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만 바라 볼 것인가…대학입학자원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데이터로 읽는 대학⑨

외국인 유학생과 성인학습자

학령인구 감소는 사립대학의 존립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이자 지역대학의 미래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핵심 문제이기도 하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미충원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다룰 네 번째 주제는 ‘대학입학자원에 대한 인식 전환’이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향후 고등교육의 게임체인저가 될 성인학습자 교육 확대 방안을 살펴 본다.

국내외 유학생 현황을 보자. 내국인의 외국 유학은 2007년 21만 7천959명에서 2011년 26만 2천466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2022년 12만 4천320명으로 2011년 대비 52.6% 감소했다. 반면에, 해외에서 유입되는 외국인 유학생은 2007년 4만 9천270명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해 10년 후인 2017년에는 12만 3천858명으로 약 2.5배 증가했고, 2022년에는 16만 6천892명으로 약 3.4배 늘었다.

내국인 유학보다 외국인 유학생이 더 많다

2022년을 기점으로 내국인 외국 유학생보다 해외 외국인 유학생이 4만 2천572명이 더 많아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해외 외국인 유학생 증가는 최근 확산되고 있는 K-한류(드라마·영화· 음악·음식 등)의 영향이 컸다.

내국인의 유학 국가는 미국이 32%, 중국 14%, 일본 11%, 캐나다 9%, 호주 8% 순이다. 유학 유형별로는 학사 58.4%, 대학원 22.4%, 어학연수 4.8%, 기타 14.4% 순으로 학위 유학이 80.8%로 가장 많았다. 해외 외국인 유학생의 출신 국가는 중국이 40%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은 베트남 23%, 우즈벡 5%, 몽골 4%, 일본 4%, 미국 2%, 기타 22%로 나타났다. 유학 유형별로는 학위 연수가 75%(학사 49%, 석사 16%, 박사 10%)로 가장 많았으며, 어학연수가 16%, 기타 9% 순이다. 2004년에 시작된 외국인 유학생 유치 확대 정책은 유학·연수 수지 적자 개선, 고등교육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위상 제고, 해외 우수 인적자원 활용이 목적이었다. 학령인구 감소시대를 맞이한 최근에는 대학 신입생과 지역인구 자원확보를 위한유학생 유치에 대학과 지자체가 힘을 합치고 있다.

유학생 유치 걸림돌 ‘국제화역량 인증제’

그러나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국제화역량 인증제도도 불합리하고, 외국인 유학생의 불법체류에 대해 대학에 과도한 책임을 부가하고, 재정능력 입증 기준이 높고, 유학생의 경제활동(을 제약하고 있다. 또한, 한국어능력시험 점수와 대학의 유학생 질 관리, 졸업 후 국내 정주 및 취업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런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범부

내국인 유학생과 외국인 유학생 추이(2007-2022)

내국인 유학생

262,465외국인 유학생 239,824

217,959

156,520166,892152,281

123,858124,32089,537

49,270

20072011201720212022

출처 : 교육부 2023

중・장년층 인구(2021)

총 인구(내국인) 총 장년층 인구 총 장년층 비중(%)

(천 명)

55,00049,97850,00050,13350,088

39.740.040.140.3

19,82319,97920,08620,1822018년2019년2020년2021년

출처 : 통계청(2022). 2021년 중장년층 행정통계 결과 보도자료. 2022.12.20.

처 차원의 통합 관리가 필요하다. 법률 제정과 현행 지침의 개선 방안이 마련돼야 우수한 유학생을 유치해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소멸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입학자원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디지털 대전환으로 인한 산업과 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대학의 역할과 기능을 개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존의 학령기 대상 학문과 학위 위주의 교육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직업교육체제로의 근본적인 변화 요구다. 평생직업교육을 위한 학사모형 개발과 평생교육차원에서 성인 학습자 대상 학위·비학위 과정 운영과 같은 성인

친화적 교육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일반 성인도 대학에서 개설되는 비학위 과정을 3개월·6개월·1년 등 다양한 기간 동안 수강하고 이를 누적해 학점·학위(나노디그리나 마이크로디그리)까지 취득하도록 하는 것이다.

40.3% 중장년층을 대학교육 대상으로

통계청(2022)의 중장년층 인구를 보면, 성인교육의 대상이 되는 중·장년층 인구(40~64세)는 2천18만2천명으로 총 인구(내국인)의 40.3%를 차지하고 있다. 남자가 1천13만8천명(50.2%), 여자는 1천4만4천명(49.8%)으로 나타났다. 중·장년 등록취업자는 1천340만2천명으로 중·장년층 인

구의 66.4%를 차지한다. 중·장년층 등록취업자 비중은 2017년 61.5%에서 2018년 62.9%, 2019년 63.9%, 2020년 64.9%, 2021년 66.4%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들 중장년층 인구를 대학의 성인교육 대상으로 삼는다면, 현재와 미래의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지역대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급격한 인구절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는 각종 출산 장려와 보육지원책을 내세우며, 지난 16년간 280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결과는 매우 미흡했다. 이 예산의 1%인 2조8천억원만 매년 고등교육에 투자해도 지역대학을 살리고, 대학의 교육여건 개선은 물론 고등교육의 질과 글로벌 경쟁력도 제고될 것이다.

대학의 학령인구 문제는 인구문제보다는 재정문제가 핵심이다. 이는 대학재정의 등록금 의존율이 지역대학, 특히 중소규모 대학으로 갈수록 높기 때문이다. 2022년 대학교원 1인당 학생수는 20.8명으로, 유치원 10.3명, 초등학교 13.7명, 중학교 11.7명, 고등학교 9.6명 보다도 2배 가까이 많아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미국 최상위권 명문대학들의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대부분 1:10 이하이며, 연구중심대학은 더 낮아서 MIT와 칼텍은 1:3, 하버드대와 예일대는1:6 수준이다.

고등교육체제에서 평생교육은 이제 부수적인 개념에 머물러는 안된다. 대학 스스로도 인구절벽과 디지털 대전환이라는 사회변화에 적극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 대학의 고등평생교육체제로의 전환은 대학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대학은 전생애를 포괄하는 평생교육 체제를 구현해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정부는 성인 재교육과 자기계발을 위한 재정지원과 제도 개선을 조속히 시행할 필요가 있다.

황인성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사무처장

대학평가와 고등교육 전문가로 교육통계 분석 작업에 참여해 왔다.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을 거쳐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정보공시 센터장과 기획조정실장을 지냈다.

분산된 대학정책으로 학령인구 대응 어렵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2023 국가의제 종합연구

대학 정책이 분산돼 추진되고 있어 학령인구 감소에 대한 대응이나, 대학의 지역혁신 기여 등이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교육부 장관은 사회부총리로서 중앙부처 간 대학 정책을 조정하는 한편, 지자체와의 협력 관계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국가의제 연구단은 최근 ‘2023 국가의제 종합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국가의제연구단은 대학정책은 ‘중장기 로드맵’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단은 그동안 고등교육 정책이 일관성 없게 추진됐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은 교육부의 관리·감독과 정책적 지원하에 운영되고 있지만, 다른 부처가 설립했거나 운영하는 대학은 해당 정책 범위 밖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한 대학 정원감축이나 적정규모화 등의 정책 추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정부가 한국에너지 공과대학을 설립한 사례를 들었다. 또한, 과학특성화를 목적으로 설립한 과학기술원은 학부정원을 계속 늘렸고, 직업훈련·재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된 폴리텍대학도 전문학사 과정의 정원을 늘렸다고 지적했다.

대학에 대한 재정투자 전략도 부재했다. 링크 3.0 기본계획, 대학혁신지원사업 기본계획,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원혁신사업 기본계획 등 ‘기본계획’이란 동일한 명칭으로 대학 재정지원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이들 사업 간 위계나 관련성 등을 명확히 알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방식의 정책 추진은 정책 목표와 전략에 대한 공통된 이해를 어렵게 해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봤다.

고등교육 정책을 교육부로 국한하더라도 종합적 발전계획이 수립돼 있지 않다고 했다. ‘고등교육법’에 의한 고등교육 재정지원 5개년 계획과 ‘지방대학 육성법’에 근거를 둔 지역균형인재 육성 지원 기본계획이 대표적인 법정 기본계획이다. 그러나 이 정책의 영향력은 크지 않고 성과 점검과 이에 대한 조정 등의 절차와 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했다.

연구단은 교육부 등 중앙부처는 물론이고 지자체 수준의 대학정책 관련 계획의 수립과 이행현황을 분석해 체제를 확립해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2011년과 2022년 고등교육 국가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보고서로 제시한 아일랜드나 유럽의회가 대학 관련 전략을 논의한 것처럼 대학정책을 보다 중장기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장기적 로드맵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 간 긴밀한 협력만이 아니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고용노동부·산업자원부·

중소기업벤처부 등 부처 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아울러, 모든 대학정책이 동일한 목적과 내용으로 추진될 필요는 없지만, 효과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각 대학 관련 정책의 기본 근거와 통합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고 봤다. 대학정책 의제를 맡은 임후남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고등교육 정책에 세부 계획은 있으나, 그것을 아우르는 큰 그림이 없다는 비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중장기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것은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한국 고등교육을 어떤 수준으로 올려놓을지에 대한 단계적 계획과 전략의 수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번 종합연구에는 83명의 연구자가 참여했으며 △경제분야 △사회분야 △기후환경분야 △정부거버넌스분야 △대외분야에 대한 국가의제를 제안했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한국출판협동조합 기획전

서점에서 만나는 '여름, 첫책'

서울국제도서전 신간 발표 도서

『강물과 나는』『괴이, 학원』『다정한 비인간』『산복빨래방』『언제나 다음 떡볶이가 기다리고 있지』

『하늘 호수』

『마린 걸스』

『영원히 알거나 무엇도 『우리는 순수한 것을 『인생의 열 가지 생각』

믿을 수 없게 된다』생각했다』

‘여름, 첫책 함께하는 서점

■ 서울(7개사)

갑을문고, 노원문고, 연신내문고, 혜화 동양서림, 홍익문고, 목동 햇빛문고, 방배 한길서점

■ 수도권(18개사)

광명 일지서적, 구리 동원서적, 김포 열린문고, 남양주 호평서적, 부천 경인문고, 성남 수정서점, 성남 중원문고, 성남 코끼리서적, 수원 세종서림, 안산 대동서적, 안산 한가람문고, 용인 용인문고, 인천 논현문고, 인천 대한서림, 인천 마샘, 인천 서협문고, 인천 햇빛문고, 일산 한양문고

■ 지방(29개사)

강릉 말글터문고, 광주 세종문고, 광주 수완세종문고, 광주 한림서적, 구미 삼일문고, 군산 한길문고, 대전 계룡문고, 대전 타임문고, 대전 휘게문고, 부산 남포문고, 부산 영광도서, 세종 꾸메문고, 속초 문우당서림, 순천 중앙서림, 아산 형제서점, 양산 세종서관, 오창 발산문고, 울산 처용서림, 원주 북새통, 익산 원서점, 전주 혁신문고, 전주 호남문고, 전주 홍지서림, 진주 진주문고, 창원 그랜드문고, 천안 국민도서, 청주 쉼표서적, 청주 휘게문고, 충주 책이있는글터

■ 제주도(2개사)

제주 남문서점, 제주 한라서적타운

비수도권 총장 52.9% “대학 간 통합 검토하고 있다”

대교협·교육부 기자단 대학총장 설문조사

▶1면에서 이어짐

최근 발표된 글로컬대학 예비지정 결과에 대한 대학총장의 평가는 어떨까. 교육부 기자단 설문조사에서 대학총장 71.6%는 ‘대체로 만족하지만 부족한 대학도 포함됐다’고 밝혔다. 17.3%는 대체로 부족한 대학이 선정됐으며, 11.1%는 합리적 결과라고 평가했다.

올해 글로컬대학 예비지정에서 탈락한 대학의 총장80.4%는 내년에 다시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19.6%는 지원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글로컬대학 예비선정을 앞두고 대학가에 ‘통합’ 바람이 불었다. 대학 간 통합 바람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 대학총장 45.1%는 대학 간 통합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비수도권 대학총장이 대학 간 통합에 관심이 더 많았다. 52.9%가 대학경쟁력 강화를 위해 통합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68% “글로컬대학, 설립·지역별 안배 필요”

글로컬대학 평가 방식 중 개선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국립대와 사립대, 지역별 안배가 필요하다고 68.0%의 총장이 답했다. 23.1%의 대학총장은 평가자료(혁신성·성과관리·지역적 특성)의 구성 및 배점, 8.9%는 혁신기획서 분량과 구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5년간 1천억 원을 지원하는 글로컬대학에 선정되면 세계적 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대학총장들은 1천억 원의 규모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이 더 많다. 32.9%는 2천억 원 이상은 투자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고, 22.8%는 2천억 원, 7.6%는 1천500억 원은 돼야 한다고 봤다. 1천억 원도 충분하다는 총장은 36.7%였다.

77.5% “지자체 역량 및 전문성 우려”

대학지원 패러다임을 바꾸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이하 라이즈)도 이슈다. 총장들은 라이즈의 가장 우려되는 부분으로 ‘지자체의 대학지원 역량 및 전문성’(77.5%)을 꼽았다. 이어 지자체장 선거와 고등교

전국 대학총장 설문 결과

글로컬대학 예비지정에 탈락했다면 내년에 재도전할 계획이 있나?

있다 80.4%

없다 19.6%

글로컬대학 평가방식 중 개선해야 할 점은?

국립대와 사립대, 지역별 안배 68.0%

평가자료(혁신성, 성과관리, 지역적 특성)의 구성 및 배점 2 3.1%

혁신기획서 분량과 구성 8.9%

※교육부 기자단 자료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학 간 통합을 검토하고 있나?

통합 검토 안한다 54.9%

통합 검토한다 45.1%

※교육부 기자단 자료

육정책의 일관성 및 지속성(61.6%), 대학에 관한 행정 및 재정 권한의 위임(44.9%) 순으로 우려가 많았다. 이외에도 지자체 주도의 대학 재정지원 평가(31.9%), 지역 및 지역대학의 특성을 고려한 지자체-대학 간 협력 거버넌스(31.2%), 지자체별 고등교육 수요(대학 수 등) 차이에 따른 지자체 간 재정 부담 격차(25.4%), 지자체 간 산업 및 인력수요 불균형(13.8%) 등을 이슈로 지적했다.

이런 인식에 따라 라이즈 시범지역(경남·경북·대구·부산·전남·전북·충북)의 대학 가운데 16개 대학은 지자체의 대학지원 역량 및 전문성 강화를 요청했다. 15개 대학은 지역과 지역대학 특성을 고려한 협력거버넌스 구축, 11개 대학은 지역대학 특성을 고려한 지자체의 대학 재정지원을 요구했다.

‘지자체·대외협력’에 관심 높아져

대학총장의 관심사는 단연 ‘대학재정’ 문제에 쏠려있다. 대교협 설문조사에서 대학총장이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사안은 △정부·지자체의 재정지원 사업(71.0%) △신입생 모집 및 충원(63.8%) △등록금 인

상(52.2%)이었다. 학생 취업 및 창업(43.5%)과 재학생 등록 유지(42.0%)도 주요 관심사다. 지자체 및 대외협력은 올해 1월까지만 하더라도 20.2%로 관심 순위 11위였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26.8%로 9위로 올라 지자체와의 협력이 강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립대와 국립대 총장의 관심사는 차이가 있다. 사립대는 재정지원 사업과 신입생 모집 및 충원, 등록금 인상, 재학생 등록 유지 등과 같이 대학재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국·공립대는 교과과정 및 학사 개편, 교육시설 확충 및 개선이 2~3위에 올라 학사 영역과 교육여건 개선에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지역별로는 최근 학령인구 감소와 맞물려 광역시와 시·도단위 대학에서 신입생 모집 및 충원, 재학생 등록 유지가 각각 1위와 3위로 나타나 학생 미충원에 따른 지역대학의 고민을 보여주었다.

