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진학률 73.3%, 미충원·재수생 함께 늘고 있다

데이터로 읽는 대학⑥

대학의 팽창과 미충원

‘데이터로 읽는 대학’의 두 번째 주제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신입생·재학생 미충원 증가와 지역대학의 위기에 대한 것이다. 지역소멸 위기와 관련된 학령인구 감소는 사립대가 당면한 직접적인 문제이자 지역대학의 미래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고등교육의 팽창과 대학 진학률

우리나라 고등교육정책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두 가지 정책이 있다. 하나는 전두환 정권이 도입한 ‘대학졸업정원제’와 김영삼 정부가 도입한 ‘대학설립준칙주의’이다. 1981년 과열 과외와 재수생 문제의 해소 대책으로 도입된 대학졸업정원제를 계기로 대학정원이 급속하게 증가했다. 1995년에는 대학설립운영규정을 제정하여 대학설립 기준을 완화한 대학설립준칙주의가 도입되면서 40여개 대학이 신설되었다. 교사·교지·교원·수익용기본재산 4가지의 기본 요건만 갖추면 비수도권 지역에서 누구나 대학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수도권에는 정원 자율화정책이 도입되어 대학정원이 양적으로 확대됐다. 이런 과정으로 우리나라 고등교육은 엘리트교육에서 대중·보편교육으로 바뀌었다. ‘OECD 교육지표 2022’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층(25세~34세)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69.3%로 OECD국가 38개국 중 가장 높은 국가가 되었다.

일반대·교육대·산업대·전문대를 비롯한 대학의 수는 1980년 224개에서 1995년 304개, 2000년 349개로 급격하게 증가했고, 2022년 현재 대학원 대학 3개교를 제외한 대학은 336개교에 이른다. 그동안 52개 대학이 통·폐합되었으며, 13개 대학이 폐교됐다.

대학 진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고등학교 졸업자 수는 1980년 46만 7천388명에서 1985년 64만 2천354명으로 급격하게 증가하고, 2000년 76만 4천712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에 2003년에는 59만 413명으로 급격히 감소하였다. 2011년 64만 8천468명으로 다시 증가한 후에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17년 58만 3천608명, 2022년에는 44만 5천 815명까지 급격하게 줄었다.

고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1980년 23.7%에서 1985년 36.4%, 1995년 51.4%, 2000년 68.0%, 2005년 82.1%로 급격하게 증가하였으며, 2008년 83.5%로 역대 최고의 진학률을 보였다.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2017년에는 68.9%로 낮아졌다. 2022년 현재는 73.3%의 대학 진학률을 보이고 있다.

대학 진학률은 지역별 편차가 심하다. 종로학원의 자료에 따르면, 시도별 진학률은 수도권인

연도별 고등학교 졸업자 수와 대학 진학자 수, 그리고 진학률 (단위: 명, %)

연도 대학수(개) 고등학교 졸업자(명) 대학 진학자(명) 진학률(%)

1980 224 467,388 110,817 23.7

1985 231 642,354 233,737 36.4

1990 241 761,922 252,831 33.2

1995 304 649,653 333,950 51.4

2000 349 764,712 519,811 68.0

2005 360 569,272 467,508 82.1

2010 345 633,539 500,091 78.9

2015 340 615,462 435,650 70.8

2016 339 607,598 423,997 69.8

2017 339 583,608 401,923 68.9

2018 340 566,545 394,923 69.7

2019 340 568,736 400,218 70.4

2020 339 500,373 362,888 72.5

2021 336 437,515 322,246 73.7

2022 336 445,815 326,986 73.3

대학 입학생 미충원률 현황 (단위: 명, %)

년도 학령인구 (만 18세) 대학 입학정원 (A) 대학 입학생 (B) 미충원 인원 (A-B)

2000 826,889 646,215 677,783 31,568

2010 694,883 571,092 556,712 △14,380

2020 511,707 478,872 464,826 △14,046

2021 476,259 474,180 432,603 △41,577

서울·경기·인천지역이 전국 평균보다 상대적으로 가장 낮았다. 최근 20년 동안 전국 평균과 비교하여 최대 16% 정도 낮았다. 일반계고(일반고·자율고·특목고) 학생 중, 특정 지역에 소재한 일반고·자사고·외고 등의 대학 진학률도 상대적으로 낮았다.

