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전통 위기 직면한 중동, 변화는 시작됐다

글로컬 오디세이

정진한

한국외대 아랍어과 강사

한국이 인류사에 전례 없는 저출생 위기와 이민자 수용 확대 문제로 고민에 빠진 오늘날, 의외로 한국 못지않게 인

구 문제로 진퇴양난에 빠진 지역이 바로 중동 최고 부자 나라들의 모임, GCC(걸프협력기구)이다. 일부다처제와 높은 출산율·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등에 힘입어 이 고민에서 가장 멀 것 같은 이곳은 사실 민주주의와 국가 정체성의 유지·민족과 종교 문제가 인구 관리와 직접 얽혀 있기에 실질적으로는 한국보다 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사실 일부다처가정은 거의 희박하고 인구 기여도 역시 극히 낮다.또한, 반세기 전 거의 8명에 이르던 출산율 역시 최근 국가별 편차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거의 자연 감소 수준으로 수렴 중이다.

이곳에서 인구 감소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인구 비율로 인한 정체성의 위기이다. 걸프 지역은 이미 총인구의 절반 이하만 자국민이며,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의 경우에는 인구의 무려 90% 가량이 외국인이다. 심지어 이들 대부분은 아랍인이 아닌 남아시아 계통이기에 걸프인은 커녕 아랍인 전체를 합쳐도 소수에 불과하다. 때문에 이곳을 외국인들은 의식주를 비롯한 생활 전반에서 좋게 말하면 코즈모폴리탄이라는 모호한 실체를 절감한다.

이 독특한 인구구조는 어쩌면 필요불가결한 두 가지 조치, 이주민에 대한 체류 자격 제한과 민주주의의 제약을 파생시켰다. 걸프 국가들은 가급적 이주민들이 정해진 기간 동안 노동을 한 후에는 자국으로 돌아가도록 제도화했고 임금은 자국민 보다 극히 낮지만 각종 복지에서 제외하는 정책을 써왔다. 대표적으로 결혼만 하면 자국민에게 무상이나 장기 저리로 주택을 제공하는 혜택을 외국인과 결혼한 가정은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점차 이런 경향이 변하고 있다. 과거 원유를 캐고 도시와 인프라를 건설하는데 집중하던 시기에는 저임금 노동자를 유치하고 이를 관리할 소수의 외국인 엘리트를 고용하는 것만으로 국가의 노동수요를 충족할 수 있었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걸프 국가들은 이제 탈석유 산업으로 구조를 개편하면서 최첨단 산업을 개발하고 이를 운용할 세계적 인재들을 유치해야 한다. 때문에 관광·금융·의료·유통·물류와 같이 거의 동일한 산업 분야를 놓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이웃의 경쟁국보다 더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해 외

국 출신 고급 인재를 모시기 위해 기존의 관례와 제약들을 풀어야만 하는 어려움에 빠졌다.

이 과정은 국가 정체성의 희석과 전통 사회의 반발이라는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두바이를 배우자는 열풍이 한국에서도 불 정도로 규제 혁파의 대명사가 된 두바이와 이를 벤치마킹 중인 걸프 국가들은 점차 아랍과 이슬람이라는 기존의 익숙한 가치를 유연화하고 있다. 두바이를 비롯한 7개의 토후국으로 구성된 아랍에미리트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토후국들에 속하는 라스 알 카이마는 이슬람에서 엄금하기에 두바이조차도 여태 시도하지 못한 카지노의 개설을 최근 준비 중이다. 이슬람 금주의 대명사 사우디는 올해 술의 반입과 음주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겠다고 선언해 세계를 놀래켰다. 이런 파격은 당연히 전통 가치를 존중하는 현지인들의 분노와 우려를 자극해 이 지역 최고의 경쟁력 중 하나인 정치적 안정성을 위해를 가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더 과제는 민주화의 점진적 실현이다. 기형적 인구구조에도 불구하고 걸프 국가들이 급성장을 달성한 비결에는 역설적이게도 제한적 민주주의가 있다. 아랍에미리트 정부 홈페이지에는 연간 계획부터 2천117년까지 국가 발전의 청사진이 게시돼있다. 이처럼 장기 계획 설립과 안정적 추진을 통해 효율적이고 견고한 산업화와 중진화를 견인한 리더는 헌법으로 보장된 세습 왕들이다. 하지만 아랍에미리트 전임 국왕의 고문인 압둘 칼리끄 교수를 위시한 다수의 걸프 지역 브레인은 대한민국과 같은 선진화의 완성에 산업화를 후속하는 민주주의의 도입이 필요하고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부작용의 최소화이다. 장차 민주 사회를 경험한 자국민이 늘어나고 체류 자격의 향상과 함께 발언권이 올라간 외국인들이 가세하면 이곳에서도 민주화의 추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일부 걸프국이 의회를 비롯한 몇몇 민주주의 장치를 도입한 사례가 있지만 아직 왕실의 입김에 취약한 부분적 실험 단계를 맴돈다. 애초에 민주주의를 헌법에 담고 출발한 대한민국과 달리 이들 왕정국가들이 유럽처럼 입헌 군주국으로 가는 길은 고통을 동반할 우려가 더 크다. 제정일치 사회의 종신 통치자 칼리파를 이상적 모델로 삼는 이슬람과, 부족들의 연맹체를 구성하는 각 부족 수장에게 전권을 수여하는 아랍의 전통을 긍정하는 국민들에게 민주정은 거북할 수 있다. 유사 이래 최전성기를 맞고 있는 걸프 국가가 이새로운 도전에 어떻게 응전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요르단대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문명교류사와 중동학을 전공했고 한국외대와 서울대 등에서 관련 강의를 했다. 「이슬람 세계관 속 신라의 역사: 알 마스우디의 창세기부터 각 민족의 기원을 중심으로」 등 논문을 썼다.

직격탄 맞은 ‘세종도서’ 사업…“출판계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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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생태계 위기,

“피해는 결국 국민이 떠안는다”

출판계 예산 삭감은 이미 예견된 사태였다. 지난해 9월,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책과사회연구소·책읽는사회문화재단·한국서점조합연합회·한국작가회의·한국출판인회의는 공동으로 ‘정부는 내년도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예산을 복원하고 책 읽는 사회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라는 성명서를 발표

한 바 있다.

가장 많은 예산이 배정되던 ‘국민독서문화 증진지원’ 사업이 없어지면서 안 그래도 책을 잘 읽지 않는 분위기에서 책 판매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독서문화는 학술출판과 출판의 다양성을 위한 버팀목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성인 1인당 연간 종합 독서량이 4.5권으로 최하위권에 속한다. 한 네티즌은 “책 읽는 국민, 책과 친한 국민, 독서 문화 증진이 싫은 것인가”라고 정부를 질타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학술·교양부문에서 “양서출판 의욕 진작 및 국민의 독서문화 향상 도모”를 위해 추진되던 세종도서 사업이 쪼그라든 것이다. 세종도서 학술부문은 “학문 발전과 지식기반사회 여건 조성”과 더불어 “기초학문에 충실한 도서 보급으로 출판 다양성 기여”, “기초과학 등 사회적 필수 연구의 지속적 추진 장려”라는 학술출판의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400종에 달하는 우수 학술도서를 구입·보급하던 세종도서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출판계는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전문대교협, 22대 총선 ‘전문대 지역혁신 3대 아젠다’ 발표

전문대 지역혁신 3대 아젠다

평생직업교육 지역혁신 체계 강화

직업교육 기반 유학생 지역정주 강화

지역혁신 주체로 전문대 역할 확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부설 고등직업교육연구소가 지난 13일 ‘제22대 총선 대비 전문대학 정책 아젠다’를 발표했다.

지난달 초 주요 정당 등에 전달되기도 한 이번 정책 아젠다는 ‘전문대학이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혁신에 앞장선다’라는 목표에 따라 전국의 전문대학을 대상으로 의견 수렴과 전문가 회의를 거쳐 마련했다.

이번 작업에는 김성훈 한라대 총장을 중심으로 9개 지역 기획처장 9명 등 총 15명의 정책 아젠다 TF(태스크포스)팀이 참여했다.

아젠다는 크게 △‘평생직업교육 지역혁신 체계 강화’ △‘직업교육 기반 유학생 지역 정주 지원체계 강화’ △‘지역혁신 주체로서 전문대학 역할 확대’ 등 3개 영역으로 나뉘며, 전문대학의 주요 기능인 평생직업교육, 지역정주형 외국인 유학생 양성, 지역 내 역할 확대 측면을 골자로 한다.

‘직업교육법’ 제정·국제화 인증제 개선 요구

연구소는 평생직업교육 지역혁신체계 강화 아젠다를 추진하기 위한 방안으로 △법적 근거를 위한 ‘직업교육법’ 제정 △평생직업교육 바우처 제도 활성화 △평생직업교육 지역 인프라 구축을 세부 전략으로 세웠다.

여기에는 직업교육에 대한 국가·지역·기업의 책임 강화, 일·학습·삶의 연계를 위한 직업교육법 우선 제정, 지역 차원의

인프라 구축을 위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이 담겨있다.

지난해 3월 초 발의된 직업교육법은 정부의 ‘첨단분야 인재양성전략 발표’에서 인재 3법 중 하나로 정의된 법안이자, 지난해 8월 중등직업교육 발전방안의 근거로 발표된 법안이다.

직업교육 기반 외국인 유학생의 지역 정주 지원체계 강화 아젠다를 위한 방안으로는 △교육 국제화역량 인증제 및 비자제도 개선 △전문기술인 외국인 유학생 양성 지역 사업 신설 △광역 비자를 통한 해외 인재 정부 체계 구축이 제시됐다.

연구소는 “우수 외국인 유학생을 선발해 지역산업에 필요한 전문기술인으로 정주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라고 주장했다. 또 무분별한 외국인 유학생 유치 대신 △지역별 인력수급 계획에 기반한 지역 전문대학의 학과 개설 △현장실습 등 직업기술교육·취업·정착 지원 △광역지자체를 통한 광역 비자 중심의 ‘외국인 유학생 양성·정주 거버넌스 구축’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지역 산업 대응 및 지방소멸 방지, 생산인구를 유입한다는 것이 연구소의 전략이다. 연구소에 따르면 뿌리 산업분야 숙련기술인력 확보를 위한 외국인 유학생 양성 및 뿌리 기업 취업이 연계된 대학의 수는 지난달 기준 총 13개다.

연구소는 “해당 대학들은 정부의 재정지원 없이 수행 중인 점을 감안해 지역 차원의 재정지원사업을 활성화하고 경북·전남 등 지역 차원에서 요청하고 있는 광역비자연계의 ‘해외 인재 정주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지역혁신 주체로서의 전문대학 역할 확대 아젠다를 위한 방안으로는 △대학 유휴자원 활용을 위한 관련 법령개선 △고등직

업교육 공공성을 고려한 세제 관련 법령개선 △지역·산업·대학 연계 학교기업 육성체계 구축이 제시됐다.

“지역소멸 방지, 기초단위 지역경제 활성화부터”

기존 규정 개선을 통해 전문대학이 대학등록금·정부재정지원 의존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산업체와 협업·상생하고 수익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에 더욱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소의 분석이다.

이를 위한 세부 개선안으로는 △기존 ‘학교 기업’ 지침의 개선 △대학의 인적·물적 자원 활용 △기존 학교 복합시설법 개선 △대학 기부금 및 부가가치세법상 영세율 적용 △대학 수익용 기본재산 대체 취득의 증여세 면세 △대학의 직접 사용 부동산에 대한 지방세 및 교육용 외 토지 지방세 개선 등이 있다.

김병규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인구 구조 변화, 미래 사회 대응, 지역소멸 방지를 위한 해법은 기초 단위 지역 경제 활성화에서부터 찾아야 한다”라며 “그간 전문대학은 지역 주력산업과 협력해 왔다. 전문대학 졸업생의 지역사회 정주율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 전문대학과 지역의 시너지를 높이는 방향으로 이번 연구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사무총장은 “지역 전문대학들은 특성화 구조조정을 준비하는 지역과 함께 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라며 “국회에 계류된 직업교육법 제정 및 유휴시설 활용을 위한 ‘학교복합시설법’, 각종 면세를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지방세법’ 등 법안을 추진해 지역 경제 활력 회복에 관심을 가져달라”라고 밝혔다.

현지용 기자 edito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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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전태일을 생각한다…“타인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느끼다”

저자 인터뷰_『영성 없는 진보』(온뜰 | 140쪽) 쓴 김상봉 전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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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학계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에도 적잖은 파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과·사진)는 자기비판을 담았다고 적었지만, 그동안 한국 정치가 놓치고 있었던 본질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철학의 실천, 실천의 철학 차원에서 비판적 학술 글쓰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담고 있어서다. 요즘 학계에서는 비판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거의 없다시피 한다. 책의 뒷표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반복되는 실패와 절망적 현실에 대한 철학적 진단, 통렬한 비판, 그리고 희망의 가능성”

『영성 없는 진보』에서 김 교수는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교수(종합인간학부)의 『조선사상사』(도서출판 길 | 2022)를 인용하며 ‘조선적 영성’을 상세히 설명했다. “나와 전체의 합일에 대한 믿음으로서의 영성은 신라의 고승 원효의 ‘일심’에서부터 퇴계 이황의 ‘천인합일’이나 수운 최제우의 오심즉여심(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다)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이어져 내려온 한국 사상 전체의 본질적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본질을 ‘자기형성’으로 나아가지 못한 점에서 찾았다. “자기형성이란 타자부정의 반대말이다. 그러니까 자기형성은 일단 영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성의 문제다. 그것은 전체를 능동적으로 형성하는 주체성을 의미한다.” 그는 “믿음은 그런 이성적 자기형성 또는 전체 형성의 전제라고 말할 수 있다”라며 “왜냐하면 이 세계가 나의 것이라는 믿음 또는 이 세계 전체와 내가 하나라는 믿음이 있는 경우에만, 세계의 형성이 나 자신의 자기 형성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책의 3장 ‘정치 민주화와 경제 민주화 사이에서’는 비판이 아닌 형성의 차원에서 접근한다. △보편적 의료 보험 제도 △영국의 기간산업 국유화 모델 △독일의 노사 공동 결정 제도 △기본소득 등이 그러한 사례로 제시된다.

당파적 권력 획득에 매몰된 사회

김 교수의 문제 의식은 비단 진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영성의 부재’를 그 원인으로 지적했다. “한국 사회의 정치적 파행은 우리의 믿음이 병들었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는 나라가 어떻게 되든 당파적 권력 획득에만 매몰돼 있다. 정치인이나 시민 너나 할 것없이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례가 나와 전체가 하나라는 믿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것일까. 『영성 없는 진보』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나와 전체가 하나라는 믿음은 오직 세계의 고통이

자기 자신의 고통이 되는 한에서 증명된다.

세계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인 사람은 자기 신체의 고통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듯이 세계를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운다.”