고령사회 대응 방안은 ‘평생교육’ 확대

대규모와 중규모 대학의 경우에도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은 재정지원 사업이다. 신입생 모집 및 충원, 등록금 인상은 2~3위로 나타나 재정 확충 사안에 관심이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소규모 대학은 재정 확충뿐만 아니라, 대학 평가 및 인증이 3위로 나타났다. 소규모 대학의 특성을 반영해 대학평가 지표의 다양화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초저출산과 고령사회에서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대학의 대응 방안으로는 50개 대학이 고등평생교육체제로의 재구조화와 평생교육 기회 확대를 꼽았다. 43개 대학은 외국인 유학생 적극 유치를, 30개 대학은 대학 특성화 강화와 교육의 질 제고라고 답했다.

대교협의 이번 설문조사는 전국 4년제 대학을 대상으로 했으며 회원대학 193곳 중 138곳이 조사에 응했다. 조사기간은 지난달 1일부터 13일까지였다. 교육부 기자단의 설문조사는 지난달 29일 열린 대교협 하계대학총장 세미나에 참석한 대학총장을 대상으로 진행 했으며 총 84명이 응답했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일반대-전문대’ 통합지원 법 개정 추진

이태규 의원, r고등교육법s 개정안 발의

일반대와 전문대를 통합한 대학에 한해 학사학위 과정과 전문학사 학위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법 개정이 추진된다. 통합 대학이 전문학사 학위과정을 운영할 경우 ‘고등교육법’의 전문대학 규정을 준용하는 근거도 마련된다.

국회 교육위원회 간사인 이태규 의원(국민의힘)은 고등교육 3대 개혁과 당정협의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30일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번 개정안은 전문대와 일반대가 통합하는 경우

해당 대학이 전문대학의 학위과정을 지속해 운영할 수 있도록 해 통폐합의 유인구조를 마련하는 데 있다. 현행법에는 일반대와 전문대가 통합되는 경우 전문대가 수여하던 전문학사 학위를 통합 이후에 해당 대학이 수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이로 인해 학교법인이 교육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학과 전문대학 간 통합을 추진하더라도 우수한 전문학사 과정을 포기하기 어려워 통합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태규 의원은 “일반대와 전문대가 통합할 경우, 대학이 경쟁력 있는 전문학사과정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 직업고등교육 생태계를 보호함과 동

시에 학교법인의 자발적 통폐합을 촉진함으로써 대학의 혁신과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법안을 발의했다”라고 밝혔다.

한편, 올해 글로컬대학 신청에서 사립일반대와 사립전문대가 공동으로 신청서를 낸 경우는 7건(15교)이었으나 예비지정에서 모두 떨어졌다. 국립대와 공립전문대 1건(2교)만이 글로컬대학 예비지정에 선정됐다. 지난달 21일에는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은 국립대와 공립대 간 통합의 법적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국·공립대학 통합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사립대 교수들, ‘주 9시간’

수업시수 폐지에 강력 반발

“헌법에 규정한 교육 전문성·교원법정주의 원칙 훼손”

사립대 교수들이 ‘주 9시간’ 수업시수 기준 폐기 등을 추진하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전면개정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대학교수의 수업시수가 주당15시간 또는 그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고, 이로 인해 학생들이 부실한 수업의 피해를 받게 될 것이라며 시행령 개정을 멈출 것을 요구했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이하 사교련)과 한국사립대학교수노동조합(이하

사교조)은 지난 3일과 4일 교육부의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 추진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사교련은 이번 개정을 통해 교수의 주당 수업시수를 늘리는 대학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업시수와 관련해 ‘9시간 원칙’이 폐지되면 신규교수 채용이 줄어 들고, 비정규직 교원의 설 자리는 더 좁아질 것이라며, 대학교육의 질 자체가 낮아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번 개정에 반대하며 교육부가 헌법이 규정한 교육의 전문성과 교원법정주의 원칙을 훼손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상위법인 ‘고

등교육법’을 무력화하는 방법으로 제도를 바꾸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국회를 향해서는 교육부의 위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행위에 대해 즉각 조사에 착수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교련은 대학교육의 근원적 문제는 대학의 질적 수월성 부족에 있다고 지적하며 대학교육의 질적 제고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 방안으로 국·사립대 관리 체제의 분리, 광역(특별)고등교육구와 고등교육청 설치, ‘사립대학법’ 제정 등과 함께 대학지원체제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고 제안했다.

사교조는 교육부의 이번 ‘고등교육법’시행령 개정이 대학의 공공성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9시간 원칙’ 폐지에 대해 “사립대를 중심으로 악용될 것이 명확하다”라며 “‘근로기준법 50조’를 폐지하고 ‘근로시간을 업체에서 자율로 정하도록 정하는 것’과 같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수업시수 증가는 교수의 연구역량 저하와 연구 없는 부실한 수업으로 이어지기에 교육 수요자인 학생들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국립대 사무국장, 총장 뜻대로

‘국립학교 설치령’ 개정 추진

공무원 규정 폐지, 총장 권한 강화

국립대 사무국장을 총장이 원하는 인재로 뽑을 수 있게 된다.

교육부는 국립대 총장의 사무국장 임용권을 완전히 보장하기 위해 사무국장을 공무원으로 두도록 하는 규정을 폐지한다. 대신, 교수와 민간전문가 등 총장이 원하는 인재를 직접 선발·임용할 수 있도록 ‘국립학교 설치령’ 등 관련 법령 개정을 즉시 추진할 계획이라고 교육부는 지난달 30일 밝혔다.

이번 추진에 대해 교육부는 그간의 조치는 사무국장 인사혁신 취지를 달성하는데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었다며, 계획의 진정성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도록 근원적 인사제도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지난해 9월부터 교육부 출신의 사무국장을 대기발령 조치했으며, 이후 임용과정에서 교육부 공무원은 배제하고, 인사교류 등을 통해 타부처 공무원을 임용하거나 공개모집 절차를 추진해 왔다.

한편, 현재까지 임용된 사무국장은 원소속으로 복귀 조치하고, 사무국장 직위교류에 따라 타 부처에 파견 중인 교육부 공무원도 복귀 조치한다. 교육부 공무원의 복귀에 따른 대기 인력은 (가칭)교육개혁지원 전담팀(TF)으로 한시 운용한다. 이들을 유보통합, 규제개혁, 한국어교육활성화 등의 업무에 순차적으로 배치해 새 교육개혁 과제추진을 위한 수요에 적극 대응할 바침이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그리움이 빚어낸

윤숙자의 개성음식 이야기

여러분은 개성음식에 대해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어릴 적, 어머니의 부엌 친구가 되어,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던 개성음식 이야기와 개성 어르신들이 들려주신

개성 식문화 이야기들

개성음식 이야기/윤숙자 지음/크라운판/284페이지/22,000원

XXX.JCBFLTBO.LS | 02-914-1621

전주비전대학교

제17대 총장 초빙 공고

전주비전대학교는 1976년 개교한 이래 건학이념인‘기독교 정신의 구현’을 바탕으로 우수한 전문인력을 양성해 오고 있습니다. 건학이념을 계승·발전시키고 전주비전대학교를 명실상부한 최고의 명문대학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비전과 리더십을 갖춘 분을 제17대 총장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구 분공고내역

① 건학이념인 기독교 정신을 구현할 교육비전을 가지신 분

② 성숙한 신앙인격을 지니신 분 자격④③ 라원이만즈한( 6대-인7)관) 계사와업 뛰및어 글난로 균컬형 사감업각 등을 각바종탕 으국로책 사학업내에외 선원제활적한 대소응통능을력 할이 수 있 있는는 분 분 ⑤ 대학 주요 지표의 경쟁력 제고 및 재무의 건전성에 기여할 수 있는 분 ⑥ 사립학교법 제54조의3(임명의 제한) 및 국가공무원법 제33조 각 호의 결격사유가 없는 분 ① 지원서 (별첨 양식) ② 이력서 (별첨 양식)

③ 자기소개서 (별첨 양식)

제출서류④⑤ 개추인천정서 보(별수첨집 양및식 이, 용최 소동 의2인서 이 (별상첨 추 양천식))

⑥ 대학발전계획서 (자유 양식, %4용지 20TEKI 이내)

※ 제출한 서류는 일체 반환하지 않으며, 기재된 내용이 허위로 판명될 경우 후보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 제출양식은 전주비전대학교 홈페이지 공지사항(LXXTW://[[[.NZMWMSR.EG.OV/ZMWMSR/QEMR)에서 다운로드가 가능합니다.접수기간 및 기간 : 2023. 6. 30.(금)b2023. 7. 14.(금) 16:00까지(일요일 및 공휴일 제외)

접수방법방법 : 직접 제출, 등기우편 또는 이메일(등기우편 접수는 마감일 도착분까지 유효) 제출서류 방문 및 우편접수 : (55069) 전주시 완산구 능안자구길 134-40, 2층

접수처 학교법인 신동아학원 전주비전대학교 총장추천위원회 이메일 : HKPII$NN.EG.OV

문의처학교법인 신동아학원 총무팀 ☎ 063-220-2773

2023. 6. 30.

전주비전대학교 제17대 총장추천위원회위원장

‘철학적 성찰’로 과학 더 깊이 이해하기

천하제일연구자대회

㊺ 과학을 성찰하는 연구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

자연과 과학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 아무리 과학이 경험적으로 성공하더라도 과학에 대한 메타적 성찰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과학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논리경험주의 과학철학자 한스 라이헨바흐(1891~1953). 경험주의 관점에서 20세기 물리학의 인식적 의의를 해명하고자 했다. 『상대성이론의 공리화』(1924년)는 상대론적 시간과 공간의 의의를 구체적인 경험적 명제들 과 임의적 규약을 결합해 재구성했다. 『시간과 공간의 철학』(1928년)은 시간과 공간의 철학적 의의를 체계적으로 논하면서 통일장 이론에 대한 비판적 시각 또한 담고 있다(사. 진 맨 왼쪽)

과학의 역사와 철학은 그 자체로 표준적인 과학 활동과는 독립적이면서도 과학과 자연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과학이 발전해온 이야기, 과학의 개념적 기초가 무엇인지를 따져 물어온 이야기에서 과학과 자연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다. 더욱이 사람들의 미약하나마 끈질긴 전통을 역사 속에서 확인하는 일은 위안이 되는 일이기도 했다.

자연을 이해하는 한 방식

고등학생 시절 우연히 아인슈타인이 쓴 『상대성 이론 : 특수 이론과 일반 이론』(1916년)과 말년의 자서전적 글을 읽었다. 그렇지만 거듭 읽어봐도 그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한 서점에서 한스 라이헨바흐(1891~1953)라는 과학철학자가 쓴 『시간과 공간의 철학』(1928

년·1958년)을 발견했다. 그 책은 개념적 차원에서 아인슈타인의 글보다 더 직관적이고 섬세한 논의를 담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글과는 다른차원에서 심오했다. 라이헨바흐가 과학자도 철학자도 아닌 ‘과학철학자’라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흔히 라이헨바흐는 논리경험주의 과학철학자로 분류된다. ‘논리경험주의의 죽음 혹은 몰락’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논리경험주의 이후의 새로운 과학철학’에서도 상대성 이론에 관한 라이헨바흐의 철학적 논의만큼 깊이 있는 분석을 찾아보기 어렵다. 논리경험주의의 비판자들이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표준적 견해’라는 것도 과연 라이헨바흐의 입장과 같은 것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19세기의 과학자 중에는 철학적 성찰을 동시에 진행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베른하르트 리만

(1826~1866), 헤르만 폰 헬름홀츠(1821~1894), 에른스트 마흐(1838~1916), 앙리 푸앵카레(1854~1912)등이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 이들에게 ‘철학적’으로 핵심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과학자가 아닌 ‘철학자’, 특히 흄(1711~1776)과 칸트(1724~1804)였다.

상대론적 시·공간에 대한 논리경험주의적 해석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간과 공간에 관해 중요한 개념적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그는 일반 상대론을 종합하는 1916년 3월 논문에서, ‘일반 공변성(general covariance)’을 추구한 결과 시간과 공간에 남아 있던 ‘물리적 객관성’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일반 공변성이란 물리 현상에 관한 법칙이 법칙을 서술하는 기준계와 무관하게 똑같은 수학적 형식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시공간 좌표는 물리적 사건에 대한 측정 결과를 반영하기보다 물리적 사건에 임의로 붙이는 이름표의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곧 시간

과 공간의 물리적 객관성이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따라서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다소 과격한 주장은 이론의 경험적 성공을 넘어서는 일종의 ‘철학적 해석’이었다.

모리츠 슐리크(1882~1936), 루돌프 카르납(1891~1970), 한스 라이헨바흐(1891~1953) 등 논리경험주의를 대표하는 세 철학자들은 이처럼 과학적 이론과 철학적 해석이 착종된 상황을 날카롭게 인식했다. 상대론에 대한 그들의 심도 있는 철학적 분석은 그런 인식의 결과였다. 그중 논리경험주의 시간과 공간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가 바로 라이헨바흐다. 그는 1919년 아인슈타인이 베를린대학에서 발표했던 최초의 일반 상대론 세미나에 참석했다. 이후 평생 아인슈타인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철학적 작업을 진행해나갔다. 당대의 한 철학자는 그를 ‘아인슈타인의 불독’이라 비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라이헨바흐의 시간과 공간 철학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숨겨져 있다. 그의 철학적 분석 결과가 상당 부분 아인슈타인의 해석 및 지향과 달랐다는 것이다. 그런 차이는 그가 자신의 교수

자격 취득논문으로 제출한 「상대성 이론과 선험적 지식」(1920년)에서부터 드러나 있었다. 아인슈타인에게 헌정한 이 논문에서 라이헨바흐는 상대론으로 인해 칸트가 ‘선험적 종합’이라 여겼던 원리들(공간의 유클리드적 특성, 시간의 보편성 등)이 성립하지 않음이 밝혀졌으므로 과학의 인식론은 칸트처럼 ‘이성’을 분석할 것이 아니라 ‘과학적 지식’을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은 뉴턴 역학과 거기에 토대를 둔 칸트의 비판 철학 모두를 의문에 부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은 칸트의 ‘선험적 종합’ 원리가 아닌 새 ‘선험적 종합’ 원리를 제시한 것인가? 라이헨바흐는 상대론 분석을 통해 이러한 새 원리를 밝히려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에서 칸트와 라이헨바흐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칸트는 ‘이성’을 철학 고유의 분석 대상으로 삼아 그분석(비판) 결과를 정밀과학의 단단한 토대(선험적 종합)로 제시했지만, 라이헨바흐는 과학과 구별되는 철학 고유의 분석 대상이라는 개념을 포

기했다. 과학철학자 역시 과학자와 함께 분석 대상인 과학 지식을 공유하며, 오직 철학적 분석과 해명으로 과학 지식의 ‘의미’를 밝힌다는 점에서 과학자와 차별화될 뿐이다. 그런데 분석 대상인 과학 지식은 역사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철학적 분석을 통해 과학 지식이 명료화되고 계층화될 수 있어도 그 속에 칸트가 생각했던 ‘선험적 종합’ 원리는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과학 지식의 분석을 위해 라이헨바흐는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을 구분했다. 아인슈타인은 철학적 분석과 물리학적 직관을 결합하여 혁신적 이론을 개발했지만(‘발견의 맥락’), 이 이론의 경험적 성공과 별개로 그 인식적 의의에 대한 ‘해명’은 충분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철학자는 ‘정당화의 맥락’에서 이론의 인식적 의의를 상세하게 해명해야 하는 것이었다. 『상대성 이론의 공리화』(1924년)와 『시간과 공간의 철학』(1928년)은 그러한 철학적 해명의 요청에 대한 라이헨바흐의 응답이었다.

