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 직접 지원 2조…국공립에 2.8배 더 지원
데이터로 읽는 대학⑬
국립대에 편중된 정부 재정지원‘데이터로 읽는 대학’의 세 번째 주제인 ‘지역대학 위기 극복 방안’의 네 번째 소주제는 ‘국립대학에 편중된 정부의 재정지원’이다. 사립대학은 해방 이후부터 공교육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국가발전에 기여 해 왔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지금도 고등교육의 80% 이상을 차지하면서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학령인구 감소와 15년째 이어지고 있는 등록금 동결, 공과금을 비롯한 물가인상으로 사립대학의 재정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지원은 국립대학에 편중되어 있다. 더욱이 사립대학은 국립대학에 버금갈 만큼 등록금 책정·정원 조정 등 각종 규제와 통제를 받으며 대학 존립과 정체성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또한 지역 사립대학은 지역소멸의 위기 속에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국립대학과 경쟁해야 하는 어려운 지경에 처해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에는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의 차별적인 재정지원에 대한 문제를 구체적인 데이터로 살펴보고, 이에 대한 개선방안을 모색한다.2024년 교육부 예산안이 며칠 전에 발표됐다. 교육부의 예산안은 95조 6천254억 원이다. 전년도에 비해 6조 3천억원 감액됐으나, 고등교육예산은 전년도 대비 14조 2천947억 원으로 7천812억원(5.8%) 증액됐다. 고등교육예산은 교육부 전체 예산의 15%를 차지한다. 고등교육예산은 2021년 11조 3천억 원, 2022년 11조 9천억 원, 2023년 13조 5천억 원, 그리고 2024년 예산안은 14조 3천억 원으로 계속 증액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장학금 약 5조 원과 국립대학 운영지원비 약 4조 원을 제외하면 고등교육에 대한 실질적 지원은 매우 적은 편이다.
특히 정부의 국립대학에 대한 지원은 운영비 지원 외에도 국립대학 실험실습기자재 확충 지원, 국립대학 시설 확충 지원, 국립대학 육성사업 등을 포함하면 1조 원 가까운 재정지원이 추가로 이뤄진다. 또한 국립대학이 일반재정지원사업으로 사업비의 50% 정도를 가져가는 것을 포함하면 정부의 재정지원은 국립대학에 극도로 편중돼 있는 셈이다.국공립대 238억·사립대 84억 직접 지원최신 결산자료인 한국사학진흥재단의 ‘2021회계년도 결산서’를 분석하면, 이같은 실태를 더욱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교육부의 학자금 지원과 국·공립대 경상운영비를 제외한 일반지원 사업 지원은 총 2조 7천224억 원이며, 이 중 대학에 직접 지원되는 금액은 총 58개 사업으로 2조 2,410억 원이다.대학에 직접 지원되는 일반지원사업비 2조 2천410억 원 중 41.5%는 국·공립대학에, 나머지 58.5%는 사립대학에 지원됐다. 총 지원 규모를 보면, 국·공립대학에 비해 사립대학 비중이 높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국·공립대학이 39개교, 사립대학이 157개교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사립대학에 대한 지원이 차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표 1>에서와 같이 정부가 재정지원한 총 사업비를 학교수로 나눠 교당 평균액을 산출하면, 국·공립대학은 1개교당 238억 원, 사립대학은 1개교당 84억 원이 지원됐다. 국·공립대학이 사립대학에 비해 1개교당 2.8배 더 지원받았다.
2021회계연도 설립별 선정 사업 수를 비교해 보면, <표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58개 사업 중 가장 많이 선정된 대학은 서울대로 23개 사업에 선정됐다. 다음은 22개 사업에 선정된 고려대와 성균관대, 20개 사업에 선정된 전북대와 연세대다. 이를 설립별로 살펴보면, 15개 이상 사업이 선정된 17개 대학 중 국립대학은 39개교 중 28.2%인 11개교가 선정된 반면, 사립대학은 157개교 중 7.0%인 11개교가 선정돼 선정 비율에서도 국립대학이 사립대학에 비해 4배 더 높았다. 반면에 4개 이하 사업이 선정된 비율을 비교해 보면, 국립대학은 25.7%인 10개교가 선정됐으나, 사립대학은 47.8%인 70개교가 4개 이하의 사업에 선정돼 선정 비율에서 2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2021회계년도 설립별 재정지원 규모를 비교해2021회계연도 교육부 대학직접지원사업 규모 <표 1>
구분 대학수(A)
재정지원사업수혜대학수(B)금액(C) 비율1교당 평균액(C/A) (C/B)국·공립 39 39 929,108 (41.5%) 23,823 23,823사립 157 152 1,311,913 (58.5%) 8,356 8,631전체 196 191 2,241,022 (100.0%) 11,433 11,733(단위: 백만원)
대학직접지원사업 설립별 사업수 분포 <표 2>
구 분 국·공립 사립 계
20개 이상 2(5.1%) 3(1.9%) 5(2.6%)15~19개 9(23.1%) 8(5.1%) 17(8.7%)10~14개 6(15.4%) 24(15.3%) 30(15.3%)5~9개 12(30.8%) 47(29.9%) 59(30.1%)1~4개 10(25.7%) 70(44.6%) 80(40.8%)0개 - 5(3.2%) 5(2.6%)계 39(100.0%) 157(100.0%) 196(100.0%(단위:교, %)
대학직접지원사업 설립별 재정지원규모 분포 <표 3>
구 분 국·공립 사립 계
700억원 이상 5(12.8%) - 5(2.6%)500억원~699억원 미만 2(5.1%) 3(1.9%) 5(2.6%)200억원~500억원 미만 4(10.1%) 12(7.7%) 16(8.2%)100억원~200억원 미만 13(33.3%) 35(22.3%) 48(24.5%)50억원~100억원 미만 4(10.1%) 30(19.1%) 34(17.4%)10억원~50억원 미만 11(28.2%) 31(19.8%) 42(21.4%)1억원~10억원 미만 - 17(10.8%) 17(8.7%)1억원 미만 - 24(15.3%) 24(12.3%)0원 - 5(3.2%) 5(2.6%)계 39(100.0%) 157(100.0%) 196(100.0%)(단위:교, %)
보면, <표 3>에서와 같이 2021회계연도 지원금액 총 2조 2천410억 원 중 가장 많이 지원을 받은 대학은 전남대로 약 934억 원이었다. 다음은 서울대 약 908.5억 원, 경상국립대 884.6억 원, 충남대 884.4억 원, 충북대 714.9억 원이다. 사립대학 중에서는 고려대가 가장 많은 615.9억 원, 연세대 603.9억 원, 성균관대 573.6억 원 순으로, 최상위 5개 대학은 국립대학이 차지하고 있다. 국립대학은 39개교 중 61.7%인 24개교가 100억 원 이상 지원받았고, 39개교 모두가 10억원 이상 재정지원을 받았다. 반면에 사립대학은 157개교 중 37.4%인 50개교만 100억 원 이상 지원받았다. 10억 원 이하로 지원받은 대학이 모두 27.4%인 47개교나 됐다. 이중 1억 원 미만을 지원받은 대학도 24개, 재정지원이 전혀 없는 대학도 5개교나 있었다.
고등교육예산은 정부 전체 예산의 1.97%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부의 교육예산과 고등교육예산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으나, 정부 전체 예산 대비 고등교육예산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2022년 1.97%로 떨어졌다. 그나마 고등·평생교육특별회계를 만들어 한시적으로 고등교육예산을 증액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일반재정지원 규모는 2조 원이 조금 넘고, 그 중 사립대학에 지원되는 규모는 1.3조원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MIT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 1조 원 규모의 AI 단과대학을 만들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매년 발간되는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한국의 고등교육 부문 공교육비 중 정부의 재원 비율은 GDP 대비 0.6%로 OECD 국가 평균인 1%에 못 미치고, 고등교육 부문의 학생 1인당 공교육비도 OECD 국가 평균의 66% 수준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국가와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앞으로 2조 원 이상의 고등교육재정을 확보해 제도화하고, 사립대학을 국립대학 수준으로 지원해야만 지역대학이 살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국내대학이 탄생할 것이다. 글로벌 경쟁력의 전제조건은 규제 개선과 동시에 대학에 자율화를 부여해 특성화할 수있도록 선지원 후평가를 도입해야하는 골든타임이다.
황인성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사무처장대학평가와 고등교육 전문가로 교육통계 분석 작업에 참여해 왔다.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을 거쳐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정보공시센터장과 기획조정실장을 지냈다.
“사립대 구조개선법, 큰 그림 없이 문 닫는 데만 집중”
전국교수연대회의 비판 성명
교수연대회의가 말한 박근혜 정부에서 발의된 법안은 김희정·안홍준·김선동 의원이 각각 발의한 것을 가리킨다. 2014년 김희정 새누리당 의원은 ‘대학 평가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을 발의하자 비판에 직면했고, 이후 유사한 내용으로 2015년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 했으나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 김선동 새누리당 의원 발의한 법안도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해산장려금을 포함해 사립대가 해산될 때 운영진에게 돌아갈 잔여재산에 대해서도 이전 법안보다 후퇴됐다고 평가했다. 2016년 김선동 의원안은 △학생 등록금 환불액 △문을 닫는 법인 또는 대학의 교직원 인건비 △명예퇴직수당 또는 보상액 △생계안정·재취업 및 직업훈련 등의 비용 △국가 예산으로 구입한 재산 등을 뺀 나머지 등으로 잔여자산처분 범위를 구체적으로 적시했지만, 현재 발의된 법안은 규정이 모호하다는 것이다.가령, 문정복 의원안은 “폐교대학은 소속된 재학생이 폐교 이후 편입학을 포기한 경우 잔여재산의 범위 내에서 학업중단에 대한 위로금을 지급할 수 있다”, “면직 교직원에 대해 잔여재산 범위 내에서 면직보상금 또는 퇴직위로금을 지급할 수 있다”라고 돼 있는데 해당 내용은 이전 법안에 비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교수연대회의는 현재 발의된 법안에 의해 지역에 기여할 잠재력 있는 대학이 먼저 문을 닫게 돼 지역소멸이 빨라질 수도 있다고 했다. 재정 여력도 충분한 대학이 토지와 건물의 입지 조건이 매각에 유리해 먼저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들은 “순조로운 재산처분이 가능하면 이를 실행해 최대 100분의 30에 해당하는 몫을 가져갈 수 있다. 이 몫은 경우에 따라 수백억 원을 넘을 수 있으며, 애당초 출연자가 고등교육을 위해 내놓은 액수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비판했다.또한, 대학 운영진이 학교를 없애고 잔여재산을 공익법이나 사회복지법인의 재산으로 출연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사학비리세력이 대학을 없애고 잔여재산을 공익법인이나 사회복지법인에 출연한 후, 법적으로 이들 법인이 학교법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해산이 손쉬운 점을 악용해 해당 법인을 다시 해산하는 방식으로 공공재인 대학의 자산을 전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아울러, 지역균형발전과 관련해 대학의 폐교 여부가 개별 대학의 경영진단에 따른 회생 가능성을 따져 결정되기 때문에 지역경제, 지역 산업이나 대학의 생태계를 전반적으로 고려하는 거시적인 국가정책이 작용할 여지가 없다고도 했다.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서울예술대학교 전임교원 초빙 공고
‘통합 추진’ 글로컬 예비대학들, 구성원 동의에 진땀
한국교통대 “충북대, 통합 과정 고통분담 의지 없다”
10월 중순에 있을 글로컬대학 본지정을 앞두고 학교 간 통합을 전제로 예비지정된 대학들이 구성원의 동의를 얻기 위한 과정에 들어간다. 글로컬대학 사업에 지원하며 ‘벽 허문 1도 1국립대’, ‘유·초중등과 고등·평생교육 아우른 종합대학’, ‘공유→연합→통합 시너지 극대화’ 등을 내걸었던 혁신 방향에 대해 구성원으로부터 최종 동의를 받기 위해서다.강원대는 오는 14일 ‘글로컬대학30 본지정 실행계획서 공청회’를 열고 14일과 15일에 구성원 투표를 진행한다. 투표권은 전체 교원과 직원에게 부여되며, 학생의 경우 대의원이 투표하는 방식이다. 투표결과는 학생·교수·교직원의 투표율이 각각 50%를 넘고 찬성률도 50%가 넘었을 때 세 주체의 찬성률로 결정한다. 세 주체의 찬성률을 모두 더해 평균을 냈을 때 60%가 넘으면 글로컬대학 사업을 계속 추진한다. 반대표가 많이 나온 경우에는 교무회의와 대학평의회에서 논의할 계획이다.부산대는 지난 6일 구성원을 대상으로 부산교대와의 통합 추진 설명회를 열고 7일과 8일 온라인 설문조사 시스템 통해 투표를 진행했다. 투표를 통해 통합을 전제로 한 글로컬대학 사업에 대한 구성원의 의견을 조사해 글로컬대학 사업과 향후 통합 추진 근거 자료로 활용한다. 투표권은 교수·학생·직원에게 모두 1표씩 부여된다.안동대도 11일부터 15일 사이에 구성원 투표를 진행한다. 교수·직원·학생 모두 1인 1표씩을 갖게 되며, 투표에서 반대표가 많이 나오는 경우 이에 대한 설득 작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충북대도 오는 19일에 교수·학생·직원을 대상으로 ‘대학통합을 전제로 한 글로컬대학30 추진 찬반투표’를 진행한다. 이미 지난 5일에 교직원과 학생 등 전 구성원을 대상으로 글로컬대학30 추진 공개토론회를 열었고 총장이 직접 나서 교수·학생·직원과 소통했다. 충북대 구성원 전체가 1인 1표를 갖지만, 교수·직원·학생 세 주체를 분리해 투표 결과를 집계한다. 세 주체 중 두 주체의 찬성표가 많이 나오면 글로컬대학 사업을 계속 진행하지만, 반대표가 많으면 이후 의사결정을 다시 할 계획이다.충북대는 지난 5일 구성원을 대상으로 글로컬대학 사업 공개토론회를 진행했다. 9월 한 달 간 통합을 추진하는 대학들은 구성원 투표를 진행한다. 사진=충북대
투표 일정은 모두 정해졌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은 상황이다. 충북대와 통합을 전제로 글로컬대학에 예비선정된 한국교통대는 지난 5일 충북대에서 열린 공개토론회가 “‘1대1 수평적 통합과 현 구성원 최대 수혜’, ‘통합 교명의 미래지향적 협의 제정’이란 통합원칙을 어겼다”라며 “스스로 통합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고통 분담의 의지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부산대도 마찬가지다. 지난 5월 부산대 언론 3사가 부산교대와의 통합에 대해 부산대 구성원 57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3.7%가 대학 간 통합을 반대하기도 했다.
