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학부 정원은 대학원 정원으로 전환해야

데이터로 읽는 대학 18

서울대학교를 해부한다4

서울대 구조조정 어떻게 할것인가

‘데이터로 읽는 대학’의 네 번째 주제 ‘서울대학교를 해

부한다’의 네 번째 소주제는 ‘서울대 구조조정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로 전환한지 11년이 지났지만, 국립대학과 국립대학법인화 이후에 별로 변화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서울대가 스스로 뼈를 깎는 자성과 혁신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에 2023년 글로컬대학으로 선정된 10개 대학, 특히 7개 국립대학이 제출한 혁신기획서를 분석해 서울대의 혁

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글로컬대학30 사업은 비수도권에 소재한 대학

을 대상으로 5년간 1천억 원을 지원하는 사업이

다. 2023년에는 10개를 지정했고 2024년 10개 내

외, 2025~2026년 각 5개 내외 지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3년 글로컬대학 지정에는 총 108개교에

서 94건의 혁신기획서를 제출해 공동 4건, 단독 11 개교 등 15건이 선정됐다. 최종적으로 국·공립대 7건, 사립대 3건 등 총 10건이 본지정됐다. 지정된 10건(14교)의 혁신기획서를 분석해 주요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23년 글로컬대학 선정대학의 주요 특징

첫째, 대학혁신으로 개별 대학의 강점을 바탕으

로 한 지속가능한 성장 노력과 자기혁신에 대한 진

정성으로 기존 틀을 깨고자 하는 목표 의식, 둘째, 지자체와 지역사회의 협력 강화를 통한 이들의 적

극적인 관심과 재정지원, 셋째, 벽 허물기로 신청 대학 94개 중에 74개 혁신기획서(대학 수 기준 87 개교)는 무전공 모집, 모집단위 광역화 등 학생 모

집단계에서의 벽 허물기, 대학 통합을 통한 대학 간 벽 허물기, 학과·전공 간 벽 허물기, 넷째, 학사 구조 개편으로 혁신기획서 94개 모두 학사구조 전

환 제안, 학생참여형 교육과정, 자율전공, 자기설

계 전공, 전과제도 도입, 학사운영 시 실무교육을 위한 융합교육, 현장교육, 팀프로젝트, 인턴십, 해

외연수 등 실천적 경험 확대 등이다.

서울대의 혁신 방향

서울대의 브랜드 가치는 무엇인가? 과연, 국립

대학법인이 된 이후에 10여 년이 지났지만 전략적

인 투자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발전

계획을 구성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체계적으로 수

립했는지? 또한 이에 근거해 글로벌대학으로 도약

하기 위한 브랜드 가치 제고를 통해 한국 대학을

2023년 글로컬대학 10개 대학 주요 특징

대학명 혁신 방향 주요 특징강

원대‧

강릉원주대1

도 1국립대를 통한글

로컬 대학도시

하나의 거버넌스 하에서 특성화된 4개 캠퍼스의 밀접한 연계를 통해

강원권을 폭넓게 포괄하는 지역거점대학 모델 제시

부산대‧부

산교대E

du-TRIangle이 만드는

새로운 미래교육도시

디지털 대전환 등 사회 변화에 맞춰 AI‧디지털 역량을 갖춘새

로운 종합교원양성대학 혁신 모델 제시

안동대‧경

북도립대 K-인문 세계 중심 공공형 대학 대학‧연구기관‧지역 특화분야를 아우르는 새로운 공공형 대학혁신 모델 도출

지역의 유‧무형 자원을 적극 활용하여 인문학을 중점분야로 선정

충북대‧

한국교통대

통합을 통한 혁신 극대화로,

지역과 함께 세계로대

학 통합을 계기로 캠퍼스별로 지역의 주력산업분야와의 밀착성을 확대하고,

과감한 교육혁신을 통해 시너우 여용델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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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하는 대학으로 대도약할 의지를 갖췄는지? 한

국 대학의 혁신 아이콘으로 미래대학을 선도하고, 디지털 생태계 조성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글로컬대학 혁신기획서에 제시된 것처

럼 서울대도 최소한 이들처럼 담대한 혁신이 필요

하다고 생각한다. 이들 대학의 혁신 방향과 내용을 참고해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거버넌스를 재구조화해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로 지역소멸과 수도권 집중화가 심화되는 상

황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보고 있는 서울대는 4차산업혁명시대의 급변하는 산업구조와 환경 변화

에 대한 대응 시스템 구축을 위해 거버넌스 재구

조화가 필요하다.

둘째, 수요자 중심의 학사운영 체제 구축이다. 4 차 산업혁명과 ICT에 기반한 급격한 테크놀러지

의 진보는 아날로그시대의 대학교육에 대한 혁신

을 요구한다. 디지털 시대 진입과 AI 등 에듀테크

를 활용한 교육내용과 방법의 대전환도 필요하다. 그러나 현행의 고착화된 학과 중심의 개별화된 학

사운영은 여전히 학문 간, 교수 간 견고한 벽을 유

지하며 수요자보다는 공급자 중심의 학사운영 체

제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므로 수요자 중심의 학사

운영 체제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대학원 중심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셋째, 연구중심대학으로 대전환이 필요하다. 2023년 현재 대학알리미에 나타난 서울대의 학사

구조를 보면, 16개 단과대학, 1자유전공학부로 총 92개 학과(전공)가 개설돼 있다. 대학원은 일반대

학원을 포함해 12개 대학원이 개설돼 있고, 5개 캠

퍼스(관악, 연건, 수원, 평창, 시흥)가 있다. 전체 교

원은 비전임을 포함해 4천506명이며, 학생 수는 학사과정 1만6천662명, 석사과정 6천699명, 박사

과정은 5천704명으로 총 2만9천65명이 재학하고

있다.

서울대는 우수 학부생 유치를 위해 국내 대학

과 경쟁하기보다는 글로벌 대학들과의 경쟁을 위

한 대학원 중심의 연구중심대학으로 변모하고 혁

신해야 한다. 예를 들면, 16개 단과대학 체제는 폐

지하거나 광역화하고, 92개의 학과(전공) 체제는 융합전공이나 자율전공체제로 개편해 학습자 중

심의 전공운영 체제로 운영해야 한다. 일반 사립

대학에 많이 개설돼 있고, 연구중심대학으로 선

택과 집중에 적절하지 않은 학과(전공)은 통폐합

해야 한다.

또한, 학부 정원이 대학원 정원보다 많은 현재 상황을 조정해 주요 선진국의 글로벌 대학들처럼 대학원보다 많은 학부 정원은 대학원 정원으로 과

감하게 전환해야 한다. 즉, 현재 학부 정원의 약 5 천 명을 대학원 정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5개 캠퍼스는 지역 특성을 반영해 특성화하고 학

생 현장실습과 인턴이 가능한 클러스트로 운영해

야 한다.

넷째, 산학연 협력을 강화하고, 오픈 캠퍼스를 지향해야 한다. 서울대는 현재 안정적인 정부 지

원에 의존한 연구비 비중이 높고, 글로벌 경쟁력

이 높은 연구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우수한 연구인력을 바탕으로 산업체 및 민․관(공공)연구

소와의 공동연구․개발을 통해 기초연구 및 첨단

산업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이와 함께, 캠퍼스의

우수한 기자재와 연구인력을 개방해 대외 지원을 활성화해야 한다.

황인성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사무처장

대학평가와 고등교육 전문가로 교육통계 분석 작업에 참여해왔다.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을 거쳐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정보공시

센터장과 기획조정실장을 지냈다.

한국 대선과 판박이, 대만의 후보 단일화

글로컬 오디세이

이광수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50여 일 정도 남은 대만 대선

이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 덕분

에 더욱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996년 직선제를 실시한 이래, 총

통과 부총통을 선출하는 대선에서 대만의 정

당은 중국에 뿌리를 둔 중국국민당과 대만 주

체성을 강조하는 민주진보당이 치열하게 경

쟁해왔다. 1996년 국민당의 리덩후이, 2000년

과 2004년에서는 민진당의 천수이볜, 2008년

과 2012년에서는 국민당의 마잉주, 2016년과 2020년은 민진당의 차이잉원이 총통으로 당

선되는 등 대만 대선은 국민당과 민진당이 번

갈아 집권하는 양당 구도를 유지해왔다.

양당 구도는 대만 독립이나 탈중국화와 같

은 정치적 의제뿐만 아니라 연금 개혁, 원자력 발전, 백신 공급 등 비정치적 의제에서도 사사

건건 대립하는 소위 ‘남녹(藍綠)’ 진영 대결구

도가 중도파 또는 일반 시민들의 정당 혐오와 정치적 무관심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무소속임에도 불구하고 타이베이의 시장 선

거에서 커원저가 연임에 성공한 이유 중의 하

나가 남녹 정치 양극화에 대한 대만인들의 불

만이다. 커원저는 2015년 중도파를 의미하는 백색역량(白色力量)의 정당 조직으로 대만민

중당을 창당했고, 내년 대선 참여를 선언했다.

내년 선거에는 국민당을 비롯한 야권이 비

교적 유리한 선거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7년 여 동안 집권해온 차이잉원 정부에 대해서 유

권자들은 부동산 문제·청년실업·연금개혁 등

의 정책 수행에서 부정적인 평가로 민진당의 재집권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지

난해 지방선거에서 집권 민진당은 참패했고, 야당인 국민당이 수도 타이베이시를 탈환하

는 등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당시 언론은 지

방선거가 차이잉원 정부의 불신임 투표이고, 내년 대선과 총선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

가했다.

현재 대만 대선은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에 맞서, 야권 후보는 국민당의 호우요위, 민중당의 커원저 그리고 무소속의 궈타이밍 등 세 후보가 난립한 상태이다. 후보자별 합종연횡을 예상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3자 대결 혹은 4자 대결에서는 모두 라이칭더 후보가 최다 득표를 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야권 후보가 단일화를 한다면 누가 총통 후보자가 되더라도 민진당의 후보가 승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야당과 연합보와 중시신문망 등 비판적인 언론에서는 60% 이상의 유권자가 정권교체

를 원한다면서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제 내년 대만 대선은 가장 큰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바로 야권 후보 단일화, 즉 ‘란

바이합작(藍白合作)’ 논의가 구체적으로 진행

되고 있다. 국민당의 허우요위와 민중당의 커

원저후보 간의 후보 단일화를 통해 라이칭더 후보에 맞서는 야권 단일 총통 후보자를 선

출한다는 것이다. 양당은 단일화에 합의하면

서 선거 이후 연합정부를 수립할 것이라고 밝

혔다. 총통이 국방·외교·양안 업무를 결정하

고, 기타 정부부처는 국회(입법원) 의석 비율

에 따라 분배하는데 민중당은 감독과 균형을 담당하고, 국민당은 건설과 발전을 책임 맡는

다는 합의 내용이다. 감독 부처는 커원저가 직

접 구체적으로 법무부, 금융위, 언론위원회라

고 언급했다. 의회 의석 비율에 따라 정부 부

서를 분배하고 공동으로 국정운영을 한다는 것은 의원내각제 형태이기 때문에 대만에서

는 독일식 연립정부형태를 추진하는 것이라

고 평가한다.

차이잉원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하락세를 보이면서, 야권 후보의 단일화는 야권 승리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조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야권 후보의 단일화가 성사된다고 하

더라도 결과는 알 수 없다. 우선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후보자와 정당 인사들 사이의 불협

화음은 이념과 노선의 합치를 통한 국민 통합

보다는 소아병적 이익을 위한 권력투쟁의 성

격이 드러나면서 유권자의 지지 분산과 철회 등의 반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지방선거

와 달리 국가를 구성하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대표를 선출하는 대선에서는 “중국에 대항해 대만을 지킨다(抗中保台)”라는 민진당의 후보

를 선택하는 대만 유권자 특유의 투표 심리도 여전히 작용할 수 있다.

대만 대선은 이번 달 24일 후보 등록이 마

감되면서 본격적으로 선거전이 시작될 예정

이다. 단일화가 성사되든 혹은 성사되지 않든 50여 일 간의 선거운동이 치열하게 진행될 것

이다. 동시에 113석의 입법원 의석을 놓고 정

당 후보자들 간의 격돌도 다시 벌어질 것이다. 다시 민진당이 승리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당

이 반격할 것인가, 또한 민중당 등 제3세력은 정치적 기반을 구축할 것인가? 내년 대선에서 대만 유권자의 선택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가는 현재, 러시아-우크

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하마스 전

쟁 등 지역 분쟁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동아시

아의 오랜 위기 지역인 대만해협의 미래를 결

정짓는 대만 대선에 다시 국제사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양안 관계와 분단국 정치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대

만 신문의 정치양극화 연구」(2022), 공역서 『중국 정책결정: 지도자, 구조, 기제, 과정』(2018) 등이 있다.

“이전에 아무도 사유하지 않은 것처럼 사유하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한나 아렌트가 우리 시대에 던지는 치열하고 밀도 높은 정치 사유

고전 철학부터 중세 철학, 근대의 지형을 바꾼 혁명들, 양차 세계대전까지 철학, 역사, 정치, 문화를 총망라한 42편의 정치 에세이!

“사유는 엄격한 규정, 일반적인 의견 등에 속할 만한 무엇이든 그 기반을 무너뜨리는 작용입니다. 사유가 위험하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만 저는 ‘무사유가 훨씬 더 위험하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한나 아렌트 지음 │ 신충식 옮김 │ 824쪽(양장) │ 43,000원

상상력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그의 판타지와 철학의 원천을 엿볼 수 있는 책

‘바람이 부는 시대’에 그가 전하고 싶은 ‘책 이야기’

꼼꼼히 골라 추천하는 ‘다시 읽어도 좋은’ 세계명작 50권!

『책으로 가는 문』

-이와나미소년문고를 이야기하다

미야자키 하야오0 2지-음7|0 1서-3혜4영4 3역 o|n bo1o6k,e8r0@0g원m ai|l .1c6o8m쪽

| 다우출판 |

지역․청년․기업의 이중 악순환…“인구고령화는 체제 전환 문제”

▶1면에서 이어짐

‘인구구조 대전환 시대: 과학기술의 미래’

인구변동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서울로 유입

되는 청년의 수이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

원 연구위원(서울대 보건대학원 객원교수)은 「인

구구조 대전환: 인구구조의 변화와 사회체제의 대전환」을 발표했다. 지난해 서울의 연령별 순이 동률을 보면, 20∼24세는 6%다. 이 비율은 가장 높은 수치로 대학 입학생의 나이다. 즉, 서울로 전

입하는 청년의 수가 많다는 뜻이다. 순이동률은 인구 1천 명당 전입자 수에서 전출자 수를 뺀 순 이동자 수를 의미한다.

청년 유출로 인해 대학-지역의 상생고리가 단

절된다. 인구감소로 인해 경기침체가 발생하고, 입학생 감소는 교육 여건을 악화시킨다.

한 마디로 지역 고등교육 생태계가 붕괴하는 것

이다. 이 연구위원은 “지역 내, 지역 간, 부처의 생

존 선택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할 것”이라며 “지

역-청년-기업에 대한 이중 악순환”이라고 강조

했다.

이 연구위원은 인구변화에 산업의 전환 양상

에 대해 다음을 지적했다. △내수 산업의 소비

와 노동력 부족 위험 △소규모 영세 기업의 고

령화(2인+외국인 기업) △혁신성과 숙련도의 동

시 약화 위험 △저혁신 산업분야의 확대다. 그래

서 전체 산업구조와 인구구조 전환을 동시에 고

려하는 청사진이 필요하다. 특히 대학원생 수가 급감한 지방대에서는 연구역량이 심각하게 악화

될 전망이다. 더욱이, 여성신진 연구자를 확보하

는 게 시급해질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지방대 위기로 전문가 공급이 단기적으로 폭증할 것”이라며 “인구고령화는 단

순 복지의 문제가 아닌 대대적 체제 전환 차원에

서 접근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종합적인 기획으로 여성과학 기획전략 마련도 제안했다.

OECD 평균 보다 높은 남녀 취업률 차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느리지만 조금씩 높아져 왔다.” 이수형 서울대 교수(국제대학원) 는 「여성 인력 활용: 현황, 과제와 대안」을 발표

했다. 24세∼64세 여성의 2020년 노동시장 참여

율은 64.1%다. 노동시장 참여율은 취업자 수와 실업자 수를 더해 총 인구로 나눈 값이다. 1991 년만 해도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60% 미만

이었다. 반면 남성 취업률에서 여성 취업률을 뺀 취업률 차이는 OECD 평균 보다 높은 수준을 기

록했다.