라이헨바흐에 따르면, 일반 상대론적 상황에서도 시간과 공간의 위상적 질서는 유지되며, 그렇기에 여전히 시간과 공간 질서는 객관적이며 경험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설혹 텐서 해석이라는 난해한 외투를 쓰고 일반 공변성을 만족하는 중력장 방정식이 주어지더라도 시간과 공간의 경험적 질서가 물리적 객관성을 잃지는 않는다. 이는 일반 상대론에 이르러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객관성이 상실되었다는 아인슈타인의 주장에 대한 라이헨바흐의 철학적 ‘교정’이었다.

과학과 함께했던 ‘철학적 성찰’

20세기 전반기의 논리경험주의 철학을 통해 제시된 상대론적 시공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연과 과학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 아무리 과학이 경험적으로 성공하더라도 과학에 대한 메타적 성찰은 그러한 성공과 독립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과학의 ‘의미’에 대

한 ‘해석’이 필요하며, 그런 해석이 간혹 과학 그 자체의 발전에도 기여하기도 한다.

‘논리경험주의의 죽음 혹은 몰락’에 대한 소박한 의심에서 출발한 연구는, 20세기 과학에 대한 논리경험주의의 철학적 작업이 갖는 의의가 과학철학계 내에서 최근까지도 정확히 평가되지 않았다는 더 큰 문제의식으로 이어진다. 지금까지는 논리경험주의 철학의 역사철학적 재구성을 위해 애써왔지만 논리경험주의의 양자역학해석, 논리학, 확률론 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돌아보면 앞으로도 과학에 관한 철학적 성찰이 과학을 좀 더 깊이 이해하게 해주고 더 나아가 과학에서의 혁신을 장려할 것이 분명하다. 20세기 초엽 과학 연구의 세계적 최전선에서 새로운 과학철학의 열정이 태동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20세기 후반 과학 추격국에서 탈피하기 시작한 한국에서도 새로운 과학철학적 정신이 생겨날 역사적 조건이 형성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강형구

국립대구과학관 선임연구원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리경험주의 과학철학자 한스 라이헨바흐(1891~1953)의 시간과 공간 철학을 주제로 학위 논문을 썼다.한국장학재단과 대구과학고등학교에서 일했고, 경상국립대 철학과에서 강사로 과학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상대성 이론의 공리화』 등 7권의 책을 번역했고, 「상대성 이론의 철학적 분석과 물리적 지식의 인식론」 등 9편의 논문을 썼다.

hgkang82@hanmail.net

전국대학언론 기자학교가 열립니다

제 30기 기자학교는 오프라인 대면 강의와 함께 화상회의 플랫폼 >331을 활용한 온라인 과정을 병행해 진행합니다. 제30기 전국 대학언론 기자학교 개최 안내

● 기 간 : 2023년 7월 24일(월) b 26일(수)● 참 가 비 : 대면 강의(20만 원), 온라인(18만 원) ● 진행방법 : 온오프 강의 병행 ※ 대면 현장 강의는 선착순 30명

● 대 상 : 전국대학 신문(영자)〮방송국 현직 기자 ● 접수방법 : 이메일(QIQFIV$O]SWY.RIX) 대학별 일괄 접수

● 문 의 처 : 기획실 하영 실장(02-3142-4142)

챗지피티 시대 교육, 반도체 전공 강화가 답 아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초지능을 가진 인공지능을 개발하는가?

도대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성찰은 인문학 없인 불가능하다. 사이 연결의 방향과 목적에 대해 생각할 줄 모르는 융합인재 양성은 대학을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을 위한 곳으로 전락시킬 위험성이 있다.

김기봉 교수는 생성형 AI가 “아는 것만 알고 모른다는 것은 모른다”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지식은 단순한 연결이아 니라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묻는 과정이 필수다.사

진=픽사베이

김기봉의 리틀 빅히스토리 ①

생성형 AI와 대학교육

수능 초고난도 문항(킬러 문항) 논쟁으로 정치권의 사교육 공방이 뜨거웠다. 대통령이 그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교육부는 킬러문항을 없애는 것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백년대계인 교육에서 킬러 문항 없는 수능시험 출제가 그토록 중요한 문제인가? 교육은 평가가 아니다. 평가는 교육의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명의 대전환기에 교육부가 총역량을 집중해야 할 문제는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교육을 어떻게 하느냐다. 지금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그들이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대부분이 쓸모없다. 그렇다면 미래 세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필자는 수단인 평가를 목표로 설정하게 만든 수능시험이 한국 교육을 망치는 주범이라 생각한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을 이루는 기본 요소는 노동(labor), 일(work), 행동(action)이라 했다. 이 세 유형의 인간 삶을 영위하기 위한 우리시대 필수품이 스마트 폰이다. 그것을 분실하면 아무것도 못하고 멘붕에 빠진다. 그런데 인생 최대의 시험대인 수능시험을 볼 때, 그것은 사용금지다. 이 같은 삶과 교육의 괴리를 시정하는 문제가 킬러 문항을 없애는 것보다 중대한데, 왜 정치권과 교육부는 수능시험을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을 금기시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생성형 AI시대,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

지난해 11월 챗지피티라는 유령이 출현해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일단 거기에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학습과 교육의 기본 값(default value)이 재설정되는 리셋이 일어날 전망이다. 세상에 관한 거의 모든 지식을 아는 선생님이 옆에 있는데, 그는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다. 운전을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하면서 ‘길치’가 된 것처럼, 학생들이 그것에 의존할수록 글쓰기 능력은 퇴화된다. 더구나 챗지피티가 ‘환각’을 통해 가짜 정보를 양산하고, 그것

에 의해 생성된 텍스트가 많아질수록 정보 생태계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할 위험성은 커진다. 그렇기에 챗지피티로 대표되는 생성형 AI 시대역설적으로 인문학적 글쓰기로 함양되는 비판적사고의 중요성은 증대한다.

생성형 AI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지식의 ‘알라딘의 램프’ 또는 ‘판도라 상자’가 될 수 있다. 인공지능은 현생인류가 집단학습을 통한 문화적 진화로 성취한 최고의 발명품이자 마지막 유산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인류 역사상 최대 위기를 맞이해 근대 이래로 학문의 전당이었던 대학에서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교육부는 6월 26일 제7차 대학 규제개혁 협의회를 개최해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 계획을 심의・확정하고, 「고등교육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6월 29일부터 8월 8일까지 입법예고했다. 개정 시행령은 대학 교육의 체계를 바꾸는 파격적인 개혁을 포함한다. 70년 이상 교육부 규정

에 있던 학과제도가 사라지고 대학조직을 자율 결정할 수 있다. 또한 온라인 학위 과정 개설도 교육부 승인 없이 대학 자율로 할 수 있으며, 1학년부터 전과할 수 있는 등 시행령 115개 조문 중33개를 개정하는 사상 최대의 변혁을 추진한다.

이 모든 개정의 주요 목표는 디지털 문명 대전환에 부합하는 융합인재 양성이다. 융합인재의 표상인 스티브 잡스는 “창조란 바로 사물을 연결하는 것(Creativity is just connection things)”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생성형 AI는 전공분야의 칸막이가 없는 그야말로 융합인재의 전형이다. 하지만 문제는 연결의 방식이다. 생성형 AI는 사이의 연결을 유사성 원리로 최적화하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지 못하는 ‘확률론적앵무새’라는 비판을 받는다.

결국 생성형 AI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가 말하는 ‘바벨의 도서관’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거기엔 세상의 모든 지식

이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는 더는 새로운 지식은 생성되지 않고 기존의 것들을 재생할 뿐이다.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지식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생성형 AI는 아는 것만 알고 모른다는 것은 모른다. 학문(學問)이란 문자 그대로 배우고 묻는 과정으로 성립한다. 그러기에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생성형 AI는 묻는 능력이 없기에 학문을 할 수 없다.

연결하는 챗지피티, 해체하는 인간 상상력

챗지피티는 입력된 데이터들 사이를 연결해 글쓰기를 한다. 있는 것과 있는 것을 이어붙이는 편집으로 텍스트를 생성한다. 하지만 인간의 글쓰기는 기존의 것들을 연결하는 편집 이상의 것을 추구한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곧 일어나지 않은 일을 떠올릴 수 있는 상상하는 능력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사이를 메워야 할 결핍이 아닌,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

는 기회로 포착한다. 챗지피티는 문제 해결을 위해 사실적 지식을 연결하지만, 인간은 기존 답을 해체하는 상상력으로 새로운 의미를 추구한다.

예를 들어보자. 챗지피티에게 “사막에서 가장 많은 것은 무엇인가”를 물었다. 일단은 ‘모래’라고 답하면서, “사막은 일반적으로 인구가 적고 방해가 적은 곳이므로,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사막을 통해 가장 많은 것은 ‘조용함’ 또는 ‘평온함’일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후자의 답까지 한다는 것이 놀랍지만, 이 모두는 기존 지식의 결합이다. 이에 비해 인간은 발상의 전환을 하는 새로운 답을 만든다. 예컨대 이문재 시인은 「사막」을 통해 사막에서 많은 것은 모래가 아닌 모래와 모래 사이고, 사이가 더 많아서 모래는 사막에 사는 것이라 했다.

융합인재는 학과의 칸막이를 허물고, 반도체 관련 전공을 확대하는 것으로 길러지지 않는다. 반도체 개발을 더 많이 하면 할수록 범용인공지

능이 탄생하는 날은 가까이 온다. 그러면 인간성과 인간의 존재의미는 무엇인가? 인류의 생존과 미래 문명이 인공지능 개발에 달려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초지능을 가진 인공지능을 개발하는가? 도대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성찰은 인문학 없인 불가능하다. 사이 연결의 방향과 목적에 대해 생각할 줄 모르는 융합인재 양성은 대학을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을 위한 곳으로 전락시킬 위험성이 있다.

대학에 인문학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인문학자들 역시 깨달아야 한다. 인문학은 더는 대학의 필요조건이 아닌 충분조건이다. 인류세 대멸종위기에 직면해 과학이 인류 생존 지식이라면, 인

문학은 존재 의미에 대해 성찰하는 학문이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독일 빌레펠트 대학에서 포스트모던 역사이론으로 박사를 했다. 주요 저서로 『역사학 너머 역사: 빅히스토리, 문명의 길을 묻다』, 『내일을 위한 역사학 강의』, 『팩션 시대: 영화와 역사를 중매하다』 등이 있다.

‘지방소멸과 저출산·고령화’

대규모 인문사회 학술대회 열린다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 경제·인문사회연구와 공동 개최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이하 인사협)가 ‘지방소멸’과 ‘저출산 고령화’라는 구체적인 어젠다를 중심으로 인문사회 메가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심층적으로 모색한다. 인사협은 오는 10일부터 사흘간 국무총리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공동으로 ‘2023 년 제2회 우수성과 교류확산 학술대회’를 순천대 70주년 기념관에서 개최한다. 이날 인사협은 ‘인문사회분야 메가프로젝트’ 기획섹션을 진행한다.

인사협은 2022년 60여개 연구소에서 올해 현재 140여개로 규모로 2배 이상 늘어났다. 학술대회 규모도 지난해보다 2배 이상커졌다. 올해는 2개의 주최 측 기획 세션을 포함해 총 14개 세션에서 54개 연구소가 발표하고 200여 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하는 초대형 인문사회 분야 학술대회가 개최된다.

국무총리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특별위원회는 공동 세션을 맡는다. 주

제는 한국지역학, 학문후속세대, 기관생명윤리위원회, 인구소멸 시대 등이다. 이중 ‘한국지역학 지식생산구조’와 ‘인구소멸 시대다문화 사회 인식’에 관한 발표는 메가 프로젝트 세션에서 다루는 ‘지방소멸’과 밀접한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아울러, 인사협 141개 연구소들이 수행하는 연구 어젠다들이 ‘인문고전예술, 사회문화교육, 정치경제외교’ 세 분야로 발표된다. 인문사회융합 세션과 인문사회자연융합 세션에서는 30여 개의 인사협 연구소들이 자유롭게 참여하여 발표한다.

강성호 인사협(순천대 사학과) 회장은 “인사협의 목표는 한국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소들이 대한민국의 거대이슈 해결과 학문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융합되고 통섭되는 과정을 통해서 한국 인문사회 분야를 활성화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우왕좌왕 정부 정책에 흔들리는 과학기술 R&D”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

20% 삭감 예산안 제출

▶1면에서 이어짐

대통령과 과학기술부 차관이 R&D 예산 관련전면 재검토를 강조함과 동시에 국가 R&D 사업 전반에 대한 감사가 시작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포함해 한국연구재단 등 11개 기관에 대한 현장감사가 진행 중이다. 특히 R&D 과제의 연구인력이 적정한지 살펴보겠다는 방침이다. 오는 10월 16일까지 진행되는 감사 대상은 이외에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정보통신기획평가원,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 등이다.

과학기술 분야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도 바짝 엎드린 상태다. 내년 R&D 예산 편성을 재검토하며, 20% 삭감안을 제출했다. 출연연의 주요 사업예산 1조2천억 원의 20%인 2천400억 원을 줄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 차관은 “과학기술 예

산을 깎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안에서 제대로 잘 쓰도록 잘 배분하라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줄인 예산에 대해 새로운 투자 계획을 제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정부 방침에 맞는 국가전략기술과 국제 협력 등에 예산이 재분배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일각에선 정부가 바뀔 때마다 R&D 방향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R&D 나눠먹기 지적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빠짐없이 나온 얘기다. R&D 개편을 위해서 포석을 까는 논리인 것이다. 아울러, R&D 방향도 문제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신재생이나 수소 등이 부각됐다면, 윤석열 정부에서는 반도체·양자·원자력 등에 집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R&D 사업도 5년마다 방향 자체가 바뀌게 돼 연속성 있는 연구와 개발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현재의 R&D 지원 체계 역시 나눠먹기를 막기 위한 제도가 이미 있어 정부에서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연구성과가 좋아야 R&D에 지원할 수 있기에 제로베이스에서 사업 예산을 전면 재검토하는

게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특히 과학기술 분야가 다른 영역과 비교해 ‘카르텔’이라고 불릴 정도인지도 반문한다. 오히려, R&D 사업을 발주하는 부처 간 벽과 중복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윤 대통령은 당선 전 한 과학정책 토론회에서 “정부가 지원은 하되 간섭을 하지 않는 체제로 연구비 집행은 유연하게 하고 국제적 평가 기준을 도입해 평가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확립하겠다” 라며 “또 산학연의 융합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게 융합 연구 플랫폼을 구축하고, 국제 공동연구 활성화를 위해 연구비를 먼저 배정하고 평가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예산 지원과 감독, 자율성과 책임 간 조율의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번 등장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과학기술 분야 연구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정부의 정책이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연구관리 예산이 심하게 요동치는 셈이다. R&D가 정부 정책에 휘둘리고 있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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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식물의 문화사

마이크 몬더 지음 | 신봉아 옮김 | 교유서가 | 240쪽

‘식물멍(식물을 바라보며 생각을 비우는 행위)’이 유행하면서, 이런저런 실내식물을 추천하는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 책은 이처럼 이제 소품을 넘어 가족 구성원으로 자리잡은 실내식물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기쁨, 실내식물을 둘러싼 기술의 발전, 실내식물 육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살펴본다.

다리 위에서 니체를 만나다

토머스 해리슨 지음 | 임상훈 옮김 | 예문아카이브 | 440쪽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종착지가 아닌, 목적지로 나아가는 다리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책은 기술이 만든 다리를 인문학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다리’에 얽힌 많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풍경으로만 보고 건넜던 다리를 마음속에서 다시 한번 되짚어보게 다.

