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원 의견까지도 압박, 대학 자율성 훼손”

‘의대 증원’ 학칙개정 부결에 행정조치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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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는 지난달 말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제출한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에서 2025학년도의 경우 증원분의 50%를 반영한 38명만 증원해 163명의 의대 신입생을 뽑겠다고 했는데 이번 학칙 개정안 부결로 제동이 걸렸다. 게다가 의대 정원을 늘린 다른 대학들도 학칙 개정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어서 이번 사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렸다.

정부가 시정명령과 행정조치 등을 거론하면서 압박에 나서자 의대 교수들은 강력 반발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며 일방적이고 강압적으로 진행하는 정책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 “교육부는 학칙 개정 후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을 변경하는 게 법과 원칙을 준수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고등교육법 제19조의 2 대학평의원회 학칙 개정 심의권을 존중하라”고 꼬집었다. 또 “교육부는 부산대에 시정명령 및 학생 모집 정지 등의 강압적 행정조치를 취해서는 안 된다”고 쏘아붙였다.

부산대의대 교수협의회도 “정부는 부산대의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급격한 의대 정원 증원의 필요성과 절차적 타당성을 재검토해 지금

오석환 교육부 차관이 지난 7일 긴급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교육부

이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정구 부산대 교수회 회장(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상임회장)은 <교수신문>과의 통화에서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대학 구성원들이 의견을 모아 학칙 개정안을 부결했는데 정부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압박하는 건 대학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법적으로는 교육부의 설명이 맞지만 시정명령이나 행정조치는 대학이 본연의 임무를 하지 않았을 때 해야 하는 것으로 만약 재심의에서도 학칙 개정안이 부결된다면 교육부가 부산대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한편 오 차관은 최근 의료계와 논쟁을 벌이고 있는 2025학년도 의대 정원 배정위원회 회의록과 관련해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와는 달리 의대 정원 배정위원회는 법정 위원회가 아니기

때문에 회의록 작성 의무가 없다”면서 “의대 정원 배정위원회는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공공기록물관리법)에 따른 회의록 작성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된 항고심을 진행 중인 고등법원에서도 배정위원회 회의록을 별도로 요청하지는 않았다”며 “다만 회의 결과에 따라 정리한 부분의 문서들은 있다”고 말했다.

서울고법이 정부에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에 대한 과학적 근거 자료와 관련 회의록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하자 의료계는 의대 정원 배정위원회 회의록을 교육부가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대 정원 배정위원회는 교육부가 증원된 의대 인원을 대학별로 배분하기 위해 꾸린 임시 조직으로 의료계는 해당 위원회의 회의 과정과 위원 구성 등을 모두 비공개로 해서 의대 정원 배정이 졸속으로 이뤄졌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의대 정원 배정위원회 회의는 지난 3월 14일부터 18일까지 세 차례 진행됐다.

오 차관은 “의대 정원 배정위원회와 관련된 자료는 법원 제출 목록에 별도로 들어가 있지 않다”면서 “다만 정원 2천 명을 증원하게 된 기준과 과정 등에 대해 소명하도록 요청받아 그 부분은 성실히 소명하겠다”고 했다.

장성환 기자 gijahwan90@kyosu.net

‘고교교육 기여 대학’ 사업에 8개 대학 탈락

교육부 단계평가 결과

대입전형의 공정하고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대학에 예산을 지원하는 ‘고교교육 기여 대학 사업’에서 8개 대학이 탈락했다. 해당 사업의 중간 단계평가를 통과한 83개 대학은 올해 기준 580여억 원의 사업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교육부는 지난 7일 ‘2024년 고교교육 기여 대학 지원사업 단계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고교 교육과정을 반영한 대입 전형 설계와 대학 평가 역량 강화로 대입 공정성을 높인 대학에 정부가 3년간 재정 지원을 하는 사업이다. 지난 2022년부터 3주기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내년 2월까지이지만 올해 중간 평가를 거쳐 계속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가톨릭관동대·목포대·중원대 등 지원 중단

대입 전형 담당자와 고등학교·교육청 관계자 등이 위원으로 참여해 해당 사업을 수행하던 91개 대학을 평가한 결과 8개 대학이 탈락했다. 학교당 평균 7억 원 내외를 지원받는 ‘유형Ⅰ’에서는 가톨릭관동대·계명대·덕성여대·목포대·서울과기대·한양대 등 6개 대학이, 2억 5천만 원 내외를 지원받는 ‘유형Ⅱ’에서는 중원대·홍익대 등 2개 대학이 떨어졌다.

이번 단계평가는 지난 2년 동안 사업에 참여한 대학들의 사업 운영 성과와 향후 계획을 바탕으로 △대입 공정성 및 책무성 △수험생 부담 완화 △학생 선발 기능 강화 및 전문성 제고 △고교교육 연계성 △사업비 집행 실적과 적절성 등 예산 5개 영역에서 이뤄졌다.

단계평가 통과한 83개 대학, 올해 579억

단계평가를 통과한 83개 대학은 올해 총 579억 원을 지원받게 된다. 이들은 해당 사업비를 대입 전형 설계 비용과 입학사정관 인건비 등에 활용할 수 있다.

교육부는 대학별 이의 신청을 거쳐 이달 중 최종 평가 결과를 확정한다. 이후 다음 달 초 추가 선정 평가를 실시해 7개 내외 대학을 지원 대상으로 새롭게 선정할 예정이다. 이번에 지원이 중단된 대학 가운데 단계 평가 점수가 60점 이상인 경우 추가 선정 평가에 다시 지원할 수 있다.

최은희 교육부 인재정책실장은 “이번 단계 평가를 통해 각 대학의 대입 전형 개선 방향 및 고교 연계 노력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교육 현장의 대입 공정성과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장성환 기자 gijahwan90@kyosu.net

‘네옴’과 아랍 이슬람 종주국, 두 마리 토끼 잡기

글로컬 오디세이

정진한

한국외대 아랍어과 강사

인류 최대의 토목 공사 중 하나로 기대를 모으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신도시 프로젝트 네옴(NEOM)

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위기설이 날로 증폭되고 있다. 이 대역사의 주 자금 공급 원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PIF)가 지난해 세계 최대 펀드로 등극했음에도 올해 현금 보유액이 과거의 30% 수준까지 쪼그라들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이러한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게다가 이 펀드에 가장 든든한 투자처로 지목됐던 중국마저 최근 투자를 재고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투자 유치에 열을 올리던 사우디의 자금 사정에 위기 경보가 울리고 있다. 덕분에 사우디는 아람코의 지분을 더 팔아야 할 것이라는 씁쓸한 전망마저 받고 있다.

작금의 현상에 불을 당긴 것은 역시 끝을 예상

할 수 없을 정도로 길어지고 있는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황이다. 애초에 네옴 프로젝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안정적 관계가 담보돼야 성공할 수 있는 프로젝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네옴은 이스라엘에서 불과 3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광활한 사우디 영내에서 육해공으로 이스라엘과 가자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이다. 즉 이팔 문제가 불안정해지면 네옴은 최악의 투자처가 된다.

불행히도 현재의 경제적 상황은 사우디 편이 아니다. 이미 하마스의 기습으로 유례없는 피해를 겪은 이스라엘은 곧이어 예멘·이라크·시리아·레바논의 친 이란 무장단체들로부터 직간접적 공격을 받았고, 이달 초에는 사상 최초로 본토에 이란의 대규모 폭격을 맞았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이 이란 본토의 핵기지 주위를 공격하면서 중동은 역대 최악의 위기를 맞아, 세계 경기가 위축되면서 사우디에 대한 투자 역시 줄어들고 있다.

과거 같으면 이 손해분을 유가상승으로 만회하고도 남았지만 작금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기존의 문법대로라면 벌써 두 세배 이상 거뜬히 폭

애초에 네옴 프로젝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안정적 관계가 담보돼야 성공할 수 있는 프로젝트이다. 즉 이팔 문제가 불안정해지면 네옴은 최악의 투자처가 된다. 사우디의 재정 적자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설계상의 구조적 결함에 더해 자금 조달마저 비현실적인 상황이 될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네옴 시티의 조감도. 사진=네옴 홈페이지

등했을 유가는 90달러 선에서 안정세를 유지 중이다. 덕분에 사우디의 재정 적자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그 때문인지 이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사우디는 VISION 2030의 이름으로 진행되던 길이 170킬로미터의 네옴 프로젝트 대표작 ‘더 월(The Wall)’의 2030년까지의 완공 부분을 한차례 더 대폭 축소해 결국 총 공사 길이의 1.4% 남짓

한 2.4킬로미터만을 완료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더 월’은 설계상의 구조적 결함에 더해 자금 조달마저 비현실적인 상황이 될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롯데월드타워 높이에 폭 200미터짜리 건물을 서울에서 대전 너머까지 잇는 이 공사의 전체 공사비용 추계는 한화 1천 조 원을 넘어서고(약 1조 달러) 심지어 그중 2.4킬로미터 구간인 1단계 공사만 하더라도 한화 약 500조 원(약 3천190억 달러) 이상이 소요된다. 아무리 석유가 넘치고 공공투자 기금이 풍부하다지만 이정도 수치는 한국 경제 규모의 3분의 2에 불과한 사우디가 홀로 담보할 수 없는 규모다. 즉, 충분한 해외 자금 유치만이 공사의 진행을 담보할 수 있다.

결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로 돌아왔다. 2020년 이웃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을 필두로 수단과 모로코마저 이스라엘과 수교하면서 팔레스타인, 특히 하마스는 전대미문의 고립감을 느꼈고, 사우디마저 수교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면서 생존 가능성마저 위협에 놓였다. 무력시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마스가 이 사태를

돌파하기 어렵기에 가자 지역의 파국은 이미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럼에도 이를 외면하며 버젓이 가자 인근에 들어선 신도시 프로젝트 네옴은 실상 국가의 명운이 걸린 시한폭탄에 가까웠다.

사우디는 아랍과 이슬람 세계의 종주국이라고 자처해왔다. 이번 이팔 전쟁 직후에도 이슬람 각 국을 소집해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모아냈다. 하지만 자국민을 포함한 세계의 아랍인과 무슬림 다수와, 심지어 미국에서 이스라엘에게 휴전을 촉구하는 군중들마저도 상당수도 알고 있다.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의 아랍 부국들이 조금만 더 팔레스타인의 입장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이러한 비극은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었다는 것을. 맏형으로 인정받는 카리스마와 지도력은 어려운 형제를 먼저 챙기고 앞장서 희생할 때 저절로 따른다는 평범한 진리를 뒤늦게나마 이제라도 인지하기 바란다.

요르단대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문명교류사와 중동학을 전공했고 한국외대와 서울대 등에서 관련 강의를 했다. 「이슬람 세계관 속 신라의 역사: 알 마스우디의 창세기부터 각 민족의 기원을 중심으로」 등 논문을 썼다.

춘천교육대학교 2024학년도 2학기 교수초빙 공고

1. 초빙분야 및 인원

학과 (심화과정)전공분야모집인원담당 교과목비 고

초등교육과(윤리교육과)도덕교육1명통일초교등육도, 덕통교일육문1제,2연,구통일교육 강의 가능자

초등교육과(교육학과)교육사회학1명학교와 사교회육, 학사급회 학사,회의 이해

초등교육과(음악교육과)국악교육1명국악실기, 국악지도법초등 국악 실기 지도 가능한 자

2. 지원자격

가. 국가공무원법 제33조 및 교육공무원법 제10조의4(결격사유)에 의한 임용에 결격사유가 없는 자

나. 공고일 기준 해당 분야 박사학위를 소지한 자(박사학위 취득예정자는 제외)

다. 대학교원 자격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2조‘별표’의 자격기준에 해당하는 자

라. 지원서 접수마감일 현재 학위논문을 제외한 최근 4년간(2020. 5. 22. b 2024. 5. 21.) 국제저명학술지(7'-, 77'-, %&,'-, 7'-), 7'3497) 또는 한국연구재단 등재(후보) 학술지에 게재된 전공분야 연구실적물이 300% 이상인 자(게재 예정인 연구실적물은 제외)

3. 심사기준

• 「전임교원신규채용인사관리지침」적용: 춘천교육대학교 홈페이지 공지사항(채용공고) 참조

4. 접수기간 및 장소

가. 접수기간 : 2024. 5. 17.(금) 09:00 b 5. 21.(화) 18:00

나. 접수방법 : 코러스 대외서비스 인터넷 접수 LXXTW://GRYI.OSVYW.OV

다. 파일형식으로 제출할 수 없는 저서 등은 방문 및 우편접수 가능

- 방문 : 춘천교육대학교 석우관 2층 교무처(033-260-6124)

- 우편 : (24328)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공지로 126, 춘천교육대학교 교무처 ※ 우편물은 5.21.(화) 18:00까지 도착분에 한해 인정

5. 기타 세부 사항

가. 춘천교육대학교 홈페이지(LXXT://[[[.GRYI.EG.OV) 공지사항(채용공고)에서 확인

나. 기타 문의사항은 교무처로 문의(033-260-6124)

2024. 5. 7.

춘천교육대학교총장

5357년도#제4차#한국예술종합학교#전임교원#채용#공고

1. 모집분야 및 인원(※복수지원 불가)

소속 원소속 학과전공 분야모집 인원

영상원영화과시나리오, 드라마 대본1

미술원조형예술과도자조형1

전통예술원음악과대금1

2. 자격 요건

1) 지원서 접수마감일(D24.5.16.) 현재「국가공무원법」제33조 및 「교육공무원법」제10조의4에 의한 임용 결격사유가 없는 자

2) 「대학교원 자격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한 교원자격을 갖춘 자

3) 해당 모집분야의 자격요건(학위 및 경력요건)을 충족하는 자

※ 자세한 사항 본교 홈페이지 참조

3. 제출서류 (원서접수)

• 1차 접수: 2024. 5. 7.(화), 09:00 b 5. 16.(목), 18:00 ?한국시각 기준A

- 교원지원서, 연구(실기)실적목록, 자기소개서, 최종 학위(졸업) 증명서, 최종 학위 성적증명서 등

※ 인터넷 입력 접수(본교 교원공채시스템)하되, 최종 학위 논문(작품), 대표논문(작품)은 방문 또는 우편 접수

• 2차 접수 : 기초심사 합격자 발표 후 별도 공지

- 최근 4년 이내(2020.5.17.b2024.5.16.) 연구실적물 각 7부

- 학력·성적 증명서 원본(대학, 대학원) 각 1부

- 경력·재직 증명서 원본 각 1부

- 사진(3.5×4.5) 1매 ※ 기초심사 합격자에 한함 / 방문 또는 우편 접수

※ 자세한 사항은 본교 홈페이지(LXXT://[[[.OEVXW.EG.OV/)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2024년 4월 26일

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

인문학은 사회과학·자연과학·기술공학을 품고 가야 한다

미래를 준비하는 인문사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➍

이찬규

인문한국(HK)사업 협의회 회장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네오네상스 시대, 인문학의 대전환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1304~1374)는 23세이던 1327년 봄 아비뇽의 성 크레르 교회에서 평생을 짝사랑하게 될 아름다운 여인 라우라(1310~1348)를 만나게 된다. 그는 그녀에 대한 강렬하고도 열정적인 마음을 소네트에 담았고, 이어 1342년에 서정시집 『칸초니에레』(Canzoniere)를 발표하면서 자신은 상상도 못 했겠지만 르네상스라는 거대한 문을 열게 된다. 이 시집은 기존 라틴어 위주의 문학 작품에서 벗어나 속어인 이탈리아어로 집필되었으며, 신(神) 중심의 중세 사상에서 벗어나 인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르네상스적 새로운 시대 정신의 탄생을 알렸다. 그의 시대 정신은 16세기에 이르러 프랑스 르네상스 전성기에 페트라르카주의(petrarquisme)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르네상스가 이처럼 한 사람의 시도로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꾸게 되는 이 이 사상적 씨앗은 이미 오랜 기간 동안 문화 속에 잠재되어 있었다. 그리스·로마 문화를 복원한다는 의미의 르네상스(프랑스어 re(다시)+naissance(탄생))가 교황의 본거지인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탈리아는 로마제국의 고전적 전통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역설적이게도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비잔틴 문화와의 접촉이 활발하여 무역이 번성한 도시들이 많았다. 그로 인한 경제적 번영은 시민 사회의 성장을 가져왔고, 인쇄술의 발달은 자연스럽게 학문과 예술을 존중하는 문화로 이어졌다. 결국 고전의 뿌리를 되살리고 이를 새로운 문화와 결합하고, 자본이 뒷받침되어 르네상스를 이루어낸 것이다.