인물은 전태일 열사(1948~1970), 서준식 인권운동가(1948~ )이다. “전태일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낀 사람이었다.”, “전태일에게서 그 믿음은 더도 덜도 아니고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순수한 그리스도교적 신앙이었다.”, “역사의 진보를 위한 투쟁의 가장 치열한 전선에서 싸우면서도 지난날 안중근이나 백범 김구 같은 위대한 정신이 보여 준 영성을 우리 시대에 가장 탁월한 전범으로 보여 준 이가 바로 서준식이다.”, “그가 그리스도교인이 아니면서도 예수의 삶에서 구원의 말씀과 고귀한 윤리를 발견할 수 있었던 까닭은, 예수가 그 어렵고 위험한 길을 끝까지 걸음으로써,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영속적 모범이 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머리말을 대신해 쓴 ‘참된 믿음을 기다리며’에서 이도종 목사(1892~1948), 손양원 목사(1902~1950)도 언급했다. “오래전 해방 공간에서 좌익과 우익이 폭력적으로 충돌하던 시절, 좌익 무장대의 손에 죽임당한 제주의 이도종 목사나,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좌익 학생 안재선을 양자로 받아들인 순천의 손양원 목사 같은 분이야말로 그들의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참된 믿음과 영성의 모범이 된 분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역사가 중요하다. 김 교수는 “현실을 영

원의 관점에서 보는 눈을 상실하게 되면, 우리는 언제나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급급하게 된다”라며 “과거 치열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부터 한국의 시민사회나 정치권에서는 역사의식이 다소 결핍돼 있었다고 언제나 생각해왔다”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한국인의 우려스러운 정신적 결핍”이다. “멀리 내다보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찾기 힘들고 말깨나 한다는 사람들은 그저 오늘 내일의 문제에만 골몰한다. 오늘 내일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정말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오늘과 내일의 일을 언제나 영원의 관점에서 동시에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종말 아닌 진보적 영성 회복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 진영에 대한 비판은 뼈아프다. 너무 가혹한 건 아닌가. 부정과 비판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시대적 한계가 있었던 건 아닐까. 혹은 죽음으로라도 그 빚을 감당하려고 했던 실천도 있었던 건 아닐까. “당연히 그런 영성이 살아 있던 시대가 있었다. 내가 비판한 것은 그런 시대가 이제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책에서 나는 어떤 의미에서 1980년 5월(광주 민주화운동)을 전환점으로 진보적 시대정신이 부정과 비판에 매몰되었는지도 설명했다.” 김 교수는 “물론 어떤 경우에도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종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이 책이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본래의 진보적 영성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체에 대한 믿음은 오용될 수도 있다. 사랑(?)에 토대를 둔, 그러한 믿음은 파시즘이나 극단적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 있다. 개인의 전체에 대한 믿음과 사회의 전체에 대한 믿음은 다른 것일까. 더욱이 오용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파시즘적 열광과 참된 영성은 전혀 다른 것이다. 전자는 전체를 빙자해 자신의 영광과 권력을 추구할 뿐이지만, 참된 영성은 오직 타인의 고통에 겸손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응답하는 데 존립하는 것이다.” 김교수는 “나와 전체가 하나라는 믿음은 오직 세계의 고통이 자기 자신의 고통이 되는 한에서 증명된다”라며 “세계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인 사람은 자기 신체의 고통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듯이 세계를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현실은 지옥이다. 책의 머리말에서 김교수는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집단적 자살을 향해 치닫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그래서 “절망적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어떤 믿음”이필요하다. 그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은

각자도생 즉 ‘혼자 살아남는 것’으로 요약되는데, 이것은 사회 붕괴의 반영”이라면서 “우리가 공멸하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내가 전체와 하나라는 깨달음과 믿음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 이유는 “지금 우리 사회는 외부의 적에 대항해 단결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고, 거꾸로 내부의 구성원들을 끊임없이 상호간의 적대적 전쟁 속으로 밀어넣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내부 구성원 간 적대적 전쟁과 각자도생

또한 『영성 없는 진보』에서 눈에 띈 부분은 ‘교육의 실패와 정신의 빈곤’을 지적한 내용이다. “무지와 무사유”가 판을 치고, 특히 “세계에 전체에 대한 일관된 관점을 내면화”하기 어려운 교육 체계를 비판한 것이다. “학생들이 문제집이 아니라 책을 읽기 시작해야 한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김 교수는 “복잡하게 말할 것 없이 경쟁지상주의 교육, 오로지 입시를 위한 교육이 문제”라며 “논어의 첫머리도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의 첫 문장도 ‘사람은 본성적으로 알기를 원한다’이다”라고 말했다. 인간이 지닌 본성적 탐구열이 시험교육에 의해 억압되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과)는 연세대 철학과에서 학·석사를 했다. 독일 마인츠대에서 철학, 고전문헌학, 신학을 공부하고 이마누엘 칸트의 『유작』(Opus postumum)에 대한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그리스도신학대 종교철학과에서 가르치다가 해직됐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문예 아카데미 교장과 학벌없는사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호모 에티쿠스』『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서로 주체성의 이념』, 『네가 나라다』 등을 집필했다. 사진=온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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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낳는 선택을 하고선 왜 힘들다고 하느냐’

아줌마 연구자로 가까스로 살아남기 2

연구자의 생애주기와 출산2

서나래

한국교원대 한국근대교육사 연구센터 전임연구원

지역의 중소도시를 시작으로, 서울에서 거리가 먼 순서대로 대학은 사라질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다. 대학에서 교원을 꿈꾸고 있는 신진 연구자는 이런 미래에 좌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진 연구자들이 나부터 일상에서 인구절벽을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있는 환경일까? 역설적이게도 전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신진 연구자일수록 불안한 미래와 연구 부담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거나 결혼을 했더라도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불안한 미래는 남성 연구자나 여성 연구자에게 똑같이 주어진 현실이다. 하지만 출산을 선택한 여성 연구자에게는 더더욱 가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 연재에서 나는 두 가지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 하나는 왜 여성 연구자들이 출산이나 육아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지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의 대학은 현재 어떤 문제에 봉착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아줌마 연구자로 가까스로 살아남기’라는 연재 제목은 양육과 연구로 저글링하며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다. 지역의 많은 연구자들이 특히 여성 연구자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연구를 접고 있다. 이 연재를 통해 고군분투하는 신진 연구자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한편, 익명의 신진 연구자들에게 진한 동지애를 전달하고 싶다. “우리, 살아서, 만나요.”

현 정부의 R&D 연구비 감축으로 인해 갓 학위를 마친 학문후속세대의 생계가 어렵다는 뉴스 기사를 보았다. 박사학위를 마치고도 일자리가 별로 없어서 대졸 신입사원 연봉보다 낮은 연봉을 받거나 그 마저도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기사의 댓글이었다. “누칼협.” 누칼협은 “누가 칼로 협박했느냐”의 줄임말로 MZ세대 사이의 유행어다. 본인의 의지로 선택한 일이나 직업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거나 개선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그걸 하라고 협박한 사람은 없으니 그럼 하지 말라고 조롱하는 말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옛말과 유사하다.

그냥 나의 할 일이라 여기고 버텼다

워킹맘의 고단함을 토로하는 글에도 종종 ‘누칼협’이라는 댓글이 붙는다. 누가 아이를 낳으라고 한 것이 아닌데 스스로 아이를 낳는 선택을 하고선 왜 힘들다고 하냐는 뜻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다. 박사학위를 하는 것도, 출산을 하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다. 누가 칼 들고 협박을 한 적은 없다. 나는 자의에 의해 박사과정을 했고, 자의에 의해 출산을 하고서는 지면을 빌어 힘들다고 동네방네 떠드는 것은 아닌지 한참 동안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그냥 나의 할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 시간을 버텨냈던 것 같다. 그리고 ‘누칼협’의 조롱 속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떠벌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지만,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여성’ 연구자들과 연대의식을 갖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더라도 학술지는 제때 나와야 했다

나는 한밤중에 갑자기 양수가 터져서 아기를 낳으러 병원에 가면서도 가방에 노트북부터 챙겼다. 그때 나는 학회의 편집간사를 맡고 있었다. 나의 아기가 태어나더라도 학술지는 제때 나와야했고, 학회 JAMS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쉽게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학술지 논문투고시스템을 관리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소수학문의 특성상 이 일을 대신 맡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편집위원장이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학술지가 차질없이 발행될 수 있었지만, 조리원에서 논문투고시스템의 홈페이지를 한동안 바라보았던 일은 또렷이 기억이 난다.

대학원 학칙으로 육아휴학이 있었는데 임신, 출산, 만 8세 이하의 자녀 육아 사유로 신청할 수 있다. 육아휴학은 최대 1년(2학기)까지 신청할 수 있으며, 자녀 1명당 1회만 신청 가능하다. 아기가 만 1세가 된다고 해서 바로 엄마가 학교에 복학을 하여 예전과 같은 생활을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학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년만 육아휴학을 했다.

누가 칼로 협박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어쨌든 아이 둘을 키우며 학위를 마칠 수 있었다. '누칼협'이라는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무엇보다 시간이 없었다

아기를 낳아보니 갓난 아기는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먹고 쌌다.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가는 것이 초보 부모의 주된 일이었다. 조리원에서는 모유가 좋다고 모유 수유를 강조했지만 나의 공부를 위해서는 분유를 먹이는 편이 훨씬 나아보였다. 나 아닌 누군가가 대신 수유를 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생후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분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생후 여덟 달이 되었을 때, 아기는 어디든 기어다니려고 했고, 겨우 “마, 음마”와 같은 소리를 내며 엄마를 부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아기를 집근처 가정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동네를 산책하는 할머니들은 엄마가 애좀 더 보지 왜 벌써 기관에 보내냐고 혀를 끌끌 찼지만 그런 소리는 무시했다. 나는 아침 9시에 어린이집 가방에 분유병 2개와 이유식을 싸서 어린이집에 보냈고 오후 3시에 찾아왔다. 이제 육아휴학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보육기관에 적응을 시켜야했기 때문이다. 아기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내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빨래와 청소, 이유식을 만들고 나면 또 아기를 찾아올 시간이 되었다.

아기가 돌이 됨과 동시에 나의 육아휴학 기간도 끝이 났다. 아기는 계속 어린이집을 다녔고 나는 논문을 쓸 준비를 했다. 역사 자료를 수집하고 읽고 분류하는 일을 주로 했는데, 워낙 선행연구가 없는 분야라 자료 준비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늦은 오후에 아기를 어린이집에서 찾아서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면 나의 몸은 녹초

나는 B급, 어쩌면 C급 연구자로서,

그리고 이 사회에 필요한 시민을 키워

내는 엄마로서 살아남고 있는 중이다.

나는 종종 내가 하는 일이 토양의

‘거름’을 만드는 일 같다는 생각을 한다.

가 되었다. 아기를 재우고 나의 공부를 지속할 힘이 나지 않아서 알람을 맞춰놓고 아기와 함께 자다가 새벽 2시나 3시에 일어나서 아침이 올 때까지 논문 준비를 했다. 수면은 언제나 부족했고 체력을 위해 운동을 할 여유는 전혀 없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를 ‘시간 거지’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없었다.

B급 학자, 2등 시민이 된 것 같았다

이렇게 2~3년만 고생을 하면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겠지 생각한 찰나에 더 큰 위협이 찾아왔다. 계획에 전혀 없었던, 둘째의 임신이었다. 둘째를 임신한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며칠 동안 울기만 했다. 그동안의 고생을 되풀이해야 한다니…. 둘째 임신은 모든 것을 계획대로 하고자 했던 나의 오만함에 대한 반격 같았다. 둘째의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나의 계획은 또 1년 이상 지체되었다. 이번에는 반쯤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렇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라는 심정으로 공부했다.

이로써 나는 학자로서 B급, 그리고 2등 시민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육아에 신경을 쏟지 않아도 되는 누군가보다 이미 학문의 세계에서 이미 지고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한 미평화봉사단에 관한 연구는 나 아니면 관심을 가질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기에, 1940년대~1950년대 생인 그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부지런히 기록해야 할 것 같아서 포기할 수 없었다. 누가 칼로 협박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어쨌든 아이 둘을 키우며 학위를 마칠 수 있었다.

나는 B급, 어쩌면 C급 연구자로서, 그리고 이사회에 필요한 시민을 키워내는 엄마로서 살아남고 있는 중이다. 나는 종종 내가 하는 일이 토양의 ‘거름’을 만드는 일 같다는 생각을 한다. 거름을 만들고 있을 때는 이것이 쓸모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언젠가 다른 학자들이 거목이 되고 열매를 맺을 때 내가 만든 작은 거름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두 명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이지만 장차 커서 이 사회에서 쓸모있는 시민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에 ‘누칼협’이라는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대학에서 역사와 문학을 전공했다. 잠시 중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한 적 있다. 연세대 대학원 교육학과에서 「교실속 이방인들: 주한 미 평화봉사단의 교육 활동과 그 영향(1966-1981)」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세아라는 필명으로 한국 거주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글자로 옮겨 책을 두어권 낸 바 있다. 현재 사범대학에서 교사를 꿈꾸는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철학 및 교육사’라는 교직 과목을 가르치며 한국 현대교육사를 연구하는 공부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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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멸위기 ‘중소도시’ 대학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

데이터로 읽는 대학 23

대학 자율화와 교육부5

교육부의 라이즈체계 구축이 성공하려면

황인성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사무처장

‘데이터로 읽는 대학’의 다섯 번째 주제 ‘대학 자율화와 교육부’의 다섯 번째 소주제는 ‘교육부의 라이즈체계(RISE) 구축이 성공하려면’이다. 입시학원인 종로학원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24학년도 대입에서 전국 51개 대학 총 2천8명이 추가모집에서도 정원을 못 채웠다. 이 가운데 지방대가 43곳이며, 미충원 인원의 98%(1천963명)가 지방대에서 발생했다. 지역대학은 학령인구 급감과 수도권 집중화 현상으로 학생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소멸 위기와 지역대학의 위기를 타개하고자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정과제로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를 대표하는 고등교육정책으로 라이즈체계 구축과 글로컬대학30 사업이 대표적이다. 이번 호에서는 ‘라이즈체계’를 다루고, 다음 호에서는 ‘글로컬대학30’ 사업을 다룬다. 과연, 지역대학이 지역발전의 허브 역할을 맡아 지자체-대학-산업 간 협력체계를 제대로 구축해 성공하기 위한 발전방안이 무엇인지를 모색해보고자 한다.