서울시 강남·서초·양천·송파·노원구 소재 일부 자사고와 일반고의 진학률은 40~50%로 나타났다. 그 외 지역별로는 경기지역 신도시(분당·일산·평촌), 부산(해운대구), 대구(수성구) 등 광역시에 소재한 전통적인 교육특구에 소재한 고등학교의 진학률이 낮았다. 일반계고 학생들의 30~40%가 의대나 수도권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기 위하여 재수를 선택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최근 수능지원자의 수를 살펴보면, 학령인구는 계속 줄고 있지만 재수생은 오히려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미충원율 증가

18세 이상 학령인구는 2000년 82만 6천889명에서 2021년 47만 6천259명으로 최근 20년간 35만 630명으로 42.4% 감소하였다. 이 기간 대학 입학정원은 2000년 64만 6천215명에서 2021년 47만 4천180명으로 최근 20년간 17만 2천35명으로 26.6%나 급격하게 줄었다. 대학 입학생은 2000년 67만 7천783명에서 2021년 43만 2천603명으로 20년간 36.2% 감소했다. 미충원율은 2002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21년 전체 대학 충원율은 91.4%로, 총 4만 586명(8.6%)이 미충원되었다.

학령인구 급감으로 존립 위기에 놓인 지방대의 수가 크게 늘었다. 2023학년도 입시에서 4년제 지방대 214곳 가운데 정부의 재정지원 주요 기준인

신입생 충원율 80%를 못 채운 대학이 44곳이나 됐다. 올해 정시모집에서 14개 지방대 26개 학과는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다. 전문가들은 2040년이면 대학 입학 가능 자원이 28만 명으로 대학정원의 57%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학생 수는 39만 8천271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4학년도 대학(일반대·전문대 포함) 모집인원인 51만 884명보다 11만 2천613명이 부족한 수준이다. 올해 수험생은 재수생 등 ‘N수생’을 합해도 47만명 안팎이 될 전망이다. 이들이 모두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신입생 미충원 문제는 해가 갈수록 가속화될 전망이다.

최근 인구학 권위자인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명예교수가 참여한 포럼에서 한국의 초저출산 문제에 관해 ‘국가 소멸’이라고 진단했다. 이대로라면 2750년엔 한국이란 나라가 소멸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2006년 유엔 인구포럼에서도 한국이 심각한 저출산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첫 번째 나라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또한 학령인구 감소에 의한 미충원 문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문제도 아니고, 개별대학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입생 미충원 대학을 부실대학으로 모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미충원 지역대학을 정책적으로 지원하여 지역소멸을 지체시켜야 할 것이다.

황인성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사무처장

대학평가와 고등교육 전문가로 교육통계 분석 작업에 참여해 왔다.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을 거쳐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정보 공시센터장과 기획조정실장을 지냈다.

박사후연구원·대학원생 처우개선 나선다

제2차 인재양성전략회의

‘이공분야 인재 지원방안’

박사후연구원의 지위가 법으로 보장되고 대학원생이 연구 과제를 수행할 때 일정 비율 이상의 인건비 수령도 가능해진다. 대학원생과 박사후연구원의 열악한 연구환경을 개선해 이공계 기피 현상을 해결하고 우수 인재가 꾸준히 유입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2차 인재양성 전략회의에서 정부는 이공계 인재가 자유롭게 도전하고 성장하도록 ‘이공분야 인재 지원방안’, ‘에코업 인재 양성방안’, ‘에너지 인재양성 중장기 전략’을 지난 26일 발표했다.

정부는 ‘고등교육법’에 박사후연구원을 명문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연구원의 법적 지위를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원, 직원과 나란히 연구원에 대해서도 법적 지위를 부여해 필요한 경우 연구원만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대학정보공시에 학생인건비 계상기준을 포함하는 것도 검토해 대학원생의 처우를 개선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학생인건비의 최소 계상률도 설정하고 집단연구비의 일정 비율을 학생인건비로 지급할 예정이다.

