전공) 간, 대학 간 경계를 허물어 인문사회 중심의 융합교육 체제를 구축하고, 미래 사회에 필요한 융합인재를 양성하는

사업이다. 3~5개 대학이 분야별로 연합체를 구성하고, 연합체별로 소주제를 자율적으로 설정해 교육과정을 공동으로 개발·운영한다.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학사제도 개편도 추진한다. 지난해 대주제는 디지털, 환경, 위험사회, 인구구조, 글로벌·

문화였다.

이번에 새로 선정된 연합체는 기존 연합체와 마찬가지로 3년간(2024~2026년) 매년 약 30억 원의 재정지원을 받는다. 학생들은 대학이 제공하는 다양한 융합교과목과 직무 실습(인턴십), 현장 전문가 특강, 경진대회 등 정규 교과목과 연계한 다양한 비교과 활동을 할 수 있다.

최은희 교육부 인재정책실장은 “폭넓은 경험과 역량을 갖춘 융합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 안팎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번 신규연합체 선정을 계기로 학생이 원하는 교육을 선택하고, 필요한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교육혁신에 박차를 가하길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최승우 기자 editor@kyosu.net

고맙습니다

한국지성의 정론지 <교수신문>은

선생님의 후원과 정성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구독료 납부 계좌]

• 국민은행 061-01-0492-863 (이영수)

• 농협 056-01-088583 (이영수)

• 신한은행 110-009-150-978 (이영수)

• 교수신문은 주간 신문입니다. (연간 구독료 100,000원)

• 구독기간 만료시 자동연장됩니다. (해지는 전화 또는 홈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 은행으로 입금 시 구독자와 입금자 성함이 다를 경우 신문사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 카드결제는 홈페이지 우측 하단 '구독문의'에서 로그인 후 결제하실 수 있습니다. (문의 02-3142-4111 )

미소의 위엄 ‘얼굴 무늬 수막새’…어떤 오묘함일까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신라 문화유산

국립경주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이 직접 투표해 선정한 다섯 가지 문화유산이 5권의 책(틈새책방)으로 출간됐다. 바로 천마총 금관, 황금 보검, 토우 장식 항아리, 얼굴 무늬 수막새, 황룡사 치미다. 국내 최고 연구자들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저술한 이 책들은 학술적 가치도 담고 있다. 이후에도 성덕대왕 신종,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감은사 사리갖춤, 장창곡 석조미륵삼존불, 금동초심지가위 등이 출간될 예정이다. 이 책들을 통해 기원전 57년부터 기원후 935년까지 한반도 동남쪽에 있었던 천년 왕국 신라를 만날 수 있다.

‘신라’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를까. 바로 ‘천마총 금관’이다. 화려한 장식의 금관은 신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천마총 금관: 신라를 담은 타임캡슐』을 집필한 이한상 대전대 교수(역사문화학 전공)는 “신라는 삼국 시대 여러 나라 가운데서도 가장 화려한 황금 문화를 꽃피웠다”라며 “귀걸이, 팔찌, 반지는 물론이고 방울이나 장식 보검, 금으로 만든 그릇까지, 신라의 황금 유물은 종류도 정말 다양하다”라고 강조했다.

천마총은 우리나라에서 국가 주도로 이루어진 첫 기획 발굴 사례다. 신라 고고학이 체계화되기 시작한 기점이기도 하다. 지난해 천마총은 발굴 50주년을 맞았다. 그런데 궁금한 건 그 오래 전 금제 유물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을까? 이 교수는 “무덤에 많은 물품을 넣어 주는 풍습과 돌무지 나무덧널 무덤이라는 특이한 무덤 구조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돌무지 나무덧널 무덤’이란 기원후 400년부터 550년 사이에 신라에서 유행한 무덤 구조인데, 무덤 주인공이 묻힌 나무덧널 주위에 사람머리 크기의 돌을 쌓고, 그 위에 봉분을 만든 무덤을 말한다.”

신라 금관은 현재까지 총 여섯 점이 발굴됐다. 특히 천마총 금관은 가장 화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높이가 32.5센티미터, 지름은 20센티미터로 현재까지 발견된 신라 금관 중 가장 크기도 하다.”

서아시아에서 수입된 황금 보검

1973년 경주 계림로에 위치한 한 작은 무덤에서 황금 보검이 발견됐다. 화려한 장식을 한 황금 보검은 기존 신라 무덤에서 발굴된 신라의 칼과는 너무도 다른 모양이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고민을 거듭했다. 오히려 카자흐스탄 보로보에 단검과 형제처럼 닮아 있어 유럽의 고고학자들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외래품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상층 계급이 소유하고 싶어 했기에 황금 보검을 비롯한 서아시아에서 제

국보 제188호인 천마총 금관, 오른쪽은 보물 제2010호인 얼굴무늬 수막새이다. 얼굴무늬 수막새는 경주에 들어서면 보이는 상징이다. 사진=위키백과

“얼굴 무늬 수막새의 미소 앞에서 공포를 느끼는 이는 없겠지만, 그 미소의 위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어쩌면 노여움 대신 춤과 노래로 역신을 무릎 꿇게 만들었다는 신라 설화 속 처용의 고고한 자세와 맞닿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된 물건들이 신라에 수입됐고, 귀한 물건이기에 무덤까지 가져갔다고 이해할 수 있다.”

『황금 보검: 신라를 찾은 이방인의 칼』에 따르면, 검집은 나무로 만들고, 앞면과 옆면에는 금판과 각종 보석을 장식했다. 황금 보검의 아래쪽은 사다리꼴 모양으로 벌어졌다. 검집 윗부분의 태극무늬는 3개의 굽은옥이 돌아가는 듯한 모양이다. 금판을 세워 공간을 만들고 석류석을 넣었다. “보검은 실제 사용한 것이기보다는 신분을 드러내기 위한 칼로, 귀금속이나 귀한 보석으로 아주 화려하게 만든 칼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인 윤상덕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장은 “모양과 제작 기법, 금속 성분비를 비교해 본 결과 황금 보검은 신라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 제작돼 수입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책에는 2010년 발표된 발굴 보고서 「경주 계림로 14호묘」의 내용을 포함했고, 국립경주박물관의 비파괴검사 조사결과로 생산지와 제작 집단까지 추정했다.

일상생활 표현한 미니어처 ‘토우’

신라인의 예술 작품을 통해 그들의 일상이 드러난다. 토우(土偶)는 흙으로 만든 손가락 한두마디 크기의 작은 인형이다. 사람과 동물, 악기 등 신라인들의 일상생활을 표현한 일종의 미니어처다. 토우를 붙여 장식한 목 항아리 두 점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데, 각각 경주 계림로와 노동동에서 출토

됐다. 항아리의 어깨와 목이 만나는 부분을 빙 둘러마치 파노라마처럼 투박하지만 기발한 모양의 토우장식이 펼쳐진다.

『토우 장식 항아리: 신라인의 일상을 엿보다』는 토우가 1600년 만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계기부터, 신라인들이 왜 토기에 이런 작은 흙 인형을 붙여 무덤에 넣었는지까지 자세하게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신라인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1600년이라는 긴 시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국보인 미추왕릉 지구에서 토우 장식 항아리가 출토됐다. 국보로 지정된 것이 두 개다. 하나는 미추왕릉 지구 출토 목 항아리이고, 다른 하나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경주 노동동 출토 목 항아리다. “토우는 대략 2∼5센티미터로 어른 손가락 한두마디만한 크기다.” 토우는 “무려 1600여 년을 잠들어 있었던 토우는 일제 강점기였던 1926년 5월에 발견”됐다고 하니 거의 타임캡슐을 연 듯하다. “1973년에 발굴 조사한 대형급 왕릉인 경주 황남대 총 남분에서는 춤추는 여자토우가, 북분에서는 고

깔을 쓴 남자 토우가 붙은 그릇 받침 조각이 각각 출토됐다.”

오묘한 미소 띄운 신라의 얼굴

신라를 상징하는 또 다른 보물은 바로 ‘얼굴 무늬 수막새’다. 누구나 한 번 쯤 보았을 유물이다. 경주에 들어서면 오묘한 미소를 띄고 우리를 반기는 ‘신라의 얼굴’ 얼굴 무늬 수막새는 아직까지 같은 문양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유물이다. “얼굴 무늬 수막새는 천년 고도 신라의 지붕을 구성했던 건축 자재로, 연꽃무늬 일색의 지붕 장식에서 단연 돋보이는 기와다.”

얼굴 무늬 수막새는 선덕여왕의 일화가 가득한 영묘사에서 일제 강점기에 발견돼 국경을 넘어 긴 여정을 떠났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문화유산이다. 기와로서는 처음으로 보물로 지정됐다. 얼굴 무늬 수막새는 2018년 11월 27일 보물 제2010호로 지정됐다.

『얼굴 무늬 수막새: 신라의 영묘한 미소』는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의 수막새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그리고 통사적인 분석을 통해서 7세기 전반에 제작된 얼굴 무늬 수막새의 위치와 독특함을 드러내고자 노력했다. 또한 ‘천 년의 미소’의 모델이 된 이가 누구인지 추적해 나가는 과정도 제시해 독자의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천 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신라의 도공들이 어떤 마음을 담아 얼굴 무늬 수막새를 만들고 지붕에 올렸을지 상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저자인 최영희 강릉원주대 초빙교수(사학과)는 “지금까지 얼굴 무늬 수막새는 직접 손으로 빚어 만들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실제 자세히 관찰해 보면 와범을 이용해 찍어 낸 것”이라며 “두툼히 솟은 양볼, 울퉁불퉁 거친 피부, 기울어진 미간의 주름에는 나무로 만든 와범 특유의 흔적이 잘 남아 있다”라고 설명했다. “벌어진 콧구멍과 한쪽으로 올라간 입술도 모두 나무로 만든 와범에서 찍어 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특히 최 초빙교수는 “얼굴 무늬 수막새는 신라가 삼국을 통합하기 이전인 7세기 전반의 어느 시점에 만들어져 영묘사가 처음 지어질 때 지붕에 올려진 것으로 생각된다”라며 “얼굴 무늬 수막새의 미소 앞에서 공포를 느끼는 이는 없겠지만, 그 미소의 위엄은 결코 가볍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어쩌면 노여움 대신 춤과 노래로 역신을 무릎 꿇게 만들었다는 신라 설화 속 처용의 고고한 자세와 맞닿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얼굴 무늬 수막새가 세속을 뛰어넘은 존재의 형상이란 점만은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복을 기원하고 귀신 물리치는 ‘치미’

마지막으로 ‘황룡사 치미’다. 『황룡사 치미: 기와 지붕에 기품을 더하다』의 저자 이병호 동국대 교수(문화재학과)는 “치미는 건물이 높아 보이게 하여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한편, 복을 기원하고 재앙을 막고자 하는 벽사(辟邪: 귀신을 물리침)의 의미도 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때 건립된 사찰이다. 진흥왕이 경주 월성 동쪽에 새로 왕궁을 지으려 하다가 도중에 황룡이 나타나자, 이를 기이하게 여겨 고쳐 지었다. 이 절이 바로 황룡사인데, 경주 중심부에 위치한 신라 최대의 사찰이다. 장육불상을 모셨고 선덕여왕대에는 9층 목탑을 세웠다.

이 황룡사지 발굴 조사를 통해 수습된 유물은 무려 4만여 점이다. ‘치미’는 그 가운데 하나다. 황룡사 치미는 높이 182센티미터, 폭 105센티미터 크기를 자랑한다. 황룡사의 위용을 짐작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예술성 또한 뛰어나다. 기와를 사용했던 중국과 고구려, 백제의 치미와 비교하면, 황룡사 치미의 독특한 제작 기술과 아름다움이 더욱 드러난다.

이 교수는 황룡사 치미에 대해 “지금까지 발견된 우리나라의 고대 치미 중 가장 크다”라며 “연꽃과 남녀의 얼굴 등 다른 유적에서 발견된 치미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무늬가 있어서 예술성 또한 뛰어나다”라고 강조했다. 치미는 “궁궐이나 절과 같은 전통 건축물의 기와지붕을 보면, 가장 높은 곳에 커다란 장식용 기와가 양쪽으로 얹혀져 있다”라고 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저자가 말하다_『송기원의 생명 공부』송기원 지음 | 사이언스북스 | 384쪽

기적으로 태어나 먼지로…생명은 뭘까

송기원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

우리 모두 생명을 가진 존재지만 누군가 “생명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간단히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또 지구에 서식하는 생명 있는 존재는 모두 포함할 수 있고 생명 없는 존재는 모두 제외할 수 있는 생명체에 대한 하나의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정의할 수 없으나 우리는 선험적으로 무엇이 생명체이고 아닌지 알 수 있다.