교육부가 발표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사업(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 RISE)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25년부터 라이즈 체계로 대학지원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이하 라이즈)의 목표는 ‘대학지원의 행・재정 권한을 지자체에 위임・이양하고 지역발전과 연계한 전략적 지원으로 지역과 대학의 동반 성장을 추진’하는 것으로 2025년 전국 17개 시도에서 도입할 예정이다. 라이즈 체계 구축은 ‘지역 주도의 경쟁력 있는 대학 육성과 대학의 지역발전 중심(허브)화’를 목표로 지난해 3월 공모를 통해 7개 시범지역(경남·경북·대구·부산·전남·전북·충북)을 선정했다. 이들 지역을 우선으로 지역 여건에 맞게 라이즈 센터 지정, 라이즈 계획(2025~2029)수립 등을 추진 중이다. 그 외 지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라이즈 체계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역 대학에 대한 지자체의 책무성 강화’를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지역산업에 맞는 ‘지역인재 양성-취업-정주’ 체계 구축, 지역대학 중심 창업·산학 협력을 강화한다. 교육부는 지자체가 주도로 지역발전과 연계해 선택과 집중으로 지역대학에 투자할 수 있도록 지자체의 대학지원 권한을 확대하고, 혁신을 위해 노력하는 대학에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라이즈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라이즈 체계는 재정·규제·구조 측면에서 대학개혁을 추진하며, 교육부 역할을 지원 중심으로 대전환하고 범정부적으로 지역 주도 정책을 강화한다. 주요 추진 과제는 첫째, 지자체 주도로 대학재정지원을 추진하는데, 지자체와의 협력이 중요한 5개 대학재정지원사업을 연계·통합하고, 2025년부터는 라이즈로 통합해 지원한다. 또한, 2025년부터는 교육부 대학재정지원사업 예산의 50% 이상을 지역주도로 전환할 계획이며, 지자체 주도로 재정지원계획을 수립해 개별 대학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둘째, 지자체는 지역발전계획과 대학 특성화 분야 등을 고려해 지역의 실수요에 기반한 대학지원계획(라이즈 계획)을 수립하고, 교육부 등 중앙부처와 협약을 체결하고 협약에 근거해 지역대학을 지원한다. 셋째, 대학 구조를 전면 혁신할 의지와 지역 성장을 견인할 역량을 갖춘 지역대학을 글로컬대학으로 선정해 육성한다. 넷째, 7개 시범지역을 고등교육혁신특화지역(「지방대육성법」제22조)으로 지정하고, 대학과 지역의 혁신에 필요한 규제 특례는 신속히 적용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다섯째, 라이즈 체계가 차질 없이 구축되도록 시‧도에 대학지원 전담부서를 신설해 지역의 대학관련 업무를 총괄‧기획하도록 했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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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의 대학지원 전담부서는 조직구성도 미흡하고,

벌써부터 담당 공무원의 갑질 얘기가 나오는 것은 우려스럽다.

교육부가 파견하는 교육협력관도 국립대 사무국장에 임용되던 관행처럼

교육부 입장이 반영될 수 있는 문제는 해소돼야 한다.

자체·대학·산업계 등이 참여하는 (가칭)‘지역고등교육협의회’를 신설해 지역 고등교육정책 사항을 심의·조정할 계획이다.

고등교육 전문가·대학자율성 확보부터

라이즈 체계의 목적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지방대학의 경쟁력 제고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지역적 특성을 반영해 대학 스스로가 혁신하고 지역의 중심이 돼 지역과 대학의 소멸 위기를 공동으로 극복하고, 대응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자율성을 바탕으로 대학별 특성이나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해 지역대학이 주도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해 간다는 것이다.

지역소멸 방지, 지역발전 생태계 구축을 위해 중앙정부 주도의 정책을 지역 주도로 전환한다는 것인데, 문제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지자체 공무원들이 대학시스템에 대한 이해 부족과 고등교육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지원과 협력을 해야 할 지자체의 대학지원 전담부서는 조직구성도 미흡하고, 벌써부터 담당 공무원들의 갑질 얘기가 나오는 것은 우려할 만한 사안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지난해 6월 하계총장세미나에서 총장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라이즈 체계에서 ‘지자체의 대학지원 역량 및 전문성을 가장 우려한다’ 응답이 77.5%를 차지한 것에서도 총장들의 우려가 현실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둘째, 지자체별로 재정자립도가 다르고, 이미 선정된 7개 시범지역이 모두 대도시에 소재한 지자체 중심으로 구축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역소멸위기 지역은 지역의 대도시보다는 중소도시이며, 이곳에 소재한 지역대학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또한, 지자체가 시도에 소재한 모든 대학을 지원할 만큼 재원이 풍족하지 않다. 지자체의 지원도 결국은, 대도시에 소재한 국립대학 중심으로 선택적인 지원이 이뤄질 것이고, 결국은 중소도시에 소재한사립대학은 지자체의 지원 순위에서 밀리게 될것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재정지원 상황에서 사립대학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다. 셋째, ‘(가칭)지역고등교육협의회’ 구성과 관련한 문제로, 협의회 구성시 전문성과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한 위원들이(공무원, 특정대학 등) 임용될 경우, 평가결과에 대해 문제제기 가능성이 높고, 이로 인해 지역 내에서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교육부에서 파견하는 ‘교육협력관

(2급)’ 관련이다. 교육협력관은 교육부가 대학에 관한 권한을 지자체로 이관하는 라이즈 체계를 추진하면서 신설된 자리로 대학재정지원사업 예산의 절반 이상에 대한 집행 권한을 교육부에서 지자체로 이관시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현재 7개 시범지역에 파견돼 있으며, 2025년부터 본격 도입해 2년간 시범사업을 운영할 예정이다. 지자체는 전담 조직구성과 대학 지원계획을 마련하는 등 대학 관련 행정·재정권을 이양받을 준비를 하는데 교육협력관이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교육부 고위공무원이 국립대 사무국장에 임용되던 관행처럼 교육부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다는 점과 국립대학에 편향된 판단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이 선제적으로 마련돼야만 라이즈 체계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자체와 교육협력관은 지원과 조정을

첫 번째 문제의 해결방안으로는 지자체 담당 공무원에 대한 주기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고등교육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두 번째 문제의 해결방안으로는 대도시의 국립대학과 중소도시의 사립대학에 대한 상호 역할분담에 대한 사전논의가 필요하다. 설립별 학과구조조정을 통한 역할 분담부터 상호 학점공유까지 연합과 협업을 위한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중소도시에 소재한 지역사립대학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지역소멸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위기와 지역대학의 위기는 대도시에 소재한 국립대학보다는 중소도시에 소재한 사립대학에서 더 가속화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문제의 해결방안은 지역고등교육협의회 구성 시, 공무원들은 지원업무를 주로 맡고, 대표성과 고등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지닌 전문가와 지역 구성원이 참여하도록 하고, 의사결과과정에 대해서는 투명한 공개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교육협력관의 역할도 중앙정부와 지자체, 지역고등교육협의회 위원 간에 중재와 조정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올해 시범운영 과정이나 2025년부터 모든 지역의 추진과정에서 더 많은 문제가 노출될 수도 있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전문적인 판단이 이뤄진다면 지역 구성원 모두가 수긍하거나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될 것이다.

대학평가와 고등교육 전문가로 교육통계 분석 작업에 참여해왔다.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을 거쳐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정보공시센터장과 기획조정실장을 지냈다.

교육부, 대학 R&D 장비 구축에 537억 지원

‘인프라 고도화’ 공모… 10개 내외 선정해 50억씩

정부가 대학의 첨단 연구개발(R&D) 장비 구축을 지원하고자 500억여 원을 투입한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지난 13일 ‘기초과학 연구 역량 강화사업’에 대학의 첨단R&D 장비 도입 및 운영을 지원하는 ‘인프라 고도화’ 사업 유형을 신설해 공모한다고 밝혔다. ‘기초과학 연구 역량 강화사업’은 대학내 여러 곳에 흩어져있는 연구 장비를 모아 공동 활용할 수 있도록 ‘핵심연구지원센터’를 조성·운영하는 사업이다.

‘인프라 고도화’ 사업의 올해 예산은 총537억 5천만 원으로 대학에서 제안한 10개 내외의 과제를 선정한 뒤 연구 과제당 장비 구축비로 평균 50억 원을 지원한다. 신청 대상은 장비를 도입·운영할 수 있는 공간과 조직을 갖춘 대학 내 이공계 학과에 설치된 대학부설연구소, 핵심연구지원센터, 공동실험실습관이다. 다만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은 신청 대상에서 제외했다.

전담인력 육성 등에도 연 5억씩 지원

대학은 R&D 장비의 성격과 규모를 고려해 중형과 대형 중 한 유형을 골라 신청할 수 있다.

중형은 4~6개 과제가 선정되며 20억 원

~50억 원 미만을 지원받는다. 대형의 경우 5~6개 과제가 선정되고 50억 원~70억 원 이하를 지원받게 된다. 사업 신청 시 △기초과학 △생명 △해양 △우주·천문 △에너지 △환경 △기계 부품소재 △정보전자통신 등 8대 기술 분야 가운데 신청 R&D 장비가 포함되는 1개 분야를 명시해야 한다.

아울러 장비 활용도를 높일 수 있도록 장비의 운영·관리·개선, 전담 운영 인력 육성 및 운영, 공동 활용 활성화 등에 5년간 연 5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예산 지원 기간은 총 5년으로 일단 3년 차까지는 일괄 지급한 뒤 이후 평가를 통과하면 2년간 더 지원할 방침이다.

해당 사업은 선정평가위원회가 장비 구축의 필요성, 도입 여건과 활용 역량, 구축·운영 계획의 타당성, 공동 활용 및 자립화 계획 등을 서면·발표·현장 3단계로 평가해 선정한다.

이어 사업운영위원회에서 이의 신청을 검토한 뒤 교육부 종합심의위원회가 최종적으로 선정 과제를 확정하게 된다.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은 “이번 사업을 통해 우수한 물적·인적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장성환 기자 gijahwan90@kyosu.net

늘어나는 ‘대학 진로탐색학점제’, 대학 만족도 높여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진로탐색학점제 현황과 성과’ 분석

2022년 일반대 33·전문대 10곳 운영…대학 만족도 2.4%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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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진로탐색학점제가 대학생의 대학 만족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하 직능연)은 14일 ‘대학교육의 혁신, 진로탐색학점제 운영 현황과 성과’(KRIVET Issue Brief 제277호)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교육부와 직능연이 ‘대학 진로교육 현황조사’(2017~2023년)를 통해 진로탐색학점제가 학생들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것이다.

대학진로탐색제는 대학생이 재학 중 수업 대신 자신의 꿈에 맞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

고, 지도교수의 지도·평가와 함께 수행하면 학점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대학별로 진로탐색학기제, 도전학기제, 창의학기제, 자기설계학기제 등으로 불린다.

진로탐색학점제를 운영하는 대학은 2017년 2.5%(7개교)에 불과했으나, 매년 증가해 2022년 에는 13.4%(43개교)로 증가했다. 진로탐색학점제 운영은 대학생의 대학 만족도를 같은 기간 평균 2.4% 증가시켰다. 전공 만족도는 0.7%, 진로교육 만족도는 0.9% 높아졌다.

대학 유형별로는 4년제 일반대 학생보다 전문대 학생들의 만족도 수준이 높았다. 특히 국

공립대 학생들은 대학·전공 만족도가 높은 반면, 진로교육 만족도는 사립대 학생보다 낮은 수준을 보였다.

진로탐색학점제는 처음에는 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운영돼 왔지만, 점차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2022년 기준, 동남권 대학은 18.6%, 수도권 대학은 18.5%가 진로탐색학점제를 운영 중이다. 호남·제주권 대학은 상대적으로 운영 비율(3.6%)이 낮았다.

대학 규모에 상관없이 대체로 진로탐색학점제 운영 대학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데, 특히 2022년에는 대규모 대학 89곳 가운데 20곳(22.5%)에서 진로탐색학점제 운영이 크게 증가했다. 중규모 대학은 111곳 중 19곳(17.1%), 소규모 대학은 121곳 중 4곳(3.3%)에서 진로탐색학점제를 운영 중이다.

정지은 직능연 연구위원은 “대학 진로탐색학점제는 다양화되는 진로 선택과 지원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고등교육 단계의 진로지원 모델”이라며 “학사제도 개편과 전문인력 배치를 지원할 수 있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직능연은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학

과와 학부 칸막이가 해소되고 학생 전공선택권이 확대됨에 따라 대학생은 입학 후에도 지속적인 진로 탐색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최승우 기자 editor@kyosu.net

의무론

키케로 지음 | 임성진 옮김 | 아카넷 | 368쪽

아들에게 보내는 서한 형식으로 쓴 이 책은 『최고선악론』과 함께 키케로의 윤리 사상을 잘 보여 주는 대표작으로, 자연 자체가 각 존재들에게 부여한 역할 혹은 임무가 무엇인지를 상기시키는 가운데 평범한 사람들이 훌륭하고 적합한 삶에 이르기 위한 지침을 제시한다.

하이퍼객체

티머시 모턴 지음 | 김지연 옮김 | 현실문화 | 464쪽

현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50인에 포함돼 수많은 논의를 이끌었던 저자의 ‘하이퍼객체’라는 용어와 사상은 <뉴스위크>, <뉴욕 타임스>, <뉴요커>, <가디언>, 등과 같은 언론을 비롯해 수많은 매체에서 집중 조명됐다. 캐나다 의회에서는 ‘하이퍼객체’를 빌어 팬데믹 현상을 둘러싼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AI 몸피로봇, 로댕

구연상 지음 | 아트레이크 | 650쪽

그다지 멀지 않은 가까운 미래,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된 시대. 철학자인 우빈나 박사는 ‘AI 몸피로봇’인 ‘로댕’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몸피로봇’이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자의 몸이 돼 주는 일종의 외골격 로봇이다. 철학자와 AI 로봇의 만남은 어떤 방향으로 향할 것인가.

전쟁 이후의 세계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316쪽

이 책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중심으로 이런 질문들에 답한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등을 통해 이름을 알린 박노자 작가가 이번에는 소련 출신 지식인이라는 정체성을 살려, 한국인들은 잘 모르지만 이 전쟁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러시아 사회의 작동 원리를 내부자의 눈으로 세밀하게 분석한다.

항일의 혼

유근표 지음 | 보고사 | 400쪽

삼일운동·상해임시정부·의열투쟁·무장투쟁·아나키스트 활동을 모두 다룬 종합독립운동사 형태로 구성했다. 특히 숨겨진 항일 활동을 밝히고, 왜곡된 사항을 바로잡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신흥무관학교의 태동 과정부터 교육 훈련 그리고 폐교의 원인과 상황을 모두 다뤘다. 갑신정변 주역들 대부분이 친일주구로 전락하는 과정을 추적했다.

영화의 이론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지음 | 김태환·이경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662쪽

철학자이자 사회학자·문화비평가·영화이론가·소설가 등 다방면에서 역량을 발휘한 종합 지식인이자 탁월한 에세이스트인 저자의 대표작인 이 책이 번역 출간됐다. 그는 300여 편에 달하는 영화들을 사례로 제시하며 영화의 세부 요소들을 고찰하면서 자신의 테제를 구체적으로 입증해 보인다. 영화 경험에 대한 선구적인 사유를 보여준다.

공 공부

가지야마 유이치 지음 | 김성철 옮김 | 김영사 | 256쪽

대승불교 공사상 연구의 1인자로 일컬어지는 저자는 대승불교의 반야·중관사상과 인식론·논리학을 중심으로 불교의 문헌학적·철학적 해명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석학이다. 이책은 불교의 핵심 교리인 무아·연기·공의 관계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잘 설명한 공사상 입문서이다. 용수의 공사상과 대승불교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한국 시화사

안대회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 704쪽

이 책은 전체 시화의 흐름을 역사적 관점에서 조명하고, 주요 시화의 문헌적·역사적 가치를 엄정하게 평가한 책이다. 새로 발굴한 여러 시화들을 주요 시화와 함께 하나의 체계로 분석하고, 연구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던 20세기 현대 시화사를 폭넓게 조명했다. 시화는 수필이자 비평으로, 한국인의 전통이 녹아든 문학 갈래다.