통합을 전제로 글로컬대학에 예비지정 된 대학들이 구성원 전체 투표까지 진행하는 이유는 사업 선정에 구성원의 동의를 끌어내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부산에서 열렸던 글로컬대학 공청회에서도 혁신안에 대한 구성원 간 합의에 대해 윤소영 교육부 지역인재정책과장은 “대학 구성원이 동의하지 못하는 혁신을 교육부가 밀어줄 수는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R&D 예산 삭감, 학생 연구자 가장 위태로워”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예산 삭감 규탄
“위로부터의 구조조정에서 가장 위태로운 존재는 비정규직이자 외부인력인 대학원생 학생연구원이다”,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총체적인 R&D 예산 삭감은 대학원생 학생연구원의 경제적 여건을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 정책이다.”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하 대학원생노조)은 정부의 R&D 예산 삭감 철회와 함께 대학원생 연구원을 위한 지원책을 요구하는 성명을 지난 6일 발표했다.대학원생노조는 이번 R&D 예산 삭감으로 인해 적은 임금에 시달리는 대학원생 연구원이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 삭감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윤석열 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학문후속세대 증진을 위해 힘쓰겠다고 약속했으나, 학술생태계에 대한 정부의 방침이 학문후속세대의 취업 기회와 임금 축소로 이어진다면, 글로벌 학술장이나 융합 지식의 발전은 성립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R&D 예산 삭감 철회와 함께 △국내 연구기관의 안정적 연구를 위한 공적 지원 △학생연구원의 불안정한 임금체계 개선 제도 마련 △학술 역량 제고 방안 마련 등을 요구했다.윤석열 정부는 지난 7월 정부출연 연구기관과 연구원의 R&D와 운영 예산을 대폭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국가 R&D 예산은 전년 대비 16.6% 수준에 달하는 5조2천억 원이 삭감됐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운영 예산은 전년 대비 11% 수준에 달하는 3천억 원이 삭감됐다. 이공계에서만 예산 삭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4일 <한겨레>에 따르면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내년 예산은 187억7천700만 원으로 올해 예산과 비교했을 때 52.2% 줄었다. 특히, 협동연구 관련 사업 예산은 올해 70억 원에서 내년 15억 원으로 크게 줄었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기고
졸속 ‘R&D 예산삭감’ 미래를 갉아먹는다2024년도 예산안 분야별 재원배분
보건z복지z고용242.9 (↑7.5%)일반z지방행정111.3 (↓0.8%)지난해 대비 증감율 (단위: 조 원)교육89.7 (↓6.9%)국방59.6 (↑4.5%)산업z중소기업z에너지27.3 (↑4.9%)SOC26.1 (↑4.6%)R&D25.9 (↓16.6%)
농림z수산z식품25.4 (↑4.1%)공공질서z안전24.3 (↑6.1%)환경12.6 (↑2.5%)문화z체육z관광8.7 (↑1.5%)외교z통일7.7 (↑19.5%)자료 : 기획재정부요즘 과학기술계에서는 정부의 R&D 예산 삭감이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단순 예산 삭감에 대한 반발(?)정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런데 R&D 예산 삭감이 가져올 파장을 꼼꼼히 살펴보면 단순히 과학기술계의 문제를 넘어서,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우려까지 이어지게 된다. 2024년도 예산안에서는 R&D 예산의 삭감폭이 16.6%로 가장 크다.
더 우려되는 것은 R&D 예산의 삭감이 주로 연구에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순수 연구비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R&D 예산의 효율화에 대해서는 백번 공감을 한다.하지만 이러한 효율화의 명목 으로 하는 예산 삭감이 사실상 연구비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대한민국 군대의 효율화를 핑계로 ‘전투병력’만 대폭 줄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예산 삭감의 배경에는 순수 연구비 예산이 손대기 가장 쉬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산의 효율화를 위해서는 직접적인 연구비 삭감이 아니라, R&D 행정의 효율화와 예산이 적절한 곳에 쓰여지고 있는지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먼저 진행돼야 할 것이다.예를 들어, 전체 R&D 예산 중 12조원의 예산을 각 부처에 속해있는 20개가 넘는 연구관리 전문기관이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연구관리 전문기관이 각 부처의 담장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데, 이들 기관의 효율적 운영이 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난 코로나19의 사태로 몇개의 토픽에 집중되었던 너무 많은 R&D 예산에 대한 고려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공항과 같은 SOC 등은 올해 짓지 않고, 1∼2년 늦어진다고 해도 일시적으로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대한민국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하지만, R&D 예산의 경우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이것은 마치 가정의 가계 긴축을 위해, 집의 리모델링 등의 비용은 증액하면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교육과 먹거리 비용을 대폭 삭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하겠다. 단 한 번의 예산 삭감이라도, R&D 예산의 삭감은 단순히 정부 출연 연구소와 대학의 연구위축뿐만 아니라, 대학원생과 연구원 수를 직접적으로 감축시킨다.
결국, 대한민국 과학기술 미래 인력의 양성을 위축시켜 대한민국의 연구 생태계를 완전히 망가트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임펙트를 잘 알고 있기에 지금까지 R&D 예산을 한번 감액도 없이 꾸준히 증액해온 것이다.정부의 R&D 예산 삭감과 함께 정부가 강조하는 R&D 정책의 하나는 국제 공동연구이다. 수 십년간에 쌓아온 과학기술 연구의 자산은 국제공동연구 등을 통해 서로 보완되며 더욱 발전시킬 수는 있지만, 타 기술이나 자원처럼 외국에서 수입해 들여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요즘과 같이 과학기술의 국가 안보의 중요한 자산으로 여기지는 새로운 시대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R&D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대한민국의 R&D 강화를 외면한 채, 국제공동연구를 통한 과학기술의 자산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은, 마치 옆집 공부 잘하는 친구의 공부 방법만을 배워오고 정작 나는 공부를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겠다.대한민국은 과학기술의 지속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지금의 세계를 리드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반도체, 자동차, 원자력발전 등의 기술 그 밑바탕에는 정부의 지속적인 R&D 투자와 이로 인한 연구인력의 지속적인 확충이 있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하지만, 이번 R&D 예산의 삭감으로 인한 연구의 위축과 연구인력 양성의 위축으로 무너질 국가의 연구개발 생태계는 몇 년 후 그 예산을 증액한다고 해서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번 무너진 연구 생태계는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망가지게 되고,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이었던 과학기술의 경쟁력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국가 R&D 예산의 대폭 삭감으로 인한 연구비의 삭감이야말로, 현 정부가 이야기하는 미래를 갉아먹는 정책이라고 확언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수 십년간 쌓아온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자산을 한순간에 상실케 하는 정책이라고 하겠다. 정부와 국회는 지금이라도 대한민국 미래의 위기를 막기 위해 백 번이고 R&D 예산 삭감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
송지준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학부를 마치고, 미국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에서 구조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의대에서 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생화학, 후성유전학, 분자생물학, 구조생물학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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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문인을 파고드는 한문학을 연구하는 이유
천하제일연구자대회
51 조선 후기 주변부 문인의 한문 산문 연구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
그동안 우리 학계가 ‘한문학’을 ‘근대의 분과 학문’으로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거대 담론에 집중해, 정작 기초적인 작업을 소홀히 했던 것은 아닐까.
광범위하게 한문 문헌을 읽고 정리하여 그 계보를 밝히는 작업은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되었던 듯하다.흔히 한문학은 문·사·철을 아우르는 학문이라고 일컫는다. ‘한문학’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한문학’이라는 학문이 포괄적 성격을 지니며, 동시에 ‘근대의 분과 학문’으로서는 다소 모호한 성격을 띠고 있다는 뜻이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지적 탐구의 성과는 대부분 ‘한문’으로 기록되었다. ‘한문’으로 기술되는 지적 활동이 곧 ‘학문’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통 시대에 ‘한문학’이라는 말은 굳이 필요치 않았다. 그렇다면 ‘한문학’이라는 용어는 ‘한문’이라는 표기 수단이 지적 세계에서 헤게모니를 잃기 시작하면서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 초반에 탄생한 ‘한문학’은 한편으로는 다카하시 토오루(高橋亨)로 대표되는 일본 제국주의 ‘조선학’과 대결하며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고투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내부의 ‘순국문주의’와 논쟁하며 제도권 내 학문으로서 정착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처럼 ‘한문학’은 지난한 세월을 거쳐 ‘근대의 분과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문학’의 성격과 정체성에 대해서는 학계 내에서 명확하게 합의된 바가 없는 듯하다.한문학의 ‘포괄성’과 ‘모호함’에 이끌리다
한문학 연구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한문학의 형성 과정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현 학계의 문제점을 진단하거나 한문학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한문학’이 지닌 ‘포괄성’과 ‘모호함’이 바로 나를 이 학문으로 끌어들인 계기이자, 현재 내가 한 사람의 학자로서 학문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한 요소이기 때문이다.나는 학부 시절에 정치외교학을 전공하여 동서양 정치사상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던 중, 우연한 계기로 한문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그 당시 특히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맹자(孟子)」였다. 비유나 인용을 다양하게 활용한 「맹자」의 언어적 수사는 한문 고전을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처음에는 다양한 주제의 한문 원전을 읽는 일 자체에 매력을 느꼈다.나는 석사논문을 쓰게 되면서 비로소 학문의 방향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문학은 문·사·철을 아우른다고 하지만, 사실 한문학계 연구의 중심은 문, 즉 ‘문학’에 맞추어져 있다. 석사논문 주제를 고민할 당시의 나는 이러한 ‘문학’ 중심의 연구 경향에 모종의 반발심을 갖고 있었다. 근대 이전의 한문산문은 실용적 성격의 글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한시도 정치나 교유의 장에서 지어진 경우가 꽤 많았다. 따라서 작가적 개성이나 문예미를 밝히는 데 초점을 두는 연구로는 전근대 한문 문헌의 의미를 제대로 밝힐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편, 문예이론 분석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개인적인 학문 취향도 ‘문학’에 대한 반발심을 갖는 데 한몫을 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석사논문은 ‘일기(日記)’를 주제로 하여 전근대 지식인의 ‘기록의식’이라는 문제를 다루었다.
반발했던 ‘문학’으로 다시 돌아오다
그런데 이후 박사논문은 ‘문학’을 키워드로 한 「서파(西陂) 유희(柳僖) 문학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표하게 되었다. 이러한 주제를 정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문학’ 중심 연구 경향에 대한 나의 반발심이 학계 연구 동향을 세밀하게 파악하지 못한 데에서 기인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문학’ 연구가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석사논문 집필 당시의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그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한문으로 된 여러 문체를 두루 장악하고 있어야 한문학을 거시적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에 나는 한명의 문인(文人)을 대상으로 다양한 문체를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박사논문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대상 인물로 선택한 문인이 바로 ‘서파 유희’였다.「물명고(物名考)」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유희(1773~1837)는, 경학·문학·역사학·천문학·수리학·음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친 저술을 모아 「문통」이라는 저작을 남겼다. 「문통」은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전근대 시기 한문 저술의 다양한 양상을 담고 있다. 이처럼 다양성을 지닌 「문통」은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문통」에 수록된 여러 문체의 글을 종합적으로 연구해야겠다고 결심했다.박사논문의 연구방법론을 고민하고 있던 차에, 그 무렵 일본에서 발간된 『日本「文」学学史』제1책(2015)과 제2책(2017)이 나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 책은 ‘Literature’의 번역어인 ‘문학(文學)’이 아니라, 전근대 시기 ‘文’이라는 말에 내포된 다양한 의미에 주목하여 일본의 문학사를 재조망한 책이다. 구체적으로 이 책은 ‘文의 개념’, ‘文과 사회’, ‘文이 만들어지는 장(場)’, ‘사회에서 文의 기능과 문인의 활동’ 등을 키워드로 일본 문학의 흐름을 고찰했다. 나는 이 책에서 힌트를 얻어, 언문(諺文)·물명(物名)·여성·불교 등 몇 개의 키워드를 설정하고 유희의 사상·학문과 시문 창작의 상호 영향 관계를 규명했다.유희(1773~1837)는 경학·문학·역사학·천문학·수리학·음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친 저술을 모아 문통이라는 저작을 남겼다. 문통은 내용면에서나 형식면에서나 전근대 시기 한문 저술의 다양한 양상을 담고 있다. 문통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 소장하고있 다. (사진 왼쪽)
오른쪽 사진은 1931년 2월 23일 <동아일보> 4면 「조선고서해제: 문통」거대 담론이 놓칠 수 있는 다양성
박사논문을 쓰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첫째, 시대적 필요성에 의해 제기된 거대 담론이 개별 문인이 지닌 다양한 모습을 가릴 수 있다는 점이다. 유희는 시대적 필요성에 의해 호명되고 발굴된 작가 중의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광주·용인을 기반으로 생활했으며, 그의 저술은 당대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정인보의 「조선고서해제(朝鮮古書解題)」에서 「「문통」의 가치를 언급하고서부터, 유희는 비로소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정인보의 「조선고서해제」는 일제에 맞서 우리 민족의 주체성을 확인하려는 작업의 일환이었다. 정인보가 유희에 대해 “所値 마침 朝鮮學의 潜興期였었으므로 國故에 대한 열쇠 한둘이 아니니, 朝鮮語訓釋을 附한 物名類考, 詩物名考와 訓民正音의 奧義를 探索한 諺文志 等이 다 이것이다” 라고 평가한 것 또한, 민족 주체성을 확인하려는 작업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우리나라 학계에서 실학이 대두하면서, 유희는 대표적인 실학자 중의 한 명으로서 거론되었다.하지만 「문통」을 살펴보면, ‘실학자’라는 말로는 유희의 다기한 학문·사상을 표현할 수 없다. 유희는 불교에도 관심을 갖고 선가의 「양각직일편(兩脚直一篇)」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한시를 지었으며, 원중도(遠中道)의 「「선문본초보(禪門本草補)」에서 영향을 받은 「희보본초(戱補本草)」를 짓기도 했다. 또 경전을 주해하면서 자신의 천문학적 지식에 근거해 성리학의 주요 개념을 풀이하기도 했다. 즉 ‘실학’에서 한 걸음 떨어져 유희의 저술에 밀착하여 그의 학문·사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여전히 진보적 문인에게 집중돼 있지 않았나
둘째, 한문학 분야 연구자의 관심이 여전히 특정 인물군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유희의 집안은 소론계이며, 유희는 자신의 학문 연원이 ‘파로(坡魯)’, 즉 파주(坡州) 우계(牛溪)의 성혼(成渾)과 노서(魯西) 윤선거(尹宣擧)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유희는 윤선거의 아들이자 소론의 영수인 윤증(尹拯)을 사숙했으며, 윤증의 후손인 윤광안(尹光顏)을 스승으로 섬겼다. 유희처럼 ‘파로’를 학문 연원으로 삼은 소론계 문인들은 윤증의 학문을 이어받아 성리학 연구에 힘썼는데, 이들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강화학파나 서유구 집안 등, 다른 소론계 문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내재적 발전론이나 근대 중심주의에 대한 학계 내 비판이 상당히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구자들의 관심은 ‘진보적’인 성향을 갖는 문인들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셋째, 주변부 문인의 글쓰기 양태를 연구하는 작업이 조선시대 문화사·지성사 연구에 일조한다는 점이다. 유희는 ‘송두신문(送痘神文)’, ‘신루상량문(蜃樓上樑文)’ 등의 독특한 글을 지었다. 그런데 ‘송두신문’은 중국·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우리나라에서 유독 유행한 글쓰기 양식이다. ‘송두신문’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숙종이 두창에 걸렸다가 나은 이후 우리나라 사대부 사이에서 두창신을 섬기는 주술 행위의 대체물로써 ‘송두신문’이 지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또 ‘신루상량문(蜃樓上樑文)’의 전개 양상을 살피다 보면, 갑오개혁 때 과거제가 폐지된 이후 여전히 전통적 학문의 영광을 꿈꾸던 향촌 지식인들 사이에서 까치집·신기루 등을 소재로 한 가상의 상량문이 창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당대 정계·학계의 중심부에서 벗어나 있는 인물이 남긴 글을 통해, 조선 후기 사회의 모습을 다각도로 조명할 수 있다.소장학자에게는 흥미로운 논쟁이 없다?