특히 학력별 남녀 취업률 차이를 보면, 중졸

(15%)·고졸(21%)·대졸(22%) 차이를 보였다. 상

대적으로 고학력에서 더 많은 차이가 난 것이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인구고령화는 단순 복지의 문제가 아닌 대대적 체제 전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수형 서울대 교수(국제대학원)

“저성장·양극화·적자재정 시대에는 선의·당위에 근거한 정책은 한계가 있다.”

이철희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가장 심각한 노동시장 불균형은 청년인력의 급격한 감소에서 초래될 것이다.”

그래서 이 교수는 남성 중심의 정형성에 맞서는 ‘스컬리 효과’를 강조했다. 스컬리는 미국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된 「X파일」에서 주체적으로 수사에 나서 는 여주인공 이름이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이 작품을 보고 이공계로 진출한 여성이 많은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특히 미디어가 갖는 파급효과가 크기에 젠더 편향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 교수는 “공무원·교원·사외이사 임용의 젠더 기반 할당제는 역차별 논란과 사회적 합의 구축의 어려움이 있다”라며 “저성장·양극화·적자

재정 시대에는 선의·당위에 근거한 정책은 한계

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한국 사회 전

체에 대한 긍정적 파급력을 고려하고, 결과로 납

득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생산연령인구와 청년인력의 급격한 감소

이철희 서울대 교수(경제학부)는 「인구변화의 미래와 파워 시니어 활용」 발표를 통해 노동인

구 감소를 분석했다. 2020년 대비 생산연령인구

(15∼64세 인구) 추계 비율을 보면, 2045년 생산

연령인구는 70.2%에서 2070년이면 46.4%로 급

격히 떨어진다. 같은 기간 경제활동인구는 83.5% 에서 56.7%로, 생산성 반영 노동투입은 87.7%에

서 58%로 급감한다. 그런데 반사적으로 여성과 50∼64세 장년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증가할 전망

이다. 생산성도 마찬가지다.

공급과 수요 변화를 결합한 전망을 보면, 사회

복지 서비스업(전체)에서 전문직군은 248,989 명, 준전문직군은 171,431명이 부족할 것으로 나

타났다. 아울러, 음식점과 주점업(고학력) 준전

문직군 309,874명, 보건업(저학력) 준전문직군245,773명·비전문직군 164,845명이 노동력 부족 규모가 큰 산업으로 분석됐다.

이철희 교수는 “10년 내에 발생할 가장 심각한 노동시장 불균형은 청년인력의 급격한 감소에서 초래될 것”이라며 “향후 산업이 필요로 하는 새

로운 인적자본 공급의 탄력성이 떨어질 수 있다” 라고 우려했다. 즉, 젊은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는 노동시장·산업경쟁력·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끼

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노동시장이 지금보다 훨씬 더 유연해지고, 노동 이동성이 높

아지지 않는다면, 부문에 따라 노동부족과 공급 과잉이 함께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라며 “연령·학력별 노동 인력 간 대체성이 높아져야 한다”라

고 말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모두를 위한 ‘포용적 연구’ 혁신을 향하는 신진 과학자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 심포지엄

전 세계적으로 과학기술 영역 전체에 걸쳐 성

별과 기타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통합하는 연구 개발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남성과 여성을 모두 고려하는 연구는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미래 가치를 창출하는 중추적인 요소로 인식되고 있

다. 이에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는 신진과학

자와 뜻을 모아 성별 특성 반영 연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성별 특성 반영 연구 문화

를 촉구하고자 ‘신경과학, 뇌 질환 및 오가노이드, 중독, 인공지능, 후생 유전학, 장내 미생물 연구’ 등 최신의 성차 연구 사례를 논의했다.

보건통계학적 연구결과에 따르면 정신 질환 발병률에 성차가 크다. 치매의 경우 여성이 남성

보다 2배 이상 많이 발병한다고 알려졌으며, 자

폐스펙트럼 장애의 경우 남성이 여성에 비해 4배 이상 발병율이 높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성차가 생기는 원인은 아직 잘 알지 못한다.

가톨릭의대 박상준 박사는 「오가노이드 기반 알츠하이머 질환 성차 연구」를 주제로, 최근 첨

단바이오 연구에서 주목받고 있는 인공장기인 오가노이드가 알츠하이머 성차 연구에도 활용될 수 있음을 제시했다. 오가노이드는 인체 세포로 제작돼 질병 연구와 신약 개발 등 다양한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특히 알츠하이머 질환 같이 환자

에게 직접 접근하기가 어려운 경우 더욱 유용하

다. 최근에 성별에 따른 뇌 오가노이드를 제작했

다는 연구가 발표되면서 퇴행성 뇌 질환에서 보

이는 성차 기전을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박상준 박사는 알츠하이머 질환이 여성에게 더 많이 발

생하는 근거를 성차 기반 오가노이드 연구로 밝

힐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오가노이드, 알츠하이머 성차 연구에 활용

치매 뿐만 아니라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약

물중독에서도 성차가 보고되고 있다. 약물중독

에 있어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빨리 중독에 이르

고, 치료도 남성에 비해 힘들다는 연구 결과를 보

여 준 것이다. 행동적 차이도 있다. 남성은 충동

적으로 약물을 접하면서 중독으로 이어지는 경

우가 많지만, 여성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우

울증을 완화하기 위해 약물을 복용하여 중독에 이르는 것이다. 중독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을 생

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다양한 뇌과학적 연

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대부분 수컷에 집중돼 성

차 기전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최근에서야 중독

에 관여하는 주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수용

체의 발현에 성차가 언급되면서 도파민 신호 전

달에 성차가 있음이 보고되고 있다. 중독 및 도파

민 관련 연구에서 성별 특성 고려가 중요한 이유

다. 그 밖에 자폐스펙트럼 장애 역시, 성염색체에 관련된 성차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신 질환

의 성차 원인은 다각도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최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뇌의 구조적·기능

적 성차가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성별 특

성을 고려하지 않은 연구데이터로 인해 현재 데

이터 과학 및 인공지능 연구에 문제가 생기고 있

다. 특히, 인공지능은 과거 데이터를 통해 학습

하기에 데이터가 편향적이라면 그 편견을 답습

하게 된다. 의료용 진단 및 예측 혹은 의약 개발 등에 사용되는 인공지능이라면 편향된 데이터로 인한 문제는 인간에게 치명적 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과학기술 연

구뿐 아니라 교육·환경·사업영역까지도 모든 데

이터에 성별 특성이 반영돼야 한다.

성별 특성 연구, 환경·사회·문화 이해도 필요

성별 특성 연구를 위해서는 생물학적 요소를 넘어서 환경·사회·문화적 요소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DNA 염기서열의 변화 없이 유전자 발

현의 변화를 연구하는 후성유전학은 유전과 환

경 간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분야로 부상하고 있다. 여기에 성별 차이는 후성유전학

적 패턴과 유전자 조절에 영향을 미치는 필수 요

소로 점점 더 많이 인식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이 유사한 유전자를 공유하지만, 환경 요소에 의해 종종 뚜렷하게 다른 후성유전학적 현상을 보이

기 때문이다. 이는 유전자 발현과 세포 기능의 차

이로 이어져 생리적·행동적 나아가 질병에 대한 감수성의 차이로 나타난다.

여기엔 장내 미생물도 큰 몫을 한다. 장내 미생

물은 인체에 서식하며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태어

날 때부터 평생 변화하는 미생물 생태계를 말한

다. 장내 미생물은 면역 세포와의 직접적인 상호 작용을 하여, 후생적 변형을 유도, 신호 분자 생성

을 통해 면역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

졌다. 여기에 에스트로젠, 프로게스테론, 테스토스

테론과 같은 성호르몬이 장내 미생물과 면역, 그

리고 후생유전학까지 상호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사례 공유를 통해 우리는 성별 특

성 반영 연구 환경을 촉진하고 잠재적인 위험을 예방하고자 한다. 나아가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성별 특성을 반영한 더 우수한 연구 성과를 도출

하려는 노력을 통해 성차에 대한 과학적 지식 향

상 뿐만아니라 모두를 위한 포용적 과학기술 연

구개발의 확산을 기대한다.

김혜진

한국과학기술젠더혁

신센터 선임연구원

박상준

가톨릭대 의과대학 연구계약교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 초빙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관계법령에 의해 경제〮인문사회분야 24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지원·육성하고 있습니다. 연구기관 경영혁신을 위한 비전을 가지고 21세기 지식기반사회의 연구 및 국가정책개발을 선도할 수 있는 역량 있는 분을 원장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 대상기관 :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 지원자격 : ◦ 연구기관의 경영혁신을 적극 추진할 수 있는 분

◦ 해당 연구분야에 관한 식견이 풍부하고 덕망이 있는 분

◦ 조직경영에 대한 경륜과 식견을 가진 분

◦ 국제감각과 미래지향적 비전을 가진 분

◦ 국가공무원법 제33조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지 아니한 분

◦ 원장으로 재임하는 기간 중 휴직 가능한 분(겸직 불가)

■ 제출서류(각 1부) ◦ 이력서(사진 첨부)

◦ 주요 업적 및 경력소개서(A4 5매 이내)

◦ 연구기관 운영 및 경영혁신에 대한 소견서(A4 5매 이내)

◦ 주민등록등본

※ 제출서류 양식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홈페이지 공지사항 참고

■ 서류제출 방법 : 방문, 등기우편, 이메일(phar@nrc.re.kr) 접수

※ 평일 근무시간 외에는 방문제출 불가

■ 서류제출 기한 : 2023. 11. 20.(월) - 11. 29.(수) 17:00까지 제출서류 도착분에 한함

■ 접수처 : (우) 30147 세종특별자치시 시청대로 370 세종국책연구단지 연구지원동 4층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경영지원본부 경영지원부

■ 기타문의 ◦ 저서, 학위논문․학술논문․연구용역보고서를 구분하여 기술하되, 공동연구 여부를 밝혀 주십시오.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정관상 원장은 그 직무 외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와 정당가입이 금지됩니다.

◦ 연구회 홈페이지 : www.nrc.re.kr

◦ 담당자 : 044-211-1193, phar@nrc.re.kr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국방대학교 교수 초빙 공고

최고 수준의 안보 종합교육 및 연구기관을 지향하는 국방대학교에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역량있는 교수를 초빙합니다.

1. 채용분야 및 선발예정인원

2. 지원자격

가. 전임직 교수 : 고등교육법 제16조에서 규정한 자격을 갖춘 자

■ 전임직 교수

소속 초빙분야 인원 자격요건 담당예정과목

국방관리대

국방경제 1※

경제학(거시/계량경제 전공) 박사

* 최근3년 이내 KCI급 논문3편이상

등재(국제학술지SSCI 등 우대)

거시경제이론

경제분석방법론

실증모형분석세미나

경제안보세미나

군수경영

해군

군교수

1

해군 영관장교

경영학 박사

(운영관리 분야의 산업공학박사 가능)

수요예측

데이터처리론

관리이론과 실제

통계학

인사조직 1※ 행정학 또는 정책학 박사

행정조직론

국방조직론

정책이론세미나

컴 퓨 터

공 학

1※ 컴퓨터공학 박사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인공지능 프로그래밍

컴퓨터인공지능 시스템

데이터베이스시스템

데이터베이스특론세미나

(공통사항) 담당예정과목은 현재 기준이나 임용이후 향후 학교 운영상황에 따라 변동가능함가. 임용일 기준 박사학위 소지자 (공통)

나다.. 군공교무수원 직임위용의에 경결우격「사군유교가수 인없사는관 리자훈 령(」공상통 )임

용에 결격사유가 없는 자

■ 순환직 교수

가. 육군 중령

나. 인사 관련 정책 부서(국방부, 육군본부, 인사사령부) 3년 이상 근무 경험자

다. 석사학위 이상 학위 소지자

3. 응시원서 교부 및 접수처

■ 응시원서 교부

국방대학교 홈페이지 교수채용공고문에서 다운로드하여 사용

■ 접수기간

2023. 12. 5.(화) ~ 2023. 12. 8.(금) 15:00마감

※ 마감 시간 엄수: 12.8(금) 15시 (한국시간)한 도착분에 한함.

방■문 접 수또방는법

등기우편 접수

※) 의임 임용후용 신등)분 이⑤ 군 인교·수 등을군 무원군이인 또아닌는 군특정무직원이 국가아공닌무 사원람 교중수에서직 위임임용.하국는방 대경학교우에 는설 치이법를 제특9정조직( 교국수가등- 접수기간 내에 응시원서 및 제출서류를 작성하여 접수처에 방문접수 공무원으로 하고, 그 보수·연수·신분보장·징계 및 소청에 관하여는 「교육공무원법」및 「교원의 지위 향또는 등기우편으로 제출(사본은 이메일 제출)

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을 각각 준용함

※ 등기우편 접수시 봉투 겉표지에 ‘교수임용지원서 재중’ 표시

나. 순환직 교수 : 현역군인으로서 해당분야에서 실무전문능력을 구비한 자로 ■ 접수처

교육 및 연구활동을 위해 일정기간(2∼4년) 임용된 자

방문 접수 : 국방대학교 정문 위병소(12월 6일 1일한)

등기우편 접수 : 우) 33021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황산벌로1040

소속 초빙분야 인원 자격요건 담당예정과목

국방관리

대학원 인사조직 1

· 육군 중령

· 인사 관련 부서 3년 이상 근무경력

(국방부, 육군본부, 인사사령부 등) 보유자

· 석사학위 이상 학위 소지자

(경영학, 심리학, 교육학, 행정학, 정책학 등 )

전략적 리더십

국방인력관리론

국방인력개발론

(공통사항) 담당예정과목은 현재 기준이나 임용이후 향후 학교 운영상황에 따라 변동가능함국방대학교 교수부 교육기획처 교수채용담당자 앞

■ 문의 국방대학교 교육기획처 교수채용/교육제도담당(041-831-3112)

2023년 11월 20일

국방대학교 총장

‘천년왕국’ 신라, 천년고도의 민낯과 마주하기

천하제일연구자대회

60 신라 왕경 연구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

신라 왕경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있다. 궁역의 내부 구조가 어떠했는지, 도시구획의 범위는 어디까지였는지, 왕경의 관리 관부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수도방위와 각종 군사시설은 어떠한 양상을 띠었는지 등의 실마리를 잡기 어렵다. 왕경 연구는 문헌자료만으로는 한계가 크다. 고고학·지리학·생태학·지질학 등 학제 간의 성과를 통섭하게 될 때 좀 더 선명하게 경관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시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아마 유년시절 기성복 광고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인기 절정의 배우가 LP판을 들고 재즈음악에 맞춰 가볍게 춤을 추었다. 광고의 배경이 된 뉴욕 맨해튼의 야경은 너무나 황홀했다. 때마침 여물 끓는 냄새에 외양간의 암소가 구슬프게 울었다. 방문을 열면 탁 트인 완산들이 눈앞에 펼쳐졌고, 황보 능문이 말목을 베었다는 금강성이 조망된다. 바라보고 있자니 광고 속 뉴욕과 도저히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린 나에게 도시란 동화 속 상상의 세계와 큰 차이가 없었다. 아마 이러한 도시에 대한 동경이 도시사를 전공하도록 이끈 원천이 된 것 같다.

다양한 연구 방법론의 통섭

운이 좋게도 대학 학부시절 틈틈이 발굴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경주의 땅속에서 드러나는 유구와 유물들이 경이로웠다. 흙 묻은 토기나 기와 조각을 세척하며 신라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하였다. 경주 어디를 파더라도 기와는 반드시 출토된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은 부유함의 대명사가 아니던가.

그런데 새마을 운동 노래 2절 가사에는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란 구절이 있다. 1980년대 초반까지 초가집은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의 고려 개경,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을 보더라도 한양에조차 기와집이 흔치 않았다.

