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형 사립대도 재정 격차 심각…대학 실상 가리는 ‘평균’

위기의 사립대학, 법인평가로 극복하자

❸ 대학통계에 숨은 평균의 함정

유원준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대외협력위원장·경희대 사학과 교수

연재 순서

① 사립대학, 어떻게 살릴까?

② 대학법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③ 대학통계에 숨은 평균의 함정

④ 전임교원 확보율의 불편한 진실

⑤ 대학 R&D와 법인의 기여도

⑥ 말 많은 교비적립금의 실체

⑦ 우수 사학법인의 기준

▶1면에서이어짐

대학 실상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대학통계

대학 관련 통계는 여러 기관에서 생성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데이터 Navigation’, 교육부의 ‘대학알리미’, 한국사학진흥재단의 ‘대학재정알리미’, 한국대학평가원의 ‘대학통계’, 그리고 매년 교육부가 발표하는 ‘교육기본통계’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통계들은 접근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분석과 활용도 쉽지 않다. 엑셀 기반의 ‘대학알리미’와 ‘대학재정알리미’는 통계적 정확성을 담보하지만, 통계의 편리한 이용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그림으로 보는 재정’, ‘테마 이슈’ 등 자료의 시각화로 편의를 제공했던 통계들은 2019년 이후 사라졌고, ‘교육기본통계’는 모든 고등교육기관을 망라하여 정작 대학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통계 생성·활용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평균의 함정’이다. 이는 미필적 고의가 의심될 정도로 정부든 언론이든 대학 관련 통계를 평균으로 처리함으로써 개별 대학의 실제 현황이 은폐되었음을 가리킨다. 일률적인 가나다순 통계표 작성, 비교·분석을 어렵게 만든 통계, 무의미한 비교를 제시한 통계 등 함정의 종류도 다양하다. 한편, 대학 관련 통계의 각기 다른 발표 시점과 통계 대상의 편차는 통계 분석과 비교를 어렵게 만든다. 우리는 다음 사례를 통해서 평균의 함정이 지닌 문제를 확인해볼 수 있다.

2019년 10월,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전 의원은

왜곡되고 편향된 통계에 근거한 정책이 대학을 망친다는 사실이다.

규모의 차이를 무시하고, 지역적 차이를 외면하고, 설립 목적의 차이를 간과한 지금까지의 대학평가는 이런 통계의 오류에 근거하지 않았는지 의혹을 떨칠 수 없다.

국정감사에서 정책자료집 『서울지역 대규모 사립대학 진단(2013∼2018)』을 제시하여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박 의원은 서울의 12개 대형 사립대학이 전체 사립대학 국고보조금의 46.5%, 기부금의 48.1%, 기업기부금의 55.8%, 산학협력 수익의 49.5%를 차지하면서도 전임교수 확보율을 비롯한 교육여건은 전국 평균보다 별로 나은 점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전국적으로 등록금과 적립금이 각기 3천904억 원과 6천306억 원이 감소했지만, 이들 12개 대학만 735억 원과 1천422억 원이나 증가하였다고 추궁했다. 박 의원의 지적처럼 이 12개 사립대학의 재정 여건이 비수도권 대학보다 나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심각한 평균의 함정이 숨어있다. 이들 12개 사립대학의 2022년도 재정 상황을 살펴보자.

학생 1인당 교육비의 초라한 현실

먼저 핵심 교육지표인 학생 1인당 교육비를 보면, 연세대가 3천622만 원으로 단연 1위이고 고려대·성균관대·한양대가 2천만 원대로 상위권이다. 그런데 1위 연세대에 비해서 5위 이화여대는 절반(53.6%)에 불과하고, 12위 한국외대는 1/3(32.2%)도 되지 않는다. 너무나 커다란 격차에 비교 자체가 무색할 정도이다. 그리고 서울 34개 사립대학의 학생 1인당 교육비 평균치인 1천845만 원을 상회하는 대학이 고작 5개 대학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사립대학의 초라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따라서 박 의원이 지목한 12개 대형 사립대학 안에서도 교육재정의 심각한 격차가 확인되는바, 평균의 함정이 대학의 실상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격차를 조장하는 정부 연구개발비 차이

재정 여건과 교육환경의 격차는 대학의 서열화를 촉진한다. 그렇다면 격차를 조장하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인가? [표 1]은 정부의 연구개발비 지원의 차이라고 대답한다. 전국 156개 사립대학이 정부로부터 받은 재정지원 금액 가운데 약 40%는 서울의 34개 사립대학이 차지하는데, 그 가운데 거의 절반 가까운 43.8%를 4개교(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한양대)가 휩쓸어간다. 게다가 4개 대학이 차지한 연구개발비의 비중은 56.4%로 더욱 높아진다. 이는 곧 연구개발비 수주 능력이 곧 대학의 연구경쟁력을 가리키며 나아가 대학의 서열을 좌우하는 요인임을 말해

준다. 물론, 연구개발비는 이·공 계열과 의학 계열에 절대적으로 편중되고 있어서 한국외대처럼 관련 전공이 없는 대학의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법인의 역할과 책임을 간과하거나 면제할 수는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번 시리즈의 5회 원고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법정부담금 100% 이행, 연세대와 성균관대뿐

평균의 함정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지표는 법인의 법정부담금이다. 사립대학 교직원은 대학본부가 아니라 대학법인과 고용계약을 체결하고, 대학법인은 임금 지급을 비롯하여 사학연금 및 4대 사회보험에 대한 법적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러면 박 의원이 지목한 12개 ‘재정지원을 독식하는 대학’의 법인은 이러한 법적 의무를 얼마나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을까?

[표 2]에서 법적 의무를 100% 온전히 이행하는 대학은 연세대와 성균관대뿐이다. 고려대 등 7개 대학은 60%대 이행에 그치고, 나머지 3개 대학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특히 홍익대는 24.1%에 불과하다. 국내 최고 명문사립대라고 자부하는 고려대 법인이 법적 의무를 61.3%밖에 이행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이다. 고려대 앞의 편의점과 식당의 사업주도 직원을 고용하면 상기의 법적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불이행 시에는 처벌을 받는다. 최고 명문사립대가 이런 법적 의무도 다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지, 무려 1조 원에 가까운 규모로 교비적립금 1위의 홍익대는 왜 이토록 법적 의무 이행에 불성실한지 의문이다. 나아가 이러한 일탈이 사립대 법인에게는 어떻게 허용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경상비 전입금은 0원에서 388억까지

법정부담금과 함께 법인의 기여도와 책임감을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지표는 ‘경상비 전입금’이다. 대학의 살림에 필요한 예산은 등록금 수입과 함께 법인의 경상비 지원 등으로 충당되는데, [표 2]를 통해 이들 12개 대학의 경상비 지원 실태를 살펴보자. 연세대는 338억 원으로 이 부문에서도 단연 수위를 차지하는데, 2위인 성균관대(60억 원)보다 5.6배나 더 많다. 한양대가 11억 원으로 3위인데, 4위 고려대로 가면 전입금이 1억 원으로 수직 낙하한다. 그 외 경희대와 이화여대, 동국대 등은 1억 원 미만이고 나머지 5개 대학은

[표 1] 2022년 서울 주요 사립대 정부 지원액과 학생 1인당 교육비 ( 단 위 : 명, 억 원)

순위

대학명 재학생수

정부 지원액 일반지원사업 학자금 지원사업

교육비

학생 1인당

교육비

(천 원)

총액

(A+B) 전체(A) 연구

개발

인력

양성

공통및

기타 전체(B) 국가

장학금

1 연세대 30,796 3,037 2,791 2,007 163 620 246 180 1,1153 36,215

2 고려대 29,572 2,763 2,525 1,731 194 595 238 186 8,762 29,629

3 성균관대 27,431 2,546 2,317 1,456 328 528 229 187 7,409 27,011

4 한양대 23,581 1,733 1,493 952 195 346 239 176 5,520 23,408

5 이화여대 21,515 999 803 582 44 177 196 161 4,174 19,398

6 경희대 34,454 1,538 1,135 764 106 259 404 327 5,675 16,472

7 동국대 17,534 851 627 336 113 178 224 180 2,854 16,275

8 중앙대 29,731 1,531 1,167 757 149 256 364 289 4,777 16,069

9 국민대 18,425 825 546 247 164 135 279 218 2,868 15,564

10 건국대 20,271 876 642 411 101 130 234 186 3,148 15,532

11 홍익대 21,630 588 288 139 54 95 300 243 2,747 12,700

12 한국외대 20,003 524 279 64 24 191 245 212 2,332 11,656

서울 합계 439,907 23,037 17,616 10,904 2,130 4,561 5,421 4,365 81,153 18,448

전국 합계 1,280,280 58,997 35,674 18,658 6,655 10,322 22,155 18,427 202,207 15,872

비율 39.0 49.4 58.4 32.0 44.2 24.5 23.7 40.1 -

•서울 합계는 34개 서울 소재 대학, 전국 합계는 전국 156개 대학 / 재학생 수:2022년 학부 및 대학원생 포함 ※출처 : 대학알리미, 대학재정알리미

[표 2] 2023년 서울 주요 사립대학 법인 전입금 세부 내역과 법정부담금 부담률 ( 단 위 : 백만 원, %)

순위

대학명 운영수입

(A)

법인 전입금

(B=C+D+E)

비율

(B/A*100)

경상비

전입금(C)

비중

(C/B*100)

법정부담

전입금(D)

비중

(D/B*100)

자산

전입금(E)

비중

(E/B*100)

법정 부담금

부담률

1 연세대* 994,900 70,237 6.6 33,848 48.2 36,389 51.8 0 0.0 102.9

2 성균관대 516,610 19,255 3.2 6,000 31.2 13,255 68.8 0 0.0 100.0

3 한양대* 569,461 14,584 2.4 1,099 7.5 13,486 92.5 0 0.0 66.9

4 중앙대 378,338 9,449 2.3 0 0.0 9,449 100.0 0 0.0 65.1

5 국민대 225,455 5,080 2.1 0 0.0 5,080 100.0 0 0.0 63.9

6 이화여대 316,122 9,341 2.2 63 0.7 9,279 99.3 0 0.0 63.6

7 경희대 461,543 12,717 2.6 73 0.6 12,643 99.4 0 0.0 63.0

8 동국대* 322,971 8,716 2.2 10 0.1 8,706 99.9 0 0.0 61.9

9 고려대* 652,425 15,801 2.1 125 0.8 15,676 99.2 0 0.0 61.3

10 한국외대 216,625 4,131 1.9 0 0.0 4,131 100.0 0 0.0 46.7

11 건국대* 363,322 5,200 1.1 0 0.0 5,200 100.0 0 0.0 35.8

12 홍익대 289,749 2,070 0.6 0 0.0 2,070 100.0 0 0.0 24.1

전국 합계 706,304 4.1 330,595 46.8 337,340 47.8 38,370 5.4 50.9

• 표식(*)된 대학의 운영수입과 법인전입금에는 분교가 포함되어 있음 ※출처 : 대학알리미, 대학재정알리미

경상비 전입금이 아예 없다. 두산그룹이 운영하는 중앙대가 0원, 국내 적립금 1위 홍익대가 0원, 법인 수익용 자산 국내 1위 건국대가 0원이다! 우리 국민은 이런 사립대 법인의 무책임한 행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참으로 궁금하다.

왜곡되고 편향된 통계에 근거한 정책들

지면이 부족하여 알리지 못할 뿐, 대학 관련 통계에서 평균의 함정은 무수히 많다. 앞서 언급한 산하기관들은 교육부의 발주로 통계를 작성할 것이다. 애초부터 원천 통계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편향되게 수집하고 통계를 작성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에 배포하거나 정책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때 교육부와 산하기관은 평균치를 적절히 교묘하게 활용하였다. 개별 대학의 실상을 은폐할 목적으로 그랬을 가능성을 의

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은 이렇게 왜곡되고 편향된 통계에 근거한 정책들이 대학을 망친다는 사실이다. 규모의 차이를 무시하고, 지역적 차이를 외면하고, 설립 목적의 차이를 간과한 지금까지의 대학평가는 이런 통계의 오류에 근거하지 않았는지 의혹을 떨칠 수 없다. 그로 인하여 오늘 우리나라 사립대학이 직면한 위기의 근원이 단순히 학령인구의 감소나 등록금 동결을 넘어 바람직한 대학 정책의 대안 수립을 가로막은 통계적 요인에 있는 건 아닌지 교육부는 반성하고 해명할 의무가 있다.

대만 중국문화대학에서 송대사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대외협력처장과 문과대학장, 서울캠퍼스 교수의회의장을 지냈다. 현재 국가교육위원회 ‘대학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대학자치의 역사와 지향 Ⅰ,Ⅱ』를 썼다.

인사이트

학술총서 01역설적이지만,

제5공화국은 한국 민주화에 중요한 시기였다

이 책은 제5공화국의 정치사적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 시도이다. 어두운 기억과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고 해도, 제5공화국 7년 동안 우리 사회는 그 나름의 변화를 겪었다.jj

140×210 ] 536쪽 ] 32,000원 ] 979-11-5707-613-0저자 강원택

현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이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석사를 마친 후 영국 런던정경대학(-4&)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서출판04000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19길 52-7 PS빌딩 4층 문의]02-725-8806

이메일]jhs8807@hanmail.net 블로그]blog.naver.com/jgonggan

“라이즈·글로컬대학·무전공제, 너무 갑작스럽고 과도하게 추진”

한국교육정책연구원, ‘현 정부 고등교육 정책 평가와 개선 방향’ 포럼

현 정부의 핵심 고등교육 정책인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라이즈)와 ‘글로컬대학30’, ‘무전공제 확대’에 대해 정부가 충분한 준비 없이 급작스럽게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라이즈’와 ‘글로컬대학’ 정책은 정부가 사회적 합의 없이 ‘산학 협력’에만 치중하도록 설계해 교육의 가치가 왜곡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고, ‘무전공제 확대’ 정책의 경우 앞서 실패한 사례가 있는 만큼 강제적인 형식보다는 중장기적인 발전 계획으로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라이즈·글로컬대학, ‘산학 협력’만 중시

한국교육정책연구원(이사장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수)은 지난 달 29일 ‘현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 평가와 개선 방향’이라는 주제로 제4차 교육 포럼을 진행했다. 염민호 전남대 교수(교육학과)는 주제 발표를 통해 대학의 근본적인 구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라이즈’와 ‘글로컬대학’ 정책을 추진해도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특히 그는 ‘라이즈’와 ‘글로컬대학’ 정책으로 대학의 사회적·교육적·경제적 가치가 심하게 왜곡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해당 정책이 계량화할 수 없는 대학의 교육·연구 활동을 두고 오로지 ‘산학

협력’만 중시해 대학 교육의 가치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라이즈’와 ‘글로컬대학’ 정책이 선택과 집중의 방법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라이즈’의 경우 지자체별로 재정자립도에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에 속한 지역의 대학들은 다른 지역 대학들과의 경쟁에서 열세일 수 있고, ‘글로컬 대학’ 역시 선정되지 못한 대학의 가치와 기능이 갈수록 축소되는 문제점이 있다고 짚었다.

교육부, 대학 체제·구조개혁 인식 전환 필요

염 교수는 중앙정부가 대학 체제와 대학 구조 개혁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우리나라 대학 체제를 뒷받침하는 핵심 가치를 사적 가치에서 공적 가치로 바꿔야 한다는 게 요점이다. 공공성과 자율성 등 교육의 공적 가치를 명료하게 제시하고, 그 가치 실현에 구체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고등교육을 대상으로 한 보편적인 재정 지원에 초점을 맞추라고 주문한다.

