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메가 이벤트? ‘오사카 엑스포’
글로컬 오디세이
정지희서울대 일본연구소 HK조교수
국내에서는 흔히 ‘오사카 엑스포’로 불리는 2025 오사카·간사이 만박(万博). 동일본 대지진을 딛고 부흥한 일본을 상징할 ‘부흥 올림픽’을 표방했지
만 기대한 효과를 보지 못하고 막을 내린 2020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직후에 치러지는 또 한차례의 메가 이벤트다. 그러다 보니 개최 의의를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부터가 문제다. 일본의 전후 부흥과 고도성장의 상징으로 기억되는 1964년 도쿄 올림픽과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에 대한 향수는 여전하지만, 2020 올림픽을 거치며 저성장 시대에 그러한 영광을 재현하려는 발상에 대한 회의가 누차 제기됐기 때문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미디어 사회학자인 요시미 슌야(吉見俊哉)는 올림픽이나 만국박람회 같은 메가 이벤트를 통해 도시 개발과 경제 발전을 꾀하려는 시대착오적인 태도 자체를 ‘유통기한 지난 술에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 비유하고, “다시는 올림픽도 만국박람회도 개최해서는 안 된다”라고 단언한다.오사카·간사이 만박은 일견 고도성장 이후의 사회 구상을 위한 맞춤형 기획으로 보인다. 오사카·간사이 만박의 준비와 개최 운영을 담당하는 주체인 2025년 일본 국제박람회 협회는 근대화의 이미지가 강한 만국박람회라는 표현 대신 ‘만박’이라는 약어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 개념을 새롭게 정의했다.만박이란 ‘전 세계로부터 많은 사람과 물건이 모여드는 이벤트’로, ‘지구 규모의 다양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각지로 부터 뛰어난 지혜가 모이는 장’이라는 것이다. 만박 개념의 재정의는 시대의 경향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2천 년대 이후 메가 이벤트 유치 경쟁에서 전 지구적 과제 해결을 내거는 추세이기 때문이다.오사카·간사이 만박의 테마는 ‘생명이 빛나는 미래 사회의 디자인’이다. 목표로는 이번 만박을 일본의 국가 전략인 ‘Society 5.0’을 실현하는 계기로 삼아, UN이 2030년을 기한으로 내건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SDGs) 달성에 기여하는 것을 내세웠다.여기서 ‘Society 5.0’이란 가상 공간과 현실 공간을 고도로 융합해 경제 발전과 사회적 과제 해결을 양립시키는 인간 중심의 사회라는 것이 공식 홈페이지의 설명이다. 수렵·농경·공업·정보 사회에 뒤이어 올 새로운 사회를 가리킨다. 사물 인터넷·인공지능·로보틱스·빅데이터·생명공학 등 기술에 의해 전 지구적인 과제들을 해결하는 사회로, SDGs가 달성된 사회를 의미한다는 것이다.다만 지속 가능성을 기조로 건설 투자와 개발 이익에 치중하는 메가 이벤트들의 그린워싱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속 가능한 개발 기조 아래 성장 욕망은 죄책감 없이 표명된다. 이번 만박의 공식 홈페이지의 개최 목적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도 실은 아래의 문구다.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인들에게 향수와 기대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일본 정부는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를 일본의 성장을 지속시키는 기폭제로 삼겠다는 수사를 사용한다. 사진은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실외 이벤트 광장의 이미지다.
사진=2025년 일본 국제박람회 협회“만박에는 인간·물건을 불러 모으는 구심력과 발신력이 있습니다. 이 힘을 2020년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후의 오사카·간사이, 그리고 일본의 성장을 지속시키는 기폭제로 만들겠습니다.”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인들에게 향수와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성장의 기폭제라는 수사는 21세기에도 메가 이벤트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러나 실제로는 개최국이 빚더미에 오르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 21세기의 현실이다. 일본에서 ‘축하 자본주의’로 번역된 ‘celebration capitalism’ 개념으로 21세기 올림픽을 설명한 줄스 보이코프의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성대한 메가 이벤트라는 ‘예외상태’에 편승해 평시라면 불가능할 의사결정 방식으로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개최국 사람들이 축제 기분에 취해있는 동안 개발 이익은 민간 기업에 돌아가는 한편 그 부담은 개최국 납세자들에게 돌아오는 방식으로 자본주의가 기능한다는 통렬한 비판이다.오사카·간사이 만박은 과연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것인가? 자재비 상승 등으로 인해 회장 건립 비용만 해도 유치 당시에 비해 1.9배로 늘어난 상황이다. 올해 2월 정부가 밝힌 회장 건설과 일본관 출전에 소요되는 예상 국비 부담액은 1천649억 엔에 이른다. 관련 인프라 건설과 사업에도 수조 엔이 들어갈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본 정부는 이에 투입되는 국비의 정확한 금액은 공표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요미우리신문> 전국 여론 조사에서는 만박에 ‘관심 없음’이 69%를, 입장권 판매는 목표의 6%를 점했다. 최근 일본 경제의 회복세가 점쳐지지만, 개최까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반전을 만들 수 있을까? 귀추가 주목된다.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학사를,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고(UCSD)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 분야는 일본 근현대 미디어 사회문화사이며, 최근 논문으로 「일본 미디어와 전후 민주주의」(2022), 「전간기 일본, 냉전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시선 그 너머」(2021), 「점령기 일본의 진상 폭로 미디어」(2020) 등이 있다.대학 지역 기여도, ‘지역 창업 실적’ 우선 꼽혀
‘대학의 지역사회 기여도 진단 지표’ 공개
‘국가교육발전의 쟁점과 과제’ 학술대회서2025년부터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라이즈) 전면 시행을 앞두고, 대학의 지역사회 기여 정도를 살펴 볼 수 있는 지표가 공개돼 눈길을 끈다.지난달 20일, ‘국가교육발전의 쟁점과 과제’를 주제로 한국교원교육학회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주관한 교육 관련 5개 학회 연합학술대회에서 민숙원 한국직업 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이 대학의 지역사회 기여도를 측정·평가하는 지표 관련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이번 연구는 내년부터 전국에서 시행되는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라이즈)’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대학에 대한 행·재정지원 권한이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돼 대학과 지역·지자체의 관계가 긴밀해지면서 대학의 지역사회 기여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의 중요성도 커졌기 때문이다.‘대학의 지역사회 기여도 진단을 위한 지표 개발’을 발표한 민 연구위원은 “수도권 집중화로 지역이 위기를 겪자 정부는 ‘지속가능발전 기본법’ 제정 후 지속가능발전 책임을 지자체에 부여했다”며 “지역의 인적자원개발에서 대학의 사회적 책임 및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는 중요하나 이를 진단하는 지표 연구나 데이터 구축은 부족하다”라고 설명했다.국제연합(UN)의 지속가능발전(SD) 개념을 따라 한국도 ‘국가 지속가능발전목표(K-SDGs)’, ‘지역 지속가능발전목표(L-SDGs)’를 추진하고 있다. 또 지속가능성관련 작업구조인 ESG 개념이 대학 운영과 정책, 계획추진에 쓰이면서 △연구 △지역 학습자 교육과정 △교육서비스 △지역발전 프로젝트를 통한 대학의 L-SDGs 기여 가능성도 커졌다.현재 대학의 지역사회 기여도와 관련한 유사 지표로는 △대학평가 및 기관평가인증 지표 △정부의 각종 재정지원사업 성과 지표 △대학의 산업기여도 평가 지표 내 지역사회 기여 및 공헌 관련 지표 △한국CSR연구소의 ‘대학사회책임 지수’가 있다.하지만 민 연구위원은 “활동 실적, 인프라 공유 등 평가가 단순해 다양한 지역 내 상호작용, 성과 파악에 한계가 있다. 특히 지역의 환경적 지속가능성 기여는 지표에서 주목되지 않는다”며 “일본, 아일랜드가 지표를 개발했으나, 이는 한국에서 사용하기 어렵고 다각적 측정에서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했다.이를 바탕으로 민 연구위원 등은 지난해 대학의 지역사회 기여도 진단모형 개발 연구를 했다. 연구는 각각 사회적·경제적·환경적 지속가능성 등 3가지 영역으로 나뉘어 사전조사와 델파이 조사, AHP 조사로 진행됐다.AHP 조사를 통해 도출한 전체 측정지표의 종합가중치와 우선순위 산출 결과, 상위 10개 지표는 ①대학 구성원의 지역 내 창업 실적 ②지역기업 취업자 비율 ③지역 유관 기관과의 협력 사업/프로젝트 참여 성과 ④지역사회 공헌 프로그램 운영 실적 ⑤지역 상생협력체계 구축을 위한 추진체계 ⑥창업지원 체계 및 운영 실적 ⑦산학협력 성과의 지역사회 공유 및 활용 실적 ⑧‘대학의 지역사회 기여도 진단 지표’
종합 우선순위(AHP 조사 결과)① 대학 구성원의 지역 내 창업 실적② 지역기업 취업자 비율③ 지역 유관 기관과의 협력 사업/ 프로젝트 참여 성과④ 지역사회 공헌 프로그램 운영 실적⑤ 지역 상생협력체계 구축을 위한 추진체계⑥ 창업지원 체계 및 운영 실적⑦ 산학협력 성과의 지역사회 공유 및 활용 실적⑧ 대학 구성원의 지역사회 생태환경 보전 활동 참여 실적⑨ 지역 취약계층 학생을 위한 교육 지원 실적⑩ 지역민의 평생교육 강좌 및 프로그램 만족도※출처 : 민숙원 한국직능능력연구원 연구위원, ‘대학의 지역사회 기여도 진단을 위한 지표 개발’, ‘국가교육발전의 쟁점과 과제’ 5개 학회 연합학술대회, 2024.4.20.대학 구성원의 지역사회 생태환경 보전 활동 참여 실적⑨지역 취약계층 학생을 위한 교육 지원 실적 ⑩지역민의 평생교육 강좌 및 프로그램 만족도 순으로 나타났다.
민 연구위원은 “대학의 지역사회 기여도 진단 도구는 지역의 지속가능발전에서 대학이 어느 수준으로 기여하고 있는지를 지역 차원에서 진단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번 분석은 시계열 기여도 비교, 동일 지역 대학간 특성 비교로 사용할 수 있다”며 “지역 대학간 벤치마킹, 대학의 자체적인 목표 설정 및 세부전략 개발, 외부 이해관계자와 지역민에의 보고 및 피드백으로 활용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발표 후 이어진 토론회에서 이현국 대전대 교수(행정학과)는 이번 연구의 시의적절성과 중요성에 공감하면서 “대학의 지역사회 기여도 지표를 단일 지표로 하는 대신, 지역 간 특성을 고려하는 지표로 구성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이에 따르면 대학은 지역 내 산업시설의 많고 적음으로 지역산업체와의 연구·창업 노력에 차이가 나는 것 처럼, 대학이 위치한 지역적 특성에 따라 지역사회 기여도에서 차이가 난다. 그러니 공통-단일 지표로 평가하는 대신, 대학이 위치한 지역을 유형화하고 각 유형별 기여도 지표 구성에 차이를 둬야 한다는 논리다.이 교수는 대학의 지역사회 기여도 지표에 추가 사항으로 △대학의 비전·미션·전략과제 및 내부 전략체계 검토 △지자체와의 거버넌스 구축 정도 △상생협력체계 구축을 위한 추진체계 지표 구체화 △실무조직 구축 여부 △기초지자체·광역 등 지역의 규모 및 대학의 위치 문제 △실질 성과를 높이기 위한 결과 지표 △지표와 대학 전략체계 간 연계성 △산업연계 위주 지표 대신 지역민과의 신뢰·관계 형성 기여도 등을 제시했다.이번 학술대회는 한국교원교육학회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주관하고, 한국교육행정학회·한국교원교육학회·한국교육재정경제학회·한국교육정치학회·한국지방교육경영학회 주최로 대구교대 인문사회관에서 열렸다.현지용 기자 editor@kyosu.net춘천교육대학교 2024학년도 2학기 교수초빙 공고
1. 초빙분야 및 인원학과 (심화과정)전공분야모집인원담당 교과목비 고초등교육과(윤리교육과)도덕교육1명통일초교등육도, 덕통교일육문1제,2연,구통일교육 강의 가능자초등교육과(교육학과)교육사회학1명학교와 사교회육, 학사급회 학사,회의 이해초등교육과(음악교육과)국악교육1명국악실기, 국악지도법초등 국악 실기 지도 가능한 자2. 지원자격가. 국가공무원법 제33조 및 교육공무원법 제10조의4(결격사유)에 의한 임용에 결격사유가 없는 자 나. 공고일 기준 해당 분야 박사학위를 소지한 자(박사학위 취득예정자는 제외) 다. 대학교원 자격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2조‘별표’의 자격기준에 해당하는 자 라. 지원서 접수마감일 현재 학위논문을 제외한 최근 4년간(2020. 5. 22. b 2024. 5. 21.) 국제저명학술지(7'-, 77'-, %&,'-, 7'-), 7'3497) 또는 한국연구재단 등재(후보) 학술지에 게재된 전공분야 연구실적물이 300% 이상인 자(게재 예정인 연구실적물은 제외)3. 심사기준 • 「전임교원신규채용인사관리지침」적용: 춘천교육대학교 홈페이지 공지사항(채용공고) 참조4. 접수기간 및 장소 가. 접수기간 : 2024. 5. 17.(금) 09:00 b 5. 21.(화) 18:00 나. 접수방법 : 코러스 대외서비스 인터넷 접수 LXXTW://GRYI.OSVYW.OV 다. 파일형식으로 제출할 수 없는 저서 등은 방문 및 우편접수 가능 - 방문 : 춘천교육대학교 석우관 2층 교무처(033-260-6124) - 우편 : (24328)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공지로 126, 춘천교육대학교 교무처 ※ 우편물은 5.21.(화) 18:00까지 도착분에 한해 인정5. 기타 세부 사항 가. 춘천교육대학교 홈페이지(LXXT://[[[.GRYI.EG.OV) 공지사항(채용공고)에서 확인 나. 기타 문의사항은 교무처로 문의(033-260-6124)2024. 5. 7.춘천교육대학교총장5357년도#제4차#한국예술종합학교#전임교원#채용#공고
1. 모집분야 및 인원(※복수지원 불가)소속 원소속 학과전공 분야모집 인원영상원영화과시나리오, 드라마 대본1미술원조형예술과도자조형1전통예술원음악과대금12. 자격 요건 1) 지원서 접수마감일(D24.5.16.) 현재「국가공무원법」제33조 및 「교육공무원법」제10조의4에 의한 임용 결격사유가 없는 자 2) 「대학교원 자격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한 교원자격을 갖춘 자 3) 해당 모집분야의 자격요건(학위 및 경력요건)을 충족하는 자 ※ 자세한 사항 본교 홈페이지 참조3. 제출서류 (원서접수) • 1차 접수: 2024. 5. 7.(화), 09:00 b 5. 16.(목), 18:00 ?한국시각 기준A - 교원지원서, 연구(실기)실적목록, 자기소개서, 최종 학위(졸업) 증명서, 최종 학위 성적증명서 등 ※ 인터넷 입력 접수(본교 교원공채시스템)하되, 최종 학위 논문(작품), 대표논문(작품)은 방문 또는 우편 접수 • 2차 접수 : 기초심사 합격자 발표 후 별도 공지 - 최근 4년 이내(2020.5.17.b2024.5.16.) 연구실적물 각 7부 - 학력·성적 증명서 원본(대학, 대학원) 각 1부 - 경력·재직 증명서 원본 각 1부 - 사진(3.5×4.5) 1매 ※ 기초심사 합격자에 한함 / 방문 또는 우편 접수 ※ 자세한 사항은 본교 홈페이지(LXXT://[[[.OEVXW.EG.OV/)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2024년 4월 26일 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토마스 색인’을 떠올린 예수회 신부…‘디지털 파놉티콘’ 등 흥미로운 작업들
디지털 역사학의 물결 ➍
디지털 역사학의 성과2 유럽
우동현
카이스트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조교수연재 순서
① 디지털 인문학이란 무엇인가?② 디지털 역사학의 역사③ 디지털 역사학의 성과 1 미국④ 디지털 역사학의 성과 2 유럽⑤ 디지털 역사학의 성과 3 동아시아⑥ 디지털 역사학의 성과 4 국내⑦ 디지털 인문학의 최대 난제와 돌파구⑧ 디지털 역사학의 가능성과 전망디지털 인문학(DH)에서 로베르토 부사(Roberto Busa)만큼 주목을 받는 이는 드물다. 이탈리아 출생의 예수회 신부였던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으로 박사학위논문을 썼다. 1946년 학위를 받으면서 DH의 효시라 할 만한 토마스 색인(Index Thomisticus)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1949년부터 그는 미국 기업 IBM과 협업해 색인 작업을 주도했다. 각국의 DH 학회를 잇는 디지털인문학기관연합(ADHO)은 1998년부터 빼어난 DH 결과물을 낸 연구자에게 상을 수여한다. 상을 첫 번째로 받은 이의 이름을 딴 로베르토 부사상이다.
