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미 상태의 중동,

우리가 국제사회 책무 다할 때

글로컬 오디세이

윤용수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원장

중동에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고 있다. 빛과 그림자는 공존할 수밖에 없다지만 그 명암이 너무나도 짙다. 사우디아라비

아를 비롯한 걸프 지역의 산유국들은 제각각 ‘비전 2030’을 설정하고 석유나 천연가스 수출에 의존하는 화석 연료 자원 국가가 아닌 4차 산업 국가로의 국가 개조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석유 수출 중심의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금융·관광·스포츠·항공·게임 등 4차 산업 중심의 선진국 모델로 국가를 개조하려 하고 있고, 여성의 인권 보장·교육 기회와 사회 참여 확대 등 전근대적인 제도의 타파를 통해 보편 국가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열사의 나라에서 동계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고 축구 후진국에서 월드컵과 아시안 축구 경기를 잇달아 개최하며 아시안 축구 경기에서는 상위권을 중동 국가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올림픽·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메가 이벤트로 불리는 엑스포도 곧 중동에서 개최된다.

역사적으로 큰 힘과 패권을 가진 국가들은 너 나 할것 없이 예외 없이 모두 거대한 건축물을 지어 그 힘을 과시했었다. 2030년을 목표로 건설 중인 더 라인(The Line)이 완공된다면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

역작이 될 것이다. 이 정도면 상전벽해라는 말이 결코 어색하지 않다. 이렇게 중동의 일부 국가들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한 비상을 준비하고 있지만, 인근의 또 다른 중동 국가는 경제난과 전쟁으로 인해 고통과 국가 부도의 위기를 겪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밀 수입이 힘들어지자 이집트는 국가적인 식량난을 겪고 있고, IMF의 원조로 국가 경제를 근근이 유지하고 있다. 리비아는 2개의 정부가 양립하고 있고 10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은 끝을 짐작하기도 어렵다. 중동의 최강대국이었던 이라크는 미국과의 전쟁 후 아직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 시작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가자전쟁은 가자 지역의 팔레스타인 소멸이라는 이스라엘 원래의 목적이 이뤄지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것 같다. 4개월에 걸친 전쟁의 결과로 가자는 회복 불능의 도시가 됐다는 보도가 있고, 전쟁이 끝나도 국제 사회의 원조없이는 가자의 재건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점도 암울한 현실이다.

올해 1월 통계로 양측의 사망자는 3만 명(팔레스타

인 2만9천 명, 이스라엘 1천200 명)을 넘었고 팔레스타인 희생자 중 75%는 어린이·여성·노인을 포함한 전쟁과 무관한 사람들이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이스라엘 특공대가 병원에서 치료 중인 하마스 대원을 기습해 사살했다는 보도도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치 지도자는 이에 개의치 않고 더 많은 테러범들을 소탕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이들에게 제네바협약은 휴지 조각에 불과한 것 같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것이나 진배없다.

여기에 더해 예멘의 후티 반군은 팔레스타인을 돕고 이스라엘에 제재를 가한다는 명분으로 수에즈 운하를 포함한 홍해와 페르시아 만의 주요 물목들을 장악하려 하고 있어 국제 사회와 갈등을 빚고 있다. 중동의 주요 분쟁들을 두고 각국의 주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중동 국가들이 중동 지역의 각종 분쟁을 조정하고 해결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아랍 국가들은 1945년에 아랍연맹을 결성하고 국제 사회에서 아랍 공공의 이익을 위해 상호 협력하고 노력하기로 했지만 이미 그 선언은 빛을 잃었다.

아랍민족주의라는 대의는 자국의 이익 앞에 퇴색됐고, 아랍연맹의 국가들 중 전체 회원국의 의견을 모으고 중재할 리더쉽을 가진 국가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리더쉽의 부재는 이슬람으로 위장한 각종 테러 집단들의 기생에 자양분을 제공한 결과가 됐다

가자 전쟁의 난민들이 남쪽으로 몰리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집트는 난민들 수용 시 발생할 수 있는 자국 내 국가 소요 사태와 불안정을 우려해 아랍 형제 국가로서의 지원을 외면하고 국경을 봉쇄했다. 이 뉴스를 접하고 아랍의 빛과 그림자가 너무 극명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와중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이들은 낙타의 눈처럼 예쁜 눈망울을 가진 어린아이들을 비롯한 부녀자와 노인들이라는 점이다. 왜 일부 정치인과 정치 단체들의 개인적 야심과 욕망에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돼야 하는가? 그 책임을 무엇으로 어떻게 다할것인지 전 세계인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에도 당부가 있다. 중동 국가들이 비추는 빛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수천억 원·수조 원에 달하는 사업을 수주했다는 소식들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지만, 빛의 반대편에 있는 그림자에도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란다. 스스로 글로벌 중추 국가라 외칠 것이 아니라 국격과 국가 위상에 맞는 국제 사회의 책무를 다할 때 국제 사회가 대한민국을 글로벌 중추 국가로 인정하고 존경을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아랍어 사회언어학이고 한국이슬람학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지중해문명교류사전』(공저, 2020), 『지중해문명교류학』(공저, 2017) 등이 있다.

“등록금 규제는 철폐돼야…등록금 문제 해결에 역량 집중”

대교협 회장에 박상규 중앙대 총장

규제 개혁·재정지원 확충 등 밝혀

박상규 중앙대 총장(63세·사진)이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제28대 회장으로 지난 7일 취임했다. 임기는 3월 1일부터 1년이다.

대교협은 지난 7일 대교협 대회의실에서 박상규 회장 취임식을 열었다. 취임식에는 신임 회장단 정성택 부회장(전남대 총장), 변창훈 부회장(대구한의대 총장), 곽호상 부회장(국립금오공과대 총장), 구회장단 장제국 회장(동서대 총장) 등이 참석했다. 축사는 최은희 교육부 인재정책실장이 맡았다.

박 신임 회장은 취임사에서 “좋은 말들로 인사를 드리기 어려울만큼 혼란스러운 시기이다. 고질적인 대학의 재정 문제, 학령인구 절벽 시대, 의대 정원과 R&D 예산 삭감, 무전공 제도 도입 등 연일 고등교육계가 들썩이고 있다. 고등교육 전반이 발전의 길로 나아갈 것인지, 후퇴할 것인지 기로에 선 중대한 시기”라고 진단하며 “이토록 중대한 시기에 대학들을 대표하는 회장직을 맡게 되어 막대한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밝혔다.

박 회장은 “당장의 이슈를 해결하는 것

도 중요한 일이지만, 우리 대학들이 처해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등록금 관련 규제 개선 △고등교육 재정지원 확충 △대

학 자율성 확보를 위한 각종 규제 개혁 △글로벌 경쟁력 강화 등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라고 밝혔다.

박 회장은 무엇보다 대학의 재정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학은 등록금 동결 정책으로 기자재 확보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고, 지난해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적했던 것처럼 3년 평균 물가 상승률만큼의 등록금 인상을 단행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법적 근거가 없는 국가장학금 2유형과의 연계로 등록금 인상에 차마 나서지 못하는 대학이 태반이라고 했다.

박 회장은 “대학 내에서의 등록금 관련 의사결정이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진다는 전제하에 헌법이 보장하는 대학의 자율성이 실현될 수 있도록 등록금 관련 규제는 철폐돼야 마땅하다”고 했다. 박 회장은 “교육부와의 단단한 파트너십 구축을 기반으

로 대학의 재정 건전성이 회복될 수 있도록 등록금 문제 해결에 협의회의 전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와 함께 모든 대학의 숙원이자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인 ‘고등교육법 교부금법’ 제정과 같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덧붙였다.

박상규 신임 회장은 중앙대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통계학 석사, 뉴욕주립대(버팔로)에서 통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중앙대 응용통계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입학처장·기획처장·미래기획단장·행정부총장 등의 학내보직을 거쳤다. 2020년부터 중앙대 총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그동안 전국대학교 기획처장협의회 회장,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위원, 한국장학재단 비상임이사, 교육부-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정책 공동 TF 위원, 교육부 갈등관리심의위원회 위원,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수석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위원 및 의약품심사자문단 위원, 교육부 구조개혁위원회(제5·6기) 위원, 한국대학스포츠협회 부회장, 한국공학교육학회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인문·사회 융합인재 양성’ 신규 연합체 공모

지역·사회구조·글로벌 공생’ 분야

3년간 매년 30억씩 90억 지원

정부가 미래 사회에 필요한 인문·사회 분야의 융합 인재를 기르는 대학 신규 연합체(컨소시엄)를 공모한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지난 4일 올해 ‘인문·사회 융합 인재 양성사업(HUSS)’ 신규 연합체를 추가 선정한다고 밝혔다. 이는 대학 내 또는 대학 간 공유·협력을 통해 인문·사회 중심의 융합 교육 체제를 구축하고, 미래 사회에 필요한 융합 인재를 양성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디지털, 환경, 위험사회, 인구구조, 글로벌·문화 등 5개 분야에서 연합체를 선발한 데 이어 올해는 지역, 사회구조, 글로벌 공생 등 3개 분야의 신규 연합체를 뽑는다. 구체적으로 ‘지역’은 ‘지방 시대에서의 지역 가치 창출’, ‘사회구조’는 ‘공동체의 건강한 생태계 구축을 통한 사회구조 변화대응’을 주제로 한다. ‘글로벌 공생’의 경우

‘인류와 자원의 지속가능성 및 글로벌 공생’이 주제다.

해당 사업에 선정된 연합체는 올해부터 3년간 매년 30억 원씩 총 90억 원의 재정을 지원받게 된다. 기존 5개 연합체와 신규로 선발될 연합체 3곳을 지원하고자 올해 총240억 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이번 사업에 선정되면 사회 문제 해결형융합 교육과정 개발 및 운영과 대학 내 또는 대학 간 협력 기반 구축을 핵심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사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정규 교과목 외에도 직무 실습(인턴십), 현장 전문가 특강, 경진대회 등 비교과 활동을 통해 전공에 상관없이 진로를 탐색할 수 있다.

3~5개 학교 연합체 구성해야…비수도권 대학 40% 이상 참여

해당 사업에 신청하기 위해서는 3~5개 학교가 연합체를 구성해야 한다. 연합체 참여 대학 가운데 40% 이상은 비수도권 대학

이어야 하고, 인문·사회 계열이 70% 이상 참여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학제 간 다양한 융합과 대학 간 협력이 이뤄질 수 있도록 자연과학·공학·예체능 등의 계열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지난 5일 사업을 공고해 다음 달 25일까지 신청 접수를 받는다. 또한 대학의 사업 이해도 제고와 원활한 사업 신청을 돕기 위해 이달 13일에 사업설명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이번 사업에 선정될 연합체는 오는 5월 선정 평가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은 “학생이 원하는 교육을 선택하고, 스스로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다양한 시도가 인문·사회 융합 인재 양성사업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인문·사회 계열 학생들이 학문 분야를 넘나들면서 지식과 경험을 쌓아 미래 사회에 필요한 융합형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장성환 기자 gijahwan90@kyosu.net

부산대학교

세창미디어

우리모두는절망에빠져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언제나 불안과 절망은 우연히 찾아온다.

절망에 빠져 괴로워하고, 절망 속에서 몸부림칠 때,우리에게 안개 속 빛이 되어 줄

키르케고르의 아포리즘

우리에겐 절망조차 금지되어 있다 키쇠렌르 오케뷔고에르 키 아르케포고리르즘 지음 / 이동용 엮음

“대학 불평등 현실 보지 않고 형식적 공정 담론은 허위이자 왜곡”

인터뷰_ 윤지관 대학문제연구소장

대학은 국가와 사회, 시민과 개인의 삶에서 큰 영역을 차지해왔으나 여러 위기와 문제를 안고 있다. 서울-수도권 중심의 서열체제, 입시지옥과 학벌사회, 사립대 위주의 대학구조, 입학자원 급감에 따른 구조조정, 지방대의 존폐 위기, 여기에 시장주의 기조의 대학정책과 지지부진한 개혁이 현 한국 대학문제의 현실이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대학문제연구소는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학문적·실천적으로 대응하고자 각 분야 전문 연구자들이 모여 탄생했다. 윤지관 덕성여대 명예교수(영어영문학·사진)가 초대소장을 맡았다. 연구소는 대학의 위기가 단순히 대학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구·사회불평등·국민복지·지역균형발전 등 국가 중요 의제들과 연결돼있다고 진단한다. 또 이에 대한 접근은 표면적이고 부분적인 방식이 아닌 총체적인 사고로 해결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가치관이 담긴 <대학: 담론과 쟁점>은 2016년 창간된 이래 학술을 넘어 대학문제를 직접 제기하는 비판적·현실적 공론지로 자리 잡았다. 최근 발간된 12호에서 윤지관 대학문제연구소 소장과 연구소는 대학 사회의 서열체제와 불평등 문제 등에 대한 형식적 공정 담론을 ‘허위·왜곡’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한국의 대학문제와 그 실천적 대응 방안이 무엇인지 윤지관 소장을 인터뷰했다.

윤지관 대학문제연구소장은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버클리대 초빙교수, 한국문학번역원장을 역임했다. 덕성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대학학회 회장을 지냈고, 지금은 대학문제연구소를 통해 한국 대학문제를 진단하고 이에 대한 실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대학문제에 실질적으로 개입하는 게 목적

30~40대 신진 학자 중심으로 편집진도 개편

△ 지난해 11월, 대학문제연구소를 창립했습니다. 창립 배경과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대학문제연구소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대학문제에 학문적·실천적으로 대응하고자 지난해 11월 말 덕성여대 종로캠퍼스에서 첫 정기세미나를 개최하면서 창립했습니다. 10년 전 같은 취지로 한국대학학회가 설립됐으나 대학환경의 악화로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에 따라 더 지속적이고 활동적인 조직으로 재구축될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기존의 학회 운영진들을 비롯해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학계의 새로운 세대가 연구소 창립에 힘을 모았습니다.”

△ 대학문제연구소의 주요 계획은 무엇이고, 또 올해 어떤 부분에 주목해 대학문제를 연구하실 예정입니까.

“지구화 시대에 대학이라는 문제를 총체적으로

다루는 학계의 연구역량을 모으고 이 연구작업을 토대로 현재의 대학문제에 실천적이고 또 실질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연구소의 목적입니다.

불평등 문제를 비롯한 대학의 현재 문제를 분석하고 탈근대적 변화에 따른 대학과 지식생산의 미래, 대안 담론에 대한 모색 등을 통해 명실상부하게 대학문제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현재 대학문제연구소는 정기세미나와 강좌를 진행하고 있고 상반기에 정책토론회, 하반기에 인구문제와 대학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대학문제연구소를 창립하며, 한국대학학회에서 발간하던 <대학: 담론과 쟁점>을 이어서 발간하기로 했습니다. 편집진도 새로 개편했는데요.