그는 “라이즈가 시행되면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로 행·재정 지원 권한을 위임해 책임만 회피하는 꼴”이라며 “글로컬대학 정책도 현재 국공립대 중심의 통합이 이뤄지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교육부·지자체의 대학 관할권 행사는 사립대에 집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신철균 강원대 교수(자유전공학부)는 지정 토론에서 글로컬대학 정책이 대학의 자율성과 사

라이즈와 글로컬대학30 주요 쟁점

구분 라이즈 글로컬대학30

목적

구성

·(지역)대학의 역할을 ‘산학협력’에 초점

·대학역할 단순화로 지방·대학의 기능화

·국사립 불문 소수 특성화대학 집중 육성

·공적가치 접근 부재 및 학위과정 목적 부재

지배

구조

·지배구조 이원화(교육부+지자체) 특별실험

·지자체의 대학 이해도 제고 및 관리 참여 기회

·교육부 관리감독 기능은 여전히 압도적

·수도권 포함 이유 불명 및 사립대 관리 부재

·대학 벽 제거로 학외자 대학운영 참여 제고

·지방 국공립대 통합 유도, 국립대 가치 약화

·국립대 공적 가치 및 운영 특성에 무지 노출

·사학재단의 부실·비리 관리감독 강화 부재

재정

구조

·대학재정지원구조의 연계/통합은 바람직

·교육부+지자체의 재정지원공유도 바람직

·지자체별 재정역량 차이에 따른 대처 부재

·선정대학의 재정 안정성 확보 : 5년 1천억

·재정 확보 및 사업의 지속가능성 불명

·미선정 지방대학에 대한 지원 부재

성과

관리

·성과관리 이원화로 업무 부담 가중

·인센티브 비율 높여 교육부 권한 강화

·시도에 교육개혁지원관 파견

·선정·평가에 교육부가 제시한 ‘혁신성’ 중시

·인센티브 강화(40~50%)로 교육부 권한 유지

·기존 성과관리의 역기능(지표 중심) 반복

※ 출처 : 염민호 전남대 교수(교육학과), ‘고등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적 논의: 라이즈와 글로컬대학30 중심’, 한국교육정책연구원 제4차 교육포럼, 2024년 5월 29일 발

회적 합의를 존중하지 않는 방식인 데다 재정 지원을 무기로 대학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강제하는 방식도 문제지만 너무 갑작스럽고 과도하게 추진되면서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고 해 대학이 몸살을 앓고 있다고 꼬집었다.

신 교수는 “대학·학생·학부모 등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 필요하다”면서 “다양한 정책 실험과 성과 확인 작업을 거쳐 점진적으로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무전공제, 인기학과 쏠림 반복

양일모 서울대 교수(자유전공학부)는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의 전공 선택 분포를 정리

해 보니 무전공제 확대 정책으로 인한 인기학과로의 쏠림 현상이 충분히 예상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가 지난 2011년부터 2023년까지 5년 단위로 전공 선택 분포를 정리한 결과, 사회과학대학을 선택하는 비율이 크게 줄어든 반면 공대로 진학하는 비율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지금까지 자유전공제의 교육 방식·교과과정 등은 학부 교육의 혁신에 귀감이 될 수 있다”며 “전공 선택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와 졸업생 진로 지도 등에 대한 지표 분석 결과는 무전공 입학 등으로 인해 불거지는 난제를 해결할 단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민윤경 한국교육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자유전공제가 대부분 입학생 중 일부만을

대상으로 하거나 대학 입학 시 선택한 계열 내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등 매우 제한적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짚었다. 또한 학부 교육의 질적 제고를 위해서는 무전공제 확대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학생·교수 간 상호작용, 서술형 평가, 자율 연구 참여, 다양성 강조 등과 같은 조건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대학은 교수자 개인 헌신만 중시”

민 부연구위원은 “자유전공학부에서 학생들에게 쏟는 에너지·시간·노력은 일반 학과보다 훨씬 커서 학생 지도를 위해서는 교수자의 헌신과 노력이 무척 중요한데, 우리나라 대학은 교수자 개인의 헌신과 노력만 중시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고 전했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정부 주도로 성급하게 추진되는 무전공제 확대 정책이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무전공제 확대 정책을 지난 1월에야 확정·발표했지만 오는 2025학년도부터 바로 시행하라고 주문해 성급한 정책추진으로 혼란을 야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기학과 쏠림 현상 등 과거 자유전공제의 폐단에 대한 대책도 없이 무작정 진행하고 있어 문제점이 많다는 것이다. 자유전공제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인기학과 교수 확보등 양질의 교육 인프라가 필요한데 이에 대한 준비 부족 문제도 꼬집었다.

장성환 기자 gijahwan90@kyosu.net

갈팡질팡 리투아니아, 국제사회 재편할까

글로컬 오디세이

서진석

한국외대 EU연구소

발트연구센터 연구교수

2021년 가을 인구가 3백만도 안되는 북유럽의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가 갑자기 국제뉴스의 중심에 서

게 됐다. 그해 9월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타이페이’가 아닌 대만의 이름을 넣은 ‘대만대표부’가 정식으로 개설된 것이다. 그 결과 중국은 ‘파리 같은 보잘것없는 경제 규모’의 리투아니아에 무역전쟁을 선포했고 리투아니아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미쳤다. 무역인들은 정부의 미숙한 외교 때문에 자기들만 애꿎은 희생양이 됐다는 속내를 자주 드러냈다. 올해 1월부터는 리투아니아인에게 비자 발급이 무기한 중지됐다. 3년 전 그 행보는 과연 이러한 손해를 감수할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이었을까?

리투아니아 최대의 반도체업체인 브롤리스 그룹(Brolis Group)의 창립자 크리스티요나스 비즈바라스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런 불만이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만대표부 설립 이후로 마이크로칩·반도체 같은 미래지향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의 핵심기술을 대만으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리투아니의 주력 사업인 레이저 분야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기술이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대만과 경제적 협력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하는 것이지 외교적인 사안으로 발전시킬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외교부 장관 가브렐류스 란스베르기스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만과 관련된 결정은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줄이고 새로운 파트너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단지 중국이 경제적 영향력의 가치를 정치·외교적 패러다임으로 곡해하고 있을 뿐이다.

한결같기만 할 것 같던 친 대만 정책에도 그사이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 3년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란스베르기스는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할 용의는 없는지 그리고 정식 대사를 다시 파견할 계획은 없는가 하는 질문에 “현재 대화의 부피를 밝힐 수는 없지만 대화는 진행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2023년 11월 리투아니아를 방문한 대만의 외교부 장관 조셉 우는 정부 관계자와 공식적인 회담을 갖지 못했다. ‘리투아니아의 이름으로’의 당대표 사울류스 스크베르넬리스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외교부의 이러한 행보는 꽤 충격적이라고 말한다. “(란스베르기스와 같은) 보수주의자들은 실수하고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험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타이페이’가 아닌 대만의 이름을 넣은 ‘대만대표부’가 정식으로 개설된 결과 중국은 ‘리투아니아에 무역 전쟁을 선포했고 리투아니아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미쳤다. 사진은 주 리투아니아 타이페이 대표부 개설 사진.

사진=타이페이 외교부 홈페이지

이었고 지금 명백히 (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리투아니아가 중국과의 관계에서 갈팡질팡한 반응을 보인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달라이 라마의 리투아니아 방문이다. 2013년 달라이 라마의 리투아니아 방문 당시 대통령이 나와 직접 영접했던 것이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고 당시 중국과 진행되고 있던 여러 가지 협상이 중지됐다.

그 후 리투아니아는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오랜 시간을 들여 가까스로 성공했다. 그리고 그를 의식한 탓인지 2018년 달라이 라마가 다시 리투아니아를 방문했을 때는 정부 관계자 중 그 아무도 예방을 하지 않았다.

리투아니아 사회민주당 당 대표 빌리야 블린케비츄테는 란스베르기스의 대 중국 정책에 대해 “그는 용을 죽이는 자이면서 또 친구이기도 한 역설적인 상황이다”라고 평가했다. 이 모든 것들이 단기간에 180도 변할 수 있음을 내비치는 말이다. 그에 따르면 리투아니아의 외교정책은 일관되지 못하고 혼란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란스베르기스가 11월 리투아니아를 방문했던 대만 외무부 장관을 만나지 않기로 한 것은 그가 이끄는 정책이 혼란스럽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리고 벌써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의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외교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전략적인 시각도 없고 어수선하며, 그의 정책은 혼란스럽고 즉흥적이라는” 블린케비츄테의 주장을 다소 합리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외교부 장관이 어떠한 카드를 품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소련의 붕괴를 앞당겼던 그의 할아버지 비타우타스 란스베르기스처럼 국제사회를 재편할 성과를 낳을지는 아직 기다려봐야 할 듯 하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에스토니아 타르투대에서 비교민속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에서 연구원과 기자로 활동했다. 라트비아대 한국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역임, 발트 3국 지역 내의 한국어 발전 방법론과 20세기 이후 발트 3국이 겪고 있는 사회적 변화 연구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발트 3국』, 『유럽 속의 발트 3국』, 『발트 3국의 언어와 문화』(공저)가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인재에게 사회가 바라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인문사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❼

정혜중

전국사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장

이화여대 인문대학장·사학과

AI시대 인문학의 역할과 위상

2016년 3월, 한국의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을 전 세계인들이 흥미진진한 관심으로 지켜보았다. 결과는 4:1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세돌 9단의 1판 승리에 대해 ‘인류를 지킨 한 판’으로 인간의 창의성과 직관에 높은 평가를 내리기도 하였다. 6년 후인 2022년 오픈 AI가 개발한 프로토타입 대화형 인공지능 챗봇 ChatGPT가 운영되면서 다양한 지식 분야에서 상세한 응답과 정교한 답변으로 인해 집중 받았다. 일부 정보의 정확도는 중요한 결점으로 지적되기도 하였으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다방면에 초래할 영향에 대해서도 위협과 기대를 가지고 매일 이야기되고 있다. 최근 뉴스들 또한 인공지능과 그것이 사회·정치·경제·일·의료·교육·사생활 등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 영향에 대한 기사도 연일 쏟아지고 있다. 이런 기사를 접하지 않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한국에서도 세계와 경쟁 가능한 기술력 확보를 위해 각 대학에서는 인공지능학과·반도체학과 등을 만들고 있으며 이러한 첨단 학문분야에 대학 신입생과 학부모들의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는 이른바 인문계열의 문과를 학습하고자 하는 학생수의 감소는 어쩔 수 없는 추세로 받아 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이러한 기술혁명의 시대에 문학·역사학·철학·종교학 등 인문학 제 분야는,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은 것일까?

인문학의 상상력·창의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21세기가 열리고 바로 세계적으로 스마트폰이 세간의 주목을 끌면서 한국에서는 2010년 초 몇 십만 명에 불과했던 스마트폰 가입자가 지금은 거의 1인 1스마트폰 시대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되었다. 2022년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 따르면, 스마트폰 보급률은 97%로 늘어났다. 이렇게 스마트폰이 사람들의 손에 쥐어지며 편리한 세상이 열리던 2013년, 모 기업에서 ‘창의적인 혁신과 도전 의지로 충만한 인문학도들을 위해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며 인문학과 첨단 SW의 만남,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인문학과 첨단 SW의 만남을 기치로 새로운 인재 발굴을 시작하였다.

인문학이 입시에서 소외되고 있는 올해에도 인문학의 상상력·창의력을 기술발전과 공학발전을

위해 쓰고자 하는 채용은 계속되고 있다. 기업에서 강조하는 인문학의 중요성은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와 활용이 한창인 요즘에도 여전히 중시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그런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할 것이다. ‘인공지능시대 인문학이 나침판 역할을 할 것이다’, ‘생성 인공지능과 인문학르네상스’, ‘AI시대 인문학을 배워라’ 등의 어조로 인문학의 매력을 설명하는 기사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 우리와 함께했던 10여 년 전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시대에서도 인문학의 역할과 위상은 여전한 것처럼 보인다.

사회변화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뢰

이렇듯 입시시장과 상반되는 인문학에 대한 강조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인문학의 오랜 속성에 기인한다. 인문학의 속성으로 첫째, 인류가 지향해 온 인문학의 정신은 우리가 살고 운영하는 사회와 세계의 기본 맥락을 유지시켜 주고 있다는 점이다. 즉, 비판적 사고, 주변의 세계에 대한 더 깊은 이해, 논리적 사고와 의사소통, 그리고 문학적 창의력과 상상력은 세상의 변화에 의해 야기되는 문제들에 대해 다른 접근법을 제공한다. 인문학의 중요 기반인 문학·사학·철학은 전형적으로 옳고 그름은 없다는 점에서 과학적 사고와 지식구조가 문제에 대한 옳고 그름을 포함하는 것과 다르다. 때문에 인문학은 사회의 변화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뢰가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여전한 것으

AI를 사용해 ‘어떤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를 명확히 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AI를 선택할 때에도 인문학적 사고와 상상력이 크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AI 기술은 인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로 보인다.

둘째,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인간의 문화에 관심을 갖거나 인간의 가치와 인간만이 지닌 자기표현 능력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인 연구 방법에 관심을 갖는다. 이를 기반으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기에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인문학에서는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방법을 폭넓게 사용한다. 때문에 인문학은 인간의 상태와 다양한 문화적 측면을 연구하면서 그 주요 특징은 질적인 데이터를 폭넓게 활용해 분석적·비판적으로 연구하는 것에 있다. 이렇게 교육받은 인문학도는 사회 구석구석의 인재로 활약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원래 테크기업 운영을 위해서는 개발자, 엔지니어뿐 아니라 인사·마케팅·영업 등 인간과 관련한 부서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에 의해 운영·발전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에 대해 학습하는 인문학도가 커뮤니케이션 나아가 기술의 제반 원리 등을 학습해 간다면 인공지능 시대의 인재로 성장하여 사회의 적재적소에서 활약할 것이다.

인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AI 기술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모호한 자료를 분석적으로 평가하고, 문·사·철 문헌 속의 자료에 근거해 해결책을 짜내는 훈련을 받고 있기에 기술만을 학습한 경우보다 인간의 감정과 의사소통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시대에도 AI를 활용한 기획에서도 AI를 사용해 ‘어떤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를 미리 명확히 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AI를 선택할 때에도 인문학적 사고와 상상력이 크게 역할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인문학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디지털 인문학’이 주목을 끌고 있듯이, AI 기술이 인문학 제 분야의 연구방법에 혁신을 가져오고, 새로운 지평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문학과 역사, 철학이 기반이 된 인문학은 서로 다른 문화적·윤리적 가치관으로 구성된 사회 내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술혁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문학의 중요성은 종종 간과되기 쉽지만, 4차 산업혁명이 임박해 인공지능과 기술이 세계를 주도하는 미래에도 인문학의 역할과 위상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2017년 이후 첨단분야 중심 공학계열 개편 두드러져

한국교육개발원, 2013~2022

‘대학 학과·전공 개편 실태’ 조사

교육부가 무전공제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학과·전공 개편 실태를 담은 보고서를 발간해 주목을 끌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지난해 수행한 「대학 학과·전공 운영 실태 분석」을 바탕으로 지난달 24일 「대학의 학과·전공은 지난 10년간 어떻게 개편되었는가?」 보고서를 내놨다.

최근 10년간 대학의 학과·전공 개편은 먼저 대학평가를 비롯한 각종 대학재정지원사업 정책과 연계해 이뤄졌다. 학과·전공 수의 증감이 급격히 이뤄진 2017년, 2021년은 정부의 대학평가 정책이 강하게 추진된 시기와 맞물린다. 현재 추진 중인 ‘무전공제 확대’ 정책으로 인한 학과 구조조정도 한창이다.

사회 수요를 반영한 첨단분야와 응용학문 중심의 개편도 많았다. 학과 신설·폐지는 2017년 이전에는 실용학문 중심으로 사회계열에서, 2017년 이후에는 첨단분야를 중심으로 한 공학계열에서 개편이 두드러졌다.

연도별 전공계열별 대학 학과·전공 수는 2013년 1만2천60개에서 2014년 1만1천822개로 줄다가 2017년 1만2천453개로 크게 늘었다. 직후인 2018년 1만1천981개로 감소한 수는 2022년 1만2천466개로 다시 증가했다.