현재까지 생명을 가진 존재인 생명체는 태양계에서 지구에서만 발견됐고, 지구 역사에서 어떤 우연의 조합이 생명체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는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생명체는 지구의 다른 모든 물체들처럼 우주의 먼지인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다른 물체들과 구분되는 특징을 보인다. 우리는 ‘생로병사’와 ‘끊임없는 진화’를 일반적인 생명체의 특징으로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최근 생명과학과 관련 의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생·로·병·사 과정 각각을

산업의 중심에 생명이 있는 시대

창조자 된 인간이 파괴하는 환경

자연현상에서 분리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세계보건기구(WHO)는 노화를 더 이상 자연현상이 아닌 질병으로 간주하고 있다. 생명체에 대한 정의가 혼란스러운 시점이다.

재미있게도 구글에서 ‘생명’에 대해 검색하면 ‘생명의 말씀’과 생명보험에 관련된 내용이 가장 많이 보인다. 우리가 ‘생명’을 어떤 신비로운 영적인 개념이나 아님 가장 물질적 가치로 서로 상반되게 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지금은 생명이 산업의 중심에 있는 시대다. 생명과학은 생로병사를 극복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추진력으로 1980년대 이후부터 소위 ‘신성장 동력’이라 불리며 혁신 산업의 선두에 있어 왔다.

또한 유전자 가위나 합성생물학 등 빠르게 발전해 온 생명과학과 관련된 기술로 인간의 위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피조물 중 하나에서 이제는 자신을 포함하는 지구상 모든 피조물을 의지에 따라 변화시키고 재구성할 수 있는 창조자의 단계에 다

다랐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창조자의 단계에 오른 인간은 그 생존 방식을 통해 이전 지구의 역사에서 진행된 어느 멸종보다도 빠른 속도로 수많은 타 생물종들의 대량 멸종을 야기하고 우리를 포함한 생명의 유일한 서식지인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생화학자로서 생명체의 정의가 혼란스럽고 ‘생명’과 관련된 이런 양극단의 이율배반적인 변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한 가운데서 ‘생명’ 현상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항상 내 마음속에 있었다. 답을 아는 사람은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 논문이나 가시적 성과만을 원하는 한국의 과학계에서 아무도 원하지 않던 글쓰기를 멈출 수 없었던 것은 내 마음속의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기 위한 나 나름의 시도였다. 물론 글쓰기는 답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글로 질문을 좀 더 구체화하고 논리적으로 정리하면서 현재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는 있었다. 이 책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명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과 현재까지 과학계가 찾아온 답들

을 정리하고 여기서 파생되는 생명체의 한 종으로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혹은 존재여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과정이었다. 생명체인 우리 자신을 움직이는 생명의 논리와 우리가 만들어 낸 생명체를 대상으로 한 기술들을 정확히 앎으로써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이해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질문을 정확히 마주하고 답을 찾는 과정을 지속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생명 현상에 대한 나의 질문들이 생명과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마음에 가서 닿기를 기대해 본다. 그래서 우주에서 기적 혹은 우연으로 태어나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는 우리 자신을 포함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생명체들을 움직이는 공통의 논리를 이해하고, 이러한 지식을 기반으로 우리의 손에 들어온 생명과학과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각자가 바른 판단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저자가 말하다_『새로 쓴 미국 종교사』 류대영 지음 | 푸른역사 | 580쪽

“원주민·아프리카계 주민에게 강요된 기독교”

유럽계 미국인은 ‘인종 말살’적 만행도 자행했다

류대영

한동대 교수·기독교사학

유럽인에 의한 원주민 종교 파괴

자연·환경 파괴 그리고 강제 이주

『새로 쓴 미국 종교사』는 미국 종교가 크게 네 시기를 거쳐 왔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건너온 원주민들이 북미 대륙 환경에 맞게 발달시킨 다양한 종교가 수천 년 동안 번창했던 시기다. 두 번째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인들과 함께 기독교계 교파들이 들어와서 지배적 종교로 자리 잡는 시기다. 이 기간 동안 원주민들의 삶과 종교는 생존을 위협받았으며,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노예들의 종교도 소멸의 길을 걸었다. 세 번째 시기는 19세기부터 불교·힌두교·이슬람 같은 비유대-기독교계 종교가 들어와서 미국 종교 지형에 작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시기다. 그리고 마지막은 20세기 후반부터 나타나 점점 거세지고 있는 세속화-비종교화의 시대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지배력을 가진 사람들의 종교가 지배적 종교가 되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예외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론 미국도

“오랫동안 원주민은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가지지 않은, 미국에 거주하는 이방인이었고, 정복과 약탈의 대상일 뿐이었다.”

“기독교가 미국의 지배적 종교가 된 과정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으며, 특히 원주민과 아프리카계 노예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다.”

마찬가지다. 미합중국을 건설하고 지금까지 미국의 거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유럽계 사람들의 종교인 기독교, 특히 개신교와 천주교는 미국에서 아직도 가장 크고 강력한 종교로 남아있다. 미국은 유럽계 이주민이 만든 나라이므로 그들이 가져온 기독교에는 개신교의 수많은 여러 교파, 가톨릭, 그리고 여러 지역에서 온 동방정교회가 포함돼 있었다. 식민지 시대부터 오늘까지 그들은 주도권을 두고 필요하다면 전쟁을 벌일 정도로 처절하게 싸웠고, 때로는 종교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미국 종교 지형은 그 결과에 따라 형성되고 변해갔다.

같은 신을 믿는 종교인들끼리 그렇게 싸웠다는 것은 그들이 다른 종교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였을지 충분히 짐작하게 해준다. 식민지 개척을 위해 북미 대륙에 진출한 유럽인들은 북미 대륙을 자신들이 정복해야 할 ‘광야’로 여겼다. 또한 그들이 가져온 기독교는 매우 정복주의적 성격을 가진 종교였다. 유럽인들의 북미 대륙 정복은 원주민 수천만 명의 삶과 종교를 파괴하고 원하지 않

는 변화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원주민의 수난은 메인(미국 동북부에 있는 주)에서 조지아에 이르는 대서양 연안의 영국 식민지, 애팔래치아산맥과 로키산맥 사이의 광대한 프랑스 식민지, 남서부와 태평양 연안의 에스파냐 식민지, 그리고 러시아가 진출한 알래스카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외 없이 벌어졌다. 그리고 영국 식민지들이 독립해 미국이 탄생한 후 대륙 전체로 영토를 확장하고, 획득한 영토에 이주하는 과정에서는 더 많은 비극이 발생했다. 유럽계 미국인들은 원하는 땅에 원주민이 살고 있으면 각종 입법·행정 조치를 통해 강제로 원주민들을 쫓아냈고 필요할 경우 참혹한 폭력과 대량 학살을 서슴지 않았다. ‘인종 말살(genocide)’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반인륜적 범죄 행위였다.

유럽인에 의한 원주민 종교 파괴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자연과 환경 파괴, 그리고 기독교의 강요가 그것이다. 원주민들은 오랫동안 북미의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가운데 자연과 인간, 현세와 내세가 분리되지 않고 공존하는 세계관을 만들었다. 그들의 종교는 자연과 인간을 아우르고 조상들과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이에 비해서 유럽인들은 영과 육을 나누고,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여기며, 이 세상과 완전히 분리된 천국을 믿었다.

유럽인들은 가는 곳마다 자연환경을 파괴했으며, 필요할 경우 원주민들을 대대적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그런 극적인 변화는 원주민 삶의 기초를 완전히 붕괴시켰고, 그에 따라 그들의 종교도 생존을 위협받았다. 또한 유럽적 세계관에 기초한 기독교는 원주민들에게 낯설 뿐 아니라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무엇이었다. 기독교 선교사들의 원주민 대상 선교는 성공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기독교 선교는 식민지 건설과 서부 진출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명목상 동기였고 야만인으로 여겨지던 원주민의 종교는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유럽인이 진출한 곳에서는 예외 없이 기독교가 강요됐다. 선교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졌지만 대부분 육체적·정신적·문화적 폭력을 동반했다.

연방 법원이 원주민에게 미국 시민권을 부여한 것은 1924년이었다. 그리고 모든 주가 그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것은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후였다. 다시 말해서 오랫동안 원주민은 시민으로서 권리를 가지지 않은, 미국에 거주하는 이방인

이었고, 정복과 약탈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들이 미국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유럽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건국 이후 대부분의 원주민은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 종교를 기독교와 결합하는 방식을 택했다. 페요테(peyote) 종교에 기초한 미국 원주민 교회(Native American Church)가 대표적이다. ‘위대한 영혼’과 예수를 믿고 성서를 사용하지만, 환각 효과가 있는 페요테를 사용해 예수와 조상들을 만난다는 점에서 유럽계의 기독교와 완전히 구별된다.

원주민들이 겪은 일과 그들의 종교에 나타난 현상은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과 그들의 후손에게도 나타났다. 원주민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계 노예들도 다양한 토착 종교나 이슬람을 믿는 매우 종교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이 있기 전 그들은 인간으로서 기본적 권리조차 없는 사유물이었다. 그들은 자기들 종교를 공개적으로 믿을 수 없었으며, 노예주의 종교인 기독교를 일방적으로 강요받았다.

기독교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독자적인 신앙생활은 불가능했고, 유럽계 사람들의 감시 속에서 허락된 범위 내에서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더구나 이리저리 팔려 다니며 삶의 안정성이나 연속성도 없이 여러 부족이 섞여 살아야 하는 형편이었다. 따라서 노예들이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여러 종교는 급격히 소멸할 수밖에 없었다.

남북전쟁 직전 약 3천1백만 미국 인구 가운데 4백4십여 만 명이 아프리카계 주민이었다. 그들의 약 90퍼센트가 노예였다. 원주민들과 마찬가지로 그들과 후손들 대부분은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원주민들처럼 그들의 기독교도 노예의 경험을 반영했고 아프리카적 종교와 기독교가 결합된 모습을 보였다. 신이 아니라 수난당한 예수에 대한 믿음이 중심이 되고, ‘링 샤우트(아프리카 서부에서 기원한 미국 남부의 춤)’를 통해 종교적 황홀경에 이르며, 예배 중 북이나 손뼉을 치고 몸을 흔드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설교자와 청중이 주고받는 설교, 다중 리듬, 같은 말이나 노래의 반복도 유럽계 기독교에서는 볼 수 없는 아프리카적 모습이다.

기독교가 미국의 지배적 종교가 된 과정은 유럽 각국이 경쟁적으로 식민지를 건설하며 그 영역을 확장하고, 이후 건국된 미국이 서부로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과 맞물려서 전개됐다. 그 과정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으며, 특히 원주민과 아프리카계 노예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다. 기독교 강요는 그 고통 가운데 하나였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원주민과 아프리카계 주민이 기독교를 수용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독교 속에는 그들과 조상들이 오랫동안 겪어야 했던 고통, 기독교 이전의 종교 전통, 그리고 기독교가 그들에게 주었던 종교적 의미가 복합적으로 녹아있다.