“<대학: 담론과 쟁점>은 2016년 대학을 주제로 한 학술적 공론지로 창간된 후 대학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국내 유일의 저널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이와 같은 전통을 이어받되, 새로운 학문적 환경에 대응하는 편집 활동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졌습니다.

대학문제연구소는 30~40대 젊은 학자들을 중심으로 <대학: 담론과 쟁점> 편집진을 개편했습니다. 현재 편집위원장이신 박치현 대구대 교수를 비롯해 김일환(서울과기대)·김종철(서강대)·박주원(영남대)·이우창(방송대)·임광국(동국대)·허창수(충남대) 교수 등 7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곧 젊은 여성학자들을 추가 선임할 예정입니다.”

△ <대학: 담론과 쟁점>은 대학문제를 학술적으로 분석해 이를 공론화하고 있습니다. 학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이러한 분석 작업에는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요.

“<대학: 담론과 쟁점>은 창간 때부터 이 분야의 여느 학술지와는 달리 ‘비판적 공론지’로서의 목표를 표방해왔고, 학문적 업적으로서의 논문만이 아닌 실천적이고 문제를 제기하는 글쓰기를 지향해 왔습니다. 이는 학자로서의 실적과는 무관하다는 점에서 원고 확보의 어려움이 없진 않습니다.

하지만 대학문제에 대한 공론적 활동의 장을 마련해 온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대학문제연구소는 향후 이 저널이 공론지적 성격을 유지하되 학문적 의미에서도 국내 대학연구를 대변하는 학술지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입니다.”

△ 이번 특집호의 제목은 ‘대학의 불평등 현실과 공정 담론 비판’, 주제는 ‘대학 관련 공정 담론의 허상과 문제점’입니다. 이번 호에서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은 무엇입니까.

“근래 들어 우리 사회에서 ‘공정’을 둘러싼 논의가 많았고 특히 대학과 관련해서 더 첨예하게 부각된 면이 있습니다. 이른바 ‘조국 사태’도 그렇고 최근 정부가 지목한 ‘입시 카르텔’ 문제도 그렇습니다.

이번 호 특집은 이 같은 공정 담론이 어떻게 왜곡되어 있는지 대학문제를 중심으로 심도 있게 분석하고 비판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번 호는 대학입시부터 대학 재정지원 및 대학 내부의 착취구조까지 초점을 맞춰 분석했습니다. 대학 서열체제를 존속시키고 재생산하는 기득권 기제는 권력과 자본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체제에서의 탈락을 두려워하는 공포감과 ‘일류병’이란 집단심리에 닿아 있습니다. 또 대학 내부도 이를 재현하며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재생합니다.

특집호는 이러한 대학 서열체제 문제, 입시문제, 대학 내부 권력 관계 등을 다룹니다. 동시에 불평등한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단순 형식만의 공정을 말하는 것은 허위이자 왜곡이라는 것이 필자들의 공통된 인식입니다.”

현지용 기자 editor@kyosu.net

대학의 영리화, 테크노크라트화된 교수

교수사회의 생태계 붕괴와 대학문화의 위기

교수사회를 생태계에 빗대어 볼 때 그 안정성과 균형성·지속성은 붕괴됐다. 강사법 시행 후 교수사회는 장기간 등록금 동결, 입학정원 감축 등으로 대학의 재정 조건이 어려워지면서 기존교수-시간강사 체제는 정년교수-비정년교수 체제로 바뀌는 추세다.

실제로 서울대를 제외한 연세대·고려대·한양대 등은 전임교원 채용을 유지하고 있으며 대학 재정 여건이 양호하다. 또 지난 30년간 이·공학계열 교수 채용은 일관되게 증가하는 반면, 인문·사회계열은 저조하며 연구비 또한 감소 및 단기 사업 위주로 변하고 있다.

교수사회에 미친 대학 정체성의 영리화

대학은 기업의 지주회사처럼 이공계 분야 특허 및 기술 이전 수입을 관리하는 ‘기술지주회사’를 설치해왔다. 이는 대학을 영리 목적형 모델로 정립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이자, 재정위기로 정부와 대외 연구비 수주에 의존하도록 해 인문학 세부 분야가 사회과학화된 현상과 같다.

대학의 시장화는 기업의 요구, 대학의 자발적인 기업 모델 수용에 따른다. 대졸자 대비 일자리가 부족한 ‘자본 우위’ 상황에서는 기업이 적극적으로 대학 교육에 개입한다. 카네기, 버즈아이처럼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반(反) 대학관의 인문주의 비판이 이를 반영한다.

이것은 1911년 테일러에 의해 교육 자체를 생산성 극대화 관점의 경영기법으로 바꾼 대학 경영 효율화 전략으로까지 바뀐다. 대학의 영리화로 교수의 연구 기능이 약화하면서 교수의 역할은 단순 ‘정보 전달자’로 축소됐다.

교수는 전통적인 교육·연구·봉사 기능을 하는 ‘사회위탁자’에서 특수 지식을 다루는 ‘사업가형 전문가’로 바뀌었다. 대학의 기능도 교육보다 취업 준비와 직업훈련, 외부 연구용역의 수행으로 규정됐다.

교수는 전공 분야에서 신뢰성 있는 정보 전달자인 한편, 지배 엘리트에 봉사하는 이데올로기 생산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지식인이 직업적 권위를 통해 정치력과 사회 통제력을 소유하는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과학적 지식이나 전문적 기술을 소유해 사회적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식인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유형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이자 오늘날 교수사회 구성원들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사르트르와 촘스키는 ‘가짜 지식인’ 폭로 등 비판을 통해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며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

성·헌신성을 강조했다.

대한민국 교수사회는 압축 근대화, 권위주의 정치체제의 과정을 거쳐 관료·테크노크라트 또는 비판적·진보적 지식인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대학의 시장 편입 가속화를 거치면서 교수는 영리 대학의 실적관리자 겸 각종 사회문제 해결에 동원되는 기능인으로 전락했다. 도덕적 기준의 제시자, 지배 이데올로기 비판의 감시자로서의 역할은 사라졌다.

“기업, 대학에게 완승을 거두다”

대학사회는 산학협력 실적 제고, 대학평가 순위 상승을 위한 이공계 교수 충원, 취업률 지표를 위한 기업의 사원교육 비용 부담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기업이 대학을 상대로 완승을 거둔 것과 같다.

교수 충원과 재생산의 불균형으로 학문생태계는 무너졌고 학습자-교수자 간 인격적 관계 또한 소멸했다. 교수사회 또한 각자도생이 되면서 공동체적 결속 또한 약해졌다. 이는 교수의 탈(脫)개성화, 혁신에의 주저함, 책임의식 붕괴, 경직성 등을 낳았다.

교수사회 변화의 주요 요인은 내부보다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변모 과정 등 외부요인에 따른다. 동시에 시장을 감시·견제·비판하는 세력으로서 국가·언론을 대신할 교수사회의 힘은 시장 지배로 미약해졌다.

※ 이 글은 대학문제연구소 <대학: 담론과 쟁점> 12호에 조상식 동국대 교수(교육학과)가 쓴 ‘교수사회의 생태계 붕괴와 대학문화의 위기’를 발췌·요약한 것입니다.

현재 동국대 일반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교육철학 사상을 전공했으며 최근 논문으로 「교육학 연구영역의 외연 확장에 대한 학문 이론적 비판」(2023)이 있다.

한국저작권보호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대학출판협회 (사)한국학술출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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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을 인문학에 접목하면 어떤 통찰을 얻을 수 있을까

디지털 역사학의 물결 1

디지털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 DH)이란 말이 익숙한 시대이다. <교수신문>의 독자들 가운데 DH에 거는 기대가 남다른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DH가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DH는 인공지능 시대의 진정으로 새로운 융합 학문인가, 아니면 기존 인문학의 패러디인가? 이번 연재는 바로 이 알쏭달쏭한 DH의 현주소와 과거를 디지털 역사학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연재 순서

① 디지털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② 디지털 역사학 역사

③ 디지털 역사학의 성과 1 미국

④ 디지털 역사학의 성과 2 유럽

⑤ 디지털 역사학의 성과 3 동아시아

⑥ 디지털 역사학의 성과 4 국내

⑦ 디지털 인문학의 최대 난제와 돌파구

⑧ 디지털 역사학의 가능성과 전망

우동현

카이스트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조교수UCLA에서 과학기술사(북한-소련 관계사)로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국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The Historical Journal』에 한국인 최초로 논문이 게재됐다. 2023년 8월부터 한국역사연구회에서 디지털역사학연구반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연구실 주소는 https://sites.google.com/view/thenlab.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 DH)에 대한 기대는 이 용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부터 계속 커졌다. 학자들은 DH의 효시가 2008~2009년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엔젤레스(UCLA)의 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선언문이라는 데 동의한다. 미국 학계의 탁월한 문학자 두명이 쓴 『디지털 인문학 메니페스토 2.0』(Digital Humanities Manifesto 2.0) 발표된 이후, 세계 각지의 학인들은 그 취지에 공감하며 각국에서 DH 를 정착·발전시켰다.

디지털 기술로 인문학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국내에서는 2010년대의 빅데이터, 4차 산업혁명, 디지털 전환, 2016년의 알파고 쇼크 등을 거치며 DH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됐다. 디지털 기술을 인문학에 접목하면 어떤 통찰을 얻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2024년 현재 그러한 질문에 명쾌한 답을 주면서 DH라는 분야를 정의할 만한 성과 물은 나오지 않았다. 물론 18세기 미주와 유럽 학인들의 서면 교류를 시각화한 ‘문필 공화국 그리기(Mapping the Republic of Letters)’ 같은 작업물은 이전에는 상상만 가능했던 성취이다. 이처럼 전산화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개별 연구자가 혼자, 단시간 내에 만들기 어려운 DH 성과가 꾸준히 제출되었다.

일부 DH 옹호자들은 디지털 기술로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형태의 독창적인 지식을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직 과감한 주장일 뿐이다. 한편 데이터 과학, 서지학, 언어학 등 전산 기술의 접목에 유리한 학문을 수행하는 이들은 각자의 기법을 인문학 데이터에 적용해 DH 작업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결과를 산출했다. 그중 회자 되는 것은 드물다.

디지털 인문학 현주소 시급히 진단 필요

카이스트와 케임브리지대학을 포함해 국내외 유수 대학에서 DH가 학위·전공 과정으로 제공되는 상황을 고려할 때, DH의 현주소를 시급히 진단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

가장 큰 오해는 디지털 기술의 위치에 관한 것이다. DH 옹호자들은 프로그래밍의 문법을 학습하고 코드를 쓸 수 있는 능력의 배양을 선결 조건으로 본다. 반면 인문학자들은 문학·사학·철학 각 분야의 고유한 실천을 먼저 익히길 바란다. 어느 한쪽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DH의 시작과 관련된 논의에서부터 지식의 주도권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진다.

DH 연구자들에게는 거대한 의심이 제기된다. 가장 큰 의심은 DH 활동이 기존 인문학 활동과 무엇이 다르냐는 질문으로 표출된다. 이는 냉소적이나 정당한 문제 제기이다. 또 DH를 위해서는 분석 대상인 데이터(주로 텍스트)가 전산화 돼야 하고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가공돼야 한다. 데이터 전산화와 전처리 활동은 DH의 핵심이 지만, 아쉽게도 아직 정당한 학문 활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챗GPT 4로 생성한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디지털 인문학’ 연구자들에게는 거대한 의심이 제기된다. 가장 큰 의심은 ‘디지털 인문학’ 활동이 기존 인문학 활동과

무엇이 다르냐는 질문으로 표출된다.

이는 냉소적이나 정당한 문제 제기이다.

18세기 미주와 유럽 학인들의 서면 교류를 시각화한 ‘문필 공화국 그리기’ 사이트 화면이다.

세상에 나온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DH는 여전히 신생 학문이고, 재정적 지원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 학계 바깥의 청자들, 예컨대 정부나 기업 등 지원 기관들이 DH에 거는 기대도 학계의 기대와 는 사뭇 다르다. DH는 빛 좋은 개살구에 빠질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정작 현실에선 협업이 쉽지 않다

연구자 입장에서의 투자수익률(ROI) 문제야말로 DH의 진전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DH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기술과 인문학, 양자의 고유 지식을 깊게 알아야 한다. 물론 이러한 주문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어느 누가 보상이 두 배가 아닌 일에 기꺼이 노력을 두 배로 들이겠는가?

DH의 여러 덕목 중 하나는 협업이지만, 정작 현실에서 협업은 쉽지 않다. ROI 문제가 다시 첨

예해진다. 최소 5년이 걸리는 인문학 박사과정에 서 디지털 기술자와의 협력을 통해 만든 좋은 연구 결과물은 드물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과연 박사학위 소지자의 취직을 보장할까? 그렇다고 공저 논문이 단독 집필 논문보다 공로를 많이 인정해주는 것도 아니다. DH에 대한 유인은 과연 무엇일까?

기존 인문학은 경시하면서 왜 ‘디지털 인문학’을 강조하는가

한 가지 의의는, DH를 둘러싼 논의가 학계의 보상 구조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DH를 제대로 키워 세계적인 성과물을 만들려면 DH 작업물, 협업, 데이터 전산화 및 가공의 각 활동에 대한 분명한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설령 그런 유인이 제공되더라도, 이것을 과연 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까? 기존 인문학은 경시하면서 왜 DH에만 유

인책을 제공하느냐는 비판에 대한 대답도 같이 준비해야 한다.

무엇이 좋은 인문학 연구인가라는 오래된 고민을 생각할 때, 결국 DH 논의도 무척 오래된 문제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무엇이 좋은 DH 연구인가? 이 질문에서 시작해 학계가 두루 인정하는 결과물이 나오고, 인정받는 연구자들이 뭉치고, 재정 지원이 더해지고, 역량 있는 후속 세대가 참여 한다면 DH라는 학문 분야는 어렵지 않게 만들 수있을 것이다.

