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고 싶은 강의에서 ‘학생 중심’ 강의로 다가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최고의 강의㉕

2020년 코로나19 첫해, 개강은 연기되었고, 얼마 후 대면수업이 불가한 것으로 결정된 후, 모든 강의를 촬영해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수업자료에 들어가는 많은 사진의 출처를 다시 확인하고, 출처를 잊은 이미지는 교체했다.

그래도 이론 강의 촬영은 실습 과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면 수업으로 진행했던 실습 과목은 10분 설명하고 50분 동안 학생을 개별 지도하는 방식으로 3시간 강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된 후에는 25분 이상의 영상 강의를 3개나 촬영해야 했다. 막막한 일이었다. 결국, 실습을 설명하는 강의 영상과 함께 교수자가 직접 실습을 수행하는 영상도 모두 촬영했다. 학생의 입장에서, 영상을 보고 따라 할 수 있도록 학습자 시점에 카메라를 고정하고, 두 손과 테이블 위 실습 도구들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모든 실습 과정을 실제로 시연하고 촬영해야 했다.

반응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대면 실습수업에서 교수자가 실습에 대한 설명과 간단한 시연을 보일 때는 20여명의 학생이 교수자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싸고 실습시연을 잠시 살펴보는 데 그쳤다. 그러나 실습시연 영상은 바로 눈앞에서 모든 실습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었기에 학생들에게 매우 직접적이고 확실한 가이드 라인이 됐다.

2021년 1학기부터는 줌을 이용한 이론 수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줌 수업 채팅 기능을 통해서는 대면 수업에서 듣기 힘들었던 학생들의 생각을, 매우 적극적으로 다양하게 들을 수 있었다. 다만 학생들이 공개 질문보다는 교수에게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을 선택해서 좋은 질문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하나하나 강의해 읽어줘야 했다.

줌 수업에서 배운 소통법

또한, 줌 수업 당시 학생들이 카메라를 꺼놓는 문제는 ‘수업에 집중을 안 하는가’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졌다. 카메라 사용을 학생 자율에 맡기니 80여명의 학생 중 카메라를 켠 학생은 3명 미만이었다. 학생들이 집중하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필자는 75분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5번 이상의 질문을 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채팅을 남겼다. 질문에 답을 하느냐, 안 하느냐로 수업 참여도를 가늠했다. 집중하고 있는지, 자리에 있는지를 확인하려고 시작했던 질의응답이었지만, 오히려 질의응답이 수업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줌 이론수업에서 학생들과의 교감이 많았던 점에 착안해 필자는 학생과의 소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2022년 1학기부터는 모든 수업에서 카톡 공개대화방을 개설했다. 질의응답이 공개적으로 실시간으로 진행되면, 수업을 듣는 모든 학생들

이 같은 고민을 할 수 있고, 다양한 의견을 교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줌 채팅으로 질의응답을 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카톡 채팅방 이용률은 저조했다.

하지만 카톡 채팅방은 대면으로 진행했던 실습수업에서 의외로 활용도가 높았다. 실습 중 손을 들고 질문할 수도 있지만, 카톡에 질문을 남김으로써 더 편안하게 질의응답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필자는 카톡에 남아있는 질문을 실습 중간중간 얘기해주며 학생들의 현재 고민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더군다나 카톡 대화방은 수업시간 외에도 활용되어 학생들의 궁금한 점에 대해 즉각적으로 답을 해줌으로써 수업에 대한 학습자의 불안감을 해소하는데 유용했다.

코로나 19 때 강의 영상, 대면 전환 뒤 플립 드러닝 토대로

코로나19 시기에 제작했던 실습수업 영상은 코로나19 이후 나의 모든 수업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2021년 2학기부터 일부 대면수업이 가능해졌다. 이론 수업은 무조건 비대면이지만 실습수업은 필요에 따라 일부 대면수업이 허용되던 시기이다. 이때 필자는 무조건 대면으로 실습수업을 진행하겠다고 선언했다. 학생들과의 피드백이 중요한 디자

이신영 교수는 교수자가 직접 실습하는 강의 동영상을 만들었다. 대면수업을 하는 동안 학생들은 공간이 확보되지 않아 충분히 교수자의 시연을 보지 못했으나,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또한, 비대면 수업 때 학생들은 코로나 19 이전 대면수업이 이뤄졌던 시기보다 더 많고 다양한 질문을 이 교수에게 했다. 사진=이신영

인 수업에서 아무리 실습 영상이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비대면수업에서는 결국 학생에게 자극을 주고 보다 창의적인 실습 결과물을 도출하는 피드백 과정이 축소되기 때문이다.

대면수업이 재개되면서 과거 코로나19 이전의 수업방식으로 모두 되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코로나19 시기에 학습 효과를 확인한 실습 영상을 적극적으로 수업에 반영하고 싶었다. 이에 실습수업에서 2020년 촬영 영상을 모두 제공하고 미리 학습하는 플립드러닝 수업을 도입하였다. 이후 필자의 모든 실기수업은 플립드러닝수업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학생들의 수업 이해

도와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19 이전에는 교수자가 가르치고 싶은 것에 집중하여 강의를 해왔다면, 코로나 19 이후에는 학습자 중심의 강의 운영에 좀 더 다가간 듯하다.

이신영

동아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

2013년과 2015년 동아대에서 우수강의교수로 선정됐고, 2019년에는 최우수강의교수에 선정됐다. 2022년에는 (사)한국대학출판협회의 ‘올해의 우수도서’에 선정된 『드로잉 초보자를 위한 패션일러스트레이션』을 출판했다.

「디지털 불법 복제 인식 전환과 저작권 교육 강화 방안」 토론회

2023. 6. 19.(월)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

“의대 쏠림 해결해도 이공계 부족 못 메워”

STEPI ‘이공계 대학원 역할 과제’ 포럼

“단계적 인력양성 정책, 이공계 대우 낮춰”

“우수핵심인력을 몇 명 양성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무조건 양성만 해놓고 알아서 직장을 찾도록 해서는 경쟁력이 안 생긴다.”

과학기술정책에 양성하려는 인재의 선호를 반영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이전 세대와는 다른 특징을 지닌 MZ 이공계 인재가 노동시장에 진입해도 과학기술분야의 생산성이 유지되려면 단순한 양적 인재양성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제안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하 STEPI)은 지난달 24일 제158회 수요포럼을 열고 ‘핵심 연구인력고갈 위기, 이공계 대학원의 역할과 과제’를 논의했다.

홍성민 STEPI 과학기술인재정책연구센터장은 현재 이공계의 공급 충격을 주는 주요 요인으로 인구감소와 MZ세대의 노동시장 유입을 꼽았다. 그는 “이공계 대졸 이상의 인력은 아직 증가 추세에 있으나 인구감소로 인한 학사 입학자원은 감소하기 시작했다”라고 했다. 제448회 과학기술정책포럼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인구감소 영향으로 이공계 석사는 2025년부터 감소해 2048년이면 4만 명 이하로 감소한다. 이공계 박사도 2013년(3.8%) 대비 2021년(4.8%)에 1%p 증가했으나 2025년부터는 감소한다.

의대 열풍은 실제 현상이나, 이공계로 유입되는 인재의 절대 수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의대로 가는 인재를 이공계로 유도한다고 해서 부족한 인력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이

공계로 올) 사람은 있는데 안 오는 게 아니라, 앞으로는 사람이 없는 것”이라며 “대졸자 중 60%가 이공계인 나라여도 인구는 가파르게 감소하기에 대학원 입학자 수는 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과학기술을 이끌 인재가 수능점수가 높아야 하는지도 앞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공계 인력을 단기적으로 생산하는 정책은 취업률 하락과 좋은 일자리 부족 현상을 낳는다고 도 경고했다. 홍 센터장은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 데이터(2013~2021)’를 인용하며 “2013년부터 2021년까지 공학 계열 취업률은 76.7%에서 69.2%로 1.29%p 떨어졌다. 노동시장이 포화상태에 놓여있는 것일 수도 있다”라며 “현재 상황에서 이공계 공급량을 더 늘리면 대우는 더 나빠지고 취업률은 더 낮아져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해질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독특한 특성을 지닌 MZ세대의 노동시장 유입도 이공계 인력 공급에 영향을 미칠 요소라고 강조했다. 홍 센터장은 “디지털 네이티브와 더불어 고용 불안정, 임금을 통해 집 한 채 구하기도 어려운 현실을 경험하고 있는 세대에게 이전 세대의 조직문화나 업무강도를 똑같이 요구해선 안 된다”라며 “이들을 잘 키우고 끌고 나가는 게 인력 정책에서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인구의 절대 수 감소와 MZ세대의 노동시장 유입으로 인한 충격은 어떤 분야에서든 나타날 것이라며 이런 현실을 감안하지 않으면 인력정책은 소용없는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동일법인 내 일반대·전문대 통합 7건

▶1면에서 이어짐

단독 신청은 총 81건(일반대 71건, 전문대 11건), 공동신청은 13건(27개교)이었다. 공동 신청은 2개 이상의 대학이 통합을 전제로 신청한 경우다. 단독신청은 국립대 16건, 사립대 54건이었고, 사립전문대에서 11건이었다. 공동신청을 한 대학은 ‘국립대+국립대’는 4건(8개교), ‘국립대+공립전문대’는 1건(2개교), ‘사립 일반대+사립 일반대’는 1건(2개교), ‘사립 일반대+사립 전문대’는 7건(15개교)이었다.

국립대 31개교 중 25개교(약 80.6%), 공립대 6개교 중 1개교(약 16.7%), 사립 일반대 66개교 중 64개교(약 97%), 사립전문대 63개교 중 18개교(약 28.6%)였다.

지역별로 보면 부산 14건(16개교), 충남 14건

(15개교), 경북 13건(14개교), 광주 8건(8개교), 대전 7건(9개교), 경남 7건(7개교), 전북 6건(9개교), 충북 6건(8개교), 전남 6건(6개교), 강원 5건(6개교), 대구 4건(6개교), 세종 2건(2개교), 울산 1건(1개교), 제주 1건(1개교)이다.

한편, 교육부는 예비지정 결과 발표 후에 교육부 홈페이지를 통해 대학들의 혁신기획서를 공개할 계획이다. 예비지정에 선정된 대학들은 공개를 추진하고 있으며, 선정되지 않는 대학 중에서는 동의가 있는 경우 공개한다.

향후 교육부는 6월 중에 예비지정 결과를 발표한다. 예비지정 될 대학은 15개교 내외다. 이들 대학에 대한 실행계획서를 9월까지 제출받고, 10월에 본 지정 결과를 발표하며 글로컬대학으로 10개교를 선정한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국립대와 사립대 지원의 이원화…사립대는 ‘초광역 단위’로 관리

대학지원체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대학개혁 정책이 추진되고 있지만, 정작 대화는 부족하다.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와 전면 폐기의 주장이 맞서고 있다. 넓은 시각에서 대학의 체제를 진단하고, 현실에 기반한 문제 제기와 현실적·구체적인 대안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고자 한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대학정책 TF가 정부 정책의 난맥상을 짚고, 자성이 필요한 대학 내부와 교수사회의 문제까지 솔직하게 드러내 놓고 대학지원체계 원칙을 제안한다.

대학지원체계 원칙을 제안한다

① 대학지원체계 현주소:무엇이 문제인가?

② 국립대학지원체계 원칙:국립대 정체성에 합당한 지원 방안

③ 사립대학지원체계 원칙:학교법인 평가 연계 지원 방안

④ 대학지원체계 3원칙과 집행 방안

교육부발 너울이 밀려오고 있다.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다. 광역지방자치단체를 통해 대학을 지원하며 지역혁신을 일으키겠다는 취지다. 일견 솔깃하고 획기적인 듯하다. 지역소멸과 지역대학의 운명에 민감한 지자체의 소망을 고려한 대안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지난 70년간 보여준 교육부의 형편없는 관리능력을 반성한 대안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도 그렇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돈이다. ‘연간 200억 원씩 5년간 1천억 원 지원’ 제안에 솔깃한 전국의 대학들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몸부림치고 있다. 과거의 묻지마식 통합이 고전적 방안이라면, 일반대와 교대, 국립대와 도립대, 사학재단 내부의 통합 및 사립대 간 연합 등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방안이 속출하고 있다. 진부했던 대학이 진정으로 변하는 것일까? 글로컬대학30의 최종 결과가 사뭇 궁금해진다. 그러나 방향 수정과 재정지원만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글로컬대학이 탄생하겠는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성공을 위한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하려면 현재의 대학 상황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라이즈, 효과적인 관리 방안 논의 필요

교육부의 대학 관리능력은 국민과 대학 구성원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 총원 647명의 교육부 관리 중 일부가 무려 395개에 달하는 대학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즉흥적이고 임기응변식 정책이 남발되었고 대학은 방치되었다. 교육지원청을 거느린 교육청이 전국의 학교를 관리하는 체계와 비교하면, 규모와 차원이 다른 대학에 대한 국가의 관리능력은 부끄러운 수준이다. 따라서 라이즈 체계 설계 단계부터 효과적인 관리를 위해 적정한 대학 개체수의 배분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대학 관할권을 지역별로 나누자는 발상은 일단 고무적이다.

식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여전히 ‘교육은 백년대계’다. 교육의 성과가 더디게 나타나듯, 교육 정책도 장기적으로 추진할 때 그 성패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대부분 3∼5년 단위인 교육부의 특수목적 지원사업이 실패로 판단되는 이유다. 정권 교체로 사업골격이 뒤집히고 이전 사업의 성과평가는 흐지부지 실종된다. 글로벌 경쟁력도 국가적 필수 인재 양성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가 아닐 수 없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지원과 정책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제도적 장치가 필수적이다.