학생인건비 계상률은 대학원생에 처우개선 문제가 나올 때마다 반복적으로 지적된 사안이다. 현재 학생인건비는 학사 130만 원, 석사 220만 원, 박사 300만 원인데, 이는 계상률이 100%일 때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계상률 적용 권한은

연구책임자인 지도교수가 갖고 있어 교수가 박사과정생의 계상률을 30% 낮춰서 적용하면 해당 과정생은 90만 원밖에 받지 못한다. 박완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2021년 대학원 인건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석사 학생연구원의 인건비는 63만 원, 박사는 99만 원이었다. 과기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계상률이 10% 이하가 적용된 학생연구원이 7%나 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최소 계상률 설정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방안은 우수 인력이 이공분야에 지원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해 나왔다. ‘장래가 불투명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강정자 교육부 인재양성과장은 “박사후연구원의 인건비는 대략 3천만 원에서 4천만 원이 대다수였다. 이들의 인건비도 지도교수가 결정한다. 박사후연구원은 독립된 연구자이지만 경제적 여건이나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 과장은 이공계 인재의 열악한 처우개선을 위해 실태조사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그는 박사후연구원에 대한 자료를 찾기도 어려웠다며 “박사후연구원의 81.9%가 대학에 적을 두고 있다고 하는데, 이들의 정확한 규모는 파악이 안 된다. 지위도 불분명하다. 정부에서 지원하고 있는

현황은 파악이 돼 있지만, 그 이외에는 일부만 파악하고 있다”라고 했다. 강 과장은 실태조사에 관한 사항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못했으나,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이번 정책이 ‘의대 쏠림 현상’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일축하면서도 “이공분야 인재가 이 분야에서 사명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부의 고민”이라고 말했다.

퇴직 연구자 중소기업 재취업 지원

이공분야 인재 지원을 위해 정부는 국가 연구 과제 수행 시 적용되는 간접비와 관련해서도 규제 완화를 검토한다. 라이즈(RISE) 체계 내에서 대학의 우수 이공계 인재에 대한 지원을 검토하고 대학원 대통령과학장학금 도입도 추진한다. 외국인의 국내 창업 촉진을 위해 비자 제도도 개선한다. 기술창업비자(D-8-4) 창업 초기 체류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확대한다. △계약정원제 도입 △마이스터고 지정 확대 △폴리텍 특화 캠퍼스 운영 △마이스터대 확대 △일학습병행 공동훈련센터 운영 등을 통해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수요맞춤형 인재 양성도 지원한다.

아울러, 퇴직연구자와 여성연구자가 지속적으로 경력개발을 할 수 있도록 퇴직연구자의 중소·중견기업 재취업과, ‘여성과기인법’을 개정해 긴급 돌봄과 보직목표제도 도입한다. 에코업 인재 양성방안’은 탄소중립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녹색인재 8만 명 양성을 목표로 한다.

정부는 녹색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융합형 인

재양성을 위해 다양한 학문 간 융·복합 교육과정을 운영할 계획이다. 또한, 전공 제약이 없이 수강할 수 있는 ‘에코업 혁신 융합대학’을 교육부와 협업해 올해부터 운영한다. 지역 인프라와 연계한 지역인재도 양성한다. 특히, 광주(청정대기)·인천(생물소재)·포항(폐배터리)·부산(자원순환) 등에 구축된 녹색융합클러스터를 녹색인재 일자리 요람으로 육성한다.

‘에너지 인력양성 중장기 전략’은 2030년까지 에너지 전문인력 2만 명 양성을 목표로 한다. 주요 추진 전략은 △기업 수요 맞춤형 기술인력 양성 △지역 에너지산업 연계 지역인재 양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핵심인력 육성 등이다. 현장 수요에 기반한 융합인재 양성을 위해 올해 16개인 에너지융합대학원을 2025년까지 20개로 확대하고, 에너지 유관 기관과 협업해 원전·수소·효율 분야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해 재직자의 전문성도 강화한다.

아울러, 지역대학과 에너지산업 융복합단지 간 협력을 통해 현장실습과 창업 연계 교육을 보강하고, 에너지기술 공유대학 플랫폼을 구축해 지역인재 양성 체계도 강화한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인하공업전문대학 총장 초빙

인하공업전문대학을 최고의 명문 대학으로 도약시킬 비전과 리더십을 갖춘 총장을 모시고자 합니다.

1. 응모자격

• 국가공무원법 제33조 각호의 결격사유가 없는 분

• 인하공업전문대학의 창학정신을 존중 계승하여 최고의 명문 대학으로 이끌어 가실 열정과 능력을 갖춘 분으로서

- 대학에서 전임교원으로 20년 이상 봉직했거나 총장을 역임한 분

- 중앙행정기관에서 차관급 이상 봉직한 분

- 국책 연구기관에서의 장급으로서 10년 이상 근무한 분

- 국영기업체의 장(長)을 역임한 분 - 대기업에서 부사장 이상의 직에 근무한 분

- 이상의 직위와 동등한 자격이 있다고 인정되는 분

• 정석인하학원 산하 대학(교)의 교원이 인하공업전문대학의 총장으로 임용될 경우 교수직을 사임해야 한다.