아날학파 문제의식과 밀접한 유럽 DHis부사의 사례는 DH와 디지털 역사학(DHis) 모두 미국과 유럽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서·북유럽에서는 1960년대부터 전산언어학 등 유관 분야에서 성과가 나왔다. 이번 연재에서는 2010년대 전후로 다시 부상한 유럽 학계의 DHis 성과를 살펴본다. 지면의 한계로 각국의 대표적인 사례만 일별한다.1960년대부터 컴퓨터 기술을 역사 데이터에 접목한 케임브리지 인구학 그룹처럼 유럽 DHis는 역사 인구학이나 사회의 장기지속에 주목하는 아날학파의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다만 DH작업은 ‘토마스 색인’ 같은 데이터 색인 작업이 주를 이뤘고 사회사 바깥에선 DHis가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는 컴퓨터 기술이 그다지 널리 보급되지 않은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1970년대 서독의 막스플랑크연구소는 역사 연구에 컴퓨터 기술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까지 유럽 DH는 텍스트·이미지 처리나 데이터 모델링에 관한 개별적인 논의에 치우쳤다.
2010년대 이후의 전반적인 유럽 DHis의 흐름을 파악하는 글로는 권윤경의 정리가 가장 빼어나다. 그에 따르면, 가장 핵심적인 사안은 재정적인 문제이다. 국가와 각종 재단의 재정적 뒷받침 속에 DHis를 탐구하는 미국과 달리, 유럽은 유럽연합(EU)이나 컨소시엄의 후원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규모는 당연히 미국에 견주기 어렵다. 하여 유럽 대학들이 대서양 건너의 미국 대학들과 협업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자본·인력·기술력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북미 대학과의 경쟁에서 유럽 대학의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꾸준히 성과 내는 영국의 사례 주목할 만꾸준히 DHis 성과를 내는 영국의 사례가 주목할 만하다. 박은재의 정리에 따르면, 1990년대부터 영국 대학이나 기관 중심으로 자료의 DB화가 이뤄졌다. 옥스퍼드대학과 보들레이언 도서관의 ‘전자 계몽주의’ 프로젝트는 2023년 가을 현재 유럽 지식인들의 편지 7만9천254건과 일만 건 이상의 서신교환을 전자화했다.17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영국 중앙형사재판소 기록을 활용한 디지털 파놉티콘 프로젝트는 영국 근대사에서 개인과 양형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18세기 런던의 생활사 프로젝트인 ‘런던의 삶, 1690~1800’이나 근대 초 런던 관련 데이터를 지리정보체계(GIS)를 통해 지도로 표현한 ‘옛 런던의 모습 나타내기’ 등도 유용하다. 2023년 가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단행본 수준의 디지털 지성사 연구가 나오기도 했다.독일과 프랑스의 흥미로운 작업들문수현은 독일어권 학계의 DHis 사례를 잘 정리하고 있다. 2024년 1월 현재, 독일은 22개 유유럽의 대표적인 DHis 연구자 루카 숄츠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여러 프로젝트 중 하나인 17세기 독일 대학에서 출간된 법학 논문에 대한 디지털 분석을 보여준다. (출처: https://lucascholz.com/)
오른쪽은 DH 선구자인 이탈리아 출생의 예수회 신부였던 로베르토 부사와 관련된 단행본럽 국가가 참여하는 디지털인문예술연구기반(DARIAH)의 하위 기구인 DARIAH-DE를 통해 자국의 DH 연구를 지원한다. DARIAH-DE의 활동은 네 가지 영역으로 나뉘는데, 교육 활동, 연구, 데이터 공개 및 기술적인 도구 제공이다.
DARIAH와 유사한 유럽 차원의 디지털 인프라인 CLARIN의 독일과 오스트리아 지부도 각각 자국의 DHis 작업을 보조한다. 이를 바탕으로, 독일의 역사가들이 구성원으로서 참여하여 만든 DiaCollo나 ‘1800년 이래 유럽 역사학의 디지털지도,’ 예수회 소속 학자 1천 명에 대한 생애 정보를 담은 ‘예수회 과학 네트워크’ 등은 독일 DHis의 수준을 보여준다. 특히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나치 독일 시기 연구는 독일 DHis가 세계적으로 선도하는 분야 중 하나이다.
프랑스는 다른 유럽 국가의 DHis처럼 자국이 생산한 방대한 역사 데이터의 전산화를 바탕으로 여러 흥미로운 방향성을 보여준다. 17~18세기 파리의 국립극장인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상연된 공연을 디지털화한 ‘코메디 프랑세즈 문집프로젝트’ 같은 DB는 물론, 17~18세기 유럽의 의사 소통망을 집합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연구 플랫폼인 ‘고전주의에서 계몽시대까지 유럽의 교류, 영토, 네트워크(CITERE)’나 18세기와 관련된 갖가지 디지털 자료, 프로젝트, 정보를 모아서 연구자들이 접근하기 쉽게 만든 ‘18세기와 연결되기’ 등이 주목된다.
유럽 디지털 역사학의 학자 경로이 밖에도 유서 깊은 유럽의 대학들을 중심으로 인문·역사 데이터에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는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다. 이탈리아,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북유럽·발트해 국가들, 중동부 유럽(체코,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그리스 등지에서 DH를 지향하는 융합 연구가 조금씩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DHis가 나아갈 방향을 선도한다기보다는 자국의 역사 데이터에 디지털 기술을 초보적으로 접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루카 숄츠(Luca Scholz)라는 학자의 경력은 국경과 바다,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럽 DHis 흐름의 경로를 잘 보여준다. 독일에서 학부(경제학)를 마치고 프랑스-독일 공동 석사학위(역사학)를 받은 숄츠는 이탈리아에서 박사학위(역사학)를 받고,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박사 후 과정을 거친 뒤 2019년 영국에 자리를 잡았다. 근세 독일사 전공자인 그는 역사 데이터와 디지털 기술에 대한 조예를 바탕으로 공간사 분야에서 DHis의 신기원을 개척하고 있다.4년제 26곳·전문대 18곳 등록금 인상
2024년 4월 대학 정보공시 분석 결과
정부의 등록금 동결 기조에도 불구하고 올해 4년제 대학 193곳 가운데 26곳이 등록금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대도 130곳 중 18곳이 등록금을 올렸다.오랜 기간 지속된 등록금 동결 정책에 고물가와 학령인구 감소 등의 요인까지 겹치면서 상당수 대학이 재정 위기를 겪자 정부의 규제를 감수하고서라도 등록금을 인상하고자 하는 흐름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4년제 대학 평균 등록금 682만 원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지난달 29일 대학 등록금 현황을 중점적으로 분석한 ‘2024년 4월 대학 정보공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총 409개 대학 가운데 사이버대학·폴리텍대학·대학원대학 등 86곳을 제외한 4년제 일반 및 교육대학 193곳과 전문대 130곳의 정보공시 내용에 대한 분석이다.우선 4년제 일반 및 교육대학 193곳의 올해 등록금 현황 주요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이들 중 166곳(86%)이 등록금을 동결했다.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은 26곳(13.5%)이고, 인하한 대학은 1곳(0.5%)이다.올해 초 대학 등록금 법정 인상 한도가 역대 최고 수준인 5.64%로 결정되면서, 얼마나 많은 대학이 등록금을 동결·인하한 곳만 받을 수 있는 ‘국가장학금Ⅱ 유형 지원금’을 포기하고 등록금 인상에 나설지 주목됐다. 등록금 법정 인상 한도가 급격히 올라 정부로부터 ‘국가장학금Ⅱ 유형 지원금’을 받는 것보다 등록금을 인상했을 때 거둬들일 수 있는 수익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교육부는 올해도 각 대학에 등록금 동결을 요청했지만 동의대·조선대·계명대·총신대·서울기독대·호남신학대 등 26곳이 등록금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이 17곳뿐이었으나 올해 더 많아진 것이다.
올해 학생 1명이 부담하는 연간 평균 등록금은 682만 7천300원으로 전년도 679만 4천800원에 비해 3만 2천500원(0.5%) 올랐다. 설립 유형별로 보면 사립대가 762만 9천 원, 국공립대는 421만 1천400원으로 집계됐다. 소재지별로는 수도권 대학이 768만 6천800원, 비수도권 대학이 627만 4천600원이었다.전공 계열별 평균 등록금은 의학 계열이 984만 3천400원으로 가장 높았다. 이어 예체능 계열 782만 8천200원, 공학 계열 727만 7천200원, 자연·과학 계열 687만 5천500원, 인문·사회 계열 600만 3천800원 순으로 조사됐다.전문대 등록금, 전년대비 5만 5천 원 상승전문대의 경우 130곳 가운데 111곳(85.4%)이 등록금을 동결했고, 18곳(13.8%)이 인상했다. 등록금을 내린 곳은 단 1곳(0.8%)뿐이었다.학생 1명이 부담하는 연간 평균 등록금은 618만 2천600원으로 전년도 612만 7천200원 대비 5만 5천400원(0.9%) 올랐다. 설립 유형별로는 사립 전문대가 625만 200원, 공립 전문대는 237만 6천800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재지별로는 수도권이 662만 2천300원, 비수도권이 583만 300원이었다.계열별 평균 등록금은 예체능 계열이 675만 9천900원으로 가장 높았으며, 뒤이어 공학 계열 626만 9천700원, 자연·과학 계열 626만 2천100원, 인문·사회 계열 555만 1천700원 순으로 확인됐다.장성환 기자 gijahwan90@kyosu.net계명대학교 2024학년도 2학기 교수 초빙 안내
인문사회과학의 실용성은 상품화·정책화가 아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인문사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❸
최진우
한양대 평화연구소 소장·정치외교학과 교수인문사회과학 연구의 규범성·과학성·실용성
인문사회과학 연구는 규범성·과학성·실용성을 지향한다. 필자의 전공 분야인 정치학을 예로 들어보자.정치학은 인간사회의 본연적 현상인 권력관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는 가운데 보다 나은 사회의 건설과 인간다운 삶의 구현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규범성에 대한 지향성이 매우 뚜렷하다. 아울러 정치학 연구는 연역과 귀납을 아우르는 정치(精緻)한 논리적 사유, 그리고 반증 가능한 가설의 엄밀한 검증을 핵심으로 하는 경험적 연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과학성을 지향하고 있다. 또한 정치학은 권력 현상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인간의 미시적 삶과 거시적 삶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에 대한 분석과 진단, 그리고 미래를 위한 전략과 비전, 대안과 해법을 제공하는 실용성을 가지고 있다. 요컨대 연구의 목적·방법·활용의 차원에서 각각 규범성·과학성·실용성이 추구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인문사회과학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고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이를 통해 평화로운 세상, 행복한 생활, 조화로운 인간관계, 품위 있는 삶이란 무엇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고 대답을 찾는 학문이다.평화·공생·인권의 가치는 저절로 실현되지 않는다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세상이 풍요로워진다고 하더라도 평화·행복·자유·공생·인권 등의 가치는 저절로 실현되지 않는다. 기술의 발전은 폭력성의 증가를 낳을 수 있고 물질적 풍요는 불평등과 분배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평화로운 세상, 품위 있는 삶이 현실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그리고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의 구조와 현실에 대한 명료한 이해를 추구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함으로써 문제는 없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해규범성과 과학성, 실용성을 갖춘 양질의 인문사회과학 연구는 시민의 성숙과 살기 좋은 세상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밑거름이요 필수 영양소다.
야 할지를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풍요와 발전은 배제와 차별, 소외와 분노, 갈등과 폭력, 파괴와 파멸로 이어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바로 여기에서 규범성·과학성·실용성을 지향하는 인문사회과학의 가치가 드러난다. 인문사회과학은 규범성의 기반 위에서 현실을 성찰하고 분석하며 객관적 타당성을 인정받기 위한 과학적 기반을 갖추는 한편, 그 토대 위에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실용적 활용방안을 모색함으로써 공동체 발전에 기여한다. 오래된 질문과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지면서 그 대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필수적 역할을 한다.학문 연구의 가치중립성이 필요한 이유학문 연구의 가치중립성 관점에서는 인문사회과학 연구가 규범성을 지향한다는 필자의 주장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학문 연구의 가치 중립성에 대한 강조야말로 인문사회과학연구의 규범적 지향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학문 연구가 객관성을 유지하며 치우침이 없이 진실의 규명, 진리의 발굴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것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지상명령이다. 사실 우리는 자의적 가치판단으로부터 최대한 자유로운 가치 중립적인 객관적 연구를 통해서만 진실과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다. 그 바탕 위에서 우리의 삶과 사회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정당한 비판이 가능할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연구의 가치중립성은 그 자체로 인문사회과학 연구가 지향해야 할 규범성과 과학성, 그리고 실용성을 구현하기 위한 핵심 요소다.
인문사회과학의 실용성이란인문사회과학 연구에 대한 가장 흔한 비판은 실용성에 대한 것이다. 학문적 특성상 연구 결과물이 인과관계가 뚜렷한 가시적 효과를 즉각적으로 내기 어렵다는 것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인문사회과학 연구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제한적이다. 인문사회과학 연구를 통해 생산된 지식은바로바로 상품화·상업화되기 어렵다는 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결과 정치엘리트와 시민들 모두 인문학적·사회과학적 시각과 지식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고, 그 축적을 위한 노력에 지극히 인색하다. 인문사회과학은 교육과정에서도 소홀히 다루어지고 전공자들은 취업시장에서 홀대받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인문사회과학적 지식의 실용성은 상품화·정책화의 차원에서만 근시안적으로 논해져서는 안 된다. 사실 인문사회과학적 지식은 실생활에 바로 적용하기 어렵거나 현실과 별로 상관이 없다는 인식은 재고돼야 한다. 열을 가한다고 물이 바로 끓어오르는 게 아닌 것처럼, 인문사회과학적 탐구에서 비롯된 지혜가 사고의 변화, 사회의 변화를 촉발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다른 조건들의 성숙을 요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걸릴지언정 분명 인식과 행동, 정책과 제도의 변화를 촉발하는 것은 분명하다. 아울러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소양을 갖추는 데 있어 인문사회과학적 시각과 지식은 필수적이다. 규범성과 과학성, 실용성을 갖춘 양질의 인문사회과학 연구는 시민의 성숙과 살기 좋은 세상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밑거름이요 필수 영양소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한국이 다양성 기반 AI로 간다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AI와 다양성 ❸
안현실서울대 객원교수·기술경영/산업정책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센터장 이혜숙)는 지난 3월 20일 ‘AI와 다양성’을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AI를 화두로 인문·사회·공학 등 다양한 전공의 교수·연구자는 물론 기업체 임원까지 다양한 관점과 입장으로 9명이 발표에 나섰다. 이들 전문가들은 “AI 개발은 다양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한결같이 말했다. 그 다양성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이날 발표 내용을 바탕으로 좀더 알기 쉽게 연재를 마련했다.
역사의 획을 긋는 ‘지배적 표준’의 교체를 의미하는 대전환 시기에는 누가 생존할 것인가? 답은 자명하다. ‘변이’와 ‘적응’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변이의 수를 훨씬 많이 증가시키고 적응 시도를 훨씬 많이 해야 생존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다양성이 주목받는 이유다.
인공지능(AI), 그 중에서도 초거대·생성형 AI가 시대 변화를 이끌고 있다. 2023년 가트너의 AI Hype 사이클은 초거대·생성형 AI가 기대의 절정 단계에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지금부터는 누가기대와 현실의 갭을 해소하느냐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역사적 게임 체인지가 그렇듯이 언제나 기존 시스템과의 충돌이 일어난다. 어떤 기술도 리스크(또는 저항)가 없었던 적은 없다. ‘게임 체인지’는 ‘비상식’이 ‘상식’이 된다는 얘기다. 다양성 관점에서 접근하면 ‘비상식의 상식화’로 가는 문이 열릴 수 있다.