현대 중국 강의

장윤미·이종화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448쪽

이야기로 풀어쓴 중국지역학 입문서. 중국의 광활한 영토·방대한 인구·장대한 역사적 정보를 백과사전식으로 나열하기보다는, 중국의 특징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주제별 이야기로 묶었다. 특히 시진핑 중국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된 이후 나타난 중국의 변화를 다양한 측면에서 다룬다. 저자들은 중국 사회와 현대 한국 사회를 성찰한다.

비평의 발견_『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79쪽

정상 가족을 꿈꾸는 청소년…꿈꿀 능력도 제약된다

돌봄의 주체가 숨 쉴 수 있는 틈 만들기

청소년들에 대한 사회적 지지의 중요성

빈곤은 오랫동안 사회학과 인류학의 주요 주제였다. 빈곤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규정하는지, 그리고 다음 세대에서 재생산되는지 살펴봤다. 1950년대 멕시코 빈곤가정의 이야기를 담아낸 오스카 루이스의 『산체스네 아이들』이 해당 분야의 세계적 고전이라면 한국에도 1980년대 중반 사당동 무허가 판자촌에서 시작해 2010년대까지 빈곤한 한 가정의 4대에 걸친 궤적을 추적한 사회학자 조은의 『도시빈민의 삶과 공간』(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조옥라와 공저 | 2013)과 『사당동 더하기25』(또 하나의 문화 | 2012)가 있다.

강지나 저자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은 빈곤가정에서 자란 여덟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직 교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저자는 학위논문을 준비하던 2009∼2013년 사이 지역아동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그곳을 찾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수행했다. 또한 책을 저술하는 과정에서 비교적 최근에 이들을 다시 만나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확인했다. 이들의 10∼15년 삶의 궤적을 추적한 것이다.

흔히 빈곤이 한 개인의 삶을 비극적인 상황으로만 이끌어가는 서사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책을 읽고 조금은 당황할지도 모른다. 책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가난하고, 때로는 좌절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삶의 과정에서 그들의 선택과 노력은 겨우겨우 살아가는 것을 훌쩍 넘어선다. 그들은 ‘씩씩한 긍정’, ‘타고난 힘’, ‘내면의 (바른) 성품’, ‘사색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자라온 환경’의 한계에 갇혀 있지 않다. 가끔 일탈이나 범죄같은 안 좋은 길로 빠지기도 하지만 이내

바뀌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실천한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어려운 가운데 장기적인 삶을 고민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목표를 향해 한 걸음 씩 나아간다.

‘꿈의 사회학’이라는 연구분야가 있다. 연구자들은 꿈꿀 수 있는 능력이 사회적으로 구조화되는 지점에 주목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이 지닌 사회경제적인 조건의 제약으로 인해 ‘큰 꿈’을 꾸기 어렵다. 이 책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의지·바람·꿈)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그 꿈은 종종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규범적이다. 유년기에 자신이 갖지 못한,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것이라 여겨지는 것을 꼭 이루고 싶다는 바람이 이들이 꾸는 꿈의 동력이자 지향점이 된다. 이 꿈, 저 꿈을 다양하게 꾸며 조금은 (언젠간 극복될) 혼돈 속에서 자라나는 일반적인 청소년이 되기에 이들의 삶의 조건은 지나칠 만큼 가혹하다. 자신들이 온전히 누리지 못했던 정상적인 가족, 화목한 가족에 대한 열망과 책임감은 그들을 ‘바른길’로 이끌지만 너무 조숙한 그들의 모습은 보는 어른들의 가슴을 무겁게 한다.

이런 모습을 어디에서 봤더라. 읽는 내내 조기현의 『아빠의 아빠가 됐다』(이매진 | 2019)가 떠올랐다. 어머니와 이혼한 육체 노동자 아버지와 살아가던 가난한 스무 살 청년이 어느 날 쓰러진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어 살아간 시간의 기록을 담고 있는 책이다. 긴 시행착오 이후 어머니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며 각자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는 ‘수정’의 이야기는 조기현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어려

운 상황에서 가족 간의 관계가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돌봄의 주체가 숨쉴 수 있는 틈이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틈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다양한 청소년들의 경험을 소개하며 강지나가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빈곤 청소년들에 대한 사회적 지지의 중요성이다. 관계 맺기에 목마른 아이들에게 괜찮은 관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저자가 참여관찰을 수행한 복지관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 소개된 가장 최근의 인터뷰에서 인터뷰 대상자들은 복지관이라는 공간이, 그곳에서 맺은 관계가 그들에게 갖는 소중한 의미에 대해 회고적으로 이야기한다. 저자는 사회자본개념을 빌려 사회, 그리고 공동체의 역할이 좀 더 강화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책을 읽으며 들었던 조금은 삐딱한 생각은 상술한 것처럼 이 책의 인터뷰 대상자들이 다소 예외적인 대상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빈곤가정의 청소년으로 복지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아이들은 선택적 편향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김태용 감독의 「거인」(2014)에 등장하는 영재 같은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게다가 이들은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을 옆에 두고 있다. 물질적 가난이 삶의 극단적 피폐함으로 치닫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내 ‘편견’인지의 문제를 떠나, 오히려 성공적인, 그리고 조금은 예외적인 사례가 하나의 정책적 지향이 될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가치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를 생각하며 읽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정인관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

저자가 말하다_『세일라 벤하비브』 정채연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130쪽

유대계 여성 이방인, 다양성과 공존을 꿈꾸다

세계주의와 다문화주의 이론·실천 간 간극

중첩적 정체성과 현대 서구 정치철학 분석

세계화와 지역화가 전방위에 펼쳐지던 2000년대 초는 다양성과 이질성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정신적 태도, 즉 관용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요청되던 시대였다.

특히 ‘참여’는 그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였고, 시민운동과 시민단체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이전에 주변부로 비켜서 있었던 다양한 주장들이 정치 공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필자가 학생회장으로 출마하면서 선본 이름을 ‘톨레랑스(tolérance)-다양한 생각이 존중받는 공동체’로 고심해 정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후 대학원에 진학해 학제 간 연구로서 법인류학을 접하게 됐고, 법에서 다원주의를 수용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이론과 실천을 연구 주제로 삼았다. 학부 시절의 단편적인 고민과 문제의식을 필자의 학문세계 안으로 끌어온 셈이다.

이렇듯 법다원주의, 다문화주의, 관용 그리고 세계주의는 필자가 기초법학자로 성장해 온 과정에서 대표적인 주제어가 됐다. 그간 이루어진 일련의 연구들은 법인류학적 다원주의의 관점에서 현대사회의 관용론을 재구성하고, 다문화사회의 사회통합과 탈민족 시대의 세계주의를 구상하는 데 중점을 둬 왔다.

이때 필자가 주되게 다뤄 온 학자들은 하버마스와 데리다였고, 칸트 계몽철학의 유산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계승한

이들의 사상을 변증적으로 관련짓고자 했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변증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반성적 모더니즘’을 지향하는 필자의 철학적 관점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줬다.

이렇듯 변증적 사유에 바탕을 두고 세계주의와 다문화주의를 구상하고자 하는 여정에서 필자가 만나게 된 학자가 바로 세일라 벤하비브 전 미국 예일대 교수이다. 현대 서구사회의 정치철학 담론을 이끄는 벤하비브는 튀르키예 태생의 유대인 혈통으로, 유대계 여성 이방인이라는 다양하고 중첩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개인적 배경은 그녀의 학문세계와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은 벤하비브의 정치철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사상적 줄기를 다문화주의와 세계주의로 보고 그녀의 핵심적인 이론·개념·관점을 해설한다.

구체적으로 다문화주의 이론이 기초해야 할 문화 관념인 ‘비본질주의적 문화’, 보편주의적 규범과 문화적 다양성이 양립할 수 있게 하는 ‘숙의 민주적 모델’, 세계주의적 규범이 다양한 공동체 안에서 변증적으로 수용되도록 하는 ‘민주적 반추’, 정치공동체의 성원과 비성원, 곧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기존의 경계가 민주적 대화 절차를 통해 재정립될 가능성을 열어 놓는 ‘국경의 다공성’등 벤하비브의 사상을 구성하는 열 가지

키워드를 제시한다.

특히 벤하비브의 학문적 여정을 따라가면서 칸트, 아렌트, 하버마스, 데리다, 커버, 테일러 등 또 다른 대표적인 사상가들과 조우하게 되는 것 역시 독자에게 지적 흥미를 제공해 줄 것이다. 벤하비브는 자신의 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철학·사회학·언어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을 자신의 학문 세계로 초대하고, 이들의 논의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발전적으로 계승하면서 독자적 관점을 정립하고자 한다. 여기에서도 변증적 사유에 정초해 있는 벤하비브의 학문적 개성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적 다양성과 혼종성이 점차 심화하고, 민족성·종교·인종·언어 등 개별특수한 정체성 간의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은 세계주의와 다문화주의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진지하게 요청한다. 21세기 초 이루어진 벤하비브의 세계사회와 다문화사회 진단은 오늘날 여전히 유효할 뿐 아니라 지난 20여 년 동안 점점 더 심화했다고 볼수 있다.

근대적 국민국가의 다문화현상과 사회통합 그리고 세계시민사회의 보편적 인권과 시민적 주권의 변증을 아우르는 벤하비브의 정치철학은 세계주의와 다문화주의 이론과 실천 간의 간극을 메우고 바람직한 정책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중요한 사상적 기초가 될 것이다.

정채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대우교수

저자가 말하다_『클래식 음악 수업』 김준희 지음 | 사람in | 200쪽

낯선 외국어 익히듯 클래식에 빠지다

52곡 선별해 실황 연주 QR코드로 담아

친절하지만 임팩트 있는 교양서로 집필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싶은데, 좀 어려워서 접근하기가 망설여져요.” “어떻게 하면 클래식 음악을 잘 즐길 수 있을까요?” 강의실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들이다.

청소년 시절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던 대학 새내기들이 학문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교양수업을 수강하는 과정에서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 같다. ‘K-클래식’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조성진·손열음·임윤찬·양인모 등 젊고 유능한 클래식 스타들이 세계 무대를 휩쓸면서 클래식 음악을 즐기려는 대중의 지적 욕망도 이와 맞물려 있다.

학생들의 이러한 질문들 덕분에 『클래식 음악 수업』을 집필하게 됐다. 클래식에 관한 도서는 차고 넘친다. 유명 음악인의 에세이부터 오페라와 같은 특정 장르에 집중한 책, 음악사적인 순간들에 초점을 맞춘 책, 그날의 기분이나 상황에 맞게 음악을 선택해 주는 책, 영화를 비롯한 다른 대중 매체에서 만날 수 있는 음악들을 선별해 놓은 책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중 한 권을 골라 읽고 나면 클래식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습득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전히 클래식은 낯설고 어렵다. 왜 그럴까? 음악이라는 예술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음악은 시간의 예술, 순간의 예술이다.

연주된 음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존재하다가 사라진다. 청각을 통해 즉각적으로 다가왔지만, 불친절하게 사라져 버리는 것이 음악의 특징이다. 미술작품 같은 경우 전시장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작품들을 도록이나 사진 등으로 활자와 함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교양서를 보면서 익히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물론, 클래식 작품 역시 음원으로 반복해서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가요나 팝 음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이가 긴 클래식 음악은 활자화된 텍스트와 함께 학습할 때, 청각과 시각을 모두 활용해야 하므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바꾸어 말하면 아무리 글을 읽고 클래식 음악가의 일생, 작품의 제목과 번호, 방대한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모두 꿰뚫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음악을 제대로 들어보지 않으면 반쪽짜리 지식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클래식 음악 수업』은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데 꼭 필요한 내용들을 먼저 소개했다. 사물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그 형태부터 알아야 하는 것처럼, 한 작품이 어떤 악기로 연주되는지, 어떤 종류의 음악인지 악기와 장르를 알아가는 것을 음악 감상의 첫걸음으로 두었다. 클래식 음악을‘낯선 외국어’를 익히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봤다. 원어민이 자연스레 습득하게 되

는 언어를, 외국인들은 문법, 회화, 독해 등의 분석적인 과정을 거쳐 익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클래식 입문자들에게 적합하도록 무겁지 않게, 그러면서도 대학교양 음악 시간에 강의하는 패턴으로 구성했다. 악기별·장르별 감상법은 강의실에서 내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다.

감상곡을 선택할 때, 몇 가지 기준을 두었다. ‘음악을 좀 듣는 사람들이 아는 곡’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알고 보면 빠져드는 곡’을 적절하게 배치했다. 예를 들어, 낭만주의 시대의 서곡을 소개할 때 많은 사람들은 펠릭스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 서곡」을 고르지만, 나는 「고요한바다와 즐거운 항해」를 택했다. 서양음악사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윤이상의 작품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어 그의 「플루트 협주곡」도 클래식 음악 교양서 중 최초로 소개했다. 물론 각 장르와 악기 배치에도 신경을 써서 최대한 다양한 종류의 52곡을 선별했고, 각 곡의 실황 연주를 QR코드로 담아 본문을 읽으면서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클래식 음악이 BTS나 블랙핑크, NCT, (여자)아이들의 노래처럼 모든 이의 귀에 착착 감기는 날이 오기를 꿈꿔 본다. 『클래식 음악 수업』이 클래식에 입문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비롯해, 여유로운 시간을 지식과 정서로 채우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친절하지만 임팩트 있는 교양서가 되길 바란다.

김준희

인천대 기초교육원 강사·미국 일리노이대 어버너-섐페인캠퍼스 박사

저자가 말하다_『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강국진 지음 | 필로소픽 | 240쪽

‘소비자·노동자’도 AI 내면화할 때다

AI 판단의 윤리적 책임은 인간의 몫

과거·현재의 다른 문제해결법과 비교

AI의 시대가 온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AI는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AI 개발자를 포함한 전문가들조차도 AI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부분들을 잊어버리기 쉽다. 극심해진 오늘날의 전문화는 이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만든다.

뭔가를 이해한다는 것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그것을 무엇과 비교하는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AI는 인간처럼 이성적인 존재인데 인간과는 뭐가 다른가라고 질문한다. 그러면서 AI는 공학적인 발명품이며 따라서 인간이나 지능같이 추상적 단어들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AI를 연구하는 일은 인간을 만드는 일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인간의 정확한 정의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AI를 만드는 사람들은 아주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문제들을 풀고 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이 가지는 목적·범위·환경 따위가 AI의 행동을 결정한다. AI가 어떤 문제를 풀것인가는 인간이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AI가 내리는 판단의 윤리적 책임은 결국 인간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AI 개발자라고 해도 반드시 AI가 무엇인지를 잘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새로 나온 AI나 학습 알고리즘 같은 것에 대해서 아주 잘 아는 사람도 AI란 무엇인가를 설명할 때 그 핵심을 완전히 놓칠 수 있다. 이는 한국에서 평생 살았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외국을 모르면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다.

AI는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식, 즉 AI 패러다임이 내놓은 해법이다. 우리가 AI와 비교해야 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다른 문제해결 방식들이며 따라서 AI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철학적이고 문화적인 것이다.

이제까지 인류는 여러 가지 지식들을 생성하고 그것으로 문제들을 해결했다. AI는 컴퓨터 최적화가 만들어 내는 지식으로 다른 지식들처럼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만 인간이 이해할 수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것은 과학처럼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문제 형식 속에서 지금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최선의 답을 제시한다. AI는 인간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포함하고 있어서 시를 쓰고 음악을 작곡한다. AI는 우리 주변의 기계들과는 다른 원리로 만들어진 것이며 사실AI를 만드는 컴퓨터 최적화는 생명의 진화와 비슷하다.