이 연재에서는 필자의 전공인 역사학에 초점을 맞춰 DH의 제 면모를 살펴본다. 양자가 많은 지점을 공유할뿐더러, 문학이나 철학 분야에서 전개되는 DH 논의를 모두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 다. 디지털 역사학의 역사와 현주소, 장애물과 돌파구를 살피고, 필자의 연구를 바탕으로 DH의 가능성과 전망을 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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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시티 아닌 ‘메가리전’이 비전일까

▶1면에서 이어짐

메가시티 담론을 분석한 교수들은 한목소리로 ‘메가리전’의 개념을 강조했다. 황진태 동국대 교수(북한학과)는 리처드 플로리다 미국 카네기멜론대 교수(경제개발학)가 구분한 메가시티와 메가리전의 개념을 소개했다. 황 교수는 “메가시티는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도시를 가리킨다면, 메가리전은 많은 인구와 더불어 거대한 시장, 경제적 역량, 혁신적 활동, 고숙련 인재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다르다”라며 “공간구조 상으로는 메가시티가 하나의 도시와 그 주변 교외로 구성된다면, 메가리전은 여러 도시들과 상대적으로 밀도(인구 밀도 등)가 낮은 배후지들로 구성된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황 교수는 플로리다 교수의 개념을 비판했다. 그는 “플로리다의 ‘도시들+배후지들=메가리전’이라는 공식은 메가시티 서울의 형성과 관련된 도시 안팎의 관계성을 밝히는 데 충분치 않다”라며 “플로리다가 제시한 메가리전 공식은 전 세계 메가리전을 판별하기 위한 보편적 기준에 방점을 두면서 개별 메가리전의 구체성·맥락성을 포착하기는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황 교수는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앙리 르페브르(1901∼1991) 전 프랑스 파리대 교수의 ‘도시사회’ 개념을 인용했다. “서울·수도권의 근대적 도시화는 비도시와의 관계(주로 탈취의 형태)가 중요”한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서울과 수도권 도시들 간의 행정구역 재편에 초점을 둔 현재의 메가시티 서울 논의가 서울·수도권의 형성 과정에서 이 도시들의 경계 밖 비도시 지역과의 관계가 미친 영향을 간과하는 방법론적 도시주의에 빠져있다.” 예를 들어, 소양강댐은 서울의 강남 등이 수해에 취약했기에 건설됐다. “소양강댐은 서울을 대상으로 각종 용수 공급 및 홍수 조절 기능뿐만 아니라 발전 용량 20만 킬로와트에 달하는 전력을 생산하여 서울을 밝게 만들었다.”

시혜 아닌 호혜의 서울-지역 관계

자연스레 논의의 새로운 출발선이 그려진다. “시혜가 아닌 호혜에 방점을 둔 도시-비도시 관계 정립”이 필요한 것이다. 황 교수는 “발전 지역의 부가 저발전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이 시혜가 아닌 호혜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만들어진 후에 지방에 대한 낙수효과를 보장해 준다면 메가시티 서울 육성 정책을 지방도 지지하는 사회적 합의가 도출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황 교수는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생활인구’의 중요성을 환기했다. ‘탈영역적, 탈민족적, 모빌리티의 관점에서 지방/비도시 인구 범주의 새 인식’을 강조하며, 생활인구에 대한 장기적인 지원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활인구는 정주인구와 다르다. 예를 들어, ‘두 지역 살아보기’는 도시인이 정기적·반복적으로 다른 곳에서 체류하는 것이다. ‘지역 워케이션(Work와 Vacation의 합성어)’은 직장인이 자연휴양지에 서 오랫동안 머물며 동시에 일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황 교수는 도시-비도시 관계의 정치생태학적 접근, 풀뿌리 민주주의와 계획합리성의 간극 줄이기 등을 강조했다.

국가 주도 공간분업 정책의 실패

양승훈 경남대 교수(사회학과)는 「두 번의 메가시티 프로젝트: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번은 소극(笑劇)으로?」에서 국가에서 추진한 공간분업 정책의 실패를 지적했다. 양 교수는 “박정희

왼쪽부터 황진태 동국대 교수(북한학과), 양승훈 경남대 교수(사회학과), 김재훈 대구대 교수(경제금융학부)다. 이들은 메가시티 담론에 담긴 문제점을 분석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점검했다.

사진=각 학과(부) 홈페이지

“메가시티는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도시를 가리킨다면,

메가리전은 많은 인구와 더불어 거대한 시장, 경제적 역량, 혁신적 활동,

고숙련 인재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의 유산인 남동임해공업벨트(부울경의 울산, 창원, 거제와 경북 포항, 전남의 광양, 여수) 산업도시들은 여전히 건재한 것 같지만 2015년을 경유하며 인구의 내리막을 겪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관청과 공기업을 시도별로 혁신도시를 선정해 분산배치했을 때, 인구의 분산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인재의 이탈을 비롯해 셔틀버스와 KTX (주말)통근이 늘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양 교수는 “이제 메가시티는 행정통합을 통해 자족도시를 만들어 지방을 살릴 수 있는 만능의 프로젝트가 됐다”라며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공간분업, 경부축과 그 외 지역의 맥락에 서 구조화된 불균등 발전 문제에 대한 국토계획의 재조정(지역균형발전의 재구성 또는 ‘3차 공간분업’)이라는 맥락은 사상(捨象)됐다”라고 일갈했다. 아울러, 그는 “현대적 도시화에 걸맞은 광역전철망과 혁신 클러스터의 집적이라는 문제

의식 역시 소거됐다”라고 우려했다.

양 교수도 메가리전 개념을 소개했다. “메가리전은 도시와 지역 간 산업 및 행정 연계를 통해 적극적으로 집적되는 결과물이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 맞서는 지역균형발전론을 펼치는

데, 이 역시 “메가리전의 비전은 메가시티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로 상승됐다”라는 것이다.

양 교수는 수도권-비수도권 불균등뿐만 아니라 광역별 혹은 권역별 불균등도 언급했다. 양 교수는 “울산과 경남이 늘 걱정하는 것은 부산의 ‘빨대 효과’”라며 “부산으로 인력과 물자가 빨려 들어가서 세수와 영향력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라고 분석했다. “경남 내부에서는 동서 간 격차를 문제 삼는다. 산업도시 창원, 거제, 양산, 김해가 모두 동부 경남 지역에 몰려 있다면, 서부 경남에는 사천 정도를 제외하면 특별한 제조업 기반이 없다. 교통망 구축에서도 서부 경남은 남부내륙

철도 개통을 제외하면 소외되어 있다.”

그렇다면 해외는 어떨까? 김재훈 대구대 교수(경제금융학부)는 유럽 사례를 제시하며 인구가 일정 규모 이상으로 넘어가면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2000년대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는 중소도시 성장률, 인구 증가율이 거대도시를 능가하면서 도시 크기와 생산성이 역 U자형 관계에 있다고 분석·정리됐다”라며 “인구 규모 600∼700만 명 이상이 될 때까지는 도시 인구 증가와 GDP 성장 간에 양의 상관관계가 성립하지만 그 이상이 되면 음의 상관관계로 전환돼 그래프를 그리면 역 U자형이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중·후진국에서는 거대도시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인구 너무 많으면 오히려 역효과 발생

이에 따라 유럽은 메가리전 발전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김 교수는 “유럽에서는 1999년 EU와 가입국 장관들이 발표한 『공간 개발 관점』에서 특정 대도시의 확장이 아니라 여러 도시가 공존, 상생 협력하는 다중심 도시지역 체계를 발전시키기로 했다”라며 “그에 따라 유럽에서는 영국 동남부, 네덜란드(란트스타트), 벨기에 중부, 독일 라인-루르, 독일 라인-마인, 스위스 북부, 프랑스 파리 지역, 아일랜드 광역 더블린 등 8곳의 메가(시티)리전 발전 방안을 여러 정책 논의와 연구를 통해 마련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메가시티는 무엇이고 어디인가

메가시티는 일반적으로 인구 1천만 명 이상의 매우 큰 도시를 뜻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18년 유엔 경제사회국(UN-DESA)은 「세계 도시화 전망」에서 메가시티를 1천만 명이 넘는 주민이 거주하는 도시 집합체로 정의했다. 또한 독일 본대학교의 한 보고서는 이 같은 정의를 밝힌 바 있다.

반면, 다른 정의에서는 500~800만 명이 최소 임곗값으로 간주되며, 인구 밀도를 제곱 킬로미터 당 최소 2천 명으로 간주하고 있다. 메가시티 이외에 도시연합(conurbation), 메트로폴리스, 메트로플렉스라는 용어도 사용되고 있다.

전 세계 메가시티의 수는 출처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유엔은 33개(2018년), 세계 인구분석 웹사이트 CityPopulation.de는 45개(2023년), 세계 인구와 도시 관련 통계 제공 기관인 데모그래피아(Demographia)는 44개(2023년)로 집계한다. 예를 들어, 중국의 베이징, 인도의 벵갈루루와 델리,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이집트의 카이로, 대한민국의 서울, 미국의 로스 엔젤리스,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 파키스탄의 카라치 등이 메가시티다. 1개 이상의 메가시티를 보유한 나라는 중국, 인도, 브라질, 일본, 파키스탄, 미국 등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서울의 모습이다. 지난해 말 기준 서울 인구는 938만6천34명이었다. 사진=위키피디아

Maxim

소인경

문이원 외 5인 지음 | 문헌재 | 232쪽

분열과 전란으로 얼룩진 오대십국 시대, 네 개 왕조에서 열명의 황제를 모시며 무려 20여 년 동안이나 2인자인 재상의 자리를 굳건히 지킨 불세출의 위인 풍도의 처세 철학을 읽는다. 이상적인 인간상과 중심 가치를 통렬히 비트는 이 책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소인의 마음으로 살면서 소인이 돼라.

재일 디아스포라의 목소리

김석범 외 3인 지음 | 김용규 편집 | 소명출판 | 328쪽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 1세대 김석범·2세대 서경식·3세대 최덕효·정영환. 1세대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고, 3세대 이후의 새로운 세대들이 일본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일본사회로 통합할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는 지금 이 시점에 이 대담집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계몽은 계속된다

베르너 슈나이더스 지음 | 이우창 해설 | 오창환 옮김 | 그린비 | 208쪽

이 책은 18세기 독일 계몽 분야의 권위 있는 학자가 쓴 ‘계몽’에 대한 포괄적인 입문서이다. 18세기 계몽의 시대를 중심으로 영국·프랑스·독일의 계몽주의 운동과 그 운동의 가장 중요한 입장들과 철학들, 주요 인물들을 다루며, 그동안 자주 간과됐던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미국의 계몽주의도 살펴본다.

태양을 만드는 사람들

나용수 지음 | 계단 | 432쪽

태양은 어떻게 빛을 내는가?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그 비밀을 알고 싶었다. 어제도, 오늘도, 몇십 년, 몇백 년, 몇천 년 동안 태양은 뜨겁게 반짝이고 있다. 핵융합은 바로 꺼지지 않는 태양 에너지의 근원을 밝히는 데서 시작했다. 19세기 말 방사선이 등장하면서 원자의 문이 열렸고, 20세기 전반은 핵물리학과 양자역학의 전성기였다.

최재천의 곤충사회

최재천 지음 | 열림원 | 280쪽

꿀벌이 사라지는 것처럼 한 종이 사라질 때 전체 생태계가 와해하는 현상이 벌어질지는, 지금 우리가 가진 자연에 대한 지식으로는 예측하지 못한다. 우리 인류의 불행의 근원은, 끊임없이 다양화하는 자연 속에 살면서 끊임없이 다양성을 말살하다가 자초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38억 년 지구생명의 역사에 이런 일은 없었다.

자율성과 전문성을 지닌 교사되기

린다 달링 해몬드 지음 | 전국교원양성대학교총장협의회 옮김 | 살림터 | 412쪽

이 책은 교육 선진 지역으로 손꼽히는 국가와 지역들(싱가포르·핀란드·호주 뉴사우스웨일스와 빅토리아 주·캐나다 앨버타와 온타리오 주·중국 상하이)의 교원 정책을 심층 연구한 결과물이다. 이들 지역은 국제성취도 평가에서 높은 성과를 보이는 동시에 사회·경제적 배경이 학생의 학업 성취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 ‘형평성 교육’이 실현되는 곳들이다.

빅 픽스

저스틴 길리스·핼 하비 지음 | 이한음 옮김 | 알레 | 408쪽

이 책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분리수거나 재활용을 열심히 하고, 육류 소비를 줄이고, 전기차를 구입하고,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등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활동들을 넘어 실질적인 실천 방안과 행동 강령을 제시한다. 변화를 불러일으킬 힘을 지닌,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 열쇠가 돼줄 계획들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위대한 수사학 고전들

한국수사학회 지음 | 을유문화사 | 808쪽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키케로 등 서양 고전 수사학부터 공자·장자·손자 등 동양 고전 수사학 그리고 페렐만·리쾨르·크나페 등 현대 수사학에 이르기까지 동서양 수사학의 고전을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는 책이다. 한국수사학회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그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책으로, 학술적 가치가 크고 깊이 있는 서술이 돋보이는 고전 연구서다.

야구의 나라

이종성 지음 | 틈새책방 | 328쪽

야구 애호가들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 출간됐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미스터리인 “왜야구는 축구를 제치고 최고의 인기 스포츠가 되었을까?”에 대한 해답이다. 한양대에서 스포츠문화사학을 연구하는 저자는 일제 강점기부터 2000년대까지 야구가 국민 스포츠가 된 과정을 추적했다.

역자가 말하다_『양심: 도덕적 직관의 기원』 패트리샤 처칠랜드 지음│박형빈 옮김│도서출판 씨아이알│320쪽

‘데이터·진화생물학’으로 분석한 양심

“인간에 대한 물리적 이해와 철학적 이해의 단절은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뇌신경과학과 도덕교육』 82쪽) 무엇이 우리를 도덕적 우월감에 빠지게 하며 무엇이 우리를 자가당착에 놓이게 인도하는가? 이 시대 수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외치고 양심을 논한다.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기간 많은 철학자들이 양심에 대해 나름대로의 개념 규정을 시도했다.

혹자는 선험적이라 이야기하고 혹자는 이념에 빗대어 설명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양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탐구

내면 깊숙이 똬리 틀고 일거수일투족 주시

양심의 형성과 발달 작동원리 이해로 성장

를 시도한 사람은 많지 않아 보

인다. 아니, 거의 없는 듯하다. 아마도 양심이라는 것이 실체가 없는 형이상학적이고 모호하며 추상적인 개념으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러할까? 양심이란 것이 오직 관념적으로만 존재하는 실존과는 거기라 먼 개념일까? 나에게 양심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우리가 누군가에게 해를 가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알지 못하는 마음의 거리낌을 느끼지 않는가? 동료들을 위해서 행한 우리의 행위가 이들을 이롭게 하고 그들이 이에 대해 감사함을 표현할 때, 우리는 알 수 없는 어떤 느

낌이나 감정을 갖게 되지 않는가? 혹은 우리가 어떤 잘못된 행위를 하려는 마음이 들 때, 우리도 모르는 마음의 무엇인가가 이를 막아서지 않는가.

다시 말해, 우리의 양심은 우리 내면 깊숙이 똬리를 틀고 앉아 매시간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우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지휘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이것이 바로 양심이라는 것이 우리 안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양심의 순수한 본질이나 본연의 그 모습은 무엇이며 이것은 우리 내면에 어떻게 도래했을까.

