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참사의 상흔을 넘어, 새 시대의 성찰이 필요할 때

글로컬 오디세이

오승희

서울대 일본연구소 HK연구교수

올해는 1923년 관동대지진 100년, 1945년 일본에서 전쟁이 끝난 지 78년, 1953년 한국전쟁이 종료된 지 70

년, 동일본 대지진 발생 12년, 그리고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지 1년이 되는 해다. 지난 3년간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쟁과도 같은 상황 속에서 안전을 위해 자유가 제한된 삶을 살았다. 팬데믹 이후 국제질서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전쟁이 발발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이후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대다수의 전후 태어난 사람들은 동시대의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지난 전쟁과 재난으로 인한 참혹한 인권침해와 피해자들의 고통을 돌아보고,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개인의 자유와 생명, 그리고 인권의 가치가 지켜지는 일상의 소중함,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겨야 할 때다. 필자는 올해 8월 히로시마(広島)와 나가사키(長崎)를 방문해 지난 전쟁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기억과 망각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1945년 전쟁이 끝날 때 히로시마에는 1945년 8월 6일, 나가사키에서는 1945년 8월 9일 원자폭탄 ‘리틀보이’와 ‘팻맨’이 각각 투하됐다.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일본인은 물론 조선인들도 중국인들도 피폭당했다. 일본은 ‘세계 유일의 원자폭탄 피해국’으로서 이후 핵을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제시했다. 매년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서 열리는 평화기념식전에는 전 세계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핵의 위험성과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외친다.

히로시마 공원에 위치한 평화기념 자료관은 피폭자의 목소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피폭당한 사람, 피폭 당시의 물건들, 처참한 풍경,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감정을 만날 수 있도록 드라마틱한 전시 공간을 구축해놓았다. 보다 주목한 것은 핵폭탄 투하를 결정했던 미국의 관련 문서들을 소개하고 있는 공간이다. 전쟁의 비참함을 각인시키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잔인한 인간의 범죄행위였으며, 전쟁과 핵무기 사용을 지양해 평화롭고 안전한 일본과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적극 발신하고 있다.

올해 8월 15일 한국에서 개봉해서 약 32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인기를 얻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는 일본에서는 개봉

매년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서 열리는 평화기념식전에는 전 세계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핵의 위험성과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외친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필자 촬영. 제공=오승희

되지 않았다. 맨하탄 프로젝트와 폭탄 투하라는 사실을 아직 직면하기 힘들기 때문일까?

그 당시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던 영화는 은퇴를 선언했던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의 10년 만의 작품 「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였다. 일본에서는 7월 14일 개봉했고, 한국에서는 지난달 25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새로운 세계로의 전환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한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진다. 전쟁기에 유년 시절을 보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미래 세대가 과거 세대를 ‘기억’하고, 주변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면서, 나아가 이전의 세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무엇을 기억하고자 하며, 무엇을 기억하지 않으려 하는가? 히로시마의 시계는 1945년 8월 6일에 멈춰있다. “왜 원자폭탄이 투하되게 됐는가?”, “왜 많은 조선인들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었는가?”라는 질문은 전시되지 않고 있었다. 핵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는 히로시마이지만, 후쿠시마 오염수·처리수 문제에 대한 논의는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히로시마 정상회담에 참가한 G7 국가들이 핵보유국으로서 핵 억지력에 대한 입장을 가진 것과 미국 핵우산 속에서 일본 정부가 핵무기금지 조약(TPNW)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모순이라는 논란이 제기되

기도 했다. 핵·생명·인권·평화를 향한 외침 속에 핵무기와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이중적 인식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기록하며 이를 미래에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노력에는 언급되지 않는 것, 망각되고 있는 것에 대한 목소리 내기가 필요하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동일본·대지진·이태원 참사 등 각종 지리적·사회적 재해 재난과 빈번해지는 기후 문제 속에서, 피폭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치유와 트라우마 극복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여러 가지 재해와 재난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 그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들, 이를 전달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치유라는 집단적 과제는 앞으로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전쟁보다 평화를 지켜 나갈 수 있는 방법, 사회적 치유와 사회적 집단의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고뇌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화여대에서 정치학과 동아시아학을 공부하고,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게이오대, 대만 국립정치대, 일본 히로시마평화연구소 등에서 방문연구를 수행했다. 전공분야는 중일관계, 일본 외교정책이며, 주요 연구로 『동아시아 인정투쟁』(2023), 「일본의 가치지향 외교 네트워크」(2022), 「한일국교정상화와 중일국교정상화의 외교전략」(2022), 「과거사를 둘러싼 인정투쟁」(2021), 『전후 중일관계 70년』(공저, 2019) 등이 있다.

상아탑에 갇힌 인문학…시대적 위기에 당당히 맞서라

인문학의 위기 담론과 리더십

순수학문 이상과 사회적 활용

최근 100세를 맞은 헨리 키신저(1923~)는 『리더십』(민음사, 2023)에서 지도자에게는 무엇보다 ‘역사의식과 비극에 대응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와 관련해 특히 인문학은 “타인과 자신의 심리와 세계를 폭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강조했다.

사실 한 사회나 조직에서 리더가 지닌 가치와 역할은 평상시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평소에는 현상을 유지할 정도의 관리자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리더와 리더십의 중요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마치 사바나 초원에서 살아가며 흔히 ‘프라이드’로 불리는 사자 무리의 수사자처럼.

평소 사냥과 양육은 암사자들이 도맡아 하고 수사자는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무리를 위협하는 적이 침입하거나 기린이나 코끼리처럼 암사자만으로는 사냥이 어려운 먹잇감이 포착되면 수사자는 주저 없이 능력을 발휘해서 위기를 극복하거나 목적을 달성한다.

그렇다면 인간 세계에서 리더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능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초원보다 훨씬 더 불확실한 상황이 쉴새 없이 발생하는 가운데서도 조직을 생존과 발전의 방향으로 동시에 이끌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일차적으로는 조직의 위기 상황발생 시 신속하게 대처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조직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기술인 위기 대응능력일 것이다.

시대정신 파악하고 변화에 적응하기

나아가 항상 같은 방식으로 생존해도 만족하는 동물의 세계와 달리 늘 변화를 추구하는 인간 공동체의 성격을 이해하고 구성원들이 지금 여기서 가장 필요로 하는 바, 즉 시대정신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새로운 공유 비전으로 개념화한 후 다시 구성원과 더불어 성취할 수 있는 자세와 역량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나폴레옹이 ‘리더란 희망을 파는 상인’이라고 단언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리더가 구성원과 공유할 수 있는 희망(비전)을 제시하고 구현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능력은 아마도 역사의식에 기

반한 인문학적 상상력일 것이다.

주지하듯이 인문학이란 인류가 자신과 세상을 마주하며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한 내용, 즉 우리의 체험과 감정과 사유를 이른바 ‘문·사·철’의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 인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가장 근원적인 물음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관심을 표시해 왔으며, 때로는 인지의 발달이나 지식의 진보에 따라 때로는 시대의 흐름이나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전혀 새로운 해답을 제시하곤 했다. 그리고 인문학은 항상 그 질문과 대답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런데 인문학의 본성과 연관해서 특별히 주목할 점은, 각각의 개별 대상을 인식하거나 전달하는 주체가 대상을 단지 객체로만 간주하고 거리를 둔 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주체의 이해와 관심이 좀 더 깊이 개입돼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자연과학의 경우 대상에 대한 인식주체의 개인적인 입장은 최대한 배제하고자 노력하며 동시에 객관성을 학문성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반면에 인문학은 일차적으로 대상 세계를 온전히

파악하고자 시도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 대상과 마주한 인간 자신의 태도에 관해 지속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리더십에 대한 사유의 지평이 점차 확장

인문학이 경영학이나 행정학 같은 여타 응용학문 분야의 리더십 담론과 차별화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 지점에서 일 것이다. 여타의 학문에서 리더십은 조직의 원만한 관리나 경영 혹은 생산 지표의 향상을 궁극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머지는 사실상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인문학자는 한편으로 리더십의 개별 연구 주제와 대상을 온전히 파악하고 의미 있게 전달하고자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그 과정에서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자신의 인식 태도나 학문적 입장을 곱씹어 보고 반추할 것이다. 이에 더해 아마도 인문학자는 리더십에 관한 사유의 지평이 점차 확장되고 있으며, 나아가 현실을 살아가는 지식인의 실천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자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근원적인 수준에서 리더의 역할을 음미하고

시대정신에 따라 리더십의 방향을 조망하는 문·사·철의 담론을 풍부하게 경험한 학생이나 독자도 여타 학문영역에서 제시하는 조직관리 기술이나 생산성 향상에 대해 고민하는 수준을 넘어서 사회 전체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전개할 것이다.

이미 지난 20세기 후반부터 한국 인문학계에 떠돌아다녔고 현재도 자주 논의되고 있는 이른바 ‘인문학의 위기’ 담론을 떠올려 보자.

인문학의 무수한 연구 성과들이 현실사회의 다양한 영역이나 층위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되도록 전공자들이 적절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여전히 순수학문의 이상만을 추구하는 작금의 상황은 인문학 외부에서 볼 때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실상 인문학의 위기를 악화시키는 원인 중의 하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이 바로 리더십에 관한 인문학 차원

의 접근과 활용이 필요한 현실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서영식

충남대 교수·리더십철학 리더스피릿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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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시기 및 직급

• 임용예정 시기 : 2024. 3. 1.

• 임용직급 : 조교수

지원서 접수 및 서류 제출기한

• 온라인 접수기간 : 2023.11.08.(수)13:00 ~ 2023.11.23.(목) 15:00 (온라인접수만 가능)

• 서류 제출기한 : 2023.11.08.(수) 13:00 ~ 2023.11.24.(금) 17:00 (한국시각 기준) 교무과 도착분에 한함.

(주말, 공휴일은 접수 불가) : 지원서 등 출력물 서류 제출은 우편 접수만 가능합니다.

• 주 소 : 우) 35349 대전광역시 서구 도안북로 88(도안동) 목원대학교 교무과 교원 신규임용 담당자 앞

• 전 화 : (042)829-7092~7096 FAX : (042)829-7098

[88 Doanbuk-ro, Seo-gu, Daejeon, Korea 35349 Tel. +82·42·829·7092~7096 fax. +82·42·829·7098]

문 의 처

• 연락처 : Tel. (042) 829-7092~7096

• 주 소 : 우) 35349 대전광역시 서구 도안북로 88(도안동) 목원대학교 교무처 교무과 교원 신규임용담당자

2023년 11월 8일

목원대학교 총장

사립대 선정은 ‘바늘 구멍’

글로컬대학30 향후 계획

글로컬대학위원회는 지난 13일 2023년 글로컬대학 본지정 평가 결과를 발표하며 세 가지를 교육부에 제안했다. 글로컬대학의 혁신 계획은 우수하지만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각 대학이 제출한 실행계획서를 토대로 1차 연도 이행에 착수하지만, 내년 2월까지 전문가 컨설팅을 거쳐 실행계획서를 수정·보완한다. 대학별·연차별 지원액 규모도 실행계획서 수정 사항을 감안해 최종 결정한다.

글로컬대학으로 지정된 대학은 3·5년차에 중간·종료 평가를 받는다. 실행계획이 이행되지 않았거나 성과가 미흡하면 협약 해지나 지원이 중지되고 사업비를 환수할 수도 있다. 통합을 전제로 공동 신청한 경우, 협약 체결 후 1년 안에 교육부로 통합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글로컬대학위원회는 또, 이번 본지정 평가에서 미지정된 대학(순천향대, 인제대, 연세대(미래), 전남대, 한동대)은 혁신성은 우수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내년에 한해 예비지정 대학의 지위를 인정해주자고 교육부에 제안했다. 교육부는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올해 글로컬대학 10개 대학을 지정한데 이어 내년에는 10개 내외, 2025년과 2026년에 각각 5개 내외를 추가로 지정한다. 내년에는 1월 중에 ‘2024년 글로컬대학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4월 예비지정, 7월에 본지정을 할 예정이다.

2024년 예비지정 평가를 통해 15개 내외를 신규로 예비지정할 계획이다. 올해 예비지정이 됐다가 본지정에 포함되지 못한 5개 대학이 내년에 한해 예비지정 대학으로 인정받게 되면 2024년 예비지정 대학은 총 20개 내외가 된다.

글로컬대학위원회는 대학 유형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방안, 여러 대학이 연합해 신청하는 경우 신청 자격을 부여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합 신청은 예를 들어, 공동 거버넌스 구축·운영, 공동 교육과정 운영, 공동 교원 운영 등을 말한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국립대 사무국장, 교수·민간 전문가로

국립대 사무국장을 일반직공무원에서 ‘교수·민간’에 개방하고 총장이 원하는 인재를 임용하는 방안이 법령 정비를 마쳤다. 강릉원주대 등 13개 국립대의 명칭도 변경해 기존 대학이름 앞에 ‘국립’이 붙는다. 국립대학 간 통·폐합 절차에 관한 법령상 근거도 마련됐다.

교육부는 지난 1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립학교 설치령 등 4개 법령 개정안이 심의·의결됐다고 밝혔다.

국립대 총장은 교수나 민간 전문가를 사무국장으로 임용할 수 있게 됐다. 일반직공무원 정원 27명을 별정직공무원 정원 27명으로 전환한다. 교육부는 “이번 법령 정비를 통해 국립대의 자율적 혁신과 성장을 앞당기고 대학이 주도하는 교육개혁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밝혔다.

이번 국립학교 설치령 개정을 통해 국립대 총장은 자율적으로 인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총장은 사무국장을 별정직공무원으로 임용하거나 교수 중에서 임용할 수 있다. 별정직공무원으로 임용하는 경우 임기는 1년으로 하되 한 차례 이상 연장할 수 있다. 연장 기간은 1년 이내로 한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벽 허물기, 통합·무전공·지산학 협력 강조

2023년 글로컬대학 10개 대학 특징

2023년 글로컬대학에 선정된 10개 대학의 키워드는 역시 ‘벽 허물기’였다. 국·공립대 통합과 무전공 입학, 지·산·학 협력 체계 강화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캠퍼스별 특성화, 대학의 강점 분야 경쟁력을 높이려는 대학의 노력이 주목을 받았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분류한 혁신 모델별로 10개 대학 특징을 정리했다.

지역동반성장 모델

강원대·강릉원주대_ 초광역단위 1도 1국립대

오는 2026년에 1도 1국립대 거버넌스를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특성화된 4개 캠퍼스의 연계로 강원권을 포괄하는 지역거점대학 모델을 제시했다. 춘천캠퍼스는 교육·연구, 원주는 산학협력, 강릉은 지학연협력, 삼척은 지역산업 특성화를 추진한다. 1총장, 3캠퍼스 총장(강릉·삼척·원주)체제다. 권역별 문제해결을 위해 캠퍼스 특화 리빙랩(개방형 실험실), 기술개발과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아이디어랩을 운영한다. 아이디어랩은 대학 연구실이 단독(융합) 형태로 기업 연구소 역할을 담당한다.

학생선택권 확대를 위해 120개 전공(65.6%), 모집정원 4천90명(65.9%)이 벽 허물기에 참여한다.

안동대·경북도립대_ 전통문화 기반 공공형 대학

2025년 3월에 국·공립대 통합 대학을 출범할 계획이다. 경상북도의 7개 교육·연구기관(한국국학진흥원 등)을 통합 운영해 새로운 공공형 대학 모델을 추진한다. 지역문제에 대응해 경상북도와 국립대가 대학·연구기관·지역 특화 분야를 아우르는 게 특징이다. 전체 도민 대상 교육기회를 확대하고, 경북도립대는 국립대로 통합 후에도 도립대로 가졌던 역할을 강화할 계획이다.

인문학을 중점분야로 선정했다. K-인문콘텐츠 허브 구축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한 K-인문 新한류를 추진한다. 2024년에 100% 완전 자유전과제를 실시하고, 2025년에 학과 단위를 폐지해 학생 선택권을 강화할 예정이다.

