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교육시대를 미리 체험하도록 한 팬데믹
포스트코로나 시대, 최고의 강의㉖
김형신 충남대 교수지난 2년여의 코로나19 시기 나의 강의를 돌아보고, 이제 학교로 돌아와 대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두 번째 학기를 맞아 코로나 시기의 강의가 나에게 남긴 것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코로나19 시기의 비대면 강의는 팀으로 실습하던 논리회로나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수업에 매우 큰 걸림돌이었다. 실습 시간에 학생들은 협업을 통한 문제 해결 경험을 성취하도록 해주는 교육이 비대면 상황에서는 제대로 진행될 수 없었다. 비대면으로 수업할 때 논리회로 과목 실습은 회로를 직접 만드는 대신에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진행됐고,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과목의 실습은 개인 프로젝트로 전환했다. 로봇을 개별적으로 나눠주고 학생들이 집에서 코딩하도록 실습 방식을 변경했다.2020년 1학기에는 어설프게나마 유튜브로 비대면 강의를 시작했다. 그 후 대학 차원에서 온라인 강의 플랫폼이 보급되면서 보다 안정적으로 비대면 강의를 운영했다. 필자는 비대면 강의는 언제나 라이브로 진행했다. 강의에서 학생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라이브 방식을 택한 것이다.물론, 실시간 강의라고 해서 컴퓨터 화면으로 만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집중도가 저절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신경을 쓴 부분은온라인이더라도 대면 강의와 유사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강의가 대면 수업과 동일한 느낌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학생들과 교수는 반드시 카메라를 켜고,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첫 시간에 필자의 상호 간 카메라를 켜고 수업을 진행하는 방침에 대해 설명하고, 학생들에게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학생들이 강의실에 함께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다른 학생에게 말을 걸도록 하는 것부터 친구 모습 확인하기, 오늘 누가 결석했는지 이름을 불러주는 방식 등의 여러 방법을 사용하며 의도적으로 강의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도록 했다.학생들, 온라인서 밈·채팅으로 수업 참여비대면 강의를 진행하면서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집중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유명 비제이(Broadcasting Jockey)들의 방송을 열심히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그들은 다양한 미디어를 이용하고 있었고, 채팅창을 통한 활발한 의사소통도 주요 특징 중 하나였다.마이크가 없는 학생들이 많아서 필자는 강의 중에 학생들의 목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다. 그김형신 교수는 학생들이 긴장을 유지하며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수업 중간에 퀴즈를 내곤 했다. 온라인으로만 진행된 수업에서 퀴즈로 학생들의 수업 몰입도를 올린 것이다. 사진=김형신 교수
러다 보니 온라인 강의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채팅 기능을 강의에 적극 활용했다. 코로나19 이전 대면으로 진행했던 전공 수업에서 학생 대부분은 질문도 답변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온라인 강의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감춘 채, 편하게 채팅과 밈을 이용해서 자신을 드러냈으며, 코로나19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MZ세대들의 온라인에서의 소통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이 얻은 것은 강의 영상을 녹화할 수 있는 교육환경이다. 학과의 몇몇 강의실에는 고성능의 마이크와 교수자 추적 카메라 시스템, 그리고 강의 녹화시스템이 구축되었다.코로나19 시기에는 실시간 강의를 진행하면서 강의를 녹화해서 코로나19에 걸려 수업에 참여할 수 없는 학생들에게 영상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강의 녹화 영상은 수업에 참여하지 못한 학생뿐만 아니라, 복습하고 싶어하는 학생들도 활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대면 수업으로 전환한 뒤에는 강의를 녹화하지 않았는데, 일부 학생들이 녹화영상을 제공해 줄 것을 요구하는 바람에 요즘도 나는 학부 강의를 녹화해서 링크를 제공한다. 코로나19 기간 습득한 기술들로 강의를 쉽게 녹화하고 있다. 학생들은 시험공부나 실습 준비를 위한 복습을 위해 녹화영상을 본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교육 서비스의 질이 대폭 향상된 덕분이다.그래도 강의는 대면으로 계속돼야
코로나19 이전에도 필자는 강의에서 학생들의 참여를 활성화하는 여러 요소를 도입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게임 형식의 퀴즈 앱을 이용하거나 강의와 실습에 대한 질의응답을 지원해주는 웹 서비스 등을 활용했다. 코로나19 시기의 비대면 강의에서도 이 두 가지 서비스는학생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온라인으로만 진행하는 수업으로 인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강의 시간이 게임형식의 스마트폰 앱을 이용하게 되면서 학생들이 강의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비대면 강의를 하면서 보낸 지난 2년은 여러가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면 수업과 비교해볼 때 학생들과의 교감은 매우 부족한 상태로 진행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강의는 학생들과의 교감을 통해서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코로나19 시기에 필자의 강의는 생명력을 잃은 것이었다.2022년 가을학기 학생들과의 대면 수업을 시작하던 첫날, 학생들과 눈 맞추며 인사하면서 대면으로 강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코로나19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실습수업과 팀 프로젝트를 이제는 서로 두려움 없이 팀을 구성해 얼굴을 맞대고 과제들을 수행하고 있다. 필자의 강의는 지난 2년간 움츠러들어 있었고, 이제 다시 마스크를 벗고 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하고 있다. 코로나19 시기의 강의에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학생들을 붙들고 우리는 공부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격려해야만 했다.이 시간을 통해 우리 교수들은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확보했으며,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온라인 교육 시대를 미리 체험한 것일 수도있겠다. 오늘도 나는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학교로 달려간다.
김형신
충남대 컴퓨터융합학부 교수카이스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임베디드소프트웨어’, ‘시스템프로그래밍’, 등을 가르치고 있다. 2021년 CNU 최우수 강의교수로 선정되었으며, 학생들과 소통하는 강의, 재미있는 강의, 학생에게 자부심을 주는 강의, 학생들이 몰입하는 강의를 지향하고 있다.
서울대·성균관대 등 8곳, 반도체특성화 대학 선정
서울대‧성균관대‧경북대‧부산대 등 8곳이 총 사업비 540억 원에 달하는 ‘반도체 특성화 대학’사업에 선정됐다. 반도체 인재 육성을 목적으로 선정된 대학들은 4년 동안 지원금을 받는다.
교육부는 2023학년도 반도체 특성화 대학으로 수도권 3개 대학과 비수도권 5개 대학‧대학연합체를 선정했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반도체 특성화대학 지원사업은 산업계 인력 수요에 대응해 반도체 교육 역량과 의지를 갖춘 대학을 집중 육성하고자 올해 신설됐다.반도체 특성화 대학은 단독형과 대학 연합이 참여하는 동반성장형으로 나뉘어 있다. 수도권에서 서울대와 성균관대가 단독형으로 선정돼 대학마다 45억 원, 명지대-호서대가 동반성장형으로 70억원의 예산을 받는다.비수도권으로 경북대, 고려대(세종), 부산대가 단독형으로 선정돼 대학마다 70억 원을, 전북대-전남대, 충북대-충남대-한국기술교육대가 동반성장형으로 선정돼 각각 85억 원을 지원받는다.
교육부는 이달 22일까지 이의제기 등의 절차를 거친 후, 최종 선정된 대학이 특성화 분야를 중심으로 인재 양성 계획을 이행할 수 있도록 4년간 재정을 지원한다. 아울러, ‘반도체 인재양성 지원협업센터’를 운영해 선정 대학들이 산업계-연구계와 인력수요‧산업동향 등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다양한 규제혁신 노력이 이번 사업을 통해 현장의 변화로 나타날 수 있도록 대학에서는 산업계와 긴밀히 소통해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한편, 연간 45억 원을 지원받는 서울대의 경우에는 첨단융합학부의 구체적인 교수 채용계획과 학부 커리큘럼 등 기본적인 구상조차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졸속으로 학부 신설을 밀어 붙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신다인 기자 shin@kyosu.net국회 교육위원장에 김철민 의원 선출
“다음 세대 위한 교육 역할에 최선 다할 것”
국회 교육위원회 신임 위원장에 더불어민주당 김철민 의원(안상 상록을)이 지난 14일 선출됐다. 21대 국회 후반기 교육위원장이다.김철민 의원은 21대 국회 상반기 교육위원회위원으로 활동했다. △학교 폭력 예방 △학교 환경 개선 등 학내 안전문제 해결과 △장애학생 등 사회적 소외계층의 교육기회 확대를 위한 입법에 힘썼다.김 의원은 “다음 선거가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한 의정활동을 하자는 마음으로 정치를 해왔다”며 “교육이 다음 세대를 위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위원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김 의원은 “합리적으로 상임위원회를 운영해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정책과 입법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상임위 운영 방침을 밝혔다.
그는 교육 현안이 국민적 관심이 높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만큼 앞으로 이해당사자들과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을 수시로 마련하겠다고 했다. 김 의원은 민선5기 안산시장을 거쳐, 20·21대 국회의원을 맡고 있다.소규모大 운영 손실 보전도 어렵다
사립대 신입생 미충원 증가에 따라 2025년에는 1천684억 원(53개교)의 예상운영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사립대 19개교(수도권 4개교, 비수도권 15개교)는 2021년 임의적림금과 이월자금을 투입하더라도 신입생 미충원으로 인한 운영 손실을 보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는 학생 미충원에 따른 사립대 재정손실 분석 결과를 지난 15일 발표했다.지난해 사립대 정원 내 입학자 수는 23만2천159명으로 2012년(26만4천729명) 대비 3만2천570명 감소했다. 수도권대학의 정원 내 입학자 수는 2012년 대비 1천894명 증가했지만, 비수도권대학은 3만4천464명 감소했다.정원 내 신입생 미충원 인원(1만507명)의 91.5%가 비수도권대학(9천613명)에서 발생했다. 2021년 사립대 중도탈락 학생수는 7만4천948명으로 2011년(6만9천299명) 대비 5천649명 증가했으며 중도탈락 학생 비율은 0.7%p 증가했다.
사립대의 신입생 미충원 증가에 따른 학생직접 수입·지출 감소 금액을 분석한 결과 2025년 53개교에서 예상운영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특히, 예상운영손실(1천684억 원) 중 비수도권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94.4%이며, 예상운영손실 규모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아울러 예상손실률을 5% 초과한 대학의 분포는 수도권에 4개교가, 비수도권에는 25개교가 있었다.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중세 필사본 속 명화’ 삽입!누구나 막힘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최고의 고전!!‘사립대 구조개선법’, 국고 좀먹는 ‘좀비대학’ 창궐 우려
‘한계대학’ 퇴로 마련, 고려해야 할 세 가지
대학에 대한 여론이 빙하기에 접어들었다. 취업도 안 되는데 대학은 가서 뭐 하냐는 비관론이 퍼지고, 대학이 너무 많으니 절반은 없어져야 한다는 축소론도 있다. 대학의 감축과 구조조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눈앞의 현실이다.이런 여론 동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개념도 모호한 ‘한계대학’ 퇴출이 해결책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상황이 사뭇 기이하게 흘러간다. 2023년 6월 현재 이른바 ‘사립대학 구조개선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국민의힘이 「사립대학의 구조개선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태규 의원과 정경희 의원 발의)을 내놓았고, 더불어민주당이 「사립학교의 구조 개선 지원에 관한 법률안」(강득구 의원 발의)을 내놓았다. 교육부는 올해 내에 이 법안을 제정하겠다고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세 법안에 대한 냉정한 이해와 철저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구조개선 위한 실질 조항은 없다
세 법률안의 제정 목적은 “경영정상화를 위한 구조개선 차원의 해산과 청산을 지원함으로써 구성원을 보호하고 대학의 건전한 발전과 고등교육의 경쟁력 강화”라고 한다. 그러나 법안에는 자발적 해산이든 대학 재정진단 결과에 따른 강제해산이든 폐교의 방도만 세세하게 규정할 뿐, 구조개선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실질적인 조항은 사실상 찾아볼 수 없다. 폐교 대학의 학생과 교직원에 대한 보호 규정은 선언적 수준에 머물고, 대학의 건전한 발전과 고등교육의 경쟁력 강화를 이룰 실효적인 조항은 아예 없다. 현실적으로 측정할 수도 없는 성과를 어울리지 않는 방법으로 달성하겠다는 부조화를 걱정할 수 밖에 없다.정원 감축 효과는 7%에 불과
폐교대학의 법인만 해산하고 청산을 지원하면 과연 대학은 발전하고 고등교육의 경쟁력은 강화될까? 결단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문제의 ‘한계대학’을 모두 폐교한다 해도 실제로 대학 총정원의 감축 효과는 고작 7%에 불과하다(재정지원 제한대학에 2회 이상 선정된 대학정원의 50%를 기준으로 하였음). 태산 명동에 서일필 아닌가?그렇다면 필시 이 법안에 무슨 곡절이라도 있거나 혹은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과연 사립대(일반대·전문대 포함) 총 정원의 7%도 되지 않는 부실 대학을 솎아 내어 퇴출하기 위해 이런 거창한 법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빼든’ 이 이상한 상황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명칭이나 목적과 달리 실제로 발의된 법안의 핵심은 학교법인의 이익을 보장하는 데 있다. 그것은 21대 국회에서 가장 빛나는 여야 협치의 성과물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여야가 각기 제출한 법안 모두 한국사학진흥재단의 대학 재정진단을 거쳐 강제 폐교를 명령할 수 있다. 다만 여당 법안이 교육부 산하 구조개선심의위원회를 거쳐 장관이 폐교를 최종적으로 결정하지만, 야당 법안은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에게 최종 결정권을 부여한다는 점이 다르다. 다른 한편으로 폐교·해산대학 잔여재산과 관련하여 이태규·강득구 의원 법안은 국고 귀속 대신 타 공익법인으로 이양할 수 있게 규정하나, 정경희 의원 법안은 추가로 학교법인에 ‘꽃놀이패’로 이용될 수 있는 잔여재산의 30%를 해산장려금으로 주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교수·직원 통제 악용 소지
법안의 내용에 따르면 한국사학진흥재단은 사립대학의 존폐에 관한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는다. 재단은 교육부 산하기관으로서 사학의 진흥을 내세웠지만, 지금까지 명칭에 걸맞은 실질적인 역할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이런 기관에 폐교 대학의 잔여재산 처분권을 부여하는 것은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폐교 결정에 관하여 사실상 전권을 가진 교육부 장관에게 정치적 책임조차 물을 수 없는 강득구 의원의 법안은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해산장려금의 지급이 폐교의 촉진제로 작용할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법안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합리적 근거가 없다. 오히려 학교법인이 폐교를 빌미로 교수와 직원의 신분을 협박할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히 예견된다. 사립대학의 속성을 아는 사람들은 이 법안이 교원을 통제하는 도구로 악용될 소지가 매우 크다고 우려한다. 예를 들어 경남의 Y대학은 이미 일부 정원미달을 구실로 교수의 연봉삭감을 단행했고, 정교수의 정년 보장도 없애버렸다. 이런 사립대학의 엄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법률 제정을 강행한다면 현실을 모르는 의원들이 일부 사학법인에 교수와 직원을 부당하게 통제하는 합법적 수단을 제공하게 된다.교수와 직원을 구제해야
이 법안은 분명히 재고되어야만 한다. 법안에는 명확한 폐교 근거와 기준이 제시되어야만 한다. 재정진단만을 근거로 교육부 장관에게 사립 대학의 생사여탈권을 부여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그뿐인가? 사립대학 진흥을 위해 국고로 운영되는 한국사학진흥재단이 대학의 퇴출·폐지에 물적·인적 자원을 투입하는 것 또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모순이다.‘사립대 구조개선법’ 정원 감축 효과는?