지금부터 혁신전략의 관점에서 AI와 다양성(다양성을 위한 AI, AI를 위한 다양성) 이슈를 살펴본다. 앞으로 검증이 필요한 가설적 추론임을 미리 밝힌다.민간비영리조직·개인 등 혁신 주체의 부상1) 챗GPT를 몰고온 미국의 오픈AI는 민간비 영리재단 소속이다. AI 시대 주목받는 또 하나의 혁신 주체는 개인이다. 개인과 스타트업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이른바 산·연 중 기업이 AI를 주도하는 가운데 민간비영리조직, 개인 등 새로운 혁신 주체의 부상은 미국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도 혁신 주체의 다양성에 눈을 돌려야 한다.2) 제품혁신, 공정혁신이라는 전통적인 혁신 분류가 깨지고 있다. 초거대·생성형 AI는 전에 없던 다양한 혁신 형태와 패턴을 창출하고 있다. 알고리즘 혁신, 데이터 혁신, 대화형 혁신, 생성형 혁신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알고리즘 혁신은 미국의 빅테크가 압도하고 있다. 다양성 관점에서 고민해볼 대목이다.3) 사용자마다 AI 비서를 소유하는 시대로 가면 ‘사용자 혁신’이 중요해지고, 생산자-사용자 간 다양한 혁신의 조합이 발생할 것이다. AI 사용자의 다양성을 확보하려면 AI 리터러시는 기본이다.4) ‘표준 전쟁’이라고 하면 ‘승자 독식’을 떠올린다. 하지만 미·중 충돌은 AI 표준이 하나가 아니라 복수, 아니 그 이상으로 공존할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2023년 주요국 AI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6위를 기록했다. 다양성을 위한 AI, AI를 위한 다양성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국가 랭킹이 어떻게 바뀔까?
5) AI 시대는 ‘많은 시도, 빠른 실패’가 필수적이다. 이런 역할을 해줄 스타트업, 특히 ’퍼스트 무버’가 중요한 이유다. 대부분의 퍼스트 무버는 미국에 집중되고 있다. AI와 다양성을 원한다면 미국 외의 국가들도 퍼스트 무버의 가능성을 높이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6) 솔로냐, 콜라보냐. MS와 오픈AI의 전례 없는 협력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MS는 기술과 시장의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비영리재단 스타트업을 통해 돌파한 것이고, 오픈AI는 풍부한 자금으로 우수 인재를 채용해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가치를 높일 수 있었다. 이런 협력 모델이 가능한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AI 리터러시, 격차와 전체주의 사이에서7) 생성형 AI와 기존 저작권이 충돌하고 있다. 저작권으로 생성형 AI의 가능성을 제약해야 할까? 아니면 저작권을 개혁해 다양한 주체, 다양한 방식의 저작물을 수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할까? 문제는 기득권의 저항이다.8) 개방형이냐, 폐쇄형이냐.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다. 오픈AI는 폐쇄형 전략이고, 메타(페이스북)는 개방형 전략이다. 구글은 제미나이(Gemini)와 젬마(Gemma)를 통해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혁신생태계로 보면 AI 파운데이션 모델의 다양성이 좋다. 문제는 개방형이든, 폐쇄형이든 미국 빅테크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9) 창조성은 크게 세 가지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다. 전에 없던 결합, 새로운 탐색, 그리고 개념 창조가 그것이다. AI는 결합·탐색에서 인간보다 나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연구개발을 포함한 창조성에서 인간과 AI의 다양한 협력과 분업을 고민할 때다.10) AI 리터러시가 없는 다양성은 격차를 낳을 우려가 있고, 다양성이 없는 AI 리터러시는 전체 주의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기술혁신 만큼 조직혁신도 중요11) 초거대·생성형 AI모델의 할루시네이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지만, AI 모델 구조나 학습방법의 근본적 혁신을 위한 R&D의 도전, 즉 R&D의 다양성이 요구된다. 누가 미국 빅테크에 도전할 것인가.12) 일반(범용) 인공지능(AGI)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일반’의 정의가 아직 불분명한 요인도 있을 것이다. AGI가 나온다고 하나라는 보장이 있을까? AGI도 경쟁을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 사이 인간도 진화를 할 것이다.13) AI 시대 기술혁신 만큼 조직혁신도 중요하다. 기존의 상식이나 고정관념을 깨는 조직혁신이 일어날 것이다. 복잡계에서는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회’가 조직이다.14) AI 시대 준비도에 따른 개인 간, 기업 간, 국가 간 양극화가 우려되고 있다. 양극화는 다양성을 위협한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또 하나의 이슈다.재생에너지 기반·탄소 중립 AI로 가야 한다면15) 혁신은 확산으로 완성된다. 시장진입 규제는 다양한 혁신의 확산을 막는다. 시장진입의 자유를 높여야 하는 이유다. 스타트업이 시장 테스트를 받기 위해 내놓는 것이 MVP(Minimum Viable Product)다. 처음부터 맥시멈(Maximum)을 요구하면 스타트업은 시장에 진입할 수 없다.
16) 신뢰, 즉 사회적 자본이 부족한 국가는 다양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혁신도 어렵다.17) AI 성능 경쟁이 뜨겁다. 다양한 사용자의 접근성을 위해서는 비용 측면에서도 경쟁이 일어나야 한다. AI 반도체 등이 부상하는 이유다. 재생에너지 기반 AI, 탄소 중립 AI로 가야 한다면 이 역시 과제다.18) AI가 문화의 다양성을 기반으로 글로벌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면 인류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다. ‘로컬을 위한 글로벌’, ‘글로벌을 위한 로컬’을 고민해야 한다.19) 미국과 중국이 세계를 양분하고 있지 않다. 인구도, 언어도, 경제(GDP)도 미국과 중국을 합친 것보다 그 외 지역이 더 많거나 크다. 한국이 다양성 기반 AI로 간다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20) 세계 유니콘은 미국(1/2)과 중국(1/4)이 주도하고 있다. 기술도 있지만 자본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탓이다. 미·중으로의 AI 쏠림을 막으려면 혁신자본의 다양화가 필요하다.다양성을 위한 AI, AI를 위한 다양성이상은 혁신전략 관점에서 살펴본 AI와 다양성 이슈들이다. 결론은 이렇게 맺고 싶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AI의 눈부신 진화를 가져왔다. 다양성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서 가능하다. AI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지만, 거꾸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잘 작동하면 다양성이 AI에 대한 우려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영국 미디어 회사 토르토이스가 평가한 2023년 주요국 AI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6위를 기록했다. 다양성을 위한 AI, AI를 위한 다양성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국가 랭킹이 어떻게 바뀔까? 나라 안에서도, 나라 밖에서도 다양성은 혁신의 원천이고, 혁신은 다양성을 요구한다.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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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융합연구의 결정체 보여주는 김진오 한국로봇산업협회장
▶ 1면에서 이어짐김진오 한국로봇산업협회장은 로보틱스 분야를 선도하는 ‘찐’ 전문가이다. 로봇 개발의 실무·연구 그리고 학문간 융합 차원에서 그야말로 독보적인 길을 걸어왔다. 그는 서울대 기계공학과에서 열/유체공학을 공부하고, 1992년 미국 카네기멜론대에서 로보틱스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에는 ‘로봇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조셉 엥겔버거상을 전 세계에서 106번째로 수상했다.현재 김 회장은 마지막 소명이라 생각하고 질병에 맞서기 위한 로봇 자동화 연구에 앞장서고 있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게 ‘질병과 싸우는 로봇 자동화’라고 생각했다.” “바이오 분야의 연구와 생산을 지원하는 시스템 산업은 열 유체와 로봇틱스를 접목해야 하는데 그 두 분야를 모두 공부한 내 경험 때문에 더욱 소명처럼 느껴졌다.” 열 유체 공부 8년과 로보틱스 37년 연구의 융합 결정체가 바로 ‘바이오’다. 실제로 김 회장이 이끄는 로봇앤드디자인의 주력 분야 중 하나도 바이오다. 최근 신약 개발에서 세포 치료제 개발·DNA 합성 등에 로봇기술이 많이 적용된다. 특히 바이오 뱅킹(생물자원은행)과 세포 배양 분야의 로봇 자동화는 우리가 전 세계적으로 앞서고 있다.바이오 분야에서 연구원이 하는 실험은 재현하기 어렵다. 그래서 100% 재현을 위해 로봇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바이오·의학·제약·헬스케어 분야에서 인간의 실수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바이오 뱅킹만 하더라도 보관된 세포를 꺼내다가 잘못된 걸 빼오는 등 ‘휴먼 에러’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미국은 ‘약국 자동화’를 실시하고 있다. 처방전에 따른 약을 제조하는 데 발생하는 오류만 한 해에 30만 건이다. 더욱이, 개인 맞춤형 시대가 열리면서 로봇 자동화는 더욱 요구된다.
그는 광운대에서 22년간 후학을 양성하던 중 정년을 4년 앞둔 지난 2021년 학교를 나왔다. 김 회장은 “광운대가 로봇을 잘하는 학교로 발전시켰으니 그 이후는 젊은 후배들이 이끌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나오면 젊은 교수 2명을 고용할 수 있으니 대학의 부담도 줄일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대학·교수 사회를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등록금 때문에 대학의 고객이 ‘학생’이라는 인식을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 “대학의 고객을 학생으로 보는 대학과 교수가 많은데 인식을 바꿔야 한다. 대학의 고객은 사회다. 이렇게 생각하면 대학과 교수가 해야 할 일이 달라진다. 현재는 물론 5년 후, 10년 후의 사회를 예측해 학생들을 대비시켜야 한다. 이러한 인식 전환이 일어나야 대학과 교수 사회는 물론 전체 사회가 발전한다.”아울러, 교수사회의 창업 부문도 언급했다. “교수가 외부 투자 받는 게 쉬워졌지만, 먼저 자기 자신이 정말 전문가인지 성찰해 봐야 한다. 자기가 만든 로봇을 다른 사람이 쓰고 있어야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현실 세계는 교과서와 정말 많이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 정부 프로젝트보단 기업과 협력하고 연구하면서 눈높이를 높여야 한다.”, “그리고 전문가가 되고 투자를 받았다면, 사업 성공에 필요한 30% 정도를 갖추었다고 믿어도 좋다.”, “로봇사업에서 제일 중요한 성공 요인은 오랜 기간 동안의 변함없는 인내심이다.”“바이오 분야의 로봇자동화시스템은 열/유체공학과 로보틱스를 접목해야 하는데 그 두 분야를 모두 공부한 내 경험이 더욱 소명처럼 느껴졌다. 열/유체공학 공부 8년과 로보틱스 37년 연구의 융합 결정체가 바로 ‘바이오’다.”
김진오 한국로봇산업협회장이자 로봇앤드디자인 대표(광운대 명예교수)가 삼성전자 재직 시절 개발한 로봇들이다. 그는 그 당시 개발한 다른 로봇들도 수집해 ‘삼성로봇박물관’을 열고자 한다. 기억을 전승하고, 역사에서 배우려는 것이다.
그는 서울대 기계공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미국 카네기멜런대에서 전 세계 처음으로 만들어진 로봇학 박사학위과정에 1회 입학생이되어 로봇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로봇개발팀장·로봇사업부장 등을 거쳐 1999년 광운대 로봇학과 교수로 부임했으며, 같은 해 로봇 기업인 로봇 앤드디자인도 설립했다. 산업자원부 지능형로봇기획단장·지능형로봇국가실무위원장·로봇산업정책포럼회장·로봇융합포럼실무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8년 ‘로봇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조셉 엥겔버거상을 수상했다. 사진=최유란“로봇을 인간처럼 여기는 건 오만한 생각이다.” 그는 “사람 배신하는 로봇은 없다”고 단언했다. 로봇은 결코 인간을 넘어설 수 없으며 철저히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간의 자유를 얻기 위한 타임머신은 불가능하겠지만, 로봇은 이동의 편의 등을 통해 인간에게 공간의 자유를 준다.” 예를 들어, 국방 분야에서 드론 등을 통한 전쟁은 공간을 지배하려는 싸움이다.
“사람 배신하는 로봇은 없다”그는 ‘돌봄 로봇’ 같은 용어도 ‘오만함’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사람이 로봇을 갖고 놀 수는 있지만, 로봇이 사람을 돌볼 수는 없다는 것. 김 회장은 “로봇을 사람처럼 여기는 오만한 생각에서 나오는 용어”라며 “로봇이 인간을 앞설 수 있다는 오만함을 버리고 인간을 우선할 때 로봇산업은 비로소 발전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약 5년 전에도 <교수신문>과 인터뷰한 바있다.(「로봇은 ‘인간 존엄성’ 회복의 도구」, 2019년 11월 24일) 그때 김 회장은 “로봇을 대하는 인식의 변화가 더디다”라고 지적했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요새는 더 심해졌다.” 그는 “자극적인 미디어에 의해 작은 일도 크게 부각되고 있다”라며 “휴머노이드 시대가 왔다고 하면서 마치 로봇이 인간을 대신할 수 있다고 간주한다”라고 지적했다. 전혀 그런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어린애가 뛰어와서 로봇에 부딪쳐도 마치 로봇이 공격을 가한 것처럼 본다. 오히려 사람을 안전한 곳에 머무르도록 해주는 게 로봇이다. 나쁜 사람이 소유하면 어떤 기술이든 사람을 죽일 수 있다.”예를 들어, 한국에서 사용하는 ‘자율주행차’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김 회장에 따르면, 일본은 그냥 ‘자동 운전차’, 미국은 ‘자가 운전 자동차(셀프 드라이빙카)’로 부른다. 자율은 굉장히 높은 단계라는 지적이다. 로봇의 자율의지라는 건 현재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 당분간 없을 것이다.로봇연구 위해선 ‘사람’ 더 잘 알아야“로봇은 이미 인간에게 많은 자유를 제공하고 있고 갈수록 그 역할은 커질 것이다. 인간이 하기에는 위험하거나 소모적인 일을 로봇이 대신하며 인간은 인간다운 일을 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게 될 거다.” ‘로봇’보다 ‘사람’, ‘인간’에 더욱 방점이 찍혔다. 김 회장은 “로봇은 사람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므로 사람을 신뢰하고 사람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로봇 산업의 핵심 키워드로 ‘봉사’를 꼽았다. 먼저 로봇은 처음부터 인간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인간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하는 데 쓰이는 걸 목적으로 한다. 김 회장은 “로봇이 인간을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는데 로봇은 그저 사람을 위해 서비스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며 “로봇 자체는 아무 문제도 없고 사람을 배신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로봇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사람들에게도 ‘봉사’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로봇이 봉사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로봇을 만드는 사람 또한 봉사하는 입장에서 인간 앞에 겸손한 로봇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김 회장은 “이러한 마음 없이 오만한 생각으로 만든 거만한 로봇은 역사적으로 항상 실패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로봇 개발에서 제일 중요한 성공 요인은 인류에 대한 사랑이다”라고 덧붙였다.
‘삼성로봇박물관’ 열어 역사에서 공부한다한국이 로봇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 그는 “국가적으로 로봇 산업에 대한 관심이나 투자는 부족하지 않은 편”이라며 “문제는 무엇이 잘 됐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냉철하게 점검해서 교훈을 얻고 그 교훈을 바탕으로 다음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이 부재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그런 논의가 가능한 기구나 협의체가 도시별로 있는데 우리나라는 국가 차원으로 봐도 별로 없다”라며 “그동안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러한 역할을 하는 조직을 늘려가야 한다”라고 말했다.김 회장이 삼성전자 재직 당시 개발한 로봇들을 모아 ‘삼성로봇박물관’을 열고자 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 의식의 연장선이다. 김 회장은 당시 30여 종의 로봇을 개발하고 생산했는데 현재 5종을 수집한 상태다. 김 회장은 “과거의 자랑스런 연구와 성취를 잇지 못하고 끊기는 게 아쉬웠다”라며 “우리 사회는 역사를 잘 기억하고 전승할 때 발전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누군가 그 당시 로봇을 갖고 있다면 버리지 말고 연락해달라고 부탁했다.김 회장은 공동 연구 시스템이 정착돼 있던 미국 카네기멜론대에서 공부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협력’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로봇 산업은 특히나 공동 연구와 협력이 중요한 분야”라며 “한국의 로봇 산업이 발전하려면 카네기멜론대처럼 함께 연구하고 개발하는 생태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김재호·최유란 기자 editor@kyosu.net‘푸드테크 로봇협의회’ 가동…분야별 로봇생태계를 가꿔라
올해 25주년 맞은 한국로봇산업협회
한국로봇산업협회는 25주년을 맞았다. 현재 회원사는 250여 개로 대기업 74개, 중기업 71개, 소기업 74개 등이 포진하고 있다. 김진오 회장은 협회 중점 추진 사항 중 하나로 “로봇기업에 혜택을 강화해 회원사를 500개로 대폭 늘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적으로 로봇기업은 약 2천500개다.두 번째 중점 사항은 세부 분야별 위원회·협의회를 만드는 것이다. “직업의 수만큼 다양한 로봇이 존재하기에 한 그릇에 담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의료만 하더라도 진단-수술-재활 분야의 로봇기술이 적용된다. 각자 따로 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달부터 ‘푸드테크 로봇협의회’를 시작한다. 정책적 의견을 수렴해 정부에 건의하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K-Food와 함께 푸드테크로봇 분야에서 강점을 가질 수 있다.