충북대·한국교통대_ K-교육 글로벌수출형 대학

대학 통합을 계기로 지역 주력산업 분야 중심으로 캠퍼스를 특성화한다. 청주(오송) 캠퍼스는 기초·원천 기술 중심의 연구중심

2023년 글로컬대학 본지정 10개 대학

연 대학 구분 지역 유형 주요 특징

1 강원대·강릉원주대 공동 강원 국립 1도 1국립대를 통합 글로컬 대학도시

2 경상국립대 단독 경남 국립 우주항공방산 분야 글로컬 선도대학

3 부산대·부산교대 공동 부산 국립 Edu-TRIangle이 만드는 새로운 미래교육도시

4 순천대 단독 전남 국립 특화분야 강소지역기업 육성 대학

5 안동대·경북도립대 공동 경북 국·공립 K-인문 세계 중심 공공형 대학

6 울산대 단독 울산 사립 울산 산업 대전환을 견인하는 지산학 일체형 대학

7 전북대 단독 전북 국립 전북과 지역대학을 세계로 이끄는 플래그십 대학

8 충북대·한국교통대 공동 충북 국립 통합을 통한 혁신 극대화로, 지역과 함께 세계로

9 포항공대 단독 경북 사립 지역에 뿌리내려, 세계로 뻗어나가 열매 맺는 글로컬대학

10 한림대 단독 강원 사립 AI 교육 기반의 창의 융합인재를 양성하는 열린 대학

출처 : 교육부

대학으로, 충주(의왕)는 공학 중심의 교육연구 혁신대학으로, 증평과 오창은 이차전지·반도체·바이오·모빌리티 실증캠퍼스로 특성화한다.

해외에 K-철도 교육모델을 수출하고, K-컬처 기반 융합국제대학을 설치한다. 글로벌 학·석사 연계과정을 도입해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할 계획이다.

자율전공학부를 확대하고 무전공제는 2025년 9.5%에서 2027년 20%까지 확대한다. 무제한 전과제와 다전공학기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첨단인재양성 모델

경상국립대_ 우주항공방산 허브 대학

우주항공대학을 신설하고, 특화 분야를 집중 육성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우주항공과 방위산업의 국내 최대 집적지인 경남의 지역적 특성을 활용한 우주항공방산 허브 대학 모델이다.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전원 전액 지원한다. 항공우주공학부 무제한 전과를 허용하고, 졸업생의 50% 이상을 우주항공 분야 진출을 목표로 한다. 대학원과 연구소 통합조직인 경남형 우주항공방산과학기술원 등으로 연구 역량도 강화한다.

경남지역 전문대학과 연계 체제도 구축한다. 지역 전문대학 학생은 경상국립대 우주공학부에 무제한 편입학이 가능하도록 하고, 현장 활용기술 단기 취득 과정도 운영할 예정이다.

울산대_ 지산학 일체형 대학

대학이 지역 산업의 대전환을 견인하는 지산학 일체형 대학 모델을 제안했다. 도심과 주력 산업단지 6곳에 멀티캠퍼스를 설치한다. 기업의 기술개발과 신산업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기업지원 콤플렉스를 운영한다. 1천억 원 규모의 지역산업육성기금 조성으로

주목을 받았다.

기존 10개 단과대학 51개 학부(과)를 6개 단과대학 16개 융합학부로 개편해 無학과 체제를 갖춘다. 2025년부터 의과대학 등을 제외한 모집정원 100%를 융합학부로 모집할 계획이다.

학부 정원을 줄이고 신산업 분야 대학원(차세대이차전지융합·탄소중립기술융합·의과학대학원)을 신설한다. 유니스트와 공동 학위과정을 운영할 예정이다.

포항공대_ 대학-지역 동반 성장 대학

연구중심대학의 역량을 토대로 교육-연구개발-기술창업 지원까지 첨단 신산업 발전을 선도한다는 전략이다. 국내를 뛰어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으로 도약하는 게 목표다.

신입생 전원 무학과 선발을 유지하고, JA(Joint Appointment) 교원 100% 추진으로 학문 간 벽 허물기에 나선다. JA 교원은 학과와 학과, 대학과 대학, 대학과 산업체 공동으로 소속된 교원을 말한다.

이차전지·수소·원자력·바이오·반도체 등 우선 추진할 강점 분야를 선정하고 R&D 역량을 집중한다. 연구개발부터 제조·양산, 글로벌화까지 지역기업을 통합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미래교육혁신 모델

한림대_ AI 교육기반 창의인재 육성 대학

AI기반으로 개별화된 학습 경험을 제공해 맞춤형 인재를 양성한다. AI 에듀테크 센터를 설립하고 콘텐츠·강의·평가 전 단계에서 적용할 AI 교육 솔루션을 개발한다. 2032년 까지 전체 교과목의 20%를 AI 교수가, 50%를 AI 튜터가 담당한다는 계획이다.

학과 중심 체제에서 3대 융합 클러스터(의료·바이오, 인문사회, AI) 중심 체제로 대학의 운영 구조를 탈바꿈한다. 융합 클러스터 중심의 모집단위 광역화를 추진하며, 학생의

전공 자율 선택권을 보장할 예정이다.

부산대·부산교대_ New 종합교원양성대학

AI·디지털 역량을 갖춘 종합교원양성대학 모델을 제시했다. 두 대학의 교육기능을 일원화해 교육중점대학을 추진한다. 현 부산교대 캠퍼스에 교육기능 수행기관을 이전하고 재배치한다. 미래형 강의실로 공간 혁신, 첨단 교육기자재를 구비한 교육 전문 디지털 인프라 구축과 최첨단 교육공원 ‘KREON 에듀테마파크’를 조성한다. 지자체·지역 교육청·기업과 함께 세계적인 에듀테크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첨단 의생명·바이오 융합분야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도 조성한다. 캠퍼스 내에 국책연구소와 정부 산하기관 등을 유치하고 입주기업 지원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글로벌심화 모델

전북대_ 글로벌혁신 플래그십대학

지역기업의 수요 맞춤형 인재양성부터 지역의 현안 해결을 위한 싱크탱크 역할까지 대학이 지역을 위해 전방위적 역할을 맡는다. 새만금-전주·완주-익산·정읍을 삼각형으로, 전북대 캠퍼스와 산업체를 일체화하는 대학-산업도시 트라이앵글을 조성한다. 기초 지자체의 현안 문제 해결을 위해 싱크탱크인 ‘JBNU 지역발전연구원’을 설립한다.

온·오프라인 국제캠퍼스(센터)를 설립하고 유학생 현장실습·인턴제 도입 등 정주 지원으로 외국인 유학생을 적극 유치할 계획이다. 현재 106개 모집단위를 2025학년도에 42개, 2028학년도에는 24개 모집단위로 줄인다.

고등교육서비스 확대 모델

순천대_ 강소 지역기업 육성 대학

중소기업, 농업 중심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지역산업 3대 특화 분야를 중심으로 대학 학사구조를 전면 개편한다. 기존 5개 단과대학을 폐지하고, 스마트팜 스쿨·애니메이션 스쿨·코스모스 스쿨(우주항공·첨단소재)·평생교육 스쿨로 바꾼다. 3대 특화 분야에 정원 75.4%를 배정하고 분야별 無학과 광역 모집을 추진한다.

실무형 인재양성을 위해 2+1+1 교육 모델과 실무형 트랙제(취업·창업·진학트랙) 등 탄력적인 학사제도를 운영한다. 또한 전남지역 내 교육소외지역, 인구감소지역을 중심으로 평생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죽기 위해 자살하는 게 아니다

오진탁 지음

우리 사회는 1997년 ‘외환위기’부터 계속해 카드대란 등 다양한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사회 위기도 함께 확산되고 있다. 사회위기는 경제 위기보다 훨씬 심각하다. 극단주의 세력의 득세와 정치의 실종, 경제적 가치 편중과 물질만능, 교권의 추락과 교실의 붕괴, 폭력적인 인터넷 문화 등 사회병리 현상은 일단 생겨나면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모건스탠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2년 1인당 명품 소비를 제일 많이 했다. 미국 퓨(Pew) 리서치센터가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가치’ 설문조사에서 선진국 중 유일하게 ‘경제적 능력’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는다. 인간이 돈의 주인이 아니라 돈이 인간의 주인이 되어 우리 사회에서 유일한 가치 기준이 되었다. 행복학 전문가 에디 디너 교수는 지적한다. “한국은 지나치게 경제(물질) 중심적이다. 경제중심의 가치관은 사회적 관계나 개인의 심리적 안정 등 다른 가치를 희생하고 있다.” 인문학계의 원로 김우창 교수도 한국 사회를 ‘정신적 불행이 일상화된 사회’라고 진단한다. “한국 사회는 정신적 폐허 속에 있다. 위기 상황의 심각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마음속에 계속돼야 하는 정신적 성찰이 없어졌다. 지금 우리 사회는 큰 외면적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공동체의 붕괴로 인해 정신까지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인터북스

도서출판 학고방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 초빙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관계법령에 의해 경제〮인문사회분야 24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지원〮육성하고 있습니다. 연구기관 경영혁신을 위한 비전을 가지고 21세기 지식기반사회의 연구 및 국가정책개발을 선도할 수 있는 역량 있는 분을 원장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 대상기관 :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 지원자격 : ◦ 연구기관의 경영혁신을 적극 추진할 수 있는 분

◦ 해당 연구분야에 관한 식견이 풍부하고 덕망이 있는 분

◦ 조직경영에 대한 경륜과 식견을 가진 분

◦ 국제감각과 미래지향적 비전을 가진 분

◦ 국가공무원법 제33조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지 아니한 분

◦ 원장으로 재임하는 기간 중 휴직 가능한 분(겸직 불가)

■ 제출서류 ◦ 이력서(사진 첨부)

(각 1부) ◦ 주요 업적 및 경력소개서(A4 5매 이내)

◦ 연구기관 운영 및 경영혁신에 대한 소견서(A4 5매 이내)

◦ 주민등록등본

※ 제출서류 양식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홈페이지 공지사항 참고

■ 서류제출 방법 : 방문, 등기우편, 이메일(phar@nrc.re.kr) 접수

※ 평일 근무시간 외에는 방문제출 불가

■ 서류제출 기한 : 2023. 11. 20.(월) - 11. 29.(수) 17:00까지 제출서류 도착분에 한함

■ 접수처 : (우) 30147 세종특별자치시 시청대로 370 세종국책연구단지 연구지원동 4층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경영지원본부 경영지원부

■ 기타문의 ◦ 저서, 학위논문․학술논문․연구용역보고서를 구분하여 기술하되, 공동연구 여부를 밝혀 주십시오.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정관상 원장은 그 직무 외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와 정당가입이 금지됩니다.

◦ 연구회 홈페이지 : www.nrc.re.kr

◦ 담당자 : 044-211-1193, phar@nrc.re.kr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독일 연구자들이 묻는다, ‘가르칠 자격’을 임팩트 팩터로 대체할 수 있는가

유학생이 본 독일 박사후 연구자들의 삶

과학기간계약법과 하빌리타치온 사이에서

내 친구 마틴(Martin)은 독일 역사학계에서 주목깨나 받는 신진 연구자다. 박사학위를 받은 지 채 3년이 안 된 그는 여기저기서 상도 받고, 이른바 ‘급’ 높다는 저널에 논문을 쏟아내면서도 후배 박사과정생들의 연구를 꼼꼼하고 자상하게 살피는 이상적인 중간급 연구자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2021년 가을이었다. 미국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 그의 발표를 듣게 됐고, 연구관심사가 비슷해 이후 연락을 이어갔다. 얼마 뒤 나는 독일로 필드웍을 나갈 계획을 세워야 했고, 마틴에게 연락해 그가 일하는 연구소가 내 연구를 지원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마틴은 흔쾌히 연구소장의 승낙을 받아줬고, 나중에 독일에 오면 자신의 연구실을 함께 쓰자고 제안했다.

마침내 내가 독일에 도착했을 때 그는 연구소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다른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나는 그에게 ‘포닥’을 하는 거냐고 물었다. 포닥이라는 말이 충분치 않다고 느꼈는지, 마틴은 박사 취득부터 하빌리타치온(Habilitation)으로 이어지는 독일의 박사후 커리어가 미국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힘드는 인고의 길인지를 한참 동안 친절하게 설명했다.

늘 그렇듯 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마틴은 마지못해 “그래 뭐 포닥인 셈이지, 독일식 포닥!”이라고 말했다. 나는 나중에서야 ‘독일식 포닥’이란 표현이 사실 자조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한나다’ 독일 연구자의 분노

내가 마틴을 처음 만났던 2021년, 독일 트

독일의 젊은 연구자들이 '과학기간계약법'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속 여성 캐릭터는 독일 연방교육연구부가 ‘과학기간계약법’ 홍보를 위해 제작한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가상의 캐릭터다. 독일 트위터에서 ‘내가 한나다’ 해시태그가 이슈였다. 사진 제공=허유성

위터에서는 ‘IchBinHanna’라는 해시태그가 이슈였다. 한나(Hanna)는 독일 연방교육연구부가 ‘과학기간계약법’(WissZeitVG)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한 짧은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가상의 캐릭터다.

과학기간계약법은 박사과정생과 박사후 연구자들이 학계 내에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고용 기한을 각각 6년으로 제한하는 법이다. ‘6+6 모델’이라고도 하는 이 법에 따라 박사과정생은 교수의 연구프로젝트에 연구보조원으로 고용돼 생계비를 벌고, 박사후 연구자는 교수가 되기 전까지 대학교나 연구소에 계약직 연구원으로 일한다.

홍보영상에서 한나는 자신을 이제 막 두 번째 계약을 체결한 박사과정생이라고 소개했다. 이어서 과학기간계약법이 노동 유연화를 통해 독일의 과학시스템을 합리적으로 만들고, 나아가 경쟁을 장려함으로써 혁신을 증진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영상이 공개되자 독일의 연구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뒤셀도르프대학 철학과 소속 박사후 연구원인 암라이 바(Amrei Bahr)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정부가 과학기간계약법이 연구자들의 삶과 과학시스템 자체를 얼마나 위태롭게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고 비판했다. 이때 그녀가 사용한 ‘내가 한나다’라는 해시태그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들불처럼 번졌고, 언론은 그제서야 앞다투어 연구자들의 속사정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논란이 커지자 교육연구부는 해당 영상을 삭제했다.

독일의 한나들은 낮은 급여 외에도 단기계약 실태를 지적했다. 독일에서 박사과정은 적어도 4년이 걸린다. 그 사이에 짧게는 몇 개월, 길어야 2년짜리 계약을 매번 새로 체결해야 하고, 그때마

다 수행 연구과제와 계약 조건이 달라져 연속성과 안정성을 보장

받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개인 연구는 물론이고 결혼·출산처럼 인생을 위한 장기 계획을 세우는 것도 불가능하다. 기존 연구소 내에서 적절한 계약을 찾지 못하면 학업을 중단하거나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몇몇 분야에서 문제는 더 복잡하다. 현행 과학기간계약법에 따르면 박사후 연구원은 6년 동안만 학내 기간제 계약 연구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그런데 독일에서 법학, 의학 그리고 인문학 전공자들이 교수직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5년 이상 소요되는 하빌리타치온이라는 학위를 받아야 한다. 6년 안에 하빌리타치온을 취득하고 교수직을 얻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에는 학계나 독일을 떠나는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교수 진입장벽이 비현실적으로 높다는 말이다.

연구 안정성 해치는 ‘과학기간계약법’에 젊은 연구자 분노

5년 이상 걸리는 ‘가르칠 자격’ 하빌리타치온 지속성 의문

연구인력 해외 유출·여성 연구자 학계 이탈 우려도 커져

법학·의학·인문학 교수들은 여전히 ‘가르칠 자격’ 고수

다른 전공은 하빌리타치온 대신 ‘주니어 교수제’ 도입

“독일 교육·과학시스템, 자국 연구자에게 매력 떨어져”

쓸데없는 고(高)퀄

혹시나 모르는 독자를 위해 짧게 설명하자면, 하빌리타치온은 독일어권 지역에 있는 최상위 학위다. 박사 위에 학위가 하나 더 있다는 말인데, 교수가 되기 위해선 ‘가르칠 자격’(teaching qualification)이 있는지를 한 번 더 평가받아야 한다는 게 그 ‘유일한’ 이유다.

좁디좁은 중부 유럽 바깥에서는 거의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이 학위를 받고나면 파릇했던 연구자는 어느새 마흔의 중년이 되어있다. 참고로 영미권에서 교수자격을 획득하는 평균 연령대는 20대 후반이다. 박사학위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교수자격을 얻기 전까지 독일 연구자들은 매우 불안정한 시기를 보낸다. 마틴처럼 기간제 계약에 따라 소속 대학과 연구소를 옮겨 다녀야 한다. 강의 기회를 보장하는 프로그램도 있지만, 자리는 제한적이다.