신간소개

노소동락

손일 지음 | 푸른길 | 232쪽

교수직에서 은퇴하고 작은 선술집을 차린 저자의 온기 가득한 레시피 에세이가 출간됐다. 이 책에는 예순 넘어 초짜 셰프가 되길 결심한 저자가 선술집 ‘동락’을 차리고 겪게 된 이야기가 담겨 있다. 2020년

부터 2022년까지 가게를 운영하는 동안 인스타그램에 기록했던 글과 사진을 바탕으로 책장을 꾸렸다. 송파경찰서 뒤편에 ‘동락’을 열었던 날부터 가게 메뉴를 정하고 재료를 사러시장을 돌아다니는 일, 부엌과 삶을 오가며 동락을 동락(同樂)답게 만들어 준 순간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불로소득 시대 부자들의 정체

앤드류 세이어 지음 | 전강수 옮김 | 여문책 | 616쪽

많은 국가에서 불평등이 확대되고 긴축 정책의 효과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부자들의 부는 날로 급증하고 있다. 이 책은 상위 1퍼센트가 부동산과 자금을 통제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생산한 부를 빨아들

일 수 있도록 해주는 불의하고 역기능적인 메커니즘을 폭로한다. 저명한 사회과학자인 저자는 전 세계 부자들이 어떻게 부채를 늘리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능력을 강화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미래 교직 디자인

캐럴 G. 베이즐 외 2인 지음 | 정바울 외 2인 옮김 | 살림터 | 192쪽

현재 우리 사회에서 교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만성적 위기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무척 중요한 문제로 다루고 있지만 그 속에서 일하고

있는 교육 인력을 어떻게 재정의하고·재구조화하고·운용할 것인지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깊이 고민하지 않고서는 지금의 한국 교육계에서 일어난 일을 해결할 길이 요원할 것이다. 이 책은 학교 안에서 일어나게 할 변화를 만들어 나갈 사람들을 위한 공동 기획과 실천을 위한 안내서이다.

스페이스 이코노미

채드 앤더슨 지음 | 장용원 옮김 | 이기주 감수 | 민음인 | 384쪽

민간 우주 개발 시대 투자와 창업의 핵심적인 변화를 심도 있게 분석한 우주 비즈니스 안내서인 이 책이 출간됐다. 저자는 세계적인 우주 기업의 투자를 이끈 ‘스

페이스캐피털’의 설립자로, 우주 시장을 초기부터 지켜본 사람으로서 우주의 경제적 가치가 급증하는 데 비해 그 가능성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이러한 한계를 타파하고자한다.

이제 길이 보입니다

최원락 지음 | 모아북스 | 272쪽

금융업과 제조업 관련회사에 활동해 오고 있는 저자는 지난 20여 년간 엄청난 독서와 대화를 통해 ‘변화·새로운 사회·미래 사회에 적합한 인재의 소양·경영의 흐름’을 관통하고자 했다. 특히 급변하는 현

실 사회에 어떻게 적응해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당면의 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풀어가는 방안을 찾고자 방대한 자료와 풍부한 경험을 분석하고, 그로부터 삶의 살아가는 지혜를 끌어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의 중심 가치와 트렌드까지 포착해 제시한 것은 이 책만이 가진 특이성이다.

쓰는 여자, 작희

고은규 지음 | 교유서가 | 312쪽

2007년 『급류타기』로 등단한 후, 2010년 첫 장편소설 『트렁커』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솜씨, 작품을 어필하는 요소가 매순간 스타카토처럼 몰아친다”는 심사평을 받으며 중앙장편문학상

을 수상한 저자가 네번째 장편소설인 이 책을 펴냈다. 『데스케어 주식회사』, 『알바패밀리』에 이어 9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이다. 펴내는 소설마다 참신한 인물 설정과 몰아치는 입담으로 '유쾌한 이야기꾼'으로 평가받는다.

치유산업에서 길을 찾다

김재수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48쪽

인구 감소·초고령사회 진입·농촌 경제 침체 등 한국 사회에 지속적으로 대두되는 문제들이 있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 문제들에 대비하기 위한 여러 해결책 중 치유산업을 강조한다. 인구구조의 변화가 산

업 지형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는 상황에서 치유산업은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꾸준한 성장을 이어갈 전망이다. 이에 발맞춰 국내 치유산업 현황을 파악하고 선진국의 치유산업 트렌드를 통해 앞으로 주목할 만한 신산업 분야를 살펴보고자 한다.

살 것만 같던 마음

이영광 지음 | 창비 | 140쪽

선명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존재의 고통과 현실의 아픔을 노래해온 저자의 여덟번 째 시집인 이 책이 출간됐다. 4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일상의 복잡미묘한 감정과 들끓는 마음들을 살피며 삶

과 죽음의 관계, 존재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진지하고도 심오한 사유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불합리한 세상의 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타인의 고통을 체험하며 삶의 진실에 가닿으려는 고뇌가 담긴 진솔한 시편들은 서늘하고도 묵직하다.

정치학 비평_『정치는 왜 실패하는가: 분열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문제 제기』 벤 앤셀 지음 | 박세연 옮김 | 한국경제신문 | 472쪽

기후 위기는 ‘공유지의 비극’…정치는 왜 필요한가

이관후

건국대 교수·정치학

기후 위기와 관련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선량한 시민으로서의 의무감이나 거창한 대의가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소박한 자존심 때문이다. 인류가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제시한 마지노선인 1.5도씨가 곧 무너질 것이 거의 확실해졌고, 그래서 훗날 지구 온난화를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일이 되었을 때, 아이가 ‘아빠는 그때 뭘 했냐?’고 물으면 할 말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일에 참여한 여러 정치적·사회적 주체들이 기후 대응에 필요한 사항들에 대해서는 대단한 전문가들이면서도, 정치와 사회운동의 작동 원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분들은 모두 시민으로서의 책임감과 선한 의지를 갖춘 훌륭한 분들이었는데,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그들은 상처받고, 괴롭고, 일도 어려워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대로 탄소 배출을 줄이지 못하면 인류를 포함한 지구의 수많

은 생명체들이 곧 멸종할지 모르는데,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고 있는 탐욕스러운 인간들은 왜 이뻔한 상황을 멈추지 못하는가!’라는 탄식과 비애감과 울분에 잠겨있는 것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또 이렇게 생각한다. “국가나 기업이 기후 위기 대책을 수립하기로 작정하고 실천하기만 한다면 분명히 막을 수 있는 재앙인데도, 노력과 의지가 너무나 부족하다.” 이것은 참으로 맞는 지적이다. 그런데 대부분 여기에 멈춰 있다. 기후 대응의 문제가 거의 전적으로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정치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에서 배우게 되는 것은, 이 세상이 의지만으로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선한 의지는 중요하다. 그러나 때로는 선한 의지들이 악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반대로 악한 의지들이 선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항상이 아니라 종종 그렇다는 것이다. 이 모순적인 사실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정치학이라는 학문이다.

벤 앤셀 옥스퍼드대 교수의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는 선정적인 제목과는 달리, ‘정치가 왜 필요한가’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정치란 필요 없고 시장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식의 자

개별 선택과 집단 선택은 다른 것

공유 지식 형태가 실천의 한 방법

유지상주의가 아니라, 기

존의 정치가 실패해 온 이유가 무엇이고 앞으로는 정치가 어때야 세상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해 말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 책은 ‘공유지의 비극’에 대해 엘리너 오스트롬(1933∼2012)이 제시한 주장들을 현대 이슈에 풍부하게 적용한 사례집처럼 보인다.

1968년 생태학자 하딘(1915∼2003)은 『사이언스』에 「공유지의 비극」을 출간했다. 이것은 사적 개인들이 단기적 번영을 위해 공동체의 중장기적 비극을 초래하는 일이 어떻게 발생하느냐에 대한 물음이었다. 이에 대한 가장 유력한 답변 중 하나가 오스트롬(1933~2012)이 1990년에 출간한 『공유의 비극을 넘어』였다. 공유지가 사회적 규범과 제도를 통해서 제대로 관리된다면, 충분히 잘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스트롬의 이론은 올슨(1932∼1998)이 1965년에 출간한 『집단

행동의 원리』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였다. 요컨대 기후 위기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는, 개인들의 선한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집단행동의 원리에서 빚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이다.

올슨과 오스트롬이 관심을 가졌던 문제는 대체로 서로 인지 가능한 시공간의 범주 내에서 연대와 통제가 가능한 차원이었다. 21세기 들어 지구화는 세계를 잠식했고, SNS는 사람들 간의 소통도 확대했지만, 그 소통은 가짜 뉴스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 진실 이후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공유지의 비극을 막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인류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로버트 액셀로드 미국 미시간대 교수(정치학과)의 『협력의 진화』, 최정규 경북대 교수(경제통상학부)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 로버트 프랭크 코넬대 교수(경제학)의 『경쟁의 종말』 등이 그렇다. 액설로드와 최정규는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한 이타적 행동의 이유를 기존의 혈연관계나 반복 게임의 경우를 넘어서 △진화론 △집단선택 이론

△혈연선택 이론 △이기적 유전자 △호혜적 게임(협력 이론)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게임 등으로 다양하게 설명했다. 프랭크는 돌연변이로 큰 뿔을 갖게 된 수컷 말코손바닥사슴이 짝짓기 경쟁에서 유리하지만, 그 자손들은 뿔이 커지면서 잡아먹힐 가능성이 높아져서 종족 전체에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예시를 든다. 개별 사슴에게는 큰 뿔이 이득이지만, 집단에게는 작은 뿔이 유리하다. 개별선택과 집단선택은 다른 것이다.

그럼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까? 마이클 최 캘리포티아대(UCLA) 교수(정치학과)는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에서 공유지의 비극을 막는 방법과 실천의 과정을 ‘공유 지식’의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안다는 사실을 상대가 알고, 상대가 안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나도 알고 상대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가 아는 상태’가 필요한 것이다. 그 상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앤셀의 이 책이 그 해답의 일부를 제공하고 있다. 앤셀은 이 책에서 민주주의·평등·연대·안전·번영이 왜 실패했는가를 묻고, 브렉시트를 비롯해서 최근 우리를 위협한 전염병과 기후 위기를 다룬다. 읽어 볼 만하다.

저자가 말하다_『존 메이너드 케인스』 조복현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146쪽

고전파에 대항하는 혁명적 이론…경제질서의 개혁을 외치다

조복현

한밭대 명예교수·거시경제

존 메이너스 케인스(1883∼1946)는 자본주의 경제가 실업과 소득 불평등 같은 여러 결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적절히 관리하고 잘 이용하기만 하면 인류의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는 매우 효과적인 경제 제도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케인스의 생각은 당시 자유방임 자본주의 경제를 신봉하던 고전파 경제학자들이나 생산수단의 국유와 계획경제를 강조하던 사회주의자들의 생각과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

케인스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킹스칼리지의 경제학자로서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체계화해 고전파 경제학에 대항하는 새로운 혁명적 이론을 개발하고 발전시켰다. 또한 동시에 영국재무성의 경제정책 수립과 집행에 대한 자문 또는 책임자로서 자본주의 경제를 적절히 관리하고 이용하려면 어떤 경제 정책과 제도의 도입이 필요한지에 대한 주장을 전개해 왔다.

이 책은 이러한 케인스의 경제 이론과 경제 정책 그리고 경제 제도 개혁에 대한 주장

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케인스의 이러한 이론과 주장들이 어떤 철학적 배경과 역사적 상황의 전개 속에서 형성되고 발전돼 왔는지 밝히는 것에도 초점을 맞췄다. 이렇게 함으로써 케인스의 이론과 정책이 어떤 철학적 기초 위에 서 있으며, 또 당시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진지한 노력을 전개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사실 케인스의 경제이론에 대해서는 경제학 교과서에 많이 소개돼 있고, 또 케인스의

고전파 경제학에 대항하는 혁명적 이론 개발

실업·장기 침체·소득 불평등의 해명·해결 제시

전기도 이미 여러 책들이 발간돼 있다. 그

러나 교과서에 소개된 케인스의 경제이론은 가격변수 경직성을 전제하는 단기적 거시모형을 다루는 새 케인지언(New Keynesian)이론이거나 재화시장과 화폐시장의 동시적 균형을 다루는 힉스(1904∼1989)의 IS-LM 모형(이자율과 국민소득과의 관계를 분석하는 경제 모형)이 대부분이다. 이들 이론은 케인스의 생각을 단편적으로 다루기는

했으나 케인스의 본래 생각과는 크게 다른 것들이다.

이 책은 교과서에서 다뤄지고 있는 이러한 케인스의 해석들과는 달리 케인스가 당시의 높은 실업과 장기 침체 그리고 소득불평등 등의 문제를 어떻게 이론적으로 해명하고 또 해결하고자 했는지 그가 저술한 여러 저서나 논문들을 기초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케인스의 이론과 분석이 케인스의 초기와 후기의 신념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으며, 또 어떤 장기적 경제 목표를 지향하고

있는지도 함께 설명하고 있다.