아울러, 국내에는 로봇개발을 서비스해 주는 회사가 별로 없다. ‘로봇’이라는 키워드는 주식이나 미디어 등 산업경제에서는 ‘핫하게’ 주목받지만, 로봇개발만 해서는 먹고 살기가 어려운 생태계라는 뜻이다. 공급체계에서 맨 하위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원회·협의회 의견수렴을 통해 로봇개발 서비스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일본만 하더라도 김 회장이 직접 방문해 파악한 결과 로봇개발 서비스 회사가 300개나 된다. 김 회장이 대표로 있는 로봇앤드디자인은 1999년 부터 사회가 필요한 로봇을 만들어주고 있다. 지금까지 400종을 개발했다.세 번째는 세부 분야별 활동을 통해 한국적인 로봇 전략을 만드는 것이다. 미국·일본·중국 등 로봇 강대국 사이에서 미래 비전을 위한 ‘퍼스트 무버’의 조건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로봇의 모든 분야에서 강대국이 되기보단, 한국만의 특수 분야에서 강점을 살려나갈 필요가 있다. 특히 기술혁신보다 사회혁신을 더 요구하는 로봇생태계에서는 그 접근전략이 매우 달라야 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가 더욱 중요한 건 K-로봇경제 실현을 위한 제4차 지능형로봇 기본계획(2024∼2028)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주요 정책과제로 △로봇 3대 핵심 경쟁력 강화 △K-로봇 시장 전면 확산 △첨단로봇 친화적 환경 조성 △범부처·민관 총력 지원체계 가동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민관합동으로 총 3조 원 이상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경제가 쉬워지는 최소한의 수학
오국환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308쪽우리 삶은 온갖 선택의 연속이다. 그중에서도 현명한 경제적 선택은 삶을 꾸리는 데 필수적이다. 예·적금 이자 비교부터, 연말정산 공제액 계산, 투자 정보를 얻기 위한 노력까지 경제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좌우한다. 더불어 경제적 자유가 삶의 새로운 목표로 떠오르고, 저성장의 시대가 계속되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합리적 선택을 내리는 일은 더욱 중요해졌다. 이 책은 그 방법으로 ‘수학적 사고법’을 제안한다.
열린 민주주의
엘렌 랜드모어 지음 | 남상백 옮김 | 다른백년 | 484쪽‘북미 지역 사회철학 도서상 최종후보작’에 선정된 이 책은 대의제 통치가 지닌 문제를 진단하고 고대 민주주의 제도엔 존재했으나 현재는 상실된 열린 특성을 복원하기 위해, 평범한 시민이 권력에 진정으로 접근 가능한 새로운 민주주의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엘리트보다는 평범한 시민을 민주적 권력의 핵심에 가져다 놓는 일이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하게 필요함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인간의 조건
백종현 지음 | 아카넷 | 364쪽이 책은 한국어판 칸트전집(아카넷)의 번역자인 저자가 지난 반세기 넘게 칸트를 독해하면서 틈틈이 발표했던 여러 논고를 바탕으로 칸트의 인본주의 사상의 요점을 정리한 것이다. “칸트 이전의 모든 사상이 칸트에 모여 있고, 칸트 이후의 모든 사상은 칸트로부터 흘러나왔다.” 이 세평은 철학 사유의 대혁신을 가져온 칸트철학의 위상을 여실히 드러낸다.인생이 흔들릴 때 열반경 공부
자현 지음 | 불광출판사 | 328쪽불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붓다 가르침이 있다.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 이는 『열반경』의 핵심으로서 ‘불성을 가진 모든 중생은 일체 가감 없이 지금 그 자체로 완전하다’는 의미이다. 이토록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열반경』은 『금강경』이나 『반야심경』·『화엄경』 등의 유명 경전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붓다의 완전한 이상의 경지, 우리에게 내재한 불성의 조화가 바로 『열반경』이다.연결신체학을 향하여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지음 | 산지니 | 568쪽어펙트 연구는 이제 낯선 학문의 영역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인류학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대안으로, 북미와 영국에서도 소수자 연구와 어펙트 연구를 결합하는 이론이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어펙트 연구는 한국 문학·사회복지학·미디어 연구·사회학·인류학·역사학 등 다양한 분과학문 간의 공동 연구를 통해 대안적인 지식 체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
이순하 지음 | 이야기장수 | 264쪽짧은 분량에 쉬운 문장의 에세이들이 베스트셀러 매대를 점하고 있는 요즘, 한 60대 신예 작가가 에세이 한 편의 분량이 단편소설, 중편소설에 달하는 에세이를 들고 독자들 앞에 우직하게 섰다. 마치 평생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는 듯, 자신의 기막힌 가족사와 평범하지만 기적같은 이웃의 일대기를 진국으로 고아낸 글이다. 단문을 공유하는 SNS에서 수많은 유저들에게 폭발적으로 공유되며 입소문을 탔다.로맨스 이니그마
박형신·정수남 지음 | 한울엠플러스 | 344쪽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이뤄지는 낭만적 사랑의 감정동학을 연구한 것으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사랑을 낭만적 사랑과 현실주의적 사랑으로 이분화한다. 이 책의 목적은 낭만적 사랑을 이상화하거나 낭만적 사랑의 타락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사랑이 실천되는 과정을 감정사회학적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기존의 사회학적 연구는 사랑의 사회동학을 검토하는 것이었다.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지음 | 김은령 옮김 |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504쪽많은 사람은 “환경 문제의 위험은 부풀려진 경향이 있다”거나 “기후 위기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들어왔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전 세계가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막에 폭우가 쏟아지고 빙하가 녹아내린다. 우라나라도 다르지 않아서 4월에 기온이 이미 섭씨 30도를 육박하고 있다. 지구가 ‘따뜻해지는’ 것을 넘어 ‘끓어오르고’ 있다. 다시 한 번 환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팔레스타인 1936
오렌 케슬러 지음 | 정영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528쪽많은 사람이 중동분쟁을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인한 나크바(Nakba, 대재앙)에서 기인했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1936년에서 1939년까지 3년간 팔레스타인에서 지속된 아랍 대봉기가 그 출발점이다. 1936년 봄, 팔레스타인에서는 유대인 공동체와 20년 동안 시온주의 프로젝트를 산파했던 영국 위임통치 당국을 겨냥한 봉기가 일어났다.저자가 말하다_『중국의 비판적 문화연구와 포스트식민 번역연구』 임춘성 지음 | 문화과학사 | 606쪽
고급-대중문화 구분 뛰어넘기…‘학제적 통섭’ 문화연구영상 시대에 중국 이해하기와 함께하기의 성찰
비판적 중국연구 위한 유럽·중국중심주의 비판중국연구를 수행하는 목표 가운데 하나는 한국인의 중국 인식을 심화하고 제고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공자를 위한 학술서를 일반 독서 대중에게 연계하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책의 내용을 노랫말이나 드라마 대사처럼 독자에게 전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자본화’와 ‘오락화’를 특징으로 하는 ‘문화의 상품화’ 추세를 따라야 하는데, 이는 비판적 연구자가 여간해선 내딛기 어려운 길이다. 더구나 영상매체가 기승을 부리는 시대에, 중국을 반대하고 혐오하는 흐름이 심상치 않은 요즈음, ‘중국 이해하기(知中)’와 ‘중국과 함께하기(與中)’의 성찰을 흔연히 받아들이는 귀 밝고 눈 밝은 독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몇몇 논자는 중국을 코끼리에 유비(類比) 했다. 코끼리의 유비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속담을 연상하게 한다. 이속담에는 ‘부분만 알고 전체를 알지 못하면서 멋대로 추측한다’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코끼리를 총체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학제적 통섭’ 연구가 필요하다.‘학제적 연구’는 넓은 시야와 지식과 기술, 그리고 상호 연결과 인식론을 교육 환경에서 종합하려는 학문적 프로그램으로, 제도화된 분과학문의 지식세분화 방식을 비판하기 위해 제기됐다. ‘문화연구’, ‘여성연구’, ‘포스트식민 연구’, ‘도시연구’, ‘중국연구’ 등이 대표적이다.
통섭에는 에드워드 윌슨의 ‘환원주의적/수직적 통섭’과 윌리엄 휴얼의 ‘비환원주의적/수평적 통섭’이 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윌슨을 따라 ‘뿌리와 가지를 연결하는 줄기가 통섭의 현장’이라는 ‘나무의 유비’를 통해 분석과 종합을 모두 포괄하면서 상호 영향을 주고 위계적인 통섭(統攝) 개념을 조탁했다. 반면 심광현 한예종 명예교수는 휴얼의 ‘jumping together’ 즉 ‘더불어 넘나듦’의 의미를 살려 ‘끌어당겨 서로 통하게 한다’의 의미인 통섭(通攝)이라는 번역을 제시하곤, ‘예술과 학문과 사회 간의 비환원주의적/수평적 통섭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비환원주의적/수평적 통섭’ 개념을 지지한다. ‘학제적 통섭’은 각 분과학문 연구자가 자신의 공부 결과를 타 분과학문과 공유하고 상호 보완해서 전체를 인식하려 노력하는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비판적 중국연구’의 방법론으로 ‘학제적 통섭 연구’를 제시했고 4부 21장 그리고 ‘책을 펴내며’와 ‘맺는 글’로 구성했다. 1부 중국의 비판적 문화연구에서는 ‘문화에 대한 문화연구’를 제기하며,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분을 뛰어넘고 ‘문화의 연구’와 ‘문화연구’의 장벽을 타파하는 ‘통섭적 문화’ 개념을 새롭게 제출하곤 그것을 ‘문화적으로’ 연구하자고 주장했다. 아울러 리퉈와 ‘대중문화비평총서’, 다이진화의 영화연구와 젠더연구, 왕샤오밍의 혁명전통과 문화연구의 접합, 뤼신위의 신(新)다큐멘터리 운동, TV 드라마 연구와 「낭야방」 분석을 다뤘다.
2부는 상하이 에스노그라피와 영화 상하이, 영화 홍콩의 관점에서 도시문화를 고찰했고, 타이완의 새로운 문화정체성 분석을 덧붙였다. 3부에서는 발터 베냐민과 더글러스 로빈슨 그리고 레이 초우의 번역연구를 검토하고, 중국의 한국 문학 번역 출판과 진융 소설 번역 그리고 리쩌허우 저작의 번역 비평을 다루었다. 4부 사이노폰 연구에서는 ‘중국적임(Chineseness) 비판’과 ‘디아스포라 반대’ 주장에 초점을 맞추어 레이 초우와 스수메이의 담론을 고찰했고, 하버드대 교수라는 상징자본을 등에 업고 중국 본토를 통합하려는 야심 찬 기획이라는 비판적 관점에서 왕더웨이의 사이노폰 담론을 분석했다.맺는 글에서는 비판적 중국연구의 과제로 유럽중심주의 비판과 중국중심주의 비판을 설정해 논술했다.
임춘성
전 국립목포대 중국언어와문화학과 교수통찰의 재미_『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런드 러셀 지음 |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70쪽
AI 시대, 일하지 않고 살 수 있나‘노동 가치관’ 다시 보기1930년대에 쓴 15편 에시이 모음집
효용·목적 안 따지고 원하는 행동하기삶을 치열한 ‘생존 경쟁’으로 이해하는 한국인의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생각이다. 게으름을 찬양하라니. 매사 경제적 이익과 유용성을 따지는 우리들의 태도는 아무성과도 낳을 수 없는 게으름을 죄악시하고 가장 배격해야 할 행동으로 이해하고 있다. 대다수에게 이런 생각은 불온하다 못해 불경스럽게 느껴진다. 이런 파격적인 발상이 현대적인 것이 아니라 90년도 더 된 1935년에 쓰인 책이라면 믿어지나.
그 시기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산업사회가 정착되고 대공황, 공산주의와 파시즘 독재에 대한 우려가 팽배했던 혼란의 시기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저자 버트란드 러셀이 얼마나 앞서가는 열린 사고를 가진 지식인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일생 동안 그는 독점 자본가·독재권력·전쟁에 반대했고 89세의 고령에도 반핵 시위에 참가했다가 체포돼 7일 동안 구금됐던 사실은 유명하다.
이 책은 러셀이 1930년대에 쓴 15편의 글을 모은 에세이집이다. 정치·경제·사회를 아우르는 폭넓은 주제를 위트 넘치는 유려한 문체로 다룬(그는 195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짧지만 묵직한 철학을 담은 책이다. 책의 제목이 된 첫 번째 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일과 여가 문제로 시작하지만 이어지는 ‘무용한 지식과 유용한 지식’, ‘우리 시대 청년들의 냉소주의’, ‘현대사회의 획일성’,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이성의 몰락,니체와 히틀러’, ‘사회주의를 위한 변명’과 같은 글들은 현대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부조리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있는 깨달음을 주고 있다.
러셀은 노동에 대해 성실과 근면의 가치를 부여한 노동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게으름에 대한 부정적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일하는 것만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 아니고 인간이 진정한 자유와 주체성을 얻기 위해서는 여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치려 했다. 그는 현대의 산업화된 생산 방식은 우리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고 봤다.끝없는 이익 추구를 미덕으로 여기는자본주의는 생산성의 증가로 인한 잉여 노동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고용 인력을 줄임으로써 한쪽에는 과로를, 다른 쪽에는 굶주림을 주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고 분석했다. 생산을 과학적으로 조직하면 현대 세계는 노동력의 일부만으로 사람들이 더 여가를 누리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봤다. 지금의 노동자들이 하는 8시간 노동을 모든 사람이 한다면 4시간 이하의 노동으로도 현재의 생활방식을 유지할 수 있다고 러셀은 주장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생각으로 느낄만 한 주장이 인공지능이 등장한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매우 그럴법하고 현실 가능한 해법이란 점에서 통찰의 탁월함을 느낄 수 있다.
러셀이 ‘행복과 번영에 이르는 길은 조직적으로 일을 줄여가는 것’이라고 역설했던 이유는 오로지 생계를 위해 일하며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즐겁고, 가치 있고, 재미있는 활동들을 누구나 자유롭게 추구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러셀이 말한 게으름은 대다수 사람들의 인간성 회복에 꼭 필요한 여유를 의미한 것이었다. 여가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경제 선순환을 위한 소비의 역할을 설명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사회와 타인이 정해준 가치 기준에 휘둘리지 않는 주체적인 삶을 위한 여가여야 한다는 점을 그는 강조했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말한 ‘게으름’이 말 그대로 인생을 허비하는 비생산적인 상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단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효용이나 목적을 따지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게으름은 재충전을 위한 휴식을 포함해서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을 이해하며 자신의 관심과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재미’를 연구한 나의 생각과도 정확히 일치한다.러셀의 글을 읽으면 시종일관 인간에 대한 연민과 휴머니즘,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믿음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 인간은 일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노동에 대한 가치관을 근본 적으로 바꿔보고 싶다면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김선진
‘재미 연구서’ 『재미의 본질』 저자역자가 말하다_『역사는 의미가 있는가』 테리 핀카드 지음 | 서정혁 옮김 | 그린비 | 392쪽
헤겔 철학에 대한 번역, 아직도 필요한가
헤겔의 저작에 대한 헤겔주의적 논평 시도
헤겔 철학에 대한 번역·문헌학적 연구 시급흔히 ‘유럽 중심주의’나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그 원흉으로 자주 인용되곤 하는 헤겔의 역사철학에 관해 아직도 논의할 거리가 남았는가? 국내에 번역 소개된 『헤겔』(Hegel: A Biography)로 잘 알려진 테리 핀카드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2017년에 출간한 이 책 『역사는 의미가 있는가: 정의의 역사적 형태들에 관한 헤겔의 논의』에서 ‘그렇다’고 긍정적으로 답한다. 핀카드는 헤겔이 역사철학에서 서술한 내용이 헤겔 자신이 『논리학』 등에서 설정한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재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며, 이 점에서 자신의 작업을 ‘헤겔의 저작에 대한 헤겔주의적 논평’이라고 부른다.
옮긴이가 핀카드 교수의 이 책에 주목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헤겔의 『세계사의 철학 강의』(흔히, ‘역사철학 강의’로 알려져 있다)를 새롭게 번역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다(참고로, 이 새로운 번역본은 올해 출간될 예정이다). 왜냐하면 핀카드 교수도 자신의 책 ‘들어가는 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가 헤겔의 역사철학을 정의(Justice)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에는 당연히 그전에 필요한 문헌학적 작업이 전제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핀카드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헤겔 철학에 관해 참고할 수 있는 문헌들을 최대한(어쩌면 과도하다고 할 정도로) 인용하면서 자신의 논의를 세밀하게 전개한다.