하빌리타치온이 젊고 유능한 연구자들의 인생을 갉아먹고 있

다는 비판은 20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학위 기간만 5년이 넘고, 이른바 ‘필생의 역작’이 되어야 하는 하빌리타치온 논문 준비로 인해 다양한 학술·강의 활동을 경험할 기회는 제한된다. 실질적인 강의 경험, 국제적 학술 네트워크의 구축, 연구프로젝트 관리 등 교수자격을 갖추는 데 정말로 필요한 자질은 학위 심사항목에는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

하빌리타치온을 마친다고 무조건 교수가 되는 것도 아니다. 독일에서는 ‘Dr.’ 앞에 ‘PD’ (Privatdozent)라는 칭호를 단 연구자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는 하빌리타치온을 마친 후 교수가 되기를 기다리는 강사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하빌리타치온이라는 특별한 ‘자격증’이 있으니 시간강사라 할지라도 그것을 하나의 ‘타이틀’로 인정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연구 인력의 해외 유출과 여성 연

구자의 학계 이탈은 불 보듯 뻔한 결과다. 독일의 박사들은 자국 내 임용이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해외에서는 인정도 해주지 않는 값비싼 ‘자격증’에 시들어가는 젊음을 투자할 동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독일은 이미 2002년에 하빌리타치온을 대체하려는 목적으로 주니어 교수제도(Juniorprofessur)를 도입했다. 3년 혹은 6년의 기간제 교수인 주니어 교수는 정년트랙 옵션이 포함되어 있을 경우 그간의 연구와 강의실적을 평가받은 뒤 정규직 교수로 임용될 수 있다.

많은 학과가 주니어 교수제도를 받아들였지만, 앞서 말한 법학·의학·인문학에서 하빌리타치온은 여전히 건재하다. 통계에 따르면, 2022년에 1천535명이 하빌리타치온을 취득했다. 1991년에 그 수는 1천650명이었다.

하빌리타치온은 정말 나쁜 제도일까?

현재 하빌리타치온은 완전히 모멘텀을 잃어버렸다. 법학·의학·인문학을 제외한 약 70퍼센트의 전공 분야에서 하빌리타치온은 거의 주니어 교수제도에 자리를 내줬다. 그러면 독일의 법학·의학·인문학 교수들은 왜 아직도 하빌리타치온을 고수하고 있는 걸까?

사실 자연과학·공학·사회과학에서 하빌리타치온의 자리를 대신해 온 것은 주니어 교수제도가 아니라 임팩트 팩터와 같은 정량적 지표들이다. 독일 언론인 요제프 요페는 젊은 연구자들이 높은 수준의 저널에 더 많은 논문을 게재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교수들에게 ‘가르칠 자격’을 평가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의문을 표했다.

이러한 인식의 기저에는 ‘가르칠 자격’이 교수진의 판단이 아니라 숫자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여전히 하빌리타치온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은 의술을, 법리적 판단을, 그리고 인문학적 소양을 가르쳐야 할 교수의 자격이 임팩트 팩터로 결정될 수 있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위기의 독일 교육·과학시스템

한 달 전 마틴은 새로운 대학교로 또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도 내가 마지막으로 연구소에서 발표했을 때 그는 기꺼이 발걸음해 주었고, 발표가 끝난 이후에도 한동안 나를 붙잡고 자신의 자료 목록에서 내 연구에 쓸만한 것을 이것저것 보여주었다.

헤어지기 전 그는 나에게 새로 옮긴 대학교에서 자신이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설명했다. 그는 전과 달리 이번에는 ‘티칭 포지션’임을 두어 번 강조했다. 나는 마틴 같은 사람이 강의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나는 그의 하빌리타치온에 대해서는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어쩌면 그가 독일을 떠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독일에서 방문연구원으로 1년을 보냈고, 그동안 내가 받은 인상은 독일의 연구자들이 자국의 시스템에 더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한나들은 시스템이 자신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보다 “표준화된 모델”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독일인들은 상황을 직시하고 있으며, 지난 20여 년간 개혁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왔다. #IchBinHanna는 여전히 공론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고, 얼마 전에는 조삼모사 같기는 해도 ‘4+2 모델’을 기본으로 하는 과학기간계약법 개정안이 발표됐다.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주니어 교수제도 같은 미국식 모델의 도입은 초급 교수들에게 강의량과 연구실적에 대한 압박을 가중시킬 것이다. 법학·의학·인문학 영역에서 하빌리타치온이 정

말로 임팩트 팩터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인지 대한 논의도 더 필요해 보인다.

허유성

객원기자·듀크대 사학과 박사과정

고려대 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은 후 듀크대 사학과에서 독일 현대사와 과학기술사를 공부하고 있다. 동독의 기술관료제적 경영정보시스템과 지식 하부구조에 관해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상상력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그의 판타지와 철학의 원천을 엿볼 수 있는 책

‘바람이 부는 시대’에 그가 전하고 싶은 ‘책 이야기’

꼼꼼히 골라 추천하는 ‘다시 읽어도 좋은’ 세계명작 50권!

『책으로 가는 문』

-이와나미소년문고를 이야기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서혜영 역 | 16,800원 | 168쪽 | 다우출판 |

02-701-3443 onbooker@gmail.com

병원의 역사와 의미에 대한 인문적 탐구

병원의 인문학

여인석·김성수·김영수·신규환· 이현숙 지음

병원이란 제도의 본질과 그 역사적 기원, 그리고 그것이 동서양 사회에서 실현된 역사와 그 의미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종합적으로 조감하다!

이 책에서는 10편의 글을 통해 ‘병원’이란 제도의 역사와 그 의미에 대해 접근해보았다.

01 병원의 철학

02 치료 이전, 치유가 있었다

03 사찰에 있었던 기도와 치유의 공간

04 부처를 섬기듯 병든 자를 살펴라

05 저렴하지만 위험한 역병 치료

06 20세기 초 한의원 개량론

07 질병과 신체의 공간화

08 사립병원은 어떻게 성장해왔나

09 근대 일본에서 ‘병원’이라는 의료 공간

10 메이지 시대 콜레라 유행 통제

125×185 | 408쪽 | 28,500원 | ISBN 979-11-5707-606-2 03510

도서출판 역사공간 04000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19길 52-7 PS빌딩 4층 문의 | 02-725-8806

이메일 | jhs8807@hanmail.net 블로그 | blog.naver.com/jgonggan

한국형 자본주의의 욕망 안에서 ‘실학’은 어떤 의미인가

▶1면에서 이어짐

‘실학 연구의 새 국면’ 과 21세기 실학

서구식 과학연구 학계서 실학의 의미 찾기

다산연구소의 ‘신아구방 실사구시 연속 학술집담회’는 3일 동안 펼쳐졌다. 신아구방(新我舊邦)은 “낡은 우리의 나라를 새롭게 하자”라는 뜻으로 다산 정약용(1762∼1836)의 개혁 정신을 대표하는 말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는 “실제 사실로부터 진리를 추구하자”라는 뜻으로 조선 후기 실학의 실용 정신을 상징한다.

1일차 ‘실학 연구의 새 국면’은 과거의 실학 연구를 성찰하고 새로운 실학 담론을 제안했다. 2일차 ‘21세기 신(新)실학, 인공지능과 경기실학’은 산업과 노동·생활 환경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과학기술에 대해 개혁과 실용의 관점에서 접근해 봤다. 3일차 ‘기회의 경기실학, 신아구방 실사구시’는 시민들을 초대해 직접 그 목소리를 듣고 실학 전문가와 지방의회 의원·행정 담당자들이 실학적으로 소통했다. 사회를 맡은 김진균 다산연구소 연구실장은 “개혁과 실용의 정신으로 당시의 백성들을 구제하려는 실학의 근본 정신을 잊은 대학 학문에 대한 도전의 의미로 이번 학술집담회를 준비했다”라고 취지를 밝혔다.

첫날 이은영 성균관대 강사(한문학과)는 「영재 이건창의 사상과 실학적 행보」를 발표했다. 19세기 선도 학문이 정약용의 실학이라면, 20세기 선도 학문은 정인보의 국학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 학문은 신실학에 해당된다. 이 강사는 “실학은 20세기에 선도 학문의 자리를 내어준 학문인가?”라고 질문하며, “그 해답을 영재 이건창의 양명학을 통한 실학적 행보에서 찾아보자”라고 제안했다. 영재 이건창(1852∼1898)은 조선 500년 최연소 문과 급제자로서 암행어사를 지냈다.

외면의 명분 아닌 내면의 실을 강조

양명학은 외면의 명(名)이 아닌, 내면의 실(實)을 강조하며, 자아각성을 요구한다. 이 강사는 “남에게 나를 드러내는 것은 양명학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치적 면에서 이건창은 한시 「광주적(廣州糴)」을 통해 지방 관리의 폐단을 폭로했다. 이건창은 “쌀을 내줄 때는 흙과 모래까지 섞더니 / 쌀을 거둘 때는 정밀하게 체까지 사용하고 / 거둘 때는 다급하게 명령을 내리더니 / 내줄 때는 자꾸만 기일을 미룬다네”라고 적었다.

이건창은 두 번째 유배지인 보성에서 잘못돼 가는 나라를 바로잡을 해결책을 담아 『의논시정소(擬論時政疏)』를 집필했다. “변경(개혁)이라는 것은 그 실을 변경하는 것이지, 그 이름을 변경하는 것이 아니다.” 이 강사는 “임금에게 부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實)’을 앞세우고, ‘실’의 손님에 불과한 ‘명(名)’을 뒤로 할 것을 청했다”라며 “우리가 부유하지 못하고 강대하지 못한 모든 원인은 외부의 다른 나라가 아닌, 우리 조선에서 찾을 것을 강조했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 강사는 “영재 이건창은 자주적 개항과는 별도로 부국강병의 실익에는 전혀 보탬이 되지 않고, 유구한 역사를 지켜온 단발과 복식 제도 등의 전통을 말살하는 외면만의 개화정책을 비판하는 자세를 고수했다”라고 밝혔다. 양명학을 국학으로 발전시킨 정인보의 스승이 이건창의 동생인 이건방과 이건승이었다. 이건창의 양명학을 기저로 한 실학적 면모는 정인보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21세기 실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 강사는 “19세기 정약용의 실학을 21세기까지 이어 오기 위해서는 실학 안에 양명학에서 발전한 정인보의 국학을 완전히 포용해야 한다”라며 “그래야 19세기 정약용의 실학 정신은 21세기에 더욱 발전된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라고 제언했다. “실학은 부국강병에 실익 되는 학문의 실천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모든 근원에 일반 ‘민(民)’이 기저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아울러, 이용후생·경세치용·실사구시에 더해 그는 “이건창에게서 드러나는 나라를 이롭게 하고 백성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이국편민(利國便民)과 실학에 인문학을 포함시킨 실심실학(實心實學)을 함께 아울러야 한다”라고 말했다.

‘언사소’와 9가지 개혁 방안 시무책

정은주 영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원은 「매천 황현의 현실 인식과 실학의 친연성」을 발표했다. 황희 정승의 후손인 매천 황현(1855∼1910)은 나랏일에 대한 상소인 「언사소(言事疏)」를 통해 9가지 개혁 방안 시무책을 제시했다. △언로(言路)를 열어 나라의 명맥을 소통시키는 일 △법령을 신뢰할 수 있게 해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일 △형벌을 엄격하게 적용해 법의 기강을 진작시키는 일 △절검(節儉)을 숭상해 재원을 넉넉하게 하는 일 △외척을 내침으로써 공분을 풀어주는 일 △인재 보증의 천거 제도를 엄격하게 해 능력과 덕을 갖춘 인재를 등용하는 일 △관직 재임 기간을 길게 해 다스림의 성과를 책임 지우는 일 △군제를 바꾸어 화란(禍亂)의 싹을 없애는 일 △토지대장을 조사해 나라의 재정을 넉넉하게 하는 일 등이다.

정 연구원은 “황현은 전통 유학을 공부했으나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주자학에 만족하지 못하고, 양명학과 실학에 관심을 두었다”라며 “실학에 영향을 받은 개화파(신정희, 강위)·양명학파(이건창, 김택영) 인물과 두터운 교분을 쌓았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날 집담회에서 “조선

지난 13일부터 사흘간 경기문화재단 인계동사옥에서 다산연구소 주최로 ‘신아구방 실사구시 연속 학술집담회’가 열렸다. 이날 집담회를 통해 실학에 대한 새 국면을 논의하고, 앞으로 연구방향에 대해 토론했다. 사진=다산연구소

후기를 넘어 근대로 연결되는 실학을 살펴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라며 “독립운동가 황현을 넘어 실학의 측면에서 그를 살펴봤다”라고 말했다. 황현은 실학 관련 저술을 남기지 않았지만, 그가 지표로 삼은 정신과 교우 관계 등에서 실학의 면모가 두드러진다는 뜻이다.

정인보의 학술적 독립운동인 조선학·실학

노관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사상사)는 「백암 박은식과 근대 실학」에서 보수적인 학자를 비판하는 내용을 소개했다. “한국의 선비

가 의리를 빈말로 하고 실로 경제에 어두워 각국 이용후생의 신학과 신법을 원수처럼 보고 물리쳐 마침내 전국 인민을 부지불식 속에 가두고 금일에 이르러 전국 동포가 장차 남의 노예가 되기에 이르니 이는 누구의 죄인가?”(『학규신론』)김윤경 한국전통문화대 한국철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위당 정인보의 실학과 ‘실학’」 발표를 통해 “양명학 차원에서 실심(진심)을 실행하는 학문이 곧 실학”이라고 강조했다. 연희전문대(현재 연세대) 교수였던 담원 정인보(1893∼1950)의 학술적 독립운동이 바로 조선학·실학이었다.

정인보는 학문으로만 끝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도덕성을 추구했다. 이러한 실천적·성찰적 태도는 양명학적 전통에서 나온다. 김 연구교수는 “양지·양심 등 양명학의 핵심 개념이 굉장한 도덕주의를 요구한다”라고 말했다.

토론에서 백민정 가톨릭대 교수(철학과)는 “박은식·정인보 등이 활동했던 19세기 말∼20세기 초가 정말 중요한 시기였다”라며 “서세동점 때 선배 학자들의 고민을 통해 나를 보아야 현재의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다”라고 반성했다. 한국형 자본주의의 욕망 안에서 과연 다산을 연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반문한 것이다.

특히 학계는 인공지능·빅데이터 등 여전히 서구식 과학기술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다. “과학을 배워야 하지만 무한 경쟁과 공리주의만 주창해선 안 된다. 이용후생보다는 도덕성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백 교수는 “일본과 서구의 침략을 보면서 평화를 언급하던 선배 학자들이 있었다” 라며 “현재 나의 문제의식을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하기 위해 실학을 호명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 연구실장은 “1970년대의 시대정신으로 실학 연구의 근간을 이루었던 민족주의와 근대주의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아무런 지표 없이 연구성과만 누적하는 현재 학계의 타성에 대한 비판으로 다시 실학의 운동성을 찾아본 것이 오늘 학술집담회의 큰 성과”라고 말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저출산·지역 소멸 사회난제, 교육의 힘으로 풀어 나가자”

교육부 “데이터 기반 사회정책 추진”

한국행정학회와 지난 13일 업무 협약

교육부가 데이터 중심의 사회정책 고도화를 추진하기 위해 학계와 손을 잡는다.

교육부는 사회부총리 제도 10년 차를 맞아 관-학-연을 이은 한 차원 높은 사회정책 협력체계를 마련한다. 교육부는 지난 13일 정부 서울청사에 서 한국행정학회(회장 이덕로)와 업무 협약식을 가졌다. 이번 협약으로 학계의 역량과 자원을 바탕으로 인재양성과 사회정책 수립에 기여할 수 있도록 협력할 예정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앞으로의 과제는 저출

산, 지역 소멸 등 사회적 난제를 교육의 힘으로 풀어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사회부총리 부처로서 교육부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회문제에 대한 조정 역량을 강화하고, 관-학-연 협력 체계를 통해 과학적인 사회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이번 협약을 계기로 데이터 기반 의제 발굴, 실증연구, 정책 평가·환류, 공동 행사 주최 등 정책 입안 전 과정에서 데이터를 중심으로 사회정책 고도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교육부는 올해 12월에는 한국행정학회, 한국경제학회, 한국사회학회와 함께 합동토론회도 개최한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DSM-5-TR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지은이 · APA(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옮긴이 · 권준수 김붕년 김재진 신민섭 신일선 오강섭 원승희 이상익 이승환 이헌정 정영철 조현상 김민아

정가 · 79,000원

소아정신의학 3판

분야별 임상/연구 권위자 73명이 집필한 소아정신의학 교과서이다. 소아정신의학도는 물론 함께 일하는 인접분야 전문가들이 임상, 연구, 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한국 소아정신의학의 모든 것을 담았다.

총괄편집인 · 대표저자 홍강의

정가 · 58,000원

(주)학지사

가치 있는 삶

미로슬라브 볼프 외 2인 지음 | 김한슬기 옮김 | 흐름출판 | 420쪽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순간 또는 삶이 권태롭고 무료한 순간,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짧지만 강력한 질문 한 자락이 피어오른다. “단 한 번뿐인 삶, 어떻게 살 것인가?”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지향은 비단 오늘을 사는 우리들만의 고민이 아니다. 좋은 삶에 대한 물음은 지난 수천 년간 동서고금의 현자들을 사로잡은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이다.