교육정책의 책임 있는 추진은 법적 정당성에 근거한다. 단기적 정책에는 ‘규정’이나 ‘지침’으로 가름할 수 있을지 모르나, 교육의 근간과 장기적인 대책을 확고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법률로 보장되어야 한다. 대학의 설립 요건과 기준이 법이 아닌 시행령(대통령령)에 규정된 나라, 교육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대학의 운영과 존망이 좌우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교육부의 시시콜콜한 실무지침서 같은 「고등교육법」이나, 최빈국 시절에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함께 뭉뚱그려 규율한 「사립학교법」으로 소멸 위기에 처한 대학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지역별 편차 큰 사립대 분포…

새로운 초광역 단위로 관리를

라이즈 체계의 수립에 따른 대학 지원·관리의 지자체 이관을 위해서는 세심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광역시·도 지자체 단위로 일괄 이관하는 방안은 위험하다. 사립대 비중이 높은 한국의 특수성 탓에 우리의 대학 분포는 지역별로 편차가 매우 크다. 대구의 4년제 사립대는 단 한 개지만, 경북에는 무려 16개의 사립대가 있다. 광역지자체도 아닌 천안·아산 지역에만 10개의 대학이 몰려 있다. 이런 대학 분포의 차이는

대학 지원·관리 부담에 대한 지자체의 격차로 드러나게 된다. 나아가 초·중등학교와 달리 대학에는 다른 지역 출신 학생이 많다. 지자체 입장에서 타지 학생을 위한 예산 투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도 있고, 이는 출신지에 따른 차별지원의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대학 분포 밀도를 고려하여 새로운 초광역 단위로 대학관리 권역을 편성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립은 교육부가, 사립은 광역고등교육청이

라이즈 체계 도입에 따라 가장 우려되는 바는 대학관리를 둘러싸고 예상되는 정치적 잡음이다. 교육부가 재정을 지자체에 이관하고 지역협력관을 파견하면 대학관리의 정치적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까? 지자체 이관에 적극적인 부산시의 경우, 관련 부서를 설치하고 정책 소통에 힘쓰며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부울경 메가시티 사업’의 좌초 사례에서 보듯이 지자체장의 교체에 따라 라이즈 체계의 연속성도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초광역 대학관리 권역 설정은 광역지자체장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대학의 지원·관리가 좌우되는 부작용을 막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라이즈 체계가 의도한 대로 잘 추진된다면 대한민국 대학체제의 근본적인 변화와 지역혁신의 바람을 몰고 올 수 있다. 기존의 대학체제에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 대안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먼저, 대학의 지원·관리 책임의 이원화이다. 국립대는 교육부로, 사립대는 ‘광역(특별)고등교육청’으로 관할권을 양분하자. 이미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사교련)는 여러 차례 국립대와 사립대의 설립목적과 취지에 맞게 지원체계를 분리하고 각각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지원정책을 주창했다. 국가의 필수 인재 양성을 위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첨단학문과 기초학문 분야는 국립대에 맡기고, 사립대는 편제와 특성, 지역 여건에 따라 국가와 지역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하도록 지원하는 전략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40여개 사립대로 묶어 8개 광역(특별)고등 교육구 설치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새로운 사립대의 행·재정지원 단위로서 ‘광역(특별)고등교육구’가 설치 되어야 한다. 사교련 대학정책연구팀의 판단에 따르면 대략 40개 내외의 사립대를 하나의 행·재정지원 단위로 설정하여 전국을 8개 광역고등교육구로 편제하는 방안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대학 개체 수에 추가하여 전략적으로 판단할 때 강원도는 지리적 여건상 별도로 분리하고, 서울과 제주는 지정학적 특수성을 고려하여 각기 ‘특별고등교육구’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광역(특별)고등교육청’의 효율적 작동을 위하여 국무총리 직속 기구로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으로서 과학과 문화를 선도할 뿐만 아니라, 산업구조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며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인재를 양성한다. 그런 맥락에서 대학정책은 교육부와 지자체는 물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등 여러 정부 부처와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수립되어야 한다. 국립대, 수도권 사립대, 지역 사립대의 세 범주로 구성된 고등교육 3대 중심축의 중장기 발전을 도모하고,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고등교육 정책을 범부처 차원에서 수립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국무총리실의 주도가 필요하다.

대학체제 대전환 위한 ‘대학법’ 제정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대학체제의 대전환을 위한 법적 토대로서 「대학법」의 제정을 제안한다. 우리나라 대학 관련 법령체계는 기이하다. 제정 이후 60년간 89차례의 개정으로 누더기가 되

어 성긴 그물 같은 「사립학교법」, 깨알 같은 「고등교육법」으로 미래 대학의 조직, 역할과 기능을 통합적으로 규율하기는 부족하다. 부실과 비리로 찌든 사학재단에 강제 퇴출 대신 해산장려금을 지급하자는 「사립대 구조개선지원법(안)」은 우리나라 대학정책의 난맥상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대학법」이 시기상조라면 「사립대학법」이라도 시급히 제정해야 한다. 대학의 사명, 대학의 권리와 의무, 구성원의 요건과 권리·의무, 법인의 권한과 의무를 명확히 규정한 법률이야말로 대학 내부의 불필요한 갈등을 예방하고 구성원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사립대의 공적 기능을 인정하고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는 규정도 마련해야 한다. 그에 따른 국가의 합리적인 통제범위를 명확히 정하고 변화하는 상황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구조조정의 원칙도 제시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사립대의 공공성이 법적 근거를 가지게 되

는 날에 한국 대학체제의 재도약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양성렬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이사장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해양생물학으로 박사를 했다. 역서로 『토양미생물학 원리와 응용』 『병원미생물학』, 공저로 『대학법 체제 정비』 등이 있다.

광역(특별) 고등교육구 설정안

충청광역고등교육구

지자체 : 대전, 충남·북, 세종

대학수 : 44

(사립대 30, 사립전문대 14)

호남광역고등교육구

지자체 : 광주, 전남·북

대학수 : 42

(사립대 21, 사립전문대 21)

제주특별고등교육구

지자체 : 제주

대학수 : 3

(사립대 1, 사립전문대 2)

부울경광역고등교육구

지자체 : 부산, 경남, 울산

대학수 : 35

(사립대 17, 사립전문대 18)

대경광역고등교육구

지자체 : 대구, 경북

대학수 : 38

(사립대 17, 사립전문대 21)

강원광역고등교육구

지자체: 강원

대학수 : 13

경인광역 (사립대 6, 사립전문대 7)

서울특별

강원광역

대경광역

호남광역 부울경광역

제주특별

충청광역

서울특별고등교육구

지자체 : 서울

대학수 : 43

(사립대 34, 사립전문대 9)

경인광역고등교육구

지자체 : 경기, 인천

대학수 : 64

(사립대 31, 사립전문대 33)

출처 :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대학정책TF

안동대학교 2023학년도 하반기 전임교원 초빙

41#초빙분야#및#인원

학 과 명 채용분야 충원인원 비 고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1

동양철학과 디지털미디어산업 1

미술학과 K-문화콘텐츠 제작 [문화기술(CT)융합분야] 1

컴퓨터교육과

알고리즘(컴퓨터과학) 1

시스템 소프트웨어 1

화학생명공학과 바이오/생명화학공학 1

산림과학과 산림경영학 1

패션라이프

스타일학과 테크니컬 디자인 1

첨단재료공학과 반도체 또는 신소재 공학 1

전자공학과 전자공학 전 분야 1

스마트센서공학과 바이오응용 전자기센서·디바이스 1

교양교육원

영어교육 1

글쓰기 및 토론 1

10개 학과 및 1개부서 13개 분야 13명

2. 지원자격 : 가. 공통사항 : 1) 고등교육법 제16조에 따른 교원의 자격이 있는 자 중 교육공무원 임용에 결격사유가 없는 자

2) 서류제출일 현재 박사학위 소지자(학위취득예정자 인정불가)

다만, ① K-문화콘텐츠 제작 [문화기술(CT)융합분야] 분야는 석사학위 이상

② 테크니컬 디자인 분야는 석사학위 이상

3) 최근 3년 이내(2020.6.1.~2023.6.9.) 연구실적물(최종학위논문 제외) 200% 이상

나. 세부요건 : 홈페이지 참조

다. 특정대학 출신 학위 소지자의 채용 제한 : 홈페이지 참조

3. 임용조건 : 최종합격자는 관계법령 및 본교 인사규정에 따라 계약제로 임용되며, 성과급적 연봉제 적용 대상임

4. 심사기준 : 본교 전임교원공개채용심사지침 참조

5. 제출서류 : 홈페이지 참조

6. 원서접수 : 가. 교수초빙지원서는 인터넷에서 작성하여 인쇄 후(날인 또는 서명) 위 5.제출서류와 함께 서류제출 기간 내에 제출

나. 인터넷 접수 : • 기간 : 2023.5.26.(금) 09:00 ~ 6.9.(금) 16:00 (15일간)

• 방법 : 안동대학교 홈페이지(www.anu.ac.kr) 상단 팝업 존 → 안동대학교 교수초빙

인터넷 접수→ 순서에 따라 작성 → 저장 후 교수초빙지원서 출력(날인 또는 서명)

※인터넷 접수 입력방법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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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6일

국립안동대학교 총장

명예로운 행위란 무엇인가, 연보를 읽는 새로운 눈

천하제일연구자대회

㊵ 연보 연구, 편찬자를 주목하는 이유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

연보의 구성 원리는 기억할 만한 행적을 선별하는 것이다. 선별의 기준이 가장 중요하다.

연보의 메시지는 무엇을 명예로운 행적으로 인정할 것인가로 결정된다. 이 기준에 핵심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편찬자의 관심사다. 연보 주인공의 생애는 역사적 사실이라기 보다는 편찬자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서사에 가깝다.

연보를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이다.

필자의 연구 분야인 한문학은 한문으로 기록된 일체의 문헌을 다룬다. 주된 연구 대상은 전근대시대 개인의 문집이다. 한국의 분과 체계상 한문학은 국어국문학의 하위분과에 속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한문학의 연구 범위가 반드시 문학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한문학 연구자가 생각하는 한문학

흔히 한문학은 현대적 학문분과 개념이 무색하게 문사철(文史哲)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인문학 분야로 간주되는데, 사실 연구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딱히 아우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연구 대상으로 삼는 인물이 대개 본업 정치가에 문장가·사상가·역사가 등을 겸하고 있고 한 사람의 문집에 각각의 역할에 적합한 온갖 양식의 글이 수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한편의 글에도 문사철이 다 포함되어 있는 바에야 별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언뜻 고리타분해 보이는 분과명과는 달리 한문학 분야는 학문적으로 연구의 주제나 방법론 선택에 있어서 자못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다.

다만 자료에 대한 엄밀성은 강도 높게 요구되는 편이다. 대부분의 한문학 연구자는 문헌의 확인과 한문 원문의 교감·입력·번역 등 실제 논문 서술에는 몇 줄 혹은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는 기초작업에 태반의 시간을 할애한다. 이 역시 부득이한 것인데 아무리 매끄러운 논의를 엮어낸다 한들 ‘그거 번역 틀렸는데요.’라는 한 마디의 지적이 전체 논의의 구도를 무너뜨리는 것을 막을 방법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모든 한문학 연구자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겠으나, 필자는 자료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 적지 않은 수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한문학은 일종의 자유전공에 가깝다고 느껴왔다. ‘연보(年譜)’를 주제로 삼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은 ‘국어국문학’의 이름표를 달고 제출되기는 했지만 ‘문학성’에 관한 논의는 거의 담겨있지 않다. 이는 한문으로 된 것이면 모두 연구의 주제가 될 수 있고, 자료에의 접근이 신중하면 어떤 방법도 포용하는 한문학 분과의 토양에서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연보 연구의 함정, 진실성에 대한 집착

필자가 논문의 제재로 삼은 ‘연보’는 그간 연구 대상으로서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한 자료이다. 연보는 특정 인물의 언행이나 관련 사실을 연도를 기준으로 정리해 놓은 저술로 보통 문집의 부록에 딸려 있다. 연구자들에게 연보는 일종의 사료(史料)처럼 간주되어 인물의 생애 정보를 확인하는 참고 자료로 주로 활용되고, 학문적 분석의 대상으로 접근할 만한 가치는 크지 않다고 여겨졌다. 이와 함께 연보에는 태생적으로 후손이 선조를 칭양하려는 목적으로 작성하는 경우가 많아 종종 윤색 혹은 왜곡된 기록이 포함되는 문제도 존재한다.

이와 같은 통념은, 연보가 실제로 그런 문헌이기에 필자 역시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연보에 대한 필자의 최초 접근 역시 연보와 『승정원일기』등의 관찬 사료, 동시대인의 문집 등을 대조하여 연보에 실린 생애 정보의 진위를 판별하고, 사실의 공백을 메꾸려는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같은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관점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다 보니 석연찮은 의문점이 생겨났다.

생애 정보의 진위를 판별하는 작업은 하나의 분명한 역사적 진실이 존재한다는 ―그것을 밝히려는 노력이 흔히 좌절될지라도―전제에서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자료를 볼수록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거나 적어도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자는 남겨진 글을 통해서만 과거를 파악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반드시 누군가의 고심 끝에 선별되어 남겨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겨진 글이 보장해주는 것은 기록된 내용의 진실성보다는 그것을 후세에 전하기로 결정

한 사람들의 의지에 관한 것이 아닐까. 여기에 생각이 닿고서 필자의 연구는 연보를 편찬한 사람들을 추적하는 방향으로 변경되었다.

연보 편간의 맥락 속에서 발견한 사실

한국의 연보는 고려시대부터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생산되었는데, 인물에 대한 갖가지 정보를 연보에 자세히 수록하는 관습이 정착된 것은 대략 16세기 후반~17세기 중엽의 일이다. 그 이전 시기의 연보는 대부분 보주(譜主 연보의 주인공)의 관직 이력을 나열한 한두 장짜리 약력에 가까웠다. 그러다 16세기 후반부터 강목(綱目)이라는 형식이 도입되면서 연보의 편폭이 급증하는 양상이 포착되는 것이다.

현전하는 주요 연보 문헌을 생산된 시기를 기준으로 일별하자, 드문드문 존재하는 연보들 사이로 심상치 않은 이름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황(李滉)·이이(李珥)·성혼(成渾)과 같은 각 당파의 종장에 해당하는 인

연보는 특정 인물의 언행이나 관련 사실을 연도를 기준으로 정리해 놓은 저술이다. 보통 문집의 부록에 딸려 있다. 인물의 생애 정보를 확인하는 참고자료로 주로 활용된다. 조선시대 연보 편찬의 관습은 「퇴계연보」에서 정립됐다. 사진=경희대 도서관 제공

물들의 장편 연보가 강목식 연보의 역사 첫머리부터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목식 연보는 애초에 전국적으로 정치적·학문적 명성이 현저한 인물들만을 대상으로 작성된 것이었다.

보주의 거대한 권위만큼 편찬자의 존재감 역시 만만찮았다. 이황의 연보는 유성룡(柳成龍)이, 이이의 연보는 김집(金集)과 송시열(宋時烈)이, 성혼의 연보는 윤선거(尹宣擧)와 윤증(尹拯)이 담당하여 학파를 대표하는 직·재전 제자들이 편찬의 총책임을 맡았다. 이 시기 연보 편찬의 사례를 살펴보면 학파의 핵심적인 상징성을

지닌 인물의 연보가 주요 제자들을 중심으로 집단적인 협업을 통해 작성되는 경우가 두드러진다.

이들이 편찬한 연보의 내용을 살펴보면 단순히 선사(先師)의 훌륭한 업적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특별하게 강조하는 범주의 행적이 있다. 특히 성리학에 대한 철 저한 이해와 이를 도덕적으로 실천하는 사례와 학문으로 임금을 계도하는 면모 등은 예외 없이 자세하게 수 록하고 있다. 문집에 동일한 내용이 있다면 출전을 밝 히는 정도로 처리해도 되었을 텐데 중복의 번거로움을 불사하고 연보에 다시 수록하는 경우도 확인된다. 단순히 사실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의미이다.

물론 상기의 행적은 조선 전기에도 미덕으로 인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양상이 특수하고 중요한 까닭은 개인의 모범적 행적들이 도통(道統)의 맥락에서 의미부여되고 있다는 점이다. 각 연보는 보주를 국가적인 유현(儒賢)의 면모에 적합한 인물로 그려내고 있고, 이는 보주가 도통의 정당한 계승자로서 적합한 자격이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서 기능하였다. 편찬자들이 명시했든 명시하지 않았든 이러한 작업은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염두에 둔 것이었으며, 궁극적으로는 그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집단에게 실질적인 정치적 권 위를 부여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편찬자에 착목하는 연보 연구의 시사점

조선 후기 인물에게 당색(黨色)은 그의 핵심적인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소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그 당파적 정체성이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왔을까. 이 쉽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에 접근하는 데 연보의 연구가 유의미한 도움을 줄 수 있다. 연보의 구성 원리는 기억할 만한 행적을 선별하는 것이므로 선별의 기준이 가장 중요하다. 연보의 메시지는 무엇을 명예로운 행적으로 인정할 것인가, 어떠한 의도로 사실들을 선별하고 해석하며 배치할 것인가에서 결정된다. 이 기준에 핵심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 편찬자들의 관심사이다. 그렇기에 편찬자들이 재구성한 보주의 생애는 보주에 대한 사실이라기 보다는, 편찬자들이 규정하는 혹은 인정받고 싶어 하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관한 서사에 가깝다. 이것이 연보에 대한 접근을 내용에서 편찬자로, 내용의 사실 여부에서 명예로운 행위의 선별 기준으로 옮겨왔을 때 얻을 수 있는 유용한 시사점이다.