반도국가인 이탈리아와 조선의 르네상스

비슷한 시기 훈민정음 창제 15년 전인 1428년 이탈리아와 비슷한 반도국가인 조선에서도 커다란 변혁이 싹트고 있었다. 같은 해 10월 3일(세종 10년)에 진주에 사는 ‘김화’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죽인 사건이 일어나자 세종은 교화를 위해 집현전에 명하여 『효행록』이란 책(한문으로 편찬)을 펴내라고 하였다. 도덕 윤리가 법으로 다스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세종은 일찍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434년(세종 16년) 4월 27일에 그림풀이를 덧붙인 ‘삼강행실도’를 인쇄하여 한문을 모르는 아이들과 여성들까지도 책 내용을 쉽게 알게 하였고, 신하들에게도 책을 선물하였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편찬하게 된 동기는 ‘원활한 통치를 위한 백성의 교화’라는 주장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찍이 ‘허조’라는 신하가 ‘백성이 글자를 알면 부작용이 커진다’라고 만류하였으나 이두로 풀이된 법전을 편찬하게 한 것 등으로 미루어 보면 세종은 인간이 자신의 지식으로 자신의 삶을 지켜나가게 해야 한다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우리 문화에 대한 애착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개인의 성품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당시 젊은 지식인 집단이었던 ‘집현전’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다. 집현전은 인재를 양성하고 문풍을 진작시키는 데 그 설치 목적이 있었으므로 이들은 고전에 해박하고, 논리로 무장하여 왕의 자문에 합리적으로 대응하였다. 훗날 성종대에 이르러 조정 대부분 영역에서 중추 역할을 담당할 정도로 뛰어난 문인들이었다. 세종은 그 당대의 외국 문화에 정통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미 “몽고(蒙古)·서하(西夏)·여진(女眞)·일본(日本)과 서번(西蕃) 등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집현전을 통해 이를 연구하게 하였다. 이러한 문화적 교류가 없었다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문자인 ‘한글’도 없었을 것이다.

세종과 집현전이 뿌려 놓은 씨앗은 임진왜란

을 관통하여 숙종대부터 시작되고 영·정조대에 이르러 절정을 맞이하는 조선의 르네상스, ‘진경(眞境) 문화’로 꽃을 피우게 된다. 가보지도 않은 중국에 대한 이상적 동경에서 벗어나 우리 문화의 진수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를 담아내려는 풍조는 학계와 예술계 전반에 큰 물결을 이루게 된다. 반도국가인 이탈리아와 조선에서 잉태된 인간 중심의 세계관은 이렇게 타인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 타인과 내가 공유하는 기저 문화에 대한 이해, 그리고 타문화와의 결합으로 시작되었다. 결국 인간 고유의 욕망에 대한 이해, 그리고 내가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현실 직시, 그리고 ‘다른 것들’과의 결합이 인문학의 뿌리인 셈이다.

과잉 기술은 ‘탈선 인본주의’를 가속화

그러나 르네상스가 무르익어 갈 무렵에도 다소 혁명적이었던 인간에 대한 각성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우리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생각해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지만 르네상스는 1760년대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거대자본’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산업혁명은 2차, 3차를 거치면서 점점 더 거대한 자본 팽창, 자본의 소수 집중화, 가속화라는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르네상스가 시작된 지 700여 년, 산업혁명이 시작된 지 300여 년이 지난 지금, 지나친 인간중심주의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이라는 풍선에 서로가 경쟁적으로 ‘욕망’을 불어 넣다보니 터지기 직전에 이르렀고, 현실에 대한 직시는 도가 지나쳐 즉물주의(卽物主義)를 낳고 급기야 물신 숭배로까지 이어졌다.

신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고유성을 찾고, 인간이 꽃피운 문화를 지켜나가려는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순수성은 사라지고, 이제는 궤도를 벗어나 우주에서 유일하게 권한을 가진 ‘인간’이라는 허황된 인간중심주의로 변질되고 말았다. 나는 이것을 ‘탈선인본주의’라고 부르고자 한다.

탈선인본주의는 과거나 미래에 대한 성찰이나 비전보다는 지금, 이 순간만의 만족을 갈구하며, 쉽게 자연을 파괴하고, 차별을 당연시하며, 물질 중심적인 사고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만이 유일한 권능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로 등장한 것이 현대의 신(神)인 ‘돈’이다. ‘신

과 돈’이 모두 인간이 만든 가상 세계의 창조물이라는 점과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돈’이 신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막강한 ‘부’가 축적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이루어주는 것이 ‘기술’이다. 포스트휴머니즘이나 트랜스 휴머니즘은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로봇과 같은 기술도 적극 수용하자는 입장이나 인간이 기술을 만들고 기술이 기술을 만드는 과정을 고려한다면 과잉 기술은 결국 탈선인본주의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중심이 되는 기계나 기술은 인간을 고양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기계나 기술은 결국 인간을 옥죈다.

인공지능 시대, ‘새로운 탄생’을 준비하자

인류의 역사에서, 인공지능은 지금 탈선인본주의를 향해 고속도로를 깔고 있는 가장 위험한 기술이 되어 가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에게 해가 된다거나 기술 개발을 억제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님을 분명히 밝혀 둔다. 아직까지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부푼 기대를 주는 도구 기술이지만 이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방향과 속도는 인류에게 걱정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일부에서는 범용인공지능이란 헛된 꿈이라고 하지만 딥러닝은 이미 설명할 수 없는 기술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적대적 생성신경망(GAN;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으로 촉발된 딥페이크(deep fake) 기술은 어떤 이미지나 소리가 진짜이고 가짜인지 구별하기가 어렵게 만들었다. 나날이 기능이 향상되어 가는 생성형 AI는 인간을 점점 수동적으로 만들어갈 것이 자명하다. 거기다 2022년 얀 르쿤이 제기한 JEPA(Joint Embedding Predictive Architecture)는 인간과 같은 추론 방식을 도입한 아키텍처라는 점에서 AGI(범용 AI)에 한발 다가섰다고 할 수 있다.

일부 기술공학자들은 기술 낙관주의를 주장한다. 통제할 수 없는 기술이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공학자 중 ‘생성형 AI’가 이 정도로 놀라운 능력을 보일 줄 예상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심지어 오픈AI의 엔지니어들조차도 챗GPT의 성능에 놀랐다고 할 정도다. 거기에다가 인공지능과 결합한 로봇들이 거리를 활보

하게 되면 일반인들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존재적 가치에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칼은 인간이 손에 쥐고 도구로 사용하면 유용하지만 그것이 인간을 향하게 되면 위험한 무기가 되고 마는데, 심지어 그 칼이 사람의 손을 떠나 혼자 돌아다닌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인류가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한다면 조만간 AI 로봇은 인간의 손을 떠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류는

인문학이 기술을 품고 가기에는 이미 역부족일 수 있지만 ‘인류를 위한 기술’을 위해 기술공학을 알아야 한다.

네오네상스 인문학의 기운은 이미 무르익어 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로 인해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 그 징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자본과 기술’이 결합된 또 다른 ‘신’을 만나게 될 것이 자명하다.

2016년 이세돌과 세기의 바둑 대결을 벌였던 ‘알파고’ 개발의 주역, 딥마인드의 창업자 무스타파 술래이만은 그의 저서 『The coming wave』에서 기술 개발의 혁신성과 위험성의 딜레마에 직면한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개인들이 ‘인공지능’의 긍정적인 측면만 보며 이른바 ‘비관적인 회피’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기술을 인정하고, 그

물결의 특징을 제대로 알며, ‘기술 억제’를 위한 ‘좁은 길’로 들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다시 르네상스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페트라르카가 신에 대한 경배에서 벗어나 평생 짝사랑한 여인 라우라를 향해 소네트를 써 내려가던 시대를 촌스럽게 생각하고, 그가 ‘나의 비밀’에서 그렸듯이 인간 구원과 세속적 욕망 명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사람도 점점 찾기 어

렵다.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 산수화에도 더 이상 감동하지 않는다. 인류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탄생(neo(새로운)+naissance(탄생))을 준비해야 한다. 신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본성을 찾고자 했던 르네상스 시대, 중화사상에서 벗어나 우리의 본질을 찾고자 했던 진경시대의 기억을 되살려 물신주의(物神主義)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본주의의 궤도를 만들어 가야 한다. 기술이 인간의 손에 머물러 도구로 사용되도록 기술 개발의 틀

을 정해야 한다.

문·사·철, 네오네상스에 맞춰 재구성해야 이제 인문학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네오네상스 시대를 열어갈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탈선된 인본주의를 본 궤도 위에 올려 놓을 방안을 찾기 위해 그동안 우리가 인본주의의 샘물이라고 여기던 철학·역사학·문학 등을 네오네상스에 맞춰 재구성해야 한다. 모든 인간의 삶이 인문학에 귀결한다면 인문학은 사회과학·자연과학·기술공학을 품고 그 학문이 어떻게 인류를 위협하지 않고 유익한 범위 내에서 머물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기술은 이미 가상과 현실을 통합하고, 개인의 욕망을 집단화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개인의 욕망이 집단화되면 그것은 개인의 욕망과 상관없는 집단의 욕망으로 변질하고, 그것이 다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례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수없이 경험했다. 인문학이 기술을 품고 가기에는 이미 역부족일 수 있지만 ‘인류를 위한 기술’을 위해 기술공학을 알아야 한다. 인문학이 타 분야와 융합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융합된 실체가 바로 네오네상스 인문학이 되어야 한다. 르네상스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지는 않았듯이 네오네상스 인문학의 기운은 이미 무르익어 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로 인해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 그 징표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의 대전환을 기대해 본다.

대구보건대학교

아줌마 연구자로 가까스로 살아남기 5

서나래

한국교원대 한국근대교육사 연구센터 전임연구원

지역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

나의 할매 학생들

지역의 중소도시를 시작으로, 서울에서 거리가 먼 순서대로 대학은 사라질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다. 대학에서 교원을 꿈꾸고 있는 신진 연구자는 이런 미래에 좌절할 수밖에 없다. 이번 연재에서 나는 두 가지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 하나는 왜 여성 연구자들이 출산이나 육아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지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의 대학은 현재 어떤 문제에 봉착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아줌마 연구자로 가까스로 살아남기’라는 연재 제목은 양육과 연구로 저글링하며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다. 지역의 많은 연구자들이 특히 여성 연구자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연구를 접고 있다. 이 연재를 통해 고군분투하는 신진 연구자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한편, 익명의 신진 연구자들에게 진한 동지애를 전달하고 싶다. “우리, 살아서, 만나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비대면 수업보다 대면 수업을 선호한다. 물리적인 공간에서 대면하는 교수 학습이 비대면 학습보다 훨씬 선호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의 할매 학생들 역시 책가방을 메고, 책상에 직접 앉아보는 것을 간절히 소망했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면 많은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 의례적으로 어떤 학생이 수강신청을 했나 출석부를 살펴본다. 요즘 학생이라고 보기엔 좀 전통적인 학생 이름이 보였다. 2000년대생의 이름이라기엔. 오히려 우리 부모님 세대 이름 같았다. 수업에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 앉아계셨다. 수업이 끝난 후 이 학생들의 이야기를 좀 들어 보기로 했다. 요새는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특별한 일이 아니면 교강사는 학생의 개인정보를 미리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학생의 개인정보를 거의 알지 못한 채로 수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이 경우는 좀 특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53년생, 56년생…만학도 할매 학생

한 분은 53년생, 다른 분은 56년생. 우리 아버지가 58년생임을 감안할 때, 부모님보다 더 연배가 있으신 분들. 환갑을 훌쩍 넘긴 분들이 대학교에 입학해 재학생이라니. 두 분 다 여성이었고, 한국적인 잣대로 보자면 할머니들이었다. 한 분은 이미 초등학생 손주가 있었고 다른 분은 비혼여성이었다. 흔히들 나이든 여성에게 어머님, 아줌마, 더 나이든 여성에게 할머니라고 부르는데 이분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것이다.

어쨌든 이분들은 만학도(晩學徒)였다. 만학의 晩은 ‘늦다’, ‘해가 지다’라는 뜻이다. 만학도라는 명칭은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서 다시 대학으로 들어오신 분들을 꼭 맞게 일컫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회사를 다니다가 30~40대에 뜻한 바가 있어서 대학에 입학한 학생에게 만학도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일단 만학도를 부를 호칭부터 정해야 했다. 출석을 부를 때 나는 대개는 학생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편이다. 그런데 60대 어르신의 이름만 부르기는 좀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고 OOO씨라고 부르는 것도, OOO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좀 어색했다. OOO씨는 좀 하대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OOO님은 뭔가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이 같았다. 우리말에서 “Mr. Ms.와 같은 경칭(honorific title)이 있다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고민 끝에 만학도분들의 성 뒤에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여 부르기로 했다. 그분들은 나보다 먼저 태어나신 분들이니 진짜로 나보다 “先生”이기도 했다. 나는 이분들께 “제가 선생님으로 부르면 될까요?”라고 물으니 펄쩍 뛰셨다. 우리가 선생에게 선생님 소리를 들으면 어쩌냐며 손사래를 치시더니 잠시 후 이렇게 말씀하셨다. “할매, 할매가 좋겠네요. 우리 나이는 이미 할매니깐.” 경상도에서 할매나 할배는 친숙한 단어일지 몰라도 서울 출신인 나에게 할매나 할배는 왠지 모르게 반말 같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공손한 느낌이 있지만 할매, 할배는 함께 산 친손주만이 부를 것 같은 단어다. 할매라는 정감 가는 단어를 허하는 뜻을 마음속으로 헤아리면서도 교실에서는 “선생님”으로 부르기로 했다.

사실 평생교육의 기회는 어디에나 있다고 하지만 특히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없는 소도시에서 평생교육의 기회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대학에 입학해 공부하는 것이 가성비가 좋다고나 할까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비대면 수업보다 대면 수업을 선호한다. 나의 할매 학생들 역시 책가방을 메고 책상에 직접 앉아보는 것을 간절히 소망했다. 큰 사진은 인공지능 DALL·E 3을 사용해 만든 가상의 이미지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필자의 '할매학생'인 김은조 씨가 쓴 책의 표지다.

배움에 때가 있나요

두 분은 사학과 3학년으로 학사 편입을 했단다. 학령인구가 줄고 있었기에 2021년도부터 지역의 대학은 대거 미달사태가 벌어졌다. 한때는 대학이라는 곳에 입학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지만 이제는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예전에 비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때 두 분이 각각 전문대와 독학사 과정을 거쳐 만학도 전형으로 편입을 한 것이다.

어째서 대학에 입학하셨느냐고 물으니 “늦었지만 책가방 메고 핵교를 다니고 싶어서. 배움에 때가 있나요?”라고 수줍게 대답하셨다. 진짜로 두 분 모두 큼직한 백팩을 메고 계셨다. 사실 평생교육의 기회는 어디에나 있다고 하지만 특히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없는 소도시에서 평생 교육의 기회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한노인회에서 운영하는 지역 노인대학이 있지만, 좀 더 진지한 면학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대학에 입학해 공부하는 것이 가성비가 좋다고나 할까나.

오랫동안 대학은 우골탑이라고 하여 농촌에서 소를 팔아서 그 등록금을 충당해야 할 만큼 비싸고 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하지만 직장에서 은퇴했거나, 별도의 수입이 거의 없는 어르신들의 경우 한국장학재단의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기에 대학의 등록금은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특히나 국립대나 도립대 등 공립대학의 경우 애초에 등록금이 저렴한 데다가 장학금의 혜택까지 있기에 한 학기면 몇십만 원 수준으로 대학을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 활짝 열려있는 대학은 단연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였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비대면 수업보다 대면 수업을 선호한다. 물리적인 공간에서 대면하는 교수 학습이 비대면 학습보다 훨씬 선호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의 할매 학생들 역시 책가방을 메고, 책상에 직접 앉아보는 것을 간절히 소망하셨다고 했다.

소원대로 대학에 오긴 왔는데…

학기 초에 그렇게 빛나던 할매 학생들의 표정이 학기가 지날수록 어두워졌다. 면담 자리에서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이분들을 괴롭게 하는 것은 대략 세 가지 정도였다. 컴퓨터와 영어, 그리고 조별 프로젝트. 컴퓨터로 문서 작성을 하거나 파워포인트를 만드는 기초 실력이 부족하여 과제를 할 때마다 너무 어렵다고 하셨다. 특히 학

습관리시스템(LMS)과 같은 플랫폼도 적응이 힘들었다. 대학에서 책으로 공부하고 공책에 정리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대학 수업의 컴퓨터 의존도가 상당히 높아서 아들과 며느리, 때로는 조카까지 총동원된다고 했다. 두 번째는 영어. 특히 내 수업은 매주 영어로 된 역사 용어 퀴즈를 진행했는데, 일주일 내내 단어를 외우고 퀴즈를 보는 날이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외워도, 돌아서면 잊는다며 울상을 지었다. 마지막으로는 조별 프로젝트인데 젊은(!) 학부생들이 대놓고 차별하지는 않지만, 컴퓨터 활용 능력도 낮고 체력적으로 같이 밤을 새우기도 어려운 할매들은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최근 줄어드는 학령인구에 대한 대책으로 대학은 대학 교육을 염두하지 않았던 코호트를 대상으로 대학 교육의 기회를 개방하고 있다. 입시에서 만학도 전형을 만들거나 만학도를 대상으로 ‘성인학습자’나 ‘실버’라는 용어를 첨가한 학과를 운영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만학도가 안정적으로 대학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은 부족하기만 하다. 장애학생이나 외국인학생 지원제도가 있는 것처럼, 다양한 만학도 지원제도가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나의 할매 학생들은 어떻게 되었냐고?