내가 이 책을 번역하게 된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자신의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 고상한 이상과 이념을 들먹이지만 종종 정작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는 모순과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로 많은 사람들은 그 잣대가 스스로에게 향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심지어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프로파간다를 외치기도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양심을 외치지만 실상그들에게 양심은 매우 애매하고 난해한 용어로 사용된다. 그렇기에 불확실성의 존재인 현 세대에 있어 양심은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우리는 양심을 어떻게 형성하고 작동하는지 궁리할 필요가 있다.

『양심: 도덕적 직관의 기원』은 도덕적직관이라 할 수 있는 양심에 대한 연구에 있어 결코 추상성에 기대지 않는다.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연구와 사례 그리고 데이터 등을 검토해 우리가 양심이라 인식하거나 느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 뇌신경과학·진화생물학·진화심리학 등의 관점에서 경험적이고 과학적이며 분석적으로 탐험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험론적 접근과 함께 치열하게 철학적인 사유의 작업을 병행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책은 경험적이지만 동시에 철학적이다. 추상적이지만 구체적이다. 통합적이지만 분석적이다. 물리적이지만 정신적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해 양심의 형성과 발달 작동원리를 이해함으로써 우리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더 나은 사회 그리고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얻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직관의 기원을 둘러싼 뇌신경과학적 발견은 여전히 발전 중이며 많은 부분이 미지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능동적이고 진취적이지만 동시에 신중하고 비판적인 탐험가가 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이 우리 자신을 그리고 우리 사회를 보다 고

차원적 존재로 만들어 갈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박형빈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저자가 말하다_『라이프 레슨』 이창수 지음 | 사람in | 264쪽

“인생은 여정이다”…디지털 인문학이 풀어낸 은유

“인생은 여정이다(Life is a journey)”는 『삶으로서의 은유』 공저자인 래코프와 존슨(Lakoff & Johson)의 ‘개념적 은유(conceptual metaphor)’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은유다. 우리 주변에는 ‘인생’이란 개념을 ‘여정’이란 개념에 빗대어 묘사한 언어 표현들이 많다.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을 ‘갈림길’로 묘사하고, 언행이 안 좋은 학생은 ‘탈선했다’고 한다. 어떤 계획이 무산되었을 때는 ‘좌초했다’고 한다. 이 표현들은 인생을 각각 도보 여행·기차 여행·선박 여행에 비유한 표현들이다. 래코프와 존슨의 연구 이전에는 이런 비유 표현은 언어적 유희 차원에서 다뤄졌다. 언어적 은유 표현은 문학에서는 쓰이는 장식 언어로 치부됐다. 그런데 래코프와 존슨은 이런 전통적 관점을 뒤집고 언어적 은유 표현은 일상 언어의 핵심 요

개념적 은유는 인지언어학의 주요 주제

40가지 표현과 엮인 다양한 영어 인생담

소로 언어소통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언어적 은유 표현의 기저에는 그 표현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개념적 차원의 은유가 존재하며, 언어적 은유 표현은 개념적 은유의 언어적 표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개념적 은유에는 “인생은 여정이다” 외에도 “시간은 돈이다(Time is money)”, “사랑은 전쟁이다(Love is war)”, “질병은 적이다(Diseases are enemies)” 등 수많은 종류가 있다. 개념적 은유는 인지언어학에서 다루는 주요 주제 중 하나이다.

이 책은 그동안 학문적 영역에서만 논의되던 개념적 은유를 대중문학에

연결시켜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수필집으로 엮어 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영어에는 인생을 여정으로 보는 관점을 반영한 표현들이 매우 많다. 그리고 래코프와 존슨이 주장한 대로 이런 표현들은 영미인의 일상적 대화나 글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가령, 부부간의 갈등 관계있는 사람은 “결혼 생활이 암초에 부딪혔다(My marriage is on the rocks)”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갈등 관계에 있어”라고 하는 것보다 “암초에 부딪혔다”라고 하면 의미가 더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결혼 생활이란 배가 큰 암초에 얹혀 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일상 언어에서 은유 표현이 하는 역할이 바로 그런 것이다. 추상적이고 어려운 의미를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경험에 빗대어 구체적이고 쉬운 의미로 이

해하게 도와준다. 그런 표현이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사용된다는 것은 해당 경험이 일반적이란 뜻이다. 따라서 영어에서 많이 사용되는 “인생은 여정이다”와 관련된 언어적 은유 표현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겪는 다양한 경험을 반영한다. 뒤집어서 그런 언어적 은유 표현을 추적해 분석하면 우리가 인생에서 흔히 겪는 경험을 밝혀 낼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저자는 개념적 은유에 관한 연구 도서와 논문에서 “인생은 여정이다”와 관련돼 소개된 은유 표현을 수집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1천 권 이상의 영어 회고록과 자서전을 분석 자료(코퍼스)로 사용해 파이선 프로그램에 탑재해

미국의 언어학자인 조지 래코프이다. 사진=위키피디아

서 수집한 언어적 은유 표현을 식별하고 빈도를 분석해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40가지 “인생은 여정이다”와 관련된 은유표현을 선별해냈다는 점이다. 이를 다시 1천 권의 코퍼스에서 검색하고 회고록과 자서전 저자들이 해당 표현을 사용한 맥락을 추적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1천 권의 코퍼스 안에 “인생은 여정이다”와 관련된 은유 표현이 어떻게 분포돼 있으며 어떤 표현들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지 그리고 그 맥락은 어떤 것인지를 분석할 수 있었다.

이런 자료를 기반으로 40가지 표현과 관련된 다양한 인생담을 소개하며 그런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인생 교훈을 정리한 에세이를 집필했다. 이처럼 다량의 문학작품을 디지털화해서 경향·특징·패턴·주제·시류 등을 분석하는 것을 디지털 인문학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디지털 인문학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딱딱한 학문적 이론을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에세이로 풀어 학문과 대중문학의 간극을 좁히려 시도했

다는 점에서 궁극적 가치를 발견한다.

이창수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한영과 교수

역자가 말하다_『애덤 스미스: 경제학의 아버지』 제시 노먼 지음│이성규·임일섭 옮김│640쪽│율곡출판사

경제학부터 도덕까지…방대한 지적 프로젝트 구축

근대 상업사회로 문을 연 경제적 근대성

도덕 철학·문화·사회의 선구적 사상 주창

애덤 스미스(1723~1790)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면서도 그에 대한 이해가 가장적게 된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애덤 스미스의 지혜’를 필요로 한다. 제시 노먼(Jesse Norman) 영국 하원의원은 『애덤 스미스: 경제학의 아버지』에서 수많은 신선하고 귀중한 통찰력과 함께 유용하고 명료한 개요를 제시해 준다.

이 책에서 노먼은 애덤 스미스의 생애와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240여 년 전에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에서 제시한 애덤 스미스의 통찰력이 현대 세계의 가장 어려운 사회적·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왜 그리고 어떻게 유용한지를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이자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가 실제로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리고 그의 생각(사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치열한 논쟁의 주제이자 대상이다.

애덤 스미스는 자본주의와 개인의 자유를 웅변적으로 옹호한 사람이었는가? 아니면 시장 근본주의의 주창자이자 불평등과 인간의 이기심을 옹호한 사람이었는가? 아니면 이러한 이미지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영국의 정치 철학자이기도 한 제시 노먼은 ‘애덤 스

미스의 경제학’뿐만 아니라, 인간 과학·도덕 철학·문화·사회학 등에 이르는 그의 ‘방대한 지적 프로젝트’를 총체적으로 제시해 주었다.

이를 위해 노먼은 첫째 애덤 스미스의 생각을 둘러싸고 생겨난 여러 미신을 타파하고, 둘째 그의 생애 이야기(서사)를 간결하고 흥미진진하게 기술하고, 셋째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을 훨씬 넘어 그의 생각과 연구 전체를 고찰하고, 넷째 지난 2세기 동안 인류에 끼친 그의 영향력을 심도있게 추적했다.

그 결과 이 책이 보여주는 진정한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의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도덕 철학·문화·사회의 선구적인 사상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애덤 스미스의 심오하고 방대한 사상은 현대 자본주의의 다양한 문제들과 그로부터 찾을 수 있는 기회들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애덤 스미스의 심대한 사상으로부터 현대 자본주의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영국의 철학자·정치인 에드먼드 버크(1729∼1797)가 정당과 대의정체 이론을 통해 인류의 ‘정치적 근대성의 경첩’(중세봉건사회에서 근대 시민사회로 문을 열어준 사람)인 것처럼,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을 통해 인류의 ‘경제적 근대성의 경첩’(중세 봉건사회에서 근대 상업사회로 문을 열어준 사람)이다.

그렇다면 진짜 ‘애덤 스미스’는 누구인

가? 진짜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의 애덤 스미스뿐만 아니라 역사·철학·정치경제학의 애덤 스미스로 아직도 우리에게 가르쳐 줄 교훈을 무한정으로 가지고 있다. 특히 시장뿐만 아니라 정실 자본주의, 불평등, 우리 삶의 사회적 기반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들에서 애덤 스미스의 생각에서 끌어낼 수 있는 심오한 교훈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애덤 스미스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자본주의와 시장시스템을 방어, 개혁또는 갱신하려는 시도들에서 가장 유용한 지침이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우리나라를 비롯해 선진국들의 정치가 좌·우파 포퓰리즘 이데올로기에 의해 그 속이 ‘공동화(空洞化)’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그 속(중심)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자본주의 개혁의 역사적 대안이 첫째 ‘무역’보다 ‘전쟁’이 돼서는 안 되며, 둘째 민주주의보다 종교적 독재와 권위주의적 공산주의 및 민족주의가 되어서도 안 되고, 셋째 상업사회의 이익보다 공허한 경제적 물질주의가 돼서도 안 될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통찰력은 자본주의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공동화된 중심을 재건하는데 출발점이 되는 ‘새로운 서사’를 제시해줄 것이다.

이 책은 “애덤 스미스가 실제로 무엇을 생각했는지”와 “애덤 스미스가 생각한 것이 왜 여전히 중요한지”를 찾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애덤 스미스의 ‘생각(사상)과 영향

력’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성규

국립안동대 무역학과 교수

문화 비틀어보기_『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피스모모평화페미니즘연구소 기획 | 김엘리 외 6인 지음 | 서해문집 | 241쪽

이성애 중심 군대를 넘어라…여성부터 인공지능까지

남성이 갖는 군 복무에 대한 양가적 감정

원화 젠더 구조 넘어 다층적 체계 분석

선거 시기에는 종종 “여성도 병역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등장하곤 한다. 그리고 선거 기간이 끝나면 슬그머니 사라졌다가 다음 선거에 다시 등장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군대에서 일어난 폭력과 사고, 억울한 죽음의 사연이 끊임없이 ‘단독’이라는 말머리와 함께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사건에서조차도 피해자의 존엄을 기리기 위한 노력 그리고 유가족의 슬픔에 대한 정당한 위로는 여전히 쉽게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다.

군대 문제는 소위 ‘젠더 갈등’의 가장 핵심적 주제이면서 남성만의 부당한 부담으

로 여겨진다. 군대는 전쟁이라는 폭력을 대비하는 조직인 것 같지만 그 내부적으로는 가장 폭력적인 조직이기도 하다. 이공간에 대한 논의에는 사실 여러 가지가 빠져 있다. 그래서 저자들은 누구나 알고있는 주제라고 생각하는 군대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말하지 않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특히 군대와 관련되어 있음에도 남성으로만 상상되기에 누락돼 있는 주체들 즉 여성, 성소수자와 동물 그리고 인공지능을 불러내어 현재의 이성애 중심적 군대 제도가 갖는 문제를 드러내고 대안에 대한 사유를 요청한다.

총 7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먼저 군대에 대한 내적·외적 재현 양상을 검토한두 편의 글은 우리 사회에서 군대가 어떻

게 인식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너머에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허윤은 군대에서 복무 중인 연예인의 팬을 동원하여 상업적 연예 엔터테인먼트를 제작하는 국방 엔터테인먼트가 갖는 정치적·문화적의미를 질문한다. 조시연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군인과 남성성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그려져 왔는지를 검토하면서 이 재현들이 ‘하드 보디’와 첨단 기술을 통해 ‘군사화의 전 지구화’에 초점을 두는 최근의 흐름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백승덕은 우리 사회 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자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추지현은 군형법 상의 추행 죄를 둘러싸고 “내 아들을 보호하라”는 부모의 목소리가 대표되면서 은폐되는 차별과 혐오의 구조를 드러낸다.

심아정은 비인간 존재가 전쟁에 동원되거나, 화학물질을 이용한 전쟁에서 비인간 존재가 식품으로서의 가치로만 셈해지는 상황을 보이고 전 지구적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에서 전쟁 문제는 비가시화돼있다는 것을 다룬다. 장박가람은 인공지능과 무기 체계의 결합이 젠더·인종 차원의 차별을 강화하고 있으며 더 인도적인 전쟁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환상이 폭력의 원격성과 추상성을 강화하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두 명의 글은 전쟁이라는 주제를 둘러싸고 더 이상 ‘인간/남성/군인’이라는

틀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전 지구적 문제들이 이미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폭로한다.

김엘리는 여성의 징병을 둘러싼 남성의 불만과 이를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문제가 신자유주의적 흐름 속에서 공정과 성평등을 전유하는 문제를 지적한다. 결국 이 군대 문제가 몸의 성별화와 위계화에 따른 차별 구조에 따라 생겨나며, 우리 사회가 이러한 차별의 구조에 의해 구성되고 있는 문제를 총체적으로 보아야 할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분단이라는 특수 조건 때문에 당연시되는 ‘국방’은 한국 사회에서 남성성 구성의 핵심 기제이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주체들을 소외시키는 구조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러한 군대가 어떻게 작동하면서 우리 사회의 젠더 체계를 구성하고 있는지를 다층적으로 분석한다. 이러한 분

석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이 폭력의 문제에 도전하고 자명해 보이는 군대라는 권력을 바꾸어 내기 위한 다양한 주체들의 연대 지점을 발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저자들은 현재 남성들이 갖는 군 복무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 이원화된 젠더 구조를 넘어서는 그 너머를 상상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군대에 대해 말해야 할 것들의 목록을 새롭

게 구성해야 함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교수

나의 20세기

정하룡 지음 | 학민사 | 440쪽

이 책은 저자의 사적인 회고록이 아니다. 곧 이 책은 한국 현대사의 고비마다 과거·현재·미래의 연관 속에서 저자가 느꼈던 것, 사색한 내용을 정리한 게 주 내용이고, 그 사이사이에 자신의 일상사와 신변잡기를 끼워 넣어 스토리텔링을 이어가는 ‘자기 성찰적’ 기록이다. 자식 세대, 손자 세대, 청장년들에게 남기는 ‘기억의 전달’이다.