AI는 대개 그 목적이 복잡한 문제에 쓰인다. 자동차를 운전한다든가, 이미지를 분석한다든가, 주어진 질문에 적합한 답을 내놓는다든가 하는 일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나 빵을 굽는 오븐같이 우리 주변에 있는 기계보다 복잡한 목적을 가진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AI 패러다임으로 어떤 문제를 풀려고 하는지, 그걸 왜 지금의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지를 좀 더 세심하게 고민해야 한다. 어떤 주체가 어떤 문

제를 어떤 영역에서 가지는 가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AI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AI를 소비자나 노동자가 사용하는 것은 AI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AI 덕분에 슈퍼지능을 가지게 된 기업이 낡은 시대의 인간과 만나는 상황으로 당연히 인간에게는 위험하다. 소비자와 노동자도 AI 패러다임을 써서 자신의 문제를 풀어야 안전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AI의 공공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산업혁명은 거대한 기계처럼 변한 일터와 학교를 만들어냈다. AI의 시대에 그런식의 문화적 변화는 더 중요하다. 오늘날 변화의 속력은 예전보다 훨씬 더 빠르기 때문이다.

AI는 새로 나온 자동차나 가전제품과는 다른 것이다. 우리는 언어가 없는 상태의 우리 자신을 상상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AI가 사방에서 작동하는 시대란 AI가 문자나 과학지식처럼 우리 자신과 분리할 수없이 내면화돼 정치적·사회적·문화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시대다. 뒤집어 말하면 이런 변화를 용납할 수 없을 때 AI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우버택시 같은 공유경제 사업은 한국에 정착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AI의 시대도 기술 이상으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올 수 있다. 이 새로운 문제해결 패러다임을 대중이 이해하고 대중을 위한 AI를 개

발해야 진정한 AI의 시대가 올 것이다.

강국진

전 일본 이화학연구소 연구원·포스텍 박사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4

동아시아 사랑방 포럼 외 2인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604쪽

21세기판 조선통신사를 꿈꾸는 ‘동아시아 사랑방 포럼’의 일본 덕후들이 네 번째 일본 문화 이야기로 돌아왔다. 일본의 무장 가토 기요마사가 축성한 울산왜성과 구마모토성, 일본 사료와 지명에서 발견한 왕인의 발자취 등 ‘한국 속의 일본, 일본 속의 한국’에 대한 이야기에 주목한다. 한국과 일본의 공존을 기원하는 저자들의 마음이 전해진다.

보스턴 사람들

헨리 제임스 지음 | 김윤하 옮김 | 은행나무 | 728쪽

근대 영미문학의 대표 작가인 저자의 이 책이 국내 처음 출간된다. 여성 참정권 운동이 일어난 19세기 보스턴을 배경으로, 세 남녀의 기이한 삼각관계를 통해 격변하는 시대의 초상을 그려낸 작품이다. 혼란스러운 시대를 사실적으로 관조했다는 평가와 함께 그의 중기를 대표하는 실험적 소설로 남았다.

초기 문해력 수업의 스펙트럼

김미혜 외 8인 지음 | 교육공동체벗 | 424쪽

초기 문해력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공부하고·실천해 온 초등 교사들의 수업 경험과 다양한 실천의 모습을 담았다. 초기 문해력 수업과 읽기 따라잡기 프로그램에 대해 알아보려는 사람들,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를 고심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실천하고 성찰한 교사들의 이야기는 훌륭한 길잡이가 돼 줄 것이다.

계급 천장

샘 프리드먼·대니얼 로리슨 지음 | 홍지영 옮김 | 사계절 | 472쪽

이 책은 영국 최대 고용조사인 노동력조사(LFS)를 통해 확보한 10만8천 명의 개인과 엘리트 직종 종사자 1만8천명의 계급 배경 데이터와 방송·회계·건축·연기 등 네 직업에 걸친 175건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타고난 조건에 의한 불평등과 ‘능력’이라는 모호한 개념에 대한 실증적 문제 제기를 담고 있다. 저자들은 정치적 행동을 촉구하며, 계급 천장을 부수는 10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하룻밤에 읽는 독일사

안병억 지음 | 페이퍼로드 | 403쪽

숱한 위기가 중첩된 오늘날, 시대의 난관을 돌파한 독일의 역사를 통해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가는 공동체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배워보자. 게르만족의 전사 ‘헤르만’의 이야기부터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오늘날 독일의 모습까지, 극과 극을 오가는 격동적인 독일사 탐사 여행을 이 책과 함께 시작해보자.

초월적 정의

칼 프리드리히 지음 | 이국운 옮김 | 책세상 | 244쪽

당대 미국의 대표적인 헌법정치학자인 저자의 저작이다. 그는 개인의 자율성·권력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서구의 정통적인 정치 노선을 ’헌정주의‘로 정리한 이론가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정치적 재건 과정에서 핵심적인 조언자로 활약하는 등 몸소 헌정주의의 실현을 추구한 실천가이기도 했다.

리바이어던의 재건

안나 M. 그지마와 부세 지음 | 이태영 옮김 | 회화나무 | 376쪽

어째서 어떤 나라는 정당이 국가를 횡령해 자유롭게 사적 이득으로 전용하는 것이 가능한 사회·정치적으로 낙후한 나라로 전락했고, 어떤 나라는 그러한 사취를 어느 정도 통제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정치적 발전을 이룬 국가라는 평가를 받을까? 이 책은 이에 대해 고민한다. 정당, 정당 간 경쟁, 그리고 정당과 국가의 관계를 재조명하게 해준다.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

팀 잉골드 지음 | 차은정 외 2인 옮김 | 이비 | 348쪽

모든 존재는 살기 위해 선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 선들은 삶 속에서 서로 뒤엉킨다. 이 책은 선으로서의 세계와 삶에 관한 한 연구이다. 저자는 선을 통해 생명·땅·바람·걷기·상상력 그리고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방랑자의 걷기를 닮은 이 책은 그 흔적과 선을 통해 물질세계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생명으로 돌려놓는다.

분야별 신간

문학-에세이

고잉 홈 | 문지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320쪽

대여금고 | 그렉 이건 지음 | 김상훈 옮김 | 허블 | 552쪽

말하기 위한 말 | 마리 카르디날 지음 | 김희진 옮김 | 문학동네 | 436쪽

슈퍼 스페이스 실록 | 곽재식 지음 | 김듀오 그림 | 파랑새 | 444쪽

안암동 블루스 | 고형진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 264쪽

Mazeppa | 김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20쪽

인문

그건 심리학적으로 맞지 않습니다만 | 최승원 지음 | 책사람집 | 232쪽

계급횡단자들 혹은 비-재생산 | 샹탈 자케 지음 | 류희철 옮김 | 그린비 | 336쪽

소녀 취향 성장기 | 이주라 지음 | 산지니 | 232쪽

정치-사회

맥주의 지리 | 마크 패터슨·낸시 홀스트-풀렌 지음 | 전병운·이보영 옮김 |푸른길 | 360쪽

세상은 망했는데 눈 떠보니 투표일?! | 조현익 글 | 키박 그림 |스튜디오하프-보틀 | 96쪽

아이들의 화면 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 김지윤 지음 |

사이드웨이 | 244쪽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 질베르 아슈카르 지음 | 팔레스타인 평화 연대 옮김 |리시올 | 118쪽

청년, 티슈? | 이부형 지음 | 글통 | 252쪽

종교

어느 수도인의 회상 | 김일엽 지음 | 김영사 | 368쪽

4월 총선의 역사적 의미…민주화 이후 공화혁명을 위해

김기봉의 리틀 빅히스토리 5

시민종교 공화주의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립한 나라들 가운데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근대 이중혁명을 성취한 거의 유일한 나라다. 산업화는 보수, 민주화는 진보가 펼치는 두 날개로 한국은 선진국으로 날았다.

권위주의적 산업화를 추진했던 세력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벌이는 변증법적 과정에서 힘의 균형상태로 성립한 헌정질서가 ‘87년 체제’다.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의 두 진영은 내전을 방불케 하는 이념 전쟁을 벌였다. 그런 와중에도 역사의 흐름을 선취하는 ‘가능성의 예술’로서 정치가 제 기능을 발휘했기에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기적을 이뤄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 둘 모두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성공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고 있다. 그러기에 디지털 문명으로 도래한 뉴노멀 시대의 도전에 응전할 수 있는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위기에 빠뜨린 요인이다. 그렇다면 그 한계를 극복하는 정치적 상상력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제2의 건국할 때…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 대한민국 헌법 제1조1항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 입각해 제2의 건국을 할 때다. 촛불혁명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거치는 동안 1조2항인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것을 실질적으로 구현했다. 우리만큼 국민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선거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하는 민주혁명을 성취한 나라도 없다.

2021년 대선에서 윤석열과 이재명 두 후보의 표 차는 0.73%인 24만7천77표에 불과했지만 아무런 문제 없이 정부가 바뀌었다. 이에 비해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은 전국적으로 약 700만 표 이상 차이로 트럼프를 이겼고, 선거인단에서도 306대 232로 승리했음에도 의회 난입 사건이 벌어졌다.

한국의 제도적 민주화는 더는 총칼로 허물지 못하는 굳건한 반석에 놓여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경제와 정치에서 정점을 지나 침체의 늪에 빠지는 ‘피크 코리아(Peak Korea)’ 국면에 이르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여기서 우리가 한 단계 더 큰 도약을 하려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헌정질서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서 ‘민주’가 국민이 주권을 갖고 국가의 중요 사항을 결정하는 원리를 의미한다면, ‘공화국’은 그런 국가를 법과 공공선을 토대로 주권자인 시민들이 결성한 정치공동체를 가리킨다. 현 단계에서 대한민국은 민주화는 더는 퇴행하지 않을 정도로 성숙했다면, 다음 과제는 진정한 공화국을 완성하는 것이다.

공화주의는 개인의 권리는 계몽사상의 ‘자연권’처럼 선험적인 것이 아닌 사회적 합의에 따른 계약으로 성립한다고 본다. 그런 계약서로 작성된 기본법이 헌법이다. 사람이나 조직이 아

투표체험에서 개표를 하는 모습이다. 다음달 4월 10일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다. 과연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서울특별시선거관리위원회

“공화주의는 단순한 이념이 아닌 시민들의

정치종교다. 한 정치공동체의 잠재력이 안으로

포용하는 구심력과 밖으로 뻗어 나가는 혁신의

원심력이 균형을 이룰 때 최대로 발현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는 시민들의 삶의 방식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고취하는 정치종교가 공화주의다.”

왼쪽부터 장자크 루소와 에드먼드 버크이다. 루소는 “우리는 법에 복종할 때 자유롭다”라고 강조했다. 버크는 “사회를 과거의 조상, 현재의 우리 그리고 미래의 후손이 함께 이루는 파트너십”이라고 분석했다.

초상화=위키피디아

니라 법에 복종하는 것이 법치주의다. 장 자크 루소는 “우리는 법에 복종할 때 자유롭다”라고 했다. 법이란 종교의 계율처럼 나를 구속하는 족쇄가 아니라 나의 자유를 지켜주는 울타리다.

법의 지배 VS 법에 의한 지배

문제는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할 때다. 법의 칼을 가진 기관인 검찰이 국민이 아닌 조직에 충성할 때 ‘검찰 독재’라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

유발 하라리는 유약한 유인원의 일종인 현생인류가 지구의 정복자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이기적 개체가 모여 강력한 협력공동체를 결성한 덕분이라 했다. 인간은 언어적 의사소통행위로 공공선이란 개념을 공유할 수 있었기에, 아리스토텔레

스가 말하는 ‘폴리스적 동물’로 진화했다. 무엇이 공공선인가를 합의하고 그것을 원칙으로 삼는 인류 역사의 시험대를 통과한 최상의 정치체가 공화국이다.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모두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라는 로마법 원리에 따라, “자유롭게 살고 싶고 남에게 예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시민들에게 좋은 것”으로 정의되는 공공선을 추구하는 정치사상이 고전적 공화주의다. 공화국이란 정체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운영원리로 할 때 가장 좋은 국가로 힘을 가질 수 있다.

역사적으로 아테네 민주정과 로마 공화정이 결합해 진화한 정치체가 민주공화국이다. 아테네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왕 한 사람이 아니라 시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민주정을 지향했기 때문이며, 원래 왕정으로 출발한 로마가 시민이 예속되지 않는 비지배의 자유인으로 사는 ‘인민의 것(res publica)’으로 전환했기에 “권력은 소유하지 않고 나눌수록 커진다”라는 공화정의 기적을 행할 수 있었다.

포용과 혁신을 위한 헌정질서의 재구성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서 민주화와 비교해 공화국은 아직 미성숙 상태에 있다. 둘 사이 간극을 해소하는 헌정질서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관행적으로 행해졌던 불법이 더는 용인될 수 없는 정치문화가 정착하면서, 정치가들 사이 ‘내로남불’의 이전투구가 격화됐다.

그러다 보니 국가의 중요 정책 결정이 정치적 공론장이 아닌 사법부가 하는 ‘정치의 사법화’로 정치가 무력화됐다. 계층·지역·세대·젠더 사이 갈등을 조장하는 갈라치기 정치가 아니라 차이를 포용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는 한국은 100년 전 역사로 퇴행할 위험에 처해있다.

보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사회를 과거의 조상, 현재의 우리 그리고 미래의 후손이 함께 이루는 파트너십으로 이해했다. 나의 조국인 공화국이 탄생해서 성장하는 과정에는 수많은 순국선열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고, 그들 덕분에 우리가 태어날 수 있었고, 또한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로 미래 한국인의 삶의 조건이 결정된다. 그러기에 공화주의는 단순한 이념이 아닌 시민들의 정치종교다. 한 정치공동체의 잠재력이 안으로 포용하는 구심력과 밖으로 뻗어 나가는 혁신의 원심력이 균형을 이룰 때 최대로 발현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는 시민들의 삶의 방식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고취하는 정치종교가 공화주의다.

초저출산 초고령사회로 전개되는 한국에 공화혁명이 절실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장차 누가 한국인인가를 재정의해야 할 과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한국이 이민 국가와 다문화사회로 변모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기에, 이젠 그것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민주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의 제2 건국을 위한 헌법 개정에 착수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이번 총선을 여전히 과거에 갇혀 ‘운동권 청산’이냐 ‘검찰 독재 심판’으로 프레임 전쟁을 벌인다.

더 늦기 전에 4월 10일에 실시되는 대한민국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의 역사적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이번 선거는 민주혁명으로 성립한 87년 체제를 바꾸는 개헌으로 제7공화국을 여는 역사적 사명을 수행할 시민의 대표를 뽑는 공화혁명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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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디지털 인재양성 플랫폼’으로 글로벌 한성대 만들겠다”

한성대 제11대 이창원 총장 취임식

이창원 한성대 제11대 총장 취임식이 지난 14일 한성대 낙산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창원 총장은 지난해 12월 27일 학교법인 한성학원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제 11대 총장으로 선임돼 제 10대 총장에 이어 연임됐다. 임기는 2028년 1월 31일까지다.

