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처우개선, 일반재정지원으로…사립대 매칭펀드·채용 유연화 필요”

숙대 글로벌거버넌스 연구소, 강사 지원 방안

국공립대와 사립대 강사 간 강의료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부와 사립대 간 매칭펀드를 조성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현재와 같이 모든 학교에 동일하게 지원하는 게 아니라, 대학의 강사 처우개선 수준에 대응해 정부가 차등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숙명여대 글로벌거버넌스연구소는 지난달 ‘공·사립대학 강사 처우개선을 위한 지원방안 마련 연구’를 공개했다. 해당 연구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진행됐으며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통해 이뤄졌다. 연구진은 그동안 대학 강사의 처우개선 정책이 의도치 않게 국·사립대 강사 간 상당한 강의료 격차를 만들어 냈다고 했다. 국공립대 강의료는 공무원 보수 인상률과 연계돼 지속적으로 인상됐지만, 사립대 강의료는 대학재정 악화 속에서 정부 재정지원 없이 증가하지 않은 게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연구진은 강의료 격차 해소를 위해 ‘강사 처우개선 예산’과 같이 특정 목적의 재정지원보다는 일반재정지원을 강화해 해당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봤다.

연구진은 “강사의 처우개선은 결국 국·사립대라는 임용 주체가 달라서 생기는 것이므로 사립대가 처우개선에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일반목적 재정지원사업으로 지원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고등·평생교육 특별회계’가 마련됐기에 일반재정지원으로 강사 간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강사의 강의 역량 강화, 연구 지원 확대 등과 관련한 사립대의 지원을 유도하는 공모사업을 추진하면 광범위한 차원에서 강사 처우개선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도 했다.

연구진은 강사 활용이 대학의 강의 수요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정립될 필요도 있다고 했다. 강사 수요는 대학이 집중하는 교육과정과 연동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강사 임용도 이에 맞춰 유연화돼야 한다는 의미다. 강사에 대해 1년 이상, 3년 재임용 보장의 기본 틀을 유지하며 1년 단위나 1년 미만의 임용도 가능하게 예외 사항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연구진은 “교과과정의 변화에 따라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의 범위가 다양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신규 강사의 채용에서 비교적 유연한 계약 구조가 가능한 범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라며 “인문학 분야 역시 시대와 상황에 따라 세부 전공 분야와 강조점이 달라지고 있음을 고려할 때, 신규 강사의 진입을 위해서는 보다 개방적인 구조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학과 교과과정은 수강 신청부터 성적 확정까지의 기간을 포함하면 실제로는 16주 이상으로 운영이 된다며 강사 채용 시기를 학기 시작이 아니라 수강 신청을 기준으로 조정하거나 채용을 상시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원칙을 강사 임용에도 최대한 반영해 예외 사항을 법에 명시하기보다 대학 구성원 간 합의를 전제로 1학기 단위 임용을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학기 중에 발생한 1년 미만 병가·출산휴가·휴직·파견·징계·직위해제·보직임명·연구년(1년 이하)으로 긴급하게 대체할 강사가 필요할 경우 강사 임용을 유연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부담에 대한 완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동안 강사 임용과정의 제도화는 임용과정의 투명성을 강화하긴 했으나 대학과 강사의 행정부담을 증가시킨 부정적 효과도 낳았다고 했다. 특히, 공개채용의 과정에 참여하는 강사와 대학 모두 채용 과정의 고도화를 추가적인 행정부담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게 제안 배경이다. 또한, 사립대는 전임교원·비전임교원·강사를 임면보고 대상자로 보고 있는데, 비전임교원의 겨우 임용·면직·재임용 등의 신분 변동이 많아 이 또한 행정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강사의 임용 방식을 대학별 임용 시스템을 통해 진행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강사 임용과 관련한 별도의 공식 플랫폼을 구축해 전체 대학과 강사를 연계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행정적 부담을 덜 수 있다고 했다.

연구진이 제안하는 강사임용 플랫폼은 강사 임용과정에서 각 대학이 요구하는 서류의 유사성에 주목해 공통의 양식과 자료를 공유하는 방식을 통한 행정 절차 효율화와 행정 비용 간소화를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또한, 해당 플랫폼은 한국연구재단이 관리하도록 해 공공서비스의 성격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라이즈 성공하려면, 독립적인 고등교육위원회 필요

데이터로 읽는 대학⑭ 중앙정부와 지자체, 고등교육 거버넌스

‘데이터로 읽는 대학’의 세 번째 주제인 ‘지역대학 위기 극복 방안’의 마지막 다섯 번째 소주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고등교육 거버넌스’이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의 하나로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를 아젠다로 제시했다. 중앙정부-지자체 간 협약으로 지역인재 육성과 지역산업수요 맞춤형 교육, 지역연구중심대학 육성 등이 핵심이다. 정부는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와 글로컬대학30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과연 이 사업이 수도권 집중화 현상을 완화하고, 지방대학의 신입생 미충원 문제를 해결하며, 지방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살펴본다.

라이즈는 지역대학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지자체의 대학지원 권한 확대, 대폭적인 규제 완화, 선택과 집중에 의한 재정 투자를 추진한다. 2024년 교육부 예산안을 분석해 보면, 2025년 라이즈 전면시행을 대비해 기존의 5개 정책사업인 RIS(3,420억 원), LINC(4,070억 원), LiFE(510억 원), HiVE(900억 원), 지방대 활성화(3,125억 원)를 하나의 사업으로 통합해 1조2천억 원 규모로 편성했다.

‘지방대 시대’ 이끄는 라이즈·글로컬대학

또한, 혁신적 변화를 추진하는 글로컬대학 30 사업은 대학구조를 전면 혁신할 의지와 지역 성장을 견인할 역량을 갖춘 지역대학을 글로컬대학으로 선정해 육성한다.

글로컬대학30 예비지정 선정 결과를 분석해보면, 108개교에서 94개 혁신기획서를 제출했으며, 지원 유형으로는 공동 4개교, 단독 11개교가 예비 선정됐다. 공동형은 전부 국·공립대, 단독형은 국립 4개교, 사립 7개교가 선정됐다. 고등교육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지방사립대학에 비해 지방 국립대학에 편파적으로 선정 비율이 높았다. 정부는 지역발전전략과 연계한 특성화를 통해 지역과 동반 성장하며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글로컬 대학을 육성해, 지역 발전과 대학의 경쟁력 제고를 함께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1년간 200억씩 5년 간 1천억 원의 지원으로 지역에서 글로벌대학을 육성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하는 것이다. 대규모 대학은 이미 매년 예산이 몇 천억 원을 넘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쟁력 제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교육부에서 파견된 교육개혁지원관이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중간다리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까도 의문이다. 이미 교육부의 실무과장 출신이 국공립대 사무국장으로 파견돼 대학 내에서 거버넌스 문제를 야기하고 있고, 국립대의 자율성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교육부 출신의 사무국장 임용을 전면 철회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국립대에 교육부 공무원을 파견하지 못하도록 한 결정을 무시했던 교육부가 국립대 사무국장에 공무원 임용

2023년 시도별 재정자립도

구 분 2023년

전국 50.1%

서울특별시 81.2%

부산광역시 69.7%

대구광역시 65.7%

인천광역시 59.6%

광주광역시 56.6%

대전광역시 53.2%

울산광역시 52.3%

세종특별자치시 46.4%

강원특별자치도 38.8%

충청북도 37.9%

충청남도 36.9%

전라북도 36.2%

전라남도 29.7%

경상북도 29.4%

경상남도 28.7%

제주특별자치도 27.9%

출처: 통계청(2023) 시도별 재정자립도. 통계청 KOSIS.

을 금지하는 규정의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국립대 총장에게 사무국장에 대한 임용권을 완전하게 보장해주는 인사혁신도 추진 중이다.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자립도와 전문성

라이즈와 글로컬대학30 사업을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지원금만이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재정지원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도시 몇 곳을 제외하고는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매우 낮다.

지방자치 20주년을 맞은 올해 전국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50.1%다. 재정자립도는 자치단체 재원에서 자체 수입(지방세+세외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지자체의 전체 재원에 대한 자주재원(지방세와 세외수입)의 비율을 말한다. 즉, 지방정부가 재정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어느 정도나 조달하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다. 올해 지자체 총예산 규모가 305조 4천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17조 1천억 원(5.9%)늘어나면서 처음으로 3백조 원을 넘어섰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지자체 세입은 지방세 115조 3천억 원(37.7%), 보조금 77조 8천

억 원(25.5%), 교부세 63조 4천억 원(20.8%), 세외수입 24조 7천억 원(8.1%), 지방채 2조 9천억 원(0.9%) 등으로 구성됐다. 지자체가 중앙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알수 있다. 지역별 재정자립도를 보면, 지역간 격차가 크게 나타나고 있는데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지역은 서울특별시로 81.2%이며, 다음은 부산 69.7%, 대구 65.7%, 인천 59.6%, 광주 56.6%, 대전 53.2% 울산 52.3% 순으로 대도시지역이 높게 나타난다. 반면에, 7개 광역시를 제외한 10개 시도지역은 전국 평균인 50.1% 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라남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제주특별자치도의 재정자립도는 30%에도 못미치고 있어서 지역별 격차가 심각한 상황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의 시군구의 경우에는 재정자립도가 10% 이하로 자체 수입으로는 공무원 인건비 조차 충당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지방재정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이다.

재정자립도가 서울을 제외한 16개 시도는 매우 커다란 격차를 보이고 있다. 과연 지역재정도 어려운데 대학에 지원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지자체의 각종 규정은 초중등교육은 지원할 수 있는 규정이 있지만, 대학을 지원할 수 있는 규정이 없으므로 이에 대한 규정도 마련돼야 한다. 또한, 지역간 재정자립도 차이를 고려해 중앙정부에서 이를 보전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지역별 격차를 줄일 수 있다.

교육개혁지원관, 옥상옥이 되지 않으려면

고등교육 거버넌스에서도 지자체의 실무국장이나 교육부에서 7개 지역에 파견한 교육개혁지원관이 대학을 지배해 좌지우지한다면, 대학의 자율성은 보장받기 어렵다. 오히려 옥상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교육개혁지원관은 명칭에서도 드러나는 바와 같이 지원과 조정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빠른 시일 내에 지자체별로 대학·지자체·지역기업 등이 참여하는 고등교육위원회를 만들어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문성이 부족한 지자체장에 의해 대학의 운영이 휘둘리는 일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그것이 지역소멸과 지역대학의 소멸

을 막고, 지역 특성을 살리는 지역대학의 위상을 정립할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황인성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사무처장

대학평가와 고등교육 전문가로 교육통계 분석 작업에 참여해 왔다.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을 거쳐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정보공시센터장과 기획조정실장을 지냈다.

부산대학교

고고학 입문 연구자들과 일반 대중을 위한 한국 고고학 개론

한국고고학 이해

● 『한국고고학 개설』 (1986, 김원용),

『한국 고고학 강의』 (2010, 한국고고학회)의 맥을 잇는

한국 고고학 개설서

● 한국고고학회 5년간의 기획 성과

● 구석기시대~조선시대 고고학 연구 성과 집대성

● 북방 고고학 연구 성과의 보강

이 책은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 역사 무대에서 펼쳐졌던 생생한 생

활·문화상을 담고 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관심이 소홀하였던 고려·조선시대

문화 내용을 대폭 보강하고, 우리 역사·문화를 꽃피웠던 고조선·고구려·부여·

옥저·읍루·발해 등 중국 동북지방의 문화 내용까지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이제 한국고고학회는 ‘누구를 위한 고고학인가?’라는 진지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 답은 ‘고고학이 고고학 연구자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대중과 함께하는 고고학

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첫걸음은 스토리텔링에 의한 유적·유물의 고

고학적 의미와 시기별 역사·문화상을 설명함으로써 일반 시민들도 쉽고 재미있

게 다가갈 수 있는 고고학 대중서를 발간하는 일이다.

이 책이 고고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높여 ‘대중과 함께 하는 고고학의 촉매제’

가 되기를 기대한다.

〈발간사〉 중에서

판형 215×276mm | 페이지 512페이지

출간일 2023년 8월 30일 | 가격 45,000원

엮은이 한국고고학회, 영남문화재연구원

지은이 장용준 , 이형원 , 강인욱 , 권오영 , 서현주 , 조성원 , 주홍규 , 정해득

지은이 소상영 , 조진선 , 이재현 , 양시은 , 김대환 , 윤상덕 , 박성진

진인진 www.zininzin.co.kr / 02-507-3077

알고크라시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다

學而思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정치사회학

인간과 AI가 대결하면 누가 이길까? 알파고와 이세돌, 커제(柯浩)와의 대국에서 보았듯이 AI의 일방적 승리였다.

알파고는 현존하는 기성(棋聖)들을 모두 제압하고 입신(入神)의 경지에 도달했다. 대규모 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을 통한 생성형 챗지피티 진화도 앞으로 AI가 최상의 知力을 지닌 포스트 휴먼의 시대를 실현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포스트 휴먼 시대의 도래에 대해 자연과학도들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이와 달리 인문학도들은 포스트 휴먼이란 개념 자체를 싫어한다. 사회과학도로서 나도 역시 비판적이다.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 ‘신인류’가 나타난다. 기존의 인류는 몰락한다. SF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터미네이터·어벤져스·문레이커·풀아웃 등)이 현실이 된다. 신인류는 감성과 이성을 가진 인간이 아니다. 기술공학적으로 만들어진 인공생명체다. 인간을 벗어난다. 사랑·도덕·윤리는 사라진다. 끔찍한 일이 아닌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은 ‘거대한 변혁’(Great Transformation)이다. 기회와 위협으로서 디지털 전환을 보아야 한다. 경제·정치·사회·문화에 대한 반향이 크다. 플랫폼을 통한 가상공간의 실현은 거래비용을 낮추어 과업의 외부화를 촉진한다. 공유경제·전자정부·재택근무·원격구매 등에서 보듯 노동비용을 낮추고 자원절약에 효과적이다. 3D 프린팅과 같은 적층(積層) 제조는 동일한 제품의 복제생산을 쉽게 만들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거리를 줄여준다. 국경을 넘는 전 세계적 유통이 가능하다. 미래 혁신성장의 동력이다.

주체 아닌 객체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

이미 인간과 AI 사이의 균형추는 후자로 기울었다. 지식의 습득이 인간의 독해 없이 AI의 개입에 의해 이루어진다. 시·소설·그림·사진·노래 등 모든 분야에서 모사(模寫)가 가능하다. 디지털 플랫폼에서 알고리즘에 의해 우리가 사용하는 콘텐츠에 바탕해 기호·취향·행태를 필터링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알고리즘은 편리하다. 사회 곳곳의 방대한 데이터에 기반한 머신러닝에 의해 일정한 패턴을 발견하여 해답을 준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 얻은 정보를 활용해 자기 주도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주체가 아니라 객체에 지나지 않는 존재다. 알고리즘이 너와 나, 즉

우리의 생활을 지배한다.

오늘의 민주주의는 디지털 플랫폼이 기반하고 있는 알고리즘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알고크라시(algocracy)다. 기업과 정부 등 공사조직에서 의사결정과정이 인간이 아니라 AI에 의해 결정된다. 기술 주도 봉건제 아래 종속된다. 시민은 신민(臣民)으로 되돌아간다.

미국 기업인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중국 기업인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빅테크를 대표하는 ‘GAFAAMT’(열거된 빅테크 기업들의 앞 글자 모음)의 사례를 들어보자. 이들은 온·오프라인에서 우리의 모든 삶을 자료로 축적해 적극적으로 상품화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빅테크와 함께 스마트 도시, 스마트 보안 등 사업을 통해 개인의 삶의 복지와 안전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빅테크가 관장하는 파놉티콘(Panopticon) 안에 갇혀 산다. 세계 여러 나라의 권위주의 정부는 스마트 정책을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시민은 감시되고 통제되고 있다.