만학도 지원제도가 없었지만 나는 2주일에 한 번씩 나의 할매 학생들과 나머지 공부를 진행했다. 당시에 나는 수업 기말 과제로 구술사 실습을 진행했는데, 인터뷰를 녹음하고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해주는 AI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 모두 할매들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결국 나는 할매 학생에게 이 과제는 자문화기술지 작성이라고 생각하고 본인들의 삶에 대해 쭉 써보시라고 요청했다. 할매 학생들은 무사히 과제를 제출해 학기를 마쳤고 그것으로 나머지 공부도 끝이 났다. 잊고 있었는데 한 할매 학생에게 연락이 왔다. 과제 발표날 “계속 글을 쓰세요”라는 나의 조언을 듣고 그동안의 삶의 궤적을 글로 써서 출판사에 투고했단다. 고생 끝에 회고록(김은조, 『나는 영원한 2류 가수다』, 연인, M&B, 2023)을 출판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문화예술계에서 가수와 배우로 일을 하며 평생을 비혼여성으로 살아간 60대 여성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매우 드문 사례이기도 했다. 독수리 타법으로 과제를 겨우겨우 작성했던 걸 기억하는데 계속 글을 써서 400쪽이 넘는 단행본을 탈고했다니…. “정말 배움에는 때가 없다”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래서 나의 할매 학생들은 어떻게 되었냐고? 이분들은 모두 학부를 우수하게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생이 잘못해서 대학원을 간 것이 아니라, 정말 잘해서 대학원에 갔다고 할 수 있겠다.

대학에서 역사와 문학을 전공했다. 잠시 중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한 적 있다. 연세대 대학원 교육학과에서 「교실 속 이방인들: 주한 미 평화봉사단의 교육 활동과 그 영향(1966-1981)」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세아라는 필명으로 한국 거주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글자로 옮겨 책을 두어권 낸 바 있다. 현재 사범대학에서 교사를 꿈꾸는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철학 및 교육사’라는 교직 과목을 가르치며 한국 현대교육사를 연구하는 공부 노동자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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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AI 모델, 더 많은 에너지 필요하다”

AI와 노동력 그리고 탄소배출량 상호작용

▶1면에서 이어짐

사회에 AI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AI의 수많은 응용 프로그램이 인간의 노동을 줄여줌으로써 세계의 탄소배출량에 도움이 될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기후변화를 방해할 것인가. 그동안 AI가 소비하는 에너지·물·기타 자원의 양과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에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AI 애플리케이션의 전 세계적 영향력은 의료·교육 혁신부터 광업·운송·농업의 효율성 향상에 이르기까지 훨씬 더 광범위하다.

10년 동안 AI 활용 매년 10배 늘어

문제는 AI 활용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년 동안 매년 10배 증

데이터 센터가 지구 온난화에 끼치는 악영향을 이미지로 나타냈다. 그림=Dall.e

가했다. 고급 대규모 언어 모델을 훈련하는 데 사용되는 컴퓨팅 용량 말이다. AI 서비스 수요는 향후 5~10년간 매년 30~40% 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 강력한 AI 모델에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2027년까지 전 세계 AI 관련 에너지 소비는 지난해보다 10배 더 많거나 미국 가정에서 TV 시청하는 사람들이 연간 소비하는 양과 비슷할 거라는 분석도 있다.

한 방법은 에너지 효율성을 개선해 예상되는 전력 수요 증가를 일부 상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다 효율적인 AI 알고리즘·소형 모델·하드웨어와 냉각 시스템 혁신 등이 있다. 소규모 언어 모델인 마이크로소프트의 ‘Phi-2’나 구글의 ‘Gemini Nano’는 휴대폰에서 실행될 수 있는데, 기능은 대규모 언어 모델과 같다.

또 다른 방법은 재생 에너지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가령,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근처에 있는 데이터센터는 냉각을 위해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전문가 집단은 AI로 인한 탄소배출 시

나리오가 신뢰할 수 있고 유용하려면 다음의 다섯 가지 요소가 필수라고 지적한다. △기존의 기후변화 시나리오와 연동하라, △정량적 분석 프레임워크를 개발하라, △데이터를 공유하라, △신속한 업데이트를 진행하라, △국제 컨소시엄을 구축하라.

딥페이크로 기후 관련 잘못된 정보 유출

그동안 유엔, 세계경제포럼, 빅테크 등은 AI가 기후 위기 관련한 예측과 분석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줄 것이기에 환경문제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예 를 들어, AI는 삼림 벌채를 추적하고, 오염 누출을 식별하며, 기상 이변을 추적한다. AI는 이미 아프리카의 가뭄을 예측하고 빙산이 녹는 변화 등을 측정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AI가 딥페이크 비디오나 사진 등을 통해 기후 관련 잘못된 정보를 유출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레이첼 카슨 사후 60년을 기리며

“과학이 수사학과 만나 사회를 바꾸다”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환경 책 ‘침묵의 봄’

올해는 레이첼 카슨(1907∼1964)이 세상을 떠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정확히 지난달 4월 14일이 카슨의 기일이었다. 카슨의 『침묵의 봄』은 DDT 등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고발해 환경운동을 촉발시켰다. 지난달 22일은 ‘지구의 날’이었는데, 이 책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1962년 출간된 『침묵의 봄』은 출간 전 이미 4만 부가 선계약됐다. 그해 가을에만 60만 부가 팔린 초베스트셀러였다. 20세기 환경 분야 최고의 고전 중 고전인 이 책의 개정증보판이 출간됐다. 개정증보판은 ‘제2의 레이첼 카슨’으로 평가받는 샌드라 스타인그래버의 서문과 『침묵의 봄』 출간 이후 환경 관련 글, 연보 등을 추가했다. 특히 초판의 표지 색깔과 비슷한 녹색 톤으로 표지를 꾸몄다.

미국 컬럼비아대 생물학 강사인 스타 인그래버는 “좁게 보면 『침묵의 봄』은 19가지 살충제의 독성학적 특성에 관한 책”이라며 “그중에는 알드린, 디엘드린, 엔드린, DDT, 린데인, 클로르데인, 헵타클로로 같은 물질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침묵의 봄』 출판 10년 후, DDT 사용은 미국에서 불법이 되었다”라며 “6개의 살충제가 차례로 하나씩 같은 운명을 맞이했고, 대부분이 사용 제약을 크게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스타인그래버는 『침묵의 봄』이 네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고 강조했다. 첫째, 아무도 허락한 적 없건만 우리는 모두 살충제라는 형태로 유독 화학물질에 원천적으로 오염되고 있다. 둘째, 살충제는 해충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셋째, 독성물질에 대한 동의 없는 노출의 경우, 대중은 적어도 자신들이 처한 위험을 알 권리가 있다. 넷째, 인간과 다른 생물종의 건강을 굳이 위험에 빠뜨릴 필요가 없다.

노융희 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은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지난날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했을 때 신학계에서 받은 박해만큼이나 큰 공격을 미국 화학공업계로부터 받았고, 스토 여사가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써서 노예해방을 이끈 만큼의 사회변혁을 몰고 왔다는 점에서 스토 여사와 비등하다고 하지만, 스토 여사의 경우는 이미 공론화한 노예 제도를 문제로 삼아 국민적 양심에 호소한 데 비해 카슨 여사는 아무도 모르고, 따라서 증언해 줄 사람 하나 없는 화학

물질의 유해성을 고발해서 국론을 불러일으켜 사회제도를 변혁했다는 점에서 더 큰 찬사를 받았다.”

언어의 힘으로 환경보호국 창설 이끌어

“사진이나 SNS·팟캐스트 없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변화를 이끌었다.” <포브스>는 카슨 기일에 맞춰 「침묵과 경이로움: 레이첼 카슨과 언어의 힘」 기사를 공개했다. 『침묵의 봄』으로 인해 미국 환경보호국(EPA)가 창설됐다. EPA는 지난달 식수에서 ‘영원한 화학물질’로 불리는 과불화학합물(PFAS)를 제거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환경 감시와 실천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침묵의 봄』은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책 50권 중 유일한 환경 서적이다. <디스커버>가 발표하는 최고의 과학 도서에서 『침묵의 봄』은 16위에 올랐다. 스타인그래버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카슨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특정 학술지나 특정 분야에서만 증거를 수집한 것은 아니다. 약리학에서 야생생태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백 건의 과학적 연구를 인용한다.”

이 책이 강력한 언어의 힘을 발휘한 건 카슨의 문학적 역량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토콘드리아에 대한 비유가 그렇다. 미토콘드리아는 당을 ATP(아데노신 3인산)로 변환시키는 세포의 구성 요소다. ATP는 신체의 에너지로 통용(currency) 되는 화학적 성분이다. 카슨은 미토콘드리아를 “생명의 에너지를 촉발하는 수십억 개의 부드럽게 타오르는 작은 불”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이 불이 바퀴처럼 순환하는 과정에 의해 촉발되며, DDT와 같이 위험하고 거의 연구되지 않은 화학 물질은 세포 생명의 “바퀴를 망가뜨리는 지렛대”라고 표현했다. 과학이 수사학적 언어에 의해 한층 도약하는 순간이다.

당신은 ‘침묵의 봄’을 읽어봤는가

아울러, 카슨은 실천윤리의 차원에서 직접 행동했다. 방송에 나가 인터뷰를 하며 문제를 설명했다. 또한 의회 청문회와 상원 소위원회에서 발언하는 등 사안의 심각성을 알렸다. 이 때문에 거대 화학기업들로부터 협박을 받기도 했다.

요컨대, 카슨은 철저한 과학 연구와 문학적 감수성 그리고 실천이 융합된 전형적 인재다.

1952년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앤 로는 “과학의 어떤 것도 소통·전달되지 않으

“오는 27일은 ‘레이첼 카슨의 날’이다. 중요한 건 지금 우리에게 카슨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일 것이다. 그건 우리 모두가 현재 직면하고 피부로 느끼고 있는 환경의 급격한 변화이다.”

왼쪽부터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초판 표지와 최근 국내에 출간된 개정증보판 표지다. 『침묵의 봄』은 환경 분야에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도서로서 <디스커버>가 발표한 최고의 과학도서 16위에 올랐다. 그 앞에 있는 책들은 다윈, 아리스토텔레스, 뉴턴, 아인슈타인의 책들이다. 최고의 과학도서 중 『침묵의 봄』은 환경 책들 중 1위다. 표지=위키피디아

면 사회에 가치가 없다”라고 강조한 바있다. 그런데 누구나 『침묵의 봄』을 알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책을 다 읽어본 사람은 드물다. 이는 마치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문제와도 같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작 스스로 실천하지 못한 것이다.

오는 27일은 ‘레이첼 카슨의 날’이다. 이날은 카슨의 생일을 기념하며 전 지구적 환경 운동의 중요성을 환기하고자 제정됐다. 중요한 건 지금 우리에게 카슨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일 것이다. 그건 우리 모두가 현재 직면하고 피부로 느끼고 있는 환경의 급격한 변화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카슨은 펜실베이니아주 스프링데일에서 태어나 가족 농장의 숲속에서 자랐다. 그녀의 어머니는 카슨이 주변의 자연 세계를 탐험하고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갖도록 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지난달 10일, 미국 국립환경정보센터는 ‘환경 대각성 운동에 참여한 해양 생물학자이자 작가’인 카슨의 삶을 조명했다.

바다를 사랑한 문학소녀…자연을 연구하다

카슨은 펜실베이니아여자대학(현재 채텀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1925년 졸업 후 매사추세츠주 우즈 홀(Woods Hole)에 있는 해양생물학연구소(MBL)에서 6주를 보냈다. 나중에 추가 연구를 위해 이곳으로 돌아온다. 카슨은 존스홉킨스대 대학원에서 동물학을 공부했다. 카슨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싶었지만 대공황으로 인해 포기했다.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것이다.

1935년 워싱턴 D.C.에 있는 수산국(현재 어류 및 야생동물 보호국)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15년 동안 과학자, 편집자, 출판물 편집장으로 일했다. 1936년 주니어 수생생물학자가 됐다. 그곳의 두 여성 전문가 중 한 명이 바로카 슨이었다.

대공황 이후 바다에 대한 논픽션 책을 집필해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카슨이 이름을 알리게 된 건 『침묵의 봄』이었지만, 그녀의 몸을 망가뜨린 것도 이 책이었다. 유방암과 싸우며 집필했고 발언했다. 결국 암으로 사망했다 .

카슨이 환경 운동을 촉발한 장본인이긴 하지만, 그녀는 바다에 대한 사랑과 작품으로 기억되고자 했다. 카슨은 『침묵의 봄』만큼이나 바다 3부작으로 유명하다. 바로 『바닷바람을 맞으며』(1941), 『우리를 둘러싼 바다』(1951), 『바다의 가장자리』(1955)다. 카슨은 이미 이 작품들을 통해 과학과 문학을 융합하는 시선을 드러냈다. 인류가 서 있는 땅은 바다 위에 잠시 솟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바다의 가장자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해안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하나의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의 관련성 속에서 생명이라는 복잡한 옷감을 직조한다는 사실을 느끼고, 그 아름다움과 참다운 의미를 새삼스레 깨닫곤 한다.” 1965년 카슨의 마지막 책인 『센스 오브 원더』가 출간됐다. 다음 해 어류 및 야생동물 보호국은 철새를 위한 귀중한 염습지와 하구를 보호하기 위해 메인(Maine) 주에 ‘레이첼 카슨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을 설립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역자가 말하다_ 『글로벌 시대 자유학예의 발전』 대니얼 아라야 지음

피터 마버 편집 | 박일우 옮김 | 북코리아 | 416쪽

전공에 밀린 ‘교양·자유학예’

80년 대학교육은 뭘 했나

박일우

계명대 명예교수·기호학

학문 도반 한 분이 대학의 역사를 공부하는 어느 세미나에서 장탄식을 했다. “독일 김나지움 수준도 안 되던 미국 식민지 대학이 하버드 총장 엘리엇 이후 80년 동안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게 됐다. 해방 후 80년 다 될 동안 우리나라 대학은 무엇을 했나!” 역자는 그 답을 『글로벌 시대 자유학예의 발전』에서 찾는다.

세상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다는 우리나라에만 없는 고등교육 기관이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학예대학이 그것이다. 자유학예는 그리스‧로마 개념의 자유학예, 즉 자유 시민은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에 참여하기 위해 심오하고 비판적 사고를 체계적으로 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반을 두어 다섯 가지 감각(시각, 청각, 미각, 촉각 그리고 후각) 모두를 훈련하고, 문법, 논리학, 수사학, 대수학, 기하학, 음

지적·정서적 도야 과정인 자유 시민 위한 리터러시

학부교육에 ‘자유학예’ 도입해 졸업도 무전공으로

악, 천문학의 엄격한 이해를 제공했다. 물론 여기에는 시민 사회에 협동적으로 안전하게 참여하는 데 필요한 리터러시도 포함된다. 자유학예대학이 제공하는 자유학예교육은 자유로운 시민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지적·정서적 도야 과정이었다.

자유학예교육은 과거의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것이며, 특정 지역의 것이 아니라 지구촌에 편재한다. 그 목표는 비판적·창의적 사고를 함양하고 덧붙여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여타 역량을 함양하자는 것이다. 이런 가치들이야말로 오늘날과 내일의 인간 조건을 규정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가치를 일부라도 추구하는 교육이 이른바 ‘교양교육’이라는 영역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교양교육은 여전히 찬밥에 도토리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에서의 이른바 ‘전공’ 분야가 졸업생의 첫 번째 일자리조차와도 제대로 일치하지 않는 현실에는 다들 눈감은 사이에 교양교육은 늘 ‘전공교육’에 밀려났다. 이것이 해방 이후 우리나라 고등교육이 다른 선진국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과정을 거치다가 오늘날 대학교가 소멸 위기에 빠지게 된 근

본 이유 중 하나다.