패턴 시커

사이먼 배런 코헨 지음 | 강병철 옮김 | 디플롯 | 408쪽

사물과 자연을 일정한 기준과 규칙에 따라 치밀하게 분석하는 ‘체계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도구·언어·제도·법 등 문명의 거의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요컨대 이 책은 ‘자폐는 어떻게 인간의 발명을 촉진했는가?’라는 신선한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다. 과학의 눈으로 본 인류 진보의 두 날개는 공감과 체계화다.

천 척의 배

나탈리 헤인스 지음 | 홍한별 옮김 | 돌고래 | 416쪽

이 책은 고대 신화를 여성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흐름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최근 몇 년 새 호메로스 서사시의 남성 중심적 시각을 탈피한 소설들이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는데, 이 책은 이 두 작품과 동일한 맥락에 있으면서도 트로이아 전쟁 전반의 이야기를 망라해 다룬다는 점에서 남다른 야심이 돋보인다.

국어 교사를 위한 논증 교육론

서영진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98쪽

이 책은 논증 메시지의 논증 구조 분석에 치중하던 기존의 논리학적 관점의 논증 교육에서 탈피해, 논증의 대화적 본질과 탐구적 본질을 다룬다. 논증 행위의 소통 특성으로서 상호 교섭성에 주목해, 논증적 상호 교섭 능력을 신장하는 데 필요한 교육 내용 요소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논증 교육의 방법을 안내한다. 예비 교사, 초보 연구자, 사회 교사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조선후기 양전사업과 토지개혁론

최윤오 지음 | 혜안 | 376쪽

이 책에서는 조선시대의 양전사업과 토지개혁론을 세 계통으로 나누어 살펴봤다. 시기적으로는 세종 공법에서부터 자리잡게 된 양전 균세론을 가장 먼저 검토했다. 정부층의 양전 균세론은 17세기 양란을 거치면서 농촌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됐고 이에 여러 가지 국가재조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념과 현실

정태헌 지음 | 역사비평사 | 528쪽

서로 깊은 이해관계가 얽혀 글로벌하게 진행된 근대 세계사를 한국사 관점에서 보는 시각과 한국사를 세계사 속에서 보는 시각을 충돌시키고 조화시키는 과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까지 근대역사학은 국가의 이익을 앞세운 대외 침략 정책을 당연시한 채 이를 ‘세련되게’ 합리화해왔다.

클라우제비츠 전쟁론 완성하기

르네 지라르·브누아 샹트르 지음 | 김진식 옮김 | 한길사 | 472쪽

이 책은 비평가이자 인류학자인 저자가 19세기의 고전 『전쟁론』에 담긴 ‘전쟁의 속성’을 오늘날의 맥락에서 재규명하기 위해 브누아 샹트르와 나눈 대담집이다. 전쟁에 대한 클라우제비츠의 개념은 오늘날의 폭력을 설명할 수 있는 열쇠이면서, 그 자체로 지라르 사상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조선인들의 청일전쟁-전쟁과 휴머니즘

조재곤 지음 | 푸른역사 | 728쪽

미국과 중국의 대결 구도·러시아와 북한의 제휴·중국과 대만의 갈등 등 한반도 주변 정세가 심상치 않은 만큼 청일 양국의 틈바구니에서 원치 않는 전장(戰場)이 돼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입은 것은 물론 국가 운명도 비틀린 당시 조선의 역사를 들춰내는 것이 반면교사로서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분야별 신간

인문

루쉰을 만든 책들 (상) | 리둥무 지음 | 이보경·서유진 옮김 | 그린비 | 656쪽

살아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 마시 코트렐 홀·엘리자베스 엑스트롬 지음 | 김한슬기 옮김 | 웨일북 | 372쪽

유교와 한국 근대성 | 나종석 지음 | 예문서원 | 640쪽

정치-사회

그럼에도 지구에서 살아가려면 | 장성익 지음 | 풀빛 | 288쪽

손상된 행성에서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 | 손희정 지음 | 메멘토 | 224쪽

문학-에세이

매일 읽는 루쉰 | 루쉰 지음 | 조관희 편역 | 니케북스 | 416쪽

방 안의 호랑이 | 박문영 지음 | 창비 | 412쪽

시베리아의 숲에서 | 실뱅 테송 지음 | 비르질 뒤뢰이 글·그림 | 박효은 옮김 | BH(balance harmony) | 110쪽

자연과학

과학의 눈 | 잭 챌로너 지음 | 변정현 옮김 | 초사흘달 | 272쪽

2차 전지의 혁신 | 사이토 가쓰히로 지음 | 권오현·오가윤 옮김 | 북스힐 | 270쪽

역사

만화로 보는 좌충우돌 몽골제국사 | 봉닭 글·그림 | 한빛비즈 | 384쪽

전후 일본과 독일이 이웃 국가들과 맺은 관계는 왜 달랐는가 | 월터 F. 해치 지음 | 이진모 옮김 | 책과함께 | 336쪽

여행

행복@로컬 | 정석 지음 | 레벤북스 | 438쪽

OA ‘효율성·투명성·접근성’을 약탈의 근거로 보는 게 문제다

이성청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오픈 액세스와 ‘MDPI 통째 논쟁’에 대한 의견

역사 속에서 기술 문명의 혁신과 진보는 여러 모습으로 삶의 방식을 변화시켜 왔고, 특별히 계급 구조를 재편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농사를 짓는 도구나 이와 관련된 시설 개발은 토지와 관계하는 인간의 생활 방식과 공동체 형성의 틀을 바꾸었다. 청동 기술은 고대 왕국 건설의 기반을 닦았고, 산업혁명은 도시화뿐 아니라, 생산수단 소유와 접근성을 축으로 사회 계급과 그 구조를 각각 전문화하고 정당화하게 했다. 특별히, 18세기 인쇄 기술과 현대의 디지털, 인터넷 기술은 정보 생산과 소통의 민주화 그리고 혼돈이라는 역설을 가져왔다. 당연히, 지식을 생산하는 학문·지식 공동체도 이 운명을 피할 수 없었고 우리는 현재 그 극적인 예를 다양한 형태로 경험하고 있다. 도제의 구두 전승이나, 파피러스나 흑판에 지식을 기록하고 보관했던 고대 도서관, 수도원을 통해 지식을 축적한 중세 대학, 그리고 펜으로 쓰고 종이로 출판하던 저널과 대면으로 소통했던 지식은 온라인 저널이나 데이터베이스, 소셜 미디어, 줌, 웨비나 등의 혁신적인 기술과 증강된 학문적 네트워킹과 협업으로 공유되기 시작했다.

지식 생산·공유 지배해 온 엘리트주의 시각의 히스테리

특별히, 오픈 액세스(Open Access)라는 새로운 지식 소통의 플랫폼은 지식 전달의 접근성과 스피드를 혁신했을 뿐 아니라 지식을 지식이라고 명명하는 권력관계와 구조에도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일단, 오픈 액세스는 구독이라는 장벽을 허물면서 연구물, 즉 지식에 대한 접근성과 전파 속도를 극적으로 향상시켰을 뿐 아니라, 독자와 대학이 감당했던 천문학적 재정 부담을 완화시켰다. 저자·연구자가 저작권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넓히는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아울러 (디지털 플랫폼의 생리로 인해) 연구물의 대량 생산이라는 기현상을 야기시키면서 학자들로 하여금 인지적 부조화·불편함을 느끼게 만 들기도 했다.

지식의 전통적 공유·확산 모드는 엘리트적, 계급 관계를 전제한 것이었기에 “대량” “신속” “누구든/모두에게”라는 표현과 어울리기 쉽지 않았다. 예를 들어, 지식을 생산하는 주체는 전통-페이퍼 저널을 통해 학계를 지배 통제하는 지식 권력자, 구체적으로는 서구-영어권-학자(Anglophone scholars)들이 었다. 이들이 구축한 논평자 집단의 피어-리뷰는 지식을 적법하게 만들어내고 그것에 도덕성까지 부여하는, 일종의 성스러운 의례가 되었다. 이들에게 있어, 지식은 발견되고 개발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특정 방식, 형식으로 설득, 통제되고 승인 받는 것이기도 했다. 각 지식 공동체는 지식-생산자의 자격을 규정하고 이들이 검증하고 그리고 합의한 방식으로만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하게 만들었다.

오픈 액세스 모델은 이 전통적 패러다임의 축을 뒤흔들었고, 전통 모델에 익숙하거나 그것으로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쌓은 지식-생산자들 그리고 그 추앙자들을 도발했다. 물론, 그들에 게 이 도발은 위협이나 위기라기보다 “이단적” 혹은 “못마땅

함”이었다. 무엇보다, 오픈 액세스는 저자·기관으로 하여금, ①출판비를 요구하고, ②출판을 지나치게 빠르고 쉽게 하는(쉽게 보이는 것) 문제를 야기시켰는데, 이 모든 문제는 앞서 언급한 바로 그 엘리트주의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행복이 성적순이 아닌 것처럼, 지식의 지식 됨 혹은 가치가, 그 유통 경로를 한우 등급 매기는 것처럼 이뤄져서는 안 될 일이다. 필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오픈 액세스 과학 학술지 출판사인 ‘다학제 디지털출판연구소’(Multidisciplinary Digital Publishing Institute, 이하 MDPI) 논쟁이 이러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MDPI 계열 저널들은 전통 인문학 저널에 없었던 출판비를 요구하고,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빠른 속도로 피어-리뷰와 출판을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 문제는, 이 모든 “불편함”과 “이상함”은 앞서 언급한 지식 생산·공유 패러다임을 지배해온 계급적·엘리트주의적 시각이 오랫동안 주입한 심리적 강박관념이 야기시킨 히스테리로 느껴진다. 게재료인 APC (Article Processing Charge) 부과는, 대학 도서관 혹은 독자에게 지속-불가능하고 불합리한 구독료 문제를 해결한 것이라 이미 출판업계에선 표준이 되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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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액세스 과학학술지 출판사인 '다학제 디지털출판연구소'(MDPI)의 홈페이지 화

면이다. 왼쪽 사진은 MDPI-Religions 홈페이지 화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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렸다 오죽했으면 하버드대학이 “오픈 액세스 저널에 논문을 내고” 우리가 전통적으로 부여했던 “기존 저널의 권위와 힘을 오픈 액세스 저널로 옮기자”라고 호소했을까.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MDPI 출판사에 자체 혹은 통째에 대한 비판은 이처럼 OA에 대한 부족한 이해이거나 아니면 앞서 언급한 세력 다툼현상으로 보인다. 필자는 수년간 MDPI 출판사의 유일한 A&HCI등 재 저널인 『Religions』의 편집위원으로 봉사하고 있고, 내부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중 하나라고할 수 있다. 그래서 출판사의 장·단점뿐 아니라 외부의 시선과 우려 또한 잘 인지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MDPI 저널들이 보이는 특징적 장점인 신속한 피어-리뷰나 출판 과정은 학자·연구자들이 지극히 바랐던 것인데 오히려 의혹의 대상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당연히, MDPI 계열 저널들이 엄 격하지 못한 피어-리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은 내부 사정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특정 저널의 피어 리뷰에 대한 평가는 개인이 판단하거나 개별 사례로 고려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서 비판 자체가 위험하다. 즉, 수백 개의 각기 다른 분야의 저널들이 피어-리뷰 과정을 MDPI 라는출판사 이름으로 뭉뚱그려 평가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비윤리적이고, 심지어 불가능 하다는 뜻이다.

400개 저널 출판사를 ‘MDPI’로 통째 깎아내리는 현상

그래서 우리는 저명 학술 데이터베이스의 등재 리스트를 신뢰하는 것 아닌가? 예를 들어, Web of Science Core Collection의 등재지 선정 및 평가 기준은 엄격하고, 일관적이고, 광범위하고, 깊고, 체계적이고, 전문적이고 그리고 공정하다. 물론 적어도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특별히 필자가 속한 『Religions』 저널을 보면, 피어-리뷰가 항상 double-blind로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때로는 분야별 저명 전통 저널보다 뛰어날 때가 있다. 어떤 때는 그 수위가 과해서 연구자들 간에 문제가 발생할 정도다. MDPI 『Religions』 저널은 종교학 분야에서 가장 광범위한 전문가 집단을 편집위원으로 모시고 있다. 종교사회학, 종교이론, 종교철학·신학, 불교 등 여러 분야에서 최고의 국제학자들이 논문을 기고하고 있다. 『Religions』는 SJR에서 종교학 분야 Q1저널이고 500여 개가 넘는 저명 저널 중 43위에 랭크하고 있다. 종교학 관련해서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 수 있을 학자들, 그리고 필자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학자들, 대학 스승님, 훌륭한 동료 학자들이 멋진 연구물을 『Religions』지를 통해 공유해 왔다. 필자는 편집위원으로서 이를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400여 개 다양한 분야의 저

널을 보유한 출판사를 ‘MDPI’ 단일 이름으로 통째 깎아내리는 현상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필자가 봉사하고 있는 저널이 물론 완벽하지 않고 흠이 있다. 그런데 국내의 ‘MDPI 통째 논쟁’은 전문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고 그래서인지, 아주고약하다. OA가 수반하는 효율성·투명성·접근성을 약탈의 근거로 단순 치환하는 것이 문제이다. 출판되어야 할 양질의 연구가 적절한 시기에 불필요한 어려움 없이 출판되는 것이 정상이고 단지 이를 불편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연구평가 문화나 체제(과하고 비현실적인 정량 평가, 연구 내용 자체보다 특정 등재 저널 선호)가 문제인 것이다.

오픈 액세스의 대표 격인 MDPI를 막연히 문제적 출판사 혹은 부실-약탈적 저널을 보유한 출판사라고 비판하는 연구자들에게 묻고 싶다. 2023년까지 총 26명의 노벨상 수상 학자들이 75편 이상의 연구물을 여러 MDPI 저널에 게재했다. 특별히 2023년에 분자생물학자 Katalin Karik, Drew Weissman, 그리고 물리학 Anne L'Huillier 교수가 대표적이다. 무엇이 약탈이고 누가 약탈적이고 그리고 그것을 평가할 수 있는 이가 대체 누구인가. 종교학 연구자로, 불합리하게 MDPI를 깎아내리는 이들로 인해 MDPI 『Religions』 저널과 이곳에서 옥고를 출간했던 연구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한다. 또 이 저널에 투고를 고려하는 연구자들이 잘못된 비판에 망설이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편집위원으로서, 같은 연구자로서 작은 의견을 적어본다.

MDPI 『Religions』 편집위원으로 활동해온 한편, 『Journal of Religion』(시카고대 출판부), 『Journal of Church & State』(옥스퍼드대 출판부) 등 전통적으로 종교학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되는 학술지에도 논문을 게재해 왔다. 이런 점에서 최중근 의한 명오이픈다 . 액세스와 관련된 논쟁에 대해 공정한 견해를 제시할 수 있는 인문학자 중 한 명이다.