재정지원제한대학 2회 이상선정 사립대 권역별 분포46개17개18,725명35,421명일반대 23개전문대 23개일반대 9개전문대 8개비수도권 수도권약7%387,496명사립대 전체 입학정원(일반대 242,352명 / 전문대 145,144명)54,146명재정지원제한대학 2회 이상선정 사립대의 입학정원(32개 일반대 28,958명 /31개 전문대 25,188명)교육부 재정지원제한대학 평가에서 2회 이상 선정된 사립 일반대(32곳)와 전문대(31곳)의 입학정원(2022년 기준)은 5만4천146명이다. 사립대 전체 입학정원 38만7천496명의 약 14%에 해당한다. 재정지원제한대학 평가에서 2회 이상선정된 사립대(63곳) 가운데 절반 가량을 ‘한계대학’으로 분류한다면, 약 7%의 입학정원 감축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출처: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대학정책TF, 입학정원은 2022년 기준, 대학수는 2023년 기준이다.‘사립대 구조개선법’ 제정과 관련해 세 가지 사항을 검토해야 한다.
① 폐교 정책 수립에 앞서 사립대 진흥 정책을 제시하고, 폐교 대상 대학을 전수조사한 후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② 학교법인의 부실 운영에 대한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③ 폐교에 앞서 구성원의 자구노력을 살펴봐야 한다.법안 통과 후 예상되는 폐교 대학과 정원 감축 규모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사립대학의 현황과 운영에 관한 객관적이고 신뢰할 만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급하게 해산 장려금으로 잔여재산의 30%를 지급하겠다는 방안도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폐교 대학으로 지목받는 이유를 냉철히 따져봐야 한다. 대부분의 문제는 학교법인의 부정과 비리에 있다. 따라서 그런 대학의 잔여재산을 민법의 규정대로 국고로 귀속시키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더군다나 폐교 귀책 사유의 당사자인 사학법인에게는 해산장려금을 지급하자고 규정하면서도 정작 대학의 본원적 기능을 수행하는 교수와 직원을 구제하기 위한 규정은 없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의 대학에 대한 무지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법안의 제정 의도가 지극히 의심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나아가 한시법이라면서 경과 기간을 10년씩이나 둔다는 것은 구조조정은 한낱 빌미일 뿐, 10년동안 지속적으로 확실하게 사학법인의 이익을 챙겨주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부정·비리로 좌초한 대학의 퇴출은 당연이 법안의 제정과 관련하여 다음 세 가지 사항을 강력히 요청한다. 첫째, 무엇보다도 공정과 상식에 맞게 사립대학의 구조개선을 추진해야 한다. 지금까지 교육부는 선(先) 평가 후(後) 컨설팅을 통해 탈락 대학을 압박하고 시혜를 베풀 듯 임의로 구제해주는 잘못된 관행을 되풀이해왔다. 그런 잘못된 관행을 확실하게 바꿔야 한다. 폐교 정책 수립에 앞서 사립대학 진흥을 위한 정책을 제시하고 전수조사를 통해 폐교 대상 대학을 파악한 후, 그에 따른 정책 효과와 소요 예산 등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법률에 담아야 마땅하다.둘째, 향후 발생할 각종 법적 분규에 대비하여 폐교 결정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특히 학교법인의 부실 운영으로 폐교를 맞은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조치하는 조항을 포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폐교에 앞서 구성원의 자구책 제시와 노력이 있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특히 폐교로 인한 구성원의 물질적 보상과 향후 연구 활동 지원책, 학업을 계속하기를 원하는 학생들을 위한 대책 등 세심한 사항들을 법률에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부정과 비리로 위기를 자초한 대학의 퇴출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 사학법인의 속성상 현실적으로 무척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다. 그런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인 ‘사립대학 구조개선법’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어리석은 시도다. 대학의 건전한 발전과 고등교육의 경쟁력 강화는 결코 한계대학 퇴출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오히려 이 법안은 해산장려금과 국고지원금을 좀먹는 ‘좀비대학’을 양산하는 합법적 장치가 될 수 있다. 특히 자칫 법인에게 교수와 직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강력하고 정교한 발톱을 달아주는 격이 아닌지도 우려된다. 따라서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는 ‘좀비대학’의 창궐 개연성이 큰 ‘사립대학 구조개선지원법’의 폐기를 강력히 요구한다.
양성렬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해양생물학으로 박사를 했다. 역서로 『토양미생물학 원리와 응용』 『병원미생물학』, 공저로 『대학법 체제 정비』 등이 있다.
전 세계 500만 부 이상 판매된《필링 굿》의 저자
데이비드 D. 번즈의 최신작!“《필링 굿》보다 10배는 더 놀라운 책!”우울증 부문 아마존 1위최고의 인지행동치료 가이드북《필링 그레이트》는 번즈 박사의 모든 노하우가 담긴 역작이다. 이 책을 읽고 실천하는 것만으로 즉시 새로운 삶을 만날 수 있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치료사들 또한 고정된 생각이 바뀌는 멋진 경험을 할 것이다.채정호,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데이비드 D. 번즈 지음│박혜원 옮김│712쪽│값 32,000원문예출판사변화와 혼돈의 대전환 시대
한국 교육 변혁의 길을 찾다!교육사상가의 삶과 사상
위대한 교육자의 삶과 교육사상을 탐색하다우리 교육의 위기를 이해하고 미래교육의 새로운 좌표를 찾아서더 나은 사회와 공동체적 삶을 위한 실천, 이론화에 기여한 교육사상가 11인의 삶과 철학에 대한 탐색. ‘이론적 실천가’, ‘실천적 이론가’를 지향하는 저자들은 ‘시민 강좌’를 통해 활동가는 물론 우리 교육의 능동적 생산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다양한 담론을 제시한다.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지음 | 424쪽 | 23,000원선생님, 제주 4·3이 뭐예요?
제주 4·3의 진실을 말하다섬 전체가 상상을 초월하는 학살의 현장왜 제주 4·3은 현재진행형인가? 1947년 3·10 민관 총 파업은 왜 일어났을까? 왜 1948년 4월 3일 한라산에서 봉홧불을 올렸을까? 제주의 역사적 비극은 아름답고, 찬란하고, 당당한 비극이다. 저자는 지금, 제주공동체가 대동단결했던 그때의 역사 이야기를 들려준다.한강범 지음 | 308쪽 | 18,000원비판 정신과 인문학으로 ‘내일’을 말하다!
레프 비고츠키
발달에 대한 과학적 문제인식을 최초로 제기한 문화심리학자 비고츠키를 전기로 만나다르네 반 데 비어 지음 | 배희철 옮김296쪽 | 21,000원인격과 세계관
세계관은 어떻게 인격이 되는가?인격은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고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는가?레프 비고츠키 지음 | 비고츠키연구회 옮김376쪽 | 22,000원왜 체게바라인가
쿠바 의료를 이끄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민중과 함께 승리한 체 게바라, 그의 길에서 ‘배려의 의료’와 ‘새로운 교육’을 만나다송필경 지음 | 320쪽 | 19,000원왜 지속가능한 디지털 공동체인가
불안하고 고단한 사회의 풍경, 그 속에서 우리 삶은 어떻게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현광일 지음 | 280쪽 | 17,000원선생님, 우리 영화로 세계시민 만나요!
세계시민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영화로 ‘사람, 번영, 환경, 평화, 협력’을 만나다변지윤 외 지음 | 328쪽 | 19,000원비고츠키 아동학과 글쓰기 교육
함께하는 글쓰기 수업을 통해 교육의 의미를 새롭게 깨우친다한희정 지음 | 300쪽 | 18,000원혁신교육을 실천하는 교사들의 필독서
*근간
선생님, 평가 어떻게 하세요? 성열관 외 지음세계의 혁신대학을 찾아서 안문석 지음어떻게 어린이를 사랑해야 하는가 야누시 코르차크 지음소박한 자율의 사상가 이반 일리치 박홍규 지음다시, 남도의 기억을 걷다 노성태 지음미래 100년을 향한 새로운 교육
전화 02-3141-6553 | 팩스 02-3141-6555 | 이메일 gwang80@hanmail.net | 블로그 http://blog.naver.com/dkffk1020‘다양한 자본주의’ 파헤치는 유용한 대안이 필요하다면
천하제일연구자대회
㊷ 얼룩덜룩한 자본주의에 대한 문화정치경제학과 한국사회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
문화정치경제학은 여전히 발전 중인 신생 이론 패러다임이다.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 현재도 유행하고 있는 라틴 유럽의 정치철학, 그리고 사회체제론 이상의 비판적 이론 패러다임이 필요한 현실에서 문화정치경제학이 그런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특히 공간적으로 민감한 비판적 문화연구와 해방적 정치경제학의 통합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문화정치경제학은 유용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너는 여기”라는 담임 선생님의 ‘찍기 신공’에 어쩌다 경제학도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하필 그 해 말 ‘단군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가 발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개입,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 한국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 카드대란, 그리고 신자유주의 논쟁이 뒤따랐다. 왜 그리고 어쩌다 이리되었는가? 적절한 답을 주는 이가 없기에 직접 해보기로 했다. 경제와 정치의 복합적 상호작용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터라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이라는 석사논문을 썼다.
졸업 후 정당에서 일을 하다 영국으로 건너갔다. 처음에는 정치학과에 진학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학교뿐 아니라 전공도 사회학으로 바꾸었다. 몇 년 후 「얼룩덜룩한 자본주의 내 한국의 발전모델에 대한 문화정치경제학」이라는 박사논문을 제출했다. 심사 통과 직후 지도교수께서 농을 건넸다. “그런데 이건 경제학인가, 정치학인가, 사회학인가, 지리학인가?” “내 논문은 횡단분과학문적(transdisciplinary)이다. 당신이 그리 가르치지 않았는가?”횡단분과학문적 패러다임으로서 문화정치 경제학
줄여서 문화정치경제학이라고 하자. 그 명칭이 보여주듯, 이는 문화연구와 정치경제학의 결합된 형태를 취한다. 물론, 오늘날 문화정치경제학을 표방하는 흐름은 하나가 아니다. 그중 내가 선호하는 버전은 밥 제솝과 나일링 섬의 것이다. 그것은 ① 제도주의 경제학 분야의 조절접근, ②영국 랑카스터대 문화정치경제학 연구센터에 참여한 연구자들. 왼쪽부터 국가이론가 밥 제솝, 비판적 실재론 연구로 이름을 알린 지리학자 앤드류 세이어, 동아시아 신흥공업경제에 대한 조절주의적 분석을 수행한 정치학과의 나일링 섬, 그리고 비판적 담론분석으로 널리 알려진 언어학과의 노만 페어클럽과 루스 보닥. 특히 제솝과 세이어는 사회학과 내에서 포스트구조주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기반의 ‘모빌리티 연구’로 잘 알려진 사회학자 존 어리 및 그의 동료들과 경쟁관계를 형성했다.
행정학과 정치학의 거버넌스연구, ③ 정치학·정치사회학·정치지리학에서 활용되는 국가론, ④ 사회언어학에서 유래한 비판적 기호분석, ⑤ 역사기술학에 기반한 정세분석, 그리고 ⑥ 지리학자들이 제시한 얼룩덜룩한 자본주의적 접근 ⑦ 사회이론의 층위에서는 전략관계적 접근, 그리고 ⑧ 사회과학철학의 층위에서 비판적 실재론의 원칙에 입각하여 접합한 통합적 이론 패러다임이자 연구 프로그램이다.
또한, 문화정치경제학은 ‘플레인(plain)’ 마르크스주의적 이론 기획이기도 하다. 이는 여전히 마르크스의 이론과 방법을 토대로 작업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마르크스를 19세기 유럽의 뛰어난 이론가 중 한 사람으로 간주할 뿐 그를 신성화하거나 절대시하지 않는 입장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그의 이론·방법·통찰을 참조하고 활용하되 그것을 보완하고 개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문화정치경제학은 마르크스 이후의, 그리고 필요한 경우 심지어 마르크스주의 외부의 이론적 발전도 종합하려 한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그리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문화정치경제학이 왜 위와 같은 형태를 취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일단, 그것은 실재-구체를 사유 속의 구체로 재생산하려는 시도이다. 이를 통해 그것은 환원주의를 지양한다. 동시에 환원주의를 극복하겠다는 미명 하에 메타이론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이론적 자원들을 마구잡이로 섞는 절충주의도 배격한다. 추구되어야 하는 것은 기회주의적 절충이 아니라 (메타)이론적으로 일관성이 있는 종합이기 때문이다.문화정치경제학, 무엇을 할 수 있는가?그래서 문화정치경제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간단한 답변은 불가능하다. 상기한 것처럼, 문화정치경제학은 다양한 사회과학 분야의 여러 이론적 자원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이론이 모두 동일한 메타이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근현대 자본주의와 관련된 여러 사안에 대한 미분적(혹은 차등적) 분석과 그러한 분석에 대한 적분적(혹은 통합적) 종합을 가능케한다. 따라서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그렇게 하려는 이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결과물의 형태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작업을 완료하는 데 주어진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의 발전모델을 재독해하면서 조절접근, 국가론, 비판적 기호분석, 그리고 얼룩덜룩한 자본주의적 접근을 선택적으로 활용했다. 각각의 분석을 종합하여 나는 그것을 상충하는 경제전략(특히, 파시즘적 자립주의와 자유무역지향적발전주의)의 이종교배에 의해 탄생한 키메라적 모델로 재규정했다. 이 작업은 내가 수 년 동안 박사학위논문을 작성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만약 짧은 기간에 학술지 논문을 써야 했다면 나는 아마도 같은 연구대상에 대해 조절주의적 혹은 국가론적 분석만을 수행하거나 비판적 기호분석만 시도했을 것이다. 이 맥락에서 문화정치경제학을 처음부터 전체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한편, 문화정치경제학은 여전히 발전 중인 신생 이론 패러다임이다. 이에 그와 관련된 나의 관심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론 자체의 개선이고, 다른 하나는 개선된 이론에 기반한 경험연구이다. 이 맥락에서 현재 나는 세계시장에서의 패권에 대한 마르크스의 통찰과 얼룩덜룩한 자본주의적 접근을 연결하는 논문을 쓰고 있다. 다채로운 자본주의 혹은 누더기 자본주의로 번역 되기도 하는 얼룩덜룩한 자본주의는 일차적으로 자본주의의 다양성(varieties of capitalism)과 관련이 있는 개념이다. Variety는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들 사이의 차이와 관련이 있지만, Variegation은 전체 속에서 얽히고설킨 다양성을지칭하기 때문이다.