세계사를 바꾼 화학 이야기 2

오미야 오사무 지음 | 김정환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409쪽

이 책에는 수천 년간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식품 장기 보존문제를 해결해 전쟁사를 바꾼 프랑스 요리사 아페르의 ‘밀폐보존 용기’와 영국 발명가 듀란드의 ‘통조림’ 발명 이야기에서부터 영국의 ‘로켓 개발 실패’가 초강대국 미국 탄생의 원동력이 된 아이러니한 이야기 등 화학을 둘러싼 흥미진진하면서도 뇌세포를 활성화시킬 만한 이야기로 빼곡하다.

민중을 위한 그린 뉴딜

맥스 아일 지음 | 추선영 옮김 | 두번째테제 | 356쪽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기후 위기와 온난화 문제가 전면적으로 문제시된지도 어느덧 수십 년이 흘렀다. 저자는 튀니지 출신 농업사회학자로 남반구 민중의 입장에서 바라본 그린 뉴딜 구상을 우리에게 펼쳐 보여준다. 이 책은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사진으로 제시된 다양한 그린 뉴딜을 분석한다.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

스테파니 그린 지음 | 최정수 옮김 | 이봄 | 440쪽

2016년 캐나다 최초로 조력 사망이 실행되던 해, 그 최전선에 있던 저자가 쓴 이 책은 의료조력 사망MAiD의 근접 관찰보고서로서, 특별한 죽음의 현장을 생생히 전한다. 환자들이 이러한 죽음의 방식을 원하는 이유에서 신청 기준, 시행 절차, 임종의 모습 등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힙합, 문학, 종교의 영혼을 찾아서

알레한드로 나바 지음 | 김한영 옮김 | 이유출판 | 360쪽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영혼’을 말하는가? 우리에겐 이미 잊힌 단어 아닌가? 이 책은 이런 의문에 정면으로 응답한다. 힙합의 시학에서 그 절정을 이루는 ‘영혼’의 의미를 탐구한다. 저자는 성서적 기원에서 출발해 흑인과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에 담긴 풍요로운 전통의 핵심까지 아우르며 성과 속의 세계를 넘나든다.

한국 분단 보고서 1, 2 ,3

레너드 호그 지음 | 신복룡·김원덕 옮김 | 선인 | 1천548쪽

이 책은 한국의 분단에 관한 관변(官邊) 측의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은 보수주의적 우파의 시각에서 쓰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무렵의 미국의 점령 정책, 분단의 결정 과정, 군정의 통치 목표와 통치 구조, 그리고 신탁통치와 미소공위에 관한 미국의 공식 입장이 어떠했던가를 비교한다.

신화적 상상력과 문화

정재서 외 2인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360쪽

이 책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신화 속 세계와 그 문화적 함의를 살펴보는 종합적이고도 통합적인 신화 해설서이다. 2천년대 초반 전 세계적으로 일었던 신화 읽기 붐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영화, 애니메이션, 소설, 게임 등 다양한 문화 산업 영역에서 스토리텔링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신화는 더 이상 ‘태고의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류의 진화

이상희 지음 | 동아시아 | 276쪽

우리는 언제부터 우리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고인류학은 인류의 기원과 현생인류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현생인류의 탄생을 밝히기 위해 50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고인류의 모습과 특징도 탐구한다. 지속적인 발굴과 화석 및 유적의 DNA 분석을 통한 고유전체학기술의 발전은 ‘인간’과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묻는다.

저자가 말하다_『장인과 닥나무가 함께 만든 역사, 조선의 과학기술사』 이정 지음 | 푸른역사 | 404쪽

500년 조선사 속 진화한 ‘닥종이’…재활용도 고려

징세 피해 사찰 들어간 유민의 핵심 사업

종이 발명한 중국에 역수출한 장인 정신

이 책은 닥종이의 역사를 통해 과학기술을 좀 색다르게 이야기해 보려 했다. 과학기술의 역사라면 떠올려지는 뉴턴, 다윈이 주인공인 이야기로는 광범위한 과학기술,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 과학기술과 자연의 관계를 충분히 맛보기 힘들고, 유럽의 천재 과학자 몇몇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는 과학기술에 대한 오해를 쌓아왔다는 것이 학계의 오랜 지적이었다. 우리의 24시간을 빈틈없이 채워온 평범하지만 중요한 과학기술은 한두 천재의 발견으로 일시에 이뤄지지 않았다. 그랬다면 과학이 아니라

마법이라 불렀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닥나무이다. 식량, 목재, 금은과 동, 철, 석탄과 석유, 희토류, 바이러스가 역사의 국면을 바꿨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이산화탄소가 역사의 전면에 나선 지도 오래다. 우리가 누리는 과학기술적 성과는 매일매일의 과학기술적 실천, 이 책이 기지(機 베틀 기, 智 지혜 지)라 부른 사물과 인간이 함께한 실천으로 일구어졌다. “닥종이 만드는 게 뭐 과학기술이야”라며 책을 집어 든 독자가 “과학기술을 왜 그리 좁게 본 거지?”라고 물으며 닥나무를 통해 현대의 과학기술까지 다시 보면 좋겠다.

이 연구를 시작한 것은 닥종이가 인삼, 말린 해삼, 소가죽 등과 함께 개항 전후 조선의 수출품 목록에 유일한 ‘공산품’으로 포함된 것이 신기해서였다. 종이는 중국 4

대 발명품 중 하나이니 조선의 모조품을 종이를 발명한 나라에 역수출한 것이다. 중국에서 쓰던 마나 대나무 대신 닥나무를 택한 한반도의 장인들이 닥나무의 이야기를 들은 덕분이었다.

이들은 닥 섬유를 찧되 완전히 분쇄하지 않는 준비 공정, 길쭉한 섬유 올을 얽어 뜨는 외발 뜨기, 힘들여 뜬 종이에 튀어나온 섬유 올을 처리하기 위한 도침이라는 마감공정까지 중국과 전혀 다른 공정을 택하며 닥의 특성을 살렸다. 공들여 만든 닥종이는 천연 폴리머 구조인 닥풀과 함께 흰빛,

광택, 견고함을 자랑했고, 묵의 스밈을 조절하기 위한 부패성 첨가물이 필요 없어져서 내구성도 확보했다. ‘고려지’로 통칭되는 한반도 종이의 명성이 생겼다.

닥종이의 성공은 한순간의 과학기술적탁월함에 그치지 않았다. 일시적·개인적 성취로 끝난 고려청자나 자격루와 달리 닥종이는 500년 조선 역사 속에 다양한 진화를 이뤘다. 닥나무가 열어준 사회적·생태적 틈새 덕분이다. 호적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40% 정도였던 조선에서 양반으로 태어나지 못한 다수는 겹겹의 징세를 피하려 유민(流民)의 삶을 택했고, 전국에 흩어져있는 사찰은 이들의 피난처였다. 사찰 주변 산지에 닥나무가 잘 자라고, 불경 인쇄로 제지기술이 축적돼 있는 점은 닥재배와 제지를 이 ‘승려’들의 핵심 사업으로 만들었다. 사찰을 거점으로 조직된 이

들은 닥 생산량을 급속히 늘려가며 ‘쇠퇴의 19세기’에 다양한 고부가가치 종이를 생산하며 수출했고, ‘민란의 19세기’에 일상의 기지로 과학기술, 사회관계, 환경을 동시에 변화시켰다. 닥나무와 함께 한 숨어있던 60%의 역사였다.

닥나무의 힘은 ‘휴지(休紙)’가 일으킨 변화에서도 드러났다. 휴지는 ‘쉬는 종이’라는 뜻으로 환지(還紙), ‘돌아온 종이’와 함께 쉬고 난 다음의 재활용을 염두에 둔 말이고, 한자어지만 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말이다. 닥의 특성을 존중한 공정 덕분에 재활용이 쉬웠고, 닥을 아끼는 장인들은 한 번 쓴 종이도 유심히 살폈다. 이들이 휴지로 수입 유리 제품의 가격을 넘어서는 재활용품을 만들어내는 가운데 호조와 비변사는 휴지 쟁탈전에 나섰고, 결국 휴지

를 하나하나 세어 관리하는 투명한 휴지행정을 만들었다.

사물을 제대로 알고 존중하는 과학기술에는 이렇게 다양한 힘이 있었다. 켜켜이 살아 숨 쉬는 닥종이의 역동적인 역사가 과학기술에 대한 독자의 생각을 바꿀지는 모르겠다. 다음 연구는 이 책에도 나왔던 조선 후기 지식인들과 그들의 새로운 대화 상대를 따라가 보려 한다. 서양 수학까지 공부하며 세상 만물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이다. 이 명민하고 깨어있는 학자들이 늘 이런 사물과의 대화에 성공했던 것은 아닌데, 농사에 필수였던 저수지라는 사물을 통해 뗄 수 없는 과학과 기술, 머리와 몸의 실행, 과학과 사회, 환경을 이어보고 싶다.

이정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교수

서평_『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파커 파머 지음 | 김찬호 옮김 | 글항아리 | 327쪽

마음이 산산히 부서진 자들…‘환대의 정치’가 위로

모든 비극적 간극에서 희망 담지하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감성화로 축소시킬 위험성은 유의

2014년 8월 광화문, 당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단식 농성을 벌이던 유력 정치인 옆에 놓였던 한 권의 책이 화제였다. 그 책은 파커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었다. 저자인 파머는 미국 사회를 교육 문제로 관찰 분석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사회 운동가이다. 그의 주장은 교육의 핵심 가치는 ‘사랑’에 근거한 용기를 불어넣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정치 체제 역시 용기를 핵심 덕목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오늘날 정치가 환대와 배려를 북돋는 삶을 창발하는 용기의

발현체가 되도록 애쓰자고 제안한다. 용기는 마음(cor)과 연동된 저자의 핵심 개념이다. 책의 결론인 8장에서 저자가 결론적으로 ‘희망’을 말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희망은 마음이 부서진 자들을 위협하는 숱한 긴장 상태에서도 또 다른 마음이 부서진 자들을 향해 자기 마음을 여는 용기로 창출된다.

이 책의 제목은 세 개의 단어로 구성되었다. 치유(힐링), 마음, 민주주의다. 제목을 직역하면 ‘민주주의의 마음의 치유’다. 풀어 읽으면 ‘민주주의 정치의 마음은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치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이다. 이 책에서 민주주의, 마음, 치유는 이 책 전체 내용을 견인하는 동기어(Leitwort)로 기능한다. 그

런데 번역본의 제목은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다. 여기서 ‘비통한 자(the brokenhearted)’는 ‘마음이 부서진 자’, ‘마음이 애통으로 가득한 자’를 의미한다. 이‘비통한 자’는 마음이 부서짐으로써 고통중에 있지만 오히려 이 세계를 향해 마음이 열리는 이중적 행동을 실현하는 자를 함의한다.

이 책은 모두 여덟 장으로 구성되었다. 1∼3장 개념과 이론, 5∼7장 구체적인 실천, 4장 민주주의의 배양, 8장은 결론이다. 4장을 중심으로 1∼3장과 5∼7장이 이어진다. 첫째, 1∼3장에서는 핵심 개념으로서 마음(cor)’과 ‘용기(courage=Cor+age)’를 다룬

다. ‘용기’는 ‘앎의 방식’이 결실로 드러나는 행동이다. 둘째, 5∼7장은 구체적인 실천이다. 낯선 이·타인(5장), 교실·종교(6장), 미디어·사이버 공간(7장)이라는 실제 공간이 제시된다. 셋째, 4장이다. 민주주의의 기원과 성장을 주목한다. 민주주의는 ‘긴장’을 창조적으로 끌어안을 때 제대로 태생하고 유지된다. 마지막 8장은 결론이다. 모든 ‘비극적 간극’에서 민주주의 정치는 ‘희망’을 담지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두 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마음에 최근접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의 주장은 ‘마음’과 관련해 두 가지 대상을 동시에 아우른다. 한편으로 ‘인간’의 마음이다. 정치는 인간의 마음을 주목할 때 정

치답다는 것이다. 산산이 부서진 마음을 보듬어 새로운 세계를 향해 전진하는 힘을 추동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정치’의 마음이다. 정치가 생물이라는 속설을 받아들인다면, 정치 역시 마음으로부터 자기 의지를 발현하기 때문이다.

둘째, 오늘날 세계 정치는 ‘거기에서’ 일어나는 일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국경을 초월해서 ‘바로 여기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국소성의 원리(principle of locality)를 초월한다는 사실을 환기시킨 것이다. 반면에 한계이자 유의해야 할 것도 있다. 오늘날 미국 정치력에 기반한 이 논의를 미국 밖의 다른 세계들의 정치 상황에 가감없이 제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또한 정치의 마음이라는 관점에서 정치 체제를 감성화로 축소시킬 위험성이다. 종합하면, 이 책은 오늘날 우리 정치도 비통한 자들의 마음을 다독여 용기를 북돋는 환대의 정치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자극한다.

한편, 2023년 이 책이 우리 현실에 남긴 과제는 명확하다. 우선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는 사회적 책임이면서 동시에 신학과 교회의 의무라는 것이다. 즉 정치란 인간을 환대하는 신학적 기본 테제에 근거한 현실 위로적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학적 정치학은 공의와 정의에 근거하여 약한 자와 연대하고 그들의 용기를 북돋는 인간위로학이기 때문이다.

김흥현

한국성서학연구소 연구원

저자가 말하다_『생물다양성 경영』 최남수 지음 | 새빛 | 180쪽

기관투자자는 왜 ‘네이처 액션 100̓을 출범시켰나

전 세계 국내총생산의 절반 차지하는 생태적 서비스

생물다양성 손실되면 지속가능한 기업 경영도 어려워

자연 하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시선을 넓혀보면 자연의 역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기온상승을 억제하는가 하면, 수질을 조절하고 물이 잘 순환하게 한다. 또한 식량을 공급하고 의약 재료 등 다양한 산업원료를 제공하고 있다. 자연이 주는 ‘생태적 서비스’의 대표적 사례다.

이와 관련해 최근 생물다양성이란 용어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생물다양성은 미생물을 포함한 동물과 식물 등 생명체와 생명체가 존재하는 환경, 즉 생태계의 다

양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말이 중요해진 이유는 생물다양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인류의 삶과 경제에 위기 신호가 깜빡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생물다양성 손실 이슈이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그동안 인류의 활동은 토지의 75%와 해양 환경의 66%를 심각하게 변화시켰다. 수백만 종이 멸종 위기에 직면하는 등 식물과 동물 종25%가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그 결과 생물다양성 손실은 향후 10년간 인류가 직면할 가장 큰 리스크로 꼽히고 있다.

생물다양성 손실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점은 사회와 경제 활동이 여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WEF의 연구 결

과를 보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이 넘는 44조 달러의 경제적 가치 창출이 자연과 생태적 서비스에 크게 기대고 있다. 이렇듯 자연의 기여도가 큰 만큼 생물다양성이 흔들리고 있는 현상은 그대로 경제·경영 리스크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은행은 자연이 제공하는 생태적 서비스가 붕괴되면 오는 2030년까지 글로벌 GDP가 매년 2.7조 달러씩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생물다양성 손실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경제에 악영향이 우려됨에 따라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논

의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먼저 국가 간의 협의 테이블과 관련해 중요한 분기점은 지난해 12월 20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5)다.

196개국이 참가한 이 회의에서는 전 지구적 생물다양성 전략 계획인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가 채택됐다. GBF의 핵심은 2050년까지 ‘자연과 조화로운 삶’이라는 비전을 달성하고, 이에 앞서 2030년까지 ‘30×30’목표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30×30’은 육상과 해상의 각각 30%를 보전·관리한다는 내용이다.