헤겔의 역사철학은 지금 우리가 보는 것처럼 단행본으로 헤겔 생전에 출간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강의에 사용한 헤겔의 자필 원고는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보통 사람들이 부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사실상 헤겔 자신이 직접 저술해 출간한 ‘역사철학’이라는 책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우리가 헤겔 자신의 글이라고 알고 있는 ‘역사철학 강의’는 엄밀히 말해 헤겔 자신의 글이 아니며, 그의 수강생들이나 제자들이 헤겔의 구술(口述) 강의를 기록해 놓은 노트들에 기초하여 헤겔 사후에 에두아르트 갠스 독일 베를린대 법학부 교수나 게오르크 라손 개신교 신학자, 헤겔 아들인 칼 헤겔 등이 편집 간행한 것이다. 잘 알려진 헤겔의 ‘미학 강의’ 등도 이러한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미 국외의 헤겔 연구에서는 문헌학적 연구를 기초로, 헤겔 자신의 본뜻을 되살리려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1822/23년부터 1830/31년까지 매년 겨울학기마다 개설된 헤겔의 강의를 필기한 수강생들의 노트들(지금까지 발견된 것은 16편 정도)이 남아 있는데, 이 노트들을 각 시기 별로 가능한 한 원본 내용 그대로 편집해 각각 분리해 출간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핀카드 교수도 인용하고 있듯이, 미국의 신학자인 피터 C. 호지슨 밴더빌트대 신학대학원 명예교수 등의 연구자들이 문헌학적 연구에 기초해 시기별 강의의 미세한 차이나 헤겔 자신의 사상적 변화 등을 비교 검토한 연구성과도 이미 어느 정도 그 결실을 본 바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헤겔의 ‘역사철학 강의’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돼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책들은 위와 같은 문헌학적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며, 국내 헤겔 연구에서도 헤겔의 역사철학과 관련해서는 시기별로 새롭게 편집된 헤겔의 ‘세계사의 철학 강의’에 대한 번역 작업과 문헌학적 연구가 매우 부족할 뿐만 아니라 그에 기초한 참신한 해석도 시도되고 있지 않다. 또한 헤겔 연구 밖에서는 기존의 부정확한 자료들과 연구들만을 근거로 활용해, 여전히 헤겔의 역사철학을 부정적으로 다루는데만 골몰하고 있거나, 더 나아가 이제는 다루기에는 너무 진부한 뻔한 이야기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어떤 전문 분야에서 심화되고 제대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지식들을 아무리 한데 융합한다고 해도, 거기서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것이 나올 수는 없다. 이는 철학 분야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원칙이다. 얼마 전에 옮긴이는 헤겔이 마지막으로 발표한 글(『영국 선거법 개혁 법안』)도 국내 처음으로 번역하여 출간한 바 있는데, 대부분 반응은 ‘헤겔이 이런 글도 썼나?’였다. 앞서 언급한 『세계사의 철학 강의』 뿐만 아니라, 아직도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헤겔 철학 관련 글들을 힘이 닿는 데까지 번역해 볼 생각이다. 번역만으로 어떤 연구가 만족스럽게 충족되지는 않지만, 연구다운연구를 위해 번역은 필요한 기초이기 때문이다.
서정혁
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근대독일철학저자가 말하다_『낯설지 않은 이방인』 고영훈 지음 | 한국외국어대학교 지식출판콘텐츠원 | 218쪽
질곡의 역사와 17년 반 감옥살이…인간애를 외치다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저항의 쁘라무디아
한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낫다는 근거 없어인도네시아에도 문학이 있는가? 1990년대 초에 서울에서 인도네시아에 출장 온 한 교수가 당시 유학 중이던 필자에게 이렇게 황당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영국 사람이 한국에도 문학이 있는지를 물었을 때 그분이 어떻게 답할지 궁금했다.
인구 2억8천만 명의 자원부국 인도네시아는 500개 이상의 종족이 각각 고유한 언어와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신라의 불국사 삼층석탑이 세워질 무렵 자바의 샤일렌드라 왕조는 가로 세로 각각 120미터의 보로부두르 사원을 건축했다. 이 사원은 세계 최대의 불교유적지로 앙코르와트보다 300년 앞섰고, 거대한 유럽 대성당들이 세워진 시기보다 400년 앞섰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나라에 문학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심리는 뭔가.
쁘라무디아(Pramoedya Ananta Toer)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인도네시아 작가이다. 2006년 4월 3일 그가 81세를 일기로 타계하였을 때 인도네시아 문학 연구가들은 추후 아시아권 국가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올 확률이 줄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쁘라무디아는 1980년대 초반부터 거의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며 1986년에는 나이지리아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소잉카와 함께 최종 후보에까지 오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세계 굴지의 출판사인 펭귄 출판사의 영역본을 비롯하여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쁘라무디아의 문학 세계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대체로 ‘저항’·‘역사’·‘인간애’ 등이다. 네덜란드를 포함한 유럽 세력으로부터 350년, 그리고 일본 3년 반 동안의 식민통치를 경험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저항, 그리고 그러한 역사에 대한 되새김은 각별한 것이다. 쁘라무디아는 자신의 작품에서식민통치에 대한 저항은 물론이고 자바 사회의 부정적인 문화, 민족의식, 여성에 대한 배려 등을 표출한다. 그의 저항은 부조리하고 부자유스러운 상황에 대한 저항이다. 작가의 사회 현상에 대한 이러한 반응은 사실 인간애와 연결돼 있다.
그러니까 쁘라무디아가 사회를 바라보는 척도는 인간애이다. 식민통치에 대한 저항은 결국 비인도적인 상황에 놓인 피식민 국민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제공하려는 최소한의 방식이다. 그의 작품 세계를 표현하는 다양한 키워드는 결국 인간애를 구현하고자 하는 통로이며 이 인간애는 그의 문학 사상을 엮는 든든한 씨줄이다.
17년 반을 영어(囹圄)의 몸으로 지낸 쁘라무디아는 인도네시아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방인이다. 오랜 기간 동안 그의 작품이 판금 돼 있어 그의 실체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낯설지 않은 이방인이다. 왜냐하면 그가 작품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간애가 배어 나오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가 겪은 영광과 질곡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작가로서 쁘라무디아는 그가 꿈꾸는 세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안타까운 것이었고 문학은 그에게 그러한 간극을 줄이려는 하나의 방편이었다.네덜란드 심리학자 헤이르트 호프스테더(1928∼2020)는 한 집단의 문화가 본질적으로 다른 집단보다 우수하거나 열등하다고 간주할 만한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인도네시아 문학이 다른 나라의 문학보다 못하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다. 특정 국가의 경제적인 지표가 그 나라의 문화, 문학의 수준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이다. 이것이 이 책을 선보이게 된 동기이다. 국내의 독자들에게 인도네시아 문학 나아가 동남아 문학, 그리고 그들 국가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고영훈
한국외대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 명예교수개구리 남자
김종옥 지음 | 문학과지성사 | 420쪽시대적 문제를 짚어내고 섬세하게 현상을 사유하는 작가인 저자의 두번째 소설집인 이 책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201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거리의 마술사」가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이듬해 등단작으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그는 “이 시대에 가장 뜨겁고 민감한 문제에서 출발해 어두운 하늘로 찬란하게 솟아”오른 “젊은 문학의 폭죽”(성석제)이라는 평을 받았다.포스트휴먼 페미니즘
로지 브라이도티 지음 | 윤조원 외 2인 옮김 | 아카넷 | 500쪽가부장제와 남성 우월주의에 맞선 페미니스트의 투쟁이 세계 전역에서 매우 거세다. 바야흐로 페미니즘의 시대다. 실제로 페미니즘은 다양한 사회운동과 정치적 전통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변혁의 힘을 제공해왔다. 그럼에도 주류 포스트휴먼 학계는 지금까지 페미니즘 이론을 소홀히 다뤘다. 다양한 페미니즘들의 역사를 돌아보고 ‘포스트휴먼 페미니즘’을 주창한다.트라우마 사회심리학
미타니 하루요 지음 | 명다인 옮김 | 또다른우주 | 284쪽아동 학대와 방임·가족의 자살·부모의 알코올 중독이나 정신질환 등 아동기 부정적 경험은 흔히 자극적인 뉴스의 소재가 되지만, 막상 학술적 연구는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수십 년간 ACE가 성인이 된 후의 심신의 질병·사회경제적 지위·대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방대한 연구 성과가 쌓였지만, 관련 자료 대부분이 영어 논문 형태로 돼 있어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탄소 기술관료주의
빅터 샤우 지음 | 이종식 옮김 | 빨간소금 | 544쪽푸순은 과거에 ‘만주’라 불린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의 가장 남쪽에 있는 랴오닝성에 있다. 이 도시의 지하에는 막대한 양의 석탄이 들어 있다. 20세기 전반기에 푸순 탄광을 경영한 일제 기업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등장과 더불어 대규모 석탄 채굴 산업이 발전했다. 1933년에 푸순은 만주 석탄 생산량의 5분의 4, 일본 본국과 식민지 전체에서 생산된 석탄의 6분의 1을 책임지고 있었다.자살하는 대한민국
김현성 지음 | 사이드웨이 | 344쪽대한민국은 파국을 맞이하고 있다. 이 나라가 역사상 세계로부터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이 시점에, 우리는 공동체의 급격한 쇠락과 해체를 목도하는 중이다.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고·출산하지 않으며·지방은 소멸하고·우리 모두 기형적인 고물가와 양극화된 사회체제 속에서 엄청난 경쟁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은 유기적으로 촘촘하게 얽힌 ‘돈의 문제’로 인해서 사멸의 길을 향하고 있다.이유 없는 병은 없다
시릴 타르키니오 지음 | 권진희 옮김 | 반니 | 280쪽우린 아프면 대개는 병원 문을 두드린다. 의사는 증상을 듣고는 바이러스 감염이나 염증 같은 원인을 찾아내고, 그 원인을 없애거나 통증을 줄이는 약을 처방한다. 그렇게 병은 낫는 듯싶다가도 다시 찾아와 우리를 괴롭힌다. 바이러스나 염증 같은 원인 뒤에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프랑스 임상심리학자인 저자는 말한다. 어쩌면 우리 몸이 끊임없이 아픈 이유가 트라우마 때문일 수도 있다.당신이 속는 이유
대니얼 사이먼스·크리스토퍼 차브리스 지음 | 이영래 옮김 | 김영사 | 472쪽『보이지 않는 고릴라』 저자들이 우리가 빠지는 함정과 사기꾼의 기술, 그리고 너무 늦기 전에 속임수를 탐지하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가짜 뉴스는 물론이고 이메일 피싱 사기부터 월스트리트의 폰지 사기까지, 고객을 유혹하는 마케팅부터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미술관까지, 다양한 속임수 사례를 통해 인간의 인지적 약점과 매력적으로 보이는 정보의 특성을 분석해 속임수를 알아차리고 대비하게 해준다.새로 쓴 미국 종교사
류대영 지음 | 푸른역사 | 580쪽미국을 떼어놓고 한국의 근현대사를 이야기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만큼 미국은 개항 이후 우리나라에 어떤 의미로든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미국의 실체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당연히 그간 미국을 알기 위한 혹은 알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다. 그런 차원에서 종교를 통해 미국의 실체를 살핀 이 책은 유의미하다.분야별 신간
인문글로벌 시대 자유학예의 발전 | 대니얼 아라야 지음 | 피터 마버 편집 | 박일우 옮김 | 북코리아 | 416쪽바디 뉴트럴 | 제시 닐랜드 지음 | 옐로브릭 | 430쪽부모됨의 뇌과학 | 첼시 코나보이 지음 | 정지현 옮김 | 코쿤북스 | 512쪽어휘의 길 어원의 힘 | 김성현 지음 | 세창출판사 | 320쪽
인간의 조건 | 백종현 지음 | 아카넷 | 364쪽트라우마 사회심리학 | 미타니 하루요 지음 | 명다인 옮김 | 또다른우주 | 284쪽청소년경제가 쉬워지는 최소한의 수학 | 오국환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308쪽역사
폐번치현 | 가쓰타 마사하루 지음 | 김용범 옮김 | 교유서가 | 316쪽사회학로맨스 이니그마 | 박형신·정수남 지음 | 한울엠플러스 | 344쪽문학-에세이개구리 남자 | 김종옥 지음 | 문학과지성사 | 420쪽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 | 이순하 지음 | 이야기장수 | 264쪽
종교기도 | 수경 스님 지음 | 엘도브 | 144쪽불교 부적의 연구 | 정각 지음 | 불광출판사 | 496쪽인생이 흔들릴 때 열반경 공부 | 자현 지음 | 불광출판사 | 328쪽‘가장 불평등한 대륙’ 라틴아메리카, ‘다른 세상’ 대안을 찾다
21세기 학문의 신대륙을 찾아서 ❻
국가·사회 난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는 인문사회 연구의 대표적인 성과 사례를 소개한다. 기존 인문사회 학문 분야의 벽을 넘어선 새로운 문제의식과 융합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혁신 연구의 결과다. 인문사회통합성과확산센터(센터장 노영희 건국대 교수)는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인문한국플러스사업(HK/HK+)과 융합연구지원사업의 연구성과 우수성, 파급효과 및 활용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6명의 심사위원이 우수성과 20곳을 선정했다.‘신전환’의 라틴아메리카, 새롭게 바라보기
조영현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원장라틴아메리카는 33개 국가와 6억 인구를 가진 거대한 대륙이다. 카리브·안데스·아마존·팜파스 등 각기 다른 자연환경 속에 백인·원주민·메스티소·흑인 그리고 그들의 혼혈인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자연환경과 인종만큼 갖가지 사회문제를 겪고 있는 세계의 시험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가능성과 대안 찾기에 분주한, 그 어디 보다 역동적인 대륙이다.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은 「신전환(New Transition)의 라틴아메리카, L.A.T.I.N.+를 통한 통합적 접근과 이해」를 주제로 라틴아메리카의 다층적 불평등을 연구하는 HK+사업을 수행하고 있다.조영현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원장은 “우리 연구원은 HK사업 「라틴아메리카 사회변동의 매트릭스」라는 선도 연구로 라틴아메리카 사회변동을 추동하는 근본 원인이 이 지역에 만연한 불평등인 것을 확인했다”라며 “불평등이 다양한 형태로 중첩돼 있고, 그 작용이 다층위적이고 다면적이어서 라틴아메리카 사회를 ‘다중 격차 사회’라고 이름 붙였다”라고 말했다.연구팀은 라틴아메리카의 사회·경제·환경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의 조건과 원인을 다층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인종·이주·종교·젠더·생태 불평등 혼재연구팀은 라틴아메리카를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대륙이라고 본다. 비단 임금 격차나 경제적인 문제에 한정해서 보는 건 아니다. 숫자가 나타
조영현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원장은 멕시코국립대(UNAM)에서 중남미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내는 불평등 그 너머 사회 저변에 뿌리내리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역사와 연결 지어 바라본다.
라틴아메리카 사회에 나타나는 불평등은 크게 인종·이주·종교·젠더·생태로 구분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16세기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지배자 유럽과 피지배자인 아메리카 원주민, 그리고 흑인 사이에 불평등한 인종적 위계질서가 확립됐다. 그 이후 독립을 거쳐 오늘날을 맞았지만, 라틴아메리카는 여전히 정치·사회적 불안정 속에 살고 있다.라틴아메리카를 둘러싼 사회적 모순 중 ‘종교의 불평등’은 라틴아메리카의 불평등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대항해시대를 개막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새로운 항로를 따라 자신들의 종교를 전파했다. 정복 전쟁은 곧 서구의 하느님과 원주민이 믿는 전통 신과의 대리전으로 일종의종교전쟁이기도 했다.
연구팀은 “정복과 식민화 과정은 선교 루트를 따라 이루어졌기에 종교가 핵심이었다”라며 “수 백 년간 원주민 종교는 배척당하고 억압됐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잡혀 온 흑인의 전통 신앙은 미신으로 치부됐고, 유일하게 합법적인 종교는 그리스도교뿐이었다”라고 설명했다.현재도 종교적 차별과 억압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원주민의 종교는 사라지지 않았다. 원주민과 흑인의 종교는 패권 종교와 그 문화에 기대어 혼합적 종교 특색을 보이며 생존했다.여성혐오와 ‘여초 상원’이 공존사회 불평등 요소 중 ‘젠더’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은 마초주의와 같은 남성 중심적 사회로 구조적이고 다층적인 젠더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이다.일례로 멕시코 북부에서는 남성에 의한 여성 혐오 살해인 페미사이드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1년에 약 1천 명의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를 당한다. 하지만 오래되고 지나친 억눌림은 그만큼 강력한 폭발성을 지니기도 한다.멕시코는 2018년 대선과 총선에서 세계 최초로 여성이 더 큰 비율을 차지하는 ‘여초 상원’ 돌풍을 일으켰다. 중남미 남성중심주의 국가의 대표 격인 멕시코에서 여초 상원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젠더 갈등이 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멕시코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사회는 양성평등을 넘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법, 동성결혼 합법화, 성소수자의 보건 서비스 확대 등 젠더 인식에서 새로운 변화를 선도하는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조영현 원장은 “오늘날 라틴아메리카는 다양하고, 새롭고, 때로는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신전환기(New Transition)적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세계 최초로 자연을 ‘권리의 주체’로라틴아메리카 문화에만 불평등 요소가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이 밟고 숨 쉬고 살아가는 땅에도 불평등이 존재한다.라틴아메리카의 불평등을 다층적이고 통합적으로 연구한 결과물인 ‘불평등 총서’ 시리즈다. 인종·이주·종교·젠터·생태 불평등 시리즈를 출간했고, 법·제도와 불평등을 집필 중이다.