박사논문 집필 이후 나는 두 가지 방향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첫째, 윤광소(尹光紹)·강필효(姜必孝) 등 ‘파로’를 학문 연원으로 삼은 소론계 문인들의 계보와 학문·사상을 추적하는 연구이다. 둘째, 주변부 문인들이 남긴 다양한 문체의 산생 배경과 전개 양상을 분석하여 조선후기 사회상을 밝히는 연구이다. 나는 이 두 가지 범주에 해당하는 한문 문헌을 정리하고 개별 문헌의 의미를 밝히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이런 나의 연구는 거시적 담론이나 뚜렷한 쟁점을 지니고 있지 않다. ‘소장학자들에게는 흥미로운 논쟁이 없다’는 선배 학자들의 우려 섞인 탄식에, 나 역시 원인 제공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나 자신도 내 연구에 ‘논쟁성’이 부족하다는 점에 대해 반성과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그동안 우리 학계가 ‘한문학’을 ‘근대의 분과 학문’으로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거대 담론에 집중하여, 정작 기초적인 작업을 소홀히 했던 것은 아닐까. 광범위하게 한문 문헌을 읽고 정리하여 그 계보를 밝히는 작업은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되었던 듯하다. 앞으로 나의 연구가 한문학의 토대 구축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오보라
고려대 한문학과 강사·퇴계학연구원 연구원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국어국문학과에서 「申絢의 『日錄』 연구: 기록의식을 중심으로」로 석사학위를, 「西陂 柳僖文學 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원, 연세대 박사후연구원,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등을 지냈다. 조선후기 한문산문을 당대의 정치적·사회적 배경과 관련지어 고찰하여, 글쓰기 양식과 사회 현상의 영향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西陂柳僖物名考」의 체계 및 의의 재탐색」, 「조선 후기 送痘神文의 창작 양상」, 「素谷 尹光紹 孤舟錄의 저술 배경 및 자기서사 양상」 등이 있다. 번역서로 『승정원일기』, 『현주집(玄洲集)』, 『산골 농부로 태어난 책벌레 (서파 유희 산문선)』 등이 있다. achwob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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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인공지능의 미래와 지혜의 알고리즘』(필로소픽 | 304쪽) 쓴 석봉래 미국 앨버니아대 교수
▶1면에서 이어짐
이 책의 에필로그인 ‘인공지능의 불교와 불교의 인공지능’에는 석봉래 미국 앨버니아대 교수(철학과)가 이 책을 집필한 계기 세 가지가 나온다. 첫째, 신경증(노이로제)에 걸린 인공지능 체계 할(HAL 9000)을 알면서부터다. 이 인공지능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 등장한다. 둘째, 백남준 작가의 「TV 부처」를 직접 본 경험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부처는 TV를 보며, 정확히 말한다면 TV를 마주하며 명상에 잠기고, 그 모습이 다시 TV 스크린에 나타난다.” 셋째, 샤오-우엔 혼 박사(마이크로스프트 부사장)의 강연이다. 인공지능은 궁극적으로 지혜의 단계를 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최고의 지혜 단계로 나아가는 인공지능과 깨달음의 지혜를 기반으로 하는 불교가 이 책에서 만난 것이다.”그렇다면 석 교수의 종교가 불교일까? 아니다. “철학에서 나의 세부 전공은 심리철학 그리고 인지철학이기 때문에 마음을 깊이 다루는 불교적 전통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교 철학에서 보여주는 마음과 의식에 대한 분석은 매우 치밀하고 깊이가 있다. 불교는 마음과 지혜의 종교라고 생각하고 있다.” 석 교수는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어 성불한다는 것은 결국 이 마음의 궁극적인 의식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불교에서 매우 중요하다” 라며 “마찬가지로 심리철학에서도 마음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목표로 하게 되는데, 그런 과정에서 여러 가지 다른 접근법과 입장을 공부하게 된다”라고 답했다.
불교는 열린 디지털, 붓다 알고리즘을 위해책에는 “불교는 열린 디지털”, “알고리즘에 집착하지 않는 알고리즘”, “붓다 알고리즘은 특정한 알고리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전체적인 조망을 주는 알고리즘 철학” 등의 표현이 나온다. 비판적·메타적 사고를 뜻하는 것일까? “여기서 디지털하다는 것은 불연 속성을 의미한다. 즉 아날로그는 연속적 양이고 디지털은 불연속적 양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와 고통은 결국에는 ‘연속성’에 대한 집착에서 나온다. 자아가 계속 존재한다는 느낌 그리고 세상이 연속적으로 존재하면서 자아의 욕망을 만족시킬 것이라는 희망 등등이 나에게 감당할 수“반드시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지는 않겠지만 사람의 인지 능력에 버금가는 혹은 어떤 분야에서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그런 인지 능력을 갖는 인공지능이 나타날 수 있다.”
석봉래 미국 앨버니아대 교수(철학과)는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리조나대에서 석·박사를 했다. 신경과학 박사 후 과정을 거쳤다. 『체화된 도덕 심리학과 유교철학』, 『수치의 도덕 심리학: 수치 결여의 수치』 등을 집필했고, 『몸의 인지과학』, 『물질과 의식』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사진=석봉래
없는 번뇌와 업(業)을 만들어 낸다.”
특히 석 교수는 “붓다 알고리즘은 부처가 제시한 깨달음의 길을 비유한 것”이라며 “기계적 지능이 창의적이며 비판적인 지능으로 도약하는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미래의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방향성을 제시했다. “현재의 인공지능이 차세대 인공지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알고리즘에 갇혀 기계 학습과 연산을 반복하는 ‘확률론적 앵무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마치 습관과 편견을 벗어나는 불교적 깨달음의 과정처럼, 알고리즘을 따르면서도 그것을 넘어서서 알고리즘 자체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정말 다른 차원의 반성적 의식을 갖게 될까? “인공지능은 인간과 상호 작용하고 소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나 개념을 처리하고 인간의 사고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 내부적 정보 처리 과정은 인간의 인지 과정과는 유사하지 않을 수 있고 또 반드시 유사할 필요도 없다.” 석 교수는 “현재의 인공지능 발전과 사고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인공지능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사고 능력을 지닌 체계가 될 것이라고 예상되고 그것이 인간의 사고 능력을 보충하거나 그것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라며 “반드시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지는 않겠지만 사람의 인지 능력에 버금가는 혹은 어떤 분야에서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그런 인지 능력을 갖는 인공지능이 나타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인공지능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사용자와 젠봇의 전인격적 만남과 집중 『인공지능의 미래와 지혜의 알고리즘』에서 흥미로웠던 대목은 ‘젠봇(선봇 혹은 명상봇)’이었다. 과연 어떻게 진화할까? “여기서 젠봇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과 대화를 나누면서 명상 지도와 문답을 하는 수준의 인공지능 체계를 말한다.” 석교수는 호흡‧맥박‧뇌파 등 생체 정보가 추가되면 젠봇이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메타버스 같은 가상현실을 통해 참선이나 명상 시설을 만드는 것도 언급했다. 다만, 사용자의 태도가 중요하다. “명상은 전인격적 집중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사용자가 어떻게 젠봇에 전인격적 만남이나 집중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아무리 젠봇의 기능이 뛰어나도 그 인공지능 체계를 대하는 사용자의 자세가 진실되고 진지하지 않다면 인공지능을 통한 명상이나 수양은 효과나 의미가 없는 것이다.”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여성과학기술인 이야기 ㉗ 김희연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틈새시장’ 공략과 공정의 ‘패키지화’ 촉매 100% 국산화의 꿈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이 시대 여성과학인 소개 캠페인 ‘She Did it’을 펼치고 있다. 〈교수신문〉은 여성과학 기술인이 본인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경력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WISET과 공동으로 소개한다. 여성과학기술인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생생한 목소리가 교수 사회에 진심을 담아 전달되길 기대한다. 스물일곱 번째는 김희연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이다.
‘촉매’라는 단어는 일상에서 쉽게 사용되지만, 촉매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촉매란 “반응 과정에서 소모되지 않으면서 반응 속도를 높이는 물질”로 정의된다. 합성섬유‧플라스틱‧비닐을 만들 때 사용되며 와인‧맥주를 발효할 때 사용하는 효소도 촉매다.이처럼 우리 일상과 깊이 엮여 있는 촉매와 촉매 공정은 산업으로서도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인다. 그러나 촉매 공정의 국산화 비율은 5%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김희연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를 극복하고자 다양한 촉매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촉매·반응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 박사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 입사해 기상 공정기반 촉매 제조기술을 기업에 이전하며 기술 상용화를 이끌었다. 과기부의 ‘2022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도 이름이 올랐다.반도체 공정을 촉매 제조에 가져온 ‘역발상’
국내에서 자체 개발한 촉매 원천기술의 기업 이전에 대해 그는 ‘두 가지 전략’이 있었다고 답했다. “첫 번째는 중소규모 기업에서도 제품 생산이 쉽도록 촉매와 그 제조 공정을 ‘패키지화’한 것이고, 두 번째는 우리만의 독창적 기술로 기존에 없던 ‘틈새시장’을 공략한 것이다.” 비용과 시간 측면에서 유리한 해외 공정과 촉매 제품을 넘어선 열쇠였다.“촉매 분야는 20세기 초부터 연구개발이 진행돼와서 기술 성숙도가 매우 높다. 그러다 보니 촉매 연구자들은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혁신적인 기술 개발은 물론 비용 절감 목표까지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고난도의 숙제를 안고 있다.” 김 박사는 최근 나노(㎚) 단위의 기존 촉매 규모에서 원자 단위(Å)의 촉매를 설계하고 합성하는 기술이 개발됐고 더 나아가, 계산과학과 원자 단위 분석 기술을 도입해 촉매반응 경로를 규명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전체 촉매의 80% 이상은 표면에 금속 입자가분산된 ‘불균일계 촉매’다. 불균일계 촉매는 분산도가 떨어지고 쉽게 비활성되는 것이 촉매 공정의 한계가 되기도 한다. 김 박사는 이러한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촉매 제조에 ‘기체 상태’인 전구체를 사용했다. “반도체 박막 제조에 주로 적용되던 ‘화학기상증착(CVD)’ 공정을 촉매 제조에 적용한 것이다. 이 공정으로 제조한 촉매는 연료전지 전극 성능 평가에서 기존 상용촉매보다 월등히 뛰어난 성능과 내구성을 보였다.” 그는 이 기술의 독창성을 인정받아 특허청의 ‘특허경비지원사업’에 선정돼 해외 4개국에 특허를 출원했다.
전문가들 간 인간관계가 연구의 바탕김 박사는 2015년 무렵 연료전지용 백금 촉매의 내구성 저하 문제를 개선한 코어쉘 구조의 백금 촉매도 개발했다. “기존에는 주로 촉매지지체로 사용되던 탄소(그래핀)를 엉뚱하게도 촉매의 표면에 코팅해 봤다. 일종의 ‘역발상’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연료전지 촉매의 내구성 저하 문제가 부상하면서 관련 기업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조준태 기자 aim@kyosu.net김희연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충남대에서 학사, 포스텍에서 석사, 서울대에서 박사를 마쳤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듬해인 2004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 입사해 다양한 촉매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사진=WISET
2023년 제2회
한국출판편집자상 공모한국 출판계에서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편집자들의 사기 향상 및 편집 업무에 대한 자부심을 높이며, 출판문화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재)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이 주관하는 제2회 한국출판편집자상을 공모합니다.가. 일 정① 신 청 기 간 : 23. 08. 28.(월) 09:00 ~ 23. 09. 22.(금) 18:00② 수상자 발표 : 23. 11. 17.(금) 예정③ 시상식 일정 : 23. 11. 23.(목), 대한출판문화협회 회관 4층 강당나. 신청 개요① 응모자격 : 출판 편집 경력 15년 이상인 편집자② 수상 대상자 : 3인 이내③ 상 금 : 대상 1,000만원, 금상 500만원④ 심사제외 대상- 현재 출판사 대표인 자- 현재 본 재단 임원(이사,감사)이 대표로 있는 출판사 직원다. 신청방법① 재단 홈페이지(www.tkpf.or.kr) 공지사항에 공개된 구글폼 양식으로온라인 신청서 작성 및 서류제출 (신청기간에만 작성가능)② 주요 출판 편집물을 등기우편으로 발송 (접수 마감 당일 소인분까지 유효)③ 제출서류- 개인정보 수집·이용 동의서- 2023년 제2회 한국출판편집자상 신청 및 추천서- 출판 편집 관련 자기소개서(자유양식 / 분량 제한 없음)-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출판사 근무경력 확인용)- 주요 출판 편집물 3종 내외(재단 사무국으로 발송)※ 구글폼 온라인 신청서 작성 후 발송라. 기타사항① 출판 편집물 발송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봉로 95, 101동 201호 (견지동, 대성스카이렉스)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 한국출판편집자상 담당자② 선정발표 후 결격 사유 발생 시 선정 사실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③ 접수된 도서는 반환하지 않으며, 재단의 진흥사업에 활용됩니다.재단법인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
철학은 시가 될 수 있을까
리처드 로티 지음 | 박병기·김은미 옮김 | 씨아이알(CIR) | 150쪽철학이란,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진리란 무엇일까? 언어철학에 기반을 두고 연구를 시작한 영미철학자인 저자는 철학이란 한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언어를 통해 사유하고, 삶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이라 이야기 한다. 즉 로티는 진리를 철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에서 언어적 변주를 통해서 생성되는 것이라고 본다.
