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세대’에게 철학 가르치기
포스트코로나 시대, 최고의 강의32
권홍우 경북대 교수학생들에게 소위 “쓸데없다”고 하는 순수 학문 중에서도 최고라 할 만한 철학을 가르치다 보니, “어떻게 가르칠까?”보다도 “무엇을, 도대체 왜 가르쳐야 하나?”라는 질문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대학에서 순수 학문 분야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면서, 철학 교육 자체에 대해 회의감과 무기력함을 고백하는 교수도 꽤 있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상황이 좀 달랐다. 타협 없이 정통 철학을 가르침에도, 전공수업의 수강생이 코로나19 상황을 거치면서 꾸준히 늘어나더니 이제는 100여 명이 수강하는 대형 강의가 됐다. 여러 요인이 합쳐진 결과로 나의 공으로만 볼 일은 결코 아니다.오픈북은 학생의 공부 패턴을 바꾼다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요즘 문·이과 사이의 ‘전쟁’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고 한다. 다음과 같은 취지의 게시글도 있었다. 이공계열 학생인데, 인문사회계열 전공 수업을 한 번 들어봤더니 왜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이 취업을 잘 하지 못하는지 알겠더라는 것이다. 어떤 학자가 무슨 이론을 제시했는지 달달 외우는 것이 수업의 전부인데, 그런 공부로 요즘 세상에 어디에 취업할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권홍우 교수는 학생이 수업 내용을 ‘통암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할 수 있도록 모든 시험은 오픈북으로 진행한다. 또한, 강의에 대한 평가는 학기말이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 수시로 이루어진다.
악의적인 측면이 없지 않지만 뼈아픈 지적이다. 인문학적 사유 역량이 중요하다더니, 우리 스스로 인문사회 과목을 정보 전달 위주의 ‘암기과목’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그래서 취업에 바쁜 학생들의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적어도 내가 수업에서 만난 요즘 학생은 과거의 학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요즘의 학생은 어렵고,
당장은 쓸 데없어 보이더라도, 수업을 통해 더 깊게 사유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고 더 똑똑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느끼는 강의를 제 발로 찾아온다.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한 가지 방법만 소개해 보겠다. 나의 경우 모든 시험을 ‘오픈북’으로 했다. 배운 것을 암기해서는 풀 수 없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야지만 풀 수 있는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다. 출제는 고역이지만, 학생들의 공부 패턴은 확실히 달라진다. 출제에 대한 고민 과정에서 강의자의 교육 목표가 좀 더 분명해지는 것도 수확이다.‘통암기’ 하는 MZ에게 1차 문헌 노출시키기요즘 ‘평균적인’ 인문사회계열 대학생들의 전공 공부 패턴은 이렇다. 수업에는 가급적 빠지지 않고 꾸준히 참석하되, 평소에는 공부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시험 2주 전쯤이 되면 시험 공부를 시작하는데, 공부는 수업 시간에 사용되었던 PPT 자료와 필기를 읽는 것이 핵심이다. 가급적이면 교수님이 수업에서 했던 농담까지 적어두었다가 ‘통암기’하는 편이 유리하다.사실 이런 식의 공부로 순수 학문을 통해 길러야 할 역량이 길러질 리 만무하다. 특히, 철학 분야에서는 철학자들의 문헌을 스스로 탐독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필수이다. 문제는 마땅히 읽힐 것이 없다는 사실과 또 그마저도 잘 안 읽는다는 사실. ‘짤’에 익숙한 요즘 학생들을 위해서 나는철학자들의 어려운 1차 문헌을 발췌하고 다듬어 200쪽 정도의 강의자료집을 만들고, 매 수업 전에 어느 정도 분량을 읽어오도록 한다. 실제로 읽었는지 여부는 간단한 LMS 온라인 퀴즈를 통해 서 확인할 수 있다. 독서에 익숙지 않은 요즘 세대라지만, 논리적 글 읽기 훈련이 중요하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다. 수업을 통해서 적절히 기회를 부여하면 학생들은 기꺼이 잘 따라온다.
소논문 과제를 내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단, 학생들이 어려운 주제에 대해서 스스로의 논리로 쓸 수 있는 글은 2~3쪽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유념하는 것이 좋다. 1차 소논문에 대해서 피드백을 해주면 2차 때에는 조금 더 나은 글을 써오고, 무엇보다도 글쓰기에 자신감이 붙는다.온라인 강의 피드백은 학기 중에도내가 가르치는 강의에서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첫 시간에 직전 학기에 해당 수업에서 받았던 강의평가를 학생들에게 읽어준다는 점이다. 좋은 평가는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기대를 높인다. 나쁘게 평가한 점들에 대해서는 이번 학기에 어떤 식으로 개선할지에 대해서도 말해준다.학기 중에는 온라인 퀴즈의 주관식 문항을 이용해 주기적으로 강의에 대한 의견이나 어려운 점을 적도록 한다. 코로나19 때 소통에 대한 갈급함으로 시도한 방법인데 효과가 커서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코로나19 이전보다 학생과의 소통은 훨씬 더 활발해졌다. 대면으로는 한마디도 안 할 것 같은 학생도 글을 통해서는 자유롭게 의견을 전한다. 학생의 반응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은 강의 개선을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러나 효과는 그 이상이다. 자신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있다고 느낄 때, 학생은 그 진정성에 보답하려 한다.
강의의 변치 않는 정답, 실력과 진정성소소한 팁이 많겠지만, 누군가가 좋은 강의의 조건을 묻는다면 나의 답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실력’과 ‘진정성’. 난해하고 추상적인 이론을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드는 실력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한 가지는 학생을 향한 진정성이다. “어차피 공무원 될 아이들인데 이런 건 가르쳐서 뭐하나” 식의 태도는 최악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을 가르친다는 확신을 가지고, 애정으로 학생들을 대한다면 학생은 그에 대해 반응하게 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교수자가 교육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강의에 임하면 좋겠다.
권홍우
경북대 철학과 교수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MIT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호주 시드디 대학에서 연구원,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강사를 했으며 현재는 경북대 철학과 부교수다. 주요 논문으로 「Moore’s Paradox: An Evansian Account」, 「Mary and the Two Gods」 등이 있다.
“통일 필요하다” 2007년 이후 최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2023 통일의식조사 학술회의’통일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2007년 이후 최저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2023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국제적 신냉전 국면으로 주변 정세의 불안과 북한의 무력도발이 지속됨에 따라 중국과 북한 위협인식이 상승했다. 이에 따라 자체 핵무장에 대한 국민 여론이 비등해졌으며, 그 결과 통일에 대한 공감대는 2007년 조사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은 지난달 26일, ‘신냉전 한반도, 멀어지는 통일’이라는 주제로 학술회의를 열고 「2023 통일의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07년부터 지난 17년간 통일·북한·대북정책·주변국·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국민의 시각과 인식변화를 조사해오고 있다.올해 조사는 한국 갤럽에 의뢰하여 지난 7월 4일부터 7월 27일까지 전국 17개 시, 도의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천200명을 대상으로 1:1 면접조사를 통해 실시됐다. 표본오차는 ± 2.8%, 신뢰수준은 95%이다.이번 학술회의는 1부 주요 조사 결과 발표과 토론, 2부 조사자료에 기반한 △한미관계 인식에 대한 분석 △청년세대가 보는 통일: 변화와 미래, 3부 종합토론으로 열렸다. 3부에는 김재한 한림대교수(정치행정학과), 배종윤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엄기홍 경북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전병길 통일과나눔 사무국장이 ‘다가오는 신냉전, 멀어지는 통일’을 주제로 토론했다.
「2023 통일의식조사」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번 조사에서 ‘통일이 매우 필요하다’ 혹은 ‘약간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중은 43.8%로 2007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 반면 ‘통일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 혹은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중은 29.8%로 2007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한국인의 대북인식은 적대/경계 의식이 조사 이래 최고치로 높아졌다. 협력의식이 약화되고, 북한 도발 가능성도 소폭 상승했다. 적대는 13.6%에서 18.6%로, 경계는 17.7%에서 24.0%로, 협력은 47.9%에서 37.7%로 변했다. 부정인식(적/경계)은 42.6%로 2007년 조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은 60.9%에서 64.8%로 높아졌다.현 정부 대북정책 ‘만족’ 응답 높아현 정부 대북정책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문항에 ‘매우 만족’, ‘다소 만족’ 등 만족한다는 응답은 54.3%로 지난해 45.5% 대비 8.8%p 상승했다. 이는 북한에 대한 적/경계의식이 최고로 높아‘통일 필요하다’에 대한 인식
43.8%필요하다26.4%보통이다29.8%필요하지 않다※출처=「2023 통일의식조사」(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남녀 1,200명 조사진 상황에서 대북 강경정책을 펴고 있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공감한 것으로 평가된다. 상승폭은 보수(12.2%p), 중도(10.0%p), 진보(2.6%p) 순으로 나타났다. 연령대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60대 이상(60.0%), 30대(55.0%), 40대(54.4%), 20대(50.7%), 50대(49.6%) 순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나누어보면 영남(61.7%), 수도권(60.0%), 충청(48.2%), 강원(47.5%), 호남(42.7%) 순으로 높았다.
한국의 핵무기 보유 찬성 의견은 52.3%로 작년 대비 3.7% 하락했다. 그러나 역대 최고치(56.0%)였던 지난해에 이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선호하는 핵무장 방식으로는 ‘자체 핵무기 개발’이 49.3%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미국 전술핵무기 배치’가 23.6%를 차지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조사는 선택항목으로 ‘찬성’과 ‘반대’ 외에 중간 선택지로 ‘반반/보통이다’라는 여지를 주고 있다.주변국 위협인식에서는 북한에 대한 위협인식이 컸지만 2018년부터 중국에 대한 위협인식이 가장 커졌다. 올해는 다시 북한에 대한 위협인식이 증가해 45.8%가 북한을 위협적인 나라로 선택했다. 중국은 2018년부터 위협인식이 증가추세이며, 올해 36.8%가 중국을 위협적으로 인식했다. 일본에 대한 위협인식은 2019년 이후 하락해 2023년에는 8.3%만이 위협적인 국가라고 응답했다. 러시아는 4.6%, 미국은 4.5%만이 위협국으로 인식했다.
한미동맹·한미상호방위에 대한 높은 신뢰북한의 핵 공격시 미국이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군사조치를 취할 것이냐는 질문에 88.3%가 그렇다고 답해, 한미동맹·한미상호방위 공약에 대한 높은 신뢰를 보였다.북한 비핵화를 위해서 한미 협력·한중 협력 중 어느 것이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상당수가 한중 협력(8.4%)보다는 한미 협력(40%)이 더 중요하다고 응답하는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캠퍼스북한글을 언문으로 깔보던 생각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기고_ 우리말과 한글에 대한 여러 생각들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는 한문 문명을 한글 창제에 반대하는 명분으로 삼았다. 한글 짓기가 문명의 큰 흠이며 학문에 방해된다고 보았다.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사대모화가 지고한 원칙이었고, 학문이나 교육은 한문으로 된 유교 경전을 읽고 배우기였다. 문명은 곧 중국 문명을 그대로 들여오는 것으로 여겼다. 이는 ‘同文同軌’로 표현되었다. 유교 경전을 우리말로 옮겨서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은 찾기 어렵다.언문은 문명과 학문에 흠이 된다?한문을 배우고 쓰기는 과거에 급제하여 상류층이 되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한자는 참글자로서 성현의 슬기를 담은 거룩한 글자인데, 언문은 나날의 말을 직접 적은 것으로서 여자나 노비의 글자였다. 한자 한문이 상대화되고, 언문이 국문으로 공인받은 것은 조선이 중국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과 동시에 이루어졌다.문자 체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정치적이다. 한글을 언문으로 깔보던 생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학술용어 같은 데서 순우리말을 한사코 외면하는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어느 경제학 개론에서도 ‘화폐’는 있으나 ‘돈’은 없고 ‘가격’은 있으나 ‘값’은 없다. 철학 개론 책에서는 ‘존재’만 있고 ‘있음’은 없고, ‘인식’만 있고 ‘앎’은 없다. 새로 생겨나는 학술용어는 거의 전부가 영어다. 아직 우리말글은 학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한글을 언문으로 보던 무의식이 이런 데 깔려 있다.
오늘날 서구 문화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조선의 사대부가 중국을 대하던 태도와 닮은 점이 많다. 영어 몰입 강의가 경쟁력이라는 신화가 넓게 번져 있다. 이런 사실은 우리가 학문하는 자세에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경성제대 중심으로 소개된 유럽 언어학의 폐해근대 이후에 들어온 학문도 우리말과 글이 당면한 실천적·이론적 과제 해결에 걸림돌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서구에서 발전한 언어학이기에 다분히 소리중심주의적이었다.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는 겉보기에 글자에 대한 관심을 배척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훌륭한 글자 한글을 두고도 한문을 극단적으로 숭배해 온 우리 문화사의 전통을 생각한다면 한자폐지 즉 말글 하나되기, 한글 맞춤법의 정립 등의 시급한 실천적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런 언어학 자체가 달가운 것일 수 없었다. 경성제대 언어학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연구자들은 우리의 절대적 관심사인 한글에 대한 관심을 억제하였다. 이숭녕은 언어학자의 소임이 글이 아닌 말에 대한 연구에 있다고 말하였는데 여기에 소쉬르가 쓰였다.
우리는 학술적 방면에서 모름즉이 말을 주로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야 글의 환상에 빠지면 안 된다. 쏘슈ㄹ씨의 ‘이약이한 말 그것만으로 언어학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는 명언을 잊지 말자.(이숭녕 「글과 말」, 『조선어문』5, 1932)그는 ‘언어학자’로서 ‘한글 맞춤법’ 같은 글자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고 자랑스럽게 여러 번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요즘 그 학문의 본고장에서도 소쉬르의 소리중심주의 비판의 목소리가 더 높고 글자라는 기호에 대한 그의 태도가 일관성이 없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과학적’ 국어 연구를 내세운 그는 외래 학문을 기준으로 우리말글에 대해 주체적 문제 의식을 갖고 있던 주시경 학파의 연구자를 일방적으로 마름질하는 태도를 보여준다.특히 소쉬르의 랑그에 대한 오해가 깊었다. 소쉬르의 랑그는 실천적 목적을 위한 이론적 구성일 수는 있어도 살아있는 언어적 실재는 아니다. 언어학자들이 이러한 ‘과학적’ 국어학에 매달리는 한 ‘외적’ 현실에 적극적 관심을 가질 수는 없다. (언어학은) 역사에 무관심하고 사회적 영향의 반경 밖에 있다. 볼로쉬노프의 지적처럼 언어적 실재로서의 소쉬르적 랑그는 실천적 목적을 위한 이론적 구성체로서 언어의 구체적 실재를 설명하지 못한다. 언어의 통시성으로부터 고립되어 언어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언어학의 과학성과 가치판단 문제‘과학적’ 국어학은 언어를 자연현상 또는 그에 준하는 것으로 봄으로써 실천적인 문제, 가치에 관한 것을 제외하게 된다. 가치판단에서 객관적인 앎이 어렵다고 보고 이를 ‘과학적’ 언어학에서 빼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언어 ‘외적’ 현실이다. 실천적인 것을 떠나 순수하게 이론적인 문제는 없다. 볼로쉬노프의 지적처럼 언어적 실재로서의 소쉬르적 랑그는 실천적 목적을 위한 이론적 구성체로 서 언어의 역사적 현실에 대한 발언을 제대로 할 수 없다.근대 이후 많은 지식인과 대중의 관심사였던 한글전용 문제도 크게 ‘중세’적 말글 이원화(분리)의 극복으로서 근대화의 한 부분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과학적’ 국어학에서 한글 전용에 제기한 가장 중요한 반론, 이를테면 우리말에서 한자어의 무게가 너무 크다거나 동음이의성을 구별하는 것은 곁가지 문제다. 한글은 임금이 지은 것이라 해도 어쨌든 일반 인민의 글자였고 근대 이후 말글 하나되기와 민주주의를 준비하기에 넉넉하였다. 주시경은 <독립신문>창간호 논설에서 “국문으로만 쓰기는 상하귀천이 다 함께 보게함이라”고 밝힌 데서 이런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남북 하나되기의 실마리한글날은 깊은 뜻을 지닌 국경일이다. 지식인에게는 학문하는 태도, 오래 학문을 대하는 태도를 되돌아보게 하는 데 의미가 있다. 이를 넘어 정치적 의미도 매우 깊다. 정부는 올해도 아마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경축식을 열어 한글의 빼어남과 세종의 거룩한 정신을 말할 것 같다. 그렇지만 한글날에 정작 필요한 말을 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필요없이 함부로 쓰는 영어가 너무 많으니 공공 분야라도 외래어 쓰기를 줄여 나가자는 말을 듣기는 힘들 것이다. 남북 관계에 찬바람이 몰아친 지금 한글 맞춤법은 남북을 이어주는 거의 하나뿐인 연줄이다. 북한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우리말글을 지키려는 노력은 어쨌거나 잘한 일이고 영어에 젖어 있는 남쪽에 생각할 거리를 던질 것이다. 스포츠 경기를 중계할 때 북한은 영어를 토박이말로 다듬어서 쓴다고 한다. 비정치적인 분야부터 북한 방송을 개방하면 남북 말글 하나되기에 큰 보탬이 되리라 생각한다.