얼룩덜룩한 자본주의는 서로 복잡하게 연결된 세계시장의 맥락에서 자본주의의 다양성을 부각시킨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는 방법론적 내셔널리즘에 입각한 비교자본주의론과 초지구화(Hyper-Globalization) 테제에 기반한 지구적 자본주의론 사이에 위치한다. 따라서, 공간적 감수성을 갖는 얼룩덜룩한 자본주의적 접근은 우리로 하여금 스케일 재편, 경계 재구획, 영토 재설정에 따른 공간의 폭증과 같은 문제를 보다 잘 다룰 수 있게 해준다.이러한 작업 이후 나는 사회구성체론의 혁신을 위해 전략관계적 접근이 니클라스 루만의 사회체계론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해명하는 사회 이론적 작업을 수행할 예정이다. 또한, 국가 공간의 변화나 국가 없는 사회 내 거버넌스의 (불)가능성과 같은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경험연구와 관련해서는 향후 고등교육체계의 변화와 관련된 학문 자본주의, 플랫폼 자본주의 이후의 프로토콜 자본주의, 그리고 (대)도시의 정치경제와 관련된 사안을 다루려 한다.위험에 대한 경고와 최후의 변론
하지만, 문화정치경제학에도 단점이 있다. 첫째, 문화정치경제학은 짧은 기간 내에 그 사용법을 익혀서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도구상자’와 같은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을 전체적으로 학습하고 이해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문화정치경제학은 여전히 신생 이론 패러다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것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직접 이론적 작업을 수행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유형의 연구는 특정 연구기법을 배워 흥미로운 상관관계를 발견하거나 대중적 환상을 기각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연구보다 훨씬 어렵다.그럼에도 비판적 사회과학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문화정치경제학은 여전히 매력적일 수 있다. 국내의 비판적 연구자 중 어떤 세대는 ‘유신’에서 시작했을 것이고, 다른 세대는 ‘광주’에서 시작했을 것이며, 또 다른 세대는 ‘91년 5월’에 시작했을 것이다. 서론에서 말한 것처럼, 내 경우에는 경제 위기와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에서 시작했다. 이후 나의 관심사는 발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최근에는 프로토콜 자본주의, 국가 공간의 변화, 다중스케일적 거버넌스처럼 좀 더 최신의 문제로 되돌아왔다. 내게는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이나 현재도 유행하고 있는 라틴 유럽의 정치철학, 그리고 사회체제론 이상의 비판적 이론 패러다임이 필요했다.현재 나는 문화정치경제학이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유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 특히 공간적으로 민감한 비판적 문화연구와 해방적 정치경제학의 통합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문화정치경제학은 유용한 대안일 수 있다.박지훈
중앙대 중앙사학연구소 연구교수
서강대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영국 랑카스터대에서 밥 제솝과 나일링 섬의 지도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부전공은 사회과학철학, 사회이론, 정치경제학, 담론/기호분석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자본축적의 시기와 경제위기, 그리고 위기관리 외에도 정치경제와 관련된 여러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얼룩덜룩한 자본주의에 대한 문화정치경제학: 밥 제솝과 나일링 섬의 초학과적 이론 기획」, 「가치에 대한 노동이론인가 노동에 대한 가치이론인가: 마르크스의 가치론에 대한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다이앤엘슨의 해석과 그 영향들」, 「매리 루이스 프랫과 접경 혹은 접촉지대 연구: 비판적 평가와 대안적 전망」 등의 논문을 썼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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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면에서 이어짐
제2차 인문사회 분야 ‘메가프로젝트’ 토론회이번 토론회는 지난해 12월 2일, 국회에서 열린 제1차 ‘메가프로젝트’ 정책토론회에 이어 같은 주제로 열리는 두 번째 토론회였다. 제1차 토론회가 인문사회 분야 메가프로젝트의 필요성과 가능성과 사례를 살펴봤다면, 제2차 인문사회 분야 ‘메가프로젝트’ 정책토론회는 거대위기 극복에 인문사회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이날 사회는 안기돈 충남대 교수(경제학과·과학기술지식연구소장)가 맡았다.강성호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장(순천대 사학과)은 “인문사회 분야 예산이 5년 내 공적 R&D의 2%가 되도록 매년 20%씩 예산을 증대해야 한다”라며 “‘인문사회 분야 메가프로젝트’ 사업 현실화를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과 시범사업을 검토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통섭’과 인문사회분야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에코과학부 생명과학전공)는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연암 박지원(1737~1805), 다산 정약용(1762~1836)을 통섭의 학자로 제시했다. 최 교수는 “지식의 총량이 거대해져서 한 분야를 팔 수밖에 없는 시대”라며 “우물을 깊이 파려면 넓게 파야 한다”라고 강조했다.융합은 성과가 별로 없다. 특히 학문의 융합은 어렵다. 최 교수는 통합은 물리적, 융합은 화학적, 통섭은 생물학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융합은 목표이고, 융합의 방법론 혹은 철학적 배경이 통섭이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통섭적 융합을 제안한 것이다. 최 교수는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도 통섭적 합침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패배주의 극복하는 새로운 통합적 역사관
이어진 토론에서 신동원 전북대 교수(과학학과·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장)는 「한국 과학문명의 성찰을 통해 미래의 길을 찾기」를 발표했다. 신 교수는 “한국은 세계과학문명의 박물관”이라며 “과학 후진국과 선진국의 명암을 모두 경험했다”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한국은 과학기술 중시 사회인가, 과학기술 경시 사회인가? 선발 국가들의 전철을 피하면서도 후발 국가들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꿈꿀 수 있는 새로운 길은 무엇인가? 누구를, 무엇을 위한 메가프로젝트인가? 메가프로젝트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지난 13일,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 주최로 인문사회 분야 제2차 ‘메가 프로젝트’ 정책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번 토론회의 주제는 ‘거대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였다. 사진=김재호
“저출생과 고령화는 벤치마킹이 불가능하다. 세계가 우리를 벤치마킹하도록 극복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에코과학부 생명과학전공)
“다양한 국가적 난제를 500억 미만의 예산으로 수년간 수백명의 인재를 동원하여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반드시 검토해 볼 일이다”.
-이관후 건국대 교수(상허교양대학)
“한국사를 자주적이고 통합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패배주의 극복을 위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통합적 역사관을 마련하자.” - 신동원 전북대 교수(과학학과)
신 교수는 “빠른 추격의 비결은 전통 과학문명의 깊이에 있었다”라며 “자기 성찰의 저력은 한국의 민주주의”라고 강조했다. ‘무엇을 알릴 것인가?’라는 물음에는 문명사적 관점에서 본 한국의 과학기술이 제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는 12년만에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 전 30권을 완간한 바 있다. 총서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판부를 통해 번역·출간될 예정이다.
아울러, 신 교수는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시·공간 축으로 시각화한 ‘한국 과학기술의 세계지도’를 제안했다. 한국 (근현대)과학기술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역사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유라시아 과학기술 로드맵(가칭)도 언급됐다. 신 교수는 “한국사를 자주적이고 통합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라며 “패배주의 극복을 위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통합적 역사관을 마련하자”라고 당부했다.
숙론·통섭 실행 위한 이념적 기초엄연석 한림대 교수(태동고전연구소장)는 최재천 교수 발표에 대해 논평했다. 엄 교수는 프랑스 아날학파의 ‘인간과학’, MIT의 STS 프로그램과 같은 탈분과 학제간 연구, 클라우스 슈밥의 시스템 리더십과 가치 중심적 리더십, 철학자 박이문(1930∼2017)의 생태학적 문화론 명제 등을 “지식의 통섭에 기초한 사회문화적 숙론(熟論)과 통섭(統攝)을 실행하기 위한 이념적 기초이며 구체적 기준이자 실행 방안”이라고 언급했다.
엄 교수는 세 가지 질문을 했다. 첫째, 자연과학자·공학자와 인문학자들이 학제간 통섭적 연구를 진행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이론·실행 상의 문제는 어떻게 극복하나. 둘째, 통섭적 연구를 제도적으로 실행해 갈 수 있는 논의기구와 제도적 장치는 어떤 모델이어야 하나. 셋째, 통섭의 이념으로부터 통섭적 지식, 통섭의 주체와 대상, 통섭을 위한 제도와 교육, 통섭적 지식의 적용, 통섭의 효과 등과 같은 단계적·절차적 과정은 어떻게 고려돼야 하나. 엄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포함해 분단된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미래상은 무엇인가”라고 말했다.국가공동체 종식 위험에 처한 한국
“합계출산율이 0.5 수준이 되면 ‘회복탄력성’이 없어질 것이다.” 이관후 건국대 교수(상허교양대학)는 「‘희망 소멸사회’와 메가프로젝트의 필요성」 토론 발표에서 “한국이 ‘수축사회’를 넘어서 ‘국가소멸’로 가고 있다”라고 우려하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내년이면 한국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지금 한국은 한두 세대 안에 국가공동체가 종식될지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한국의 합계출산율 1.0이 붕괴한 건 2018년이었는데, 지난해에는 0.78로 떨어졌다. 4년 만의 일이다. 그렇다면 0.78에서 0.5로 가는 건 얼마나 걸릴까? 이 교수는 그 원인으로 성공의 딜레마로서의 ‘가장 극심한 경쟁’을 지목했다. 이 교수는 “나는 지옥에 살지만 내 아이까지 지옥에 살게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라며 “이것은 ‘경쟁을 통한 공정 능력사회’를 지향한 결과로서의 ‘희망 소멸사회’일 것”이라고 분석했다.그렇다면 메가프로젝트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인문·사회과학 분아를 예산지원하는 것은 단지 특정 학술 분야의 전문가를 지원하거나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하는 것으로만 인식돼 왔다. 이 교수는 “그 결과 한국은 지금 소멸국가, 희망 소멸사회를 맞아서 어떠한 국가적 비전과 철학을 보여주지 못한 지경에 이르렀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인문사회 분야 메가프로젝트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다양한 국가적 난제를 500억 미만의 예산으로 수년간 수백 명의 인재를 동원하여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반드시 검토해 볼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생성형 AI, 기회인가 위협인가…‘변화의 촉진제’로 공진화 시도
‘챗지피티 시대의 출판 도전과 기회’ 세미나
지난달 미국의 시나리오작가들이 총파업에 돌입했다. 작가들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대본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AI로 인해 일자리를 뺏길 수 있다는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또한 권위 있는 과학소설 출판사 클락스월드는 챗지피티를 활용한 소설의 투고가 쏟아져 당분간 원고 접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출판사는 지난 2월까지 500편 이상의 소설을 반려했다. 챗지피티가 작성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지난 12일, 창비서교빌딩 50주년기념홀에서 「챗지피티 시대의 출판:도전과 기회」 세미나가 열렸다. 챗지피티는 텍스트, 오디오, 이미지 등 기존 콘텐츠를 활용해 유사한 콘텐츠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AI 기술이다. 그런데 만약 AI가 책을 쓰고 실시간으로 출간까지 한다면, 미래의 출판산업은 어떻게 될까? 인간과 기계는 공존이 가능할까? 이러한 고민이 이번 세미나에서 논의됐다. 이번 세미나는 디지털출판산업 활성화를 위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최했다.이시한 성신여대 겸임교수는 「인공지능 언어 모델과 출판의 미래」를 발표했다. 그는 “챗지피티에 의한 텍스트 생성은 변화의 10%에 불과하다”라고 진단했다. 현재 출판시장에서의 AI적용 현황을 보면, 챗지피“챗지피티로 인한 텍스트 생성은 변화의 10%에 불과하다. 아마존은 전적으로 AI가 쓴 책으로 넘쳐나고 있다.”
- 이시한 성신여대 겸임교수티 관련 책, 사람이 챗지피티를 이용해 내용의 반 정도를 채운 책, 챗지피티가 쓴 대부분의 글로 채워진 책이 있다. 이 교수는 “아마존은 전적으로 AI가 쓴 책으로 넘쳐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생성형 AI가 출판시장에 끼칠 영향은 다음과 같다. 작가의 죽음이 아닌 수많은 작가가 탄생하고, 검증 없는 출판물로 인해 기존 작가의 의욕저하가 발생한다. 특히 전통적 방식의 작가-출판사-유통-서점(소매)-독자라는 출판시장의 구조는 작가-플랫폼-독자로 재편될 전망이다. 출판사 역시 위상이 변화된다. 작가가 AI를 이용해 직접 편집·기획·유통에 참여함으로써 출판사는 유튜브에게 시청자를 뺏긴 방송국이나 전문 마케팅 회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교수는 “좋은 책을 만들면 된다는 솔루션은 이제 그만 제시해야 한다” 라며 “의료계와 택시산업에서 보듯이, 규제도 좋은 솔루션이 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AI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경우 출판계는 다음과 같은 대비가 필요하다. △미술·전자책의 경우처럼 책이시한 성신여대 겸임교수가 「인공지능 언어 모델과 출판의 미래」를 발표하고 있다. 생성형 AI가 활성화되면서 창작의 영역에 기계가 도전하고 함께 하는 시대가 됐다. 사진=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픽사베이
에 대한 외연 확장 혹은 전환 △데미안 허스트의 AI 프로젝트 「The Beautiful Painting」과 같은 인터랙티브 커스터마이징을 통한 새로운 창작방법 도입 △브랜드 마케팅 △콘텐츠 플랫폼 트랜스포메이션 전략. 이 교수는 챗지피티를 대하는 출판계의 자세로 ‘변화의 트리거(촉진제)’를 주문했다. “전통적인 출판사가 아닌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 거대한 기회가 시작됐다.”
인종차별 심한 AI의 그림강양구 지식큐레이터는 「인공지능 진화와 출판의 기획·편집」 발표를 통해 질문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생성형 AI한테 “커피 들고 선글라스 낀 여성 그려줘”라고 하면 전부 백인 여성을 묘사한다. 하지만 “가판대에서 음식 파는 여성 그려줘”라고 하면 전부 인도계 여성을 그린다. 끔찍한 인종차별이다. 아울러, 그는 챗지피티의 논리 시스템에 대한 신뢰 문제와 지속가능성을 지적했다. 특히 챗지피티 플러스 서비스가 유료화하면서 경제 격차가 정보 격차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남유하 소설가는 「인공지능 글쓰기와 작가의 창작」에서 낙관적·비관적 시나리오를 비교했다. 낙관적 시나리오는 AI가 훌륭한 조력자로서 역할 할 수 있어, 작가를 보완해주고 협력할 수 있는 도구라는 점이다. 따라서 인간 작가와 AI의 공생이 가능하다. 하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는 작가가 AI의 에너지 생산을 위해 단순 노동하는 인간으로 전락할 수 있고, 에코 체임버(편향된 정보만 접하게 되는 닫힌 환경)에 갇힐 수도 있다. 발표자료에 따르면, 화가‧조각가‧사진작가‧사진사‧작가와 관련 전문가‧지휘자‧작곡가와 연주가‧애니메이터‧만화가 등은 생성형 AI로 인해 직업이 사라질 위험이 높아졌다. 남 소설가는 “이야기하고 질문하는 인간”을 강조하며, “생성형 AI가 아니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갈 것”을 당부했다.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
탄허 지음 | 이승훈 옮김 | 불광출판사 | 504쪽함석헌, 양주동 박사 등 당대 쟁쟁한 학자들이 수강할 만큼 명강의로 유명한 시대의 선각자 탄허 스님의 강설을 열반 40년 만에 문자로 복원한 책이다. 근 40년간 수백 개의 테이프에 채록된 생생한 육성 법문 가운데 『주역』은 물론 『논어』, 『맹자』, 『도덕경』 등 여러 고전과 『치문』, 『서장』, 『선요』, 『도서』의 핵심을 가르는 강설만 녹취해 수록했다.
‘시코쿠’에서 일본을 읽다
박진한 외 4인 지음 | 연두(yeondoo) | 288쪽이 책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따른 지방 소멸에 대처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 환경과 오랜 역사 전통을 장소자산으로 ‘인식’해 지역 재생의 자원으로 ‘활용’하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일본의 ‘시코쿠’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장소자산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지역 사회의 노력을 살펴보고 문화자산으로 가치를 가지게 된 장소에 주목한다.