우선 왕경의 경관을 복원하려면 학제 간의 성과를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다. 예컨대 경주가 처한 자연지리적 환경의 분석, 문헌의 사료비판, 출토문자자료의 해독, 물질자료의 편년, 철학적 이념 등 다방면의 성과를 종합할 수 있어야 했다. 말하자면 구슬을 꿰기 위해 다양한 기술이 요구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6년여 발굴기관에 종사하면서 발굴조사를 담당했다. 발굴 정황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언급함으로써 왕경의 대체적인 경관이 드러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분석 대상이 된 보고서는 2018년 기준 721건 천여 권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분석 과정에서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천년왕

국이라지만 대부분의 자료가 통일기의 것이었다. 다시 말해 상고기, 중고기의 자료는 거의 없는 셈이다. 결국 언제부터 경주분지에 인간이 살았는가의 문제와도 연동된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경북대 사학과에서 「신라 통일기 왕경의 구조와 운영」(2018)이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게 되었다. 글의 중심은 통일기로 잡되 중고기 왕경을 전야로 다루었다. 사실 왕경의 변화상을 짚어 내기 위해서는 정치적 혹은 사회적 변동을 유념할 필요가 있었다. 한 국가의 생장소멸은 지방이 진원지일지라도 중앙인 수도에 그 여파가 남을 것임이기 때문이다. 왕경을 살아있는 일종의 유기체로 보았을 때, 성장과 정에서 겪는 흔적이 나무의 나이테에 남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왕경이란 공간의 특수성

왕경(王京), 곧 수도를 의미하는 한자의 용례를 범박하게 보면 경(京), 도(都), 사(師)로 수렴된다. 문헌에 보이는 京은 ‘크다’, ‘인위적으로 아주 높게 만든 언덕’이란 의미를 가진다. 때론 ‘천자의 거소’를 말하기도 한다. 都는 어조사이지만, ‘종묘가 있는 곳’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師는 ‘많다’, 혹은 ‘사람의 무리’라는 의미가 확인된다. 문헌이나 금석문에는 대부분 위 한자가 합성된 용어가 사용되었다. 따라서 그 의미는 ‘천하의 중심이자 王者가 거주하는 곳이며, 궁과 종묘가 있고, 많은 사람이 무리 지어 있는 곳’이 된다. 그러므로 왕경은 국정을 총괄하며,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적인 면에서 국가권력의 중핵을 이루게 된다.

왕경은 인구의 밀집도가 높은 도시이다. 따라서 1차 산업보다 외부 의존적인 소비 형태를 보이며, 잉여생산물을 소비한다. 신라의 왕경은 진한의 소국이었던 사로국이 성장하면서 비롯되었다. 사로국은 6부의 영역인 셈이다. 신라가 중앙집권적 영역국가로 자리매김하면서 사로국이 왕경으로 전환되었다. 신라 왕경이란 사로국의 범위, 곧 6부의 영역에 다름 아니다.

다만 학계에서는 왕경의 범위를 두고 논의가 분분하다. 『삼국사기』 지리지의 왕도 범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차이이다. 현 경주 시가지는

사방이 도로로 구획된 블록화된 공간이 확인된다. 이는 방리구획의 흔적이다. 당시 왕경의 번화가를 의미하며, 외곽의 배후지는 수공업 생산 공방들이 배치되어 왕경인들의 삶을 지탱했다. 따라서 왕경은 번화가와 배후지로 구성된 복합적인 공간을 이루고 있었다.

통일국가의 수도로 새롭게 거듭나다

신라 왕경은 사로국의 국읍(國邑)에서 출발하여 국가가 멸망할 때까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한 공간에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누적됨에 따라 왕경의 변화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기를 구분하여 정리해 볼 필요가 있었다. 공간의 외적 변화를 초래한 요인으로는 중고기 마립간호의 사용, 불교 공인, 중대 유학적 정치질서, 당 문물의 수용, 무열왕계의 집권 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다. 이러한 요소를 통해 당시 집권자들이 왕경을 통해 지배이념을 어떻게 표현하려 했는지도 엿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나는 이러한 점을 고민을 했고, 나름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신라 왕경 구조의 시기별 재구성을 시도했다. 신라는 진한 소국인 사로국을 모태로 성장했다. 신라가 중앙적 영역국가로 성장했을 때 왕경의 구조는 그 전과는 차별될 수밖에 없었다. 신라 왕경이 천도의 과정이 없이 한 곳에 고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나무의 나이테처럼 인간의 흔적이 누층적으로 축적되어 있음을 전제할 수 있다. 시기별 건축물의 분포를 통해 인간의 활동 양상을 추론할 수 있는 정합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둘째, 지배 이데올로기가 공간의 변화에 미친 영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신라 중고기는 불교 이데올로기를 통해 왕자(王者)의 권위를 확보하였다. 왕이 곧 부처(王卽佛)라는 사상에 입각하여 보면 신궁을 포기하고 지은 황룡사 역시 왕궁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김춘추가 집권하면서 유학적 지배질서가 신라를 강타했다. 율령, 묘호제, 시

사진 위 왼쪽부터 수막새 신라와전, 의봉사년개토 신라와전, 녹우귀면와 신라와전이다. 맨왼쪽 아래는 암막새 신라와전이다. 679년 문무왕의 왕경 일신을 증언하는 물질자료들(축척부동)이다. 사진=국립경주박물관, 2000, 『新羅瓦塼』

호제, 동궁제, 종묘제, 국학 등 당 문물의 수용은 왕경의 외적 변화를 유도하였다. 이는 중고기 지배질서와는 분명히 차별되는 현상이라 하겠다. 왕은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남면(南面)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월성은 남측이 하안단구여서 왕경의 확장 방향은 북쪽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문무왕 19년 당시 왕경의 토목공사를 증언하는 자료가 ‘의봉사년개토(儀鳳四年皆土)’명 기와이다. 이 기와는 절대연대가 확인되므로 문헌에 버금가는 파급력을 가졌다. 명문에는 연월일이 구체적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왕경의 대규모 공사에 앞서 길일을 가려 뽑은 셈이다. 그럼에도 왕경은 유교적 예제에 맞는 공간배치가 어려웠고, 신문왕의 달구벌 천도 기획은 이로 말미암은 듯하다. 그러나 천도 역시 무위로 돌아갔고, 신라의 왕들은 기존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선에서 자신의 이상을 펼치려 했던 것 같다.

셋째, 신라 왕경의 운영에 대한 고찰을 하였다. 왕경은 자연 촌락과 달리 소비 중심의 도시이며, 신라 국토 전체를 압축적으로 상징한다. 사방으로 곧게 뻗은 도로는 지방의 물자가 수렴되는 공간이자 동시에 중앙의 명령이 하달되는 교차점이라는 이중성을 가진다. 왕경의 주변에 배치된 특수 수공업촌락 성(成)·향(鄕)은 물품을 생산하여 왕경인들의 삶을 지원하였다. 이는 후대 고려의 향·소·부곡의 원형이 된다. 왕경은 시가지와 떨어진 외곽 공간에 매연이나 소음이 발생하는 공방을 배치하여 각종 물품들을 제작했던 것이다.

천년왕국의 빛과 그림자

2019년 11월 19일 김석기 국회의원(경주)의 발의로 천년고도 신라 왕경의 8대 핵심 유적을 복원․정비하는 ‘신라왕경 핵심유적 정비복원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신라 왕경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다만 신라 왕경을 두고 8세기경 최고 번성기

왕경은 인구의 밀집도가 높은 곳, 곧 도시를 말한다. 주로 자체생산보다는 외부 의존적인 소비 형태를 보인다. 국가권력의 중핵을 이루며 국정을 총괄하는 곳이다. 신라 왕경의 전성기 복원도는 월상루에 오른 헌강왕과 민공의 대화를 연상시킨다 . 사진=경상북도

에 인구 100만 명이 넘었다든지, 경주는 179만 호가 거주한 장안(중국), 콘스탄티노플(동로마) 바그다드(이라크)와 함께 세계 4대 고대 도시로 꼽힌다는 주장은 사실과 달라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신라 전성기 왕경을 회자할 때 헌강왕과 민공 사이의 대화가 곧잘 인용된다. 월상루에 올라서 본 서울의 전경은 백성의 집들이 서로 이어져 있고 노래와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민간에서는 기와로 지붕을 덮고 짚으로 잇지 않으며, 숯으로 밥을 짓고 나무를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헌에는 경사(京師)에서 해내(海內)까지 집과 담장이 연이어 있고, 초가는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문헌에 보이는 178,936호란 규모는 인구수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왕경의 전성기와 관련해서 운집한 기와집과 숯을 회자하곤 한다. 그런데 이 기사는 왕경의 그림자로 보인다. 500톤의 숯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백탄은 2천톤, 흑탄은 1천500톤의 목재가 소비된다. 4인 가족 한 끼 식사를 만드는데 필요한 숯은 200g이다. 17만 호를 인구수로 감안하더라도 한 끼 식사에 8.9톤의 숯이 소비된다. 왕경은 흡사 숯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을 연상시킨다. 사실 연료의 무게를 줄이는 목적은 원거리 수송이 전제된 개념이다. 이를 통해 왕경 주변의 숲이 상당히 황폐화되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 기와는 교체 시기가 대략 100년이다. 왕경 전역에 기와가 올려졌다면 기와를 생산하던 와공은 일제히 실업 상태에 직면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와공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이와 관련하여 일본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實錄)』에는 재미있는 기사가 전한다. 869년 5월 26일 무츠국(陸奧国)에 리히터 규모 8.3에 달하는 사상 최악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그 결과 국분사, 국분니사 등 사찰과 무츠국 관청 등 주요 시설이 초토화되었다.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시설 재건을 위해 기와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다. 이에 당시 일본을 오가던 신라 와공들은 무츠국 수리부에 배치되었다. 생계를 위해 일본을 오가던 와공들이 기와를 생산하는 본업에 종사하게 된 것이다. 이름이 전해진다는 점에서 이들은 왕경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일 가능성이 높다. 왕경의 전성기를 전하는 숯과 기와 기사가 역으로 신라의 멸망을 보여주는 전조라면 과한 추정일까.

신라 왕경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있다. 궁역의 내부 구조가 어떠했는지, 도시구획의 범위는 어디까지였는지, 왕경의 관리 관부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수도방위와 각종 군사시설은 어떠한 양상을 띠었는지 실마리를 잡기 어렵다. 사실 왕경 연구는 문헌자료만으로는 한계가 크다. 고고학·지리학·생태학·지질학 등 학제 간의 성과를 통섭하게 될 때 좀 더 선명하게 경관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동주

경북대 인문학술원 HK연구교수

경북대에서 한국고대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신라 왕경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다. 문헌사학과 고고학을 융합해 왕경의 구조, 문서행정, 생산시설의 운영 등 구체상을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출토문자자료 분석에 관심을 가지고 성과를 내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新羅의 文書行政과 印章」(영남학75, 2020), 「신라 동궁의 구조와 범위」(한국고대사연구100, 2020), 「경산 소월리 출토 목간과 유구의 성격」(동서인문16, 2021)등이 있다. 저서로 『신라 왕경 형성과정 연구』(2019, 2019 세종도서 학술부문 우수도서), 『한국목간총람』(2022, 공저, 2022 세종도서 학술부문 우수도서) 등이 있다. 역서로는 『지하에서 출토된 문자』(2022), 『목간에서 고대가 보인다』(2022, 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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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한국의 민주 사회, 느림의 미학이 필요할 때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22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기술, 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 4일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이 「개인과 공동체」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23강은 전영수 한양대 교수(국제학대학원)의 「인구와 출산 문제」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일제 35년의 긴 식민 상태를 겪었고 1950년대까지만 해도 필리핀과 파키스탄으로부터 원조를 받아야 했던 한국 사회가 그 뒤 이룩한 빠른 발전은 국가 간 비교역사 연구에서 특별한 주목을 받을 일이다.

산업화·민주화·세계화·정보화의 거시 변화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빠르고 압축적으로 성취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세계 6위의 군사 강국이자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세계 7개국밖에 없다는 ‘3050클럽’에 속한다. 국가의 힘을 가리키는 이런 지표들과는 달리 구성원 개인의 행복감이나 사회의 공동체성을 보여주는 지표는 아주 다른 사실을 말해 준다. 많은 사람이 분열과 갈등·불공정과 양극화·적대와 대립을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말한다. 자살률·출생률·산재 사망·남녀 임금격차·노인빈곤·정규-비정규직 차별 등의 사회경제적 삶의 지표는 매우 나쁜 상황이다.

같은 국가에 속하고, 같은 헌법 아래 있으며, 서

“민주주의가 속도전을 동반하면, 전쟁 이상으로 불행한 결과를 낳는다.

느리더라도 제대로 하면 된다고 말해 주지 않는 사회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깊은 분열로 고통받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느려져야 다른 게 보인다.

멈춰서 찬찬히 돌아볼 수 있어야 자연의 시간을 닮아 갈 수 있고 돌봄과 은퇴 후의 삶을 살아갈 지역 공동체가 눈에 들어올 수 있다.”

로를 민주시민이라고 말하는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열정이 시민들 사이를 가르고 있다. 신뢰할 만한 언론도, 존경할 만한 지식인도, 주권을 기꺼이 위임할 만한 정당도 찾아보기 힘든, ‘병든 사회’가 우리 앞에 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공익의 증진에 기여하지 못하는 정당 정치, 책임감 없는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을 지치게 만드는 의회 정치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국가적 차원의 성장과 발전이 왜 개인과 공동체의 안정된 삶과 병행해 발전하지 못하고, 그와는 정반대의 균열과 갈등, 적대와 증오의 심화로 이어지고 있는가.

정치학자들은 한국의 사나운 정치를 ‘양극화 정치’로 정의해 왔다. 정치 양극화는 “정당 정치나 의회정치가 관용의 범위 밖으로 뛰쳐나가 정치가 해야 할 타협과 조정 대신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우선 한국의 양극화 정치가 갖는 특징을 유형화해보자.

첫째, 양극화 정치는 극단적 당파성에 따른 무책임한 정당 정치다. 둘째, 양극화 정치는 정당 내 파벌 양극화 정치다. 셋째, 정책이나 이념적 차이보다 권력 이슈로 갈등하는 정치가 양극화 정치다. 넷째, 공존과 협력을 어렵게 하는 혐오의 정치가 양극화 정치다. 다섯째, 양극화 정치는 법안 폭증과 과도한 입법 경쟁이 지배하는 정치다. 여섯째, 양극화 정치는 대통령 의제가 과도한 지배력을 갖는 정치다. 일곱째, 양극화 정치는 대표되지

않는 사회 갈등을 방치하는 정치다. 여덟째, 양극화 정치는 정당의 낮은 자율성을 동반하는 정치다. 아홉째, 양극화 정치는 열정적 지지자와 반대자가 지배하는 정치다. 열째, 양극화 정치는 소수 지배를 강화하는 정치다. 열한째, 여론 동원 정치를 심화시키는 것이 양극화 정치다. 열두째, 양극화 정치는 양극화된 양당제를 낳는 정치다. 열셋째, 양극화 정치는 추종과 혐오의 팬덤 정치로 이어진다. 열넷째, 양극화 정치는 추종과 혐오의 팬덤 정치로 이어진다.

한국의 양극화 정치가 가진 팬덤 정치의 특성은 좀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 양극화 정치가 정당 정치를 초점으로 삼는 개념이라면, 팬덤 정치는 대중 정치나 대중 민주주의의 특정 유형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나아가 최근 세계적 걱정거리가 되고 있는 포퓰리즘 정치의 한국적 유형을 특징화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 나름의 장점도 있다.

우선 팬덤 정치란 누군가를 특별하게 좋아하는 정치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팬덤 정치의 본질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정치인이나 정치 집단을 과도하게 혐오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좋아함(선호)보다 싫어함(혐오)에서 발원하는 것이 팬덤 정치다. 그런 점에서 과거 호남의 디제이(DJ) 지지나 노사모 현상을 ‘팬심’ 정치라고는 할 수 있어도 팬덤 정치라고는 할 수 없다. 팬덤 정치의 첫째 특징은 이것이다.