1828년 예일보고서는 미국 고등교육의 임무를 이렇게 기술한다. “지적 문화에서 획득해야 할 두 가지 위대한 점은, 마음의 훈육과 채비이다. 마음의 힘을 늘리고 이를 지식으로 저장하라.” 이 책은 네덜란드를 필두로 하는 유럽, 아시아, 중동, 심지어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점점 더 많은 대학이 어떻게 마음의 힘을 늘리고 저장하는지 보여준다. 이 책의 마지막 글에서, 마사 누스바움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공감과 이해의 기반으로서 글로벌 시민의식과 문화적 차이라는 개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으면 상호의존적인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음을 강조한다.

자유학예교육은 분열되고 혼란스러우며, 가끔은 잔혹하고 정신없는 변화의 시대에 정신과 마음, 그리고 영혼에 자양분을 제공한다. 이 횡포한 시대에 올바른 정보를 갖춘 시민정신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 디지털 시대일수록 도덕적·사회적·지적 차원을 이해하도록 학생들을 도와줄 필요가 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의문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 학생들이 미래를 살아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생각 있는

학생들은 졸업 후 첫 일자리가 아니라 변화무쌍한 미래를 볼 것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뉴욕타임스> 기자 조지 앤더스의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쓸데없는” 자유학예교육의 놀라운 힘(2017)』은 자유학예대학 졸업생들을 종단연구해 자유학예교육의 유용성과 확장성을 실증적으로 보고했다.

지금 아카데미의 고민이 정년 퇴임한 역자에게도 전해진다.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오래 길들어진 대학들이 요즈음은 무전공 입학 제도에 머리를 싸매는 모양이다. 학과나 전공이라는 든든한 성채가 무너질까 불안한가? 그럴 것이다. 원래 대학 편제와 학문 발전과 수요는 좀처럼 일치되기 어려우니. 그런데 기초학문이 더 무너진다고? 정반대다. 최소한 학부교육에는 기초학문으로만 교육과정이 만들어진 자유학예를 도입해 보면 어떨까? 입학이 아니라 졸업도 무전공으로 하도록 하는 것이 자유학예교육이다. 아카데미는 정책을 제안하고 추진하는 지성의 보고가 돼야지, 늘 교육 당국에 끌려다니는 모습만 보일 수는 없다. 이 책에서 그 힘을 얻기를 바랄 뿐이다.

비평의 발견_ 『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 아이가 있는 미래는 무엇으로 가능한가』 정재훈 지음 | 21세기북스 | 244쪽

『 맘카페라는 세계: 엄마들이 모인 공간은 정녕 ‘마녀들의 소굴’인가』 정지섭 지음 | 사이드웨이 | 324쪽

‘내’가 행복해야 아이 낳는다

“노키즈존 혐오는 부정적”

정인관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

얼마 전 정치·경제·사회·정책 분야의 연구자들이 모여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가졌다. 사회학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녀를 낳고 키우는 비용 부담의 경감에 더해 (부모의)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 중요하다.”

“맘카페는 여성에 대한 복합적인 사회적 요구(엄마와 직장인)가 주는 혼돈과 불안 속에서 개개인이 자신의 상황을 판단하고 확인할 수 있는 준거집단의 역할을 한다.”

의 종합적인 성격 때문인지 내게 주어진 일은 다른 분들의 발표에 언급된 다양한 상황(사건)들 사이의 대략적인 관계도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 하나하나가 굵직한 30여 개

이상의 상황들의 얽히고설킨 관계의 한 가운데 놓인 것은 ‘놀랍지 않게도’ 초저출산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망해가고 있다’는 많은 주장의 핵심에는 저출산 문제가 있다. 대한민국의 지난해 연간 합계출산율은 0.72, 4분기 출산율은 0.65였다. 한 사회의

인구가 재생산되기 위한 출산율이 대략 2.0 임을 고려할 때 말 그대로 충격적인 수치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과)의 『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는 자극적인 제목과 언론의 주목도 때문에 오히려 편견을 갖고 펼쳐 들었으나 상당히 괜찮은 책이다. 이 책은 한국 저출산 문제의 역사적 흐름과 현황 그리고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나처럼 애매한 수준에서 저출산 문제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에겐 기존의 논의들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해당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는 들어왔으나 무엇이 문제이며 왜 문제인지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해당 문제의 A부터 P(Z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다.

너무나도 많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고, 또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것 같은 인구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공공(정부)-민

간(기업)-개인(가족)의 협업이 절실하다. 이와 관련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들

의 리스트를 제시하는 결론 부분은 독자에게 희망과 절망, 믿음과 회의라는 복합

적인 감정을 제공하나 지금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산적 불안감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대중교양서(혹은 진정한 의미에서 ‘계몽서’)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의 재생산’ 혹은 공공성의 관점에서만 저출산 문제에 접근하고 또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관점에서 벗어나 개인 수준에서 즐겁게 자녀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언뜻 이상적으로 들리나 구체적인 논의로 들어가면 꽤나 설득력을 지닌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녀를 낳고

키우는 비용 부담의 경감에 더해 (부모의)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보다 긴 아빠 출산휴가의 현실적 보장, 유보통합 등 교육제도 개혁, 전통적이고 경직적인 가족 가치관의 변화와 성평등, 부모 당사자에 대한 건강지원 등이 절실하다.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녀를 낳고 키우는 것이 부모에게 기쁨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지섭 저자의 『맘카페라는 세계』

는 오늘날 여성(엄마)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부제인 ‘엄마들이 모인 공간은 정녕 마녀들의 소굴인가’는 저자가 맘카페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에 대해 해명(혹은 반박) 하려는 목적을 지녔다고 짐작하게 만드나 사실 이 책은 맘카페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야기들을 망라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맘카페는 여성에 대한 복합적인 사회적 요구(엄마와 직장인)가 주는 혼돈과 불안 속에서 개개인이 자신의 상황을 판단하고 확인할 수 있는 준거집단의 역할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맘카페에 대한 과도한 몰입은 여성들의 자기보호 기제가 되는 동시에 외부의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멀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키우기도 한다.

저자는 맘카페라는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구조적 위치를 반영함을 강조한다. 저자는 책의 곳곳에서 자녀를 낳고 키우는 것이 가져다주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사회의 저출산문제를 극복하려면 이러한 행복이 발현될 수 있는 조건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노키즈존’으로 상징되는 엄마와 아동에 대한 혐오문제는 부정적이며, 양육의 성별분업화 문제는 극복돼야 할 과제이다. 자녀를 키우는 것(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평가, 남성들의 육아휴직 등 문화적이고 제도적인 부분의 보완을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합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출생아 수와 합계 출산율의 변화

신간소개

연암소설을 독하다

간호윤 지음 | 소명출판 | 379쪽

이 책은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유학의 본질을 연구했던 연암의 삶, 그리고 12편의 소설을 좇은 책이다. 이 책은 「개를 키우지 마라」를 화두로 잡고 연암소설 12편을 각각 독(讀)한다. ‘독(讀)’이란, 연암소설

을 읽되 저자의 전공인 고소설 비평어를 넣어 말 그대로 ‘시론적(試論的)’으로 살폈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고소설 비평에 대한 인식이 없기에 군데군데 용어에 대한 설명을 뒀다. 연암 소설은 18살 즈음의 「마장전」에서부터 50대의 「열녀함양박씨전 병서」까지 다룬다.

만화로 배우는 웹툰 스토리 작법

포도사태 지음 | 한빛비즈 | 352쪽

이 작법 만화를 통해 창작의 길로 들어섰다는 후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이 책에서 ‘다양한 분야의 관점’을 합쳐 바라보는 방식으로 이론을 정리한다. 우리가 경험을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들이 명

쾌해지는 순간이다. 내 작품을 빛나게 해줄 작법의 핵심 기술! 작법의 기초를 단단히 만들고 싶은 사람·만화 연습은 많이 하는데 진전이 없는 사람·캐릭터와 스토리가 밋밋해서 고민인 사람·웹툰 너머의 관점이 필요했던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소녀가 되어가는 시간

에이미 엘리스 넛 지음 | 현아율 옮김 | 돌고래 | 424쪽

이 책은 남자로 태어났으나 2세부터 여성의 자의식을 확고히 내보인 한 어린이와 그 가족의 실화로, 주인공 니콜이 가족과 공동체의 지지와 조력 속에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거듭나는 20여 년의 극적이고도 감

동적인 여정을 다룬다. 퓰리처상 수상 이력을 보유한 저자는 오랫동안 치밀한 취재를 통해 니콜과 그의 일란성쌍둥이 남동생 조너스가 출생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겪어온 수많은 사건을 진솔하고 흡인력 있게 재현한다. 메인스 가족은 미국 내 트랜스젠더 권리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차대한 소송에 나서게 된다.

우리가 알아야 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모든 것

도브 왁스만 지음 | 장정문 옮김 | 소우주 | 388쪽

지난해 10월,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전 세계가 또 한 번 충격에 빠졌다. 이스라엘은 즉각 보복 공격을 단행했고, 단기간에 종료될 것으로 예

상했던 이번 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폭격과 파괴가 계속되면서 분쟁은 우리의 관심에서 조금씩 잊히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현 상황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세계 최대의 감옥이라 불리는 가자지구는 어떤 곳일까.

한국간호인물열전

이꽃메 지음 | 책과함께 | 456쪽

저자가 정리한 한국 간호인의 역사. 개항 이후 조선에 설립된 서양식 병원에서 는 조선인을 고용해 병원 운영에 필요한 일들을 맡기기 위해 이와 관련된 훈련과 교육을 진행했고, 여기에는 환자의 간호

가 포함됐다. 이렇게 시작된 간호직은 교육이 강화되고 역할이 분화되면서 전문적 업무가 됐으며, 오늘날 간호사의 원조라고 할 인물들이 등장했다. 이후 10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간호사가 배출됐고, 이 책에서는 그중 10인을 선정해 소개한다.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

이정우 지음 | 한겨레출판 | 548쪽

이 책은 저자가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동안 노무현 대통령의 권유로 기록한 10권의 일기와 각종 회의 때마다 꼼꼼히 적어 둔 메모가 바탕이 됐다. 여기에는 오직 국민과 국익·약자와 정의를 위해 국정을

운영한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희로애락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또 부동산 대란·재벌개혁·언론개혁·균형 발전과 신행정수도·FTA 문제 등 일상적으로 일어났지만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장 보드리야르

폴 헤가티 지음 | 윤상호 옮김 | 책세상 | 292쪽

장 보드리야르는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이자 가장 뛰어난 사회 이론가로 불린다. 그는 오늘날 대량 소비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이 넘치는 물건·일자리·이미지와 어떤 의미 관계를 맺는지 고찰하며

현대 사회를 새롭게 풀이하는 파격적인 이론들을 고안해냈다. 특히 실재를 복제한 이미지가 원본보다 더 실제처럼 인식되는 과정을 설명한 ‘시뮬라시옹 이론’은 미디어와 소비사회·대중과 대중문화를 해석하는 독창적이고 탁월한 이론 틀로 받아들여져 현대 철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임상영양사는 이렇게 일한다

신은지 지음 | 청년의사 | 288쪽

청년의사의 보건의료 분야 직업 탐구 시리즈! ‘병원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의 아홉 번째 이야기다. 저자는 현재 병원에서 14년 차 임상영양사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식품영양 관련 전공 선택을 앞둔 수험생들과 신

입 임상영양사들을 위한 책이다. 임상영양사란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는지 대학 안내와 시험 정보·취업에 관한 정보는 물론 병원 내 임상영양사는 어떤 업무를 하는지 병원 안과 밖의 임상영양사의 진출 분야와 전망까지 총망라했다.

저자가 말하다_ 『위정척사』 노대환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536쪽

‘학파·인물’을 통합해 그리다…민족주의냐 유학 절대주의냐

노대환

동국대 사학과 교수

필자는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19세기 조선 사상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내부적으로 봉건체제의 모순이 전면에 드러나고 외부적으로는 서구 자본주의 세력의 침탈이 본격화되던 19세기에 조선 지식인들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에 어떤 대응방향을 모색하고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동도서기론을 박사논문 주제로 잡은 것은 그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유학을 중심으로 하되 서양의 장점은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동도서기적 사고는 유학적 경세론이 발동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다음 작업으로는 유학의 범주에서 벗어났던 문명개화론을 검토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연치 않게 한림대학교 HK사업단과 인연이 닿아 개념사학술총서의 일환으로 『문명』을 집필해 문명개화론을 정리할 수 있었다.

두 작업을 끝낸 후 생각하고 있던 주제가 척

사론이었다. 유학을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던 많은 유학자들이 당시의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고자 했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그러한 관심에서 척사론에 대해 몇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시간이 되는대로 여기에 몇 편의 글을 추가해 책을 만들 생각이었다. 마음은 먹었지만 이러저러한 일에 쫓겨 작업은 지지부진했다. 그러던 중 또 우연치 않게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부터 위정척사편의 집필을 의뢰받아 3년의 작업 끝에 이번에 『위정척사』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다. 연구자로서는 보기 드문 행운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위정척사’는 서양의 위협으로부터 유학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대응 전반을 가리키는 것으로 ‘위정’과 ‘척사’라는 두 개념이 결합된 것이다. 위정론이 정학을 보위한다는 방어논리라면 척사론은 사학을 반대하는 배척 논리로 양자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으며 전자가 목적론이라면 후자는 방법론에 해당한다. 이런 식의 사고는 동아시아 삼국에서 모두 나타나지만 조선 지식인들은 유학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유달랐던 만큼 위정척사론의 폭과 깊이는 독보적이었다.

조선 후기 사상계의 핵심적인 흐름이었던 위정척사에 대해서는 그간 많은 연구가 진행됐다. 워낙 다루어야 할 사안이 많기 때문에 그간의 연

정학 보위·사학 반대라는 방어와 배척 논리

다양한 평가 가능한 위정척사론 다시 살피기

구는 주로 학파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유림은 학파 단위로 결집해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고 이들 학파가 위정척사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므로 학파 중심의 연구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위정척사론의 많은 부분이 해명됐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아직까지 학파나 인물을 통합해 위정척사론을 전체적으로 다룬 저술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집필을 의뢰받았을 때 학파나 인물을 중심으로 정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전체를 살피게 해달라고 건의를 하게 됐다. 지금 돌이켜보면 능력을 헤아리지 못한 용감 무식한 판단이었다. 집필자 첫 모임 때 당시 안병욱 전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은 집필 기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책을 쓰는 데 전념해달라고 당부했다. 규정 매수인 2천500매를 채우려다 보니 실제 3년 대부분을 집필에 매달렸고 쫓기듯 원고를 마무리했다. 허점투성이의 책이지만 위정

척사론을 전체적으로 조망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고 있다.

유림의 위정척사론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있다. 한편에서는 대외 침략에 끝까지 저항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인 사고로 높이 평가하는데 반해 다른 한편에서는 유학 절대주의를 내세웠을 뿐이며 민족의식이나 국가 의식이 없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위정척사론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지만 위정척사론은 고려 말 수입된 성리학이 오랜 기간에 걸쳐 조선화 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중요한 정신적 자산임은 분명하다.

동아시아사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위정척사론은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상적 조류이다. 하지만 최근 학계에서 위정척사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으며 관련 연구도 부진한 실정이다. 필자의 책이 위정척사론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게 없을 듯하다.

역자가 말하다_ 『디지털 역사란 무엇인가』 한누 살미 지음 | 최용찬 옮김 | 앨피 | 204쪽

AI, 역사 소비의 혁명적 전환을 앞당기다

최용찬

아주대 강의교수·문화사

<매일경제>의 첫 서평이다. “디지털 역사학이란 디지털 기술과 컴퓨터로 활용되는 새로운 역사 연구를 뜻한다. 역사가 디지털화되면서 텍스트와 시각 자료를 아우르는 빅데이터 연구가 가능해졌다. 저자는 ‘역사학의 새로운 희망봉’이라고 은유한다. 디지털 역사학은 21세기 역사학의 구원투수일까. 구(舊)역사학으로부터의 혁명을 꾀하는 책. 앨피 펴냄.”

디지털 역사학에 관한 내용 파악이 간명하고 정확하다. 다만, ‘역사학의 새로운 희망봉’, ‘21세기 역사학의 구원투수’, ‘구역사학으로부터의 혁명’이라는 은유에 관한 오해가 약간 불편하다. 이 자리를 빌려 이는 모두 역자의 표현이라 바로 잡는다. 따라서 과도한(!) 은유에 대한 해명 책임은 전적으로 역자에게 있다.