2. 제출서류

• 총장후보 추천위원중 1인의 추천동의서 및 교내외 인사의 추천서

- 인하공업전문대학 교수신분으로 지원하는 분 : 학내 교수 15인 이상 추천

- 외부인사로 지원하는 분 : 사회유지 10인 이상 추천

• 대학 발전 계획안 (15분 발표 분량 / 별도파일 제출)

• 이력서 1부(사진 첨부)

• 경력 또는 재직증명서(원본) 각 1부 (영어 이외의 외국어로 기재된 증명서는 번역문 첨부)

• 졸업증명서 원본(대학 및 대학원) 1부

• 재직 시 주요업적

• 교수의 경우 최근 5년간 연구실적

•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동의서, 범죄 경력조회 동의서, 성범죄 경력조회 동의서

※ 기 제출된 서류는 반환하지 않으며 또한 추후 보완할 수 없음

3. 제출마감 및 제출방법

• 제출마감 : 2023.06.02(금) 17:00 도착분에 한함

• 제출방법 : 직접 제출 및 등기우편 제출

- 제출할 곳 : (우 : 04512) 서울시 중구 통일로 26 (한일빌딩 1202호)

정석인하학원 법인사무국, 인하공업전문대학 총장후보추천위원회 (Tel. 02-773-4284)

•기타 자세한 사항은 인하공업전문대학 홈페이지(http://www.inhatc.ac.kr)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2023년 5월 22일

인하공업전문대학 총장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

전북대학교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건실한 사학’…‘사학법인 평가’ 도입해야

대학지원체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대학개혁 정책이 추진되고 있지만, 정작 대화는 부족하다.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와 전면 폐기의 주장이 맞서고 있다. 넓은 시각에서 대학의 체제를 진단하고, 현실에 기반한 문제 제기와 현실적·구체적인 대안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고자 한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대학정책 TF가 정부 정책의 난맥상을 짚고, 자성이 필요한 대학 내부와 교수사회의 문제까지 솔직하게 드러내 놓고 대학지원체계 원칙을 제안한다. 대학지원체계 원칙을 제안한다

대학지원체계 원칙을 제안한다

① 대학지원체계 현주소:무엇이 문제인가?

② 국립대학지원체계 원칙:국립대 정체성에 합당한 지원 방안

③ 사립대학지원체계 원칙:학교법인 평가 연계 지원 방안

④ 대학지원체계 3원칙과 집행 방안

▶1면에서 이어짐

교육부는 오랫동안 역사와 편제, 크기와 여건이 서로 다른 전국의 대학을 한 장짜리 평가표에 맞춰 줄을 세우고, ‘재정 지원 제한 대학’을 지정한 뒤 컨설팅을 제공하면서 자신들의 권한을 만끽해왔다. 김영삼 정부 시절 도입된 ‘대학설립 준칙주의’는 경쟁체제를 조성하여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정책 목표와는 달리, 부실한 사립대학의 증가를 조장했을 뿐이다. 학생 수를 조절하며 대학의 질적 성장을 도모해야 했던 시점에 역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바람에 교육부는 지금까지 줄곧 대학과 갈등을 빚으며 입학정원 감축에 정책역량을 허비하였다. 또한 부정·비리의 온실로 낙인찍힌 일부 사립대학의 이미지 탓에 사립대학 발전을 위한 공적 재정의 투여가 사실상 어려워지게 되었다. 현재 사립대학 전체가 재정 위기에 처한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이제는 교육부가 ‘지침’을 대폭 완화하고 ‘규정’을 개정하고 법률을 제·개정하여 부실 사학법인에게 마지막 선물을 안겨주려 애쓰고 있다. 이런 조치로 사립대학 전반의 위기가 해소되고 건실한 사학법인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부실 사학법인의 이익을 지켜줄 뿐, 건실한 사학법인의 발전과는 무관해 보인다. 정권 교체기 마다 교육부의 보호 아래 암약하는 ‘단골 하청업자 교수들’의 그럴듯한 대안은 사실상 부실 사학법인 지키기에 불과할 뿐이다.