단순히 싫어한다는 게 끝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혐오하는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을 다른 사람도 혐오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팬덤 정치는 단순히 개개인의 정치 성향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라, 대중 정치의 한 유형으로 이해돼야 한다. 이것이 팬덤 정치의 둘째 특징이다. 팬덤 정치의 셋째 특징은 서로 다른 진영 간 차이가 아니라 같은 진영 안에서의 혐오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넷째, 팬덤 정치는 민주주의의 단점을 극대화 하는 정치다. 다섯째, 팬덤 정치는 다양한 선호에 기반을 둔 ‘다원 민주주의’와는 양립하기 어려운 일원주의적 욕구를 키운다. 여섯째, 팬덤 정치는 기회를 좇아 유동하는 불안정한 정치다. 일곱째, 팬덤 정치는 두 축으로 작동한다. 여덟째, 팬덤 정치는 일종의 대중적 사회운동에 가깝다. 아홉째, 팬덤 정치는 민주주의를 지배하려는 집단적 열정의 정치다. 열째, 팬덤 정치는 효능감과 자신감

을 갖게 된 새로운 압력 정치다. 열한째, 팬덤 정치는 대통령 중심주의를 강화하고, 의회 민주주의나 정당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하는 정치다. 열두째, 팬덤 정치는 조급한 정치이고 잔혹한 정치다. 열셋째, 팬덤 정치는 비창조적 흥분 상태를 불러일으키는 정치다.

팬덤 정치가 한국적 포퓰리즘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면 그 핵심은 악성 포퓰리즘이라는 데 있다. 포퓰리즘 정당이나 포퓰리즘 운동은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존 정당들이 대표하지 못한 갈등을 효과적으로 표출하는 기능을 하기도 하고 이를 통해 정치 체제 전반의 반응성과 역량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팬덤 정치에는 그런 효과가 없다. 오히려 정치적 대표의 범위를 제한하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갈등을 억압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정당 내부적으로는 모두가 팬덤 대중이나 팬덤을 가진 정치 세력에 굴종적이게 만든다.

“팬덤 정치가 국회의원의 행위 유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에 대한 질문에 전·현직 의원들과 의원실 보좌진, 정당 당직자들이 꼽은 것을 요약하면 그 특징이 잘 드러난다. 대다수가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국회의원에는 다음과 같은 유형이 있었다.

첫 번째는 선동가형이다. 두 번째 유형은 외견상 매우 적극적이고 전투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의원들이다. 세 번째는 일종의 개인 독점형 의원 유형이다. 네 번째는 도덕적으로 뻔뻔한 유형이다. 2020년 이후 본격적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모든 사람을 시간에 쫓겨 살게 만든 이상한 민주사회가 우리 앞에 있다. 속도전 경쟁으로 치면 세계 최강 국가다. 경쟁 부문이 있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국가 K’가 모습을 드러낸다”라며 “자살·산재 사망·가계 부채·남녀 임금격차·이혼 증가·사교육비 지출 등의 어두운 현실에는 관심이 없는 사회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으로 이슈화되기 시작한 한국의 팬덤 정치는 양극화 정치의 두 번째 국면에서 나타난 변화였다. 그 이전까지 팬덤이라는 말은 연예·스포츠 분야에서 주로 사용됐는데, 이 시기를 기점으로 특별한 정치 용어가 됐다. 팬덤 정치 관련 기사 출현 빈도를 살펴보면, 이를 잘 보여준다.

정치 양극화 이슈에 비해 팬덤 정치 이슈가 출현한 빈도는 비교할 수없이 훨씬 높은 것도 주목

할 만하다. 정치 양극화가 주로 학계나 지식인 집단의 언어였다면, 팬덤 정치는 대중적인 이슈다. 국민 주권을 최고 통치자의 의지를 통해 실현하려는 실험은 전체주의를 낳았을 뿐, 그것이 민주적으로 가치 있는 결과를 낳은 적은 없었다.

대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권력자와 그를 추종하는 시민들이 주도한 국민 주권민주주의로 인해 정치도, 사회도, 개인도 위태롭

게 된 것은 돌아볼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민주주의는 좀 더 느려져야 하고 좀 더 다원적이 돼야 한다.

좀 더 느리게 일해도 뒤쳐진 느낌을 가지 않을 수 있어야 하고, 다르다고 공격받지 않는 안전한 사회가 돼야 한다. 요컨대 사회를 분열과 적대로 이끄는 양극화 정치, 팬덤 정치는 우리가 발전시켜야 할 길이 국민 주권 민주주의도, 직접 민주주의도 아니고, 책임정치에 기반을 둔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임을 더 깊이 생각하게 해 준다.

모든 사람을 시간에 쫓겨 살게 만든 이상한 민주 사회가 우리 앞에 있다. 속도전 경쟁으로 치면 세계 최강 국가다. 경쟁 부문이 있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국가 K’가 모습을 드러낸다. 세계 7위의 우주 강국이 되고,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경제 규모를 넘어서고 잠재 성장률에서 일본을 제치고, K 팝·K 뷰티·K 드라마로 이어지는 시리즈에 국민배우·국민가수·국민MC·국민드라마 시리즈가 나란히 가는 동안 자살·산재 사망·가계 부채·남녀 임금격차·이혼 증가·사교육비 지출 등의 어두운 현실에는 관심이 없는 사회다. 민주주의가 속도전을 동반하면, 전쟁 이상으로 불행한 결과를 낳는다. 느리더라도 제대로 하면 된다고 말해 주지 않는 사회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깊은 분열로 고통받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느려져야 다른 게 보인다. 멈춰서 찬찬히 돌아볼 수 있어야 자연의 시간을 닮아 갈 수 있고 돌봄과 은퇴 후의 삶을 살아갈 지역 공동체가 눈에 들어올 수 있다.

캠퍼스북

은유로서의 똥

김건형 외 10인 지음 | 소명출판 | 492쪽

많은 신화에서 똥은 풍요를 상징한다. 설화 전설 등에 넘쳐나는 똥 이야기를 통해서 오늘도 어린이들은 열광한다. 어린이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것, 게다가 얼마나 따스하고 부드러운가. 그 똥은 어떻게 해서 비천화됐는가,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으며 그 이후 뭇 생명에게 어떤 차별과 배제가 일어나고 있었을까.

플라톤의 카르미데스/크리티아스/서간집

박종현 옮김 | 서광사 | 328쪽

철학서적 전문출판 서광사에서 이 책을 출간했다. 서광사는 서양 고대철학 연구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야심찬 기획 아래, 플라톤의 대화편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을 1988년 부터 계약해 출판해 오고 있다. 헬라스어 원전에 대한 번역 뿐만 아니라 주석까지 단 형태로 출판해 왔으며, 이번에는 그 열두 번째 결실이다.

카파도키아 미술

조수정 지음 | 아카넷 | 332쪽

이 책은 비잔티움 제국 시기의 카파도키아에서 전개된 예술의 면모를 조명한다. 카파도키아 교회의 회화를 초기 발달 단계, 성화상 논쟁과 마케도니아 르네상스, 위기의 시대, 비잔티움과 이슬람의 문화 접변이라는 주제로 나눠 시기별 주요 도상(圖像)의 기원과 의미, 역할을 살폈다. 또한 어떻게 비잔티움 미술이 변용 혹은 재창조되는가를 묻는다.

전시디자인, 미술의 발견

김용주 지음 | 소동 | 320쪽

전시디자인의 시대가 왔다. 관람객은 작품뿐 아니라 전시디자인에도 환호한다. 한국의 전시디자인은 세계적 수준이다. 전시디자인을 이해하면 예술적 안목도 올라간다. 그러나 경험을 바탕으로 전시디자인을 소개한 책은 드물다. 저자는 한계를 도전으로 받아들이며 길을 개척해왔다.

다문화사회 대한민국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장한업 지음 | 아날로그(글담) | 400쪽

오랫동안 다문화·상호문화교육에 힘써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차이를 가지고 차별하지 않는, 다양성 존중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교육 대안을 제시한다. 다양한 사례와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이주배경학생의 현황과 그들이 겪는 차별의 유형, 다문화교육·상호문화교육의 필요성을 살펴보고, 상호문화교육을 할 수 있을지 자세히 설명한다.

해방하는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 지음 | 오수원 옮김 | 다산초당 | 428쪽

한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오늘날, 단 몇 초면 온갖 자극적인 소식과 마주하게 된다. 질병과 전쟁에 불황까지 겹치며 불가항력적 사태가 지속되는 와중, 수많은 정보가 조작되거나 오류인 채로 SNS상에 쏟아진다. 현대 사회에서는 여러 위기 요인이 겹치며 불확실성이 증폭된다. 당면한 문제와 위험에 어떤 전문적 의견이나 전망도 의지하기 어려울 정도다.

라캉 정신분석 실천

라울 몬카요 지음 | 이수진 옮김 | 그린비 | 632쪽

이 책은 정신분석의 이론과 실천에서 작동하는 ‘앎’과 ‘알지 못함’을 설명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틀을 제시한다. 또한 다양한 유형의 프레임과 증거를 포함해 듣기, 인용, 구두점, 절분의 실천, 분석가의 저항과 욕망, 은유로서의 전이 사랑, 분석의 종결에서 부정적 전이의 역할, 그리고 라캉학파 임상 실천의 중심 원리들을 설명한다.

서양 선비, 우정을 논하다

마테오 리치·마르티노 마르티니 지음 | 정민 옮김 | 김영사 | 424쪽

조선 지성사를 깊이 탐구해온 고전학자인 저자가 16~17세기 동서양 문물 교류의 선구였던 마테오 리치의 『교우론』과 마르티노 마르티니의 『구우편』을 새롭게 번역하고 풀어낸 신작. 키케로, 세네카, 아우구스티누스 등 그리스·로마 시대의 격언과 일화부터 『성경』과 『이솝우화』까지. 상세한 해제와 영인본, 화보 등 풍성한 자료를 더했다.

바이오사이언스의 이해

김성민·신창민 지음 | 바이오스펙테이터 | 648쪽

2017년 이 책이 출간됐다. 생명과학을 전공한 기자들이 주축을 이룬, 바이오제약 산업 분야 전문 매체 『바이오스펙테이터』의 첫 책이었다. 창간 1주년을 맞이해 1년 동안 한국의 신약개발 현장을 분석한 정보를 바탕으로, 과학의 입장에서 해석해보자는 목표를 세우고, 비전문 독자도 읽을 수 있게 풀어보려는 시도였다.

저자가 말하다_『휘어진 시대 1·2·3』 남영 지음 | 궁리 | 1,356쪽

사람이 보일 때까지 ‘과학사’ 한 장면을 파다

통사적 강의 지양하고 인물 중심의 과학사 조명

대학생과 20년에 걸친 소통의 결과물

이 책은 상대성이론·양자역학·원자물리학 등이 태동하는 20세

기 전반기 과학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제대로 소개하려면 책의 내용보다는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하는 것이 더 적절할 듯하다.

20년 전, 대학에서 과학의 역사에 대해 처음 가르칠 때가 생각난다. 통사적인 과학사는 언제나 그리스 자연철학에서 시작한다. 중세는 과학사에서 분량이 있으나 마나 한 수준이고, 곧 과학혁명기 지동설과 생리학 등에서의 혁명적 변화들을 다루고, 필자도 거의 이해하지 못 하는 18세기를 간신히 지나간 후, 19세기 열역학이나 전자기학, 그리고 진화론이라는 강을 건너고, 20세기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지나면, 이후는 생색내기용의 현대 과학 정리로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처음 필자는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을 어떻게 하면 내가 이해하는 선에서 쉽게 알려줄 수 있을지를 걱정하고 고민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첫 수업을 시작하면서 여지없이 깨졌다. 처음 그리스 자연철학부터가 문제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탈레스·데모크리토스·아리스토텔레스 등 수많은 ‘~레스’와 ‘~토스’를 외우면서 절망하고 지치고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과학혁명기로 넘어가 갈릴레이와 뉴턴 등의 매력적인 인물들을 배울 때면, 이미 수강생의 절반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뒤였다.학부 수업이라고 통사적 역사 전반을

한 학기 동안의 짧은 시간 동안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는가? 정보의 양이 중요한가? 나에게는 재미있는 것이 왜 학생에게 는 재미가 없는가? 근본적 의문을 던졌다. 어차피 2~3학점의 16주의 강의에서 다룰 수 있는 양은 한계가 있다. 이 시간을 학생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형태로 만들어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답은 간단했다. 역사는 인간의 이야기인데, 인간이 보이지 않으면 당연히 재미가 없다.

비유해 보면, 필자가 썼던 방법은 초등생 조카에게 황건적의 난에서 시작하는 2세기에 걸친 삼국지 이야기를 요약해 하루 만에 모두 알려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방법을 바꿔야 한다. 차라리 유·관·장 3인이 의리와 제갈량의 책략을 잘 버무려 적벽대전 하나만 맛깔나게 알려주면, 조카는 삼국지에 매료되고 스스로 전과 후의 내용을 찾아볼 것이다. 그래서 통사적 과학사 강의는 포기하고, 적벽대전에 비견될 만한 매력적인 과학사적 사건을 최대한 인간으로서 과학자의 모습이 보이도록 자세히 가르친다.

그렇게 시작한 고민의 결과물이 필자가 개발한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2010~)와 「과학자의 리더십」(2013~) 수업이었다.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는 철저하게 과학혁명기 150여 년 가량의 지동설 혁명의 이야기만으로 한 학기를 채운다. 「과학자의 리더십」은 20세기 전반기 상대성·양자·원자 등의 단어가 물리학의 전반에 등장하던 반세기 간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룬

다. ‘사람이 보일 때까지’라는 목표로 설계된 이 두 과목의 운영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다.

학생들로부터 ‘한양대 5대 명강’하는 식의 오글거리는 찬사도 받아보고, 강의 평가도 눈에 띄게 좋아져 학교에서 저명 강의교수 타이틀도 받는 등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내가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뿌듯함에 당연히 강의를 책으로 옮겨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를 『태양을 멈춘 사람들』(2016)로, 「과학자의 리더십」을 『휘어진 시대』(2023)로 출간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들의 특징을 꼽자면, 연구나 논문이 아닌 철저하게 교육의 경험에 기초한 책이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대학생들과 근 20년에 걸친 소통의 결과물이며, 매 학기 계속해서 주고받은 질의 응답의 경험이 녹아있다.

대학생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여러분은 자신이 과학자를 잘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다. 전혀 모른다.” 일정한 시점이 되어 어른을 위한 과학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마땅한데, 대부분의 경우 중등 교육과정과 그 이후의 사회생활에서 그 기회 자체를 박탈당한다. 최소한 학생들에게 그들이 존경하는 과학자에게 진정 본받고 흉내 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만큼은 제대로 가르쳐 주고 싶었다.

굳이 과학사 교육이 아니더라도, 이 이야기가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하

나의 사례이자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남영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교수

저자가 말하다_『아포칼립스 영화』 오세섭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108쪽

종말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아귀다툼

인류는 언제나 종말의 시대를 살았다. 예언가들은 항상 종말을 이야기했으며, 종교에서는 심판의 날을 경고했다. 결국 어떤 시대를 살든, 지금이 곧 말세일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종말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두려워하였기에 관심을 가졌고, 관심을 갖다 보니 계속 회자됐다. 그리하여 종말은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 잡았으며, 종말의 순간을 담은 아포칼립스 영화가 등장했다.

원래 아포칼립스(apocalypse)는 ‘(비밀을) 밝히다’라는 어원에서 시작됐다. 여기서 비밀은 종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기독교 세계관에서 이러한 비밀을

종말을 밝힌다는 뜻의 어원 가진 ‘아포칼립스’

방사능 등 재난을 열 가지 범주로 나눠 분석

밝힌다는 건 종말의 때를 밝힌다는 것이며, 종말의 때가 드러나는 순간이 곧 종말이기 때문에, 아포칼립스는 자연스럽게 종말을 의미하는 단어가 됐다.