한국 불교서사의 세계

김승호 옮김 | 소명출판 | 840쪽

이 책은 그동안 지은이가 써온 불교문학 관련 글 가운데 불교전기(傳記)·불교설화·불교소설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엮었다. 사실 불교문학에 대한 시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불교문학이란 교리·전교를 위한 기능적 담론에 불과하다는 시각과 무관하지 않은 현상일 것이다. 불교문학에 의의를 부여하려는 이는 드물었다.

인공지능, 플랫폼, 노동의 미래

조정환 외 10인 지음 | 빨간소금 | 312쪽

빅데이터·플랫폼·알고리즘·인공지능 등 지능 정보화 기술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데이터는 원유”이고, 우리가 매체를 통해 보고 듣는 영상과 음악의 배후에 알고리즘이 작동한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다. 이러한 변화의 한 축에 ‘노동’이 있다. 노동은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문제이다 보니 ‘인공지능 시대, 노동의 미래’를 두고 여러 견해가 엇갈린다.

일자리 그 위대한 여정

백완기 지음 | 지베르니 | 344쪽

이 책은 AI 시대 인류의 미래와 일자리를 전망하는 책들의 홍수 속에서 일자리의 본질이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이해하고 새로운 해결 방향을 모색한 책으로, 인간과 일자리에 대한 폭넓은 시야와 심도 있는 통찰을 보여 준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현재 인류가 당장 공론화할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다시 사랑하게 된다면

주현덕 지음 | 나무의마음 | 296쪽

누구나 조건과 상관없이 자기 존재 자체로 사랑받기를 원하고 진실한 사랑을 하기 바란다. 비록 지금은 사랑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 더 이상 사랑 따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 조차도. 따라서 이 책은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거나 사랑하게 될 사람들이 “사랑 참 어렵다”라며 포기하려 할 때 위안이 되고 길잡이가 되길 바라는 저자의 바람이 담겨있다.

동아시아의 왕권과 사상

와타나베 히로시 지음 | 이새봄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316쪽

이 책은 일본 정치사상사 분야의 권위자인 저자가 전근대 시기 한중일 3국에서 유학과 주자학이 정치와 어떻게 결합되고 기능했는지 비교분석한 역작. 초판이 간행된 지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에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다. 이 책에서 제기되는 논점들은 현재도 일본정치사상사 학계의 현재진행형 연구 주제로 다뤄지고 있다.

프랑스의 음식문화사

마리아 테벤 지음 | 전경훈 옮김 | 니케북스 | 580쪽

미식의 원조이자 정수로 알려진 프랑스 요리. 그런데 정작 그 맛이 명성에 부합하는지를 두고는 이견도 있다. 프랑스 요리는 어떻게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을까? 이 책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고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이야기한 음식을 꼼꼼하게 살핌으로써 그 답에 접근한다.

한국인의 탄생

홍대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360쪽

한반도에서는 개인들이 살아남기도, 또 국가로서 살아남기도 힘들었다. 어쨌든 살아남아 지금의 대한민국에 이르는 과정에서 한국인만의 여러 특질이 만들어졌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세 명의 인물(단군·고려 현종·정도전)과 세 개의 키워드(생존·전쟁·혁명)로 살핀다. 단군은 터전을 잡았고, 고려 현종은 한민족을, 정도전은 한국인 개인들을 만들었다.

다시 보는 우리 것의 아름다움

박삼철 지음 | 삼인 | 414쪽

이 책은 문화·예술 전 분야를 망라하면서 인문학적으로 통합해 사유하게 하는, 아울러 널리 알려진 예술품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보고 질문하게 하는 논리를 치밀하고도 쉽고 재미있게 펼쳐 보여준다. 수천 년 전부터 아름다움을 삶의 근본으로 삼았던 우리의 뿌리를 눈앞에 생생히 그려보면서, 우리의 미래가 나아갈 방향까지 내다보게 하는 책이다.

저자가 말하다_『연출가연극과 드라마투르기: 재현에서 재의미화로』 이인순 지음 | 푸른사상사 | 224쪽

현대연극의 ‘현대’를 묻다

다양성 전체 아우르는 지식·통관하는 안목 위해 현대드라마·현대연극 구분해 서구 연극사 관통

오늘날 연극연출가는 하나의 예술작품인 연극의 창작자로 간주된

다. 이른바 ‘연출가연극’이다. 연출가연극은 20세기 초 문학의 재현에서 해방돼 연극의 자율성을 주장하며 나타난 ‘현대연극’의 주요 현상이다. 이때까지 서구연극은 전통적으로 문학의 우위성 아래 극문학 재현의 부차적인 예술로 존재해왔다.

그런데 ‘현대연극’은 그 오랜 전통을 깬다. 연극이 처음으로 자신이 문학과 다름을 인지하고, 고유성을 찾으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성찰하는 것이다. ‘현대연극’은 그렇게 미학적 독립을 이루며, 연출가의 예술적 유희의 길을 열게 했다.

20세기 후반부 포스트모더니즘을 지나 21세기를 진입해서 23년이나 된 지금, 20세기 전환기에 태동해서 그 전반부를 차지하는 유럽의 ‘현대연극’을 이 책이 조명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현대연극은 20세기 초 서구화이래로 시작됐다. 2천500년이 넘는 서구의 오랜 연극사가 축적한 연구와 지식을 100년 넘은 우리의 연극 연구와 교육·실천이 따라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연극 문화가 서구의 연극이론과 실천을 빠르게 수입하고, 시대적 유행을 따라가며 우리의 연구가 일정 지식을 반복한다는 데에 있다.

그런 구멍 난 연구 분야 중 ‘현대연극’의 ‘현대’를 이 책은 조명한다. 왜냐? 오늘날의 ‘연출가연극’과 ‘드라마투르기’를

이해하는 데에 ‘현대연극’에 대한 기본 지식이 그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와 연극 앞에 ‘현대’라는 단어가 붙을 때, 현대드라마와 현대연극의 시작은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 그러니까 ‘현대연극’의 ‘현대’가 무엇으로 규정될 수 있는가를 이 책은 질문한다. 우리의 연극 연구와 교육·실천에 있어서 꼭 있어야 할, 그리고 필요한 이에 대한 답은 오랜 기간 간과됐다. 이제라도 이 책이 시도하는 ‘현대연극’에 대한 규명은 서구의 축적된 연극사를 관통하며 오늘의 연극을 이해하는 시각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을까.

국내에는 그동안 유럽의 현대드라마와 현대연극을 분명하게 구분 지어 설명하는 저술과 연구가 없었다. 그리고 유럽의 현대연극에 대해서도, 유럽의 현대연극이 양식 다원주의라는 특징으로 방대한 내용을 갖기 때문에, 기존의 저술과 연구는 다양성 전체가 아닌 하나의 현상과 미학에 대한 지식을 전했다. 그러므로 연극 전공자나 연극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현대연극의 다양성 전체를 아우르는 지식과 이를 통관하는 안목을 지니려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지식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국내에 소개된 한 권의 번역서는 현대연극의 방대한 분량과 또 그 내용이 되는, 낯선 수많은 유럽 연극인들의 소개로 인해 책을 읽기도 전에 독자를 질리고 지치게 한다.

필자는 현대연극의 ‘현대’를 통관하고 규명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집필의 목

적을 뒀다. 이 책에서는 우선, 서구의 단어 ‘modern’이 언제부터 어떻게 쓰였는지, 그 역사를 조명했다. 6세기 이래로 쓰인 이 단어의 의미와 내용을 예술사조가 된 모더니즘까지 서술했다. 이어서 현대연극의 ‘현대’를 잉태한 19세기 중반 바그너와 니체의 영향에서부터 19세기 말의 상징주의 연극, 20세기 초와 전반기의 양식 무대·축제연극·정치연극·표현주의 연극·역사적 아방가르드의 반연극까지 유럽 ‘현대연극’의 풍경을 서술하며, 20세기 전반부까지 이어진 현대연극의 현대성이 무엇인지에 주목했다.

그리고 현대연극의 주요 특징인 연출가연극과 드라마투르기의 이론적 토대를 다뤘다. 연출가연극이 대두하기 전까지 연극은 재현적 드라마투르기에 있었으나, 20세기 전환기 유럽 연극은 문학 재현의 위기를 맞는다.

재현 미학의 위기를 가져온 원인과 나타난 현상, 그 결과는 무엇인지, 그리고 재현에서 재의미화의 드라마투르기로 변화하며 드라마투르기를 발전시킨 연출가연극이 추구하는 미학적 가치는 무엇인지를 고찰했다.

마지막으로 고전 드라마의 공연과 희곡텍스트에서 특정 연출가의 관점과 미학이 드라마투르기를 통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독일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의 공연 「파우스트 I」(잘츠부르크, 1933)과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텍스

트 「코리올란」(1952)을 실례로 탐색했다.

이인순

연극학자·독일 뮌헨대 연극학 박사

서평_『건축과 객체』 그레이엄 하먼 지음 | 김효진 옮김 | 갈무리 | 368쪽

인과관계 넘어 건축을 ‘객체’로 독해하라

수십 년 걸친 건축 지형도 성찰하는 시도

객체에 대한 실재적·감각적인 차원을 탐구

이 책은 건축과 철학, 그리고 건축과 예술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그레이엄 하먼의 첫 건축 책이다. 하먼은 종종 ‘트리플 오(OOO)’로 소개되는 객체지향 존재론을 창안한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2007년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열린 사변적 실재론 워크숍을 기점으로 할 때, 그의 이론이 공론화된 지는 어느덧 15년 정도가 된다. 건축 분야에서 또한 10여 년 정도의 변천사를 지니고 있다.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오랜 친구 데이비드 루이와 2011년 만남은 하먼이 건축과 트리플 오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됐다. 그리고 이는 2016년에 미국의 건축학교 사이아크(SCI-Arc) 교수 부임으로 이어졌다.

하먼이 건축계에서 활동을 시작한 2010년 즈음에는 지속가능성과 디지털 건축 담론이 지배적이었던 편이다. 전자의 경우 생태와 기후변화, 그리고 에너지와 인류세 담론과 실천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편 후자는 트리플 오와 긴장 관계와 더불어 그 동력이 점차 쇠락한 상황이며, 이제는 파라메트릭 디자인이나 인공지능 등 업데이트된 흐름이 그 빈자리를 대신한다.

하지만 담론으로서의 건축 전반의 위상이 이전과 같지 못한 학문적 상황 속에서, 더 이상 이와 같은 계보학이 유효하거나 유의미한지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필요한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럼에도 트리플 오를 서양 근·현대 건축의 지형도에 위치시킬 수 있다면, 1990년대 초반에 등장한 디지털 건축과의 관계 속에서 그 실마리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한

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최근 몇 십 년의 건축 지형도를 성찰하게끔 하는 한 가지 시도이다.

지금의 짧은 서평에서 그의 방대한 철학을 요약하는 대신, 책에서 등장하는 하나의 사례를 통해 하먼이 객체로서의 건축을 풀어나가는 방식을 소개하고 싶다. 예를 들어, 건축가 마크 포스터 게이지의 지어지지 않은 리조트 프로젝트 「데저트 리조트」가 있다. 여러 개의 건축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사막에 위치해 있다. 지역의 역사와 기후, 형태·공간 논리와 더불어 무슬림 사원 내부 장식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패턴을 구현하고 있다.

하먼의 책에 수록된 작품 이미지는 위군집에 포함된 하나의 건축물 입면을 보여준다. 중앙의 거대한 수직 구조물은 아라베스크 문양 또는 각종 배관을 연상시키는 복잡한 기하학적 패턴으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그 양옆에는 곡선의 반투명한 아치 형태의 아케이드가 위치한다. 물론 하나의 도판만으로 그 형태 원리나 기능 등의 상세한 내용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는 단지 정보의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작품 소개의 목적을 지니는 모노그래프 타입의 출판물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트리플 오의 적극적인 옹호자 게이지의 전략적 디자인과 표상의 결과이다. 그 무언가를 연상시키지만 결코 그것을 충분히 언어로 서술하고 소통할 수 없다. ‘형언할 수 없는’ 건축의 차원을 구현시키는 것이 하먼의 이론을 경유하는 게이지의 건축적 비전이라는 점에서 그렇

다. 형태와 기능에 대한 명쾌한 파악을 어렵게 하는 기이한 외관은 그 너머의·잔여의 또는 그것을 아우르는 대상물의 정체를 구체화시키면서 동시에 철회시키는 감각적 객체이다.

‘네 겹의 객체’ 다이어그램을 통한 객체의 이론화를 시도하는 하먼의 입장은 공고하다. 건축에 대한 입장 역시 그러하다.

하지만 그러한 입장을 어떻게 건축이라는 영역에서 작동시킬지에 대한 방식은 열려 있다. 책 전반에서 하먼은 건축을 객체로 독해하기 위한 이론적 논의에 집중한다. 그러나 건축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비평은 말을 아끼는 편이다. 이는 철학자로서 건축을 논의하려는 그의 학문적 엄밀함에 기인할 것이다.

하지만 객체의 실재적이고 감각적인 차원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길을 잃은 것처럼 장황하고 두서없는 발화와 글쓰기 행위를 필요로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또한 지울 수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감각에서 실재, 또는 실재에서 실재로 접속할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즉 하먼의 주장을 건축에서 유의미하게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건축 작품 또는 그에 준하는 사례들을 ‘사변적으로’, 즉 명쾌한 인과관계나 실용적 태도 또는 대상화에 의존하지 않은 채 탐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먼의 책은 쉽게 읽히는 건축 이론서는 아니다. 그럼에도 항구적으로 펼쳐지면서 유예될 건축의 차원을 숙고함에 있어서 흥미로운 가이

드로 작용할 것이다.

백승한

부산대 건축학과 조교수

저자가 말하다_『미국의 한국 정치 개입사 연구: 박정희 제거 공작 편 1·2·3』 이완범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김재규의 총탄에 미국은 얼마나 개입했을까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한 10·26사태 배후의 문헌 연구

자주파 박정희 대 동맹파 김재규, 그리고 미국의 공작

박정희 정부의 극적인 몰락 과정의 중심에 있던 10·26사태의 배후에 미국의 영향력이 숨어 있다는 소문은 사건 직후부터 나왔다. 그러나 4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본격 해명되지 못했으므로 이를 연구하기로 했다.

문헌 연구자인 필자는 우선 관련 문헌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증을 찾기는 대단히 어려웠다. 관련국인 미국의 당사자가 자신들이 자행한 비밀공작의 증거를 남기는 어리석은 짓을 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설사 흔적을 남겼다고 해도 공개할 리는 더욱 만무했다.

또한 당사자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이미 1980년 5월에 사형됐으므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혹자는 1979년 10월 26

일 오후 2시에 당시 주한미국 대사였던 글라이스틴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만났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3권: 491쪽). 이에 관련 문서를 뒤져보고 미국 문서고에 비밀 해제도 청원했으나 역시 확실한 물증은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구술자료와 신문기사 등의 2차 자료와 간접 증거를 수집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객관적 사료에 드러나지 않는 은폐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비판적 해석과 방증을 통한 추론도 병행했다. 물론 추정은 재판과정에서 확정적인 증거로 채택되기 어렵지만, 추론은 사실을 재구성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김재규와 미국의 공모설이 대한민국에서 계속 제기되자 글라이스틴 주한미국

대사는 1979년 11월 19일 밴스 미 국무장관에게 전문을 보냈다. 자신이 CIA 한국지부장 브루스터와 함께 1979년 9월 26일 김재규와 마지막으로 만났다고 했다. 그는 이 만남에서 한국의 평화적 정권교체(이양)에 대해 언급했다고 10·26사태 후 거의 한 달이 지난 후에 뒤늦게 내부적으로 보고했던 것이다. 이 자료는 1999년 글라이스틴의 회고록과 함께 역시 늦게 대중에 공개됐다.

글라이스틴이 박정희 정부의 권력승계 문제를 언급한 것은 김재규의 확대해석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사건이었다. 미국이 박정희의 종신집권과 한국의 권력승계에 관심을 가지면서 박정희 이후를 고려하고 대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

목이다(3권: 499∼500쪽). 정권교체의 시그널을 김재규가 미국으로부터 포착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당시 한국인들이 믿었듯이 김재규의 행동에 미국의 정보기관 파트너가 최소한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 정도로 미국이 가담했던 것은 거의 사실이다(3권: 515∼516쪽). 김재규는 글라이스틴-브루스터와의 위와 같은 마지막 만남(1979년 9월 26일)에서 글라이스틴이 유신체제 전복에 대해 말했었다고 재판과정에서 주장했다(3권: 498쪽).