“위기 요인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국가 흥망 결정”

김성수 한양대 교수의 『위기의 국가』

“위기 타개의 대안으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자유주의가 균형적인 조합을 이룬 정치경제를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한 공동체의 역사적인 조건일 것이며, 외부적으로는 현실적 균형을 유지하는 전략적 소다자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김성수 한양대 교수(정치외교학과․오른쪽 사진)가 신간 『위기의 국가』를 출간했다. 이 책은 국가가 왜 위기에 봉착해 있으며, 현재 어떤 상황인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다룬다. 여러 국가의 사

례를 통해 흥망성쇠를 넘어 생존 위협까지 받는 국가들이 경험하는 위기의 이유와 종류, 그리고 위기 극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규명한다.

저자는 위기의 원인을 정치적, 경제적, 문화와 종교적, 외부적 요인의 4가지 차원에서 분석하고 있다. 정치적 차원에서는 현대사회가 다양한 집단이 공존하는 다원화된 사회라는 특성을 무시하고, 합의보다는 차별을 통한 부족화 현상이 강화되면서 갈등이 나타난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소유권을 보장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자유로운 경쟁 속에 교환·분배가 가능한 시장질서가 무너질 때 위기가 발생한다. 문화와 종교는 국가 구성원을 결속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상징 체계이기 때문에 타문화와 종교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때 충돌이 발

생한다. 외부적으로는 국제 협력체제로부터의 배제가 정치·경제·안보 영역까지 위협을 주는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사실적 가치의 적절한 분배’라는 관점에서 위기를 분석하며, 위기 요인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따라 국가 흥망이 결정된다고 말한다.

김성수 교수는 “『위기의 국가』를 통해 국가란 무엇이고,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어떤 나라가 발전하고 실패하는지 등 국가 체제가 생겨난 이후로 계속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최승우 기자 editor@kyosu.net

“신해양 강국으로 가는 키 역할할 것”

류동근 국립한국해양대 9대 총장 취임

류동근 국립한국해양대 제9대 총장(사진)이 지난 6일 취임했다. 임기는 2024년 2월 13일부터 2028년 2월 12일까지 4년이다.

류동근 총장은 국립한국해양대가 신해양강국으로 가는 ‘KEY’가 되겠다며 “한국해양대 교수로서 교육과 연구에 쏟은 에너지를 이제 대학 운영에 쏟겠다. 행정의 최일선에서 우리 대학의 발전을 위해 여러분과 함께 나아가겠노라 약속드린다”고 천명했다. 그는 “지역 국립대학은 지역 인재 양성에 더해 지역 사회에 안정을 주고 지역 산업 발전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도 가지고 있다”면서 “국립한국해양대가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인 대형화, 첨단화되는 선박에 필

요한 해기인력 양성, 탄소중립·친환경 선박 등장에 따른 대비 등 현안 해결에도 크게 기여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취임식에서 류 총장은 국립한국해양대의 핵심 가치를 ‘소통과 존중의 대학’, ‘교육연구 혁신 대학’, ‘글로벌 미래선도 대학’, ‘튼튼한 재정 대학’으로 설정하고 각 가치를 세분화해 20대 핵심과제로 대학을 운영할 계획이다.

류 총장은 소통과 존중의 대학가치 실현을 위해 대학 내 협력과 혁신을 촉진하고 구성원이 서로를 존중하는 조직문화를 이끌어 낼 계획이다. 소통 채널을 다양화해 효율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원스탑행정 체계도 구축한다.

대학 본연의 역할인 교육과 연구 활성화

를 위해 연구비 지원을 강화하고 연구 환경을 개선한다. 또 국내외 산학협력 스타기업을 육성해 공동연구를 이끌어내고 해양인문학도 활성화시킬 생각이다.

국립한국해양대는 국립부경대와 함께 연합대학을 만들어 글로컬대학30 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세계적인 해양 명

문 대학을 만들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지구촌을 한국해양대의 캠퍼스로 만들어 세계 해양 중심대학으로 선도하겠다는 목적을 두고 ASEAN 10개국 해양 글로벌 연합대학을 추진한다.

류 총장은 한국해양대 해운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카디프대에서 해운경영·국제교통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해양대 해운경영학부 교수로 부임해 국제교류원장, 아시아해양수산대학포럼 사무총장, 세계해양발전연구소 소장, 대통령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항해항만학회 부회장, 해양수산부 정책연구심의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최승우 기자 editor@kyosu.net

“우리 사회에 양성평등의 해법을 제시하고자 노력할 것”

국·공립대 여교수연합회장에

정수연 제주대 교수

정수연 제주대 여교수협의회 회장(경제학과·사진)이 전국 국·공립대학교 여교수연합회 8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임기는 2024년 3월 1일부터 1년이다.

전국 국·공립대학교 여교수연합회는 지난달 21일 열린 정기총회에서 차기 연합회장으로 정수연 교수를 선출했다.

정수연 신임 회장은 “1999년 처음 결성돼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제주대 여교수회가 국·공립대 여교수연합회의 회장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어 뜻깊게 생각한다”며 “제주대 여교수협의회장은 ‘대학평의회당연직 부의장’을 겸직

하며, 제주대 여교수협의회는 대학뿐만 아니라 지역 내 양성평등 정책의 구심점 역

할을 해왔다. 이러한 여교수회 위상을 21개국·공립대 회원교가 공유하고 전국 네트워크를 강화해 저출산·인구절벽에 직면한 우리 사회에 양성평등의 해법을 제시하고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국 국·공립대학교 여교수연합회에는 제주대를 비롯해, 경북대·경상대·공주대·군산대·목포대·부산대·서울과기대·서울대·서울시립대·순천대·안동대·전남대·전북대·충남대·충북대·한경대·한국해양대·

한밭대·한국체육대 등 21개교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 회장은 중앙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제주대 경제학과로 부임한 이후 한국감정평가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국제적으로는 25개국이 회원국인 아시아부동산학회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으며 2023년부터는 AsRES의 여성부동산학자 선정위원회 위원장도 겸직하고 있다. 현재 국토정보공사 비상임이사로 재직 중이다.

세종대, 모든 학과에 AI융합 마이크로디그리 과정 신설

세종대(총장 배덕효)는 올해부터 모든 전공에서 AI융합 마이크로디그리를 운영한다.

AI융합 마이크로디그리는 전공 특성에 맞춰 9~15학점 사이의 교과목으로 구성된다. 학생들은 전공의 벽을 허물고 자신의 관심과 필요에 따라 해당 교과목을 이수하면 자신의 전공과 결합된 AI융합 마이크로디그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마이크로디그리를 수여받을 수 있다.

과정은 AI 심화, AI 연계, AI 융합 등 세 유형으로 구성돼 있다. 각 학과는 2개 이상의 마이크로디그리 과정을 개설해 운영할 수 있다.

세종대는 AI융합 마이크로디그리 교육과정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1월 교육혁신처 산하에 SW·AI혁신센터를 설립했다. 센터는 전공별 마이크로디그리에 포함될 수 있는

AI 공통교과목을 개발하고 AI 융합교육과정 컨설팅과 심의, AI융합 마이크로디그리의 교육성과 분석 및 환류를 담당한다.

송오영 세종대 SW·AI혁신센터장은 “AI융합 마이크로디그리 제도를 통한 AI와 다양한 전문 분야의 융합은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며 “특히 세종대의 K-컬처 분야의 브랜드 학과들과 AI 분야의 결합은 새로운 SW·AI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김희연 세종대 대학혁신지원사업 추친단장은 “모든 전공에서의 AI융합 마이크로디그리 개설은 전공 교육과정의 혁신을 견인할 뿐만 아니라 대학교육과 산업수요 간 미스매치를 해소하고 학생들의 취업율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순천향대, 시공간 뛰어넘는 ‘하이플렉스’ 입학식 열어

신입생에게 현실·가상·가상-현실 중

입학식 참여 선택권 부여

순천향대(총장 김승우)는 가상 세계와 현실세계, 가상-현실 융합 세계에서 대면·비대면 방식으로 ‘2024 하이플렉스 입학식’을 열어 화제다.

순천향대는 지난 2021년 세계 최초로 메타버스 입학식을 개최해 전 세계 대학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특히, 이듬해 순천향 메타버시티, 스칼라 등을 선보인 입학식 콘텐츠가 유튜브 천만 조회 수를 돌파해 전 세계 MZ세대로부터 큰 관심을 모아 ‘입학식 맛집’으로 불리고 있다.

이제는 ‘하이플렉스(Hyflex)’다. ‘하이플렉스’는 학생들이 대면·비대면, 실시간·비실시간의 수업 참여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외부환경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학습자의 여건과 요구에 따라 최적화된 학습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학습자 주도의 새로운 교육혁신 모델이다.

올해는 작년에 이어 신입생에게 입학식 참여 방식의 선택권을 부여해 Z세대와 양방향 소통이 가능케 했다. 신입생들은 현실 세계(체육관, 대면 입학식), 가상 세계(순천향 하이플렉스시티, 비대면 입학식), 가상-현실 융합 세계(인문과학관 대강당, 대면·비대면 융합 입학식) 세 곳에서 입학식에 동시에 참여했다.

체육관에서 진행된 대면 입학식에는 2천여 명의 학생이, 인문과학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대면·비대면 융합 입학식에는 300여 명의 학생이, 지난해 LG 유플러스 메타버스 플랫폼 ‘유버스

‘하이플렉스 시티’ 입학식에 비대면으로 참가한 신입생 모습이다.

(UVERSE)와 함께 새롭게 구축한 ‘하이플렉스 시티’에서 진행된 비대면 입학식에는 300여 명의 학생이 참석했다.

하이플렉스 시티는 교수․학습의 공간적,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며 학습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미디어 기반 몰입형 체험교육이 가능한 최첨단 하이플렉스 교육 플랫폼이다. 하이플렉스 시티 내 입학식은 입시·교육 콘텐츠를 다루는 유명 인플루언서 ‘미미미누’가 사회를 맡았으며, 대학은 비대면 입학식에 참가한 신입생을 위해 메타버스 캠퍼스 내 체육관에서 크로마키 방식으로 실시간 입학식을 진행해 Z세대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김승우 순천향대 총장은 “이번 입학식은 ‘가상’과 ‘현실’을 융합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교육 혁신 ‘하이플렉스’에 중점을 두었다”라며 “우리 대학은 이번 입학식을 기점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하이플렉스 교육혁신을 통해 뉴노멀 교육을 리드하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혁신 대학으로 발돋움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재성 서울여대 교수, 한국교양기초교육원장 취임

이재성 서울여대 교수(국어국문학과·사진)가 한국교양기초교육원 제4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이재성 원장은 ”교양교육의 본령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조건을 가진 대학들에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

며 ”지난 10여 년 동안 힘겹게 쌓아온 대학 교양교육이 흔들림 없이 뿌리 내리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서번트 리더십으로 나가겠다”고 전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부설기관인 한국교양기초교육원은 지난 2011년 설립돼 교양교육 연구개발, 교육 컨설팅 및 교원 역량강화 지원사업 등을 통해 대학 기초 교양교육 과정의 내실을 다지고 교육지원시스템 강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이재성 원장은 서울여대 기초교육원장·교육혁신단장 등을 역임하고, 2015년부터 한국교양기초교육원 교양교육컨설턴트 및 기획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교양기초교육원 기관지인 <두루내>의 부편집위원장을 지냈다.

충북대 32대 교수회장에 박종진 교수 취임

충북대 제32대 교수회장에 박종진 교수(체육교육과·사진)가 지난 3월 1일자로 취임했다.

박종진 신임 교수회장은 취임 소감에서 “우리 대학이 직면하고 있는 한국교통대와의 통합, 무전공 선발 등의 해결해야 할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대학본부와 협력적이면서도 비판적인 논의를 강화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교수님들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민주적인 절차와 운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지난 26년 동안 충북대에 봉직하면서 사범대학장과 학생처장 등을 역임했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교수,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신임회장 선출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교수(상담심리학과·사진)가 지난달 23일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신임 회장으로 선출됐다. 이번 회장 선출은 회원들의 전원 찬성과 추대를 받아 임명됐다. 임기는 2024년 2월 24일부터 2026년 2월 23일까지다.

심 교수는 한국영화비평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피프레시상심사위원들을 국내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파견하고, 올해 국제영화비평가연맹 창립 30주년 기념을 위한 출간 등에 대한 업무를 맡는다. 심 신임 회장은 “앞으로 한국 영화를 세계 영화제에 알릴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하겠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심 교수는 서강대 이공대학 생물학과를 전공하고, 고려대에서 심리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1대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부산국제영화제(2003)에서 피프레시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남진 서울시립대 교수, 한국도시부동산학회장 취임

남진 서울시립대 교수(도시공학과/스마트시티학과·사진)가 지난달 29일 (사)한국도시부동산학회 2024년도 정기총회에서 제10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남 신임 회장은 “현재의 도시 문제와 미래 도시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도시, 교통, 부동산, 건축 관련 분야의 융복합적 교육과 연구, 그리고 통섭적 사고와 협력에 기반한 새로운 시대의 도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 회장은 “한국도시부동산학회를 명실상부한 융복합 학회로 발전시키기 위해 학제 간 교류와 전문성을 높이고, 시대적·사회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중앙 정부, 지자체, 연구원, 공기업, 협회, 다양한 산업체 등과 함께 도시의 현안 이슈에 대한 융복합적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남 회장은 도시계획 및 도시개발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서 20여 년간 교수로 활동하며 국토교통부 국가스마트도시위원, 공공주택통합심의위원, 스마트시티 혁신인재 육성사업 사업책임자 등 다양한 직책을 역임했다.

한국동아시아과학철학회 제2대 회장에 나민구 교수

나민구 한국외대 교수(중국학대학·사진)가 한국동아시아과학철학회 제2대 회장에 지난달 23일 선출됐다. 임기는 이달 1일부터 4년이다.