최근 페이스북이 미국에서 정치적 양극화에 기여했는가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미국 사회는 인종·계층·세대·지역으로 갈라졌다. 미국이 자랑하는 민주주의는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정치적 양극화는 소셜 미디어가 나타나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의 등장 이

후 알고리즘이 그러한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뉴미디어 시대에는 조작과 선동이 용이하다. 소셜 미디어는 개인 맞춤 알고리즘에 의해 유권자에게 편향된 정보만을 전달한다.

선거 과정에서 가짜뉴스·허위정보·악성댓글의 제조를 통해 유권자를 호도한다. 우리도 지난 대선, 총선 과정에서 유사한 사건을 겪은 바 있다. 여기서 조작된 정보는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없다. 개별화된 필터는 편향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유권자는 알고리즘이 만들어 놓은 ‘버블’에 갇히게 된다. 시민들은 왜곡된 공론장에서 정보 편식을 통해 판단 능력을 잃고 확증편향에 빠진다. 정치 양극화가 심화된다.

공짜 정보에 눈 멀어 알고리즘에 저항 못해

빅테크의 사용자 수를 보면, 페이스북 사용자는 29억 명, 유튜브 사용자는 23억 명, 인스타그램 사용자는 12억 명, 틱톡 사용자는 7천320만 명, 그리고 텔레그램 사용자는 7천만 명이다. 미국 거대 정보통신 기업들은 제도권에서 자신에 유리한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써가며 빅테크에 유리한 정책을 만들고자 적극적으로 정부나 정치인을 대상으로 로비하고 있다. 지난해 아마존의 경우 1천900만 달러, 페이스북은 2천만 달러, 구글은 1천200만 달러, 그리고 애플은 650만 달러를 로비자금으로 지출한 바 있

다. 빅테크가 이끄는 사회에서 시민들은 공짜로 주는 정보에 눈이 멀어 기업이 주도하는 알고리즘에 저항하지 못한다. 비판적 독해 능력을 갖춘 디지털 시민이 아니다.

소셜 미디어는 쌍방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보의 생산·공유·확산을 넓힌다. 사회적 관계가 가상공간에서 만들어지면서 소셜 미디어를 통한 참여가 늘어난다. 우리 주변에서 보듯 소셜 미디어의 중독성은 매우 강하다. 인터넷이나 휴대폰 없이 살기 어렵다. 우리가 온라인 플랫폼에서 연결하는 시간만큼 우리의 성향에 맞게 정보를 제공하며 영향을 미친다.

알고리즘이 극단주의를 조장하는 증폭제 역할을 한다. 디지털 공간에서 우리의 모든 일상이 추적된다.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노출돼 있다. 겉으로는 ‘투명사회’인데, 실제로는 ‘감시사회’다.

우리의 삶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흡수되고 있는 현실에서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에 의해 시민의 일상이 관리되고 심지어 통제되고 있다. 시민사회를 살리기 위해 사회운동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아래로부터 감시하는 사회’(sousveillance society)를 위해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하자. 흩어진 개인들이 연대와 협동의 장으로 모일 수 있다. 시민들이 다시금 깨어날 수 있도록 디지털 플랫폼을 재발견해야 한다.

장기적 혜안 없이 과학기술 역량만 뒤흔들다

과학의 과학 ⑧ R&D 예산삭감

▶1면에서 이어짐

여러 괴담도 들린다. 재계약이 거의 확실시 되던 박사후 연구원들이 당장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거나, 중견급 연구자들의 연구비가 모자라게 되었으니 신진 연구자들의 몫까지 넘보게 생겼다는 것이다. 신진 연구자들은 이제 한국에서 도전적인 신진연구를 시도해 보기는 틀린 것 아닌가 하는 한탄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업비가 대폭 삭감된 과학기술원들과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의 입장도 난처하다. 당장 사업비 삭감의 불똥이 조직 내 누구에게 어떤 형태로 튈 것인지에 대한 예측도 어렵다. 교수들은 현재 수행하고 있는 연구가 좌초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대학원생들은 당장의 급여와 장학금이 줄어드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취약하다.

과학기술 예산이 성역(聖域)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과학기술을 공공의 산물로 취급하고 사회적 자원을 투입해 육성해야 한다는 관점은 한때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1970년대부터 과학기술 개발이 국가적 사업으로 편입됐고, 단기간 내에 경이로운 양적·질적 성장을 이루어 냈다. GDP 대비 R&D 예산의 비중은 세계 최정상급에 속한다. 정부와 대학을 합한 공공 영역의 예산은 전체 R&D 개발비의 약 20%가량인데, 지난해 기준으로 그 액수는 29조8천억 원을 기록했다. 정부 총 지출의 4.9%에 해당한다.

과학기술 개발은 과학자가 전적으로 사회적 투자에 의지하여 수행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거의 전적으로 공동체적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그 결과물이 투입 자원 대비 얼마만큼의 독점적인 단기적·장기적 성과를 가져다주는지에 대해서 입증할 책임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공적 지원, 자율성, 제한된 책임감의 3중 구조는 물론 사회적·역사적으로 축적된 결과물이다. 대표적인 갈등의 예시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상원에서 이루어졌던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설립을 둘러싼 논쟁이다. 상원의윈 킬고어는 전시에 축적된 과학기술 역량을 전적으로 국가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통제와 책임 중심의 기관을 설립하고자 했고, 전시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하던 MIT의 전기공학자 버니바부시(1890∼1974)는 과학자들의 자율성을 근간으로 하는 조직 운영안을 제시했다. 버니바 부시그룹의 정치적 승리로 인해 지금 우리 사회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과학자 사회의 자율성’개념이 ‘공공의 과학기술정책’이라는 개념과 모순되지 않는 것으로 공존할 수 있게 됐다.

이후 불가침의 영역으로 남아있던 미국의 국가 R&D 기조에 칼을 빼들었던 것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었다. 4년의 재임 기간 동안 연방정부의 과학기술 예산은 매년 감소했는데, 특히 국립보건원(NIH)·환경청(EPA)·에너지부(DOE)·항공우주국(NASA)의 예산 감축이 두드러졌다. 특히, 기후변화 회의론자였던 트럼프의 눈에 거슬린 환경청은 30%에 가까운 예산이 축소되면서 큰 부침을 겪었다. 단순한 예산 축소를 넘어 검열도 이루어졌다. 환경청은 기후변화에 대한 내용을 홈페이지에서 지울 것을 요구받았고, 에너지부의 각종 대규모 사업단의 이름과 연구 목표에서도 탄소감축과 기후변화가 삭제됐다.

단순한 예산 축소 넘어 검열도 해

물론 예산의 감소로 인해 상당수의 과학기술연구가 중단돼야 했지만 이는 1차적 결과였을 뿐이었다. 정부의 입김에 휘청이는 연구현장을 본젊은 연구자들은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거나 예산 분배에 단기적으로 영합하는 길을 선택했다. 숙련된 연구자들은 R&D 예산 감축을 처음 겪어보는 것은 아니었기에 조금 더 능숙하게 대처했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연구를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정부에 의해 검열되지는 않도록 그럴싸한 연구계획서를 만들어 내느라 골몰했다.

부유한 사립 대학들은 그 와중에도 생존을 도모했지만, 중소 규모의 주립대학들과 교육 중점공립대학들은 R&D 예산 감축의 직격탄을 맞았다. 공화당 주지사가 집권했던 주들의 경우 고등교육 예산 삭감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이중고가 닥쳤다. 단지 예산을 줄였을 뿐인데, 그 파장은 미국의 과학기술 역량의 근간을 흔들고 지나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과학기술정책의 특이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기업인의 시각으로 ‘불필요한’ 예산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과학기술계를 다루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과학기술 예산은 자판기에 동전을 넣듯 작동하는 것이 아니며, 한 번 가해진 정책적 충격은 여러 학문세대에 걸쳐 복합적이고 장기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정책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공공의 투자를 받는 영역이기에,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의 전폭적인 지지만을 당연하게 바랄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최소한 연구현장에 대한 장기적 혜안이 결여된 정책 방향에 대해서만큼은 과학기술계와 더불어 국가정책에 관여하는 다양한 전문가 집단

의 대대적인 비평과 분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전준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

한양여자대학교

당혹감, ‘MEGA’를 접했던 그 낯선 감정…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천하제일연구자대회

53 MEGA와 MEGA 한글판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

MEGA 번역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문헌의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헌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의 등장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에서는 MEGA를 MEW와는 다른 마르크스와 엥겔스 전집 정도로만 알고 있다.

당혹감 그 자체였다.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서울의 어느 대학 도서관에서 Marx Engels Gesamtausgabe(이하 MEGA)를 처음 접했을 때의 감정이다. 그전까지는 줄곧 Marx Engels Werke(이하 MEW)가 마르크스와 엥겔스 전집으로 알고 있었다. 국내의 마르크스와 엥겔스 번역본 모두 MEW를 번역 대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 낯선 감정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 무엇보다도 MEGA를 구성하고 있는 부속 자료(Apparat)가 도대체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더 나아가 MEW와 MEGA에 수록된 같은 텍스트가 왜 순서가 다른지도 전혀 알 길이 없었지만, 그런 상태로 박사학위 논문을 마무리해야만 했다. 그런 당혹감을 기억 저편 어딘가에 묻어둔 채 지낼 무렵, 강신준 교수(동아대 경제학과)가 의뢰한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와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 여전히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미완성으로 알려지고 있는 『경제학-철학 초고』가 수록된 MEGA 제1부 제2권에 대한 번역에 착수했다. 당혹감은 번역 과정에서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문헌학에 들어서다

그러나 그런 기대감이 MEGA의 압도적인 위력 앞에서 무력함으로 변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MEGA 자체’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MEGA를 번역할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이 결코 단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MEGA 자체’가 MEW와 달리, 텍스트 비판(Text-Kritik) 방법, 즉 아주 작은 실수로 보이는 문법 오류부터 각 텍스트의 연대순 및 내용적 연관성에 따라 마르크스와 엥겔스 문헌 모두를 수록하고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보다도 부속 자료의 다양한 정보를 해석하는 데 있다는 것을 MEGA 제1부 제2권의 텍스트를 전부 번역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달리 말하면 MEGA 번역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헌을 단순히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헌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

로 진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필자가 새로운 연구 분야인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헌학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필자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던 ‘MEGA 자체’의 무게감 때문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에서는 MEGA를 MEW와는 다른 마르크스와 엥겔스 전집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MEGA는 국내외에서 유일하게 ‘학술 정본’으로 인정받고 있는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이다. MEGA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저작이, 제2부는 『자본』 및 『자본』의 사전 작업물이, 제3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고받은 서신 및 양자가 제삼자와 주고받은 서신이, 제4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작성한 각종 메모·발췌록·난외 방주 등이 수록돼 있다. 그리고 MEGA 한 권은 텍스트와 부속 자료로 이뤄져 있다. 텍스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작성한 원문을 있는 그대로 연대순으로 수록하고, 부속 자료는 텍스트에 대한 집필 과정과 전승 과정, 변경사항 목록, 교정사항 목록, 그리고 해설 등으로 이뤄져 있다. 무엇보다도 MEGA의 부속 자료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문헌학 연구의 기초자료라는 점에서 텍스트와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

MEGA, 114권 출판 예정…현재 70권 출판 완료

국제 마르크스 엥겔스 재단이 주도하는 MEGA 작업은 2030년까지 독일 정부의 재정적 지원으로 총 114권(121책)을 출판하는 사업이다. 이 가운데 현재 약 70권이 출판됐다. 이와 달리, 국내 MEGA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탈냉전·탈이데올로기 시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각인된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선입견, MEGA의 학술적 가치에 대한 국내 연구자의 무지와 무관심, 양적 성과주의에 대한 편집증적인 집착에 가까운 국내 연구 상황과 이로부터 비롯된 번역 및 번역자에 대한 저평가, 고갈 위기에 처한 번역자 등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MEGA 또한 여러 차례의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겪었음에도, 여전히 진행될

국제 마르크스 엥겔스 재단이 주도하는 MEGA 작업은 2030년까지 독일 정부의 재정적 지원으로 총 114권(121책)을 출판하는 사업이다. 현재까지 약 70권이 출판됐다. 왼쪽 아래 사진은 리야나노프와 모스크바 마르크스 엥겔스 연구소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문헌 가운데 가장 논란이 많았던 ‘독일이데올로기 초고’.

수 있었던 이유는 MEGA 편집자의 문헌학적 작업물의 축적과 작업 방식이 전승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에서도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연구 성과물이 상당히 축적돼 있기는 하다. 하지만 문제는 국내의 연구 성과물이 주로 시대사적 요청에 따른 실천적인 문제에 치중돼 있을 뿐, 아직도 마르크스와 엥겔스 문헌에 관한 문헌학적 연구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MEGA 한글판, MEGA 연구의 씨앗

이런 상황에서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소장 강신준)가 주도한 MEGA 한글판은 2021년 5월 최초로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1861~63년 초고 제1분책』 (김호균 옮김, 도서출판 길)과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1861~63년 초고 제2분책』(강신준 옮김, 도서출판 길)을 출판했다. 이 두 권의 책은 MEGA 연구 시대를 국내에서 개시할 씨앗일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와 엥겔스 연구와 관련해서 “역사적 전환점”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 두 권의 책으로 향후 국내 연구자가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있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헌학적 연구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MEGA 한글판(MEGA² Ⅰ-2, Ⅰ-5, Ⅰ-10,Ⅰ-26,Ⅰ-27 번역 참여)과 MEGA 편집에 참여하고 있는 필자는 국내 최초로 MEGA² 제4부에 수록된 「밀-발췌록」에 대한 연구를 통해 「맑스의 인정개념-『경제학-철학 초고』와 MEGA² Ⅳ-2의 「밀-발췌록-」을 중심으로」(2020년)를 발행했다. 이 논문은 마르크스의 인정 개념을 현존하는 (비)대칭적인 권력 구조 내의 기만적인 상호 인정이 현존하는 질서를 존속하게 하며, 상호 호혜적인 인정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비판적 척도로 재해석했다. 그리고 마르크스와 엥겔스 문헌 가운데 가장 논란이 많았던 ‘독일이데올로기 초고들’에 대한 문헌학적인 정보를 수집해 「독일이데올로기 문헌 논쟁사와 MEGA² Ⅰ-5의 출판의 의미」(2020년)를 발행했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기존 ‘독일이데올로기 초고들’의 편집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했다.

그리고 ‘독일이데올로기 초고들’이 계간지 형태의 원고였다는 MEGA 편집자의 문헌 연구 성과를 바탕

으로,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기원을 반철학과 비철학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한 「마르크스 역사철학의 이론적 기초로서 반철학과 비철학」(2022년)을 발행했다.