미국의 박정희에 대한 비판적 태도(반 박정희 캠페인)는 미국이 의도했던 것은 아닐지라도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글라이스틴도 1986년 발간된 책에서 “미국의 행동과 말

이 박정희의 죽음에 간접적으로 기여했을 지도 모른다”라고 분석한 바 있다. 또한 글라이스틴은 1999년 회고록에서 “미국은 자신들의 행동과 말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박 대통령의 몰락에 일조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라며 반성적 문제제기를 했다. 이는 10·26사태에 미국의 힘이 작용했음을 우회적으로 기술한 회고이며, 외교 분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만큼 이 정도가 미국 측 핵심 인사가 남길 수 있는 최대한의 고백이었다. 전술한 11월 19일 전문에서 보인 책임 회피적 발뺌성 합리화에서 일보 전진해 관여 사실을 부분적으로나마 인정한 비판적 성찰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계획적인 사전 공모는 없었으나 박정희 정권 교체에 대한 이심전심격인 묵시적 사전 동조와 사후 묵인(내정간섭을 우려해 배후를 철저히 은폐하면서 공개적 지지를 회피)이 있었다.

따라서 박정희 제거라는 결과는 김재규와 미국의 합작품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이전부터 추구했던 미국의 박정희 제거 공작이 김재규를 통해 직접적이 아니라 내정간섭을 회피할 수 있는 우회적 행태로 보다 교묘하게 결실을 맺음). 상대적으로 민족주의적이었던 자주파 박정희를 동맹파 김재규가 미국의 공작적 영향력 아래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확대해석하면 미국과 합작하여) 제거했다고 할 수 있다. 자주파와 동맹파 대결 차원으로 거사를 볼 수 있

는 것이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사회과학부 교수·한국정치사

사유의 아고니즘_『피투자자의 시간: 금융 자본주의 시대 새로운 주체성과 대항 투기』 미셸 페어 지음 | 조민서 옮김 | 리시올 | 364쪽

금융자본주의로 ‘금융자본주의’에 맞서기

개인은 금융투자 위해 스스로 가치를 증명

금융화 압박에 맞서는 새로운 저항적 주체

아마도 좀비라는 캐릭터는 오늘날의 통제되지 않는 자본주의의 탁월한 인격적 메타포일 것이다.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인간 사물이라고도 할 수 없는 좀비는 만족할 줄 모른다. 그렇기에 언제나 배고픈 좀비는 육체의 충동적 명령에 따라 끊임없이 인간을 물어뜯고 새로운 식량을 찾아 분주히 움직인다. 좀비로 뒤덮인 사회란 모든 인간들이 오로지 채워질 수 없는 이기적 욕구의 명령에 따라서만 움직이도록 내몰리는 사회, 그럼으로써 끊임없는 자본의 자기 증식 운동이 이루어지는 극단적인 자본주의 사회일 것이다.

그런데 보통 좀비 영화에서 좀비는 기존의 사회 질서를 해체하고 시스템 전체를 내파(內波) 해버리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

렇게 보자면 좀비는 어쩌면 새로운 시대의 프롤레타리아의 형상에 대한 극단적 상상일지도 모른다. 좀비는 살아 있음과 죽음 사이에 있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자본과 노동이라는 대립항 사이에 있는, 자본인 동시에 노동 또는 자본도 아니고 노동도 아닌 어떤 존재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좀비는 자본주의의 외부가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자본주의가 자기 내파, 자본주의의 바로 그 원리로 자본주의가 파괴되는 상황에 대한 상상으로 볼 수 있겠다.

이 책은 좀처럼 자본주의의 외부가 보이지 않는 시대에 자본주의 안에서 어떻게 그 바깥을 상상하고 열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던지고 있

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모든 개인·기관 등을 수익 극대화를 위해 움직이는 ‘기업가적 주체’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신자유주의를 넘어 그 모두를 자신의 자산가치를 증대하는 데 몰입하는 금융투자 행위자로 만들어내는 금융자본주의의 시대이다. 그 안에서 이제 다수의 개인들은 노동자나 기업가적 주체라기보다는 투자자에게 금융 투자를 받기 위해 스스로를 관리하고 자기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피투자자가 된다.

저자는 바로 금융자본주의가 주조하고 자 하는 주체인 이 피투자자, 즉 신용평가·인적자본의 관리·투기적 금융의 방식 등 금융자본주의의 원리와 작동 방식에 밝고 이를 체화하고 있으며 자신의 자산을 이용해 이 금융자본주의의 게임에 참여해 능숙

하게 금융적 실천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금융화의 거센 압박에 맞서 정치를 활성화할 수 있는 새로운 저항적 주체라는 것이다. 금융자본주의의 요구에 가장 충실한 이들이 바로 그 금융자본주의의 저항자라니? 곧장 수없이 많은 반론이 제기될 법한 꽤나 당혹스러운 주장임에 틀림없다.

필자도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좀처럼 자본주의의 외부를 찾지 못하고 상상하기도 힘들기에 자본주의 너머를 사고하고 만들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 우울증을 겪고 있는 현재, 어쩌면 이들이 무기력증을 떨쳐내도록 해 줄 통찰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지도 모를 일이다. 마르크스가 말하

는 노동자 주체들이야말로 자본주의 체계의 임노동 관계 속에 있는 자들이면서 또한 동시에 자본주의에 맞서 그 바깥을 여는 자들이지 않던가.

최근 몇 년 간 금융자본주의의 한복판에 있는 주직투자자들이 거대 금융기관·정부·해외자본이 움직이는 금융 헤게모니에 맞서 새로운 개미들의 연대·소통을 조직하고 이들에 맞서는 직접적 행동주의의 실천이 국내외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들의 대응에 금융 헤게모니를 가졌던 기관들이 일격을 당하기도 하고 이로 인해 금융투자의 방식을 바꾸기도 한다. 예를 들어, 최근 가장 뜨거운 용어로 떠오른 ESG가 시사하듯 금융투자는 이제 재무조건 외에도 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의 비재무적 요소

들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들은 마르크스가 말하는 혁명처럼 거대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본주의 외부를 상상하지 못해 무기력과 우울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기보다 금융자본주의의 원리를 가장 잘 체화하고 있는 피투자자라는 주체들이 바로 그 금융의 원리로 만들어내는 틈새와 그 틈새를 활용한 새로운 금융자본주의 시대 정치의 가능성에 주목해 볼 것을 제안한다.

이 책은 이른바 피투자자 행동주의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풍부하게 제시하면서 그러한 실천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논쟁해 볼

만한 논점들을 던지는 흥미로운 책임에 틀림없다.

김주환

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사회학

그림을 그리는 시간

이윤 지음 | 파이어스톤 | 204쪽

사람은 각자 살아온 시간 안에서 자기만의 경험을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기억으로 남는다. 기억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신의 기억을 글로 남기진 않는다. 그런데 저자는 삶의 희망이 빛나는 바다처럼 펼쳐지던 열아홉 불안한 청춘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억들을 천천히 더듬으며 서툴고 애달프게.

포스트휴먼과 융합

강성지 외 17인 지음 | 한울아카데미 | 448쪽

휴머니즘 시대의 인간은 정신·물질·자연·문명 같은 이원론적 구분으로 스스로를 규정했다. 비인간과의 대비를 통해 인간을 정의한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역사 산출의 주체이자 만물의 척도, 이성을 지닌 자율적 존재가 됐다. 그 특별함은 인간을 다른 존재보다 우위에 위치한 특권적 존재로 만들며, 자연을 이용할 권리의 근거로 작용했다.

자연선택 이론에 기여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지음 | 신현철 옮김 | 아카넷 | 512쪽

이 책은 저자가 1855년부터 1870년까지 발표한 아홉 편의 논문과 처음 발표한 한 편의 논문을 묶어낸 것이다. 그는 자연선택 이론을 발견하기까지 과정을 설명하고, 자연선택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생물들의 사례를 다양하게 제시하고, 자연선택 이론을 반박하는 글에 재반박하며 인간의 의식만은 자연선택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문학이라는 위로

은현희 지음 | 사람in | 248쪽

이 책은 『인간실격』,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위대한 개츠비』, 『자기만의 방』, 『죄와 벌』, 『안나 카레니나』 등 제목은 익숙하지만 막상 읽어 보지는 못했던 21권의 문학 고전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이 문학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삶이 힘들고 버거울 때마다 문학을 통해 공감과 위로를 얻었던 작가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홍성욱의 그림으로 읽는 과학사

홍성욱 지음 | 김영사 | 372쪽

이 책은 그간 “이론과 개념의 발달을 중심으로 기술되어온 과학사”에서 비켜나 ‘이미지’를 무대 한가운데에 세워두고 과학의 역사를 새롭게 들여다보자는 동기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여느 과학사 책처럼 페이지를 빼곡히 채우는 수식이나 알쏭달쏭하고 딱딱한 개념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건축의 무빙

이건섭 지음 | 수류산방중심 | 592쪽

건축가들은 무슨 책을 읽을까? 도시의 역사와 디자인의 양식을 바꾼 이들은 누구인가? 21세기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현대 건축의 흐름을 어디까지, 어떤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수류산방에서 펴낸 저자의 이 책은 거대하고 때로 난해한 서구 건축 이론과 사조에 쉽게 접근하도록 이끄는 안내서로 기획됐다.

시여, 내 손을 잡아줘

김현자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352쪽

시(詩)는 어렵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토록 어려운 시를 계속해서 읽고 이해하려 하는 것일까? 바로 시에서 자기 자신의 삶과 인간존재의 가치를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시작품은 시대와 현실·공간과 시간·자아·가족·삶과 죽음·언어 등 현재 우리의 삶이 놓인 정서와 문화와 사상을 함축한다. 시를 잘 읽는 방법만 알아도 인생이 더욱 풍요로워진다.

미래 세대를 위한 녹색 특강

박병상 지음 | 철수와영희 | 160쪽

이 책은 생태계·인류세·생물 다양성·기후 위기·재생 에너지·과학 기술·녹색 도시·식량 위기·생태 문명 등 아홉가지 주제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녹색 미래에 대해 청소년 눈높이에서 쉽게 알려 준다. 청소년들은 이 책을 통해 생태계 파괴의 위험 신호를 살펴보면서 원인을 파악하고, 탄소 중립과 생태계 회복을 위한 대안을 모색해 볼 수 있다.

분야별 신간

정치-사회

교수의 속사정 | 최성락 지음 | 페이퍼로드 | 256쪽

인문

한국문학과 그림의 문화사 1 | 권정은 지음 | 소명출판 | 397쪽

한국인의 탄생 | 홍대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360쪽

시여, 내 손을 잡아줘 | 김현자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352쪽

어문학

번역학 입문 | 제레미 먼데이 외 2인 지음 | 남원준·이형진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 478쪽

문학-에세이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 이주혜 지음 | 창비 | 348쪽

들끓는 꿈의 바다 |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 김승욱 옮김 | 348쪽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348쪽

윤곤강 전집-시 | 윤곤강 지음 | 박주택 기획 | 소명출판 | 510쪽

윤곤강 전집-비평 | 윤곤강 지음 | 박주택 기획 | 소명출판 | 498쪽

타인에게 말 걸기 |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436쪽

하얀 사슴 연못 | 황유원 지음 | 창비 | 164쪽

문학이라는 위로 | 은현희 지음 | 사람in | 248쪽

예술

이야기 수업 | 육상효 지음 | 알렙 | 416쪽

미시 생태계 다양성 높여 ‘담도·췌장암’ 극복한다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난치성 치료’ 어디까지 왔나

9 항암

차세대 신성장 동력으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이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염증성 장질환, 뇌혈관 질환 등 난치성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더욱 그렇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미 2건에 대해 상용화를 승인하면서 바이오산업에서의 혁신적 장이 열렸다. <교수신문>은 각 질환별 난치성 치료 현황을 국내 최고 전문가로부터 들어 보고 치료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아홉 번째는 항암에 대해 황진혁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소화기내과)·양영 숙명여대 교수(생명시스템학부·여성건강연구원 원장)의 최신 연구 현황을 소개한다.

연재 순서

① 염증성 장질환

② 비알콜성 간질환

③ 천식·알레르기

④ 우울·불안·스트레스

⑤ 심바이오틱 융복합의료소재

⑥ 장기 이식-간

⑦ 화농성 한선염 및 중증 여드름

⑧ UTI-요로 감염

⑨ 항암

⑩ 뇌혈관 질환

⑪ 구강·심혈관

⑫ 과민성대장증후군

⑬ 자폐

최근 연구에서는 박테리아·바이러스·곰팡이 등 다양한 미생물이 암의 발생과 치료 과정, 특히 암 면역치료 효과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통해 암 치료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암 종양 미시 생태계, 즉 ‘면역-암-미생물 상호작용 축(immune-oncology-microbiome axis)’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암 진료에 새로운 진단과 치료 옵션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연구는 췌장암과 담도암과 같이 치료 반응이 낮은 치명적인 암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췌장암은 발병률이 계속 증가하지만 5년 생존율이 거의 변하지 않는 치명적인 암종이다. 그래서 초기 진단과 치료가 어렵다. 췌장암 세포는 전이하기 쉽고 항암치료에 대한 반응이 부족해 예후가 나쁘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췌장암 환자에서 건강인에 비해 장내 미생물 군집의 다양성이 낮다고 보고됐다. 미생물 군집의 불균형은 만성 염증을 유발할 수 있어 췌장암의 발병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미생물 군집의 변화는 췌장암의 발생과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췌장암 동물모델 실험과 항암 효과 향상

이 뿐만 아니라 구강 미생물 군집도 췌장암 병인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치주염을 가진 환자들은 췌장암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미생물 조성을 변경해 면역 기능과 항암 효과를 향상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췌장암 조직 내의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췌장암에서 미생물을 이용한 항암치료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췌장암 동물모델 실험에서 박테리아 제거 후 암 면역 활성 증가와 항암 효과 향상이 관

바이오산업 기술개발사업 개요

사업명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의약품 제품화

과제명 암환자의 면역항암제 효능 증대를 위한 휴먼마이크로바이옴 치료기술 개발

개요

ㅇ 면역항암제 치료받은 암환자의 분변 임상 코호트를 이용해 기구축된 유전체 분석 플랫폼에 기반한

휴먼마이크로바이옴 유래 면역항암 유도 후보 물질 발굴

ㅇ 면역항암제 효능증대에 최적화된 휴먼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 개발

주관기관 연세대(신상준)

공동연구·용역 분당서울대병원(황진혁), 연세대(김혜련·김한상), 숙명여대(양영), 종근당바이오(김경환), ㈜티엠에스헬스케어(최수지)

연구기간 2023년 4월 1일 ∼ 2025년 12월 31일(2년 9개월)

기대효과

ㅇ 사전에 확보된 면역항암제를 치료받은 암환자의 분변 코호트를 이용해 이미 구축된 유전체 분석플랫폼에 기반한

마이크로바이옴 유래 면역항암 증강 후보 물질 검증과 발굴

ㅇ 발굴된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바이오마커 후보와 치료제 후보 물질 작용기전 발굴

ㅇ 면역항암제 효능증강 유도 마이크로바이옴 소재 제조와 치료 유효성 검증

ㅇ 면역항암제 효능증강 유도 휴먼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 개발과 면역항암제 병합 임상 시험계획서(IND) 제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기존의 미생물 군집과 마이크로바이옴 분석 외에도 전사체·단백체·대사체 등 다중오믹스 데이터와 환자의 바이오 정보를 효율성 있게 정리·분석해 의학적 의미를 밝히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헬스케어의 융합으로 발전하고 있다.

찰됐다. 이로써 미생물 군집의 조성을 조절해 면역 기능과 항암 효과를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시됐다.

요약하면, 미생물을 기반으로 한 췌장암 예방과 치료 연구는 흥미로운 분야로 환자의 예후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미생물과 췌장암 간 상호작용을 잘 이해하고 치료 대상을 식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구강 미생물·췌장암 조직 미생물 등), 암세포와 면역세포의 상호작용에 대한 통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를 토대로 개별 환자에 최적화된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한 정밀 의학과 다학문적 연구가 필수적이다.