이와 별도로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기업

의 부정적 영향을 줄여나가기 위한 민간의 보폭도 커지고 있다. 이 대열에는 기후변화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경우처럼 투자자들이 선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투자자들은 생물다양성을 기후변화와 같은 기업의 리스크로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관투자가들이 연합체인 ‘네이처 액션 100'을 출범시킨 이유이다. 이들은 앞으로 100개 핵심 기업을 선정한 다음 해당 기업이 자연을 보호하고 회복시킬 방안을 내놓도록 압박해간다는 계획이다.

투자자들이 특히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자연과 관련된 공시제도의 도입이다. 현재 TNFD(자연관련 재무공시 태스

크포스)가 운영되고 있다. TNFD는 자연관련 지배구조, 전략, 위험관리, 측정지표와 목표치를 공시하도록 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현재 일정대로라면 이달 말에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탄소배출 등 지속가능 공시 표준 확정안을 공표한다.

이어 오는 9월에는 TNFD가 생물다양성 공시 최종안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지구온난화를 억제하기 위해 각국이 파리기후협약에 서명했던 것처럼 생물다양성의 ‘파리기후협약 버전̓을 만들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최남수

서정대 호텔항공관광학부 교수

문화 비틀어보기_『가부장 자본주의』 폴린 그로장 지음 | 배세진 옮김 | 민음사 | 276쪽

주류 경제학이 놓친 ‘차별의 구조’…어떻게 넘을까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 정당화하는 젠더 규범

새로운 상상력으로 젠더 차별 해체해야 모두 해방

이 책은 경제학적 분석으로 성 불평등의 문제를 다룬다. 특히 성 불평등이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살핀다. 저자는 젠더 규범이 여성의 경제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호주 사례에서의 각종 통계를 해석하면서 역사적으로 설명한다. 물론, 이 책은 서문에서 자체적 한계로 언급했듯이, 중산층 백인 중심인 인종적·계급적 편향을 보이는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호주의 원주민에 대한 논의나 이주 노동자의 문제가 통계를 만드는 제도적 맥락 속에 포함되지 않았던 차별의 역사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들 때문에 이 책은 결론에서 젠더 동역학이 계

급 동역학과 결합하게 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이 설명하는 현실은 한국의 독자에게는 익숙한 이야기일 수 있다.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 원인은 사실상 허구적인 젠더 문화와 규범이 자연화되어 왔기 때문이라는 결론 그 자체는 여러 논의에서 제시되어 왔다. 또한, 젠더 규범이나 정체성과 같은 개념은 관련 논의에 비교해 본다면 다소 단순하게 활용된다. 그러나 이 책의 역자가 여러 경로를 통해 설명한 바와 같이, 이 책이 주류 경제학의 맥락 속에서 집필되었지만 주류 경제학이 누락해 왔던 사회 구조와 차별의 문제를 다양한 경제

학 외부의 학문 자료와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호주의 맥락에서 다양한 역사적 해석을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인구학적 불균형이 만들어낸 현상, 즉 남성이 많은 경우 여성이 결혼을 더 많이 하고 일을 하지 않게 되는 현상이 결혼 시장의 불균형이 해소된 지금에도 유지된다는 점, 그리고 그런 현상은 ‘여성이 노동이나 공적 업무에 적합하지 않다’라는 구시대적 젠더 규범을 통해 정당화되고 있다는 분석을 제시한다. 사냥에 참여하는 여성에 대한 인류학적 근거가 발견되어도 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

지지 못한 이유가 바로 수렵은 남성의 일이라는 잘못된 성별 고정관념과 이분법에 있다는 점 등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해석해 내고 있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변화가 얼핏 보기에 사소해 보이는 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한다. 가령, 여성 노동에 대한 남성의 고정관념은, 주변 남성들이 여성 노동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야만 변화한다는 것이다. 주변의 긍정적 사례가 쌓여가면서 개인이 고정관념을 벗어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물론 필터 버블과 확증 편향의 시대, 자신과 같은 의견만을 반복적으로 접하기 쉬운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그런 사실을 무조건 낙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다만 이 책은 ‘가부장 자본주의’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여러 수준에서 강조한다. 제시한 대안이 다소 낙관적으로 보이는 점도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이 성차별과 다양성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성폭력 문제와 기업 내 위계질서의 문제를 공개하도록 해야 하고, 이러한 기업에 인재들이 지원하게 될 것이므로 기업은 점차로 변화해 갈 것이라는 예측이 그러하다. 아마도 이러한 예측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변화를 위한 수단이 작동하게 되려면, 이 책이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층적으로 다양성 담론과 정책에 개입하고 관여하는

적극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여전히 성별 임금 격차가 페미니스트가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책은 이에 논박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와 해석을 제공한다. 실제 차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실험해 온 여러 연구 방법론을 소개하면서, 성차별을 해석하는 방법론과 성차별 사례를 확인하는 데 있어 유용한 정보도 제공한다. 현재의 젠더 불평등과 차별을 해석하는 데 이미 젠더 규범이 결합 돼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이 상상력을 여성과 남성 모두의 해방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자는 것이 저자가 건네는 제안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교수

신유물론, 물질의 존재론과 정치학

박준영 지음 | 그린비 | 800쪽

새로운 현대 사상으로 대두되어 여러 학문 분야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신유물론. 이 책은 21세기 첨단의 철학인 신유물론에 대한 포괄적인 입문서이자 연구서다. 신유물론이 다루는 문제의식을 제시하고, 신유물론자들의 이론적 성과를 종합할 뿐만 아니라, 주요 철학자들의 이론을 요약하고 이로 인한 논쟁점들을 설명한다.

EDTA 킬레이션 치료의 임상적용

엘머 크랜턴 편저 | 박강휘 옮김 | 김영사 | 696쪽

EDTA의 정맥 주입을 통한 킬레이션 요법은 죽상동맥경화와 심혈관 질환에 매우 효과적인 치료법이다. 안전성과 효과는 임상시험을 통해 입증됐고, 현재까지도 임상의들의 지지를 받으며 수많은 환자에게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EDTA 킬레이션에 관한 교과서와 같은 이 책을 통해, 저명한 킬레이션 요법 전문가인 엘머 크랜턴 박사는 세계적인 전문가들의 연구를 체계적으로 검토, 분류해 제시한다.

새로운 세계에서의 문화연구

로런스 그로스버그 지음 | 조영한 옮김 | 컬처룩 | 540쪽

문화연구는 대중문화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거나, 재현과 담론 연구를 하는 학문이라는, 그래서 구조보다는 개인의 저항을 낭만적으로 해석한다는 오해가 있다. 문화연구가 담론과 재현의 실천성, 문화와 사회의 연계, 주체의 실천과 의식을 강조하지만 종종 둘의 관계가 마치 필요충분처럼 여겨지는 것은 문화연구에 대한 오해다.

사회학으로의 초대

피터 L. 버거 지음 | 김광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96쪽

이 책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계 미국 사회학자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사회사상가인 저자가 쓴 책으로, 1963년 첫 출간 이후 줄곧 최고의 사회학 입문서로 꼽혀왔다. ‘입문서’라고 해서 평이하다고 지레짐작하면 곤란하다. 이 책은 버거가 토마스 러크만과 함께 쓴 『실재의 사회적 구성』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사회학 저서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백제의 야마토왜와 일본화 과정

최재석 지음 | 만권당 | 612쪽

저자인 고(故) 최재석 교수는 『일본서기』와 『고사기』 등을 집중 분석해 “적어도 서기 670년까지의 일본사는 일본의 역사가 아닌 한국의 역사, 한국 고대사의 일부”였음을 밝혀냈다. 이를 위해 그는 먼저 백제인의 대규모 일본열도 이주 과정과 일본 개척사, 그리고 그들이 야마토라는 나라를 건국하게 된 과정을 소개한다.

인디고 바칼로레아 1

인디고 서원 지음 | 궁리출판 | 200쪽

몇 년 전부터 국제바칼로레아를 소개하는 책들이 꾸준히 출간되며 이 프로그램이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들어 한 국회의원이 IB 이수 학생들의 대학 입시에 대한 문을 넓히는 법안을 발의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IB는 현재 전국 8개 교육청과 225개 학교에 도입돼 시범 운영중이며, 현 입시에는 성적이 반영돼 있지 않다.

범죄 시그널

데이비드 기븐스 지음 | 김아인 옮김 | 지식의편집 | 272쪽

사기, 성범죄, 강도, 살인, 테러 등 거의 모든 범죄는 일어나기 전에 전조 신호가 있다. 범죄자의 거짓말이 있기 전에 당신은 이미 털렸거나 습격당했다. 그리고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침묵의 단서가 있었다. 범죄 프로파일링이 범행 후 분석에 관한 것이라면 범죄 시그널은 사전 전조에 관한 것이다. 범죄의 희생자가 되기 전에 우리가 읽어야 할 단서이다.

사피엔솔로지

송준호 지음 | 흐름출판 | 480쪽

21세기 들어 인류는 이전 세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겪는 중이다. 호모사피엔스가 나타나 농업혁명을 일으키는 데는 29만 년이 걸렸지만, 그로부터 산업혁명이 나타나기까지는 1만 년, 산업혁명 후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데는 20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최근 반세기 동안 전에 없던 기술들이 다수 출현했다.

분야별 신간

인문

김경일 교수의 심리학 수업 | 김경일 지음 | 김영사 | 176쪽

이진경 장병탁의 선을 넘는 인공지능 | 이진경 외 2인 지음 | 김영사 | 320쪽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2 | 김성곤 지음 | 김영사 | 348쪽

문학-에세이

미스 델핀의 환상 사무소 | 도미니크 메나르 지음 |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380쪽

엘리아스 | 그라치아 델레다 지음 | 나윤덕 옮김 | 마르코폴로 | 260쪽

오렐리앵 1, 2 | 루이 아라공 지음 | 이규현 옮김 | 창비 | 420쪽

우리의 영혼은 멈추지 않고 | 이화정 지음 | 책구름 | 296쪽

와카바소 셰어하우스입니다 | 하타노 토모미 지음 | 임희선 옮김 | &(앤드) | 360쪽

과학

작물보다 귀한 유산이 어디 있겠는가 | 한상기 지음 | 지식의날개(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 276쪽

역사

고양이 대학살 | 로버트 단턴 지음 | 조한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426쪽

베난단티 | 카를로 긴즈부르그 지음 |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416쪽

■ 자연과학

자연 산책 | 조세피나 헵·비비안 라빈 지음 | 마리아 호세 아르세 그림 | 이상훈 옮김 | 보림 | 148쪽

경제

동반성장과 시대정신 | 정운찬 외 지음 | 동반성장연구소 | 465쪽

리바이어던 재정 | 박정수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416쪽

킹 오브 클론, 내가 21세기 파우스트를 쓴 이유

학문의 주먹⑪

현대국가는 지식국가다. 지식은 대학에서 나온다. 그런데 대학과 학문이 붕괴되고 있다. 한국만큼 대학에 투자하지 않는 국가도 없다. 대학과 학문, 교육에 대한 비판적이고 통찰력 있는 분석이 필요한 때다. 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쓰고, ‘지식과 권력’ 3부작을 내놓았던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과)가 도발적인 문제 제기에 나섰다. 학문과 정책(정치)의 연결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지난달 23일 넷플릭스에 출시된 다큐멘터리 「킹 오브 클론 : 황우석 박사의 몰락」 이미지다. 획기적인 인간 복제 연구부터 불미스러운 사태에 따른 몰락까지, 한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과학자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소개하고 있다. 왼쪽 책은 김종영 교수가 황우석 사태를 배경으로 쓴 소설『 문두스』의 표지다.

그 황빠는 나의 글쓰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었다.

과학의 세계에서 순종적으로 길러진 절대다수가 순종적인 글쓰기를 한다.

그 황빠의 피와 살이 튀는 삶을 어떻게 순종적인 글쓰기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킹 오브 클론, 황우석. 18년 전 황우석 사태가 불거졌을 때 온 국민은 충격과 혼란에 휩싸였다. 아직도 당시의 대혼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황우석이 어떻게 전 세계를 속일수 있었을까? 그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돌연변이였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영혼까지 판우리 시대의 파우스트였다. 나는 당시 사회학자로서 황우석 사태와 황빠(열렬한 황우석 지지자)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서 과학자뿐만 아니라 황우석 지지자를 쫓아다녔다. 황빠 중의 황빠가 있었다. 그는 북파공작원을 훈련시킨 군인 출신이었다. 나는 인터뷰하기 위해 그에게 연락했다. 그는 나에게 수원의 광교산으로 오라고 했다. 그것도 늦은 오후에. 내 평생 연구를 위해 수백 명을 인터뷰해 봤지만, 산에서의 인터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내가 밤 9시까지 나타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일러두었다.

황우석 사태와 황빠를 연구하다

남자의 체구는 작고 깡말랐지만 다부졌고, 약간의 살기가 느껴지는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인기척이 전혀 없는 야산의 호수 위로 오후의 태양이 떨어졌다. 황우석 사태 전후로 황빠의 격렬한 시위가 있었을 때 그는 검은색의 HID 요원 복장을 하고 시위에 나타나 경찰을 긴장시킨 인물이었다. 그는 황우석 사태를 음모 세력의 공작이라고 여기며 항의의 표시로 북파공작원들 손가락 30개를 절단하여 대통령에게 보내려는 기획으로 청와대를 긴장 시켰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또 다른 황우석 열성 지지자 모 씨의 분신자살로 무산되었다.

“왜 황빠가 되었습니까?” 그는 제대 후 용역회사를 차려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었다.그는 홀아비로 4살 난 아들을 강하게 키운다는 신념으로 겨울산에서 얼음찜질을 시켰다.

그런데 아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병이라는 것이 저절로 나을 줄 알아서 병원에 가질 않았다. “그래서 아이가 열병으로 고막이 나갔고, 뇌척수에 장애가 생겨서 장애자가 되었죠. 이제 여덟 살밖에 안 됐습니다. 돈이 몇백억이 들어가든 몇천억이 들어가든 저의 전 재

산이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가는 세대지만 아기는 앞으로 커가니까요. 우리 아기가 결혼하면 후세가 나올 거고… 아기만이라도 건강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황빠 운동에 올인하게 된 거죠.” 운명의 덫에 걸린 아빠. 아들을 일으켜 세워 아들과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황빠가 된 아빠.

순종적인 글쓰기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의 이야기에 한 방 맞았다. 그의 이야기는 도저히 사회과학적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와 그 충격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그 해답을 준 사람은 나의 대학원 시절 질적연구방법론(질방)을 가르쳤던 세계적인 석학 노만 덴진 교수였다. ‘질방’이라는 세계에서 덴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이미 질방에 대해 수십 권의 책을 출판했다. 하지만 우리가 질방시간에 배운 것은 시·연극·소설과 같은 일종의 예술이었다. ‘도대체 뭐하는 거지? 빨리 논문 써서 졸업하고 취직해야 하는데…’ 질방의

초보로서 당연히 드는 의문이었다. 그것이 덴진 교수가 수십 년 공부한 끝에 도달한 경지였다. 연구가 곧 예술이 되는 경지. 질방의 초보자들이 질방의 최고 경지, 곧 예술을 흉내냈다. 사회학자로서 학계와 대학에 진입하기 위해서 시나 소설을 쓸 수 없었다. 그렇게 할 필요성도 없었고 그렇게 할 능력도 없었다. 덴진의 학문의 주먹을 나는 그제서야 알아챘다.

그 황빠는 나의 글쓰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었다. 순종적인 글쓰기(docile writing). 박사로 훈련받았다는 것은 푸코가 말한 저 훈육(discipline)을 가장 고되고 장기간에 걸쳐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과학의 세계에서 순종적인 몸(docile body)으로 길러졌고, 절대다수가 순종적인 글쓰기를 한다. 그 황빠의 피와 살이 튀는 삶을 어떻게 순종적인 글쓰기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일체의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넋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니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피로 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황우

석과 황빠의 이야기는 피로 써야만 했다. 그래서 18년 전 나는 21세기 파우스트를 쓰기로 결심했다.