이 총장은 “모든 구성원께 우리 대학이 나아가야 할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힘을 한데로 모아 내는 것이 총장의 역할”이라며 이날 3가지 비전을 제시했다.

먼저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성, 한성으로 모여드는 세계’라는 비전을 달성하고, 지역을 변화시키는 혁신의 주체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총장은 “대학 캠퍼스라는 제한된 공간을 넘어 대학-기업-지역사회-그리고

글로벌을 연결해, 그 혁신생태계의 중심이 되겠다”고 밝혔다.

둘째로 ‘글로컬 디지털 인재양성 플랫폼’을 통해 대학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학생성공’을 최우선으로 두고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대학의 교육현장과 기업이 더욱 바로 연결되도록 하

겠다는 것이다. 이 총장은 “온라인 교육 플랫폼에서 지역사회와 글로벌 사회가 우리 대학과 연결되고, 한성대 졸업생들은 디지털 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기술과 문제해결 역량을 갖추었다는 인정을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비전을 실현해 ‘자랑스러운 한성대’를 만들 것이며, ‘글로컬 디지털 인재양성 플랫폼’을 통해 우리 대학을 더 발전시켜 구성원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글로벌 한성대를 만들겠다”라고 청사진을 선포했다.

이날 행사에는 학교법인 한성학원 문동후 이사장, 한성학원 계경문 이사, 한성학원 최신융 이사, 한성학원 한석수 이사, 한성학원 박성수 이사, 한성대 장명희 교학부총장, 김영배 국회의원, 정필모 국회의원, 이재갑 前고용노동부장관, 정구현 아시아

교육협회 이사장, 김우승 한국공학교육인증원장, 남궁근 前서울과기대 총장, 이승로 성북구청장, 윤경로 前한성대 총장(5대), 정주택 前한성대 총장(6대), 한국기술교육대 유길상 총장, 중원대 황윤원 총장, 류수노 前한국방송통신대 총장, 한국항공대 허희영 총장, 서울과기대 김동환 총장, 성신여대 이성근 총장, 국민대 정승렬 총장 등 내·외 귀빈 및 임직원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총장은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으며, 뉴욕주립대에서 조직학 박사를 받았다. 1992년부터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교무처장·기획협력처장·산학협력단장 등 주요 보직을 맡았다. 2020년 2월 제10대 총장 취임에 이어 제11대 총장에 선임됐다.

최승우 기자 editor@kyosu.net

“글로컬대학30 대학, 혁신모델 개발·확산으로 동반 성장”

글로컬대학협의회 초대 회장에

양오봉 전북대 총장

양오봉 전북대 총장(사진)이 글로컬대학30 사업에 선정된 글로컬대학들이 연대와협력을 위해 구성한 ‘글로컬대학협의회’ 초대 회장에 선임됐다.

지난해 글로컬대학30 사업에 선정된 10개 대학 총장단은 지난 6일 협의회 구성 등을 위한 온라인 회의를 열고 글로컬대학협

의회를 구성하기로 했고, 초대 회장에 양오봉 총장을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양 총장은 글로컬대학협의회장으로서 앞으로 글로컬대학 간 혁신 모델 개발과 성과 확산, 각종 홍보 등을 위한 연대와 협력을 주도한다.

글로컬대학협의회는 앞으로 글로컬대학 모델 개발과 성과 분석을 위한 연구 분석을 추진하고, 우수사례 발굴·공유를 위한 워크숍 및 심포지엄 개최, 각 대학 간 공통 홍

보 전략도 수립할 예정이다.

양오봉 총장은 “글로컬대학30 사업을 추진하는 대학들이 상호 간 협력을 기반으로 혁신 모델 개발과 확산을 통한 동반 성장을 주요 목표로 글로컬대학협의회로 의기투합했다”며 “글로컬사업을 통한 우리의 협업이 각 대학의 발전뿐 아니라, 대학과 지역의 동반 성장을 통한 국가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업하겠다”고 밝혔다.

최승우 기자 editor@kyosu.net

진주 역사와 내밀한 이야기, 장소 통해 기억 나누기

김지율 경상국립대 교수,

『나의 도시, 당신의 헤테로토피아』

김지율 경상국립대 학술연구교수는 진주에 대한 역사와 이야기를 어릴 적 기억의 여러 장소들을 통해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김지율 교수에게 진주는 고향이자 자신의 시와 연구가 시작된 뿌리, 출발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곳곳의 장소를 기억하고 그곳에서 치열하게 사는 이들과 기억을 나누는 일을 통해 그곳에서 삶의 무늬를 발견했다.

책에는 남성당 한약방, 옛 진주극장부터 진주역, 남강, 개천예술제, 박생광과 국립진주박물관, 이성자미술관 등 진주 문화의 공간들이 담겨있다.

또 진주 형평운동의 발원지 현장과 진주골목마다 숨겨져 있는 기억의 장소들도 함께 있다.

진주의 역사를 담은 그때 그 시절의 모습은 배길효, 리영달 작가 등이 촬영한 사진 200여 장을 통해 구성됐다. 여기에 진주의 역사와 기억은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 시절의 색채를 되살렸다.

420페이지로 구성된 책은 김주완, 송영진, 고능석, 임규홍, 리영달, 권영란, 안영숙, 원지연, 장상훈, 이병진, 신진균, 김형점, 이수진, 하미옥, 심귀연, 김운하 그리고 중앙

김지율 경상국립대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와 신간 『나의 도시, 당신의 헤테로토피아』 표지. 사진=경상국립대

시장 상인들과 나눈 생생한 인터뷰를 담고 있다.

김 교수는 이들의 수많은 기억으로 삶이 묻어나는 장소, 그 너머의 공간, 타인들이 서로 소통하는 장소, 약자들이 살아가는 장소 등 시간과 함께 변한 진주의 이야기를 전한다.

“천년고도의 도시, 진주는 과거의 것들을 보존하는 당위와 언제나 그 기억에서 벗어나려는 이탈의 욕망이 공존하는 도시다. 장소들에서 비롯되는 개인들의 내밀한 기억은 비슷하지만, 또 특별한 그 무엇이 있다. 그 장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를 겪기 마련임에도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사람과 더불어 극진하게 사는 장소들을 ‘아름다운 헤테로토피아’라고 말하고 싶다.”

“온난화로 대기안정화·바람장 변화가 미세먼지 주범”

연세대-포스텍 연구팀, 기후변화로

동아시아 미세먼지 증가 규명

연세대 대기과학과 유영희 교수 연구팀과 포스텍 민승기 교수팀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가 동아시아 지역의 봄철 미세먼지(PM2.5) 농도를 높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과거 24건의 고농도 미세먼지 사례를 분석한 연구팀은 기후 변화 영향을 제거한 수치 모델링을 통해 온난화의 영향을 조사했다. 이를 실제 미세먼지 사례를 모의한 현재 실험과 비교한 결과, 온난화로 인한 미세먼지 평균 농도가 중국 베이징 지역 12%, 우리나라 16%, 일본 남부 지역 18%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런 현상은 온난화로 인한 대기안정도 증가로 미세먼지를 비롯한 대기오염물질이 지상에 갇혀 발생한 것이며, 특히 중국 베이징 부근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이 대기안정화는 해당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 상승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을 밝혔다.

또한 온난화로 인해 봄철 동아시아의 바람장 변화로 남서풍 또는 서풍 계열의 바람이 더욱 강화되면서 중국에서 배출한 오염물질이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와

유영희 연세대 교수(왼쪽)와 민승기 포스텍 교수다.

일본 남부 지역으로 더 많이 유입되는 것을 확인했다.

강화된 남서풍 또는 서풍은 대륙 간 오염물질의 직접적인 이동뿐만 아니라 수증기 이동도 증가시킨다. 이는 상대습도 상승으로 이어지며, 높은 상대습도는 2차 미세먼지 형성을 촉진시킨다. 따라서 중국의 풍하 측(風下側)에 위치한 우리나라와 일본 남부 지역에서는 1차 미세먼지 증가 대비 2차 미세먼지 농도가 각각 12%, 18%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영희 연세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기후 변화로 인해 동아시아 대기질이 악화될 수 있음을 정량으로 밝힌 연구”라며 “이런 기후 변화로 인한 대기질의 변화는 주변국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 인근 국가 간 상호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최기홍 고려대 교수, 제1회 아시아 아론벡 인지행동치료 학술상 수상

최기홍 고려대 교수(심리학부·사진)가 지난 2일 인도 의과학 대학에서 열린 제8회 아시아 인지행동치료학회에서 ‘제1회 아시아 아론벡 인지행동치료 학술상’을 받았다.

최기홍 교수는 “인지행동치료는 정신

질환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치료인 만큼, 치료를 효과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치료자의 전문성이 중요하다”라며 “대한민국을 포함한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는 인지행동치료의 보급을 중요한 정신건강 정책 과제로 삼고 있지만, 엄정한 교육과 훈련을 받은 치료자가 인지행동치료를 국민에게 보급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인지행동치료는 우울장애, 불안장애 등 다양한 정신장애 치료에 가장 효과적으로 알려진 심리치료기법이다. 인지행동치료는 과학적으로 엄격하게 검증된 치료로 인정받아 미국·영국· 캐나다·호주 등 정신건강 서비스의 선진 국가에서 정신질환이 제1차 치료로 제공된다.

권상집 한성대 교수, 경영학회 ‘최우수 심사위원상’수상

권상집 한성대 교수(사회과학부·사진)가 지난달 22일 열린 한국경영학회 학술상 시상식에서 ‘학술연구최우수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학술연구 최우수 심사위원상’은 한국경영학회 학술지인 KBR(Korea

Business Review)에 투고된 연구논문을 학술적․실무적 관점에서 논문의 우수성을 평가한 심사자 1인에게 수여된다.

권상집 교수는 지난 2018년에도 한국경영학회의 최우수 심사위원상, 2020년 우수경영학자상, 2022년 K-Management 혁신논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24년 최우수 심사위원상 수상과 동시에 최초의 2회 수상자가 됐다.

권 교수는 2020년부터 한성대 사회과학부 기업경영트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교내 우수강의상, 우수연구자상 수상 등 학술연구·학술심사·강의영역에서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광운대 하태준 교수팀, ICERE ‘최우수 발표상’ 수상

사진 왼쪽부터 광운대 전자재료공학과 석박사통합과정 박세룡, 하태준 지도교수, 석사과정 김명현 연구원이다.

광운대 전자재료공학과 하태준 교수 연구실은 지난달 25일부터 사흘간 베트남 나트랑에서 열린 10회 International Conference on Environment and Renewable Energy(ICERE)2024에서 2개의 최우수 발표상을 수상했다.

하태준 교수는 이 학회에서 최신 연구 동향 및 기술을 평가하는 역활을 맡고 있다. 김명현 연구원과 박세룡 연구원은 하태준 교수 연구실에서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디스플레이 및 센서 뿐만 아니라 연구 분야를 넓혀 에너지 분야에서 차세대 반도체 재료 및 전자 응용 소자 원천기술에 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승철 한남대 18대 총장 취임

한남대 제18대 이승철 총장은 지난 14일 교내 성지관에서 취임식을 갖고 ‘지역과 함께, 세계로 대전환’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했다.

이날 총장 취임식과 함께 학교법인 대전기독학원 제24대 곽충환 이사장 취임식과 신정호 전임 이

사장의 이임식 및 대학장 수여식도 진행됐다.

이 총장은 개교 70주년 준비 발전기금 캠페인 1호 기탁자로 2억 원의 대학발전기금을 쾌척했다. 이 총장은 취임사에서 “현재의 위기를 우리 대학의 새로운 도약과 혁신을 위한 대전환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며 “세계의 젊은이들이 우리 대학으로 올 것이며, 한남대는 우리 지역의 혁신을 선도하는 주체적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선한 청지기 정신으로 겸손히 잘 섬기겠다”라고 말했다.

이건웅 서일대 교수, 한국전자출판학회장 취임

이건웅 서일대 교수(미디어출판학과·사진)가 한국전자출판학회 제11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임기는 올해 1월 1일부터 내년 12월 31일까지 2년이다. 이 교수는 “최근 출판이 힘들다고 하는데, 학계와 산업계가 함께 힘을 모아 출판의 발전을 위해 노

력해야 한다”라며 “디지털 복제 등 저작권 이슈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안심하고 디지털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도록 복제나 유출을 막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올해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첫째, 외적으로 학술대회의 규모를 키우고 주제를 다각화한다. 둘째, 내적으로 논문집의 위상을 높이고 활성화한다. 셋째, 교육 프로그램과 대외협력을 강화해나간다. 이 교수는 한국외대에서 「한중 출판콘텐츠 교류활성화 방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출판잡지·문화콘텐츠 등을 연구하고 있다.

이성용 계명대 교수, 한국경찰법학회장 선출

이성용 계명대 교수(경찰행정학과·사진)가 2024년도 한국경찰법학회 회장으로 선임됐다. 임기는 2024년 2월부터 1년이다.

이성용 교수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수사환경과 제2기 자치경찰위원회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다

양한 경찰의 이슈를 법적 관점에서 검토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실천적인 학회로 발전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2002년 창립된 한국경찰법학회는 형사법·행정법·법일반 분야 및 경찰실무 분야의 전문연구자로 구성돼 있다. 경찰 및 질서, 안전 관련 법제를 포괄하는 경찰법과 관련 분야에 대한 활발한 학술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인 『경찰법연구』를 발간하고 있다. 이 교수는 경찰대를 졸업하고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대학에서 법학 석·박사를 했다.

이상현 전북대 교수, 한국산림과학회장 취임

이상현 전북대 교수(산림환경과학과·사진)가 최근 열린 제65차 산림과학 공동학술대회 및 정기총회에서 제26대 한국산림과학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임기는 2년이다.

이상현 교수는 “학회지의 세계화, 학회의 설립목

적 달성, 학문 후속세대의 양성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과 사회적 공헌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산림과학회(구 한국임학회)는 1960년에 창립돼 국내 산림과학 분야 학회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60여 기관회원과 1천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한국 산림분야를 대표하는 학회다.

이 교수는 뉴질랜드 캔터베리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99년부터 전북대 산림환경과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워싱턴대 연구교수와 국무총리실 정부업무평가위원, 산림청 산촌진흥운영의 중앙자문위원, 산림조합 국가산림조사센터의 자문교수, 산림청 정책평가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산림과학기술위원회 산림 R&D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협의회장에 허동수 경상국립대 교수

허동수 경상국립대 교수(해양토목공학과·사진)가 한국해양과학기술협의회 신임 회장으로 선출됐다. 임기는 3월 1일부터 2025년 2월 28일까지다. 허동수 교수는 지난 1월부터 한국해양공학회 회장직도 수행 중이다.

허동수 신임 회장은 “기후위기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협의회의 기본 역할로서 해양과학기술을 활용해 해양수산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 해양환경의 보전, 친환경 스마트선박기술의 구축, 넷제로 스마트항만 구축, 연안재해 순환적응형 디지털 관리체계 구축, 해양 신재생에너지 기술의 진보 등 해양 이수에 대한 해법 강구및 제시가 중요하며, 이를 위해 해양을 대표하는 6개 학술단체가 유기적으로 연계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한국해양과학기술협의회는 1999년 2월에 창립됐다. 현재 허 회장이 소속된 한국해양공학회를 포함해 대한조선학회, 한국해양학회, 한국항해항만학회, 한국해안·해양공학회, 한국해양환경·에너지학회 등 해양과학기술 분야 6개 학술단체가 연합으로 구성돼 있다.