담도암은 그 예후가 췌장암만큼이나 좋지 않다. 담도암의 근본적인 치료는 수술적 절제이나 현실적으로 수술 가능한 환자는 30% 정도이다. 그 외 환자들은 세포독성 항암치료·표적치료·면역치료를 받는다. 최근 담도암에서 ‘섬유아세포성장인자 수용체 2’(FGFR2) 융합과 ‘아이소시트르산 탈수소효소 1(IDH1)’을 표적으로 하는 항암제의 효과가 확인됐다. 그러나 이러한 표적은 간 내 담도암에서만 일부 발현하며, 간외 담도암에서는 드물다. 또한 고빈도-현미부수체 불안정성

황진혁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소화기내과)는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건강증진센터장과 담도·췌장암 센터장을 맡고 있다. 황 교수는 담도·췌장암 조직의 미시 생태계를 분석해 치료 효과를 증가시킬 수 있는 바이오마커를 찾고자 한다. 사진=황진혁

(MSI-H) 혹은 불일치 복구 결함(dMMR)을 가진 담도암에서 면역항암제를 사용할 수 있지만, 해당 환자 비율이 매우 낮고 효능을 예측할 수 있는 적절한 바이오마커가 없다는 한계가 있다.

담도암 면역 체계에 영향 끼치는 마이크로바이옴

마이크로바이옴은 담도암의 면역 체계와 염증 반응에 영향을 끼쳐 담도암의 발생·진행과 관련이 있다. 담도암의 약 10%는 면역학적으로 ‘약물에 반응하는 암’(hot tumor)으로 분류되고, 20∼50%는 ‘약물에 반응하지 않는 암’(cold tumor)으로 분

류된다. 현재 담도암의 예후 개선을 위해 마이크로바이옴을 조절해 후자를 전자로 변환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생물 분석 유전체 기술을 기반으로 한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치료후보 물질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서 황진혁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분당서울대학교병원 건강증진센터장/담도·췌장암 센터장)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암환자의 면역항암제 효능 증대를 위한 휴먼마이크로바이옴치료기술 개발’(2023∼2025) 과제에 참여하고 있다.

담도·췌장암 환자의 분변 샘플을 이용해 치료 효능 관련 마이크로바이옴 라이브러리를 확보하고 연세대·숙명여대·종근당바이오·㈜티엠에스헬스케어와 협력해 다중오믹스 데이터와의 통합적 분석을 통해 면역 항암제 효능 관련 바이오마커 후보 스크리닝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기존의 미생물 군집과 마이크로바이옴 분석 외에도 전사체·단백체·대사체 등 다중오믹스 데이터들과 환자의 바이오 정보를 효율성 있게 정리·분석해 의학적 의미를 밝히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헬스케어의 융합으로 발전하고 있다.

황 교수는 약 4천 명의 다기관 담도·췌장암 코호트(특정 인자를 공유하는 집단)를 구축하고 있으며, 담도·췌장암 환자 약 1천 명의 검체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이용해 임상정보 기반 유전체·단백체·대사체 등의 바이오 데이터를 통합 구축하기 위해 수 년째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전장유전체 시퀀싱(WGS)·전장 엑솜 시퀀싱(WES)·전장 전사체 분석(WTS)등과 같은 유전체 빅데이터 분석과, 세포 단위의 기능적인 세부 분류가 가능한 단일 세포핵 전사체 분석과 위치 정보를 포함한 공간적 전사체 분석을 통합적으로 진행해 기존의 유전체 분석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래서 단일세포 수준의 종양과 종양미세환경의 프로파일링·공간적 대응(mapping)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복합적 의료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분석해 담도·췌장암의 예후와 치료 반응 예측에 관한 연구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한 황 교수는 담도·췌장암 조직에 존재하는 최소의 기능적 단위인 미시 생태계를 확인하고자 한다. 특히 이들의 구성 요소와 공간적 분포의 이질성·치료 전후를 동적으로 분석하려 한다. 이로써 치료 반응 예측과 치료적 효능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바이오마커를 찾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골수유래 억제세포’ 활성 막는 마이크로바이옴 찾아라

인체는 외부로부터 세균·바이러스나, 내부로부터 위험요인인 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비정상 돌연변이세포에 대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어체계·면역시스템을 정교하게 운용하고 있다. 외부의 적은 세포독성 T 세포가 감염된 세포를 직접적으로 사멸해 침입자를 제거하거나 B세포로 하여금 항체를 생성하게 해 세균과 바이러스의 증식이나 침입을 억제한다. 그에 반해 내부의 적인 돌연변이 세포는 인체를 순찰하고 있는 ‘자연살해 세포(NK 세포)’에 의해 제거된다. 그러면 이런 방어체계에서 암이 어떻게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기도 한다.

암세포는 얄밉게도 이러한 면역방어 체계에 대응하기 위해 항암 면역세포의 활동을 저하시키고, 면역억제 기능을 가진 세포를 생성한다. 이러한 암세포의 면역회피 능력을 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최근에 면역관문 억제제를 항암치료에 사용하고 있다. 특히 새로운 면역관문 억제제의 개발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암환자마다 암의 진행에 따라 종양 미세환경에 있는 다양한 면역세포의 분포가 다르고, 암의 성격이 달라서 항암 면역치료 효과가 차이 날 수밖에 없다.

암환자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은 건강한 사람과 달리 불균형 상태가 많으며 미생물종의 다양성도 현저하게 낮다고 보고돼 왔다. 예를 들면, 거대 B세포 림프종 환자에서는 유해균인 장내세균(Enterobacteriaceae)과 유산균인 서터렐라(Sutterella)를 더 많이 가지고 있고, 대장암 환자의 장에서는 DNA 손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박테로이데스 프라길리스(Bacteroides fragilis)가 높은 비율로 존재한다.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과 대사물질 생성

장내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종류가 다양할수록 체내에 필수적인 여러가지 대사물질을 만들어 생리과정에 더 많이 관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암환자에서 감소된 마이크로바이

연구팀은 우선 골수유래 억제세포의 면역반응과 억제능력을 차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마이크로바이옴과 그 대사체를 기반으로 하는 후보 물질을 발굴하는 것을 1차 목표로 한다.

옴 다양성은 암의 발병과 진행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면역관문 억제제를 투여한 흑색종·비소세포암·신장암 등의 암환자에서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차이에 따라 치료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가 발표됐다. 이로써 마이크로바이옴 활용 항암 치료제 개발을 위해 마이크로바이옴과 면역세포들 간의 연관성 검증이 연구의 기점이 되고 있다.

양영 숙명여대 교수(생명시스템학부·여성건강연구원 원장)가 주도하는 마이크로바이옴-항암치료제 개발팀은 ‘골수유래 억제세포를 표적하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항암치료제 개발’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골수유래 억제세포’(MDSC: Myeloid-derived suppressor cells)는 면역억제기능을 가진 세포의 일종이다. 암세포의 면역 억제 환경에 급격히 축적돼 암의 증식을 유도하고 다양한 항암제에 대한 내성을 강화시킨다. 학계에서는 종양 미세환경에 있는 골수유래 억제세포를 약화시킴으로써 항암효과를 높이고자 하는 전략이 급부상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골수유래 억제세포 억제 방법과 치료제가 개발돼 있지 않으며 항암 기전 연구도 부족한 실정이다. 연구팀은 우선 골수유래 억제세포의 면역반응과 억제능력을 차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마이크로바이옴과 그 대사체를 기반으로 하는 후보 물질을 발굴하는 것을 1차 목표로 한다. 이후 후보 물질의 면역 항암기전 연구를 규명하고 치료제 시제품 개발을 위해 세브란스병원·분당서울대학교병원·종근당바이오·(주)티엠에스헬스

양영 숙명여대 교수(생명시스템학부·여성건강연구원 원장)는 골수유래 억제세포를 타깃으로 해 마이크로바이옴을 발굴해 항암 치료에 활용하고자 한다. 사진=양영

케어와 공동연구를 전방위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이 암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마이크로바이옴의 종을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 해당 마이크로바이옴에 의해 생성되는 대사물질이 미치는 작용기전을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AI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마이크로바이옴의 다

양한 다중오믹스 연구(유전체·전사체·단백체·대사체·후성유전체·지질체 등)는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물질이 어떻게 생리 과정에 작용하는지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도록 기여하고 있다.

다중오믹스 분석 기술과 항암 기전 규명

다중오믹스 분석 기술에 기반해 마이크로바이옴이 생성하는 다양한 대사 물질의 항암 기전 규명을 위한 노력은 시너지 효과를 이뤄 비임상 단계부터 임상 단계까지 다양한 면역항암 연구를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양 교수 연구팀 또한 골수유래 억제세포의 활성을 억제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의 대사체 물질을 발굴하고 향후 암환자의 면역세포 분석에 따라 맞춤형 항암 전략을 제시할 예정이다.

지난해 말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마이크로바이옴 신약을 세계 최초로 승인하며 마이크로바이옴이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가설이 현실로 이뤄졌다. 이 가운데 지놈앤컴퍼니·CJ바이오사이언스·지아이바이옴 등 국내 바이오기업도 미생물을 활용한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항암제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임상 시험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각종 마이크로바이옴이 체내에서 특정 면역세포와 어떻게 상호작용해 암에 작용할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어 이번 연구는 더욱 절실하다.

양 교수는 “똑같은 암을 앓는 환자라도 환자마다 면역세포 비율에 따라 항암제 효능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암환자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항암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타깃 면역세포를 고려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감에 따라 암 발병률도 높아지고 있다. 골수유래 억제세포 타깃 마이크로바이옴 발굴은 다양한 항암 치료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충남대, ‘글로벌 오픈캠퍼스’ 강력 추진

가자마다·IPB 대학 등 인도네시아대와 MOA

충남대(총장 이진숙)가 ‘글로벌 오픈캠퍼스’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베트남 주요대학에 이어 인도네시아 가자마다대·IPB대학과 합의각서를 체결하며 차년도 글로컬대학30 사업을 위한 글로벌 협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충남대 이진숙 총장 등 대학 관계자들은 지난 13일 인도네시아 최고 국립대인 가자마다대학을 방문해 ‘글로벌 오픈캠퍼스’ 설립 등 경계 없는 공동교육과 연구를 위한 합의각서(MOA)를 체결했다. 이어 14일에는 인도네시아 농업 특화대학인 IPB대학(Institute Pertanian Bogor University)을 방문해 ‘글로벌 오픈캠퍼스’를 설립하기로 했다. 15일에는 공학 분야 중점 우수대학인 반둥공과대학을 방문해 관련 논의를 했다.

충남대는 지난 13일 인도네시아 가자마다대학과 글로벌 오픈캠퍼스 설립을 위한 합의각서를 체결했다. 사진=충남대

충남대는 두 대학의 각 캠퍼스에 글로벌 오픈캠퍼스 전진기지 역할을 담당할 ‘글로벌센터’를 설치하고 석․박사 공동 학위과정

을 포함한 공동 교육 및 연구 협력, 연구 장비 지원 등에 협력 하기로 했다.

가자마다대학은 1997년부터 충남대와 교

환학생 프로그램 등을 통해 상호 교류를 해오고 있는 오랜 전통과 명성을 갖춘 인도네시아 대표 국립대학이다. IPB대학은 보고르지역에 소재한 농업분야 중심의 손꼽히는 명문대학이다.

충남대는 이번 협약에 앞서 지난 10월 30일, 베트남 최고 국립대학인 하노이과학기술대학과 글로벌 오픈캠퍼스 설립을 위한 MOA를 체결하고, 충남대 대덕캠퍼스 내에 ‘글로벌센터’를 개소했다.

충남대 관계자는 “이번 인도네시아 대학들과의 글로벌 오픈캠퍼스 구축으로 대학은 물론 국경의 경계를 뛰어넘는 유례없는 고등교육 혁신을 통해 해외 우수 인력 유치와 함께 국제 공동 교육 및 연구의 기틀을 마련함으로써 차년도 글로컬대학30 사업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승우 기자 editor@kyosu.net

“창의적 연구성과 창출하는 연구환경 위해 정진”

이중희 전북대 교수, 한국공학상 수상

이중희 전북대 교수(나노융합공학과·사진)가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상인 한국공학상을 수상했다. 한국공학상이 시행된 이래 지방대에서는 첫 수상이다.

지난 9일 국립과천과학관에서 과학의 날을 맞아 열린 ‘2023년 대한민국과학기술대전’에서 이중희 교수는 공학 분야 세계 최정상 수준의 연구성과로 국가 경제 및 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한국공학상 수상자에는 대통령 상장과 상금 7천만 원이 수여된다.

이 교수는 지난 1996년 전북대 부임 이래 수소에너지에 관한 꾸준한 연구로 많은 우수 연구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그린수소를 저렴하고 높은 효율로 생산할 수 있는 다차원 나노촉매 소재 개발로 전극에 적용한 ‘알칼리 수전해 장치’를 개발, 세계 최고 수준의 수전해 장치 상용화의 길을 열어 창업 기업인 ㈜아헤스에서 생산하고 있다.

또한 수소전기자동차의 핵심 기술인 고압 수소저장 용기를 개발해 상용화하는 등 핵심적인 원천기술뿐만 아니라 상용화 기술에도 큰 성과를 이뤘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 480여 편의 SCI 논문(이중 상위 10% 이내 논문 380편)을 발표했다. 연구의 학문적 파급효과도 매우 커논문의 피인용 횟수가 4만1천회, h-index가 96에 달한다. 복합재료분야 저명학술지인 『Composites Part B: Eng』의 에디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중희 교수는 “세계 최고 수준 연구성과를 통해 우리나라 과학기술과 국가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 같다”며 “과학기술자의 사기를 높이고 창의적인 연구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연구 환경 조성을 위해서도 정진하겠다”라고 밝혔다.

‘한국의 노벨상’을 지향하는 한국과학상⋅공학상 심사대상은 10년 이내에 창출된 단일 주제의 연구업적을 대상으로 한다.

3단계의 철저한 심사과정을 거쳐 수상자를 결정하고, 연구 과정의 대부분이 국내에서 이루어져야만 심사자격이 된다.

이공 분야에서 세계 최정상 수준의 연구성과를 이룩한 과학기술자만이 수상의 영예를 안을 수 있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그해에는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기도 한다.

최승우 기자 editor@kyosu.net

우송철학상 대상에 ‘이성과 반이성의 계보학’

2012년부터 심경문화재단에서 선정

올해 우송철학상 대상은 철학아카데미의 『이성과 반이성의 계보학』(동녘, 2021)이 수상했다. 상금은 1천만 원이다. 지난해에는 철학자 김용규의 『소크라테스 스타일』(김영사, 2021)이 대상을 받았다.

우송철학상은 심경문화재단을 설립한고 우송 김태길 선생(1920∼2009)의 학문

적 업적과 그 뜻을 기리고, 현실 문제를 철학적으로 조명하여 철학의 대중화에 기여한 저작물을 선정한다. 2012년부터 시작된 우송철학상은 그간 비정기적(1회~6회까지 는 매년)으로 이루어진 시상식을 2022년부터 정례화했다. 수상 대상은 기출간된 저작물 중 출판사에서 추천을 받아 심사해 수상작을 선정했다. 매년 11월 15일을 전후해 일자를 정해 시상식을 진행하고 있다. 선정된

수상작품은 당해 출간되는 계간지 『철학과현실』 겨울호에 선정사유와 수상소감을 싣고, 1년간 해당 출간물의 광고를 싣는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15일 저녁, 프레지던트호텔 19층 아이비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는 상장과 상금을 수여했다. 이후 수상자는 계간지 『철학과현실』의 필자로 활동할 수 있다. 수상 작품을 추천한 출판사에게는 해당 작품의 광고 게재와 출간물 중 한 편의 광고를 1년 간 계간 『철학과현실』에 게재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제2회 한국출판편집자상 영남대출판부 이종백 씨 대상 수상

역사비평사 조수정

사계절출판사 김태희 금상

제2회 한국출판편집자상 대상은 영남대학교출판부 이종백 편집자(편집경력 34년)가 수상했다. (재)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이사장 김종수, 이하 재단)은 지난 9일 제2회 한국출판편집자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금상은 역사비평사 조수정 편집자(편집경력 29년)·사계절출판사 김태희 편집자(편집경력 26년)가 선정됐다.

심사총평은 이종백 편집자에 대해 “한국학과 인문학 관련 서적과 각 분야의 우수 저술들을 출판편집하는 데 앞장섬으로써 학술 출판의 발전에 기여해왔다”라며 “대구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는 출판물을 기획하고, 대구 지역의 문화 콘텐츠를 발굴하여 영어·중국어·일본어로 번역하여 해외에 널리 알림으로써 지역문화 발전과 출판의 국제화에 공헌해왔다”라고 밝혔다.

이 편집자는 그동안 600여 종의 책들을 기획·편집했다. 대표적 기획물로는 『한국문화사상사대계』(4권), 『한국·중국·일본 연력대전』(6권), 퇴계 이황이 남긴 시 2천여 수 전체를 한글로 풀이한 『퇴계시 풀이』전집

왼쪽부터 대상 수상자인 이종백 편집자, 금상 수상자인 조수정·김태희 편집자이다.