필자는 기왕에 수행한 연구에서 17세까지의 연보사를 다루었다. 그러나 문집과 마찬가지로 연보의 양적 폭발 역시 18세기부터 현저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며, 연보의 생산 밀도는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높아졌다. 18세기에 들어 연보는 더욱 복잡하고 많은 사정을 담아내게 되는데, 그 정점에 송시열(宋時烈)의 연보인 『우암연보(尤庵年譜)』가 자리한다. 더불어 18세기 연보에 두드러지는 당론서(黨論書)로서의 성격이나 노론계·소론계 인물의 연보에서 드러나는 충군(忠君)에 대한 상이한 입장, 19~20세기의 지방 유림의 연보 간행 양상과 실기류(實記類) 저술의 유행 등 연보와 관련하여 앞으로 해명해야 할 주제들이 산적해 있다. 향후 필자는 남은 숙제를 차근차근 해결하며 조선시대 연보사를 개괄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서 그간 한국학 연구사의 변두리에 있었던 연보가 활발한 논의의 장으로 포섭되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강릉원주대 강사

최혜미

2022년 고려대 국문과에서 「17세기 연보 편간의 역사적 맥락」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고전번역원의 『승정원일기』 국역 사업에 번역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개인의 연대기를 대상으로 문헌의 생산 과정과 사회문화적 배경을 참조하여 역사적 의미를 탐구하는 작업을 해왔다. 주요 발표 논문으로는 「『忠烈錄』 소재 『贈遼東伯詔』의 위작 여부에 대한 고찰」, 「官人 自撰年譜의 편찬 배경과 서술 의식」, 「『退溪年譜』 편찬의 역사적 배경과 그 의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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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읽는 시대 진단_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마이클 샌델 지음 | 이경식 옮김 |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440쪽

“민주주의가 답”…시민이 그 열쇠

최근 마이클 샌델의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가 번역·출간됐다. 샌델은 국내에 ‘정의’ 열풍을 일으킨 바 있다. 이 책에 대해 김선욱 숭실대 교수(철학과)는 샌델 정치철학의 최고점이라며, 그 사용법을 정리했다. 김 교수는 샌델이 금융 시장사회와 능력주의를 비판했다고 평하며, “경제적 강자에게 민주적 책임을 지우는 정치제도를 우리 스스로가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고 적었다.

“샌델은 대기업과 금융 자본가들을 향해, 당신들이 이 시대의 문제에 책임이 있다고 말해야 하고, 경제적 강자에게 민주적 책임을 지우는 정치제도를 우리 스스로가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책임 있는 역할을 하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2005년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정치철학)가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던 기자회견 자리에서 한국이 처한 시대적 문제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그는 “그것은 여러분들이 고민하고 답할 문제”라고 답했다.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오늘에 처한 곤경을 분석하고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정치적 합의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돼 있지 않은 것이라면, 규모가 크고 또 멀리 있는 어떤 것에 충성하지 않는다. 설령 그게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말이다.”(13쪽) 그의 학문과 토론의 열정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다.

그런데 우리는 10년 이상을 왜 그런 샌델에게 집중했던가? 그가 우리 문제의 답을 주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질문을 던졌고, 이따금 우리의 대답을 비판적으로 점검해 주었을 뿐이다. 이 책은 그가 남긴 여러 저술의 정점을 이룬다. 여기서 던져지는 질문은 이렇다. “지금의 깊은 경제적 양극화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경제적 부정의에 대해 어떻게 경제적 강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경제가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민주적 통제가 가능한가?”, “효과적인 민주 시민으로 거듭나려면 어떻게 공적 삶을 재구축해야 할까?”

시민이 처한 상황을 이해조차 못 하는 정당

오늘날 우리는 정부가 옳은 결정을 내리고 옳은 정책을 실현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정당은 시민이 처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내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이해조차 못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역량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워한다. 우리는 대기업과 금융계가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 목표로 경영하고 있음을 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거의 시장사회(market society)가 돼버렸다.

시장경제사회란 사회가 시장을 활용하여 움직이는 사회를 말한다. 시장사회란 그 자체가 거대한 시장이 되어버린 사회다. 여기서는 모든 게 시장 논리에 따라 작동하며,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의 구분이 없어진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인간다움‧사랑‧신뢰‧우정‧정‧충성심 등이 돈으로 거래됨으로써 그 본질이 변질된다. 샌델은 이런 변질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부패’라고 불렀다.

이런 변화는 레이건이 시작한 세계화를 통해 급격히 강화됐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상품과 사람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이루어졌다. 금융은 시차를 넘어 다른 언어와 지정학적 환경에서 열리고 닫히는 자본 시장을 넘나들며

마이클샌델미국하버드대교수(정치철학)는 시장사회와능력주의를비판했다.이때문에 더욱민주주의와시민의식이중요해진다. 사진!위키피디아

제 시대를 만났고, 능력자는 춤을 추었다. 글로벌 시장 앞에서 국가는 새로운 번영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레이건, 부시 부자, 클리턴,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정당과 무관하게 진행된 세계화를 통해 국민총생산 성장분의 0.1% 증가에 불과한 무역 효과를 낳았을 뿐, 제조업 일자리는 대폭 축소됐고, 국내 노동자들의 임금은 정체됐다. 부는 제조업을 통해서가 아니라 금융 사업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시대로 변했다. 연구개발 역량이나 공장 신설, 시설과 사원의 확충보다는 금융회사를 만드는 것이 더 큰 부를 가져다주었다.

금융의 시대는 뛰어난 두뇌를 필요로 했다.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능력자는 교육과 시험

을 통해 검증받고 활용되고 보상을 받았다. 이때 보상되는 능력은 이 사회에 기여하는 다양한 능력이 아니라, 자본이 모이는 데서 요구되는 능력뿐이다. 금융업에서의 능력과 중소기업에서의 재능과 성실성은 비교할 수 없는 보상의 차이를 갖는다. 프리미어 리그의 축구와 핸드볼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능력주의 시대의 참모습이다.

세계화·금융·능력주의 그리고 시민

그동안의 세계는 세계화·금융·능력주의의

합작품이다. 세계화와 금융 시대는 부의 총량의 획기적 증가와 절대빈곤의 축소를 가져왔지만, 경제에 대한 시민의 통제력 약화와 빈부 격차의 극단적 심화를 가져왔다. 능력주의 시대는 능력자의 성공과 무능한 자의 실패에 따르는 오만과 굴욕의 감정을 보편화하였고, 또 그런 감정이 정당하다고 가르쳤다.

이제 세계화는 끝났고, 2008년 금융위기와 최근의 실리콘밸리은

행 파산 사태를 통해 금융의 한계도 눈앞에 여실히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던 시민의 실패도 분명해졌다. 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원하지도, 또 시행할 의사도 없는 사람을 최고 권력자로 선택했다.

팬데믹 시대를 거쳐온 지금은 어떠한가? 시장 메커니즘이 공공선을 규정하고 그 이익 을실현할 수 있다는 주장을 근본적으로 의심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과거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4차 산업사회를 향해 줄달음치며 여전히 능력주의를 부여잡고 있다. 세계는 여전히 좋지 않은 모습이다. 여기서 샌델이 던지는 질문은, ‘우리가 과연 시민으로서 적절히 생각하

고 판단하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샌델은 오늘날의 시민은 정치적 주체로서 자유로운 시민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자유로운 소비자로 생각하며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 삶을 결정하는 경제적·정치적 구조를 우리 시민이 스스로 만들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하며, 우리가 이 세계에서 온전히 인간적으로 살 수 있도록 시민적 삶의 태도를 부여잡아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우리는 대기업과 금융 자본가들을 향해, 당신들이 이 시대의 문제에 책임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할 리가 만무한, 경제적 강자에게 민주적 책임을 지우는 정치제도를 우리 스스로가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책임 있는 역할을 하는 시민의식(citizenship)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이 책은 1997년에 출간됐던 『민주주의의 불만』에서 전반부를 뚝 떼어 버리고, 1980년대 이후의 시대에 대한 분석과 민주주의의 회복과 시민의 역할에 대한 서술을 후반부에 더해 만든 책이다. 과거에 썼던 2장에서 6장까지는 미국 역사의 많은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경제적 조치들이 어떤 시민의식을 갖고 다루어져 왔는지를 면밀히 검토하는데, 여기서는 오늘날 우리가 금융 자본주의를 다룰 수 있는 시민의식, 경제와 정치 등의 핵심 주제에 대한 토론을 만날 수 있다. 결론은 이것이다. 민주주의가 답이다. 그리고 시민이 그 열쇠다.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

숭실대 가치와윤리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뉴욕주립대 버팔로대에서 철학박사를 했다, 뉴스쿨과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캠퍼스(UC Irvine)에서 풀브라이트 방문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는 『한나 아렌트와 차한잔』 등이 있고, 샌델의 저서 대부분을 감수 혹은 공동번역했다.

안과 밖 잇고 분과학문 소통 이끈다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좌담회

네이버 열린연단 시즌10 ‘오늘의 세계’가 닻을 올렸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 질서, 동아시아,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기술, 철학과 담론 등 총 6개 섹션, 54개 강연이 펼쳐진다. 탈냉전 이래 국제질서의 변화와 전개 양상부터 중국의 급부상과 세력확장으로 인한 혼란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의 현안, 비자유주의와 포퓰리즘, 디지털 매체의 발전과 사회·문화의 변화, 첨단과학과 기술의 영역에서 관찰되는 새로운 흐름, 철학과 윤리 분야에서 나타나는 최근의 사조와 경향을 살펴본다.

지난달 26일, ‘오늘의 세계’ 기획 배경과 전망 등에 대해 논의하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열린연단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와 자문위원인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철학)는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정한 이유, 그간의 경과와 향후 방향에 대해 대담을 진행했다.

“이제 우리 스스로가 세계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탐구할 때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는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우리 자신의 문제와 이념·가치·삶의 문제를 발견하고 탐색을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당장 해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그동안 한국은 미국의 시야를 통해 세계를 이해해왔다. 하지만 이제 냉전이 해체되고, 중국의 부상으로 시작된 치열한 미중 경쟁과 다극체제라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대면하고 있다.

최 교수는 세계적 차원에서 질문을 던졌다. 정치공동체로서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 민족문제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 미국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고, 일본 그리고 중국과 는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냉전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질서에서 나타나는 실존적 고민이다. 최 교수는 “미국 중심에서 벗어나는 인식의 변화를 통해 한국인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제정치적 문제는 거시적 분야다. 이와 더불어 미시적 문제는 개인적 사유·예술·경험·실제적 삶의 영역 등이다. ‘오늘의 세계’에서 미시적 문제 영역에서는 철학이나 문화 등 인문학이 많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디지털 매체와 인공지능 등 첨단과학‧기술이 바꾸는 ‘오늘의 세계’도 살펴볼 예정이다.

“미국 중심에서 벗어나는 인식의 변화를 통해 이제 우리 스스로가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

-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

“열린연단이 추구하는 분과학문 간 소통은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선구적 시도이다.”

-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철학)

지난달 26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와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철학)가 네이버 열린연단 시즌10 ‘오늘의 세계’ 좌담회에서 대담을 나눴다. 사진=김재호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철학)는 지성계의 역할을 모색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현실상황을 차분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우리가 몸담고 사는 세계가 보다 평화롭고 조화로운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성계의 지혜와 고견을 모아보고자 한다”라며 “이

러한 노력이 조금씩 축적될 때, 우리 사회와 지성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서서히 안갯속에서 윤곽을 드러내리라고 기대한다”라고 설명했다.

고전 텍스트 해석 중심에서 현실 경험으로

그동안 진행된 열린연단 강연 프로그램은 보편적 지식을 학습하는, 학술적 기반을 놓는 작업이었다고 평했다. 최 교수는 2014년부터 시작돼 10살을 맞이한 열린연단에 대해 “처음 시기엔 텍스트 중심으로 고전을 해석하고 청중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강의가 마련됐다”라며 “물론 보다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는 뜻

이 아니라, 그 방식이 중심이었다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것이 첫 번째 단계라면, 두 번째 단계에서는 강의의 주제를 현실과 경험적인 문제로 많이 끌어내렸고, 학문 분야도 넓어졌다. 시즌9의 ‘자유와 이성’과 시즌10이 그런 시도에 해당

한다. 최 교수는 “이른바 문·사·철로 통칭되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자연과학 이렇게 세 분야로 강연범위가 넓어졌다”라며 “하나의 대주제를 설정했을 때, 인문·사회·자연과학 세 분야가 동시에 상호연관성을 유지하면서 하나의 종합적인 학문적 담론을 형성하게 되는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열린연단을 통해 시청자·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효과는 뭘까? 이 교수는 두 가지 방향성을 언급했다. 첫째, ‘안’과 ‘밖’을 연계하는 문제다. 둘째, 인문·사회·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과학문 간의 대화와 소통을 이끌어내는 일이다. 이 교수는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이론과 지식이 ‘학계’

라는 전문가 집단 안에서만 논의되고 소비되었을 뿐, ‘학계’라는 울타리 너머의 교양있는 일반시민에게까지 파급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경제발전과 더불어 시민의 지적 수준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데, 이에 걸맞은 시민교양 프로그램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열린 연단 강연이 더욱 빛을 발한다. 아울러, 이 교수는 “각 분과학문이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독단·편견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공통의 주제를 놓고 대화를 통해 거시적·종합적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그는 “열린연단이 추구하는 분과학문 간 소통은 세계 어떤 학술 조직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선구적·도전적 시도”라고 평했다.

‘대학’(大學) 사라지고 ‘소학’(小學)만 양성하는 교육정책

‘오늘의 세계’ 주제와 관련해, 대학 교육에 대한 쓴소리도 나왔다. 최 교수는 교수가 연구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과, 법대·의대에만 몰려드는 한국교육의 퇴행성을 비판했다. “살아남은 대학은 사실상 직업훈련 전문학교로 역할 변화를 통한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고 있고, 학과는 하루아침에 없어져 교수들은 자신의 전공과목과는 무관한 학과로 배치됐다.” 최 교수는 한국대학에서 학문의 자유와 기초 교양(liberal arts)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이라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열린연단에 나선 강연자들이 자유롭게 얘기하고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이 더욱 소중하다.

이 교수 역시 “대학은 사라지고 소학만 양성하는 대학정책”을 지적했다. 그는 “전통적으로 대학에서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와 이념 가치를 교육했고, 소학에서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구적 지식을 가르쳤다”라며 “지금은 대학에 그런 역할을 기대할 수 없고, 슬프면서도 역설적이지만 열린연단이 전통적 의미의 대학 역할을 하야하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마지막으로 열린연단의 향후 방향에 대해 자문위원장인 최 교수는 “지금까지의 운영 방식을 넘어, 무엇이 더 한국사회에서의 지적·문화적·철학적·이론적 관심을 갖는 청중들에게 더 좋은 강의로 보답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애덤 스미스

니콜라스 필립슨 지음 | 배지혜 옮김 | 한국경제신문 | 480쪽

이 책은 애덤 스미스에 대한 자료를 집대성해 그의 전 생애와 사상을 본격적으로 다룬 평전으로, 그동안 감춰졌던 애덤 스미스의 삶의 궤적을 꼼꼼하게 따라간다. 경제학자이자 도덕철학자인 그의 다양한 면모와 사상을 생생하게 서술해 우리가 오해했거나 몰랐던 애덤 스미스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 개념

박준영 지음 | 교유서가 | 472쪽

철학은 개념의 학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철학은 언제나 세상의 진리를 파악하려고 해왔으며 이를 압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 개념이기 때문이다. 철학의 개념과 그에 대한 설명은 다 셀 수 없을 만큼 무궁무진하며, 때로는 철학을 공부하려는 사람에게 난해함으로 다가와 진입 장벽이 되기도 한다.