김영환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한글철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한글철학』이, 함께 지은 책으로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사무침』이 있다. 한글학회 평의원, 국어문화원연합회 감사로 있다.
부산대, 총장선거 투표반영 비율 합의
직원·조교 20%, 학생 10%부산대 교수회, 지난달 26일 합의
내년 부산대 총장선거를 앞두고, 구성원의 투표 반영 비율에 대한 전격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직원·조교는 교원 선거인 수의 100분의 20을, 학생은 100분의 10의 비율로 반영키로 합의했다.부산대 교수회(회장 김정구)는 ‘부산대 총장임용후보자 선정규정’ 개정을 위한 구성원(교원·직원·조교·학생) 간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지난달 27일 밝혔다.핵심 현안이었던 구성원의 총장선거 투표 반영 비율은 기존에는 직원의 경우, 교원선거인 수의 100분의 13.1167, 조교는 100분의 3.9667, 학생은 100분의 3.9167의 비율로 투표율을 반영했었다.총장추천위원회의 非교원 위원도 늘어났다. 총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할 때 非교원 위원을 기존 4명(직원1·조교1·학생2)에서 8명으로 늘려 위원 총수가 26명에서 30명이 됐다.부산대 구성원 단체는 지난달 26일 오후 교내 교수회관 회의실에서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번 합의안은 부산대 전체 교수회 임시총회나 온라인 투표를 통해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부산대 교수회는 원만하게 합의를 도출한 이번 성과는 구성원의 집단지성을 통해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총장선거를 이끌어내기 위해 구성원들이 서로 한 발씩 양보하고 노력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김정구 부산대 교수회장(정보통신공학부)은 “이번 빠른 합의는 지역대학의 위기 타결을 위해부산대 구성원 단체는 ‘부산대 총장임용후보자 선정규정’ 개정에 합의하고, 지난달 26일 합의문에 서명했다. 사진 왼쪽부터 송영호 직원협의회장, 김정구 교수회장, 이유미 조교협의회장 직무대리, 김요섭 총학생회장. 사진=부산대
대학 구성원들이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부가 시행하는 글로컬사업 선정 등 우리 대학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각 구성원들이 서로의 주장과 요구를 양보한 대승적인 차원의 결과”라고 밝혔다.
김정구 교수회장은 또 “이 합의안이 교수회 투표에서 부결되면 내년 총장선거를 예정대로 치를 수 없는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에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무난히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최종 합의가 통과되면 전국의 모든 국립대가 투표 반영 비율을 앞두고 총장 선거 때마다 겪고 있는 대학 구성원들 간의 갈등과 내홍을 해결할 수 있는 지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부산대 교수회는 구성원 간의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지난달 5일부터 매주 화요일 협의회를 개최해 왔다.김봉억 기자 bong@kyosu.net‘기초과학 테마 공동연구’ 램프, 8개 대학 첫 선정
학과·전공 구분 없이 ‘테마’ 중심으로 기초과학 공동연구를 지원하는 신규 사업인 램프(LAMP)에 8개 대학이 선정됐다. 국립대 6곳과 사립대 2곳에 5년 동안 매년 약 30억 원을 지원한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지난달 26일 램프 사업 신규 지원대학 예비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강원대·경북대·경상국립대·국립부경대·부산대·서울대 국립대 6곳과 서강대·조선대 사립대 2곳이 선정됐다. 비수도권 대학은 6곳, 수도권 대학은 2곳이다.램프 사업은 올해 추진하는 사업으로 학과·전공 칸막이 없이 ‘테마’ 중심의 공동연구를 수행한다. 선정 대학은 대학 내 연구소 관리·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중점테마연구소를 지정해 테마별로 거대 공동연구를 추진한다.대학별 중점테마연구소는 다음과 같다. 서울대 데이터디스커버리 과학연구소, 경상국립대 분자제어 연구소, 서강대 나노물질 연구소, 강원대 다차원유전체 연구소, 경북대 기초과학연구원, 부산대 미래지구환경 연구소, 국립부경대 SEED 연구소, 조선대 웰에이징 메디케어 연구소.
이를 위해 해당 대학의 교원으로 임용된지 7년 이내인 교원을 ‘램프 전임교원’으로 선발하고, 각 램프 전임교원에 대해 ‘램프 박사후 연구원’도 1인 이상 배정해야 한다. 램프 포닥은 타대학 박사학위 취득자 비율이 70% 이상이어야 한다.램프 전임교원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기기사용료 추가 감면, 책임시수 감면 등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램프 박사후 연구원은 연 3천만 원의 독자연구비 지원, 숙소 보장, 정규직 채용 우대 등의 혜택을 제공할 계획이다.램프 사업단은 대학 차원의 주도적 사업 추진을 위해 대학 본부 연구처에 설치하고, 사업단장은 총장이 교무위원급을 임명하도록 했다.5년에 걸쳐 발간된
한국의 모더니스트 박인환작품의 집대성!“인생은 외롭지도 않고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목마와 숙녀」 중에서)박인환 평론전집 박인환 번역전집박인환 시전집 박인환 영화평론전집박인환 산문전집맹문재 엮음10881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337-16(파주출판도시) TEL 031-955-9111~2 htp://www.prun21c.com의료를 통해 보통 사람의 ‘삶’을 이해하기
천하제일연구자대회
54 의료사회사를 연구하는 이유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
인간 삶의 본질적인 측면인 생산과 재생산에는 적지 않은 사회적 억압이 가해진다. 그리고 이런 억압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는 오랜 구조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의료라는 창을 통해, 이런 오랜 문제의 원천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했던 여러 인물의 노력을 밝혀내려 한다.
나는 현대 한국 의학사를 연구한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의학사를 전공했다. 지금은 다시 의과대학으로 돌아와 연구와 교육을 맡고 있다. 이과와 문과의 구분이 뚜렷한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경력 탓인지, 처음 보는 분께 내 전공을 이야기하면 언제나 질문이 되돌아온다. ‘왜 생뚱맞게 역사학을 선택했어요?’
처음 석사 과정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을 때, 나에게는 나름 커다란 문제의식이 있었다. 의학이 드러내는 여러 문제는 과연 어디에서 비롯하였을까. 당시에 특히 고민하던 문제는 의학의 불확실성이었다. 병원에서는 도대체 속 시원한 말을 해주지 않는다.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으면 정말 나을 수 있냐는 환자의 질문에 의사는 노상 ‘그건 알 수 없다’는 답을 내어놓을 뿐이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생각하면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이 문제를 풀기 위해 나는 여러 의학자가 의학 지식의 확실성과 확실성에 도달하는 방법을 두고 논쟁을 벌이던 19세기 파리의 의학계를 들여다보았다. 논의는 넓고 깊었다. 그러나 논의의 격렬함이 뚜렷한 결론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졌을까. 물론 그렇지 않았다. 20세기 후반, 다시 벌어진 논쟁은 과거의 주장을 반복할 따름이었다. 결국 석사 논문에서 나는 이것이 해결 불가능한 문제라는 사실만을 확인한 셈이었다.의학사와 구분되는 ‘의료사회사’석사 과정을 마친 후, 경상북도에서 공중보건의사 생활을 시작했다. 골치 아픈 고민은 잠시 내려놓고, 낮에는 환자를 보고, 밤에는 여유롭게 번역과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농촌 의료의 지난날이 궁금해졌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무의촌(無醫村)에 의사가 배치된 것은 198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아프면 누구를 찾았을까.
당황스러웠다. 의사와 의학 이론이 없는 의학사를 어떻게 연구할 수 있을까. 그제야 대학원 과정에서 배웠던 여러 수업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의학사는 20세기 중후반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동인은 역사학 자체의 변화였다. 기존의 역사가가 ‘높으신 양반’과 ‘고귀한 이념’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새로운 이들은 보통 사람의 삶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의학사로도 확장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보다는 조금 덜하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아프다’ 역시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다른 문제의식으로 무장한 이들이 의학사에 합류하면서, 의학사의 탐구 영역도 달라졌다. 기존의 의학사는 대개 의학자의 이론을 다루었다. 이론에 미친 사회의 영향을 도외시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중심에는 의학자가 논의하고 실천하던 의학 이론이 놓여 있었다. 이제는 아니었다. 새로운 역사가는 보통 사람이 어떻게 아팠고, 또 어떤 방법으로 아픔을 해결하려 했는지를 살폈다. 그렇게 소위 ‘정통’ 의학뿐 아니라 돌팔이나 민간요법 역시 의학사의 영역에 포함되었다. 이들이 자신의 작업에 ‘의학사’와 구분되는 ‘의료사회사’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 역시 여기에 있었다.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을 받아들였다. 한국의 의학사 연구는 보통 해방 이전부터 활동하던 김두종(1896~1988)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그의 연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1990년대 들어 의학을 전공했지만 역사학을 선택한 여러 의사와 역사학의 변화 속에서 의학사를 선택한 여러 역사학자가 나타나면서, 비로소 새롭게 시작되었다고 보는 편이 옳다. 그리고 이미 달라진 의학사의 흐름‘의료사회사’라는 새로운 접근을 명시적으로 표명한 최초의 학술지이다. 『의료사회사』 제1권 제1호(1988) 표지다. (위 사진)
로이 포터의 『돌팔이』 (2000)는 의료사회사가 의사나 의학 이론을 넘어, 보통 사람의 생활 전반을 조명하려는 시도였다.속에서 이들의 연구와 교육은 처음부터 의료사회사의 지향을 담았다.
농촌에서의 공중보건의사 3년, 현실의 중요성을 깨닫다안타까웠다. 이름에 ‘늦을 만’이 들어가서인지, 언제나 나는 한발 늦게 핵심을 파악하곤 했다. 돌이켜보니 현장과 실천의 중요성은 내가 들었던 대부분의 수업에서 반복되고 또 반복되던 메시지였다. 처음부터 의료사회사의 중요성을 알았다면, 석사 과정 때 수업을 더 열심히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늦었을지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었다.뒤늦은 깨달음과 함께, 농촌에 거주하던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수많은 사료를 찾아 헤맸다. 그러다 우연히 경기도 평택시 청북읍에서 태어난 신권식(1929~) 옹이 남긴 일기를 발견했다. 수업 때 읽은 로렐 대처 울리히(1938~1980)의 『산파일기』가 떠올랐다. 울리히는 『산파일기』를 통해, 개인의 기록이 개인의 특수한 삶뿐만 아니라 당대 사회의 보편적인 현실을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마침 신권식 옹은 의사의 부재 속에서 마을의 지식인으로 자칭 타칭 ‘반의사’(半醫師) 생활을 하던 인물이었고, 일기 속에는 의료 문화에 관한 기록이 풍부하게 담겨있었다. 그렇게 오래도록 일기를 들여다보았고, 「어느 시골 농부의 ‘반의사’ 되기」라는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다.삼 년의 공중보건의사 생활은 내게 의학이 실천되는 구체적인 현실을 마주하게 해주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기는 했지만, 현장을 겪어보지 못한 내게 의학은 오로지 학교에서 배운 이론으로만 존재했다. 그러다 짧게나마 농촌 의료를 경험하게 되면서, 여기에서 의료가 구체적인 삶의 문제라는 아주 당연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과 함께 내 공부의 방향은 크게 달라졌다.
의료라는 창으로 ‘사회’를 들여다보기공중보건의사를 마치고,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왔다.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를 정해야 했고, 이제는 한국의 현대라는 시공간적 배경 속에서 의료가 실천되는 구체적인 측면을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생각했던 주제는 산업보건의 역사였다. 삶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 노동이라면, 한국에서 의학과 노동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었을까.문제는 사료였다. 마음이 급해서였을까, 당시에는 사료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예전부터 묵혀놓았던 사료 더미가 떠올랐다. 가족계획 사업 당시 미국에서 한국으로 도입된 복강경과 관련한 자료였다. 복강경은 통념과 달리 외과 수술을 위해 개발된 도구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소수만 사용하던 진단용 기기였고, 이후 여성 불임 수술의 도구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활발하게 개발되고 확산했다.사료를 가득 찾아놓고도 묵혀놓았던 것은 일종의 부담감 탓이었다. 물론 다른 주제라고 마음이 편할 리없었겠지만, 가족계획 사업은 정도가 달랐다. 남성 의사라는 특징이 사태에 대한 판단을 흐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이제 더 많은 가능성이 보였다. 어쩌면 복강경이라는 기술을 통해 1960~1980년대 한국 의료, 더 나아가 한국 사회 전반의 풍경을 드러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학위 논문을 빨리 마무리해야겠다는 압박감도 적지 않았다.기대와 압박 속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계속해서 또 다른 사료와 읽을거리가 보였고, 몇 년 동안 조금씩 살을 붙였다. 그렇게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와중에 제출한 학위 논문에는 복강경이라는 기술이 재부상한 정치적·기술적 배경에 더하여, 복강경을 통해 한미 양국의 정부와 의학자, 여성이 무엇을 얻고자 하였는지, 그리고 복강경이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이 담겼다.