우치다 다쓰루의 레비나스 시간론
우치다 다쓰루 지음 | 박동섭 옮김 | 갈라파고스 | 480쪽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1906~1995). 그의 대표작 『시간과 타자』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뒤 파리 철학학원에서 이뤄진 네 차례 강연(1946~1947)을 토대로 엮은 책이다. 『시간과 타자』를 일본의 지성인인 저자가 “글자 하나하나의 뜻을 충실히 새기면서” 6년간 독해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반도체를 사랑한 남자
박준영 지음 | 북루덴스 | 276쪽이 책은 삼성전자 반도체가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벌인 치열하고도 ‘위대한 여정’과 그 과정에서 조직구성원들이 어떻게 혁신에 발맞춰왔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한때는 삼성전자 반도체인이었고 현재는 문화인류학 연구자인 저자의 애정 가득하면서도 냉정한 판단은 주목할 만하다.동아시아 영화도시를 걷는 여성들
남승석 지음 | 갈무리 | 288쪽영화는 고통의 세계사를 형상화하는 예술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배우가 도시를 횡단하며 산책할 때 영화도시라는 무빙 이미지가 생산된다. 여성 산책자로서의 여성 배우는 영화도시에 대한 젠더화된 서사적 지도를 새롭게 그리는 존재이다. 이 책은 여성 산책자에 대한 예술 철학적 연구로 확장하려 시도한다.현대성과 공공성
문성진 지음 | 박영사 | 126쪽현대화 과정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촉진하고 물질적 풍요와 부의 기회를 제공했지만 이에 못지않게 심각한 사회 병리적 문제들을 초래했다. 자본주의 시장의 경쟁과 효율성의 논리 속에서 문화적 의미가 상실되고, 사회질서의 규범적 정당성이 훼손되었으며, 개인의 고유한 인격성이 파괴되는 등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적 문제들이 대두된다.과학과 가치
이중원 외 8인 지음 | 이음 | 340쪽사회적 가치나 윤리에 초연한, 오롯이 그 자신만의 객관적 ‘과학’이 존재할 수 있을까. 과학이 초래한 문제에 대해 정작 과학이 답할 수 없는 상태, 우리 시대의 ‘과학’은 이런 사태에 봉착해 있다. 이 책은 ‘과학’과 ‘가치’의 문제를 역사적, 철학적으로 되짚어 보면서 우리 시대에 필요한 과학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새로운 과학·기술 이해의 궤적을 안내하는 길라잡이가 돼준다.베를린이 역사를 기억하는 법 1, 2
장남주 지음 | 푸른역사 | 732쪽20세기 전반에는 1·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의 수도였고, 후반에는 동독의 수도로서 냉전과 분단의 치열한 현장이었던,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도시 베를린. 그만큼 베를린은 독일의 과거사가 거듭 다르게 읽히는 의미전환과 기억문화의 이전이 계속되는 곳이다. 동시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기념물만 1만 2천 개 이상인, 기억하는 도시이기도 하다.질 들뢰즈의 철학
대니얼 W. 스미스 지음 | 박인성 옮김 | 그린비 | 912쪽키스 안셀-피어슨은 대니얼 W. 스미스의 책 『Essays on Deleuze』를 두고 “매우 유쾌할 정도로 풍부한 시론들을 담고 있는 책이다. 시론들이 하나같이 탁월하다. 적어도 영어권 세계에서 대니얼 스미스만큼 들뢰즈의 철학적 독창성을 잘 밝힌 사람은 없다”라고 평한 바 있다. 그린비는 들뢰즈 연구의 이정표로 불려 온 『Essays on Deleuze』를 발간했다.혐오하는 민주주의
박상훈 지음 | 후마니타스 | 324쪽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이 당원 없는 정당을 걱정하는 동안, 한국에서는 전 국민의 20퍼센트, 1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정당에 가입하고, 의원 1인당 미국의 21배, 프랑스의 49배, 영국의 172배, 독일의 37배, 일본의 49배 많은 법안을 통과·반영·성립시키고 있다. 당원과 법안의 폭증과 정치 실종이 공존하는 한국 정치의 역설은 어떻게 가능한가.역자가 말하다_『국민의 경계: 오키나와, 아이누, 타이완, 조선』 오구마 에이지(小熊英二) 지음 | 전성곤 옮김 | 소명출판 | 949쪽
‘유색의 제국론’ 새로운 유토피아인가, 제국의 부활인가오구마 에이지의 대표 저서 중 하나인 이 책은 1998년에 간행됐다. 그렇지만 여전히 ‘일본의 제국주의’ 문제는 형태를 달리하면서 지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내용이 오래된 것이라고만 볼 수 없다. 20여 년 전에 유행했던 탈식민주의 이론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며, 오히려 현재 부상하는 세틀러(settler) 콜로니얼리즘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의 책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책에서는 ‘일본인’이란 누구인가를 묻고, ‘일본인’이 어떻게 ‘국민’이 돼 가는가를 전전과 전후의 역사적 변화 과정을 통
지속되는 제국주의 매체로서 ‘포섭과 배제’
정치적 언어에 지배되는 생활식민주의와 거리두기해 설명해 준다.
이번 역서의 내용을 보면 저자는 이미 오래전에 오늘날을 예측했었고, 그 속에 울리는 외침은 일본 제국주의의 문제뿐만 아니라 ‘인식의 식민지’라는 부분까지 포함하고 있어 지금 번역돼 나온 것이 오히려 더 시사성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식민지 지배 개념을 단순하게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관념으로서 ‘지배=일본제국’과 ‘피지배=오키나와・아이누・타이완・조선’이라는 이분법에 빠지지 않고 이 둘 자체를 상대화하는 안목을 제공해 준다.이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인은 전전에 형성된 ‘경계, 식민지, 서구’라는 삼중 구조 속에서 네이션 아이덴티티를 갖게 되었고, 전후에는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지배 아래 일본제국이 피식민자로 자리매김하는 양상 속에서 ‘네셔널리티’를 상징천황과 연결하는 방식으로, 혁신과 평화라는 표어에 내셔널리즘을 담아 ‘포스트 제국주의’를 재구성했음을 드러내 준다. 호칭만 바뀐 ‘제국주의 지배’의 연속이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생활식민지에 대한 권력의 효용 장치로서 제도, 정책이라는 시스템을 동원했다. 시스템이란 생활 세계를 제국주의에 적용시키려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 책에서는 그것이 신화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신화성을 의심하는 것, 그것이 형성되는 프로세스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것이 자유의 박탈로 나타나고 개개인의 평등적 요구를 착취하는 ‘몰(沒)역사’를 주입하고 ‘몰주체성’을 가져왔다. 그리하여 일본 제국주의는 이질적 세계관을 가진 피식민자를 봉쇄했다. 이것은 ‘아시아의 동쪽’에 위치한 일본이 ‘동아시아’로서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고, 동시에 동아시아에 있으면서 아시아가 아닌 천황제 국가의 유토피아라는 ‘유색의 제국’을 선전했다. 그것은 일본을 기준에 두고 일본화, 일본인화의 완전한 동화를 히노마루(일장기) 깃발 아래로 결집시켰다.
그렇지만 일본은 일본인이 아닌 일본인을 재생산하고 차별을 통해 끊임없이 착취와 예속을 강요했다. 일본은 전후에도 역시 국민국가를 구축하기 위해 전문화, 합리화, 의사결정의 균질화를 내걸고 민주주의를 외쳤다.
이것이 바로 전전에 시행했던 제국주의적 정치적 언어의 다른 표현으로서의 생활식민지 지배였다. 지배자의 편향적 논리라는 점을 은폐시키고, 이를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인식의 봉쇄라는 의미에서 두개의 포섭인 것이다. 은폐와 은폐를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포섭을 통해 다시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이에 차이를 갖는 비일본인을 재생산하면서 배제하는 이중성을 갖게 된다. 포섭 개념도 인식의 폭력을 동원하는 것이었고, 그것이 일상과 생활을 지배하는 식민지 논리였음을 잘 보여준다.이 책에서는 두 개의 포섭 방식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일본인의 경계 문제를 통해 설명하고자 했다. 이 문맥을 한국인의 경계로 중첩시켜 보면 ‘한국인’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의 경계 또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탈식민주의의 패러다임을 재고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동아시아 평화 문제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오히려 동아시아 평화 담론 속에 내재된 포섭과 배제라는 논리에 헤게모니의 재편이 어떻게 전개되고, 다시 또 다른 인식의 봉쇄가 파생되지는 않는지를 고려해야 함을 일깨워 준다.
전성곤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HK교수서평_『사회학으로의 초대』 피터 L. 버거 지음 | 김광기 옮김 | 296쪽 | 문예출판사
범죄심리학자는 있는데, ‘범죄사회학자’는 왜 없을까?이 시대를 심리학의 시대라고 한다. 심리학자가 국민 멘토가 되어 강연도 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출연한다. 흉악한 범죄가 발생하면 기자들은 범죄심리학자에게 먼저 달려가서 인터뷰한다. 범죄심리학자는 범죄를 다루는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권위 있는 해석을 제공한다.
그런데 범죄사회학자는 찾아볼 수 없다. “묻지마 범죄는 정신질환자에 의해 저질러진다.” 범죄자 개인에게서 동기를 찾을 수 없으니 그것은 정신질환의 문제가 돼 버린다. 이제 몇 남아 있지 않은 서점에 가보면 ‘~~~ 심리학’이란 제목을 달모든 문제의 원인·책임을 개인으로 환원해 설명
심리학 시대에 필요한 사회학적 시각과 상상력은 온갖 종류의 심리학 서적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멋지게 진열되어 있으나, 사회학 서적들은 쉽게 찾기 어려운 구석에 몇 권이 진열돼 있을 뿐이다.
되돌아보면 필자는 사회의 갈등과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많은 이들의 마음을 열광시켰던 사회학의 전성기에 사회학으로 초대받았다. 그 초대에 응했고, 지금까지 사회학을 사랑하며 연구하고 있다.2017년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사회학의 거장 피터 버거(1929∼2017)가 사회학 입문서로 쓴 『사회학으로의 초대』는 1963년에 출판됐다. 이 책은 1977년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에 의해 처음 우리말로 옮겨져 소개됐다.1995년에 사회학 전공자 이상률에 의해 두 번째로 번역돼 출판됐다. 올해 이 책이 버거의 제자인 김광기 경북대 교수(일반사회교육과)에 의해 세 번째로 번역되어 『사회학으로의 초대: 인간주의적 시각』이라는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이 세 번씩이나 번역되어 출판될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염려에 불과하다. 책을 손에 잡고 책장을 넘기면 불과 몇 쪽 지나지 않아 곧바로 그 안에 빠져들어 수시로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다른 사회학 개론서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이 책의 그런 매력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회학도에게 사회학 길잡이 역할을 수행해왔던 원동력이었다는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사회학이라는 학문의 길잡이로서 이 책의 가치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이 책은 너무나 훌륭하다.
필자는 모두 심리학의 시대라고 호들갑을 떠는 이 시대에 사회학으로의 초대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다른 누구도 아닌 김광기 교수의 번역으로 나온 이 책이 바로 지금 여기서 너무나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버거를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는 번역자의 정확성, 그리고 부드럽게 흘러가는 문체와 적실한 용어 선택이 분명 새로운 번역본 출판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것이겠다. 번역자의 문체는 이 책에서 버거가 가진 의도를 독자에게 보여주는 데 매우 적절했다.
하지만 이 책의 필요성에 대한 나의 강한 느낌은 심리학의 시대에 더더욱 사회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믿음과 소망에서 비롯된다. 모든 문제가 개인으로 환원돼 설명되고, 모든 문제의 해결이라는 짐도 개인에게 지워지는 시대에, 심지어 사회 또는 사회적인 것은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힘(권력)을 가진 시대에 버거의 사회학으로의 초대가 어두운 터널의 끝을 볼 수 없는 이들 또는 벼랑 끝에 도달해 더 이상 갈 길이 없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함께 희망할 수 있도록 그들도 그 초대에 응했으면 좋겠다.피터 버거는 사회학적 의식에 정체폭로적 동기가 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폭로하는 사회는 객관적으로 존재하여 육중한 사실성으로 우리 인간을 짓누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객관적 실재가 우리 자신이 구성해 낸 것이어서 우리가 느끼는 만큼 그리 견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의해서 충분히 변화 가능하다.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절망의 토대는 그리 단단하지 않다. 오히려 불안정하다. 그래서 사회학적 상상력을 갖고 사회학적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면 해방의 전망을 가질 수 있다.
사회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정체는 만천하에 폭로돼야 한다. 그들은 거짓을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그들에게 속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기만에도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사회학적 의식이 필요하다.
하홍규
숙명여대 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저자가 말하다_『K 문학의 탄생: 한국문학을 K문학으로 만든 번역 이야기』 조의연·이상빈·이형진 외 11인 지음 | 김영사 | 416쪽
번역가는 반역자일까?…한국어 집착 벗어나야 세계화
미학적 감동 만드는 한국문학 영어번역가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실상 극복해야최근 미국 메이저리그(MLA)에서 일본 출신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야구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그는 1920년대 미국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뉴욕 양키스 출신의 베이브 루스 이후로 110년 만에 가장 위대한 메이저리그 선수로 주목받고 있다. 마치 만화의 주인공처럼 투수와 타자 각각의 포지션에서 메이저리그 MVP라는 새로운 전설로 등극한 오타니 선수에 대한 부러움과 존경심은 자연스러운 감정이기도 하다.
한국어로 뛰어난 문학작품을 집필하는 작가의 역량도 존경의 대상이다. 마찬가지로 한국문학 작품의 맥락과 깊이를 파악하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독자에게 미학적 감동까지 만들어내는 한국문학 영어 번역가의 뛰어난 언어적·문학적 역량도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그러나 현실에서 한국문학의 영어 번역가는 문학 번역만으로는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입으로 힘들어하거나, 영어번역서 표지에 번역가의 이름을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은 열악한 위상을 경험하게 된다. 더욱이 번역의 완성도나 영어권 독자의 수용 과정보다는 주로 원문의 오역이나 변형, 생략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영어번역에 대한 국내의 연구 방식은 결국 영어 번역에 대한 우리의 경계심과 불신의 표출로 볼 수 있다.이렇게 번역 텍스트가 원문에 대한 충실성 관점에서 의심과 검증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배경에는 ‘번역가는 반역자’(Traduttore, Traditore)라는 오래된 이탈리아어 표현에 담긴 원문 훼손과 배신의 차원뿐만 아니라 번역가의 기원이 전쟁 포로 출신이라는 그리스·로마의 역사적 맥락과도 연결된다. 고대 로마에 의해 정복돼 노예로 끌려온 타국의 지식인들이 점차 로마제국의 라틴어를 배워서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을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학문적 가교역할을 하게 됐다. 하지만 라틴어와 자신의 모국어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노예 지식인은 자칫 언제든지 로마를 배신하고 자신의 모국 편에 설 수 있다는 의심을 받으며 경계와 배제의 대상이 되었던 역사적 배경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학 영어 번역의 주체는 결국 번역가라는 사실은 불변의 진리다. 그리고 외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한국문학 작품은 사실상 한국의 바깥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번역의 존재가치는 절대적이다.최근 들어 한국문학이 해외에서 호평을 받는 배경에는 한국문학을 영어로 훌륭하게 옮긴 번역가의 숨은 노고가 담겨 있다. 그런데도 정작 번역을 만들어내는 영어 번역가의 목소리를 책으로 만나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따라서 한국문학 대표 영어 번역가와 연구자의 이야기를 담은 『K문학의 탄생』은 숨은 영웅과 같은 번역가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 응원의 마음을 담은 헌정본이다.
지금과 같은 한국문학의 영어 번역에 대한 과도한 학술적 관심과 한국어 원본에 대한 기득권적인 집착은 자칫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팬덤 문화를 만들어가는 K-팝의 한국어 가사 영어 번역의 정확성이나 충실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해외 팬들이 K-팝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용하고 공유하면서 자신들의 소중한 성장 문화로 만들어가는 것도 그런 이유때문이다.이렇듯 한국문학의 영어 번역도 비록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더라도 영어권 번역가가 주도적으로 번역하고, 영어권 독자가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한국문학을 그들의 삶에서 의미있는 경험과 소통의 일부분으로 만들 수 있어야만 진정한 의미의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좀 더 가까워진다. 그래야 자칫 ‘K-문학’이라는 용어에 수반되는 가벼움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K 문학의 탄생』은 한국문학을 해외 독자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공유하는 ‘K-문학’으로 만들고 싶은 번역가와 전문가의 진심과 간절함이 담긴 책이다.번역가는 결코 독자를 배신하지 않는다.
이형진
숙명여대 영어영문학부 교수문화 비틀어보기_『다운 걸: 여성혐오의 논리』 케이트 맨 지음 | 서정아 옮김 | 글항아리 | 528쪽
여성은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는 존재일까가부장제 관계 유지에 기여하는 성차별주의
처벌·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여성혐오저자 케이트 맨 미국 코넬대 교수(철학과)는 분석철학 분야에서 여성혐오 개념을 한 권 분량으로 정리한 최초의 책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출간 이후 ‘여성혐오’와 관련된 토론에서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 특히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구분하며 다양한 문화권의 맥락 속에서 여성혐오의 핵심 주장을 분석한다.