아포칼립스 영화의 기원은 매우 오래 됐다. 일찍이 1910년에 소행성 충돌에 관한 영화 「COMET」이 만들어졌는데, 이 영화는 당시 지구를 향해 날아오던 핼리 혜성에 공포를 느낀 사람들의 심리를 담았다. 1933년에는 「대홍수」라는 영화가 개봉됐다. 「대홍수」에서는 제목 그대로 대지진이 일어나 미국의 서부와 동부의 해안가가 바다에 잠기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렇게 아포칼립스 영화는 절멸에 대한 집단적 공포를 그린다. 범지구적인 위기, 인류 전체의 두려움에 관한 이야

기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포칼립스 영화에는 당대의 공포가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핵 전쟁으로 지구가 멸망하는 영화가 등장한다 든지, 우주 탐험이 시작되면서 외계인 침공 영화가 나타났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종플루를 겪은 후 「감기」(김성수, 2013)와 같은 전염병 영화가 제작됐는가 하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방사능 공포가 「판도라」(박정우, 2016) 같은 영화를 통해 나타나기도 했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아포칼립스 영화를 열 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했다. 바꿔 말하면, 인류가 두려워하는 종말의 원인이 열 가지나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례로, 소행성 충돌이라든지 자연재해로 인한 종말은 가장 오래된 인류의 공포다. 아마도 별똥별이나 지진, 홍수 등은 인류의 인식 범위를 넘어선 대재앙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재해의 원인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종교 혹은 예언 아포칼립스가 등장하게 된다. 과학이 없던 시대에 화산 폭발은 신의 노여움이며, 반복되는 홍수는 고대 예언의 실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렇게 종교와 예언 아포칼립스는 인간이 구축한 합리성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소행성 충돌이나 자연 재해처럼 외부의 원인에 기인한 아포칼립스 영화가 있는가 하면 핵폭발이나 인공지능의 반란

처럼 인간 스스로 자초한 종말을 다룬 영화도 있다. 이런 영화에서는 자신이 만든 것에게 오히려 죽임을 당할 수 있는데도 끝내 그것을 파괴하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판한다.

그 밖에도 금세기 들어 치명적인 전염력과 스피드를 갖춘 좀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다시 호명된 전염병·외계인 침공·기현상에 의한 종말 영화 등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괴물 아포칼립스 영화도 다룬다.

괴물의 기준은 시대마다 다르다. 대개는 그 시대의 관점에서 흉측하다고 판단한 생명체를 가리킨다. 이런 식으로 배척당한 괴물은 사회 바깥에서 타자로 존재하게 된다. 인간은 이러한 괴물을 혐오하면서도 두려워했다. 상대를 혐오한 만큼 오히려 그들의 복수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괴물을 혐오하고 파괴하려 든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학살과 비슷한 일이다. 나와 남을 구분한 뒤, 나와 같지 않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행위는 괴물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아포칼립스 영화는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다룬다. 그러나 정말로 무서운 건 종말의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 때로는 소행성이 충돌하는 것보다도 살아남기 위해 아귀다툼하는 인간의 모습이 더 무섭다. 이렇게 아포칼립스 영화에서는 종말보다 무서운 우리의 본성을 보여준다. 어쩌면 서로의 민낯을 확인하

는 순간이 바로 종말일지도 모른다.

오세섭

영화 연구자·중앙대 박사

저자가 말하다_『철학에로의 초대』 김창래 지음 | 456쪽 | 세창출판사

‘로고스’가 지배하는 사회를 꿈꾸며

넘쳐나는 억지 주장에 로고스 학대당하는 환경

대중 철학교육은 철학자의 사회적 책무

나에게는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 그 소망을 이루고 싶어 철학을 교육해 왔고 이 책도 썼다. 그것은 사람들을 철학으로 이끌고, 철학적 사유를 배우게 하여, 철학이 의미를 갖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흔히들 철학은 천재의 학문이라 말한다. 물론 잊히지 않을 철학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천재뿐이기에 그릇된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철학이 천재만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배워야 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철학을 배우고, 모두가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말하고 들을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그런 이들이 모여 사회를 이룬다면, 그 사회는 어떤 곳일까? 내가 소망하는 사회, 로고스가 지배하는 사회다.

철학을 배운다는 것은 자신의 로고스를 사용하며, 로고스의 인도 아래 사유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이른바 ‘로고스적 사유’다. 이것은 소수의 천재들만 구사하는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인간은 본디 ‘로고스를 소유한 동물(zoon logon echon)’이다!―배우고 익혀 실천할 수 있는 사유다. 이 사유는 로고스를 사용하고 로고스에 부합하게 사유하는 것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즉 말이 되게, 논리와 이치에 맞게 사유하고 말하고, 말이 안 되는 것, 논리와 이치에 어긋

나는 것을 억지로 우기지 않고, 또 그런 말을 들으면 가차 없이 논박하되 이치에 맞는 말을 들으면 기꺼이 승복하는 태도를 배우는 것이다. 한마디로 ‘로고스에 대한 존중’을 배우는 것이다.

언젠가 소크라테스는 “참이 아닌 어떤 것을 주장하는 사람”은 단호히 “논박하되” 자신이 “참이 아닌 어떤 것을 말한다면 기꺼이 논박당하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를 논박하는 자는 누구인가? 말만 잘하는 대화 상대자? 아니다. 그를 논박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참, 참을 말하는 말, 참을 입증하는 논리, 바로 로고스다. 누구나 로고스의 권위를 존중하고, 로고스에 귀를 기울이고, 로고스의 참에 승복하고, 스스로를 기꺼이

로고스의 지배에 내맡길 수 있는 개방성, 로고스를 존중하는 바로 이 태도가 인류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가르쳤던 것이고, 철학적 훈련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선물이다. 우리가 철학을 공부하는 것도 바로 이 태도를 배우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철학의 역사 2천500년을 뒤로한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누구나 로고스를 존중하고, 참을 말하는 로고스에 기꺼이 논박당하는가? 아니다. 도처에서 우기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한 말도 뒤집기 일쑤고, 말 바꾸고도 바꾼 적

없다고 오리발을 내민다. 로고스로 잘못을 지적하고 설명하면, 얻다 대고 말대꾸냐고 언성을 높이고 험상궂은 표정에 욕질이나 주먹질도 주저하지 않는다. 철학하는 나는 외로워진다. 분명 우리는 로고스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로고스가 학대당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평생을 철학 공부, 철학 교육만 하며 살았다. 그 중간 결실의 하나가 이 책이다. 이 책은 대중 철학 교육은 철학자의 방기할 수 없는 사회적 의무라는 나의 평소 생각의 산물이다. 나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나의 독자들에게 철학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이 모두 철학적으로 훈련받고 로고스적으로 사유할 수 있기를, 그리고 이를 통해 로고스의 힘을 존중하고 거기에 승복할 줄 아는 사회가 실현되기를 기대하며 이 책을 썼다.

죽기 전에 한 번은 ‘로고스가 지배하는 사회’에 살아 보는 것이 이 늙은 철학 교수의 작은 소망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이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같은 꿈을 역설하던 소크라테스는 말이 많다는 이유로 독미나리즙을 마셔야 했고,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로고스의 지배를 주장하던 플라톤은 노예시장의 매물로 나와야 했던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

는 일은 이런 책을 쓰는 것 뿐이다.

김창래

고려대 철학과 교수

이 책을 말하다_『미학과 비평철학』 제롬 스톨니쯔 지음 | 오병남 옮김 | 이론과 실천 | 1991 | 500쪽

비평 포함한 예술에 대한 비판적 입문 이론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예술작품에 대해 행하는 어떤 판단을 예술비평이라 말한다. 이는 예술작품의 좋고 나쁨, 장점과 단점을 어떤 규준에 따라서 판별하고 평가 내리는 행위를 뜻한다. 미와 예술의 철학이자 예술에 관한 이론 학문인 미학이 이와 같은 예술비평과는 어떤 관계일까? 이 물음의 답은 우선 19세기 후반 독일의 미학계, 즉 반(反)관념론적 미학의 대두와 무관하지 않다.

다시 말해, 종래의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방법의 ‘위로부터의 미학’에 반기를 든 경험주의적이며 실증주의적인 소위 ‘아래부

미적 경험에서 출발하는 예술비평

예술비평은 미학의 실천적 영역

터의 미학’이 예술학(Kunstwissenschaft)을 태동시키며 급기야 독일 미학을 대표하는 기관지 『미학 및 일반예술학 잡지』(Zeitschrift für Ästhetik und allgemaine Kunstwissenschaft)를 창간(1943년까지 출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나치의 득세로 잡지 출간에 관여한 학자들이 미국에 모여 다시 학회를 조직하여 활동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출간된 책이 미국 미학회의 기관지인 『미학 및 예술비평 잡지』(Journal of Aesthetics and Art Criticism)다.

두 잡지 모두 철학적 미학의 연구와 개별 예술장르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예술현상과 비평을 다루면서 예술비평(예술학)이 미학의 실천적 영역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미학의 새로운

분야로 비평의 철학을 개척했다는 평을 받는 제롬 스톨니쯔(1925~ )는 영·미 분석미학의 좌표 속에서 한 권의 전문서적(『미학과 비평철학』(Aesthetics and philosophy of art criticism: A critical introduction, Houghton Mifflin Company, 1960)을 선보였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예술비평을 둘러싼 여러 문제에 대해 미학적으로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학과 예술비평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이 책은 크게 4개의 묶음 속에서 작은 15개 주제로 꾸미고 있다. 즉, 제1부 미적 경

험(제2장 미적 태도, 제3장 미적 경험)과 제2부 예술의 본성(제4장 예술의 창조, 제5장 여러 가지 모방론, 제6장 형식주의, 제7장 주정주의적 이론, 제8장 미적인 “미묘성”의 이론), 그리고 제3부 미학에서의 세 가지 문제(제9장 비극과 희극에서의 추의 문제, 제10장 예술에서의 진리와 믿음, 제11장 예술과 도덕), 마지막으로 제4부 예술의 평가(제12장 미적 경험과 가치평가 그리고 비평, 제13장 가치 판단의 의미와 확충, 제14장 비평의 종류, 제15장 비평의 교육적 기능)에 덧붙여 ‘제1장 미학의 연구’로 이루어져 있다. 적지 않은 책의 분량과 구성에서 엿보이듯이, 저자는 미학적 관점에서 예술의 본성에 대한 고찰을 거쳐 예술의 평가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대상으

로 삼고 있다.

서평자는 제4부(예술의 평가)의 맨 앞장, 즉 ‘제12장 미적 경험, 가치평가 그리고 비평’을 이 책의 핵심으로 꼽는다. 왜냐하면 미학의 관점에서 예술비평의 철학을 더듬는 관점에서 제1장(미학의 연구)과 제1부(‘미적 경험’ 중 ‘제3장 미적 경험’)에 관한 예술 비평적 관점의 구체적인 논의가 제12장에서 다시 한번 집중적으로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미학, 예술철학 혹은 예술비평철학의 개론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을 위해 쓴 것”(6쪽)으로 관련 교과의 입문서 성격이 짙다. 특히 ‘비판적 입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독자들에게 ‘비판적’으로 되기를 권유한다. 다시 말해, 독자 스스로가 예술적인 것과 미적인

것에 관해 자신의 주요한 신념에서 시사점을 주는 것과 그릇된 것을 구별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7쪽).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예술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일반 독자에게도 가히 매력적이라 하겠다. 더욱이, 각 장의 마무리 부분에 ‘참고문헌’과 ‘생각해 볼 문제’를 넣어 저자의 주장을 한 번 더 음미할 기회를 제공한 것은 독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말 번역서는 원서의 부제(비판적 입문)를 제시하지 않아서, 이와 같은 저자의 의도를 충분

히 드러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하겠다.

이승건

서울예술대 교수·미학

야누시 코르차크에게 아동 권리를 묻다

타티아나 치를리나 스파디·피터 C. 렌 지음 | 김윤경 옮김 | 다봄교육 | 452쪽

‘인권’이라는 용어조차 낯설었던 시기에 코르차크가 변화시키고자 했던 아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 패러다임을 21세기의 관점으로 연구한 결과물이다. 그는 존 듀이와 함께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교육자로 손꼽힌다. 그는 아동복지와 아동심리학의 개척자이자 아동 기본권으로 처음으로 공식화한 인물이다.

중세 서유럽의 흑사병

이상동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 376쪽

인류 역사에 존재했던 여러 팬데믹(세계적 유행병)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흑사병에 관한 이야기. 특히 그 영향력이 가장 파괴적이었다고 알려진 중세 서유럽의 사례(1347/8~1351년)에 주목했다. 책은 크게 종교·심성적 측면과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흑사병을 분석한 제1부와 의학사적 관점에서 흑사병을 살펴본 제2부로 구성된다.

레몽 아롱의 자유와 평등

레몽 아롱 지음 | 피에르 마낭 편집 | 이대희 옮김 | 에코리브르 | 104쪽

이 책이 세상에 나오는 계기가 된 콜레주 드 프랑스(College de France)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기초 분야에서 프랑스 최고의 연구·교육 기관이다. 이곳의 교수로 선출된다는 것은 제 분야에서 최고의 학자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1970년부터 1978년까지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학 교수로 재직했다.

민중의 시대

박선영 외 12인 지음 | 빨간소금 | 396쪽

우리에게 1980년대란 무엇일까? 80년대를 기억하는 방식은 개인마다 기록자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광주항쟁이 싹을 틔우고 6월항쟁으로 열매를 맺은 ‘민주화’의 시대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러한 정치적 주제의 중요성 때문에 이 시기에 관한 연구는 주로 ‘격변과 해방의 서사’에 집중했고, 그 결과 당대의 복잡하고 모순된 모습을 살피진 못했다.

뼈때리는 한국사

우은진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40쪽

이 땅에 살았던 옛사람들이 얼마나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살았는지 사료나 유물로는 알기 어렵지만, 뼈에는 그들의 삶을 유추할 만한 단서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삼국시대 사람들이 충치를 얼마나 앓았는지 문헌으로는 알 수 없으나 치아에는 그 정보가 남아 있다. 또 조선시대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나 평균 키를 복원하는 정보도 뼈에는 남아 있다.

나는 바다로 출근한다

김정하 지음 | 산지니 | 304쪽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바다. 바다는 미지의 공간이면서 무궁한 가능성의 공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많은 사람이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지만, 그런 해양인에 관한 인식은 소극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심지어 해양인을 ‘뱃놈’이라고 부르는 등 천시하는 시선도 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320쪽

소수자의 건강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질문해 온 저자가 그간의 연구를 소개하는 공부의 기록이자, 그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고백하는 분투의 기록이다.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노동자 등 한국 사회에서 지워진 존재들의 고통에 구체적 데이터와 정확한 문장으로 응답하기 위해 그는 막막한 상황에서도 길을 찾아 분투한다.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

수잔 시마드 지음 | 김다히 옮김 | 사이언스북스 | 576쪽

저자는 나무와 나무, 나무 개체와 숲 전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오래된 숲에 존재하며, 이 네트워크를 통해 나무들은 탄소나 질소 같은 영양 물질에서부터, 신경 전달 물질까지 전달한다는 것을 오랜 연구를 통해 밝혀냈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가 이끼나 곰팡이 같은 진균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분야별 신간

정치-사회

불편한 연금책 | 김태일 지음 | 한겨레출판 | 364쪽

산마을 너머 지금 뭐해? | 최보길 외 17인 지음 | 살림터 | 260쪽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 에코페미니즘 연구센터 달과나무 지음 | 창비 | 252쪽

전문적 학습네트워크 | 크리스 브라운·신디 푸트먼 지음 | 성기선·문은영 옮김 | 살림터 | 428쪽

역사

'포스트제국'의 동아시아 | 현무암 지음 | 김경옥 외 9인 옮김 | 소명출판 | 542쪽

한일이 함께 풀어야 할 역사, 관동대학살 | 유영승 지음 | 무라야마 도시오 옮김

| 푸른역사 | 168쪽

문학-에세이

시간은 두꺼운 베일 같아서 당신을 볼 수 없지만 | 권민경 외 9인 지음 | 교유서가 | 136쪽

오늘 사회 발코니 | 박세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16쪽

오래된 백지 | 최배은 지음 | 소명출판 | 274쪽

진 | 알랭 로브그리예 지음 | 성귀수 옮김 | 문학동네 | 152쪽

친애하는 동무들 | 노은희 지음 | 교유서가 | 280쪽

인문

이미지란 무엇인가 | 이솔 지음 | 민음사 | 244쪽

단일 질환 사망률 1위 ‘중증 뇌혈관 질환’…인체 미생물로 극복한다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난치성 치료’ 어디까지 왔나

10 뇌혈관 질환

차세대 신성장 동력으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이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염증성 장질환, 뇌혈관 질환 등 난치성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더욱 그렇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미 2건에 대해 상용화를 승인하면서 바이오산업에서의 혁신적 장이 열렸다. <교수신문>은 각 질환별 난치성 치료 현황을 국내 최고 전문가로부터 들어 보고 치료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열 번째는 뇌혈관 질환에 대해 분당서울대병원 오창완·이시운·이상효(이상 신경외과)·이효정·김근서(이상 치주과)·김준엽(신경과) 교수와 전진평 한림대 의과대학 교수(신경외과)·박현봉 국립강릉원주대 교수(생물학과)의 최신 연구 현황을 소개한다.