마르크스에게 철학이란 무엇일까

여기서 반(反)철학이란 철학적 사유를 통해 세계를 해석한다는 것에 반대하는 의미다. 비(非)철학이란 철학적 개념을 토대 혹은 원리로 정초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전제한 후, 역사적 유물론을 ‘역사철학’으로 재해석할 수 있음을 논증했다. 요컨대 필자가 MEGA 번역을 통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헌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마르크스에게 철학이 무엇이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기존 논의처럼 마르크스는 정말로 철학을 완전히 폐기했던 것일까? 그때 폐기한 철학은 분명히 추상적인 담론을 형성하면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전공 철학이었을 텐데, 전공 철학이 아닌 철학은 엥겔스의 말처럼 세계관(Weltanschauung)에 불과한 것일까? 알튀세르 말처럼 과학일까? 이 질문은 곧 마르크스에게 철학은 과연 무슨 의미였는지로 귀결한다. 이 질문과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MEGA 한글판의 지속적인 출판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마르크스 사상 전체를 조망할 문헌에 대한 이해와 그 번역을 통해서 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좌초의 위기 겪는 MEGA 한글판

그러나 MEGA 한글판은 대장정의 출발 지점에서 이미 좌초의 위기를 겪고 있다. 올해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연구소지원 사업 중 순수학문연구형-번역 과제에 선정되지 못함으로써, 그동안 MEGA 한글판을 위해 개인적인 희생도 마다하지 않은 다양한 학문의 전공자, 개별 연구자의 문헌 해석 능력, 연구자의 번역 협력 과정, MEGA 한글판 편집자의 편집 기술과 능력 등이 사장될 위기에 처하게 됐다. MEGA가 여러 차례의 부침을 겪고 한동안 중단되었을 때처럼, MEGA 한글판도 같은 길을 가야 할 운명에 처한 것인가? 필자만 느낀 것이 아닌 그 당혹감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회진

MEGA 한글판 편집위원

전남대에서 「생산력, 시간, 개인 – 마르크스 공산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연구 -」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에서 전임연구원으로 2021년 8월까지 재직했고, 2021년 9월부터 “역사적 유물론의 뿌리로서 마르크스 역사철학 – MEGA² Ⅰ-5를 중심으로 -”라는 주제로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학술연구교수(A유형) 사업에서 지원을 받아 마르크스 역사철학을 재구성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MEGA 한글판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마르크스 역사철학의 이론적 기초로서 반철학과 비철학」, 「맑스의 인정 개념 - 「경제학-철학 초고」와 MEGA² Ⅳ-2 「밀-발췌록」을 중심으로- 」, 「자연의 유물론과 생태 민주주의 – 칼 맑스(K. Marx) 「경제학-철학 초고」와 코로나 이후 새로운 삶의 양식을 중심으로 -」(공동), 「독일이데올로기 문헌 논쟁사와 MEGA² Ⅰ-5 출판의 의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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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초인류』(웅진지식하우스 | 380쪽) 쓴 김상균 경희대 교수

“대학이 사라진다”…교수 역할 과감하게 바꿔라

▶1면에서 이어짐

『초인류』의 핵심은 인간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인공 진화기’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그 과정을 존재·마음·관계·행동의 진화로 그려냈다. 김상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인공지능을 포함해서 이제껏 인류가 만든 기술이 무엇인지, 왜 그 기술을 만들었는지, 그 기술이 인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를 얘기하고 싶었다”라며 “마음을 탐험하는 자가 기술을 통해 바라본 인류의 오늘과 내일, 그게 이 책”이라고 설명했다.

4장 행동의 진화 중 ‘대학이 사라진다’는 인상적이다. 첫째, 교수의 역할을 과감하게 바꾼 대학이 등장한다. 이제 교수는 멘토·촉진자·데이터 분석가·첨단기술 활용 전문가 역할을 한다. 둘째, 학습 주체가 다변화·세분화 하면서 생소한 강의명의 과목이 늘어날 것이다. 셋째, 전달식 강의는 절반 이상 사라지고, 온라인 플랫폼·자동화된 튜터가 하드스킬을, 교수는 소프트 스킬을 가르친다.

그렇다면 기초학문에서도 정말 그러할지 의문이다. 전통적 대학의 위상인 기초학문(순수과학, 문사철 등) 분야에서는 여전히 고전과 텍스트 해석, 기존 법칙에 대한 이해와 시행착오 등이 중요하다. “기초학문의 중요성은 여전하고, 지속하리라 예상한다. 그러나 기초학문을 배우는 과정에

“교수가 제시하는 대략의 지도를 훑어본 후에는 학생 스스로 디지털 매체를 장대하게 탐험하며 배워야 한다. 의문을 품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들, 더 다양한 이들과 만나고, 충돌해야 한다.”

서 현재 방법이 그대로 통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학생들이 기초학문 영역에서부터 자신의 관점을 갖고, 여러 의문을 품기를 바란다. 기초학문의 텍스트 자체, 기초학문을 배우는 과정, 둘 모두에 관해 의문을 품었으면 한다.”

김 교수는 “교수가 제시하는 대략의 지도를 훑어본 후에는 학생 스스로 디지털 매체를 장대하게 탐험하며 배워야 한다”라며 “의문을 품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들, 더 다양한 이들과 만나고, 충돌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비효율과 헤맴을 통해 인류가 더 높은 창의와 더 다양한 창발에 도달하리라 믿는다.”

모든 영역 수업에 필요한 철학적 접근

특히 『초인류』는 철학·철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김 교수는 본인이 철학자가 아니지만, 모든 영역의 수업에 철학적 접근이 담겨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의 말을 인용했다. “과학은 당신이 아는 것이고 철학은 당신이 모르는 것이다.” 김교수는 “기술과 과학에 관한 인류의 이해, 철학

에 관한 인류의 이해, 두 이해 사이의 간극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라며 “그 간극을 좁혀야 인공 진화 시대에 우리가 진정한 인간다움에 도달

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배움의 터전에 더 많은 철학적 고민을 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올해 봄, 벨기에에서 한 남성이 인공지능 챗봇과 수개월의 대화 끝에 인간 존재에 관한 환멸을 느끼며 자살을 택했다. 이를 기술과 인간이 공존하는 시대의 창발로 바라보고, 앞으로 넘어가도 될지에 관

한 의문이 든다.” 디지털로 모든 것이 분석되는 환원주의보다 만남과 관계의 창발이 더욱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이같이 답했다. “환원주의보다 창발적 접근이 더 중요하다고 나도 믿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비선형성,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창발의 본질이 가져올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도 지우기 어렵다. 일례로, 인공지능이 창발적으로 행동할 경우, 그 행동의 윤리적 책임을 누가 질지가 모호하다.”

중앙대에서 제어계측공학을 공부하고, 연세대에서 산업공학으로 석사, 같은 대학원에서 인지과학으로 박사를 했다. 강원대 산업공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메타버스: 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 『게임 인류』, 『브레인 투어』, 『기억 거래소』 등이 있다.

깊고, 지속적인 관찰과 사회적 논의 과정

그렇다고 견고한 틀 안에 모든 것을 담아 창발을 멈추게 한다는 뜻은 아니다. 김 교수는 창발의 필요조건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깊고, 지속적인 관찰과 그에 따른 사회적 논의 과정이다. 관

찰은 귀찮은 감시가 아니며, 사회적 논의는 불필요한 브레이크가 아니다. 관찰과 논의를 던져버리고 무작정 달기기보다는 감시와 논의를 짊어지고 지금보다 좀 더디게 나아가도 좋다. 창발은 자연의 본질이고, 예측 불가능한 초월적 가치를 만들 수 있으나, 인류가 수용하며 따라갈 수 있게 속도를 조절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 교수에게 글쓰기란 어떤 의미일까? “그저 쉬운 표현, 짧은 문장, 명확한 의도로 쓰고자 노력한다.” 그의 필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책을 쓰기 전에는 목차를 잡는 데 시간을 오래 보낸다. 메모장에 적지 않더라도 머릿속에서 뼈대가 다잡힐 정도로 오래 고민한다. 뼈대가 잡히면, 그 뒤에는 책상에 붙어서 살을 붙이면 된다.”

앞으로 김 교수는 마음을 중심으로 기술·배움·비즈니스·사회를 해석하고, 변화를 이끄는 작업을 이어가려 한다. “최근 들어, 돈과 경제를 중심으로 인간의 욕망, 심연을 다룬 방송용 예능 콘텐츠를 기획하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기술을 통해 교육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플랫폼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요컨대, 학교에 있는 연구자이지만, 논문이나 전문서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 무리한 도전, 영역의 침범으로 비칠 수 있으나, 그게 내가 꿈꾸는 삶의 여정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글로컬 오디세이

‘전후’ 낯설어진 일본, 그들이 핵에너지를 다루는 방식

서동주

서울대 일본연구소 HK교수

연구분야는 일본근현대문학과 사상이며, 최근에는 냉전기 전후일본의 문화적 상상력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전후의 탈각과 민주주의의 탈주』, 『에너지혁명과 일본인의 생활세계』 등의 공저서가 있고, 『핵과 일본인』(근간 예정), 『전후일본의 사상공간』 등을 번역했다.

일본 정부의 결정으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이 이뤄졌다. 이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여론 동향

은 방출 결정에 반대하는 입장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좀 더 다른 관점에서 이번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출 결정을 한 번 바라보고 싶다. 즉, 이번 결정을 패전 이후 ‘전후’라 불리는 시간 동안 일본의 국가가 핵에너지에 대해 견지했던 태도라는 관점에서 보려 한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필자는 ‘기시감’과 ‘낮설음’을 떠올렸다. 예를 들어 ‘기시감’은 체르노빌 원전의 폭발 사고 이후 일본 정부와 시민들이 보여줬던 모습에서 연유한다. 1986년 4월 26일, 당시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방사성 물질이 동북부 유럽까지 확산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그때까지 일본인들이 갖고 있던 ‘평화적’이며 ‘안전한’ 에너지라는 원자력에 대한 인식에 커다란 충격과 변화를 가져왔다.

일본인들은 유럽에서 수입되는 식품의 방사능 오염에 촉각을 곤두세웠고, 주부와 청소년을 중심으로 반원전 데모가 일어났다. 결국 여론에 밀려 방사선 오염 식품에 대한 기준을 높이고, 여론의 영향으로 북유럽, 터키 등에서 들어오는 수입 식품에 대한 검사 체제를 강화했다.

외부로부터 닥쳐올지 모르는 오염의 공포에 불안을 느낀다는 점에서 당시 일본 사회의 모습은 지금 한국 사회의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그래서 ‘기시감’이 들었던 것 같다. 다만 이번에는 일본과 한국의 입장이 달라졌을 뿐이다. 과거에는 방사능의 피해를 우려했던 국가(일본)가 이번에는 타국에게 불안을 안겨주는 입장이 돼 버렸다.

한편 필자가 ‘낯설음’을 느낀 것은 다음과 같은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1979년에 일본 정부는 방사성 폐기물을 해양에 투기하는 계획을 결정했다가 철회한 일이 있었다. 그

러자 태평양 섬들 쪽에서 이 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980년 8월에 개최된 태평양 수뇌부 회의에서는 일본의 해양 투기 계획 중지를 요구하는 결의가 채택됐다. 일본 정부도 회의에 전문가를 파견해 일본의 입장을 설명했지만 설득에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외국의 강한 반대 의견 앞에서 계획을 단념한다.

약 40년 전에 일본 정부는 자국 내의 소위 ‘위험 물질’을 외부로 내보내는 결정을 철회했다. 과정은 지금과 비슷했지만 결말이 달랐다. 지금의 정부는 인접 국가 국민들의 강한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출을 실행에 옮겼다. 현재의 일본 정부는 자국 내의 리스크를 외부화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유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이것이 ‘낯설음’의 원인이었다.

필자가 ‘기시감’과 ‘낯설음’으로 표현했지만, 이 두 사건은 전후 일본을 지탱하고 있는 어떤 심성에 공통적으로 기반하고 있다. 그 심성이란, 일본은 외부의 위험에 연루되고 싶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내부의 위험을 외부화시키는 일도 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최근의 광경은 많이 달라졌다. 내부 리스크를 외부화하지 않는다는 관행은 이번 후쿠시마 오염수 해방 방출로 깨졌고, 유력 보수정치인들은 미국과의 ‘핵 공유’를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익숙한’ 일본은 이제 과거의 것이 돼 버린 것 같다.

과거 가토 노리히로라는 평론가는 사죄와 망언을 반복하는 관료의 모습을 두고 일본 정치는 인격분열에 빠져있다고 말한 바 있지만, 최근에는 ‘망언’은 들려오지만 그것을 이유로 누군가가 ‘사퇴’했다는 소식은 듣기 어렵다. 여기서 일본 정치가 ‘우경화’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제 역사문제뿐만 아니라 리스크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일본 정치는 소위 ‘전후의 가치’와 결별을 고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걸로 ‘전후’의 이야기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평화주의를 표방한 ‘전후’의 가치는 정작 일본 정부의 손에 의해 훼손되지만, 동아시아 역내의 점증하는 갈등과 위기는 새로운 ‘전후’의 상상력을 촉구한다.

일본의 내셔널리즘에 의해 손상된 ‘전후’를 트랜스 내셔널한 가치로 전환시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사상적 자원으로 되살릴 방법은 없을까? 나는 후쿠시마 오염수가 일본의 영해 밖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떠올리며 ‘전후’의 탈 국가적 갱생을 생각해 본다.

김포대학교

들뢰즈의 정치-사회철학

신지영 지음 | 그린비 | 336쪽

이 책은 들뢰즈의 정치철학에 대해 기존에 다뤄졌던 주요 문제를 돌아봄과 동시에, 그동안 등한시됐던 ‘흄’에 대한 들뢰즈의 논의를 검토함으로써 그의 ‘민중’ 개념과 ‘국가’, ‘폭력’에 대한 사상을 되짚는다. 즉 들뢰즈 정치철학의 고전적 의미와 현대적 의미를 망라하며, 이를 지금 우리 일상생활의 장면을 통해 긴밀하게 설명하고 있다.

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

최태현 지음 | 창비 | 416쪽

우리 사회에 재해, 범죄, 사고, 질병, 가난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고통받는 약자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작고 힘이 없다. 더군다나 이런 문제를 우리의 제도로는 해결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제도가 그런 비극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 절망스럽기도 하다. 희망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아주 짧은 소련사

실라 피츠패트릭 지음 | 안종희 옮김 | 롤러코스터 | 308쪽

사회주의 혁명, 제2차 세계대전, 냉전으로부터 현재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련사를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소비에트연방의 탄생, 레닌의 통치와 후계투쟁, 스탈린주의, 전쟁, 집단지도체제와 흐루쇼프 시대, 브레즈네프 시대,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연방의 몰락, 푸틴까지, 압축한 소련의 아주 짧은 역사가 바로 여기서 펼쳐진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막스 베버 지음 | 박성수 옮김 | 문예출판사 | 376쪽

이 책은 자본주의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서 근대 사회과학에서 가장 유명하고 논쟁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논쟁이 된 베버의 논지를 이해하고 그의 지적 탐구를 따라갈 수 있도록 『종교사회학 논문집』에 실은 베버의 서문과 앤서니 기든스의 해설을 수록했다.

본 인 블랙니스

하워드 W. 프렌 지음 | 최재인 옮김 | 책과함께 | 640쪽

이 책은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을 중심에 두고, 15세기 포르투갈과 아프리카가 상업적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한 1471년을 기점으로 근대 세계 태동에 관한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간다. 특히 핵심 상품인 황금, 설탕, 면화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신세계’로 팔려간 수많은 노예의 이야기를 재구성해 냉혹한 역사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비평의 숙명

홍정선 지음 | 정과리 편집 | 문학과지성사 | 434쪽

탁월한 통찰력과 인문학적인 시선을 바탕으로 일평생 문학적 실천에 주력한 문학평론가 홍정선(1953~2022)의 1주기를 맞아 유고비평집 이 책이 출간됐다. 홍정선 선생이 생전에 준비하던 비평집 원고와 사후에 새로 발견된 글들을 모아 엮은 이 책은 고인의 작업 방식을 고려해 이본(異本)이 많은 경우 가장 나중에 수정한 원고를 최종본으로 삼았다.

민주주의 역사, 형식, 이론

한스 포어랜더 지음 | 나종석 옮김 | 북캠퍼스 | 208쪽

이 책은 고대 민주주의가 어떻게 발생했고 오늘날까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민주주의의 형태와 이론을 정리한 결과물이다. 특히 민주주의가 역사 속에서 맞은 변곡점들에 주목한다. 각 시대적 상황과 사상가를 두루 살피면서 민주주의가 걸어온 여정을 따라가고 있다. 이 책은 민주주의에 대한 기초에서 부터 더 나아가 깊이 있는 이해를 도와줄 디딤돌이 될 것이다.