반포퓰리즘 선언!

로저스 M. 스미스 지음 | 김혜미·김주만 옮김 | 한울엠플러스 | 240쪽

이 책은 지금까지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모든 서사들보다도 더 훌륭한 정체성 서사를 쓰고자 하는 정치인, 정치인 지망생, 지식인뿐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서사에서 영감을 얻고, 그것을 수용하고 재해석해 끊임없이 변형시키며, 또한 그 서사가 가리키는 목표대로 ‘우리’의 공동의 삶을 살아내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가버릴 것들을 향한 사랑

정홍수 지음 | 문학동네 | 572쪽

문학평론가인 저자의 세번째 평론집인 이 책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됐다. 제24회 대산문학상을 안겨준 전작 『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 이후 9년 만의 신작 평론집이다. “구체적인 삶의 지문(指紋)을 과하지 않은 미문(美文)에 담아”낸 “문학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포기하지 않기에 긍정적이고 책임감있는 평론”이라는 심사평을 들었다.

서경식 다시 읽기 2

우카이 사토시 외 2인 지음 | 연립서가 | 479쪽

순례자와 월경자의 눈길로 우리 시대와 문화를 살펴온 재일디아스포라 지식인 서경식. 이 책은 그의 사상이 형성되고 수용된 궤적을 ‘회상’과 ‘대화’를 통해 되짚으며 ‘다시 읽는’ 시도다. 20년간 ‘인권과 마이너리티’의 쟁점을 설파하고 인문교육으로서의 예술학의 위치를 증명했던 도쿄경제대에서의 마지막 강의록을 수록했다.

다정한 조직이 살아남는다

엘라 F. 워싱턴 지음 | 이상원 옮김 | 갈매나무 | 332쪽

DEI는 우리에겐 아직 낯설지만, 세계적으로는 매우 뜨거운 키워드다. 구글, 메타, 아마존, 넷플릭스 등 유수의 글로벌 기업은 물론이고, <포춘>이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의 80%가 ‘다양성과 포용(Diversity&Inclusion: D&I) 또는 다양성, 형평, 포용(Diversity, Equity, Inclusion: DEI)’을 기치로 내걸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한국은 보여주기에 그친다고 평가받는다.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지음 | 이신철 옮김 | 에코리브르 | 456쪽

인도 콜카타에서 태어나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MBA를 마친 뒤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가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 저자는 몇십 년 동안 기후변화의 의미를 탐구한 매우 영향력 있는 역사가다. 그는 기후변화가 역사, 근대성, 지구화라는 오래 지속돼온 관념을 뒤집는다고 주장한다.

이코노믹 허스토리

이디스 카이퍼 지음 | 조민호 옮김 | 서경B&B | 416쪽

주류 경제학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여성 저술가와 경제학자, 그들의 위대한 업적과 함께 조망하는 경제 이론 탄생의 순간들을 담은 책이 나왔다. 뉴욕주립대 경제학 교수인 저자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의 경제력과 노동권에 대한 경제 관련 저술을 했다는 이유로, 남성 중심의 경제학계에서 철저히 무시당하고 잊힌 여성 경제 저술가, 여성 경제학자들을 조망한다.

자폐 스펙트럼과 하이퍼월드

이케가미 에이코 지음 | 김경화 옮김 | 눌민 | 368쪽

이 책에서 생생하게 그려진 성인 자폐 스펙트럼 당사자들의 모습은 ‘자폐증’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보기좋게 뒤집어 엎는다. 가상공간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의 독특한 감각과 지각 체험, 슬픔이나 기쁨 등 다양한 감정, 소수자로서의 어려움 등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면서 서로 공감한다.

저자가 말하다_『독일현대정치사』 문수현 지음 | 역사비평사 | 456쪽

아데나워에서 메르켈까지…‘기민련’으로 본 정당국가

굳건한 지구당 조직과 협회가 느슨하게 연대한 링크 정당

‘느림’의 대명사로 추진하는 정책의 놀라운 일관성

전후 독일의 정치사는 구도시의 문제를 뼈아프게 경험한 건축가에게 넓은 신도시 건설을 맡겨놓은 것과 같은 상황에서 시작됐다. 109일짜리 내각이 놀랍지 않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던 바이마르 공화국이 나치 체제와 전쟁으로 막을 내린 이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구상된 시스템이 바로 ‘독일연방공화국’이었다. 지방분권을 강화하고, 강력한 상원과 헌법재판소를 만들어내고, 연방총리의 권한을 강화한 것 등이 연방공화국 ‘디자인’의 핵심 요소였다.

기독교민주연합(이하 기민련)은 이처럼 새롭게 만들어진 ‘부대’에 담긴 ‘새 술’이었다. 19세기 후반에 창당된 가톨릭중앙당에 연원을 두고 있었지만 공식적으로는 1950년 창당된 기민련은 뚜렷하고 분명한 이념적 지향성을 가진 정당이 아니었다.

이데올로기로 보자면 보수주의·자유주의·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패치워크 정당’이었고, 조직으로 보자면 중앙당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적인 정당이 아니라 지구당 조직이 굳건하고, 여성연합·청년연합·노동자위원회 등 여러 협회가 느슨한 연대를 이루는 ‘링크 정당’이었다. 창당 직후 분당이 이루어졌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구조였던 셈이다.

이처럼 취약한 구도를 가진 정당이었으면서도 기민련은 ‘체질상 여당’이라 부를 정도로 긴 세월 동안 독일의 집권 여당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서방통합, 유럽통합, 사회적 시장경제, 독일통일 등 현대독일사

의 굵직한 줄거리가 기민련 집권기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책은 이를 기민련 정치의 ‘성공’으로 간주하고, 그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 그보다 지난 73년간 기민련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독일 현대 정치의 특성을 드러내 보여주고자 했을 뿐이다.

먼저, 기민련의 정치는 ‘한판 승부’에 따른 ‘승자독식’의 정치가 아니었다. 독일은 주의회 선거가 상원인 분데스랏 구성을 좌우한다. 주의회 선거가 주마다 다른 시기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독일은 선거가 없는 해가 거의 없는 선거의 나라이다.

또한 다른 나라에서라면 ‘기민련 바이에른 지부’였을 기독교사회연합(이하 기사련)이 독자적인 정당이면서도 하나의 교섭단체를 이루고 있고, 중앙당이 아니라 지구당에서 연방의회 후보선출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주지사 등 지역조직의 맹주가 중앙당의 지도자로 부상해온 데서 드러나듯이 지역조직의 독자성이 강하다.

무엇보다 기민련은 ‘느림’의 대명사였다. 논쟁이 될 정책에 대해서는 끝없이 논의하고 또 논의한 끝에 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놀라운 일관성을 보이는 일이 드물지 않다. 사회적 시장경제를 이루는 핵심적인 정책이자 기민련 내의 경제계와 노동계가 격렬히 맞서서 가장 논쟁적인 정책 가운데 하나였던 ‘공동결정권’이 20년이 넘는 세월 당 내에서 논의되어야 했다. 1966년 이 문제를 담당한 위원회의 장으로 임명된 비덴코프가 2005년 다시 공동결정권 개편을 위한 위

원회의 장으로 임명되었을 정도로 일관성이 기민련의 DNA로 자리하게 되었던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협상, 지역조직의 독자성, 느림 등을 특징으로 하는 기민련의 정치는 긍정적인 의미에서건 부정적인 의미에서건 일관성과 지속성의 정치일 수밖에 없었다. ‘실향민동맹’, 기사련과 연대한 기민련의 보수정치가들이 거세게 반발함으로써 기민련 정치사상 가장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정책이었던 ‘동방 정책’ 마저도 자민당과의 연정을 통해서 기민련 정부의 정책으로 수용되고 고착됐다. 특정한 정책들이 진화‧발전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하는 정치인 셈이다.

그리고 이는 아데나워(1876∼1967)의 서방통합, 에어하르트(1897~1977)의 사회적 시장경제, 가이슬러(1930~2017)의 새로운 사회문제, 폰 바이체커(1920~2015)의 기민련 기본강령 등 기민련의 대표적인 정치가들이 고유한 정치적 브랜드를 가진 정치가가 될 수 있도록 해주는 조건이 되기도 했다.

기민련의 이러한 ‘다른 정치’가 ‘나은 정치’임을 전제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적절한 시점에서 빠른 결정이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파악하기도 어려운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 21세기의 현실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코로나 시국을 지나며 집단학습했다. 무엇보다 독일의 제도는 독일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등장했을 뿐이다. 그러나 ‘다른 정치’의 언어가 스며들어서 ‘나은 정치’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숨길 이유는 없을 것이다.

문수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역자가 말하다_『니체, 사랑에 대하여』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 최성희 옮김 | 세창출판사 | 264쪽

“사랑은 이기적 열정”…사랑하는 건 자신의 욕망뿐

프리드리히 니체는 기존 사상 체계를 비판하여 지식인들을 각성시키는 것을 자신의 의무라고 믿었다. 그는 서양의 도덕과 종교 때문에 사랑의 본질이 손상되었다고 평가했고, 인간이 사랑에 대해 관습화된 생각에서 벗어난다면 자신과 타인에게 진실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니체는 사랑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지만, 사랑을 단일 주제로 삼아 책을 쓴 적은 없었다. 『니체, 사랑에 대하여』 는 니체가 쓴 13권의 저작 중에서 사랑에 대한 글 123편을 선별하여 번역한 책으로, 그의 사랑에 대한 생각을 한자리에서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생리적 충동인 사랑, 이기심·소유욕이 공존하는 이면 탐구

사랑의 완성은 남녀가 서로의 차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 책에서 니체는 독자에게 친절

한 저자가 아니다. 그는 자주 비난하는 듯한 말투로, 이제까지 독자가 당연시했던 낭만화된 사랑의 특성들을 비판하고, 그 밑바닥에 있는 통속적이고 이기적인 요소들을 지적한다. 그는 사랑을 인간의 생리적인 충동이자, 문화적인 욕망이라고 규정하고, 사랑의 이면에는 사실상 인간의 이기심과 소유욕이 공존한다는 점을 들추어낸다.

니체는 남녀의 사랑은 이기적인 열정에 불과한 것이라면서 “인간이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이지, 욕망하는 대상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이웃에 대한 사랑도 사실은 인간의 이기심과 소유욕의 변형이라고 본다. 그는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도 새로운 소유를 갈망한다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인간이 “가장 가까운 이웃을 사

랑으로 유혹하려 하고, 이웃의 잘못을 발판 삼아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 한다”라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니체는 기독교식으로 이상화된 사랑의 개념과 단절한다.

니체가 옹호하는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사랑이다. 그는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과는 정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을 그 상태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라 하면서, 사랑이란 남녀가 서로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완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부부에게도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우정 같은 사랑을 권한다. 니체는 “좋은 결혼이란 우정에 필요한 재능을 기반으로 한다”라고 하며, ”노년까지 대화를 잘 할 수

있는 배우자를 고르는 것”이 성공적인 결혼의 조건이라고 한다.

이와 더불어 니체는 자기애를 중요시 한다. 그는 진정한 사랑이란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신을 굳건히 하고, 두 발로 용감하게 버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사라진다”라고 주장한다. 자기애를 기초로 하는 사랑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 사상과 연결 선상에 있다. 그는 “사랑은 사람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끌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라고 하며, “오직 사랑함으로써 인간의 영혼은 어딘가 아직 감추어진 더 높은 자아를 온 힘을 다해 탐색하려 한다”라고 진단한다. 또한 친구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도, 좋은 우정은 친밀하면서도 적절한 간격을 현명하게 유지하는 경우에 성립한다고 주

장한다. 그는 “가장 멀리 있는 자를 사랑하라”라고 권하고, 우정의 동기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높고 적극적인 긍정으로 연결하라고 조언한다. 그리하여 니체는 “운명을 사랑하여 긍정하는 사람”이 될 것을 권한다.

『니체, 사랑에 대하여』는 정확성·가독성을 갖추려는 노력이 담긴 번역서이다. 니체는 대중적인 사랑을 받지만, 정작 그의 글을 쉽게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 책에는 다층적 의미를 포괄하는 비유적이면서 모호하고 역설적인 표현과 다양한 문체가 등장한다. 또한 이 책은 중역본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니체의 독일어 원본에서 편집된 글이 영어로 옮겨졌고 이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했다. 중역본은 매개어와 이를 구사하는 번역자의 인식 스펙트럼을 지나는 과정에서 원문의 의미

와 뉘앙스가 변형될 가능성이 높다. 이 책은 중역의 흔적을 최소화하며 원전의 의미를 정확히 반영하려 애썼다. 그뿐만 아니라 니체의 독창적인 표현은 원문 그대로 표기하여 니체 고유의 글맛을 살렸다. 이와 더불어 이 책은 가독성을 높여서 독자들이 어려운 니체의 철학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였다. 난해한 니체의 문장을 가능한 원문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윤문했다. 또한 책을 휴대하기 쉽도록 만들었으며 왼편 페이지를 공백 상태로 두어서 독자들이 글을 읽다가 잠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니체, 사랑에 대하여』는 니체의 어렵고 ‘불친절한’ 글에 독자를 편안히 이끌어가고자 하는 출판사와

번역자의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최성희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강사

저자가 말하다_『교양인을 위한 자연과학 10대 원리』 고중숙 지음 | 현승북스 | 640쪽

에너지 보존법칙부터 진화론까지…과학 원리 통찰

수식 최대한 배제하고 직관에서 논리로

낱낱의 지식 엮어 일관된 체계로 구조화

‘인문과학’은 어떤 학문일까? 이 책은 서두에서 ‘인문과학’의 옳은 발음이 ‘인문꽈학’임을 밝힌다. 이는 국문학꽈, 수학꽈, 화학꽈, 내꽈, 소아꽈 등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나아가 ‘인문과학’ 자체가 모순어(oxymoron)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과학’은 ‘인문 분야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곧 ‘인문학’이란 학문은 있어도 ‘인문과학’이란 학문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럼 ‘자연과학’은 어떨까? 우선 ‘자연과학’의 옳은 발음도 ‘자연꽈학’이다. 하지만 ‘인문꽈학’이나 ‘자연꽈학’이나 언어 감각에 거슬린다. 따라서 ‘인문학’과 ‘자연학’으로 부름이 타당하다. 이 책은 다른 논점들도 추가하여 ‘과학’의 의의부터 상술하고 나아간다. 다만 아직은 ‘자연학’이란 이름을 전면적으로 쓰기는 곤란하다. 따라서 ‘과학’·‘자연학’·‘자연과학’ 중에서 상황에 따라 골라 쓰기로 했다.

또한 머리말에서 ‘교양인’의 의의도 간략히 살펴본다. 저자는 젊은 시절 어느 철학도가 상대성이론에 대해 물어왔을 때 “철학에서도 이런 지식이 필요한가 보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후 저자도 철학에 끌려 독학하면서 양쪽의 관계를 숙고하곤 했다. 나아가 이런 양상을 다른 많은 사람들에서도 발견했다. 그리하여 인문학과 자연학을 아우르려는 ‘교양인의 품성’은 인간의 한 본성이라고 결론짓는다.

이러한 두 바탕 위에 자연과학 10대 원리를 서술하면서 특히 세 측면을 유의했다.

첫째로 누구나 경험상 수긍하듯 이과에서 문과를 탐색하기보다 문과에서 이과를 탐색하기가 더 버겁다. ‘수학’이라는 ‘만인 공통의 골칫거리’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수식을 배제했다. 물론 수학을 많이 알수록 과학의 이해에 유리하다. 따라서 필수적인 수식은 포함했다. 그러나 어떤 수식이든 건너뛰고 읽어도 전체 맥락의 이해에는 아무 지장이 없도록 구성했다.