젠더와 역사의 정치
조앤 W. 스콧 지음 | 정지영 외 4인 옮김 | 후마니타스 | 444쪽젠더 개념을 새롭게 이론화함으로써 여성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페미니스트 역사가 조앤 스콧의 대표작을 정지영 이화여대 교수(여성학과)팀이 옮겼다. 1986년 처음 발표된 이후 지금까지도 역사학계와 여성학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 중 하나인 「젠더: 역사 분석의 유용한 범주」를 비롯해 젠더 개념의 집요한 연구의 결과물들이 담겨 있다.숨겨진 뼈, 드러난 뼈
로이 밀스 지음 | 양병찬 옮김 | 해나무 | 404쪽이 책은 인간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인 ‘뼈’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이야기한다. 1부에서 저자는 뼈의 생물학적 구성, 뼈가 어떻게 성장하고 부러지고 치유되는지 등의 기본적인 과학 지식부터 의학적 혁명과 최신 정형외과 혁신들까지, 살아 있는 신체 내부의 ‘숨겨진 뼈’에 대해 소개한다.스토리텔러 삶과 음악 이야기
데이브 그롤 지음 | 이지민 옮김 | 마르코폴로 | 446쪽너바나(Nirvana)의 드러머였고 푸 파이터스의 프론트맨인 데이브 그롤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사실 데이브 그롤은 작가의 꿈을 가져본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코비드19가 불러온 팬데믹으로 인해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데이브는 무료함을 견딜 수 없었다. 남들이 데이브를 향해 ‘일벌레’라고 할 정도로 그는 끝없이 일을 하는 타입이었다.삼국유사가 품은 식물 이야기
안진흥 지음 | 지오북 | 256쪽벼 유전체 분석의 세계적 권위자인 저자는 『삼국유사』에 수록된 60여 종의 식물 중 45종을 뽑아 옛날 우리 조상들의 식물에 대한 인식과 이용 등을 풀어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당시 역사와 식물에 대해 이해하고, 지금에 이르러 우리의 의식과 생활 속에 자리 잡은 이미지들을 재확인할 수 있다.신라는 정말 삼국을 통일했을까
이기천 외 11인 지음 | 역사비평사 | 376쪽보통의 일반 독자라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고 배워왔으며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이른바 삼국통일전쟁론이며 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은 통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끊임없는 반론이 제기됐는데, 이른바 백제병합(통합)전쟁론이다. 신라는 고구려까지 통합한 것이 아니라 백제만을 병합했을 뿐이며 고구려가 발해로 계승되었다는 것이다.미래국방의 국제정치학과 한국
서울대학교 미래전연구센터·김상배 지음 | 한울아카데미 | 344쪽서울대 미래전연구센터 총서 일곱 번째 책이다. 이 책은 2022년도 한국국제정치학회 춘계학술회의에서 네 개의 특별 테마로 기획해 개최된 ‘한국의 중장기 미래전략: 국방, 외교, 경제, 인터넷’ 연구 프로젝트 시리즈 중 하나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미래국방 패러다임의 부상과 의미, 과제 등을 살펴봤다.한국 현대시의 리듬
장철환 지음 | 소명출판 | 456쪽현대시의 시적 리듬은 무엇으로 측정할 것인가가 이 책의 핵심이다. 정형적이고 규칙적인 운과 율은 전통적 작시법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자유시와 산문시의 리듬 분석 지표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음운, 단어, 시행, 연의 층위에서 시적 리듬의 지표를 확증하는 일이 필요하다.저자가 말하다_『논어의 힘』 임동석 지음 | 차이나북스 | 304쪽
“직접 써봐야 내 것”…AI시대, ‘옛것’의 의미 찾기동양에서 가장 널리 읽히고 활용되고, 교재로 써온 고전 하나를 들라 하면 누구나 망설임 없이 『논어』를 떠올릴 것이다. 한학의 입문이요, 유학의 기초이며, 모든 고전의 첫머리요, 삶의 지혜를 고스란히 담은 것이 바로 이 책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흔히 “『논어』 반 편만으로도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半篇論語治天下)라고 읊어왔다.
우리도 삼국시대 이미 일본에 전해주었고, 그 뒤로 끊임없이 출간·연구되고, 우리 고유의 언해와 주석을 달아 간단(間斷)없이 읽어온 것이 이 책이 아닌가 한다. 오유튜브 강연과 책을 연결해 입체적 완결
눈·귀 시청각 학습만으로는 내 것 안 돼늘날에도 시중에는 이 책의 온갖 변형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지금 AI 시대에 옛것은 점차 세력을 잃고, 고전의 ‘古’자는 ‘옛것’이라는 의미를 상실하여 그저 ‘낡은 것’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런데 당태종(李世民)이 짓고 당대 4대 명필의 하나인 저수량(褚遂良)이 쓴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다.그 탁본은 서예 학습의 교본으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거기에 “無滅無生, 歷千劫而不古; 若隱若顯, 運百福而長今”이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즉 “멸하지도 생겨나지도 않으면서, 천 겁을 지나도 옛것이 아니며, 숨은 듯 드러난 듯하면서 온갖 복을 운행하며 지금도 항존(恆存)하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여기서 “歷千劫而不古”라는 말을 나는참 좋아한다. ‘천 겁의 시간이 흘러도 옛것이 아닌 것’, 즉 언제나 영원히 새로운 것이라는 뜻일 터인데 과연 그것이 뭘까? 원래 ‘불법(佛法)’을 뜻한 것이겠지만, 꼭 불교가 아니더라도 타 종교에서의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지 않겠는가? 나아가 옛 성현들이 남긴 고전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내용도 역시 그렇지 않을까? 그런 고전 속에 ‘선을 폐기하고 악행을 저지르라’는 가르침이 있어 본 적이 있을까? 그래서 이를 읽고 공부하고 가슴에 새겨, 현재의 삶을 바르고 경건하게 이어가야 한다는 것은 인류가 태어난 이후 영원한 가
르침일 것이다.
나도 일찍이 『논어집주』를 위시한 『사서집주』 전체를 완역하여 출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원전에 충실하겠다는 1차원적인 작업은 이제 그 의미가 점차 퇴색해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이를 오늘날에 맞게 현재성과 효용성, 나아가 오늘의 현실에 맞추어 재편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고전이라도 기대만큼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 3차원의 극도로 발달한 전자기기와 검색 사이트·인공지능·쳇봇 등은 학습의 고된 중간 과정을 모두 생략해 주고 마지막 열매의 달콤함을 즉시 입에 넣어주고 있는 현대이니 만큼 사람들은 애써 고전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려 하지 않는다.그래서 퇴임 후 유튜브로 강의를 시작하여 꽤 많은 양의 촬영작업을 해서 주기적으로 올렸으나, 이 역시 세상에 흔한 영상에는 근처도 가지 못한 채 머물러 있다. 이에 시청각(視聽覺)에 촉(觸)과 험(驗)까지 제공하는 책으로 꾸며 함께 활용토록 하면 어떨까 하는 제의가 들어왔다. 즉 유튜브를 통해, 보고 듣고 느끼며, 이를 다시 책을 통해 직접 자신의 필체로 써보아, 모든 체험을 한곳에 모아 다양한 기능을 동시에 접해보도록 하는 책이다.
이에 논어 총 20편 499장을 5권(仁·義·禮·智·信)으로 나누고, 그중 첫책(學而·爲政·八佾·里仁) 4편 92장을 우선 출간했다. 매장 첫머리에는 QR코드와 한글 제목, 원문과 현토, 그리고 해석과 어휘 풀이, 이어서 풀이 순서, 중국어로도 읽을 수 있도록 간체자 원문에 병음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를 직접 써보도록 원고지 공간을 마련했다.무엇보다 현실감 있는 것은 QR코드에 스마트폰 카메라를 대면 해당 장의 내 유튜브 강의가 떠서 즉시 그 자리에서 시청할 수 있다. 책이 평면에서 입체로 바뀌는 이 시대에 맞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 본 것이다.일생 『논어』 한 번 들여다보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읽고 쓰고 공부해 보는 것은 삶의 수직적 행복의 지름길일 수 있다.그렇지만 눈과 귀로만 거쳐 간 시청각으로의 학습은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직접 써 보아야 내 것이 된다. 이를 구현해 보고자 해본 것이다.임동석
건국대 명예교수·중국어학서평_『편향된 기술 문화는 어떻게 작동해 왔는가』 홍남희 지음 | 컬처룩 | 320쪽
차고 넘치는 인터넷 ‘포르노’…피해는 회복 불가능인터넷은 시공간을 초월해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연결’의 경험을 대중에게 선사했다. 정보화·세계화에 발맞추기 위한 정보통신 인프라가 국가 주도로 마련되면서 한국의 인터넷 이용자 수는 1994년 약 13만 명에서 1999년 1천만 명을 돌파했다.
1990년대 정치적·성적 자유의 물결과 기술 중심의 상업 자본주의의 확장에 따라 인터넷은 포르노그래피가 만연한 공간이 됐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지상주의는 새로운 기술 공간에서 발생하는 젠더 폭력을 외면해 왔다. 이 책은 인터넷 이후 역사를 기술 발기술 발전과 더불어 심화하는 젠더 폭력
독성의 기술문화는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전의 궤적으로만 그려내는 서사에 도전한다. 기술 환경을 다양한 인간-비인간 행위자의 상호구성적인 ‘생태계’로 보면서 기술 진보가 어떻게 젠더 폭력을 양산해 왔고, 담론과 제도는 이러한 구조와 역사를 어떻게 비가시화해 왔는지 질문한다.
이를 통해 오늘날 기술문화연구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부상한 ‘편향(bias)’의 문제를 짚어내고자 했다. 편향은 매체가 유발하는 행위 및 문화의 특성이자 기술과 문화, 규제의 작동 방식이 사회구조적인 차별을 전제하고 있음을 뜻한다. 보는 남성과 보이는 대상으로서 여성이라는 관습적인 시선의 권력 문제는 기술을 통해 반복돼 왔으며, 인터넷 이후 포르노그래피 규제 담론에도 전제돼 왔다. 법 담론의 보호법익은 청소년이나 사회의 성(性) 도덕을 ‘음란물’로부터 보호하는데 머물렀으며, 여성의 일상이 포르노화되면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 문제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꽤 오랫동안 불법촬영과 비동의 유포는 ‘포르노’나 ‘야동’으로 불렸으며, ‘음란물’인지에 따라 규제가 결정돼 왔다.
이러한 편향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인터넷의 ‘전 지구적인’ 속성은 전세계 미디어 전경을 유사하게 만들고 있다. 빈곤 국가 소녀들에 대한 백인 남성의 성착취가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발생하고, 딥페이크봇은 여성 연예인뿐 아니라 보통 여성들의 얼굴로 포르노물을 만든다. 포르노그래피가 유통되는 ‘폰허브’ 사이트에서는 아동 성폭력, 불법촬영 및 비동의 유포 사례가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한국의 ‘소라넷’ 또한 매우 비슷한 사례를 확산시켜 왔다. AI 개발 과정에서 활용되는 <플레이보이> 모델 레나의 이미지, 여성을 모욕하면서 후원과 명성을 얻게 하는 플랫폼의 작동 방식, 젊은 여성으로 가정된 챗봇 등은 디지털 기술 문화의 편향성이 성차별과 여성혐오라는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차별의 성격을 갖고 있음을 드러낸다.
미투 운동과 혜화역 시위 등을 통해 주체화된 여성 청년의 기술문화 액티비즘을 의미화하지만 독성의 기술문화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2021년 8월 법무부 산하 디지털성범죄 대응 TF가 출범했다. 그러나 TF의 권고안 중 국회에서 처리된 안건은 하나도 없이 TF가 해산됐다. 가해·피해의 성별화가 뚜렷한 젠더 폭력의 양상은 매체의 자동성·즉흥성과 청소년기 특유의 충동성이 함께 만나면서 점점 극단화되고 회복 불가능한 피해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기술환경에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들이 어떠한 시민으로 자라고 있는가에 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디지털 시민성 논의는 기술환경의 속성과 젠더 폭력의 양상을 통합적으로 사유하는 관점에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누가 어떻게 취약해지고 있는가. 누가 기술 문화에서 배제되고 있는가. 기술은 어떠한 행위를 유도하고 있는가. 책임 주체는 누구인가.이러한 질문을 통해 미디어 연구가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가야 한다. 모두가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기술문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많은 이들이 함께 동참하기를 바라면서, 이 책이 그러한 여정에 손을 내미는 초대장이 되기를 기대한다.홍남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저자가 말하다_『시진핑의 중국몽과 미디어 전략』 정원교 지음 | 나남 | 380쪽
디지털 감시에서 애국주의 교육까지…통제의 민낯
SNS 활발해지자 인터넷 통제하고 역이용
미디어는 당이 관리한다는 ‘당관매체’ 전략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던 무렵, 중국 우한에서 신종 폐렴 환자가 집단으로 발생했지만 실상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한다는 게 아닌가. 중국공산당(중공)의 언론 통제 때문이었다. 서방의 그런 언론 보도는 나를 그냥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은폐로 일관했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경험이 떠올랐던 탓이다. 그때부터 각국 언론 보도를 체크하고 관련 논문 등을 읽는 등 자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차를 주차한 뒤 나는 목격했다. 두 명의 의사가 하얀 천을 뒤집어씌운 뭔가를 밀고 있었고, 그 물체는 꿀렁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까무러칠 뻔했다. 그게 사스 감염자들을 태운 휠체어였던 것이다. 급한 대로 격리복 대신 침대 시트를 찢어 덮은 상황이었다.”2003년 4월 22일 베이징대 부속 인민병원에서 있었던 광경이다. 병원 측은 당시 세계보건기구(WHO)가 현장 조사를 나오자 실태를 감추기 위해 이같은 짓을 벌였다. 중공의 방침에 따른 것이었다. 환자를 태운 버스는 베이징 시내를 빙빙 돌아다녔다. 사스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다닌 셈이다. 그때는 그게 가능했다. CCTV(중국 중앙텔레비전) 기자로 사스를 취재했던 차이징은 단행본 ‘칸젠(看見)’을 통해 그런 현실을 고발했다.그렇다면 코로나19 때 중공이 채택한미디어 정책은? 이에 대한 접근은 자연스럽게 중국몽 실현을 위한 미디어 전략을 분석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우선 사스가 시작된 2002년과 코로나19가 습격한 2019년 사이 17년 동안 당의 언론 대응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다소 바뀐 부분도 있었다.
사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당의 정보 조작이 가능했다. 최초 환자 발생 뒤 5개월, 광범위하게 사스가 퍼진 뒤 2개월이 지나도록 CCTV 등 당 매체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는 언론을 통제하면서도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었다. 뉴스를 실시간으로 전파하는 스마트폰과 SNS의 힘이었다.더욱이 코로나19 초기 당 중앙의 대처가 잘못됐다는 사실인게 알려지자 중국 네티즌이 시진핑 주석을 겨냥한 비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통로는 위챗·웨이보·틱톡 등의 소셜미디어였다. 사스 당시에는 상상 조차 할 수 없었던 모습이다.서방 학자들은 중국이 인터넷 등장에 따라 상당한 정치적 곤경에 처할 것으로 예측했었다.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은 독재정치를 위협한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당은 네티즌의 발언권이 커지는 이상으로 검열과 선전을 강화했다. 이는 인터넷을 통제하고 역이용하는 방식의 개발을 통해 가능했다. ‘디지털 감시사회’가 이미 중국의 현실이 된 것이다.이러한 미디어 정책의 배경에는 ‘당관매체(黨管媒體)’가 자리잡고 있다. 미디어는 당이 관리한다는 원칙이다. 이에 따라 당이 실질적으로 이데올로기와 여론을 주도한다. 당관매체 원칙은 1921년 중공 창당 이래 계속 이어져 왔다. 1차 당대회에서 채택한 ‘중국공산당 제1차 결의’는 미디어 관련 기본 방침으로 “모든 서적, 일간 신문, 표어, 전단 등을 출판하는 사업은 마땅히 중앙집행위원회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원칙은 중국몽 실현이란 목표 아래 특히 중시된다. 시 주석은 여론공작이 당과 국가의 운명과 직결된다고 직접 밝혔다(2016년 2월 뉴스여론공작 좌담회). 미디어를 통한 선전과 동원이 인민들을 단합시키고 국가적 역량을 모으는 기능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20차 당대회 업무 보고에서는 미디어에 대해 시진핑 사상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라고 요구했다. 시진핑 사상의 핵심은 중국몽, 즉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다.미디어는 중국몽 실현을 위해 애국주의 교육에도 앞장서도록 요구받는다.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은 2019년 11월 공동으로 ‘신시대 애국주의 교육실시 강요’를 발표, 중국몽 실현이 애국주의 교육의 명확한 주제라고 강조했다(1장). 그러면서 모든 미디어는 애국주의에 초점을 맞추라고 요구했다(5장). 이처럼 미디어가 당 사업을 위한 선전도구라는 위상은 마오쩌둥 시기에 확립된 것이다. 이러한 미디어 시스템은 중공이 존재하는 한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정원교
차이나 미디어 대표이 책을 말하다_『꿈꿀 권리』 가스통 바슐라르 지음 | 김웅권 옮김 | 동문선 | 2008 | 275쪽
몽상가가 바라본 미술과 문학의 세계문학청년으로 미술에 한참 관심을 두고 있던 대학 시절, 새로운 문학 탐구의 방법으로서 신비평(Nouvelle Critique)을 접한 적이 있었다. 이 중, 테마 비평(Thématique)은 작품 심층에 내재된 작가의 미의식과 작품의 주제를 직관적으로 파악해 작품을 해석하려는 입장으로, 작품을 창조한 작가가 가지고 있던 상상력의 독자성을 강조함으로써, 작품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비평적 태도로 기억한다.