기후 위기의 대안이 자연권을 헌법에 핵심 내용으로 명시하고, ‘다른 세상’ 이라는 대안 찾기를 시도하고 있는 에콰도르나 볼리비아 같은 제 3세계에서 나올 수도 있다. 생태와 불평등 문제를 밀접히 연결된 문제로 성찰한다.
아마존 열대우림과 팜파스 평원을 품은 라틴아메리카는 생태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 원주민들은 지구와 자연을 ‘어머니 신’이라는 의미의 파차마마(Pachamama)라고 부르며, 동식물과 무생물까지 포함한 자연의 모든 구성원을 가족으로 불렀다.
하지만 식민 통치 시기를 거치며 자원 수탈과 개발 신화는 자연과의 공존이나 조화로운 관계를 파괴했고, 파차마마에게 치명상을 입혔다.더 심각한 자연 훼손을 막기 위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자연에게 권리가 있다는 ‘자연법’을 제정했다. 2008년, 남미 에콰도르 신헌법은 세계 최초로 자연을 ‘권리의 주체’로 명시하고, 인간에게인권이 있듯 자연에는 자연권이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볼리비아도 잇따라 지구의 생존 권리를 보장하자는 ‘어머니 지구 권리법’을 제정했다.
조영현 원장은 “기후 위기의 대안이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맹종하는 제 1세계가 아니라 자연권을 헌법에 핵심 내용으로 명시하고 ‘다른 세상’이라는 대안 찾기를 시도하는 에콰도르나 볼리비아와 같은 제 3세계에서 나올 수도 있다”라며 “고삐 풀린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로 인해 생태(生態)가 사태(死態)가 된 현실에서 중남미지역원의 연구는 생태와 불평등 문제를 상호 밀접히 연결된 문제로 성찰한다”라고 밝혔다.임효진 기자 editor@kyosu.net연구개요
연구지원사업 인문한국(HK)플러스: 해외지역분야 연구기간 2018.09.01. ~ 2025.8.31.연구과제명 신전환(New Transition)의 라틴아메리카, L.A.T.I.N+를 통한 통합적 접근과 이해연구팀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조영현 원장 외 HK 교수 4명, HK연구교수 3명, 박사급 연구원 1명, 일반연구원 3명)연구성과1) 아젠다 관련 논문: 52편 (한국연구재단 등재지: 48편/ SCI: 1편/ 국제 기타: 1편/ 등재후보지2: 편)아젠다 관련 저서: 9권, 역서: 1권2) 디지털 라틴아메리카학 DB 구축 및 공개(6개 영역)3) 국내학술회의: 13회/ 국제학술회의: 6회4) 지역인문학센터 운영 - 평생교육 및 소외계층 대상 인문학 강좌: 중남미 다문화가족 프로그램과 탄뎀 운영, 초중등 인문소양교육: 세계시민교육, 자유학년제-스페인어 중남미 문화, 중장년·노년층 대상 인문교육: 시민강좌, Buena Vista-중남미명저읽기, Latin Heritage Celebration Week: 라틴문화축제AI 시대 ‘질문 능력’이 중요하다는데…‘질문하는 뇌’는 무엇이 다를까
질문하는 뇌의 발달: 아동의 질문 능력
송현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미국 조지아주립대 언어연구센터에서 성장한 보노보 ‘칸지’는 말하는 키보드를 사용해 인간 2~3세 아동과 유사한 수준으로 원하는 요구사항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언어능력에도 불구하고 칸지가 질문과 유사한 표현을 하는 경우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반면 인간 2~3세 아동은 ‘이건 뭐야?’와 같은 단순하지만 정보 획득이 가능한 질문을 할 수 있다.질문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질문 능력의 발달에 관여하는 뇌 구조나 기능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질문하는 능력을 고찰하기 위해 송현주 연세대 교수(심리학과)는 「질문 능력의 개인차와 관련된 뇌구조 규명을 위한 예비 연구」를 시작했다.송현주 교수는 “아동 질문 발달에 관한 연구는 기존에 있었지만, 분야별로 독립적으로 진행됐고,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변수에 관한 융합적 연구 자료와 이론은 부재하다”라며 연구를 시작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적응과 성장을 위해 필요한 질문 능력질문은 언어능력에서 고차원적인 능력 중 하나다.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상대방의 답변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춰야 하고, 그 다음에 질문하는 문장을 적절하게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생각하는 능력, 사고를 거친 후에 다양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연구팀은 이 질문하는 능력이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능력이라고 꼽았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기존 데이터의 패턴을 스스로 학습해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하는 기술이다. 인간의 정보 저장량을 넘어서는 이런 인공지능은 인간을 위한 최상의 방식으로 사용해야 한다. 앞으로 필요한 능력은 단순 지송현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발달심리학 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발달심리학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심리학회 홍보이사, 연세대 성평등센터장, 연세대 대학원 교학부원장 등을 역임했다.
식 습득이 아닌 명확하고 체계적인 질문을 하는 능력이 될 것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에 질문을 할 때, 질문자의 지식수준과 의도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이 된다. 즉, ‘좋은’ 질문을 해야 원하는 답 혹은 그 이상을 얻을 수 있다. 인공지능 시장이 성장하고 질문하는 능력이 대두되면서 인공지능에 전문적으로 적절한 질문을 입력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 등의 직업군이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뇌의 집행 기능 높이는 ‘외국어 사용’송현주 교수는 먼저 질문 능력의 근간이 되는 언어능력의 개인차와 관련한 뇌 구조를 규명하기 위해 성인을 대상으로 예비 연구를 진행했다. 모국어보다 개인차가 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외국어를 대상으로 학습 수준이나 사용 경험이 뇌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외국어 능숙도와 사용 경험에 따른 뇌구조 차이」 연구이다.영어를 제1외국어로 학습하는 32명의 한국 성인을 대상으로 자기공명영상 기법을 사용해 뇌구조를 촬영했다. 그 결과, 외국어를 더 자주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행동을 조절하고 제어하는 데 필요한 종합 인지 능력인 집행 기능을 나타내는 뇌백질 연결성이 더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어 사용 능력이 뇌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증명한 연구이다.
후속으로 진행될 학령기 아동을 대상으로 한 이번 연구는 지난해 6월 시작 단계에 돌입해 준비에 한창이다. 연구팀은 일상에서 아동이 자발적으로 하는 질문과 실험실 상황에 할 수 있는 질문을 각각 수집하고, 이 자료에서 나타나는 아동의 질문 능력과 관련이 있는 뇌 체계, 네트워크 탐색을 목표로 한다.질문은 정보 추구 질문과 비정보 추구 질문으로 나뉜다. 정보 추구 질문은 어떤 개념과 대상에 대한 사실과 설명을 요청하는 질문이고, 비정보 추구 질문은 주의를 끌거나 행동, 허가를 요청하는 질문이다. 정보 추구 질문에서는 사실을 요구하는 무엇(what) 질문과 왜(why), 어떻게(how)와 같은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을 분류하여 분석할 예정이다.질문하는 아이의 뇌, 무엇이 다를까송 교수는 “호기심 및 창의성의 근간이 되는 아동의 질문 능력이 학교에서 학습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관찰할 것”이라며 “공교육과 사교육이 아동의 질문 능력, 호기심,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것이며,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핵심 역량의 발달 과정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좀 더 효율적인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취학 전보다 취학 후에 늘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필요한 능력은 단순 지식 습득이 아닌 명확하고 체계적인 질문을 하는 능력이 될 것이다.
모국어와 외국어 간 전환 사용 빈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 전측 대상피질은 주로 의사 결정, 통제 등 고차원적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 개요
연구지원사업 한국연구재단 2023년도 융합연구지원사업 융합분야 심리학+교육학+뇌공학연구과제명 질문하는 뇌의 발달: 학령기 아동의 질문 능력 연구기간 2023.06.01. ~ 2026.05.31.연구팀 연세대 질문하는 뇌 발달 연구팀 (연구책임자 송현주 교수)연구성과 1) 해외학술대회: 2회 2) 국내학술대회: 2회 3) 세미나 및 집담회 개최 3:회 4) 특허 출원: 1건어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스무고개를 할 때 아동이 할 수 있는 질문의 종류에는 하나의 답변만 제외할 수 있는 ‘강아지인가요?’라는 가설 스캔 질문과 다수의 가설을 제외할 수 있는 ‘동물인가요?’와 같은 제약 조건 찾기 질문이 있다. 여기서 좀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제약 조건찾기 질문은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좀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
연구팀은 수집한 질문을 토대로 우수한 질문 능력을 갖춘 아동과 다른 아동 간의 뇌 영상을 비교하며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 뇌 영역을 확인할 예정이다. 예를 들면 집행 기능이라고 알려진 주의 조절 능력이나 정보를 선택적으로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인지적 능력,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과 언어, 호기심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뇌 영역과 질문 능력과의 연관성을 주의 깊게 관찰할 계획이다.이번 연구에는 다양한 MRI를 이용한 뇌 영상 촬영을 진행한다. 뇌 회백질의 구조적인 특성을 보는 촬영과 뇌의 활동성을 보는 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fMRI) 촬영도 시도할 예정이다.특히 질문 능력은 뇌의 고위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 부위의 활동성과 관련이 깊어 반드시 촬영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자기 공명 영상 기술은 이 부위를 촬영할 때 영상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연구팀은 이런 영상 왜곡을 줄이기 위해 ‘자기공명 영상의 인공물 보정 방법’을 개발했다. 딥러닝 기술을 이용해 고위 기능 영역의 영상을 촬영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특허 출원된 이 기술 성과는 오는 6월 서울에서 개최하는 국제뇌기능매핍학회(OHBM)에서 발표할 예정이다.임효진 기자 editor@kyosu.net사제동행이 만든 ‘한국의 일본 문화론’
“상호존중에 바탕한 한일관계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시리즈 이끄는
이경수 방송대 교수(일본학과)『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방송대출판문화원 지식의날개) 1권이 선보인 것은 2021년. 50여 명이 넘는 ‘일본 덕후’들이 일본 문화를 넓고 깊게 조망하는 시리즈는 그렇게 시작했다. 방송대라는 공통 요소에다 각자 맺어진 전문성 위에서 다양한 필자들이 참여해 일본을 다르게 보는 작업을 이어왔다. 이 작업의 특징은 가감 없이 일본 문화를 좀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짚어낸다는 점에도 있지만, 책 자체가 ‘사제동행(師弟同行)’의 결실이란 것도 놓칠 수 없다. 2024년 3월에는 4권을 내놨다. 근래 출간된 4권은 ‘한국과 일본의 공존을 기원하는’ 필자들이 ‘한국 속의 일본, 일본 속의 한국’을 조명했다. 도대체 이 책은 어떻게 해서 세상에 나왔고, 누가 이 작업에 참여하고 있을까? ‘21세기 조선통신사’를 자처하는 이들은 일본을 어떻게 읽어내고 있는 걸까? 이경수 방송대 교수(일본학과·사진)를 만나 그 의미를 들었다.
△1권을 내놓은 게 2021년인데, 역시 한일관계가 막혀 있던 시점입니다. 그러니까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는 그런 두 나라의 정치적 상황을 넘어서 출간된 책이기도 한데요. 책을 기획한 동기가 궁금합니다.“일본학과에서 가르치는 처지에서 한일공존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길은 없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생각한 것이 한국인과 일본인 집필진이 각자의 전문 분야를 중심으로 편견 없이 일본 문화를 바라보는 교양서를 출간하자는 것이었습니다.사실, 일본을 가장 잘 알아야 하는 나라는 한국입니다. 한국이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일본과의 갈등이 생겨도 감정적으로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현명한 방법을 모색할 수 있고, 이렇게 했을 때 한일관계도 극단적으로 쏠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한국에서조차 그동안 가장 많이 참고 되던 책들은 『국화와 칼』, 『기호의 제국』, 『일본의 굴레』와 같은 서구권의 일본학 도서였습니다. 서구권의 일본학 도서도 물론 훌륭하지만, 근본적으로 서구권이 보는 일본과 한국이 보는 일본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이 서구권과 맺는 관계와 일본이 한국과 맺는 관계는 성질이 다를 때가 많기 때문이죠. 한국과 일본에서 그나마 유명한 한국의 일본학 도서는 고 이어령 교수의 『축소 지향의 일본인』인데요, 출간 연도가 다소 오래된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한국과 일본 모두 사회적으로 변해 온 부분도 적지 않거든요. 그래서 21세기 현재에도 기성세대부터 신세대까지 아우르는 독자층에게 너무 가볍지도 않고 너무 무겁지도 않고 한국인의 입장만 전하는 것도 아니고 일본인의 입장만 전하는 것도 아닌 중간 입장의 ‘한국의 일본 문화론’을 펴낼 수는 없을까 고민하다가 한일 집필진이 참여하고 각자가 자신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좀더 넓은 시각 혹은 국제적인 시각에서일본 문화를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책이 바로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였습니다.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가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이 한일관계가 험악해질 대로 험악해진 2021년 5월이었습니다. 어느 곳이든 가까이에 있는 나라들끼리는 사이가 좋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나라끼리 갈등이 있다고 해서 각 나라에 속한 국민까지도 서로 증오하고 교류를 끊어야 할까요? 정치와 외교 문제로 나라끼리 갈등해도 민간교류는 계속돼야 평화가 유지되지 않을까요? 이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서 출간한 책이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입니다.”△ 일본에서도 이 시리즈 간행에 관심을 가지고 보도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도 다양한 평가가이경수 교수의 연구실은 커피향과 다향이 짙게 스며들어 있다. 트레이드 마크인 중절모를 쓴 이경수 교수가 최근 출간한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4』권을 들고 있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시리즈 1~4권이다
어느 곳이든 가까이에 있는 나라들끼리는 사이가 좋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나라끼리 갈등이 있다고 해서 각 나라에 속한 국민까지도 서로 증오하고 교류를 끊어야 할까요? 정치와 외교 문제로 나라끼리 갈등해도 민간교류는 계속돼야 평화가 유지되지 않을까요? 이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서 출간한 책이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입니다.
있을 것 같은데요.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가 처음 출간된 해가 2021년인데 한국의 언론과 독자들에게 과분하게 사랑을 받은 것도 감사한 일인데, 생각지도 못하게 일본의 언론과 독자들로부터도 큰 관심을 받아 집필진 모두 놀랐습니다. <도쿄신문>과 <주니치신문>에서 이례적으로 독특한 ‘한국의 일본 문화론’ 시도라면서 이 책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1면에 특집기사로 크게 소개했습니다. <도쿄신문> 기사를 접한 NHK국제라디오 한국어 방송 <하나카페>의 담당 일본인 PD가 직접 저에게 연락해서 한국인 공저자 몇 명이 출연해 책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방송을 들은 일본인 독자들도 이 책을 구입했다는 연락도 받았고요. NHK국제라디오 영어방송에까지 이 책이 소개됐습니다. 야후 재팬의 뉴스와 일본어 블로그에도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가 소개됐고요. 이후 매년 시리즈가 나오면서 저를 비롯해 여러 한국인 공저자들이 NHK한국어라디오 방송 <하나 카페>에 출연해 한국인과 일본인 독자들과 꾸준히 만나게 됐습니다. 또한 일본의 온라인 서점과 도서관에서도 이 시리즈에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한국에서 간행된 일본 문화론이 일본인 독자들과도 만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합니다. 주변에서 특히 많이 받은 평가라면 “한국인 입장에서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일본 문화에 이런 점이 있는 줄 몰랐다”, “일본인이지만 자국인 일본의 문화를 신선한 시각으로 다시 보게 됐다”인데요,바로 저와 집필진이 원했던 반응이라 기쁩니다.”