한 마디로 한누 살미 핀란드 투르크대 문화사 교수의 『디지털 역사란 무엇인가』는 ‘구역사학으로부터의 혁명을 꾀하는 책’이라기보다 ‘디지털 역사(학) 탐사를 위한 길라잡이’라 보는 게 좀 더 차분하다. 그러나 그의 짤막한 안내서를 따라가

역사·역사학·역사가도 변해야 하는 시대정신

역사 콘텐츠의 ‘생산·유통·소비’를 뒤흔들다

다 보면, 오늘날 21세기 역사학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디지털적 전환’에 대한 혁명적 통찰력을 얻게 된다.

간단하게 이번의 전환은 종래의 전환들과 전혀 다르다. 이는 역사학 생태계 전체를 뒤흔들어 놓을 만큼 충격적이고 위력적이며 실로 거대한 전환이다. 다시 말해, 21세기 디지털 역사학은 역사 콘텐츠의 생산·유통·소비 부문 전체를 송두리째 뒤바꾸어 놓을 태세다. 이처럼 세기적 문화현상은 21세기 역사학 패러다임의 혁명적 전환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이러한 21세기 디지털 역사학의 혁명적 성격을 역사 콘텐츠의 생산·유통·소비 부문별로 간략하게 정리할 수 있다.

첫째, 21세기 디지털 역사학은 역사 연구 부문에서의 혁명적 전환을 실행하고 있다. 본문 2장 「디지털 역사의 읽기와 텍스트성」에 따르면, 대표적인 연구자는 당연히 프랑코 모레티 전 미국 스탠퍼드대 영문학과 교수다. 같은 학과 교수인 마가렛 코헨의 ‘방대한 비독’(非讀) 개념에 영감을 받은 모레티는 세계문학사 연구에서 방치된

‘방대한 비독’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읽히지 않은 책이 너무도 방대한데, 세계문학 운운하는 게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도발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그는 문학사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인 ‘멀리서 읽기’를 주창했다. 기계식 읽기에 기반한 방대한 빅데이터를 활용한 역사 연구를 수행하자는 그의 구호는 디지털 역사 혁명의 신호탄인 셈이다.

둘째, 21세기 디지털 역사학은 역사 유통 부문에서의 혁명적 전환을 감행하고 있다. 1장 「디지털 과거와 자료 문제」에 따르면, 빅데이터를 집적하는 디지털 아카이브들이 대규모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방대한 빅데이터 자료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무료로 개방한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5장 「디지털 시대의 과거 전시」에서 설명하듯이, 학교 교실을 넘어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연구 결과를 함께 공유하려는 디지털 역사가들의 노력은 대대적으로 환영받을 만하다. 전통적인 궁정 역사가의 고지식한 태도를 과감하게 버리고 공공의 역사학을 위한 열린 시민 역사가로의 대변신이기 때문이다.

셋째, 21세기 디지털 역사학은 역사 소비 부문

에서의 혁명적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5장 「디지털 시대의 과거 전시」의 ‘증강현실과 혼합현실’에 대한 논의는 역사 소비의 혁명적 전환을 앞당기는 디지털 역사학의 최첨단 분야에 해당한다. 2016년에 출시된 ‘포켓몬 GO’ 게임에 기반한 혼합현실 응용 프로그램은 역사 교육·에듀테인먼트·관광·박물관 등 다양한 목적에 쓰이고 있다.

일반 시민들이 역사를 소비하는 전당인 역사 박물관에서도 몰입형 전시 방식을 통해 혁신적인 박물관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방문객은 입장하기 전에 무료 앱을 내려받고 증강현실 장비의 도움을 받으면서 생생한 역사를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된다. 학교에서 증강현실 앱과 몰입형 학습이 연계될 경우, 디지털 역사학에 기반한 교육혁명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

역설하면, 21세기 디지털 역사학으로의 거대한 전환은 시대정신이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와 함께 역사가도, 역사학도, 심지어 역사도 변해야 한다. 그러나 디지털 역사 혁명은 역사의 여신 클리오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유혈혁명이 결단코 아니다. 누구도 피 흘리지 않는 무혈혁명이, 모두가 환영할 만한 명예혁명이, 구역사학으로부터의 혁명을 꾀하는 조용한 혁명이 돼야 한다. 그래야만 AI가 역사학계에 등극하는 그날, 우리 인간이 그래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역사학을 주관할 수 있게 되리라.

화제의 책_『인생은 찬란한 슬픔이더라』

신 복룡 지음 | 글을읽다 | 328쪽

“제외되고 쫓겨나고” 노학자의 한과 살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사진)의 자전 에세이가 출간됐다. 이 책은 한 노학자의 “연구 서적에는 없는 이야기들을 위주로 하여 엮은 것”이다. 그는 이 에세

이가 후학이나 손주에게 ‘작은 옹달샘’이 되길 바랐다. 신 교수는 자신이 좋아했던 17세기 사상가 라 로슈푸코(1613∼1680)에게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인상적이었던 건 교수 채용과 퇴임 관련 부분이었다. 신 교수는 건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했다. 시간 강사를 하던 시절 “교수실 보리차로 배를 채우고 강의실 강단을 왔다 갔다 할 적에는 뱃속에서 파도 소리가 들리고 머리가 어찔어찔했다”라고 회상했다. 지도교수의 권유로 교수 임용 관련해 총장을 만나러갔다. “인사위원회도 없이 총장 마음대로 뽑던 시절이었다.” 빈손으로 갈 수 없어 아내가 혼수로 가져온 은수저 한 벌을 가져갔다. 대통령의 문장(紋章)이 음각으로 새겨진 것이었다. 하지만 총장은 은수저를 문갑에 넣으며 좋은 말(?)만 해주고 퇴짜를 놓았다.

우여곡절 끝에 교수가 되고서도 고난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전공 적합성이 없는데도 재단 기부를 빌미로 교수 임용에 응모한 자신의 제자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신 교수는 여자 조교와 동거한다는 유언비어에 시달려야 했다.

퇴임할 때도 소문에 시달렸다. 신 교수가 심사 위원으로 참여해 채용했던 가장 막내인 젊은 교수는 “더 있으려고 수 쓰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나가시죠”라고 말했다. 그래서 신 교수는 52년 동안 몸담았던 연구실에서 “그 흔한 정년퇴직 고별 강연이나 회식 한번 없이 일요일에 조용히 학교를 떠났다”라고 적었다.

이 외에도 신 교수는 건국대 출신 교수라는 이유(?)로 서러움을 당했다. 기조 강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명문대 출신 교수들의 고집에 의해 단행본 출판에서 제외된 적도 있었다. 특히 2019년 한국-헝가리 수교 30주년 기념 한국정치학회 학술회 때 일어난 일은 두고두고 한(恨)을 남겼다. 심지어 그때 신 교수는 학술회에 도움을 준 후였다. “… 학회 명예 이사가 건국대학교 교수라는 이유로 식당에서 쫓겨나던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살의를 느낀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심지층 저장소

아테네 훅 지음 | 서요성 옮김 | 산지니 | 320쪽

장편소설 『빌헬름 텔 인 마닐라』로 스위스 연방문화부가 수여하는 스위스 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어권 문학의 떠오르는 소설가인 저자가 핵폐기물 문제를 다룬 이 책으로 다시 한국 독자들을 만난다. 전업 작

가로 활동하기 전까지 필리핀·상하이·한국 등의 해외 체류·대학 강사·노조 간사·언론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은 그의 독특한 작품 세계와 주제를 형성했다. 이 책은 전 세계가 직면한 핵폐기물 문제를 다룬 소설로, 저자는 많은 사람이 외면하고 싶어 하는 핵폐기물 문제를 파고들어 소설을 써 내려갔다.

연등문화의 역사

백창호·오대혁 지음 | 담앤북스 | 538쪽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이면 거리마다 연등 물결이 넘실대고, 연등행렬에는 불자는 물론 종교와 국경을 초월해 수십만 명이 참가한다. 하지만 연등회가 언제 시작됐는지, 어떤 성격의 행사였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가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연등회는 어떻게 형성돼 전해져 왔을까. 이 책은 한국 연등회의 역사와 변천 과정을 자세히 밝혔다.

근대국학의 탄생

이용주 지음 | 이학사 | 615쪽

1920년대와 1930년대에 탄생한 국학은 어디까지나 정리와 청산을 목표로 하는 학술 연구였고, 학술 연구로서 국학은 몇 가지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호적으로 대표되는 과학적 정리로서의 국학

이었다. 고힐강으로 대표되는 고사변파는 호적이 제시한 과학적 연구를 극단으로 밀고 나가 의심의 국학을 발전시켰다. 둘째는 양계초로 대표되는 중국적 덕성의 회복을 위한 국학이고, 셋째는 풍우란이 시도한 계승을 전제로 하는 철학적 국학이다. 1950년 이후 풍우란의 방향은 크게 달라졌다.

스피노자의 형이상학

김은주 지음 | 민음사 | 408쪽

세계의 모든 문제가 증폭하는 시대다. 자본주의 비판에서 인지과학·문화이론에서 신유물론까지 지금 최전선에 있는 사상들의 중심에는 바로 스피노자가 있다. 칸트가 인간 이성의 한계를 설정했다면, ‘비

판’ 이전에 스피노자는 이성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탐구했다. 무한자인 신 혹은 자연에 대한 스피노자의 사유가 오늘날 생생하게 귀환하는 이유다. 이 책은 20여 년에 걸쳐 근대 철학을 연구해 온 저자의 첫 번째 학술서다.

디지털 커먼즈 AI 시대의 생존법

박승억 외 9인 지음 | 마농지 | 304쪽

오늘 우리는 디지털 영토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이나 SNS 등은 일상에 스며든 지 오래고,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 열풍에 이어 최근에는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범용 인공지능AGI 시대의 도래가

논의되고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테크놀로지가 우리 삶을 혁신하는 듯 보이지만, 디지털 세계는 새로운 유형의 차별을 양산한다. 디지털 플랫폼의 내부자와 외부자 구분, 정보 부자와 정보 빈자의 차별과 같은 디지털 격차만 아니라 지리 문화적 격차도 벌려놓고 있다.

대한민국 대전환을 위한 혁신 아젠다 1

이창현 외 9인 지음 | 푸른나무출판 | 292쪽

대한민국은 다중적 위기 속에 고통받고 있다. 몇몇 현상의 극복을 넘어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대전환기의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이 행복한 선진 국가의 길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혼돈과 퇴행을 거듭하다가 갈등과 침체의 늪에 빠져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나라로 추락할 것인지 갈림길에 서 있다. 이제 새로운 공화국을 만든다는 자세로 대한민국 대전환의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이아생트의 정원

앙리 보스코 지음 | 정영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427쪽

“현대의 가장 위대한 몽상가”라 일컬어지며, 아름답고도 비밀스러운 상상의 세계를 감미롭게 펼쳐 보이는 저자의 이 책이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출간됐다. 이 책은 보스코의 대표작인 ‘이아생트 3부작’

의 완결작으로 『반바지 당나귀』(민음사), 『이아생트』(워크룸 프레스)에 이어 그 대미를 장식한다. 그러나 여느 3부작과 달리 이 세 작품에는 줄거리가 연결된다거나 인물들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거나 하는 일관성이 없다. 각기 다른 화자들을 내세웠을 뿐만 아니라 출현 방식은 더 심하게 단속적이다.

성性의 명서名書 읽기

정창권 지음 | 지성인 | 300쪽

한국은 성(性)에 대해 보수적인 나라로 유명하다. 우리는 성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기보다는 부끄럽고 숨겨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심지어 성은 부도덕이자 죄악이요, 두려움의 대상으로까지 생각한

다. 이는 조선시대 성리학과 조선후기 이래의 기독교 등 사상, 종교의 영향도 있지만, 학교에서 가르치는 성교육의 영향도 매우 크다. 우리나라 성교육은 “안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라는 성폭력 예방 교육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통일은 세계사적 의미…북방 국가와 ‘문화’ 협력 다진다

21세기 학문의 신대륙을 찾아서 ❼

국가·사회 난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는 인문사회 연구의 대표적인 성과 사례를 소개한다. 기존 인문사회 학문분야의 벽을 넘어선 새로운 문제의식과 융합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혁신 연구의 결과다. 인문사회통합성과확산센터(센터장 노영희 건국대 교수)는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인문한국플러스사업(HK/HK+)과융합연구지원사업의 연구성과 우수성, 파급효과 및 활용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6명의 심사위원이 우수성과 20곳을 선정했다.

통일환경 조성 위한 ‘북방 문화 접점’ 확인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

통일은 요원한 것일까. 통일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오지 않을 미래처럼 대하는 것도 미래 한국을 설계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분단 이후 남과 북은 치열하게 대립하며 각자의 통일을 꿈꿨다. 지금은 남북 정부의 교류가 거의 단절된 상태이고 통일에 대한 논의 또한 우리 사회 내부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분단과 통일이 우리에게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북방 14개 국가와 초국적 협력과 소통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는 한국을 둘러싼 북방 국가와 문화·경제적 접점을 확인하며, 통일을 전제하고 준비하는 「초국적 협력과 소통의 모색: 통일 환경 조성을 위한 북방 문화 접점 확인과 문화 허브의 구축」 연구를 진행 중이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중국학과)은 “통일은 남과 북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가깝게는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열강과 멀리는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있는 동북아, 유라시아의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세계사적 의미가 있다”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통일이 언젠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제로 신북방 14개 국가와 문화적 접점을 확인하고, 초국적 협력과 소통으로 통일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14개 국가는 러시아, 중국(동북 3성), 몽골,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조지아, 몰도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대만 국립정치대학에서 현대 중국 정치경제학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국 상하이 사회과학원 영예(榮譽) 교수이며 동북아역사재단과 해군발전위원회 자문위원이다.

르크메니스탄이다.

북방의 의미 밝히고 다각적 접점 확인

연구팀은 1단계 기반 구축 연구 단계에서 정체성의 파악, 접점의 모색과 확인, 공감 창출을 핵심 키워드로 삼았다. 한반도와 북방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문화적 접점을 모색해 한국과 북방 국가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과정이다.

연구팀은 2021년 한 해 동안 일간 <디지털 타임스>에 매주 ‘북방문화와 맥을 잇다’라는 주제로 연재한 칼럼을 기초로 발간된 「북방연구 시리즈: 우리에게 북방은 무엇인가」를 통해 이를 설명했다. 총 10권으로 구성된 시리즈에는 우리가 북방을 바라보는 이유, 우리와 북방을 잇는 문화 교차로인 동북 3성, 모자이크와도 같은 유라시아

사업단은 2021년 4월, 한반도-북방 문화전략포럼을 발족해 매년 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북방국가 주한외교사절과 북방 관련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제3회 포럼 참가자들이다. 대통령실을 비롯해 현지 주재 아제르바이잔·조지아·카자흐스탄·타지키스탄·튀르키예·키르기즈공화국 대사와 주요 외교사절,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실 산하 전략지역연구소 및 중앙아시아 국가 전략연구소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의 다양한 문화,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다채로운 해석이 담겨있다.

2단계 심화·창의연구에서는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할 것인지, 그리고 서로의 편의와 이익을 보장하는 호혜적인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탐구했다. 연구소 창립 해인 2021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는 ‘한반도-북방 문화전략포럼’이 대표적이다.

포럼에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튀르키예, 아제르바이잔, 타지키스탄, 키르기즈공화국, 조지아의 외교사절과 기관장·연구소장이 참석해 외교·안보, 통상·경제, 문화·사회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문화·사회 세션은 각 나라의 문화적 접점을 모색하고, 공감대를 극대화하는 데 주력했다. 세계태권도연맹이나 문화재단 등과 같은 주요 단체를 중심으로 교류 논의가 진행됐고, 각국 대사관 문화부와 한국관광공사, 문화체육관광부 등도 참석했다.

지난해 12월에 열린 제3차 ‘한반도-북방 문화전략포럼’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진행됐다. 여기에는 코트라(KOTRA), 코이카(KOICA), 경제 관련 현지 연구소와 주요 기업이 함께 협력 방안과 관계 발전을 논의했다. 연구팀은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실 산하 전략지역연구소와 공동으로 개최해 더 뜻깊은 자리가 됐다고 밝혔다.

강준영 단장은 “연구팀은 통일을 준비할 때 다양한 구성원의 통합과 소통이 이뤄질 방안을 연구한다”라며 “국민과 정부뿐만 아니라 국제 NGO와 같은 비국가행위자, 심지어 사회 기반 시

통일이 언젠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제로 북방 국가와 문화적 접점을 확인하고 초국적 협력과 소통으로 통일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설 등인 비인간 행위자까지 포함된다. 이 모든 구성원이 합일점을 찾아야 갈등과 혼란을 줄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통일을 준비하는 연구인력 양성

국제지역연구센터는 세계적 명성을 보유하고 있는 평화연구기관인 오슬로평화연구소(PRIO)와 공동으로 영문학술지 『IASR(International Area Studies Review)』을 연 4회 발간하고 있다. 학제 간 연구를 담아내는 지역학 전문학술지로 KCI, SCOPUS, ESCI에 등재돼 있다. 학제 간 연구를 추구하며, 정치학, 경제학, 윤리학, 사회학, 문화학, 법학, 예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논문을 게재하고 있다.