박사 논문을 마무리한 이후에는 예전에 포기했던 노동과 의학이라는 주제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급한 마음을 내려놓으니 적지 않은 사료가 보였다. 마침 몸담은 가톨릭대에 한국 최초의 산업의학연구소가 있어, 산업의학을 시작했던 이들이 남겼던 다양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이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중요한 또 다른 축인 노동자의 실천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여전히 인간 삶의 본질적인 측면인 생산과 재생산에는 적지 않은 사회적 억압이 가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억압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는 오랜 구조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의료라는 창을 통해, 이러한 오랜 문제의 원천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했던 여러 인물의 노력을 드러내려 한다. 그것이 의학사 연구자로서, 더 나아가 역사학 연구자로서 내가 할 일이라 생각한다.박승만
가톨릭대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조교수가톨릭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에서 의사학 전공으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자로서 1960~198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의학 지식과 기술이 현실 속에서 생성되고 정당화되며 작동하는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교육자로서는 예비 의료인을 대상으로 의료가 단순히 과학기술의 일부가 아니라 역사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사회적 실천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어느 시골 농부의 ‘반의사’(半醫師) 되기: 『대곡일기』로 본 1960~80년대 농촌 의료」, 「천연한 자연과 완전한 자연: 1970년대 중반 한국 가톨릭 가족계획 사업과 자연피임법의 경합」, 「선진 기술을 향한 열망과 적정성의 역전: 1960~80년대 한국의 복강경-미니랩 기술 경쟁」, 「인물사: 의학사 교육을 통한 의학전문직업성 함양의 한 가지 방법」(공저), 「의과대학에서 의학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시기, 구성, 교수법」(공저) 등의 논문을 썼다. 윌리엄 바이넘의 『서양의학사』, 레이샹린의 『비려비마: 중국의 근대성과 의학』(공역) 등을 옮겼다. seungmannher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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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계몽의 변증법 함께 읽기』(에디스코 | 288쪽) 쓴 한상원 충북대 교수
▶1면에서 이어짐
『계몽의 변증법 함께 읽기』의 핵심은 ‘자기보존을 위해 자기지배가 만연하며, 결국 자기희생에 매몰되는 것’으로 읽힌다. 그 메커니즘은 계몽이라는 미명 하에 자행되는 동일화 논리(타자혐오)다. 계몽·계몽의 동일성 원리·계몽의 권력화 등의 배경에는 홉스식의 ‘공포’가 자리하고 있다. 과연 공포(두려움)의 기원은 무엇일까?“오늘날 공포의 양상은 두 가지 흐름의 혼합이다. 첫째, 사회의 해체와 개인 사이의 능력주의적 무한경쟁으로 인한 만성적인 위기감·불안감이다. 둘째, 팬데믹·기후위기 등으로 인해 나타나는 신체적 공포이다. 그 사례는 전 지구적으로 나타난 팬데믹 시기의 코로나 인종주의였다. 곧 신자유주의로 인한 고립과 단절, 경쟁으로 인한 공포와 팬데믹·기후위기 등에 의한 생명에 대한 공포는 서로 연결돼 우리 시대의 만성적인 공포를 만들어내고 있다.”무한경쟁과 환경파괴라는 이중의 공포위 답변에서 주목할 단어는 ‘혐오’다. “위기의 상황에서 공포의 원인을 타자에게 전가하고, 타자에게 분노의 에너지를 쏟아 부음으로써 주체는 자신에게 공포를 주는 대상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환상 속에 안도감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주체는 이러한 타자에 대한 분노와 혐오의 에너지를 선동하는 지도자와의 일체감 속에서, 사회적으로 상실된 연대감을 왜곡된 방식으로 되찾고자 한다. 이것이 전체주의적 지배가 실행되는 방식이다.” 독일의 나치즘이나 요즈음 무서울 정도로 성장하는 극우주의가 그러한 예이다.
‘자기희생’이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구조는 현대인의 불안과 우울과도 겹친다. 반면, 자기보존을 위한 자기희생과 자기부정이 중용을 지킨다면, 어떤 측면에서는 필요하거나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마치 배고픈 소크라테스와 배부른 돼지처럼 말이다. “현대인의 자기부정은 (생존이라는 좁은 의미로 한정된) 자기보존을 달성하기 위해 치열하게 타자를 물리치고 승리를 쟁취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출현한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강제된 자기부정, 곧 자기소외다.그리고 이러한 자기보존의 실패를 나타내는 논리가 바로 능력주의다. ‘능력’을 가진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노력’에 의한 보상이 정당하다는 논리는 현실에서는 경쟁으로 인한 불평등을 ‘공정’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논리로 둔갑한“위기의 상황에서 공포의 원인을 타자에게 전가하고, 타자에게 분노의 에너지를 쏟아 부음으로써 주체는 자신에게 공포를 주는 대상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환상 속에 안도감을 찾으려고 한다.”
서울시립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마르크스의 물신주의와 이데올로기 개념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아도르노의 정치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아우구스티누스, 맑스, 벤야민. 역사 철학과 세속화에 관한 성찰』이 있다. 옮긴 책으로 『공동체의 이론들』(공역), 『아도르노, 사유의 모티브들』, 『역사와 자유의식: 헤겔과 맑스의 자유의 변증법』 등이 있다.
다. 그러한 논리 속에서는 개인의 자기실현과 같은 이상은 허황된 꿈일지도 모른다.”
『계몽의 변증법』은 ‘총체적인 자본권력’에 대한 저항을 겨냥한다. 특히 문화산업론의 측면에서 ‘자본의 무의식적 가치축적’을 지적한다. 하지만 기자의 관점에서 볼때 너무 ‘신자유주의 비판’에만 매몰된것 같다. 자본은 디지털과 인공지능의 옷을 입고 더욱 진화하는데, 인문학은 여전히 고전에만 파묻힌 게 아니냐는 푸념이다.“사람의 수고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기술 발전에 의해 일자리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우려스럽기도 하다. 또한 지나치게 빠른 기술 변화로 인해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외계층이 생겨나는 현실 역시 걱정이다. 반면에 새로운 IT 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슈퍼리치의 출현과 역사상 유례가 없는 빈부격차의 출현을 낳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어떻게 새로운 기술에 대한, 나아가 디
지털로 무장한 자본에 대한 민주적인 통제가 가능할까? 신자유주의화된 시대에 새로운 기술력이 만들어낼 수 있는 불평등에 대한 현실적인 고발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비판 위한 비판 넘는 규정적 부정성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작업은 종종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다. 비판 이론이라는 이름도 내포하듯이, 비판적 사유의 끝에는 결국 부정성만 남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민주주의 자체를 민주화하기 위한 비판이론, 곧 급진민주주의적 비판 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판이론에서의 비판은 허무주의적인 추상적 부정성을 겨냥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규정적 부정성, 곧 부정을 통한 긍정성의 산출에 주목한다. 구체적으로 이것은 내재적 비판, 즉 주어진 시대와 사회가 제시하는 그 규범적 이상이 지닌 이중성과 자기 모순을 고발하면서 현재의 사회가 약속한 그러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스스로 변혁돼야 할 필요가 있음을 제시하는 비판적 방법이다.”앞으로 한 교수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관심을 두고, 여러 근현대 철학들 사이의 관계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정치의 개념들(자유, 평등, 주권 등)의 개념적 재구성이라는 문제 역시 던져야 한다.”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글로컬 오디세이
한중 MZ 세대, 국가 자부심과 개인적 좌절 사이에서김주아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베이징 어언대에서 응용언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의 언어와 문화에 관한 논문과 저서를 출간했으며,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신인류’라고 부르는 한국의 MZ 세대와 기성세대가 서로 다른 가치관과 문화로 충돌하고 있다. 오래된
성문법 중 하나인 함무라비 법전에도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라고 세대 간 갈등을 묘사한 바 있다. 정확히 말하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대 갈등이 없었던 때는 없었다. 인류 사회가 끊임없이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에 MZ 세대가 있다면, 중국에는 80허우(后), 90허우, 00허우 세대가 있다. 말 그대로 80년대 이후 출생자, 90년대 이후 출생자, 2000년대 이후 출생자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밀레니얼 세대(1980~1994년)와 Z세대(1995~2009)를 통칭하여 MZ 세대라는 말로 기성세대와 구분하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연도별로 세분해 특징짓고 있다.가까운 미래, 두 사회의 주축이 될 한중 MZ 세대는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닮아있다. 먼저 서두에 거론한 것처럼, 이들은 각국에서 기성세대와는 다른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요즘 것들’ 취급을 받고 있다. 또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최근 한중간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상호 혐오 정서가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세대를 불문하고 표출되는 각종 반중·반한 지표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그중에서도 MZ 세대라는 양국의 20대·30대가 상대국의 MZ 세대에 대해 가장 냉담한 것으로 나타난다. 향후 한중 관계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세대가 서로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양국 사이의 냉각기류가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그런 의미에서 양국 MZ 세대의 마음을 더욱 자세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실, 한중 MZ 세대는 닮은 점이 아주 많다. 먼저, 이들이 사회에서 겪는 문제와 처한 상황·고민·성향 등이 비슷하다. 양국 모두 빠른 경제발전을 통해서 국가는 예전보다 부강해지고 사회도 발전했지만, 최근 정체된 경제발전으로 개인은 오히려 상실과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한편, 양국의 MZ 세대는 반세기 이상 지속된 평화 덕분에 기성세대가 이룩한 성과를 가장 많이 물려받은 세대이기도 하다.‘풍요 속 빈곤’과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은 양국의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문화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도 자부심이 크다는 것에서도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은 유사 이래 문화적 자부심이 가장 고조된 시기라고 할 정도로 ‘한국적’인 것을 최고로 여기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K-드라마에 이어, K-팝, K-무비에서 K-뷰티로 확산하고 있다. K-컬쳐는 이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상화 되고 있다. K-방역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이제 접두어 ‘K-’는 한국 문화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이니셜이 됐다.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궈차오(國潮)’로 대변되는 중국의 애국 소비 문화는 더 이상 민족적 자부심의 치기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시장 지도를 재편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중국의 애국 소비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중국 제품을 애용하자’, 소위 중국식 신토불이 운동에 지나지 않다고 평가절하할 수는 있다. 물론, 기성세대의 애국 소비가 어느 정도 국가 사랑의 발현에서 시작된 개인의 절제였다면, MZ 세대의 애국 소비는 ‘Made in China에 대한 자부심’과 긍정에 가깝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이들에게 중국산은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는 실속 소비의 일환일 뿐이다. 그야말로 궈차오(국산 제품에 대한 붐)가 일어나고 있다.하지만, 화려한 열광의 이면에서 이들이 겪는 박탈감과 좌절도 유사하다. N포세대·이생망으로 대변되는 한국 MZ 세대의 불안감과 희망의 상실이 중국에서는 탕핑족(躺平)·네이쥐안(內券)·포시(佛系)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저욕망사회’를 표방하는 신조어에는 깊은 무력감이 내포돼 있다. 마치 정상에 오른 뒤에 밀려오는 허탈감처럼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사치인 세대’가 된 셈이다.
이렇게 많은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양국 청년들은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먼저, 이들은 고조되는 사회적 불만을 표출하는 방식이 다르다. 한국은 사회적 부조리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내부적으로 표출하는 경향이 있다.최근 넘쳐나는 혐오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비해 중국은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갈등에 시달리고 있지만, 사회적 불만이 주로 외부 총질로 이어지고 있다. 즉, 특정 국가에 대한 반대와 혐오 또는 자국에 대한 극단적인 지지와 애국심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배경에는 최근 양산되는 내수용 애국 콘텐츠와 자문화 중심적 민족주의 교육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애국 소비문화가 반(半)자의적 선택에서 자발적 선택으로 전이된 것처럼, 중국 MZ 세대의 문화적 자긍심은 아직 정점에 이르지 않은 것 같다.영진전문대학교
공공역사를 실천 중입니다
이하나 외 23인 지음 | 푸른역사 | 532쪽역사는 오늘날 다양한 문화적 형태로 재현되거나 전시되거나 실천돼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반면 현재 대한민국은 역사에 대한 인식을 둘러싸고 큰 갈등에 직면해 있다. 육사 내 흉상 이전을 계기로 벌어진 홍범도 장군에 대한 논란은 물론이고, 다양한 역사 공세 속에서 역사학자들은 궁지에 몰려 있다. 게다가 역사판 ‘가짜뉴스’들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래에서 온 남자 폰 노이만
아난요 바타차리야 지음 | 박병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576쪽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디지털 컴퓨터, 전 세계에 드리워진 핵전쟁의 지정학과 빠르게 진화하는 인공지능(AI)은 물론 자기복제 우주선까지, 21세기 삶의 토대가 된 굵직한 아이디어들이 모두 한 천재 과학자의 머릿속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 주인공은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 중 한 명인 존 폰 노이만이다.
브레인 케미스트리
지니 스미스 지음 | 양병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428쪽우리가 내리는 찰나의 결정, 시시각각 달라지는 감정, 직면하는 유혹, 관성적 행동은 어떻게 이뤄질까? 그 안에는 느리게 변하는 뇌 자체가 아닌, 뇌 내에 분비되는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의 활약이 숨어 있다. 이 책은 아드레날린,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 등 한번쯤 들어보았을 신경전달물질의 네트워크 이야기, 처음 만나는 뇌화학 수업이다.10×10 로마사
함규진 지음 | 추수밭 | 632쪽이 책은 ‘모든 문명의 호수’로 통하는 로마의 역사를 영웅, 여성, 건축 등 10가지 주제로 나누고, 각 주제 안에서 다시 10가지 핵심 장면을 추려 한눈에 볼 수 있게 소개한다. 위대한 황제부터 비천한 노예까지, 찬란한 영광부터 비참한 나락의 순간까지 문명의 흥망성쇠를 압축해 담아냈다.공정감각
나임윤경 외 13인 지음 | 문예출판사 | 368쪽지난해 5월, 연세대의 한 재학생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 청소노동자들의 집회 소음이 수업권을 침해한다며 업무 방해 혐의로 청소노동자들을 경찰에 고소했다. 이어 6월에는 두 명의 다른 학생과 더불어(이후 한 명은 고소 취하) 청소노동자들을 상대로 수업료와 정신적 피해에 대한 630여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세계와 식민지 조선의 민족운동
윤덕영 지음 | 혜안 | 600쪽이 책은 일제하 한국 민족주의세력들의 사상과 운동을, 동아일보의 논의와 동아일보계열의 지도자인 송진우의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종래 일국사적 연구 관점에서 벗어나 당대 동아시아사, 더 나아가 세계사의 전개과정 속에서 살펴보는 점에서 특징을 가진다. 특히 1920~1930년 일본 정계와 사회의 변동 및 중국 국민혁명의 동향과 직접 연결시킨다.디아스포라 기행
서경식 지음 | 김혜신·최재혁 옮김 | 돌베개 | 280쪽저자의 이 책이 개정판으로 독자들과 다시 만난다. 이 책은 1992년 그를 한국에 처음 알린 『나의 서양미술 순례』와 더불어 한국 사회에 깊은 울림을 남긴 대표작으로, 17년 만에 새로이 펴낸다. 초판이 출간된 이후로도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은 전쟁과 폭력, 지금 이 순간에도 나날이 고조되는 무력(武力)의 위협 속에 우리가 맞닥뜨린 곤경을 엄중히 진단한다.인체에 관한 모든 과학
대니얼 M. 데이비스 지음 | 김재호 옮김 | 에코리브르 | 296쪽이제 아기들은 일상적으로 체외수정을 통해 태어나고, 장기 이식이 보편화하며, 암 생존율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성과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생물학의 발전이 전례 없는 속도로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는 사실상 인간생물학의 모든 측면에서 혁명의 정점에 있다.호텔 바비즌
폴리나 브렌 지음 | 홍한별 옮김 | 니케북스 | 416쪽이 책은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전용 호텔이 1927년 처음 지어졌을 때부터 2007년 수백만 달러 가치의 콘도미니엄으로 재개장하기까지의 역사를 뒤쫓는다. 뉴욕 배서 칼리지에서 국제학, 젠더, 언론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다양한 관계자와 직접 인터뷰하고 사적인 편지를 검토하고 당대에 작성된 문헌과 기사를 동원해 시대상을 고증한다.과학서평_『보이지 않는 질병의 왕국』 메건 오로크 지음 | 진영인 옮김 | 부키 | 440쪽
은유로서의 만성질환…질병과 함께 하는 삶이란미국 자가면역질환 환자 최대 5천만 명 추산
사회적 경험으로서의 투병 위해 목소리 경청해야과거로부터 ‘역병’(疫病)은 사
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죽음의 질병을 가리키는 흔한 명칭이었다. 그뿐 아니라 죄악에 대해 하늘이 내리는 징벌, 즉 ‘천벌’을 의미하는 은유로 오랫동안 사용돼 왔다. 고칠 수 없는 질병은 신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운명인 것처럼. 이후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질병을 고칠 수 없다면 가능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풍경이 생겨났다.