교육부는 이제라도 건실한 학교법인이 사립대

학을 발전적으로 경영하고 대학의 본질과 기능을 되살리는 지원체제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사립대학 지원체계의 원칙을 수립해야 한다. 그 첫 출발점은 부산시장이 “교육부가 제일 잘한 일”이라고 호평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제’(RISE 체계)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하지만 현 지방대의 위기 상황, 그로 인한 지역 소멸의 가속화, 고등교육에서 차지하는 사립대학의 비중 및 사학법인의 폐쇄적 운영 등을 고려하면, RISE 체계의 안착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고등교육 행정과 운영에 대한 경험과 전문성이 전혀 없는 지자체에 지방대 관리 권한을 무작정 넘긴다면, 사립대의 운명은 정치판 노리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라이즈, 광역고등교육청 설치해 관리를

이를 타개하는 방안으로 ‘광역고등교육청’ 설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전국의 사립대와 사립전문대 분포를 면밀하게 파악하여 초광역권 단위의 ‘광역고등교육구’로 묶고 관할권에 있는 대학과 학교법인에 대한 관리와 통제의 권한을 ‘광역고등교육청’이 행사하는 방식이다. 그래야만 대학은 지자체장의 정치적 입김에서 벗어나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고, 대학들이 지자체와 담합하여 국비를 나눠 먹는 행태도 저지할 수 있다. 다만, 이 체계에서 국립대는 국가의 별도 관리와 통제 아래 두어야만 한다. 동일한 지표로 국·사립대를 획일적으로 평가하여 각각의

고등교육기관 2개교 이상을 설치·운영하는 사학법인 현황(2022년 1월 기준)