바슐라르 예술사상·테마비평의 이론적 토대
예술작품의 형이상학적 순간더욱이 이 테마 비평의 이론적 토대에 과학철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이며 몽상가로 알려진 가스통 바슐라르(1884~1962)의 예술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미술에 관한 그의 저서를 찾아 읽어 보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꿈꿀 권리』(이가림 옮김, 열화당, 1980)였다.
원래 이 책은 바슐라르가 1944년부터 타계한 해인 1962년까지 이곳저곳에다 실은 글을 편집자가 한데 모아 사후에 단행본(Le droit de rêver,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Paris, 1970)으로 엮은 것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열화당의 번역서는 총 3부(제1부 미술, 제2부 문학, 제3부 몽상)로 구성된 프랑스어 원서 중 맨 앞의 것만 떼어내어 우리말로 옮겨 ‘바슐라르의 진귀한 미술론’(이가림 옮김, 역자의 말, 3쪽)으로 소개하며 출간(도판 69점 소록, 총 169쪽 분량)했다. 이와 같은 편집은 미술에만 집중시키는 장점도 있었지만, 원서 전체가 뿜어내는 이야기를 온전히 파악하는 데는 원초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런 아쉬움을 달래기라도 하듯, 원서의 3부 모두를 옮긴 번역서(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8)를 통해 바슐라르를 다시 만난 것은 근 30년 만의 일이다.
먼저, 이 책의 제1부 미술 편(11~138쪽)은 모더니즘 시대의 한복판에서 예술과 문화를 풍미한 미술가들을 바슐라르 자신만의 몽상적 사유로 접근한다. 특히,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 원초적인 철학적 몽상을 촉발시킨 물(모네, 수련 혹은 여름날 새벽의 놀라움, 11~17쪽), 불(바로키에, 인간과 그 운명, 56~62쪽), 흙(플로콩, 환상의 성, 118쪽~138쪽), 공기(샤갈, 빛의 근원, 40~45쪽) 등 4원소의 물질(archē)에 대해, 과학자로서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만 머물지 않고, 그것을 통해 꿈꾸며 상상하는 당대의 미술가들에게서 몽상가로서 작가마다 특유의 ‘물질적 상상력’을 읽어 낸다.
이어지는 제2부 문학 편(141~213쪽)에서는 ‘몽상의 역동적 변증법’으로 소개한 말라르메(1842~1898)(174~180쪽)를 비롯하여 『세라피타』의 저자 발자크(1799~1850)를 조명(141~150쪽) 하면서 영혼의 역동적 경험을 노래한 문필가 8명과 몽상을 이어간다.
마침내 제3부 몽상 편(217~266쪽)에서는 ‘꿈의 공간’(217~222쪽)으로부터 몽상의 보금자리를 더듬더니만, 이어서 작품을 통해 우주에 대한 하나의 비전과 영혼의 비밀, 하나의 존재와 사물들,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제시하는 것으로서 예술이 품는 형이상학적 성격(245쪽~253쪽)을 음미하기에 이른다.과학의 영역에서도 예술의 지대에서도 여전히 바슐라르의 반향은 목격된다. 예를 들어, 푸코(1926~1984)에 대한 관심이 두터워지면서 바슐라르, 캉키엠(1904~1995), 알튀세르(1918~1990), 푸코로 이어지는 계보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깊어져, 인식론적 영향을 끼친 바슐라르의 과학철학 역시 첨예한 관심의 대상이 된 바 있다.또한 문학 비평에서 상상력 혹은 이미지 비평을 창시한 인물로 잘 알려진 질베르 뒤랑(1921~2012)은 신화적 상징연구를 통해 바슐라르의 뒤를 이어 상상력 이론을 확립했다고 평가받는 점 등에서 그러하다고 하겠다.이승건
서울예술대 교수·미학어쩌다 대한민국은 불평등 공화국이 되었나?
김윤태 지음 | 간디서원 | 376쪽이 책은 극심한 한국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먼저 불평등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과 지식을 소개하고 그것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을 다양한 관점에서 진단하고 있다. 저자는, ‘공정의 가치’를 추구하고, 개인의 ‘역량 강화’와 ‘사회적 자유’의 확대를 원칙으로 하고 적극적인 공공정책의 제도 개혁을 주문하고 있다.미학에 고하는 작별
장-마리 셰퍼 지음 | 손지민 옮김 | 세창출판사 | 160쪽미학을 다루는 철학적 성찰들은 1990년대에 괄목할 만한 부흥기를 맞았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 논의가 적어도 일시적으로 전업 철학계를 넘어선 대중, 특히 흔히 말해지는 “예술계”에 반향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시조적 철학 분야로서 고안된 미학적 학설, 그것의 부흥을 믿기까지는 몇몇 철학자가 부단히 내딛으려 했던 단 한 걸음만이 남아 있다.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
주디스 버틀러 지음 | 김응산 옮김 | 창비 | 220쪽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로 불리는 저자의 신간이 출간됐다. 젠더 및 퀴어 이론가로 이름을 알린 후 정치철학과 윤리학을 넘나들며 소수자 차별과 폭력에 대해 꾸준히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버틀러가 이번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로 혼란에 빠진 세계를 분석하기 위해 현상학으로 영역을 확장한다.난 여자가 아닙니까?벨 훅스 지음 | 김보명 해제 | 노지양 옮김 | 동녘 | 332쪽
이 책에서 저자는 17세기에 시작된 흑인 노예무역부터 20세기의 흑인민권운동과 여성운동까지 이르는 미국의 역사를 흑인 여성 당사자의 시각으로 다시 쓴다. 노예제 시기 흑인 여성이 경험한 억압과 폭력, 흑인 여성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과 그 영향, 흑인민권운동에서 흑인 남성의 성차별과 여성운동에서 백인 여성의 인종차별을 다룬다.사회과학 하기
장-피에르 카바이예 외 9인 지음 | 후마니타스 | 360쪽이 책은 사회과학의 세 가지 핵심 주제를 다룬다. 우선 ‘비판하기’이다. 성찰적인 통찰력은 전문 지식이 빠질 수 있는 순진한 확신을 한 번 더 의심하게 만드는 훌륭한 해독제이다. 다음은 ‘비교하기’이다. 단일 연구 사례에만 집중하는 태도로는 설득력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일반화하기’이다.일상의 발명 실행의 기예
미셸 드 세르토 지음 | 신지은 옮김 | 문학동네 | 408쪽사람들은 종종 회사에서 딴짓을 한다. 복잡하게 꼬인 일을 주먹구구식으로 헤쳐나가기도 하며, 때때의 임기응변으로 코앞에 닥친 어려움을 능청스럽게 피하기도 한다. 요샛 말로 ‘월급 루팡’으로 불릴 만한 그들의 행동에 대단한 뜻이나 별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행위는 거시 구조나 정책 용어로는 포착되지 않는다.몸들의 유니버스 너머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외 12인 지음 | 산지니 | 548쪽정동(情動, affect)과 젠더의 연구방법을 결합해 주체와 몸, 삶과 죽음, 질병, 장애, 소수자, 포스트휴먼 등에 대한 인문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는 동아대 젠더·어펙트연구소가 젠더·어펙트 총서 제3권을 출간한다. 이번 책에서는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속체’, ‘배열체’, ‘회집체’ 등을 연구한 12편이 수록됐다.겸재 정선의 그림 선생
이성현 지음 | 들녘 | 392쪽선비들의 그림은 사의성(寫意性)을 가장 중요시한다. 옛 선비들은 그림 속에 자신의 생각을 타인과 공유(소통)할 수 있는 장치를 따로 마련해두기도 했다. 이런 그림들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선비의 고고한 품격’이니 하는 따위의 말로 얼버무리는 기존 해석의 주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선비의 품격이란 무엇인가? 선비다움이다.분야별 신간
정치-사회카플란의 현명한 정치가 | 로버트 D. 카플란 지음 | 유강은 옮김 | 미지북스 | 252쪽역사일본인의 사유양식과 자본주의 정신 | 김필동 지음 | 소명출판 | 266쪽한국의 냉전문화사 | 이봉범 지음 | 소명출판 | 757쪽인문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빠진 심리학자 | 조태진 지음 | 팬덤북스 | 320쪽우울증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 | 기타나카 준코 지음 | 제소희 외 2인 옮김 | 이현정 감수 | 사월의책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328쪽문학-에세이
거울은 소녀를 용서하지 않는다 | 이우연 지음 | 출판하우스 짓다 | 352쪽사계절 기억책 | 최원형 글·그림 | 블랙피쉬 | 320쪽시는 언제나, 르네 샤르 | 이찬규 지음 | 그린비 | 288쪽어린이의 말 | 박애희 지음 | 열림원 | 296쪽우리에게는 랭보가 필요하다 | 이브 본푸아 지음 | 위효정 옮김 | 문학동네 |592쪽
투명인간 |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 이정서 옮김 | 새움 | 304쪽풍수전쟁 |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304쪽한밤의 시간표 |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60쪽경제한국자본시장의 이해 | 엄경식 지음 | 한울아카데미 | 600쪽신냉전 시대, 우리에게 r냉전s은 무엇이었나 ⑨ 냉전의 종식
석유파동과 신자유주의의 부상…‘약속하는 정치’는 어떻게 무너졌나1991년 12월 26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맹(이하 소련)의 입법 기관인 최고소비에트는 자국의 해체를 선언했다. 20세기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중 하나이자 사회주의 이념을 가진 모든 이들의 ‘조국’이었던 소련은 15개의 자본주의 국가로 쪼개졌다. 2023년 현재, 이들의 지정학적 위치와 셈법은 실로 복잡하다. 세 나라는 EU 회원국이 됐고, 두 나라는 러시아와 전쟁을 치렀으며, 러시아를 제외한 아홉 나라는 각각 러시아·서구·중국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
1970년대 데탕트와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부상을 목격한 국제질서는 이제 미국 중심의 단극 질서로 재편되는 듯했다. 하버드대학에서 소련의 중동 개입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의 정치아쉽게도, 한국과 북한은 냉전의 종식을 탐구하는 연구 경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한국 연구자들이 냉전사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 아닐까
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을 제시했다. 하지만 서구식 자유민주주의가 인간의 최종적인 정부 형태라는 이 주장은 중국과 이슬람의 발흥을 예상하지 못했다.
소련의 붕괴, 새로운 냉전사 탐구의 시작소련의 붕괴에 이은 ‘문서고 혁명’은 현대사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 구소련 국가의 비밀 데이터가 공개되면서 소모적인 이념 공방의 ‘냉전적’ 연구를 뛰어넘는 냉전사 탐구가 시작됐다. 앞선 연재에서 다뤘듯, 2010년대부터 수준 높은 냉전사 성과가 해마다 쏟아져 나오고 있다.냉전의 종식은 소련 붕괴와 동의어였다. 서구 역사학계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소련의 종장(終章)에 관한 역사학 성과들이 나왔었다. 이 연구들은 1960년대 소련의 경기침체와 1970년대 석유 파동을 배경으로 미하일 고르바초프라는 인물을 주목한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로 대변되는 개혁의 방향과 그의 재임 기간 중에 터졌던 여러 재난(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건) 및 1989년 동유럽 혁명은 연구의 단골 소재이다.소련의 붕괴를 가장 종합적으로 서술한 저작은스티븐 콧킨의 『Armageddon Averted』일 것이다. 2001년 초판이 나온 이 책은 학술서로는 드물게 2008년 개정판이 나왔다. 1857년 창간된 미국의 권위 있는 시사 잡지
러운 공산주의 과학기술 강국이었다. 하지만 그의 개혁은 시기가 좋지 않았다. 20년 전, 선배 정치인 흐루쇼프는 스탈린을 비난하고 ‘레닌주의’로의 복귀를 외치며 개혁을 추구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의 ‘개선된 공산주의’는 결국 자본주의로의 투항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소련 출신 역사가 블라디슬라프 주보크의 2021년도 역작 『Collapse』는 콧킨의 연구와 궤를 같이 하면서도 소련이 대내외적으로 받은 압력에 조금 더 무게를 둔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으로 점화된 소련 내 민족주의 운동의 물결 및 레이건 행정부와의 군비경쟁은 ‘무기력하게 안정적’이었던 소련 체제를 안팎에서 짓눌렀다.냉전사의 분수령, 1973년 석유 파동신예 역사가 프리츠 바텔의 2022년도 저작 『Triumph of Broken Promises』는 소련의 붕괴 과정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서술을 지구사적으로 혁신하는 쾌거라고 평가할 만하다. 미국과 소련은 물론 서유럽과 동유럽을 포괄하는 이 저서는 우리에게 냉전이 어떻게 서구의 승리로 끝났고, 신자유주의가 득세할 수 있었는지를 가독성 높은 서술로 설명해준다.바텔에게 냉전사의 가장 중요한 분수령은 석유소련의 붕괴에 이은 '문서고 혁명'은 현대사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 소모적인 이념 공방의 '냉전적' 연구를 뛰어 넘는 냉전사 탐구가 시작됐다.
파동이 일어난 1973년이다. 책의 제목이 보여주듯, 그전까지 자본주의 서구와 공산주의 동구는 모두 지구적 호황 속에서 자국민에게 더 많은 것을 ‘약속하는 정치’를 펼쳤다. 이 흐름이 반전된 계기가 바로 산유국들의 집단행동이었다. 이후 에너지 수급과 비용이 국정의 제일 안건이 되면서 동서 진영은 모두 ‘약속을 어기는 정치’를 펼친다. 경제적 규율, 즉 영구적인 긴축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약속을 어기는 정치’가 지배적이었던 1980년대에 신자유주의가 부상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의 레이거노믹스, 영국의 대처리즘은 ‘약속하는 정치’를 추구한 이전 정권을 가혹하게 질타하며 사회와 경제의 관계를 재조직했다.한편 제2세계의 ‘약속하는 정치’는 소련의 값싼 석유와 가스로 지탱되던 공산주의의 정당성 그 자체였다. 모스크바와 동유럽 지도자들은 어떻게 공산주의를 유지하면서 사회계약을 재조정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물론 그 고민이 유효하기에는 동유럽이 서구에서 받은 대출의 규모가 너무 컸다. 더 이상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 공산주의는 1989~1991년 사이에 무너졌다.바텔의 서술은 20세기 현대사에서 석유(파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흐름과 신자유주의의 부상을 재조명하는 흐름을 탁월한 필치로 포괄한다. 필자와 연배가 비슷한 바텔의 책을 읽으면서 30대 중반의 연구자가 생애 첫 저서로 이러한 성과를 내놓았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러한 연구자를 대량으로 키워낼 수 있는 서구 역사학계의 힘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아쉽게도, 한국과 북한은 냉전의 종식을 탐구하는 경향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한국 연구자들이 냉전사 연구에 기여할 수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무궁무진하다는 것 아닐까?