확실한 기술력, 안정적인 자본 확보, 다학제간 공동 연구를 통해 신속한 임상을 추진한다면, 뇌혈관질환 분야의 퍼스트-인-클래스로 국제 시장에서도 주도적인 자리를 선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연재 순서

① 염증성 장질환

② 비알콜성 간질환

③ 천식·알레르기

④ 우울·불안·스트레스

⑤ 심바이오틱 융복합의료소재

⑥ 장기 이식-간

⑦ 화농성 한선염 및 중증 여드름

⑧ UTI-요로 감염

⑨ 항암

⑩ 뇌혈관 질환

⑪ 구강·심혈관

⑫ 과민성대장증후군

⑬ 자폐

왼쪽부터 분당서울대병원의 김근서(치주과)·이시운(신경외과)·이효정(치주과)·오창완(신경외과)·김준엽(신경과)·이상효(신경외과) 교수이다. 연구팀은 뇌혈관 질환과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의 연관성을 밝히고 진단 키트와 치료제 발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진=김준엽

뇌혈관 질환은 전 세계적으로 극복하지 못한 중증 질환 중 하나로 많은 환자들에게 심각한 건강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혈전용해제·동맥 내 혈전제거술과 같은 여러 혈관재개통 치료가 개발되면서 사망률과 후유장애가 남는 비율이 일부 감소했다. 그러나 여전히 뇌졸중 환자 3명 중 1명은 보호자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장애를 안고 살고 있다. 이러한 중증 뇌혈관 질환을 대상으로 혁신적인 연구와 개발이 진행 중이다. 그중에서도 휴먼 마이크로바이옴과 연관성을 탐구한 연구는 뇌혈관 질환 예방과 치료 분야에서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이 뇌혈관 질환의 발생과 중증도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보고되고 있다. 우리 몸의 구강부터 소장·대장까지 존재하는 미생물은 우리 몸의 면역 반응을 규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내 최대의 뇌졸중 다기관 레지스트리를 구축하고 있는 김준엽 분당서울대병원 교수(신경과)는 “미생물 균형이 깨지면 만성 염증을 유발할 수 있고, 만성

염증은 동맥경화와 뇌혈관 질환, 특히 뇌경색의 위험 증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라며 “미생물이 대사 기능을 조절하고 비만 발생에 기여해 대사증후군을 조장하고, 이는 뇌혈관 질환 발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 소장 미생물은 식이섬유를 발효해 부티레이트·아세테이트·프로피오네이트와 같은 단일 사슬 지방산(SCFA: single chain fatty acid)을 생성한다. 단일 사슬 지방산은 소장의 장벽 무결성을 유지하고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데 역할을 한다. 김 교수는 “단일 사슬 지방산 생산의 이상은 염증과 뇌혈관질환 위험 증가와 관련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뇌동맥류 생성·파열에 영향 끼치는 미생물

최근 국제 학술지에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이 뇌경색뿐만 아니라, 뇌동맥류의 생성과 파열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보고됐다. 동물 실험에서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염증 반응이 뇌동맥류의 생성과 연관된다고 밝혀졌다. 뇌동맥류 환자의 분변

분당서울대병원 마이크로바이옴사업단이 누구보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 연구 과제를 통해 휴먼 마이크로바이옴과 뇌혈관 질환의 발생과 중증도와의 연관성을 밝히고, 진단 키트 개발과 치료제 발굴을 목표로 그 길을 열고 있다.

을 이식받은 마우스에서 건강인의 분변을 이식 받은 마우스보다 뇌동맥류의 생성이 촉진됐다는 결과가 있었다. 파열성 뇌동맥류 환자와 비파열성 뇌동맥류 환자의 분변을 분석했을 때, 파열성 뇌동맥류 환자의 분변에서 특정 균주의 유의한 상승이 관찰됐다.

국내 최다 뇌혈관수술을 하고 있는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오창완·이시운 교수 연구팀은 “장내 특정 마이크로바이옴이 뇌동맥류의 생성과 악화에 관여할 가능성이 높으나, 아직까지 여러 연구에서 일관되게 선별한 균주는 드물다”라며 “인종·민족 간 균주의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인으로부터 특정한 마이크로바이옴 발굴이 중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장내 마이크로바이옴과 희귀난치 질환인 모야모야병과의 연관성을 지적했다. 연구팀은 “장내 마이크로바이옴과 모야모야병과의 상관관계를 밝힌 연구는 거의 없지만, 최근 연구결과를 보면 모야모야병의 발생과 악화에도 염증 반응이 관여를 하게 된다”라며 “모야모야병에서 우월하게 발견된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이 있어 예후예측과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과 더불어 주목을 받고 있

는 분야가 구강 마이크로바이옴이다. 구강 마이크로바이옴은 박테리아·곰팡이·바이러스·원생생물·고세균 등 입안의 다양한 미생물과 그 구조적 요소로 구성된다. 구강은 장에 이어 두 번째로 풍부하고 다양한 미생물 군집으로 772종의 세균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미생물의 약 96%가 액티노박테리아(Actinobacteria)·박테로이데테스(Bacteroidetes)·피르미큐테스(Firmicutes)·푸소박테리아(Fusobacteria)·프로테오박테리아(Proteobacteria)·스피로헤타류(Spirochaetes)라는 6개 문에 속한다.

다양한 미생물 서식하는 구강과 치주질환

구강은 입천장, 치은연하·치은연상 표면, 치아, 입술, 협점막, 편도 등 다양한 표면에 마이크로바이옴이 서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미생물은 당단백질과 다당류를 생성해 치아 법랑질(에나멜)에 달라붙어 치면세균막을 형성한다. 여기에 초기 집락균과 혐기성 세균을 포함한 다양한 미생물이 서식한다. 이러한 정상적인 구성의 세균총에 불균형을 가져오는 대표적인 질환이 바로 치주질환이다. 치주질환이 진행돼 잇몸뼈가 녹고 염증 주머니가 만들어지면, 혐기성 세균의 비율

바이오산업 기술개발사업 개요

사업명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의약품 제품화

과제명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중증 뇌혈관 질환 예후예측 및 치료제〮치료기술 개발

개요 중증 뇌혈관 질환 발생·악화와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의 상관관계를 규명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 치료원천기술 개발, 효용성 검증과 상용화

주관기관 분당서울대병원(오창완)

공동연구·용역 한림대(전진평), 국립강릉원주대(박현봉), ㈜비티시너지(조희경)

연구기관 2023년 4월 1일 ~ 2025년 12월 31일(2년 9개월)

기대효과

ㅇ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중증 뇌혈관질환 원천 치료제〮치료기술 개발

ㅇ 중증 뇌혈관 질환 마우스 모델에서 인간 장내 미생물 치료 효능 검증과 기전 규명

ㅇ 중증 난치성 뇌혈관 질환 조절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상용화 기술확보

ㅇ 글로벌 수준의 기술 경쟁력 확보를 통한 뇌혈관 질환 마이크로바이옴 산업 견인

이 증가하고, 만성적인 염증 상태가 지속된다.

한 연구에서는 뇌졸중 발생과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구강 마이크로바이옴과 관련된 많은 연구결과를 발표한 분당서울대병원 치주과의 이효정·김근서 교수 연구팀은 “구강 세균총의 불균형은 면역조절이나 혈관 내피 세포의 기능을 떨어지게 한다”라며 “혈소판 응집이나 혈전 형성에 영향을 주고 온몸에 염증 상태를 만들어 중요한 혈관을 막히게 할 수 있어 뇌졸중의 위험인자가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연구팀은 “치주 질환으로 인한 잇몸의 염증 상태에서 발생되는 여러 염증 관련 단백질은 전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라며 “치주 질환에 관련된 구강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해 연구하고 밝혀내는 것이 뇌졸중을 예방하고 진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이 다양한 경로로 뇌혈관 질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생체 내외 동물 실험에 국한돼 있고 아직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미진한 상

황이다. 이에 대해 국제적으로 누구보다 앞서 분당서울대병원 마이크로바이옴사업단이 산업통상자원부 연구 과제를 통해 휴먼 마이크로바이옴과 뇌혈관 질환의 발생과 중증도와의 연관성을 밝히고, 궁극적으로 진단 키트 개발과 치료제 발굴을 목표로 그 길을 열고 있다.

연구 과제는 △중증 뇌혈관 질환 환자군과 대조군으로부터 추출된 장내·구강 미생물의 분리와 동정(분류학상 명칭을 바르게 정하기) △인체 샘플(분변·타액·혈액)의 메타지놈과 대사체 분석 △중증 뇌혈관 질환 환자와 대조군 사이 장내와 구강 내 미생물군 차이 분석 △중증 뇌혈관 질환과 연관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후보물질 발굴 △다기관 컨소시엄을 기반으로 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베이스 확대 생산 △후보 균주와 대사체를 활용한 질환 동물 모델에서의 효과 검증 △유효균주와 대사체 활용 진단 소재 도출 △뇌혈관 질환 관련 건강기능식품 시제품 개발과 후보물질을 활용한 뇌혈관 질환 조기 진단 제품 개발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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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에 맞서는 장내 미생물…급성 발병을 막아라

뇌혈관 질환은 임상 양상에 따라 출혈성 질환과 허혈성 질환으로 크게 나뉜다. 다양한 뇌혈관 질환 중에서 뇌출혈은 사망률과 장애율이 높고 치료가 어려운 중증 뇌혈관 질환이다. 뇌출혈이란 대뇌 혈관이 터지면서 발생하는 출혈로 인해 뇌 조직이 손상되는 질환으로서 급성 뇌혈관 질환 중 약 15∼25%를 차지한다.

뇌출혈 발병 후 약 40%의 환자가 30일 이내 사망하며, 성공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약 60% 이상이다. 뇌출혈에 의한 의료비용은 약 5천400억 원(2011년 대비 27.9% 증가, 2018년 「뇌졸중 역학 보고서」)이다. 하지만 다른 뇌혈관 질환에 비해 경제적 활동이 활발한 40∼60대에 발생하는 비율이 높으므로 가정경제의 붕괴는 물론 국가에 사회경제적으로도 훨씬 큰 손실을 일으키는 난치성 질환이다.

뇌동맥류 파열이 초래하는 지주막하출혈

다양한 뇌출혈 아형(subtype)에서 특히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지주막하출혈은 대뇌 혈관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질환이다. 연간 약 6만 명의 신규 환자가 발생하는데, 동맥류 파열로 인해 지주막하출혈이 발생하면 사망과 중증 장애율이 약 40%에 이르는 매우 치명적인 질환이다. 또한 생존하더라도 삶의 질이 많이 저하돼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만성 소모성 질환이기도 하다.

임상적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적절한 뇌출혈 치료제가 없는 것이 현실이며, 대부분의 치료제 개발 역시 뇌출혈 자체보다는 혈액순환을 개선하거나 고혈압과 이상지질혈증 개선 목적의 약물 개발이 주이다. 따라서 중증 뇌출혈을 일으키는 뇌혈관 질환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이를 기반으로 한 치료제 개발은 환자는 물론 실제 임상에서 중증 뇌혈관 질환을 매일 진료하는 의료진에게 꼭 필요하다.

한림대 의과대학 연구진은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중증 뇌혈관 질환 발생기전을 밝히는 것을 일차 목표로 연구하고 있다.

향후 전임상 시험과 임상 시험을 통해 질환 발생과 연관된 후보 기전의 역할과 치료제로서 가능성을 확인할 계획이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은 인체 내 마이크로바이옴 분포의 95%를 차지한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불균형과 기능 저하가 파킨슨병·근육병·자폐증 등의 다양한 뇌신경 질환의 발병과 관련된다는 것이 증명됐다. 이를 활용한 치료제로서의 가능성까지 국내외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퇴행성 질환에 국한된 뇌신경 질환 기술

하지만 국내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불균형과 미생물 매개 대사산물의 조절을 통한 뇌신경 질환의 치료 기술 개발은 대개 만성 퇴행성 뇌질환에 국한됐다. 중증 난치성 뇌혈관 질환 관련 연구는 거의 없다. 반면 해외에서는 장-뇌축 기반 휴먼 마이크로바이옴과 중증 뇌혈관 질환의 병태생리학적 연계성 연구가 증가하며 개념 확립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일본과 중국 중심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과 뇌동맥류 발생 연관성 연구가 활발한데, 일본 연구자들은 2018년도에 이미 염증 상태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이 뇌

왼쪽부터 한림대 의과대학 정혜리 박사·윤동혁 박사·전진평 교수(신경외과)·김종태 박사, 한성우 씨(박사과정)이다. 연구진은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뇌혈관 질환 발생기전을 밝히는 것을 일차 목표로 하고 있다 . 사진=전진평

동맥류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동물모델에서 처음으로 증명했다.

이후 2020년 중국에서 비록 동물모델이었지만 뇌동맥류 환자의 분변을 이식받은 마

우스에서 뇌동맥류 생성이 촉진된다는 것을 보고해 체내 마이크로바이옴 대사체의 조절이 뇌동맥류 진행과 파열에 연관될 수 있음을 밝혔다. 이후 실제 환자 연구를 통해 지주

막하출혈 환자는 마이크로바이옴의 불균형과 특정 균주가 상승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반면 중증 뇌혈관 질환에서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국내 연구는 매우 미비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외에서도 휴먼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중증 뇌혈관 질환 연구는 치료와 진단 기술 개발이 아닌 질환 발생 연관성에 중점을 두었다. 기전 분석에 의한 치료제 개발까지는 진행하지 못했다. 따라서 정부의 지원 아래 향후 중증 뇌혈관 질환인 뇌출혈에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성과물의 실용화 기반 조성과 실증은 향후 관련 분야에서 최첨단 기술을 선도할 중요한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증 뇌혈관 질환의 급성 발병을 줄여라

현재까지 중증 뇌혈관 질환은 급성 질환 발병 후 합병증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생존자의 경우 많은 신경학적 손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 보다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뇌혈관 질환의 급성 발병을 줄여야 한다. 현재까지 뇌출혈을 일으키는 혈관 질환의 내과적 치료제가 마땅히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기존의 뇌혈관 질환 발생 연구에 대한 접근이 아닌 새로운 접근 방식을 이용해야 한다.

따라서 한림대 의과대학 연구진은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중증 뇌혈관 질환 발생기전을 밝히는 것을 일차 목표로 연구하고 있다. 향후 전임상 시험과 임상 시험을 통해 질환 발생과 연관된 후보 기전의 역할과 치료제로서 가능성을 확인할 계획이다. 이러한 연구진의 노력은 일차적으로 중증 뇌혈관 질환 환자의 건강권 향상은 물론 이차적으로 국가 보건 정책에서 중요한 필수의료의 강화와 관련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진평

한림대 의과대학 신경외과 교수

마이크로바이옴으로 중증 뇌혈관 질환 예측한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 급격한 패러다임 변화가 찾아왔다. 차세대염기서열분석 기술의 발달, 유전체 분석 비용 절감에 따른 대중적 접근 그리고 다중 오믹스 적용 등을 통해 인체에 서식하는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의 전반적인 유전자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지난 15년에 걸쳐 국제적으로 산·학·연·병 컨소시엄 기반의 대형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을 이해하기 위한 다각적인 연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이제는 인체의 생물학을 바라보는 우리의 과학적 사고를 마이크로바이옴 기반으로 바꿀 수 있는 방대한 양의 실험적 근거가 도출되고 있다.

인체에는 10조∼1천 조 개 이상의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세포들이 존재한다. 이는 인체 고유 세포 수의 10배 이상이 되는 엄청난 양이다. 마이크로바이옴 유전자 수는 또한 인체의 100배 이상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마이크로바이옴 세포와 유전자는 일상 속 생활패턴에 따라 인체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형성됨을 반복한다.