나민구 신임 회장은 “동양이 본 진리를 서양 과학이론으로 증명하는 원대한 꿈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나 신임 회장은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언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세계중국어수사학회장, 한국중어중문학회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수사학회장, 세티코리아(한국외계지적생명체탐사)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한국동아시아과학철학회는 2016년 창립돼 인문학과 과학의 융합 학회로 범우주적 차원에서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아우르며 탈경계적으로 인문학 영역을 탐구하고 있다. 정회원은 80여 명이며 학술토론회는 43차례 개최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예술’…현대미술을 말하다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31

이찬웅 이화여대 교수(인문과학원)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정치와 경제·사회와 문화·과학기술·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달 3일 이찬웅 이화여대 교수(인문과학원)가 「21세기 예술의 사조와 경향」을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32강은 김회권 숭실대 교수(기독교학과)의 「21세기 종교와 종교 갈등」이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애초 제안받았던 강연의 주제는 ‘21세기 예술의 사조와 경향’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이 강연의 주제를 삼기에는 몇 가지 측면에서 어렵다고 생각됐다. 우선 첫 번째 문제는, 예술의 수없이 많은 장르를 다루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미술과 음악, 무용과 영화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것은 매우 어렵고, 또한 다룬다 해도 너무추상적인 얘기가 돼서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발표의 범위를 현대 미술 중에서 주목할 만한 몇몇 작품을 철학적인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두 번째 문제는 거리의 부재와 양식의 다양화에 있다. 세 번째 문제는 이 강연 제목의 ‘21세기’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산술적인 표기를 넘어 새로운 시대의 분기점으로 기능할 수 있는가? 이를테면, 역사학자들이 흔히 말하듯이, 2001년에 있었던 9·11 테러 사건을 기점으로 삼든지, 또는 미디어의 영향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에는 아이폰이 등장한 2007년을 기점으로 삼는 일 등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미술의 경우, 사정은 어떠하며, 어디를 기점으로 삼을 수 있는가? 다르게 표현하자면, 1990년대와 2000년대는 단절적으로 구분될 수 있는가?

고유한 방식으로 세계를 탐구한 예술가들

파울 클레는 현대 예술의 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100여 년 전의 이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여러 현대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은 ‘보이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은 왜 보이지 않는 것인지, 그것은 어떻게 해서 보일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해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상이한 길을 따라 탐구했다.

첫 번째로, 크리스찬 마클레이의 작업을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2010년에 발표한 그의 작품 「시계(The Clock)」는 그 다음 해에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기존에 상영된 영화들에서 많은 장면들을 발췌해서 편집한 것이

다. 상영이 진행되는 동안 실제 시간에 맞춰 영화 안에서도 1분 단위로 시간을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각 영화 장면 안에서 서스펜스를 불러일으키는 내용과 맞물려 시간이 이처럼 정확하게 진행되는 것은 관람객에게 묘한 긴장감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은 여러 측면에서 양가적이다. 이 작품을 첫머리에 소개하는 것은, 이 양가성이 단지 한 작품을 넘어서 현대 미술 전체의 양가성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 다. 「시계」라는 작품을 현대 미술의 특징들을 보여주는 하나의 범례로서 살펴보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시간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만큼, 현대 미술에 함축된 시간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미술이 사회의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만큼, 이는 오늘날 우리가 시간에 대해 어떤 관념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기도 하다.

미디어아트의 운동 이미지에 적용한 미학

자크 랑시에르는 『모던 타임스』라는 저서에서 자신의 미학 이론을 영화와 미디어아트 등의 운동 이미지에 적용해 다시 한번 활성화한다. 『모던 타임스』라는 책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시간성이라는 주제와 그것의 여러 양상들에 대해 사유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크리스찬 마클레이의 「시계」라는 작품은 자크 랑시에르의 미학적 체제 안에서도 어떤 경계에 위치하고 그만큼 양면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히토 슈타이얼은 최근 10년간 미술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미술계’가 너무 넓은 말이라면, 편의상 비엔날레를 중심으로 형성된 ‘비판적’ 미술과 아트페어를 중심으로 형성된 ‘상업적’ 미술을 구분해 볼 수 있겠고, 그중 그녀는 비판적 미술계 내에서 상업 예술과 사회에 대한 저항 의식을 계속해서 고취하고, 대치의 전선을 사회 변화에 뒤쳐지지 않도록 밀고 나가는 데 큰 공

“오늘날 생태 위기와 기술 가속 안에서 인간의 초상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고, 이에 대한

예술의 반응으로서 이 작가들의 작업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대답의 방향은 상이한

곳들을 향하고 있다. 한편으로, 사회적이고 경제적으로 규정된 인간상에 대해 스스로 의심

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주류 계급과 역사의 방향을 운운하는 이데올로기에 맞서기를

요구하고, 발전의 바깥으로 밀려난 것과 잠재적 이미지들이 유령처럼 배회하는 것을

두 눈 중 적어도 한 눈으로 보기를 기대한다.”

헌을 해왔다. 그녀의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은 자본주의 체제와 현대 미술계의 양쪽을 능숙하게 오간다. 심미적 미술이 세속적인 사회와 우아하게 구분되기는커녕, 어떻게 미술계가 금융군사-데이터-자본주의의 원리가 무차별적으로 관철되는 대표적인 영역인지 입증한다(자본주의 앞에 이렇게 여러 개의 명사를 하이픈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기도 하다).

히토 슈타이얼은 마르크스와 벤야민의 깊은 영향 하에서 21세기에 사회와 미술이 어떻게 분리 불가능하게 서로 깊게 얽혀 있는지 분석한다. 그녀는 ‘빈곤한(poor) 이미지‘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이미지론을 전개한다.

히토 슈타이얼의 작업에서 20세기 독일에서 아마도 가장 명민했다고 말해도 좋을 사상가, 벤야민의 긴 그림자를 발견한다. 사실 히토 슈타이얼은 벤야민이 현대 예술 일반에 끊임없이 큰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

이찬웅 이화여대 교수(인문과학원)는 “우리는 우리 자신이 역사적이고 실용적 한계 안에 묶여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 밖으로 벗어날 수 있

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긍정할 때 가장 고귀한 힘을 보여준다”라며 “또한 데이비드 호크니가 보여주는 것처럼, 기술적인 것을 통해, 기

술적인 것과 대비하면서 우리는 인간적인 것을 보다 더 깊이 이해하고 확장하고 실천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안에 우리 스스로 아직 잘 알

지 못하는, 더 깊은 곳에 감춰져 있는 어떤 힘과 성질을 찾아내는 것일지도 모른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적인 사례일 뿐이다. 벤야민은 마르크스주의 진영 안에서 속해 있었으면서도 그가 맞서 싸웠던 것은 사회주의가 발전과 진보라는 이념 하에 종속돼 있다는 관념의 대세였다.

다음 미술 작가로 프랑스 출신으로 뉴욕에 거주하면서 활동하고 있는 피에르 위그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의 작업은 영상과 설치에 넓게 걸쳐있다. 일반적으로 그는 생명과 기술·현실과 허구·전시와 창조를 공존하게 하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작품 「무제(인간 가면)」(2014)는 술집에서 일본 전통 가면을 쓴 누군가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선술집은 어떤 사람도 없어 황량하고 공포스러운 느낌마저 나는데, 한 작은 소녀가 가면을 쓰고 서빙을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종업원은 선술집에서 필요한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행동을 계속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관람객은 뭔가 이질적이고 이상하다고 느낀다. 이 작은 생명체는 사람이 아니라 원숭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제목처럼 인간가면을 쓴 원숭이인 것이다. 이 작품은 크게 두가지 사실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우선, 인간 없는 풍경은 2011년 일어났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 작품은 사람들이 모두 떠난 마을에서 원숭이만이 남아 훈련된 행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은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피에르 위그의 다른 대표작 「After Alife Ahead」(2017)를 살펴보자. 두운을 맞춘 이 작품 제목을 번역을 하자면 “미리 인공생명 이후에”쯤이 된다. 여기에서 ‘Alife’는 오타가 아니고 한 단어로 인공생명, ‘Artificial Life’의 약자이다. 이 작품은 201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 설치된 작품이다.

작가는 도시를 둘러보던 중 폐허로 버려진 아이스링크에 이끌려서 이 작품을 하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작품은 이질적이고 다양한 요소들을 거대한 규모로 한데 모으고 연결하고 있다. 유기체와 기계·생물과 무생물·물리적 자연과 증강현실을 배치하고 있다. ‘배치’라는 말을 했는데, 이 작품은 들뢰즈와 과타리가 『천 개의 고원』에서 말한 의미에서 진정한 ‘배치(agencement)’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미디어와 설치작가에 대해 얘기했는데, 마지막으로 회화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사실 많은 비평가들은 21세기에 회화가 복귀했다고 평가하곤 한다. 지난 세기말에는 미디어 아트가 새로운 매체의 대세를 형성하면서 회화를 낡은 양식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러한 전망에서 벗어나서 회화가 다시 대중과 평단 전체에 걸쳐 사랑받고 주목받는 흐름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세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디지털 미디어의 사용이 더 이상 미래를 암시하거나 특별한 일이 아닌 시대가 됐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아이러니하게도 회화가 소셜 미디어에 잘 어울리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어두운 영화관에서는 인스타그램을 할 수 없지만, 밝은 미술관이 회화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업로드하기에는 적합하다. 마지막 이유는 경제적인 것인데, 금융 위기를 막기위해 풀린 엄청나게 많은 돈의 상당 부분이 미술계로 흘러 들었고, 유화가 보관과 거래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미술 작품의 주식화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회화론은 그림이 단지 인간의 지각과 기억을 보존하는 유효한 방법이라는 사실에 멈추지 않는다. 그의 예술론은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차원에 걸쳐 있다. 감각적 인상과 지성적 관념이 세계로부터 주어지는 독립적인 항이라면, 이 항들을 연결하는 연상과 상상력의 규칙은 전혀 본성이 다른 곳, 즉 인간의 정신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인식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실천이다. 데이비드 호크니가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 점에서 그는 흄의 경험주의적 세계관을 계승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의 대담을 깊이 이해해 보자면, 미술의 존재 자

체가 경험주의적 세계관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회화는 단순히 세계의 재현이 아니다. 세계는 3차원으로 존재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2차원으로 보고, 따라서 세계를 보는 법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다름 아니라 바로 그림이 3차원의 세계를 분할해 만들어지는 2차원 이미지의 조각들을 연결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그림 덕분에 세계가 어떻게 조직되는지 알게 된다.

지금까지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라는 정의, 그리고 ‘현재주의’라는 협소한 시공간의 관념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라는 문제에 비춰, 동시대의 주요한 작가들의 작업을 살펴봤다. 이 작가들이 21세기 예술을 다 대변한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위 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벤야민이 예술이 역사에서 벗어나는 잔해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듯이, 히토 슈타이얼은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에 ‘억압받은 자들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억압받는 이미지’를 미술관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들뢰즈가 예술의 심장이 결정-이미지라고 말한 것처럼, 피에르 위그는 중심과 주변·생명과 기계·현실과 허구가 서로 자리를 맞바꾸면서 새로운 시대를 예비케 하는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인간의 시선이 사진의 광학적 법칙과 합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회화의 가치를 다시 한번 찬양할 수 있었고, 감상자의 움직임이 풍경에 포함된 그림을 통해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오늘날 생태 위기와 기술 가속 안에서 인간의 초상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고, 이에 대한 예술의 반응으로서 이 작가들의 작업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대답의 방향은 상이한 곳들을 향하고 있다. 한편으로, 사회적이고 경제적으로 규정된 인간상에 대해 스스로 의심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주류 계급과 역사의 방향을 운운하는 이데올로기에 맞서기를 요구하고, 발전의 바깥으로 밀려난 것과 잠재적 이미지들이 유령처럼 배회하는 것을 두 눈 중 적어도 한 눈으로 보기를 기대한다. 관람객은 초점이 맞지 않아 현기증을 느끼겠지만, 현대 미술은 이것을 견디기를 요청한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이 기계로 환원될 수 없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 현대 미술은 더욱더 인간적인 것에 천착하기를 요구한다. 이것은 인간중심주의와는 무관하다. 현대 예술은 인간의 고유한 존재 방식·인간의 고유한 시선으로부터 나오는 기쁨을 향유하도록 초대한다.

인간적인 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요컨대 한편에는 탈인간적이고 분열증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이 있기를 요구하고, 다른 한편에는 인간적이고 더 고유하고 예찬하는 시선을 갖기를 요구한다. 그렇지만 이 양자는 그렇게 생각만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히토 슈타이얼과 피에르 위그가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적인 것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단지 잠정적이고 침전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역사적이고 실용적 한계 안에 묶여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 밖으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긍정할 때 가장 고귀한 힘을 보여준다. 또한 데이비드 호크니가 보여주는 것처럼, 기술적인 것을 통해, 기술적인 것과 대비하면서 우리는 인간적인 것을 보다 더 깊이 이해하고 확장하고 실천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안에 우리 스스로 아직 잘 알지 못하는, 더 깊은 곳에 감춰져 있는 어떤 힘과 성질을 찾아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뇨병 만성 상처 추적하는 스마트 헬스케어 기기 개발

권경하 카이스트 교수 연구팀

카이스트 연구팀이 당뇨병 등 상처 부위의 시공간 온도 변화와 열전달 특성 추적을 통해 상처 치유 과정을 효과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무선 시스템을 개발했다.

카이스트는 전기및전자공학부 권경하 교수 연구팀이 류한준 중앙대 교수(첨단소재공학과)와 상처 치유 과정을 실시간으로 추적해 적절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게 해주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개발했다고 5일 밝혔다.

피부는 유해 물질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는 장벽 기능을 한다. 피부 손상은 집중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감염과 관련된 심각한 건강 위험

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당뇨병 환자의 경우, 정상적인 혈액 순환과 상처 치유 과정에 문제가 생겨 만성 상처가 쉽게 발생한다. 이러한 만성 상처의 재생을 위해 미국에서만 매년 수백억 달러의 의료 비용이 지출되고 있다. 상처 치유를 촉진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환자별 상처 상태에 따라 맞춤 관리가 필요하다.

이에 연구팀은 상처 부위와 주변 건강한 피부 사이의 온도 차이를 활용해 상처 내 발열 반응을 추적했다. 열 전송 특성을 측정해 피부 표면 근처의 수분 변화를 관찰함으로써 흉터 조직의 형성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기반으로 활용했다. 연구팀은 당뇨병이 있는 쥐를 통해 병적 상태에서 상처 치유가 지연되는 과정에서 실험을 진행했고,

왼쪽부터 권경하 카이스트 교수(전기및전자공학부)와 류한준 중앙

대 교수(첨단소재공학과)다. 사진=카이스트

수집된 데이터가 상처 치유 과정과 흉터 조직 형성을 정확히 추적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해당 시스템은 상처가 치유된 후에 기기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체내에서 자연 분해가 가능한 생분해성 센서 모듈과 통합됐다. 이 생분해성 모듈은 사용 후 별도로 제거할 필요 없이 몸속에서 저절로 분해되어 사라지므로, 추가적인 불편함이나 조직 손상의 위험을 최소화한다. 생분해성 재료를 사용한 이 장치는 사용 후 제거할 필요가 없으므로 상처 부위 내부에서도 모니터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권경하 교수는 “상처 부위의 온도와 열전달 특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함으로써, 의료 전문가들이 당뇨병 환자의 상처 상태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절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

으로 기대된다”라면서“생분해성 센서를 사용해 상처 치유가 완료된 후 장치를 제거할 필요 없이 안전하게 분해될 수 있어, 병원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향후 이 기기를 항균 특성을 가진 재료와 통합해, 염증 반응, 박테리아 감염과 기타 병변을 관측 및 예방하는 기술로 확장할 계획이다.