△ 사실 매번 다양한 필자들 특히 50여 명에 가까운 이들이 참여한다는 것은 다양성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구성과 내용의 통일성을 꾀한다는 점에서는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진행하면서 가장 어렸던 점은 무엇이었나요?“아마 국내 도서 중에서, 아니, 어쩌면 일본과 다른 나라 도서 중에서도 이렇게 많은 공저자가 참여하는 책은 찾기 힘들 것입니다. 주변에서도 집필진이 40~50여 명이 된다는 것에 많이 놀랍니다. 그래서 집필자마다 할애된 페이지 수는 정해져 있어서 중언부언이나 추상적인 글이 아니라 핵심적인 메시지와 흥미롭고 신선한 에피소드가 있는 글이 특징입니다. 집필진 수가 많다 보니 처음 원고를 받았을 때 문체와 전개 방식에서 개성이 강해 각자의 개성과 매력은 살리되 문체와 분위기는 어느 정도 통일해야 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저와 내부 편집 위원회가 1차로 원고들을 선정하고 선정된 원고의 가독성을 다듬은 후 출판사의 편집팀이 최종적으로 교열하고 다시 집필진에게 확인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거쳤는데요, 이 과정이 만만치 않아서 야근 근무, 주말 근무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보람이 커서 그런지 스트레스는 없었네요. 다양한 집필진이 참여했기에 그만큼 다채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일본 문화론이 탄생했다고 생각합니다.저자마다 서술 방식이 달라서 통일성을 지키며 형식을 맞추는 일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것보다도 더 어려운 것은 3교가 끝나고 인쇄에 들어가야 하는데 1교와 2교 때는 특별한 코멘트를 하지 않다가 막판에 수정을 하고 싶다는 코멘트를 하는 집필자도 간혹 있어서 편집위원회에서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반대로 수정을 요청했으나 쉽지 않아서 일부 내용을 편집위원회에서 임의로 수정했다가 쓴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죠.”
△ 필자들이 정말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장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200여 명의 전문가들을 섭외한 셈인데, 섭외 기준은 무엇인지, 또 어떤 방식으로 섭외했는지 궁금합니다.“원고를 집필해 줄 전문가 선정과 섭외가 무엇보다 힘든 작업입니다. 그래도 일본어와 관련된 일을 40년 넘게 해서 그런지 다양한 집필자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원고를 의뢰하면 최선을 다해 원고를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편하게 작업한 편입니다. 그러나 평소 잘 모르던 집필자를 섭외할 때는 작업이 조금 까다로워서 겸손하고 진솔하게 출판의 취지를 알려드리고 나서 충분히 소통합니다. 그 후에 원고 견본을 보내어 여러 번 의견을 조절합니다. 집필자들 가운데는 해외 학회에서 만난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일본, 대만, 중국, 독일, 이탈리아 등의 학회에서 발표를 듣고 원고를 꼭 의뢰드리고 싶은 분들에게도 출판의 취지를 말씀드리고 원고의뢰를 합니다. 가능하면 원고 내용이 겹치지 않는 방향으로 집필이경수 교수는 학교 안팎에서도 ‘전문 커피 바리스타’로 소문이 자자하다. 그는 틈나는 대로 동료 교수들이나 제자들에게 커피를 직접 내려 대접하는 걸 즐긴다.
진을 섭외했습니다. 유명 교수에서 젊은 대학생까지 다양한 필진을 섭외했습니다. 독자층을 넓히기 위해서입니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1~4권에 계속 집필하신 분들입니다. 이분들이 정말로 진정한 우수 작가이자 덕후입니다. 이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 같은 학과에 계신 강상규 교수와 ‘동아시아 사랑방 포럼’을 운영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포럼이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를 낳은 기반이 된 것 같은데요. 포럼은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요?“강상규 교수는 한일관계, 국제관계, 동아시아 정치사상 등 일본학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저는 일본어 교육에 일본문화를 확대 접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사랑방 포럼’을 통해 강상규 교수는 일본학 전문가를 찾아내고, 저는 일본 언어문화 전문가를 찾아내려 애쓰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사랑방 포럼’은 한·중·일 3개국의 언어, 문화, 문학, 역사, 경제, 정치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발표하고 토론하는 콜로퀴움 형태의 학술모임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한국과 일본이 중심이며, 350여 명의 회원들이 한일 관계 발전에 순기능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동안 발표하고 토론하고 조사한 내용을 엮은 결과물이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시리즈입니다. 이 포럼을 통해 일본을 더욱 입체적,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지식인들이 늘어나 일본과의 거리를 좁히는데 작은 디딤돌이 됐으면 합니다. 한일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데 순기능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환영합니다.”
△ 말씀을 듣다 보니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라는 책이 ‘사제동행(師弟同行)’의 결실이란 걸거듭 알게 됩니다. 제자들과 함께하는 이런 지적 작업에서 ‘스승’으로서 보람도 상당할 것 같습니다.“맞습니다. 4권까지 나온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는 사제동행의 결실인 동시에 일본학과의 숨은 전문가들이 빛을 발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저는 교수로서 가르치기도 하지만 사제(師弟)라고 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제자들에게 많이 배우기도 합니다. 사실 한국과 일본의 교수 및전문가들과 방송대 동문이 공동으로 책을 낸다는 기획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방송대 일본학과에는 공부할 기회를 놓쳐 뒤늦게 입학한 학생도 있지만 다양한 분야의 전문직 종사자도 많고, 일본에 대한 전문 지식이 풍부한 학생도 많습니다.그러나 일본을 잘 안다고 해서 글을 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니, 전문가와 함께 책을 낸다는 일에 미리 겁을 먹고 손사래를 치는 졸업생과 대학원생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처음에는 방송대 동문 필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제동행을 표방하는 이상 방송대 동문의 글이 너무 적으면 의미가 없으므로 끈기 있게 설득했습니다. 방송대는 열린 대학과 집단지성을 상징하는 대학이다 보니 숨은 전문가가 많습니다.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를 시리즈로 계속 펴내는 목적은 자기 일을 묵묵히 열심히 하는 전문가를 찾아 햇빛에 드러내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 퇴고한 끝에 완성한 원고를 읽다 보면 때로는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견뎌서 열매를 맺은 글은 애착이 가고 배울 점도 많습니다.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가 성장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멋진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 1년 후에 ‘정년’을 맞으시는데,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는 계속 후속 작업을 진행하실 계획인지, 선생님 개인 계획은 또 어떤지 궁금합니다.“2025년 2월이면 정년퇴직입니다. 이제 채 1년도 남지 않았습니다.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는 지금까지 4권이 나왔고, 5권은 2025년 1월 출간 예정이고 7권까지 계획하고 있습니다. 퇴임하면 그동안 공부한 것을 사회에 환원하고 베풀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 작은 연결고리가 ‘동아시아 사랑방 포럼’입니다.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는 책마다 대략 50명 정도가 집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7권까지 출판하면 350여 회원 전원이 참여하게 됩니다. 이 포럼과 저술 활동은 퇴임 후에도 계속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활동이 한일관계 개선과 발전에 작은 디딤돌이라도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비록 일본어 연구지만, 일본 연구에 맹진한 그간의 학자적 경험에서, 학계에서 앞으로의 일본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길 바라시는지요.
“일본 연구는 지금까지도 각 분야별로 잘해 왔다고 봅니다만 다른 연구 분야에 비해 역사가 비교적 짧다 보니 일본 전문가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좀더 큰 틀에서 본 연구라던가 거국적인 관점에서 다루는 연구자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양한 관점에서의 일본 연구자가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아울러 세계 속의 일본 연구자가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일본 전문가의 증가와 더불어 문화교류도 활발해지기를 희망합니다.”인터뷰 전문은 kyosu.net글·사진 최익현 편집기획위원editor@kyosu.net나노기술로 만들던 새로운 첨단소재… 인공지능이 뒤이을까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39
홍완식 서울시립대 교수(신소재공학부)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정치와 경제·사회와 문화·과학기술·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달 20일 홍완식 서울시립대 교수(신소재공학부)가 「재료과학의 현재와 미래」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z발췌해 소개한다. 제40강은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예정돼 있다.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우리 인류가 처음 지구상에 발을 딛게 된 구석기 시대에는 우리 손에 쥐어진 소재는 아마 열 가지도 채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19세기에 이를 때만 해도, 엔지니어라 불리는 사람들이 다뤘던 소재는 몇 백 가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날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소재의 종류는 16만 가지가 넘는다. 그리고 이 중 대부분은 겨우 지난 100년 동안 발견되거나 개발된 것들이다.
그런데 막상 소재가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고 소재의 중요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소재 기술을 개발한다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소재를 산업화한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인지, 소재 자체에 어떻게 부가 가치가 창출될 수 있는지, 우리가 이미 사용하고 있는 소재 외에 새로운 소재를 연구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개념인지 등의 질문은 심지어 재료공학을 전공한 사람조차도 대답하기가 막막한 것이 현실이다.인류 문명사를 이야기할 때 가장 큰 흐름은 인류가 주로 사용했던 소재들을 기준으로 석기·청동기·철기 시대로 나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막연하게 인간의 생활 수준이 유인원과 크게 다를 바 없었으리라고 짐작하는 구석기 시대에서조차도, 도구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돌을 내려치는 단순한 동작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서, 돌의 재질과 타격면의 파쇄 경향 등 상당한 수준의 경험과 노하우가 수반돼야 했다는 근거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 이후 토기의 제작·금속의 제련과 합금·유리의 발견 등, 인류 문명이 한 단계 도약한 순간 순간마다 거기에는 인류의 일상과 함께 한 재료공학이 있었다.모든 생명체가 그렇듯이 인간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주변 환경으로부터의 도전에 직면한다.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의식주를 포함한 모든 면에서 쉴 새 없이 터지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어려움과 시련이 문제로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가 그에 대한 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답을 알고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문제에 대한 답을, 해결책을 곧바로 떠올릴 수 없는 것일까? 무릇 문제라는 것들 속에는 모순이 포함돼 있어서, 우리를 진퇴양난의 지경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세상을 사는 것은 모순을 부단히 극복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가 새로운 도구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하자. 그는 그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마주치게 될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 그 도구가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무도 그 모순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니까. 모순은 대개 두 가지 양상 중 하나로 나타난다.첫째는 두 개 이상의 요소나 개념이 서로 부딪히는 상충(相衝)이다. 그런데 상충이란 말보다는 영어의 trade-off란 용어가 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모순을 표현한다. 즉, 하나가 좋아지면 반드시 무엇인가 나빠지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둘째는 물리적 불가능이다. 이는 두 가지 상반된 특성이 동시에 요구되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어떤 물체가 무거우면서 동시에 가벼워야 한다든가, 어떤 현상이 빠르면서 동시에 느리게 일어나야 한다든가 하는 경우이다. 어떤 도구를 고안하고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소재를 물색하다 보면 이러한 모순들을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대개 그러한 도구가 이전까지 존재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상반된 특성들을 모두 갖춘 소재를 발견하지 못했던 경우가 많다.그렇다고 해서 원하는 그대로의 소재를 새로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인류가 새로운 소재를 설계하고 합성하는 시도를 해볼 만큼 소재에 대한 이해도가 축적된 것은 20세기 중반에나 돼서야 가능했기 때문이다.“과거에는 인간이 땅에서 얻은 ‘소재’를 가지고 ‘물건’을 만들어내는 데 그쳤다면 현대에 와서는 소재 자체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다. 앞으로는 인간들이, 그리고 산업 사회가 소재에 대해 요구하는 바가 점점 더 복잡하고 다양해질 것이다. 소재는 한층 더 가혹한 조건들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특성과 성능을 발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인류는 모순에 직면할 때마다 놀라운 창의력과 불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해 왔다. 모순을 해결하는 전략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두 가지를 합쳐 시너지를 추구하는 것, 둘째, 전혀 다른 제3의 요소를 도입하는 것, 셋째, 우연이나 실수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매달려 성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과거에는 인간이 땅에서 얻은 ‘소재’를 가지고 ‘물건’을 만들어내는 데 그쳤다면 현대에 와서는 소재 자체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다. 앞으로는 인간들이, 그리고 산업 사회가 소재에 대해 요구하는 바가 점점 더 복잡하고 다양해질 것이다. 소재는 한층 더 가혹한 조건들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홍완식 서울시립대 교수(신소재공학부)는 “소재·재료와 재료공학의 가장 큰 특징은 ‘연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자연에 적응하면서 사고방식과 생활 양식이 변화해온 과정이 소재를 통해 커다란 흐름으로 연결되듯이, 소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동양과 서양을 연결해 준다”라며 “현대의 재료공학은 학제 융합이라는 새로운 목적과 필요에 의해 기획·조직되고 진화했다”라고 설명했다 . 사진=네이버문화재단
던 특성과 성능을 발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어느 수준 이하에서는 더 이상 선형적으로 스케일 다운되지 못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현상이 돌발하는 것이, 돌발 상황 자체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 과제를 던져주기도 한다. 나노 기술은 이미 여러 가지 첨단 소재를 탄생시켰고, 더욱더 많은 성과와 발전은 현재 진행형이다.인공지능은 알파고가 바둑에서 이세돌을 꺾고, 2022년 말 챗 지피티가 공개되는 등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최대의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비단 컴퓨터와 관련된 분야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고 공학 전반에 걸쳐서 점점 인공지능을 활용할 줄 모르면 치열한 기술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재료공학 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미 인공지능을 활용해 새로운 물성을 갖는 소재를 설계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실험을 거치지 않고 소재의 구조나 특성을 파악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이러한 첨단 연구는 대학원 이상의 수준에서 제한된 영역에서만 이뤄지고 있으나,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를 감안할 때 머지않아 학부 과정에서도 인공지능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활용 능력을 갖추는 것이 요구되고 있다.다만 아직까지는 인공지능이 재료공학 전반에 도입되기에는 몇 가지 난제가 있다. 소재에 대한 연구가 눈 감고 코끼리 더듬는 주먹구구식 방법론에서 탈피해 정말로 필요한 순간에 성과를 낼 수 있으려면, 고등학생 때부터 이러한 기초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야만 한다.
소재·재료와 재료공학의 가장 큰 특징은 ‘연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자연에 적응하면서 사고방식과 생활 양식이 변화해온 과정이 소재를 통해 커다란 흐름으로 연결되듯이, 소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동양과 서양을 연결해 준다. 현대의 재료공학은 학제 융합이라는 새로운 목적과 필요에 의해 기획·조직되고 진화했다. 재료공학이야말로 인류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하고, 인간과 세상사의 수많은 면면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나아가 중심축으로서 우리 곁에 늘 존재해왔다. 앞으로의 우리의 삶도 소재·재료와 연결 짓지 않고서는, 그리고 재료 공학의 뒷받침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이처럼 단편적 지식만으로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소재’가 갖는 ‘연결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의 삶에 최대한 활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를 둘러싼 모든 정책과 계획과 노력들이 ‘연결성’에 초점을 맞춰 이뤄져야 할 것이다. 교육·연구개발·산업화 등 어느 측면을 막론하고, 단선적인 사고의 틀에서 취사선택의 판단이 내려진다면 모르는 사이에 더 큰 구멍을 만들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어느 분야든지 발전하고 성장하려면 저변이 확대돼야 한다. 우리가 재료공학의 미래에 기대를 걸 수 있도록 하려면, 먼저 이것을 단순한 공학의 응용 분야 중 하나로만 간주할 것이 아니라, 기초과학과의 긴밀한 연결성과 필요성을 체감해야 한다. 그에 따라 우리의 학문 후속 세대가 청소년기부터 관심을 기울이고 필요한 기초 소양을 쌓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노력이 재료공학 발전의 초석이 될 것이다.넥스트 코로나 팬데믹, 표적 치료로 대응하라
코로나19 팬데믹은 종식됐지만, 변종 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넥스트 팬데믹을 유발하리란 우려는 여전히 크다. 코로나바이러스 별 ‘맞춤형 치료전략’을 수립할 단서가 제시됐다. 최영기 기초과학연구원(IBS)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신변종 바이러스 연구센터장 연구팀은 이주연 국립보건연구원 신종바이러스연구센터장 연구팀과 공동으로 인체감염을 유발했던 4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서로 다른 숙주세포 감염 전략을 확인했다.코로나바이러스는 호흡기와 소화기 감염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다. 지금까지 인간에게 감염을 일으킨 코로나바이러스는 총 7종이다. 2003년 사스(SARS-CoV, 2012년 메르스(MERS-CoV), 2019년 코로나19(SARS-CoV-2) 등 세계적인 팬데믹을 유발한 코로나바이러스와 매년 반복되는 감기 코로나바이러스(HCoV-OC43)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야생동물과 가축에 널리 존재하면서, 종을 넘어 전파될 가능성도 커 차후에도 팬데믹을 유발하리란 우려가 지속 제기된다.왼쪽부터 기초과학연구원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신변종 바이러스 연구센터의 최영기 센터장과 박동빈 박사후연구원이다. 사진=기초과학연구원
전염병 연구에는 사람의 장기 구조를 인공적으로 만든 오가노이드(장기 유사체)가 주로 쓰인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해서도 오가노이드를 이용해 감염경로와 숙주세포의 반응, 잠재적 치료법 개발 등의 연구가 많이 이뤄졌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연구는 개별 코로나바이러스만 다뤘을 뿐, 여러 코로나바이러스 간의 감염 메커니즘 차이를 복합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이에 연구진은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감기 코로나바이러스 등 4종의 코로나바이러스를 오가노이드에 감염시켜 숙주와 바이러스 간의 상호작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우선 연구진은 인간 기관지를 구성하는 주요 네 가지 세포인 기저세포·클라라세포·잔세포·섬모세포가 온전하게 자라난 기관지 오가노이드를 제작했다.먼저 4종 코로나바이러스에서 모두 감염 시 총 세포 수는 감소하지만, 호흡기 점액을 생성하는 잔세포의 수가 증가함을 확인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침입에 대항해 점액을 바탕으로 기도 상피의 면역반응이 일어난다다는 의미다.각 코로나바이러스가 주로 표적하는 기관지 세포에는 차이가 있었다. 감기 코로나바이러스는 클라라세포를 주로 감염시키는 반면, 사스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섬모세포를 주로 감염시켰다.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의 경우 잔세포에 대한 현저한 감염 친화성을 보였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선생님의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주간 <교수신문>과 온라인 교수신문에 선생님의 이야기를 정성껏 담겠습니다자유 기고는 물론, 제보와 보도자료는editor@kyosu.net 으로 보내주세요대나무 마디가 알려준 규칙성의 가치
딸깍발이
김병희 편집기획위원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대학생들은 규칙적으로 뭘 꾸준히 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공부도 몰아서 하고 드라마도 주말에 정주행으로 몰아서 본다. 본방 사수하면 끝날 때의 아쉬움이나 다음 회의 기대감 같은 감정도 느끼게 될 텐데, 줄거리 위주로 쭉 그냥 ‘봐버리는’ 것이다. 힘든 과정은 거치지 않고 달콤한 결과만을 기대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해서 중장년을 거쳐 노년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살아가려고 저러나 싶어 걱정되기도 한다. 그래서 대나무 마디가 알려준 규칙성 교육을 대학 시절부터 실시하면 어떨까 싶다.