미국 대통령의 권력 행사

로버트 게이츠 지음 | 박동철 옮김 | 한울아카데미 | 480쪽

이 책의 저자는 아버지 부시 정부에서 CIA 부장을, 아들 부시와 오바마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내는 등 미국 국제안보 분야의 최고위급 거물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각각의 의사 결정을 어떻게 왜 내렸는지, 누가 대통령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주었는지, 대통령들의 독특한 의사결정 스타일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저자의 목격담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권력에의 의지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 이진우 옮김 | 휴머니스트 | 912쪽

최고의 니체 전문가인 저자가 논란의 한복판에 있는 텍스트를 번역해 『권력에의 의지』를 둘러싼 수많은 의문을 살펴본다. 니체의 사유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유려한 번역, 내용 이해를 돕는 충실한 해설과 역주 등은 ‘권력에의 의지’를 통해 니체가 궁극적으로 고민한 삶과 철학의 문제로 독자를 이끈다.

저자가 말하다_『근대 일본인의 서울·평양·부산 관광』 정치영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506쪽

일본인은 왜 한국관광에 나섰나

일제식민지 정부가 만든 한국의 근대관광 소비

일본이 펴낸 기행문 80편·관광안내서 40종 분석

“과거를 대상으로 하는 지리학”인 역사지리학을 공부하는 필자는 20여 년 전부터 여행의 결과물인 기행문에 관심을 가져왔다.

문학작품이기도 한 기행문은 작가의 여행 과정과 여행지의 지역 상황을 상세하게 담고 있는 사실적인 기록으로 과거의 경관이나 지리적 상황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필자는 역사지리학 연구의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옛사람의 기행문을 읽다가 점차 기행문이 전해주는 과거의 여행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산을 여행하고 남긴 기행문인 유산기(遊山記)를 분석해 당시 산수 유람의 이모저모를 『사대부, 산수 유람을 떠나다』(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4)으로 복원했다.

조선시대에 이어지는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이 책은 그 후속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근대는 교통수단의 발달 등으로 인해, 때로 힘들고 위험한 ‘여행’이 즐겁고 편안한 ‘관광’으로 바뀐 시기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근대관광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 만들어갔으며, 그 주도 세력은 식민지 정부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총독부를 포함한 일제는 정치적 목적과 경제적 이익을 실현하는 주요 수단으로 관광을 이용했다. 일제의 관광객 유치를 위한 다각도의 노력과 일본 국내의 사회적 분위기에 추동된 일본인들은 한국

관광의 최대 소비자가 됐다. 이 책은 일제가 조성하고, 일본인이 소비한 식민지 조선 관광의 다양한 면모를 당시의 기행문·관광안내서·지도·사진 등을 분석해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책에서 자료로 활용한 기행문은 일본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된 80여 편이며, 조선총독부·남만주철도주식회사·일본여행 협회 등에서 제작한 관광안내서 40여 종, 사진첩 20여 종도 주요 자료로 이용했다. 이러한 자료에서 추출한 각종 지도와 사진, 그리고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과 소장하고 있던 그림엽서를 포함해 총 90여 개의 도판을 이 책에 실었다.

사실 한국의 근대관광에 관한 연구는 역사학·문학·관광학 등의 분야에서 적지 않게 이루어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관광의 양면, 즉 생산자와 소비자의 측면에서의 분석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생산자의 관점에서 관광 공간의 형성 과정과 성격, 시계열적 변화를 고찰하고, 소비자의 관점에서 관광객의 관광행태와 여행 과정을 복원했다.

기존의 연구가 대부분 생산자나 소비자, 어느 한쪽에서의 접근을 시도한 것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또한 그동안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일본인의 관광 동기와 준비 과정, 그들이 이용한 교통수단, 숙박 시설과 식사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복원한 것에서 이 책의 작은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 근대 관광 공간 가운데 서울·평양·부산 등 3개의 도시에 주목한 이유는 단순하다.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세 도시는 관광지로서 각기 나름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식민지의 수도였던 서울, 즉 경성은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발전시킨 제국 일본의 정당성을 상징하는 관광 공간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평양은 조선의 전통문화가 잘 보전된 관광 공간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평양이 임진왜란·청일전쟁의 전적지여서 일본제국의 확대 과정을 기념할 수 있는 관광지라는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한편 일본인의 식민지 조선 관광의 출발점이자 종착점 역할을 했던 부산은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관광지가 특히 많았으며, 시간에 따라 변화가 컸다.

목표는 거창했지만, 이 책은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닌다. 우선 당시의 관광 공간 가운데 경성·평양·부산 등 세 도시를 주로 다루고 있어 지역적 제한이 있으며, 일본의 각종 기관과 일본인이 만든 자료를 위주로 분석해 당시 한국과 한국인의 관점과 상황을 제대로 담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한 오류의 가능성도 있다. 이 시기 한국인의 해외 관광을 비롯해 앞으로 후속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부분도 많다. 필자와 비슷한 관심과 문제의식을 지닌 연구자들이 함께 노력하여 근대관광의 전모

가 밝혀지길 기대한다.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서평_『기후변화, 그게 좀 심각합니다: 지구인을 위한 안내서』 | 빌 맥과이어 지음 | 이민희 옮김 | 208쪽

기후붕괴와 기후안정, 그 갈림길에서

지구가열화·기후붕괴의 시대…향후 10년 가장 중요

기후변화에 결정적으로 영향 미친 이산화탄소 농도

기후변화는 이제 더 이상 추상적인 환경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생존

을 위협하는 현실적인 위험문제이다. 이 책은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기후 위기의 현실을 실증적으로 제시하면서, 지금 당장 탄소배출을 감소시키는 행동을 즉각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우선 ‘지구온난화’는 너무 안일한 단어라고 지적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지구가열화(earth heating)’, ‘기후 붕괴(climate breakdown)’와 같은 단어를 써야 한다고 역설한다. 앞으로 10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사실 이 책은 ‘기후변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기후변화에서 비롯되는 폭염·폭우·홍수·산불 등 이상 기상현상은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며, 이로 인해 식량부족·질병창궐·난민발생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실제로 올해 한국에서는 오랜 가뭄으로 산불이 빈번하게 발생했으며, 6월의 한 낮 기온은 35도까지 치솟았다. 이에 앞서 2003년 유럽 전역에서는 수일간 이어진 폭염으로 7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0년에는 러시아·북미·동유럽·중동·중국 등 4~6월 기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1년 6월 20일, 캐나다 남부 작은 마을 리튼의 기온은 섭씨 49.5도를 기록했다. 타는 듯한 더위가 일으킨 산불로 이 마을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저자는 이러한 이상 기상현상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기후변화를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에 대해 논의하기보다, ‘기상이변이 잦아진 온실 세상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 ‘기후변화를 더 나빠지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논의해야 한다.

저자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보고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3) 자료 등을 바탕으로 기후변화 피해와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그건 바로 산업화 이전(1850∼1900)과 비교했을 때,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 폭을 1.5도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기후를 유지시킬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1.5도가 되려면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45%가량 줄여야 한다. 그런데 현재 추세로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은 14%가량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안에 ‘1.5도 이하 가드레일’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지금대로라면 20년 안에 평균기온은 2도 이상 상승할 것이다. 2021년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2도 초과는 막을 수 없으며, 아마도 2.3도까지 오를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IPCC 6차 보고서의 초고배출 시나리오에 따르면, 앞으로 지구 평균기온은 20년 안에 2도 상승을 넘어설 것이며, 2081∼2100에는 3.6∼4.4도가량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기온이 오른 지구의 기후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저자가 지구 기후의 변천사를 설명하며, 지구 기후변화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요인은 이산화탄소 농도였다고 강조한 것이다. 지구의 기후 패턴을 고려하면 지금쯤이면 이산화탄소 농도는 250ppm 이하로 떨어져야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이다. 2021년 이산화탄소 농도는 420ppm에 이르고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대대적으로 줄이지 않는다면 2070년대 혹은 더 일찍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560ppm(이 수치는 산업화시대 이전의 약 두 배)에 이르게 될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나빠질까. 이 물음에 대해 저자는 아무도 모른다고 답한다. 기후·자연·사회·경제 사이의 상호작용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기후계의 관성, 양의 되먹임 현상(피드백) 등으로 인해 기후변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티핑포인트를 훨씬 넘어섰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불안감이 엄습한다고 할지라도 즉각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탄소배출량을 얼마나 크고 빠르게 줄이느냐가 관건이다. 앞으로 10년간 세계 지도자들이 어떠한 노력을 하는가에 따라 2100년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2100년 영국 런던의 모습을 두 가지로 제시한다. 기후붕괴를 막지 못해 기상이변에 시달리고 질병이 창궐하고 판자촌이 있는 암울한 런던, 최대한의 노력으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평온한 런던. 우리가 어떠한 미래를 맞을지는 지금 우리가 행동하는 것에 달려있다.

임인재 기자·언론학 박사 mimohhh@naver.com

저자가 말하다_『미학적 삶을 위한 언어감수성 수업』 신동일 지음 | 필로소픽 | 328쪽

‘분열·대립’의 텍스트 넘는 비판적 ‘언어·기호’로

언어·기호 그리고 자기배려·변형의 미학적 주체성

우리를 곤궁에 빠뜨리는 감정과 상식의 의미체계

이 책을 구상한 토대는 구조주의 언어학과 기호학이었다. 구조적 질서로 우리의 내면이나 사회질서의 원리를 찾으려는 구조주의 지식 전통은 언어를 매개로 세상을 바라보는 ‘언어적 전환’ 운동과 연결돼있다. 우리의 언어 사용이 구조화된 의미체계로부터 유도된 것이란 점을 숙지하게 되면 인본주의나 유물주의 지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해 볼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소재로 소쉬르나 퍼스로부터 시작된 기호학 이론을 소개했다. 표정·동작·옷차림·헤어스타일·식사 메뉴·건축공간 등에 드러나는 의미 체계는 삶의 방식·문화현상·관행이 된 사회질서와도 밀접한 상관성이 있다. 기호와 의미는 사회정치적 속성으로 해석되고 이데올로기적 위치성으로부터 설명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책으로부터 의미 생성의 조건과 과정,또는 기호적 실천과 미학적 실존에 비중을 두고 싶었다.

일상적으로 선택되고 배치되는 텍스트는 담론을 매개로 이데올로기와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그건 필자가 지난해에 발간한 『담론의 이해』를 통해 충분히 부연한 논점이다. 세상은 텍스트로부터 구성되지만 이데올로기적 질서로부터도 제약된다. 텍스트와 이데올로기 사이를 매개하는 사회적 구성물이 담론인 셈이다. 그런 담론의 변증법적 속성을 가르쳐보면 수업이나

워크숍 참여자는 대개 이데올로기 효과와 거시적 층위에 대해 잘 공감하는 편이다. 그에 반해 언어와 기호로부터 생성되는 의미 구성의 미시적 실천에 관해서는 개방적 태도가 보류된다.

‘고착된 사회질서로부터 내가 뭘 바꿀 수 있을까’, ‘나만의 텍스트를 바꾼다고 뭐가 달라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거꾸로 ‘통일이 되거나 대통령이 바뀌면 내 인생이 얼마나 달라질까?’ 법이 바뀌고 좋은 제도가 집행된다고 비루한 삶의 태도가 쉽게 달라지던가? 이 책에서 필자는 새롭게 선택한 언어와 기호로부터 우리 존재가 다르게 의례화될 수 있고, 그렇게 구성된 미학적 실존이 우리를 둘러싼 권력 관계마저 틈을 낼 수 있다고 전제했다.

비판적 언어감수성으로 자기배려와 변형의 미학적 주체성을 회복하자고 하면 한가롭고 유희적인 논점으로 폄하된다. 그렇지만 칸트 철학만 인용해보면 ‘이성’은 앎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실천과 희망을 위한 이성으로도 숙고될 수 있다. 우리의 삶에 미학적인 형식체계를 부여할 수 있는 언어감수성이 비판적 실존을 만들수도 있음에도 언어와 기호에 관한 교육의 관행은 ‘앎’의 문제에만 자꾸 골몰한다.

사방에 사회공학적 혁신안이 넘친다. 4차 산업혁명이라며 AI 디지털 콘텐츠도 넘친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다수는 온갖 사회적 질병으로 고통을 호소한다.

팬데믹이 지났지만 여전한 권위주의 통치와 신종 폭력으로 우리는 배제된다. ‘묻지마 폭력’이 미디어를 가득 채우고, 해법으로 ‘법안 개정’·‘CCTV 설치’·‘경찰 인력 증원’이 언급된다. 누군가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시스템 말고는 방법이 없는가? 물질적이고 공학적인, 또는 이항대립의 갈등론이나 배타주의 논술로 개별적이고 존귀한 삶의 가치가 과연 복원될 수 있을까?

결국 르네상스(문화부흥 운동)가 다시 시작돼야 한다. 공학적 질서가 지배력을 갖고 분열과 대립의 텍스트가 세상을 채울 때 어디선가 무력감을 이겨내면서 저항하는 주체성을 상상해야 한다. 언어와 기호를 매개로 미학적·윤리적·문화적인 전환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지배적인 시대 풍조에 계속 굴복될 수밖에 없다.

비판적 언어감수성을 학습한다면 그것

만큼이라도 새로운 삶이 고안될 수 있다. 필자는 고통의 감정을 모두 도려낸 유토피아적 내면과 사회질서를 섣불리 제안하기보다 우리를 곤궁에 빠뜨리는 감정과 상식의 의미 체계가 어디서 오는지 더 가르치고 싶다.

언어와 기호에 민감한 미학적 감수성이 보다 넓은 차원의 사회정치적 기획과 연결될 수 있다는 글도 쓰고 싶다. ‘프루스트와 기호’(들뢰즈), ‘주체의 해석학’(푸코)등의 문헌을 참고하면서 감수성과 통치성, 텍스트의 배치와 사회정치적 구조의 관계

성을 미학적 존재론으로 탐구하면서 말이다.

신동일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책으로 보는 세상_『장애시민 불복종』 변재원 지음 | 창비 | 308쪽

변화는 성가신 감각 깨울 때 시작된다

장애인의 출근길 시위와 이동권 정책

‘불화’는 민주주의 번영을 견인하는 힘

“18일 오전 8시. 서울 중구 지하철 시청역이 고성으로 가득 찼다. 경찰은 방패를 들고 무릎까지 보호장구를 낀 채 ‘막아, 막아’를 외치며 지하철 탑승 시위에 나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을 저지했다. … 몸싸움도 벌어졌고 … 전장연 발언과 지하철 열차 지연 안내방송, 경찰 경고 방송 등이 겹치며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한 언론사의 전장연 탑승 시위를 보도한 내용이다. 이어서 “출근길 강 모씨(36)는 ‘이제 (철도) 파업이 끝난다고 괜찮다고 해서 지하철을 타러 왔는데 연달아 시위하니까 불편하다’라며 ‘시위는 통근 시간만 피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라는 내용을 덧붙이고 있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시위의 형태는 다양하다. 침묵·비폭력 같은 것도 있고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처럼 과격한 것도 있다. 전장연은 과격한 방식을 선택했다.

지체장애인이자 인권활동가 변재원은 『장애시민 불복종』에서 전장연의 시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타려고 하는 순간부터 이동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다. 장애인들이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려고 해서 비장애인 시민들이 피해를 호소하거나 답답함을 느끼는 순간부터 이동권 정책에 대한 법과 예산이 이

야기되기 시작한다.” 일반 시민들이 움직여야 정치권이 움직이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관심을 호소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시민들이 전장연의 시위를 감내하고 관심을 가져준 덕분에 서울 지하철역의 90%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서울 시내 저상버스를 55% 수준까지 늘리는 성과를 이루었다.