계열별 증감 현황을 보면, 공학계열에서 학과(전공) 수가 증가한 반면, 사회·자연계열은 감소했다. 특히 대학별 학과·전공 수는 지난 2013년 56.6개에서 2022년 64.6개로 늘어 학과·전공이 다양화·세분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공학계열은 컴퓨터·통신 분야를 중심으로 개편됐고, 기계공학과 전자공학 분야에서도 개편이 빈번했다. 사회계열은 경영학, 가족·사회·복지학, 행정학 분야를 중심으로 개편됐다. 인문·

자연·예체능계열은 기초학문보다는 인문과학, 생명과학, 식품영양학, 영상·예술 등 사회 수요가 많고 최신의 과학기술을 접목하는 응용학문 분야를 중심으로 개편이 이뤄졌다.

‘학문분야별 대학 학과·전공 수 개편 양상’ 자료로 보면 인문계열 내 언어·문학 분야의 경우 △국어·국문학 △일본어 △중국어 △영미어 및 문학 등에서 폐지가 많았다.

사회계열 내 경영·경제 분야는 △경영학 △금융·회계·세무학 △무역유통학에서 신설·통합·폐지가 많았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가족·사회·복지학 △사회학 △행정학 △언론·방송·매체학 △행정학에서 개편이 컸다.

교육계열에서는 교육일반 및 유아·특수·초등·중등 교육 등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합·폐지를 동반한 개편이 이뤄졌다. 유일하게 폐지 없이 개편이 이뤄진 학과는 중등교육의 공학교육이었다. 의약계열의 경우 의료·간호·약학·치료·보건 대부분에서 통합 양상을 보였다.

공학계열은 건축·토목·도시 분야가 전원 통합·폐지 유형으로 개편됐다. 반면 △기계공학 △금속공학 △전자공학 △섬유공학 △전산학·컴퓨터 공학 △응용소프트웨어공학 △정보통신공학 등 학과에서는 전반적으로 개편이 활발했다. 특히 △컴퓨터·통신 △산업 △화공 △기타 분야 규모는 대부분 증가세를 보였다.

자연계열은 △농업학 △수산학 △산림·원예학 등 농림·수산 분야 규모가 증가세를 보였으며, 생활과학 분야는 식품영양학에서 규모 증가와 개편이 이뤄졌다. 반면 수학·물리·천문·지리관련 분야 학과에서는 대부분 감소세를 보였다.

예체능은 증감 양상과 개편이 활발했다. 특히 △기타·디자인 △영상예술 △체육 △국악 △성악 △작곡 등 학과에서 개편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계열별 자유선택으로는 인문계열의 경우 교양인문학, 사회계열은 교양사회과학, 공학계열은 교양공학, 예체능계열은 기타음악 분야 등 학과·

전공 신설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외 신입생 충원율과 전임교원 비율 또한 응용학문과 첨단분야, 전공 자유선택 제도 기반의 교양대학에서는 학과·전공 수와 입학정원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전체 규모로는 아직 평균 이하를 기록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보고서에서 △세부 학문 분야를 고려한 학과·전공 변화 추이 분석 △학과·전공 규모, 학생·교원 특성을 고려한 미래 인재 양성 정책 △첨단분야 학과·전공 증설에 부응하는 학생·전임교원 △학과·전공 관련 국가 수준 통계조사 항목의 최신화·다변화·구체화 △학과·전공 관련 각종 조사자료의 연계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부는 올해 1월부터 초부터 무전공제 도입 비율이 높은 대학에 가산점을 줘 인센티브를 차등 지원하는 무전공제 확대 정책을 도입했다. 이에 따른 학과·전공 개편이 대폭 이뤄지고 있다.

현지용 기자 editor@kyosu.net

고맙습니다

한국지성의 정론지 <교수신문>은 선생님의 후원과 정성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구독료 납부 계좌]

• 국민은행 061-01-0492-863 (이영수)

• 농협 056-01-088583 (이영수)

• 신한은행 110-009-150-978 (이영수)

• 교수신문은 주간 신문입니다. (연간 구독료 100,000원)

• 구독기간 만료시 자동연장됩니다. (해지는 전화 또는 홈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 은행으로 입금 시 구독자와 입금자 성함이 다를 경우 신문사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 카드결제는 홈페이지 우측 하단 '구독문의'에서 로그인 후 결제하실 수 있습니다. (문의 02-3142-4111 )

“외로워, 외로워”…홀로 있음은 고통인가 영광인가

인문·철학 계간지 ‘타우마제인’ 3호

인공지능 시대의 ‘외로움·고독’ 다뤄

‘78점’ 국내 심리학자들이 한국인의 고독 지수를 평가한 점수다. 이는 상당한 고독감에 해당한다. 78점은 당분간 지속되거나 더 올라갈 것 같아 재차 우울해진다. 과학기술은 삶에 더 많은 편리함과 효율성을 제공하는데, 왜 더욱 외로워지는 걸까.

인문·철학 계간지 <타우마제인> 3호(캐럿하우스 | 187쪽)는 「인공지능 시대의 ‘외로움과 고독’에 관하여」를 다뤘다. 이한구 경희대 석좌교수(역사철학)는 「외로움의 강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 글을 통해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한다. “고독은 홀로 있음이며, 외로움은 상황에 의해 강요된 고독이다. 홀로 있음의 고통에 대해서는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홀로 있음의 영광에 대해서는 ‘고독’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인 스타 배우로 도약한 이정재 배우. 그도 새벽 3시까지 먹방 유튜브를 볼 때가 있다고 하니 말 다 했다. 방탄소년단 RM은 「Lonely」에서 “너무 외롭다”라며 “온종일 유튜브와 넷플릭스 / 그저 또 폰속 데이터와 데이팅”이라고 노래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부터 외로움을 느끼게 됐을까? 동양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일곱 가지로 표현했다. 거기에 외로움은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게 두려움이었다. 서양에서 외로움을 뜻하는 ‘lonely’는 17세기의 셰익스피어가 만들었다. 그전까지는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었거나 몰랐다거나 표현하기 어려웠다는 증거다.

17세기에 등장한 단어 ‘lonely’

이한구 석좌교수는 “오늘날은 핵 개인주의 시대”라며 “자유를 지나치게 추구한 대가로 외로움이라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시대”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인류는 “가족애와 우정, 그리고 절대자나 자연에의 귀의”로 외로움의 강을 건널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두가 무너졌다. 가족은 해체됐고, 지나친 경쟁으로 우정은 희미해졌으며, 신에 대한 믿음은 탈종교화됐고, 도시화로 자연과도 멀어졌다.

외로움이 무서운 건 전체주의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석좌교수는 “한나 아렌트는 정치 철학적인 시각에서 외로움이 전체주의의 온상이 된다고 주장한다”라며 “외톨이는 자신을 전혀 쓸모없는 존재로 혐오하면서 사회에 대한 울분을 쏟아낸다”라고 비판했다. “최근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 포퓰리즘이나 팬덤 정치도 외로움과 연관

여인의 표정이 고상하면서도 왠지 쓸쓸해보인다. 영국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프레드릭 레이튼(1830∼1896)의 「고독」(1890)이라는 작품이다. 그림=타우마제인

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대중사회란 외로워진 이들의 집단

대중이라는 말 자체에는 외로움이 묻어있다. 김만권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교수는 「외로운 세기, 외로운 젊은이들」을 썼다. 김 교수는 “19세기 중후반부터 (산업혁명으로 인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온 외로운 사람들을 이르던 표현이 ‘대중’(mass)이었다”라며 “‘대중사회’란, ‘외로워진 이들의 집단’이란 뜻”이라고 설명했다.

2022년 소셜 로봇 ‘ElliQ’는 30만 건 이상의 상호작용을 했다. 그만큼 이야기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주목되는 건 이용자들이 소셜 로봇과 함께 커피나 차를

“외로움은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중요해 보이는 것들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없는 데서 오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모두 다 느끼는 외로움이지만,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자신만이 외롭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 합해 3천 잔이나 마셨다는 것이다. 소셜 로봇이 친구나 선후배처럼 다정함을 선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영국에서 외로움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은 900만 명에 달한다. 외로움이 불러오는 경제적 비용은 연간 25억 달러(약 3조 4천140억 원)로 추산된다. 특히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외로움은 배고픔이나 물리적 고통과 비슷하다. 왜냐하면 같은 뇌 신경 영역에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SNS는 고립과 단절의 원인 아닌 결과

현대인은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에 중독돼 있다. 도파민 활성화를 위해 늦은 밤까지 휴대폰을 놓지 못한다. 주혜연 동아대 교수(철학생명의료윤리학과)는 「현대인의 실존, 고독을 넘다」에서 SNS를 분석했다. “실존적 관계 맺음이 해체된 현대인들이 SNS라는 가장 표면적인 소통

의 형태를 선택한 것이라면, SNS는 고립과 단절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물인 셈이다.”

주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상황은 절망적이다. 이케아에서 38개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2023 라이프 앳 홈」 보고서에서 한국인들이 ‘식구들과 함께 웃는 시간이 즐겁다’는 비율이 14%에 불과했다.” 주 교수는 “자녀 양육을 기쁘다고 평가한 사람도 8%에 불과하다”라며 “두 항목 모두 참여한 38개국 중 꼴찌였다”라고 밝혔다. 여기서 더욱 눈길을 끄는 건 ‘집에 혼자있을 때 즐거움을 느낀다’는 비율은 40%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가장 기본적인 소통의 대상인 가족마저 ‘집을 함께 쓰는 동거인’으로 전락한 셈이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인 칼 구스타프(1875∼1961)는 “외로움은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중요해 보이는 것들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없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신홍임 국립순천대 교수(인지심리학)는 「인생이 왜 외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가?」를 통해 “인간이라면 모두 다 느끼는 외로움이지만,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자신만이 외롭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심리학 연구에서도 외로운 사람들이 인간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강조했다.

고독 속에서 나와의 소통이 출발점

어쨌든 소통의 문제다. 소통은 나하고도 할 수 있고,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 발자크(1799∼1850)는 “고독도 괜찮지만, 고독도 괜찮다고 말해 줄 사람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는 “나는 고독만큼 좋은 동반자를 찾지 못했다”라고 고백했다. 한나 아렌트(1906∼1975)는 “외로운 사람은 적대감을 가지고 있어서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반면, 고독한 사람은 자기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분석했다.

김선희 강원대 인문학부 교수(철학전공)는 「외로움의 철학적 치유」를 통해 나에 대한 성찰을 강조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우리가 지금까지 달아난 곳이 이웃이었다면, 21세기에는 스마트폰이다. 한 번도 제대로 직면할 기회가 없었던 우리에게 외로움, 홀로 있음, 그리고 자기 자신과 함께하는 것은 불편하고 불안하다.” 김 교수는 “외로움이 낯설고 두려운 인류는 외로움을 피하고자 끝없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물건들을 찾아 나선다”라며 “그럼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도망친다”라고 비판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7개 도시, 학령인구 50% 이상 줄어든다”

통계청, 향후 30년 시도별 장래인구 전망

“2045년부터는 모든 시도에서 인구 자연감소를 보인다.” 우리나라 인구 수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특히 2022년 대비 2052년 학령인구(6~21세)는 모든 시도에서 감소할 전망이다. 울산·경남·경북·전북·전남·대구·부산 등 7개 시도에서는 5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측돼 심각한 상황이다. 통계청은 지난 28일, 「장래인구추계(시도편): 2022~2052년」을 발표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국의 학령인구(6~21세)는 2022년 750만명에서 2035년 482만 명으로 268만 명이 급감한 후 2052년 424만 명까지 감소할 전망이다. 향후 30년간 학령인구는 수도권 137만 명(-36.9%), 영남권 99만 명(-54.6%), 중부권 46만 명(-41.3%), 호남권 44만 명(-51.2%) 순으로 감소할 것으로 분석됐다.

2022년 대비 2052년 시도별 총인구는 세종과 경기는 증가하고, 나머지 15개 시도는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2022년 서울·부산·대구 등 11개 시도에서 마이너스 인구

학령인구(만명)

800

700

600

500

400

300

200

100

0

22년25년35년45년52년

성장, 2039년부터 세종을 제외한 16개 시도에서 마이너스 인구성장을 보일 전망이다. 2022년 세종을 제외한 16개 시도에서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많은 인구 자연감소, 2045년부터는 모든 시도에서 인구 자연감소를 보일 전망이다.

한편, 2052년 중위연령은 전남·경북·경남·강원 등 9개 시도에서 60세를 넘어설 전망이다. 2022년 대비 2052년 생산연령인구는 세종을 제외한 16개 시도에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전국대학언론 기자학교가 열립니다

제 32기 기자학교는 오프라인 대면 강의와 함께 화상회의 플랫폼 >331을 활용한 온라인 과정을 병행해 진행합니다. 제32기 전국 대학언론 기자학교 개최 안내

●기 간:2024년 7월 22일(월) b 24일(수)

●진행방법:온오프 강의 병행

●대 상:전국대학 신문(영자)〮방송국 현직 기자 ●참 가 비:대면 강의(20만 원), 온라인(18만 원) ※ 대면 현장 강의는 선착순 30명

●접수방법: 이메일(QIQFIV$O]SWY.RIX) 대학별 일괄 접수

●문 의 처: 기획실 하영 실장(02-3142-4142)

저자가 말하다_『데이비드 차머스』 한우진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157쪽

과학, 인간의 의식을 설명할 수 있을까

한우진

덕성여대 철학전공 교수

의식은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신경과학과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 과학은 의식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데이비드 차머스 미국 뉴욕대 교수(철학·신경과학)가 의식을 설명하는 문제를 ‘어려운 문제’라고 규정한 지도 30년이 지났다. 그동안 의식의 과학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을까.

과학은 지극히 주관적인 의식을 오랫동안 외면해 왔다. 본격적인 의식 과학이 시작한 1990년대, 막 박사학위를 받은 차머스는 의식의 주관적이고 질적인 측면을 과학으로 설명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어려운 문제라고 주장함으로써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어려운 문제’부터 확장된 마음·가상현실까지 의식의 주관성은 객관적인 관찰이 가능할까

이어서 그는 저서 『의식적인 마음』에서 우리와 생리학적‧행동적‧기능적으로 완전히 동일하지만 질적인 느낌만을 결여한 철학적 좀비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의식은 물리 세계로부터 독립적인 존재임을 역설했다. 그의 주장은 데카르트의 이원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의식의 과학과 철학이 탐구할 핵심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규정함으로써 차머스는 대표적인 의식 연구자로 발돋움했다. 지난 30년 동안 차머스는 의식에 관한 다양한 논의를 선도해 왔으며, 앤디 클라크 영국 서식스대 교수(인지철학)와 함께 두뇌 밖 디바이스에 담긴 정보가 우리 마음을 구성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확장된 마음’을 제안했다.

최근 차머스는 저서 『리얼리티+』에서 가상현실도 실재의 일부라고 주장하며 시뮬레이션과 메타버스에 관한 풍성한 철학적 논의 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의식은 물리적 사실 이상의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물리주의자는 차머스에 대응해 의식 과학을 뒷받침해 왔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주장은 존재론적 물리주의가 철학

적 좀비에 관한 이원론적 직관과 양립 가능하다는 것이다. 의식의 주관성은 객관적인 관찰에 의해 완전히 설명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는 개념 또는 인식 차원의 문제이며, 의식이 곧 신경 과정이라는 존재론적 동일성이 부인되는 것은 아니다.

차머스의 『의식적인 마음』을 읽으며 심리철학을 시작한 필자는 물리주의 관점에서 좀비 논증을 효과적으로 비판하고자 노력해 왔다. 아직 차머스를 확실히 극복한 제안은 없지만, 그의 논증에 대응하면서 철학은 마음에 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하고 개념을 정교하게 다듬어 왔다.

이 책은 차머스의 주요 주장과 논증을 의식에 관한 여러 논의와 함께 해설하며 물리주의자인 필자의 비판적 관점을 제시한다. 독자는 신경과학과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의 첨단 과학기술이 철학과 만나는 지점에 관한 차머스의 견해를 비판적 관점과 함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자도 차머스의 어려운 문제에 도전

해 왔다. 1998년, 대표적인 의식 과학자 크리스토퍼 코흐 전 캘리포니아공대 교수는 25년 후에는 과학이 의식의 신경 기반을 밝혀낼 것으로 전망하며 이에 관한 내기를 차머스에게 제안했다. 최근 코흐와 차머스를 포함해 많은 의식 과학자가 참여한 대형 컨소시엄은 대표 이론인 ‘전역신경작업공간이론(GNWT)’과 ‘정보통합이론(IIT)’에 관한 전면적인 검증을 시도했다. 지난해 나온 실험 결과는 전반적으로 정보통합이론을 지지하는 것 같았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코흐는 차머스에게 자신이 내기에서 졌음을 인정하며 다시 25년 후를 기약했다.