우동현
카이스트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조교수UCLA에서 과학기술사(북한-소련 관계사)로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국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The Historical Journal』에 한국인 최초로 논문이 게재됐다. 역서로는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 『플루토피아』, 『저주받은 원자』, 국제공산주의운동을 2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풀어낸 『전쟁의 유령』(가제)이 있고,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총서 36권 및 38-39권을 공역했다. 주요 관심사는 냉전사, 핵역사, 환경기술사, 디지털역사학이다.
글로컬 오디세이
가치공동체 유럽연합, 글로벌 중추국의 디딤돌김시홍
한국외대 서양어대학 학장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유럽연합학과 장모네 석좌교수·EU센터 소장이다.
2009년 한국유럽학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지난달 22일 한국과 유럽연합(EU)의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됐다. 유럽연합의샤를 미셸 상임의장과 우르술라 폰데어라
이엔 집행위원장이 참석한 이번 회담 결과를 정리한 공동성명을 통해 양자는 협력의 폭과 깊이를 강화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돌이켜보면 1963년 당시 한국과 유럽경제공동체(EEC)가 외교관계를 맺은 이후, 올해로 수교 60주년을 맞이했다. 양자관계는 최근 십여 년간 비약적인 성장을 보여왔다. 2011년 시행된 자유무역협정(FTA)은 초기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무역 규모가 배가 됐으며, 기본협정의 개정을 통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 바있다. 또한 2014년 위기관리협정을 체결하면서 한국의 해군함이 아프리카 연안 소말리아 해적 퇴치를 위한 유럽연합의 아탈란타 작전에 참가해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이러한 양자관계의 발전은 무엇보다도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강화된 것에서 기인한다. 경제성장에 이어 민주주의를 완성하고 과거 도움받던 나라에서 이제 도움을 주는 국가로 변모한 한국의 위상이 유럽연합과의 관계를 강화하는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근에는 유럽국가들로부터 반도체와 배터리 및 첨단우주산업 등에서 협력 수요가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 이를 반영한다. 이른바 미중 갈등의 시대에서 전략적 모호성이 아닌 명료성을 기반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법치를 추구하는 가치공동체로서 유럽과의 협력이 주목받는 이유다.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외교장관급 전략대화 신설, 그린파트너십 출범, 디지털 파트너십 강화, 호라이즌유럽 프로그램에서 한국의 협력국 위상 도모 등 명실공히 양자관계에 더해 지역 그리고 글로벌 차원의 협력이 강화됐다. 사실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한 단계 진전시키는 공동성명이었다.그렇다면 우리에게 유럽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 27개 회원국과의 교역규모는 중국과 미국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기자동차와 같은 한국 제품들이 각광받고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과 더불어 한국과의 협력을 중요시하는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안보 분야의 협력수요도 간과할 수 없는데, 세계질서의 중심이 대서양에서 인도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반영한다. 특히 인도태평양은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핵심 지역으로 중국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면서 아울러 해상안보, 사이버 및 하이브리드 위협 대응 등 협력의 분야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유럽연합과 주요 회원국들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마련하면서 이 지역과의 보다 심화된 협력을 희망하고 있으며, 한국을 포함한 유사입장국들과 함께 이 지역에서 공동의 목소리를 높이고,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개별 국가로서 유럽은 지리적 비근접성의 이유로 관심도가 낮을 수 있으나 유럽연합 차원에서 한국, 일본,한국과 유럽경제공동체(EEC)가 외교관계를 맺은 이후, 올해로 수교 60주년을 맞이했다. 양자관계는 최근 십여 년간 비약적인 성장을 보여왔다. 사진은 한-EU FTA 무역위원회 회담이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호주 등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들과 연대한다면 그 무게가 다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과거 북핵 문제와 한반도에 외교역량이 집중돼왔으나 근자에는 자체적인 인도 태평양 전략을 제시하면서 글로벌 중추국으로서의 외교 무대를 확대하고자 한다.
지난해 말 발표된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서부 아프리카를 제외한 사실상의 글로벌 전략으로 수용된다. 이는 우리의 외교사에서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며 이제 한국은 지역국가를 넘어서 글로벌 리딩국가로의 위상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G7회의에의 빈번한 참여, 나토(NATO) 정상회의 관여 등을 통해 경제적으로 세계 10위, 군사력에서는 6위권을 형성하고 있는 종합 국력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이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보다 면밀한 외교전략의 마련이다. 한국에게 주변 4강이 최우선시된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이번달에 발표된 국가안보전략에서도 원칙 수준은 표명됐으나 지역별 외교의 구체성은 아직 명료화되지 못하고 있다. 선진권 경제로서 그리고 가치공동체로서 유럽연합은 우리에게 간과할 수 없는 파트너이다. 그런 차원에서 그간 간헐적으로 시도된 대유럽전략이 체계적으로 마련돼야한다. 유럽전략은 중장기적 전망을 포함하는 동시에 전략문화적 관점에서 소수의 참여가 아닌 폭넓은 협의 과정을 통해 형성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일반 국민들에게 내면화될 때 진정한 의미에서 국격의 제고와 외교적 역량이 실현될 것이다.
철학자는 어떻게 기억되나…북토크로 만난 ‘장춘익’ 교수
‘나의 작은 철학’ 출간 기념회
철학자가 세상을 뜨면, 어떻게 기억될까? 가능한 여러 답 중 하나는 그의 ’철학‘으로 머문다는 것이다. 지난 10일, 서울여성플라자 ‘아트홀 봄’에서 장춘익 전 한림대 철학과 교수(1959∼2021)의 『나의 작은 철학』(곰출판 | 296쪽) 출간을 기념하는 낭독·북토크가 열렸다. 철학자 장춘익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그의 철학 세계를 돌아봤다. 이날 출간 기념회의 사회는 장 교수의 제자였던 이현준 한림대 강사(소설가)가 맡았다. 아울러, 음료와 간식 그리고 저녁식사는 곰출판이 후원했다.한 사람을 정의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교수는 남은 이들에게 냉철하게 현실을 분석하면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며 유머 감각이 있던 교수, 종교는 없지만 종교적 심성을 지니고 행동하고자 했던 구도자·종교인, 이성적 사회 비판을 통해 정치적 연대를 꿈꾸는 이론가, 학생들에게 명료한 개념으로 좋은 교육을 선사한 교육자 등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왜 그렇게 ‘장춘익’스러운 면들이 나타났는지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엄혹했던 독재 정부 시대에 갖추었던 뾰족한 날카로움은 행복했던 독일 유학을 거쳐 자신이 가장 좋은 하는 철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삶을 긍정하는 부드러움으로 나아갔다.주동률 한림대 교수(철학과)는 『나의 작은 철학』 추천사를 통해 “이 책에 실린 그의 80편의 짧은 글들은 놀랍게도 바로 이러한 철학자 장춘익 특유의 미덕, 즉 통찰력 넘치는 사유와 반전을 숨겨놓은 자유로운 대화의 힘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라며 “이 책이 세상에 나옴으로써, 그의 가까운 동료나 학생들만이 누렸던 친밀하고 자유로우지난 10일, 서울여성플라자 ’아트홀 봄‘에서 고 장춘익 교수의 『나의 작은 철학』 출간 기념회가 열렸다. 사진=김재호
며 행복한 지적 대화의 행운은 이제 독자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공자산이 된 셈”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주 교수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철학적 내용을 중심으로 보자면, 이 책에서도 장춘익은 계몽적 주체성,즉 이성적이고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사적 삶에서 자유롭게 실험하면서도 토론 공동체에의 참여를 기반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개인을 지향하고 있다”이날 출간 기념회는 1부 낭독회로 시작했다. 민지영 씨는 「분노의 관하여」(92쪽∼95쪽)와 「종교가 없으면 삶이 삭막하기만 할까?」(255쪽∼257쪽), 박해민 문예출판사 편집자는 「성의 자유, 성으로부터의 자유(1)」(262쪽∼264쪽)와 「성의 자유, 성으로부터의 자유(2)」(265쪽∼269쪽), 이우창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객원연구원·성균관대 사학과 강사는 「성숙함에 대하여」(63쪽∼65쪽)와 「양심에 관하여」(103쪽∼105쪽), 강병호 서울과기대 강사는 「부러움만 있고 존경은 없다」(182쪽∼185쪽)와 「수양에 관하여」(100쪽∼102쪽) 그리고 「예의에 관하여」(69쪽∼70쪽)에서 발췌한 내용을, 조한진희 시민운동가는 「sfweing」(41쪽∼42쪽)와 「해고의 자유」(195쪽∼196쪽)를 읽었다.
“이제 묻는다. 기업은 그런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가? 오히려 주로 방해를 해오지 않았는가? ‘해고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들려고만 했지 ‘해고해도 좋은’ 국가를 만들려고는 안 하지 않았는가. 만일 그렇다면 기업은 해고의 자유를 말할 자격이 없다... 고공농성을 슬픈 마음으로 지지한다. 그런 농성을 사라지게 하는 농성이 되길 바라며…….”(196쪽)『나의 작은 철학』 출간 기념회는 2부 북토크로 이어졌다. 김은희 경인교대 교수(윤리교육과) 사회로 낭독자 5인과 주 교수가 참여했다. 이들은 장춘익 교수와의 기억 너머 추억을 소환했다. 교수와 학생, 동료, 저자와 독자, 때론 학계의 토론자와 선후배 등으로 말이다. 북토크는 철학 에세이의 가능성, 철학적 인식의 한계, 인문학의 위기와 인문학 연구의 방향, 성 담론과 젠더 연구, 장춘익 교수와의 에피소드 등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이날 출간 기념회는 저자 없는 북토크, 낭독회를 겸한 출간 기념회, 제자들과 학계 선후배와 동료 교수들이 함께 만드는 장으로서 뜻깊었고, 신선했다. 진중했지만 너무 무겁지 않았고, 유쾌했지만 가볍지 않았다.『나의 작은 철학』의 엮은이이자 장춘익 교수의 반려자인 탁선미 한양대 교수(독어독문학과)는 엮은이의 글 「우리, 어디서 다시 만날까」에서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인생의 틈과 균열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우연히 그리고 일상의 어느 방향에서도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가. 사유는 틈과 균열 자체를 없앨 수는 없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고 현실에서 행위의 방향을 재조정하는 힘을 줄 수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우아하게 그 인생의 틈을 건널 수 있을지 모른다. 사유는 그렇게 위로가 되고 나의 것이 된다. 독자들이 일상의 틈 앞에서 멈칫하고 혼란을 느낄 때, 『나의 작은 철학』에 실린 여든 편의 글 가운데 어떤 글이든 당신에게 이런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294쪽)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부천대·서영대학 등 7곳
전문기술석사과정 인가내년 3월부터 운영
2024학년도 신규 전문기술석사과정을 인가 받은 대학은 부천대학, 서영대학, 서울예술대학, 서정대학, 울산과학대학, 전남과학대학, 한국승강기대학이다.교육부는 2024학년도 전문대학 전문기술석사과정(7개교 7개 교육과정, 정원 103명 규모)인가결과를 14일 발표했다.공학분야에서는 미래자동차(서정대학), 스마트승강기 시뮬레이션·진단(한국승강기대) 2개 과정이, 보건·의료분야에서는 인공지능 기반 텔레헬스(울산과학대학), 인공지능 바이오헬스 융합(서영대학) 2개 과정이 인가됐다. 예체능 분야에서는 첨단미디어 융합콘텐츠(서울예대) 1개 과정이, 자연분야에서는 미래푸드산업 조리기술(부천대학) 및 저탄소 스마트 농업(전남과학대) 2개 과정이 인가됐다.인가받은 대학은 입학모집 요강에 따라 신입생을 모집한 후 2024년 3월부터 전문기술석사과정 운영을 시작한다. 또한, 전문기술석사과정 신규 인가 대학의 경우 2024년 마이스터대 지원 사업에서 신청할 수 있다. 마이스터대로 지정되면 대학의 일부 학과(또는 전체)에서 고숙련 전문기술인재 육성을 위해 직무 중심의 고도화된 교육과정(단기-전문학사-전공심화과정(학사)-전문기술석사과정)을 편성해 운영할 수 있다.
전문대학 전문기술석사과정은 이론 중심의 일반대학원과 차별화해 직무·기술 중심의 분야별 고숙련 전문기술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2022년 도입한 제도다. 현재 14개 전문대학에서 23개 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다. 전문기술 석사과정은 참여자 종합만족도 조사에서 직무전문성 향상, 현장 전문성 보유 교원, 현장과 동일·유사한 실습환경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전국러시아어교사교수협의회 창립…
초대 공동회장에 김진규 고려대 교수전국러시아어교사교수협의회가 지난 10일 한국외대 교수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이날 초대 공동회장으로 김진규 고려대 교수(노어노문학과, 교수대표·사진)와 박소윤 서연고 교사(교사대표)가 선출됐다.
협의회는 한국노어노문학회, 한국러시아문학회, 한국슬라브어학회,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와 전국 초·중·고등학교 러시아어 관련 교사들이 주축이 돼 설립됐다. 국내 고등학교 제2외국어 교과가 중국어와 일본어에 과중하게 치우쳐 있고, 러시아어의 비중이 낮아 편향이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또한 최근 러시아어권 재외동포의 국내 유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한국어 지식이 불충분해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한국인 학생들도 재외동포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교육현장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도 밑바탕이 됐다.
개별 학교와 교사 차원에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현장의 요구를 수렴한 것이다. 협의회는 앞으로 국내 러시아학 및 러시아어·문화 관련 교육 정책을 연구·제안하고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교육자 간 네트워크를 구축해 유관 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예정이다. 또한, 재외동포 학생 비중이 높은 초중고 재학생들을 다중언어구사자로 육성할 수 있도록 교육적‧제도적‧정책적‧법률적 방안을 제안할 예정이다.
신다인 기자 shin@kyosu.net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섬 인문학 연구서 6권 출간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은 지난달 31일 ‘섬인문학 연구’의 성과를 중간 점검하며 6권의 단행본을 발간했다.
이번에 발간한 단행본은 섬의 변화 물결을 주목하는 학술총서 2권과 섬 인문학 연구를 대중과 소통하는 교양문고 4권으로 구성됐다.학술총서 2권은 『섬, 위기의 바람과 변화의 물결』, 『섬의 변화와 혼돈, 적응과 지속』으로 도서문화연구원의 도서해양학술총서 시리즈로 발간했다. 섬의 중요한 변화 물결로 연륙·연도, 기후변화, 인구감소, 바다경작, 다도해의 해체와 해역의 재편 등을 주목하고, 섬 정체성 담론에서부터 변화의 과정을 논의한 성과물이다.
교양문고 4권은 『섬 인문학 산책』 1·2권, 『수선화의 섬, 선도』, 『항구도시 에콜로지』로 도서문화연구원의 도서해양교양문고 시리즈다.『섬 인문학 산책』 1권·2권은 섬 인문학을 주목하는 역사학, 민속학, 인류학 등의 다양한 전공 연구자들이 섬과 바다의 변화 현장을 읽어내며 대중들과 소통하는 글이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해온 지혜와 변화무쌍한 바다에 적응하며 살아온 섬사람들의 삶
을 이야기한다.