이렇게 늘어난 엘리베이터와 저상버스는 누가 더 많이 이용할까?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 나이 많은 어르신,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외국인 관광객, 짐을 나르는 택배 노동자들이다. 전장연은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약자를 위한 역사적인 발전의 입장에서는 결국 이기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전장연 시위는 장애 때문에 집 밖으로 나설 수도, 학교에 갈 수도, 직장을 구할 수도 없는 이들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자신의 몸 자체가 장애인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유일한 근거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몸을 더 아끼고 사랑하게 한다.

변화는 성가신 감각을 일깨울 때 시작된다. 프랑스 철학자 랑시에르는 ‘불화’가 정치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분배를 목표로 한 합의’는 정치(politics)가 아니라 치안(police)을 위한 활동이라고 주장했다. 민주

주의 정치는 그저 자원을 나눠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간 존재를 부정당했던 ‘몫 없는 자’들이 자기 몫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들이 자기 몫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화’는 민주주의의 위협 요소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번영을 견인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선진적인 장애인 정책은 민주주의의 신이 내려준 선물이 아니다. 국가가 주도해 만든 결과도 아니다. 그저 불화를 두려워하지 않은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만들어낸 일상적 민주주의의 결과물일 뿐이다. 우리가 아직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믿는 것은 사회의 불평등을 최소화하고 자유와 평등의 번영을 꿈꿀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라는 최소한의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권력자가 소수자를 무시하는 사회적 현상은 선거민주주의라는 한계 속에서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수자가 차별받는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조건의 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사자와 시민들의 ‘참여’뿐이다.

시민이 약자의 말을 더 많이 듣고 자기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보다 적극적인 민주주의를 꿈꿔야 한다. “밀실 속에서 은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서 성가신 감각을 일깨울 때” 사회가 정직하

게, 정의롭게 변화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김정규

한국대학출판협회 사무국장

정당과 정당 체계

조반니 사르토리 지음 | 정헌주 옮김 | 후마니타스 | 584쪽

정당이란 무엇인가, 파벌과 동의어로 이해됐던 정당은 어떻게 긍정적인 의미를 갖게 됐는가, 정당 체계는 어떻게 분류할 수 있으며 그 특징은 무엇인가, 정당 간 경쟁의 의미는 무엇인가 등등, 우리가 현재 정당과 정당 체계에 대해 논의할 때 필요한 이론적 기반의 대부분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어떻게 효과적으로 그 사다리를 오르내렸는지를 잘 보여준다.

북한의 핵패권

이춘근 지음 | 인문공간 | 356쪽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사회주의 핵기술 개발 경로가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과 다르고, 북한이 이를 추종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북한 핵의 직접적인 당사자이면서도, 북한 핵에 대한 해석의 대부분을 미국 등 서구 전문가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외국의 견해를 무조건 추종하면, 우리의 실익을 놓치거나 판단을 그르치기 쉽다.

양손잡이 경제

최남수 지음 | 새빛 | 224쪽

저자는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을 짚고 이에 대한 처방과 제언을 담은 이 책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 경제가 성장 부진과 양극화 심화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경직된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성장을 중시하는 ‘오른손’과 분배를 개선하는 ‘왼손’을 동시에 조화롭게 쓰는, 실용적인 ‘양손잡이 경제’를 주장한다.

계몽의 변증법 함께 읽기

한상원 지음 | 에디스코 | 288쪽

『계몽의 변증법』은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은 프랑크푸르트 사회조사연구소의 사상가들,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학파’ 내지는 ‘비판이론’이라고 불린 지식인 그룹의 1세대를 대표하는 저작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계몽의 변증법』이 지닌 오늘날의 의미를 추적하고, 우리 시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틀로 활용하고자 제안한다.

제인 베넷

문규민 지음 | 컴북스캠퍼스 | 150쪽

제인 베넷의 생기적 유물론은 물질의 행위성을 포착한다. 물질은 수동적이고 무력하기는커녕 특정한 배치 속에서 자체적 역량을 발휘하는 행위자로, 오히려 언제나 다소간 놀랍게 작용한다. 즉, 물질은 고유하게 생동한다. 이 책은 생기적 유물론의 철학적·정치적 기획을 열 가지 키워드로 자세히 살핀다.

실전 사례로 배우는 챗GPT 활용법

김영안 외 2인 지음 | 에이원북스 | 304쪽

챗GPT 는 이미 우리 곁에 깊숙이 파고 들어와 있다. 챗GPT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까지도 직접 사용해 봤다고 할 정도로 우리 생활 영역에도 깊숙이 들어온 것이다. 이제는 일반인들도 챗GPT를 가까이해 일상생활에 도움을 받을 때가 된 것이다. 앞으로는 챗GPT 잘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양극화를 만들 것이다.

기억의 땅에 바람이 분다

정현 지음 | 위즈덤웨이브 | 290쪽

우리는 과거에 얽매여 산다. 풀어서 말하자면 ‘과거의 기억’에 ‘현재’를 묶어놓고 산다. 1초 전의 일도 이미 과거인데, 왜 오래된 과거의 기억을 붙잡고 현재에 있는 ‘나’를 괴롭히는가?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하며 불안을 만들고, 그 불안을 만든 ‘나’는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과거와 현재, 미래는 무엇이며, ‘나’는 어떤 존재인가?

연결된 위기

백승욱 지음 | 생각의힘 | 416쪽

이 책은 우리가 처한 제약이 무엇인지 명확히 인식하려는 두터운 노력의 산물이다. 그와 동시에 더 많은 정보와 깊이 있는 이해로 무장한다면 상이한 역사 경로를 찾아낼 수 있을지에 관한 사고 실험이기도 하다. 책에 가득한 논의는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세계질서 논의에 상상력을 제공한다.

분야별 신간

문학-에세이

강남은 거대한 정신 병동이다 | 김정일 지음 | 지식공작소 | 260쪽

날마다, 영화 | 류동현 지음 | 싱긋 | 208쪽

냉이가 아빠에게 | 강덕응 지음 | 이야기나무 | 212쪽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1, 2 | 김재훈 글·그림 | 한빛비즈 | 600쪽

어느 날 은유가 찾아왔다 | 박이강 지음 | 교유서가 | 296쪽

이광수 초기 문장집 3 | 최주한·하타노 세츠코 편집 | 소명출판 | 548쪽

점쟁이 | 김성태 지음 | 새움 | 240쪽

함께 내딛는 찬찬한 걸음 | 류수연 지음 | 소명출판 | 453쪽

50, 이제 결혼합니다 | 백지성 지음 | 오르골 | 228쪽

인문

AI 윤리에 대한 모든 것 | 마크 코켈버그 지음 | 신상규·석기용 옮김 | 아카넷 |

264쪽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 김범준 지음 | 빅피시 | 264쪽

차별어의 발견 | 김미형 지음 | 사람in | 228쪽

취할 공자 버릴 공자 | 허경회 지음 | 보고사 | 352쪽

20세기 철학 입문 | 토마스 렌취 지음 | 이원석 옮김 | 북캠퍼스 | 206쪽

정기 간행물

녹색평론 2023 가을 183 | 녹색평론사 | 256쪽

문학과 사회 143 2023 가을 | 문학과 지성사 | 343쪽

문화과학 (계간) : 115호 가을 [2023년] 장애와 역량 | 정정훈 외 17인 지음 | 문화과학사 | 317쪽

문학인 2023 가을 통권 11호 | 소명출판 | 425쪽

역사비평 2023 가을 144 | 역사비평사 | 438쪽

장내 미생물이 만든 물질로 간을 치료한다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난치성 치료’ 어디까지 왔나

② 비알콜성 간질환

차세대 신성장 동력으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이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염증성 장질환, 뇌혈관 등 난치성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더욱 그렇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미 2건에 대해 상용화를 승인하면서 바이오산업에서의 혁신적 장이 열렸다. <교수신문>은 각 질환별 난치성 치료 현황을 국내 최고 전문가로부터 들어 보고 치료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두 번째는 비알콜성 간질환에 대해 석기태 한림대 소화기연구소 교수(소화기내과)와 양영 숙명여대 교수(생명시스템학부·여성건강연구원 원장)의 최신 연구 현황을 소개한다.

연재 순서

① 염증성 장질환

② 비알콜성 간질환

③ 알레르기

④ 우울·불안·스트레스

⑤ 심바이오틱 융복합의료소재

⑥ 장기 이식-간

⑦ 화농성 한선염 및 중증 여드름

⑧ UTI-요로 감염

⑨ 항암

⑩ 뇌혈관 질환

⑪ 구강·심혈관

⑫ 과민성대장증후군

⑬ 자폐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지방간의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다양한 소화기질환을 연구해 지방간·간경화 등 간질환의 진단과 근본적인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하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한림대 소화기연구소에서 마이크로바이옴 국가 과제를 진행 중이다. 최근에 소화기연구소가 이공분야 대학중점연구소로 선정돼 간질환 진단과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방간은 우리나라에서 증가하는 질환으로 비만·당뇨·대사증후군과 연관돼 있다. 특히 간염·간경변·간암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지방간 치료는 식이요법과 운동 외에는 인정받은 치료제가 없어 의료-

“이번 연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간질환 진단이 쉽고 빨라지며, 마이크로바이옴을 통해 근본적인 간질환 치료제의 개발과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회-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질환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미생물을 의미하는 ‘마이크로(Microbe)’와 생태계를 의미하는 ‘바이오(Biome)’를 합친 용어로 장내 미생물을 통틀어 일컫는다.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은 여러 가지 질병에 대한 위험성 증가와 상관관계가 높다는 최신 연구 결과가 보고되면서 마이크로바이옴은 연구 주제로 주목받고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을 통해 우리 몸에 있는 균이 생성되는 원리와 질병 발생 과정 등을 분석할 수 있어 최근에는 신약개발과 불치병 치료법 연구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미생물의 다양성·염증 반응이 간 질환 유발

학계는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성화하는 소재 발굴에 집중해왔다. 일반적으로 장에는 2조 개가 넘는 미생물이 존재하며, 장내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물질은 곧바로 간으로 흡수되기 때문에 장과 간의 연관성은 매우 높다. 따라서 장내 좋은 미생물을 활성화하고, 이들이 내뿜는 물질이 안전하게 간에 흡수되면 질병치료까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주목받고 있는 ‘장-간 축 이론’은 장내 미생물이 인슐린 저항성·지방간·염증 반응·간섬유화에 관여해 주요 간 질환의 요소로 작용한다는 가설에 기초한다. 실제로 지방간 환자의 장내 미생물을 분석한 결과 미생물의 다양성 변화와 염증 반응이 간 질환을 유발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면

바이오산업 기술개발사업 개요

사업명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의약품 제품화

과제명 비알콜성 간질환 극복을 위한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장-간 축 조절 바이오신소재 발굴 및 상용화 기술 개발

개요

주요 대사질환 중의 하나인 비알콜성 지방간질환을 타겟으로 진단·예방·치료의 통합적 접근을 통한

FMT(대변이식술) 기반 또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의 새로운 바이오신소재 발굴 및 상용화 기술 개발

공동연구·용역

서울대(이도엽), 연세의대(이혜원), 숙명여대(양영) 가천대(박태식), 종근당 바이오(김경환),

비티시너지(윤기나), 헥토헬스케어(배재웅)

연구기간 2022년 4월 1일 ∼ 2025년 12월 31일(3년 9개월)

기대효과

o 임상 코호트 기반의 메타 데이터 확보를 통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후보 물질 도출

o 안전성이 확보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후보 물질 발굴

o 건강인 유래 균주 분리를 통한 신규 생물자원 확보

o 치료적 탐색·확증 임상시험 확장을 통한 바이오신소재 발굴 및 상용화 기술개발

o 건강인 유래 균주 분리를 통한 신규 생물자원 확보

o 치료적 탐색·확증 임상시험으로의 확장

석기태 한림대 소화기연구소 교수(소화기내과)는 비알콜성 간질환 치료를 위해 장내 미생물에 기반 한 치료제 개발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진=석기태

서 미생물을 간 치료에 활용하기 위한 임상이 시도되고 있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치료에서 주목할 치료법은 ‘대변이식술(FMT: 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이다. 단기 사망률이 높은 중증 알콜성 간염 환자에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이식해 치료하는 대변이식술을 시행한 결과, 타 치료제 대비 더 높은 생존율이 관찰된 연구를 보더라도 간질환에서의 대변이식술의 효과를 기대해 볼만하다. 장-간 축 계열에는 보빈 코로스트럼(IMM-124E)·아연·항생제·프로바이오틱스(락토바실러스)·대변이식술 관련 임상이 진행되고 있다. 보빈 코로스트럼은 임상 2상, 락토바실러스를 활용한 프로바이오틱스 임상은 2상이 진행되는 등 임상 상황이 고도화되고 있다. 대변이식술을 스테로이드·펜톡시필린·영양요법과 비교한 임상에선 대변이식술만 30일째 생존율이 70~80%를 기록해 가장 앞섰다. 스테로이드가 60%대를 기록했을 뿐 영양요법은 50%, 펜톡시필린은 40% 언저리에 머물렀다.

후보 치료물질 도출 후 진단기술 개발 중

지방간 질환에서의 연구에서 현재 소화기연구소의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후보 치료물질 도출을 마쳤고 진단기술 개발 단계에 있다. 현재 대변이식술을 이용한 지방간질환 치료제 개발연구를 위해 공동연구팀을 구성했다. 서울대(이도엽 교수), 연세대 의대(이혜원 교수), 숙명여대(양영) 가천대(박태식 교수), 종근당바이오, 비티시너지, 헥토헬스케어가 참여하고 있다. 공동연구를 통해 국가과제를 수행 중이라 가시적인 연구 결과가 도출될 것이다. 이는 ‘비알콜성 간질환 극복을 위한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장-간 축 조절 바이오신소재 발굴 및 상용화 기술 개발’이란 주제로 산업자원통상부 연구로 진행되고 있다. 소화기연구소는 이번 연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간 질환 진단이 쉽고 빨라지며, 마이크로바이옴을 통해 근본적인 간질환 치료제의 개발과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양한 지방간 관련 치료제 개발이 진행 중이지만 현재 대변이식술이 유망한 것으로 평가된다. 인간의 장내 미생물과 간과의 상호 연관성은 향후 간질환 치료제 개발에 새 잠재력과 비전을 제시한다. 필자의 연구실은 간질환 치료제 개발을 위해 꺼지지 않는 열정과 노력으로 연구에 빠져있다. 훗날 이곳에서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으로 밤을 세우고 있다.

석기태 한림대 소화기연구소 교수(소화기내과)

‘유익 균’ 치료제 개발로 만성 지방간 잡는다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난치성 치료’ 어디까지 왔나

② 비알콜성 간질환

만성 지방간 예방 혹은 치료효과를 갖는 유익 균을 선별하고, 생물학적 작용기전을 규명해 마이크로바이옴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도 있다. 만성 지방간은 현재까지 마땅한 표적 치료제가 부재해 환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것이 연구결과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지방간은 대다수의 국민에게 꽤 친숙한 질병이다. 특히 과체중·고혈압·당뇨와 같은 대사질환을 이미 앓고 있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평소에 잦은 과음을 하는 사람이라면 건강검진 항목에 간 초음파 항목은 꼭 포함시키곤 한다. 지방간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염려만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대한당뇨병학회 지방간연구회의 최근 보고에 따르면 20세 이상 대한민국 성인의 지방간 유병률은 39.3%로, 10년 동안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며 지방간은 명실상부한 ‘국민 만성질병’으로 자리매김했다.

간에 축적된 중성지방의 무게가 전체 간 무게의 5% 이상이 되면 지방간으로 분류한다. 5%라고 얕보면 안 된다. ‘인체의 화학공장’으로 불리는 간은 다양한 종류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과학기술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정도로 경이롭고 복잡한 대사기능을 수행

하는 쉴 틈이 없는 장기이다. 간의 유기적인 시스템은 적재적소에 필요한 물질을 합성·공급하는 동시에 알코올과 같은 독성물질은 분해해 우리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작용을 한다.