의식 철학은 의식 과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의식은 철학사에서 꾸준히 중요한 주제로 논의됐으나, 철학자의 관심이 폭발한 계기는 1990년대 초반, 의식 과학의 태동이었다. 당시에 비하면 현재는 다소 소강상태인 듯하다. 필자는 코흐와 차머스가 다음 내기를 기약했던 21세기 중반까지 의식 과학이 도약을 이루면 철학의 개념 작업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기대를 이 책에 담았다.

책으로 책 너머를 읽다_『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마르크 로제 지음 | 문학동네 | 316쪽

“모든 사람은 한 권의 살아있는 책”

읽어주는 이 없으면 고독해진다

김흥현

한국성서학연구소 연구원

살아 있는 책 읽는다는 것

견실한 작은 정의의 실현

“저의 히어로, 그건 나무예요.”(305쪽) 스무 살 청년 그레구아르가 말했다. 책으로 평생지락을 삼은 노인, 피키에가 죽음의 강을 막 건넌 즈음이었다.

수레국화 요양원 28호실. 며칠 전 피키에는 자기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는 나무를 좋아하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청년, 그레구아르에게 유언처럼 한 가지 일을 부탁했다. 자신이 흠모하는 여인상(象)을 찾아가 그 앞에서 책을 읽어달라는 것이었다(222쪽).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진 자신도 살아서 함께 걸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년은 그 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책방 할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길을 걸었다. 열흘이 걸렸다. 낭독을 마쳤다. 책 읽기를 마친 청년은 그 책을 불꽃 위에 던졌다. 책은 사라졌다. 그날 노인도 운명했다. 책이 사라진 불꽃 속엔 스페인어 시어만 선명하게 남겨졌다. “나는 너와 함께 하고 싶다. 봄이 벚나무들과 함께하는 것처럼 그날 청년은 나무만 사랑하는 사람에서 책의 사람으로 갱생했다.”(Quiero hacer contigo, lo que la primavera hace con los cerezos,)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한 권의 책이 희망을 만들 수 있다.

책이 주는 궁극적 희망은 완전한 타인으로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자기 밖의 타인들과 동행함으로써 공동의 희망을 견인한다.”

마르크 로제(Marc Roger, 1958~). 프랑스의 저명한 대중 낭독가이며 여행 글쓰기 작가다. 줄곧 책 읽어주는 일을 해 왔다. 그러던 그가 나이 예순에 이 책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Grégoire et le vieux libraire, 2019)를 출간했다. 그의 첫 번째 소설이다.

이 책의 서술 특징을 몇 가지 들 수 있다. 첫째, 단순한 구성이다. 하나의 큰 이야기를 마흔다섯개의 작은 단락으로 이어붙이듯 배열했다. 각 장은 앞 이야기를 징검다리 삼아 다음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낭독하기에도 좋다. 번역 문장이 매끄러운 것도 이 유연한 읽기에 한몫한다.

둘째, 다의어(多義語)의 활용이다. 다의어란 하나의 단어가 두 개 이상의 새로운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를 말한다. 이 책에서는, ‘막(liber)’에 대한 서술이 그렇다. ‘막’은 나무 살과 껍질 사이에 여리게 존재함으로써 나무를 건장하게 한다. 또한,

프랑스의 저명한 대중 낭독가이며 여행 글쓰기 작가인 마르크 로제가 낭독 행위를 펼치고 있다. 사진=페이스북(La Voie des Livres)

이 ‘막’이라는 단어는 ‘책(liber)’을 의미하기도 한다. “라틴어 liber는 나무와 껍질 사이에 있는 얇은 막이라는 뜻도 있고... 책이라는 뜻도 있대요.”(305쪽) 이처럼 ‘막’과 ‘책’을 연관 지어 저자는 줄곧 나무를 좋아하는 청년과 평생 책을 사랑하며 살았던 노인의 관계를 살갑게 이어준다.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막’은 삶을 구분 짓는 가림막이 아니다. 오히려 삶을 견실하게 이어주는 이음줄이다. 다른 면에서 이런 다의어의 활용은 마치 예술비평처럼 현상을 세밀하게 관찰해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에크프라시스(ekphrasis)’ 기법을 연상시킨다.

세 번째 서술 특징은 이야기 주체의 변화를 들수 있다. 소설 대부분에서 이야기를 주도하는 인물

은 책방 할아버지이다. 그런데 이야기의 끝으로 갈수록 실질적인 주도자는 청년으로 나타난다. 이 청년이 노인의 삶을 마지막까지 견인한다. 이처럼 이야기 주체의 전환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독자는 서로 이질적인 삶을 살았던 두 사람이 책을 통해 죽음의 슬픔과 삶의 기쁨 또는 아픔을 공유하면서 같은 시선으로 동행한다는 것을 그림처럼 떠올릴 수 있다. 이런 상상력은 마침내 청년과 노인이 함께 걷는 그 서로(書路)가 어느새 독자의 앞에도 시나브로 떠오른다는 사실에서 더욱 빛난다.

이 점이 바로 이 책의 핵심 논지와 연동한다. 저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한 권의 책이 희망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책은 영원한 삶이자,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을 만한 삶의 목표였다(Vita aeterna, Pauca meæ).” 특히 “책은 자신이라는 타자에게로 가는 길이다.”(53쪽) 그리고 “한 그루 나무 아래 함께 머무는 것이다.”(302쪽)라는 문장을

주목해야 한다.

저자에 의하면 책이 주는 궁극적 희망은 완전한 타인으로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자기 밖의 타인들과 동행함으로써 공동의 희망을 견인한다. 이처럼 저자가 간파한 ‘책의 희망’은 자아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며, 새로운 피조물로서 자신을 이해하고 동시에 타인의 삶을 그대로 읽어주는 태도와 긴밀하다.

이런 논지는 이 책의 장르와도 연관된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성장소설(Bildungsroman)이다. 타인을 통한 한 사람의 성장을 다룬다. 노인을 통한 청년의 내적 성장이면서 동시에 청년을 통한 노인의 완숙한 삶의 마무리에 이르는 과정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청년은 나무만 좋아하던 삶을 넘어서 나무가 만들어 낸 ‘책’의 세계로 새롭게 눈을 뜬다. 눈이 열리면 세계는 어제와 달라진다. 청년은 그 열린 눈으로 노인의 삶을 뒤따른다. 외롭게 홀로 자기 마지막 생애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역할을 멋지게 수행한다. 그렇게 자신의 길을 걸으며 노인의 삶을 ‘함께’ 걸어주며 성장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우리는 문학의 사회적 책임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다. 우선 모든 사람은 스스로 한 권의 살아있는 책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그 책은 읽어주는 이가 꼭 필요하다. 읽어주는 이가 없는 책은 고독해진다.

이 책의 주장에 근거한다면, ‘혼자의 삶’을 견실하게 버텨주는 힘은 바로 ‘혼자’가 만들어낸 그 ‘살아있는 책’(vivus libri)’을 ‘함께’ 읽어주는 일이다. 이는 책을 매개로 ‘홀로’ 그리고 ‘함께’하는 공동체성(共同體性)이라 할 수 있다. 이 공동체성은 한 사람이 자기 삶으로 축적한 그 ‘산. 책’을 함께 산책하는 것으로 발현한다. 이 산책은 서로 도반(道伴, 길 친구)이 되는 데까지 이른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이라는 책으로 이어진 도반들은 이 비틀거리는 세계에서 여릿하고 사소한 체데크(히브리어로 ‘정의’라는 뜻)를 가장 견실하게 실현하는 조용한 저항자로 서로를 격려한다.

신간소개

톨스토이 평화론

이문영 지음 | 미래의창 | 280쪽

현재 톨스토이는 러우전쟁 지지자와 반대자 양편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푸틴과 그의 지지자는 톨스토이를 앞세워 전쟁의 권위를 세우려 하고, 비판자는 톨스토이를 내세워 전쟁의 정당성

을 허문다. 『전쟁과 평화』가 침략자의 최애 소설인 동시에 반전(反戰)의 확고부동한 기호로 함께 쓰인다. 전쟁 지지와 반대로 갈라진 톨스토이의 후손들은 저마다 ‘톨스토이의 유산’을 근거로 내민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비밀은 ‘두 톨스토이’에 있다. 이 책은 우리가 몰랐던 톨스토이를 다룬다.

하나의 행성, 서로 다른 세계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지음 | 이신철 옮김 | 에코리브르 | 208쪽

『역사의 기후: 네 가지 테제』를 발표한 저자는 그 후 2017년 3월, 브랜다이스대에서 만델 인문학 강연 강단에 섰다. 강연 내용 가운데 일부는 그의 저서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로 열매 맺었고, 다른 일부는 지금 이 책으로 통합됐다.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는 기후 변화와 인류세 문제를 역사 연구와 결합함으로써 인류의 역사가 우리 행성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해명한다.

화산도 소설어 사전

화산도 소설어 사전 편찬팀 편집 | 보고사 | 472쪽

이 사전은 『화산도』 12권에서 시대·인물·지명·풍속의 항목을 선정하고, 역사·시대에 준하는 용어와 대부분의 등장인물·지명과 장소·제주의 풍속 등의 소설어(표제어) 645개를 가려 뽑았다. 이 사전은

소설어를 중심으로 화산도를 새로이 읽게 하고, 각 항목의 소설어가 쓰인 용례와 상세한 풀이는 『화산도』를 한층 더 넓고 깊게 이해시킨다. 여기에 항목별로 엄선한 자료(4·3사건 연표·인물 관계도·지도)는 소설의 이해를 더하고 관련 지식을 확장시킨다.

돌봄의 사회학

우에노 지즈코 지음 | 조승미 외 2인 옮김 | 오월의봄 | 944쪽

한국은 2017년 고령사회(고령자 인구비가 전체 인구의 14% 이상인 사회)에 돌입했다. 빠르든 늦든 누구나 나이가 들고, 이는 아무도 통제할 수 없다. 즉 언젠가는

모두가 사회적 약자가 된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비는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가? 이 때문에 1994년 한국보다 먼저 고령사회를 경험한 일본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험철학 : 비판적 연구

니킬 무커지 지음 | 한상기 옮김 | 서광사 | 408쪽

이 책은 2016년 독일어판 『실험철학 입문』으로 출판돼 많은 호평을 받은 바 있는데, 영어판을 출판했으면 좋겠다는 주변 동료들의 권유를 받고 독일어판을 수정 보완해서 영어판으로 내놓게 된 책이

다. 실험철학(experimental philosophy)은 21세기 벽두에 태동해 약 20여 년 이상 숱한 토론과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진행돼 온 새로운 철학 운동이다. 이 운동은 그 동안 철학, 특히 현대 분석철학에서 사용돼 온 표준 방법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실험'이라는 과학의 경험적 방법론을 내세운다.

비러브드 이코노미

제스 리밍턴·조안나 레빗 세아 지음 | 정민용 옮김 | 에쏘프레스 | 424쪽

저자들은 기존의 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한 조직과 기업들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업무가 무엇인지에 대한 상상력을 확장하는 비전을 제시한

다. 이들 그룹의 공통점은 품질과 재정적 성공과 같은 전통적인 지표와 함께 웰빙·의미·연결·회복탄력성을 대담하게 우선시하는 성공의 형태를 창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연구는 2015년 시작됐다.

폭염 살인

제프 구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508쪽

바야흐로 대폭염 시대, 해마다 ‘역대급더위’를 경신하는 가운데 지구는 점점 더 빠르고 더 뜨거운 멸종을 향해가고 있다. 전력난과 물가 폭등, 슈퍼 산불과 전염병까지 폭염은 우리 삶을 전방위로 압박할

것이며, 그 끝에는 죽음 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전 지구를 가로지르며 참혹한 기후 재앙의 현장을 전해온 최전선의 기후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극한 더위가 인간의 신체와 일상·정치·경제·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철저하게 파헤친 기후 재난 탐사서다.

골동품 진열실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 이동렬 옮김 | 을유문화사 | 276쪽

프랑스의 대문호이자 90여 편에 이르는 장편 소설로 '인간극'이라는 거대한 세계를 구축했던 저자는 다채로운 그의 작품만큼이나 입체적인 면모를 지닌 작가였다. 1842년 '인간극'의 서문에서 “종교와 군주

제라는 영원한 두 진리의 빛으로 글을 쓴다”라고 표방할 만큼 보수적인 색채를 보였던 그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그는 가장 진보적인 작품을 집필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빅토르 위고는 발자크 문학의 혁명적 성격을 부각했다.

저자가 말하다_『멱라강에 던져 보낸 시 한 편: 노년의 눈으로 다시 읽는 당시』 김근 지음 | 삼인 | 420쪽

피난길 가을 풍경, 고깃배 등불과 짝 이뤄 시름 달래다

김근

전 서강대 중국문화 전공 교수

필자는 문학을 전공하러 대학에 진학했으면서도 정작 대학원에서는 언어학(중국) 전공을 선택했다. 문학이 언어의 예술이라는 사실에서 문학을 심도 있게 이해하려면 먼저 언어를 알아야겠다는 심산에서였다.

현직 시절에는 중국 고전 시를 강의하였는데, 당시 자주 느꼈던 것이 같은 시가 가르칠 때마다 느낌이 다르고 생성되는 의미에도 조금씩의 변화가 감지되는 현상이었다. 텍스트는 그대로인데 다른 의미로 읽혔다면 당연히 읽는 주체에 변화가 생겼음을 뜻한다. 공부가 좀 더 추가됐을 수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주체의 환경에 생긴 변화도 영향이 있었으리라.

강의하면서 축적된 지식을 책으로 내볼까 수시로 생각해왔어도 쉽사리 손을 대지 못했던 데에는 이렇게 자꾸 바뀌는 인식의 속성 때문이었다. 마치 왕지환(王之渙)이 「등관작루(登

鸛雀樓)」에서 “천 리 밖의 끝을 다 보겠다는 마음에 / 다시 더 한 층을 올라가네.”(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라고 읊었던 것처럼 나이를 한 살이라도 더 먹으면 먹는 만큼 완벽해지겠지 하는 기대였으리라. 그러나 공자가 자하에게 “이제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始可與言詩已矣)라고 인정했듯이, 완벽하지는 않아도 어느 수준에 이르면 시를 말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고전 시는 『시경』 이래로 많은 훌륭한 시들이 축적돼 오면서 우리 문학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한시 하면 당시를 떠올린다. 필자의 좁은 생각으로는 육조(六朝) 시가 밀도 면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지만, 너무 어려워서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비해 당시는 규격화된 형식에 거의 일상어로 읊었기에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 송시는 대중화로 너무 나간 나머지 오히려 시적 품위를 잃게 된 아쉬움이 있었고.

그렇다면 노년의 눈으로 읽는 당시는 어떠한가? 노년이 되면 생리적 한계 때문에 젊은이처럼 대상에서 많은 정보를 읽지 못한다. 그래서 겉에 드러난 현상적인 것보다 그 안에 숨겨진 핵심을 보려 하고 또 그게 잘 보

규격화된 형식 따라 일상어로 읊어 대중에게 전달

노인이 돼서야 비로소 공감되는 옛날 시인의 생각

인다. 핵심이란 곧 보편성을 말하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나에게도 당

장 일어나는 일이 된다. 천몇백 년 전의 시인과 공감이 되는 이유다.