이 책은 여성혐오를 감정적·개인적 차원으로 보는 방식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현상으로 개념화 한다. 여성혐오는 가부장제가 지정하는 위치에 순응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처벌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런 여성혐오를 단순히 특정 남성 개인의 심리적 차원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케이트 맨 교수는 가부장제와 성차별의 개념을 다듬어가면서 여성혐오를 기존의 단순한 이해, 즉 심리적 문제로 개념화해 온 순진한 이해에 도전한다. 그는 여성혐오를 성차별주의와 구분한다. 성차별주의가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추측, 고정관념 등을 통해 작동하면서 가부장제 사회관계를 유지하는데 기여한다. 반면, 여성혐오는 보다 강압적인 방식으로 여성을 처벌하고, 여성이 가부장제에 의해 가정된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경우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저자는 임신 중지와 관련한 담론 분석을 통해 ‘어머니’를 사랑하면서 여성을 지워버리는 문제를 논증한다. 아울러, 가정 폭력 문제와 가족 살해범의 사례 등으로 여성혐오의 논리를 분석한다. 그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애정이나 돌봄, 재생산 노동 등을 당연히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는 반면, 남성은 사회적 명망과부, 지위를 당연히 누려야 하는 존재라고 여기는 점을 지적한다. 그래서 여성이 자신의 제공 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여성이 제공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을 요구하거나, 남성의 것을 탐낼 때는 문제적 대상이 된다. 거꾸로 남성은 자신이 누려야 할 것을 당연히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문제적 여성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화된다. 여성이 처한 상황은 아낌없이 모든 것을 제공해야 하는 자로 규정된다. 이게 바로 여성혐오적 현실이라는 진단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가 지적한 중요한 정치적 현상이 바로 남성을 보호하기 위한 동정의 구조이다. 특히 남성 가해자에 대한 동정적 시선은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잘못된 신화에 의한 것이다. 여성혐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성에 대한 적대뿐 아니라 남성에 대한 면벌, 그리고 긍정적 태도의 문제 역시 분석해야 한다. 이러한 양면적 구조가 작동하는 다양한 젠더 기반 폭력 사건 사례가 제시된다. 피해자가 의심받는 상황 역시 바로 여성을 남성의 자원으로 여기는 것이기 때문에 비난과 폭력에 노출되는 여성혐오의 문제에 근간을 둔 것이다. 저자는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여성은 필연적으로 도덕적 비난에 노출되지만, 그것이 오히려 도덕적 삶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 책은 가부장제 체계를 여성-남성의 이분법 체계로 이해한다. 이에 저자도 서론에서 트랜스혐오를 다루지 못하는 문제를 한계로 언급하고 있다. 한 명의 저자가 모든 것을 다 다루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저자도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혐오의 문제를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 혐오의 개념화 과정에서 트랜스혐오를 논의 틀에서 제외하는 것은 여성의 범주에 대한 백인 중심-시스젠더(태어날 때 성을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확립한 사람)를 가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다수의 젠더 기반 폭력 분석에서도 인종적 차원의 문제가 결합된 부분을 정교하게 다루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게 된다. 이 문제는 가부장제 체계에 대한 논의가 다소 단순화됐기에 발생한다.이 책의 주장을 기반으로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고려해 여성혐오 현상에 대한 복합적 이해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여성 혐오 현상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을 제기하는 주장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 우리 맥락을 고려하는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교수기계 속의 악마
폴 데이비스 지음 | 류운 옮김 | 바다출판사 | 416쪽“생명이란 무엇인가?”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저자가 1943년 에르빈 슈뢰딩거가 던진 물음을 탐구한다. 생명은 어떻게 혼돈에서 질서를 만들어내는가? 생명은 어떻게 물질 속에 깃들어 있는가? 폴 데이비스는 ‘생명=물질+정보’라는 통찰을 바탕으로, 생물학은 물론 물리학과 수학, 컴퓨터과학과 진화론의 최신 학제간 연구성과를 종횡무진 훑었다.악의 이유들
손호현 지음 | 동연 | 688쪽기독교에서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은 영원한 화두이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의 신은 절대적 선의 초월자로서 만물과 모든 세계사를 지배하는 유일한 존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존재 앞에 악이나 악마의 존재가 가능하다면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더욱이 기독교 경전인 성서 안에는 악과 악마적 존재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기에 이에 대한 해석은 더욱 필요한 신학적 문제였다.k-펑크 1
마크 피셔 지음 | 대런 앰브로즈 편집 | 박진철·임경수 옮김 | 리시올 | 392쪽영국 비평가인 저자는 자본주의 리얼리즘, 유령론, 대중 모더니즘 같은 개념으로 새로움의 충격을 상실한 우리 문화를 독창적으로 진단하고, 과거와 현재의 문화 생산물에 여전히 남아 있는 잃어버린 미래의 흔적들을 면밀한 주의력으로 찾아냈다. 그는 컬트 인사가 됐고, 그런 뒤에는 21세기의 가장 흥미로운 영국 비평가 중 한 명이 됐다.실의 변신
정은진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48쪽태피스트리는 실로 짠 그림으로, 가로실(위사)과 세로실(경사)을 교차해 그림을 표현한다. 태피스트리의 제작 공정은 길고 복잡해서, 같은 면적의 벽을 장식한다고 했을 때 태피스트리의 제작 비용이 프레스코(벽화)의 약 열 배나 된다. 때문에 이 호화로운 매체를 주문하고 소유하는 사람은 대부분 왕과 귀족이었다.사이버네틱스
노버트 위너 지음 | 김재영 옮김 | 읻다 | 348쪽위너는 이 책에서 제어공학, 통신공학, 신경생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르며 전기·기계적 계, 생물의 신경계, 개체가 모여 이뤄지는 사회처럼 광범위한 사례를 다룬다. 위너가 보기에 정보 교환으로 되먹임 고리가 형성돼 계의 제어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선박의 조타 장치와 인간의 시신경-대뇌 계는 다르지 않다.오펜하이머 각본집
크리스토퍼 놀란 지음 | 김은주 옮김 | 허블 | 308쪽올해 7월 최초 개봉 이후, 저명한 영화 평론가이기도 한 영화감독 폴 슈레이더가 남긴 평을 비롯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열두 번째 장편 영화 「오펜하이머」에 대한 평단과 일반 관객의 찬사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상업적으로도 북미에서 개봉 3주차 흥행 수익 5억 달러를 돌파하는 등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자본주의 인문학 산책
조홍식 지음 | 한국경제신문 | 408쪽우리 일상의 의식주를 시작으로 유통, 화폐, 금융, 건강, 스포츠, 예술, 관광, 교육, 전쟁, 정치까지… 인류 역사상 중요한 23가지 테마별로 자본주의 세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모해왔는지를 들여다보는 작업은 매우 재미있고 유익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일상의 자본주의는 어떻게 우리의 세계를 움직이고 변화시켰는가?음식은 약이 아닙니다
조슈아 월리치 지음 | 장혜인 옮김 | 눌와 | 328쪽탄수화물이 살찌우는 주범이니 저탄고지 다이어트를 해야 할까? 암을 이겨내 준다는 식단을 얼마나 믿어야 할까? 설탕이 후천성 당뇨병을 유발할까? 그럴듯해 보이는 건강 정보도 왜 부적절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너무도 익숙한 식단·식품 통념과 유행 다이어트와 관련된 오해를 영양학과 다양한 연구 결과에 기반해 친절히 설명해 주는 책이다.분야별 신간
문학-에세이라스트 젤리 샷 | 청예 지음 | 허블 | 308쪽빛섬에 꽃비 내리거든 | 김인중·원경 지음 | 파람북 | 200쪽서로의 등을 바라보며 | 정홍수 지음 | 창비 | 304쪽인문다정한 인공지능을 만나다 | 장대익 지음 | 샘터 | 164쪽로봇과 AI의 인류학 | 캐슬린 리처드슨 지음 | 박충환 옮김 | 눌민 | 314쪽
질 들뢰즈의 저작 1 (1953~1969) | 존 로페 지음 | 박인성 옮김 | b(도서출판비) | 502쪽정치-사회디케의 눈물 | 조국 지음 | 다산북스 | 336쪽미래는 탈성장 | 마티아스 슈멜처 외 2인 지음 | 김현우·이보아 옮김 |나름북스 | 396쪽
벌거벗은 한미동맹 | 김성해 지음 | 개마고원 | 380쪽사명이 있는 나라 | 오준호 지음 | 미지북스 | 208쪽신흥기술·사이버 안보의 국가전략 | 김상배 외 21인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440쪽우발적 충돌 | 스티븐 로치 지음 | 이경식 옮김 | 한국경제신문 | 640쪽페미니즘들 | 루시 딜랩 지음 | 송섬별 옮김 | 오월의봄 | 500쪽
포스트텔레비전 | 이기형 외 3인 지음 | 컬처룩 | 304쪽경제-경영간호의 경제학 | 츠노다 유카 지음 | 이승영·허동한 옮김 | 호밀밭 | 336쪽자연과학미래 세대를 위한 우리 새 이야기 | 김성현 지음 | 철수와영희 | 188쪽핵전쟁 시대,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
김기봉의 리틀 빅히스토리
② 오펜하이머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독일 빌레펠트 대학에서 포스트모던 역사이론으로 박사를 했다. 주요 저서로 『역사학 너머 역사: 빅히스토리, 문명의 길을 묻다』, 『내일을 위한 역사학 강의』, 『팩션 시대: 영화와 역사를 중매하다』 등이 있다.
“관찰자는 결과를 모르더라도 모든 것이 조건과 관계의 연쇄반응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과연 오펜하이머가 그 연쇄반응에 대한 통찰을 했다면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아인슈타인 또한 핵무기 개발을 제안하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에 서명했을까?”김기봉 경기대 교수(사학과)는 영화 「오펜하이머」가 인간의 조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고 강조했다. 인류 역사는 조건과 관계의 연쇄반응으로 이뤄지는데, 핵 전쟁 시대의 결과는 과연 무엇일까.
사진=영화 「오펜하이머」 스틸컷인간은 몸은 땅에 발 딛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하늘을 지향하며 산다. 하늘을 나는 새도 땅에 서 있는 모습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듯이 공룡에서 진화했기에 삶의 터전은 땅이지 하늘이 아니다. 새는 하늘에서 지상의 먹잇감을 찾고 그것을 목표로 하늘길을 이동한다.
현생인류는 직립보행을 하면서부터 머리를 들어 하늘과 별을 바라보기에 유리한 구조를 갖게 됐다. 땅의 끝으로 하늘과 만나는 경계선이 지평선이고, 물의 끝으로 하늘과 맞닿아 보이는 것이 수평선이다. 그 둘이 인간이 볼 수 있는 범위인 시야(視野)를 결정한다. 하지만 하늘을 올려다볼 줄 아는 인간은 묻는다. 모든 한계선 너머엔 무엇이 있는가?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하늘 끝을 끝내 못 보아 망양정에 오르니, 밖은 하늘이니 하늘 밖은 무엇인가”라고 읊었다.지상의 생활자인 인간이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생겨난 능력이 초월(超越)에 대한 인식과 상상력이다. 물리적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행위는 인간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바라보며 갖는 생각과 투영하는 감정이 종교‧예술‧학문 등의 문화적 활동을 낳았다. 하늘에는 별들이 있고, 그것들의 질서를 인간은 별자리를 통해 천문(天文)으로 읽고자 했다.전통시대 동아시아인들은 “순천자(順天者)는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라는 믿음으로 천도(天道)를 탐구해서 인륜의 질서를 세우고자 했다. 하늘의 별은 암흑한 현실을 밝히는 등 불이고 마음의 거울임을 윤동주는 「서시」로 노래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절대무기와 파국의 전쟁영화 「오펜하이머」에는 주인공이 사막에서 별을 바라보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태양을 포함해서 별이 빛나는 이유는 수소가 헬륨이 되면서 방출하는 핵융합 에너지 덕분이다. 우주의 본질적 힘은 중력‧전자기력‧강력‧약력의 4가지다. 물체 사이 관계는 중력이 지배하고, 우리가 전자기력을 활용할 줄 알게 됨으로써 전등에서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근대 문명의 근간이 되는 기술과 도구를 발명했다.핵과 관련된 것이 강력과 약력이다. 양자역학은 마침내 그것들의 조건과 관계를 알아냄으로써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이란 새로운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만들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면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패는 어느 나라가 먼저 그 절대무기를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있게 됐다. 당시 양자역학의 최강대국은 독일이었다. 만약 히틀러가 먼저 핵폭탄을 제조하면 전쟁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미국의 프로메테우스로 등장한 영웅이 오펜하이머다.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쪼개지든지 합해진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에 관한 공식이 E=mc²이다. 별은 주로 수소로 구성돼 있고, 그 중심에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 수소가 헬륨으로 변하면서 태양처럼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한다. 원자번호 26인 철(Fe)은 핵융합과 핵분열을 통한 에너지 방출의 경계를 이루는 가장 안정적인 원소다. 철보다 가벼운 원소는 핵융합으로 에너지를 방출하지만 무거운 원소를 융합하려면 에너지를 공급해야 한다.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같은 큰 원소는 더 작은 원소의 원자핵으로 쪼개지는 핵분열을 할 때 에너지를 방출하기에 그 원리로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핵분열의 연쇄로 작동하는 원자폭탄을 이용하면 핵융합의 조건을 형성할 수 있기에 연이어서 바로 수소폭탄도 제조할 수 있다.인간이 우주의 본질적 에너지를 사용해서 지구에서 폭탄을 터뜨리면 어떤 연쇄작용이 일어날 것인가? 영화에서 오펜하이머가 핵폭탄을 만들 때 가장 염려했던 것이 중성자에 의한 핵분열이 계속 반복되는 연쇄반응이 무한 루프에 빠지면 세계는 파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에 오펜하이머가 연못가에서 산책하고 있던 아인슈타인을 발견하고 다가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무슨 말을 했을까? 영화가 끝날 때 쯤에야 비밀이 밝혀진다. 아인슈타인이 “파멸의 연쇄반응이 시작되었군”이란 말을 했다는 것이다.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는 핵무기가 모든 전쟁을 종식시킬 절대무기라고 믿었다. 하지만 미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절대무기를 제조하는 연쇄반응이 일어나면서 인류는 핵전쟁 시대에 돌입했다.
파멸 몰고 올 연쇄반응과 무한 루프핵폭탄을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 북한은 나치 독일에 못지않은 악독한 정권이다. 북한 핵에 대항하기 위해선 우리도 결국 핵무장을 해야 하는가? 일어날 모든 일은 일어난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그것은 인과관계가 아니라 예정된 확률로 일어난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얼마인가? 문제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진 생사가 결정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일어날 일은 일어나지만 미래는 불확정적이다. 불확정성 원리가 작동하는 상황에선 관찰이 인식을 만들기에 “관찰자가 관찰대상이다.” 그 상황에서 관찰자는 무엇을 할 것인가? 관찰자는 결과를 모르더라도 모든 것이 조건과 관계의 연쇄반응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과연 오펜하이머가 그 연쇄반응에 대한 통찰을 했다면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아인슈타인 또한 핵무기 개발을 제안하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에 서명했을까?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난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결과를 만드는 게 아닌 조건과 관계에 대한 알아차림이다. 인간은 주어진 조건에서만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마르크스의 말처럼, 인류 역사는 조건과 관계의 연쇄로 전개된다. 무거운 별이 죽으면 블랙홀이 되고 우주도 깊은 미래(deep future)엔 팽창을 멈추고 수축해서 초기상태로 되돌아가는 종말을 맞이한다면, 역사의 종말은 필연적이다. 일어남과 사라짐의 연쇄 반응의 본질은 붓다가 말했듯이 무상(無常)이다.영화 「오펜하이머」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의 영광과 몰락의 무상한 삶과 더불어 핵전쟁 시대 인간의 조건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이 뭐꼬?”글로컬 오디세이
새만금 잼버리에서 돋보인 아랍의 스카우트정진한
한국외대 아랍어과 강사요르단대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문명교류사와 중동학을 전공했고 한국이슬람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다. 「이슬람 세계관 속 신라의 역사: 알 마스우디의 창세기부터 각 민족의 기원을 중심으로」 등 논문을 썼다.