지리적·유전적 그리고 여러 환경적인 요인들은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일종의 간섭요인으로 작용한다. 개인별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편차가 커질 수 있고, 이러한 부분이 인간의 건강과 질병에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현대에 들어 정상적인 인체활동이란 개념은 결과적으로 인체와 공존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이 함께 활동하는 것을 포함한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은 인체 마이크로바이옴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높은 미생물 다양성을 가진 집단이다. 건강한 장

기초과학의 연구 결과를 임상에서 자연스럽게 적용하도록 연계하며, 궁극적으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중증 뇌혈관 질환 원천 치료제·치료기술을 개발하는 장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박현봉 국립강릉원주대 교수(생물학과)는 대체 불가능한 연구를 통해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중증 뇌혈관 질환의 진단·치료·예후예측 관리에 대한 정보를 구축하고자 한다. 사진=박현봉

내 환경이란, 이러한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다양성과 안정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균형 상태를 포함한다.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안정성이 건강 좌우

한 마디로 언급하기에는 매우 불분명한 여러 원인으로 인해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불균형은 미생물의 다양성과 안정성 감소, 유익균 감소와 유해균 증가를 포함하는 상태를 유지함을 의미한다. 아직은 그 인과관계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불균형 현상은 인체 기능에 다양하게 작용해 여러 질환과 밀접한 연계성을 보여준다.

특히 마이크로바이옴 활용 전임상실험, 분변 미생물군 이식(FMT: 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과 같은 연구는 장의 비정상적 기능이 뇌졸중을 포함한 여러 뇌신경 질환의 발병·중증도와 연관이 있다고 보고해 매우 흥미롭다.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장기 가운데 뇌는 장과 떨어져 있지만, 자율신경·내분비·면역 시스템과 같은 특정 경로를 통해 쌍방 상호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부터 장 투과성을 비롯해 다양한 뇌 기능의 변화와 병태생리학적 기능이 조절된다.

특히 마이크로바이옴 유래 대사체는 주로 인체의 면역 시스템 조절을 통해 장-뇌의사소통을 매개할 수 있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은 세로토닌·트립타민·감마 아미노뷰티르산(GABA) 등을 포함해 많은 신경전달물질로 알려진 대사체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장내 미생물 유래 신경내분비물질 대사체들이 실제로 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규명돼야 할 부분이 많다.

또한 단쇄 지방산·담즙산·비타민K·폴리페놀·인돌·트리메틸 아민 N-산화물과 같은 여러 저분자 대사체군이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에 의해 유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장내 상피세포와 면역시스템을 조절하기도 하며, 여러 뇌조직과 기관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규명되고 있다. 또한 트립토판 유래 화합물들 가운데 키누레닌은 여러 염증성 뇌질환의 생화학적 마커로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놀라운 점은, 대다수 마이크로바이옴 유래 유전자와 대사체는 아직 구조적으로나 기능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필자는 현재 산업통상자원부의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중증 뇌혈관 질환

예후예측 및 치료제·치료기술 개발’을 위한 과제에 참여하고 있다. 중증 뇌혈관 질환과 마이크로바이옴 연계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현재까지 보고된 연구 결과들은 질환별 코호트가 천차만별이고, 여러 환경 요인에 따라 매우 다른 것을 기반으로 한다. 이에 국내 환자의 특이적 중증 뇌혈관 질환 대규모 코호트를 단단히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치료·진단 기술의 개발에 대한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내 특이적 환자의 대규모 코호트 구축

특히 이번 과제를 통해 △질환 특이적 유효 미생물의 분리와 동정 △대규모 코호트 기반 대사체 분석 △건강기능식품과 진단을 위한 소재발굴 △국내 환자 특이적 메타볼롬(특정 환경의 생체 또는 세포의 대사분자 총체)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제의 다기관 컨소시엄은 산·학·연·병의 여러 전문가와 협력연구에 대한 서로 간 이해도가 매우 높아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실현하고 공동의 성과를 도출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고 자부한다.

대중적이지만 대체 불가능한 연구를 통해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중증 뇌혈관 질환의 진단·치료·예후예측 관리에 대한 정보를 구축하고자 한다. 아울러, 기초과학의 연구 결과를 임상에서 자연스럽게 적용하도록 연계하며, 궁극적으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중증 뇌혈관 질환 원천 치료제·치료기술을 개발하고자 하는 장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박현봉

국립강릉원주대 생물학과 교수

충남대 20대 총장후보자 김정겸 교수 1순위 선출

“70년 역사에 걸맞는 거점국립대

소명 다할 것”…2순위 임현섭 교수

충남대 제20대 총장임용후보자로 김정겸 교수(60세, 교육학과·사진)가 1순위로 선출됐다.

충남대 총장임용추천위원회(위원장 신현진)가 지난 23일, 온·오프라인으로 총장 선거를 실시한 결과, 김정겸 교수가 1순위 총장임용후보자로 선출됐다.

1차 투표에서 김정겸 후보는 34.8%(총환산득표수-280.7표)를 얻어, 31.3%(총 환산득표수-252.8표)를 얻은 임현섭 후보와 함께 결선투표(2차)에 진출했다.

결선투표(2차)에서는 김정겸 후보가 과반을 넘는 52.88%(총 환산득표수-400.77670표)를 얻어 1순위 총장임용후보자에 선정됐다. 임현섭 후보는 47.12%(총 환산득표수-357.14570표)를 얻었다.

충남대 제20대 총장임용후보자 1순위로 선출된 김정겸 교수(교육학과) 사진=충남대

김정겸 교수는 “충남대 제20대 총장임용후보자 선거에서 1순위 후보자로 선정

된 것에 대해 모든 대학 구성원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이번 선거 과정에 함께 해 주신 3명의 후보들의 공약과 제가 제시한 아이디어를 합쳐 충남대를 지역으로부터 사랑받는 좋은 대학으로 만들고, 충남대가 70년 역사에 걸맞는 국가거점국립대학교로서의 소명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충남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2001년부터 충남대 교수로 재직해 왔으며 교무처장과 기초교양교육원장, 교육연구소장, AI융합교육연구소장, 학부교육선도대학육성사업단장, 대통령직속 국민 통합위원회 위원, 교육부 교육정책자문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김 교수는 ‘책임, 소통, 변화 이끄는 준비된 총장’을 강조해 왔다. 국가재정사업

1,200억원(연간) 추가 유치와 연구비 등 500억원(연간) 추가 확보, 외부 투자유치·발전기금 및 수익사업 등 500억원(연간) 추가 유치를 공약했다.

또한, 학생 및 취업 중심 맞춤형 교육 모델 완성, 인문학 소양과 리더십을 갖춘 STRONG 인재양성, 글로벌 학문후속세대 육성, 연구몰입환경 조성을 통한 연구중심대학 실현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캠퍼스 특성화 기반 유기적 지·산·학·연 협력 강화, 대학 창업 생태계 구축 및 활성화, 지역혁신성장을 위한 메가 캠퍼스 구축, 지역상생 사회공헌 플랫폼 구축도 약속했다.

이외에도 지속가능한 글로컬 공동체 구현과 분권형 총장제 및 책임보직제 도입, 간편한 교육·행정 프로세스 도입, 구성원 복지 대폭 강화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최승우 기자 editor@kyosu.net

변창훈 대구한의대 총장

한국사립대학총장협 회장 선출

변창훈 대구한의대 총장(사진)이 지난 17일 The-K호텔 서울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정기총회에서 제25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임기는 2024년 3월 1일부터 2026년 2월 28일까지 2년이다.

변창훈 총장은 임기동안 △사립대학 교육의 발전 및 교육제도 개선에 관한 공동협의 △사립대학의 자율성 강화를 위한 공동협의 △사립대학의 재정 확충 방안 수립 및 건의 △대학 간의 교류 및 협력에 관한 사업 등을 수행할 예정이다.

변 총장은 대학평가인증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학입학전형위원

회 위원장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수석부회장 △한국주거환경학회차기 회장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 부회장 △한국

대학교육협의회 이사 △경상북도경제진흥원 이사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이사△대구광역시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육성지원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는 4년제 사립대학 152개교 총장으로 구성돼 있는 협의체다.

김일환 제주대 총장

거점국립대총장협 차기 회장 선출

김일환 제주대 총장(사진)이 국가거점국립대 총장협의회 차기 회장으로 선임됐다. 임기는 내년 1월부터 1년이다.

국가거점국립대 총장협의회는 지난 10일 경남 진주시 K-기업가정신센터에서 2023년 제6차 정기회의를 열어 김 총장을 차기 회장으로 선임했다. 김 총장은 제주권역대학 이러닝지원센터 센터장,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도 안전관리자문단 위원, 제2대 제주테크노파크 원장 등을 지냈다. 지난 2022년 3월부터 제주대 총장을 맡고 있다.

국가거점국립대 총장협의회는 강원대·경북대·경상국립대·부산대(회장교)·서울대·전남대·전북대·제주대·충남대·충북대

등 10개 거점국립대 총장들로 구성된 협의체다.

이날 협의회는 학사학위취득 유예자의 졸업유예금 납부액을 현재 등록금 10% 수준

에서 5% 이하로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낮추기로 했다.

또한 협의회를 향후 사단법인으로 창립하기 위한 전 단계로 ‘사단법인 국가거점 국립대학교 발전협의회’ 설립을 위한 정관을 의결했다. 이를 통해 거점 국립대 간 협력체계를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차세대 배터리 시장 주도할 핵심 기술로 자리 잡을 것”

선양국 한양대 교수, 리튬배터리용 양극소재 기술 개발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선양국 교수(사진) 연구팀이 차세대 전기차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초고성능 차세대 양극소재 개발에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에너지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 <네이처 에너지>(IF: 67.439)에 게재됐다.

양극소재는 이차전지를 구성하는 4대 소재 중 하나로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 수명 및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세계 각국은 배터리 산업에서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값싼 인산 철(LFP)양극소재를 앞세워 시장에 침투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고성능의 NCM, NCA 및 NCMA 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양극소재를 바탕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이를 위해 니켈의 비중이 높은 ‘하이니켈 소재’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과학계 및 산업계 전반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하이니켈 소재의 표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부반응들은 소재를 직접적으로 열화 시키고 ‘잔류리튬’을 형성시켜 배터리의 안정성과 신뢰도를 하락시킨다.

선양국 교수 연구팀은 이런 문제를 해결한 초격차 양극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획기적인 표면처리 기술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일반적으로 하이니켈 소재는 표면의 잔류리튬을 제거하기 위해 물에 세척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연구팀은 세척 과정에서 잔류리튬을 제거함과 동시에 양극소재의 표면을 보호하기 위한 전이금속 코팅층을 수 나노미터 수준으로 형성시켰다. 또한 전이금속 코팅층 바깥에 ‘리튬 무기화합물(LiF)’을

추가로 형성시켜 배터리 사용 도중 전해액과 부반응을 억제하여 양극소재의 안장성을 대폭 향상시켰다.

연구팀의 신개발 양극소재를 활용하면 1회 충전 시 700~800km 주행이 가능하며 2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다. 이는 아직까지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과 안정성을 최초로 구현한 것이다.

또한 기존 생산 공정에도 쉽게 적용될 수 있고 공정이 복잡하지 않아 기술 상용화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해당 기술은 하이니켈 소재뿐만 아니라 저코발트 및 무코발트 양극소재에도 적용될 수 있어 차세대 양극소재를 개발하는 데에도 그 활용 가치가 높다.

선양국 교수는 “차세대 배터리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핵심 기술로 자리 잡을 것”이라며 “우리나라가 차세대 배터리 시장을 주도할 수 있도록 압도적인 성능의 소재 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를 이어가겠다”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의 에너지인력양성사업 ‘탄소중립 인력양성 에너지 혁신 연구센터’ 프로그램을 통해 수행됐다.

선양국 교수는 이차전지 분야에서 약 30년간 연구에 매진해 온 세계적 석학으로 최근에는 미세구조조절에 관한 원천기술을 개발해 양극소재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최승우 기자 editor@kyosu.net

황하정 대구보건대 교수, 한국언어치료학회 회장 취임

황하정 대구보건대 교수(언어치료학과·사진)가 한국언어치료학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임기는 2026년 12월까지 2년이다.

한국언어치료학회는 지난 11일 대구가톨릭대에서 열린 제8회 한국언어청각임상회회·한국언어치료학회 공동학술대회에서 황하정 교수를 신임 회장으로 선출했다.

황 교수는 “학회의 위상 강화와 언어치료 현장의 발전을 위해 성실하게 임하고, 학회 구성원 모두가 지향하는 성장 목표가 일치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황 교수는 “학술과 교육 사업의 질적 다변화, 언어치료 분야 정책 수요조사와 정책과제 연구 공모전, 미

래 언어재활사 역량 강화사업 분야를 선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대구대 언어치료학과와 같은 대학원 재활과학과에서 언어치료 석·박사를

마친 황 교수는 구미시장애인종합복지관, 언어치료센터 등에서 언어치료 실무를 경험하고, 한국언어치료학회 이사, 공동학술대회 부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언어치료학회는 언어장애 분야의 연구증진을 목표로 지난 1990년 설립됐다.

강소영 서울디지털대 교수,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 회장 선출

강소영 서울디지털대 교수(미디어영상학과·사진)가 2023 K-콘텐츠 국제학술대회에서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 제8대 학회장으로 선출됐다. 임기는 2년이다.

강 교수는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지평을 넓히고 있는 가운데 학술적으로 끊임없이 탐구해오신 학회 회원분들께 감사드리며 문화콘텐츠에서 우리 학회가 더욱더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문화콘텐츠 연구환경을 발전시키기 위해 학술 분야에서 진일보한 노력을 계속하며 실무와의 접목을 시도해 융복합 문화 콘텐츠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강 교수는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문화콘텐츠학 복수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언론중재위원회 위원, 방송통신위원회 ‘지역방송발전위원회’ 위원, 부산국제광고제

집행위원 등을 역임했다.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는 2007년 창립 이후 인문·사회 분야 이론을 토대로, 과학·기술과 문화·예술 관련 실무에서 국·내외 문화 콘텐츠 정책을 선도하고 있으며 학회 회원 수는 1천500명이다.

최재영 한국외대 교수, 한국중국언어학회 회장 선출

최재영 한국외대 교수(중국어통번역학과·사진)는 지난 17일 온라인으로 개최된 2023년 한국중국언어학회 제2회 해외석학초청강연회 및 정기총회에서 차기 제14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임기는 2024년 1월부터 2년이다.

최재영 교수는 중국어역사문법 분야를 지속적으로 연구하면서 『근대중국어 연구방법론1』, 『역주 박통사언해』 등 역서 및 저서를 출간했으며, 국내외에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의 중국언어학 연구와 발전을 위해 1987년 창립된 한국중국언어학회는 국내외 중국언어학 관련 연구자들이 회원으로 가입된 학회로, 학회지 『중국언어연구』를 연 6회 발

간하고 있으며 또한 매년 여름 전국 대학원생을 위한 ‘중국언어학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김상덕 경남대 교수, 상전유통학술상 ‘최우수연구상’ 수상

김상덕 경남대 교수(경영학부·사진)가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제5회 상전유통학술상 시상식에서 정책부문 최우수학술연구상을 수상했다.

김상덕 교수는 “지난 30여년 가까이 포기하지 않

고 유통분야 연구에 매달린 덕에 상을 받게 됐다”며 “유통이 실사구시적 학문인 점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 최고 유통그룹인 롯데로 부터 이 상을 받게 되는 것이 학자로서 가장 큰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우리나라 유통산업발전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계속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상전유통학술상은 2019년 제정된 학술상으로, 롯데그룹 창업자인 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호(상전)를 따서 명명됐다.

최선 이화여대 교수, 제1회 목암우수연구자상 수상

최선 이화여대 교수(약학과·사진)가 2023 한국생명정보학회가 선정한 제1회 ‘목암우수연구자상’을 수상했다.

최선 교수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반 신약개발 등 우수한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목암우수연

구자상 1회 수상자로 선정됐다. 최선 교수는 분자모델링을 이용한 이론생물물리학적 방법을 의약학 분야에 도입한 혁신적인 연구와 표적단백질 3차원 구조 및 다이내믹스, 멀티스케일 시뮬레이션, 생체내 신호전달 메커니즘 규명 및 조절제 개발과 빅데이터·인공지능(AI) 기반 신약개발 플랫폼 구축 및 활용 등으로 110편 이상의 국제 SCI급 논문을 게재했다.

다수의 국내외 특허 출원·등록 및 신약개발 산업체 기술이전 등의 성과도 거뒀다.

김영목 부경대 교수, 원종훈 학술상 수상

김영목 국립부경대 교수(식품공학전공·사진)가 지난 3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사)한국수산과학회 정기총회에서 ‘원종훈 학술상’을 수상했다.