소설과 사회학의 공통점

소설과 사회학의 공통점이 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잘하기는 매우 어렵다. 소설은 결코 만만한 장르가 아니다. 진입장벽도 상당히 높다. 게다가 나의 목표는 21세기 ‘파우스트’가 아닌가. 괴테를 읽고 또 읽었다. 니체가 19세기 최고의 교양서라고 칭송한 『괴테와의 대화』도 여러 번 읽었다. 괴테는 범접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이제까지 살았던 지상 최고의 인간 중 하나였다. 괴테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최고를 만나면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괴테와의 대화』에 나오는 구절이다. 괴테라는 최고의 인간을 만나서 보는 눈이 달라졌다. 괴테는 21세기 파우스트를 어떻게 써

야 하는지 방법도 알려주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다.’

그래서 18년을 방황했다. 과연 끝낼 수 있을까? 소설을 완성했을 때 나는 서재에서 뛰쳐나와 만세를 부르며 “나는 행복합니다”를 외쳤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쓴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책을 출판한 이후 많은 이들이 말이 된다며 지지와 응원을 보냈고, 올해 5월에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TV 다큐멘터리까지 방영되었다. 내가 ‘21세기 파우스트’를 꿈꾸면서 『문두스』를 썼다고 하면 또 말도 안 된다고 할지도 모른다. 누가 뭐래도 상관없다. 18년의 방황에 종지부를 찍지 않았는가. 내 소설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모사드 국장 바단보다 나의 심정을 잘 표현한 사람은 없다. “구원받았어! 이제야

구원받았어! 오, 하늘이시여, 드디어 구원받았어!”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황우석 사태를 연구하다 영감을 받아 ‘21세기 파우스트’ 『문두스』(소설)를 오랫동안 집필하여 최근 출판했다. 교육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사회적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출판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EBS 다큐멘터리 K <서울대 10개 만들기> 방영). 지식과 권력 3부작인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지민의 탄생: 지식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지성의 도전』, 『하이브리드 한의학: 근대, 권력, 창조』를 출간했다.

글로컬 오디세이

미국이 중재하는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성공할까

정진한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

요르단대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문명교류사와 중동학을 전공했고 한국이슬람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다. 「이슬람 세계관 속 신라의 역사: 알 마스우디의 창세기부터 각 민족의 기원을 중심으로」 등 논문을 썼다.

이스라엘와–사우디아라비아의 수교를 추진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더 조급해졌다. 앞서 트럼프 정부가 오바마의 이란 제재해제 시도를 무산시키는 대신이스라엘과 아

랍 4개국을 수교시킨 ‘아브라함 협정’ 시리즈로 중동 정책에 성과를 이루었다. 바이든 정부도 집권 초 이란을 JCPOA(‘포괄적 공동행동 계획’, 일명 ‘이란 핵합의’)로 복귀시켜 비견할만한 실적을 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러시아 전쟁과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의 불화 등으로 이란 경제제재 해제는 어그러졌고, 엉뚱하게도 중국이 사우디와 이란의 화해를 주선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이에 미국 민주당 정부는 이를 만회할 승부수로 과거 공화당도 추진했지만 이루지못했던 이스라엘과 사우디 사이의 수교라도 성사시켜야 할 처지에 놓였다. 우선 이 구상의 주역인 이스라엘, 사우디, 미국이 수교를 추진해야 할 동기는 명백하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12월에 재집권했음에도 사법 개혁 문제로 인해 국내에서는 대규모 시위를 수습하지 못하고, 아직 백악관의 초청마저 못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사우디와의 수교를 통해 내치의 안정과 미국의 지지 획득이라는 돌파구를 마련해 내려고 한다.

사우디는 교과서에서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내용 대부분을 삭제했다. 하지만 ‘교과서 워싱’만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는 어렵다. 사진!브루킹스연구소

또한, 사우디와의 수교는 지금껏 최대 적국 중 하나였던 사우디를 이란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창구이자 협력자로 전환시킬 수 있다.

사우디 역시 이스라엘과의 수교가 필요하다. 우선 당장 엑스포 등 국제 행사 유치와 VISION2030을 위한 네옴시티 투자 등을 위해 이란과 손을 잡긴 했지만, 핵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않은 이란이 복귀하는 현 상황이 부담스럽다. 이미 여러 차례 바이든 정부에 대한 섭섭함을 드러낸 만큼, 이제는 다시 협력의 장으로 돌아와야 할 지금 시점에, 미국 측이 먼저 제안한 수교안을 받아들고 자리에 앉는 모양새는 나쁘지 않다. 마침 총선을 앞둔 바이든에게도 이스라엘-사우디 수교를 성사시키는 것 외에는 지난 중동 정책의 총체적 실패를 만회할 묘수가 잘 보이지 않는다.

3국은 수교를 위한 포석을 상당히 깔아뒀지만, 실질적인 수교까지는 넘어야 할 파고가 만만치 않다. 먼저

미국이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에 힘을 발휘할수록 중동 내 미국을 향한 민심은 악화될 것이다. 지난달 28일 사우디 젯다의 영사관은 또 한차례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큰 피해는 없었다지만 미국 당국으로서는 성지순례 기간에 벌어진 이 공격과 관련해 민심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하필 같은 날 스웨덴에서 벌어진 꾸란 소각 시위와 이를 ‘표현의 자유’이기에 승인했다는 스웨덴 정부의 공식발표는 아랍뿐 아니라 이슬람권 전체의 정부와 민중의 민심을 들끓게 만들었다. 이는 팔레스타인과 마찰 중인 이스라엘과 사우디 사이의 중재를 주선하고 있는 미국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의 상황 역시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각종 비리 의혹과 사법 개혁 추진에 대한 민중 저항에 이어 지난달에는 요르단강 서안 제닌의 난민촌 테러 용의

자 체포 작전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하필 이번 사태는 이스라엘 군인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조직원들 뿐 아니라 유대인 정착촌 주민과 팔레스타인 주민이 직접 총기를 난사하고 방화를 벌이고, 가자가 아닌 서안에서 로켓까지 발사될 정도로 매우 이례적으로 심각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5천600채 이상의 정착촌 주거지 확장으로 응수함으로써 이슬람권 전체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아랍 국가와의 새로운 평화 구상을 공개를 더 망설이게 만들었다.

사우디 역시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사우디는 이스라엘에게 우라늄 농축기술과 핵연료 생산 시스템 개발을 도와줄 것을 요구했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 요구가 관철되기 어렵다고 전망한다.

더 큰 문제는 민심이다. 아스다가 지난 3~4월 사우디의 18~24세 남녀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

사에 따르면, 사우디 청년층은 단 2%만이 이스라엘과의 수교에 찬성했고 무려 98%가 반대했다. 그중 절대다수는 강하게 반대했다. 이 같은 수치는 같은 조사에서 앞서 이스라엘과 수교한 UAE의 75%, 모로코의 50%, 바레인의 30%라는 찬성 수치보다 매우 낮을 뿐 아니라, 조사대상인 19개 아랍국가 중에서도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사우디는 2022~2023 교과서에서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내용의 대부분을 삭제하고, 이-팔 분쟁 등에 대한 표현 역시 완화하거나 삭제했다. 하지만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연구자들이 지적하듯 ‘교과서 워싱’만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는 어렵다. 오늘도 사우디인은 교과서 밖에서 각종 미디어와 개인적 활동을 통해 팔레스타인과 여타 지역에서 벌어지는 소식을 접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리더가 되려면 헝그리 정신으로 바닥부터 올라가야”

고규영 카이스트 특훈교수,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

고규영 카이스트 특훈교수(65세, 생리학·사진)가 2023년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했다. 과기정통부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지난 2일 이같이 밝히고, 대통령 상장과 상금 3억 원을 수여했다.

고규영 교수는 기초학을 전공한 의사과학자로 심혈관계 병리기작, 특히 림프관 연구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을 유발하는 뇌 속의 노폐물이 뇌 밖으로 배출되는 주요 경로가 뇌 하부에 있는 뇌막 림프관임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노폐물 배출 능력이 떨어지는 뇌막 림프관 기능 저하를 함께 확인했다. 이 연구 결과는 뇌의 인지기능 저하,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 치료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 교수가 이 연구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우리 몸에서 뇌가 가장 활동을 많이 하는 장기이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많은 만큼 노폐물과 독성물질을 많이 생성한다. 이 물질이 150㎖의 뇌척수액에 녹아 있는데 배출되려면 림프관을 경유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배출 경로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로 난제로 남아 있었다. 이를 밝히고자 우리 연구팀

이 도전해 개가를 이룬 것이다.” 그는 대부분의 발견이 생쥐 실험동물을 통해 이뤄졌는데, 현재는 영장류에서 재현하고 있고, 확증이 되면 대상 환자를 대상으로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고 교수는 연구 중심 의사과학자로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총 35명의 박사를 배출했다. 이 가운데 25명이 의사과학자다. 2020년에는 국제혈관생물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2015년 7월부터 기초과학연구원 혈관연구단 단장으로 선임돼 연구를 하고 있다.

고 교수는 진료 중심의 의사가 아닌, 연구 중심의 의사 과학자의 삶을 선택한 이유로 “양쪽을 다 알고 있으니 연구의 폭과 깊이가 더 있는 것 같고,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기초연구를 하니까 더 심오했던 것 같다”고 했다.

함께 연구하는 학생들에게는 이렇게 강조한다. “우리세대 보다 좋은 환경인 것 같은데 불안한 마음과 조급함이 있는 것 같다. 차분히 재미있게 집중하다 보면 중요한 발견을 하고 많은 기회도 주어진다. 훌륭한 리더가 되려면 헝그리정신을 갖고 바닥부터 올라가야 한다.”

최근 의대 쏠림과 이공계 엑소더스 현상에 대한 의견이 궁금했다. “학생 개개인의 바람보다는 사회적인 구조 때문

이다. 삶의 격차가 좁아지고 연구하는 좋은 문화와 환경을 만들면 뜻있는 젊은이들이 모여들 것이라고 본다.”

고 교수는 천상 연구자다. 연구철학과 좌우명을 물었더니 “지금도 하는 연구에 대해 배가 고프다. 연구실 책상에 앉아서 죽는 것이 꿈”이

라고 할 정도다. 이루고 싶은 연구 성과는 치매 치료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차원의 신약을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모세혈관 및 림프관 연구 방향을 머리(뇌 포함)와 목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정말 흥미로운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은 2003년부터 시상해온 우리나라 최고 권위의 과학기술인상이다. 그동안 46명이 수상했다. 올해는 23명을 대상으로 3단계 심사를 거쳐 고 교수를 최종 선정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이화여대, 제인 구달 박사에 명예이학박사학위 수여

“과학 탐구·환경 보존에 평생 헌신…

여성 과학자로서 선구적 역할 인정”

이화여대(총장 김은미)가 제인 구달 박사에게 명예이학박사학위를 수여했다. 지난 7일 수여식이 열렸다.

김은미 이화여대 총장은 “제인 구달 박사는 평생을 과학탐구와 환경 보존에 헌신했으며, 특히 역사적으로 남성중심적인 과학 분야에서 여성으로서의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기에 명예이학박사학위를 수여키로 했다”고 밝혔다. 김총장은 “제인 구달 박사의 지칠 줄 모르는 지식 추구와 지속가능한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은 이화의 비전과도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제인 구달 박사는 1934년 런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동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였으며, 아프리카 이야기에 크게 영감을 받았다. 1956년 침팬지 연구자를 찾고 있었던 고생물학자 루이스 리키 박사와의 만남을 계기로 탄자니아의 숲에서 침팬지에 대한 혁신적인 연구를 수행하

게 된다. 제인 구달 박사는 탄자니아 곰베 스트림 국립공원에서 60년 이상 침팬지를 연구하고 보호하는 데 헌신했으

며, 이는 역사상 영장류에 대해 가장 오랫동안 진행된 연구로 기록됐다.

제인 구달 박사는 1977년 ‘제인 구달 연구소’를 설립해 침팬지 및 다른 야생 동물들이 처한 실태를 알리고 서식지 보호와 처우 개선 활동을 펼쳤다. 환경 및 동물보호의 필요성을 알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제인 구달 연구소’는 전 세계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가 설립한 ‘생명다양성재단’이 ‘제인 구달 연구소’의 한국지부를 겸해 2013년에 출범했다.

이화여대는 1952년부터 2022년까지 총 111명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 제인 구달 박사는 112번째 수여 대상자다. 그동안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2002년), 메리매컬리스 아일랜드 대통령(2005년), 미첼 바첼렛 칠레 대통령(2009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2010년), 반기문 UN사무총장(2015년),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2018년) 등이 있다.

배지우 기자 editor@kyosu.net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 조선대 이사장 연임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명품대학으로”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이 조선대 이사장에 연임됐다.

학교법인조선대학교(이하 조선대법인)는 3일 제4기 첫 이사회를 열고 김 전 헌법재판관을 제21대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김 이사장은 다시 3년간 학교법인을 이끈다.

김 이사장은 지난 제3기 정이사 체제를 운영하면서 7만2천여 설립동지회원의 설립정신을 계승해 민립대학인 조선대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했다. 설립자와 그 친인척의 이사장 취임을 제안했으며, 이사 임기를 최대 9년으로 제한하는 등 이사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이사장은 “지난 제3기 이사회에서는 조선대를 바라보는 지역주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대학의 안정과 화합에 중점을 두었지만, 이번 제4기 이사회에서는 위기 극복을 위한 혁신을 통해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명품대학으로 도약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조선대법인은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지난 2020년 7월 1일부터 제3기정이사가 구성돼 정상화됐고, 지난 6월 30일자로 임기가 만료됐다.

이에 지난 4월부터 3차례의 이사회를 열고 제4기 이사들을 선임했으며 교육부의 취임 승인을 완료했다.

배지우 기자 editor@kyosu.net

국립대박물관협회장에 김범철 충북대 박물관장

김범철 충북대 박물관장(고고미술사학과·사진)이 지난달 30일자로 국립대학교박물관협회장으로 선출됐다. 임기는 2년이다.

김범철 박물관장은 “국립대박물관 간의 상생과 협력에 기반해, 대학박물관이 나아갈 수 있는 발전 방향을 구체화하기 위해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국립대학교박물관협회는 1985년 창

립된 이후 강릉원주대학교박물관등 21개 회원교로 구성돼 있다.

국립대 박물관의 현안 문제와 활성화 정책 등을 논의하고 정기적인 워크숍을

통해 국립대박물관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허문수 제주대 교수, 미생물생명공학회 논문상 수상

허문수 제주대 교수(수산생명의학과·사진)가 지난달 21일부터 사흘간 경주에서 열린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 창립 5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및 정기학술대회에서 MBL 논문상을 수상했다.

허 교수는 최근 3년 동안 발표한 다수의 논문 중에서 해면동물에서 분리한 신종세균과 한국 전통발효식품에서 분리한 프로바이오틱균의 특성과 항균활성및 양식넙치에서의 질병저항성에 관한

주제로 발표한 논문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는 미생물학과 생명공학 관련 융복합 분야의 전문가들과 신진연구자,

관련 종사자 9천30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됐다.

전국국공립대언론사협·한국PR학회, 기획 세미나 개최

차기 회장에 구본상 충북대 교수

전국국공립대학교언론사협의회(이하 국언협)와 한국PR학회(회장 황성욱)는 지난 6월 22일 부산대에서 기획세미나를 열었다. 주제는 ‘미디어 평판관리PR의 현황과 과제’다.