케인스는 높은 실업과 장기 침체가 화폐 경제와 기업가 경제를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 그 자체의 동학 때문에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소득에 비례 이하로 증가하는 소비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투자는 완전고용을 이루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특히 투자는 미래 이윤에 대한 불확실성과 투자자금의 조달 비용으로 인해 변동이 클 뿐만 아니라 부족하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

나타난 실업과 불경기는 가격변수가 신축적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회복되지 못한다. 오히려 가격과 임금의 하락은 소비와 투자, 즉 유효수요의 더 큰 부족을 가져와 장기 침체를 지속시킬 수 있다.

케인스는 실업과 경기 침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기 처방으로서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물론, 장기적 경제질서와 제도의 개혁을 제시했다. 교과서에서는 실업에 대응해 정부 지출을 증가시키는 것을 케인스의 주요 처방으로 다루고 있지만, 사실 케인스는 그보다 경제질서의 개혁에 관심을 더 기울였다. 투자의 부족과 불안정을 해결하기 위해 ‘투자의 사회화’나 ‘은행의 국유화’를 주장하기도 하고, 주식시장의 단기거래 억제를 주장했다. 또 소비성향의 감소에 대응해 소득불평등의 개선을 위한 누진 소득세와 상속세의 강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 책은 컴북스이론총서의 소책자로서 기획되었기 때문에 케인스 이론의 발전을 본격적으로 다루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케인스가 전개한 경제이론이 당시의 어떤 철학적 역사적 배경 하에 발전되었는지, 그리고 케인스가 혁신적으로 개발하고 주장한 경제이론의 내용, 경제 정책 처방, 새로운 경제질서가 무엇인지를 간결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화제의 책_ 『하나의 행성, 서로 다른 세계』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지음 | 이신철 옮김 | 에코리브르 | 208쪽

행성적 위기 대 제각각 인류

인도는 며칠 전 온도가 50도에 육박했고, 일부 지역은 50도를 넘겼다. 한반도 역시 5월 말부터 폭염이 시작돼 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고 있다. 『하나의 행성, 서로 다른 세계』는 ‘기후 위기에 직면한 우리의 자세’를 경고한다.

저자는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역

사학)인 디페시 차크라바르티다. 이 책에 따르면, 1945년부터 2015년까지 인구는 세 배 늘었다. 다시 말해, “한 인간의 생애 기간에 전 지구의 인구는 약 23억 명에서 72억 명으로” 매년 1퍼센트 이상의 인구가 증가했다. 지구 위의 인구는 곧 2058년 100억 명에 이를 전망이다.

그래서 저자의 질문은 굉장히 중요하다. “인류는 서로 다른 세계들을 갖고 있어 하나인 행성을 다루기 어려운 것일까?” 그는 ‘지구화’라고 할 때의 ‘지구’가 기껏해야 500년 전에 탄생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인간 중심적인 지구다. 반면, ‘지구온난화’라고 할 때의 ‘지구’는 대지 시스템(행성)을 말한다. “대지 시스템(행성) 이야기도 인간이 하는 이야기지만, 그 중심에 인간을 두지는 않는다.”

대지 시스템은 하나이고, 이에 따른 기후 위기도 하나이다. 하지만 정치적 동물인 인간은 분화돼 있고 재난에 대응하는 것도 제각각이다. “온난화에 책임이 있거나 온난화에 맞서 싸우는 데서 하나로 행동할 수 있는 그에 상응하는 단일한 ‘인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과 ‘하나 대여럿’이라는 싸움의 승패는 결정돼 있는 듯하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산재일기

이철 지음 | 아를 | 200쪽

극작가 겸 연출가인 저자의 이 책은 산업재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17명의 인물·20여 차례의 만남·50여 시간 분량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작가는 인물들의 말을 쌓아가면서 정

부가 매년 발표하는 산업재해 통계 뒤에 가려진 노동자들의 절망과 아픔, 남겨진 이들에게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삶과 투쟁을 핍진하게 드러낸다. 2022년 고 노회찬 의원 4주기 추모 연극으로 처음 무대에 오른 이 책은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아 봄 대학로에서 다시 공연됐다.

기독교경제윤리론

강원돈 지음 | 동연출판사 | 1,232쪽

이 책은 기독교윤리학이 다루는 분야를 모두 섭렵하고자 시도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비약적 발전을 이뤄가는 AI 등 첨단 기술과 4차 산업혁명에서 파생되는 윤리적 문제까지 기독교윤리학의 범주에 넣고

이에 대한 윤리적·신학적 진단과 대안적 모색을 시도하려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기독교윤리학의 분야 중에서도 특히 경제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우선 시장경제 체제를 근간으로 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다각적 분석을 했다.

사랑받는 기업

라즈 시소디아 외 2인 지음 | 권영설 옮김 | 맑은글 | 432쪽

사랑받는 기업은 사람들이 함께 비즈니스 하고 싶어 하는 기업이다. 또 함께 제휴를 맺고 싶은 회사이고, 그 안에서 일하고 싶은 기업이며, 투자하고 싶은 업체이다.

사랑받는 기업들이 이해관계자로부터 받

는 충성도는 그대로 경쟁우위가 된다. 마케팅을 할 때도 직원을 뽑을 때에도 사랑받는 기업은 이 충성도의 혜택을 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사랑받는 기업이 되는 구체적인 방법을 다루고 있다. 고객·동료·파트너·투자자 그리고 사회와 맺는 모든 관계를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방법이 담겨 있다.

재생산 유토피아

클레어 혼 지음 | 안은미 옮김 | 김선혜 감수 | 생각이음 | 280쪽

‘인공자궁’이라는 체외발생 또는 체외 임신 기술이 구현되기에 앞서, 이 기술이 미칠 우리 시대의 재생산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룬다. 다시 말해 현재 여러 나라에

서 진행되고 있는 ‘부분 인공자궁’ 기술의 현실화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체외임신 전 과정을 구현하는 기술이 순조롭게 진행됨에 따라, 이 책에서는 이 기술이 걸어온 궤적과 의미·윤리적 문제 등을 검토하고 악용 가능한 미래까지 넘나든다.

빛-언어 깃-언어

정현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64쪽

저자가 ?蓬; 2003년에 펴낸 산문집 『날아라 버스야』가 2015년 개정판을 거쳐 올해, 문학과지성사에서 30여 년 만에 새로운 제목의 두번째 개정판으로 출간됐다. 경쾌하고 밝은 제목에 걸맞은 느낌의 표지로

2015년 새 옷을 입은 지 9년 만에 제목도 표지도 전혀 다른 책인 듯 완전히 탈바꿈해 다시 한번 독자들을 찾아온 이 책의 특별함은 무엇보다 바뀐 제목에서부터 시작된다. 저자의 시론으로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열쇠라 할 수 있다. 또한 시인은 ‘가벼움’에 대한 느낌과 관념을 새들을 통해서 얻는다.

소셜 클럽

이지은 지음 | 문학동네 | 276쪽

저자의 이 책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됐다. 201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비평활동을 시작한 그의 첫 평론집이다.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두려운 말을 하겠습니다”(당선 소감)라는 묵직한 소회로 포문

을 연 그의 지난 9년은, 한국문학장의 적소에 적재(摘載)하는 작업을 선보이는 날들이었다. 인간과 텍스트에 관한 지극한 이해와 공감에서 비롯한 혜안, 눙치지 않는 단단한 논리로 하여금 ‘코어’가 있는 비평을 써온 이지은 작가이다.

챗GPT 사용설명서 버전업 2024

송준용 지음 | 여의도책방 | 484쪽

전작 『챗GPT 사용설명서』가 챗GPT의 기본 이력서 같은 책이라면, 이 책은 챗GPT를 아직 써보지 않았거나, 써보고도 감을 잡지 못한 이들을 위한 가이드북이다. 전작은 챗GPT 3.5를 기반으로 한 내용

이고, 이 책은 올해 5월 시점 유료 버전인 GPT-4와 같은달 13일(미국시간) 발표한 GPT-4o에 대한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다. 저자는 GPT-3.5가 똘똘한 학생과 같았다면 GPT-4 상위 버전은 전문가와 같다고 설명한다. 출시 직후부터 챗GPT를 실무에 활용해 왔다.

개미 건축

월터 R. 칭클 지음 | 강현주 옮김 | 최재천 감수 | 에코리브르 | 320쪽

이 책은 끊임없는 노력과 단순한 방법이 어떻게 선구적 과학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둥지 구조는 종에 따라 어떻게 다를까? 개미

도 ‘건축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 둥지는 우리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러한 질문과 여러 질문을 제기하기 전에 저자는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생물에 대한 독특한 자연사·과학적 발견·삶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한다.

‘목간’에 새겨진 고대 기록, 동아시아 잇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거듭난다

21세기 학문의 신대륙을 찾아서 10

국가·사회 난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는 인문사회 연구의 대표적인 성과 사례를 소개한다. 기존 인문사회 학문 분야의 벽을 넘어선 새로운 문제의식과 융합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혁신 연구의 결과다. 인문사회통합성과확산센터(센터장 노영희 건국대 교수)는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인문한국플러스사업(HK/HK+)과 융합연구지원사업의 연구성과 우수성, 파급효과 및 활용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6명의 심사위원이 우수성과 20곳을 선정했다.

동아시아 기록문화의 지적 네트워크 연구

윤용구 경북대 인문학술원 HK교수

우리가 역사책 속에서 마주하는 사건은 종이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연구한 것이 대부분이다. 주로 조선시대 문헌자료로 고려시대와 그 이전 기록물은 남아있는 자료가 부족해 비교적 가까운 과거의 기록물인 조선시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고고학적 발굴이 증가하면서 삼국시대와 그 이전 시기의 문자 자료와 필기도구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원전 1세기 낙랑유적부터 12세기의 고려시대 해양 유적에 이르는 1천여 매의 목간(木簡)이다.

경북대 인문학술원은 그동안 조선시대 지질기록물에 의존하던 역사 연구를 목간으로 조명하는 「동아시아 기록문화의 원류와 지적 네트워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윤용구 경북대 인문학술원 HK교수는 “목간은 나무에 글씨를 새긴 기록물로 중국은 전국시대 부터 남북조시대 초기까지, 한국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일본은 헤이안 시대에 성행했다” 라며 “목간은 종이가 보편화하기 이전 시대에 한자를 이용해 정보를 전달하고 지식 축적을 담당하던 서사 매체”라고 밝혔다.

동아시아에서 발굴된 목간 형태 거의 동일

그동안 한국·중국·일본·베트남에서는 종이에 새겨진 한자를 토대로 전근대 동아시아 기록문화를 다루는 서지학·문헌학·판본학·인쇄출판학 등의 연구가 이뤄졌다. 조선시대 이전에 기록된 종이 문서와 전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아 동아시아 고대사와 고전 문화 연구는 미약한 편이다. 하

윤용구 경북대 인문학술원 HK교수는 인하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한국 고대사(낙랑사)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상근연구원, 인하대박물관 학예연구사, 인천시립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등을 역임했다.

지만 목간이 발견되면서 연구팀은 새로운 역사적 사건을 발견하고 해석하는 게 가능해졌다고 밝혔다. 목간은 단지 서사 매체를 떠나 목간문화, 목간학(木簡學)이라 불리며 인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해 가고 있다.

윤용구 교수는 “경북대 HK+사업단의 주된 연구 대상은 동아시아 목간”이라며 “목간에서 발신하는 아날로그 신호를 인문 자산으로 바꾸어 디지털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당시의 목소리를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라고 말했다.

목간은 대나무에 새기는 죽간과 나무에 새기는 목독 등으로 나뉘는데 연구팀은 중국 진한시대 목간이 동아시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사용됐음을 밝혔다. 또한 진한제국의 영역 팽창과 동서 문물교류, 법률과 관련된 행정, 이민족 관리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연구팀은 한·중·일에서 출토된 목간 100만 매를 연구해 한국목간총람, 중국목간총람, 일본목감총람을 펴냈다. 왼쪽 동아시아목간사전에는 낙랑·신라·백제시대 1천 200여 건, 중국 진한시대 1만 3천여건, 일본 나라와 헤이안시대 3천 100여건의 표제어 등 총 1만 7천330여건의 표제어가 실렸다.

목간 연구는 한자문화권으로 분류돼 온 동아시아가 정치적 경계를 허물고 동질적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다.