둘째로 직관적 이해를 중요시하고, 이와 관련하여 인간의 이해를 직관적 이해와 논리적 이해의 두 단계로 파악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직관이 주춧돌이란 점이다. 흔히 직관은 오류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직관이 잘못되는 경우의 이야기일 뿐이다. 올바른 직관은 논리적 이해의 핵심이며, 따라서 직관적 이해 없는 논리적 이해는 뜬구름이고 허당이다. 그래서 항상 “직관에서 논리로” 나아간다.

셋째로 체계적 이해를 중요시하고, 이와 관련하여 인간의 뇌가 약 천억의 ‘뉴런 그물’ 덩어리임을 상기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물질 구조’가 ‘정신 구조’와 직결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개별 뉴런이나 작은 부분을 뇌라고 할 수 없듯 파편 지식은 참된 지식이 아니다. 곧 인간 지식은 낱낱이 엮여서 파편이 되고, 파편이 엮여서 ‘일관 체계’가 되어야 ‘참된 지식’이 된다.

이 책의 10대 원리는 불가피하게 주관적으로 선정했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게 빠졌다

고 보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 사실 ‘과학 밑그림’을 대충이라도 제대로 그리려면, 100개는 너무 많겠지만 10개는 너무 적고, 수십 개는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자면 보통의 책 한 권에 담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이 책을 머나먼 지적 여정의 ‘작은 밑그림’으로 보면 좋겠다. 그리고 이후 다른 원리들을 더해서 문·이과의 지식이 더욱 풍성하고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교양인의 ‘큰 그림’으로 완성해가기 바란다. 또한, 감히 청하지는 못하나 바라건대 장차 강호 제현의 도움으로 12대, 15대, 20대 등의 원리를 담은 책으로 확장됐으면 싶다.

이 책의 10대 원리는 물리·화학의 운동법칙·에너지 보존법칙·엔트로피 증가법칙·맥스웰 방정식·상대성 이론·이중성 원리·확률성 원리·불확정성 원리·수학의 불완전성정리·생물의 진화론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인간적 분류일 뿐이다. 세상만사는 엮여 있으므로 한데 아우르며 파악해야 한다.

과학 이론도 여러모로 평가할 수 있다. 필자는 그중 중요성은 에너지 보존법칙, 근본성은 이중성 원리, 영향력은 진화론이 가장 앞선다고 본다. 하지만 다른 원리들도 독특한 속성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10대 원리를 살펴보며 이를 찾고 음미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개별 원리의 각개 격파

와 전체 체계의 집약 통관에 이르기를 기원한다.

고중숙

전 순천대 화학교육과 교수

문화 비틀어보기_『시장으로 간 성폭력』 김보화 지음 | 휴머니스트 | 392쪽

법조인이 대리하는 ‘성범죄’…점점 상품화 되고 있다

이 책은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성범죄 전담 법인의 문제를 날카로운 시각으로 비판하면서 성폭력 문제 해결의 의미를 다시 짚어낸다. 저자는 오랜 기간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의 활동에 헌신해 왔다. 현재의 사법 체계가 일방적으로 성폭력 가해자의 변호를 위한 다양한 전략을 무책임하게 승인하는 문제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포털 사이트나 검색 사이트에 성폭력 범

자신의 피해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부조리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사법 체계

죄에 대한 법률 정보를 검색하면 성범죄를 전담한다는 사선 변호인 광고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은 역설적이게도 성폭력 범죄에 대한 형량 강화, 신상 공개 제도 운영 등 성폭력 범죄를 엄벌하기 위한 법제도가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다.

『시장으로 간 성폭력』에는 성폭력 피해자, 변호인, 그리고 지원활동가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국선 변호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부조리에 직면한다. 그런데 반대로 가해자는 고액의 사선 변호사를 고용하여 적극적으로 형량을 줄여나간다. 종국적으로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사법 체계의 문제가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난다.

최근의 뉴스를 보면 성범죄 전담 법인에 의해 감형과 무죄 전략이 끊임없이 발명되고 활용된다. 승소 사례집에는 진심 어린 반성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감형되는 사례, 역고소를 통해 피해자에게 이중의 고통을 가하고 재판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강화하는 전략 등이 자랑스러운 성공전략으로 홍보되고 있다. 그러니 가해자가 비싼 사선 변호인을 쓸수록 성폭력 피해자에게 요구되는 ‘피해자다움’

의 무게는 더욱 커진다. 즉, 피해자의 피해가 가해자에 의한 공격 여지가 큰 피해와 그렇지 않은 피해, 무고로 의심받을 피해와 그렇지 않은 피해로 재의미화되는 것이다. 성범죄 전담 법인은 무죄와 감형 전략을 정보화하고 상품화하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억울한 피해자 정체성을 공유하고 법정의 언어를 가해자 중심으로 재조직화한다. 그 결과 상업적 전략이 피해자의 권리 실현과 성폭력 사건의 해결을 어렵게 만들어버린다.

결국 우리 사회가 성폭력을 구조적 폭력의 문제이자 사회 전체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과제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숙련된 법조인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개인 간 싸움을 대리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에게 이익이 되는 더 많은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 또한 남성 중심 법체계에서

유리한 언어를 구사하는 가해자 전담 법조인들이 명성과 부를 쌓아간다.

그래서 저자는 성폭력 문제의 해결을 법적 과정에만 맡기게 된 현실을 성폭력 사건 해결의 사법화, 즉 정치의 사법화 현상으로 진단한다. 정치 과정과 공론을 거쳐 논의되고 합의를 도출해야 할 과제가 엘리트 법관의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성폭력 문제 해결이 오로지 개인의 역량, 다시말해 경제력으로 환원되는 신자유주의적 질서 하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이제 우리에게 던져진 중요한 과제는 성폭력 사건의 해결이란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가장 중요한 전제는 성폭력 사건의 해결은 즉 엘리트 법관의 판결문에 따라 가해자에게 형량이 선고됨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부정의를 바꾸는 투쟁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법적 판결이라는 도달 상태가 아니라 공적 책임을 지고 사회적으로 이 문제를 권력 구조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과정적인 것으로 성폭력 사건의 해결을 개념화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이 문제를 사적인 영역으로부터 끌어내 정치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성폭력 정치는 성폭력 사건 해결의 공공성을 확장하고, 공적 책임의 문제를 환기하여 해결의 조건을 가시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교수

헨리 키신저 리더십

헨리 키신저 지음 | 서종민 옮김 | 민음사 | 604쪽

현존하는 외교의 전설 헨리 키신저가 미 대통령 안보보좌관 겸 국무 장관을 지내며 얻은 수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역사에 비춰 전후 격동의 시기에 각 사회와 국제 질서를 건설한 세기의 리더 6인의 리더십을 살핀 『리더십』이 출간됐다. 논쟁이 벌어지는 전환기에 가장 중요해지는 리더십을 위해 생각해야 할 질문들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2023 기후 전망과 전략

조천호 외 10인 지음 | 착한책가게 | 192쪽

우리 사회 10개 분야의 전문가들이 기후위기와 관련한 현황과 대응, 전망에 대해 들려주며, 문제가 무엇인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잡아가는 데 바탕이 될 핵심을 짚어준다. 특히 최근 발표된 IPCC 6차보고서와 향후 우리나라 기후 정책의 기초가 될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대한 분석과 문제점까지 담고 있어 우리의 현 주소를 제대로 인식하도록 해준다.

모래 군(郡)의 열두 달

알도 레오폴드 지음 | 송명규 옮김 | 히스토리아 | 328쪽

할아버지 나이인 75세의 이 책은 우리의 환경 의식을 바꿔놓은 20세기의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옥스퍼드 출판사가 ‘지구의 날’ 50주년에 특별 개정판을 펴낸 것은 그날이 결코 축하의 색종이를 뿌리고 싶지 않은 근심스러운 기념일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날 세계 환경 소식은 끔찍한 뉴스가 되었다.

임수현의 친절한 사회과학

임수현 지음 | 인간사랑 | 367쪽

우리는 사회적 동물답게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사회적 현상에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가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법, 언론 등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실제 우리 삶의 지평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를 정확히 분석하고 미래를 현실에 가깝게 예측하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

로리 오코너 지음 | 정지호 옮김 | 백종우 감수 | 심심 | 424쪽

이 책은 자살 연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로리 오코너가 25년간의 연구를 집대성한 책이다. 자살의 심리, 원인, 오해, 예방책 등 자살에 관한 정보를 총망라한 종합 안내서다. 저자는 이 책에 자살에 관한 최신 연구뿐만 아니라 자살하는 사람이 남긴 기록, 자살 경험자와 사별자를 인터뷰한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간추린 독일 종교개혁사

롤프 데콧 지음 | 김영식 옮김 | 271쪽

이 책은 16세기 종교개혁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고, 종교개혁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한다. 그 출발점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며, 여기에는 신학적 측면도 고려됐다. 이 책은 무엇보다 ‘개혁’과 ‘쇄신’이라는 두 중심축을 염두에 두고 종교개혁의 전제, 정치적 상황과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해 정리하고 있다.

나의 작은 철학

장춘익 지음 | 곰출판 | 296쪽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철학은 답답하게 느껴졌던 기존의 철학들과 사뭇 다르다. 오히려 내가 직면한 고민들을 어떻게 다룰지에 관한 생각 레시피에 가깝다. 물론 하나의 레시피만 있는 건 아니다. 저마다의 다양한 요리법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요리법 보고 따라 요리하듯 철학이 일상 고민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차근차근 따라가 본다.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

김민철 지음 | 창비 | 256쪽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를 규정하는 이 말을 우리는 당연시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민주공화국’이 무엇인지 설명해보라고 할 때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정말 민주공화국의 주인으로 살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가?

분야별 신간

정치-사회

반포퓰리즘 선언! | 로저스 M. 스미스 지음 | 김혜미·김주만 옮김 | 한울아카데미 | 240쪽

자폐 스펙트럼과 하이퍼월드 | 이케가미 에이코 지음 | 김경화 옮김 | 눌민 | 368쪽

헨리 키신저 리더십 | 헨리 키신저 지음 | 서종민 옮김 | 민음사 | 604쪽

인문

나의 작은 철학 | 장춘익 지음 | 곰출판 | 296쪽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 | 김민철 지음 | 창비 | 256쪽

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 | 로리 오코너 지음 | 정지호 옮김 | 백종우 감수 | 424쪽

서경식 다시 읽기 2 | 우카이 사토시 외 2인 지음 | 연립서가 | 479쪽

임수현의 친절한 사회과학 | 임수현 지음 | 인간사랑 | 367쪽

철학, 개념 고대에서 현대까지 | 박준영 지음 | 교유서가 | 472쪽

역사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 |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지음 | 이신철 옮김 | 에코리브르 | 456쪽

문학-에세이

가버릴 것들을 향한 사랑 | 정홍수 지음 | 문학동네 | 572쪽

없는 층의 하이쎈스 | 김멜라 지음 | 창비 | 332쪽

경제

이코노믹 허스토리 | 이디스 카이퍼 지음 | 조민호 옮김 | 서경B&B | 416쪽

과학

모래 군(郡)의 열두 달 | 알도 레오폴드 지음 | 송명규 옮김 | 히스토리아 | 328쪽

학문의 주먹⑩

현대국가는 지식국가다. 지식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대학에서 나온다. 그런데, 대학과 학문이 붕괴되고 있다. 한국만큼 대학에 투자하지 않는 국가도 없다. 대학과 학문, 교육에 대한 비판적이고 통찰력 있는 분석이 필요한 때다. 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쓰고, ‘지식과 권력’ 3부작을 내놓았던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과)가 도발적인 문제 제기에 나섰다. 학문과 정책(정치)의 연결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교육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사회적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출판했다(EBS 다큐멘터리K ‘서울대 10개 만들기’ 방영). 지식과 권력 3부작인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지민의 탄생: 지식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지성의 도전』, 『하이브리드 한의학: 근대, 권력, 창조』를 출간했다.

태재대, 존스 홉킨스, 그리고 위대한 기업인

‘대한민국에 이토록 수준 높은 기업인들이 있었나?’ 『서울대 10개 만들기』 출판 이후에 나는 여러 기업인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반응은 꽤 고무적이었다. ‘당신 말이 맞다.’ ‘지식경제 시대에 세계적인 대학이 전국에 필요하다.’ ‘나도 스탠퍼드와 실리콘밸리에 가 봤다.’ ‘세계적인 대학 없이는 세계적 기업이 나오기 힘들다.’ ‘서울대 10개 만드는데 우리 기업인이 도와줄 일이 없나?’ 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기업인이 꽤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치인이 한국의 미래를 바꿀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기업인이 나서야 한다.

美 기업인이 연구중심대에 기부하는 이유

1876년 세워진 존스 홉킨스대학은 미국 대학이 세계 최고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존스 홉킨스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창조권력인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했다. 볼티모어의 기업인 존스 홉킨스는 전 재산의 반을 이 대학의 설립에 바쳤다. 이 대학의 초대 총장인 대니엘 길맨은 당시 최고의 연구중심대학이었던 독일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한 경험이 있었다. 공격적으로 연구 중심대학이 된 존스 홉킨스는 미국 전역의 대학

들이 연구중심대학으로 탈바꿈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 대학사의 대가 존 텔린은 미국에 ‘진짜 대학’이 탄생했다고 평가했다.

존스 홉킨스와 같이 미국의 위대한 기업인들은 최고 대학을 세우는데 자신의 재산을 바쳤다. 에즈라 코넬(코넬대학, 1865년), 코넬리어스 밴더빌트(밴더빌트대학, 1873년), 존 록펠러(시카고대학, 1890년), 릴랜드 스탠퍼드(스탠퍼드대학, 1891년), 제임스 듀크(듀크대학, 1924년) 등 미국의 기업인들은 미국 전역에 최고의 대학을 세웠다. 미국 기업인은 사립대 뿐만 아니라 주립대에도 큰 기부를 했다. 당대 캘리포니아에서 스탠퍼드 가문과 쌍벽을 이루었던 허스트 가문은 버클리에 대대적인 기부를 하여 오늘날의 버클리를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의 미국 기업인들은 새로운 대학을 세우기 보다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에 대대적인 기부를 하고 있다. 블룸버그 회장 2조3천904억(존스 홉킨스대학), 도어 회장 1조4천608억(스탠퍼드 대학), 나이트 회장 1조3천280억(오리건대학), 레스닉 회장 9천960억(칼텍), 무어 회장 7천968억(칼

위 사진은 서울 종로에 있는 태재대 인재발굴센터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은 태재대 설립자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과 볼티모어의 기업인이었던 존스 홉킨스다.

존스 홉킨스라는 위대한 기업인이 미국 대학의 발전을 통해 미국을 바꾸었듯이, 한국 대학의 발전을 통해 한국의 미래를 바꿀 위대한 기업인들이 나타날까?