간에 지방이 5% 이상을 차지하게 되면 지방에서 분비되는 여러 가지 염증성 물질이 공장 가동을 방해하기 시작하며 질병을 일으킨다. 단, 간도 다이어트가 가능하다는 점이 희망적이다. 경미한 지방간은 생활습관 변화나 약물 투여를 통해 건강한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간이 ‘침묵의 장기’인 만큼, 지방간으로 되어도 통증과 같은 자각증상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방간이 지방 간염을 거쳐, 결국 간경화증(간병변, 간섬유증), 간암과 같이 비(非)가역적인 상태에 이르면, 결국 사망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지방간에서부터 치료를 하여 진행을 막아야 한다. 즉, 지방간이 만성 간 질환 치료의 골든타임이다.

지방간 발병 원인이 음주에 의존적인 경우를 ‘알코올성 지방간(ALD: alcohol-associated liver disease)’이라고 하며, 이 경우에는 금주와 식생활 개선이 살찐 간 다이어트에 큰 도움이 된다. 오히려 문제는 술이 원인이 아닌 경우이다. 흔히 ‘비알콜성 지방간(NAFLD: nonalcoholic fatty liver disease)’이라고 명명했으나, 그 병인이 물질대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에 따른 올바른 치료와 연구진행을 위해 이 분야의 저명한 학회를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본

“이번 과제를 통해 균(菌), 즉 마이크로바이옴을 기반으로 지방간을 치료하는 전략을 제시한다.

최종적으로 대사성지방간 신약을 개발하고자 한다.”

격적으로 ‘대사성지방간(MAFLD: metabolic dysfunction-associated fatty liver disease)’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있다. 이름만큼 병인이 다양하고 복잡하다.

심지어 마른 비만, 마른 고혈압처럼 마른 대사성지방간 환자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표준화된 치료법만으로 모든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여간 쉽지 않다. 사실 정확하게는 지방간 적중 치료제는 없다. 환자는 늘어가는데 치료제는 없다. 이 분야의 예방약 혹은 치료제 개발이 시급한 이유다.

이번 과제를 통해 균(菌), 즉 마이크로바이옴을 기반으로 해 지방간을 치료하는 전략을 제시하여, 최종적으로 대사성지방간 신약을 개발하고자 한다. 지방간 치료에 효과가 있는 장내 유익균을 선별하고, 지방간 세포모델과 동물모델에 적용해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비임상수준에서 검증하고 그 생물학적 작용기전을 규명할 예정이다. 지방간 치료제로 장 마이크로바이옴을 제시하는 것이 아이러니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장을 건강하게 함으로써 간을 치료하는 전략의 성공 가능성은 두 가지 임상실

양영 숙명여대 교수(생명시스템학부z여성건강연구원 원장)는 장을 건강하게 함으로써 간을 치료하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기반은 마이크로바이옴, 즉 장내 미생물이다. 사진=양영

험 결과를 통해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첫째, 실험동물에 마이크로바이옴 투여를 통해 지방간 완화 효과를 확인한 연구결과다. 둘째,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지방간 환자의 장에 이식하는 대변이식술을 하면 지방간이 완화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간과 장은 간문맥이라는 큰 혈관을 통해 물리적으로 이어져 있어 ‘장 건강=간 건강’은 구조적으로도 성립하는 공식임에 틀림이 없다. 최근 호주 식품의약국(FDA)과 미국 FDA에서 경구용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를 허가한 첫 사례를 통해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의 안정성 또한 입증됐다.

다만, 아직 지방간을 적중하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는 여전히 없다. 이 분야 선두주자인 한림대 의대(석기태 교수), 서울대(이도엽 교수), 연세대 의대(이혜원 교수), 가천대(박태식 교수), 종근당바이오, 비티시너지, 헥토헬스케어와 함께하는 8인 9각 연구를 지난해부터 시작해 가시적인 연구결과를 도출하고 있다.

국내외 연구동향을 살펴보았을 때, 지금이 바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적기이다. 2025년 IND(임상시험용 신약) 승인을 위한 서류 제출을 최종 목표로 했고, 그 이후에는 임상실험을 위한 연구비 투자 유치 또한 관건이다. 세계 최초의 장-간축기반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개발을 위해 오늘도 연구실 조명은 꺼지지 않는다.

양영 숙명여대 교수(생명시스템학부·여성건강연구원 원장)

임현진·심흥선·주영석·이태우 교수 ‘경암상’ 수상

2023년 제19회 경암상 수상자 발표

2023년 제19회 경암상 수상자가 지난 18일 발표됐다.

인문사회 부문에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74세·사회학과), 자연과학 심흥선 카이스트 교수(50세·물리학과), 생명과학 주영석 카이스트 교수(41세·의과학대학원), 공학 이태우 서울대 교수(49세·재료공학부)가 선정됐다. 이들 수상자에게는 각각 2억 원의 상금과 상패가 수여된다.

신성철 경암상위원회 위원장은 “특히 이번에 선정된 과학기술분야 수상자들은 모두 50세 이하의 국내 ‘토종’ 박사로 국내에서 시작한 독창적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세계적 선도학자로 도약할 수 있는 매우 기대가 되는 탁월한 연구자들이다”라고 말했다.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패러다임으로 ‘결손국가’의 개념을 확립했고, 계급과 계층을 ‘세’라는 개념을 통해 한국사회의 자본주의적 산업화 과정을 설명했다. 또한 유럽의 조합주의 설명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국가 단원주의’의 개념을 통해 한국사회의 정치경제체제를 설명했다. ‘강중국’의 개념으로 한국사회의 발전모델을 제시했으며, ‘지구시민사회’라는 개념으로 세계질서의 갈등과 협력을 설명하는 이론 틀을 확대 발전시켰다. 임현진 교수는 다양한 이론적 개념으로 사회과학의 통섭과 융합을 실

사진 왼쪽부터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과), 심흥선 카이스트 교수(물리학과), 주영석 카이스트 교수(의과학대학원), 이태우 서울대 교수(재료공학부)다.

천해왔으며, 이를 현실에서 적용해 한국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는데 기여해왔다.

심흥선 카이스트 교수는 새로운 입자의 존재를 입증하고 스핀구름을 발견해 현대물리학의 미해결 난제를 해결했다. 심 교수는 양자 전기소자 및 양자기술에 대한 독창적 연구를 통해 국제적으로 관련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특히 심 교수는 입자들의 기존 분류법인 보존, 페르미온을 따르지 않는 새로운 입자 애니온(Anyon)의 존재를 2023년 네이처에 발표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새로운 입자의 존재를 입증하는 업적은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기여로 인정받기 때문에 추후 노벨상 수상도 조심스럽게 예측된다고 경암상위원회는 전했다.

주영석 카이스트 교수는 유전체 의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젊고 유망한 의사 과학자로 유전체 분

석을 질환 분석에 접합시켜 암 발생 기전의 새로운 원리를 제시할 수 있는 길을 열어가고 있다. 유전체 분석기술은 인체 질환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폐암에서 새로운 암 발생 원인으로서 유전자 융합을 증명했다. 폐암이 악성종양의 형태로 진화하는 과정을 유전체 돌연변이로 밝혀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폐 오가노이드를 기반으로 감염모델에서 인간 폐 파괴기전을 규명했다.

이태우 서울대 교수는 유기/하이브리드 광전자 소자 연구의 권위자로 페로브스카이트 LED 소자 분야의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활발한 연구를 통해 지금까지 총 인용수 28,000회를 기록하고 있고, <사이언스>, <네이처> 등 세계최고 권위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했다. 이런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아 2019년 이후 계속 국제 학회에서 자주 인용되는 논문 연구자로 선정된 바 있다. 이 교수는 학술적인 기여뿐만 아니라 산업 분야에서도 8건의 핵심원천 특허를 활용해 교원 창업을 했다. 지금까지 약 3억 5천만 원의 기술이전 업적을 이뤘다.

경암상은 고 경암 송금조 태양그룹 회장이 전 재산을 출연해 설립한 경암교육문화재단(이사장 진애언)이 지난 2004년 제정했다. 시상식은 오는 11월 3일 오후 3시 30분 부터 부산 서면에 있는 경암교육문화재단 경암홀에서 열린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박완서 작가 일기·편지 등 첫 전시 공개

서울대, 박완서 아카이브 설치한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박완서 작가의 일기와 편지 등 육필 자료가 처음으로 전시 공개된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은 내년에 박완서 아카이브를 설치하기 위해 지난 19일 중앙도서관 관정마루에서 협약식을 가졌다. 기존 라이브러리 기능을 아카이브와 뮤지엄 기능을 결합한 ‘Larchiveum’으로 확장하는 첫 번째 사업으로 2024년에 박완서 아카이브를 설치한다.

이번 아카이브 협약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자료는 박완서 작가가 2001년 1월 1일부터 타계하기 이틀 전인 2011년 1월 20일까지 쓴 일기 11권과 지인과 주고받은 편지 약 500여 통 등의 자료다. 그동안 세간에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박작가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작가의 일생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일기장은 대개 A5~A4 정도 크기의 날짜가 기입된 다이어리로, 적십자사(2004), 가톨릭 관련 단체(2003, 2005, 2007), 반남박씨문중(2008), 유니세프(2009, 2010), 서울대 총동창회(2011) 등에서 받은 것을 활용했다.

박완서 작가는 “반성을 위해서도 기억을 위해서도”(2008.6.10.) 꾸준히 일기를 썼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일기의 내용 또한

2011년 1월 19-20일 일기, 박완서 작가의 임종 전 마지막 일기다. 박완서 작가의 일기 11권. 2001년 1월 1일에서 타계하기 이틀 전인 2011년 1월 20일까지의 기록이다. 사진=서울대

방문한 곳, 한 일, 만난 사람, 느낌 등에 대한 진솔하고 담백한 기술로 이루어져 있다. ‘좋았다’, ‘개운했다’ 혹은 ‘싫증난다’, ‘ 피곤하다’ 등으로 간단한 감상을 밝히기도 했다. 날짜나 사실을 잘못 기록한 것은 지우고 수정했으며, 여행 일정이나 행사

관련 문서를 함께 붙여놓았다.

만난 사람들의 이름 석 자를 쓰고 괄호 안에 정보를 적어넣기도 했는데, 이런 점을 통해 그가 일기로 일상을 충실하고 정직하게 기록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고 서울대는 전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소설과 산문, 대담 등에서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경험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하게 논해져 왔지만, 이러한 종류의 글과도 또 다르게 ‘일기’는 가장 덜 가공된, 그의 일상과 가장 가깝게 위치한 것으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아카이브 협약으로 서울대 중앙도서관은 유가족으로부터 작가의 도서 자료와 비도서 자료를 다종다양하게 기증받는다. 기증 도서에는 작가의 지상 서재 도서 1천여 권, 지하 서재 도서 2천여 권을 포함해 저서와 소장서, 학술서 등이 대거 포함돼 있다. 받은 자료를 활용해 중앙도서관은 작가가 애정을 갖고 말년을 보낸 아치울 노란집의 서재 모습을 그대로 재현할 계획이다.

도서 자료 외에 작가의 손때가 묻은 여러 비도서 자료도 수집한다. 일기·편지 등 육필 자료와 시청각 자료, 생활사자료, 미술 공예품류가 포함돼 있다. 시청각 자료는 작가의 일생이 담긴 사진 앨범 30여 권 등이 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전남대-광주시 “글로컬대학 30 선정 총력”

전남대와 광주광역시가 대학축제 개막식에서 글로컬대학30 선정을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성택 전남대 총장과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지난 20일 오후 총장 접견실에서 ‘글로컬대학30 선정과 대학-지자체 동반성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전남대의 글로컬대학30 본 지정 선정 지원 △인적·물적 자원에 대한 상호협력 지원 △대학-지자체-지역산업계의 동반성장을 위한 연계발전 방향 설정 △지역 고용창출 및 산업 성장을 위한 지역인재 양성 등에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이들은 이날 전남대 축제인 용봉대동제에 참석해 전남대의 글로컬대학30 본 선정을 위해 총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했다. 이 자리에는 시민·학생 5백여 명과 김재관 전남대 신임 교수회장, 조성희 총동창회장과 문인 북구청장, 이명노 광주시의원 등이 참석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축사를 통해 “행정과 대학이 함께 나간다면 변화된 교육정책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지역 청년과 산업의 밝은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다”며 “광주시와 전남대는 글로컬대학30 선정에 총력을 다하고, 함께 인재 양성 사다리를 완성해 산업을 키우고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말했다.

정성택 전남대 총장은 “전남대에 대한 광주시의 전폭적인 지원과 협력은 광주를 명실상부한 국토서남부의 거점 도시로 만들어가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며 “전남대 또한 거점국립대로서 이를 위해 가능한 모든 지원과 협력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개막식에서는 내외 귀빈과 시민·학생들이 어우러져 ‘글로컬대학30 전남대학교’라고 새겨진 타월로 카드섹션을 벌이는 등 다양한 퍼포먼스로 축제의 서막을 알리기도 했다.

전남대는 지난 6월 글로컬대학30 예비대학으로 선정된 이후, 광주시는 물론, 전남도와 기초자치단체 및 혁신기관 등과 협력하며 실행계획을 준비해 왔다. 광주시의 특성화 분야인 인공지능·반도체·모빌리티 등 5대 산업과 연계해 집중 육성하는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대는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로 나아가는 글로컬 혁신 대학’을 비전으로, △세계적 수준의 글로컬 융복합 고급 인재 양성 △산학협력 고도화 및 글로벌 진출 협력 파트너십 구축 △지-산-학-병-연 협력 거버넌스를 통한 대학혁신 성공모델 창출 등 3대 목표와 5대 추진과제 세부 프로그램을 제출할 예정이다.

최승우 기자 editor@kyosu.net

AI와 인간이 협력하는 교육혁신 방향 제안

국가교육위원회, 출범 1주년 대토론회

지난해 9월 출범한 국가교육위원회(위원장 이배용)가 출범 1주년을 맞아 ‘한국 교육개혁과 미래 과제’를 주제로 지난 20일 은행회관에서 대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염재호 태재대 총장이 ‘디지털 문명의 대전환과 한국 교육개혁’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맡았다. 염 총장은 전세계를 아우르며 인류 공동체 번영에 공헌하는 리더가 필요한 시대라고 강조했다. 학생 개인별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교수자의 역할을 강화하고 교과목별 전문 학습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 방안으로 교육중심의 학부 체제 정비, 고등교육 투자 확대, 글로벌 대학 간 연대를 통한 네트워크 확대 등을 제안했다.

김정호 카이스트 교수는 ‘챗GPT-X 인공지능의 미래와 교육혁신의 방향’을 주제로 강연했다. 김 교수는 기존 교육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며 AI 기술 패권 시대 인공지능과 인간이 협력해 나갈 수 있는 교육혁신 방향을 제안했다. 이제는 기존의 지식 익히기나 속도 경쟁 등의 경쟁력 없는 교육방법을 탈피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교육 △질문하는 교육 △소통하고 협력하는 교육 등의 미래 교육혁신을 주장했다. 김 교수는 과학기술이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미래 시대에는 인간이 주체가 돼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배용 국교위 위원장은 “지금까지의 교육을 근본적으로 성찰해 새로운 교육의 모습으로 변화해야 할 때”라며 “학교는 선생님은 존중받고 학생은 사랑받는 따뜻하고 안전한 공간이 돼야 하므로 교육을 통해 건전한 토양을 만들어 주는 희망의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라고 전했다.

최승우 기자 editor@kyosu.net

인제대 9대 총장 전민현 박사 취임

인제대 제9대 총장 전민현 박사(66세·사진) 취임식이 인제대 김해캠퍼스 장영실관 대강당에서 지난 20일 열렸다.