사진=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

(9권), 『주희시 역주』전집(5권), 『인문학육성총서』(33종), 『민족문화연구총서 및 자료총서』(30권), 『지역문화총서』 등이 있다.

재단은 우리나라 출판문화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편집 기획자들의 공로를 높이 평가함과 동시에 그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 출판계에서 처음으로 지난해부터 ‘한국출판편집자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제2회 한국출판편집자상은 올해 8월 28일부터 9월 22일까지 출판 편집 경력 15년 이상인 편집자를 대상으로 총 36명이 신청하였고 3차에 걸친 심사위원 심사를 거쳐 선정했다.

특히 올해 처음으로 특별상 개인수상자로 장경식 대표(편집경력 37년, 한국백과사전연구소 대표), 출판사수상으로 수류

산방(박상일 방장, 심세중 대표)이 선정됐다.

한국출판편집자상 신청 자격 제한의 특징은 이 상을 제정한 재단 임원(이사 및 감사)이 대표인 출판사의 직원은 투명성 확보를 위해 신청 대상에서 제외하는 기존의 방침을 유지했다. 한편 출판사 지명도나 규모도 모두 초월해 신청자가 제출한 자기소개서, 편집된 책만 가지고 심사했다는 특징이 있다.

심사는 수십 년간 문화담당기자를 역임하고 출판저널 창간주간을 맡았던 차미례 저널리스트,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 역임 후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파티(PaTI)의 날개(교장)인 안상수 디자이너,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 이사인 민족사 윤재승 대표, 한국출판학회 회장을 역임한 동원대학교 명예교수 부길만 심사위원장이 맡았다.

심사위원들은 심사 규정, 기준에 맞춰 예심과 본심 등 모두 3차에 걸친 회의를 진행해 수상자를 어렵게 선정했다. 심사위원들은 “신청자들이 제출한 성과물들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서적들이 다수를 차지했다”라고 밝혔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민한울 고려대 교수

‘젊은 과학자 Asia Pacific’선정

민한울 고려대 교수(KUKIST융합대학원·사진)가 ‘ 올해의 젊은 과학자 Asia Pacific’ 35인에 선정됐다.

‘올해의 젊은 과학자(TR35)’는 미국 MIT가 발간하는 기술잡지 <테크놀로지 리뷰> 100

주년을 기념해 시작된 것으로 매년 다양한 S&T 및 산업 분야에서 최고의 젊은 혁신가를 선정한다.

2014년부터 시작된 TR35 Asia Pacific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뛰어난 젊은 혁신가들을 선정한다.

이번 ‘올해의 젊은 과학자 Asia Pacific’ 35인에 선정된 민한울 교수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효율 상승 연구 기여 및 세계 최고 효율 달성에 대한 공로로 해당 상을 받았다. 페로브스카이트는 차세대 태양전지로써 크게 각광받고 있는 반도체 물질이다. 민 교수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광전 변환 효율을 높이는 연구를 했고, 2021년 세계 최고 공식 인증 효율을 달성해 미국재생에너지연구소(NREL) 차트에 등재됐다.

민한울 교수는 “뜻깊은 상을 받아 영광이고 앞으로도 관련 연구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조선대 제18대 총장에 김춘성 교수

조선대 제18대 총장에 김춘성 교수(치의예과·사진)가 임명됐다. 임기는 오는 11월 30일부터 2027년 11월 29일까지 4년이다.

학교법인조선대학교(이사장 김이수)는 지난 14일 김춘성 교수를 제18대 총장으로 임명하고 임명

장을 수여했다.

김이수 이사장은 “새 총장의 젊은 리더십으로 학교에 새 바람이 불길 기대한다”라며 “조선대의 밝은 미래를 위해 이사회도 적극적으로 돕겠다”라고 말했다.

김춘성 신임 총장은 “학생이 성장하고 지역의 발전을 선도하는 대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전 구성원의 뜻을 모아 나아가겠다”라며“아울러 지역을 넘어 세계에서도 우뚝 설 수 있는 대학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취임식은 오는 12월 8일 해오름관에서 열린다.

차용준 대전대 교수, 대한물리의학회장 선출

차용준 대전대 교수(물리치료학과·사진)가 제10대 대한물리의학회장으로 선출됐다. 임기는 2024년 1월부터 2년이다.

차용준 교수는 2013년부터 대한물리의학회 정보이사, 총무이사, 이사장을 거쳐 회장에 선출됐다. 그는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 의료기기 위원회

전문위원, 중소기업기술개발 지원사업 평가위원, 임상발란스테이핑물리치료학회 대전지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물리의학회는 한국연구재단 등재지로서, 물리치료학 및 물리의학 전공 학술지에서 우수성을 인정 받고 있는 학회이다. 현재 보건의료분야에 재직 중인 교수, 물리치료사 등 약 600여 명의 회원이 있다.

리광훈 서울시립대 교수, 한국유체기계학회 회장 당선

리광훈 서울시립대 교수(기계정보공학과·사진)가 지난 9일 한국유체기계학회 제21대 학회장으로 당선됐다. 리광훈 교수는 오는 2024년 1월부터 1년간 수석부회장을 지낸 뒤 2025년 1월부터 제21대 학회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리광훈 교수는 지난 2001년부터 서울시립대에

재직 중이며, 기획부처장, 교육혁신본부장, 미래혁신원장, 공과대학장, 공학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유체기계학회 부회장과 펌프및수차분과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기계학회에서도 유체공학부문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서울시립대 공학연구원 액화수소 연구센터장으로 연구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정헌택 울산대 교수, 일천상 수상

정헌택 울산대 초빙교수(생명과학부·사진)가 한국 분자-세포생물학회가 선정한 제28회 일천상을 수상했다.

일천상은 故 일천 이기영 교수가 이룬 분자세포생물학 분야의 선구자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매년 우수한 국내외 한국인 과학자를 선정해 수

여하는 상이다.

정 교수는 고령 연관 질환의 유전학적 특성, 면역계 세포 기능의 조절 및 방어능력, 일산화탄소 생성 효소의 유도 등 뛰어난 연구 업적과 함께 학회 발전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됐다.

정 교수는 지난 1976년부터 면역조절 기전 연구에 전념하며 국내 면역학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 2004년 국내 최고 권위의 의학상인 분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준영 충북대 교수, ‘차동완 젊은경영과학자상’수상

이준영 충북대 교수(경영정보학과·사진)가 지난 10일 카이스트 서울캠퍼스에서 열린 2023 한국경영과학회 추계학술대회 및 정기총회에서 차동완 젊은경영과학자상을 받았다.

이준영 교수는 온라인을 통한 사람들의 행태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정책 수립 및 적용에 대한 연구를 주로 수행하고 있다.

차동완젊은경영과학자상은 차동완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장의 이름을 따서 만든 상이다.

국내외 경영과학 분야에서 산학연활동을 활발하게 해 탁월한 업적을 이룬 연구자 중 만 40세 이하의 신진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김용의 전남대 교수, 동아시아일본학회 학술상 수상

김용의 전남대 교수(일어일문학과·사진)가 동아시아일본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지난 10월 28일 인천대에서 열린 동아시아일본학회 추계국제학술대회에서 일본학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했다.

김용의 교수는 지금까지 일본문화 및 일본문학에 관한 저·역서 30여 권을 집필했다. 제12대 동아시일본학회장을 역임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노동의 새벽’, 국가 정책에 달렸다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21

양재진 연세대 교수(행정학과)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기술, 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달 28일 양재진 연세대 교수(행정학과)가 「노동과 복지의 현재와 미래」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22강은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의 「개인과 공동체」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인간이 생존하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의식주를 비롯한 물자와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이런 물자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인간의 활동을 노동이라 한다. 노동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역사를 함께하고 있다. 노동이 인간의 활동을 의미한다면, 복지는 그 결과로서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복지를 개인이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상태라고 정의 내릴 때 그러하다. 이렇게 본다면 복지 또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복지를 어떤 상태로 정의하지 않고, 그러한 상태를 만들기 위한 정부(혹은 국가)의 활동으로 본다면 그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개인이 노동하고, 국가가 복지를 제공하는 역사는 국가라는 정치 공동체의 탄생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복지라고 할 때 머릿속에 떠올리는 각종 복지 급여는 역사가 그리 길지 못하다. 자본주의의 탄생 이후, 인간의 노동력을 팔고 사는 노동 시장이 성립한 이후의 일이다.

초기 자본주의 산업 사회에서는 토지와 유리된 채 도시로 모인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농민이 아니라 임금 근로자가 된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디든지 가서 무슨 일이든 하고 임금을 받아야 한다. 마르크스가 노동자들을 형식적으로는 자유인이나 임금 노예에 불과하다고 불렀던 이유이다. 그런데 도시 근로자들은 전근대 농업 사회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위험에 처했다. 아프거나, 나이가 들거나 혹은 산업 재해를 당해서 노동 능력을 상실하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공황이 닥치고 실업에 빠져도 마찬가지였다.

전근대적인 농촌 사회에서는 실업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정년이나 은퇴라는 개념도 없었다. 장애인이 된다고 해도 다른 가족들이 그리고 지역 공동체에서 먹을 게 있는 한 굶어 죽게 하지는 않았다. 아파서 며칠 농사를 못 지었다고, 수확 후 농사 일 못한 만큼 제하고 곡식을 나눠 갖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산업화·도시화가 진전되면 진전될수록, 삶이 위태로워졌다. 생산력은 분명 크게 올라갔는데, 후대에 사회적 위험이라고 부르는 산업재해·실업·은퇴·질병등에 처하면 생존의 위기에 처했다.

마르크스가 태어나고 젊은 시절 활발히 활동한 독일에서 노동 운동과 공산주의 운동이 가장 거셌다. 철강 산업 등 중화학 공업이 빠르게 성장한 결과 대공장 노동자들이 급격히 팽창했

다. 이들을 바탕으로 1863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노동 계급의 정당인 독일 사회민주당(SPD, 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이 창당됐다. 1877년 397석의 제국 의회 선거에서 50만 표를 얻어 12석을 차지하며 의회에 진출했다. 산업화된 작센 지방에서는 유효 득표의 38%를 얻어 제1당이 되었다. 베를린과 함부르크 같은 개신교 대도시에서는 각각 39.2%와 40%를 얻었다.

비스마르크 총리는 다급했다. 그는 노동자들을 국가의 품 안으로 포섭하고자 했다. 사회 보험료의 3분의 1도 국가가 지불하도록 설계했다. 연 소득 750마르크 미만의 노동자들은 아예 기여금이 면제되도록 하기도 했다. 이제 국가가 국민의 삶을 보호해 줄 테니, 체제를 바꾼다고 혁명이다 뭐다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돌아오는 것은 탄압뿐일 것이니 말이다. 산 업화 사회의 표준은 남성 일인 생계 부양자 모 델(Male Breadwinner Model), 즉 남성 외벌이 모델이었다.

남성은 밖에 나가 돈을 벌어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은 집안에서 가사와 보살핌을 담당했다. 사회 보장 또한 남성 가장에 대한 소득 보장이 중심이 됐다. 실업 급여와 연금을 남성 가장의 실업 전 소득에 비례해 두둑이 지급해야 했다. 그래야 아내를 비롯한 부양가족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남편이 사망하면 유족 연금이 나와서 아내가 생계를 유지했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표준적인 삶, 표준적인 사회 보장의 모습이다.

그런데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후기 산업 사회로 접어들면서, 지식 기

“기술 혁신으로 인한 일자리 변화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직무 변화 또한 거세다. 이 시점에서 국가가 기울여야 할 노력은 기술 혁신에 따른 일자리와 직무 변화에 적응할 수 있게 국민들의 직업 능력을 배양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이후의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반 경제가 도래했다. 과거처럼 제조업 공장에서 남성의 완력이 필요한 시대는 지나갔다. 컴퓨터로 사무 보거나 작업하는 시대가 됐다. 지식 노동에는 성별에 따른 직업 능력에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다. 게다가 서비스 산업의 발달로 여성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여성 고용이 급증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전형적 특징 중 하나는 상품화다. 노동도 예외가 아니었다. 누구나 자유이지만, 취업을 해서 정해진 시간만큼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먹고 살 수 있다. 그런데 실업 수당이나 연금 그리고 공공 부조 같은 복지 급여는 탈상품화 효과를 낳는다.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아도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지 국가의 목표가 탈상품화, 한 걸음 더 나아가 탈노동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복지 국가는 인간다운 노동을 지향할지언정, 탈노동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탈노동이 되어서는 이 사회가 유지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생산은 이어져야 한다. 복지 국가는 개인이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위험에 빠졌을 때, 충실하게 소득 보장을 해주는 것이 목표일 뿐이다.

그리고 되도록 빨리 노동 시장에 복귀할 수 있

양재진 연세대 교수(행정학과)는 “현대적 의미의 복지는 자본주의 노동 시장의 성립과 함께 태어났고, 노동 시장의 변화와 함께 성장했다. 미래 노동 시장은 어떻게 변하고, 이에 복지는 어떻게 조응할까?”라며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나타나고 있는 노동 시장 변화의 양상을 살펴보면, 미래를 일부 가늠할 수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게 도와주고자 한다. 노동 시장 내에서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게 (상향)이동할 수 있게 도와주려 한다. 탈상품화 못지않게 재상품화가 복지국가의 목표인 것이다.

현대 복지 국가는 위험에 빠진 자에 대한 소득 보장을 넘어, 근로를 유인하는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근로장려금(EITC)이나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뿐만이 아니다. 여성의 경제 활동을 지원하는 공보육 등 사회 서비스도 그러하다. 복지 국가가 탈상품화만을 목표로 한다면, 그 사회의 생산력은 서서히 감소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역설적으로 탈상품화에 쓸 재원도 마련하지 못하고 복지 국가는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선진 복지 국가일수록 근로와 생산 활동을 장려하고, 완전 고용을 추구한다.

현대적 의미의 복지는 자본주의 노동 시장의 성립과 함께 태어났고, 노동 시장의 변화와 함께 성장했다. 미래 노동 시장은 어떻게 변하고, 이에 복지는 어떻게 조응할까?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나타나고 있는 노동 시장 변화의 양상을 살펴보면, 미래를 일부 가늠할 수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은 경제의 디지털화와 플랫폼화로 나타나고 있다. 상품과 서비스 생산 방식과 가치 사슬도 현저하게 변화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노동 시장도 변화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인간은 이제 육체노동뿐만 아니라 단순 반복적 인지 노동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 있다. 시·공간의 구속으로부터도 해방돼 노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됨은 물론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지 노동까지 자동화되는 경우, 일자리 대체가 생산성 증가에 따른 일자리 창출을 크게 넘어설 것으로 우려하곤 한다.

4차 산업혁명은 노동 과정을 바꾸고, 생산 방식과 고용 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 변화로 생산 과정이 바뀌면 노동 과정

도 함께 변하게 마련이다. 직업은 여러 직무로 이뤄져 있고, 기술 발전은 일자리에서 필요로 하는 직무 내용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기술 변화는 관련 직무를 대체하고, 신기술을 다룰 수 있는 직무 능력을 새롭게 요구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 수요 변화와 더불어 생산 방식과 고용 관계 또한 변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기업들은 자체 생산보다는 외주에 의존하고, 핵심 인력을 제외하고는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생산 과정의 유연성을 높인다. 주문형 거래가 늘어나면서 독립 계약자, 시간제 노동자, 그리고 파견 근로자 또한 증가하고 있다.

기술 혁신으로 인한 일자리가 줄고 사회 보험의 사각지대에 빠질 수밖에 없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늘어난다며 4차 산업혁명기의 사회 보장은 기본 소득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일자리가 실제로 줄어드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사회적 위험에 빠져도 의지할 데가 없는 플랫폼 노동자 때문에 기본 소득을 다른 전체 국민에게도 무조건 매월 나눠줘야 한다는 주장은 합리적이지 않다. 사회 보험이 작동하기 어려운 플랫폼 노동자 등 비정형 노동자층에게는 기초연금이나 실업 부조처럼 일반 조세로 운영되는 소득 보장 제도를 부가하면 된다.