‘문명의 충돌’ 야기한 ‘피’의 유일신 사상···이면에 좌절된 근원적 욕구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32

김회권 숭실대 교수(기독교학과)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정치와 경제·사회와 문화·과학기술·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달 17일 김회권 숭실대 교수(기독교학과)가 「21세기 종교와 종교 갈등」을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33강은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의 「현대 과학적 자연·생명·우주관」이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1990년대 초 소련 해체로 40년 이상 유지되던 동서 냉전 대결 체계가 붕괴되자 문명비평가들은 공산주의-집단주의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가 확정됐다고 외치며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가 냉전 이후 세계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세계 체제가 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은 이런 낙관주의를 대변했다. 후쿠야마는 헤겔적 의미에서 세계가 '역사의 종말'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후쿠야마의 낙관론을 상대화하는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 충돌 가설이 등장했다. 소련과 동구권 공산주의 블록이 해체된 이후 공산주의 블록에 속한 역내 국가들 사이에서 한때는 공산주의적 억압 체제에 의해서 억제된 것처럼 보였던 민족주의적 갈등이 터졌다. 소련·유고슬라비아 해체 등으로 동유럽과 발칸반도에는 종교가 다르고 민족이 다른 나라들이 19세기형 민족국가 건국 열정에 사로잡혀 갈등하고 투쟁했다. 헌팅턴은 이런 사태를 목격한 후, 냉전 체제 대결을 대신할 문화적 정체성 갈등, 혹은 문명들의 충돌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그는 문화적 정체성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날 때 종교가 핵심적 역할을 떠맡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욕과 워싱턴에 대한 알카에다의 9·11 테러 공격이야말로 헌팅턴의 가설을 결정적으로 입증한 것처럼 보였다. 헌팅턴 자신도 9·11 테러 공격이야말로 자신의 문명 충돌 가설을 입증해 줬다고 주장하며 「무슬림 전쟁들의 시대」라는 글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위험하고 폐쇄적인 이데올로기로서의 종교

특정 민족의 정체성 형성에 기여함으로써 문화 자산으로 토착화된 종교는 개인과 국가 공동체 전체에게 궁극적 충성 대상을 제시하고 교도력을 행사한다. 심지어 이런 종교 중 일부는 그것 자체를 보양한 민족국가의 경계를 넘어 그 통치권을 팽창하려는 개종주의적 열정을 방출하기도 한다. 종교는 개인과 특정 집단에게 선민의식적 소명을 고취함으로써 이런 강경한 타자 지배 의지를 장려하는 면이 있다. 민족문화 자산으로 격

상된 이런 종교는 이성의 비판 아래 부단히 자기 검열을 받지 않으면 위험하고 폐쇄적인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기 쉽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윤리학』에서 설파했듯이, 이런 종교를 관장하는 집단은 선악 판단 권력을 독점해 신이 된 것처럼 행사하려는 경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세속적 시온주의자들이나 느슨한 의미의 종교적 시온주의자들의 “아브라함 언약” 동원은 종교적 동기 천명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전략적 수사법이었다. 팔레스타인 땅에 오래 거주했던 아랍인들의 축출이나 주변화를 전제로 이스라엘을 세우려던 모든 시온주의자들은 이런 아브라함 종교의 본질을 배반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세속적인 열정과 수단에 투신된 세속적 시온주의자들이었다. 그런데도 셀렌굿은 현대 시온주의와 그것을 바탕으로 이스라엘 국가를 건국한 유대인들의 세속적 동기·수단, 그리고 비전을 무시한다. 그이스라엘 건국 조상들은 그들 자신의 국가에서만 유대인들이 반(反)유대주의 박해로부터 안전할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나라를 세웠다.

시온주의자들의 건국 운동에 있는 이런 세속적 차원을 무시하는 셀렌굿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서 자신의 보금자리를 하루아침에 잃고 그것을 되찾으려고 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초보적 민족주의 감정을 전혀 주목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슬람 종교 대의명분에 초점을 맞춘다. “성지 지역은 이슬람 이해에 따르면 이슬람 땅이다. 이 땅과 성지는 비(非)무슬림에게 결코 양도될 수 없는 확장된 다르 알-이슬람의 일부이다.” 그래서 셀렌굿은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과 아랍의 적대감이 주로 이슬람 교리에서 비롯됐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고대 근동 정치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종교학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는 다. 폭력적인 성전(聖戰)을 지지하는 극단주의 집

종교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신’이라는 단어에는 항상 피가 묻어 있기 때문에

그것의 오용을 바로잡기 전까지는 ‘신’이라는 말이 사라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단이 여전히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이슬람 국가들이나 근본주의 집단의 주장을 종교의 이름으로 희석화하거나 일반화해서는 안된다. 이슬람교는 대중적 수준에서 팔레스타인의 국가 정체성에 스며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슬람 교도의 폭력이 이슬람교에서 추동된 폭력이 아니라, 그들이 처한 정치적 경제적 현실이 강요한 폭력 호소일 수가 있다.

이슬람교가 본질적으로 더욱 폭력적인가

이슬람 교도들이 종교를 동원해가면서까지 서구에 대해 저항하고 대항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이슬람 교도들이 폭력에 호소할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들에게서 훨씬 더 빈번하게 폭력성이 드러났다는 그 이유 때문에 이슬람교가 본질적으로 다른 종교보다 더 폭력적인 것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슬람 교리가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적대감의 근본 원인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현재 팔레스타인 사람들, 특히 하마스의 저항

김회권 숭실대 교수(기독교학과)는 “가장 성스러운 경전들에서 발견되는 타자에 대한 적대감은 자주 치명적인 결과들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런 고매한 경전들이 그 경전의 신봉자들로 하여금 타자 증오를 교시하고 타자 멸절을 수행하라고 지시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라며 “고등 종교의 경전도 왜곡과 과잉 해석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떤 갈등들은 실제로는 세속적인 동기들과 이유들, 대의명분들을 보유하고 있는 갈등인데 겉으로는 거룩한 종교 경전을 동원해서 그것들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과 투쟁이 종교적 수사를 동원한다고 그들의 투쟁이 종교적 투쟁인가? 그들이 아무리 자주 종교적 레토릭을 구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보다는 그 종교적 수사 너머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존 위기·인간 존엄·보호 열망·보금자리 열망·향수 등 인간의 근원적 욕구가 좌절되는 현실을 봐야 하지 않을까.

1930년대부터 1948년(건국 후 얼마 동안)까지 이스라엘 건국에 투신한 거의 테러리스트 집단같은 이스라엘 민병대들이 종교적 수사를 구사했다고 해서 그들이 '종교적'인 동기와 대의명분으로 영국과 아랍인들과 투쟁한 것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가장 성스러운 경전들에서 발견되는 타자에 대한 적대감은 자주 치명적인 결과들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런 고매한 경전들이 그 경전의 신봉자들로 하여금 타자 증오를 교시하고 타자 멸절을 수행하라고 지시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거룩한 경전들일지라도 역사적 상황이 변하면 부단히 재해석된다. 이런 점에서 고등종교의 경전도 왜곡과 과잉 해석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떤 갈등들은 실제로는 세속적인 동기들과 이유들, 대의명분들을 보유하고 있는 갈등인데 겉으로는 거룩한 종교 경전을 동원해서 그것들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세속적 현실 정치적 좌절감·분노, 그리고 생존 위기감을 표출하고자 하면서도, 사람들은 같은 종교의 신도들로부터 더 넓은 지지를 받기 위해 얼마든지 종교적인 대의명분을 주창할 수 있다.

앞서 말한 헌팅턴의 문명 충돌 가설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이해에 어떤 통찰을 줄 수있을까? 헌팅턴의 문명 충돌 가설의 논지는 세가지 명제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냉전 이후 세

계에서는 사람들의 문화적·종교적 정체성이 국가 간·문명 간, 혹은 집단 간의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될 것이다. 둘째, 미래의 전쟁은 국가 간이 아니라 문화 간 전쟁이 될 것이다. 경제적 요인보다는 문화적 요인이 갈등의 축을 구성한다. 셋째, 문명 충돌을 일으키는 문화의 정수, 핵은 종교다. 헌팅턴은 1993년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문명의 충돌?」이라는 글의 말미에서 자신의 논문 의도가 “문명 간 충돌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9·11 사태는 서구 확장에 대한 위기감 표출

9·11 사태는 세계적인 조직을 갖춘 테러 단체 알카에다의 존재를 드러냈다. 그것은 전문 지식과 숙련도 면에서 있어서 40여 개 국가에 동시에 테러를 수행할 능력을 갖춘 것으로 보고됐다. 알카에다의 지도자 빈 라덴은 9·11을 전후해 전 세계 무슬림에게 미국을 향해 지하드를 수행하라고 촉구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2001년 9·11 알카에다 테러 공격은 21세기 종교 갈등의 예표적 사건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1세기 초입에 일어난 9·11 테러는 19~20세기에 서구가 이슬람 문명권에 가한 다차원적인 공격에 대한 일괄 정산식 반격이었지 21세기에 시작된 종교 갈등은 아니다.

그 갈등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내내 이슬람 문명권에 대한 서구의 문화적·경제적·정치적·군사적 침략 확장에 대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대응이었다. 9·11 테러가 초래한 손실의 규모와 정도를 보면 많은 무슬림들이 서구 문명에 대해 품고 있는 증오·분개·원통함·적의가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20세기 동안 무슬림에 대한서구의 제국주의적 침탈과 지배·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정책, 특히 세계 문제를 농단하는 미국의 오만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로 하여금 미국공격을 감행하게 하는 동기가 됐을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 어떤 점에서 종교 갈등인지, 어떤 점에서 종교 갈등이 아닌지를 따져 봐야 한다. 특히 종교 갈등처럼 보이는 갈등 안에 보편적인 인간 존엄 투쟁이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갈등은 힘과 세력·자기 보

호 수단과 능력이 어느 정도 대등한 당사자들의 충돌을 의미하지만 어떤 갈등은 일방과 타방에 대한 침략이요 인간 존엄 파괴일 때가 많다. 외견상으로 종교적 갈등처럼 보이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그 본질이 종교 갈등으로 축소될 수 없다.

현 이스라엘 총리인 벤자민 네타냐후와 그를 지지하는 강경한 정통 유대교도들과 미국 크리스천 시온주의자들 모두 이 갈등과 분쟁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종교적 수사를 자주 사용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이스라엘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시온주의자들의 지지와 크리스천 시온주의자들을 위한 수사적 연막작전의 일환이다.

요약하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갈등은 이질적인 문명권에 속한 국가 대(對) 국가의 대칭적인 갈등이 아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질적 문명국가와 이질적 문명권을 대표하는 테러 집단의 비대칭적인 갈등이다. 1930~1948년까지 전투적인 시온주의자들의 준(準) 군사 조직이 아랍권 국가들과 영국에 대해서 테러 활동을 감행할 때 종교적 수사를 동원했던 것처럼, 후자는 전자보다 더 자주 더 적극적으로 종교적인 대의명분을 내세운다.

하마스의 종교적 수사 동원은 더 넓은 범위에서 지지와 연대·후원과 방조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에 가깝다. 자연스럽게 하마스는 종교적 레토릭을 더 자주 동원하고 그것을 전면에 내세운다. 물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압제하는 공세적 입장에 선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도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이스라엘의 역사 영유권과 땅 점유권을 정치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아브라함·다윗 등 종교적 선조들을 거명한다.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를 답습한 태극기 부대

2017년부터 광화문 광장을 자주 점령하는 태극기 시위 부대 중 상당수가 태극기·성조기와 함께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나왔다. 이들은 미국의 크리스천 시온주의자들이나 보수 복음주의 연합단체인 ‘기독교 연합’에 동조하는 한국 교회 일각에서 전파한 세대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십자군 전쟁 이후부터 형성돼 토마스 아퀴나스와 마틴 루터를 거쳐 현대까지 전달된 이슬람에 대한 기독교 문명권의 편견을 아직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봤듯이, 이런 견해는 단견이다. 우리는 하마스의 종교적 수사가 가리키는 현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노먼 핀켈슈타인과 일란 파페의 지적은 정곡을 찌른다. 두 사람 다 유대인이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갈등의 본질을 종교 갈등이라고 보는 견해를 비판한다. 둘 다 이스라엘 국가 건설로 나라·보금자리·고향·가족·인간 존엄, 인권을 박탈당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입장에서 양측의 갈등을 바라본다.

헌팅턴의 지적처럼 미국의 대(對) 이스라엘 정책 변경이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 단체의 활동을 진정시킬 것이다. 엘리자베스 A. 존슨이 지적한 것처럼, “종교는 순백(純白)의 선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종교 그룹은 신을 이방인들에게는 적대적인, 자기 종족만의 신으로 삼으려는 유혹에 넘어가며 이는 돌발적인 폭력을 불러온다.” 그래서 종교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신’이라는 단어에는 항상 피가 묻어 있기 때문에 그것의 오용을 바로잡기 전까지는 ‘신’이라는 말이 사라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두개골에 그리는 전자회로, 뇌-컴퓨터 연결 새 지평 연다

천진우 기초과학연구원 나노의학 연구팀

부작용은 최소화하고, 사용 기간은 대폭 늘린 새로운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이 나왔다. 최근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의학 연구단 장인 천진우 연세대 교수(화학과)와 박장웅 연세대 교수(신소재공학과) 연구팀은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정현호·장진우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뇌 조직처럼 부드러운 인공 신경 전극을 쥐의 뇌에 이식하고, 3D 프린터로 전자회로를 두개골 표면에 인쇄해 뇌파(신경 신호)를 장기간 송수신 하는 데 성공했다.

BCI는 뇌파를 통해 외부 기계나 전자기기를 제어하는 기술이다. 의사소통이 어렵거나 몸이 불편한 환자에게 도입되면 자유롭고 정확한 의

사 표현을 도울 수 있어 개발이 활발하다. 예를 들어,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스타트업 뉴럴링크(Neuralink)는 뇌에 컴퓨터 장치를 이식해 생각만으로 컴퓨터의 마우스를 움직이는 데 성공한 바 있다.

뇌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감지하는 삽입형 신경 전극과 감지된 신호를 외부 기기로 송수신하는 전자회로는 BCI의 핵심이다. 기존 기술은 딱딱한 금속과 반도체 소재로 이뤄진 전극과 전자회로를 사용해 이식 시 이질감이 크고, 부드러운 뇌 조직에 염증과 감염을 유발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또한, 뇌에 발생한 손상이 신경세포 간 신호 전달을 방해해 장기간 사용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까지 개발된 BCI 장치들은 뇌질환 말기 환자들의 치료를 위한 최

왼쪽부터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의학 연구단장인 천진우 연세대 교수(화학과)와 박장웅 연세대 교수(신소재공학과)다.

사진=IBS

후의 수단 정도로만 여겨졌다.