새만금 잼버리의 관리 부실에 대한 책임 소재를 놓고 공방이 뜨겁다. 파행을 거듭한 끝에 각국 대원의 중도 이탈이 속출하던 대회 중반
에 사우디는 다른 2개국과 함께 캠프 잔류를 선언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한편에서는 다소 생뚱맞았지만 다른 이들은 역경을 인내하고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라는 스카우트 정신의 모범적 실천 사례라며 치하했다.
복지가 잘 갖춰진 석유 부국이라는 대중적 인식에 힘입어 사우디에서 온 110명의 단원에 대한 시선에는 고생을 덜 하고 큰 부잣집 도련님 같은 선입견이 담겨 있기도 했다. 하지만, 늪지라는 자국과 정반대의 자연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려는 의지는 이런 편견을 떨궈냈다. 각국의 잇단 중도 이탈 와중에 잔류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하마드 알라야사우디 대표단장은 폭염 등의 혹독한 환경은 세계 어디서나 발생하고 작금의 잼버리 행사는 과거에 비해 훨씬 좋은 환경이기에 사우디 단원은 캠프 잔류는 물론 2주간 더 한국에 체류할 예정이라고 단언했다.
사실 이러한 단원들의 인내와 적응력에는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 스카우트의 전통과 경험이 힘을 발휘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랍권의 스카우트는 규모가 매우 크고 활동 역시 한국보다 더 활발한 측면이 있다. 올해 기준 무려 4천300만 명에 육박하는 남녀 단원을 거느린 세계 스카우트연맹은 174개 국가별 지부를 총 6개 지역구를 통해 관리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16개국의 지부를 거느린 아랍지역연맹이다.가입 지부도 소수고 인구도 적은 아랍의 16개국이 독립적인 지역연맹을 거느리게 된 원인에는 활발한 참여 활동과 강력한 조직력이 있다. 이들 16개 국가의 인구는 세계스카우트 연맹에 가입한 17개국 인구 총합의 0.5%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아랍지역연맹 소속 스카우트 대원수는 2018년에 이미 5백만 명을 초과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인구수 대비 스무 배 이상의 단원 가입률은 아랍 국가들의 적극적인 스카우트 단원 양성과 활동 지원 없이는 나오기 어려운 수치다.아랍은 세계 잼버리를 유치한 적이 없지만, 그들끼리는 격년마다 잼버리 대회를 개최해 단결을 다져왔다. 1954년 시리아를 필두로 아랍 잼버리는 벌써 32차례나 아랍 각지에서 개최됐다. 또 이들은 매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잼버리, 조티-조타(JOTI-JOTA, Jamboree On The Internet -Jamboree On The Air)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오는 10월 대회를 앞두고도 아랍 언론은 각국의 남녀 대원의 JOTI-JOTA매년 수백만명의 무슬림 순례객들의 성지순례기간 동안 사우디 스카우트 대원들은 길 안내, 노약자 이동 지원, 시설이용 안내와 같은 활동에 대대적으로 투입된다. 사진=사우디 스카우트 연맹
준비 양상을 보도 중이다. 반면 한국 언론의 온라인 잼버리 관련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아랍 대원들은 잼버리와 같이 대원들 간의 축제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과 함께 참여하는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대표적으로 사우디 대원들은 1961년 이후 매년 수백만의 무슬림 순례객들이 수 주 간 메카와 메디나 일대의 성지를 순례하는 핫즈(Hajj) 기간 동안 길 안내, 노약자 이동 지원, 시설 이용 안내와 같은 활동에 대대적으로 투입된다.코로나 팬데믹으로 순례 규모가 위축되기 전인 2018년 메카와 메디나에는 각각 3천 명과 1천500명의 남녀 단원이 활동했다. 이 숫자는 순례객이 줄어든 코로나 유행기와 회복기에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사우디가 순례 수용 규모를 코로나 이전의 곱절로 늘릴 준비에 착수한 이상 앞으로 핫즈 봉사 단원들의 참여 역시 곧 전성기를 훌쩍 넘어설 것이다.
즉 이들 수천 명의 단원들은 정찰대라는 이름 그대로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순례 현장의 최전선에서 봉사 활동을 펼친다. 매년 절기가 바뀌는 이 이슬람의 성지순례 시즌이 올해처럼 한여름에 돌아오면 메카와 메디나의 한낮 기온은 무려 섭씨 오십 도를 오르내린다. 황량한 사막의 산을 오르고 광야에서 야영하는 이 일정에서 길 잃은 외국인들을 베이스로 모셔오고 장애인과 노인들의 휠체어를 밀면서 단련된 이들의 적응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또 수백 개국 출신의 남녀노소들과 부대끼며 교류하는 경험을 쌓는 이들이기에 세계적인 축제에서 적응력이 강하다.이에 반해, 한국의 스카우트 단원들이 내한객들을 상대로 봉사활동에 이처럼 대규모로 투입된 전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한국은 사우디의 성지순례만큼 대규모의 연례 국제행사는 없지만 여느 나라 못지않게 다양한 국제행사가 열리고 있다. 여기에 한국 단원들의 참여와 활약의 기회가 확대된다면 개인 단원들의 자긍심 고취와 경험의 확대는 물론 국가 청소년 자원의 세계시민성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이미 잼버리는 지나갔지만, 한국 스카우트 단원들이 국제 행사를 통해 활동할 기회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특히 엑스포 유치에 성공해서 흔치 않은 초대형 이벤트에서 봉사하는 기회를 통해 한국의 스카우트 단원들이 보다 세계화된 동량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국내 최고의 ‘기업가 정신’ 대학으로”
정승렬 국민대 제13대 총장 취임
국민대 제13대 정승렬 총장(사진)이 지난달 31일 취임식을 갖고 9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임기는 2027년 8월 31일 까지 4년이다.정승렬 총장은 “우리 대학만의 강점과 그간의 성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한국 최고의 기업가 정신 대학으로 도약하는 것이 우리 대학의 나아갈 방향”이라고 취임사를 통해 밝혔다.국민대의 중흥을 이끈 성곡 김성곤 선생의 육영 이념이자 교육철학이기도 한 기업가 정신은 공동체 정신과 도전과 변화를 적극 받아들이며 혁신적 사고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국민대는 전했다.정 총장은 “4년의 임기 동안 국민대를 국내 13개 주요 대학에 포함시키고 글로벌 랭킹 500위 내에 진입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모든 전공에서 연계융합전공 개설 등을 통한 경계 없는 교육 생태계 구성 △집단 성과 이론에 기반한 각 학문분야 경쟁력 평가 강화 △우수기술 발굴부터 사업화·수익 확보·재투자로 이어지는 산학협력 패러다임 전환 △국제화 경쟁 대비를 위한 글로벌 캠퍼스 설립 △작은 성과라도 공정하게 보상할 수 있는 혁
신문화 창조 등을 전략으로 밝혔다.
정 총장은 “그간 국민대는 많은 성과를 이루었지만 앞으로의 몇 년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며 “계속 발전해 갈 것인가 아니면 후퇴할 것인가 하는 변곡점에 서 있는 만큼, 근본적인 혁신을 통해 경쟁에서 이기고 선도대학 대열에 반드시 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영정보학 석사를, 사우스캐롤라이나대에서 경영정보학 박사를 취득했다.1997년 국민대 정보관리학과 교수로 부임한 정 총장은 비즈니스IT전문대학원장·대외교류처장·국제교류처장·기획처장·경력개발지원단장·기획부총장 등 학내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대외활동으로 한국인터넷정보학회장·전국대학교 부총장협의회 회장·한국국제교육관계자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모험가 정신으로 포스텍 제2의 도약”
김성근 포스텍 제9대 총장 취임
김성근 포스텍 제9대 총장(사진)이 지난 5일 취임식을 열고 공식 취임했다.김성근 신임 총장은 “포스텍은 구성원들의 남다른 열정과 포스코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기에 세계적인 대학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며 “포스텍의 제2의 도약을 위해 막중한 책임감과 강한 포부를 갖고 이 자리에 서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그는 포스텍 캠퍼스 내에 있는 노벨과학상 수상자 좌대를 언급하며 “노벨상이 기리고자 하는 가치는 단순한 학문적 성공이 아니라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곳에 발을 내딛는 모험가 정신”이라고 말했다. 급격한 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 현상 등 대학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방향으로 교육과 연구, 사회적 기여의 모습을 써나가야 한다”고 김 총장은 전했다.김 총장은 “포스텍은 학생들이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 나갈 수 있도록 양방향으로 가장 열려있는 대학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설립 40주년을 바라보는 지금, 포스텍은 한국의 정신, 도전정신을 상징하는 포항에서 세계 무대로 제2의 도약을 향한 항해를 시작하겠다”고 다짐을 전했다.
김 총장은 대구 출신으로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화학물리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서울대에 부임해 2022년까지 화학과 교수로 재직한 그는 2014년 자연과학대학장을 맡기도 했다. 2019년부터는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으로 우수한 신진연구자를 발굴하는 데 기여했다.물리·화학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실적을 발표해 온 김 총장은 2006년 교육인적자원부 제1회 국가 석학과 2013년 영국 왕립화학회 펠로우에 선정됐다. 또, 비유럽 국가 출신 최초로 세계 3대 물리화학 학술지인 PCCP의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이날 취임식에는 이강덕 포항시장과 백인규 포항시의회의장, 최도성 한동대 총장, 최정우 학교법인 포항공과대학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배지우 기자 editor@kyosu.net서울대, 석좌교수 7명 추가 선정…총 14명
서울대는 국제적 명성이 있는 교원의 연구활동 지원을 위해 총 7명의 전임교원을 ‘2023학년도 서울대 석좌교수’로 선정했다. 이번에 선정된 석좌교수는 인문대학 국사학과 정용욱 교수, 사회과학대학 경제학부 김병연·황윤재 교수,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김빛내리 교수, 공과대학 화학생물공학부 현택환 교수, 공과대학 재료공학부 황철성 교수, 농업생명과학대학 농생명공학부 이용환 교수 등 7명이다.
서울대의 ‘석좌교수 제도’ 활성화에 따라 해당 교수에게는 학술연구 활동수당을 지급하고 책임시간 감면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현재 총 14명의 석좌교수(초빙석좌 포함)사진 왼쪽부터 황철성·현택환·이용환·김병연·황윤재·정용욱·김빛내리 교수다.
가 재직 중이다.
석좌교수 선정 기준은 노벨상이나 이에 준하는 국제 학술상을 수상한 사람, 인류사회 발전을 위한 업적이 뛰어나국제기구 등에서 수여하는 상을 수상한 사람, 각 전문분야에서 10년 이상 종사한 사람으로 국내·외에 명성이 있고 인격과 덕망이 높은 사람 등이다.
전남대, 중국 내 국제캠퍼스 설립 추진
중국 온주의과대학과 업무협약 체결
전남대(총장 정성택)가 중국에 국제캠퍼스를 설립한다.국민석 전남대 글로벌대외협력처장 등 처장단은 지난달 30일 중국 온주의과대학을 방문해, 온주의대 내 전남대 국제캠퍼스 설립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처장단은 국제캠퍼스 강의실을 둘러보고, 온주의대 교수진과 커리큘럼에 대한 실무적인 협의를 진행했다.이번 국제캠퍼스 건립은 전남대 의과대학과 중국 온주의대가 중외합작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의과학과’ 박사과정 운영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전남대는 전했다.‘중외합작’은 중국 교육부가 자국 내 대학 선진화를 위해, 우수한 외국 교육기관과 합작해 공동 교과과정을 마련해서중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전남대 국제캠퍼스가 제공할 ‘의과학자’ 전공과정은 기초의학 분야의 연구자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다. 온주의대 교수뿐만 아니라 전남대 교수도 강의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 정규 교육과정은 온주의대 국제캠퍼스와 전남대 본교에서 수강할 수 있지만, 졸업 논문 작성과 연구는 전남대 본교에서 이뤄진다. 교육과정을 마친 학생은 전남대 명의의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온주의대 제1병원은 총 4천여 개의 병상을 운영하며, 500만 명이 넘는 외래환자가 이용하는 절강성 온주지역 내 첫 성립병원이다. 온주의대 제1병원 측은 전남대와 온주의대의 대학 간 협력이 대학병원 간 교류·협력으로 확대되길 기대한다는 의사를 전달했다.정성택 총장은 “전남대에 대한 중국 대학의 지속적인 관심은, 우수한 교육 역량과 연구력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가능했다”며 “향후 다양한 국가 내 학문분야를 아우르는 국제캠퍼스 설립 논의가 지속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고려대 세종캠퍼스 김영 부총장 3연임
고려대 세종캠퍼스를 이끄는 제19대 세종부총장에 김영 교수(환경시스템공학과·사진)가 취임했다.김영 부총장은 2019년 9월 1일 제17대 세종부총장으로 취임해 제18대 연임을 거쳐 이번에 3연임을 하게 됐다. 세종캠퍼스에서 3연임 세종부총장은 처음이다. 임기는 지난 9월 1일부터 2025년 8월 31일까지 2년이다.김영 세종부총장은 “’신수도권 중심대학‘이라는 고려대 세종캠퍼스의 브랜드 안착을 위해 ’공선사후‘ 정신에 입각해 초심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며 “뉴노멀 시대에 필요한 ’교육혁신‘,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연구혁신‘, 미래전략수도 세종시 및 신수도권 완성에 기여할 ’지역혁신‘을 위해 지속적인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그는 지난 재임 기간 동안 지능형반도체학과 등 첨단학과 신·증설, 학습자중심의 교육혁신모델 SEMO Class 개발 등 미래 사회 대응 혁신적인 교육과정을 구축했다. BK21 4단계, LINC 3.0 사업 등에 선정됐다.국민대 출판부, 국내 첫 ‘도핑 전문’ 서적 출판
국민대 출판부가 도핑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적을 출판했다.
집필에는 한국도핑방지위원회(위원장 이영희)의 각 분야별 전문가 12명이 참여했다. 또한 국민대 재학생 6명이 Z세대의 관점에서 피드백과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집필의 전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지식의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쌍방향 소통에 중점을 둔 것이다.책의 주요 내용은 △도핑이란 무엇인가 △도핑방지 거버넌스의 이해 △세계도핑방지규약 및 각종 규정의 이해 △도핑예방과 도핑방지교육 △도핑검사 프로그램 △효과적인 도핑검사계획 및 도핑방지행정관리시스템 △시료채취 절차와 도핑검사현장 △금지목록과 치료목적사용면책 △도핑방지활동의 과학적 접근 △결과관리 절차 △결과관리 사례 △한국의 도핑방지 운동 등으로 구성됐다.이 책을 기획한 이원재 국민대 교수(스포츠산업레저학과)는 “아직까지 도핑 분야에 대한 적당한 전문 서적 · 대학교재가 없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며 “이 책을 통해 체육을 전공하는 학생과 업계 종사자가 도핑과 관련된 체계적인 지식을 쉽고 빠르게 습득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고밝혔다. 이원재 교수는 대한체육회·세계태권도연맹 등에서 행정가로 근
무했고, 현재는 한국도핑방지위원회 이사, 대한핸드볼협회 이사, 대한장애인체육회 국제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도핑방지기구 회장인 위톨드 방카는 추천사를 통해 “이 책을 통해 미래의 도핑방지 전문가를 양성하고, 대학 및 학계에서 공정성, 건강, 협력 등의 스포츠 가치를 확산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영희 한국도핑방지위원회 위원장은 “이 책이 사회 구성원들이 도핑을 예방하고 건전한 스포츠문화를 형성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이찬규 중앙대 교수, 인문한국연구소협의회장 선출
중앙대 인문콘텐츠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이찬규 교수(국어국문학과·사진)가 인문한국(HK)연구소협의회 신임 회장으로 지난달 31일 선출됐다. 임기는 지난 1일부터 1년이다.