이를테면, 최호(崔顥)의 「황학루(黃鶴樓)」가 왜 명시인지는 『논어』의 “사람에게 장래에 대한 심려가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곳의 근심거리가 생긴다”(人無遠慮, 必有近憂)라는 말과 연계될 때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신화 같은 거대 담론이 사라진 곳에 자잘한 감성의 문제가 대두된 오늘날의 상황이 여기서 감지되기 때문이다. 또한 잠삼(岑參)의 「봉입경사(逢入京使)」에서 작전 중에 만난 장안 가는 전령에게 지필이 없어서 “나 잘 있다고 꼭 전해달라 신신당부하네”(憑君傳語報平安)라는 마지막 구절이 평범한 듯 보이지만, 우리가요 「향기 품은 군사우편」의 가사를 대비해 읽으면 이게 왜 경구인지를 알게 된다.

나이 들어서야 이해된 부분도 있다. 필자

가 과문하여 장계의 「풍교야박(楓橋夜泊)」의 “江楓漁火對愁眠”(강풍어화대수면)을 속 시원히 풀어준 분석을 찾지 못하였는데, 어느 날 문득 ‘對’자에서 눈길을 집중하였더니 ‘江楓’과 ‘漁火’의 짝이 ‘愁’와 ‘眠’의 짝과 딱 들어 맞았다. 즉 피난길에 낮에 본 이국적인 가을 풍경이 시름과 함께 잠을 못 이루게 하였지만, 밤고기잡이배의 등불은 몽롱하게 잠으로 끌어들여 잠들 듯 말 듯 한 처지를 시인은 대립적 구도로 표현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강변 단풍과 고깃배 등불이 시름 반 잠 반으로 짝을 이루어주네”라고 해석할 수 있었다.

권혜경이 부른 「산장의 여인」의 가사가 핍진하게 다가오는 고독한 노년의 삶에서 두보가 귀양 가는 이백에게 “시 한 편 던져서 멱라강으로 보내시구려”(投詩贈汨羅)라고 한 구절은 필자에게도 큰 위안이 된다. 라캉의 말대로 모든 편지는 수신자에게 도달한다니까 나 역시 편지 쓰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써보았다.

저자가 말하다_『어휘의 길 어원의 힘』 김성현 지음 | 세창출판사 | 320쪽

삽살개와 주름살, 어떤 공통점이 있나

김성현

서울과학기술대 강사·영어영문학

언어는 살아있다. 언어는 변화하고 진화하며 점점 더 많은 의미를 축적한다. 한국어에는 수많은 외국어가 섞여 있다. 한자어는 한국어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은 일본어 어휘가 한국어처럼 사용됐다.

해방 이후엔 서양문물이 들불처럼 번져나갔고 특히 영어는 한국인의 일상과 일상 어휘로 깊이 파고들었다. 지금 유럽은 물론 다양한 나라의 언어들이 유행과 패션, 음식과 IT 문화를 타고 들어와 한국어의 어휘처럼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NFT, 갤럭시, 안드로이드, 시리얼, 노매드, 글래머 등등. 해외에서 유입된 어휘는 점점 더 늘어난다.

이 책은 점점 더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영어권 어휘들에 대해 그러한 단어들 간의 어원적 관계와 그 의미의 깊은 연관관계를 살펴보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다양한 영어 단어들 중에서 어원적으로, 의미적으로 의외의 관계가 있을 것으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단어 사이 관계의 비밀 찾기

말의 뿌리로 연결돼 있는 단어와 의미 구조의 변화

로 추정되는 단어들을 어원적으로 추적해 본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운동화 브랜드 이름인 ‘나이키’와 크리스마스면 생각나는 ‘산타클로스’, 인공지능 시대의 ‘안드로이드’와 노래하며 춤추는 ‘아이돌’, ‘비타민’과 ‘비아그라’ 등은 모두 어원적으로 관계가 있고, 당연히 의미적으로도 연관돼 있는 단어들이다.

예를 들어, 영화는 영어로 movie라고도 하고 cinema라고도 한다. 이 두 단어는 단순한 동의어일까? movie는 움직이다는 뜻의 동사 move에서 파생됐다. 시네마는 키네틱(kinetic)이라는 그리스어에서 왔다. 역시 움직인다는 뜻을 갖고 있다. 영화를 의미하는 단어 movie와 cinema는 모두 움직이는 이미지라는 핵심적인 의미를 공유한다. kine-라는 단어는 움직임을 의미하는 접두어로 사용된다. 감각을 의미하는 aesthetic과 결합하면 운동감각과 관련된 의미가 된다. 운동감각이라는 명사 형태는 kinesthesia라고 한다. 이로써 영화를 의미하는 movie와 cinema는 영화라는 시각 장르의 핵심적인 특징, 곧 움

직임이라는 어원적 의미로 관계돼 있음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외견상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만 같은 단어들이지만, 어원을 파고들어갈 때, 비로소 단어 사이에 숨겨진 관계의 비밀이 나타난다. 서로 다른 두 단어를 어원을 매개로 연결 짓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비밀을 이해하게 될 때 통섭과 인문의 풍경이 나타나게 되고, 이를 통해 단어에 누적된 의미의 지층을 살펴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단어에 투영된 의미에 대해 사유와 성찰을 넓힐 수 있는 것이다.

어원을 추적하는 것은 단어에 수백 년 동안 쌓인 의미의 결을 고스란히 볼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어휘의 의미가 변화하는 것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문화적 맥락까지도 살필 수 있다. 단어의 의미를 어원적으로 추적하며 사회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영어권 어휘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언어든 한 단어의 어원을 추적하는 것은 마치 아주 짧은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은 스릴과 반전이 있다. 일견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던 단어들이 어

원, 즉 말의 뿌리를 매개로 서로 연결돼 있음을 확인할 때, 인간이 인식하는 의미의 구조가 어떻게 발전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추리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서 삽살개와 주름살은 별 관계가 없는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두 단어 모두 ‘살’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여기서 ‘살’은 두 단어를 이어주는 공통적인 요소다. 흔히 역마살, 도화살이라고 할 때의 그 ‘살(殺)’을 말하는데, 이것은 일종의 나쁜 기운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오해되고 있는 것처럼 사람의 피부로서의 ‘살[flesh]’이 아니다. 삽살개는 바로 이러한 나쁜 기운인 ‘살’을 쫓아내는 개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과거 양반이나 사대부들이 주로 길렀던 것은 그 이유가 분명해 보인다.

어원의 관계를 살피는 것은 단순히 비슷한 단어끼리의 관계를 연결 짓는 작업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의 인문학적 사유는 가장 기본적인 언어에 대한 성찰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어원을 추적하고 단어 사이의 관계를 연결 짓는 인문학적 상상력의 힘은 개념과 개념을 연결하는 힘이 될 수도 있고, 또 사유와 사유를 연결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단어와 어원으로 시작된 인문학적 상상력의 날개는 훨씬 더 넓게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화제의 책_

『진실과 거짓의 과학사』 최성우 지음 | 지노 | 244쪽

‘사이비과학’은 영원히 반복될까

측우기를 발명한 사람은 누굴까? 흔히 조선의 과학기술자 장영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틀렸다. “측우기를 발명한 사람은 장영실이 아니라 세종의 장남 문종이다.” 최근 출간된 『진실과 거짓의 과학사』에는 이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저자는 국내 대표적 과학평론가인

최성우 씨다. 그는 “문종이 세자 시절에 그릇 등 빗물을 받아 양을 재는 방식으로 강우량을 정확히 측정하는 방법을 연구하여 세종 23년(1441)에 발명했다고 『세종실록』에 명시되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책의 부제가 흥미롭다.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과학적 대화를 위하여’다. “과학의 역사가 시작된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21세기 첨단과학 기술의 시대까지, 그리고 과학혁명이 이루어진 근대 서유럽이든 오늘날 우리나라든 의외의 공통된 부분이나 반복되는 패턴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사를 통해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의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

갈릴레이의 피사의 사탑 실험은 어떨까? 갈릴레이는 과학사에서 △지동설 주장 △진자의 원리 발견 △목성의 위성 발견 등의 업적을 남긴 위대한 과학자이다. 특히 갈릴레이는 ‘무거운 물체일수록 빨리 떨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 후 중세의 역학 이론이 잘못된 것임을 밝혀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그 당시에도 기울어져 있던 피사의 사탑에서 실제로 갈릴레이가 실험한 것일까? 『진실과 거짓의 과학사』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스승의 과업을 칭송하기 위해 제자였던 비비아니가 미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갈릴레이 하면 떠오르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법정에서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철학자였던 버트란드 러셀은 “법정에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중얼거린 것은 갈릴레이가 아니라 이 세계이다”라고 말했다.

증기 기관과 제임스 와트는 어떤가? 그는 최초로 증기 기관을 발명한 사람이 아니지만, 증기 기관의대명사처럼 여겨진다. 왜냐하면 최초로 특허를 얻었기 때문이다. 훨씬 전부터 영국의 발명가인 토머스 뉴커먼의 이름을 딴 뉴커먼식 증기기관이 사용되고 있었다. 세계 최초의 증기 기관은 2000년 전의 그리스 알렉산드리아 시대의 발명가인 헤론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헤론은 증기 기관의 원조격인 증기구를 개발했다.

『진실과 거짓의 과학사』의 백미는 3부 ‘반복되는 조작과 사기, 사이비과학’이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황우석 사태’부터 최근 터졌던 ‘상온초전도체 소동’까지 과학사를 검게 물들인 사건들이 등장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아리안 샤비시 지음 | 이세진 옮김 | 교양인 | 412쪽

기득권 세력은 편견과 혐오를 조장하고 분열을 유도함으로써 저항 세력을 무력화하려 한다. 이 책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문화 전쟁’의 최전선에서 철학적 분석과 논리적 반박이 어떻게 진실을 꿰뚫어

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이야기하는 차갑고도 뜨거운 목소리다. 저자는 ‘비판적 탐구’라는 철학의 정신에 입각해 성차별·인종차별·정치적 올바름(PC)·도그휘슬(dog whistle)·구조적 불평등을 비롯한 오늘날 가장 첨예하게 충돌하는 정치적 주제들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인공 인간

수잔 슈나이더 지음 | 이해윤·김성묵 옮김 | 한울아카데미 | 256쪽

새로운 기술의 과학이 마음·자아·인간에 대한 우리의 철학적 이해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해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 그에 반해 철학은 의식이 있는 로봇이 존재할 수 있는

지, 마이크로칩으로 뇌의 대부분을 다시 이식해도 여전히 나라고 확신할 수 있는지 등 새로운 기술이 이룰 수 있는 것에 대한 우리의 판단력을 날카롭게 해준다. 그러나 우리가 개발하는 인공지능이 의식을 갖는지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2024 제7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장민 외 4인 지음 | 허블 | 436쪽

『듄』, 『삼체』 같은 SF 블록버스터 스토리는 어떻게 탄생할까? 역설적이게도, 이처럼 천문학적 제작비가 드는 초대형 세계관은 영상화를 염두에 두지 않는 상상 속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빛이 있으라” 이 한 마

디만으로도 빛을 만들 수 있는, 종이와 펜 말고는 제작비가 전혀 들지 않는 텍스트 속 상상. 한국과학문학상은 2016년 제정된 이래, 텍스트 속 상상을 활용해 동시대의 감수성과 고민을 자신만의 세계로 구현해 내는 작가들과 함께해 왔다. 우리의 공포와 불안에 기반해 다양한 소재와 세계관을 등장시켰다.

케임브리지 카프카 입문

캐롤린 두틀링어 지음 | 이하늘 옮김 | 그린비 | 320쪽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작가 중 한 명이자,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명성을 지닌 프란츠 카프카(1883~1924). 권력·처벌 그리고 소외와 같은 주제들이 대두되는 그의 음울하면서

도 흥미진진한 소설과 이야기들은 현대적 삶의 상징이 됐다. 이 책은 카프카의 삶과 작품 그리고 문학적 영향에 대한 명확하고도 이해하기 쉬운 설명을 제시하고, 이를 둘러싼 기존의 무수한 신화를 뒤집는다.

백년해로외전

박민정 지음 | 문학동네 | 316쪽

장면을 머릿속에 그대로 이식시키는 듯한 풍부하고 빈틈없는 묘사, 스테레오타입에서 훌쩍 벗어난 개성 강한 인물, 우리 사회 내부에 감추어진 치명적인 틈을 드러내는 날카로운 문제의식. 젊은작가상 대상·

문지문학상·현대문학상·이상문학상 우수상 등 빛나는 수상 이력을 쌓으며 탄탄한 소설세계를 가꿔온 저자가 『미스 플라이트』(민음사, 2018)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두번째 장편소설 『백년해로외전』은 그 이력만큼이나 단단하고 선명하게 다가온다.

아시아 500년 해양사

에릭 탈리아코초 지음 |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656쪽

한국과 일본에서부터 동남아시아와 인도를 거쳐 중동과 동아프리카에 이르는 아시아의 광활한 바다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항로가 됐다. 아시아 해양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그동

안 태평양과 대서양에 집중됐던 해양사 연구의 시야를 확장해 아시아 바다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미래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 각지에 머물며 연구 활동을 해온 저자는 15세기 부터 오늘날까지의 역사를 탐구한다.

순수와 자유의 브로맨스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80쪽

한 시대를 불꽃처럼 살아간 거인들에겐 어떤 친구가 있었을까, 그들에게 우정은 어떤 의미였을까? 역사를 빛낸 인물과 그들을 사로잡았던 우정을 발굴해 인간 정신의 깊이를 탐구하는 격조 높은 브로맨스

시리즈의 두 번째 주인공은 판타지 문학의 거장 J.R.R. 톨킨과 C.S. 루이스이다. 이 책은 톨킨과 루이스의 개인적 성장·우정, 그리고 문학적 업적을 심도 있게 탐구한 것으로 두 작가의 삶과 작품을 통해 그들의 우정이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철학적·정치적 메시지와 우정의 융합을 분석했다.

조선의 승과 연구

정각 지음 | 불광출판사 | 432쪽

‘승과(僧科)’란 승려들의 과거시험을 일컫는다. 이를 통해 나라에서는 특정 승려를 선출, 그들에게 승직(僧職)을 부여했는데, 이러한 전통은 삼국시대 이래 고려, 그리고 조선에 이르는 기나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다만 조선시대 승과는 1564년 이래 폐지되면서, 명종 대승과가 진행됐던 서울 봉은사의 승과평(僧科坪)은 현재 코엑스 구석의 표석으로만 남아 있고, 남양주 봉선사의 승과원(僧科院)은 채마밭으로 변해버렸다.

한국학 개척하는 ‘디지털 역사학’ 연구자들

디지털 역사학의 물결 ❻

디지털 역사학의 성과4 국내

우동현

카이스트 디지털인문

사회과학부 조교수

연재 순서

① 디지털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② 디지털 역사학의 역사

③ 디지털 역사학의 성과 1 미국

④ 디지털 역사학의 성과 2 유럽

⑤ 디지털 역사학의 성과 3 동아시아

⑥ 디지털 역사학의 성과 4 국내

⑦ 디지털 인문학의 최대 난제와 돌파구

⑧ 디지털 역사학의 가능성과 전망

2024년 현재 한국은 세계 디지털 인문학(DH)풍경에서 대단히 활발하게 활동하는 국가이다. 또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디지털 역사학(DHis)은 한국학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관련해 국내 DHis의 역사와 성과를 간략하게 살핀다.

앞선 연재에서 다뤘듯, DH와 DHis는 1960년대 미국에서 이미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직 개인 컴퓨터가 나오기 전이었지만, 구조화될 수 있는 다양한 정보가 산재해 있었고 많은 연구자가 기계의 도움을 받아 과거를 분석하는 일에 희망을 걸었다.

조선시대 엘리트 DB화 ‘와그너-송 프로젝트’

해방 직후 한국에서 미군정 관리로 근무한 에드워드 와그너는 1959년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곧바로 모교에 부임했다. 장차 35년 넘게 북미 한국학을 이끌 그가 추구한 사업의 방향 중 하나는 사료(史料)의 DB화였다. 1967년, 전북대 송준호 교수와 함께 조선시대 과거(문과) 급제자 명단인 방목(榜目)을 전산화하는 이른바 문과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와그너-송 프로젝트’라고도 불리는 이 작업은 조선시대 엘리트 빅데이터를 전산화하고 활용하려고 했던 연구였다. 두 연구자는 조선이 개국한 1392년부터 과거제가 폐지된 1894년까지 748회 열린 시험에 붙은 급제자 1

1967년 ‘문과 프로젝트’ 출범 이후 15년이 넘도록 별다른 성과가 나오지 못한 이유와 맥락을 되새겨 보면 의미 있는 DHis 작업물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자원이 많이 소요되는지 알 수 있다.