대학은 꿈으로 이루어진 조직이다. 한국 대학은 꿈을 이루기 위해 위대한 기업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텍), 저커버그 회장 6천640억(하버드대학) 등 미국의 무수히 많은 기업인들이 대학에 기부하고 있다. 미국 기업인의 대대적인 기부는 미국 대학이 세계 최고의 명성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태재대와 존스 홉킨스의 차이

왜 미국 기업인들은 대학에 기부할까? 대학이 세상을 바꾸고 인재를 키우고 국가를 부강하게 만든다는 거의 종교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존스 홉킨스, 릴랜드 스탠퍼드, 존 록펠러가 가장 잘한 일은 대학에 투자한 것이었다. 세

계 의학의 중심인 존스 홉킨스대학, 3차 산업혁명을 일으킨 스탠퍼드대학, 노벨경제학상의 메카 시카고대학 등 미국이 세계 최고의 경제·기술력문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미국 기업인들의 대학에 대한 종교와 같은 믿음 때문이었고, 결국 그들이 옳았음을 역사는 증명했다.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은 한국판 미네르바 대학인 태재대 설립을 위해 3천억 원을 기부했다. 태재대는 세상을 바꿀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여기서 우리는 태재대와 존스 홉킨스의 차이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전자는 교육중심대학이고, 후자는 연구중심대학이다. 대학사회

학의 창시자 버턴 클락이 말했듯이 현대 대학은 ‘연구중심대학의 승리’로 요약될 수 있다. 곧 인터넷·반도체·원자력·무선통신·mRNA 백신 등 무수히 많은 핵심 원천기술은 교육중심대학이 아니라 ‘연구중심대학’에서 개발되었다. 교육중심대학이 세상을 바꿀 인재를 길러낸다면, 연구중심대학은 직접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현재의 미국 기업인들은 거의 대부분 ‘연구중심대학’에 기부를 하고 있다, 왜냐하면 대학이 직접 세상을 바꾸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이 없다…위대한 기업인을 기다린다

존스 홉킨스라는 위대한 기업인이 미국 대학의 발전을 통해 미국을 바꾸었듯이, 한국 대학의 발전을 통해 한국의 미래를 바꿀 위대한 기업인들이 나타날까? 서울대도 3천억 원이 필요하다. 서울대는 중장기 발전계획에서 컴퓨팅 단과대학(School of Computing)을 설립하여 AI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문제는 돈이 없다. 카이스트도 3천억 원이 필요하다. 의대 설립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BT 혁명을 일으키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문제는 돈이 없다. 부산대도

3천억 원이 필요하다. 조선·영화·기계·금융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문제는 돈이 없다. 경북대도 3천억 원이 필요하다. 제2의 반도체 혁명을 일으켜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문제는 돈이 없다. 경상대도 3천억 원이 필요하다. 우주항공학의 선두 주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문제는 돈이 없다.

사실 내가 재직하는 경희대도 3천억 원이 필요하다. 나는 강력한 리더십과 충분한 예산만 있으면 경희대가 SKY도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3천억 원의 기부를 받는다면 노벨의학상을 위해 의대에 2천억 원, 노벨경제학상을 위해 경제학과에 5백억 원, 노벨문학상을 위해 국문학과에 5백억 원을 지원하겠다. 이것이 단지 꿈이라고 당신이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1891년 캘리포니아의 한 농장에 스탠퍼드대학이 세워졌을 때 누구도 이 대학이 3차 산업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상상치 못했다. 꿈이 없다면 창조도 없고 대학도 없다. 왜냐하면 대학은 꿈으로 이루어진 조직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은 꿈을 이루기 위해 위대한 기업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글로컬 오디세이

대만 정치의 막후 세력, 온라인 부대 망군

이광수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중국인민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양안관계와 통일모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대만 신문의 정치양극화 연구」(2022), 공역서로는 『중국 정책결정: 지도자, 구조, 기제, 과정』(2018) 등이 있다.

대만의 온라인 소통 공간에서 주로 활동하는 ‘망군’(網軍)은 중국의 우마오당(五毛党)이나 한국의 댓글부대와 유사하다. 정부 부서 혹은 정당

의 외곽조직으로 목표 달성을 위해 인터넷 공간에서 활동하는 인원을 의미한다. 해킹 등 인터넷 기술을 이용해서 특정 대상을 감시하거나, 일부러 가짜 뉴스 등의 정보를 흘려서 혼란을 야기하는 등의 행위로 정치적 여론을 변화시키는 활동을 한다.

대만의 망군은 정당에 대한 지지 여부를 기준으로 민진당·국민당·민중당·중도파·친중파 등의 5개 세력으로 구분된다. 민진당 망군은 현재 집권당인 민진당의 차이잉원 정부의 대만 독자노선을 지지하며, 국민당 망군은 대만 최대 야당인 국민당의 중국과 관계 개선을 지지한다. 민중당 망군은 제3의 정치세력으로 민진당과 국민당을 함께 비난한다. 중도파 망군은 어느 정당에도 소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무당파층 네티즌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친중파 망군은 대만 내부의 친중국 입장을 취하는 네티즌이라는 입장도 있고, 대만 소셜미디어에 직접 참여하는 중국 네티즌이라는 주장도 있다.

최근 대만에서는 망군을 지칭하는 용어로 ‘1450’과 ‘타뤼반’(塔綠班)’이라는 숫자와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1450’은 대만 정부 부서인 농업위원회의 2019년도 ‘농업정보화 강

화 계획’ 예산액인 1천450만 대만달러에서 유래됐다. ‘타뤼반’은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이름인 탈레반의 중국어 발음과 민진당을 의미하는 ‘녹(綠)’색의 중국어 발음이 유사하다는 사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민진당의 차이잉원 정부가 정권 운영을 독점하는 것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국민당을 비롯한 범남진영이 민진당 망군을 풍자·조롱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2018년 태풍 ‘제비’가 일본 간사이공항을 강타했을 때, 당시 발이 묶인 대만인 관광객에 대한 대처를 잘하지 못했다는 인터넷 비난으로 결국 당시 대만 영사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2021년 대만의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인 PTT에서 친중국 인사가 당시 코로나 방역본부인 질병관제서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글을 올렸는데, 이에 대해 민진당 정부는 중국의 온라인 심리전을 펼치고 있다고 비난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커뮤니티 내부에서 글쓴이가 대만인이며 민진당과 깊이 관련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폭로됐다. 전자의 주요 인물인 카신 양후이루, 후자와 관련 있는 인물 린웨이펑 모두 민진당 지지자이거나 당관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로 드러나면서, 망군 중에서도 특히 민진당 망군에 대한 비판이 극에 달했다.

중국과의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는 대만에서는 민족 정체성의 심화, 정치적 양극화, 양안 관계의 민감성 등의 여론 형성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한다. 당연히 인터넷 공간에서의 토론이 활발해지고, 행태도 다양한 양상을 보이면서,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다. 2014년 태양화 학생운동, 2016년 총통선거 쯔위 사건, 2019년 홍콩 반중시위, 2020년 선거 등 선거와 정책, 대중관계와 관련한 이슈를 둘러싸고 치열한 토론이 온라인 공간에서 진행돼 왔다.

재미 대만학자 왕홍언 교수는 대만의 인터넷 행동주의가 활발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사회적 변화로 설명했다. 2020년 대통령 선거 이후 코로나 팬데믹에 의해, 사람 간의 접촉이 힘들어지면서, 오프라인의 사회 네트워크가 불안정해지고

대만 망군 즉 댓글부대는 활발한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대만 온라인쇼핑사이트에서 실제 판매하는 망군 티셔츠는 350위안(약 1만4천원)이다. 망군출정 촌초불생(網軍出征 寸草不生): 망군이 출정하면 풀 한포기도 자라지 못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오른쪽). 사진=픽사베이, ap930055 샵 스토어 웹사이트

대중 집회나 시위를 조직하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사회운동이 감소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일반 시민들로 하여금 인터넷을 통해 정보습득을 하는 비율을 점차 증가시켰다고 지적했다.

특히 팬데믹으로 인해 대만에서 인터넷 행동주의가 활발해지면서 나타난 새로운 특징을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가 다양해지면서 사람들은 정당 편향보다는 취미·예술·문화 등 자신들이 선호하는 커뮤니티사이트에 머무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민진당 지지자들이 페이스북을 선호하고, 국민당 지지자들이 유튜브를 더 많이 이용하며, 젊은 층도 자기 세대만의 커뮤니티 사이트에 머무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둘째, 더 이상 익명에 의한 콘텐츠에 몰두하는 것이 아닌, ‘실

제 인간’에 대한 선호로 돌아섰다. 1인 미디어의 활성화는 비즈니스와 자기표현에 솔직하고 과감한 디지털 네이티브의 속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유튜브나 틱톡 등의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망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2024년 1월 13일은 대만의 새 정부가 들어서는 선거일이다. 현재 집권 민진당의 라이칭더 부총통 겸 민진당 당주석, 야당인 국민당의 호요우위 신베이시 시장, 제3당인 민중당의 커원저 전임 타이베이 시장이 총통 후보로 경쟁하고 있다. 정당과 후보자 개인 간의 지상전뿐만 아니라, 가상 공간에서의 망군에 의한 공중전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한예종 ‘석‧박사 개설’ 법안에 예술대학 반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석‧박사 과정을 개설하는 내용의 ‘한예종 설치법’ 발의에 사립 예술대학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김윤덕‧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한예종 설치법은 한예종에 정규대학처럼 석‧박사 학위 과정의 대학원을 둘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예종은 고등교육법상 대학이 아닌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예술학교인 ‘각종학교’로 분류돼 석‧박사 학위 수여가 불가능하다. 이에 한예종은 해외 대학과의 교류에도 제약이 있고, 석사 과정에 상응하는 예술전문사 과정 수료생이 학위를 받지 못해 취업에 불이익이 있다는 주장이다.

‘한예종 설치법’은 한예종의 숙원 사업으로, 앞서 1999년과 2006년에도 두 차례 추진했지만, 다른 예술대학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반대의 목소리는 여전히 거세다. 지난 30일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과 한국예술교육학회는 국회 본관 앞에서 천여 명 규모의 규탄 집회를 열어 ‘한예종 설치법’ 철회를 요구했다.

전국예술대학총학생연합과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이 지난달 30일 국회 본관 앞에서 ‘한예종 설치법’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천여 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한예종이 각종학교로 교육과정 편성과 입학정원관리, 교원 채용 등 교육부 통제 없이 운영되는데, 법을 제정해 특혜만 받아가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어일선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 운영이사(청주대)는 “한예종이 대학원까지 두게 될 경우 지금도 국내 예술계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는 한예종의 예술 독식이 심화될 수 있다”라며 “이는 수도권 집중

을 심화시키고 지역예술 균형발전을 저해하는 악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영수 전국예술대학총학생연합 대표(중앙대)는 “지역 예술대학은 죽어가고 있는데 왜 한예종만 특별 대우하는가”라며 “한국의 예술은 한예종만이 만드는 것이 아니며 한예종은 한예종의 역할이, 예술대학은 예술대학의 역할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신다인 기자 shin@kyosu.net

이공계 대학생 10명 중 4명, 전공 부적응

과학기술분야 인재 확보의 중요성이 매우 커졌지만, 이공계 대학생들의 상당수가 자신의 전공 적응과 만족감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이슈브리프 최신호에 따르면, 과학기술 분야 4년제 대학에 진입한 학생들의 38.8%가 ‘부적응’ 유형으로 분류됐다.

반면, 전공 성취와 전공-적성 일치가 높으며, 진로 탐색도 활발히 하고 대학과 전공 공부에 잘 적응하는 특징이 있는 ‘고성취-적응’ 유형은 23.3%에 불과했다.

전공 성취 수준도 높고 진로 탐색도 활발히 하지만, 전공-적성 일치 여부나 대학·전공 적응 및

만족도와 관련하여 비교적 낮은 ‘진로탐색’ 유형(38%)도 상당히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고교 졸업 후 6년 이내 이공계 대학원에 진학하는 비율은 ‘고성취-적응’ 유형(17.5%), ‘진로탐색’ 유형(10%), ‘부적응’유형(3%) 순이었다. 다만, ‘부적응’ 유형이지만 아버지의 직업이 관련 분야 연구개발직인 경우 대학원 진학률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고등학교 단계부터 이공계 진학 혹은 직업을 희망했지만, 대학에 들어와 학업과 전문성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성취 동기가 저하되거나 부적응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분석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고교 시절 과학기술 관련 대학 전공이나 직업을

희망한 학생(1천883명)의 절반가량(50.7%)은 ‘성취·동기 저하’ 유형으로 분류됐다.

또 이공계 대학생 중 가구소득이나 부모의 학력 수준이 높을수록 성취도는 높지만, 전문가가 되는 것에 대한 가치 부여가 낮을 확률이 높았다.

이수현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저출산 등으로 향후 신규 과학기술 인력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일반 중등교육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양질의 과학기술 분야 심화학습과 진로 탐색 기회를 확대하고, 이공계 대학 진학 이후에도 대학생활 적응 및 세부 분야로의 진로 지원을 내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다인 기자 shin@kyosu.net

연 4천만 지원하는 학술연구교수A유형, 432개 과제 선정

교육부, 인문사회분야 학술지원사업 발표

박사학위를 소지한 비전임 연구자에게 5년간 4천만 원을 지원하는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지원예산은 전년 대비 78% 증가했다. 지난해에 90억 원이었던 예산은 올해 160억 원으로 증액됐고, 선정과제 수도 지난해 376개에서 432개로 늘어났다.

교육부는 2023년 인문사회분야 학술지원사업 신규과제(6월 1일 개시) 선정결과를 지난 30일 발표했다. 6월 1일 개시되는 개인(공동)연구 분야는 8개 사업은 총 1천464개 과제이며 선정결과는 한

국연구재단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사취득 후 10년 이내 또는 조교수 임용 5년 이내인 연구자에게 1~3년간 연 2천만 원 이내를 지원하는 신진연구자 지원 사업은 425개를 올해 선정했다. 10년간 연 1천만 원, 1~3년간 2천만 원 이내를 지원하는 중견연구자 지원 사업은 394개를, 5년(3+2)간 연 5천만 원을 지원하는 우수학자 지원 사업은 10개를 선정했다. 이 외에도 우수연구자의 연구성과 집대성 지원을 위한 공동연구 지원 사업은 72개를 선정해 1~3년간 5천만 원·8천만 원·1억 원을 지원한다. 인문사회 기반 이공분야와의 융합연구 지원을 위한 융합연구 지원 사업

은 12개 분야를 선정해 3년간 1억5천만 원을 지원한다. 대중과 학계의 교류 이해에 기여하기 위한 저술출판 지원은 81개를 선정해 2~3년간 1천만 원을 지원한다. 동서양의 명저를 체계적으로 번역·보급하기 위한 명저번역 지원에는 38개 과제를 선정했다.

이윤홍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은 “건강한 인문사회 학술생태계 조성을 위해 성장 단계별(신진-중견-우수) 연구와 비전임 연구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한양대, 염증성 장 질환 활성산소

제거하는 항산화제 플랫폼 개발

이동윤 한양대 생명공학과 교수팀이 염증성 장 질환의 새로운 치료 방법을 개발했다. 금 나노입자 기반의 나노자임을 활용해 염증성 장 질환에서 다중 위험 신호를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체내 항산화 효소의 양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우리몸에 염증 반응이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이 되는 활성산소를 모두 처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체내에서 효소 역할을 하는 나노자임은 외부 표면적을 극대화하는 특성이 있어 염증성 손상 치료에 유용하다. 하지만

기존 금 나노자임은 과산화효소 유사 활성으로 인해 다른 활성산소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 교수팀이 개발한 금 나노입자 기반 나노자임인 아우로자임은 염증 부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종류의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아우로자임은 표면이 고분자 화합물로 코팅되어 장 점막에 흡착된 후 활성산소를 유익한 물 및 산소 분자로 변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100배 향상된 염증 제어 효과를 보인다.

이 교수팀은 쥐 실험에서, 손상된 장의 활성산소를 억제하고 염증 세포 동원을 감소시켜 장 조직의 재생을 촉진함으로써 장내 미생물 균형을 복구시키는 결과를 확인했다.