대나무가 절개를 상징한다고 해서, 절개를 교육하자는 말이 아니다. 송죽지절(松竹之節)이란 말처럼 소나무(松)와 대나무(竹)는 곧은 절개를 의미한다. 절개가 사라진 요즘에는 고결한 인품과 바른 생활을 뜻할 터다. 어떤 분들은 “대 끝에서도 삼 년이라”는 속담을 들어, 아무리 어렵더라도 댓잎 끝에서 삼 년을 버틸 방법을 찾으라며 인내심을 강조하기도 한다. 대나무는 땅 위로 죽순을 틔우기 전에 4년 동안이나 땅속으로 촘촘하게 뿌리를 뻗어 준비한다고 하며, 철저한 준비를 강조하는 분도 있다. 하지만 나는 대나무를 볼 때마다 마치 아파트의 층처럼 같은 높이로 나눠진 마디의 규칙성에서 깊은 통찰을 얻었다.대나무 마디는 치밀하고 단단한 조직이라 쉽게 파괴되지 않는다. 나이테가 없는 유일한 나무이자 성장 속도가 다른 나무보다 200배나 빠른 대나무는 자고 나면 어린 죽순(竹筍)이 놀라울 정도로 쭉쭉 커간다. 속이 텅 빈 대나무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저력도 마디에서 나온다. 더 놀라운 것은 몸체의 중간 중간을 마디가 잡아주기 때문에, 속이 텅 비었는데도 거센 폭풍에 휘어질 뿐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드럼통을 처음에 매끈한 원통 모양으로 만들자 굴릴 때 약간의 충격만 줘도 부서졌다. 그래서 대나무 마디에 착안해 드럼통에 마디 모양을 넣어 만들었더니 통의 강도가 4배나 더 강해졌고 지금의 드럼통이 보편화됐다. 규칙적인 마디가 강도를 높인 것이다. 우리도 살아가는 동안 저마다의 마디 만드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대나무의 마디는 매우 단단한 조직을 갖고 있다. 대나무는 생장점(生長點)인 마디를 만들 때만 잠시 성장을 멈춘다고 한다. 마디를 만들고 나면 대나무는 마디를 발판으로 또 성장한다. 대나무 줄기의 속이 텅 비어 있어도 중간중간에 단단한 마디가 있기 때문에 강풍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생장점이 없는 기형적인 대나무는 처음에는 다른 대나무보다 빨리 자라지만 금세 꺾여 버린다고 한다. 대나무가 마디를 만드는 시간은 잠시 성장을 멈추고 안으로 집중하며 자신의 밀도를 높이는 과정이다. 하늘 높이 치솟은 대나무 마디의 간격은 대개 비슷해 규칙성이 있다.대나무에게 마디는 성장의 발판이자 한 단계 더 높이 올라가도록 받쳐주는 생장점이다. 아래쪽의 마디가 완성돼야 그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 대나무의 마디가 우리에게 전하는 말은 생활의 규칙성이다. 규칙적인 생활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봉쇄한다고 주장하는 크리에이터도 있지만, 불규칙적인 생활이 창의성을 향상시킨다는 사실을 입증한 연구 결과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매일 20분씩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 매일 20분씩 규칙적으로 책 읽는 사람, 매일 20분씩 규칙적으로 글 쓰는 사람, 매주 빠지지 않고 종교 활동을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건강 수준이, 지식 수준이, 작문 수준이, 신자의 태도가 확률적으로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나는 매일 2시간씩 글을 쓰는 규칙적인 생활을 십여 년째 해오고 있다. 한자리에 앉아 2시간을 쓸 때도 있다. 시간이 없을 때는 대중교통을 기다리는 시간에도, 약속보다 먼저 도착한 15분의 시간에도 스마트폰 메모장에 글을 쓴다. 자투리 시간을 몇 개 모으면 2시간을 채우기가 어렵지 않다. 대나무의 마디가 알려준 규칙적인 글쓰기가 나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날마다 2시간씩의 글쓰기는 내 인생의 마디를 만드는 시간이었는데, 한 단계를 단단하게 다지고 나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나의 ‘생장점’을 만들어주었지 싶다. 큰 대나무는 보통 70개 이상의 마디를 가지고 있다.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까지 70번의 규칙성이 있었다는 뜻이다. 대나무 스스로 규칙적인 마디를 만들며 성장하듯, 대학생들에게 규칙성 교육을 강조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들이 큰 대나무로 자랄 저력(底力)을 스스로 키우지 않을까?출처=루시다갤러리
갤러리 초대석
「민강」윤한종,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2024윤한종 작가 전시회는 오는 30일까지 경남 진주시 망경북길 루시다 갤러리에서 열린다. 이 시대 영웅을 위한 작가의 세 번째 시리즈 작품 『리더스: 기업가의 초상』은 구한말 민강(閔橿, 1883~1931) 부터 현재 김정주(金正宙, 1968~2022)까지 그가 선정한 기업가 13명의 초상 사진을 그의 방식대로 작업한 것이다. 그는 작품 옆에 각 기업인의 간단한 약력, 혹은 사업적 과정과 기업인의 어록 중 대표적 말을 적어 놓기도 했다. 그 약력을 읽어보면 살면서 모든 것이 성공적인 꽃길만 걸었을 것 같은 대표적인 기업가들 모두 초기에 많은 실패를 겪고, 어려운 문제점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업가의 삶의 궤적은 고전 소설이나 신화에 나오는 영웅의 이야기와 서사 구조가 매우 유사하다. 작가가 축약한 기업인의 삶에는 그들의 삶을 비판하거나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력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1997년 외환위기 때 대기업에서 독립해 전자부품 검사기를 만드는 회사를 차리고, 코스닥에 상장시킬 정도로 크게 사업을 했던 가치관에 따른 것이다.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헐렁한 완벽주의자 되기
직장인 박사의 월화수목금금금
최진희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완벽하지 않으면 말과 글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어떤 학생들은 지극히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미숙한 생각이 차마 글로 튀어나오도록 내버려 두지 못한다. 글로 태어난 아장아장 걷는 아이와 같은 미숙한 생각을, 그 글의 연소함을 두고 보지 못한다. 그래서 글을 쓰고 곧바로 지운다. 한 줄의 생각이 글로 태어나기까지 잠시 머물다가 또 마음에 들지 않아 삭제한다. 쓰고 지우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데이터 가치가 제로인 백지로 두고 시간이 흐르게 한다. 한 시간, 두 시간, 반나절, 그리고 하루가 속절없이 흐른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책상 앞에서 다른 모든 것은 즐겁게 할 수 있어도 논문은 도저히 못 쓰겠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고 두 학기가 지나고 세 학기가 지나면 초조해진다. 그런 학생에게 주는 처방은 무엇일까" “기본으로 돌아갑시다. 논문을 읽으세요.”글은 생각의 그릇이다. 생각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글로 물질화시킨 후 생각을 점검하게 된다. 생각을 점검하는 방법은 글에 담긴 생각의 내용을 보며 그 방향을 틀거나깊게 혹은 명확히 하기 위해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고 문단을 재배열한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글로 쓰면서 연구를 시작한다. 논문에서 이러한 생각의 재료가 되는 것은 타 연구자의 논문이며 이는 선행연구를 통해 진행된다. 즉 논문을 읽어야 어떤 개념과 주장을 할지 생각이 생긴다. 논문을 읽지 않고 어떻게 논문을 쓸까? 이메일과 보고서의 장르에 익숙한 파트타임 박사들은 논문을 쓰고자 하는데 논문을 읽지 않는 다. 왜? “논문을 읽을 시간이 없어요.”
다시 말하지만, 생각의 재료는 선행연구다. 한 직장인 학생은 “마치 앞서간 연구자들이 인증한 바윗돌을 하나하나 가져다가 다듬어서 돌계단을 쌓고, 그 위에 올라서서 바라다보이는 그 어떤 곳에 대하여 비로소 한마디 할 수 있는 작업이 논문 쓰기인 것 같다”며 선행연구에 어떤 바윗돌을 골라야 할지 고민이 하세월이 걸린다고 하소연했다. 맞다. 그래야 한다.마치 강가에서 사금을 캘 때, 모래와 자갈을 분리하듯, 바른 재료를 찾아 그 재료로 지식을 만들기 때문에 단조롭고 무의미한 작은 작업의 반복이고 지루한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특별히 챗GPT가 지식의 모듬을 번개같이 찾아 보기 좋게 전달해주는 이 시점에서 논문을 찾아 읽고 재료를 보고 고르고 던지는 일은 시간 낭비라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작은 돌을 고르고 캐는 능력이 없으면, 글을 쓰고 수정하고 수정요청이 오면 반응할 수 있는 감각과 역량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지식을 만들 수 있다.수업 시간에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진 학생을 염두에 두고 김연아의 트리플 악셀을 사례로 꺼낸다. 트리플 엑셀이 나오기까지 몇 번이나 넘어졌을까' 김연아 선수가 넘어지는 영상을 보면,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점프하고 다시 일어나 점프한다. 또 넘어지자 눈물인 듯 땀을 닦는 영상을 보며 논문을 작성하는 건 마치 무수한 수정의 과정을 거쳐서 한 편이 완성되는 무대 뒤의 시간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한 번의 턴을 잘 돈다는 것은 잘 작성된 문장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고 그 문장들이 모여 논문을 작성하는 일은, 마치 그러한 턴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없이 연습하는 것이라고 학생들 머리에 뇌 새김을 시도한다.
성인학습자들이여, 그대들의 직위와 근무연수가 혹은 이메일 작문역량이 트리플 악셀을 한 번에 돌 수 있다고 보장하지 않는다. 생각하고 쓰는 능력은 무수한 실패가 필요하다. 특별히 익숙하지 않은 개념의 조합이 그러하다. 그러니 읽고 쓰고 지우고 다시 쓰라. 나의 완벽주의는 몇 번이고 완성할 때까지 시도하는 완벽을 추구하는 방향성을 갖도록 헐렁하게 갖고, 매일 다시 읽고 쓰자. 쓴다는 것은 수정한다는 뜻이다. 헐렁한 완벽주의로 연습하며 쓰고 계속 고쳐나가자.펜실베니아주립대에서 성인 및 평생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해외 박사과정 프로그램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 성인 평생교육의 현장에서 디지털 혁신으로 변화하는 성인학습자의 삶과 학습의 희로애락 그리고 고등교육의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무전공 입학이 아니라 무전공 졸업으로
기고
박일우계명대 명예교수·기호학무전공이란 용어가 얄궂다. 대학 입학하면서 전공이 없다니' 그런데 필자는 한 수 더 뜬다. 나올 때도 전공이 없는 대학을 만들자고. 무전공 입학 때문에 대학가가 술렁대는데 이런 소리를 하다니 자칫 돌 맞을 짓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비싼 돈 들이고 고생해서 대학에 들어와서 더 많은 돈을 들여 졸업해 나가 ‘전공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해묵은 통계자료이지만 대학 졸업생 취업률은 고작 60%를 오가고, 일자리와 전공 부합도는 10%(예체능)에서 60%(공학)를 오르내린다(2021년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조사, 한국교육개발원). 평균적으로는 대학 전공 찾아 일자리 구하는 졸업생은 백 명 당 20명 전후라는 말이다. 그럼 나머지 0명은 왜 대학에 오고, ‘전공’에 연연했나?이런 논리로 전공 무효론을 주장하면 반쪽짜리다. 더 본질적인 문제를 보자. 대학이 취업 준비하는 곳인가' 아니면 취업시장은 제대로 된 대학 교육을 받은 인재를 기다리는가' 놀랍게도, 현실은 두 번째 쪽이다. 제대로 된 취업시장이 원하는 대학 졸업생의 ‘역량’은 전공지식이나 토플 점수가 아니라 제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쓰고 공감하고 배려하며 같이 일할 줄 아는 능력이다. 오늘날은 여기에 덧붙여 세상을 제대로 보는 눈이 중요해졌다. 바로 자유교육이 추구하는 목표이다. 교육열이 가장 높다는 우리나라에만 없는 자유학예대학이 하는 교육이다. 하버드 이후 미국 학부과정 교육의 근간이 되어 오늘날 미국 고등교육의 경쟁력을 만들어 준 바로 그 전통이다.지난 20여 년, 대학은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목을 매달았다. 서로 다른 사업 목표, 선정 평가 기준에 맞추려고 교육과정, 편제를 만들고 합치고 없애다 보니 퇴적물이 쌓여, 이제는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렸다. 이제라도 대학은 대학다워져 보자. 학부 과정은 무전공으로 들어와 자유학예 교육과정을 밟고 무전공으로 졸업하도록 하자. 싱가포르의 예일-NUS 대학이 싱가포르 특유의 통제 분위기에서 문을 닫았지만 교육 목표와 교육과정 구성 원칙은 옳았다. 자유학예교육이 우리만 제외한 동아시아에서, 학문의 본고장 유럽에서, 심지어 서구의 식민지 아픔을 겪었던 아프리카, 남미에서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것은 이유가 있다.
교육부가 수도권 대학과 지역거점 국립대학에 밀어붙이는 25% 무전공 ‘입학’ 제도 역시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그렇게 들어온 학생들이 취업 잘되는(것으로 보이는) 학과로 갈 것이 뻔한데, 한 다리 건너 들어온 학생들을 소위 높은 ‘입결’을 거쳐 들어온 학생들이 반길 리도 만무하고, 그렇게 들어온 학생들이 적응하기도 쉽지 않다. 과거 학부제, 현재의 이른바 자유전공 제도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더 큰 문제는 교수들이다. 왜 자격도 안 되는 친구가 나의 성채에 들어오냐고. 복수전공? 부전공? 제도는 있지만 필수교과 학점 분포, 강의 시간 배치, 더 나아가 차별적 교과목 개설 등 다른 학생들이 못 오게 하는 방법은 얼마든 있다. 아직도 잘나가는(?) 학과의 입장이다. 왜 우리 과에 들어온 학생이 다른 데 가냐고? 이거야말로 학문 중 학문인데, 왜 거기 가서 서러움 받냐고. 학생을 뺏기는, 나아가 안 오는 학과 교수들의 비애이다.이제 아카데미는 정책에 끌려다니는 무기력을 청산하고 정책을 주도하여야 한다. 자유학예교육의 뿌리는 기초학문이다. 당장 써먹을 기술 습득은 사내 연수, 평생교육에서, 일부 하이테크는 대학원의 몫이다. 무전공 입학으로 들어온 학생들은 학과 교수가 아닌 친절한 멘토의 도움을 얻어 4년 동안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찾고 미리 준비하여 ‘무전공 졸업’, 전공의 속박 없이 세상에 나가게 하자. 대학은 자유학예교육을 받은 제자들의 성공과 함께, 기초학문의 르네상스, 학문후속세대의 팽창을 보게 될 것이다.김상돈의 교수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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