이찬규 교수는 “인문한국지원사업은 대학연구소의 연구기반 구축과 연구역량 강화를 통해 세계적 수준의 인문학 연구소를 육성하는 사업”이라며 “인문사회 분야 연구에 아낌없는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신임 회장은 중앙대에서 교무처장과 부총장을 지냈다. 한국어문교육연구회 회장과 한국연구재단 이사, 세종학당재단 이사,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심의회 위원, 국가교육회의 디지털분과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중앙대 인문콘텐츠연구소장과 국어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이 회장은 현재 중앙대 HK+인공지능인문학사업단의 단장으로 인공지능과 인문학을 아우르는 융합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인문한국(HK)연구소협의회는 현재 41개 대학연구소가 진행하고 있는 인문한국(HK·HK+) 지원사업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사업의 성과 확산과 연구 교류를 주관하는 협의체다.광주·전남대학인권센터협의회 초대 회장에 홍관표 전남대 교수
광주·전남 지역 대학들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인권센터협의회를 발족하고, 초대 회장에 홍관표 전남대 인권센터장(법학전문대학원·사진)을 선출했다. 임기는 2025년 10월까지다.
광주·전남 29개 대학 인권센터는 지난달 30일라마다플라자 광주호텔에서 광주권 14개, 전남권 15개 대학의 인권센터가 참여한 가운데 ‘광주·전남 대학인권센터협의회’를 발족했다. 지역 대학 전반에 걸쳐 인권 존중과 인권보호 수준 향상에 기여하기로 했다.
협의회는 앞으로 사례 공유와 업무 서식 통일, 업무처리 메뉴얼 개발, 교육 및 법률자문 등 인력 풀을 구성하고 공유한다.이날 발족식에는 김광수 광주광역시 인권평화과장, 최혜령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장, 김동석 교육부 사무관 등이 참석했다.백종남 우석대 교수, 한국행동분석학회장 취임
백종남 우석대 교수(특수교육과·사진)가 한국행동분석학 회장에 취임했다. 임기는 2025년 8월 까지 2년이다.
백종남 신임 학회장은 “한국의 문화와 법률, 사회적 특성 등을 고려한 윤리 규정을 적용함으로써대상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앞장설 계획”이라며 “학문적 네트워크 확장과 한국행동분석전문가 자격증의 전문성 제고를 위한 교육과 연수 프로그램을 강화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한국행동분석학회는 특수교육 서비스가 필요한 지적장애와 자폐스펙트럼장애를 비롯한 발달장애 학생과 학령기 이후 발달장애 성인에게 효과가 검증된 응용행동분석 방법을 체계적으로 연구·보급하고, 가정과 학교, 시설 및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의 문제행동 원인 분석과 중재를 담당하는 행동분석 전문가를 양성을 위해 2013년 7월 창립됐다.서희재 선문대 교수,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 비상임 이사 선임
서희재 선문대 교수(식품과학부·사진)가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HACCP인증원) 비상임 이사로 선임됐다. 임기는 2023년 8월 29일부터 2년이다.
서희재 교수는 “식품화학 및 식품안전 관련 전분야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깊은 사명감을 느낀다”면서 “식품안전관리를 통한 인증과 지원으로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이 국민보건 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맡은 바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은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식품‧축산물의 안전관리인증과 그와 관련된 종합적인 지원 사업 등을 수행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공공기관이다.윤태경 상지대 교수, 산림과학회 ‘젊은과학자상’ 수상
윤태경 상지대 교수(조경산림학과·사진)가 한국산림과학회가 개최하는 제11회 현신규학술상에서 ‘젊은과학자상’을 수상했다.
윤태경 교수는 산림생태·조림·환경생태융합 등의 연구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산림토양학』(향문사, 2020) 저서를 내고, 제10차 UN 사막화방지협약 총회 기념 우수 연군 논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번 현신규학술상 수상은 윤 교수의 산림생태 및 조림 분야의 연구성과 결과다. 산림생태 관리와 발전에 기여할 예정이다.현신규학술상은 일제의 산림 수탈과 한국 전쟁으로 헐벗은 국토를 녹화하고 산림을 자원화하기 위해 일생을 임목육종연구에 헌신한 현신규 박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학술상이다.유교 2.0, 중국의 사상실험 성공할까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⑫
곽준혁 중국 중산대 교수(철학과)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기술, 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달 5일 곽준혁 중국 중산대 교수(철학과)가 「유교 정치사상과 정치철학」을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13강은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철학)의 「동양 정치사상과 공공성」이 예정돼 있다.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오늘날 중국의 지식인들은 왜 ‘유교’를 비롯한 중국의 ‘전통 사상’으로 돌아가서 자기들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지와 관련된 생각을 전달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들이 왜 유교 정치사상으로 돌아가려고 하는지, 돌아가서 무엇을 찾고자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찾았는지, 그래서 이러한 전통사상으로의 ‘회귀’가 정치철학적으로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미 많은 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중국 지식인들의 ‘전통 사상’으로의 회귀는 서양에 의해 강요된 ‘근대화 과정’에 대한 반성, 또는 ‘근대성’에 잠재된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저항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나 역시 중국에서의 유교 정치사상의 화려한 부활의 이면에 ‘근대성의 극복’이라는 화두가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유교 정치사상의 부활을 ‘지역적 맥락’으로부터 ‘교차 문화적 맥락(cross-cultural context)’으로 끌어올려 살펴보고자 한다.중국에서의 유교 정치사상의 부활을 ‘근대성의 극복’ 또는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저항’이라는 화두로 단순화했을 때 보지 못했던 것, 즉 ‘철학적 회귀’를 통해 중국인들이 찾고자 하는 정치철학적 대안이 갖는 보편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지금까지 무수한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 있었지만, ‘근대성’의 극복 또는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저항’은 또 다른 형태의 ‘무의식적 오리엔탈리즘’, 즉 자기 문화에 대한 애착을 넘어 ‘자기 문화’를 중심으로 ‘서구’나 다른 주변의 문화를 ‘타자화’하고 ‘종속’시키려는 열정에 함몰되는 경우가 많았다.
만약 중국에서의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를 이런 측면에서만 바라본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자국 중심의 대응 전략 또는 또 다른 형태의 민족주의 불러오기(interpellation)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자, 동아시아 각국의 유학자들이 너도나도 자기 나라가 이제 천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소중화(小中華)’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된다는 것이다.정치철학적으로 볼 때, 중국 지식인들이 ‘유교정치사상’으로의 회귀를 통해 제시하는 중국이 나아가야 할 길, 또는 우리 모두가 나아갈 길은, 중국인들만이 경험한 독특한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넘어선다. 즉 중국 지식인들의 유교 정치사상으로 ‘돌아가기’는 중국만의 고유한 문제를 넘어 인류 보편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면, 다니엘 벨(1919∼2011)이 제시하는 ‘중국식 모델’이 기초하는 ‘현능주의’는 중국만의 독특한 경험을 통해서만 발견되는 생각이 결코 아니다.
자유주의도 ‘현능주의’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선거라고 하는 제도 자체가 이미 ‘저명’ 인사와 유권자를 구별하기 위해 존재하고, ‘제한된 합리성(bouded rationality)’이라는 이름 아래 ‘현능주의’ 또는 ‘능력주의’는 고대 서양 정치사상으로부터 현대 민주주의 이론까지 대표 또는 리더의 선발과 관련해서 자주 등장하는 견해이다.유교가 정치철학계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중국이 2010년 통계로 일본을 제치고 GDP 규모 세계 2위로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됐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동아시아의 급속한 경제 성장을 설명하기 위해 공통된 문화적 토대의 하나로 유교가 부각됐고, 급속한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만든 문화적 자산들이 ‘유교적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그러나 이때 유교는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한 문화적 변수의 하나였을 뿐, 유교의 보편적 가치가 강조되거나 유교를 통한 새로운 형태의 제도 또는 새로운 형태의 세계 경제 질서를 수립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없었다. 물론 유교적 ‘공생’이나 ‘가족 제도’에 대한 관심은 컸다.그러나 유교 전통으로의 회귀를 주장하거나, 유교 자유주의자 치우펑(秋风, 본명 姚中秋)이 말하듯 ‘중국은 유가의 나라이며, 유교는 중국인의 가장 기본적 가치를 구성했을 뿐만 아니라 유교를 버리면 중국은 생명력을 잃게 된다’는 식의“유교의 정치화를 주장하는 ‘정치 유교’ 학자들과 ‘신좌파’로 알려진 학자들 사이에 ‘반자유주의’와 ‘천박한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를 중심으로 끈끈한 연대가 형성되고, 이들의 연대를 통해 이전의 ‘유교’와 ‘사회주의’의 결합과는 다른 형태의 ‘유교 사회주의’ 또는 ‘좌파 유교’의 출현을 목도하고 있다.”
주장은 거의 없었다.
반면 오늘날 중국의 지식인들은 ‘유가 전통으로의 회귀’를 주장하고 있다. 도가를 비롯해 다양한 중국 정치사상들이 재발견 또는 재해석되고 있기에 ‘중국 전통으로의 회귀’라는 말이 보다 적절하겠지만, 이러한 회귀를 이끌어 내는 주된 동력이 유학자들로부터 대두되고 있다는 점에서 ‘유가 전통으로의 회귀’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정치철학적 접근을 통해 볼 때,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는 일차적으로는 연구자가 지향하는 정치적 이념을 중심으로, 그리고 이념적 지향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제시된 ‘정치 모델’을 중심으로 범주화해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즉 유교 정치사상의 자유주의와의 접합, 사회주의와의 접합, 그리고 두 가지 정치 이데올로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유교 정치 모델로 범주화할 수 있을 것이다.첫 번째는 ‘유교 자유주의’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자유주의자들은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곽준혁 중국 중산대 교수(철학과)는 “서구 중심의 근대 정치철학이 초래한 정치사회적 문제를 고민해 볼 때, 중국 지식인들이 ‘유교 전통’으로 돌아가 오늘날의 문제를 성찰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라며 “자유주의가 곧 개인의 권리로 이해되는 지금, ‘개인성’의 발현을 위해서라도 ‘유교 정치사상’만의 독특한 견해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귀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 유교 정치사상은 ‘자기 부정’과 ‘강요된 순응’만 있을 뿐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독립된 판단에 무관심하고,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으로부터 인민의 배제를 전제하는 비민주적인 사고일 뿐이다.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유교 사회주의’다. 일면 ‘유교 사회주의’도 ‘유교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이상의 실현을 위해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유교의 정치화를 주장하는 ‘정치 유교’ 학자들과 ‘신좌파’로 알려진 학자들 사이에 ‘반자유주의’와 ‘천박한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를 중심으로 끈끈한 연대가 형성되고, 이들의 연대를 통해이전의 ‘유교’와 ‘사회주의’의 결합과는 다른 형태의 ‘유교 사회주의’ 또는 ‘좌파 유교’의 출현을 목도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이러한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가 갖는 문제점을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는 중국의 경제 발전이 가져다준 정치사회적·문화적 자신감이고, 둘째는 근대 정치 이데올로기의 한계에 대한 불만이고, 셋째는 유교 정치사상의 보편성에 대한 확신이었다.개인적으로 나는 첫 번째 자각을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가 중국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든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고, 두 번째 자각은 동서양 정치사상을 막론하고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제라는 측면에서 공감한다. 세 번째 자각에 대해서는 비교 정치철학적 입장에서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의 결과로 얻어진 정치적 구상들을 꼼꼼히 검토하려는 입장을 갖고 있다.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첫 번째 자각과 관련해서는 중국의 지난 70년 동안의 성공에 대한지나친 자신감은 경계의 대상이라고 지적하고자 한다. 중국이 세계 질서를 좌우하는 강대국으로 부상한 것이 유교 정치사상에 대한 지구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요인들 중 하나인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중국의 초강대국으로의 부상 그 자체가 유교 정치사상이 보편적 가치로 발돋움하는데 필수적인 조건은 결코 아니다.
오늘날 서구 중심의 근대 정치철학이 초래한 정치사회적 문제들을 고민해 볼 때, 중국 지식인들이 ‘유교 전통’으로 돌아가 오늘날의 문제들을 성찰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자유주의가 곧 개인의 권리로 이해되는 지금, ‘개인성’의 발현을 위해서라도 ‘관계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요구하는 ‘유교 정치사상’만의 독특한 견해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이런 측면에서, 서구 사회의 문제로부터 시작해 유교 정치사상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들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런 노력들은 중국 지식인들이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과는 사뭇 다른 접근법이 요구된다.거듭 말하지만, 중국 지식인들의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와 비교할 때, 서구 정치철학자들이 유교 정치사상에서 발견한 역할 윤리는 중국인의 역사적 경험에서 벗어나 유교 정치사상이 갖는 보편성을 잘 보여주는 장점을 갖고 있다. 동시에 유교 전통에서 발전된 ‘다수’와 ‘소수’의 차이에 기초한 ‘현능주의’가 갖는 비민주적이고 불평등한 관계성을 극복할 또 다른 유교 정치사상의 원칙을 제시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그러나 역할 윤리가 유교 정치사상이 갖고 있는 한계를 모두 극복한 것은 아니다. 특히 유교 정치사상이 갖는 자연주의적 낙관론이 초래하는 문제점을 똑같이 갖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역할 윤리학자들도 불공정하거나 불평등한 관계가 초래하는 갈등이 쉽게 해소될 수 있다는 낙관적 견해를 갖고있다. 이런 자연주의적 낙관론은 가족 관계로부터 함양된 도덕적 인성이 공동체를 넘어 지구적 차원으로까지 손쉽게 확대될 수 있다는 견해를 통해 더 구체화된다.극한 환경에서도 따뜻한 필름 형태 발열체 개발
한태희 한양대 교수 연구팀다습한 기후나 차가운 바닷속과 같은 거친 환경에서도 저전압·저전력으로 구동될 수 있는 필름 형태의 유연 발열체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해당 기술은 의료, 군사, 아웃도어 의류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한태희 한양대 교수(유기나노공학과) 연구팀이 두 종류의 이차원 신소재인 그래핀(Graphene)과 맥신(MXene)을 이용해 두 신소재의 장점만 발휘되도록 설계된 필름 형태의 고효율 발열체를 제작했다.지난 5일 한양대에 따르면, 연구팀은 외부 환경에 민감한 맥신 소재에 나노미터 수준의 그래핀 스킨 구조를 적용했다. 이로써 맥신의 저전압 구동 장점을 살리면서 그래핀의 발열 효율과 산화 안정성을 갖는 하이브리드 필름을 개발했다.연구팀은 산화그래핀 용액과 맥신 용액을 이용하여 그래핀-맥신-그래핀의 샌드위치 구조를 갖한태희 한양대 교수(유기나노공학과)이다. 한 교수 연구팀은 고효율 발열체를 개발했다. 사진=한양대
는 수 마이크로미터 두께의 유연 발열 필름을 제작했다. 그래핀 스킨을 적용한 맥신 발열체는 높은 환경 안정성과 낮은 열손실 계수를 가져서 물 속과 같은 극한 발열 환경에서도 동작할 수 있으며 높은 발열 효율을 보인다.