이번 연구는 류마티즈 염증 질환, 급성폐손상, 피부질환 등 염증활성을 제어해야 하는 급성염증성 등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해당 논문은 한양대 생명공학과 김형식 박사와 이시은 석사가 제1 저자로 참여하고, 이동윤 교수가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상명대 재직 동문 교수회, “후배들에게 사랑을 전합니다”

이번 제자사랑 장학금을 받은 상명대 학생 57명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상명대 동문 교수 47명은 후배들을 위해 모은 장학금 4천 7백만 원을 후배이자 제자인 학생 57명에게 전달했다. 지난달 31일 미래백년관에서 장학금 수여식을 진행했다.

동문 재직 교수들이 매월 월급에서 일정액을 모아 장학금을 조성하고, 후배들에게 전달하는 이 활동은 2011년부터 시작됐다. 올해까지 640여 명의 학생들에게 5억 5백여만 원이 장학금으로 전달됐다.

장학금 수여 대상은 교수들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다. 학업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거나, 학교생활에 열심히 참여하여 타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

는 학생, 가정 형편상 교육비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학생 등 다양하다.

교수회는 “학생 시절 학교로부터 받은 사랑을 제자이자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라고 설명하며, “후배이자 제자인 학생들이 다시 다음 후배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유길상 명예교수, 한국기술교육대 총장 취임

유길상 한국기술교육대(이하 한기대) 명예교수(사진)가 1일자로 한기대 제10대 총장으로 취임해 업무를 시작했다.

유 총장은 대신고와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하와이 주립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1979년 제23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 공직에 첫발을 내딛었으며,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 한기대 테크노인력개발전문대학원 교수, 한국고용정보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유 총장은 “데이터 기반의 학생 맞춤형 성장 지원 및 평생직업능력 개발의 허브 역할 강화, 구성원과 함께하는 지속 가능한 경영혁신을 통해 한기대가 ‘위대한 대학’으로 도약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윤대원 일송학원 이사장, 아시아 첫 ‘린네 메달’ 수상

윤대원 학교법인 일송학원 이사장(사진)이 스웨덴 웁살라대학교가 주관하는 ‘린네 메달(Linnaeus Medal)’ 금메달을 받았다.

린네 메달은 매년 과학 분야에서 우수한 업적을 거둔 인물에게 수여한다. 린네 메달의 역대 수상자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미셸 마이어 교수,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교수 등이 있다.

윤 이사장은 2020년 수상자이며, 당시 코로나로 미뤄졌던 수여

식을 올해 개최했다. 윤 이사장은 2007년부터 17년째 한림대와 한림대학교의료원과 웁살라대학교 교류를 이끌어오며 양국의 의과학 수준을 향상했다는 평을 듣는다.

윤대원 이사장은 “메달 수상을 가슴에 새기고 전 인류 및 우주의 공존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기룡 부경대 교수, 한국멀티미디어학회 최우수논문상 수상

권기룡 부경대 교수(인공지능공학부·사진)가 한국멀티미디어학회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권 교수는 최근 2023년 한국멀티미디어학회 춘계학술발표대회에서 논문 ‘심층 강화학습을 이용한 디지털트윈 및 시각적 객체 추적’이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돼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권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멀티미디어학회 논문지 제25권 2호에

게재한 이 논문은 DQN 모델의 심층 강화학습을 이용해 디지털트윈 및 객체 추적에 대해 연구한 성과를 실었다.

권 교수 연구팀은 이 논문에 이은 파생 연구 결과로 SCI 저널 3편, 국내외 학술대회 5편 등 논문과 특허출원 및 기술이전 각 1건 등 우수성도 높이 평가받았다.

한국멀티미디어학회는 9천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IT 분야의 대규모 학회로, 매년 직전년도 1월호에서 12월호까지 논문지에 게재된 논문 가운데 심사를 거쳐 최우수 논문을 선정해 시상한다.

윤영휘 경북대 교수, 케임브리지대 클레어 홀 펠로우에 선정

윤영휘 경북대 교수(사학과‧사진)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클레어 홀의 객원 펠로우로 초빙됐다. 윤 교수는 오는 8월부터 내년 7월까지 1년간 케임브리지에 머물며 18세기 말 영국 정치 세력의 ‘도덕자본’에 대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윤 교수는 이 기간 동안 ‘18세기 후반 복음주의 노예무역 폐지주의-위기와 도덕 자본의 결합’이라는 주제로 리처드 버크 케임브

리지 대학 교수 등과 함께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며, 함께 초빙된 세계 유명 학자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할 예정이다.

케임브리지 대학 클레어 홀은 학내 교수의 추천으로 인문, 사회, 자연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세계 유수의 학자를 초빙해 1년간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숙연 전북대 교수, 대만 우수한국번역도서상 수상

이숙연 전북대 교수(중어중문학과‧사진)가 번역한 박범신 소설가의 『고산자』가 주 대만 한국대표부가 주관한 ‘2023 대만 우수한국번역도서상’을 수상했다.

『고산자』는 대산문화재단의 문학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대만에서 출간돼 한국 현대 문학의 아름다움을 외국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상은 주 타이베이 한국대표부가 영어와 일본어 다음으로 대만에 많이 소개되고 있는 한국 문학 작품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우수 번역자를 격려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이숙연 교수는 “한국 현대문학의 아름다움을 외국에 널리 알리기 위해 했던 일이 대만 현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아 기쁘다”며 “이를 계기로 대만에 한국문학의 다양성을 더 많이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종연 인제대 교수, 중국미술관 고문으로 임명

박종연 인제대 교수(국제어문학부‧사진)가 최근 중국 유일의 국가미술관인 중국미술관 개관 60주년 행사에서 중국미술관 고문으로 임명됐다.

‘중국미술관 고문’은 중국미술관이 문화 예술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거나 공헌한 인물을 선정해 수여한다. 박 교수는 2018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치바이스 전시와 2019년

베이징에 개최된 추사 김정희 전시의 한국 측 기획을 맡아 성공적으로 전시를 치르는 등 한중 예술 교류 발전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동안 중국미술관 국제고문으로는 임명된 인사로는 세계적 명성의 프랑스 미술아카데미의 원사인 디디에 베른하임, 기 드 루즈몽, 블라디미르 벨리코비치, 필립 가렐과 현재 호주 국가박물관 관장인 매튜 트린카,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인 토마스 바흐 등이 있다.

“학생 중심·대학-지역 상생 이끄는 ‘플래그십 대학’으로”

인터뷰_ 양오봉 전북대 총장

해현경장(解弦更張). ‘거문고의 줄을 바꾸어 매다'라는 뜻으로, 느슨해진 것을 긴장하도록 다시 고치거나 제도를 개혁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달 27일 취임 100일을 맞은 양오봉 전북대 총장(61세)은 100일의 성과를 이렇게 표현했다.

100일 동안 18개 단과대학 순회 간담회를 비롯해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만났고, 지자체와 국내 최고 연구소·기관·기업·해외 대학에 이르기까지 협약만 14건이나 체결했다.

전북대는 학과 중심에서 전공(트랙) 중심의 학사구조로 개편한다. 학생들이 전공을 더 폭넓게 선택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 양 총장은 “학생들이 오고 싶고, 다니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대학을 만들기 위해 학생이 전공을 폭넓게 선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학의 체질을 확 바꾸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맞춤형 교육뿐 아니라, 학제 간 협력과 집단연구를 활성화해 세계 100위권 학문 분야 육성도 꾀한다. ‘글로벌 탑 100’은 양 총장의 핵심 비전이다.

양 총장은 지역발전을 위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견인하는 지역의 가장 큰 연구소가 되겠다고 했다. 대학과 지역의 상생을 이끄는 ‘플래그십 대학’을 통해 글로컬대학으로 담대하게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구체적 실행을 위해 ‘JBNU 지역발전연구원’을 설립한다. 전라북도 14개 시군에 지역마다의 특화산업을 육성하는 지역발전연구소를 둘 계획이다. 이미 3월에 남원발전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했고, 익산발전연구소도 설립 논의가 한창이다.

글로컬대학30 신청 마감 열흘을 앞둔 지난달 22일 전북대 총장실에서 양 총장을 만났다.

△ 취임 100일이 지났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쏜살같이, 시간이 흘렀다. 엄중한 시기인 만큼 내 식구들과의 소통을 먼저 챙겼다. 18개 단과대학을 돌며 교수님들을 만나고, 직원 선생님들, 학생들과도 틈만 나면 간담회를 가졌다. 딱딱하고 틀에 박힌 만남의 자리가 아니라 길 위에서, 도서관에서, 맥줏집에서 학생들을 만났다. 대학 구성원 모두와 정책과 비전에 관한 생각을 나눴다. 솔직히 처음엔 조금 막막했는데, 함께 위기를 극복해 보겠다는 저의 열정이 전해져서 구성원들의 마음을 많이 연 것 같다. 역시 직접 만나야 마음과 마음이 맞닿는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을 체감한다. 한 달이 일 년이 되고, 마침내 총장직을 마치는 순간까지 손 붙잡고 어깨동무하고 가겠다.”

△ 대학가의 화두는 단연 ‘글로컬대학 30’ 사업이다. 전북대는 어떻게 준비했나.

“다른 대학도 모두 마찬가지지만 우리 역시 총력을 기울였다. 학생들에게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대학과 지역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좋은 혁신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직원과 학생, 지역민에 이르기까지 대학의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대한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이 사업을 준비해 나가면서 지자체나 국내 최고의 연구소, 기관, 기업, 해외대학에 이르기까지 협약 기관만 해도 43곳에 이른다. 수치로만 따지면 취임 이후 4일에 한번 꼴로 여러 기관들

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것이다. 글로컬대학30 사업 선정을 위해 전북대가 얼마나 열정적인지, 이 사업이 우리의 생존에 얼마나 절실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 글로컬대학30 사업은 대학 자체적인 체질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전북대는 어떤 구상을 갖고 있나.

“먼저 학생 중심의 전북대를 만들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학생들이 단과대학이나 학과 간 벽을 과감히 허물어 신입생 모집 단위를 광역화해서 학생들이 공부하고 싶은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배울 수 있는 교육 시스템으로 전환할 것이다. 유사 교과목 통합 그리고 지역과 사회 수요에 맞는 새로운 교과목 개설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둘째, 어느 지역에나 여러 문제로 폐교된 지방대학이 있다. 그런데 폐교된 지방대학은 지역경제를 위축시키고, 지역소멸을 더 빠르게 만든다. 각 지역에서 지역경제 침체와 지역소멸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폐교된 지방대학 캠퍼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에 전북대에서 전북 지역의 폐교 대학 캠퍼스 부지를 활용해서 지역특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지역재생 모델을 처음으로 제안하고 이를 구현하고자 한다. 이와 관련된 세부적인 일들을 해당 자치단체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셋째, 지역대학 간 벽을 과감히 허무는 데 전북대가 앞장서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전북대의 교육 인프라, 연구 시설 및 장비, 대학 내 편의시설을 전북 내 다른 대학의 학생들에게 전면 개방하고자 한다. 특히, 글로컬대학 사업의 예산을 다른 지역대학과 공유할 것이다. 또한 지역대학 간 연계를 지역기업까지 확장해서, 새만금 부지에 이차전지산업, K-방위산업 등 지역특화 산업 기반의 지역대학과 지역기업 상생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운영할 계획을 수립했고 실무 협의를 추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외국인 대상의 다양한 온오프라인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해 유학생 5천 명을 전북대에 유치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는 베트남 출신 유학생 유치를 위해 베트남 국제캠퍼스 구축을 추진 중이며, 아프리카와 교류의 물꼬를 트기 위해 최근 모로코 명문대학에 한국학 교육 및 연구 기관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국제캠퍼스, 기관 등과 연계해서 우수 외국인 유학생들을 전북대에 유치하고자 한다. 이들 유학생이 전북에 정주하도록 환경조성 및 개선도 노력할 것이다.”

△ 글로컬대학30 사업에 정책적으로 보완하거나, 함께 지원하는 다른 대학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나.

“글로컬대학30 사업은 지역혁신 주체들 간 공유와 협력을 핵심으로 한다. 취임 이후 4일에 한번 꼴로 여러 기관들과 협약을 체결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연계 기관들은 작은 이익에 집착하기 보다는 큰 틀에서 대학과 지역사회가 어떻게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을지 ‘한솥밥 정신’으로 솔루션을 찾아가야 한다. 함께 지원을 준비하는 대학들도 공유와 연대를 강화해서 각 대학들이 경쟁 상대가 아니라 운명공동체임을 인식하고 사업을 준비하면 좋겠다.

정책적으로는 우선 정부의 차등적 금전 지원

양오봉 총장은

전주고와 고려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장과 대통령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문위원, 에너지-AI융합대학원 인력양성사업단장, 에너지신사업 혁신공유대학사업단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전북 지역혁신협의회 위원, 전북특별자치도 국민지원위원장, 대통령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문위원, 국무국무총리 산하 새만금위원회 토지개발분과위원장 등 정부 정책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140편의 국내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했고, 38건의 국내외 특허를 보유하는 등 에너지 분야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력도 보유하고 있다. 지식경제부 장관상과 모로코 에너지자원환경부 장관 표창, 국제태양광컨퍼런스 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학과 중심에서 전공(트랙) 중심으로 학사구조 개편

학과·단과대학 벽 허물어 학생 전공선택권 확대

학제 협력·집단연구 활성화 ‘글로벌 탑100’ 실현

한국음악은 세계 1위…판소리 융합 등 새 장르 창출

전북 14개 시군 경쟁력 키우는 ‘지역발전연구원’설립

기초 지자체 지역 특화산업·지역소멸 방지 대책 제공

이라는 것이 대학 간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고, 안 그래도 어려운 지역의 작은 대학들에게 오히려 이 사업이 치명타로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지역 간 경제기반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역에 특별히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려주는 정책적 배려도 필요해 보인다.”

△ 지역과 대학의 상생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RIS 사업은 어떻게 추진하고 있나.

“RIS 사업은 5년간 총 2천145억 원이 투입되는 교육계 최대 재정 지원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전북대는 자율주행차나 전기차, 드론 등을 총 망라하는 미래수송기기 분야 신산업 육성과 융합인재 양성에 나선다. 또한 전라북도가 2025년 본격화 예정인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시범지역으로 선정됐다. 그간 중앙정부 주도로 이뤄져 온 대학 지원이 지역 주도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지역 현실과 전략에 맞는 부분에 집중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RIS 사업과 함께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학 내외 벽을 허물고 전라북도와 잘 화합하며, 공동의 국책과제를 발굴하고 지방소멸 위기를 함께 돌파해 나가겠다.

대학과 지역이 글로벌 수준으로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 최근 지역사회 수요에 선제적 대응을 위해 배터리 분야 전공도 신설하기로 했다.

“지자체·산업체 등 대학 내외 인력양성 요구를 수렴해 배터리융합공학 전공을 내년에 신설하려 한다. 전라북도, 새만금개발청, 국방과학연구소와 업무협약도 가졌다. 새만금 국가산업단지에 2차전지와 방위산업 관련 기업투자가 이어지면서 관련 인재수급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고, 전라북도도 이 분야를 성장동력 산업으로 육성하기 때문에 전북대가 지역사회의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의미가 있다. 새만금에도 (주)LG화학 등 국내 굴지 기업 인프라가 축적되는 만큼 배터리융합공학 전공 개설이 학생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인 2차전지 산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기업 유치 핵심인 인력확보를 이뤄 대학과 지역의 미래를 완성해 나가려고 한다.”