예술가들은 질병이 보잘것없는 육체에 영묘한 의식을 입혀준다고 믿었고, 불가항력적인 질병을 아름다움과 창조성의 원천으로 받아들였다. 우울증과 발작을 앓던 에드거 앨런 포와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질병으로부터 예민하고도 섬세한 문학적 감각을 피워낼 수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수전 손택은 이렇게 질병에 상징을 부여하고 은유를 덧씌워 문학적으로 표현하거나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 반기를 들었던 대표적인 작가다. 그녀는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결핵에 낭만을, 암과 에이즈에 공포의 은유를 입히는 행위를 배격하고, 이런 은유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려서 아버지를 결핵으로 여의고 사랑하던 친구들을 에이즈로 잃은 데다, 자신마저 유방암에 걸려 고통받으면서 그녀는 현실이 문학과 다름을 뼈저리게 체감했다.그러나 그랬던 그녀도 은유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질병을 ‘성가신 선물’이라 돌려 말하기도 하고, 사람들은 모두 ‘건강의 왕국’과 ‘질병의 왕국’이라는 두 왕국의 시민권을 갖고 태어났으며, 누구도 어느 한쪽의 여권만을 사용할 수는 없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시인이자 저널리스트인 메건 오로크는 손택의 은유에 하나를 더 보태, ‘보이지 않는’ 왕국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20대부터 병명도 모른 채 심한 두드러기와 피로감, 각종 찌르는 듯한 통증과 전신성 질환에 시달리며 현대 의학의 무기력을 절감해 온 환자다.죽을 것 같은 통증에 시달려도 뚜렷한 병명을 몰라 가까운 이들로부터 이해도 동정도 받지 못한다. 겉보기에 멀쩡하니 히스테리나 건강염려증 정도로 치부되기도 한다. 진단받지 못하는 희귀 질환때문에 자신만 아는 통증과 함께 타인의 곱지 않은 시선까지 감내해야 하는 이중의 고통에 시달린다.저자는 마침내 자신의 고통이 라임병과 자가면역질환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견을 받아내지만, 그것이 최종적인 진단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진단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치료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현대 의료는 이미 완치와 일상 복귀라는 질병 극복의 서사를 써 내려갈 능력을 잃은 지 오래다. 우리 사회와 문화 역시 시대의 질병이 된 만성질환과 장애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고질병을 앓고 있는 듯하다.미국에서는 현재 자가면역질환으로 고생하는 환자가 많게는 5천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본다. 만성 환자의 수는 ‘유행성’이라 판단할 정도로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이다.
항생제와 백신의 개발로 인해 감염성 질환은 거의 자취를 감춘 반면, 이제 현대인의 질병은 주로 면역계와 신경계 조절장애나 과민성 증후군과 같은 자가원인 질환으로 대표된다. 외부로부터의 침입자와 전투를 벌이는 게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내부의 스파이와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 이 스파이는 물리쳐야 할 적인가, 아니면 나 자신인가? 피아식별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병의 원인을 찾아 박멸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음을 깨닫게 된다.여기서 은유로서의 질병은 새롭게 힘을 얻는다. 만성질환만큼 은유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질병도 없다. 우리의 적과 적절히 동거할 지혜를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아서 프랭크가 『몸의 증언』에서 말했듯, 인간으로서 가장 지키기 힘든 의무 가운데 하나는 투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일이다. 아프다는 것은 사회적인 경험이어야 한다. 자기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먼저 생각하지 않고는 아픔을 공감할 수도, 위로할 수도 없다. 질병은 은유를 통해 사람과 사회를 바꾸어 놓는다. 저자는 다음의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내 병은 언제고 무엇이든 올라올 수 있는 열린 창문으로 남았다.”
정우현
덕성여대 약학과 교수저자가 말하다_『리바이어던 재정』 박정수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416쪽
‘재정 포퓰리즘’을 경계하라 (財政)이해관계 조정에 실패하고 ‘덧칠정책’만 반복
나라 살림의 건전성·지속가능성 위한 정치경제나라 살림의 규모와 구조, 그리고 사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주체가 정치권이다. 그래서 한편
에서는 수십조 원에 달하는 세수결손에도 불구하고 긴축재정을 적극 추진해서 재정의 경기대응 기능이 훼손되고, 민생회복을 위한 재정투입이 어려워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걱정한다.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과거 정부의 방만한 재정폭증 기조를 바로잡고 새로운 재정건전화 기조를 정립해 나가기 위해 국민혈세 낭비 사례를 찾아, 나눠먹기식 예산 운용 관행을 발본색원하겠다고 한다. 이 두 진영 모두 정치를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이해관계의 조정, 그리고 갈등의 평화적 해결보다는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은 혼란스럽기만 하다.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공정한 분배에 재정(財政)이 기여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성장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1인당 GDP 증가율은 1980년대에 연평균 8.7%에 달했으나 이후 계속 하락해 2010년대에는 2.1%에 머물렀고, 이러한 하락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분배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로 살펴보면 개발연대(1970년대와 1980년대)를 통해 성장지상주의·성장우선주의를 강조하던 시절보다 분배를 강조하고 복지를 획기적으로 확충하기 시작한 2000년대와 2010년대를 거쳐 오면서 오늘날에도 크게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
성장률 둔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선진국을 따라 하는 시기가 끝나고 이제 우리 스스로 많은 시간과 인력, 그리고 돈을 투자해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 시기가 되면서 성장이 더뎌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소득수준이 아직 그리 높지 않다는 점,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와 인구고령화로 인한 노인부양부담이 커지고 있는 점,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연금이 조만간 위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경제력을 앞으로 계속 키워나가며 분배와 복지 역시 실효적으로 개선해야 한다.정부가 재정을 통해 해야 할 일(공공재 공급 등)을 제대로 하고, 안정적으로 성장을 견인하며 분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정부가 풀어야 하는 문제 해결을 위한 이해관계 조정에 실패하고 ‘덧칠정책’(각종 사업을 치밀한 분석과 준비없이 추진)만 반복하는 이러한 재정을 ‘리바이어던 재정’이라고 할 수 있다.필자는 사회복지 지출부담이 2020년 GDP 대비 12.5%에서 오는 2060년에는 27.6%로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에 주목하고 있다. 국가 전체적으로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 적립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보험료율을 인상하게 될 경우 2070년 기준 국민부담률은 42%(2021년 현재 27.9%)에 이를 전망이어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걱정하게 한다.필자는 시장이 할 일에 정부가 재정을통해 간여하는 이유를 맨슈어 올슨이 지적한 ‘이익집단’의 지대추구행위(rent-seeking)에서 찾고 있다. 교육재정이 분절적이고 칸막이 형식으로 되어 있는 문제와 중소기업 지원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좀비살리기, SOC 등 경제지원예산이 정치권의 내몫챙기기가 문제가 된다.
최근 새만금잼버리세계대회는 국제적인 망신에도 불구하고 과거 성공적이었던 고성잼버리에 비해 재정지원 규모는 수십배나 더 들었다. 우리 모두가 재정의 원리와 정책의 배경지식을 이해하고, 그 효과를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가져야만 리바이어던에 족쇄를 채울 수 있다.내 세금을 국가가 어떻게 쓰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정부가 가치창출(value-creating)사회에 앞장서게 된다. 눈앞의 이익을 좇아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치가 아니라 후속 세대를 위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포용적·통합적인 정치가 건전한 재정을 만들 수 있다.이 책은 집단과 진영의 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나라 살림에 필요한 예산과 세금의 기초지식을 학습하고 재정의 속성과 정책 방향을 이해하는 나침반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념이나 권력투쟁에 휘둘리기 쉬운 재정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국민과 소통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재정 운용은 우리의 학습을 통한 비판적 모니터링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이 책이 나라 살림의 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정치경제학적 접근으로 바람직한 재정 운용의 길잡이가 될 것을 기대한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비평의 발견_『오송역: 이상한 분기역의 비밀과 오차 수정의 길』 전현우 지음 | 이김 | 328쪽
세종시 가는데 왜 오송역으로 가야 할까
정책적 오차의 상징이 된 호남고속선의 오송분기
공식 자료에만 의존해 사후적 상상력만으로 추정자문이나 발표를 위해 종종 세종시를 방문한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45분 쯤 걸려 오송역에 도착, 그곳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30여 분을 더 가야 비로소 세종청사에 도착한다. 심지어 국책연구단지로 가기 위해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렇게 오가는 사이 “도대체 왜 이런 곳에 역을 만들어 놓은 거야”, “도대체 세종역은 언제쯤이나 생기려나”처럼 불만 섞인 질문을 던져본 사람이라면 전현우 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의 이 책에 관심을 가질 만하다. 저자는 전작인 『거대도시 서울 철도』(워크룸프레스, 2020)로 이미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이 책에서 저자는 호남고속선의 오송분기(오송역)가 어떻게 현실화되었는지 그 역사적 흐름과 조건을 서술하고 있다. 저자가 검토하는 시간의 폭은 무척 넓다.20세기 초반 경부선의 부설부터 해방 후 석탄산업의 발전과 충북선의 역할, 지역균형 발전과 고속철도 계획의 수립, 행정수도 이전에 이르기까지 100년이 넘는 기간에 걸친 역사적 흐름은 때로는 우연적으로, 때로는 치밀한 계획을 바탕으로 오송역이라는 (충청북도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결과물로 귀결됐다. 물론 이 과정은 어떤 지역, 대표적으로 충남 공주에 있어서는 실패와 쇠락의 역사이기도 했다.이처럼 철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흥망성쇠를 그려내는 과정에서 인간과 비인간을 포함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이 등장한다. 물론 그중에서도 주인공은 단연 충북이다. 저자는 1989년 발표된 고속철도 계획에서 충청북도의 경부고속철도 본선 배제라는 충격이 어떻게 그로 하여금 집단적이고 전략적인 대응을 하게 만들었는지 상세하게 그려낸다. 이러한 대응은 지역 간 연합과 배제, 배신, 협박을 아우르는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그 긴 과정(오송분기역은 2005년 확정)에서 충북출신의 명망가들뿐만 아니라 김종필·노무현·박근혜·이명박 등 굵직한 정치인들의 이름이 등장하며 이들이 자신이 속한 정치집단의 이해관계나 나름의 신념을 구현하는 과정이 오송역의 탄생 과정이기도 했다.이렇게 만들어진 오송역은 수많은 정책적 ‘오차(의도와 나타난 결과의 차이)’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저자는 정책의 성공과 실패는 모두 관점에 따른 신화이기 때문에 이를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재의 세종시-오송역 복합체를 점차적으로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면 그의 입장은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실제로 저자는 호남-충청-강원을 연결하는, 지역균형발전의 일환으로 제시된 X축 구상을 포함해 충북이 제시했던 ‘왜 오송역이어야 하는가’의 논거가 지닌 한계를 반박하고 있다.일단 실현된 정책이라고 해도 잘못된 부분은 지속적으로 수정돼야 한다. 이러한 ‘오차수정’의 관점에서 저자는 보다 효율적인 철도연결의 안을 제시한다. 또한 오송역 선정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지역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면서도 그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비효율을 가져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중립적 관점”을 지닌 “강제력 있는” 주체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는 중앙부처를 포함한 감시위원회의 설립 제안을 통해 구체화된다.
이 책은 글의 맨 앞에서 묘사한 “불만의 여행”이 얼마나 복잡한 정책/정치여정의 결과였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은 남는다. 공식적 자료(오송백서와 보고서, 언론보도)에만 의존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나머지 부분은 사후적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암투’들이 상당 부분 상상력에 기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철도가 가져온 문제의 해결 방법(오차수정)까지도 철도의 추가적인 부설을 통해 해결하려는 관점 역시 다소 한계로 다가온다.물론 오차수정의 내용에 역 주변의 개발과 같은 부분도 포함돼 있지만 본격적으로 논의되거나 그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지는 않다. 저자가 이론적으로 활용하는 정책흐름모형을 책의 앞부분에 소개한 뒤 그것에 맞춰 논의를 전개했다면, 동일한 내용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현재의 구성보다조금은 더 깔끔한 형태를 갖추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정인관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저자가 말하다_『동아시아 영화도시를 걷는 여성들』 남승석 지음 | 갈무리 | 288쪽
여성, 폐허의 도시를 이동하다전지현·장만옥·카라타 에리카 등이 보여주는 도시 산책
멜로드라마 장르 안에 내포된 국가적 재난과 트라우마뉴 밀레니엄 이후 동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 지형은 압축적인 근대성의 변화를 겪었다. 이에 따라 동아시아 도시의 공간에 그러한 변화의 흔적이 누적되고 있다.
『동아시아 영화도시를 걷는 여성들』에서는 「엽기적인 그녀」의 서울, 「화양연화」의 홍콩, 「밀레니엄 맘보」의 타이베이, 「여름궁전」의 베이징, 「아사코」의 도쿄에서 다섯 명의 여배우, 전지현·장만옥·서기·학뢰·카라타 에리카의 도시 산책을 통해 트라우마의 흔적을 탐색한다. 이 다섯 편의 멜로드라마 영화는 2000년 이후 개봉한 영화 중에서 여성의 도시 산책·이동·걷기를 중요한 소재로 다룬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멜로드라마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사건 직후에 제작되거나, 재난과 트라우마와 연관되어 있다. 정치적·경제적·생태적 재난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더라도,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국가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을 분명히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필자는 이번 저작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기 위해서 여성 도시산책자에 대한 영감을 받게 된 1948년 중국 영화 「작은 마을의 봄」을 소개하고자 한다. 2000년 작품 「화양연화」에서 걷는 여성을 통해 홍콩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탐색하던 중, 그 영상미학적 원천으로 「작은 마을의 봄」을 재조명하게 되었다. 「작은 마을의 봄」은 중화권 여성 도시산책자의 원형을 구현하며, 중국 국공내전 직후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전인 1949년에 제작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는 현재의 중화권 국가 개념이 형성되기 전의 시기이다.
무페이 감독의 「작은 마을의 봄」은 1946년의 봄, 전쟁 후의 중국 남부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이 작품에서는 병약한 다이 리얀과 그의 아름다운 아내 주유웬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리얀의 오랜 친구로 의사인 장 지첸은 고향에 돌아와 리얀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주유웬에게 서서히 마음이 기울게 된다.주유웬이 착용한 치파오는 그녀의 여성성을 강조하고, 중국 여성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도출해낸다. 이 작품은 홍콩 반환 이후 홍콩의 상황을 사랑의 비유를 통해 탐색하는 「화양연화」에서, 치파오를 입은 수리첸(장만옥) 캐릭터의 원형, 즉 중국 여성의 도상으로 영향을 준다.「작은 마을의 봄」 장면은 폐허 같은 미장센으로 자연스러운 혹은 목가적인 느낌을 준다. 그러나 도덕적 부재나 여전히 존재하는 도덕적 관습의 흔적으로도 해석될 수도 있다. 이와 유사하게 「화양연화」의한 장면은 도시의 밤거리 골목 속에서 진행되며, 비가 내린 뒤 그치는 모습이 폐허의 벽 앞 배경으로 촬영된다. 「화양연화」의 이 장면은 「작은 마을의 봄」에서의 무너진 벽 앞 대화 장면의 미장센과 배우의 몸짓을 차용하여 새롭게 구성된 배우의 표현을 통해 중첩된 문화적 기억을 반영하고 있다.