전도성 소재인 그래핀은 높은 열효율과 화학적 안정성 덕분에 전열 응용에는 적합하지만 얇은 필름 형태에서는 높은 전기저항으로 인해 높은 구동 전압을 요구한다. 반면 맥신은 높은 전도도를 지녀 저전압 발열 응용에 이용할 수 있지만 낮은 화학적 안정성으로 인해 전열 성능이 빠르게 줄어드는 문제가 있다.한태희 교수는 “산화되기 쉬운 성질로 사용에 제약이 있던 신물질 맥신의 적용 분야를 넓히면서, 저전압 저전력으로 구동이 가능한 그래핀/맥신 발열체는 향후 많은 분야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연구의 잠재력을 설명했다.이번 연구논문의 제1저자인 강동준 박사과정은 “이번에 개발된 그래핀 스킨은 용액공정을 이용한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간단한 스프레이 공법으로도 제작할 수 있어 고효율의 투명 발열 창으로도 응용이 가능한, 매우 실용적인 나노 복합기술”이라고 밝혔다.이번 연구결과는 「불투과성 그래핀 스킨층이 적용된 고효율/고안정성 맥신 발열체」라는 제목으로 재료공학과 기초과학 분야 세계적 학술지인 「스몰(Small)」 7월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선생님의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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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패러독스를 넘어서 닉슨 패러독스로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일반인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e-나라지표에서 우리나라 연구개발비 통계를 찾아보면 데이터가 처음 나오는 시점이 1976년이다. 당시 정부와 민간을 합친 국가 총 연구개발비는 609억 원으로 GDP 대비 0.4%였다. 이 통계에는 안 나타나지만 경제개발을 막 시작한 1963년엔 고작 12억 원(GDP 대비 0.25%)이었다.
이후 R&D 투자는 꾸준히 늘어나서 아름다운 우상향을 그려왔다. 1996년에 처음 10조 원을 돌파하고, 2012년에는 50조 원 대에 진입했다. 2014년에는 약 63.7조 원을 기록했다. 이때가 이스라엘을 0.1% 포인트 차이로 제치고 GDP 대비 세계 1위(4.29%)로 등극한 때였다. 이후 2015~2016년은 잠깐 2위로 내려앉았다가 2017년 다시 1위를 회복했다. 이번에는 GDP 대비 4.55%로 이스라엘(4.25%)을 압도적 차이로 제쳤다.그런데 1위가 마냥 좋은 게 아니었다. 이처럼 투자가 늘면서 ‘R&D 패러독스’라는 우려가 퍼지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기술 선진국인 이스라엘이나 기초과학 역시 튼튼한 미국보다 GDP 대비 더 많은 비중의 예산을 R&D에 투자하고 있는데 그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가? 막대한 과학기술 투자가 가성비가 있나?
R&D 패러독스라는 표현 자체가 지극히 자조적이고 자극적이다. 더욱이 절대 금액이나 민간을 제외한 정부 R&D 예산만 보면 우리가 정말 세계 1위를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R&D 페러독스가 정말 패러독스인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견이 갈린다. 그런데도 지난 수년 동안 중앙정부나 과학기술계의 R&D 혁신 관련 논의는 예산·인력·제도·인프라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어떻게 이 패러독스를 해소할 것인지에 집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최근 갑작스러운 R&D 예산 삭감으로 과학기술계가 적잖이 충격을 받고 있다. 이번 삭감 결정은 소부장 사태·코로나 위기 등으로 갑자기 늘어난 R&D 예산을 정상적으로 돌려놓고, 그동안 나눠먹기·뿌려주기식 예산의 비효율적 관행을 바로잡자는 취지라고 한다.정부 R&D 예산은 2008년 처음 10조 원을 넘어선 후 2019년 20조 원에 오르기까지 12년이 걸렸는데, 5년 만에 다시 10조 원이 늘었다. 확실히 가파른 증가였다. 또한 연구 현장에 여러 형태의 무수한 비효율이 있다는 것도 확실한 사실이다. 과학기술계도 R&D 예산을 마냥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니고, 제도 개선 등 예산 외의 수단으로 R&D 성과를 늘릴 필요에 대해서는 누구나 대체적으로 동의한다.그런데도 이번 삭감에 놀라는 이유는 무엇보다 과학기술 기반 국정과 기술 패권 시대 과학기술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해온 정부가 오히려 R&D 예산을 대폭 깍기로 한 것, 즉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왼쪽으로 돈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국제관계에서 ‘중국에 간 닉슨’이라는 표현이 있다. 냉전에 균열을 낸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방중(訪中)은 닉슨이라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만이 할 수 있었다는 아이러니를 일컫는 말이다. 즉, 지지자들한테 확고한 평판을 가진 지도자만이 언뜻 그 평판과 어긋나지만 다른 경쟁자가 하면 반발을 가져올 정책에 성공할 수 있다는 뜻으로 ‘닉슨 패러독스’라고도 부른다.대체로 보수 정권이 과학기술, 진보 정권이 복지에 방점을 찍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대 정권별 R&D 예산 증가율을 보면 정반대다. R&D 예산 증가율 평균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는 각각 17.1%, 10.8%, 11%였고,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9.6%, 4.5%로 떨어졌다. 진보 정권일 때 높고, 보수 정권일 때는 오히려 낮았던 것이다.이 자체로 아이러니다. 이번 R&D 예산 삭감이 정부가 강조하는 비정상 예산의 정상화이든 카르텔이든 상관없이 실제로 R&D 분야의 비효율을 제거해 전략적 R&D에 집중한다는 화려한 목적을 달성해준다면 과학기술계의 닉슨 패러독스라고 부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건 연구 현장만큼 정부 역시 잘 알고 있다. 지난 십수년 반복된 R&D 혁신 실패의 경험으로 처절히 알게 된 진실이다. 그나저나 이제 R&D 예산의 우상향이 끝났다니, 과연 우리가 당장 닉슨 패러독스는 제쳐두더라도 R&D 패러독스의 부담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지를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제공=아르코미술관
갤러리 초대석
「불지옥 산속을 기듯이 헤치고」노원희, 2007, 캔버스에 아크릴릭, 크레파스, 30×45cm.“아아, 이제 불지옥의 그 무서운 날이 다가온다. 나와 칠성이가 부령을 둘러싼 고성산과 자유봉으로 연이어진 어느 산 중턱에서 길을 잃고 헤매었는데 어디선가 매캐한 연기 냄새가 났다. […] 한굽이를 돌아가자마자 저 아래쪽에 온 산이 타올라 오고 있었다. 아니, 온 천지가 연기와 불길이었다.”2007년 〈한겨레〉에 연재된 황석영 작가의 『바리데기』 4장 37화 일부다. 노원희의 삽화는 주인공 ‘바리’를 둘러싼 환상과 세계를 생생히 전한다.말 없는 그림으로 발언하기,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공감과 연민, 현실과 역사를 대하는 그의 태도를 쫓다 보면 그가 붓질로 감각하고 감지했던 시대의 형상을 만나게 된다.「노원희: 거기 계셨군요」에서는 노원희의 1980년대 회화부터 대형 천 그림, 참여형 공동작업, 신문 연재소설 삽화 등 그의 작품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작품과 자료를 130여 점 선보인다. 전시는 아르코미술관에서 오는 11월 19일까지다.조준태 기자 aim@kyosu.net교수논평
국회가 발의한 ‘사립대 구조개선법’ 대안 만들자현재 국회에는 사립대학 구조개선 지원에 관한 법안이 4개나 발의돼 있다. 1년 전인 2022년 9월 국민의힘 이태규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을 시작으로, 지난 8월 18일에 더불어민주당 문정복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까지 여야가 각각 두 건씩의 법안을 내놓았다.
이 4개 법안은 큰 틀에서는 모두 비슷하다. 안타깝게도 모두 사학 법인의 이해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한국 고등교육의 생태계를 어떻게 정비하고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이 법안은 일단 모두 철회하는 것이 정답이다.현재 상정된 법안들은 경영위기 대학의 신속한 퇴출을 위해 사립대학 운영진의 저항을 달래기 위해 폐교나 법인 해산 시에 어떤 혜택을 안겨줄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당인 정경희 의원 법안은 잔여재산의 100분의 30 이내의 범위에서 해산장려금을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에 야당 문정복 의원 법안의 제17조는 “해산장려금의 범위, 한도와 절차,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을 시행령으로 넘기고 있으니, 현 정부의 ‘시행령 정치’에 동조하는 것인지 의아할 지경이다. 시간이 갈수록 더 이상하고 나쁜 법안이 나오고 있는 셈이다.만약 이런 식의 해산장려금 제도가 도입되면, 정말 하루속히 문을 닫아야 할 한계대학이 아니라 충분히 운영이 가능한 재정 여력이 있으며 지역 사회에 기여할 잠재력도 큰 대학이 먼저 없어질 수 있다. 잘 팔릴 땅과 건물을 가지고 있는 괜찮은 대학의 운영진이 폐교를 결정하고 재산을 신속하게 처분하여 최대 30%를 챙겨간다면, 경우에 따라 해산 장려금이 수백억 원을 넘길 수도 있고, 애당초 출연자가 교육을 위해 내놓았던 재산보다 훨씬 많을 가능성도 높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보다도 먼저 이번 정기국회에서 여야 야합으로 이 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질적 사회공론화를 통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당장 신선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기 어렵지만, 적어도 세 가지 정도 원칙은 말할 수 있다.
첫째, 새로운 구조개선법은 대학 생태계 정비의 전체적인 마스터플랜을 담아야 한다. 현재 학령인구 급감과 (역대 정권들의 책임이 큰) 대학 생태계 정비의 지체로 인해 단순 계산으로도 우리는 15년 안에 현행 대학입학 정원의 40% 이상을 줄여야 하는 비상 상황이다. 교육부가 주도하든 대학이 자발적으로 결정하든 몇몇 대학을 순조롭게 없애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 마스터플랜에는 반드시 고등교육 투자에 대한 내용이 담겨야 하며, 구조조정으로 일자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는 교원과 연구원이 적절하게 계속 연구와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방안도 담겨야 한다.둘째, 앞의 법안들이 설치하도록 규정한 ‘사립대학구조개선심의위원회’의 인적 구성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교수노조가 합법화된 현실을 반영하여 전체 위원 중 절반 안팎의 숫자를 전국교수노조·국교조·사교조·비정규교수노조 등의 노조 협의체가 추천하는 인사(변호사, 공인회계사 각각 최소 1인 포함)로 임명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셋째, 지역 차원의 대학구조개선 방안을 마련하여 실행하는 장치가 들어가야 한다. 야당인 강득구 의원과 문정복 의원 법안의 “폐교대학 특별지원지역의 지정” 조항은 모호하고 실효성이 없다. 지역 고등교육 생태계를 살릴 방안이 나와야 하며, 지역별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해당 지역의 대학 및 지역사회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 대학 통·폐합 등을 결정하게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마지막으로 여당 정경희 의원 법안에서 한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정 의원 법안은 “폐교에 따른 편입생에게 편입학을 위한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다”(제18조 4항)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실효성도 없을뿐더러 대학과 교원을 살려야 학생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기본 시각이 결여되어 있다. 잔여재산으로 다른 대학으로 편입학하는 학생 1인당 일정 액수를 편입생을 받아들인 대학에 대해 교육의 질 향상을 명목으로 지원하는 것이 타당하다. 교원의 경우도 마찬가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사라지는 대학의 잔여재산으로 살아남을 대학을 튼튼하게 만들 생각을 해야 옳은 것이다. ‘해산 장려금’이라는 발상은 원칙적으로 문제가 너무 많은 것이다.
김명환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현재 전국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 교수협의회 부회장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특별위원장을 지냈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전라도 천년사’ 논란 지역민·연구자로서 말한다역사에 흥미를 갖고 대학에 와서 연구자를 꿈꾸며 공부한 지도 10여 년이 훌쩍 지났다. 여전히 부족한 공부와 연구를 하고 있지만, 『전라도 천년사』를 둘러싼 논란은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없어 마음이 착잡하다. 연구자로서, 그리고 지역민으로서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전라도 천년사』(이하 『천년사』)는 전라도 정도 천년을 맞이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에 걸쳐 편찬된 제법 장대한 역사서이다. 당초 『천년사』는 지역민의 염원과 혈세, 각 분야 전문가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사업이기에 편찬위와 시ㆍ도민 연대 사이의 격양된 논쟁 자체는 충분히 있을 법한 광경이다.우리의 굴곡진 역사를 생각했을 때, 『일본서기』나 ‘임나일본부설’과 같은 민감한 서술에 보인 일부 지역민의 날선 반응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편찬위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미 효력을 다한 논리를 다시 소환해, 집필진을 비롯한 역사학계와 연구자를 ‘조선총독부의 역사관을 추종하는 자’로 매도한 채, ‘식민사학’과 ‘강단사학’이라는 굴레를 덧씌우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의문이다.논란의 중심에 있는 우리나라의 고대사 분야는 상대적으로 그 자료가 너무 부실하여 국내외 다양한 유형의 자료를 망라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고대사를 수록한 역사서의 대부분은 ‘사실과 기록의 시점’, ‘사건과 기록의 주체’가 다르거나 불분명한 경우가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에 세심한 비판과 검증을 거듭해야 한다.
단적으로 『삼국사기』를 통해 고대사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편찬자인 김부식이라는 고려인과 그의 시대를 먼저 살펴야 하며, 『삼국사기』로 정리ㆍ기록되기까지 시공간을 달리한 주체와 자료의 혼입을 생각해야 한다. 더하여 그 과정에서 산재한 착종과 오류까지도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사료비판’을 거쳐 여러 겹으로 쌓인 베일을 걷어 내야만 고대사를 겨우 말할 수 있게 된다.이와 같은 과정을 생각하면 고대사를 비롯한 역사 연구에서 칼로 베듯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역사 관련 설명에서 자주 보이는 확언하지 않는 표현과 태도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재미없고 답답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 한 치 앞도, 한 길 사람 속도 알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물며 온전치 않은 자료를 통해 아득히 먼 옛 시대의 일을 어떻게 단언할 수 있을까.중ㆍ고등학교 시절 『국사』와 『한국근현대사』를 달달 외웠음에도 대학에서 공부하며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교과서에 실린 한 단어, 한 줄이 사실 수많은 연구의 결과 중 하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구의 대부분이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하지도 않는다.
‘정설’ 혹은 ‘다수의 설’이란 장기간에 걸쳐 연구자들이 검토와 비판을 반복하며 ‘그나마’ 도달한 수준이며, 현재의 시점에서 유효할 뿐 언제라도 새로운 자료와 연구로 대체될 수 있는 불안한 설명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현재의 연구 성과들은 그만큼 지난한 탐구의 결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존중의 토대 위에서 토론과 비판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천년사』의 방식도 기본적으로 이와 다르지 않다. 새롭게 발굴된 자료들을 반영하여 기존의 연구를 비판하고 재해석했다. 동시에 왜곡을 바로잡고 실상을 온전하게 드러내어 우리 지역의 역사적 위상을 새롭게 인식하고 대내외에 공유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취지와 방향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역민이자, 연구자로서 『천년사』를 두고 일방적으로 전면폐기를 운운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 폐기는 그저 미봉에 불과할 뿐, 오히려 지금의 논란에 이르기까지 양측에 주어진 일말의 개선과 성찰의 여지조차도 무마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집필 내용에는 실수와 오류가 있을 수 있고, 편찬과정에서 행정 절차와 지역민의 의견 수렴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소재를 분명히 하여 책임과 의무를 다해 고쳐나가면 될 일이라고 본다. 토론을 통한 해결이 아닌, 편향된 논란과 의혹 양산으로 대결 구도에 매몰된다면 『천년사』를 바라보는 모두에게 상처만 남을 뿐이다. 우리 지역과 학문의 후속세대로서 『천년사』에 쏠린 지역민의 관심과 연구자들의 노력만큼 정당한 이해와 비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문다성
전남대 사학과 박사수료전남대에서 한국고대사를 공부하고 있다. 「신라 김인문의 웅천주 수봉지와 박유의 식읍」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신라의 영토의식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AIEDAP 호남권 사업지원단의 전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상돈의 교수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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