△ 지역과 상생하는 총장이 되겠다고 했다.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지역과 지역대학 발전은 이미 불가분의 관계로 전북대가 지역 발전의 주축이 되는 ‘플래그십 대학’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전북대에는 1,100여 명의 최고급 두뇌와 월드클래스 연구소들이 있다. 특히 의학, 약학, 수의학, 공학, 농생명 분야 연구는 세계 수준을 자랑한다. 이러한 우수 인프라를 지역발전과 적극적으로 접목하려 한다. 대학 내에 ‘JBNU 지역연구원’을 만들고, 산하에 전북 14개 시군의 특화산업을 육성하는 ‘지역발전 연구소’를 둔다. 이미 3월에 ‘남원발전연구소’를 설립하기로 남원시와 협약을 했고, 익산발전연구소 설립도 구체적 논의가 한창이다. 지역 특화 산업과 연관된 대형국책사업을 발굴하고, 지역 소멸 방지 대책과 지역 기업의 애로기술에 대한 솔루션도 제공할 계획이다.

또한 제가 지역민들의 염원을 담아 출범하는 ‘전북특별자치도 국민지원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봉사하게 됐다. 전북 발전 솔루션을 담은 655개 특례가 특별법 개정을 통해 원활히 이뤄지게 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다.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지역과 대학이 상생하는 초석을 놓는 총장이 되겠다.”

△ 앞으로의 포부 한 말씀.

“학생이 마음 놓고 공부에 전념하고, 교수들은 즐겁게 강의하고 연구하며, 직원들은 신바람 나게 창의적으로 일하는 곳. 이런 대학을 임기 중 최대한 빨리 만드는 게 꿈이다.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안팎으로 더 많이, 더 멀리 뛰겠다.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고 했다. 끈기 있게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전북대의 미래가 곧 전북의 미래라는 신념으로, 지역대학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지역과 상생 발전하는 길로 나아가겠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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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교육개혁, 고등교육 재구조화로 이어져야

김경화 편집기획위원

동의과학대 경찰경호행정과 교수_기획처장

교육부가 제시한 ‘글로컬대학’으로의 방향은 모든 대학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많은 대학의 구성원들이 적지 않은 우려를 하고 있다. 혹여 이 사업이 사실상 지역거점 국립대나 공립대, 대규모 사립대 등에게만 유리하게 진행되지 않을지의 ‘편향성’ 문제와 그로 인해 비수도권 대학의 ‘새로운 서열화’와 구조조정의 ‘가속화’도 걱정스럽다. 그래서 대학 구성원들의 그런 현실적인 우려를 세심하게 살피고 그 대안을 제시해야만 향후 ‘글로컬대학 30’ 추진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개혁의 성공을 위해 어떤 보완이 필요할까? 많은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지적하듯이 대학교육의 기존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고등교육체제를 혁신적으로 ‘재구조화’하는 것이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한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와 ‘전문대학의 평생직업교육 기능 강화’와 관련된 일이다. 국민에게 교육의 동등한 기회와 질적 평등을 제공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은 이를 통해 헌법이 규정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행복추구권(헌법 제10조), 평등권(헌법 제11조), 교육기본법상 학습권(제3조), 교육의 기회균등(제4조) 등을 보장

받게 된다. 그것은 윤석열 정부의 ‘공정’과 ‘상식’이라는 이데아에도 부합하는 것이며, 헌법정신과 가치를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수신문>이 지난 4월 실시한 ‘윤석열 정부 대학개혁 정책 인식조사’에서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대학개혁 정책 가운데 정책 필요성과 실현 가능성을 가장 높게 평가한 것은 ‘전문대학의 직업교육 강화’였다. 77.5%의 교수들이 전문대학의 직업교육 강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여기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응답자 622명 중 일반대 교수가 52명으로 84.9%에 달한다는 것이다. 결국 전문대 교수뿐 아니라, 일반대 교수들에게도 ‘전문대학의 직업교육 강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뜻이다.

교수들은 무엇보다 일반대와 전문대의 역할 구분과 정체성 확립이 필요하다는 점, 일반대는 학문·연구 중심으로, 전문대는 직업교육 중심으로 고등교육체제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공감한 것이다. 그래서 이와 관련한 고등교육 재구조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재구조화와 관련해 큰 함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직업교육법(안)’이다.

현행법상 우리나라 고등교육기관은 대학, 산업대학, 교육대학, 전문대학 등 학제를 기준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중 고등교육법 제28조는 “‘대학’은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동법 제47조는 “‘전문대학’은 사회 각 분야에 관

한 전문적인 지식과 이론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재능을 연마하여 국가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전문직업인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법률상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일반대와 직업교육 중심의 전문대의 정체성이 여전히 모호하고, 교육목표도 혼재되어 있다. 양질의 직업교육이나 평생교육이 어려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다행히 현재 직업교육법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고등교육기관 간 중복성 해소와 청년실업 완화 등이 기대된다. 또한 이를 토대로 고등교육체제를 학문연구 중심대학과 직업평생교육 중심대학으로 교육기관별 기능에 따라 재구조화하면 전문대 등이 고등직업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으로 정체성을 명확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면 향후 체계적인 양질의 직업교육을 학령기 학생이나 성인학습자 등에게 더욱 적절하게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직업교육법 제정을 통해 5년 기본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인력을 양성할 수 있을 것이며, 직업교육기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제고될 것이다.

교육부는 올 초 연두 업무보고에서 ‘교육개혁, 대한민국 재도약의 시작’이라는 슬로건 하에 2023년을 교육개혁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했다. 이러한 의지와 노력으로 대학 구성원과 힘을 합쳐 학령인구 급감과 인구절벽에 따른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야 한다. 교육부장관을 비롯한 교육관계자들은 교육발전을 위한 통섭적 정책을 제시하고,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대학소멸·지역소멸·국가소멸의 격랑을 슬기롭게 헤쳐나가기 바란다.

제공=서울미술관

갤러리 초대석

「요시다 유니 : 연금술(Alchmey)」

Layered, 2018.

일본의 아트디렉터 요시다 유니의 개인전「연금술(Alchmey)」이 서울미술관 본관에서 9월 24일까지 열린다. 요시다 유니는 광고, 패션 브랜드,비주얼 디렉팅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다.

바나나와 사과 사이가 모자이크 처리돼 있다(Layered, 2018. 언뜻 보면 포토샵 혹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작업한 것 같지만 수작업으로 만든 작품이다. 작가는 직접 사과와 바나나를 직육면체로 잘라 모자이크처럼 배치하고 이를 사진으로 기록했다. 전시 제목 연금술처럼, 작가는 평범한 것을 비범한 것으로 변환시키고 원물의 형태를 재조합해 아름답고 의미있는 작품으로 ‘변형’한다.

이번 전시는 요시다 유니의 첫 해외 전시로, 230여 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총3부로 구성돼 있고, 제3부에서는 작가의 신작 ‘플래잉 카드(Playing Cards)’50여 점이 최초로 공개된다. 월요일, 화요일은 휴관이다.

신다인 기자 shin@kyosu.net

기고

학생 공급망 생태계를 다시 생각한다

캘리포니아주립대(UC)는 미국 최고의 주립대학으로 평가받고 있고, 세계 대학 랭킹도 최상위권이다. 4년제 UC대학들은 2년제 캘리포니아 커뮤니티칼리지(CCU) 학생들에게 편입 우선권을 준다. 10년 전 캘리포니아대 어바인캠퍼스 방문교수를 하면서 캘리포니아 학생 공급망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CCU-UC 파이프라인’에 공감한 적이 있다. 이는 학점인정 협정과 편입 보장을 통해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 학생들이 4년제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는 명확한 경로이다. 다양한 배경의 편입생을 더 많이 받도록 설계되었고, 학생의 생활 경험, 주변 환경, 도전 의식을 반영한다.

1996년 캘리포니아 커뮤니티 칼리지와 캘리포니아주립대의 양해 각서를 통해 커뮤니티 칼리지 학생들의 캘리포니아주립대 캠퍼스 편입이 활성화됐다. 2018년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격을 갖춘 학생에게 편입을 보장해주는 내용을 담으면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캘리포니아주립대 캠퍼스로의 편입이 더욱 활성화됐다. 캘리포니아주립대의 목표는 신입생과 편입생을 2:1 비율로 받는 것이다. 국내 대학과 비교해서 편입생 비율이 매우 높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캠퍼스 중에서 원탑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이다. 노벨상 107명, 필즈상 14명, 튜링상 25명, 맥아더 펠로십 108명, 퓰리처상 34명 등 각 분야에 걸쳐 학문적인 명성이 드높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 입학하는 두 가지 방법은 고등학교에서 우수한 학업성취도를 달

성하거나, ‘CCU-UC 파이프라인’을 타고 편입하는 것이다. 2022년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가 5천200명의 편입생을 받았는데 94%가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 학생들이었다. 특히,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는 인근의 버클리 지역 커뮤니티 칼리지 학생들에게 편입 최우선권을 주어서 편입 합격률이 40%를 넘는다. 세계 최상위권 대학인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가 매년 5천 명에 가까운 커뮤니티 칼리지 학생을 편입생으로 받으면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의 교육에 힘쓰고 있다.

2021년 캘리포니아주립대 통계를 보면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편입한 학생의 50%는 학생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교육을 받는 경우이고, 44%는 저소득층, 33%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일반 학부생에 비해 편입생의 졸업비율이 더 높았고, 졸업 후 캘리포니아 소득상위 3분의 1 구간에서 일하고 있다.

2013년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 다니는 한국계 학생인 테런스 박이 하버드대 대학원 입학 허가를 받았지만 불법체류자라 체포를 걱정하고 있다는 신문보도가 나와서 크게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테런스 박은 4년제 대학 등록금을 납부할 수 없어서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니다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 편입해 나중에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수학 동아리 회장까지 됐다.

그런데 국내 대학에서의 편입은 성적 위주의 선정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명문 대학가 전

문대 학생에게 편입 우선권을 준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올해 처음으로 편입이 허용된 경찰대에서는 재학생이 편입생에게 텃세를 부리면서 “OO대밖에 못들어간 사람이 왜 경찰대를 다니냐?”라고 폭언까지 했다고 한다. 편입생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경찰대 재학생의 잘못된 사고방식과 행태가 전적으로 학생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순혈주의와 성적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경찰대 재학생의 일탈은 편협한 학생 공급망 생태계의 부산물일 수 있다. 성적 위주의 학생 공급망 생태계에서는 학생의 사고방식이 성적 우월주의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편입생을 받은 적이 없는 경찰대 재학생이 입결이 떨어지는 대학에서 경찰대로 편입한 학생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저지른 학폭이 편협한 학생 공급망 생태계의 자업자득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4년제 대학이 전문대 재학생에게 편입 우선권을 주면 정말 안 되는 것일까? 캘리포니아주립대와 마찬가지로 국립 대학이 학생의 3분의 1을 전문대 편입생으로 채우면서 사회 전반에 충격을 주면 좋지 않을까? 우리의 학생 공급망 생태계가 혹시 경찰

대 학폭 사건을 배양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조언정

한국공학대 기계공학과교수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쓰고 싶은 것과 들려주고 싶은 것

한동안 원고를 쓰기가 어려웠다. 매 글의 시작이 어렵지만 이 글이 유독 어려웠던 이유는 요청받은 ‘한국에서 박사하기’라는 주제의 지대 위에 치열하게 서 있는 것을 버겁게 느꼈던 긴 시간을 겨우 빠져나오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인문학 박사과정에 입학하면서까지 공부한다는 사실은 미국에서 인문학 박사과정을 지속하겠다는 선택보다 더 그럴듯한 이유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선택을 변호하고 그 결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더 이상 지치고 싶지 않았다.

이 말은 나조차도 스스로의 이유에 설득되지 않았다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학부와 석사 과정에서 나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동료들이 훗날을 기약하며 일단은 취업하겠다고 말할 때 나는 그들의 마음까지도 짊어진 큰마음이 아닌 이상 한국에서 박사 생활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국내 인문학 박사가 재정적으로 자립하기 어려울뿐더러 학비까지 부담해야 하기에, 그래서 어엿한 직업으로 인정하고 인정받기 어렵기에 생기는 두 가지 마음이었다. 돈을 벌 수 없기에 누군가는 떠나고 돈을 내기에 누군가는 부채감을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좋아서 하는 일이 다 그런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마음들이 특히 ‘한국에

서’ 박사 하기의 지대를 더 자주 맴도는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점은 중요하다. 어느 쪽이든 이 지대 앞에서는 구조적인 이유로 인해 지극히 혼자서 자신 일부를 소모하게 된다.

여러 정황 상 나는 미국에 가지 않았고, 그럼에도 쓰고 싶었고 글로 세계를 이해해 보고 싶었다. 국내 인문학 박사에 대한 여러 텍스트들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자긍 섞인 자조 혹은 자조 섞인 자긍의 태도는 내게도 내면화되어 있는 것이었다. 조교와 외부 청탁 등 다른 일을 부지런히 하면 어느 정도의 돈은 벌 수 있었지만, 학비와 생활비를 대기에는 부족한 금액이었다. 무엇보다 그 돈은 연구로 번 돈이 아니었다. 읽고 쓰는 일은 즐거웠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국에서의 시간을 자신 있게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렇지만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러한 마음을 공유하는 뛰어난 연구자들이었다는 점은 다행이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의 의미는 내게 생긴 많은 스승과 동료들이 채워주었다. 그러던 중, 언젠가 만난 한 편집자는 ‘쓰고 싶은 것보다도 들려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어왔다. 단행본 일반에 관한 말이었지만 연구자로서도 내게 필요한 질

문이었다. 박사과정을 시작하겠다는 마음이 무엇인가 쓰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어쩌면 쓰는 곳이 다름 아닌 한국인 이유는 들려주고 싶은 것이 여기에 있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문화 안에서 내가 보고 느낀 아름다움을 쓰고 싶다고 할 때, 이는 자아와 전문성에 관한 부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쓰는 나를 상상하면 내가 해외 여기저기에 있는 모습을 쉽게 그려볼 수 있지만, 누군가 나의 연구를 듣는 장면을 꿈꾸면 나는 아직까지, 그리고 여전히 한국을 그 배경으로 떠올린다. 윤원화 선생님의 문장처럼 “세계를 일련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 그것이 이론의 일”이라면, 국내에서 연구하는 일은 가까운 세계를 가까운 언어로 번역해 보는 일과 닿아 있을 것이다. 같은 세계에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서로 다른 언어들, 그래서 번역이 필요한 순간들을 몸과 일상으로 부딪히고, 그럼에도 마주하게 되는 번역의 곤궁함 위에서 시작해 보고 싶다.

자기가 좋아서 공부하는 사람들과 국가라는 관계를 들려주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관계로 생각해 보고 싶다. 한국에서 박사를 하는 개인적인 이유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실질

적인 해결책을 대신하는 제안이기도 하다. 또한, 국내 연구자들이 떠나지 못해 남겨진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관해 사례를 하나 더 덧붙여보고 싶었다. 이곳에 그 미묘한 이야기들을 더 섬세하게 들려주고 싶어 남는 사람들도 있다. 잘 할 것이다. 인문학의 미래를 논할 때 어떤 층위에서는 근면하고 영민한 인문학을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로 주장하면서 연구결과물의 전달 범위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른 층위에서는 연구자와 연구 대상, 지식과 지식이 놓인 구조가 맺게 되는 관계에 대해 연구자가 지녀야 할 성찰성을 이야기한다. 들려주고 싶은 것, 듣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은 연구자와 학계 구조 모두가 이 두층위의 논의와 결과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고민이다.

이하림

연세대 비교문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연세대 비교문학협동과정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기억과 시각문화가 교차하는 곳에서 생기는 집과 경계, 타자의 문제를 연구한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미디어문화연구 전공으로 「경험한 적 없는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잔재의 이미지」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에는 동료들과 지대를 공유하고 영토를 범람하는 글쓰기 작업에 관심이 많다.

김상돈의 교수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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