「작은 마을의 봄」은 영화의 배경이 중국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기를 배경으로 하며, 이 시기 과거의 사회적 통념이 붕괴되고 새로운 시대적 가치가 대두되던 한 작은 마을의 모습을 그린다. 멜로드라마의 형식을 가진 이 작품들은 역사적 사건에 따른 개인의 고통을 배우의 몸짓과 시선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필자는 국가적 트라우마가 반영된 영화 도시에서 여성 도시산책자인 배우가 그리는 지도, 즉 감정의 지도 그리기에 주목하여 도시 사회학과 예술철학의 접점에서 도시의 역동성을 포착했다.이 연구를 바탕으로, 거대한 재난과 그로 인한 고통에 대한 공감을통해 아시아의 미를 재발견하는 단초를 탐색했다.
남승석
연세대 매체와예술연구소 연구교수죽음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헨리 마시 지음 | 이현주 옮김 | 더퀘스트 | 240쪽의사의 시선으로 삶과 죽음을 성찰한 『참 괜찮은 죽음』의 저자의 신작인 이 책이 출간됐다. 마지막이 될 이 책을 집필하면서 그는 70대가 돼 은퇴를 하고 전립선암 4기 판정을 받은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말기 암 환자가 된 의사가 우아한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 삶의 끝에서 가장 나다움을 되찾는 여정을 솔직하게 담고 있다.자본의 유령
요제프 포글 지음 | 김지원·이준서 옮김 | 길 | 252쪽저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세대의 비평가들을 대변하는 인물이자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로 꼽히는 독일 학자이다. 비판이론과 후기구조주의(미셸 푸코, 질 들뢰즈)의 전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방법론을 기반으로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내며 독일어권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학자가 됐다.뇌는 어떻게 자존감을 설계하는가
김학진 지음 | 갈매나무 | 320쪽『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로 인간이 이타적 선택을 하는 신경학적 기제를 밝혀 주목받았던 사회신경과학자인 저자가 이번엔 ‘자존감을 뇌과학으로 설명하는 책’으로 독자를 찾는다. 이 책은 “최신 뇌과학 연구 성과를 집대성해 자존감이라는 개념을 생물학 용어로 재정의함으로써, 불안, 우울, 분노 조절 장애 같은 자존감 불균형을 해소한다.세상을 바꾼 항생제를 만든 사람들
고관수 지음 | 계단 | 328쪽이 책은 살바르산과 페니실린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 다양한 항생제 개발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또한 병원과 약국에서 처방되는 대표적인 항생제의 핵심 구조와 작용 기전을 살짝 엿보면서, 이들 항생제의 개발에 얽힌 극적인 이야기를 통해 과학이란, 과학자란, 혹은 기억되는 과학자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본다.도학시대의 사상과 문학
이동환 지음 | 지식산업사 | 344쪽이 책은 저자의 사상사 내지 문학사 구분의 제2기에 해당한다. 특히 회재와 남명, 퇴계와 남명, 퇴계와 소재 사이의 사상의 대립 국면에 착목해, 이 교수는 각기 그들의 사상의 일단을 면밀히 파헤쳤다. 회재와 남명 사이의 출처관의 대립, 퇴계와 남명 사이의 사상적 암투, 퇴계의 주자학 제1주의와 소재의 양명학 지향사이의 대립을 보여준다.파브르 식물기
장 앙리 파브르 지음 | 조은영 옮김 | 휴머니스트 | 464쪽20세기의 위대한 자연주의자 장 앙리 파브르는 『파브르 곤충기』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가 식물학 박사 학위를 받고 식물을 깊이 연구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이 책은 지상 생명의 아름다운 조화를 흥미진진한 서사로 보여주는 과학 고전이다. 찰스 다윈이 “견줄 데 없는 최고의 관찰자”라고 극찬한 파브르의 시선을 따라가보자.한 사람의 마을
류량청 지음 | 조은 옮김 | 글항아리 | 552쪽저자의 등장은 예사롭지 않았다. 서른 중반인 1998년 『한 사람의 마을一個人的村莊』이라는 첫 산문집을 내고 수십만부가 팔리며 큰 성공을 거뒀다. 『서유기』에서 현장법사와 손오공이 건너갔던 화염산이 있는 신장위구르 톈산 아래 마을의 시골 청년은 이 성공으로 시인이 됐고, 이어 소설가가 됐으며 걸작 장편들을 쏟아내며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다.19세기 동아시아 국제관계사
홍용덕 지음 | 동연출판사 | 467쪽최근 동아시아에서 북·중·러와 미·일 간 대립 속에 한반도가 요동치고 있다. 이 중심에는 서로 다른 국제질서의 충돌이 있다. 20세기 한민족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뤄진 한반도 분단체제 그리고 여전히 21세기에도 주요한 대내외적 문제에서 때때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주권국가 한국의 현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분야별 신간
정치-사회대한검국 고발장 | 전병덕 지음 | 더봄 | 288쪽아직, 메갈리안 | 이원윤 지음 | 이프북스(IFBOOKS) | 252쪽인문라캉, 바디우, 들뢰즈의 세계관 | 장용순 지음 | 이학사 | 272쪽역사
여성의 역사 | 미셸 페로 지음 | 배영란 옮김 | 글항아리 | 296쪽조슈 이야기 | 허수열·김인호 지음 | 지식산업사 | 412쪽예술서양 스트리트 댄스의 역사 | 박성진 지음 | 상상 | 224쪽교육
몰입 육아 | 신지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352쪽학교의 미래, 이룰 수 없는 꿈? | 수전 엥겔 지음 | 김두환 옮김 | 한울 | 224쪽경제-경영경제학이 필요한 순간 | 김현철 지음 | 김영사 | 292쪽목욕탕에서 만난 천만장자 | 박성준 지음 | 미어캣북스 | 412쪽문학-에세이
디어 마이 송골매 | 이경란 지음 | 교유서가 | 224쪽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 |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 최종술 옮김 | 문학동네 | 424쪽서자 | 바이셴융 지음 |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568쪽섬세한 체조 |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 서지은 옮김 | 마르코폴로 | 296쪽항염증성 높은 균주를 찾아라…세포실험부터 신약개발까지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난치성 치료’ 어디까지 왔나
③ 천식·알레르기차세대 신성장 동력으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이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염증성 장질환, 뇌혈관 등 난치성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더욱 그렇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미 2건에 대해 상용화를 승인하면서 바이오산업에서의 혁신적 장이 열렸다. <교수신문>은 각 질환별 난치성 치료 현황을 국내 최고 전문가로부터 들어 보고 치료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세 번째는 알레르기 질환인 천식에 대해 장윤석 서울대 의과대학 내과학교실(분당서울대학교병원) 교수(알레르기내과)와 박한기 경북대 의과대학(칠곡경북대학교병원) 교수(알레르기내과) 의 최신 연구 현황을 소개한다.연재 순서
① 염증성 장질환② 비알콜성 간질환③ 천식·알레르기④ 우울·불안·스트레스⑤ 심바이오틱 융복합의료소재⑥ 장기 이식-간⑦ 화농성 한선염 및 중증 여드름⑧ UTI-요로 감염⑨ 항암⑩ 뇌혈관 질환⑪ 구강·심혈관⑫ 과민성대장증후군⑬ 자폐국내 연구진이 장내 미생물을 활용해 신약개발을 추진하고 있어 화제다. 바로 장윤석 서울대 의과대학 내과학교실(분당서울대학교병원) 교수(알레르기내과)다. 장 교수는 천식 등 알레르기 질환에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천식의 발생기전과 신약 개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역학조사 △환자 대조군 연구 △지역사회 코호트 연구 △세포실험 △전임상실험 △임상시험 등의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천식은 숨이 차고 쌕쌕거리는 증상·기침·가슴 답답함·가래 등의 증상이 있는 대표적인 알레르기 질환이다. 숨이 지나가는 통로인 기관지에 알레르기 염증이 만성적으로 있어 흡입스테로이드제가 제일 중요한 치료의 근간이 된다. 전 세계 3억 5천만 명이 천식을 앓고 있으며 사회경제적으로 부담이 큰 질환이다.3억 5천만 명 유발…5~10% 중증 천식
특히 5~10%는 치료가 어려운 중증 천식으로 분류된다. 천식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어릴 때 발생하는 소아천식과 성인천식의 발생 양상이 다르고, 성인에서도 젊은 천식과 노인천식의 발생 양상이 다르다. 소아에서는 알레르기 원인 물질인 집먼지 진드기와 같은 흡입 알레르겐(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항원)에 감작(과민한 반응)이 일어나 천식이 발생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하지만 성인에게 처음 발생하는 천식의 경우에는 흡입 알레르겐에 감작돼 나타나는 경우가 줄어들고, 노인은 알레르겐과 관계가 없이도 천식이 발생하게 된다.장 교수 연구팀은 이 점에 주목해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노인한테는 면역관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절 T 세포가 일부 염증을 조장할 수 있는 분화를 보인다는 점, 노인천식이 비만과 상관성이 높고, 특히 근육량이 적은 비만(sarcopenic obesity)과 같은 대사성질환이 관계가 있다는 점을 밝혔다. 또한 지역사회 역학 연구에서 흡입 알레르겐에 대한 감작보다 세균인 포도상구균의 장독소에 대한 면역글로블린 E 감작이 성인천식과 연관돼 있음을 밝혔다. 이후 추가로 진행된 노인천식 환자 코호트 연구에서도 포도상구균의 장독소에 대한 면역글로블린 E 감작이 중증 천식, 유도객담에서의 호산구 증가(호산구성 천식), 그리고 비용종 동반에 관계없이 만성부비동염을 동반하는 천식과 의미 있는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혔다.장윤석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알레르기와 임상면역학을 전공했다. 현재 서울대 의과대학 내과학교실(분당서울대학교병원) 교수(알레르기 내과)로 재직 중이다. 아울러,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헬스케어융합학과 학과장,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마이크로바이옴 사업단장을 맡고 있다.특히 장 교수는 세계알레르기학회 이사, 세계알레르기주간 집행위원장(2022·2023), 세계천식학회 아시아챕터 회장, 아시아태평양 천식알레르기면역학회 사무총장(역임),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총무이사, 대한면역학회 평의원 등 활발한 학회 활동을 하고 있다. 논문 인용 횟수는 9천745회, h-index(허쉬 지수: 연구자의 생산성·영향력에 관한 지수)는 54이다. 서울대 교수사회공헌단 총무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며, 30여 년간 카사(서울의대간호대 가톨릭학생회)·라파엘클리닉·라파엘나눔 홈리스클리닉·서울대 글로벌사회공헌단 등에서 무료 진료봉사도 해오고 있다.왼쪽에서 일곱 번째가 장윤석 서울대 의과대학 내과학교실(분당서울대학교병원) 교수(알레르기내과)다. 장 교수의 궁극적인 목표는 천식에서 마이크로바이옴이 병인에 작용하는 기전을 밝히고,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하는 것이다. 사진=장윤석
“천식에서 마이크로바이옴이 병인에 작용하는 기전을 밝히고,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신약개발을 목표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항염증 작용을 보이는 마이크로바이옴을 분리해 천식 모델에서의 효능을 평가하고 기전 연구를 통해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하는 것을 1차 목표로 하고 있다.”염증 가라앉히는 정상인의 미생물과 유전자 포도상구균은 피부와 상기도(上氣道)인 코점막에 상재균으로 존재할 수 있다. 특히 비염이나 부비동염 등 상기도의 문제가 하기도(下氣道) 질환인 천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연구의 관
심이 자연스럽게 천식에서 상기도 마이크로바이옴 전체를 분석하는 방향을 옮겨갔다. 이어진 환자 대조군 연구에서 젊은 성인 천식 환자와 정상인의 상기도 마이크로바이옴의 구성에 의미 있는 차이가 있음을 규명했다.
또한 놀랍게도 천식 환자의 상기도에 존재하바이오산업 기술개발사업 개요
사업명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의약품 제품화과제명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천식 완화 및 치료기술 개발개요 천식 조절 마이크로바이옴 후보 물질 발굴과 FMT(장내미생물)기준 확립공동연구·용역 고려대 세종캠퍼스(오남수), 경북대학교병원(박한기), 부산대(구본희·김명후), 비티시너지(조희경)연구기간 2022년 4월 1일 ∼ 2025년 12월 31일(3년 9개월)기대효과ㅇ 영유아 FMT(장내미생물) 마이크로바이옴 유래 후보 균주 및 마우스 FMT(장내미생물)의천식 마우스 모델에서 효능 검증 / 치료제 개발을 위한 후보 균주 스케일업 기술 개발ㅇ 발효식품 마이크로바이옴 유래 후보 균주 및 인간 FMT(장내미생물)의 천식 마우스 모델에서 효능 검증 /치료제 개발을 위한 후보 균주 poilt scale 생산ㅇ 확보 마이크로바이옴 유래 후보 균주 및 인간 FMT(장내미생물)의 천식 마우스 모델에서 효능 검증 및기전 규명 / 치료제 개발을 위한 생산 균주 특성 평가 및 검증ㅇ 확보 마이크로바이옴 유래 후보 균주 및 인간 FMT(장내미생물)의 천식 완화 기전 규명 및연구자 주도 임상시험 수행 / 임상 1상 신청는 마이크로바이옴의 유전자 발현을 분석한 결과, 염증을 조장하거나 병원균 착상이 쉽게 될 수 있게 하는 유전자를 발현하고 있었다. 반대로 정상인의 상기도 마이크로바이옴에서는 염증을 가라앉히고 대기오염물질에도 이겨낼 수 있는 유전자를 발현하고 있음을 밝혔다. 또한 성인 천식에서 마이크로바이옴과 그와 반응할 수 있는 인체의 TLR 유전체형과의 연관성을 분석하고, TLR 유전체형 뿐 아니라 폐기능 등 임상지표와도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장 교수는 이와 같은 일련의 연구과정을 통해 이제는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천식치료제를 개발하는 도전을 하고 있다. 김세훈 교수·최준표 교수와 더불어 공동연구기관(옆의 표)의 좋은 연구자들과 한 팀을 이루었다. 공동의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통해 항염증성이 높은 균주를 찾아내고 전임상실험을 통해 천식 마우스 모델에서 그 효능을 검증하고 있다.그 결과 세포실험에서 항염증 기능이 높고 천식 마우스 모델에서도 매우 우수한 효능을 보이는 후보 균주 몇 가지를 찾았다. 현재는 기전 연구와 최적의 투여법, 임상시험을 위한 대량 배양 등을 준비하고 있다. 더욱이, 공동연구를 통해 건강한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자체를 넣어주는 FMT(장내미생물) 슈퍼솔루션 연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장내세균이 천식에 영향을 끼친다?…“염증반응 조절하는 장”
필자는 알레르기내과를 전공했다. 특히 천식·알레르기 비염과 같은 호흡기 알레르기질환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임상의이지만, 현재는 장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기도를 치료하는 사람이 장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의아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장관(腸管: 대장·소장)면역이 환경에 대한 우리 몸의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증거가 많이 축적되고 있다. 장관면역을 조절해 장이 아닌 다른 원격 기관의 질환을 조절하려는 연구에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필자 역시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우리 몸이 외부 환경과 닿아있는 경계는 위장관·피부·호흡기·비뇨생식기까지 다양한 경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경계에서 외부 환경과의 다양한 상호작용은 환경에 따라 사람의 건강에 차이를 이루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외부와 경계를 짓는 우리 몸의 다양한 기관 중에서도 기능적으로 외부의 물질을 받아들이는 것이 주 목적인 장벽이 바로 장(腸)이다.외부 항원이 흡수되는 경계로서 ‘장’장은 우리 몸이 이용하는 영양소와 같은 외부 항원이 지속적으로 흡수되는 경계다. 또한 우리 몸에 공존하는 공생세균 역시 장에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면서 우리 몸이 활용할 항원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장은 합목적적으로 끊임없이 외부 항원이 들어오는 통로이고, 따라서 장관면역세포는 외부 항원과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몸에 면역세포가 생성되는 곳이 골수·흉선 등이라면, 장은 우리 몸에 면역세포가 교육을 받고 공부하는 학교와 같은 장기인 것이다.