연구소는 사업단 출범 이후 연구 아젠다 확산을 위해 다언어 학술지인 『문화와 세계』를 2021

년부터 발간하고 있다. 연구소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세계 각국의 언어 그대로 집필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한국어로 작성된 논문이 12건인 반면, 영어와 기타 외국어 논문은 30건을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한국연구재단 등재후보지로 선정됐다.

연구팀은 “영어를 제외한 외국어 논문의 경우 반드시 영어로 작성된 개요서를 덧붙여 적도록 해 연구 성과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이 이번 연구에서 중점을 두는 또 다른 부분은 통일에 우호적인 여론을 구축하고 관련 연구 인력을 양성하는 데 있다. 학문후속세대 양성을 위해 논문공모전을 매년 개최하고 스터디팀을 지원한다.

스터디팀은 ‘한반도와 북방지역 문화 접점 탐구’라는 주제로 학부생·대학원생이 함께 모여 공부한다. 사업단의 연구교수들은 멘토로서 스터디 과정에 참여해 연구 결과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스터디 팀원인 강예주 학생은 지난 2022년 SCOPUS 등재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해 게재됐다.

공모전에서는 북방지역에 속하는 국가를 중심으로 해당 지역과 한반도의 역사적·사회적·문화적·정치적 연결성과 접점, 그리고 향후 협력관계 증진을 위한 방향 모색에 관한 논문을 선정한다.

임효진 기자 edtor@kyosu.net

연구 개요

연구지원사업 HK+사업 연구팀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

연구과제명 초국적 협력과 소통의 모색: 통일 환경 조성을 위한 북방 문화 접점 확인과 문화 허브의 구축

연구분야 국가전략 연구기간 2020.5.1. ~ 2026.4.30

연구성과

한반도-북방 문화전략포럼 개최: 총 3회, 국제학술대회 개최: 총 19회, 국내학술대회 개최: 총 19회 ,

콜로키움 개최: 총 34회, 논문 발간(국제저명학술지 및 한국연구재단 등재지): 총 102편, 저역서 및 총서 발간: 총 23권

공감·상생을 통한 폭력 없는 스포츠세상을 위해…역지사지형 VR 교육콘텐츠

스포츠윤리 VR 교육콘텐츠 개발

전상완 국립목포대 체육학과 교수

지난 2020년,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인 고 최숙현 선수는 팀 내 가혹 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교육계의 크고 작은 비윤리적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체육계 폭력과 비리를 막기 위해 같은 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윤리센터가 문을 열었다. 이 센터에는 지난 3년간 전국 학교 운동부의 인권침해 신고가 82건 접수됐다. 하지만 이 중 실제로 징계나 수사 의뢰가 요청된 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근절되지 않는 체육계 폭력 문제를 근절하고 예방하기 위해 전상완 국립목포대 교수(체육학과)는 VR을 이용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한다. 「공감 & 상생의 스포츠 문화를 위한 스포츠윤리 VR 교육 콘텐츠 개발」이다. 이번 연구에는 역지사지 정신을 바탕으로 체육인문학·공학·문학·연기&연출 등 다양한 학문이 융합했다.

전상완 교수는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체육계에 몸담아 오면서 전문 운동선수들이 겪는 비윤리적 행위 문제에 늘 가슴 아팠고 이런 관심의 시작이 연구를 직접 수행하게 된 계기가 됐다”라고 연구 배경을 밝혔다. 전 교수는 “성적만이 그들의 미래를 결정짓는 냉혹한 성적 제일주의 문화는 결국 폭력이라는 비윤리적 문제를 양산하게 된 결정적 원인”이라고 문제점을 꼬집었다.

연 1회 1시간 교육, 폭력 근절 어려워

그동안 체육계 폭력 문제에 대한 예방 교육이 없었던 건 아니다. 종목별로 스포츠윤리 교육을 진행하다 2021년부터는 국민체육진흥법 2·3차 개정으로 법정의무교육으로 제도화했다. 하지만 ‘성폭력 등 폭력 예방교육’, ‘스포츠인권 교육’ 등은 고작 1년에 1시간을 교육하는 데 그친다. 이런 방법으로 체육계 인권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

전상완 국립목포대 체육학과 교수는 경기대에서 스포츠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가천대 운동재활학과 연구교수, 지능형 홈케어 기반구축사업단 총괄센터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스포츠사회학회·한국체육정책학회에서 이사로 활동 중이다.

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이뤄지고 있는 일방적인 지식 전달 교육을 대체할 수 있는 효과적인 교육방법을 찾는 데 주력했다. 실제 시나리오에 기반한 VR 교육 콘텐츠 개발이다.

전 교수는 “국외에서 4차 산업 기술을 활용해 비윤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가 다방면으로 시도되는 걸 보고 국내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번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영국은 아동 관점의 학대·방임 경험을 토대로

스포츠윤리 교육에 가상현실을 적용해 기존 교육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생동감 있는 간접 체험으로 교육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제작된 VR 교육 서비스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은 아이에 대한 공감과 이해도를 높일 수 있고, 어른의 행동에 변화를 줘 아동과 가족의 삶을 개선하는 데 활용한다. 호주는 전문 선수의 약물 도핑 문제를 해결하고자 제도적인 차원에서 가상현실 기술을 적용한다.

연구팀은 “스포츠윤리 교육에 VR을 적용하면 기존 스포츠윤리 교육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 생동감 있는 간접 체험을 통해 교육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선배보다 지도자 폭력 대부분…언어폭력에 상처

현실적인 시나리오를 구성하기 위해 연구팀은 현직 운동선수와 지도자, 관계자를 비롯해 관련 전문가와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상위 범주는 전문 스포츠 문화, 경기 중 폭력적 행위, 체벌과 폭력의 차이 등을 중심으로 인터뷰했고, 하위 범주는 경기 중 폭력 행위, 스포츠에서 폭력 허용 범위 등으로 나눠 조사했다.

연구 결과, 선배보다 지도자의 폭력이 피해자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지도자는 생계유지와 생존으로 인해 선수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이 경우 대부분의 피해

연구 개요

연구지원사업 한국연구재단 2022년도 일반공동연구지원사업(융복합연구)

연구과제명 포스트휴먼 시대, 윤리적 딜레마 해결을 위한 공감스토리-VR 개발 및 적용 : 스포츠 성폭력을 중심으로

연구팀 국립목포대 스포츠산업연구소(연구책임자 전상완 교수)

융합분야 스포츠사회학 + 스포츠철학 + 컴퓨터공학 + 연극학

연구기간 2022.07.01 ~ 2025.06.30

연구성과

1) 국내 학술대회 : 2회, 2) 국내외 학술대회 발표 : 6회, 3) 총서 및 저서 발간 : 총서 2건저, 서 1건

4) 논문 게재 : 국외 1편/국내 7편, 5) 세미나 및 워크숍 정기 개최 : 세미나 월 2회, 워크숍 연회 2

5) MOU : 2건, 6) 스포츠 폭력 시나리오 : 3건, 7) 홍보 및 기타 : 홍보영상 1건, 홍보 리렛플 1건, 소식지, 특강

자는 가해자의 폭력 이유와 행위에 대해 한편으로 이해한다고 답했지만, 공감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피해자는 신체 폭력 경험 못지않게 언어와 정서 폭력에서 더 깊은 상처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상완 교수는 “실제 피해 사례를 선별해 시나리오를 제작하고,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해 현실감 있게 재현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라며 “기존의 형식적이고 일률적인 교육의 한계를 극복해 스포츠윤리 교육이 추구하는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라고 밝혔다.

‘역지사지’ 정신으로 공감·상생 시나리오 제작

연구팀은 인터뷰에서 스토리 핵심 요소를 추출해 3건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시나리오에는 하나의 폭력 사례에 각각 피해자·가해자·방관자 관점에서 바라보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연구를 활용한 교육은 몰입도를 높이고 상호작용과 학습효과를 키울 수 있다. 또한 건강한 스포츠윤리문화 확립에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연구팀은 완성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VR 콘텐츠를 제작했다. 우선 모션 캡처 카메라로 다수의 연기자를 촬영해 형상과 동작 자료를 수집했다. 안면 표정 추적 기술을 활용해 연기자의 표정을 아바타에 적용하고, 콘텐츠 배역에 사용자 얼굴로 아바타를 변경할 수 있도록 만들어 몰입감을 높였다.

여기에 뇌파 장치, 심박수 측정기, 호흡 측정 센서, 동공 추적용 HMD(머리 착용 디스플레이)와 같은 측정 방식을 종합해 전체 콘텐츠에 대한 효과성을 평가하고, 콘텐츠의 어떤 부분이 사용자에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석할 예정이다.

개발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연기자들이 연기를 하고, 모션캡처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다.

전 교수는 “지금까지 스포츠윤리 교육에 대해 반성적 사고로 분석하고 비판한 연구가 거의 없었다”라며 “현행 스포츠윤리 교육에 대한 고찰이 최초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연구 가치가 있다” 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또한 “지금까지 정보통신기술은 체육계에서 경기력 향상이나 건강관리 차원으로 활용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이번 연구를 통해 인문사회학 기반에서 교육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다는 시사점을 제공한다”라고 밝혔다.

임효진 기자 editor@kyosu.net

“국가 발전의 핵심축 역할·혁신생태계 선도에 동참 당부”

김정겸 충남대 제20대 총장 취임식

‘미래사회를 선도할 강한 대학’ 비전 선포

김정겸(사진) 충남대 제20대 총장 취임식이 지난 9일 열렸다. 이날 취임 40일 만에 비전 선포식도 함께 진행됐다.

김정겸 총장은 충남대의 2040년 비전으로 ‘미래사회를 선도할 강한 대학 THE STRONG CNU, MEGA UNIVERSITY’를 선포했다. 김 총장은 비전 2040 달성을 위해 4M(Mobile, Multifunctional, Mixed, Mega) 전략을 바탕으로 비전(Vision)을 실천(Practice)하는 4 MVP 전략을 제시했다.

Mobile 전략은 교육부문에서 AI 기반 개인 맞춤형 교육 인프라와 유비쿼터스 첨단 온·오프라인 학습 플랫폼을 통한 상시 온라인 학습 시스템 구축, 대학·기업·연구소·지역이 협력하는 공유대학 확대, AI·코딩 등 디지털 교육 확대, 인문·예술·외국어 교육과 첨단 Neo-융복합 창의 교육 강화를 통한 충남대 고유의 교육 모델인 CNU Strong+ 모델 정립에 나선다.

Multifunctional 전략은 산업구조와 사회 변화에 맞춘 인력양성 및 수요자 중심의 다

기능적 대학 체계로의 전환을 목표로 한다. 지역사회와 국가를 위한 우수 인재를 육성하고 지역 공동체 강화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통한 지역균형 발전 임무를 수행할 계획이다.

Mixed 전략은 대학과 출연(연), 기업, 지역 공공기관과의 융합과 벽허물기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기업(Business), 연구소(Research Institute), 공공기관(Governmental Agencies) 등 외부 우수 자원을 대학에 유치하는 BRING in U 전략을 통해 글로벌 탑티

어 연구중심 교육혁신을 이끌고, 이러한 연구 결과를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성과 환류 체계를 구축해 대학의 자원을 낙후된 지역 발전에 활용하는 BRING out U 세부 전략을 추구한다.

마지막 Mega 전략은 충남대의 캠퍼스를 대덕 및 보운캠퍼스는 연구중심 및 사회공헌, 글로벌 국제화 추진 거점 역할을, 세종캠퍼스는 세종충남대병원 기능 강화, 의과학 분야 및 국가정책 전문인력 양성 특성화, 내포캠퍼스는 첨단그린융합 특성화, 신동캠퍼스는 바이오산업 분야 등 각각의 캠퍼스 특성화를 추진한다. 캠퍼스를 유기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통합 운영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충남대는 4 MVP 전략을 통해 대전·세종·충남의 발전을 선도하는 국내 최우수 국립대, 지역과 한국을 넘어 아시아와 세계의 중심이 되는 최고의 명문 대학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김정겸 충남대 총장은 “개교 72년을 맞는 충남대는 지역과 함께하는 세계적인 대학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해 오고 있다”며 “급격한 변화와 위기 속에서 충남대의 도약

을 위해 2040 비전으로 ‘미래 사회를 선도할 강한 대학, THE STRONG CNU, MEGA UNIVERSITY’를 선포한다”고 말했다.

김정겸 총장은 “충남대의 2040 비전을 반드시 실현하고 미래 사회를 선도할 강한 대학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네 가지 전략과 실천 계획을 4 MVP로 설정했다”며 “충남대는 지역은 물론 국가 발전의 핵심축 역할을 수행하고 글로벌 고등교육과 혁신생태계를 선도해 나가기 위해 모든 분께서 동참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김 총장은 충남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교육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충남대 교무처장·기초교양교육원장·교육연구소장·AI융합교육연구소장·학부교육선도대학육성사업단장을 지냈고, 대통령직속 국민 통합위원회 위원, 교육부 교육정책자문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이날 취임식에는 이상민 국회의원, 장종태 국회의원 당선인, 황정아 국회의원 당선인, 설동호 대전시 교육감, 한기온 총동창회장, 최인호 교수회장, 정상철 전임 총장 등이 참석했다. 최승우 기자 editor@kyosu.net

“신임교원 연구실 안전 구축 필요하다”

국가거점국립대총장협의회, 교육부에 예산 요청키로

거점국립대 총장들이 학내 연구실 안전관리 강화가 필요하다며 교육부에 관련 예산을 요청하기로 했다.

국가거점국립대총장협의회(회장 김일환 제주대 총장)는 지난 2일 충북대에서 2024년 제2차 정기회의를 열고, 신임교원의 연구실 안전 구축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협의회에 따르면, 현재 대학은 무전공, 문·이과를 넘는 융복합 연구와 학과 신설 등으로 안전 장비와 안전 설비를 필요로 하는 학과와 연구실이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교육부 국립대 실험실습실 안전환경 기반조성사업을 통해 연구실 환경개선과 안전장비를 지원할 수 있었으나, 올

국가거점국립대총장협의회는 지난 2일 충북대에서 2024년 제2차 정기회의를 열고 신임교원의 연구실 안전 구축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국가거점국립대총장협의회

해 들어 교육부의 지원 규모가 대폭 감소돼 연구실 안전 관련법 이행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협의회는 설명했다.

이에 따라 거점국립대 총장들은 지난해 수준으로 안전환경 기반조성사업 예산을

배정해 줄 것을 교육부에 요청하기로 했다. 이들은 연구 활동 종사자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고, 연구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선 신임교원의 연구실부터 안전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가거점국립대 총장협의회는 강원대·경북대·경상국립대·부산대·서울대·전남대·전북대·제주대·충남대·충북대 등 10개 거점 국립대 총장들로 구성된 협의체다.

최승우 기자 editor@kyosu.net

한성대, 인도네시아 과학기술공무원

석·박사 과정 개설 협의

지난 7일 인도네시아 국가연구혁신청 제1차관과 간담회

한성대는 인도네시아 국가연구혁신청과 인도네시아 국가과학기술공무원 역량 강화를 위한 석·박사학위과정 개설과 과학기술 교류에 대한 협의를 진행했다.

한성대(총장 이창원)는 지난 7일 교내 상상관 9층 대회의실에서 인도네시아 국가연구혁신청 제1차관과 교육협력 및 과학기술 교류를 위한 대표자 간담회를 열었다.

인도네시아 국가연구혁신청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주관 ‘2024 K-Inonovation Partnership Program’에 참석과 한국국제협력단의 ODA 사업인 ‘과학기술혁신부문에 대한 정책 자문 및 교육훈련사업’참여차 한국에 방문했다.

이번 간담회에는 이창원 한성대 총장, 박두용 한성대 대학원장, 정진택 한성대 지식서비스&컨설팅대학원장, 이형용 한성대 지식서비스&컨설팅 대학원 주임교수, 주형근 한성대 지식서비스&컨설팅대학원 주임교수, 윤한성 한성대 지식서비스&컨설팅대학원 교수, 조문석 한성대 기획조정

처장, 김지현 한성대 글로컬협력처장과 보디아스또띠 온도위료 인도네시아 국가연구혁신청 제1차관, 두디 히다얏 인도네시아 국가연구혁신청 국장, 아뉴게라 유카 아스마라 인도네시아 국가연구혁신청 연구원 및 임덕순 前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 김은주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등 관계자 20여 명이 참석했다.