온도와 열전달 특성 변화를 통해 감염 수준을 감지함으로써 병원이나 가정에서 실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항균, 범용 상처 모니터링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글로컬 연합 전문대학, 쿼바디스 도미네?

딸깍발이

김경화 편집기획위원

동의과학대 경찰경호행정과 교수

교육부는 올해도 ‘글로컬대학’으로 10개 대학을 선정할 계획이다. 글로컬 사업은 교육부가 2026년까지 비수도권의 지방대 30곳을 지정해 1개교당 5년간 1천억여 원을 지원하는 파격적 정책이다.

올해는 사업선정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다. 곧바로 통합하기 어려운 2개 이상의 대학이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하나의 의사결정 구조를 만드는 ‘연합대학’도 신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 전문대학이나 지방의 중소규모 사립대학을 배려하는 개선도 어느 정도 이뤄졌다. 구체적으로 글로컬대학 평가위원을 교육부나 글로컬추진위가 일방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설립종별에 따라 구성한다는 점, 외부 패널단 구성 허용, 연합대학과 같이 낮은 수준의 대학통합도 실질적인 대학통합과 동등하게 평가, 설립유형이나 규모 등 대학의 특성에 따른 별도 혁신 계획안 신설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이 때문에 이번 사업공모에 전문대학의 지원도 많아질 것으로 판단된다. 국가는 ‘글로컬대학30’의 기대효과로 지역인재 양성, 취업과 창업을 통한 지역정주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궁극적으로 지역소멸 방지, 지역경쟁력 제고, 나아가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겠다고 한다. 따라서 연구 중심의 글로벌

대학만을 선정하는 것은 그 취지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필자는 ‘글로벌’과 ‘로컬’ 중 로컬의 비중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문대학들도 ‘연합대학’으로 이 사업의 목적과 기대효과에 부응하는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을 혁신기획서에 잘 담으면 ‘글로컬대학30’에 충분히 선정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더불어 대통령과 교육부를 포함한 정부·국회 등 정치권과 지역사회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고등직업교육’의 최일선에서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기술인재를 양성해 국가와 산업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전문대학을 살리고 미래 직업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글로컬대학30’ 선정시에 고등직업교육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는 ‘한국형 연합 전문

대학 모델’이 나올 수 있도록 기존의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과감한 ‘평가상의 관점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새롭게 선정되는 ‘글로컬대학’ 나머지 20개 대학 중에 전문대학이 주체가 된 새로운 모델이 2~3개는 반드시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국가는 지역산업과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제조업, 서비스업 등의 현장산업인력, 전문기술인력이 원활하게 양성·배출될 수 있도록 ‘국가인력양성 시스템의 재구축’이라는 관점에서 전문대학을 평가·육성할 책무가 있다. 그것을 성실히 이행하는 것은 결국 국가발전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헤밍웨이가 즐겨찾던 서점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립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벽에는 다음 같은 문구가 오래전부터 새겨져 있다고 한다. “Be

not inhospitable to strangers lest they be angels in disguise(낯선 이에게 친절하라. 그들은 변장한 천사일지도 모르니).” 이 서점에서는 인종·성별·나이·국적에 상관없이 서점을 찾는 낯선 이들에게 간단한 규칙을 지키기만 하면 이곳에 머물 수 있도록 ‘무료숙박’을 제공한다. 이러한 환대로 인해 많은 작가들이 여기서 서로 교유하고 책을 읽고 영감을 얻고 문학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전문대학은 이와 같은 역할을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 하고자 한다. 전문대학이 ‘연합’하여 ‘한국형 연합전문대학 모델’을 구축해 지역사회의 상대적 소득수준 하위계층이나 소수집단, 외국인 유학생, 산업현장 유입 해외인력을 대상으로 고품질의 직업교육을 실시하게 될 것이다. 국가가 전문대

학의 우수한 교육인프라와 그간 축적된 교육역량으로 직업교육의 미래를 밝히고, 지역소멸·저출생의 엄혹한 터널을 빠져나가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게 힘을 실어주면 좋겠다. 필자가 전문대학이라고 특정해 이야기했지만 그 대상을 비수도권 대학, 사립대학으로 치환하더라도 그 함의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글로컬대학에 뜻이 있는 광역지자체나 대학을 운영하는 사학법인도 ‘염일방일(拈一放一)’ 즉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야 한다”는 금언을 가슴에 새기고 담대한 혁신의 각오를 가다듬어야 한다. 담대한 혁신은 ‘이미 존재하는 장벽’을 과감하게 허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에 손에 쥔 것들을 과감하게 내려놓고 혁신의 담대한 장정을 시작한다면 그 미래는 밝을 것이라 확신한다.

갤러리 초대석

「세상을 보는 아이」

이수아,캔버스에 유채, 2020

이수아 작가 전시회는 3월 17일까지 충남 공주시 고마나루길 아트센터 고마에서 열린다. 월요일, 공휴일은 휴관이다. 작가는 대상과 사물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작가이다. 그보다는 다분히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면이 강한 작가라는 게 더 적합할 듯하다. 그녀는 학창 시절부터 가발을 소재로 독특한 작품을 하면서 새로운 조형성을 모색했고, 이후 홍익대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아기나 어린이·동물·섬과 물(水)·풍선·어린 시절 추억·고향·얼굴·동심 등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조형성을 구축하는 데 관심을 가져왔다. 이를 통해 작가와 감상자와의 현존하는 관계 속에서 형상적 시뮬라크르(simulacre)를 새롭게 모색하고자 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출처=아트센터 고마

무책임한 무전공제 이전의 해결 과제

교수논평

홍성학

충북보건과학대 명예교수

교육부는 지난 1월 31일 ‘2024년 대학혁신지원사업 및 국립대육성사업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발표 내용의 핵심은 ‘2025학년도 모집단계 혁신성과’에 대해 가산점을 부여하는 것이다. 모집단계 혁신성과로 전공 없이 입학하는 학생 비율, 다시 말해 무(無)전공제 입학생이 25% 이상이 되도록 하는 목표치를 제시했다. 그리고 성과평과 결과에 따라 성과급(인센티브)을 부여하겠다고 했다.

교육부는 이번 사업의 취지로 급변하는 미래사회에 맞는 인재양성의 필요성을 들었다. 학문 간, 산업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 블러(Big Blur)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융합인재 양성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학생 전공이 입학 시 결정돼 졸업까지 이어지는 단선 구조 등 기존 교육체계로는 다양한 학문에 기반한 융합역량을 함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또한, 급속한 경제·산업 변화로 인한 인

재 미스매치에 대비하기 위해 대학 스스로 체질 개선을 통한 다양하고 폭넓은 인재양성이 요구된다고 했다.

이렇게 교육부는 사업과 그 취지를 제시했지만 많은 의문점과 비판적 관점을 갖게 된다. 무전공제는 과연 융합인재를 양성할 수 있을까? 융합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무전공제만이 해결 방법일까? 무전공제로 인해 인기학과 중심으로 전공 쏠림이 커지고 다양한 전공이 사라져 융합인재 양성에 오히려 해가 되지 않을까? 전공 쏠림현상에 따른 교육 여건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특히 교원 확보율은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학 현장에서는 교

원확보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단기·낮은 임금의 계약 전임교원(대학 현장에서 표현하는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을 더 늘리는 것 아닌가? 융합인재양성이 목적이고 무전공제 도입이 수단이라면 무전공제 도입 자체에 성과급을 부여하는 것은 부적합한 것 아닌가? 자율혁신을 내세우면서 가산점을 부여하고 성과급(인센티브)을 부여하는 것은 적합한가? 중학교 과정에는 다양한 진로 탐색을 위한 자유학년제가, 고등학교 과정에는 학생의 진로 관심에 따라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고교학점제가 있는데 대학교육에 무전공제를 도입하는 것이 적합한가? 융합인재 양성을 제대로 하려면 입시경쟁교육과 대학서열체제부터 바꾸어야 하는 것 아닌가? 현재 일반대학이 취업 인기학과를 늘리고 각 대학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에서 각 대학의 목적에 맞는 정체성을 회복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과연 교육부는 ‘2024년 대학혁신지원사업 및 국립대육성사업 기본계획’을 발표하기 전에 이러한 의문점과 비판적 관점에 대해 충분히 검토했는지 묻고 싶다. 교육부 보도자료나 언론에 나오는 내용에서는 교육부가 이러한 의문점과 비판적 관점에 대해 제대로 답을 한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교육부의 이번 무전공제 추진은 일방적이고 무책임한 추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무책임한 무전공제를 일방적으로 추진하기 이전에 적어도 다양한 의문점과 비판적 관점에 따른 다음의 고등교육 과제를 해결하는데 나서 야 한다. 먼저 대학서열체제 해소와 각 대학의 정체성 확보다. 그동안 수도권 대학에서부터 지방대학으로 그리고 일반대학과 전문대학 순으로 서열화가 공고하게 이뤄졌다. 이런 서열 체제하에서 각대학의 정체성(특히 일반대학의 학문적 정체성)이 훼손되고 특성과 다양성이 무너졌다. 이런 현실에

서 무전공제 추진은 서열화를 더욱 강화시키고 정체성을 더욱 훼손시키게 될 것이다.

둘째, 교원확보율을 높여 교원 1인당 학생수를 낮춰야 한다. 교원 1인당 학생수가 적어야 융합인재 양성 교육의 질을 확보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교원 1인당 학생수가 일반대학의 경우 15명, 전문대학의 경우 16명(2018년 기준)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각각 24명, 33명(2020년 기준) 이다. OECD 수준으로 개선하려면 일반대학은 학생충원율을 62.5%, 전문대학은 48.5%로 낮추든지 더 많은 전임교원을 확보해야 한다. OECD 평균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것으로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교원 1인당 학생수가 더 낮아진다. 미국의 경우 14명, 영국 11명, 독일 12명(2019년 기준)이다. 특히 우리

나라의 경우 전임교원 중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의 비율이 40% 이상 되고 있어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셋째, 대학의 자율성 확보다. 교육부가 추진하는 성과급제(인센티브제)로는 대학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없다. 교육부는 대학의 자율혁신을 내세우지만, 사실상 교육부가 제시한 사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진정한 대학의 자율성은 대학의 공공성 확보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고등교육에 대한 GDP 대비 정부 재정지원이 OECD 평균 1.0% 정도보다 낮은 0.6~0.7% 정도에 불과함은 잘 알려져 있다. 안정적인 정부 재정지원을 바탕으로 「고등교육법」에서 정한 각 대학(일반대학·교육대학·산업대학·전문대학 등)의 목적을 실현하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학생들은 대학 간 재정지원 차별화가 사라져 균등한 교육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하고, 대학 교원들은 신분과 근로조건이 안정화돼야 한다.

전국교수노조 위원장과 교권쟁의실장을 지냈다.

상온초전도체, 상온핵융합, 그리고 아카이브

최성우의 과학기술 온고지신 2

최성우

과학평론가

지난해 여름 이후 한동안 국내외 과학기술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상온초전도체 소동은 지난번 글(2월 5일자 4면)에서 언급했던 ‘국뽕 과학’의 위험성 이외에도 여러 심각한 문제를 노출한 바 있다. 특히 해당 논문의 아카이브 공개로부터 촉발된 대중의 성급한 흥분과 폭발적 반응은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측면 등에서도 면밀히 되짚어 봐야할 과제를 남겼다.

처음에 이를 보도한 신문·방송에서는 상온초전도체가 사실이라면 대단한 업적인 것은 틀림없겠지만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신중하고 차분한 논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일부 대중의 과장되거나 잘못된 주장과 진위가 불분명한 영상 등이 유튜브와 각종 SNS 등으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언론마저 부화뇌동하여 지나치게 낙관적인 장밋빛 기사를 쏟아내기에 바빴다. 초전도체 관련 업체의 주가가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는 매우 우려스러운 일마저 벌어지게 되었다

이 소동은 오래 전에 역시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상온핵융합 소동과 비교하면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1989년 3월, 미국 유타대학의 화학자인 스탠리 폰스(Stanley Pons)와 마틴 플라이슈만(Martin Fleischmann)은 기자회견을 열고 전기분해에 의해 상온핵융합 반응을 성공시켰다고 발표하였다. 최소 1억도 이상의 초고온이 필요한 기존의 핵융합 방식과는 달리 상온에서도 핵융합이 가능하다는 이들의 주장을 세계 각국의 언론은 대서특필하였다.

그러나 충격과 흥분을 가라앉힌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차분히 그 실험을 재현하고 검증해 본 결과, 상온핵융합이 아닌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두 화학자는 실험 결과를 성급하게 잘못 해석하였거나 계산과정 등에서 중대한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이들은 학술저널을 통하여 충분한 검증을 받기도 전에 대중에게 발표해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고 대학에서도 쫓겨나고 말았다. 대중을 기만하거나 부정한 이득을 취할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실험 결과를 날조하거나 논문을 조작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과학계의 검증 이전에 언론을 상대로 직접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은 매우 잘못된 행위임에 틀

전기분해에 의한 상온핵융합 반응의 모식도다.

그림=위키미디어

림없었다. 이후에 미국 언론계에서 논문이 나오기 전에는 섣불리 연구성과를 보도하지 않는 것이 관례로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행정부는 ORI(연구진실성위원회)의 설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런데 상온핵융합 소동에서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아카이브를 비롯한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가 등장하면서 이들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이 는 논문이 정식 출간되는 학술지는 아니지만,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게재하여 동료들의 의견 등을 들을 수 있는 나름 의미가 있는 온라인 공간이다. 그러나 원래의 긍정적 기능에서 일탈하여 미처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많은 대중이 현혹되는 등 바람직하지 못한 일들이 발생하고 다른 목적으로 악용될 가능성마저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시작할 무렵인 지난 2020년 2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의 실험실로부터 유출되었다고 주장한 논문이 ‘리서치 게이트’에 실려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이 사이트 역시 학술지가 아닌 논문 사전 공개 기능을 포함하는 연구자들의 소셜 네트워크였고, 해당 논문은 저자마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곧 삭제되었다. 그러나 음모론 등에 경도되기 쉬운 대중에게는 진위에 관계없이 그럴듯한 미끼를 제공했던 셈이다.

한편으로는 상온초전도체라는 과학적 이슈가 사회 전반적으로 큰 주목을 받으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적 이해와 관심이 고양된 일부 긍정적 측면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신문과 방송이라는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퇴조하면서 유튜브, SNS 등 개인미디어의 힘이 갈수록 커지는 오늘날, 이들의 역기능과 부정적 측면 등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과학 언론과 과학 대중화의 관점에서도 쉽지 않은 숙제를 남겼다.

김상돈의 교수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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