전민현 총장은 취임사를 통해 “우리 대학을 ‘경

쟁력 있는 글로컬대학’ 면모를 갖추겠다는 4년 전 공약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며 “인술제세, 인덕제세의 설립 정신을 계승해 우리 대학을 창의·융합 인재 양성의 명문 사학으로 거듭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 총장은 “창의·융합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학생 중심의 교육 혁신과 연구 생태계 강화를 통한 글로벌 연구경쟁력을 확보하고, 산·학·연·관 협력 플랫폼 구축으로 지역 혁신을 선도하는 글로컬 대학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아울러 “대학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대학 가치 창출을 통해 투명하고 건전한 행·재정 시스템을 갖추어 나갈 것”이라며 “곧 거버넌스 재편을 통해 지난 4년간 시행하지 못했던 데이터 기반의 ‘대학기관연구센터(IRC)’를 개설해 전략적이고 효율적인 대학 운영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전 총장은 덧붙였다.

임석원 부경대 교수, 한국해양경찰학회장 선출

임석원 국립부경대 교수(해양생산시스템관리학부·사진)가 한국해양경찰학회 제7대 학회장으로 선출됐다. 임기는 9월부터 2년이다.

임 교수는 지난 8일 해양경찰교육원에서 열린 2023년 한국해양경찰학회·해양경찰교육원 공동

추계 학술대회에서 한국해양경찰학회장으로 당선됐다.

임 교수는 지난 2019년 한국해양경찰학회 발전을 이끈 공로로 학회 학술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 해양수산부 장관 표창을 받는 등 해사법규·해양사고 처리·형법·형사소송법·헌법·민법 분야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한국해양경찰학회는 전국 해양경찰 관련 학과와 함께 해양경찰학 및 해사법학 등의 학문연구를 이끄는 이 분야 국내 최고 권위의 학회다.

이지은 명지대 교수, 서양미술사학회 제17대 회장 취임

이지은 명지대 교수(미술사학과·사진)가 서양미술사학회 제17대 학회장에 선출됐다. 임기는 2023년 9월부터 2025년 8월까지 2년이다.

이지은 교수는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 심사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운영위원,

한국연구재단 문화융복합단 전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한국미술 이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독일 막스플랑크 역사연구소 펠로우, 미국 보스턴대 강사, LG 연암 해외연구교수, MIT대 방문학자, 웰슬리대 뉴하우스 교수 펠로우로 연구를 수행했다.

서양미술사학회는 1989년 창립된 이래로 고중세 및 근세 서양미술사와 현대미술사에 관한 학술적 담론의 장으로써 미술사학 분야를 대표하는 학술단체이다. 학술지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을 발간하고 있다.

박명렬 동신대 교수, 유럽고에너지물리학회 학회상 수상

박명렬 동신대 교수(방사선학과·사진)가 유럽고에너지 물리학회(EPS-HEP)의 ‘유럽물리학회고에너지 및 입자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박 교수는 동신대 고에너지물리연구소에서 영광 한빛 원전을 이용한 중성미자 RENO(Reactor Experiment for Neutrino Oscillation) 실험을 수행

하며, 물질과 반물질의 대칭성 깨짐을 발견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박 교수를 비롯해 연구를 수행한 연구 그룹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중국의 다야 배이 실험 그룹과 스웨덴 과학자인 세실리아 얄스코그 룬드대 교수 연구 그룹도 함께 학회상을 수상했다.

박명렬 교수는 “이번 수상은 중성미자의 많은 난제를 밝히기 위한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한국의 연구능력을 알린 성과”라며 “입자물리학의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국가 기초과학 발전에 공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형우 안동대 교수, 경북과학기술대상 수상

최형우 국립안동대 교수(식물의학과·사진)가 2023 경북과학기술대상 과학기술진흥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최 교수는 경북산업용헴프규제자유특구의 안동대 사업책임자로 참여해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한

국식물병리학회에서 발간하는 『The Plant Pathology Journal』에 게재한 논문이 230회 이상 인용돼 생물학연구정보센터에서 선정하는 한빛사 상위피인용 논문으로 선정되는 등 연구의 질적인 측면에서도 성과를 창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최 교수는 고려대에서 식물병리학으로 박사를 했다. 2011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 코넬대 보이스톰슨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 및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그는 2018년 9월 안동대에 부임해 24편의 국제 SCI(E) 논문을 게재했으며, 국내특허등록(1건), 국내특허출원(5건) 및 미국특허출원(1건)을 달성했다.

불편한 동거 한일 안보협력, 과거사 문제가 관건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⑭

손열 연세대 교수(국제대학원)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기술, 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달 26일 손열 연세대 교수(국제대학원)가 「21세기 일본의 국가 전략」을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15강은 박명림 연세대 교수(지역학협동과정)의 「한반도 문제의 연속성과 변화」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일본은 대전략(grand strategy)을 가지고 있는가. 국가 대전략을 국가가 장기적인 국가 이익(목표)을 추구하기 위해 여러 수단을 배치하고 활용하는 통치술 혹은 책략(statecraft)이라 정의한다면, 이는 대체로 외교 대전략을 의미한다. 많은 국가가 대전략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책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실행에 옮기다가 커다란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도 과연 대전략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 여러 논란이 제기돼왔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른바 ‘병 마개(bottle cap)’론과 ‘달걀 껍질(egg shell)’론에서 나타나듯 일본은 군국주의 전통 속에서 대륙으로 팽창하려는 강력한 전략적 의지를 갖고 있다고 본다. 다만 미일 동맹과 주일미군이 이러한 열망을 제어하고 있거나 혹은 반대로 이를 촉성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일본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은 임진왜란 이래 한반도로 진출하려는 전략적 의도를 끈질기게 표출해왔으며, 이러한 열망이 갑신정변 이래 수차례에 걸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으로 표현되고 실천된 결과가 바로 조선의 식민지화라고 본다.

이렇듯 서로 다른 서사가 경합하는 속에서 우리는 일본을 어느 일방으로 전체화해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 끊임없이 대전략을 모색하고 실천하고자 했다. 다만 시대에 따라 대전략의 성패가 갈렸을 뿐이다. 예컨대, 일본을 단기간 대국의 반열로 이끈 메이지기의 부국강병 전략이 있었지만, 일본을 전쟁과 파멸로 이끈 동아신질서/대동아공영권 건설 전략도 있었다.

지역 공간을 인도-태평양으로 부른다면 이는 태평양과 인도양이란 두 대양(大洋)이 연결된 ‘해양’이란 개념으로 규정된다. 이 경우 해양 세력인 미국과 일본‧호주‧인도 등은 자연스레 공간의 중심에 서고, 역사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에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는 주변적 지위에 놓이며, 대륙과 해양이 교차하는 반도와 해협의 한국과 동남아 국가 다수는 중간적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주도 세력은 공간 개념을 이용하여 자기의 정치적‧사회적 행위를 통제하고 타자를 구별하고 자 하는 반면, 개념이 부여하는 위상이 주어진 현실 혹은 미래의 열망과 괴리가 있다고 느끼는 세력은 이에 저항하고 갈등을 조장하며 대안(=대항 개념)을 제시하려 한다. 중국은 인도-태평양 개념의 수용이 중국몽(中國夢)이란 중화민족

의 위대한 부흥의 열망을 견제하는 기제로 작용한다고 비판하며 대항 개념을 찾고 있다.

21세기 일본은 인도-태평양 개념에 근거한 심상 지도를 가지고 있다. 과연 이 공간 개념은 어떠한 정책 목표와 수단을 정의하고 배열하고 있는가. 변화하는 국제 전략 환경과 국내 정치 과정은 일본이 추구하는 공간 개념과 정합적인 가. 이 구도에서 한국과의 관계는 어떤 위상을 갖고 있는가. 한일 관계의 미래는 어떠한가.

일본의 20세기는 크게 보면 ‘태평양’이란 ‘주어진’ 공간에서 대전략을 모색하며 국력의 흥망성쇠를 경험한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그 세기말 ‘단극의 순간(unipolar moment)’과 미국의 일방주의가 일본에 기존 전략(=미국 추수 외교)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줬다면, 21세기에 들면서 지구적 규모로 전개된 세력 배분 구조의 변화는 새로운 국가 대전략을 모색하는 결정적 동인이 됐다. 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추세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중국의 부상과 그에 따른 주변국의 불안감 확산이다. 둘째, 이러한 중국의 도전에 대항하는 미국의 상대적 쇠퇴다. 셋째, 변화는 인도의 등장이다.

일본의 전략적 고민은 아태 공간으로 상징되는 미국 패권이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부상에 따른 세력 균형의 변화로 동요하고 있다는 점, 중국의 부상이 수정주의적 양태를 띠고 있다는 점, 미일 동맹만으로 자국의 안정과 번영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점, 미국의 안보 정책 및 경제 정책의 아시아 이동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이다.

중국의 거센 외교적·경제적·군사적 공세 속에서 일본 정치권에서 부상한 정치 세력이 우익 민족주의 세력이고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이들

“일본의 전략적 고민은 아태 공간으로 상징되는 미국 패권이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부상에 따른 세력 균형의 변화로 동요하고 있다는 점, 중국의 부상이 수정주의적 양태를 띠고 있다는 점, 미일 동맹만으로 자국의 안정과 번영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점 , 미국의 안보 정책·경제 정책의 아시아 이동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이다.”

을 대표했다. 여기서 첫 번째 핵심 과제는 미일동맹의 강화이다. 과거 패권적 동맹(hegemonic alliance), 다시 말해 일본의 외교 안보 정책을 통제하고 지역의 안정을 위해 미군 주둔을 유지하는 수단으로서의 동맹 대 일본 방어로서의 동맹을 탈피해 보다 상호적 동맹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미군 전력의 상대적 쇠퇴를 일본이 보완해 지역 내 군사력 균형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과거 영일 동맹의 일방적 파기(1924년)를 경험했듯이 미일 동맹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또한 미일 동맹의 일체화만으로 일본의 안정과 번영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다. 따라서 미일 동맹의 강화와 함께 주요 파트너국들과의 연계와 협력을 중시하고 있다. 그 핵심 파트너가 인도와 호주이고, 미국을 포함해 이를 통칭하는 쿼드(Quad)다.

2012년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 수상은 중국의 주도권 장악을 견제하기 위해 또다시 인도와의 관계 강화에 나섰다. 인도 역시 일본을 핵심 파트너로 삼았다. 일본은 호주와의 관계도 신차원으로 격상하고 있다. 일본과 호주는 미국의 군사

손열 연세대 교수(국제대학원)는 “한일 양국이 마주할 보다 큰 딜레마는 대국들이 경제 안보 확보 경쟁에 나서면 마치 군사적으로 안보 딜레마가 걸리는 경우처럼 대국 간 경제적 안보 딜레마가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다”라며 “미국과 중국은 제재를 경쟁적으로 강화하고 상대의 약점을 공략할 기술과 산업 부문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동맹국으로서 태평양 패권 그리고 아시아-태평양 패권 공간의 핵심 협력자였다.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의 주역으로서 경제 협력의 파트너일 뿐 아니라, 양국은 2010년대 점증하는 중국의 도전을 공통의 위협으로 인식하면서 군사적 협력도 강화했다.

특히 중국 정부에 의한 내정 간섭 시비, 5G 통신 네트워크 구축에 화웨이 배제 조치, 코로나19의 발생과 감염 확산에 대한 국제 기구의 대(對) 중국 독립적 조사 주장, 중국의 보복 조치 등으로 중국-호주 관계가 악화되면서 일본과 호주 간 안보 협력 관계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런

속에서 미-일-호 안보 협력과 미-일-호-인 쿼드 안보 대화도 발전하고 있다.

일본의 21세기 국가 대전략의 성패는 크게 세가지 변수에 달려 있다. 첫째, 중일 관계 변수다. 일본은 오랜 기간 중국을 안보 경쟁국으로 간주하지 않았지만 2010년과 2012년 센카쿠(혹은 다오위다오) 해역 충돌 이래 전력을 증가시키며 경쟁 관계를 이루고 있다.

둘째, 미중 관계 변수이다. 이는 중일 관계에 대한 결정적 변수이기도 하다. 미중 관계는 양국이 전략적 핵심 이익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전면적 대립으로 갈 수 있고, 건전한 경쟁과 협력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셋째, 일본의 경제력이다. 일찍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 장관이 “최선의 외교 정책은 경제 발전”이라 했듯이 경제가 받쳐줘야 대전략의 여러 수단들을 가동해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1990년대 미국 GDP의 70%에 육박하던 일본은 2010년 중국에 추월당해 세계 3위로 밀려났고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2030년에는 인도에 이어 세계 4위권으로 밀려날 것으로 전망되며, 1인당 GDP는 머지않아 대만과 한국에 따라 잡힐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고령화율이 높고

노동력 인구(경제 활동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로 인해 향후 10년간 실질 성장률이 1% 이하로 하락해 사회보장 제도의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위협 인식을 공유하는 데에서 안보 협력의 기반을 이루고 있고, 한반도와 지역의 비핵 안보, 핵 비확산, 대만 해협의 안정과 평화, 해상 수송로 보호 등 주요 사안에 대해서도 안보 이익이 일치하고 있다. 문제는 핵무력을 증강하는 북한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란 차원을 넘어서 중국에 대한 미일 간 통합 억제 전략이 구체화·정교화되는 경우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에 있다.

한일 양국이 마주할 보다 큰 딜레마는 대국들이 경제 안보 확보 경쟁에 나서면 마치 군사적으로 안보 딜레마가 걸리는 경우처럼 대국 간 경제적 안보 딜레마가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은 상대가 경제 안보를 남용해 위협을 조장한다며 제재를 경쟁적으로 강화하고 상대의 약점을 공략할 기술과 산업 부문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대중 정책의 경우, 일본과 한국은 경제 분야에서는 협력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경제 안보적 고려가 요구되는 부문 즉, 군사 안보적 관련이 큰 첨단 기술 부문에서 중국과의 탈 동조화는 불가피할지라도 여타 부문에서 한일 양국은 경제적 상호 의존의 네트워크를 견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끝으로 역사 문제의 관리와 해결 과제이다. 아베 수상의 재집권 이래 지속되어온 자민당 우위 체제는 우경화된 정치 체제이다. 이 세력은 보편 가치를 외교의 중심축으로 내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편 가치와 원칙에 근거해 역사 문제를 다루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왔다.

한일 역사 갈등의 과거 10년을 돌이켜보면 역사 문제 해결 노력과 기능적 협력의 투-트랙 접근이 유효하되, 양 측면의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함을 알 수 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역사와 정치, 기능적 협력 사안들을 아우르는 포괄적 협력 틀이었다면, 오늘의 한일 관계는 기능적 협력을 통해 역사 인식의 화해를 향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역사 문제 해결 노력의 진전이 기능적 협력을 확대, 심화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린수소 생산 위한 고효율

저비용 수전해 촉매 개발

이승현 한양대 교수 연구팀

이승현 한양대 ERICA캠퍼스 교수(화학분자공학과) 연구팀이 수전해 기술에 활용할 수 있는 고효율·저비용 촉매를 개발했다. 18일 한양대에 따르면, 이 촉매는 그린수소 생산에 활용된다.

미래의 대체 연료로 기대되는 그린수소는 친환경적이며 탄소 배출이 없는 청정에너지다. 그린수소는 ‘수전해 기술’을 통해 물을 전기 분해해 추출할 수 있다. 하지만 수전해 과정에 쓰이는 촉매인 루테늄과 백금은 매장량이 적고 매우 비싸 대규모 그린수소 생산에는 한계가 있다.

연구팀은 상업용 백금보다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비백금계 원소만을 사용해 붕소가 도핑된 코발트 산화물-코발트(B-CoO/Co)를 합성했다. 그리고 코발트의 산화상태를 조절하는 방법을 통해 3차원 니켈 기판 형태의 수전해 촉매를 개발했다.