이렇게 장에서 교육받고 성숙한 면역세포들은 다양한 장기로 이동해 우리 몸의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엔 그런 면역세포가 천식과 같은 기도 질환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증거가 밝혀지고 있다. 한 가지 예로 신생 감염병으로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코로나19, 즉 사스 코로나바이러스-2 감염을 들 수 있다. 주로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 코로나19는 유행 초기부터 어떠한 사람에게 더 중증감염으로 이행되는지에 대한 많은 연구가 수행됐다.다양한 연구가 있었지만, 중증 코로나19 감염으로 이행되는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로 장내세균의 차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처럼 감염은 호흡기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그 감염에 대한 우리 몸의 처리능력과 방법에 의한 염증의 정도는 장에서 면역세포들이 어떻게 교육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장관면역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음식과 장내 세균이다. 그래서 요즘은 간헐적 단식·칼로리 제한·저탄고지(低炭高脂)와 같이 음식으로 균형을 잡는 방법, 그리고 유산균과 같은 장내세균을 조절하는 방법 등의 여러 가지 연구가 미래 의학을 바꿀 수 있는 기술 중에 하나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필자는 2015년 ㈜MD헬스케어에 몸담던 시“장관면역을 조절해 만성 염증 질환을 치료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가지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장내세균을 비롯한 장내 환경과 장관면역과의 관계를 조절해 기도의 염증에 대응하는 것을 연구의 1차 목표로 하고 있다.”
박한기 경북대 의과대학(칠곡경북대학교병원) 교수(알레르기내과)의 궁극적인 목표는 장관면역을 조절해 만성 염증 질환을 치료하는 것이다. 사진=박한기
절 김윤근 대표로부터 장내세균이 배출하는 세포밖소포체에 대한 연구를 접하면서 장내세균과 장관면역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후 개인적인 통찰과 가설을 가지고 주로 천식에서 장내세균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천식, 특히 호산구성 천식 환자에서 장내세균이 정상인과 비교해 상당히 변화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항생제와 같은 장내세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활용하면 천식에서 기도 염증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도 증명했다.
장내 환경 정상화시키는 대변이식 기법장관면역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개별 유익균을 보충해 주는 연구에 그치지 않고, 장내세균의 다양한 유래 물질, 또는 물리적인 성상의 변화 등과 장관면역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장관면역을 조절할 수 있는 더욱 다양한 방법을 찾고자 한다. 변화된 장내 환경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에 가장 직접적·대표적인 방법이 대변이식 기법이다. 정상 대변을 이식해 주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확실하게 장내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다. 실제 대변이식이 장내세균을 이용한 우리 몸의 치료에 가장 먼저 승인된 방법이기도 하다.대변이식과 항생제 등의 장내세균의 변화를 이용해 장내 환경을 변화시켜서 기도 염증을 조절하고자 하는 연구를 부산대 생명자원과학대학 동물생명자원과학과의 김명후 교수·구본희 연구교수 등과 직접적으로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아울러, 분당서울대병원 알레르기내과의 장윤석 교수·최준표 연구교수와 ㈜비티시너지, ㈜헥토헬스케어의 도움을 받아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장내 환경을 정상화시키는 효율적인 실용화 방안을 찾는 것과 더불어 어떻게 장관면역을 조절해 기도 염증을 치료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과학적인 기전에 대한 기초연구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 대사체·장관면역 세포분석 등과 같은 많은 기초연구 역량에 도움을 받고, 같이 생각을 발전시키고 목표를 공유할 수 있는 과학자로서 김명후 교수·구본희 연구교수 등과 함께 다양한 생각을 공유하고 끊임없이 소통하며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볼 때 장관면역을 조절하여 기도 염증을 조절하고자 하는 목표는 긍정적으로 보인다. 장관면역을 조절하기 위해 대변이식이나 장내세균의 제공의 방식을 넘어서 대사체 등의 유래 물질이나, 장내세균 유래 물질이 조절하던 선택적인 물질이나 수용체의 제어, 다른 다른 개념의 장관면역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궁극적으로 장관면역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높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이 기대감을 동력 삼아 끊임없이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자 한다.박한기경북대 의과대학(칠곡경북대학교병원) 교수(알레르기내과)글로컬대학30 대학 - 지자체 동향
부산시, ‘글로컬대학’ 1천억 투자 밝혀
부산대·부산교대
에듀테크·라이프케어 등 특성화부산대·부산교대와 부산시는 ‘에듀 트라이앵글이 만드는 새로운 미래교육 도시’라는 글로컬대학 비전을 지난 4일 발표했다. 비전 실현을 위해 에듀테크, 라이프케어, 디지털금융, 반도체, 양자·ICT 5대 특성화 분야에 지·산·학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부산시는 5대 특성화 분야에 직접 투자와 기반 조성 등 간접 투자비로 5년간 약 1천억 원 규모의 시비를 투입할 계획이다.부산시는 지난 4일 시청 소회의실에서 부산대 총장과 부산교대 총장이 참석한 가운데 ‘글로컬대학 비전 및 혁신전략보고회’를 열고, 혁신전략으로 3대 분야 9개 전략과제를 발표했다. △교육혁신을 위한 거버넌스 융합 모델 △ 통섭형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시스템 융합 모델 △미래산업을 선도하는 캠퍼스 특화 모델을 제시했다. 부산대와 부산교대 통합으로 유-초-중등 교원 양성을 추진하며, 초등교육 전문성과 독자성은 유지하면서 교원양성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또한 융합형 학제 개편을 시행하고 학문·교수 벽을 허물어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부산대와 부산시는 지난달 14일 열린 지방시대 선포식에서 발표한 기회발전특구(핀테크·반도체), 교육자유특구(에듀테크), 미래 신산업(양자·ICT·라이프케어) 등 지방시대를 위한 핵심 정책을 글로컬대학 혁신 전략과제와 연계할 계획이다.
부산시는 이날 지역에서 성장한 인재가 지역에 취업하고 정주할 수 있도록 특화산업단지 조성, 규제특구 지정 확대 등을 통해 기업과 연구소, 혁신기관을 새로 유치하고, 청년 주거·복지·문화 등 정주여건을 강화하는 종합대책도 마련해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박형준 부산시장은 “지역과 대학이 동반성장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도록 부산지역 대학들의 혁신역량을 극대화해 세계적인 대학으로 도약이 필요하다”며 “글로컬대학 추가 확대 및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라이즈) 구축 등을 통해 지산학 협력 허브도시로서 지방시대를 선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부산시는 지난 7월 경제부시장을 단장으로 하는 글로컬대학지원단을 구성해 지역산업과 연계한 대학의 혁신 전략에 대해 논의하고 중점 추진과제를 도출해 왔다.최승우 기자 editor@kyosu.net울산시·산업체, 육성기금 1천억 조성
울산시, ‘울산대 글로컬대학30
지역산업육성 기금’ 전달식울산대 글로컬대학30 선정을 위해 울산시와 울산지역 산업체가 지역산업육성 기금 1천억 원을 조성했다.울산시는 지난 4일 시청 본관 2층 대회의실에서 ‘울산대 글로컬대학30 지역산업 육성 기금 전달식’을 열었다.이날 행사에는 김두겸 울산시장, 김기환 울산시의장을 비롯해 오연천 울산대 총장, 이용훈 울산과학기술원 총장, HD현대 등 16개 관계기관 대표 20여 명이 참석했다.이날 전달되는 기금은 울산대가 지난 5월 교육부에 제출한 글로컬대학30 혁신기획서에 담긴 ‘지역산업 육성기금 1천 억원 조성’의 추진 결과다. 울산시와 울산대, 울산과학기술원, HD현대, 서울아산병원, 울산대병원, SK에너지, 에쓰-오일, KCC, 에퀴노르 코리아, 문무바람(주), ㈜귀신고래 해상풍력발전 1·2·3호, ㈜해울이 해상풍력발전, 울산대 총동문회 등 지역 산업체 14개사가 참여했다.이 기금은 미래 연구개발 지원과 기업 연구개발 기반 조성, 신산업 분야 연구인재 육성과 산업현장 재직자 교육, 창업 촉진과 기술사업화 지원 등 울산지역 산업 혁신을 위해 사용된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글로컬대학30 지역산업육성 기금 1천억 원 조성은 울산대 글로컬대학30 선정을 위한 울산시의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시-대학-산업체가 함께 발전해 나가겠다는 지역 상생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울산대가 글로컬대학30에 선정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말했다.오연천 울산대 총장은 “글로컬대학30 사업은 대학을 중심으로 울산이 새로운 세계적 산업 중심도시로 전환할 수 있는 전기가 될 정도로 중요하다”며 “울산시를 비롯해 산업체 등 각계 지역사회가 총력을 모아주신 덕분에 울산을 강력하게 혁신할 실행계획서를 만든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라고 전했다.울산시는 울산대 글로컬대학30 본 지정을 위해 지난 8월 29일 울산시·울산대·울산과학기술원·HD현대 등 24개 기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또한 지난달 14일 울산시 경제부시장을 단장으로 하고 실·국장으로 구성된 행정지원 전담반 회의를 개최하는 등 행·재정 지원에 나서고 있다.최승우 기자 editor@kyosu.net순천대, 지·산·학 거버넌스 출범
‘특화분야 강소지역기업 육성대학’
글로컬대학30 비전 지난달 선포국립순천대(총장 이병운)는 지난달 26일 ‘순천대 글로컬대학30 지·산·학 거버넌스’를 출범했다. 지자체와 기업, 대학 및 유관기관 대표 등으로 구성된 순천대 글로컬대학 운영위원회는 김영록 전라남도지사, 서동욱 전라남도의회 의장, 노관규 순천시장, 정인화 광양시장, 공영민 고흥군수, 이병운 순천대 총장(이상 공동위원장)을 비롯해 지역 대학 총장, 평생교육 및 산업계 유관기관 대표, 지역 산업계 대표, 대학 내부 위원 등 39명으로 구성됐다.순천대는 글로컬대학30 예비지정 이후 지자체와 산업계, 대학 등 680개 기업·기관과 대학주도 성장을 통한 지속가능한 전라남도 발전모델 창출을 기조로 맞춤형 업무협약을 체결해 왔다. 지역사회에서는 인구감소로 인한 지역 교육력 위축과 지역 경제 저하 등 지역소멸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국립대학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순천대는 글로컬대학30 비전으로 ‘한계를 넘어선 혁신을 통해 세계적인 특화분야 강소지역기업 육성대학으로의 도약’을 선포했다. 순천대는 이날 전라남도와 글로컬대학30 성공을 위한 협약을 맺고, △글로컬대학30 선정 및 운영 지원 △3대 특화분야(그린스마트팜, 애니메이션·문화콘텐츠, 우주항공·첨단소재) 지·산·학 협력 모델 구축 및 강소기업·인재 육성 협력 △지역산업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인구 증가를 위한 협력사업 등을 공동 추진하기로 약속했다.
제1차 순천대 글로컬대학 운영위원회에서는 순천대의 글로컬대학30 본지정 실행 계획서를 심의·의결했다.이병운 순천대 총장은 “김영록 전라남도지사님을 비롯한 지역의 시·군, 기업과 유관기관 기관장 등 많은 분들이 순천대 글로컬대학30 지·산·학 거버넌스 구축에 동참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전남동부권 유일 4년제 국립대학이 보유한 교육·연구 역량을 발휘해 기업과 동반성장할 수 있는 맞춤형 인재를 육성하고, 글로벌 강소기업 육성 지원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김영록 전라남도지사는 “교정에 들어서면서부터 글로컬대학에 대한 구성원들의 염원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전라남도에서도 순천대의 3대 특화분야와 지역전략산업과의 연계에 노력하고 있으며, 지역발전과 혁신의 주체로서 글로컬대학으로의 도전을 든든히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서동욱 전라남도의회 의장은 “저출산에 따른 지방의 위기에 순천대의 글로컬대학 본지정과 지역의 우수인재 양성과 강소지역기업 육성의 산실이 되도록 전라남도의 관련 정책과 예산 지원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최승우 기자 editor@kyosu.net전북대, 글로컬 500억 지역대학과 함께
지역대학 간 벽허물기 구체화
공유 인프라·교육콘텐츠 구축전북대(총장 양오봉)가 글로컬대학30본 지정대학에 선정되면 수주 예산 중 500억 원을 전북지역의 대학들과 함께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전북대는 글로컬대학30 사업이 배타적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지역의 대학 전체가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북대는 ‘지역대학 간 벽 허물기’를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실행계획에 담았다.전북대를 비롯한 전북지역 10개 대학이 지역 대학 간 벽을 허물고 동반성장에 나서기로 했고, 지역사회 위기 극복을 위해 실행계획을 구체화했다.특히 글로컬대학30 선정시 지원 예산으로 공유 인프라 구축과 콘텐츠 개발에도 활용할 계획이다.전라북도와 전북대, 군산대, 예수대, 예원예술대, 우석대, 원광대, 전주교대, 전주대, 한일장신대, 호원대 등 10개 대학은 지난달 22일 전북도청에서 ‘글로컬대학 육성을 위한 전북지역 대학-전라북도 간 업무협약식’을 가졌다.지역 대학 간 상생발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전북대는 글로컬대학30에 최종 선정되면 받게 될 1천억 원의 예산과 지자체 대응자금 1천억 원 중 500억 원을지역 대학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에 쓸 예정이다.
공유 인프라 구축이나 공유 교육 콘텐츠 개발 등에 투자하고, 전북대가 보유하고 있는 우수한 교육과 연구 인프라, 시설 및 장비, 대학 내 편의시설 등을 전북지역대학 학생들에게 전면 개방할 방침이다.전북대는 이를 통해 미국 캘리포니아대 시스템을 모델로 플래그십 대학 역할을 맡고, 전북지역 각 대학은 특성화 분야를 분담해 지역사회와 지역 산업 발전을 이끌 계획이다.또한 새만금거점 대학-산업 도시를 구축해 전북지역 대학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기획하고 있다.전북대가 이미 구축해 놓은 글로벌 네트워크도 공유한다. 미국 하버드대와 MIT,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와 드래스덴 공대 ILK연구소, 프랑스의 실리콘밸리인 Station F 등으로 단기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양오봉 전북대 총장은 “글로컬대학30사업은 우리대학만의 독자적 발전이 아니라 지역대학들이 함께 지역별 강점 분야를 육성해 지역발전의 큰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며 “전북대가 갖고 있는 우수 인프라를 전북지역 대학들과 아낌 없이 공유해 모두가 함께 상생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김봉억 기자 bong@kyosu.net변창훈 대구한의대 총장, 한국주거환경학회 11대 회장 선임
변창훈 대구한의대 총장(사진)이 제11대 한국 주거환경학회 회장으로 내년에 취임한다. 임기는 2024년 1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2년이다.