목간은 고대 유물인 것뿐만 아니라 고대 동아시아인이 실제로 사용한 기록물로 후대의 가공과 윤색이 가미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헌자료를 훨씬 웃도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중·일 목간 내용 담은 「동아시아목간총람」, 「동아시아목간사전」 발간

연구팀은 20세기 초부터 2021년까지 한·중·일 삼국에서 발굴된 약 100만 매에 달하는 목간을 연구해 2021년 「동아시아목간총람」을 발간했다. 여기에는 목간의 출토 상황과 지리적 분포를 포함해 목간의 내용·형태·서지정보·연구 정보 등이 수록돼 있다.

「한국목간총람」에는 그동안 사료가 부족해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 못한 한국 고대사인 신라와 백제시대의 목간 연구 내용이 담겼다. 백제의 목간인 좌관대식기와 신라의 궁중 생활을 보여주는 안압지의 목간, 고려·조선 태안 마도 침몰선과 낙랑 목간 등에 이르는 1천200여 매의 정보가 수록돼 있다.

「중국목간총람」은 1900년부터 2021년까지 중국에서 출토된 총 274종 약 50만 매에 달하는 목간의 내용이 담겼다. 특히 목간 기록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전국시대와 진한시대, 삼국시대에 사용된 목간을 비롯해 위진남북조·수당·서하·원명청시대 목간, 토번·쿠차·우전 등에서 발굴된 비한자(非漢字) 목간까지 수록돼 있어 중국 고대사와 동시대 한반도, 일본의 기록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일본목간총람」은 지금까지 일본에서 출토된 10세기 이전 목간에 대해 유적지별 출토 상황과 내용, 판독문은 물론 목간의 지리적 분포와 서지, 연구 정보가 담겨있다. 이를 통해 일본 고대사에 관한 심화 연구와 중국-한국-일본으로 이어지는 고대 동아시아의 기록문화에 관한 심층적 연구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총람에 담긴 내용을 바탕으로 2023년에는 「동아시아목간사전」 웹사이트를 구축했다.(http://eawd.knu.ac.kr/) 낙랑·신라·백제시대 1천 200여 건, 중국 진한시대 1만 3천여 건, 일본 나라(奈良)와 헤이안시대 3천100여 건 등 총 1만7천330

연구 개요

연구지원사업 HK+사업 연구과제명 동아시아 기록문화의 원류와 지적 네트워크 연구

연구팀 윤재석 경북대 인문학술원 교수(연구책임자), 일반공동연구원 8명,

HK교수 3명, HK연구교수 8명, 박사급 연구원 등 보조연구원 8명, 전임 행정 직원 2명으로 구성

연구분야 순수인문분야 연구기간 2019년 5월 ~ 2026년 4월

연구성과

연구논문 : 93편 / 저서·역서 : 13권·5권

동아시아 목간총람 6권 발간(한국목간총람, 중국목간총람 상·하, 일본목감총람 상·중·하)

국제학술대회 : 6회 / 국내학술대회 : 5회, 국제학술대회 발표논문 : 총 117편 / 국외 78편

여 건의 목간 표제어를 선정해 원문 사진과 함께 실었다. 2025년에는 세계 최초로 『동아시아목간 사전』의 정식 출판을 할 예정이다.

동아시아, 목간문화권으로 ‘문화 공동체’ 형성

목간 연구는 고대사 발굴과 함께 또 다른 의미가 있다. 현재까지 목간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은 동아시아가 오늘날의 파편화된 모습과는 다르게 공통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동아시아 각 지역에서 발견된 목간은 목간 제작, 정보 전달 방법, 기재 양식, 부호 등에서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거의 같다.

윤용구 교수는 “국가 또는 지역 패권주의가 벌어지는 오늘날, ‘동아시아 목간문화권’을 중심으로 구축된 ‘문화 공동체’라는 정체성을 찾는 것도 이번 연구를 통해 기대하는 것”이라며 “나아가 목간을 매개로 동아시아 각국을 연계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목간을 매개로 국내외 30여 개의 기관과 활발히 교류하며 국제학술회의와 학문후속 세대 중심의 국내학술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역동하는 아시아-기억, 보존과 기록’을 주제로 세계 최대 규모의 아시아학회인 AAS(Association for Asian Studies)국제학술회의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연구 역량을 크게 높였다.

윤용구 교수는 “국내외 학술단체, 기관과 네트워크를 더욱 발전시켜 동아시아 목간 연구의 중심기관으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향후 목간을 통한 동아시아 고전문화와 사회 성격에 관해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동아시아 기록문화 연구센터’를 개설할 예정이다. 임효진 기자 editor@kyosu.net

내 말 찰떡같이 알아듣는 ‘AI 비서’, 꼼꼼한 대화분석으로 만든다

대화분석으로 인간-기계 인터페이스 설계

이요안 서강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기계와 대화할 수 있는 지능형 음성 대화 시스템은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과 국내 IT 대기업도 시행하고 있는 보편적인 서비스다. 다양한 언어로 통역도 가능하고 긴급할 때 119에 전화도 걸어주지만, 아래의 대화처럼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챗봇(B), 사용자(U)

B: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U: 12월 3일 일정 하나 삭제할게.

B: 12월 3일 일정을 삭제할까요?

U: 몇 시 일정이 있지?

B: 12월 13일 일정을 삭제할까요?

U: 일정 목록을 보여줘.

B: 정보를 찾을 수 없습니다. 다시 시도해 주세요.

이요안 서강대 교수(영어영문학과) 연구팀(Sogang CA-AI Team)은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이 사람과 기계의 대화가 여전히 매끄럽지 못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대화 분석에 근거한 인간과 기계와의 인터페이스 설계」이다.

이요안 교수는 “디지털 음성비서의 경우 원활한 음성인식과 자연스러운 대화가 어렵다는 평가가 많아 사용 비율이 높지 않다”라며 “원인은 실시간 대화를 세밀히 따져 분석한 연구에 기반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 대화가 순차적으로 전개되면서 말차례간 연관성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꼼꼼히 추적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앞선 내용 기억했다가 다음 대화에 활용해야

기계와의 대화가 원활히 작동하려면 실시간 대화의 여러 요소를 고려해서 설계해야 한다. 특

이요안 서강대 교수(영어영문학부)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대화분석과 영어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화분석 전문가로 활동하며, 국제저명학술지 System의 편집위원과 IIEMCA 국제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히 기계가 사용자가 발화한 내용을 맥락에 맞게 헤아려 의도를 파악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물이 어디 있지?”라고 물어볼 때 글자 그대로만 이해한다면 “냉장고에 있습니다”라고 답하겠지만, 시스템이 사용자와의 대화 기억을 도출한 후 추론까지 할 수 있다면 “약 드시려고요? 식탁에 있습니다”라는 대답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추론이 가능한 대화 시스템은 구현되지 않고 있다.

이요안 교수는 “아직 사람 간 대화, 특히 실시간 대화의 복잡성에 대한 대화분석 연구가 충분하고 세밀하게 대화인터페이스에 반영되지 않았다”라고 요인을 밝혔다.

연구팀은 미국 사회학자 하비 삭스가 창시한 대화분석(Conversation Analysis) 방법론을 적용했다.

대화분석 연구자들은 60여 년간 축적된 연구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개되는 대화에서 나타난 다양한 규칙과 질서를 규명했다. 이는 사람들

이 대화할 때 앞의 말을 기억하면서 뒷말을 조직해 의미를 연결해 내는 순차분석(sequential analysis)기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순차분석의 원리를 기계와의 대화에 적용하면 ‘아침 먹고 나서 빵을 먹었더니 배가 별로 안 고프네. 점심은 뭐 먹을지 추천해 줘’라고 사용자가 물으면 기계적으로 점심 메뉴를 추천하기보다는 “배가 썩 고프지는 않으시군요, 그러면 가벼운 음식을 추천해 드릴까요”라고 사용자와 말을 주고 받으며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인공지능 대화 인터페이스는 이렇게 대화를 순차적으로 기억했다가 다음 대화에 활용하는 과정을 온전히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알고리즘을 통해 하향식으로 대화를 예측하고 프로그램을 설계하기 때문인데, 이 방식으로는 복잡다단한 대화의 세밀한 전개 방식을 구현하기 어렵다.

엔지니어의 관점이 아니라 사람의 대화에 초점

연구팀은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사람과 시스템의 대화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는지 조사해 문제점을 파악한 후 사람 간 대화는 어떻게 전개되는지 살펴봤다. 우선 오즈의 마법사라는 뜻의 ‘Wizard of Oz(WoZ)’ 시스템을 적용했다.

피실험자는 기계와 대화한다고 생각하고 실험에 임하지만 실제로는 연구원이 대응하는 방식으로 대화가 이루어졌는데 이 방식으로 일정 관리, 연락처 관리, 날씨 안내를 수행하는 대화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실시간 대화에서 말차례

연구 개요

연구지원사업 한국연구재단 일반공동연구지원사업(융복합연구) 연구과제명 대화분석에 근거한 인간과 기계와의 인터페이스 설계

연구팀 서강 CA-AI팀 : 이요안 서강대 교수(연구 책임자), 서강대 구명완 교수(컴퓨터공학과)·서정연 교수(컴퓨터공학과)·

조은경 교수(국제한국학), 노은석 부산대 교수(영어교육과), 나지영·신유진·정연희 연구원, 이시훈 프로그래머

융합분야 대화분석+컴퓨터공학+국어정보학 연구기간 2022년 07월 01일 ~ 2025년 06월 30일

연구성과 SCOPUS 학술지 1편, KCI학술지 9편, 학술대회 발표 10회 이상, 2024년 6월 국제학술대회 IIEMCA (The Inetrnational

Institute for Ethnomethodology and Conversation Analysis) 2024 참석 예정

서강 CA-AI 연구팀의 대화 설계 모델이다. 말차례의 행위를 분류하고 이들 간의 발생확률을 예측해 자동으로 분류하는 모델을 만들고 있다.

사람 간의 실시간 대화처럼 자연스러운 소통이 가능한 챗봇을 구축하기 위한 연구로 대학에서 학생 서비스나 튜터링 등 학습 챗봇을 구축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를 어떻게 주고받는지 파악하고 다음 말차례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취하는지 살펴봤다. 그런 다음 질문과 답변, 부탁과 승인, 칭찬과 감사 등 말차례 간의 연관관계가 깊은 인접쌍(Adjacency Pair)을 분석해 대화에서 나타나는 의미의 양태를 밝혔다.

나아가 대화가 진행되는 도중에 생기는 여러문제를 수정하는 방식도 조사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시스템이 “토요일 오전 9시에 치과 가기를 등록할까요”라고 질문하면 상대방이 “응. 아니, 잠깐만, 내가 착각했네. 11시로 해줘”라고 수정하는 경우 다음 말차례에서는 “그럼 9시에서 11시로 수정하겠습니다”라고 수정 내용을 반영하는 대화 전개 방식을 추적해 분석했다.

연구팀은 현재까지 200여 명이 참여한 WoZ 실

험을 통해 총 2만 5천 건의 말차례가 담긴 데이터를 수집했고, 삼성전자 빅스비와 사람의 대화에서 7천여 건의 말차례를 수집했다.

이를 토대로 총 45개의 행위(act)와 52개의 개체명(entity)을 추출, 데이터를 태깅했다. 이 태깅 시스템은 대화 중에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는 수정(repair)과 구조를 고려한 내용도 담겨있다.

“한국어 학습 위한 챗봇 구축에 기여”

이를 통해 대화의 행위(act)간의 일어날 확률을 도출하고 이를 기초로 사람과 대화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챗봇을 구현하기 위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수정의 상황이 야기되는 경우도 고려한 설계가 이루어지는 경우 기계는 더욱 용이하게 대화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이요안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고객센터의 챗봇 혹은 한국어 학습 챗봇 등이 더욱 자연스럽게 대화하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글쓰기 튜터링의 일정 부분을 자동화할 가능성도 모색해 볼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임효진 기자 editor@kyosu.net

‘교재 스캔’ PDF 공유·판매 저작재산권 침해…무료 공유도 저작권 침해

대학생이 반드시 지켜야 할 저작권 상식

Q1 수업 중 강의 내용을 녹음하거나 녹화하는 행위도 저작권 침해일까요?

수업 중 교수의 강의 내용을 녹음하거나 녹화하는 것은 혼자서 수업을 참고하기 위해 이용하려는 경우 외에는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으며, 초상권 등 다른 권리를 침해할 수 있으므로 허락을 받고 녹음·녹화해야 한다. 교수자의 이용 허락 없이 녹음하거나 녹화하는 것은 복제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개인적인 사용 용도를 넘어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강의 내용을 공유한다면 이는 저작재산권 침해 행위다.