만4천607명과 생원·진사시 급제자 4만649명을 대상으로 개인별 신상 카드를 작성했고, 족보와 문집, 실록, 읍지 등을 활용해 확인 작업을 거쳤다.

실로 엄청난 노력과 방대한 자원이 투입되었으나 이 프로젝트는 아직 미완성이다. 한자 데이터를 컴퓨터가 읽을 수 있게 코드화하는 작업에만 4년, 4만 달러(현재 약 30만 달러)가 소요되었다. 하지만 이 작업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정확한 데이터 세트를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조사작업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은 오늘날 DHis 작업에도 적용된다.

1990년대 이후 대한민국 DH의 전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김현 교수는 명실상부 한국 DH의 선구자이다. 고려대에서 조선시대 성리학 연구로 박사학위(1992)를 받은 그는 조선왕조실록 CD-ROM을 간행한 회사의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개발자로 활약하며 한국 DH의 기반 시설 구축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의 정리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1997년도 금융 위기 이후 디지털 콘텐츠 확충 사업을 벌였다. 그중 하나인 ‘공공정보화 근로사업’은 1998년부터 2년간 약 3천억 원을 투입해 7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했고 약 190개의 대규모 DB를 구축했다.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으로 개편된 후속 사업은 2000년부터 9년간 약 3천 400억 원을 투입해 1억 3천만 건 이상의 자료를 전산화했다.

2002년 인문콘텐츠학회가 창립됐고, 이 학회는 2014년 디지털 인문학 포럼을 개최했다. 비슷한 시기 한국연구재단은 처음으로 DH 사업 공고를 냈다. 2015년 한국디지털인문학협

최동혁 박사의 박사학위논문 일부를 담은 인터넷 발표 자료. 오른쪽은 최동혁 박사의 박사학위논문 일부를 담은 인터넷 발표 자료. 계유정난 전후 단종과 수양대군 등 역사 인물의 관계를 3차원 공간에서 시각화한 것이다. 출처: https://dhchoi-lazy.github.io/netsci2023

의회(KADH)가 김현을 회장으로 하여 발족한 뒤, 2023년 박진호 교수를 회장으로 하는 2기 출범 전까지 국내 DH 논의를 주도했다. 2023년 KADH는 세계 DH 단체연합(ADHO)의 공식 회원으로 승인되었다.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맹활약하는 국내 DH 연구자로는 김바로 교수, 김병준 교수, 류인태 교수 등이 있다. DHis 분야에서는 허수 교수, 이상국 교수 등이 활약하고 있다. 문과 프로젝트 출범 이후 15년이 넘도록 별다른 성과가 나오지 못한 이유와 맥락을 되새겨 보면 의미 있는 DHis 작업물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자원이 많이 소요되는지 알 수 있다.

국내 ‘디지털 역사학’ 이끄는 연구자들

필자는 2023년 여름부터 한국역사연구회 디지털역사학연구반(디역반)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디역반은 디지털 기술과 사료를 접목해 새로운 지식 창출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의 느슨하지만 견결한 모임을 지향하고, 2024년 6월 현재 반원 수는 70여 명에 달한다. 중국사 연구에 네트워크 분석을 선구적으로 적용한 조원희 교수, 조선 후기와 일제시기를 넘나들며 ‘죽음’을 주제로 DHis 작업을 진행 중인 정일영 교수 등이 대표적인 디역반 연구자이다.

디역반 연구자 중 국내 DHis의 정착과 심화를 이끌 세 명의 연구자를 소개한다. 먼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을 졸업한 최동혁 박

사이다. 그의 박사학위논문은 앞서 언급한 문과 프로젝트가 다룬 사료에 더해 『조선왕조실록』, 『경국대전』 등 조선사 빅데이터를 대규모로 분석한 세계 최초의 시도이다. 컴퓨터공학과 역사학 양쪽의 고유 지식을 두루 갖춘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DHis 학자로서 앞으로 그가 펼칠 학술이 기대된다.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한 송영화 박사(현재 일본에서 개발자로 근무)의 학술도 기대된다. 그도 역사학과 컴퓨터공학 양쪽의 고유 지식을 두루 갖춘 매우 드문 학자로 박사학위논문에서 20세기 러시아 한인사회의 역사를 다뤘다. 그는 현재 러시아 내전에 개입한 일본군 자료인 『배일선인유력자명부』를 토대로 20세기 러시아 한인사회에 대한 네트워크 분석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 결과는 20세기 한국이민사와 사회주의운동사의 서사를 혁신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서강대 사학과에서 중국의 헌법 제정에 관한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배건준도 있다. 그는 QGIS를 활용해 조선시대 표류인 송환 경로를 복원하는 연구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 중국 간행물 DB를 활용해 수집한 잡지 색인 2만6천여 건에 대한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 제3세력의 독자적 지위를 검토하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가 보여줄 DHis 기반 중국사·중국학 관련 분석도 무척 기대된다.

UCLA에서 과학기술사(북한-소련 관계사)로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국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The Historical Journal』에 한국인 최초로 논문이 게재됐다. 2023년 8월부터 한국역사연구회에서 디지털역사학연구반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연구실 주소는 https://sites.google.com/view/thenlab.

배건준이 제작을 담당한 조선시대 표류인 송환 경로 지도.

아래 사진은 배건준의 최근 논문에 수록된 1940년대 후반 중국 제3세력 잡지 네트워크 시각화 결과물이다.

위쪽은 송영화 박사가 현재 시도 중인 러시아 한인사회에 대한 네트워크 분석의 중간 결과물이다.

아래는 송영화 박사가 박사학위논문에서 사용한 자료 중 하나인 『배일선인유력자명부』.

국가교육위, 5개 특위 신설…94명 위원 위촉

저출생 대응·대학 격차해소·대학경쟁력 강화·AI 교육 등

국가교육위원회(위원장 이배용)가 5개 특별위원회를 신설하고, 94명의 위원을 지난달 27일 위촉했다. 위촉식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국교위는 지난해부터 활동한 5개 특위(대학입시제도 개편, 지방대학 발전, 전인교육, 직업·평생교육, 미래과학인재양성)의 임기가 만료(2023년 4월~2024년 3월)됨에 따라, 지난 4월 12일 열린 제28차 회의에서 신규 특위를 구성하기로 했다.

새로 구성된 특위는 △대전환시대 미래교육의 기본가치와 방향, △저출생 대응 교육개혁, △대학의 격차해소 및 균형발전, △대학경쟁력 강화, △디지털 AI교육 특위다. 현재 운영 중인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교권회복’ 특위(~2024년 9월 18일)를 포함해 총

지난달 2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국가교육위원회 신규 특별위원회 위촉식이 열렸다. 사진=국가교육위원회

6개 특위가 활동할 예정이다.

신설된 5개 특위는 국교위의 심의·의결 전 각 분야별 주요 교육의제에 대해 사전 검토와 자문 역할을 담당한다. 2024년 5월 27일부터 2025년 5월 26일까지 1년간 활동한다.

특히, 대전환시대 미래교육의 기본가치와 방향 특위는 이배용 국교위 위원장이 직접 맡았다.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바탕으로 미래교육의 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저출생 대응 교육개혁 특위는 김태준 상임위원, 대학의 격차해소 및 균형발전 특위

는 정대화 상임위원이 위원장을 맡았다. 대학경쟁력 강화 특위는 김창수 전 중앙대 총장이, 디지털 AI교육 특위는 서울대 데이터 사이언스대학원 초대원장을 맡은 바 있는 차상균 특임교수가 위원장을 맡았다.

이배용 국교위 위원장은 “우리 교육의 중요한 의제로서 깊은 논의가 필요한 분야를 정해 특별위원회를 구성했고, 각 특위마다 높은 전문성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분들이 함께하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교육의 기본가치, 저출생, 대학의 격차해소와 경쟁력 강화, 디지털 AI교육은 우리 사회가 마주한 주요 현안이라는 점에서 이번 특위 발족에 거는 기대가 크며, 각 분야에서 폭넓은 식견을 갖춘 분들이 참여해주시는 만큼 국민 여러분이 공감할 수 있는 교육개혁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활발히 소통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서형탁·김종현 교수, ‘아주대 올해의 우수 연구자’

아주 펠로우·아주 영 펠로우로 선정

아주대(총장 최기주)가 2024년 ‘올해의 우수 연구자’로 서형탁(첨단신소재공학과)·김종현(응용화학생명공학과) 교수를 선정했다. 지난달 29일 연구우수교수 시상식을 열었다. 교수들에게 연구실 명패와 차량 이용권이 부상으로 주어진다.

가장 뛰어난 연구성과를 낸 ‘아주 펠로우’로 선정된 서형탁 교수는 지난 1년 동안 영향력 지수 상위 1% 이내 논문 3편을 포함해 우수 논문 17편을 발표했다. 서 교수는 △에너지 및 디스플레이 소재 △나노 전자 소재 및 소자 등을 연구하며 논문 저술뿐 아니라 산학협력에도 활발히 나서 왔다. 서 교수팀

은 개발한 수소 농도 측정 센서 모듈을 관련 기업에 기술이전, 수소 기술의 국산화에 기여하는 등 기술사업화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내왔다. 지난 2011년부터 아주대 강단에 서온 서 교수는 그동안 총 233편의 논문과 56건의 특허 출원, 25억 원 상당의 기술이전의 성과를 냈다.

부교수 이하 연구자 중 가장 뛰어난 실적을 낸 ‘아주 영 펠로우’로 선정된 김종현 교수는 지난 한 해 동안 영향력 지수 상위 1% 이내 논문 2편을 포함해 우수 논문 13편을 발표했다. 김종현 교수는 △유·무기 광전자 소재 및 소자 △분자 검출 센서 △반도체 패터닝 기술 및 대면적 인쇄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종현, 최기주 총장, 서형탁 교수다.

이번 2024년 아주대 연구우수교수 시상은 △영향력 지수 △피인용 △인문사회 KCI 우수 △국제협력 부문으로 나눠 진행됐다. 영향력 지수 부문 수상자는 총 121명, 피인용 부문 수상자는 총 28명, 인문사회 KCI 우수 부분 수상자는 총 5명, 국제협력 부문 수

상자는 총 5명이다. 수상자들에게는 상장과 상금이 수여됐다.

아주대는 연구의 질적 우수성을 반영하기 위해 인문사회 KCI 우수 부문을 신설하고 새로운 성과 산출 방식을 도입했다. 수상자들에게 수여하는 상금의 전체 규모도 지난해보다 2억7천만 원 늘었다.

최기주 아주대 총장은 “우리 대학 연구진의 헌신과 노력으로,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 기업과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우수 연구성과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며 “대내외의 여러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본연의 역할에 매진하고 있는 연구진을 위해 다양한 지원 방안 마련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승우 기자 editor@kyosu.net

한림대 “AI대학·열린대학으로 미래대학 선도”

‘비전 2040 뉴 한림’ 발표

한림대(총장 최양희)가 ‘AI대학·열린대학’이라는 미래 대학의 선도모델 대학으로 시작을 알렸다.

한림대는 지난달 29일 글로컬대학 비전선포식을 열고 ‘한림대 비전 2040 New Hallym’을 발표했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K-University’로 도약하기 위해 ‘학위, 전공의 해체 후 재조립’, ‘전면적 AI기반 교육 도입’, ‘창업 생태계의 중심’, ‘지역 사회의 중심’ 등 4개 주요 전략도 제시했다.

한림대는 우선 산업체 수요를 충족시킬 교육 모듈을 개발하고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인 융합전공을 제공하기 위해 3대 융합클러스터(AI융합연구원, 의료바이오융합연구원, 한림대 도헌학술원) 산하로 재조립해 교육·연구·산학의 중심 조직으로 재편했다. 모집 단위의 단계적 광역화, 입학 후 전공을 선택하는 메타전공학부 도입으로 학생의 교육 선택권을 넓히고 있다.

한림대는 ‘AI대학’으로 대전환을 선도하고, 이를 위해 △콘텐츠 개발 △강의 △평가 등 모든 교육 과정에 적용할 수 있는 AI 교육 연구 및 개발에 힘쓰고 있다. AI 교육

솔루션으로 ‘AI 튜터·어드바이저·조교·교수’ 모델을 도입했다.

이와 함께 한림대는 강원특별자치도 18개 시군과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한림마이크로캠퍼스(M-Campus)를 구축해 넓게 퍼져 있는 강원지역의 지역 밀착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개방형 창업 공간인 ‘Station C’ 구축 등을 통해 강원지역의 산업 및 사회 문제도 해결해 대학의 차별화된 지산학 연계를 진행한다.

최양희 총장은 “한림대는 글로벌 브랜드를 구축해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학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라며 “글로벌 대학의 선도 모델 대학으로 나아가는 글로컬대학 비전 선포식에 많은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린다”라고 전했다.

국립부경대, 무전공 등 AI로 대응한다

AI기반 ‘학생중심 지능형 교육지원시스템’ 개발

국립부경대(총장 장영수)가 AI 기반 학생 중심 지능형 교육지원시스템 ‘부경아이, 부경AI’를 개발해 운영에 나섰다.

‘부경아이, 부경AI’는 학내 데이터 기반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학생의 자기주도 학습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맞춤형 교과·비교과 검색 및 추천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국립부경대 관계자는 “최근 대학가에 무전공·학생설계전공·비교과 등 다양한 제도와 프로그램이 확대되면서 제기되는 학생 적응과 정밀한 학생관리 등 과제에 선제 대응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시스템은 학생 개인별 학점·성적·역량 등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졸업이수기반, 유사사용자 및 개인 선호도에 따라 교과목을 추천해 최적의 수강신청을 돕는다. 또 대학의 6대 핵심역량 기반 비교과 추천 서비스를 제공해 학생들의 프로그램 선택과 수강에 도움을 준다.

이와 함께 다양한 학문을 융합해 학생이 스스로 전공을 설계하고 학위를 받는 ‘학생

설계전공’은 신청과 컨설팅·심사·승인 등을 원스톱으로 지원하고, 설계과정에서 맞춤형 검색·추천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다.

특히 2025년 무전공으로 입학하는 학생은 이 시스템을 이용해 희망하는 전공의 교과목을 추천받아 이수할 수 있다. 진로·적성검사 자료 등 대학생활을 하며 쌓이는 자신의 학습경험 이력과 연계해 전공을 추천 받을 수 있다.

국립부경대는 기존 학사행정정보시스템이나 비교과 운영 서비스 등과도 연계를 마쳤다.

주문갑 국립부경대 정보전산원장은 “학생들이 입학에서 졸업까지 대학생활의 길잡이로서 진로를 위해 주도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한국항공대, 올해부터 전계열 ‘무전공’ 전면 실시

항공우주종합대학 특성살려 2개 전공 융합교육 의무화

한국항공대가 올해 입시부터 ‘무전공’(전공자율선택제) 모집을 전면 실시한다.

‘자유전공학부 확대’와 ‘단과대학별 입학정원 통합선발’을 통해 2025학년도 신입생부터 모든 학생이 전공자율선택제로 입학한 후 2학년 진급 시에 전공을 선택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단, 항공운항학과와 스마트드론공학과·AI 자율주행시스템공학과 3개 특수학과 및 첨단학과는 기존처럼 학과별로 신입생을 모집한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총장은 “우주항공청개청과 함께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우주항공 시대에 진입하면서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항공우주 종합대학으로서 항공우주산업의 특성을 살린 전공자율선택제를 도입해 미래형 융합인재를 양성하는 것으로 산업 현장의 수요에 부응하겠다”라고 말했다.