변창훈 총장은 지난달 21일부터 24일까지 중국 청두에서 열린 제20회 한·중·일 거주문제 국제학술대회에 한국주거환경학회 차기 회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변 총장은 “앞으로 부동산문제·재개발·재건축·도시재생·빈집문제 등 우리나라의 주거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매년 한·중·일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해 주택·토지·도시·농촌·고령화 등 각국이 안고 있는 현안문제에 대한 연구의 교류를 통해 동아시아 주거문제의 해결에도 기여하겠다”고 말했다.한국주거환경학회는 국토부 소관학회로 2003년 11월 창립했다.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 『주거환경』을 발간하고 있다.김동하 한성대 교수, 영화평론가협회 최우수작품상
김동하 한성대 교수(미래융합사회과학대학·사진)가 기획·제작·투자·배급한 영화 「다음 소희」가 제43회 영화평론가협회상 최고 영예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최우수작품상은 제작사에 주어지는 최고 영예의상으로 올해는 김동하 교수가 대표이사로 겸직하고 있는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와 크랭크업필름이 수상했다.
김동하 교수는 “첫 제작 작품으로 최고 영예를 받게 돼 큰 영광이지만, 지금 영화계의 현실은 어렵다”며“일부 소수의 힘 있는 영화인들 뿐 아니라 제작, 투자, 배급, 마케팅, 유통 등 모든 참여자들이 함께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업계가 되길 희망 한다”고 밝혔다.「다음 소희」는 당찬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가 현장실습에 나가면서 겪게 되는 사건과 이를 조사하던 형사 ‘유진’이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강렬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한국 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에 선정되기도 했다.김덕주 청주대 교수, ‘치매 관리’ 도지사 표창
김덕주 청주대 교수(작업치료학과·사진)가 2023년 치매 극복의 날을 맞아 충청북도 치매관리사업 유공자 표창을 받았다.
충북도는 매년 치매 극복의 날을 기념해 치매 관리사업에 헌신한 민간인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포상을 진행하고 있다. 김 교수는 지역사회 치매 사업 발전을 위해 다년간 꾸준히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도지사 표창을 받았다.
김 교수는 2017년부터 충북광역치매센터에서 진행하는 치매 관련 종사자 교육 강사로 활동중이며, 충북광역치매센터에서 발간하는 ‘인지 자료집 개발’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김덕주 교수는 “최근 급격한 고령화와 함께 치매 환자가 증가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충북의 치매 환자 증가율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라며 “작업치료사가 치매 관리의 핵심인력으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청주대 작업치료학과 학생과 함께 봉사활동을 펼치면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등 훌륭한 인성을 갖춘 미래 작업치료사를 양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황면중 서울시립대 교수, 2023 젊은공학교육자상 수상
황면중 서울시립대 교수(기계정보공학과·사진)가 지난달 21일 열린 공학교육학술대회에서 제10회 젊은공학교육자상을 수상했다.
황면중 교수는 공학교육인증 심화프로그램 운영, 혁신융합형 교과목 개발 및 운영성과 확산, 다양한 비교과 전공동아리 지도를 통해 학부 공학교육 발전에 크게 이바지해왔다. 주요 성과로는 학부 4학년 ‘스마트모빌리티설계’교과목 개발 및 책임교수로 운영, 자율주행 로봇레이스대회 우승, RoboCup Autonomous Robot Manipulation (ARM) Challenge 세계대회 2회 연속 우승 (2022, 2023년) 등이 있다.
한국공학교육학회(회장 송성진)는 우수한 공학교육 연구개발 성과로 국가과학기술진흥에 공헌한 공학교육인을 발굴·포상해 공학교육 관계자의 사기진작과 공학교육 발전에 기여하고자 공학교육 발전과 확산에 이바지한 젊은 공학교육자(부교수 이하)를 대상으로 이 상을 수여하고 있다.조용래 한림대 교수,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공로상
조용래 한림대 교수(심리학과·사진)가 최근 열린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2023년 추계학술대회에서 제10대 학회장으로 학회 발전에 기여한 업적을 인정받아 공로상을 수상했다.
사단법인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는 전 세계적으로 각종 정신장애에 대한 근거기반치료로 자리매김한 인지행동 치료의 임상 적용 및 연구에 대한 지원과 학술 활동, 회원 연수 교육, 전문가 자격 제도운영 및 국제 교류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1년도에 설립된 국내 유일의 국제 공인 인지행동치료 전문 학술단체이다. 임상심리학, 상담심리학, 정신건강의학 및 관련 정신 건강 분야의 교수, 의사, 전문가, 대학원생 등 1천 명 이상이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남북문제, 민족 내부 문제 아닌 국민국가의 과제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⑮
박명림 연세대 교수(지역학협동과정)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기술, 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 2일 박명림 연세대 교수(지역학협동과정)가 「한반도 문제의 연속성과 변화」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16강은 홍석경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과)의 「한류의 특성과 미래」가 예정돼 있다.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한반도 문제가 연속성과 변화의 중대한 변곡점에 놓여있다. 어떤 면에서는 연속적 측면이 강력한가 하면, 다른 어떤 면에서는 높은 변화의 파고가 느껴진다. 한반도 문제의 본질과 성격이 전자라면, 그것의 위상과 현실은 후자라고 할 수 있다. 즉 표면과 상황을 보면 심대한 요동과 격변이 우선적으로 눈에 들어오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한반도 문제 특유의 일정한 자기 성질과 속성을 지속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의 한반도 문제의 변화 중에서 가장 큰 변화는 사실 미중관계 및 진영 대결 구도의 부활 못지 않은 남북(한·조) 관계와 북미 관계의 근본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조선의 현재의 상태는 탈냉전 이래 가장 적대적이고 가장 단절적이다.최고 지도자의 인식과 언명에서도 이제 상대에 대한 군사적 언어와 어휘가 거리낌 없이 반복해서 사용되고 있다. 탈냉전 이후 초유의 상황이다. 반면 대화와 관계는 전면 중단 상태이다. 한반도 문제의 기저 변화 요인으로서 시민사회의 급변, 즉 평화 세대와 평화 담론의 등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에서의 ‘우리민족제일주의’ 대신 ‘우리국가제일주의’의 등장과 함께 이는 사회의식의 쌍방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국가 관계를 설정하는 데 있어 국민의 집합적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최근 한국의 여러 조사에 따르면 국민,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통일에 대한 인식은 현저히 낮다. 이는 거의 세계관 혁명, 또는 패러다임 전환으로 부를 만하다. 통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응답은 1988년 19.3%, 1989년 34.2%에서 2017년 12.1%, 2018년 8.6%로 줄어들었다. 탈냉전과 사회주의 붕괴 직후의 시기를 빼고는 반드시 통일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거의 항상 한 자리 수에 머물렀다. 다른 응답들은 ‘여건을 봐가며’, ‘현재대로’, ‘관심 없음’이었다. 통일의 필요성 자체를 매우 낮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최근의 조사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뚜렷한 흐름은 민족주의와 통일의지의 추락과 평화공존의지의 부상이다. 게다가 청년세대의 혐북(嫌北)과 염북(厭北)도 급증하고 있다. 과거의 반공반북 이념과는 다른 차원으로서 현실주의의 반영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의 입장에서 북한의 핵 개발과 세습과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최근 들어 한국과 조선의 최고 지도자들마저 공개적으로 상대를 적으로 호칭하고 있다. 사용하는 용어 역시 강경한 군사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탈냉전 진입 직후 남북기본합의서의 채택 이후 현재까지 지속돼 온 서로 ‘안보’와 ‘평화’, ‘적대’와 ‘교류’ ‘분단 현실’과 ‘통일 추구‘의 대상이라는, 즉 이른바 ’남북관계의 특수성‘ ‘상황의 이중성’이라는 남북 관계의 가장 근본적인 기본 동학과 상호 합의는 철저히 붕괴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민족주의와 통일 추구를 말하는 것은 좌우 어느 쪽이건 현실을 호도하는 위선이거나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다.조선은 한국을 중재자·촉진자는커녕 조수와 승객으로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지속적인 무시와 무례, 모욕과 폭언, 그리고 일방적 합의 파기와 통보, 투명 국가 취급은 현대 국민 국가와 문명국가 간의 정상적인 외교관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남북 관계의 재개와 중단의 결정권을 오직 조선만이 갖고 있다는 일방적 단절과 재개의 반복도 언어도단이기는 마찬가지다. 하물며 만약 같은 민족이나 형제라고 할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조선은 다른 대외 및 국제관계에서는 자행할 수 없는 행동을 한국을 향해서는 수시로 반복하며, 이제는 거의 일상이 되고 있다.따라서 ‘민족 내부’나 ‘특수 관계’라는 허구의 현실이 제공하는 어떤 긍정적 효과와 이익도 부“오늘날 한국 청년들이 도쿄, 베이징, 뉴욕, 파리처럼 자유로이 출입할 수 없는 세계의 유일한 나라와 도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평양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그들에게 자신들이 태어나기 두세 세대 전에 하나의 민족으로 존재했던 특정 상대 국가를 통일, 특히 그것도 민족 통일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접근하라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자 전체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재한 상태에서 부정적 공격과 굴욕만을 일방적으로 감내할 필요는 없다. 주권 관계는 언제나 상호적인 것이다.
차라리 냉정하고 엄격한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요구하는 국제규범과 예절을 지키는 것이, 어정쩡한 민족 내부나 특수 관계가 제공하는 일방적 관계 복원과 중단의 반복, 한국 국가와 국민에 대한 모욕적인 무례성과 불가측성보다 정상적 관계 유지와 예의 준수, 상호 이익의 교환에도 유리할 것이라는 점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그러한 상궤적 관계의 구축이야말로 남북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항구평화의 한조 시대의 관계를 정초할 것이다.오늘날 한국 청년들이 도쿄·베이징·뉴욕·파리처럼 자유로이 출입할 수 없는 세계의 유일한 나라와 도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평양 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그들에게 자신들이 태어나기 두세 세대 전에 하나의 민족으로 존재했었박명림 연세대 교수(지역학협동과정)는 “한국의 보수와 진보진영은 각각 이념과 민족을 근거로 남북 관계를 민족 내부의 문제로 잘 못 이해해 왔고, 그것이 이른바 남북 관계 틀의 중대한 패착이었다”라며 “하나의 경계 국가로서 한반도 문제의 성질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보편 한국에의 지향이 결합된다면 한국은 오랜 ‘문명의 경계’에서 이제 ‘경계의 문명’을 창출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던 특정 상대 국가를 통일, 특히 그것도 민족 통일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접근하라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자 전체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입과 여행조차 불가능한 국가와 ‘단일 민족, 단일 국가’ 의식을 갖고 하나로 통일하라는 것은 담론 폭력이자 세대 폭력일 뿐이다.
우리는 과연 오늘의 한국과 한반도 현실에서 ‘한반도 문제’라는 설정 자체가 갖는 현실적·공간적·국제정치적·심리적·철학적·분석적인 적실성과 적합성에 대해 깊이 문제를 던지고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한반도라는 지정학적 국제적 지역과 영토성과 공간 단위의, 기존 방식의 설정과 사유와 접근 자체가 아예 의미를 상실한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전쟁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휴전선의 경계는 기실 다른 어떤 나라 사이보다도 더욱 철저하게 단절적·장기적·적대적·실질적인 국경으로 기능해왔다.
즉 근대 국가들 사이의 다른 어떤 국경보다도 더욱 철저히 두 나라를 가르는 국경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런데 과연 어떠한 이유와 근거로, 무엇을 목표로 앞으로도 계속 한국과 조선을 하나로 묶어서 ‘한반도 문제’, ‘남북 관계’, ‘통일 대상’이라고 부를 것인지, 우리는 향후 훨씬 더 깊은 철학적 심리적 정치적 사유와 성찰이 필요하다.왜냐하면 물리적‧군사적인 완전한 차단과 격리를 넘어 두 국가 사이에는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심리적‧정서적‧이념적 거리와 적대감이 존재한다. 동일성과 동질성은 사라진 지 오래이며, 그것을 기준으로 한국과 조선의 관계가 움직이는 것도 결코 아니다. 한국과 조선 두 나라를 움직이는 요소는 결코 전통적인 민족·언어·문화·역사의 동일성과 동질성이 아니라 근대적인 주권·국가·헌법·체제의 상이성과 대결성이었다. 근대 국제관계에서 전자는 언제나 후자의 하위 요소였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 진영은 각각 이념과 민족을 근거로 남북 관계를 민족 내부의 문제로 잘못 이해해 왔고, 그것이 이른바 남북 관계 틀의 중대한 패착이었다. 이제 ‘남북 특수 관계’라는 민족주의에 매몰돼 더 이상 애정과 증오, 접근과 적대를 단속적으로 왕래 반복할 필요는 없다. 보편주의에 기반한 ‘국가 대 국가’ 관계. 즉 전형적인 두 국민국가 대 국민국가의 관계인 것이다.최근 한국의 과학기술 발달과 한류 문화현상에 비춰 볼 때 하나의 경계 국가로서 한반도 문제의 성질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보편 한국에의 지향이 결합된다면 한국은 오랜 ‘문명의 경계’에서 이제 ‘경계의 문명’을 창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인류 역사가 보여주는 경계 국가들의 속성이자 특질로서의 새로운 사유와 문명의 창출 역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불변의 지리적 위치라는 과거의 고루하고 협애한 지평과 시야를 넘어, 지정학은 늘 새롭게 구성된다는 중요한 원리를 깊이 인식할 때, 그리고 강대국의 각축장·화약고·소용돌이라는 수동성을 넘어 문화와 사유와 문명의 교차점이자 용광로이자 도가니라는 인식을 갖게 될 때, 나아가 동양과 서양이라는 잘못된 이분법마저 넘을 때 경계의 문명을 창출하는 창조적 경계성이나 경계적 창조성을 안출할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듯 지정학은 이미 주어진 것도 숙명도 결코 아니라 끊임없이 구성되고 변화하는 것이라는 오랜 정치학적 통찰을 생각할 때 더욱더 그러하다. 기실 가치와 문명, 제도와 의식의 측면에서 오늘의 한국은 이미 동양도 아니고 서양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아니, 동양이기도 하고 서양이기도 하다. 혼성적‧다중적 문명의 한 표본인 것이다.색 인식과 기억·연산하는 인공 시각 시스템
박희준 한양대 교수 연구팀국내 연구진이 색을 인식하고 기억·연산까지 수행하는 광 시냅스 기반 인공 시각 시스템을 개발했다. 최근 한양대에 따르면, 박희준 한양대 교수(유기나노공학과) 연구팀이 시각 신호의 색을 분별하여 인식하고 기억함과 동시에 기본적인 연산까지 가능한 인공 망막 소자를 개발했다.인간의 눈과 같이 시각 신호를 감지하고, 기억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물 판별이 가능한 지능형 시각 시스템을 실현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된 것이다.생체 시각 시스템은 안구의 망막에 입력되는 시각 정보를 수집하며 기억한다. 그리고 뇌가 더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도록 대량의 시각 정보를 전처리한다. 인공 시각 시스템도 마찬가지로, 시각 센서가 데이터 수집·저장·처리를 병행할 수 있다면, 대량의 고품질 이미지 데이터를 낮은 전력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연구팀이 개발한 소자는 2-단자 멤리스터 구조의 광 시냅스 소자이다. 두 개의 단자 사이에 저왼쪽부터 박희준 한양대 교수(유기나노공학과), 박상혁 공주대 교수(화학과), 이종민 씨(한양대 석박사 통합과정)이다. 사진=한양대
항 변화 중간층과 신소재가 적층된 매우 단순한 구조다. 신소재가 빛을 흡수하면 소자 내부의 전기장이 더욱 커져서 마치 전압을 걸어준 것과 같은 효과로 빛에 응답할 수 있다.