Q2 수업시간에 공개된 PPT 강의 자료를 수업 이후에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서 봐도 될까요?

수업시간에 제공받은 수업 PPT 자료는 교수 또한 타인의 저작물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학교에서 수업목적 보상금을 지급하고 저작물을 이용한 것으로 제한된 범위에서, 즉 수업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에 따른 것이므로 해당 수업 시간에만 활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를 복제(촬영 또는 다운로드)하여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 온라인 수업자료로 활용하는 경우에는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 등 권한을 가진 사람만 접속할 수 있는 공간(온라인 강의 시스템 등)에서만 활용한다.

Q3 학교 인근 복사집에 비용을 지불하면 수업용 교재나 독서모임용 도서 등의 책을 제본할 수 있는데, 이런 경우 돈을 냈으니 괜찮지 않나요?

교재나 독서용 도서, 만화책 등 모든 책은 통째로 복제해 제본할 경우 복사집에 비용 지불 여부와 상관없이 저작재산권 침해다. 창작자가 정당하게 저작권사용료(인세)를 받을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부득이 교재에서 꼭 필요한 부분을 일부 복사하는 경우도 참고를 위해 복사해 혼자 보는 것은 괜찮지만, 친구들과 함께 볼 목적으로 여러 부를 복제하는 것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Q4 공부를 할 때 태블릿 PC를 이용해 필기를 하는데, 전공 교재의 경우 별도의 PDF 파일을 판매하지 않아서 친구들과 돈을 모아 전공책을 한 권 사고 북스캔 업체를 통해 PDF 파일을 만들어서 공유하려고 합니다.

학생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전공교재 PDF 파일 공유 행위 또한 저작재산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 최근, 태블릿 PC 또는 모바일 화면을 통한 디지털 필기를 하는 방식으로 학습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공교재 PDF 파일을 거래하거나 공유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저작재산권 침해이며 출판권과 배타적발행권 등의 권리까지 침해하게 된다.

꼭 돈을 주고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무료로 게시판에 공개하거나 또는 비영리성의 물물교환 등의 방법으로 거래·공유해도 저작권 침해다. 이런 행동은 저작권자뿐만 아니라 어렵게 출판문화 활동을 영위하고 있는 출판사와 서점 등에 피해를 주는 행위이므로 즉각 중단돼야 한다.

Q5 전공교재를 스캔하여 디지털 파일 형태로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행위는 문제가 없을까요?

전공교재를 스캔해 디지털 파일 형태로 바꾸는 것은 저작재산권 중 복제권 침해에 해당하고, 온라인에서 사고 파는 행위는 공중송신권 침해다.

저작권법에서는 저작재산권자의 허락 없이 저작물을 복제·배포·전시·공연·공중송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전공교재를 스캔해 거래하면 저작권 침해 행위이며, 영리적인 경우 더욱 엄격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또한 온라인에서 직접 사고 파는 행위가 없더라도 커뮤니티에서 약속을 잡는 등 거래 관계 등의 내용이 저작권 침해 판단에 있어 불리한 정황이 될 수도 있다.

Q6 흔히 ‘족보’라고 불리는 시험 기출문제나 교수님 수업 내용을 학생이 재가공한 족집게 자료를 판매하는 경우도 문제가 될까요?

대학가에서 흔히 ‘족보’라고 불리는 기출문제를 모아 판매하는 경우, 이 또한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다. 타인의 저작물을 이용할 때는 그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은 이용 방법 및 조건의 범위 안에서 이용해야 하며, 이용 허락 없이 타인의 저작물을 이용하거나 또는 허락의 범위를 넘어서 이용할 경우 저작권법에서는 저작권 침해 행위로 간주해 민·형사상의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사진=세종대

전공교재를 스캔해 디지털 파일 형태로 바꾸는 것은 저작재산권 중 복제권 침해에 해당하고, 온라인에서 사고 파는 행위는 공중송신권 침해다. 영리적인 경우 더욱 엄격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공무원 시험문제는 창작성이 인정될 경우 어문저작물로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시험문제와 관련해 대법원은 “시험문제, 입시문제가 교과서나 참고서 기타 교재의 일정한 부분을 발췌하거나 변형하여 구성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출제위원들의 정신적인 노력과 고심 끝에 남의 것을 베끼지 아니하고 문제를 출제하였고 출제자의 창작성이 인정된다면, 이를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저작물로 보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1997.11.25. 선고 97도2227 판결).

이러한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저작권자인 교수의 이용 허락을 받지 않고 교수가 작성한 과거 기출문제 등을 모아 족보를 만들거나 이를 배포하는 행위는 저작권 침해다. 족보를 만들 때 다른 사람이 출제한 기출 문제를 직접 간추려 편집해도 출제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물론, 족보 자체에 창작성이 있다면 족보가 2차적 저작물이 될 수 있겠지만, 이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원저작자의 2차적 저작물작성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만약, 시험문제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SNS나 온라인상에 해당 시험문제를 업로드할 경우 복제권 이외에 공중송신권 침해에도 해당한다.

Q7 시험 족보는 일반적으로 다들 돌려보는데 돈 받고 사고 파는 게 아니면 문제가 없지 않을까요?

저작권법상 저작권 침해행위는 영리인지 아닌지를 요건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침해자가 대가를 받지 않고 복제나 전송을 한 경우에도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다. 다만, 저작권법상 ‘복제’의 경우에 한정해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소장하거나 집에서와 같이 한정된 장소 안에서 이용하는 경우에는 저작권법 제30조의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로서 제한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

이미 공개된 기출문제 등을 모아 족보를 만들고 학습을 위한 목적으로 이용하면서 개인적으로 소장하는 등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의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으나, 이 요건은 저작권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조항이므로 엄격하게 판단된다.

따라서 영리 목적이 아니더라도 사적 이용의 범위를 넘어서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 족보나 강의 내용 등을 업로드한다면, 이는 복제권 및 공중송신권 침해다.

또한, 저작권법 제30조 단서에서 공중의 사용에 제공하기 위해 설치된 복사기기, 스캐너, 사진기 등에 의한 복제는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로서 허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인 목적으로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인쇄소 등에서 복제를 하는 경우에는 저작권법 위반행위가 될 수 있다.

Q8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고 발표문이나 리포트를 작성하려면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이 작성한 텍스트, 그림, 사진, 도표, 음악 등을 사용할 때에는 해당 저작물의 저작권자에게 이용 허락을 얻고 출처를 명확하게 표기해야 한다. 다만, 올바른 인용 방법으로 출처를 명확히 표시하고 적절한 분량의 저작물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이용 허락이 필요하지 않다.

또한 폰트 프로그램을 설치해 사용할 때에는 출처가 확실하고,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다고 적혀 있는 폰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유료 폰트 사용 시에는 반드시 해당 폰트의 라이선스를 구매한 다음 이용 가능한 범위를 확실히 숙지하고 규정을 엄격히 준수하면서 이용해야 한다.

Q9 자신이 운영하는 SNS, 유튜브 등에 다른 사람이 만든 저작물을 공개하는 경우 문제가 될까요?

요즘 유튜브나 블로그 등에 자신이 창작한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허락 받지 않고 번역을 하거나, 시낭송, 동화 구연, 특정 저작물 낭독, 그림책 공개 등의 방법으로 이용하거나, 책·영화에 대한 리뷰를 올리거나, 웹툰·만화 등을 캡처하여 후기를 작성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저작재산권자의 복제권 및 공중송신권 침해다. 직접적으로 발생하는 수익, 광고 수익 등의 간접 수익 등이 없이 순수 비영리 활동이더라도 침해에 해당하니 주의해야 한다. 반드시 저작권자의 이용허락을 얻은 후에 저작물을 이용해야 한다.

Q10 출판물 등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활용하여 만든 작품을 전시회나 공모전 등에 출품하는 경우 저작권 침해 문제는 없을까요?

저작권자에게는 2차적저작물작성권이라는 권리가 있다.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통해 단순히 아이디어를 차용하는 수준이 아닌 각색이나 변형 등 2차적저작물 작성 행위를 통해 만든 것을 새로운 저작물인 것처럼 각종 전시회나 공모전에 출품하는 행위는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저작권 침해 사례를 발견했을 때

저작권 침해를 한 사람은 저작권법에 의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고 민사상 손해배상의 책임 또한 지게 된다. 다만, 형사 ‘고소’는 원칙적으로 창작물에 권리가 있는 권리자가 할 수 있으므로 침해가 발생한 경우 권리자는 민·형사상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누구든지 고발(告發; 피해자나 고소권자가 아닌 제3자가 범죄사실을 수사기관에 알려 처벌을 요구하는 일)이 가능하다.

첫째, 영리를 목적으로 또는 상습적으로 복제, 공연, 공중송신, 전시, 배포, 대여, 2차적저작물작성 등의 방법으로 저작재산권을 침해한 경우

둘째, 영리를 목적으로 또는 상습적으로 데이터베이스제작자의 권리를 복제·배포·방송 또는 전송의 방법으로 침해한 경우 셋째, 영리를 목적으로 또는 상습적으로 저작권법 124조 제1항에 따른 침해로 보는 행위를 한 경우

1. 한국저작권보호원 COPY112 신고

①한국저작권보호원 온라인 신고사이트(http://copy112.kcopa.or.kr) → ②불법복제물 신고 → ③ 신고내용 기재 후 증빙 파일과 함께 신고

2. 한국저작권위원회 분쟁조정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정부가 저작권 분쟁 당사자의 합의를 유도함으로써 분쟁 당사자가 분쟁에서 신속하게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로 법원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과가 있다. 자세한 사항은 한국저작권위원회 누리집 참고.

저작권 침해 걱정 없이 저작물 이용하기

❶ 저작재산권이 만료된 저작물

저작재산권 보호기간이 만료된 저작물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저작재산권 보호기간은 원칙적으로 저작자 생존기간 및 사망 후 70년 동안이다. 다만, 저작자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저작물, 업무상저작물, 영상저작물처럼 저작자의 사망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 예외적으로 저작물 공표 후 70년 동안 보호한다.

저작자 사후 70년 보호 규정은 2011년 개정돼 2012년 7월부터 적용된 내용이므로 그 이전의 저작자 사후 50년 보호 규정에 따라 보호기간이 만료된 경우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1962년 12월 31일 이전 사망한 저작자의 저작재산권은 현재 보호하지 않는다.

➋ 공공누리 저작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업무상 작성해 공표한 저작물이나, 계약에 따라 저작재산권의 전부를 보유한 저작물은 허락 없이 이용할 수 있다. ‘공공누리 제1유형’ 표시가 부착된 저작물인지를 확인하고 이용한다. 반드시 저작물의 출처를 구체적으로 표시해야 한다.

➌ 공유마당 사이트 제공 저작물

이 사이트에는 저작재산권이 만료된 저작물을 비롯해 기증 저작물, 자유이용허락표시 저작물, 공공기관 무료개방 저작물 등 자유로운 이용이 가능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그림=『대학생이 반드시 지켜야 할 저작권 상식』

저작물 인용에 있어 반드시 지켜야 할 점

첫째, 저자는 자신의 저작물에 소개, 참조, 논평 등의 방법으로 타인이 작성한 저작물의 일부를 원문 그대로 또는 번역해 인용할 수 있다. 이처럼 다른 저작자의 저작물을 인용할 때에는 해당 인용문을 정확하게 제시해야 하며, 왜곡하거나 논리적 근거가 빈약한 부분만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

둘째, 저자는 인용의 모든 요소(저자명, 저서명, 학술지의 권·호수, 쪽수, 출간년도 등)를 2차 출처에 의존하지 말고 원 출처에서 직접 확인해야 한다. 다만 불가피한 경우에는 재인용임을 밝히고 인용할 수 있다.

셋째, 저자는 피인용 저작물이 인용 저작물과 명확히 구별될 수 있도록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해 합리적인 방식으로 인용해야 한다.