우선, 연구진은 고형의 금속 대신 뇌 조직과 유사한 부드러운 갈륨 기반의 액체금속을 이용해

인공 신경 전극을 제작했다. 제작된 전극은 지름이 머리카락의 10분의 1 수준으로 얇고, 젤리처럼 말랑해 뇌 조직의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어 3D 프린터로 두개골 곡면에 따라 전자회로를 얇게 인쇄한 뒤 뇌에 이식했다. 이렇게 구현한 BCI는 사용자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얇아 마치 문신처럼 이식 후에도 두개골 외관에 차이를 발생시키지 않았다. 기존 전극의 이물감과 불편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진이 구현한 인터페이스는 여러 개의 신경 전극을 이식할 수 있어 다양한 뇌 영역에서의 신호를 동시에 측정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하기 때문에 사용자의 뇌 구조에 맞춰 맞춤형 인터페이스 설계가 가능하다. 더 나아가 유선 전자회로를 사용한 기

존 기술과 달리 무선으로 뇌파를 송수신할 수 있어 환자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사용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쥐 모델을 활용한 동물실험에서 체내 신경신호를 8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딱딱한 고체 형태인 기존의 인터페이스로는 신경신호를 1개월 이상 측정하기 어려웠다.

연구를 이끈 박장웅 교수는 “뇌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면서도 33주 이상 신경신호를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개발했다”라면서, "이는 파킨슨병, 알츠하이머, 뇌전증 등 다양한 뇌질환 환자 및 일반 사용자에게 광범위하게 활용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비트코인이 1억을 찍은 날

딸깍발이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우연의 일치로 이번 학기 강의하는 ‘신기술 거버넌스’ 과목에서 비트코인을 다루는 날 비트코인 가격이 국내 사상 처음 1억 원을 돌파했다.

2009년 세상에 처음 등장한 이래 비트코인은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최초의 비트코인 가격은 제로였고 2010년 말에야 겨우 30센트에 이르렀다. 2011년에 처음 1달러를 넘어섰는데 2017년 첫 번째 비트코인 광풍에서 거의 2만 달러로 치솟았다.

2021년 코로나19 와중에 두 번째 몰아닥친 비트코인 열풍에서는 6만 달러까지 올랐다. 두 번의 열풍과 두 번의 크립토 윈터를 거쳐 이번에는 미국 현물상장지수펀드(ETF) 편입 승인과 4월 반감기까지 앞두면서 7만 달러를 훌쩍 돌파한 것이다. 비트코인의 최초 블록인 제네시스 블록에는 창

시자로 알려진 사토시 나카모토가 2009년 1월 3일 영국 <더타임즈>의 1면 헤드라인을 그대로 따온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 “두 번째 은행 구제금융을 앞둔 재무장관”이라는 제목인데, 2008년 금융위기 때 중앙은행 시스템의 실패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당시 영국 정부는 2008년 10월 5천억 파운드의 구제금융 패키지를 마련해 국민의 세금으로 스탠다드차터드, 바클레이즈같은 대규모 은행을 구제한 것이다.

비트코인 창시자가 지향한 탈중앙화된 화폐 시스템의 이상과는 달리 현재 비트코인은 화폐라기보다 투자 수단으로 발전 혹은 투기 수단으로 전락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은행인 국제결제은행(BIS)의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사무총장은 2018년 첫 번째 거품이 꺼졌을 때 비트코인을 “버블과 폰지 사기, 환경 재앙”의 트리오라고 일컬었다. 비트코인 광풍의 투기적 속성과 함께 엄청난 에너지를 쓰는 채굴 과정을 비판한 것이다. 참고로 2022년 비트코인 채굴에 든 연간 전력 소비량이 핀란드 전체 전력 소비량을 넘어섰고, 채굴 에너지 67%가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떡볶이를 사 먹을 수 있는 주머니 속 현금이 아니라 디지털 숫자로 표시되는 가상자산의 천문학적인 가격은 무척이나 가상적이다. 기술사학자 카를로스 페레즈는 『기술혁명과 금융자본』에서 금융거품이 새로운 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낳는 경향성을 고찰했다.

그에 따르면 영국 산업혁명 이후 다섯 차례의 기술혁명에서 공통적인 사이클은 혁명적 신기술이 나타나는 산업 주변에는 거품이 끼고 생산자본과 금융자본의 괴리가 극대화되면서 결국 광란의 투자 국면이 붕괴되고, 이후 사회적 혼란과 조정기를 거쳐 사회적 제도가 안정적으로 확립되어 기술과 생산, 고용, 금융의 시너지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화성에 인류를 보내는 돈을 떡볶이 사 먹는 근로소득으로 마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 번째 비트코인 열풍이 어딘가에서 적재적소의 기술 투자로 이어질지 또 다른 크립토 윈터를 맞을지 궁금하다. 수업을 마치며 학부생들에게 비트코인에 투자한 적 있는지 물어보았더니 대부분 빙그레 웃으며 자리를 떴다.

출처= 눈 컨템포러리

갤러리 초대석

「누빔선을 따라」

이강원, 2024

이강원 작가 전시회는 4월 13일 서울시 용산구 소월로 눈 컨템포러리에서 열린다. 작가는 그간 주변에서 발견한 이미지와 사물을 소재로 삼아 이미지와 물질성 사이의 관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탐사해 왔다. 이강원의 조각은 주로 단편적인 양상을 띠어왔다. 그것은 느슨하게 나열되거나 하나로 집합된 형태로 구성됐으며, 때로는 단편적인 이미지로 제시됐다.

지평선, 대기, 구름처럼 다소 모호한 이미지를 공간에 구축함으로써 실제와 환영 사이에 비스듬히 위치한 풍경을 보여주었다. 물질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면서도 작가는 그간 도시 공간 속에서 발견되는 가공된 자연물을 비롯한 인공적인 이미지들에 주목해왔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오늘의 시인총서’에 꽤 많은 빚을 졌다

책 광고로 보는 시대의 표정 36

민음사의 『오늘의 시인총서』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편집기획위원

“시 쓰고 있네!” “예술 하냐?” 선배가 신참 카피라이터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야유와 빈정거림에 가깝다. 신참 카피라이터들은 선배에게 이런 말을 종종 들었으리라. 시와 카피는 분명 다른 장르다. 시가 영혼의 울림을 추구한다면 카피는 상품 판매를 추구한다. 하지만 시와 카피는 언어의 경제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수용자의 공감을 얻으려한다는 공통점도 있기에, 틈날 때마다 시를 읽다보면 카피라이팅에 도움이 될 때가 많다.

민음사의 ‘오늘의 시인총서’ 광고를 보면 제목인 “오늘의 시인총서(詩人叢書)”를 그대로 헤드라인으로 썼다(동아일보, 1981. 1. 21.). 별다른 보디카피 없이 시집의 제목을 곧바로 세로로 배열했다. 1974년 9월 25일에 총서 1차분 다섯 권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는 권당 500원이었지만 1981년에는 권당 1,200원이었다. 이 총서는 시집이 아닌 시선집(詩選集)이라 태작은 거의 없었고, 주옥같은 시를 가려 뽑은 것이라 엄선한 시들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광고에서는 시인총서 14권을 소개했다.

김수영의 시를 가려 뽑은 제1권 『거대(巨大)한 뿌리』(김현 해설)를 필두로, 김춘수의 『처용(處容)』(김주연 해설), 정현종의 『고통의 축제(祝祭)』(김우창 해설), 이성부의 『우리들의 양식(糧食)』(김종철 해설), 강은교의 『풀잎』(김병익 해설), 박용래의 『강아지풀』(송재영 해설), 박재삼의 『천년(千年)의 바람』(김주연 해설), 황동규의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김병익 해설), 오규원의 『사랑의 기교(技巧)』(김용직 해설), 김종길의 『하회(河回)에서』(김흥규 해설), 송욱의 『나무는 즐겁다』(김현 해설),천상병의 『주막(酒幕)에서』(김우창 해설), 김종삼의 『북치는 소년』(황동규 해설), 그리고 김영태의 『북(北) 호텔』(송재영 해설)까지를 광고에서 소개했다. 시선집 제목 양옆에 사각형 틀을 만들어 그안에 시인의 캐리커처나 사진을 배치한 아이디어도 흥미롭다.

세로로 길쭉한 국판 30절 판형에 가로쓰기, 중질지, 산뜻한 장정을 시집 제작의 원칙으로 내건 시인총서가 출간된 이후 우리나라 ‘시집 판형’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고 가로쓰기 시집도 보편화됐다. 예상을 깨고 초판이 금방 매진된 시집들은 시집이 팔리는 시대를 열며 시의 독자층을 두텁게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 시인이라면 이 총서 시리즈에 들어가기를 꿈꿨을 만큼 반응이 뜨거웠던 이 총서는 1995년에 표지를 바꾸고 장정을 새로 해서 21년만에 개정판을 발간했다.

모든 시집이 매혹적이었지만, 대학 시절의 나는 여럿 중에서도 정현종의 『고통의 축제』와 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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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삼남에 내리는 눈』을 좋아했고, 강은교의 『풀잎』은 특히 더 즐겨 펼쳤다. 나는 강은교의 시선집에서 “아주 뒷날 부는 바람을 나는 알고 있어요”로 시작하는 표제작 「풀잎」보다 43쪽에 있는 「우리가 물이 되어」를 더 좋아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중략)…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

다듬고 있나니// 만리(萬里)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人跡)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어떤 평론가는 “완전한 합일과 생명력이 충만한 세계에 대한 소망”을 드러내는 시라고 평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정말 웃기는 해석이라 생각했었다. 나는 이 시를 연인이 떠나버린 남겨진 자의 가슴앓이를 노래한 시로 읽었다. 때로는 쓸쓸한 자의 내면에 스며드는 허무의 끝없는 심연을 묘사한 시로 읽기도 했다.

시인총서는 젊은 시인들의 시를 발굴해 1970~1980년대에 시의 전성시대를 여는데 기여했다. 민음사의 또 다른 시리즈인 ‘세계시인선’(1974~)이 동서양 시인들의 서정의 폭과 깊이를 알려주며 시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상상력의 르네상스를 열어가라는 시대의 표정을 제시했다면, ‘오늘의 시인총서’(1974~)에 수록된 시인들은 민요조(民謠調) 서정시(抒情詩)라는 우리 시의 전통을 넘어 다채로운 형식 실험을 감행함으로써 우리말의 비행 거리를 확장시켰다. 그리하여 이 총서는 사람들에게 우리말의 말맛을 되살리고 우리글의 글맛을 찾아내려는 시도

가 중요하다는 시대의 표정을 제시했다.

민음사는 2023년에 시인총서 출간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밤이면 건방진 책을 읽고 라디오를 들었다』라는 앤솔로지를 발간했다. 7명의 시인(김수영·김

춘수·김종삼·이성부·강은교·장정일·허연)이 각각 5편씩 선정한 35편의 시가 수록돼 있는데, 한국적 감수

성의 50년 궤적을 확인할 수 있다.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서 직장 생활에서 가장 뜨겁게 보냈던 시절, 나는 종종 ‘오늘의 시인총서’를 펼쳐보았다. 카피를 써야지 “시를 썼냐?”며 선배가 혼을 내던 초보 시절에도, 감수성이 고갈될 즈음에 시를 읽다보면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처럼 팔딱거리는 단어들이 떠올랐다. 시를 읽고 나서 좋은 카피 몇 개를 건지기도 했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오늘의 시인 총서’에 꽤 많은 빚을 지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다.

“지금은 전문 직무역량 교육의 시대”

기고

허정석

거제대 총장

2024년 전문대학이 바란다

세계 고등교육의 변화 방향은 실용교육이다. 산업현장은 실용 지식과 직무 훈련을 받은 인재를 요구한다. 미국 기업의 나노디그리 과정 개설과 인증서 발급, 프랑스의 에콜 42, 프로젝트 수업 등이 고등교육의 변화를 보여주는 실례이다. 해석적이고 분석적인 역량을 배양하는 교육과 통찰력과 창의적인 역량을 배양하는 교육 프로그램, 학령인구의 감소, 성인학습자 교육, 외국인 유학생 교육 등이 전문대학을 둘러싸고 있는 이슈이다. 최근에는 라이즈 체계의 정착과 관련된 사항도 논의가 되고 있으나 필자는 전문대학의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짚고 넘어가고 싶다.

고등 직업교육법 제정해야

1980년대 실업계 관련 고등학교 입학생 비율은 전체 고등학교 입학자 중 48%정도였으나 현재는 15% 정도이다. 학령인구의 대학 정원 48만 명 중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의 정원은 각각 34만 명과 14만 명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특성화고와 전문대학을 합한 직업 교육 이수자의 비율은 35% 정도이다. 독일의 경우 전문대학을 포함한 대학 진학률이 30%정도이니, 중등교육과정의 직업교육과 전문대학을 직업교육으로 간주하면 총 80%정도의 자원이 직업교육을 받고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나간다. 독일은 직업교육이 가장 보편적 복지인 셈이다. 미국의 한 경제학자는 대학 진학률이 30% 정도이면서 최고의 산업경쟁력을 유지하는 독일처럼, 미국의 커뮤니티 칼리지가 직업교육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통계를 보면 대학 졸업생 중 46%가 학위가 필요 없는 곳에 취직해 있다고 한다. 이점은 우리나라도 비슷해서, 삼성경제연구소가 추정한 대졸 과잉 경력자는 42%정도이고, 이에 따른 기회비용이 2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모든 산업분야에서 현장 직무 인력이 부족하며, 구인과 구직의 미스매치라는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는 독일과 달리 직업교육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부족했었고, 직업교육과 학문교육이 중․고등교육의 두 축인 점을 간과했던 결과임을 부인할

수 없다. 먼저 직업교육법을 제정하여, 직업교육이 교육의 한 축임을 명확히 하고, 법에 근거하여 적정인원 산출 등의 정책과 지원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학문교육과는 다른, 특화된 직업교육을 발전시킬 수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고등 직업교육법의 제정이 꼭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대만 등의 국가가 직업교육법의 제정 또는 개정을 통해서 직업교육의 발전과 그 위상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은 직업교육과 학문교육이 경쟁하는 시대

미국 주요 기업들이 자체 교육 기능을 갖추어가고, 인재를 선발할 때도 학위가 아니라 경력 중심의 직무역량을 평가하고 있다. 이는 다양한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인재의 역량이 학문역량에서 전문기술과 직무역량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취업의 관점에서 보면 이제 학문교육과 직업

‟먼저 직업교육법을 제정해

직업교육이 교육의 한 축임을

명확히 하고, 법에 근거해 정책과

지원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교육은 선의의 경쟁을 하는 시대임이 분명하다. 전문기술과 직무역량교육은 전문대학의 확실한 강점이다. 이 강점을 더 강화하기 위해서는 교수의 채용 및 평가, 교육 과목의 선정 및 교육 내용, 교수 학습 방법 등의 과제를 직무역량강화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개편해 나가야 한다. 정부도 과잉 학력과 현장인력 부족 등의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고, 현장에서 필요한 전문직무기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직업교육법을 제정하고, 전문대학의 직업교육지원을 한층 강화해서 일반대학과의 대등한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최근 관심을 받고 있는 성인학습자의 교육요구도 직무의 업스킬이나 리스킬, 직업전환 준비나 창업 등의 매우 실용적 직무역량 교육에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외국인 유학생 문제도 직무중심교육을 통해서 그들의 취업을 지원하면, 단순히 입학자원의 확충이 아니라 교육수출로 연결될 것이다.

김상돈의 교수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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