『수선화의 섬, 선도』는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된 선도의 삶과 문화를 담고 있다. 섬사람들의 삶터에 새겨진 역사, 자연, 문화를 비롯해 변화하는 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읽어낸다.
『항구도시 에콜로지』는 홍선기 목포대 교수가 세계의 섬과 항구도시를 답사하며 섬·바다·문화 연결성의 관점에서 현장을 읽어낸 글이다. 생태학자로서 섬과 항구도시의 기후, 생태, 회복력, 공간재생에 담긴 자연과 인간의 공존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홍석준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원장은 “6권의 단행본은 섬 인문학 연구의 중간 결산으로서 한국 섬 연구의 중요한 진전이 담긴 성과물”이라며 “앞으로도 섬 인문지형의 변동을 주목하면서 회복탄력성과 지속 가능성을 주목할 것”이라고 밝혔다.신다인 기자 shin@kyosu.net김홍기 한남대 교수, 제54대 한국경제학회장 선출
김홍기 한남대 교수(경제학과‧사진)가 제54대 한국경제학회 학회장으로 선출됐다.
한국경제학회는 지난달 15일부터 지난 9일까지 선거를 진행했으며, 이날 열린 개표이사회에서 김 교수가 최종 선출됐다. 김 교수는 올해 경제학회 수석부회장을 역임한 뒤 내년 2월 정기총회에서 회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다.김홍기 교수는 1983년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부터 한남대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남대 경상대 학장과 산학연구부총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경제학회는 1952년 국내 경제학자들이 경제 재건을 위해 구성했으며 한국의 경제연구와 발전을 위한 각종 연구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해 국내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활동 중이다.윤비 성균관대 교수, 독일 베를린고등연구원 펠로우 선임
윤비 성균관대 교수(정치외교학과‧사진)가 독일 베를린 고등연구원 2023‧2024년도 펠로우로 선임됐다. 베를린 고등연구원은 1981년 설립돼 매년 전 세계에서 인문, 사회, 자연과학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둔 30~40여 명의 학자들을 1년 이상의 심
사과정을 거쳐 펠로우로 선발한다.
윤비 교수는 정치사상과 이론, 고중세 및 르네상스 지성사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학술활동을 해왔다. 2021년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주제로 독일에서 단독 저서를 발간한 것을 비롯해 꾸준히 세계적 수준의 학술지와 연구서에 논문을 발표했다.윤 교수는 펠로우로서 앞으로 고대 그리스부터 21세기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선보일 예정이다.손형일 전남대 교수팀, IEEE ICRA 최우수 논문상
손형일 전남대 교수(융합바이오시스템기계공학과‧사진) 연구팀이 과채류 수확 로봇으로 로봇 분야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학회인 IEEE ICRA에서 최우수 논문상(Best Paper Award)을 수상했다.
손형일 교수, 조유성 석사 과정생, 박용현 박사과정생이 참여한 연구팀이 개발한 ‘그리퍼’는 오이, 토마토, 파프리카 등의 과채류 수확용 로봇을 위한 소프트 로봇이다.
로봇 그리퍼는 파지 모듈과 절단 모듈로 구성돼 있다. 제시한 파지 모듈은 종이접기 구조에 착안해 다양한 과채류 표면의 거칠기, 굴곡, 곡률 등에 상관없이 수확할 과채류를 손상 없이 흡착할 수 있는 석션컵 설계 기술이 핵심이다. 연구팀은 개발한 소프트 로봇 그리퍼를 수경재배 참외 수확용 로봇에 적용하기 위해 파지 모듈의 가반하중 향상과 절단 모듈 소형화 등에 관한 후속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이승재 서울시립대 교수 연구팀, 제임스 힐 상 수상
서울시립대(교통공학과‧사진) 이승재 교수 연구팀이 영국토목학회에서 주관하는 제임스 힐 상(James Hill Prize)를 수상했다.
이승재 교수 연구팀은 다양한 보행로 위험 요소의 이미지들을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딥러닝 아키텍처를 통해 보행로 환경의 다양한 요소를 자동으로 감지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연구재단의 혁신선도연구센터에서 보행환경 자동평가 시스템을 접목한 자율주행 로봇 서비스의 혁신 연구를 제안해 사회 전반의 교통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계획이다.이승재 교수는 "이번 연구가 기존의 수동적인 시스템에서 지속 가능한 보행로 환경 평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라고 말했다.손미경 조선대 교수, 보건복지부 장관상 수상
손미경 조선대 교수(치과대학‧사진)가 치과의료정책 수립, 환자중심 진료시스템 구축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손 교수는 지난 9일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제78회 구강보건의 날’기념식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손 교수는 2018년부터 4년 동안 제21~22대 조선대 치과병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병원 중심의 치과산업 연계 국책과제 수주, 환자 중심 진료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조선대 치과병원의 경영혁신과 성장에 기여했다. 특히, ‘이클린 기금’ 등을 조성해 의료취약계층을 위한 치료비 지원시스템을 구축과 의료칼럼, 라디오 주치의 등 지속적인 언론 홍보 활동을 통해 국민 구강건강증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장관상을 받았다.손미경 교수는 “큰 상을 받게 돼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치과산업의 발전과 지역민들을 위한 구강보건산업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대만과 우크라이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기로에서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②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국제정치경제)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를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부터 동아시아,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기술, 철학과 담론을 인문·사회·자연과학이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달 27일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국제정치경제)가 「다원주의적 국제 질서의 철학과 비전」을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3강은 김재철 가톨릭대 교수(국제학부)의 「지역 질서와 지역 기반 국제 정치: 세력 전이와 아태 지역 질서」가 예정돼 있다.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미국의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1980년대 국제 정세의 흐름을 관찰한 뒤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다. 그는 인류 역사에서 이데올로기 경쟁의 결과 자유민주주의가 최종적으로 승리했고 이제 더이상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해체되자 세계 역사의 미래 방향에 대해 이와 같은 낙관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다. 당시의 낙관론은 미국의 상대적 국력이 세계 유일의 최강국 지위에 올라섰다는 사실에도 기인했다. 이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가 없는 일극 체제가 시작됐다. 그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international order, LIO)를 추구했다.
1990년대 이래 미국에서 진행됐던 이 같은 낙관주의적 자유주의 질서의 추구와 30여 년이 지난 지금의 국제정치 상황을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먼저 1990년대 당시의 낙관론의 기저를 이루는 미국의 상대적 권력이 상당히 약화됐다. 이는 1980년대 이래 급속한 경제 성장을 지속해온 중국의 상대적 권력이 강화된 것과 동전의 양면이었다. 미국의 상대적 권력 약화에 따라 미국이 주도하던 자유주의 국제 질서, 즉 정치적 자유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규범 기반 질서도 힘이 빠지면서 오늘날 크게 도전받고 있다.미국이 주창하던 자유민주주의는 도처에서 도전받고 포퓰리즘은 강화됐으며 각국에서 권위주의적 정치 지도자들이 등장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미국이 주도한, 미국의 이익을 반영한 것일 뿐이라면서 자유민주주의 정치경제 모델에 대한 대안으로 권위주의적 정치경제 모델을 주창하며 국제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경제적 자유주의 측면에서도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대한 도전이 거세졌다. 세계화로 서로 통합되었던 미중 경제가 이제 디커플링이 운위되고 기술 전쟁과 보호주의 조치들이 경쟁적으로 채택되고 있다. 안보 영역에서의 대결이 경제 영역으로까지 확산되면서 안보 차원의 정치적 고려가 경제적 효율성 논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자유무역, 세계화, 정경 분리는 옛말이 돼가고 있다.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 측면에서도 결정적인 타격이 가해졌으니 그것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 규범 기반 국제 질서가 그동안 완벽하게 지켜져온 것은 아니었다.예를 들어 1990년 8월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무력으로 침공했고 34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응징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때와는 달리 미국의 상대적 영향력이 퇴조하고 있을 때 일어난 전면적인 침공이었기에 큰 충격을 던져줬다. 현재도 전쟁은 지속 중인데, 그 향배는 앞으로 규범 기반 국제 질서가 얼마나 생명력을 가지고 잘 유지될지를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이다.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미국에서 촉발됐다. 2008년 9월 15일, 150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적 금융 회사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다. 그전까지 일어난 국제 금융 위기들은 대체적으로 멕시코나 태국, 러시아, 유럽 등에서 발생한 후 수개월이 지나면 해소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역사상 최초로 최강대국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뉴욕에서 발생했고 그 파장은 전 세계로 확산됐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사상 최대금융 위기로 기록됐으며 장기간에 걸쳐 세계 경제 전반에 심대한 타격을 줬다.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는 단순한 경제 위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세계 권력의 축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지도자들이 중국의 외교 노선을 공세적 외교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지도자들은 미국의 패권이 기울고 있다고 보고 이제 중국이 국제정치 전면에 나서야 할 때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와 그 지원국들이 승리하고, 대만 문제가 평화적으로 관리된다면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의 미래는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그러한 방향으로 역사가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역사가 그 반대 방향으로 간다면 세계는 과거 1930년대의 암울한 시대로 한 발짝 더 가까이 가게 될 것이다.”
인다. 예컨대 2009년경부터 중국은 그동안 지켜오던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 지침을 버리고 공세 외교를 펼치며 미국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외교 정책의 대전환을 단행했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으로 시작된 미국의 중국 포용 정책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그의 임기 첫해인 2017년 국가안보전략보고서는 중국을 본격적인 경쟁국, 미국의 안보에 도전하는 도전국, 그리고 국제 질서를 바꾸고 전 지구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수정주의 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2018년 7월 34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에 25%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이 미국 제조업 약화를 초래했다고 비판하면서 이를 시정하겠다고 약속했다.바이든 행정부는 민주당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대결 전략을 계승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고립주의적 성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국제정치경제)는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는 단순한 경제 위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세계 권력의 축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지도자들이 중국의 외교 노선을 공세적 외교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라며 “중국은 그동안 지켜오던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 지침을 버리고 공세 외교를 펼치며 미국에 도전하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향 때문에 대 중국 압박에서 단독 플레이를 했던 것에 반해 바이든 행정부는 국제적 연대 전략으로 나섰다.
상승 대국 중국과 기존 대국 미국은 외교, 군사, 경제, 기술, 이념의 분야에서 대결 구도를 굳혀가고 있다. 그렇기에 미중 대결은 신냉전의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다양한 여러 분야의 대결 양상 중에서도 군사적 대결과 긴장이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고 그 핵심은 대만 문제이다.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하여 중요한 관심사는 중국의 태도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대해 반대하고다극화된 세계를 원하는 러시아와 전략적 이해 관계가 합치한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중국-러시아 연대가 강화돼왔고 지난해 2월 4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러 정상 회담에서는 양국 정상이 “중러 협력에는 제한이 없다”고 선언했다.
탈냉전과 세계화 이후의 국제 질서는 이처럼 미국 권력의 상대적 하강과 중국 권력의 상대적 상승이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그 결과 2018년을 기점으로 미중 관계가 포용에서 대결 관계로 전환됐다. 세계화는 권력의 중심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분산되는 국제 경제적 틀을 제공했다. 그리고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반세계화를 향한 미국 국내 정치적모멘텀이 강화됐다. 결국 2018년 트럼프 행정부에서 반중 대결 정책과 함께 반세계화 정책도 채택됐다.탈냉전 이후 지난 30년의 이 같은 과정 속에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왔는데 결국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으로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그 와중에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자유주의 국제 질서, 특히 규범 기반 국제 질서를 살려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위해 강력한 지원을 하고, 중국에 대해서는 대만 해협에서의 무력 사용을 통한 현상 변경을 시도하지 말 것과 남중국해에서의 국제 규범준수, 신장 위구르 지역의 인권 상황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국제 질서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향후 유지될 수 있을 것이냐 아니면 약화될 것이냐를 결정하는 세 가지 정도의 핵심 변수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첫째 변수로 내년 미국 대선을 꼽을 수 있다. 차기 대선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출마하겠다고 밝혔다. 만일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다면 과거 4년간 트럼프 행정부의 행적을 볼 때 미국은 다시 고립주의로 회귀하고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리더십을 포기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 경우 세계 질서의 향배가 상당히 비관적일 수 있다.둘째 변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배다. 이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와 그 후원 세력인 미국 및 나토 국가들이 승리한다면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다시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러시아가 승리한다면 그 반대로 규범 기반 국제 질서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셋째 변수는 대만 상황이다. 미국이 중국의 대만 무력 통일 시도를 성공적으로 억제해냄으로써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면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유지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중 간에 소통 채널이 열리고 미중 관계가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일종의 가드레일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미중 양국 간의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현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요약하건대 차기 미국 대선에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유지를 주창하는 후보가 당선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와 그 지원국들이 승리하고, 대만 문제가 평화적으로 관리된다면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의 미래는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그러한 방향으로 역사가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역사가 그 반대 방향으로 간다면 세계는 과거 1930년대의 암울한 시대로 한 발짝 더 가까이 가게 될 것이다.전기차 6분 만에 충전하는 음극소재 개발
포스텍 김원배 교수·강송규·김민호 연구팀보통 전기차를 충전하는데 약 10시간 정도 걸리며, 급속으로 충전하더라도 최소 30분이 소요된다. 그마저도 충전소에 충전할 자리가 있을 때 가능한 얘기다. 만약 일반 자동차에 주유하듯 전기차를 빠르게 충전할 수 있다면 전기차 충전소 부족 현상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전기차에 사용되는 리튬 이온 배터리의 효율은 리튬 이온을 저장하는 음극재에 의해 좌우된다. 최근 포스텍 화학공학과와 철강·에너지소재 대학원 김원배 교수, 화학공학과 박사과정 강송규 씨, 통합과정 김민호 씨 연구팀은 ‘망간-철 산화물’ 음극재를 나노미터(nm) 두께의 시트 형태로 합성함으로써 이론 저장 용량의 한계보다 약 1.5배의 높은 용량을 구현할 수 있으며, 단 6분 만에 전기차를 충전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음극소재 기술을 개발했다.이번 연구에서 연구팀은 리튬 이온 저장 능력이 우수하고, 강자성 특성을 가지는 ‘망간-철 산화물’ 음극재가 더 많은 리튬을 저장할 수 있도록 합성 방법을 새롭게 설계했다. 먼저, 망간 산왼쪽부터 포스텍 김원배 교수, 강송규 씨, 김민호 씨이다. 사진=포스텍
화물이 있는 용액에 철을 넣어 갈바니 치환 반응을 통해 안쪽에는 망간 산화물이, 바깥쪽에는 철 산화물이 분포된 이중구조물을 만들었다. 갈바니 치환 반응은 금속이 자신보다 높은 환원전위를 가지는 금속 이온을 만날 때 일어나는 전기 화학 반응이다.