넷째, 저자는 피인용 저작물 저작자의 저작인격권을 존중해 반드시 공표된 저작물을 인용해야 하며, 공개되지 않은 학술자료를 논문심사나 연구제안서 심사 또는 사적 접촉을 통해 획득한 경우에는 반드시 해당 연구자의 동의를 얻어 인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작인격권 중 ‘공표권’을 침해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 저자는 타인이 이미 발표한 저작물에 담긴 이론이나 아이디어를 번안(飜案)해서 자신의 저작물에 소개할 때에는 그 출처를 명시해야 한다. 다른 저작자의 말을 그대로 사용하려면 인용부호로써 표시하고 그 출처를 밝혀야 한다.

또, 다른 저작자의 말을 자신이 쉽게 풀어쓰려면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법을 사용하되 원문의 출처를 밝혀야 한다. 자신의 문체가 원문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원문과 비슷한 경우에는 차라리 직접 인용으로 처리하는 것이 좋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보호원이 올해 4월에 만든 『대학생이 반드시 지켜야 할 저작권 상식』(집필 김기태 세명대 교수) 자료집의 내용을 요약·발췌했습니다.

글로벌 자원 전쟁 시대, 한국의 생존게임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44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정치와 경제·사회와 문화·과학기술·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 1일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가 「자원의 순환」을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45강은 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과)의 「근대와 탈근대 담론들의 현재」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전 세계는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에 필요한 자원 확보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경제력과 기술력을 갖춘 강대국과 풍부한 자원을 가진 자원 보유국들이 저마다 자국 우선주의와 자원의 무기화를 내세우고 있다. 자유와 연대·공존을 강조하는 순진하고 소박한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대한 기대는 엄혹한 국제 사회에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화려한 인류 문명을 가능하게 해준 자원이 이제는 국제 사회의 갈등을 부추기는 고질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도 예외가 아니다. 연탄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해마다 연탄 파동에 시달렸고, 1970년대에는 두 차례에 걸쳐 극한적인 석유 파동을 경험했다. 2019년 7월에는 일본의 갑작스러운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국가의 핵심 산업이 통째로 멈춰 서게 된다는 위기감에 시달렸고, 2022년 중국의 갑작스러운 수출 규제로 촉발된 요소수 대란도 심각했다. 우리의 경제적·기술적 능력은 크게 개선됐지만, 자원 빈국의 현실은 여전히 위태롭다.

중동·대만·남중국해의 국제 정치적 불안으로 석유의 안정적인 확보도 불안해지고 있다. 가장 신뢰하는 우방인 미국의 과격한 우선주의도 걱정스럽고, 유럽연합의 낯선 환경주의도 만만치 않다. 첨단 소재를 틀어쥐고 있는 일본의 눈치도 봐야 한다. 특히 지난 20여 년 동안 급격하게 높아진 중국 의존도가 상황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지리적·역사적으로 가까운 우리에게 탈중국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원 확보의 핵심은 역시 국제 사회에서의 외교력이다. 그런데 우리의 자원 외교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석유·석탄·천연가스·우라늄 등의 에너지 자원·석탄·철광·구리·리튬과 같은 1차 광물, 반도체 산업에 꼭 필요한 희귀금속 등의 자원 확보가 불안한 형편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혼란스러운 디커플링으로 더욱 복잡해지고 있는 국제질서의 급격한 변화와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탄소중립 압력에 대한 외교적 대응은 지극히 부실한 상황이다.

자원 경쟁, 그 치열한 갈등의 역사

자원 확보의 어려움은 어제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다. 사실 인류 역사는 처음부터 자원 확보를 위한 갈등과 투쟁으로 시작했다. 돌도끼를 만드는 석재도 누구나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생존에 꼭 필요한 식량을 확보하는 일도 언제나 만만치 않았다. 다른 생물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분업과 협동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을 공유하고 활용하는 화려한 인류 문명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자원의 공동 활용을 위한 분업과 협동이 언제나 평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자원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과 심각한 갈등은 필연일 수밖에 없었다.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제국의 영토 확장 도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은 점령지의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하겠다는 자국 이기주의가 가장 중요한 동기였다. 르네상스 이후의 대항해도 향료·설탕·고무·염료·광물·도자기 등의 확보를 목표로 시작됐다. 막강한 경제력과 기술력을 갖춘 제국의 자원 확보 시도는 무자비했다. 인류의 역사는 자원과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제국의 잔혹한 수탈의 역사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정도다. 우리도 19세기 말 자원확보 경쟁에 눈이 먼 열강에 의한 식민주의적 침탈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기술 발전은 자원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인간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운영하고, 한정적인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생산·운반·소비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해서 활용하는 지혜와 역량을 가지고 있다. 자원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작동하는 시장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제도도 자원의 공평하고 자유로운 소비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자원 확보의 어려움은 근본적으로 인구 증가와 경제 성장의 결과다. 증기 기관을 이용하는 산업화 기술로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경제가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지난 250년 동안 지구상의 인구는 16배가 늘어났고, 경제는 무려 130배나 성장했다. 인구 증가와 경제 성장의 속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인구의 증가와 경제의 성장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실제로

“진정한 탈 일본은 우리만 독창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한국형의 틈새 소재를 찾아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남의 파이를 잘라 와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

단순히 대일 의존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관료들이 동원한 전문가들이 기계적으로 선정한 품목의 국산화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인구는 5배가 늘어났고, 경제도 16배나 성장했다. 자원을 생산하는 기술도 놀라운 수준이다. 오늘날 인류는 100억 명이 소비할 수 있는 식량 자원을 생산한다.

오늘날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건강하고, 안전하고, 깨끗하고, 평등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발전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혹시라도 획기적인 기술적 도약을 이룩하지 못한다면 토머스 맬서스식의 종말론적 미래가 당장 덮쳐올 수 밖에 없다. 초연결·초지능·초고속의 화려한 제4차 산업혁명이 우리의 암울한 현실을 바꿔줄 수 있을 것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순환 경제는 자원 문제의 대안일까

자원의 생산·공급·소비를 이어주는 공급망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관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해졌다. 자원의 대량 소비에 의한 고갈과 자원의 생산·운반·소비·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오염도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새로 등장하는 자원 확보와 소비의 어려움이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는 “장기적으로 고급 첨단 소재를 개발·생산하겠다는 정책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국제적 분업과 협업이 절대 회피할 수 없는 대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며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밀어붙이는 정부의 소재 산업 육성 정책은 경계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단순히 우리의 방종과 탐욕 때문이라고 자책하는 패배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산업혁명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경제 성장은 인류 문명의 실패를 뜻하는 증거일 수는 없다. 오히려 유전자의 확산이라는 생명의 내재적 본성을 추구하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극복해야 할 새로운 도전이라는 적극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국제 공급망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규범 기반으로 재편하는 일과 자원의 생산과 소비에 의한 환경적 피해를 최소화하고, 자원의 고갈을 회피하기 위한 순환 경제가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자원의 생산·운반·소비의 전 과정에서 인간

과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지속 가능한 녹색 화학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성공이 보장된 일은 절대 아니다. 자원 분포의 편재에 의한 구조적 불평등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이기적인 패권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는 일이 생각처럼 쉬울 수는 없다. 무작정 우리 자신을 탓하는 대신 오히려 더욱 높은 수준의 윤리 의식과 더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기술 혁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형의 틈새 소재, 진정한 탈 일본 가능

자원 확보에는 정부의 외교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 세계 자원 보유국과의 긴밀한 외교관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특히 산업 기술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과학기술 외교의 역량을 획기적으로 키워야 한다. 불화수소와 요소수의 정체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정책 중심의 외교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산업의 규모가 턱없이 작을 수밖에 없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필연적으로 중소·중견기업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정유·제철·조선·반도체·원자력과 같은 거대 장치 산업에서처럼 충분

한 자본을 투입하기도 어렵고, 기업의 리더십·기술력·경제력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대기업과의 상생과 협력도 쉬운 일이 아니고, 난마처럼 얽혀 있는 정부의 규제를 헤쳐 나가는 일도 힘겹다. 지금도 화학 산업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지나친 규제도 순환 경제의 핵심인 소재 산업육성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리의 성과에 대한 정확한 평가도 중요하다. 지난 2010년에는 소재·부품 분야에서 처음 기록한 799억 달러의 무역 흑자를 기록했고 2017년에는 1천390억 달러로 늘어났다. 오늘날 우리의 소재, 부품 산업의 규모는 중국·독일·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공급 거부로 시작된 소재 대란에 대한 평가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초고순도 불산의 생산에 성공했다는 솔브레인의 성과도 사실은 일본의 스텔라케미파와의 합작으로 얻어진 일본 기술이다. 외국 소재 기업이 국내 진출에 대한 냉정한 시각도 필요하다. 자칫 정부가 마구 쏟아 붓고 있는 엄청난 예산 지원이 만들어내는 환상일 수도 있다.

진정한 탈 일본은 우리만 독창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한국형의 틈새 소재를 찾아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남의 파이를 잘라 와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단순히 대일 의존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관료들이 동원한 전문가들이 기계적으로 선정한 품목의 국산화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소재 산업은 엄청난 에너지 소비와 오염, 사고 예방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 때문에 기피 산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화학 산업이다. 화학 산업에 대한 지나친 사회적 거부감을 완화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더럽고 위험한 기술도 깨끗하고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고급 첨단 소재를 개발·생산하겠다는 정책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국제적 분업과 협업이 절대 회피할 수 없는 대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소재·부품·장비는 국산화하면서 우리가 생산한 완제품은 다른 나라에 수출하겠다는 생각은 이기적인 자가당착이다. 완제품을 수출하려면 소재·부품·장비의 수입도 용납해야 한다.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밀어붙이는 정부의 소재 산업 육성 정책은 경계해야 한다.

피 한 방울로 전립선암 진단한다

인제대·서울대 공동연구팀

한 방울의 피로 전립선암 재발부터 진행, 약물치료 반응까지 정확하게 예측 가능한 혈중 암세포 기반 PSMA 검사 기술이 개발됐다. PSMA(Prostatespecific membrane antigen)는 전립선 특이적막 항원으로 PET CT와 같은 분자영상과 치료에 활용된다.

한국연구재단은 인제대 나노융합공학과의 정재승·한기호 교수와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의 변석수 교수 공동연구팀이 혈중 암세포의 PSMA mRNA 농도를 측정해 전립선암의 진단과 치료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새로운 검사 방법을 개발했다고 지난 4일 밝혔다. mRNA는 핵 안에 있는 DNA의 유전정보를 세포질 안의 리보솜에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전립선암은 남성 암 중 발생률과 사망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가 중요하다. 현재 PSA 검사, 조직생검 및 CT와 MRI 같은 영상진단 방법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PSA 검사는 특이성이 낮고, 조직생검은 통증이 수반되고 감염 위험 및 반복 검사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PSA(prostate-specific antigen)는 전립선 특이항원으로 전립선의 건강 상태와 관련된 중요한 생체 표지자임. 전립선에서 생성

왼쪽부터 인제대 나노융합공학과의 제1저자인 조형석 박사, 교신저자인 정재승 교수다. 사진=한국연구재단

되며 그 수치는 혈액 검사를 통해 측정 가능하다. 최근 기존 영상진단의 단점을 보완한 PSMAPET CT가 도입됐지만, 반복적으로 자주 사용하기 어렵고, 장비가 고가이며, 장비 운용에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공동연구팀은 6년간 다기관-전향적 연구로 247명의 전립선암 환자를 추적·관찰하여 혈중 암세포가 발현하는 새로운 바이오마커 PSMA mRNA를 찾았다. 액체 생검 기반의 새로운 바이오마커를 이용하면 단순 혈액검사로 전립선암의 재발과 진행, 그리고 약물치료 반응성을 예측할 수 있다. 또한 전립선암의 초기 단계부터 전이 단계까지 암 상태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 기존 조직생검과 PSMA-PET CT의 단점을 보완 또는 대체할 수 있다.