국언협과 한국PR학회는 “급변하는 미디

어 생태계 속에서 언론의 오정보와 허위정보 확산 문제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며 “기술의 발전과 함께 AI와 뉴스봇과 같은 언론사의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뉴스생성 현상이 관찰되고, 그 활용에 대한 기대가 높지만 파생되는 문제점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세미나 배경을 전했다.

이날 「비즈니스 모델로서의 팩트체킹」

(배여운 SBS 기자), 「AI와 봇뉴스를 통한 뉴스 생성의 기대 효과와 문제」(오현지 제주대 교수), 「수용자의 뉴스 리터리시 함양」(김보영 부산민주언론연합 정책위원), 「언론이 직면한 한계를 고려한 기타 개선방안」(전종우 단국대 교수)을 주제로 발표했다.

주제 발표에 이어 조항제 부산대 교수의

사회로 라운드테이블 토론도 진행됐다. 김대경 동아대·김무규 부경대·김천수 동의대·배진아 공주대 교수와 공웅조 KBS 기자, 이상우 프레인앤리 소장이 참석했다.

세미나 이후 열린 임시총회에서 구본상 충북대 신문방송사 주간(정치외교학과)이 차기회장으로 선출됐다. 임기는 오는 9월 1일부터 1년이다.

안동대 제9대 총장에 정태주 교수 임명

국립안동대 제9대 총장에 정태주 교수(58세, 전기·신소재공학부·사진)가 임명됐다.

정 총장은 “학생의 성장, 발전을 통해 대학 구성원 모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학생역량강화 경북거점국립대를 만들겠다”며 “이를 위해 현재 우리 대학의 최대 현안인 글로컬대학 선정 및 국립의과대학 유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 신임 총장은 지난 3월 직선제 투표를 통해 총장 1순위 후보자로 선정됐다. 지난달 27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7월 1일자로 임기를 시작했다.

정 총장은 서울대를 나와 2002년 안동대 교수로 부임해 창업지원센터장·산학협동교육사업단장·기획처장·지역혁신사업단장 등을 역임했다.

지스트 제9대 총장에 임기철 전 KISTEP 원장

지스트(광주과학기술원) 제9대 총장에 임기철(68세·사진) 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원장이 선임됐다. 지스트 이사회는 지난 4일 이사회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임기철 신임 총장은 서울대 공업화학과를 졸업하

고 같은 대학원에서 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임 신임 총장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 기획조정실장과 부원장 등을 역임했고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대통령실 과학기술비서관을 지냈다. 이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상임위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제8대 원장을 맡았으며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특임교수를 지냈다.

동의대 제13대 총장에 한수환 현 총장 연임

동의대 제13대 총장으로 한수환 현 총장이 연임됐다.

학교법인 동의학원(이사장 정량부)은 지난달 29일 열린 이사회에서 이같이 결정했다. 임기는 오는 8월 20일부터 2026년 8월 19일까지 3년이다. 한수환 총장은 “대학의 중심은 미래 세대를 책

임질 학생”이라며 “동의대는 창조적으로 혁신하는 대학, 학생의 미래를 책임지는 대학”이라고 전했다. 한 총장은 “제12대 총장 취임 시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실용지성, 협력인성, 창의실천의 역량을 두루 갖춘 콜라보 인재 양성에 매진함과 동시에 교육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지역과 함께하는 동남권 최고 명문사학으로 발돋움 해나가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사학연금 제20대 이사장에 송하중 명예교수 취임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이하 사학연금) 제20대 이사장에 송하중 경희대 명예교수(사진) 가 지난 1일자로 취임했다. 임기는 2026년 6월까지 3년이다. 송하중 신임 이사장은 경희대 행정대학원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사학연금제도 개선협의회 위원장, 한국정책학회장, 행정개혁시

민연합 공동 대표 등을 지냈다. 서울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책학 박사를 했다.

사학연금은 사립학교에 근무하는 교직원 및 그 가족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을 위해 1974년에 설립된 준정부 공공기관이다. 총자산규모는 24조 6천157억원(2023년 5월 31일 기준)으로 기금운용수익률 11%대를 달성하고 있다.

김헌진 청주대 교수,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장 취임

김헌진 청주대 교수(사회복지학과·사진)가 제25대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 학회장으로 취임했다. 임기는 1년.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는 사회복지정책에 관한 학술연구와 실천 활동을 통해 한국사회복지정책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1994년 10월에

창립됐다. 학회는 복지정책 발전을 위한 이념과 비전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연구 및 개발함으로써 복지국가의 시대적 요구를 선도하는 학회다. 또한 사회복지에 관한 학술 및 조사 연구, 사회복지 정책토론회 개최 등을 통한 정책 개발, 사회복지 개혁을 위한 대정부 건의를 넘어 국제간 사회복지 학술 및 정보 교류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성인하 한남대 교수, 한국산학협력정책학회장 선출

성인하 한남대 교수(기계공학과·사진)가 한국산학협력정책학회 차기 학회장으로 선출됐다. 임기는 오는 9월부터 1년이다.

한국산학협력정책학회는 산학협력 분야의 학계·산업계·국책연구원 등 다양한 전문가·기관회원들로 구성돼 있다. 지·산·학 협력 교육·연구·사

업과 관련된 이론, 정책, 제도 등에 대한 학술연구와 산학협력의 진흥 및 확산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수행 중이다. 교육부의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추진에 따라 더욱 활발하게 활동과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지구 가치사슬에서 살아남기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⑤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과)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를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부터 동아시아,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기술, 철학과 담론을 인문·사회·자연과학이 상호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달 17일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과)가 「시장과 경제의 세계화와 탈세계화」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6강은 이재승 고려대 교수(국제대학원)의 「에너지 안보의 국제 질서」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최근의 세계는 인류의 화합과 공존보다 갈등과 분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구촌’이 ‘약탈로 가득 찬 지구’에 다름 아니라는 비판이 나

온 지 이미 오래다.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지구 곳곳에서 문화충돌, 종교 대립, 민족 갈등, 인종 분쟁, 식량 갈등, 난민 봉쇄 아래 전쟁, 폭력, 테러가 끊이지 않았고 빈곤, 기아, 압제가 심화되었다.

특히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세계화는 지구 가치사슬의 혼란과 함께 흔들리고 있다. 작금의 전 지구적 경제, 자원, 환경 등 복합적메가위기에 따른 불안과 혼란은 국가의 복귀와 사회의 위축 아래 시장이 갈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세계화를 국가 발전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냉철히 인식해야 한다. 국제 무대에 참여하지 않으면 번영은커녕 생존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작금 세계사의 거역할 수 없는 조류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개방·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중국과 베트남의 발전과 그렇지 못한 북한과 쿠바의 저발전은 과거 외부로부터의 도전에 대한 내부의 응전이 갖는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우리도 1890년대 개항, 1910년 식민지화, 1945년의 해방, 1997년 외환 위기, 2007년 경제위기 당시의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작금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화라는 거대한 지구인류적 변환에 대해 선취적이고 전향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나는 한국이 세계화의 와중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나라에 비해 발전 전략을 비교적 잘 구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개방화 된 세계 경제 아래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통해 지구 가치사슬에서 조립 가공에서 생산수출로 이동하면서 부가가치를 높여왔다.

노동집약적 소비재 생산에서 기술집약적, 나아가 지식집약적 자본재 생산으로 입지를 바꿀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급속한 경제 성장은 권위주의의 등장과 민주주의의 유보를 전제했다. 작금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통해 공고화의 단계에 도달해 있다는 사실에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러나 한국이 제3세계 지평에서 볼 때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가지 어려운 과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인간적·물리적 고통과

희생이 따랐음을 지적해야 한다.

세계화의 역사적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마주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역사 지향적 사회과학자들은 세계화가 이미 수천 년 전에 시작됐다고 한다. 이러한 세계화는 역사적으로 11세기경 중동과 중국에 의해 이끌어졌으며, 당시 유럽의 역할은 미미했다고 추측된다. 아부 루고드는 동서양의 교역 관계에서 볼 때 중동의 위상과 중국의 역할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유럽은 16세기 자본주의의 출현과 함께 19세기 지리상의 발견을 통해 서세동점에서 볼 수 있듯이 세계화를 주도하게 됐고, 제2차 세계대전 종료 이후 미국이 유럽을 대신해 주도권을 행사해왔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중심의 단극 세계 질서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무극(無極) 혹은 비극(非極)의 관점에서 세계 무질서의 미래가 운위되

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이 부상하고, 유럽이 쇠퇴하면서 헤게모니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G2의 대열에 중국이 유럽을 대신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문명사적으로 아시아가 서구적 근대성에 대해 대안으로까지 언급되고 있기까지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세계는 국민국가 사이의 상호 연관과 작용의 정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심화되면서 범지구적 차원에서 좁아지고 있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화의 추세는 한편으로 EU, NAFTA, ASEAN, RCEP, CPTPP, IPEF, MERCOSUR 등과 같은 지역주의 형태의 초(超)국가주의의 대두와 다른 한편에서 구소련, 구유고, 캐나다, 스페인, 멕시코 등에서 인종, 종교, 언어에 입각한 분리주의의 의미를 갖는 소(小)민족주의의 등장이라는 통합과 분화의 모순적 동태를 보이고 있다.

“국가가 왜곡된 자원 배분을 시정하는 데 주저할 때 그 결과는 과도한 경쟁 원리에 의해 분배 구조의 공정성과 형평성의 악화로 나타난다. 최근 세계화에 따른 국가나 국가 내부의 사회경제적 양극화 문제도 바로 신자유주의의 모순에 기인하고 있다.”

이렇듯이 세계는 그 구성단위 사이에서 한편 상호의존이 늘어나면서도 다른 한편 생존 경쟁이 심해지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인다. 즉, 세계는 통합적일 뿐만 아니라 분열적인 이중적 역학 아래 협력과 갈등, 타협과 반목을 나타내고 있다.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볼 때 세계화의 와중에서 구심력과 원심력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화는 한 나라의 발전을 보는 데 정부의 역할보다 시장의 기능을 중시한다. 일종의 시장중심적 이데올로기를 지니고 있다. “국가를 개방하고 시장에 의존하라. 그러면 천년 왕국이 도래할 것이다.” 오래전부터 선진국과 후진국을 불문하고 신자유주의가 선호되고 있는 것도 생산과 투자를 국가 개입이 아니라 시장 기제에 맡기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다. 자유무역, 시장개방, 조세감면, 기업 지원, 외자 유치, 규제 완화, 복지 축소, 탈국영화 등이 강조된다. 하비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국가로 하여금 노조를 배제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기치로 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중시한다.

또한 복지를 철회하고 개인적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결국 사회적 안전망을 최소 수준으로 축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과)는 “지구 가치사슬에서 ‘글로벌’은 두 가지 사전적 의미를 모두 지칭한다. 하나는 말 그대로 ‘전 세계적’이라는 뜻의 지리적 규모를 지칭한다면, 다른 하나는 ‘포괄적’, ‘전체적’을 뜻한다”라며 “‘한국 주식회사’에서 정부와 기업 사이의 주종 관계의 변화가 좋은 사례를 제공한다. 반주변부라는 중간 위치를 통해 주변으로부터 중심으로의 상승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예증해줬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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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킨다.

그러나 국가가 왜곡된 자원 배분을 시정하는 데 주저할 때 그 결과는 과도한 경쟁 원리에 의해 분배 구조의 공정성과 형평성의 악화로 나타난다. 최근 세계화에 따른 국가 사이나 국가 내부의 사회경제적 양극화 문제도 바로 신자유주의의 모순에 기인하고 있다.

이에 자본주의의 보호막으로서 민주주의가 참여와 평등보다 경쟁과 축적의 이념으로 변색하고 있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본다. 지구 시대의 민주주의는 다원주의와 시장경제의 의미로 협애화(狹隘化)되고 있다. 결국 권력과 지식의 지구적 결합으로서 신자유주의가 오늘의 세계화

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서구적 의미의 제2근대화를 위한 정보 지식 사회에 기반한 과학기술적 해결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구 가치사슬에서 ‘글로벌’은 두 가지 사전적 의미를 모두 지칭한다. 하나는 말 그대로 ‘전 세계적’이라는 뜻의 지리적 규모를 지칭한다면, 다른 하나는 ‘포괄적’, ‘전체적’을 뜻한다. 초기 이론가들이 두 의미를 모두 포괄하는 방식으로 글로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이후 세계화에 대한 관심에서 지구 가치사슬 개념에 접근한 연구자들은 대체로 전자의 의미에 관심을 집중했다. 전자의 관점에서 모든 가치사슬이 전 세계적이라면, 후자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 가치사슬의 지리적 규모가 늘 전 세계적일 필요는 없다.

어떤 것은 일국적이거나 더 좁게 국지적일 수도, 어떤 것은 지역적 또는 소지역적, 어떤 것은 말 그대로 전 지구적일 수 있다. 세계 체제론은 발전과 저발전을 중심과 주변의 역학에 의해 설명하는 대표적인 외인(外因)론적 접근이다. 자본주의 세계 경제 안에서 중심과 주변은 불변의 위상을 지닌다. 중심에 속한 나라들은 우월한 산업 능력에 의해 국제적 분업 속에서 항시 주변부

를 착취한다.

다만 중심과 주변 사이에서 “중심과 주변의 경제 활동을 혼합하여 주변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으나 상승시킬 수 없는” 제한된 능력을 지니는 반(半)주변부(semi-periphery)가 존재한다. 이러한 반주변부는 세계 체제 안에서 구조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위치 변화를 가능케 하는 동태적 관점을 역설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주식회사’에서 정부와 기업 사이의 주종 관계의 변화가 좋은 사례를 제공한다. 반주변부라는 중간 위치를 통해 주변으로 부터 중심으로의 상승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예증해줬다.

나는 원래 지구 가치사슬을 제3세계에 적용하는 데 비판적이었다. 초국적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초기에는 임금이 싼 지역에서 후기에는 환경에 대한 규제가 덜한 지역으로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제3세계가 반주변부로 올라가기에는

초국적 기업에 의한 착취와 함께 환경파괴, 노동억압, 저임금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초국적 기

업의 원활한 기업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제3세계에는 개발 독재 아래 권위주의 정권이 수립되곤 했다. 발전주의 국가는 그러한 권위주의 정권아래 재량적 정책을 구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권위주의 정권이 발전주의 국가로서 산업의 고도화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지적했듯이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산업화에 성공한 경우도 드물었지만 민주화로 이어진 사례는 더욱 드물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브라질만 하더라도 경제 성장은 간헐적으로 이뤄졌고, 더욱이 소득 분배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비록 수평적 정권 교체가 이뤄져왔지만 아직도 일부 가문이 경제와 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족벌 권위주의 국가라 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지속적 경제 발전에 성공적이었지만 아직도 자유민주주의의 단계에 도달해 있지 못한 일종의 일당 독재 국가이다. 대만은 선거 민주주의의 단계를 넘어 경제 발전에서도 성공적인 발전주의 국가라 할 수 있다. 한국은 대만에 비해 산업의 고도화를 통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민주주의의 공고화 이후 여전히 법치주의, 삼권분립, 지방 분권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바이러스의 RNA 안정성

단백질 생산 높인다

국내 연구진이 바이러스의 RNA 안정성과 단백질 생산을 증가시키는 RNA 염기서열을 발견했다. 기초과학연구원 RNA 연구단 김빛내리 단장(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 연구팀은 수백종의 바이러스 RNA를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대량 시퀀싱 기술을 이용해 이 같은 성과를 냈다. 지난 6일 기초과학연구원에 따르면, ‘K5’로 명명한 이 서열을 활용하면 RNA 치료제의 성능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을 일으키는 사스코로

나바이러스-2(SARS-CoV-2)의 등장 이후 감염병 극복을 위해 바이러스 연구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진화시켰다. 이러한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는 생명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지만, 아직까지 바이러스 연구는 주로 의학적으로나 산업적으로 중요하다고 알려진 극소수의 바이러스에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그 종류와 생활사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유전자와 RNA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미개척 상태의 ‘지식의 보고’일 수 있다.