특히 흡수하는 빛의 파장에 따라 내부 전기장의 세기 변화를 극대화해 컬러필터 없이 혼합된 색을 RGB 삼원색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연구팀은 빨간색(λ = 630nm), 녹색(λ = 525nm), 파란색(λ= 450nm) 입력신호에 대해 100배의 차이를 가지는 출력 신호를 생성할 수 있도록 소자를 구현하여 명확한 색 구분이 가능한 것을 확인했다.기존에도 생체의 시각 신경을 모방하여 색 구분이 가능한 광 시냅스 소자의 개발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자가 3단자 트랜지스터형 소자를 채택했다. 그 결과 소형 집적화의 어려움 뿐만 아니라, 특정 물질 간의 결합을 통해 소자를 구성하므로, 제조 공정의 한계점이 많았다.연구팀이 고안한 동작 메커니즘은 집적이 쉬운 2-단자 구조이며, 컬러필터가 필요 없어서 나노미터 범위에서 초고화소 구현이 가능하다. 또한 다양한 소재의 저항 변화 중간층과 전극에 적용할 수 있어서 범용성이 뛰어나다.박희준 교수는 “이번에 고안된 광 시냅스 소자는 추후 AI 의 인공 시각 시스템 구현 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을 것으로 기대된다”라며 “얼굴 인식·자율주행 자동차·사물인터넷(IoT)·지능형 센서 등 다양한 분야에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연구는 박상혁 공주대 교수(화학과) 연구팀과 공동으로 수행됐다.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선생ㄴ임의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주간 <교수신문>과 온라인 교수신문에 선생님의 이야기를 정성껏 담겠습니다 자유 기고는 물론, 제보와 보도자료는 editor@kyosu.net 으로 보내주세요딸깍발이
‘대치’ 대신 ‘대화’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사실 좋은 대화는 시작일 뿐입니다.” 시어도어 젤딘은 『대화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대화의 만찬'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잘 모르는 사람과도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화 메뉴’를 제시하며, 단순한 ‘말하기’(talking)가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는 ‘대화’(conversation)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대화의 만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상대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자신에 관해 많이 배웠다”고 말한다.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 전달되는 대화를 통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새로운 시대가 가능하다고 믿는 젤딘은 옥스퍼드 뮤즈 재단을 만들어 가정과 일터에서 대화를 통한 변화를 일으키려 한다.
이 책을 읽으며 한국 사회의 대화 문화를 돌아본다. 서로에게 거친 언어를 쏟아붓는 정치판에서는 말만 무성하고 진정한 대화가 없다. 같은 날 국회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과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을 가결시킨 것만 보더라도 대치 상황이 끝이 없다.시어도어 젤딘은 ‘경계선에서 나누는 대화’가 특히 소중하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이해하는 것과 이해하지 못하는 경계에 서있는 경우에는 입장이 다른 사람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비록 한계가 있더라도 함께 뜻을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대화를 나누기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인간적 복잡성과 직면”하고 상호 존중의 감각이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대화의 본질은 언어만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표정과 눈빛, 목소리와 태도를 통해, 혹은 침묵을 통해 무수한 메시지가 오고 간다. 결국 대화는 “손을 잡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삶의 여러 측면으로 친밀감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쉽지 않을지라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역사를 보면 적과도 대화하고 협상해 왔다. 지금의 한국 정치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힘으로 제압하려는 ‘대치’(對峙)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입장이 다르더라도 서로를 인정하며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는 ‘국민을 위한’ 정치는 정녕 불가능한가? 19일 간 단식 끝에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 이재명 대표를 두고 법무부장관과 여당의원들이 던진 무참한 말은 조롱의 극치였다. 계속해서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정국 상황에 많은 시민들이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갈등은 힘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증폭되기도 하고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말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말로 풀어가야 한다. 지금 정치가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대화의 자리를 복원하는 일이다. 시어도어 젤딘의 대화를 위한 질문 중 하나를 던진다. “당신이 느끼는 연민의 한계는 어디까지입니까?”
지난 8월 최재천 교수는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 지배 엘리트에게 일침을 놓았다. “여러분의 선배들은 입으로 번드레하게 공정을 말하지만 실천하지 않는다.” 무감각한 기계적 공평이 아니라 속 깊고 따뜻한 공정이 표준이 되어야 한다며, 졸업생에게 ‘공정하고 따뜻한 리더’가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마사 누스바움도 『시적 정의』에서 법을 다루는 사람이 충분히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상상력과 공감력이 필요하고, 기술적인 능력만이 아니라 휴머니티를 위한 능력을 배워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공평성은 우둔해지고 정의는 맹목적이 된다고 했다. 법정만이 아니라 정치 현장도 따스한 감정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입장에 자신을 놓아 보고, 상대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사소한 사정까지도 진지하게 느껴보려는 노력, 서로 다른 생각을 이해하려는 대화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 ‘대치’ 대신에 ‘대화’가 미래를 살린다.출처=W.ART갤러리
갤러리 초대석
「Too much」다리엘 페레즈, 판지에 볼펜, 2023다리엘 페레즈 작가 전시회 「투머치 Too Much」는 오는 21일부터 다음 달 22일까지 서울 마포구 독막로29길 W.ART갤러리에서 열린다. 작가 '다리엘 페레즈'가 펼친, 너무나 풍요로운 상황을 작가로서는 최소한의 물질, 볼펜 한 자루로 표현한 드로잉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그 반어적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마주하게 된다. 최소한의 물질들로 우리는 풍요로울 수 없는가? 카페에서 길에서 하루 종일 스케치한 작가의 시야를 통해서 '잘 사는 것' 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는 계기로 이 전시를 준비한다. 'too much' 작품 속 눈을 감고 있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동안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려고 달려왔다. 음..이것이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었던거지..음..' 지금 그녀는 내면의 풍요를 관찰하고 있으리라.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교수논평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는 교수 채용 비리교수 채용 비리가 다시 크게 늘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최근 경찰이나 국민권익위원회에 적발되어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보면 그렇다. 사립대는 교수 채용에 관한 실질적 권한이 이사장이나 총장에게 있고, 국·공립대는 학과 교수들이나 총장에게 있기 때문에 채용 비리는 결국 이들이 저지른 비리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의 자율과 자치라는 전통적 가치에 충실한 대학에서 교수 충원은 현직 교수의 권한에 속해야 마땅하다. 학과의 교수진 구성에 관한 권한을 현직 교수가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현직 교수는 학과(학부) 내에 어떤 세부 전공과 경력의 교원이 필요한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경쟁에 의한 정부의 재정지원방식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고등교육정책에 편승한 사립대 교수 채용 비리도 심각하다. 장·차관이나 교육부 고위 관료 출신의 세칭 ‘교피아’를 사학의 총장이나 교수로 임용해서 발생하는 비리다. 교피아는 대부분 연구나 강의 경력이 없다. 결국 교피아 임용은 고깃배 위에서 그물 한 번 던져본 적 없는 사람을 선장으로 채용하는 것과 같다. 교피아를 대학의 관리자로 임용하는 목적은 뻔하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전 교육부 국장 A씨는 과거 서울대에서 연구지원과장과 시설관리국장으로 근무했다. 두 차례 서울대 근무 기간 중에 이 대학의 행정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A씨가 서울대에서 과장과 석사 과정 학생으로 이중생활을 하는 동안, 행정대학원 교수 B씨는 교육부 차관을 맡고 있었다. B씨는 10년 뒤 A씨의 지도교수가 됐다. A씨가 두 번째로 서울대 근무를 하며 박사 학위를 취득할 때의 지도교수도 역시 B씨였다. A씨는 2017년 12월 C전문대 총장에 취임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세 차례의 대학평가에서 재정지원 제한을 받았던 C대는 A씨가 총장으로 취임한 이듬해의 평가에서 자율 개선대학으로 살아났다.
교피아가 교육부 재정지원 확보에 실력을 발휘하면서 교회의 부흥사처럼 또는 가을철 메뚜기처럼 문제가 있는 대학을 옮겨 다니며 총장을 맡는 ‘메뚜기 총장’도 생겨났다. 필자는 수년 전, 강원도의 어떤 토론회에서 관내 C대학의 총장을 만난 적이 있었다. 얼마 전까지 S전문대학 총장이었다가 자리를 옮긴 것이다. 다시 또 몇 년이 지나고, 이번엔 대전의 지회 결성식에서 만난 D대학의 총장도 역시 그분이었다. 반갑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이분은 현재 충북의 C대학에서 또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에 이런 메뚜기 총장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아까운 교비가 매년 수십억 원 씩 지출되고 있다.채용 비리는 사립대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공립대학에서도 교수 채용 비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 1년 사이에만 경북대·창원대·전주교대·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등에서 교수 채용 비리가 적발됐다. 지난 5월에는 DGIST의 총장과 부총장 등 6명이 신임 교수 채용 비리로 입건되었고, 수치스럽게도 사무실을 압수수색 당했다는 소식이 있었다.교수 채용 비리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교수 사회의 독특한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다. 교수들은 각자가 독립된 연구기관이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엔 개인주의가 강하고 반목이 심한 집단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동료 의식도 상당히 강하다. 특히 동료의 부정과 비리를 알더라도 모른 척하는 경우가 많다. 고등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는 온정주의에서 확실하게 벗어나야 한다. 구성원 스스로 공정하고 투명한 채용 절차를 준수하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비리 척결 투쟁도 중요하다.
또 하나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채용 비리가 바로 교수직 세습이다. 소위 수도권 명문대에서 아주 심각하다. 일부 대학에서는 가족이나 일가친척이 과거 그 대학의 교수였다면 본교 교수가 되지만, 그런 배경이 없으면 분교에 발령이 난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을 정도다. 대학 간 품앗이 채용 비리도 있다. 동종번식(同種繁殖)을 피하겠다는 핑계로 2개 대학이 암묵적으로 상대편 대학 출신을 서로 뽑아주는 방식으로 교수를 채용한다. 이 역시 정당한 자격을 갖춘 지원자의 자리를 빼앗는 행위이고, 마땅히 근절되어야 하는 비리이다.교수 채용 비리는 업무방해(사립대학) 또는 공무집행방해(국공립대학) 행위이다. 현재 수많은 교수 채용 비리가 적발되고 있다. 그러나 확인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교수의 재계약/재임용 비리도 상당하다. 재단의 눈 밖에 난 교수는 내쫓는다. 대학에서 부당하게 해직되어 싸웠지만, 결국 강단에 복귀하지 못하고 퇴직을 맞이하는 교수도 있다.교수 채용 비리는 정부가 강력한 의지로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 현 정부에서 그런 의지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실 역대 정권이 모두 그랬다. 채용 비리는 ‘대학의 자율과 자치’의 정신을 훼손하는 부도덕 행위이다. 후진국형 병폐인 채용 비리가 대학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박정원
상지대 명예교수현재 강원도대학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전국교수노조 위원장과 상지대 부총장을 지냈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중요한 건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마음“여행 잘 다녀왔어요? 그럼 이제 논문을 다시 쓰기로 한 건가요?”
언젠가 이 물음 앞에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라고 중얼거리다 눈물을 왈칵 쏟으며 상담센터 문을 박차고 나온 적이 있다. 논문을 다시 쓰기로 했냐는 물음을 어떻게 저렇게 가볍고 산뜻하게 말할 수 있는 건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석사 과정 수료 후 일 년 반 이상 학위 논문 쓰기에 매달렸지만 졸업은커녕 논문 심사조차 받지 못해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커다란 바위가 가슴을 늘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작은 걸음을 떼는 일조차 숨이 차고 버거웠다.그 후로도 꽤 오랜 시간 과호흡을 견디며 버티다가 논문 제출 연한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지도교수님의 해외 일정을 틈타 비로소 자퇴했다. 그때 여분으로 인쇄해 두었던 자퇴서 양식은 햇빛 가리개 용도로 내 방 창에 아직도 붙어 있다.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내가 다시 이 일을 회고해 보게 된 까닭은 최근에 알게 된 사람 때문이다. 그는 석사 수료 후 졸업하지 못하고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휩싸인 채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이제 해외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는 일은 어렵겠지만 나는 그가 겪어온 시간을 어느 정도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자퇴 후 패잔병처럼 터덜터덜 다니던 시기에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뼈 아픈 원망이었다.
“계속해서 논문을 쓰고 또 수정해서 갖다 들이밀어라”, “네가 납작 엎드려라”, “그동안 낸 등록금도 아깝고 투자한 시간도 있고 하니 계속 버텨서 졸업을 해야지”라고 내게 말했던 주변 사람들의 조언도 물론 일리가 있었으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아지지 않던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말과 안쓰러운 시선은 그저 비수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얼마나 더 낮게 엎드려야 하는 걸까. 그리고 대체 왜 엎드려야 하는 걸까. 학교에서 왜 나는 굴종하는 법을 익히고 있나.한동안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 취했다 깨기를 반복하면서 공부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런 다음 내가 학교라는 곳에 바라는 것을 공책에 쭉 써보았다. 학문 공동체, 수평적으로 질문과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곳, 교수에게 이의제기를 하더라도 보복성 반응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곳, 학생의 권익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제도나 단체가 있는 곳, 연구 주제를 억지로 타협하지 않아도 되는 곳, 논문 자체의 형식적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논문을 통해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그 질문이 어떤 함의를 갖는지도 중요하게 고려되는 곳, 학생의 부족함을 경멸조로 바라보고 무시로 일관하거나 그에 대한 분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부족함을 딛고 성장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피드백을 제공해줄 수 있는 스승이 있는 곳, 비판적인 동료가 있는 곳, 입학생의 절반 이상이 졸업하는 곳, 졸업 후 막막한 심정으로 거리에 나앉지 않도록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학비를 필요로 하거나 장학제도가 있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게 하는 곳.
그렇게 바라던 것들을 마음에 새기고 다니던 어느 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어느 미술관 심포지엄에서 인상적인 발표를 하셨던 교수님께 석사 편입에 대한 문의 메일을 보냈고, 그 덕분에 나는 다시 학생이 됐다.그리고 현재 박사과정 수료까지 두 학기를 남겨놓은 상태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작년에 논문 한 편을 학술지에 게재했고 얼마 전에는 학술대회에서 다른 논문 한 편을 발표했다. 학위 과정은 여전히 녹록하지 않으나 이제는 내가 논문을 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하고 감개무량하다. 예전보다 넓고 부드러워진 마음으로 다시 생각해 보건대, 어떠한 경우라도 공부를 한다는 게 죽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이유로 대학원 생활 중에 극도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면, 쉽지는 않겠지만, 도중에 그만두어도 괜찮다고, 언제라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그 길만이 길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혹 누군가가 지금 있는 그 외로운 자리에서 더 버텨 보기로 결심했다면, 건투를 빈다. 진심으로.손송이
서울과기대 IT정책전문대학원 디지털 문화정책전공 박사과정서울과기대 디지털문화정책전공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면서 미술관 학예사로 일하고 있다. 「5·18의 수행적 기념을 위한 광주비엔날레 연구」로 2022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듬해 「심층인터뷰를 통한 학예노동자의 노동경험과 직무인식 연구 - 한국박물관협회 주관 사립 및 사립대학 박물관 전문인력 지원사업(2007∼)을 중심으로」(2023)를 썼다.
김상돈의 교수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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