보디아스또띠 온도위료 인도네시아 국가연구혁신청 제1차관은 “한성대와 기술교류 및 연구협력을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며 “상호간의 과학기술 교류와 함께 연구와 연구정책부분에 대해서도 공유하며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창원 한성대 총장은 “인도네시아의 연구와 개발의 중요 핵심 기관인 인도네시아 국가연구혁신청과 교류할 수 있어 기쁘다”며 “앞으로 우리대학의 교육시스템 및 인재양성 프로그램 교류에 한성대의 역량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계명대 제1회 계명극재회화상에 김서울 작가

신진예술가 지원 위해 계명예술상 제정

계명대(총장 신일희)는 창립 125주년을 맞아 문화예술 분야의 사회적 위상 제고와 잠재력있는 신진 예술가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계명예술상을 제정했다. 계명예술상은 미술 창작 부문의 ‘계명극재회화상’과 시 창작 부문의 ‘계명신동집시문학상’으로 나눠 격년으로 대상자를 선정해 시상한다.

제1회 계명극재회화상에는 김서울 작가(36세·사진)가 선정됐다. 김 작가는 국민대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서울문화재단의 최초예술지원에 선정됐다.(2019, 2022) 김 작가는 스스로를 시각예술종사자라고 소개하며 막연한 낭만적 예술보다 정확한 관념으로 해묵은 색채·공간·물질의 과제 안에서 다각적인 탐구에 대한 작업관으로 실험적 연구를 지속해왔다. 그 동안의 작품에는 붓·색채·캔버스·액자 등 미술의 기본적인 재료를 산업적 생산·유통·소비되는 물질이면서 사회문화적 코드라는 관점에서 깊고 섬세하게 연구하면서 새로운 클래식의 기준과 창작의 여정을 나타내고 있다.

심사위원회는 추천 후보의 관계자를 배제한 5명으로 심상용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 고석원 부산대 교수, 김석모 솔올미술관 관장, 김윤희 계명대 미술대학장, 장태묵 계명대 회화과 교수가 심사에 참여했다. 2차례의 평가과정에서 김 작가의 작품은 뜨거운 추상으로 보이나 색과 색의 틈에서 보여지는 이성적인 통제력, 절제와 계획된 움직임의 흔적, 그리고 재료에 대한 분석력과 화면구성의 실험정신이 돋보인다고 평가됐다.

심사위원장인 심상용 교수는 “김서울 작가의 작품은 뜨거운 추상으로 보이나 색과 색(틈)에서 보이는 이성적 통제력을 엿볼 수 있다”며, “절재와 계획된 움직임의 흔적과 재료의 분석력과

화면의 절재력 등 실험정신이 돋보인다”라고 심사평을 전했다.

김윤희 계명대 미술대학장은 “김 작가의 작품에 대한 깊은 탐구정신과 예술적 표현은 한국 현대미술의 영역과 영향력이 확장되어가는 현시점에서 한국 추상화계 거장인 극재 정점식 선생님의 업적과 정신을 계승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앞으로 본질적 가치를 잃지 않으면서 실험적으로 도전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신진 미술작가를 지속적으로 발굴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계명극재회화상의 추천위원은 전국 미술관련 기관의 관장 및 학예사, 미술전공 교수, 한국미술협회에서 위촉해 자격기준인 추천일 기준 개인전 실적이 있는 40세 이하의 대한민국 국적의 신진 작가로 11명의 후보를 추천받았다.

심사는 2회에 걸쳐, 1차 심사에서 최근 3년 내 대표적인 10개 개인 작품이 포함된 서류심사를 통해 4명을 선발했고, 2차 심사에서는 실물 작품 평가와 인터뷰를 통해 2명을 선발해 계명예술상위원회에서 최종 심의해 선정했다.

수상자 특전은 상패 및 상금 천만 원, 그리고 계명대 극재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게 된다. 시상식은 오는 29일에 열린다. 전시는 오는 2024년 5월 27일부터 6월 1일에 계명대 내 극재미술관 블랙갤러리에서 열린다.

홍용택 교수,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 석학회원 선정

홍용택 서울대 교수(전기정보공학부·사진)가 올해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 석학회원에 선정됐다.

홍 교수는 신축성 디스플레이 기술 분야의 전문가로 인쇄공정 기반으로 신축성 기판 상에 트랜지스터, 발광소자, 센서, 구동 칩 등을 집적해 늘어나

는 디스플레이와 인쇄회로기판, 신체부착형 신축성 웨어러블 전자기기를 구현하는 기술을 개발해 학술적 공헌을 인정받아 석학회원으로 선정됐다.

홍 교수는 서울대 전자공학과 학사·석사 졸업 후 미국 미시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신축성 전자 분야에서 연구 활동을 하며 2019년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2020년 머크 어워드, 2021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 등을 수상했고, 2023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으로 선정됐다.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는 1963년부터 매년 역대 석학회원의 추천과 석학회원 선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석학회원을 선정한다. 이는 학회 회원 중 0.1% 이내로 매년 전 세계에서 5인 내외로 선정된다. 올해 홍 교수가 선정되면서 한국 국적을 가진 국제정보 디스플레이학회 석학회원은 총 22명이 됐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에 이삼열 한림대 의대 교수

이삼열 한림대 의대 교수(사진)가 지난 7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 3대 원장에 임명됐다. 임기는 3년이다.

이 원장은 가톨릭 의과대학을 나와 순천향대에서 석사, 전북대에서 박사를 했다. 한림대 강동·

강남성심병원에서 교수로 재직했고,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병원장 및 사단법인 생명잇기 이사장을 역임했다.

이삼열 원장은 “의사로서 손으로 아픈 이들을 위해 돌봐왔다면, 이제는 마음으로 기증자와 기증자 유가족의 숭고한 마음을 이해하고 아름다운 기증 문화를 만들어 가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국내 유일 장기 및 조직 구득기관으로 뇌사장기기증과 인체조직기증 업무를 수행한다.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33대 대한소아치과학회장에 이난영 조선대 교수

이난영 조선대 치과병원장(사진)이 지난달 28일 제33대 대한소아치과학회 회장에 취임했다. 임기는 2년.

이난영 신임 회장은 “소아치과 65년 역사상 첫 여성회장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맡게 돼 막중한 책

임감과 부담감을 느낀다”며 “저출산시대 소아치과 학회원의 개원환경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주요 과제로 △대한소아치과 학회지 SCI, SCOPUS 등재 △학회 홈페이지 개편 및 활성화 △진정법 세부인정의 제도시행 △학회 대국민 홍보 강화 △회원 권익보호 및 의료질서 문란행위 신고센터 신설 등을 꼽았다.

대한소아치과학회는 1959년 창립된 분과학회로 소아 및 청소년의 구강건강에 대한 연구와 교육, 학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1천400여명의 회원이 있다.

김항집 광주대 교수, 국토교통부 민간위원 위촉

김항집 광주대 교수(도시·부동산학과, 사진)가 국토교통부 노후계획도시정비특별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위촉됐다.

특별위원회는 기본방침의 수립·변경, 국토부 장관이 승인하는 기본계획, 기본계획에 포함된 국가

지원사항 및 위원장이 상정한 안건 등을 심의하는 법정 기구다.

국토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정부위원 13명과 민간위원 16명 등 모두 30명으로 구성된 특별위원회에서 김항집 교수는 도시계획·설계 분야를 맡아 오는 2026년 4월 26일까지 2년간 활동하게 된다.

김항집 교수는 “인구 고령화와 도시 인프라의 노후화로 경쟁력이 저하되고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도시의 혁신적인 재생과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변헌수 전남대 교수, 한국화학공학회

‘도레이화학공학상’ 수상

변헌수 전남대 교수(화공생명공학과·사진)가 지난달 24일부터 27일까지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국화학공학회에서 2024년도 ‘도레이화학공학상’을 수상했다.

‘도레이화학공학상’은 화학공학 분야에서 우수

한 학술적 업적 및 기술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연구자에게 주는 상이다.

변헌수 교수는 화공 및 고분자 열역학, 초임계유체공정, 분리 공정 연구를 기반으로 화학공학 전반에 걸쳐 뛰어난 업적을 인정받았다. 특히 최근 2년간 SCI에 등재된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면서 Korean Journal of Chemical Engineering에 게재된 논문을 가장 많이 인용한 저자로 선정돼 ‘영문지 공로상’도 동시에 수상했다.

탄소 중립, ‘재생 에너지·원전’ 동시 확대가 실마리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40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정치와 경제·사회와 문화·과학기술·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달 27일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41강은 남성현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의 「기후 위기 담론의 과학적 실체」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최근까지 급격한 경제 성장과 산업 발전을 이뤄왔다. 우리나라는 이제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진국이다. 는 2022년 세계 국력 순위에서 우리나라를 6위에 올려놓은 바 있다. 미국·중국·러시아·독일·영국에 이어 6위이다. 이 국력 순위에는 경제력뿐만 아니라 군사력도 포함돼 있기에 우리나라가 프랑스와 일본을 제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이렇게 대단한 국력 신장에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원자력의 발전이 그중 중요한 하나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1978년 고리 1호기가 첫 가동을 시작한 이래 원자력은 우리나라 경제와 산업뿐만 아니라 국민 생활에 큰 활력을 제공해왔다. 이는 원자력이 풍부하고 안정적인 전력을 저비용으로 공급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최근 2년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원자력은 에너지 안보 강화의 핵심 수단으로서 그 가치를 입증했다. 향후 기후 변화 대처와 인공지능(AI) 활용 급증 시대에도 원자력은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에 활력을 제공하는 핵심 에너지원으로서 역할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저비용 전력 공급이 가능했던 기저에는 원자력 발전이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지난 45년간 우리나라에서는 27기의 원전이 운영되면서 약 4.4킬로와트시(504기가와트이어에 해당한다. 1기가와트이어는 1기가와트의 한 해 동안 발전량이다)의 전력을 공급해왔다. 이는 그간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전력의 32.2%에 해당된다. 2005년까지 우리나라 평균 원자력 발전 비중은 40%에 육박했다. 그러다가 탈원전 기간의 정점인 2018년에는 23%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다행히 지난해에는 31% 수준을 회복했다.

원자력 발전 단가는 LNG보다 훨씬 싸고 심지어 석탄보다도 싸다. 전체 전력 공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원자력이 발전 단가가 계속 낮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전기 요금이 2021년까지는 충분히 싸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원자력의 발전 단가가 낮고 그 변동이 적은 것은 원자력이 기본적으로 고밀도 에너지원이라는 특성에 기인한다. 원자력의 원천인 핵반응은

1회당 방출 에너지가 화력발전의 원천인 화학반응 1회당 에너지보다 최소 100만 배 이상 높다. 우라늄 235(U-235) 1그램으로 석탄 3톤에 해당되는 에너지를 낼 수 있다. U-235 1킬로그램만 있으면 1기가와트 원전 하루 발전량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낼 수 있다. 이러한 고밀도 에너지 특성 때문에 원전은 연료를 매우 적게 사용한다. 원전의 이러한 연료 저장 용이성과 발전 원가의 연료비 의존 둔감성 때문에 원자력은 국가 에너지 안보 강화에 매우 효과적이다. 원자력의 경제성과 공급 안정성의 기반은 고밀도 에너지 특성임은 바르게 인식돼야 한다.

해수면 10센티미터 상승…지구 온난화 진행

산업혁명 이후 지구 대기 온도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꾸준한 지구 온도의 상승, 즉 지구 온난화는 빙하의 해빙을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해수면 상승을 유발한다. NASA가 매년 위성으로 측정하는 지구 해수면의 높이는 1992년 이래 30년 간 약 10센티미터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해수면 상승 자료는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명백한 방증이다.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온실효과를 초래하는 지구 대기권 이산화탄소 증가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화석 연료 사용 증가가 기후 변화를 초래하는 원인임이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가운데 세계적으로 탄소 중립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세계 137개국은 탄소 중립 목표를 선언했다.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첫 조치는 전력 생산에서 화력 발전을 무탄소 발전원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무탄소 발전원은 태양광과 풍력과 같은 재생 에너지다. 지난 10여 년간 유럽·미국·중국을 중심으로 세계 재생 에너지 용량은 급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간 태양광 설비는 급증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원자력은 고밀도 에너지로서 저비용 발전원이다. 낮은 전기 요금은 국가 경제에 활력을 제공할뿐더러 국민이 편리한 전기를 풍요롭게 쓸 수 있게 해줘 국민 생활에도 활력을 제공한다. 따라서 원자력은 활력 에너지라 할 수 있다. 향후 기후 변화 대처와 인공지능(AI) 활용 급증 시대에도 원자력은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에 활력을 제공하는 핵심 에너지원으로서 역할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풍력 발전은 매우 미약하다. 풍력 설비가 늘어나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우리나라의 풍력 여건이 그리 좋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재생 에너지는 우선 태양광 위주로 확대할 수밖에 없는데 태양광 발전에는 간헐성과 변동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태양광은 낮에만 발전하고 발전량도 정오 인근 시간에 가장 높고 오전 오후 시간대에는 낮다. 그렇기에 태양광 발전 비중을 충분히 높이려면 낮에 생산된 태양광 전력 중 반 정도는 에너지 저장 장치(ESS)에 저장해뒀다가 밤과 새벽 시간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어림 계산을 해보면 태양광 발전량 중 56%를 ESS에 저장해야 하고 이에 필요한 ESS 용량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은 “세계적인 원자력 확대 미래에 대비해 다양한 용도의 안전한 선진 원자로 적극 개발이 필수적이다”라며 “우리나라에서 그간 정부 주도로만 진행됐던 선진 원자로 연구개발에 민간기업이 동참함으로써 그 시너지와 실현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은 1천160기가와트시가 된다. 현재 1메가와트시 ESS는 컨테이너 박스 하나 정도의 크기를 차지하는데 이런 게 116만 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행정 체계상 전국에 1천169개 면이 있는데 각 면에 1천 개씩 ESS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해야 충당할 수 있는 막대한 양이다. 문제는 ESS의 고비용성이다.

원자력보다 3배 비싼 재생 에너지 발전 단가

지난 정부의 탄소 중립 2050 계획에 따르면 2050년에는 전기화율이 늘어나 평균 전력이 140기가와트(현재 67기가와트)가 될 것인데 이 중 절반 정도를 태양광으로 공급하게 돼있다. 온

실가스 감축분에 대한 기여도가 원자력과 재생 에너지가 7:3인데 재생 에너지 발전 단가가 원자력의 3배 비싼 점을 고려하면 비용 대비 효과성은 7:1이다. 원자력이 온실가스 감축에 얼마나 유효한 지가 지난 5년간의 온실가스 감축 실적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사람은 누구나 방사능에 노출돼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원전에서 발생 가능성이 있는 방사능 누출에 대해서 우려를 많이 한다. 원전에는 정상 운전 상황뿐만 아니라 만약의 사고 상황에서라도 방사능 누출을 방지할 수 있도록 여러 안전장치가 있다. 원전에는 이러한 5겹의 방호벽을 기본으로 하되 만약의 사고 시라도 원자로가 녹지 않게 다중의 안전 설비가 독립적으로

설치돼 있다.

이 강건한 원자로 격납 건물은 만약의 경우 원자로가 녹아 방사성 물질이 누설되더라도 외부 환경으로는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같이 다양한 원전의 안전 설비는 다단계로 작동한다. 지진 등으로 원전에 외부 전력이 끊어지면 소내 비상 발전기가 작동해서 전력을 공급해 사고 대처 설비를 가동한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발생한 후쿠시마 사고 때문에 사람들은 지진이 원전에 치명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후쿠시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진이 아니라 쓰나미였다. 쓰나미 피해를 당한 주민 300여 명이 오나가와 원전 체육관으로 대피해 3개월간 생활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도 원전이 지진에 대해 강건하게 버틸 수 있음을 실증한 것이다. 현재까지 지진 자체가 원전에 치명적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45여 년 동안 원자력으로 약 4.4조 킬로와트시 정도 발전을 했다. 1조 킬로 와트시당 0.5명 치명률을 적용하면 두 명 정도 원자력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했겠지만, 단 한명의 사망자도 없었다. 대형 원전은 에너지 안보증진과 탄소 중립 실현·AI 급증에 따른 안정적 전력 수요 증가 대응의 핵심 수단이다. 대형 원전은 무탄소 전력 대량 생산과 수소 생산을 통해, 석탄 발전 대체·산업 공정열·원격지 전력 공급·선박 추진 등 활용성 다변화를 통해 원자력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

세계적인 원자력 확대 미래에 대비해 다양한 용도의 안전한 선진 원자로 적극 개발이 필수적이다. 이를 발전, 공정열 생산·선박 추진·데이터 센터와 페어링 등 용도에 특화 시켜 개발함으로 써 향후 확대될 세계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에서 그간 정부 주도로만 진행됐던 선진 원자로 연구개발에 민간기업이 동참함으로써 그 시너지와 실현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세포 반응의 숨겨진 메커니즘 밝혀냈다

장지원 포스텍 교수팀

최근 포스텍 생명과학과의 장지원 교수·통합과정 양승복 씨는 기계적 자극에 대한 세포 반응을 조절하는 새로운 인자를 찾고, 관련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세포생물학 분야 국제 학술지 중 하나인 『네이쳐 셀 바이올로지』 온라인판에 지난 3일 게재됐다.