연구진은 바이러스가 가지고 있는 RNA 안정

왼쪽부터 김 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 RNA 연구단장과 서제니 연구원이다. 사진=기초과학연구원

화와 단백질 생산에 기여하는 조절 서열을 찾기 위해, 인간을 감염시킨다고 알려진 모든 바이러스 RNA 서열 정보를 모았다. 그리고 모든 바이러스를 대표할 수 있도록 편향되지 않은 선별기준을 적용해 143종의 대표 바이러스 서열을 선별했다. 그리고 선별된 바이러스 서열을 동일한 길이(130개 뉴클레오티드)로 잘라 3만여 개의 절편을 만들고, 세포에 넣어 각각의 바이러스 서열이 RNA 안정성과 단백질 생산을 증가시킬 수 있는지 분석했다.

이러한 스크리닝 과정을 통해, 연구진은 RNA 안정화와 단백질 생산을 증가시키는 다수의 조절 서열을 찾아낼 수 있었으며 RNA 안정화와 단백질 생산 모두에 기여하는 16개의 서열을 동정

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효과가 뛰어난 서열을 찾아내 ‘K5’라고 명명하고, 이 서열에 대해 상세히 분석했다.

김빛내리 단장은 “바이러스 RNA의 K5 서열은 RNA의 안정성과 단백질 생산을 증가시킨다”라며, “K5 서열을 이용해 mRNA 백신과 유전자치료제의 안정성과 성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이번 성과는 고병원성 바이러스에만 집중하는 기존의 접근 방식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성과”라며, “현재 경미한 바이러스라도 향후 심각한 바이러스로 진화할 수 있으므로, 편향없이 다양한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생물학 분야 권위지 『셀』에 지난 6일 온라인 게재됐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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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분열의 한국사회, 국가적 위기다

김경화 편집기획위원

동의과학대 경찰경호행정과 교수·기획처장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규모의 경제 선진국을 넘어 ‘G8’국가로 도약하고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엄청나게 발전한 것도 사실이고 국제적 위상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다.

그러나 급속한 경제발전과 사회변화에 따라 ‘국가적 위기’라고 할 만한 현상이 다수 발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심각한 것이 한국사회의 ‘분열’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으로 갈라진 민족의 분열은 이미 80년의 세월을 바라보고 있고, 대한민국이 성립된 이래 수많은 변화의 도상에서 현재 사회 전반적으로 분열에 따른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념에 따른 분열,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분열로 인한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지금도 연일 이슈가 되고 있는 거대 정당간의 극심한 이념적·지역적 대립, 간호법 갈등에서 나타난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의료종사자들의 직역 간 대립,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따른 국론 분열, 교육개혁에 대한 정부와 여야, 교육주체 구성원 간의 의견 차이 등이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것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그가 활동할 당시 이탈리아의 시대상황을 “군주와 교황이 재물 앞에서 존

엄을 상실하고, 귀족과 평민도 분열과 파벌로 점철하였다”라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통찰했다. 그는 “분열만큼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국가는 정책을 결정할 때 “국가에 대해 상충하는 요구와 기대를 가진” 견해를 달리 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왜냐하면 분열된 사회에서는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이 보장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분열된 사회라는 ‘국가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그 해법을 발견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과거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 16세기말 미증유·목불인견의 참화를 겪었던 ‘임진왜란’이라는

파멸적 ‘국가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 훌륭한 인물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했기에 나라를 보존하고 7년 전쟁에서 승리하고 왜적을 몰아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충무공 이순신은 국가에 대한 헌신과 뛰어난 전략으로 연전연승하여 전란을 극복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결과적으로 조선을 존망의 위기에서 구해 내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군세와 열악한 국가지원 속에서 그는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을까? 위기 극복의 해법을 ‘이순신 리더십’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충무공의 행적은 아마 모든 사람들이 익히 다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은 40여년 동안 이순신 장군을 공부했고, 우리 사회에 장군의 사상이나 업적,

그 내면의 근원 가치를 사회에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이순신의 ‘가치체계’에서 중심적 가치는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사랑·정성·자립·정의’가 그것이다. 백성에 대한 ‘사랑’은 국가안위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낳았고, 그는 그것을 위해 지극한 ‘정성’을 다했다. 7년간 빠짐없이 작성된 『난중일기』도 ‘정성’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왜적과 싸워 이기기 위해 외부의 지원이 없어도 어떻게든 ‘자립’하여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에게 전쟁은 ‘정의’ 즉 ‘의로움’으로 조선을 위기에서 구하는 것이었다. 이순신은 공직자로서, 지휘관으로서 헌신하고 동료 및 부하 병사들, 일반 백성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화합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결국

에는 오롯이 자신을 희생했으니 그의 충(忠)은 백성을 향한 것이었다.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 시민사회는 국가 분열적 상황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충무공 이순신의 중심적 가치인 ‘사랑·정성·자립·정의’를 토대로 컨센서스를 도출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여야간에 정치적인 대화와 타협,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양한 소통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면 좋겠다. 그리고 서로를 포용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도록 기존의 법과 제도를 다시금 위기 극복에 맞도록 다듬을 필요가 있다.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 시민사회는 ‘인간 존엄’이 보장받는 소통과 화합의 시대를 열어나 갈 수 있도록 위기극복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갤러리 초대석

「장조 태봉도」

‘장서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 한국학중앙연구원 온라인 특별전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안병우)은 지난 7일부터 ‘장서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 온라인 특별전을 열고 있다. 장서각 소장 유물 가운데 국가·시·도 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총 49종 53점을 전체 공개한다.

‘장조 태봉도’와 ‘헌종 태봉도’, ‘안중근 유묵’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한다. 이번 전시는 2년 전 장서각 전시실에서 개최한 ‘특별전-장서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의 확장판으로 볼 수 있다. 2021년 개최된 특별전은 장서각의 대표 자료를 선보인 전시로, 역대 장서각 전시 가운데 가장 높은 호응을 얻었고 재관람 희망자 또한 많았다.

이번 온라인 전시는 가치와 특색을 알리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국가 왕실 문헌, △민간 사대부 문헌(공신과 사대부가 문헌), △구입 문헌(민간 구입 문헌) 등 총 3부로 나눠 구성했다.

이번 전시에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장서각 기탁 자료들의 보존 처리 과정과 관련 자료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설명한 내용이 AI 음성과 함께 업로드 된다. 또한 ‘동의보감’, ‘월중도’ 등 장서각 대표 자료 14점을 다각도로 촬영한 영상도 함께 제공돼 온라인상에서도 입체적으로 자료를 감상할 수 있다. 장서각 온라인 전시관 ejsg.aks.ac.kr

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대중에게 ‘접근 불가’ 학문이 되지 않도록

주류 흐름에서 빗겨나 있는 경제학을 연구하면서, 서로 다른 내용의 두 가지 비판을 종종 듣곤 한다. 하나는 경제학 연구자로서의 나에게 던져지는 질문인데, 경제학이 수학적 모형과 통계학적 방법만을 현상 분석의 도구로 인정하면서 다른 유형의 사유 방식을 비과학적인 것으로 규정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비정통 경제학 연구자인 나에게 오는 의심으로, 오늘날 학계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주변화된 비주류 경제학이 심하게 말하면 경제학이 맞느냐 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측에서 다가오는 이 두 비판은 물론 새로운 것은 전혀 아니다. 오래전부터 전자는 ‘경제학 제국주의’라는 용어를 통해 이야기되어왔다. 후자는 다른 흐름의 경제학에 폐쇄적인 주류 경제학 연

구자들이 내심 갖는 생각인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원)에서 경제학사 강의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이런 생각의 결과이자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정치경제학자 벤 파인은 경제학이 자신의 전제와 방법으로 다른 사회과학 분야를 종속시키는 지적 흐름에 있어서 합리적 개인, 효용 극대화, 균형과 같은 몇 가지 개념이 핵심적이라고 지적한다(이견해에 따르면 수학적 모형화나 통계학적 방법론의 문제는 오히려 부수적인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개인이 희소한 자원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 이용 가능한 정보 및 잠재적 이익과 비용을 고려해 가장 효율적이고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취하며 개인 선택의 총합의 결과는 외부 요소의 변동이

없다면 그대로 유지된다는, 특정한 이론적 가정과 연결돼 있다.

얼핏 생각하면 타당해 보이는 이러한 진술은 주지하다시피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예컨대 현실 속의 인간은 일정 수준에서는 합리적이지만 그 선을 넘어가면 그렇지 않다는 반박도 있겠고, 보다 최근의 논의로는 희소성 개념에 대한 도전적 시각도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하게는, 인간의 의사결정 경로에 관한 특정한 가정은 이론의 전개를 위한 도구로서 요구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도구성을 인간의 본질로 전도해 생각하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말이다. 뿐만 아니라 ‘합리적 인간형’이라는 가정이 현실을 설명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다름 아닌 개별적 주체가 (합리

적이든 비합리적이든) 결정한다는 방법론적 개인주의가 놓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경제학을 재화 및 용역의 생산, 유통, 분배에 관하여 논하는 학문이라고 규정한다면, 특정한 방법론을 유일신으로 섬길 필요도, 이 방법론에 따르지 않는 여러 갈래의 경제학을 도태된 사이비로 치부할 필요도 없다. 자본·노동·토지라는 사물을 적절히 조합하면 이익이 발생한다는 극단적으로 속류적인 시각에 대해, 고전파 경제학을 완결하면서 동시에 비판했던 마르크스는 역사 유물론과 물신성 비판이라는 개념 등을 이용해 적절하고 타당한 반론 관점을 제시했다. 특정한 결제적 과정의 이면에는 소유자와 생산자가 맺는 사회

적 관계가 있고 이러한 관계는 역사적으로 특수하기에, 자본주의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역사성과 사회적 성격을 두루 살펴야만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선택 역시 역사적·사회적 제한 내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시각을 존중한다면, 경제학은 내부의 다양한 견해를 존중하고 역사학과 철학, 기타 사회과학과 교류하며 서로에게 배워야 한다.

요컨대 나는 학문후속세대의 한 명으로, 나와 같은 세대에 속한 경제학 연구자들에게 다음을 고민하자고 말하고 싶다. 오늘날의 주류 경제학이 자신의 특정한 가정으로 사회과학 세계를 자신의 제국 식민지로 만드는 상황을 어떻게 반성하고, 경제학을 가정과 방법의 다양성과 그 각각의 한계를 겸허히 인지하는 사회과학 세계의 시민권자 중 하나로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자. 또 제국의 피지배자인 다수의 경제학이 학계 내의 편견과 무시 속에 서 그 유효성을 잃고 이론의 최종적 수

혜자가 돼야 할 대중에게 접근 불가의 학문이 되지 않도록 대학에 요구하고 또 연구하자.

정구현

경상국립대 한국사회과학연구단 전임연구원

경상국립대 대학원 정치경제학과에서 마르크스의 자본순환론과 한국의 자본순환 양상을 경험적으로 분석한 논문으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상국립대에서 정치경제학 강의를 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마르크스 경제지표를 측정 및 분석하고, 그 함의를 읽어내는 데에 관심이 있다.

교수논평

교수노조, 한발 한발 나아가야 한다

교수들의 노동조합 결성이 합법화된 이후에 깊은 한숨을 짓는 분들이 많다. 교수들의 노조 결성은 법에 따라 대학별로도 가능하게 되어 있다. 큰 대학은 대부분 개별노조를 결성하고 해당 학교 노조원의 이익과 관심사에만 힘을 쏟고 있다. 한국처럼 대학 서열구조가 심한 나라에서 이처럼 상위권의 큰 대학 교수가 개별 노조에 가입하여 개별적 이익만 추구할 때 나라 전체의 교수집단이 공공성에 입각한 대학 개혁과 고등교육 발전의 한목소리를 내는 일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여건이 좋은 대학의 교수일수록 자기성찰을 통해 ‘대학자치·교육혁명·우리학문’이라는 전국교수노조의 슬로건에 합류해야 마땅하지만 그런 일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못지않게 큰 어려움은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격차다. 한국은 전체 대학교육의 80% 이상을 사립대가 감당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일본을 제외하면 이처럼 사학의 비중이 높은 나라를 찾을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의 사학 비중이 높기는 하지만 일본 정부의 사립대학 지원이 한국보다 훨씬 탄탄하고, 무엇보다도 한국에 만연한 뿌리 깊은 사학비리를 일본에서는 찾기가 어렵다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사립대의 비중이 크다는 사실은 전국교수노조가 교육부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하는 일에서도 장애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전국교수노조와 교육부 사이의 단체교섭, 소위 노·정교섭은 우리 고등교육정책의 방향을 잡고 교수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큰 의미를 지니는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까

지 교육부의 입장은 사립대를 제외한 국공립대만이 노·정교섭의 대상이고, 사립대는 교육부가 아닌 각 대학 법인이사회가 단체교섭 상대라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사립대에 대해서 정원통제, 등록금 동결 등 교섭 대상이 되는 사실상의 사용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따라서 국공립대와 사립대를 포괄하는 전국교수노조가 교육부를 상대로노·정교섭을 하면서 사립대 문제를 다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단결력이 이를 확실하게 강제하는 데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20년 가까이 실질적 의미의 노사정 협의체를 가동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도 직결되어 있다.

게다가,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엄청난 속도의 학령인구 급감은 거품이 많은 한국 대

학을 위기로 몰아넣기 시작한 지 오래다. 이러다 보니 교수노조 합법화에 기대를 걸었던 교수들이 단체행동권도 없는 노조활동을 통해 얻어낼 것이 없다는 낙담에 빠질 법하다. 자기 자신의 합당한 처우 개선과 교권보호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중차대한 문제에서도 진전을 이루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지친 목소리가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아직껏 단체행동권도 없고 능력과 경험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대학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몇몇 대학에서 1인 내지 2인의 조합 간부에 대해 책임시수 감면을 받는 성과가 있었고, A 대학은 신임 교원에 대해 2시간의 조합교육을 보장받았다. B 대학은 교원 신분에 관한 사항은 조합과 사전 협의하도록 단체협약을 맺었고, C 대학은 업적 평가기준 변경은 조합원 과반수의 동의를 얻도록 했다. D대학은 임금 관련 사항은 교수노조와 사전 합의하도록 했는가 하면, E 대학은 ‘임금체

계개선위원회’ 설치에 합의했다. F 대학이 대학평의회의 활성화 보장과 교수 평의원의 50%를 조합이 추천하도록 합의한 것은 특히 주목할만하다. G 대학은 비정년계열과 정년계약 교원 간의 차별 금지 노력을 단체협약에 명문화하는 전국교수노조다운 성과를 거두었다.

물론 이러한 성과는 순조롭게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 따라 다르겠지만, 갖가지 수법으로 합의된 사항마저 지키지 않거나 번복하는 일이 빈발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한발 한발 전진하기 위해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일은 무엇일까?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 교수노조의 조직 확대와 내부 교육, 이 두 가지일 것이다. 노조의 힘은 숫자에서 나온다.

대학 사회에는 아직 교수노조에 대해 모르거나 관심은 있지만 연결될 계기를 찾지 못한 교원이 수없이 많다. 그들을 찾아내어 차근차근 조직하고 내부 교육을 통해 ‘대학자치·교육혁명·우리학문’이라는 결성 당시에 만든 3대 슬로건의 내용을 구

체적으로 채워나가야 한다.

김명환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현재 전국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 교수협의회 부회장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특별위원장을 지냈다.

김상돈의 교수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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