나아가 덴마크처럼 고용 기반이 아닌 소득 기반 고용 보험 제도의 도입도 하나의 방안이다. 기존 고용 보험은 임금 노동자들의 보험이다. 사용·종속 관계가 명확할 때 작동한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자 같은 종속적 자영자는 임금 노동자가 아니지만 소득은 있다. 노동자의 임금에 보험료를 부과해서 운영하던 것을, 임금 소득이든 사업 소득이든 소득에 보험료를 부과하고 실업 상태에 빠지면 (혹은 일감이 없게 되면) 실업 급여를 지급하면 된다. 소득 기반 고용보험은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소득 파악이 전제돼야 작동하는 시스템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기술 혁신으로 인한 일자리 변화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직무 변화 또한 거세다. 이 시점에서 국가가 기울여야 할 노력은 기술 혁신에 따른 일자리와 직무 변화에 적응할 수 있게 국민들의 직업 능력을 배양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이후의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체온 따라 상태 변하는 정맥 주삿바늘 개발

카이스트 정재웅·정원일 교수 공동연구팀

최근 국내 연구진이 체내 삽입 시 딱딱한 상태에서 부드러운 상태로 변해 생체조직 친화력을 높이고 재사용이 불가능한 정맥 주삿바늘을 개발했다.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정재웅 교수 연구팀이 의과학대학원 정원일 교수 연구팀과 공동 연구를 통해 환자 건강증진과 의료진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 가변 강성 정맥 주삿바늘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주삿바늘은 정맥 내 약물 투여 중 혈관 손상과 염증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아울러, 한번 사용하면 재사용이 불가능해 비윤리적인 의료용 주삿바늘 재사용 문제를 원천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에 개발된 기술은 체온에 의해 주삿바늘이 유연해지는 특성을 통해 정맥에 약물 주입 중 주사 삽입 부위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장함과 동시에 주삿바늘에 의한 혈관 벽 손상 방지를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사용 후 찔림

왼쪽부터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의 정재웅 교수, 의과학대학원 정원일 교수다. 사진=카이스트

사고나 비윤리적 주사기 재사용에 따른 혈액 매개 질환 감염 문제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카렌-크리스티안아그노 박사과정 연구원과 의과학대학원 양경모 박사가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 지난달 30일자에 게재됐다.

정맥주사는 혈관에 약물을 직접 주입하는 방법으로 신속한 효과를 유도하고 지속적인 약물 투여를 통한 치료가 가능해 전 세계적으로 환자치료에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주삿바늘은 금속이나 플라스틱 등 딱딱한 소재로 제작돼 부드러운 생체조직에 손상과 염증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에 따라 치료 과정 중 환자들의 움직임이 제한되고, 혈관 손상이나 통증을 해소하기 위한 추가 치료와 의료 비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더욱이, 딱딱한 특성은 사용 후 의도치 않은 찔림 사고를 야기하고 비용 절감을 위한 비윤리적 주삿바늘 재사용을 가능하게 하며, 이는 인체면역 결핍 바이러스(HIV), B형/C형 간염 바이러스 등 심각한 혈액 매개 질환 감염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 문제는 전 세계적인 사안이며, 감염관리의 중요성으로 인해 세계보건기구(WHO)는 재사용이 불가능한 스마트 주사기 개발과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정재웅 교수는 “개발된 가변 강성 정맥 주삿바늘은 기존의 딱딱한 의료용 바늘로 인한 문제를 극복해 환자와 의료진 모두의 안전을 보장하고, 주삿바늘 재사용으로 인한 감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매우 크다”라고 말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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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즈 성공은 상생과 협업에 달렸다

딸깍발이

김경화 편집기획위원

동의과학대 경찰경호행정과 교수·기획처장

요즘 대학 구성원의 삶은 굉장히 바쁘기도 하지만 너무나 불안하고 팍팍하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라이즈)’ 구축을 위해 7개 시범지역에 속하는 광역지자체와 그 지역의 대학은 교육현장의 변화에 대응하고자 ‘살아 남기 위한 혁신’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맞물려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변해야만 한다는 점과 지역혁신중심의 대학지원체계라는 방향 설정에 대해 지역대학 구성원도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역의 대학은 지난 입시 결과에서 충격적인 결과를 이미 받아들었고, 올해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와 광역지자체의 라이즈 구축 방안을 위한 공청회와 설명회 등에서 제시된 라이즈 체계의 주요 골자는 첫째, 광역지자체 산하에 라이즈 센터를 두고 지역대학을 지원한다. 둘째, 광역지자체가 가진 문제로 고등교육 전문성이 부족한 점과 지역선출직 지자체장의 권한과 예산 배분이 향후 재선출을 위한 정치적 판단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교육부에서 지역대학 업무를 총괄하

는 교육개혁지원관을 파견한다. 셋째, 지자체와 지역 대학, 산업계가 참여하는 ‘(가칭)지역고등교육협의회’를 신설한다.

성공적인 라이즈 시스템의 정착을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한다. 먼저, 지방정부의 대학과 교육에 대한 ‘전문성’ 확보가 긴급하게 필요하다. 지방정부는 국가예산 수조 원이 지원되는 만큼 지방정부 주도로 대학발전과 지역사회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 광역지자체에 교육개혁지원관 파견은 장기적 측면에서 볼 때 교육분야의 ‘자치와 분권’의 거대한 흐름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가 있다. 향후에는 지방정부 자체적으로 지역대학과 관련된 교육 전문성을 확보하고 지역에 최적화된 교육 지원체계, 대학 혁신체계를 만들 수 있도록 독자적인 거버넌스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라이즈 시행시 지역대학들 간 상생과 협업을 위해 공유대학·연합대학·통합대학으로 혁신의 방향을 잡는 점을 고려해 독립적인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가칭)지역고등교육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위원회 소속으로 법인체인 ‘라이즈 센터’를 두고, 광역지자체에서 조직개편을 검토 중인 ‘(가칭)고등교육국’ 등 국단위 부서가 위원회 실무를 지원하게 하거나 전담 실무부서로 개편하는 것이 타당하다.

셋째, 일반대학과 전문대학, 국립대와 사립대, 나아가서는 대학의 중장기 발전계획이나 특성화 방향 등 그 역할과 기능에 따른 맞춤식 지원과 효율

적 재정배분이 필요하다.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은 그 역할과 기능이 다르다. 물론 교육부나 지역사회의 시각으로 볼 때는 그 기능과 역할의 중복성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라이즈 체제 아래에서는 재정을 배분할 때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이 수행하는 역할과 국가 및 지역, 지역 산업계의 인력 양성 목표나 인력 요구 등을 고려해 중복성은 피하고 지역 인재양성, 지역 산업혁신, 지역사회혁신, 지역 대학혁신 프로젝트별 실용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경제 성장을 위한 특정 산업 분야에서 전문적인 인력이 부족한 경우 전문대학에 투여되는 재정 비율을 유지하거나 늘릴 필요도 있다. 앞으로 2030년이 되면 2차 학령인구 충격이 다가올 것이다. 이런 거대한 충격파를 극복하고 지역과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정부·국회 등 중앙 정치권과 지방정부·지역대학· 지역산업계·지역사회가 서로 강한 연대의식을 가지고 협력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육이라는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대학이 자율적·지속적 혁신을 추진해 미래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할 필요가 있다. 대학도 스스로 생존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자기 주도적인 혁신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대학이 담대한 혁신을 지속하는 데 교육전문가, 시민과 학부모, 학생 등 대학 관련 당사자의 관심과 지지, 성원이 필요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사실이다.

갤러리 초대석

「만날 수 없는」

윤치병, 캔버스에 유채, 2023

윤치병 작가 전시회는 다음 달 19일까지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조마루로 대안공간아트포럼리에서 열린다. 일요일은 휴관이다. 그는 아카데믹한 작가다. 이런 수식이 현대미술 작가에게 칭해져온 일련의 금단을 건든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 그의 작업은 문자 그대로 '잘 그린 그림'이고, 보이는 사실을 테크니컬하게 잘 묘사하고 있으며, 회화의 기본에 충실하고 작가 주관은 절제된 편에 있다. 그림은 절정의 기교를 드러내왔다. 친구나 가족 등 그와 가까운 인물이나 주변의 일상 사물을 모델로 재현해온 그의 기술력은 초기부터 이미 거의 완숙한 정도에 이른 것으로 보였다. 이에 대학 재학 때부터 화랑가의 관심을 받았던 그의 회화는 대개 평범한 대상을 과장 없이 그려 아름답고 유려하지는 않지만, 사진을 찍은 것처럼 섬세하며 적나라했다. 미화하고 왜곡하는 것 없이 보이는 대로를 숙련해 왔고, 그것이 곧 독자성이 된 작가 윤치병이다. 그의 하이퍼리얼도 그렇게 자기 삶의 실재를 기반으로 그려졌음을 알아야 한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출처=대안공간아트포럼리

고등직업교육에 대한 비전 제시와 실천이 절실하다

교수논평

한국인 최초로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가 작년 서울대 후기 졸업식에서 한 축사를 동영상으로 본 많은 이들은 감탄한다. 가슴이 뭉클할 만큼 진지하고 정직하며 감동적인 축사였다. 그런데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 지인이나 학생들에게 노동자 출신인 천현우 씨의 책 『쇳밥일지』에 나오는 전문대학 졸업식 축사도 함께 보라고 권한다. 천현우 씨는 한국폴리텍대학을 나온 청년 노동자로 온갖 고생을 겪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진솔한 조언을 해주고 있다. 『쇳밥일지』를 통독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현재 한국 대학 생태계가 처한 위기에 대한 언설은 넘쳐나지만, 정작 전문대학 재학생을 위한 ‘고등직업교육’의 개혁을 위한 비전 제시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전문대학 학생들은 4년제 일반대학 재학생보다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처지인 경우가 많아서 더욱 세심한 정책과 지원이 필요한데도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셈이다.

‘고등직업교육’이라는 개념은 고등교육 연구와 담론에서 전문대학 교육의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법률적으로 정의된 정식 용어는 아니다. 「고등교육법」의 관련 조항을 살펴보면, 제37조는 산업대학, 제55조는 기술대학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한편, 고용노동부 산하에 있지만 전문대학과 유사한 한국폴리텍대학은 「국민 평생 직업능력 개발법」에 법률적 근거가 있다. 한국폴리텍대는 1968년 중앙직업훈련원으로 출범했다가 1998년 기능대학 24개와 직업전문학교 21개의 통합을 통해 학교법인 한국폴리텍대학으로 출범했다. 「국민 평생직업능력 개발법」의 제2조(정의) 5항(“기능대학이란 「고등교육법」 제2조제4호에 따른 전문대학으로

서 학위과정인 제40조에 따른 다기능기술자과정 또는 학위전공심화과정을 운영하면서 직업훈련과 정을 병설운영하는 교육·훈련기관을 말한다.”)이 폴리텍대의 법적 규정이며, 이 조항에 따를 때 폴리텍대는 전문대학의 범주에 속한다.

이처럼 관련 법률을 잠깐 살펴봐도 ‘고등직업교육’이 법률 용어로 채택되어 있지 않음은 물론이고, 산업대학·전문대학·기술대학·기능대학 등의 규정이 상당히 혼란스럽다는 사실이 확인된 장기적으로 이들 대학의 규정과 상호관계를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재조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진입한 빛나는 성공의 배후에는 열악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의 숙련도와 창의성을 발휘한 우수한 노동 인력의 큰 역할이 있었다. 또 지난 코로나19 대유행의 위기에서도 대한민국은 대기업부터 중소제조업에 이르는 산업 생태계가 건재한 상태에서 민첩하게 대응함으로써 유럽처럼 마스크 부족이나 생필품 대란을 겪지 않았다.

대부분이 사립대인 전문대학의 절반 정도가 비수도권에 있고, 지역의 4년제 사립대학 역시 비수도권 전문대학들과 함께 큰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4년제 사립대와 전문대학의 교육 프로그램이 잘 구분되어 분담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지난 10년 이상 4년제 사립대들이 살아남기 위해 인기학과와 유망한 실용전공 위주로 학제를 개편함으로써 전문대학의 영역을 침범하여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의 구분이 많이 무너진 상태다. 많은 수의 지역 사립대와 전문대학이 학령인구 급감 속에 모두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물론 정부 정책의 부재다. 현재 전문대학의 심각한 위기에 비해 고용노동부 산하의 한국폴리텍대는 고용보험기금의 안정적인 지원을 받고 있어 기자재․실습시설 등의 교육 환경에서 다른 전문대학에 비해 훌륭한 여건

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주무부처가 고용노동부가 관리하는 한국폴리텍대와 교육부가 관리하는 전문대학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상호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동시에 교육부 산하 전문대학의 교육 여건을 개선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 과정에서 ‘고등직업교육’의 개념과 위상을 재정립하고 관련 법률을 정비하는 동시에 산업정책, 인력수급정책 등의 관점에서 특정 전공의 교육과정이 2년·3년·4년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정확히 평가하여 지역의 전문대학·폴리텍대가 수행할 고등직업교육을 현실에 맞게 재편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고등직업교육기관의 특성상 재교육기관·평생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도 강화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사실상 경쟁력을 상실한 지역의 한계사학도 과감하게 ‘고등직업교육’의 범주 속에서 구조조정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전문대학 졸업생들이 열악한 근로조건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현실을 단기간에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고등직업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전면적인 무상교육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고등직업교육의 무상화는 날로 심각해지는 사회 양극화를 완화하는 훌륭한 정책수단이 된다. 동시에 인구 급감의 현실 속에서 우수한 해외의 젊은이들을 유학생으로 받아 잘 교육시켜 국내 제조업에 정착하게 함으로써 경제활동인구 위축과 전반적인 고령화 추세라는 사회적 위기 극복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해외 우수 인력 유치는 첨단분야나 국가전략 산업만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를 유지할 제조업 분야에서도 꼭 필요하다.

김명환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현재 전국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 교수협의회 부회장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특별위원장을 지냈다.

유학생의 시각으로 본 제3차 일대일로 포럼

중국대학은 지금

얼마 전 중국에서는 제3차 일대일로 포럼이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일주일 전부터 북경 시내의 도로와 길거리는 온갖 홍보물로 채워졌고, 일대일로 포럼의 원만한 개최를 축원하는 전광판 메시지가 도처에 설치됐다. 많은 국가의 정상이나 정상급에 해당하는 관료들이 줄지어 북경 시내로 들어왔다. 마치 청조 건륭황제의 팔순 잔치를 축하하러 온 조공국의 행렬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번 포럼은 시진핑 주석이 3연임 이후 처음 열린 대규모 행사였다. 시진핑 주석이 자신의 3연임을 국제적으로 공인 받는 자리이기도 했다. 실제로 일대일로 사업은 시진핑 정권이 들어서고 불과 3개월만에 시작된 국책사업이었고, 국제사회에서 시진핑 주석의 대표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3차 포럼은 이전과 비교하면 초라했다. 참가국도 대폭 줄었고 향후 일정도 내놓지 않았다. 제1차 포럼에서는 참여국 정상들이 2년 후에 회의를 다시 열겠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었다. 제2차 포럼에서는 향후 포럼을 다시 개최하기를 바란다는 수준의 공동성명이 나왔다.

그러나 이번 포럼에서는 공동성명이 의장 성명으로 격하됐고, 차기 포럼의 개최 일자를 포함해서 유의미한 내용을 찾기 어려웠다. 오히려 중국 측에서는 앞으로 일대일로 사업의 내실을 튼튼하게 하겠다는 애매모호한 메시지를 내놓았다.

세계적으로 고립되고 있다는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지고 있다. 공식 대표를 제와 하면 포럼에 참가한 서방민주국가의 수는 크게 줄었다. 중앙아시아나 아프리카 지역의 적지 않은 권위주의 국가들이 국빈 대표단을 파견했다. 중국이 여전히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제3세계와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역사적으로 중국에서는 외국 원조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신중국 성립 이래 대약진과 문화대혁명 시기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중공 중앙은 천문학적 규모의 원조를 제공했다.

아마도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상과 마오의 체면을 무엇보다 중시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번 포럼의 비용도 전액 중국이 부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돈을 중국의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쓰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

라고 넌지시 말해준 사람도 있었다.

일대일로의 열기가 식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탈리아는 이미 일대일로 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스리랑카는 중국에서 빌린 부채를 상환하지 못해 국가부도 사태에 처했으며, 남부 함반토타 항구의 운영권을 99년 동안 중국에게 내주었다. 두 세기 전 서방 열강이 중국에게 했던 일을 이제 중국이 약소국가에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이 표면적으로는 상대국가의 ‘개명(开明)’을 내세우면서 사실은 그 나라의 여러 이권을 빼앗아 갔다. 중국의 이런 현실을 ‘중국특색 제국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미국도 세계 경찰이라면서 여러 나라에서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키거나 독재국가를 원조한 경험이 있었다. 최근 중국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목소리가 있다. 중국의 투박하고 세련되지 않은 자세가 불필요한 거부감을 불어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중국에게는 거대한 자본력 대신 진실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우방이 더 필요해 보인다.

조대호

중국인민대학 역사학원 박사과정

중국인민대학 역사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시베리아지역 화교와 한인 공산주의자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근현대사가 전공이다. 주요 연구영역은 중국공산당사, 국제공산주의운동이다.

김상돈의 교수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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