김 교수는 2006년 한국수산과학회 회원으로 시작해 2016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수산과학회 편집

위원장으로 활동한 것을 비롯해 국내외 학술지에 논문 222건을 게재하고, 58건의 특허를 등록 및 출원하는 등 수산식품 분야 기초 및 응용 기술 개발을 통해 수산식품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원종훈 학술상’은 고 원종훈 한국수산학회 회장(전 부경대 교수)의 업적을 기리고 후학의 연구를 북돋우기 위해 1996년에 제정됐다.

장인석 경상국립대 교수, 오당학술상 수상

장인석 경상국립대 교수(동물생명융합학부·사진)가 제50회 한국가금학회의 오당(梧堂) 학술상을 수상했다.

장인석 교수는 가금영양생리 연구분야 우수 연구업적과 활발한 학회 활동을 통해 학문 발전에 이

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장인석 교수는 2000년 경상국립대 동물생명학과에 부임한 이래 100편 이상의 국내외 논문을 발표하며 동물영양생리 분야에서 우수한 연구성과를 보였다.

오당학술상은 가금학계의 선구자인 오당 故 오봉국 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학장의 학회 발전기금 기탁으로 제정된 상이다.

김호찬 안동대 교수, 현송공학상 수상

김호찬 국립안동대 교수(스마트모빌리티공학과·사진)가 지난 20일 현송공학상을 수상했다.

김 교수는 3D 프린팅 기술 연구로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으며 그 성과는 해당 분야 학문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 3D 프린

팅 분야의 산업 발전에 탁월한 공로로 2021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을 받은 바 있다. 2022년 한국기계가공학회 19대 회장을 역임했다.

현송공학상은 평생을 철강산업에 헌신한 故 주창균 동부제강 창업주가 설립한 현송문화재단이 대한금속·재료학회의 추천을 받아 산업 발전에 공헌한 공학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조태진 고려대 교수, 식품영양과학회 신진과학자상

조태진 고려대 세종캠퍼스 교수(식품생명공학과·사진)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3 한국식품영양과학회 국제심포지엄 및 정기학술대회에서 신진과학자상을 수상했다.

조태진 교수는 식품 및 생활환경 위생·안전 분야

를 중심으로 식인성 질병 원인 위해요인의 발굴·제어, 식이 기반 헬스케어, 화장품 및 살균·소독·보존제 연구 개발 분야, 우주식품 등 다양한 영역의 미생물 제어 연구를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다.

조태진 교수는 “식품학의 발전에 충실히 기여한다는 소명을 가지고 앞으로 우수한 연구 성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책임감 있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정치에 살고 정치에 죽는다

딸깍발이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한국 사회를 믿을 수 없다.’ 20대의 두 명 중 하나가 그렇게 보았다. 통계청의 2023년 사회조사 결과는 각 세대별 사회에 대한 불신의 정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10대 41.6%, 20대 46.8%, 30대 45.4%, 40대 43.3%, 50대 40.5%, 60세 이상은 37.9%로 나타났다. 특히 20대의 한국 사회에 대한 인식은 고령층과 비교해 볼 때 편차가 뚜렷하다. 청년세대가 당면한 불안정한 미래, 불평등한 삶의 조건에 대한 절망을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위기 상황에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도 조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사회구성원 간의 유대와 지지,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취약해 각자도생으로 귀결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이 드러난 셈이다.

한국의 사회신뢰도는 영국의 레가툼연구소(Legatum Institute)가 발표한 ‘2023 번영 지수’에서도 바닥권이다. 전 세계 167개국을 대상으로 교육·보건·안전·안보·국가경영 등의 다양한 지표를 평가한 한국의 종합 순위는 29위였다. 그 중 교육에 대한 접근, 인적자본과 같은 교육 항목은 싱가포르에 이어 2위

인데 반해 사회적 자본 지수는 107위로 나타났다. 실상 사회적 자본만이 아니라 정치권에 대한 신뢰는 114위,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155위로 더 밑바닥이었다. 사회적 자본지수와 국가 투명성이 높은 국가로 꼽히는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과 비교해 볼 때, 한국의 사회적·공적 신뢰도가 하위권인 이유는 민주주의가 부실한 정치 때문이다.

사회적 갈등과 위기를 증폭시키는 반동적이고 퇴행적인 정치에 그 원인이 있다. 총선이 내년으로 다가오면서 포퓰리즘에 기댄 헤푼 말들이 남발되고 있다. 책임정치는 ‘아무 말 대잔치’에 밀려난 지 오래다. 지역에 가서는 지방을 살려야 한다며 국가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말하고, 돌아서서는 ‘메가 시티’를 들먹이면서 그렇지 않아도 거대한 서울의 영토를 더 확장하겠단다. 내년도 연구개발비 예산을 대폭 삭감해 놓고도, 과학기술인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선진 과학강국을 위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도록 전폭 지원하겠다고 말한다. ‘긴축재정’을 강조하던 정부가 관변단체 지원액은 늘리고 대통령 해외순방 비용은 역대 최대 규모를 보여주었다. 자연 파괴의 주범이라며 1회용품 사용금지를 외치던 환경부는 손바닥 뒤집듯 규제 조치의 백지화를 천명했다. 미래를 내다보며 결정돼야 할 국가 정책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달라지면서 갈팡질팡 엇박자다. 무릇 신뢰에 기반한 것이 정치인데 통치만 존재한다.

20대의 한국 사회에 대한 불신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가 여기에 있다. 교육·출산·보육·주거·노후가 위태롭고, 외교·안보도 불안하기 짝이 없는 현실에 대한 우려다. 이념·계층·세대·젠더를 갈라치면서 적대와 분열로 시들어가는 한국 민주주의 실상을 비춰준 것이다. 정치권은 선거 때가 되면 표를 의식해 혁신위원회와 비상대책위원회를 내세워 포장했지만 진정 정치를 혁신하고 변화를 보여주었던가? 최고 권력만 바라보고 이해득실로 움직이는 여당이나 무엇 하나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거대 야당도 매한가지다. 말로만 국민을 위한다고 했을 뿐 자신들의 이익 앞에 국민은 늘 껍데기였다.

변혁이 필요하다. 미래 세대의 마음이 떠난 한국 사회에 혹시 지금이라도 정치가 무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당리당략에 물든 정치판을 바꾸는 일 뿐이다. 권력을 장악한 특권층의 마음대로 재단되고 있는 지금의 정치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면 결국 정치인에게 초미의 관심사인 선거가 기회다. 내년 총선이 새로운 변화를 만들도록 ‘슬기로운’ 유권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부터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무수한 말에 귀를 열고 맥락을 헤아려 들어야 한다. 국민의 필요를 과연 잘 알고 있는 사람인지, 희망을 주는 사회를 만들어 갈 사람인지, 실천을 통해 바른 정치를 보여줄 사람인지, 눈을 크게 뜨고 살펴야 한다. 정치에 살고 정치에 죽기 때문이다.

출처=갤러리 인사아트

갤러리 초대석

「 Someday」

계성미, 캔버스에 유채, 2023

계성미 작가 전시회는 다음 달 4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갤러리 인사아트에서 열린다. 삶에서의 유희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자의적 행위를 말한다. 그것은 때로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그 어떤 목표 설정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어떠한 외부적인 필연성에 의해서도 구속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이유로 그것은 노동과는 구별되어 한가로움과 여가와 자기만족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녀는 꽃을 그린다. 튤립, 장미, 국화, 작약, 빨강, 노랑, 보라, 파랑, 초록, 고운 색들이 이리저리 어우러져 있는 그림들은 흡사 그녀를 닮았다. 꽃을 바라보면 짓게 되는 미소가 그녀를 마주하면 짓게 되는 미소하고 별반 다를 게 없다. 형상을 묘사한 모든 예술 속에는 현재 보이는 것들과 잠재적으로 봐 오 던 것들이 혼재돼 있다. 이런 사실로 보아 그녀가 그려내는 꽃들은 보이는 그대로의 묘사를 벗어나 자신만의 감성으로 지난 기억 속의 색들을 다루고 있는 것만 같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별의 순간’

기고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일차적 요인이 제도인가, 문화인가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인다. 제도가 국가의 하드웨어라면, 문화는 소프트웨어다. 둘의 결합으로 작동하는 국가는 다양한 내부 및 외부 요소들과 연결된 상호작용으로 운명이 결정된다.

남한과 북한에 상반된 체제가 정착된 것은 주민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립한 냉전적 세계질서가 빚어낸 산물이다. 냉전은 민족분단을 낳은 한편, 대한민국이 북한과 체제 경쟁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모든 위기는 역설적이게도 도약의 기회가 된다.

남한과 북한은 둘 다 공화국이지만, 제도의 차이가 운명을 갈랐다. 1989~1990년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진화가 자유민주주의로 끝났다는 선언을 했다. 하지만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을 반증한다.

결국, 체제는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운영한다. 그런 맥락에서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정치사상가가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에선 통치자의 권력의지와 자질을, 『리비우스 논고』에선 시민적 덕성을 강조했다. 전자의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자고, 후자는 공화주의자다. 그런 이중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문제는 그의 이중성이 아니라, 흔히 말하듯이 정치란 살아있는 생물이

라서 때에 맞는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혁신을 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혁신을 추진하는 지도자의 덕성을 ‘비르투(virtù)’라고 지칭하고, 환경의 도전적 요인을 ‘포르투나(fortuna)’라고 총칭했다. 로마인들은 세상의 우연적 사건들은 운명의 여신인 ‘포르투나’의 장난이라 여겼다. 우연을 필연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별의 순간’을 잡는 지도자의 능력이 ‘비르투’다. 미국 존스 홉킨스대 명예교수인 존 포칵은 그 전환의 순간을 ‘마키아벨리언 모멘트’라고 명명했다.

인간사는 국가든 개인이든 ‘비르투’ 대 ‘포르투나’의 관계로 전개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별의 순간’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포르투나’를 제압하는 ‘비르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공정과 상식을 주창하면서 잡았던 ‘별의 순간’은 더는 없다. 이젠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가시밭길을 만날 거다. 다음 ‘별의 순간’은 누가 잡을 것인가? 이재명 대표든 아니면 그 누구든 간에 ‘비르투’ 대 ‘포르투나’의 시험대가 펼쳐질 것이다. 결국, 시대정신의 바람을 타는 자가 ‘별의 순간’을 잡는 주인공이 된다.

국가는 선진국이 됐지만 한국인들은 불행하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불행의 늪에 빠진 한국인들이 집단으로 범하는 미래의 한국인을 죽이는 ‘사회적 자살’이 저출산이다. 따라서 국가의 미래와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비교와 경쟁에 찌든 한국인의 마음의 습관부터 개조해야 한다. 국민의 심판인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계층·젠더·세대·지역 간에 갈등이 더 심화할 전망이다. 갈라

치기 전술로 선거판의 승패가 갈리는 풍토에선 요동치는 국제정세로 나타나는 ‘포르투나’의 변덕을 제압할 역량을 가진 지도자가 선출될 수 없다.

그런데 김포가 서울로 편입되는 것은 수도와 지방의 갈라치기인가, 포용인가? 선진국이 된 이후 한국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별의 순간’을 잡는 시대정신은 포용과 혁신이다. 포용이 경계 밖의 것들을 안아내려는 노력이라면, 혁신은 경계 밖으로 자기 영역을 넓히려는 기획이다. 포용이 한 공동체를 결집하는 구심력이라면, 혁신은 공동체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원심력이다.

대한민국이 냉전의 ‘포르투나’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해서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마카아벨리언 모멘트’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혁신의 지도자와 민주적 덕성의 시민들의 노력과 헌신 덕분이다. 이제는 제2의 ‘마카아벨리언 모멘트’를 해야 할 때고, 그 성공 여부는 포용과 혁신의 시대 정신 바람을 탄 지도자와 국민에게 달려 있다. 우리가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으로 역사의 시험대를 통과하면, 우리는 진정 21세기를 선도하는 글로벌 문명국가로 도약하는 새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

* 필자와 모임의 동의를 얻에 이 글을 게재합니다. 글의 출처는 <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 소식지 ‘성숙의 불씨’ 제

860호 「‘별의 순간’의 시대정신: 포용과 혁신」.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철학과현실> 책임편집위원

‘마감하는 아빠’로 살아가기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한국 고전을 전공하겠다고 대학원에 진학하기를 결정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삼국지』나 『수호지』와 같은 고전 소설을 무척 좋아했고 역사책에 푹 빠져있었기에, 어른이 되어서도 이 재미있는 것을 더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물론 대학원생으로서의 삶은 쉽지 않았다. 수업 과제·발표문·번역 원고 마감 등 수행해야 할 과업이 쉼 없이 이어졌다. 그렇지만 이 모두를 곧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했기에, 무엇보다도 작은 글, 작은 발표 자리를 통해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기에, 이 길로 들어선 이후에도 별다른 후회는 해본 적 없었다.

그러다 석사과정 수료 이후 결혼을 하게 되었고, 박사과정에 들어와서는 딸아이도 태어나게 되었다. 나와 닮은(!) 아이를 품에 안는다는 것은 이전까지는 겪어 보지 못한, 기쁨이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신비로운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는 그러한 새로운 감정을 선물해 준 한편으로, 전과는 비교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고된 시간을 겪도록 만들기도 했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모든 아이가 그러하겠지만, 우리 아이도 어릴 적부터 유난히 잠이 없어 애를 먹어야 했다. 당시는 대학원 입학 이후 가장 바쁘고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과제 마감은 내일까지, 발표문 마감은 모레까지, 번역 원고 마감은 이번 주말까지…. 어서 아이를 재워야 마감 거리를 제시간에 처리할 수 있을 텐데, 아이를 보고 있는 이 시간이면 발표문 몇 줄을 더 쓰고, 번역 몇 자를 더 할 수 있을 텐데. 조급한 마음에 여러 방법으로 어르고 달래보았지만, 그럴수록 아이는 더욱 크게 울어댈 뿐이었다.

바로 이때가 대학원으로의 진학을 처음으로 후회한 시간이었다. 어떤 삶이든 결코 쉬운 것은 아니고, 어떤 직업이든 나름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일찍 취업의 길을 선택해 직장인으로서 살아갔다면, 적어도 저녁과 주말만큼은 온전히 가족에게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이의 어린 시절을 보다 평안한 마음으로 함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와 같은 생각을 한동안 떨치기 어려웠다.

이런 미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그래도 못난 아빠를 언제나 반갑게 맞이하고 좋아해 준다. 박사논문 최종심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드디어 박사논문을 통과했다고 하니, 당시 5살이던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함께 기뻐해 주면서도 이렇게 물었다. “아빠는 뚱뚱한데 어떻게 박사논문을 통과했어요?” 박사논‘문’이라 하니, 무슨 지나가야 하는 문인 줄 알았나 보다. 아이는 아직도 아빠가 뭘 하는 사람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가끔 물어보면, ‘마감하는 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하면서 매번 하는 변명이란 ‘마감’ 뿐이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겠다.

8살이 된 요즘은 피아노와 종이접기에 푹 빠져있다. 커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도 하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힘껏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고전 소설과 역사책에 빠져있던, 단지 그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공부를 시작했던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자신의 흥미를 진로에까지 연결시킨 다른 수많은 ‘학문후속세대’ 동지들 역시도 각자 저마다의 고충 어린 이야기를 품은 채,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그곳을 향해 치열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마감하는 아빠’로서 큰 몸집을 이끌고 논‘문’을 통과하기 위해 매번 낑낑대고 있는 나처럼.

그래도 비록 마주한 현실이 생각만큼 녹록지 않을지라도, 정말 좋아서 공부를 시작했던 그때의 마음과 열정만큼은 잊지 않고 지냈으면 좋겠다. ‘덕업일치’의 삶만큼 보람되고 기쁜 일도 없다는 순진무구한 뜻을 가슴 한편에 오롯이 품은 채로.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언가의 마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 모든 동지들, 부디 기한을 넘기지 않고 무사

히 제출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파이팅.

정용건

강원대 국어국문학과 BK21사업팀 선임연구원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에서 「중종대(中宗代) 관료(官僚) 문인(文人)의 학적 지향과 문학의식」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선 전기의 문학 지형을 깊이 있게 살피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의 번역위원(외부역자)으로서 『일성록(日省錄)』 번역에도 참여하고 있다. 쉽지 않지만, 언제나 마음만은 넉넉하게 지닌 채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김상돈의 교수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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