이후 연구팀은 수열합성법 등의 과정을 통해 ‘망간-철 산화물’ 음극재를 표면적이 큰 나노미터 두께의 시트 형태로 만들었다. 수열합성법은 금속 이온을 함유하는 수용액을 고온·고압으로 반응시켜 다양한 나노미터 및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분말을 합성하는 방법이다. 그 결과, 치환 반응으로 형성된 철 금속 나노 입자의 스핀-분극화된 전자 사용이 극대화 되어 많은 양의 리튬 이온을 저장할 수 있었다. ‘망간-철 산화물’ 음극재가 낼 수 있는 이론적인 용량보다 50% 이상 늘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음극재의 표면적이 증가함으로써 많은 양의 리튬 이온과 전자가 동시에 이동하는 것이 가능해져 배터리 충전 속도도 향상됐다. 실험 결과, 단 6분이면 현재 상용화된 전기차 음극재의 용량만큼 급속 충·방전할 수 있었다. 이번 연구를 통해 그동안 제어하기 어려웠던 합성 공정을 개선해 음극재 이론 용량의 한계를 극복하고, 배터리 충전 속도를 대폭 향상시켰다.김원배 교수는 “기존 음극재의 전기화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배터리 용량을 확대할 수 있는 전자 스핀 활용 표면 설계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했다”라며, “전기차의 내구성과 충전 속도 모두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선생님의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주간 <교수신문>과 온라인 교수신문에 선생님의 이야기를 정성껏 담겠습니다.자유 기고는 물론, 제보와 보도자료는 editor@kyosu.net 으로 보내주세요딸깍발이
에누리 없는 ‘법’과 포샤의 자비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국립창극단의 「베니스의 상인들」을 봤다. ‘낭만적이고 유쾌한 창극’을 표방한 작품답게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각색한 스토리에 판소리 가락이 더해져서 흥겨운 무대를 보여주었다. 기본 틀과 배경은 동일했지만, 극의 서사는 시대와 관객을 고려해 변형되었다. 한국적 상황을 비춰주는 극창의 언어 표현이 때로는 웃음을 유발하며 깊이를 더해 주었다.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대자본가 샤일록과 소상인 조합을 이끄는 안토니오의 대립구조, 의형제인 바사니오의 사랑을 위해 돈을 빌리며 서명했던 계약서의 ‘1파운드의 살’을 둘러싼 법정 공방에서 창극은 절정을 보여주었다. “에누리가 없는 게 법”이라는 샤일록의 주장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헤아리는 게 자비요,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베푸는 게 자비”라는 포샤의 변론을 들으며, 우리 시대의 ‘법’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노정(勞政)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화물연대, 건설노조, 사내하청 사업장에 대한 정부의 대대적인 감사와 노동계에 대한 압박이 지속되고 있다. “그 어떤 불법행위도 방치·외면하거나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통령이 강력하게 천명하자, 경찰은 캡사이신 분사기 등 진압용 장비까지 동원하고 있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노사 갈등의 장에서 인내심을 갖고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일 터인데, 정당한 법집행을 내세우며 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노동자를 탄압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국민들이 과도한 집회와 시위로 불편을 겪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심야집회금지법’을 추진하고 있다. 결국 양대노총은 공동행동을 선포하며 정권심판 투쟁을 선언한 상황이다.
법을 내세운 법만능주의가 정치를 무력화 시키고 있다. 승자독식 시스템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이 법을 어긴 행동을 보이면 그제서야 언론이 관심을 보였다. “400일 넘게 천막농성을 벌이는 동안 아무도 우리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지 않아 망루에 올랐다.” 노동조건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이 왜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살피는데 게으른 보수 언론은, 시위와 집회가 정해진 법 테두리를 벗어났다고 ‘준법’을 들먹이는 경직된 법치주의 정부에 일조하고 있다.권력에 대한 비판적 감시자로서의 역할과 약자 배려라는 가치는 고사하고, 강력한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메시지를 재생산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는 유독 강경하고, 권력의 부정과 부패에는 관대해 법의 공정성이 의심되는 가운데 조사와 기소가 진행되면서 노동자들의 사회적 죽음이 되풀이되고 있다.“가로막고 있는 벽과 장애를 넘는 희망의 메시지 전하고 싶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베니스의 상인들」 공연 소개 장면
베니스의 상인‘들’」이라는 창극으로 재탄생시킨 연출가는 젊은 상인들의 공동체적 연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원작의 인물을 재해석한 창극은, 시장 질서를 말하며 자신의 이익만 우선시하는 3대째 재벌인 샤일록과, 소규모 상인들의 조합을 결성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꾼 흙수저 안토니오의 세계를 대비시키면서, 냉혹하게 법의 집행을 말했던 샤일록이 파멸하는 과정을 완성도 높게 보여주었다. 결국 에누리 없는 ‘법’이 아니라 따스한 ‘자비심’에서 공동체의 삶은 회복된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보다 인간적인 사회는 법을 앞세우는 것에서가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의 곁에 머무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법보다 생명의 존귀함이 먼저였던 ‘포샤’의 지혜가 아쉬운 시절이다.
갤러리 초대석
「평평한 것들」sp_ahs130, 신부들, 사라, 2023김옥선 개인전 「평평한 것들」이 성곡미술관에서 8월 13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주체와 객체 차이를 딛고 존재하는 다양한 것들의 초상을 평평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가의 20여 년의 작업을 아우른다.보라색 아오자이를 입은 중년의 여성이 의자에 앉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신부들, 사라). 김옥선은 ‘신부들, 사라’와 ‘아다치 초상’연작을 통해 20세기 초반부터 현재까지 디아스포라적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관심을 확장한다. 작가의 사진은 우리 현대사를 이뤄온 이름 모를 얼굴들을 환기한다. 중국, 몽골, 베트남 등 각기 다른 배경을 지니고 한국으로 건너온 결혼이주여성들이 초상은 20세기 초 하와이로 간 사진 신부, 파독 간호사 등 우리 현대사의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김옥선은 그간 조명되지 않았던 경계인들의 주체성에 주목한다. 새로운 땅에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 연대하며 살아가고 있음에 경의를 표한다. 그런데도 경계 밖으로 늘 미끄러지는 이들의 존재를 작가는 사진을 통해 움켜쥔다. 오랜 시간 대상을 바라보고 사실적으로 포착하는 김옥선의 초상은 우리로 하여금 사진 속의 대상을 직시하고 그 이면의 의미를 마주하게 한다.신다인 기자 shin@kyosu.net제공=성곡미술관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세상이 바뀌어도 내 공부나 할 뿐모르는 것이나 궁금한 것을 해결하는 여러 방법이 있다. 그중 하나가 소위 학문이라 말하는 것이다. 글자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글에 담긴 정보를 전달해 주는 교육기관이 많지 않았을 땐 학문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을 게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 들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글을 모르는 사람의 수는 근대 이후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지구 위에 사는 사람들의 수는 최근 1세기 사이 빠른 속도로 증가했지만 문맹률은 계속 낮아진 덕분이다. 지금은 단순히 글을 안다고 ‘배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문맹률은 잘 따지지도 않는다. 그만큼 글을 아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그 많은 사람이 전달하거나 공유하는 정보의 양과 질도 달라졌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는데 먹고사는 방법이라고 해서 이전의 것 그대로이겠는가. 빠르게 변하는 기술, 경제 흐름은 무엇을 좇아야 하는지 방향조차 잡기 어렵다. 모르는 것이나 궁금한 것을 해결하는 방법도 계속 바뀌고 있다.요즈음 모르거나 궁금하다고 학교에 가는 아이나 청년은 거의 없다. 솔직히,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그것을 알고 싶어 (대)학교를 가지도 않는다. 최고의 학문과 진리가 저 위에 있어 특정 학교에 가나.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한 줌의 모래알만큼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전에는 그런 시절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가벼운 핸드폰이나 태블릿 하나면, 궁금함의 상당 부분을 해소할 수 있거나, 궁금함을 해결하기 위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특히나 요즈음 몇 년 사이 변해버린 기술과 생활환경도 그런 분위기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정보 공유와 학습, 그리고 인공지능의 거침없는 등장이 배움과 학교를 동일시하기 더욱 힘든 상황을 만들었다.
분위기가 이럴진대, 대학원생인들 온전하랴. 이전에는 대학원 다닌다고 하면 그래도 학문에 뜻이 좀 있다고 여겨졌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대학원이 취업 공백을 대체하기 위한 피난처 역할을 하더니, 이제는 대학원생은 반백수와 다름 없이 여겨진다. 그렇다고 대학원이 학문적 지식을 독점하는 것도 아니다. 학문적 지식과 정보를 따로 분류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웃기게 되었다. ‘돈이 되는’ 일부 이공계 분야를 제외하면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그 지식과 정보가 재조합된 새로운 콘텐츠도 온라인 세상에서 더 활발히 생산된다. 더 활발하다고 말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보의 주활동 무대가 학계가 아닌 온라인 세상이 돼버렸다.다만, ‘아직’ 세상은 대학원 졸업장을 원하고, 졸업장 있는 사람을 ‘아직’ 조금 더 우대해 줄 뿐이다. 서가에 나오는 최근 교양서적을 보면 전문 학위가 없는 ‘전문가’도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해 내고 있다. 전문 서적이라고 해도 질의 평준화는 시간문제일 것 같다. ‘종이’에 익숙한 내가 잘 모르는 온라인 세상은 더 하지 않을까.궁금한 걸 대답해 주는 인공지능 서비스가 시작됐다. 인공지능은 시간이 갈수록 인간의 물음에 대한 대답의 질을 개선할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간 인간의 궁금함에 풍성한 조언과 학습 방향을 제시하는 존재가 지도교수가 아닌 인공지능이 될 날이 오지 않을까 모르겠다. 상아탑이 학문의 인큐베이터의 역할을 언제까지 해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대학원이 아닌 곳에서 논문과 같은 정보를 생산할 세상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제도와 행정이라는 그 커다란 느림보 덕분에 세상이 바뀌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거기다 지금 대학원에서 하는 공부가 훗날의 경제소득과 상관없게 된다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모르겠다. 난 세상이 변해도 하던 것이 공부니 그냥 할 뿐이다.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신기한 전자제품과 재밌는 게임이 나온다고 좋아하던 어린 시절, 시간이 흐르는 게 기다려지고 세상이 바뀌는 즐거울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김영진
동국대 철학과 박사과정동국대 철학과에서 자율주행자동차에 관한 윤리적 논의 비판을 다룬 연구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철학의 현대적 모습을 고민하며 연구하고 있다.
철학 에세이
분노에 관하여장춘익 전 한림대 철학과 교수(1959∼2021)의 철학 에세이 80편이 『나의 작은 철학: 일상의 틈을 우아하게 건너는 법』(곰출판 | 296쪽)으로 출간됐다. 엮은이는 탁선미 한양대 교수(독어독문학과)이다. 엮은이와 출판사의 허락을 얻어 철학 에세이 한 편을 발췌해 게재한다. 일상에서 자주 느끼는 ‘분노’에 대한 철학적 시선이 돋보이는 글이다.
조금 더 화를 잘 내거나 조금 더 느긋하다는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가끔 분노한다. 분노는 강렬하면서도 지속적인 감정이다. 우리가 때로 느끼는 행복감도 분노의 감정처럼 강렬하고 오래 지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행복감은 느끼는 순간 벌써 평범한 무채색을 띠기 시작한다. 반면 분노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 그런 감정을 갖는 것이 어리석다고 판단될 때까지도 우리의 마음을 놓아주지 않는다. 행복감은 화려한 불꽃놀이처럼 금방 흔적 없이 사라지지만 분노는 아물었다고 생각되다가도 다시 더욱 아프게 터지는 상처와 같다.
우리의 마음이란 게 잘 구획되어 있어서 마음의 한구석에서 일어난 감정이 그 자리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감정이 마음에서 차지하는 자리의 크기는 바로 그 감정이 우리의 주의력을 얼마나 강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끄는가에 달려 있다. 그래서 분노처럼 강렬하고 지속적인 감정은 우리 마음 전체를 사로잡아버리고, 동정심이나 이해심의 자리를 전혀 남겨놓지 않을 수도 있다. 사소한 일로 시작된 분노가 자신과 상대방의 인격 전체를 위태롭게 해도 서슴지 않고 분노에 몰두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분노하는 사람에게서 공정하다는 느낌을 갖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성직자와 신도, 의사와 환자, 그리고 때로 스승과 제자처럼 이미 한 쪽이 다른 쪽의 말을 경청하고 따를 태세가 되어 있지 않다면, 사소한 충고도 기대한 효과를 내기보다는 관계를 소원하게 하기 일쑤이다. 여러 사람과 두루 잘 지내고 싶은 사람은 남에게 비판하거나 충고하지 않는 것을 처세술의 제1조로 삼을 일이다.
분노는 대개 공정한 판단과 행위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분노의 피해자는 일단 분노의 화살을 맞는 사람이다. 그러나 분노하는 사람 역시 언제나 분노의 희생자다. 한 번 터진 포탄을 다시 탄피에 넣을 수없는 것처럼 분노가 가져온 부작용은 흔적 없이 처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아마도 인격 수양의 요체 가운데 하나는 분노가 스스로성장하는 것을 막고 분노의 크기를 분노할 이유에 맞추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분노의 폐해를 절감한 나머지 어떤 이는 분노의 감정이 아예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최고의 수양 단계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보통 사람에게 바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바람직한지도 의문이다. 하나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거는 정열적인 인물들이 세계사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헤겔의 역사철학을 믿지 않더라도, 정열의 중요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런데 정열의 에너지는 우리의 마음이 향하고 있는 이념이나 가치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이념이나 가치의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대한 분노에서 온다. 가난에 대한, 사랑을 막는 구습에 대한, 공정한 세상의 실현을 막는 사회구조에 대한, 여성의 인간적 지위를 가로막는 가부장제에 대한 분노가 없다면, 어떻게 새로운 삶을 위해 자신의 모든 편안함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었겠는가. 그러니 분노는 그저 사라져야 하는 감정이 아니다. 문제는 무엇에 분노하는가다.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에 분노하지 않는가를 보는 것은 한 사람의 인품을 평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화낼 일이 아닌데 화를 내는 자는 부족한 자이고, 정말 화를 낼 일에 화를 내지 않는 자는 의심스러운 자다. 아마 전혀 분노하지 않는 자는 자신이 포기하지 않고자 하는 가치를 아무것도 갖지 않은, 마음이 없는 동물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아무런 장애물을 갖지 않는 천사이리라.
그런데 조심하자. 무엇은 화낼 만하고 무엇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당신의 판단에 성숙의 정도가 고스란히 응축되어 드러난다. 작은 물음이 작은 답을 얻게 하고 큰 물음이 큰 답을 얻게 한다는 것은 공자님의 말씀이던가. 아마 사소한 일에 대한 분노가 작은 인품을 만들고, 큰일에 대한 분노가 큰 인품을 만든다고 해도 틀리지 않으리라. 나는 당신이 작은 편익과 사소한 자존심 싸움에는 넉넉한 마음이기를 희망한다. 그렇지만 권위주의와 사회적 차별, 세계의 기아,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 여성의 좌절, 맹목적인 자연의 파괴에 대해서는 분노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장춘익
전 한림대 철학과 교수니체가 전하는 삶을 사랑하는 법
우리가 삶을 사랑하는 이유는 삶에 익숙해서가 아니라,사랑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다.그대가 세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선 그대를 통해 창조되어야 한다.이 세상은 그대의 이성, 그대의 이미지, 그대의 의지, 그대의 사랑이 되어야 한다!아모르파티. 이제부터 나는 이 말을 사랑할 것이다!추한 것을 상대로 전쟁하길 바라지 않는다. 비난하려고 하지 않는다.나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비난하길 바라지 않는다.외면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거부의 행동이 될 것이다!또한, 온전히, 언젠가 나는 오로지 긍정하는 자가 되고 싶다!우리가 친숙하지 않은 것에 관해 호의와 인내심을 가지고 공평함, 관용,그리고 온후함을 보이면 이에 대한 보답을 받는다. 그 친숙하지 않았던 것은점차 베일을 벗고 새롭고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우리 앞에 드러낸다.그것이 우리들의 환대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니체, 사랑에 대하여』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 최성희 옮김 | 264쪽 | 세창출판사) 중에서교수신문 The Professors Times 1년 구독료 10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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