자유전공학부는 전체 모집 정원 대비 20%로 인원이 늘어난다. 자유전공학부로 입학한 학생은 2학년 진급 시 항공운항학과를 제외한 모든 학과와 전공을 단과대학에 상관없이 선택할 수 있다. 여기에 단과대학 단위로

학생을 선발하는 ‘단과대학별 입학정원 통합선발’이 새로 도입된다. 공과대학·AI융합대학·항공·경영대학 소속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2학년 진급 시 각 단과대학 내의 모든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한국항공대는 2025학년도 신입생부터 제1전공과 제2전공을 이수하는 것을 의무화한다. 공과대학은 항공기 및 위성의 시스템·제어·소재·정비를, AI융합대학은 항공기 및 위성의 전기전자·AI·를, 항공경영대학은 항공기운용·공항관리·물류서비스를 다루고 있어 융합교육을 통해 시너지를 강화할 예정이다.

교과과정도 전면 개편한다. 관련 산업의

전문 인재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각 전공의 커리큘럼을 새롭게 구성할 계획이다.

허희영 총장은 “학과 이기주의 현상을 없애기 위해 구성원 간에 소통을 활발히 한 덕분에 대학 전체의 발전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며 “학과 간 벽을 과감히 허물어뜨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의 속도에 맞춘 교육을 실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우규 한국교원대 제12대 총장 취임

차우규 한국교원대 제12대 총장(사진) 취임식이 지난달 29일 열렸다.

차우규 총장은 취임사에서 “안정적인 대학 재정 확충으로 질 높은 교육 연구 활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다른 대학들과의 연계·협력을 통해 지역과

국가의 교육발전을 선도하며, 지역사회에 적극 기여하는 대학, K-에듀를 구현해 나가는 대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 총장은 이를 위해 “대학 구성원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소통하며 한국교원대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차 총장은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부총장·교육연구원장·종합교육연수원장·산학협력단장 등을 지냈다. 대외적으로는 국가교육위원회 전문위원, 교육부 교육과정심의회 참여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과 통일부 통일정책위원 등을 역임했다.

한신학원 제32대 이사장에 윤찬우 목사 선임

학교법인 한신학원의 제32대 이사장으로 윤찬우 목사(사진)가 선임됐다. 한신학원 이사회는 지난달 23일 2024년 제3차 이사회를 열고 신임 윤찬우 이사장을 만장일치로 선출했다.

윤찬우 신임 이사장은 “어려운 시대이지만 기

장과 한신의 설립 정신에 따라 기장 총회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이사회는 물론 한신대와 영생고의 교육혁신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전했다.

윤찬우 목사는 1984년 한신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에 한신대 신학대학원 신학석사를, 2002년에는 목회학박사원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윤 목사는 경북노회 목사임직 후 육군군목, 이화여대 의료원 원목, 서울동노회장을 역임했다. 서울 정락교회에서 담임목사로 15년간 시무 중이다. 윤 목사는 한신대 총동문회장,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서기, 한신학원 인사교육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이동규 동아대 교수, 국회의장 공로장 받아

이동규 동아대 교수(대학원 재난관리학과·사진)가 재난안전문화 학술연구 및 입법지원 활동으로 국회의장 공로장을 받았다.

이 교수는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재난관리 석·박사 학위자를 양성하기 위해 진심을

다한 점을 인정해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대학원 재난관리학과 책임교수로 국가재난관리와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학술연구 활동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문가 위원, 행정안전부 물류창고 화재 민관합동재난원인조사단에서의 원인분석 위원장 활동, 통합적 사회재난 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태스크포스 위원으로 재난안전문화 증진에 기여한 것을 인정받았다. 이 교수는 또 국회에서 다양한 역할을 통해 입법지원 분야에도 기여했다. 국회사무처 소프트웨어과업심의위원회 위원장, 국회 안전한 대한민국 포럼 특별회원, 국회예산정책처 예산분석관 등으로 활동했다.

차세대인터넷기술및표준포럼 초대 의장에 김평수 한국공학대 교수

김평수 한국공학대 교수(전자공학부·사진)는 지난달 17일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차세대인터넷기술및표준포럼’ 창립 총회에서 초대 의장으로 선임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는

지난 3월 평가를 통해 차세대인터넷기술 분야 ICT 표준화 포럼으로 ‘차세대인터넷기술및표준포럼’을 신규로 선정했다.

이날 창립총회에서는 글로벌 사실표준화 기구인 IETF/IRTF 표준 대응, 인터넷 기술의 최신 표준화, 국내 산업체에 기술개발 동향 신속 제공, 6G·자율주행·디지털트윈·양자컴퓨팅·의도기반 네트워킹 등 국내 ICT 관련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논의가 진행됐다.

김평수 교수는 “국내 ICT 산업이 글로벌 기술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우리기술이 글로벌 표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계훈 전남대 교수, 보건복지부 장관상 수상

김계훈 전남대 교수(의과대학·사진)가 국가 임상시험 유공자로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김 교수는 지난달 22일 열린 ‘세계 임상시험의 날’ 행사에서 국가 임상시험 분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김 교수는 2020년 11월부터 2024년 2월까지 의생명연구원 임상시험센터장으로서 임상시험 활성화를 위해 취약한 인적·물적 제반여건을 확립하고, 전남대병원이 임상시험의 주요 수행기관으로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SCI(E) 논문 259편을 발표했으며, 국내외 임상연구(73건) 및 보건복지부 등 각종 국책과제(16건)에 연구책임자로 참여해 신약개발 및 국가 정책 개발에 앞서고 있다.

무엇이 인간답게 하는가 … 우리는 모두 유전자다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43

조규봉 서강대 교수(화학과)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정치와 경제·사회와 문화·과학기술·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달 25일 조규봉 서강대 교수(화학과)가 「유전 정보의 정체와 활용」을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44강은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의 「자원의 순환」이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DNA가 같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효과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아마도 DNA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일란성 쌍둥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일란성 쌍둥이는 하나의 세포에서부터 유래한다. DNA 서열 이외에 다음 세대로까지 유전될 수 있는 유전 정보는 후성유전학(後成遺傳學)이라고 부르며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됐다는 의미에서 21세기 생명과 학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후성유전학은 인간의 성장과 노화 현상을 설명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나의 수정란에서 출발한 우리 몸의 세포들이 신체의 다양한 세포로 분화된다는 것은 세포의 입장에서 볼 때 모두 같은 DNA를 가지고 있지만 엄청나게 다른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태어나서 지금까지 성장과 노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의 몸은 정말 다양한 형태로 변화돼 왔지만 모두 같은 DNA 서열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후성 유전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이뤄지고 특히 젊음에 대한 후성 유전정보를 이해한다면 우리의 몸을 젊었을 때로 돌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고 영원한 삶에 대한 오랜 염원이 해결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피에서 염색체로…유전자 발견의 위대한 여정

유전 정보를 이야기할 때 아마도 가장 중요한 단어는 유전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19세기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전 정보가 핏속에 있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우리 말에서 보면 핏줄, 피를 나눈 형제라는 말을 한다. 특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속담도 이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는데 놀랍게도 이 속담은 영어 속담을 번역한 것이다. 따라서 오랫동안 전 세계적으로 핏속에 유전 정보가 있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의 출발점은 1859년 발간된 다윈의 종의 기원과 1866년 발표된 멘델의 유전 법칙일 것이다. 특히 1900년에 있었던 멘델의 재발견은 과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유전자를 찾기 시작하게 된 계기가 아닌가 싶다.

유전자가 피가 아니라 염색체에 있다는 것은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모건(Thomas Hunt Morgan) 교수가 1915년에 밝혀냈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33년에 노벨상을 받게 된다.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것은 DNA 이중 나선(double helix)의 구조를 밝힌 내용이 아닌가 생각한다. 1953년 제임스 왓슨(James Watson)과 프란시스 크릭(Francis Crick)은 DNA의 이중 나선 구조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게 되고 1962년 노벨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또 유명하신 분이로잘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일 것이다. 그녀가 1952년에 얻은 Photo51이라는 DNA의 Xray 회절 사진이 DNA 이중 나선 구조를 밝히는 원천이 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프랭클린 박사는 1958년 타계해서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다.

1977년에 개발된 프레드릭 생어(Fredrick Sanger) 교수의 DNA 서열 분석 방법이 유명하다. 그는 1958년과 1980년 두 번의 노벨상을 수상했다. 1958년 노벨상은 인슐린의 단백질 서열을 밝힌 것으로 상을 받았고 1980년 상이 DNA 서열 분석법으로 지금까지도 생어 방법이라고 불리우며 DNA 서열 분석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1989년 시작된 인간 유전체 사업은 생어 서열 분석 방법을 많은 기관에서 동시에 이용해 15년 동안 진행을 했다.

2001년에 한 사람의 DNA를 읽는 데에 1억 달러, 한화로 1천300억 원이 필요했다. 이때에는 생어 방법을 근간으로 Applied Biosystems 장비가 사용됐다. 그러다가 2008년부터 차세대 서열분석법(Next-Generation Sequencing)이라는 방법이 출현하면서 비용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첫 NGS 장비는 454였지만 Illumina라는 장비가 나오면서 다시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고 많은 장비 회사들이 만들어져서 서로 경쟁을 하다가 2015년 Illumina에서 새로 만든 Hi-SeqX10 이라는 장비가 나오면서 다시 한번 혁명적으로 비용이 내려간다. 이 장비의 특징은 컴퓨터의 혁명적 변화를 이용했다는 것인데 이때 컴

“DNA 분자는 계속 새로운 원자로 지속적으로 바뀌어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에서 50년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DNA 서열 정보이다. 그렇게 보면 나의 본질은 물질이 아니고 ‘DNA 분자에 새겨져 있는 정보’가 아닐까”

퓨터의 혁명을 통해서 유전체 분석 가격을 거의 1천 달러에 가깝게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3세대 기술이 2018년 2019년에 출현을 한다. 최근에는 NIH에서 더 이상 이 그래프를 최신화하고 있지 않지만 최근에 Illumina의 특허들이 풀리면서 또 다른 경쟁이 유전체 분석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인간의 46개 염색체로 유전체 지도를 만든 예는 지난해 10월에 발표된 한편의 논문밖에 없다. 그리고 그 비용도 거의 천문학적 비용이 필요하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혈액 세포를 암세포로 바꿔서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 또한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따라서 아직은 인류가 DNA 서열을 완전히 얻지 못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더 많은 기술적 진보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언젠가 우리 각자가 자신의 DNA 서열을 모두 분석하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기술의 발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오해와 왜곡으로 만들어진 DNA의 진실

최근에 이뤄진 유전체 분석의 결과를 바탕으

조규봉 서강대 교수(화학과)는 “유전 정보를 이야기할 때 아마도 가장 중요한 단어는 유전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19세기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전 정보가 핏속에 있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라며 “이러한 생각의 변화의 출발점은 1859년 발간된 다윈의 종의 기원과 1866년 발표된 멘델의 유전 법칙일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로 인간 유전체에 대해서 잘못 알려진 오해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문헌이나 과학 기사를 보다 보면 모든 인류의 DNA 정보가 99.9%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심지어 인간과 침팬지도 98%가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이는 매우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아마도 인류의 평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한 사람의 세포에서 얻은 염색체 1번 두 개 즉 하나는 아버지에게서 하나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두 개 길이가 약 4%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염색체 1번들과도 함께 비교도 하고 있는데 모두 길이가 다

르다. 한 사람에게 있는 두 개의 상동 염색체의 길이마저도 4%가 다른데 서열이 99.9% 같다는 것은 전혀 말이 되지 않다. 이 분야를 연구하는 이탈리아 과학자의 말을 빌리면 자신이 분석하는 중심체 부분의 DNA에서만 사람과 사람의 차이가 15% 이상 관찰이 되는데 99.9% 같다는 교과서적 표현은 정말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화장품 개발에도 활용되는 유전 정보의 활용

지금까지 DNA 서열에 대해서 말했다면 지금부터는 유전 정보의 활용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아마도 DNA와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것은 유전자 검사일 것이다. 두 번째는 정밀 의학이다. 아마도 우리에게 익숙한 이재마의 사상의학의 21세기 버전이라고 하면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의학뿐 아니라 화장품 개발에서도 유전자 정보를 활발히 활용하고 있는데 이는 맞춤형 화장품이라고 불리며 전 세계 화장품 회사들에서 열심히 연구를 하고 있다.

유전자 치료의 한 방법일 수도 있는 방법이 유전자 가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전

자 가위는 유전자 치료법 외에도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유전자 가위는 최근에 가장 핫한 연구 분야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특히 이 분야는 1969년·1980년·2020년 이렇게 세 번에 걸쳐서 노벨상을 받은 분야로써 분자 생물학 초기였던 1950년대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분야다.

DNA 서열 정보를 이용한 또 하나의 연구 분야는 선사 시대의 인류의 이동과 조상에 대한 연구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와 관련된 최초의 대중 서적은 『이브의 일곱 딸들』이라는 2001년에 나온 책이라고 생각한다. 2001년은 유전체 분석 기술로는 초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는 길이가 짧은 미토콘드리아 DNA 서열을 이용해서 유럽인에 대한 조사를 했다. 그 이후에 수많은 연구들이 추가적으로 진행이 됐는데 아마도 그중에서 가장 주목받은 연구는 2022년 노벨상을 받은 스반테 페보 교수의 호모에렉투스 유전자가 현대 인류에게 남아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아닌가 한다.

2015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4만년 전 인류의 뼈를 발견했는데 이 뼈 주인의 4~6세대 위 조상 중에 한 명이 네안데르탈인이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현대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섞였음을 증명했다. 그 이후에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서 아시아 동쪽에 살았던 호모에렉투스인 데니소바인도 현대 인류에 섞여 있다는 것도 증명을 했다. 따라서 우리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모두 섞여 있을 것이다.

필자가 25년 동안 DNA를 연구하면서 생각하게 된 DNA의 한 가지 특성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한강을 보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DNA 분자는 계속 새로운 원자로 지속적으로 바뀌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본질은 물질·화합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에서 50년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DNA 서열 정보이다. 그리고 이 서열 정보는 부모에게서 왔고 다시 자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면 나의 본질은 물질이 아니고 ‘DNA 분자에 새겨져 있는 정보’가 아닐까. 아마도 이것이 오늘 필자가 말한 ‘유전 정보의 정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산화탄소를 천연가스로 고효율 광촉매 개발

인수일 디지스트 에너지공학과 교수팀

디지스트(DGIST) 에너지공학과 인수일 교수팀이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CO2)를 천연가스(메탄, CH4)로 전환하는 고효율 광촉매를 개발했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세계 곳곳에 이상기후가 발생하면서 인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피해 규모가 점점 커지는 지구 온난화와 이상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의 감축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다른 형태의 물질로 변환해야 한다. 광촉매 기술은 이산화탄소를 유용한 물질로 변환시키는 친환경 미래기술이다. 태양광 에너지와 물만 활용해 이산화탄소를 천연가스로 전환할 수 있으며, 전환된 천연가스는 가스 냉·난방, 천연가스 차량의 연료로서 우리 일상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이에 연구팀은 이산화탄소를 천연자원으로 전환하면서 동시에 효율도 높일 수 있도록 가시광과 적외선을 잘 흡수할 수 있는 ‘카드뮴 셀레나이드’와 광촉매 재료로 잘 알려진 금속산화물 ‘이산화티타늄’을 결합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기존의 경우 분석을 쉽게 하기 위해 격자 구조의 주기성을 가지고 있는 ‘결정질’ 이산화티타늄

인수일 디지스트 에너지공학과 교수팀이다. 친환경 미래기술인 고효율 광촉매 개발로 온실가스 감축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사진=디지스트

을 활용했다. 하지만, 규칙적인 입자 배열로 인해 타이타늄 3가 양이온(Ti3+) 활성점의 형성하는 데 한계가 존재했다. 이에 인수일 교수팀은 격자 구조의 주기성이 결여된 불규칙한 입자배열로 타이타늄 3가 양이온(Ti3+) 활성점을 더 많이 형성할 수 있는 ‘비정질’의 이산화티타늄을 활용해 촉매 반응을 향상시켰다.