아울러, 연구팀은 이번에 개발된 코발트 촉매가 다른 수전해 촉매에 비해 약 0.1V 낮은 1.62V의 전극전위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로써 수전해 과정에서 소비되는 전력을 줄이고

왼쪽부터 한양대 응용화학과 박사과정 차든찬 씨, 탕장 이봄차 띵 박사(이상 제1저자), 이승현 한양대 ERICA캠퍼스 교수(화학분자공학과)(교신저자). 사진=한양대

수전해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이승현 교수 연구팀은 “수전해 기술에서 사용되는 고가의 루테늄과 백금 기반 촉매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촉매 합성 방법과 효율적인 촉매 개발에 대한 중요한 진전을 마련했다”라며 “이번 연구는 새로운 촉매 디자인 및 합성에 대한 효과적인 접근을 제시해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 새로운 가능성을 연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양대 응용화학과 차든찬 박사과정 학생이 제1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저명 학술지인 『스몰』 8월호의 후면 표지논문으로 선정됐다.

지난해 전 세계 수소 시장의 가치는 1천550억 달러(약 208조 원)로 올해부터 2030년까지 평균 9.3%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 그린수소는 2.7%인 42억 달러(약 5조6천246억 원)을 차지한다. 그린수소는 생산 비용이 높기 때문에 시장 가지 점유율에 비해 생산된 수소의 비중이 작아진다.

2020년에 생산된 수소의 대부분은 화석 연료에서 파상됐다. 99%는 탄소 기반이었다. 전기분해에 의한 생산은 전체 생산량의 0.1% 미만을 차지했다. 그중 일부만이 재상 가능한 전기로 전력을 공급받는다. 현재 높은 생산 단가가 그린수소 사용을 제한하는 주요 요인이다. 2020년 중국은 2천만 톤(전 세계 생산량의 3분의 1)의 생산량으로 세계 수소 시장의 선두주자였다. 2021년부터 현재 여러 회사가 연합해 연료 생산량을 향후 6년간 50배를 느릴 계획이다. 같은 해 기준으로 그린수소 투자 파이프라인은 계획과 개발 단계에서 136개 프로젝트에 걸쳐 121기가 와트의 전해조(전기분해를 하는 장치) 용량으로 추산됐다. 총 5천억 달러(약 670조 원)가 넘는 규모다. 모든 프로젝트가 구축되면, 2030년까지 수소 생산량의 10%를 차지할 전망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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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성장하는 워라밸’을 추구해야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요즘 대학생은 워라밸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란 신조어는 1980년대 영국의 여성해방운동에서 처음 등장했다. 가사와 직업을 병행하던 여성이 근무 시간의 탄력적 운영과 출산 휴가를 원하면서부터 워라밸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워라밸의 기본 취지는 노동 시간 동안에는 열심히 일하게 하고 노동 시간 이외에는 일을 시키지 않는 노동 시간의 최적화에 있다. 이렇게 하면 기업은 비용을 아끼고 노동자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지난 9월 18일, 한국고용정보원은 직업 선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직업 가치를 15세 이상 5천786명에게 물어본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결과가 흥미롭다. 20대 이하는 ‘일과 삶의 균형’, ‘경제적 보상’, ‘직업 안정’ 순으로 중요하다고 응답했지만, 50대 이상에서는 ‘직업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했고 ‘일과 삶의 균형’은 후 순위로 밀렸다. 이 조사 결과에서도 젊을수록 워라밸을 중시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워라밸이란 단어를 따져보면 일이 먼저 나오고 삶은 나중에 따라온다. 그런데 워라밸을 오해하는 대학생은 삶이 먼저고 일을 나중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 직장과 삶을 철저히 분리해서 퇴근하는 오후 6시 이후가 자신의 진정한 삶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일은 적당히 시간을 때우는 정도로 하고 휴식과 웰빙만 추구하려는 대학생도 많다. 현대 사회에서 균형이 정말 중요하지만, 워라밸을 일과 생활 사이의 극단적 분리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인생에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처럼 뜨거운 순간은 없다. 대학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웰빙과 휴식은 노력한 뒤에 찾아오는 보상이며, 진정한 워라밸은 열심히 일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대학 시절은 워라밸을 실천할 수 있는 시작점이다. 그 첫걸음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일과 삶의 균형은 시작점에서부터 존재하지 않고 노력하고 성장한 다음에 누리는 보람이다. 그 균형을 찾기 위해 먼저 일에 몰입해 보면 휴식이 더욱 달콤하게 느껴질 것이다.

대학 생활은 자라나는 시간이자 자신을 발전시키는 시기다. 일과 삶의 균형을 찾기보다 먼저 자기 계발에 집중하다 보면, 언젠가 워라밸을 마음껏 즐길 그날이 올 것이다. 워라밸은 단순히 휴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일하는 과정에서 만족과 성취를 느낀 다음에 삶의 균형점을 찾는 균형이다. 열심히 일하다 보면 열정의 가치를 체감하고 휴식도 더욱 가치 있게 느끼게 될 것이다.

직장을 시간 채우면 월급 주는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직장인이라면, 직업인은 직장에서 업(業)에 대한 소명을 갖고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다. 워라밸은 모두에게 권장할만한 소중한 가치라고 할지라

도, 직업인으로 성장하지 못한 직장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일에 대한 흥미가 떨어져 점점 뒤쳐질 가능성이 높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직장인을 택할 것인가, 직업인을 택할 것인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에 해당되는 문제다. 만약 지금 인생의 시작점에 서있는 대학생이 직장인을 택하겠노라고 말한다면, 그대들 앞에 기다리는 것은 암울한 미래밖에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삶의 질이나 휴식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휴식과 웰빙,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열심히 일한 다음에 느끼는 달콤함이 더 크다. 일을 피하려는 자세는 워라밸의 본질을 왜곡시킨다. 일에 몰입한 다음에 삶의 질을 찾는 것이 진정한 워라밸이다. 건물주가 그렇게 부러운가? 일은 안 하는 것 같은데 월세는 꼬박꼬박 받는 건물주가 그토록 부러운가? 지금의 건물주든 그의 아버지든 아니면 그의 할아버지든, 셋 중 하나는 정말로 열심히 일한 결과 지금의 건물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다시 강조한다. 일과 휴식 사이의 조화로운 균형이 워라밸의 진짜 본질이다. 성경 말씀에서도 일하지 않으려면 먹지도 말라고 했다. 일이란 단순히 수행해야 할 의무가 아니다. 일은 사람이 성장하고, 배우고, 만족을 느끼는 수단이다. 사람은 일하는 과정에서 삶의 그림을 더 크게 그릴 수 있다. 일하며 배우고 경험하면서 삶의 균형을 찾는다 해도 절대로 손해 보지 않는다. 지금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언젠가는 이익으로 돌아온다. 진정한 워라밸이란 일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느껴지는 ‘성장하는 워라밸’이다.

제공=디아트플랜트 요 갤러리

갤러리 초대석

「대지와 뿌리의 서사-6」

황태하, 캔버스에 유채, 2023

황태하 작가 전시회 「땅과 뿌리와 하늘」은 지난 5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서울 중구 을지로9길 디아트플랜트 요 갤러리에서 열린다. 모든 이야기는 땅에서부터 시작한다. 땅의 이전을 상상하는 일은 마치 아기가 물에서 팔을 허우적대며 헤엄치는 것처럼 가진 믿음을 단단하게 하기 위한 본능적 움직임에 가깝다.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콘크리트와 다르게 내가 방금 전에 한 줌 쥐어 올린 흙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면서도 그것과 맞닿아 존재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기억을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에 품고 있다. 지구 밖에서 날아온 돌멩이가 산산조각 나 흩어져 섞이기도 하고, 아주 큰 나무가 거기 뿌리를 내렸다가 다시 흩어지기도 하고, 주변을 배회하다가 생명이 끊어진 벌레의 몸이 섞였다가, 바람을 타고 아주 긴 여행의 끝에 나의 손에 한 줌 들렸다 다시 흩어진다. 땅은 뿌리를 통해 하늘과 만난다. 땅이 피어 올린 것들은 하늘을 향하다가, 이내 땅으로 돌아간다. 이야기들은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중국대학은 지금

처리수 문제를 다루는 중국의 자세

최근 중일 관계는 일본의 원전오염처리수(이하 처리수) 방류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얼마 전 일부 일본의원들이 대만과 독자적인 교류를 진행하면서 중일 관계가 일시적으로 경색된 바가 있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중국 언론이 일본의 처리수 방류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주일중국대사마저도 일본산 수산물에 대해 수입금지가 마땅하다고 거들자 중국 내 반일감정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중국에서 위챗을 통해 떠돌고 있는 영상 중에는, 남색 옷을 입은 행인이 ‘일본투항’이라는 글자가 새겨긴 옷을 입은 사람을 가리키며 “이성적이지 못하고 쇼비니즘에 가깝다”라고 비판하는 장면이 담긴 게 있다. 이 영상은 금세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그 주목의 양상은 일본을 두둔하고 있다는 남색 옷을 입은 행인이 ‘친일파의 후손’이거나 ‘일본의 개’라는 등 무차별적으로 비난하는 것이었다.

이밖에도 중국 내에서 일본 후쿠시마에 국제전화를 걸어 일본인에게 욕설을 하거나, 중국 내 편의점에 있는 일본제품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영상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하나같이 소동을 벌인 이들을 애국자로 칭송하는 분위기다. 마치 2012년 중일 간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갈등에서, 일부 중국인이 일본차를 운전하는 사람을 친일파라 매도하고 차를 부수었음에도 비난받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뉴스뿐만 아니라 학계의 학술잡지에서 발표하는 논문도 자극적인 주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예

를 들어, 모 역사학 학술잡지에서는 ‘일본의 대륙침략과 세균전’을 주제로 한 논문이 게재됐으며, ‘남경 대학살에 대한 재조명’ 같이 반일감정을 부추기기에 충분한 내용을 담은 글이 논문이란 형식으로 발표되고 있다. 사회 전분야가 반일정서로 휩싸인 까닭에 주중일본대사관에서는 교민에게 밖에서 일본어 사용을 자제하라고 권고까지 했다.

일본의 처리수 방류에 중국은 일본 수산물에 대한 전면적인 금지 조치를 내렸다. 사실 이와 같은 중국의 조치가 이해하기 힘든 것이기도 하다. 만약 처리수가 문제가 있다면 적어도 5년과 10년 멀게는 30년에 해당하는 해양수산물을 경계해야 마땅하다. 지금 당장 내린 조치는 지극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중국 해안가에 설치된 원전에서 나오는 삼중수소가 국제법을 준수하여 방류한 일본의 처리수의 기준치보다 훨씬 초과되었다는 보도도 있다. 중국은 자국 연안에서 잡혀 들어오는 해산물을 더 경계하는 게 더욱 마땅하다. 물론 일각에서는 일본이 발표하는 여러 수치가 조작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이마저도 믿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을 신뢰해야하는가 되묻고 싶다.

또한, 한국과 중국의 국민들이 처리수 방류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도 다르다. 한국은 처리수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높더라도 일본 정부와 일본인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나 시정조치를 요구하기보다는 우리 정부에게 먼저 항의를 표현하며 일본과의 교섭을 촉구한다. 반면, 중국은 정부에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정부에 ‘반(反)’함을 표시하는 것”과 같다고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중국 정부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한다. 그래서 애먼 일본인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이들에게 겁을 주어 일본 정부 스스로가 자정하기를 바라고 있다. 일본에 대한 중국 시민의 증오가 지금보다 더욱 커진다면 중국 정부가 이들을 통제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중국 시민의 거대한 불만이 정부를 향한다면 이 또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 수 있기에 중국 정부는 이를 조용히 지켜보며 반일정서를 이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만큼이나 한국도 처리수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적지 않다. 하지만 전과는 달리 한국에서 일본을 향해 극단적인 행동을 표하는 사람이 현저하게 줄었다. 일본을 대화의 장에 끌어들이고 주변국과의 충분한 대화와 협의를 진행하면 처리수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저 위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선전·선동을 통해 애꿎은 일본인에 대한 혐오만 부추긴다면 국가 간,

시민 간 혐오의 골만 깊어질 뿐 문제를 해결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조대호

중국인민대학 역사학원 박사과정

중국인민대학 역사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시베리아지역 화교와 한인 공산주의자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근현대사가 전공이다. 주요 연구영역은 중국공산당사, 국제공산주의운동이다.

故 홍일식 교수를 추모하며

한류로 이어진 ‘문화영토론’

9월 11일 이른 오후, 저는 한창 수업 중이었습니다. 오전에 선생님을 뵈러 간다던 후배 교수의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일단 끄고 수업을 계속했는데, 전화가 다시 왔습니다. 순간 짐작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짐작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83년이었습니다. 당시 학부 3학년이었던 저는 우연한 기회에 고려대학교 부설 민족문화연구소의 ‘중한대사전편찬실’에서 선배들의 잔심부름을 하게 되었고, 그때 소장이셨던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그 이후 가까운 거리에서 선생님을 계속 뵐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선생님은 명확한 인문학적 비전을 가진 리더이셨습니다. 민족문화연구소를 대한민국 한국학 연구의 중심 연구소로 성장시키겠다는 비전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러기 위해 거대 프로젝트였던 『한국문화사대계』, 『한국현대문화사대계』, 『한국민속대관』 등의 발간을 주도하셨고, 연구에 필요한 연구비 조성, 인프라 구축, 시설 확충 등을 위해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우리 문화가 나아갈 길을 앞서 보는 혜안을 갖고 계셨습니다. 1981년 ‘문화영토론’을 제안하셨습니다. 인류사에서 분쟁의 불씨가 되었던 정치적·경제적 영토를 넘어 선한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문화영토를 확장시켜서 인류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것이 문화영토론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50여 년이 흐른 지금 한류가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퇴직 후에는 (재)문화영토연구원을 설립하셔서, 문화영토론의 체계화와 확산에 관한 연구를 지원해주셨습니다. 1986년에는 당시 김상협 총장께 “앞으로는 우리 한국어만 가르치고도 세계 어디서나 벌어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시고, ‘한국어·문화연수부’를 설립하셨습니다. 이는 현재 매년 1만여 명의 외국인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고려대학교 한국어센터로 발전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중국과 수교하기 이전에 중국의 발전을 예견하시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중한대사전』의 편찬을 주도하셨습니다. 1994년~1998년에 고려대학교 제13대 총장으로 재직하시면서 고려대학교의 발전에 많은 힘을 보태셨고, 평생을 고대인(高大人)으로 살아오시며 고려대학교의 발전을 염원해오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왕성한 사회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가 건전한 가치관

고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이 지난 1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1981년 문화영토론 제안 ‘정치·경제적 영토를 넘어 선한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문화영토를 넓혀 인류 평화에 기여하겠다’

을 갖고 발전하는 데에 기여하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게 있어 개인적으로 선생님에 대한 가장 중요한 기억은 위의 두 가지 입니다.

선생님의 발인식이 있었던 9월 14일에는 전날부터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쏟아지는 빗속을 달려 원주의 선영으로 가는 길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화창한 날씨 속에서 선생님을 잘 모시고 싶었지만, 날씨가 제 마음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영에 도착하고 하관 시간이 가까워오면서 기적처럼 날이 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후배, 제자들이 모여 선생님을 양지바른 원주 부론면 언덕에 잘 모실 수 있었습니다. 먼저 고인이 되신 사모님과 다시 만나셔서, 이승에서 못 다하신 행복을 누리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의 스승이신 선생님, 이제 부디 좋은 곳에서 고통없이 편안한 하루하루를 보내시기를 바라옵니다. 마지막으로 남기신 (재)문화영토연구원에서 선생님의 유지를 받들어 ‘문화영토론’을 잘 발전시켜 나갈 것을 다짐하며, 존경과 눈물로 선생님의 극락왕생을 엎드려 빕니다.

진심을 다해 빕니다.

김정우

고려대 문화콘텐츠전공 교수

김상돈의 교수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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