이번 연구의 제1저자인 조형석 인제대 박사는 “혈중 암세포 기반의 PSMA mRNA 검사법은 환자에게 최소한의 부담으로 최대의 진단 효과를 제공함으로써, 전립선암 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승 교수는 “종양의 위치에 대한 공간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PSMA 영상과 암세포의 활동성과 공격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혈중 암세포 기반 PSMA 검사를 결합하면 PSMA PET-CT의 위양성(False positive) 단점을 극복하고, 전립선암의 진단 치료 정확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위양성은 본래 음성이어야 할 검사 결과가 잘못돼 양성으로 나온 경우를 뜻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선생님의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주간 <교수신문>과 온라인 교수신문에 선생님의 이야기를 정성껏 담겠습니다

자유 기고는 물론, 제보와 보도자료는

editor@kyosu.net

으로 보내주세요

과도한 배려가 미덕은 아니다

딸깍발이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은 매우 소중하다. 짝 배(配)와 생각할 려(慮)로 이루어진 단어이니, 배려란 타인을 짝처럼 생각하는 마음이다. 국어사전에서는 도와주고 보살펴주려는 마음 씀으로 배려를 풀이한다. 임산부 배려석 같은 바람직한 제도를 비롯해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모여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겠지만, 과도한 배려는 인간관계를 겉치레로 흐르게 하거나 피로감을 누적시키기도 한다. 배려가 지나치면 배려받는 상대방에게 나만 잘되면 된다는 식의 이기주의를 정당화시키는 경우도 많다.

상대방이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것을 미리 알아서 챙겨주는 것을 배려라고 할 수 없다. 대학에서 도 학생 중심 대학을 지향하며 학생들에게 필요한 여러 프로그램을 개발해 학생들을 배려하지만, 학생 중심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한 배려가 많은 듯하다. 학생을 배려하는 제도나 정책이 너무 많기에, 학생들은 배려받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기 어려울 정도다. 학생을 교육 소비자로 대해야 한다는 비즈니스 의식이 대학 사회에 확산된 다음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큰 잘못이나 했다는 듯이 간주하는 분위기도 대학 사회에 존재한다. 그렇

지만 배려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가치관은 분명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의 출석과 지각 처리 문제를 생각해보자. 출석 부르는 순간에 학생이 대답하면 출석이고, 15분까지 오면 지각이고, 그 후에 오면 원칙상 결석 처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원칙대로 결석 처리하기가 뭐해 배려하는 마음으로 30분 지나서 오는 학생도 지각으로 처리해줬더니, 40분 지나서 나타나는가 하면 강의 종료 5분 전에 나타나 지각 처리를 요청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원칙대로 15분 규정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더니, 15분 이내를 맞추려고 야구선수가 전력질주해서 세이프 하듯 학생들이 숨을 헐떡이며 세이프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 사례만 봐도 원칙과 규정의 준수가 배려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학생들이 잘못된 주장을 하거나 그릇된 행동을 하고 있는데도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들의 뜻대로 해주는 것이 배려일까? 상대방의 주장을 경청하며 배려하는 것과 맹목적으로 배려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배려가 무조건 미덕이라고 생각한다면 학생들의 이기주의만 키울 수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을 비롯한 여러 연구소에서 발표한 ‘대학생 역량지수 개발’에 관한 연구보고서의 전반적인 결과는 시민역량 부문의 점수가 매우 낮다는 사실이다. 시민역량을 구성하는 공동체성, 사회참여역량, 국제적 역량 중에서 사회참여역량이 특히 취약한 수준이었는데, 이런 결과는 타인과 함께 성장하는 상생의 중요성을 경시한다는 지표이자 ‘나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대학생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는 뜻이다.

나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팽배한 데는 각자의 성향 탓도 있겠지만, 배려를 무조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이기주의를 부채질한 측면도 있다.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오은영 박사도 과도한 배려는 아이들을 망친다며, “힘들어?”, “미안해”, “고생했어”라는 3가지 말을 자주하면 아이를 망친다고 강조했다. 견디는 것도 중요한 발달 과정인데 “힘들어?”라는 말을 자주 하면 견뎌내지 못하고, 적절히 사과하는 방법을 알려주면 도움이 될 텐데 배려한답시고 “미안해”라는 말을 자주 한다면 누구의 잘못인지 아이가 알 수 없고, 칭찬도 정도껏 해야 하는데 항상 “고생했어”라고 말한다면 아이가 칭찬에 무감각해진다는 것이다.

과도한 배려가 결코 미덕은 아니며, 자칫 잘못하면 사람을 망칠 수도 있다. 학생이 잘못했을 때 교수는 배려하기에 앞서 학생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도록 계기를 제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과도한 배려는 어쩌면 학생들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기주의란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기적인 행동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을 알려주는 명언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원하는 방식을 요구하며 동의해달라고 하는 학생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배려의 참뜻은 아닐 것이다. 배려하는 마음에도 속도 조절과 방향 조절을 해야 한다. 대학 사회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 전반에 과도한 배려가 아닌 적절한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출처=갤러리 공감

갤러리 초대석

「Beyond」

노재환,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 2024

노재환 작가 전시회는 8월 4일까지 김해시 구지로 갤러리 공감에서 열린다. 작가는 1968년생으로 김해·마산·부산·서울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오랫동안 부산과 김해에 거주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차원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의식 세계를 시각화하는 데 관심이 있다. 그러다 보니 작업 또한 자유로운 운동성에 근거한 방법을 사용한다. 물감의 움직임을 이용하는 마블링(Marbling)과 작가의 통제를 가능한 배제하는 드리핑(Dripping) 기법이 그것이다. 이러한 기법은 운동에 기초한 혼돈과 무질서의 에너지가 예측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평면에 자리 잡도록 하는 특성이 있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든 평면에 자리를 잡아야만 회화가 되는 것이기에 혼돈은 결국 질서와 정돈 속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작업 과정을 거쳐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혼돈이 질서 속에 어떻게 시각화되는지를 실험하고 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총선 민의와 촛불시민, 그리고 대학

고슴도치와 여우

윤지관

대학문제연구소장·덕성여대 명예교수

선거란 것이 그렇긴 하지만 지난 총선도 현재 우리 사회의 상황을 보여주는 역동적인 장면을 여럿 연출했다. 집권 2년도 채 안 된 정권이 큰 타격을 입고 비틀거릴 정도로 심판론이 강하게 작동했다. 법치를 앞세운 검찰 정권이 범죄자로 몰아세운 정치인을 국민은 오히려 승자로 만들어주었다. 이른바 사법 리스크로 시달려온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확고한 지도력을 확립했고, 조국 전 법무장관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정당의 대표로 정치적 입지를 세웠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압승으로 귀결된 총선 결과에는 두 지도자의 역량과 전략도 어느 정도 주효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총선에서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촛불혁명의 주체였던 민주시민의 존재가 다시 부상하게 된 점이다. 당시 시민들은 무자격한 정권을 합법적인 수단으로 물러나게 했을 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 압도적인 의회 권력까지 부여해주었다. 그러나 촛불정권임을 자임하던 문재인 정부는 혁명의 원뜻에 부응하는 변화를 이루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그 결과는 지난 대선의 실패로 나타났다. 그것이 촛불정신에 미흡한 전 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채찍질이었다면 이번 총선은 그

정신 자체에 역행하는 현 정권에 대한 몽둥이세례인 셈이다.

촛불사태는 원래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으로 촉발되었지만, 그 근저에는 ‘헬조선’이라고 일컬어지던 한국 사회의 기득권 구조에 대한 비판과 불만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자는 젊은 세대의 요구가 분출하면서 그것은 혁명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이 촛불정신에 비추어 볼 때 대학 문제는 어떠한가? 한때 대학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계층사다리로 기능하기도 했지만, 현재의 대학이 철저하게 기득권 구조를 재생산하는 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은 대개 인정되는 바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SKY를 꼭짓점으로 하는 서울 중심의 대학서열체제가 자리하고 있다. 대학의 서열체제를 해체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촛불혁명의 한 지향점일 수 있을 것이다. 총선 민의가 대학의 구조를 정상화하는 실천에도 힘을 보탤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의 역설이 있다. 이 같은 서열체제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바탕을 이루는 것이 다름 아닌 시민 자신들 속에 뿌리박힌 일류대 지상주의이기 때문이다. 사교육이 팽창하여 공교육을 뒤흔들게 된 왜곡이 일어나는 과정도 자식을 최상위 대학에 보내고 싶은 학부모로서의 욕망과 결합해 있다. 역대 정권이 시장주의를 정책 기조로 정하여 상위 서열의 대학에 재정지원을 집중하고 지방대의 몰락을 방치하다시피 하면서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해 온 것이 국민의 여론이다. “좋은 일류대

학을 지원하고 나쁜 삼류대학은 없애라” “부실사학에 절대 국고를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민 다수의 뜻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그것이 국민 여론의 전부는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한국교육의 가장 큰 문제로 대학서열구조를 꼽은 학부모가 조사 대상의 70%가 넘는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사실 선택받은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 서열구조의 피해당사자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제22대 국회가 시작되었다. 시민들의 내면에는 현재의 불평등 구조를 변화시키려는 촛불정신과 자식을 일류대에 보내고 싶은 세속욕망이 공존하고 있다. 이 분열된 의식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긴 안목에서 기성의 틀을 바꾸어나가는 것이 진정한 정치다. 자크 랑시에르는 이해관계의 조정을 중심으로 하는 일반적 의미의 정치행위를 ‘치안’이라고 지칭하고 이를 굳어진 틀을 바꾸려는 활동으로서의 진정한 정치와 구별하였다. 야당이 압승을 거둔 총선이지만 여기서 드러난 민심의 어떤 측면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치안’과 ‘정치’의 갈림이 생겨난다. 대학이라는 제도 자체가 현재의 기득권 구조를 재생산하는 기제가 된 현실에서 올바른 정치는 그 재생산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다시 떠오른 촛불혁명 주체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새로운 정치의 시작이 될 것이다.

지구화 시대의 비평·문화·대학을 연구주제로 하고 있다. 주요 저작으로 『놋쇠하늘 아래서』(2001), 『세계문학을 향하여』(2013), 『위기의 대학을 넘어서』(2019) 등이 있다. 최근에는 학생이나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교양론·세계문학론·대학론 등을 화상으로 강의하고 있다.

시가 있는 풍경

그런 사람

시·그림 김성숙

시인·화가 / 광주교대 명예교수

일본 츠쿠바대에서 예술학 박사를 했다. 광주교대 미술교육과 교수를 지냈으며, 한국미술교육학회장, 전국여교수연합회장, 교육부 교원양성대학교발전위원회 교수대표 등을 역임했다. 2023년 『현대문예』에 등단했다. 『미술교육과 문화』(공저), 『교육은 치료다』(역서) 등의 저서가 있다.

지그시 눈을 감고

누군가를 생각하면

그리움과 설렘이 밀려오는

그런 사람 있나요

아침에 눈을 뜨면 또 하루

누군가가 있어 살고 싶어지는

그런 사람 있나요

가슴속에 켜켜이 숨겨 둔

나만이 몰래 꺼내 보는 이야기

그런 얘기 주저하며 꺼내도

따스한 눈빛으로 진지하게 들어줄

그런 사람 있나요

이 세상에 태어나 경험한 다양한 것들

그 어떤 경우와 순간에서

내가 내린 선택과 결단까지도

무조건 날 믿어주고 내 편이 되어줄

그런 한 사람 있나요

그대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세요

그대 사랑의 힘으로

생의 환희를 맛보며

자신을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도록

동행·2018

- 김성숙 시화집 『생의 찬가』 중에서.

시란 무엇인가

자연이 그 속에 수많은 작은 태(胎)와

씨앗을 품고 있는 하나의 커다란 태이듯

시의 공간은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는 태이며 씨앗입니다.

특히 시의 언어는 다른 종류의 언어에 비해

이러한 태의 성질을 더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를 읽을 때 감동한다는 것,

시를 읽을 때 우리의 감정과 의식이 팽창한다는 것은

시적 언어 공간이 우리를 뱄다는 이야기이며

그리하여 우리가 새로 태어난다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정현종 전 연세대 교수(국어국문학과)의

『빛-언어 깃-언어』(문학과지성사 | 264쪽) 중에서

교수신문 The Professors Times 1년 구독료 100,000원

학문의 자유와 대학 민주화 · 학술정보 제공과 대학문화 창달 · 교권옹호와 전문적 권위 향상

등록번호 : 서울다6564 주 소 : (우)04044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8길 17-17 102호

대표번호 : 02-3142-4111 편집국 : 02-3142-4153 광고 : 02-3142-4194

홈페이지 : www.kyosu.net 이메일 : editor@kyosu.net 팩스 : 02-3142-4118

발행인 : 이영수 편집인 : 이영수 편집국장 : 김봉억 인쇄인 : 장용호

본지는 신문윤리강령 및 그 실천 요강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