향상된 촉매 반응 외에도 전하의 안정적 전달이 촉진되어 반응에 참여할 수 있는 전자가 충분히 공급됨으로써, 이산화탄소가 탄소화합물, 특히 메탄연료로 전환되는 과정이 보다 쉽게 이루어졌다. 또한, 고온에서의 재생 공정이 필요한 일반적인 광촉매와 달리, 비정질 촉매는 가열 없이 반응기에 산소를 공급하면 1분 내로 재생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연구팀이 새로 개발한 ‘비정질 구조의 이산화티타늄-카드뮴 셀레나이드 광촉매(TiO2-CdSe)’는 18시간 광반응 이후, 초기 6시간 동안 메탄 전환 성능을 99.3% 유지했으며, 이는 동일한 조성의 ‘결정질 광촉매(C-TiO2-CdSe)’ 대비 재생력이 4.22배 높은 수준이다.

인수일 교수는 “이번 연구는 재생력이 있는 활성점을 보유한 촉매를 개발하고, 계산화학 연구를 통해 이산화탄소가 비정질 촉매에서 메탄으로 전환되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라며, “향후 기술 상용화를 위해 비정질 광촉매의 에너지 손실 개선과 장기 안정성 향상 관련 후속 연구를 수행하겠다”라고 밝혔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선생님의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주간 <교수신문>과 온라인 교수신문에 선생님의 이야기를 정성껏 담겠습니다

자유 기고는 물론, 제보와 보도자료는

editor@kyosu.net

으로 보내주세요

모든 사람은 인간으로서 존엄한가?

딸깍발이

김경화 편집기획위원

동의과학대 경찰경호행정과 교수·기획처장

현재 전국의 전문대학은 학령인구 감소를 극복하고 지역산업의 현장전문인력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서 ‘해외 유학생’이나 양질의 ‘해외 인력’을 유치하고자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다. 지역 일반대학도 국립이나 사립할 것 없이 대동소이할 것이다. 법무부와 통계청의 각종 자료에 따르면, 2024년 4월 기준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총 260만 명에 달한다. 전체 인구(5,132만 명) 대비 귀화하여 국적을 취득한 사람들을 포함하면 우리나라는 국내 외국인 비율이 처음으로 5%를 넘어서 경제협력기구(OECD) 기준 ‘다인종·다문화 국가’에 진입하게 되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세계적으로 볼 때 유럽과 북미 지역을 제외한 지역에서 ‘다인종·다문화 국가’는 한국이 사실상 최초가 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단일민족’을 강조해온 국가가 이제 현실적으로 완전히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이미 이뤄진 ‘변화’나 앞으로 더욱 급격하게 다가올 ‘변화’에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렇게 외국인 유입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국가 소멸을 걱정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로 다가온 저출산·고령화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구소멸·국가소멸을 걱정할 정도로 ‘출산율’이 저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것은 ‘사회 구조적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그 원인을 좀 더 적확하게 말하면, “교육과 노동과 주거의 불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은 ‘인간존엄의 보장’과 연결되어 있다. 즉 현재 세대는 자신들의 책임하에 태어날 미래 세대가 출생 후에 성장하면서 얼마나 ‘인간존엄’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 그

리고 양질의 직업을 선택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생존을 위한 질문에 국가와 사회가 어떻게 답하는지에 따라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 상승의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최근 또 다른 형태의 인간존엄에 반할 수도 있는 주장과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최저임금 차등 적용’에 대한 논쟁이다. 기존에 제기되었던 업종별·지역별로 최저임금 적용을 달리하자는 주장이 이제 ‘국적’과 ‘세대’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외국인’이 그 적용배제 대상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리고 또 최저임금적용 제외대상으로 거론되는 것은 ‘노인(고령 노동자)’이다. 그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이것이 ‘노인 일자리 활성화’를 위한 것이며, 최저임금법과 시행령을 개정해 적용제외 대상에 고령 노동자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출생·고령화가 심각해지면서 중대성을 더해가는 노인 일자리 창출과 돌봄 문제는 단편적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일정한 연령대의 노인을 최저임금 적용 제외 대상으로 한다면 먼저 고령 노동자의 생활불안정, 임금수준 하락 우려가 커진다. 그리고 노동력의 고령화 추세 등을 생각한다면 복합적인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임금의 연령에 따른 차등 적용은 헌법상 ‘인간존엄’에 반하는 것으로 비판받을 수 있으며, 더욱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 임금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실정법인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국가가 ‘출산율 제고’와 ‘이민 유입’ 등 인구소멸과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법적·도덕적 책무이다. 국가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국가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국가의 백년대계인 ‘인구정책’을 새롭게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등 ‘헌법’의 기본원칙을 준수하면서 이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헌법 제10조 전문(前門) “모든 국

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여기 “모든 국민”에 노인은 당연히 포함된다. 그리고 외국인도 인권의 측면에서 ‘모든 국민’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민주공화국인 우리나라가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어떠한 국가로 지속하며 발전할 것인지 이제 그 비전을 명확히 제시할 때이다. 그래야 “모든 사람은 존엄한가?”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의 가늠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처우라고 감히 단정할 수 있다.

출처=운중화랑

갤러리 초대석

「사유의 숲-자작나무」

추니박, 한지에 먹, 아크릴채색, 2024

추니박 작가 전시회는 오는 11일까지 서울 중구 다산로 RNL 갤러리에서 열린다. 작가는 2016년 2월 겨울의 끝자락에 시작해 2년간 숲을 그렸다.

22대 국회, ‘고등교육 교부금법’을 제정하라

고슴도치와 여우

고영남

인제대 법학과 교수

총선이 열리는 4년마다 꼭 챙기는 공약이 나에게 있다. 고등교육에의 접근성과 공공성이 그것이다. 지난달 30일부터 임기를 시작한 22대 국회의원 300명에게 요구한다. 고등교육에 쓰일 ‘돈’ 이야기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려는 것이 정치권의 풍토이지만, 22대 국회가 꼭 제정해야 하는 법안이 하나 있다. 바로 ‘고등교육 교부금법’이다. 사립대학의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임에도 2004년 처음 발의된 이후 21대 국회까지 무려 열두 번의 입법 시도가 무산되었다. ‘고등교육의 긴축재정’이라는 오랜 매듭을 풀어야 할 때가 되었다.

고등교육에 대한 접근성과 그 공공성 가운데 전자에서는 일정한 진전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된 국가장학금은 이후 계속 규모가 커졌고, 이번 총선의 공약에서도 학자금 지원을 확대하는 등 여야의 이견은 없었다. 물론 현재의 국가장학금 제도는 소득 구간마다 차이를 두고 있어 고등교육의 보편적 접근권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도 야당의 공약을 보면 사실상 고등교육의 점진적 무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고

등교육을 무상화한다고 해도 현재의 왜곡된 사학운영 관행을 혁파하지 않고서는 고등교육의 공공성은 확보될 수 없거니와 그 질도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높이는 과제가 긴요해진다.

현 정부 들어 대학의 운영요건을 완화하는 등 개악이 있었지만, 물적 존재로서 대학 그 자체는 ‘대학설립·운영 규정’에 따라 평가된다. 하지만 대학이 항구적으로 일정 수준의 고등교육을 구현하려면 대학 운영에 필요한 경상비를 충분히 확보하여야 한다. 대부분의 사학이 열악한 재정 상태에 있는 상황에서 고등교육의 질적 수준이 하락하는 것은 당연하다. 현 정부가 추진한 사립대학의 재산에 관한 규제의 완화는 사학의 재정위기를 스스로 해결하라며 대학과 그 학교법인에 각자도생을 강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과연 사립대학의 운영에 도움이 되었는가?

대학의 토지나 건물 등을 매입하거나 건축물의 공사비 등에 사용하라고 학교법인이 지원하는 ‘자산전입금’을 검토한 ‘2023년 국정감사 정책자료집’(서동용 의원)에 따르면, 지난 19년 동안 학교법인이 사립대학의 교육용 자산 등에 지원한 자산지원금은 대학의 지출 중 9.7%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듯 지금은 규제의 완화가 아니라 학교법인의 기여에 관한 국가의 적극적 관리와 감독이 필요한 시기다. 특히 이 자산전입금에 법정부담금과 경상비를 합친 ‘법인전입금’이 2021년 기준 교비회계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일반대학 3.9%, 전문대학은 1.1%에 불과하다. 특히 법인전입금 비율이 1% 미만인 일반대학이 145개교 중 45%, 전문대학이 121개교 중 80%나 된다고 한다. 이렇듯 사립대학은 학교법인의 지배만 받을 뿐 전혀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학교법인의 재정 기여도를 계속 유도하되 그 지배구조는 공영화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등록금 의존체제를 국가지원과 책임 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22대 국회는 현재 3년짜리 한시법으로 시행 중인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을 폐지하고, ‘고등교육 교부금법’을 즉시 제정하여야 한다. 독자적인 고등교육재정으로 OECD의 평균 수준인 국내총생산의 1.1%를 꾸준히 확보하는 것은 물론, ‘평가를 통한 차등 지원’ 방식을 폐기하고 대학의 성격과 규모에 따라 배분하는 정책으로 전환하여야 할 시점이다. 그 매듭이 잘 풀릴 때 비로소 사립대학은 재정위기에서 벗어날 계기를 맞이하며, 대학다운 대학이 가져야 할 품격과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제대로 구현하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민주법학』 편집위원이며, 전국교수노조 부울경지부장과 인제대 교수평의회 의장을 지냈다. 전공은 계약법인데 교육법·인권법·법여성학·사회철학·사회과학방법론·법인류학 등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경남 근현대사: 사건, 공간, 운동』(공저, 2023), 『여성과 몸』(공저, 2019),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공저, 2017), 『민법사례연습』(2016) 등이 있다.

‘고슴도치와 여우’ 연재를 시작하며

윤지관

대학문제연구소장·덕성여대 명예교수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큰 것 하나를 안다.” 고대 그리이스의 서정시인 아킬로쿠스의 경구를 빌려 20세기 중반 영국 평론가 이사야 벌린은 그의 톨스토이론인 ‘고슴도치와 여우’에서 사고의 두 유형을 여우형과 고슴도치

형으로 구별하였다. 전자가 폭넓은 지식과 다양한 틀로 세상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후자는 한가지 핵심적 진실이나 체계에 기초한 앎을 추구한다. 벌린의 구분에 따르면, 여우형 지식인은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세익스피어, 톨스토이, 제임스 조이스로 이어지고, 고슴도치형 지식인은 플라톤에서부터 단테, 니체,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마르크스에 이른다.

대학문제연구소는 흥미로운 내부 논의를 거쳐 ‘고슴도치와 여우’를 정기 칼럼란의 제목으로 정하였다. 대학이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규명하고 이념적 지향과 실천

적 과제를 결합하고자 하는 이 칼럼이 한편으로는 고슴도치처럼 문제의 핵심을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우처럼 다차원적 해석에 열려 있는 토론의 공간을 창출해나가고자 하는 의도에서다.

그러나 고슴도치와 여우가 서로 대치하는 것만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벌린 자신이 톨스토이를 “스스로를 고슴도치라고 생각하는 여우”라고 묘사하고 있지 않은가? 큰 것 하나를 지키면서도 다양하고 상이한 현상들을 끌어안고 나가는 것, 어쩌면 그런 변증(辨證)이 모든 비평적 사유의 원천일 지도 모른다.

생명과학기술 특허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최성우의 과학기술 온고지신 ❻

최성우

과학평론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현대 과학과 더불어, 생명과학기술 또한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을 포함한 생명에 관련되는 만큼, 각종 윤리적·법적 문제와 아울러 특허의 허용 범위를 놓고 세계적으로 늘 논란이 되어 왔다.

우리나라 특허법은 특허 취득의 대상이 되는 발명을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의 창작…’으로 정의하고 있어서 순수한 과학적 발견 자체는 원칙적으로 특허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명시적 정의가 없는 다른 나라들 또한 거의 같은 입장으로서, 옛날에는 산업 제품들과는 달리 생명체는 인간이 창작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창조물이므로 특허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았다. 또한 생명체는 워낙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와 작용을 지니므로 특허를 얻기 위한 출원명세서에 명확하게 기재할 정도의 ‘반복,재현성’이 부족하다는 점, 여러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 등도 생명체 특허 부정설의 근거가 되어왔다.

그러나 생명공학 분야는 그동안 거대한 산업의 하나가 되었고,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제반 특허 요건을 충족하게 됨에 따라 생명체 관련 발명의 특허 부여는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1980년 미국 연방고등법원(CAFC)의 이른바 ‘Diamond v. Chakrabarty 사건’의 판결에서 유전적으로 조작된 미생물에 대해 특허가 인정되었고, 이후 미생물 뿐 아니라 동물과 식물, 인체 관련 등 생명과학기술 전반에 걸쳐서 특허의 대상이 대폭 확대되었다.

특히 21세기 초에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완료됨에 따라 인간 유전자에 관한 특허 출원과 등록이 급증하였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은 ‘인체에서 분리되고 유용성이 입증된’ 인간 유전자에 대해서 특허를 허용해왔다. 그러나 유전자 정보를 특정 기업이나 개인이 독점하는 문제 등에 늘 논란이 있었고, DNA 이중나선구조 발견으로 생명공학시대를 연 장본인이자 인간게놈프로젝

트의 초기 총책임자를 지냈던 제임스 왓슨 조차도 인간 유전자에 특허를 부여하는 것은 ‘완전히 미친 짓’이라고 극단적으로 혹평한 바 있다.

2013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유전자는 자연의 산물이므로 단순히 분리해 냈다는 이유만으로 특허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면서 기존의 판례를 뒤집고 인간 유전자 일부에 특허 무효를 판결하였다. 물론 모든 인간 유전자 특허가 무효라는 의미는 아니며 인위적 합성 유전자는 특허의 대상이 되지만, 이후 숱한 유전자 특허에 대해 미국에서는 무더기로 거절 또는 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인간 유전자처럼 특허의 원천적 성격 또는 카피레프트(Copyleft)적 입장의 반론뿐 아니라, 각종 생명과학기술 및 특허는 윤리적으로도 논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저명한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바이오테크 시대』 등을 저술한 생명기술 특허 반대운동가로도 잘 알려져 왔다. 그는 1997년 12월 미국 특허청에 한 생물학자와 함께 ‘사람과 다른 동물의 배(胚)세포를 융합시키는 기술’이라는 특허를 일부러 출원하여 생명기술의 상업화 및 인간 존엄성의 위기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물론 리프킨의 의도대로 이 특허는 미국 특허청에 의해 거절되었다. 그러나 2종 이상의 유전형질이 다른 세포 혹은 다른 동물 종의 조직을 결합하는 이른바 키메라(Chimera) 기술은 오늘날 널리 연구되고 있는데, 이 용어는 사자 머리에 염소 몸통, 뱀꼬리를 가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에서 따온 것이다. 2002년에 국내의 한 연구소에서는 인간의 배아줄기세포를 쥐에 이식한 키메라 쥐를 탄생시켰다고 하여 생명윤리 논란을 가중시킨 바 있다.

2020년도 노벨화학상을 배출한 공적이었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몇 년 전 중국에서 유전자 편집 아기의 탄생으로 악용되어 세계적으로 큰 충격과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인간복제에도 활용될 수 있는 수많은 특허들이 세계 각국에 출원되고 그중 일부는 등록이 되기도 한다. 물론 윤리적인 문제나 악용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특허 자체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생명과학기술 관련 특허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논란이 되면서 범인류적인 합의를 필요로 할 것이다.

김상돈의 교수만평

교수신문 The Professors Times 1년 구독료 100,000원

학문의 자유와 대학 민주화 · 학술정보 제공과 대학문화 창달 · 교권옹호와 전문적 권위 향상

등록번호 : 서울다6564 주 소 : (우)04044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8길 17-17 102호

대표번호 : 02-3142-4111 편집국 : 02-3142-4153 광고 : 02-3142-4194

홈페이지 : www.kyosu.net 이메일 : editor@kyosu.net 팩스 : 02-3142-4118

발행인 : 이영수 편집인 : 이영수 편집국장 : 김봉억 인쇄인 : 장용호

본지는 신문윤리강령 및 그 실천 요강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