세포성장인자인 인슐린과 상피세포성장인자, 신경 전달 물질인 아세틸콜린(acetylcholine) 등 세포생물학 분야의 연구는 대부분 화학적인 자극에 대한 세포 반응 분석에 집중해왔다. 그런데 세포는 이러한 화학 자극뿐 아니라 세포의 밀도·크기·주위 경도 등 기계적인 자극에도 특정 유전자가 발현돼 이에 반응하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기계 신호 조절 인자가 어떻게 기계적 자극을 인지하는지 그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는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팀은 세포의 기계적 자극감지·반응 메커니즘을 연구하기 위해 배아줄기

왼쪽부터 포스텍 생명과학과의 장지원 교수와 통합과정 양승복 씨이다. 사진=포스텍

세포를 사용했다. 세포의 밀도를 조절하며 배양한 배아줄기세포의 전사체를 분석한 실험에서 연구팀은 ‘ETV4’라는 인자가 줄기세포의 밀도 변화를 감지해 분화를 조절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연구팀은 ETV4가 기계적 자극을 감지하는 메커니즘도 밝혀냈다. 세포 내 인테그린 수용체(integrin receptor)가 먼저 세포 밀도 변화를 감지했으며, 세포 표면에 있는 단백질 수용체(FGFR: Fibroblast growth factor receptor)의 세포 내 이입(endocytosis)을 조절해 ETV4 단백질 발현을 제어했다. 인테그린 수용체는 세포와 세포외 기질을 연결하는 세포막 횡단수용체다. 세포 안팎의 물리화학적 변화를 양방향으로 전달해 세포내 신호 전달에 관여한다.

이 ETV4는 줄기세포 분화 과정에서 세포 밀도가 낮은 부위에서는 중·내배엽이, 밀도가 높은 경우에는 신경 외배엽이 형성되도록 조절했다. 연구팀은 세포 밀도 변화가 줄기세포 분화의 운명을 조절하는 핵심 요소임을 밝혔으며, 세포분화는 화학 신호뿐 아니라 기계적 신호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장지원 교수는 “줄기세포의 분화 조절에 있어서 기계적인 자극의 중요성과 ETV4라는 핵심 인자를 확인했다”라며, “ETV4가 매우 중요한 암유전자(oncogene)이기 때문에, 기계적 자극을 통한 암세포 제어 기술 개발에도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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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교수신문>과 온라인 교수신문에 선생님의 이야기를 정성껏 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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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것과 영원한 것

딸깍발이

홍용진 편집기획위원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기후 문제가 심각해져 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2003년 여름 유럽을 강타한 40도 이상의 폭염은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에 깊은 문제의식을 남겼고 이는 ‘인류세’라는 담론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지구의 자연환경이 스스로 변화해 오면서 지질학적 시간대(Geologic time scale)를 만들어 왔는데, 드디어 인간이 배출한 각종 탄소 물질이 이를 바꿀만한 괄목할 만한 자국을 남겼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러한 종말론적 지적에는 몇 가지 질문이 따른다. 첫째 이러한 변화가 정말 45억 년에 이르는 지구의 시간대에서 볼 때 진정 ‘종말’이라 부를만한 것인가이다. 둘째 다른 생물종들 사이에서 ‘인류’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지구 생태계의 변화를 불러일으켰는가이다.

첫째 문제와 관련해서 현재의 기후와 생태계 문제는 언제나 인간 중심적 관점에 입각한 것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인류가 존재하기 전 지구에는 보다 심각했던 악조건과 대멸종이 드물지 않았다. 둘째 문제와 관련해서는 기후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탄소의 급격한 배출이라면 인류라는 존재보다도 서구에서 발전한 독특

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문제 삼아야 할 것이다. ‘자본세’라는 최근의 담론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즉 현재 전개되고 있는 기후 위기는 18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산업자본주의의 결과물이며, 인간 삶의 진보와 발전의 기반이었지만 이제는 역으로 인간 삶의 근간에 대한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올해 벽두에 세계경제포럼(WEF)은 기후 문제를 가장 중요하고도 심각한 위기 요소로 손꼽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당연하게도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고 이를 위해 이미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 협약」(1992), 「교토 의정서」(1997), 「파리협정」(2015)을 통해 많은 국가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었다.

언뜻 이러한 노력은 대도시의 공해 요소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상과 맞물려 어느 정도 달성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탄소를 배출하는 차량 대신 전기차의 비중이 높아지고, 다양한 업무처리에서 보여주는 최첨단 AI의 등장, 깨끗하고 정갈한 도시 환경 인프라의 구축 등은 이제 매연과 스모그로 악명 높은 대도시의 초상을 최첨단 과학기술이 적용되면서도 ‘에코프렌들리’한 이미지로 바꾸어 놓고 있다.

심지어 고도의 AI 기술이 적용된 ‘챗GPT’나 ‘생성형 AI’는 예측 불가능한 기후 위기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 방안을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러한 AI는 막대한 전

기를 소비하며 이는 다시 놀라울 정도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사실이다. 생성형 AI 등 보다 고도화된 AI의 등장은 전례 없는 에너지를 요구할 것이 명약관화한 사실이며, 탄소 배출은 도시가 아닌 도시 외곽의 지대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고도화된 AI의 발전이 현대 자본주의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당연히 문제는 단순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이를 자본주의 산업으로 이용하는 방식에 있다. 자본주의에서 안락함을 찾고 또 여기에서 기득권을 얻은 21세기 인류에게 기후 위기가 진정한 생존의 문제로 진지하게 고민되고 있는 것일까? 인간 노동과 자연을 저가로 전락시킴으로써 끊임없는 이윤 증식을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인간과 환경에 닥친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고 할까? 전 우주적인 차원에서 자연에 있는 그 모든 것들은 생성·변화의 과정을 겪는다. 하지만 자본은 『모모』의 작가 마하엘 엔데가 지적한 것처럼 늙거나 썩지 않는다.

과연 우리 몸을 감싼 구체적이고 생성소멸하는 삶의 세계가 컴퓨터 화면에 찍힌 추상적이고 영원한 숫자의 행진을 언제까지 감내할 수 있을까? “22세기는 오지 않는다”라는 종말론적인 주장이 현실화될 것인가? 또는 영원한 것은 결국 없고 모든 것은 변화할 것이라는 자연의 이치를 다시 회복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인가?

출처=갤러리 마르티

갤러리 초대석

「티타임」

고권,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2024

고권 작가 전시회는 오는 23일까지 서울 노원구 노원로 갤러리 마르티에서 열린다. 수요일은 휴관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삶의 흐름이 자연의 순환과 다르지 않으며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연 그리고 타인과 연결돼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회화를 선보인다. 아련한 풍경에 파충류와 소년이 등장하는 「추운 날」이란 작품 이미지로 알려진 그가 일관되게 보여졌던 자연과 실존에 대한 독특한 관점이 이번 작업에서 확장됐다.

작가의 작품에 일관된 특징인 유머러스가 느껴지는 작품 「티타임」을 보자. 경치 좋은 화면 안에 여유를 즐기고 있는 사람과 요괴. 둘은 환담을 나누며 친해 보인다. 그런데 웬걸? 같이 마시고 있는 사람도 길다란 혀를 보니 정상은 아니었다. 작가는 말한다. 저요괴는 우리 안에 있는 악마성이라고. 우리가 다독이고 한평생 같이 끌고 가야 할 도반과 같은 존재라고.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과의 연결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인공지능 시대를 바라보는 편찬자의 시선

인공지능 시대, 사전을 생각하다

도원영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死典’ 된 국어사전…죽어가는 민족 지혜의 심장”.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14년 세계일보 기획기사의 헤드라인이다. 당시 종이사전 편찬 산업의 쇠락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면서 국어사전의 운명을 어둡게 전망하였다. 국가기관 사전의 출간, 말뭉치 기반 사전의 도약, 포털의 사전 서비스는 사전 전문 출판사의 자리를 잠식해 갔다. 출판사 사전편찬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전문 편찬자들도 사전편찬계에서 사라졌다.

그렇다고 우리의 국어사전이 ‘死典’이 된 건 아니다. 오히려 언중은 웹과 앱을 통해 더 자주 더 풍부하게 사전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집필자가 되어 웹 사전에서 활약하고 있다. 기관을 중심으로 사전 편찬 작업은 지속되고 있고 새로운 사전이 기획되고 또 구축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정보통신기술과 디지털 세상을 지켜보자니, 과연 우리가 만들어 가꾸고 있는 사전이 다가올 미래에도 제 몫을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바야흐로 거대 언어 모델을 장착하고 강화 학습을 마친 생성형 AI가 우리 곁에 와 있다. 그간 인류가 축적해 온 지식정보자원과 그를 활용한 기술의 총화로 구현된 챗지피티(ChatGPT)가 별걸 다 척척 해내는 것을 보면서 사전 편찬도 기계에 맡길

날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하게 된다. 미래의 이용자는 출처가 있는 사전을 직접 검색하여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주는 답변을 보고들음으로써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날에 대한 두려움과 이 놀라운 기술에 대한 호기심이 동시에 밀려온다. 이러한 양가적 감정의 근원을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웹 시대의 사전은 이미 여러 경쟁자와 경합해 왔다. 한때는 포털의 검색창이 가장 강력한 맞수였다. 그러나 끝도 없이 나열되는 검색 결과에서 원하는 정보를 찾는 과정이 길고 소모적인데에 반해 사전은 간단명료한 구조적·내용적 특성 덕분에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외국어의 경우 사전을 검색하는 것보다 번역기를 활용하는 것이 더 빠르고 때로는 더 정확하다. 지금은 검색형 AI가 사전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여러 사전을 참고한 결과를 답변에 반영하고 있어 꽤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사전을 계속 깁고 다듬어야 할지, 새로운 사전을 기획하여 편찬 과정으로 돌입해야 할지 결정하기가 망설여진다. 사전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포털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인공지능 개발 경쟁에 인적·물적 자원을 쏟아붓고 있는 만큼 유지 비용을 들여야 하는 사전 서비스를 줄일 가능성이 높다. 요사이 일부 백과사전과 외국어사전의 웹 서비스가 잇달아 종료되고 있어, 사전 콘텐츠 서비스의 앞날을 대략 가늠할 수 있다. 공공기관이 구축한 무료 콘텐츠와 일반인이 작성한 오픈 사전을 중심으로 사전 서비스가 재편될 가능성이 커지고 그만큼 사전 콘텐츠 다양화 시대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 자명하다.

가까운 미래가 눈에 보인다면 그에 맞설 수 있는 태세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할 일은 매우 많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사전들이 상당하다. 예를 들자면 쓸 만한 표현용 사전을 웹에서는 찾을 수 없다. 대부분의 국어사전은 궁금한 단어나 특정 정보에 대해 표제어를 중심으로 찾게 되어 있는 이해용 사전이다. 글을 쓸 때나 말을 할 때 상황에 딱 맞는 어휘를 추천해 주는 사전은 태부족한 상태이다.

좀 더 유려한 표현, 재미난 표현, 전문적인 표현, 최신 표현 등등을 정확히 알려 주는 사전. 챗지피티 4.0과 네이버 큐(Cue:)에게 묻고 또 물어도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더 똘똘해질 AI를 사전 편찬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전 플랫폼을 설계할 때 최신의 ICT를 적용하자는 말이다. 이용자를 위해 인터페이스의 범위를 넓혀서 사전 간 연결뿐만 아니라 비사전과의 융합도 가능해져야 한다. 오픈소스 플랫폼에서 편찬된 사전 콘텐츠는 디지털 아카이브 외에도 유튜브, 온라인 기사 등 각종 플랫폼에 쉽게 접속된다. 또한 시각화 프로그램이 작동하여 다채로운 정보를 가시적으로 펼쳐 보인다. 사전이 반드시 고전적인 형식과 구조를 띨 필요가 없다. 기술은 충분히 발전되어 있다. 다만, 사전 편찬 시스템에 투입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 글은 <겨레말> 소식지 2024 봄호(통권 24호)에 실린 ‘기획특집_ 인공지능 시대, 사전을 생각하다’를 발췌·요약했습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사전학센터를 맡고 있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중한대사전』, 『한중사전』 등의 편찬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힉스 입자와 노벨물리학상

최성우의 과학기술 온고지신❺

최성우

과학평론가

일명 ‘신의 입자’라 불리는 힉스(Higgs) 입자의 존재를 예측했던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가 지난 4월에 9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힉스 입자는 현대 입자물리학에서 다른 기본 입자들과 상호작용해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로서, 힉스 교수는 이 입자를 예견한 공로로 2013년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바 있다.

저명한 물리학자로서 몇 년 전에 타계한 스티븐 호킹이 생전에 ‘힉스 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100달러를 걸겠다’면서 내기를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다만 호킹이 실제로 힉스 입자가 없다는 확신을 했다기보다는, 어느 쪽이든 물리학의 발전을 위한 ‘꽃놀이패’라는 의미가 있었다. 힉스 입자 및 이를 예측하고 발견한 과정 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잘 살펴볼 만한 중요한 것들이 있다.

먼저 노벨물리학상의 수상 경향과 관련된 것인데, 실험적 업적에 비해 이론물리학 특히 자연과 우주의 근본 및 궁극적 법칙을 밝히려는 입자물리학 이론의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힉스 교수가 논문을 통하여 힉스 입자의 존재를 처음 예견한 것이 1964년이었으니, 거의 50년 만에 노벨상을 받은 셈이다. 지난 2012년에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거대 강입자가속기(LHC)를 통한 실험 끝에 힉스 입자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했다면, 힉스는 생전에 노벨상과 인연을 맺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스티븐 호킹은 끝내 노벨물리학상을 받지 못하고 2018년에 세상을 떠났다. 물론 ‘휠체어 위의 물리학자’로 유명했던 대중적 명성에 비해 그의 구체적 업적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할 수도 있겠지만,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에 비견할 만한 비범한 능력을 지녔던 세기적 물리학자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호킹과 유사하게 블랙홀과 우주론에 관해 연구를 했던 이론물리학자였던 로저 펜로즈가, 뒤늦게 업적을 인정 받아 지난 2020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아인슈타인 역시 그 유명한 상대성이론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시공간 개념을 제시하는 상대성이론은 실험으로 입증하기가 워낙 어려웠던 반면,

그의 노벨상 수상 업적이었던 광양자이론은 실험적으로 검증이 용이한 편이었다. 인도 출신의 물리학자 보스는 그의 이름을 딴 보손(Boson)이라는 기본 입자와 함께 물리학 교과서에 숱하게 나오는 중요한 인물이다. 힉스 입자 역시 보손의 일종인데, 보스 또한 놀랍게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적이 없다.

그리고 근래에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는 인물들의 연령대를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노벨상이 제도화된 지 얼마 안 된 지난 20세기 전반기에는 30~40대의 젊은 나이에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들이 수두룩하였다. 그러나 80세를 훌쩍 넘긴 2013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힉스 교수뿐 아니라, 오늘날에는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의 연령대가 크게 높아졌다. 2018년도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자인 아서 애슈킨은 당시 나이가 무려 96세로서, 역대 노벨상 수상자 전체를 통틀어 최고령 기록을 갈아치웠다.

힉스 입자의 예측으로 2013년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던 피터 힉스의 생전 모습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지난 20세기에 비해 금세기 들어서 갈수록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령대가 높아지는 이유는 과학의 성격과 내용이 상당히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근래에도 물론 젊은 나이에 큰 업적을 내는 과학자들이 없지는 않으나, 그것이 확실하게 입증되고 인정받는 데에는 무척 오랜 시일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저명한 과학사학자 쿤(Kuhn)의 용어를 빌린다면, 이제 지난 세기와 같은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의 시대는 가고 수수께끼 풀이식의 ‘정상과학(Normal science)’의 시대가 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업적을 누적해서 쌓은 원로 과학자들이 당연히 노벨상 수상에 더욱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러면 과거와 같은 20~30대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은 갈수록 더 보기 힘들어질 것인가? 과학기술의 발전에는 항상 의외성이 따르기 때문에 장래에 대해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그런 경향은 앞으로도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김상돈의 교수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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