법인명 지역 4년제 대학/

분교 전문대학 사이버대/

대학원대

지역부속

병원 소유

고등학교

이하

이사수/

감사수

서울

건국대학교 서울

충주

건국대

부속병원 2교 7명/2명

건국대 글로컬 캠퍼스

경희학원 서울 경희대  경희사이버대 부속병원 6교 10명/2명

고려중앙학원 서울

세종

고려대

고려사이버대 부속병원 4교 12명/3명

고려대 세종 캠퍼스

대양학원 서울 세종대  세종사이버대 2교 8명/2명

동국대학교 서울

경주

동국대

부속병원 10교 13명/3명

동국대 경주 캠퍼스

동원육영회 서울 한국외국어대  사이버한국외국어대 1교 9명/2명

삼육학원 서울 삼육대 삼육보건대  26교 15명/2명

연세대학교 서울

원주

연세대

부속병원 12명/3명

연세대 미래 캠퍼스

한양학원 서울

경기

한양대

한양여대 한양사이버대 부속병원 6교 10명/2명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

경기

고운학원 경기 수원대 수원과학대  8명/2명

대우학원 경기 아주대 아주자동차대  부속병원 12명/2명

명지학원 경기 명지대 명지전문대  4교 9명/2명

한국산업기술대학 경기 한국공학대

(구.한국산업기술대) 경기과학기술대  15명/2명

인천

인천가톨릭학원 인천

인천가톨릭대  

  부속병원 11명/3명

가톨릭관동대

정석인하학원 인천

인하대

인하공업전문대  

  부속병원 3교

3교 15명/2명

한국항공대

광주

우암학원 광주 남부대 전남과학대  2교 8명/2명

조선대학교 광주 조선대

조선간호대  

  부속병원 4교 9명/2명

조선이공대

대구

계명대학교 대구 계명대 계명문화대  부속병원 1교 8명/2명

영진교육재단 대구 - 영진전문대 영진사이버대 1교 8명/2명

대전 우송학원 대전 우송대 우송정보대  1교 8명/2명

부산

동서학원 부산 동서대 경남정보대 부산디지털대 1교 8명/2명

동의학원 부산 동의대 동의과학대  부속병원 2교 7명/2명

화신학원 부산 - 부산경상대 화신사이버대 2교 8명/2명

울산 울산공업학원 울산 울산대 울산과학대  부속병원 7명/2명

강원 일송학원 강원 한림대 한림성심대 한림국제대학원대 부속병원 1교 8명/2명

경남 대구학원 경남 가야대 대구공업대  8명/2명

경북

영광학원 경북 대구대  대구사이버대 1교 7명/2명

영남학원 경북 영남대 영남이공대  부속병원 8명/2명

원석학원 경북 경주대 서라벌대  2교 8명/2명

충남

백석대학교 충남 백석대 백석문화대  1교 8명/2명

LG연암학원

충남 연암대

8명/2명

경남 연암공대

전남 영신학원 전남 세한대 목포과학대  8명/2명

전북

신동아학원 전북 전주대 전주비전대  2교 8명/2명

원광학원 전북 원광대 원광보건대 원광디지털대 부속병원 1교 12명/3명

충남

건양교육재단 충남 건양대  건양사이버대 부속병원 3교 8명/2명

혜전학원 충남 청운대(산업대) 혜전대  1교 8명/2명

호서학원 충남 호서대  서울벤처대학원대 3교 8명/2명

충북 광동학원 전북 - 군장대 국제사이버대 2교 8명/2명

한계대학 처리에 매몰…사립대 재정여건 개선책은 없어

부정·비리 낙인찍힌 일부 사립대, 사립대 재정위기 근원

부실 사학 이익 보다 건실한 사학법인 평가해 지원 필요

대학 본질과 기능 되살리는 지원체제로 정책 전환해야

설립목적과 기능을 동시에 훼손한 전례를 교훈삼아 국립대에게는 국가적 차원의 확실한 소임과 역할을 부과해야 한다.

사립대 경영 주체는 ‘사학법인’이다

나아가 사립대학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사학법인 평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지금까지 교육부는 정작 대학을 운영하는 주체인 사학법인 대신 운영의 객체인 ‘대학’을 평가하는 데만 주력해 왔다. 물론 ‘법인의 책무성’ 항목이 없지 않았지만, 평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한 장식품에 불과했다. 이제야말로 사립대학의 경영 주체가 학교법인임을 명백히 인식하고 법인 평가를 통해 사립대학이 거듭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를 근거로 ‘선택과 집중’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면 교육부의 규제 완화와 재정지원 강화 정책이 건실한 학교법인을 위해서는 세계적인 대학으로 도약하는 길을 열어주고, 반면에 비리와 부실 경영으로 낙인찍힌 학교법인에게는 징벌과 퇴출이라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사학법인 평가’는 두 영역으로 나눠야 한다. 하

나는 학교법인의 재정 여건과 지원 규모 평가이다. 사립대학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재정여건·대학규모·운영체제 면밀한 평가

따라서 제대로 평가하려면 학생 규모의 격차, 부속병원의 보유 여부, 일반대학과 종교·예술대학의 구분, 복수의 대학(또는 부속학교)을 거느린 법인과 그렇지 않은 법인의 차이, 지역의 여건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세밀한 평가지표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대학 규모에 맞는 학교 법인의 재정 투입, 투자 역량과 의지를 선명하게 가려낼 수 있다. 법인의 수익용 기본재산 종류 및 규모, 운영수익 규모, 대학 운영 경비지원 규모, 법정부담금의 부담 규모, 법인적립금 규모, 부채 규모와 현황 등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지표를 마련하여 ‘출연 없는 지배’를 방지해야 한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학교법인 정보를 재구성하고 현장 검증하면 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법인 운영체제의 평가다. 이는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가족회사 형식으로 운영되는 사립대학의 부끄러운 관행을 타파하는 데 목적

이 있다. 무엇보다도 법인의 구성과 운영, 총장 임면을 포함한 교원 인사권 등 법인과 대학 운영의 합리성과 공공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사의 자격과 책무에 부합하는 인사로 법인 이사회가 구성되어 있는지를 평가하고, 법인 거수기로 전락한 개방이사의 자격과 임명 절차도 평가해야 한다. 총장의 자격과 임명 절차, 임기 등도 평가에 포함되어야 한다. 특별히 비전임교원 확대는 교원의 질적 후퇴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평가지표에 포함되어야 한다.

‘광역고등교육청 설치’와 ‘사학법인 평가’를 통해 교육부의 정책 오류와 폐단을 극복하고 궁극적으로 사립대학의 재도약을 도모하는 과업은 법률과 제도로 정착되어야 한다. 낡은 『고등교육법』과 지나치게 포괄적인 『사립학교법』으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 급변하는 사회적·산업적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자율적으로 체질 개선에 나서도록 사립대학에 길을 터주어야 한다.

수년 전부터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가 주창한 『사립대학법』 제정에 드디어 주목할 때가 왔다.

박순준

한국교수노동조합연맹 고등교육연구원장

현재 동의대 역사인문교양학부 교수로 있다. 서울대에서 서양근세사로 박사를 했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과 국가교육회의 전문위원을 지냈다. 편서로 『유럽바로알기』가 있으며, 역서로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 『서양근세사: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 『옥스퍼드 영국사』등이 있다.

안동대학교 2023학년도 하반기 전임교원 초빙

1. 초빙분야 및 인원

학 과 명 채용분야 충원인원 비 고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1

동양철학과 디지털미디어산업 1

미술학과 K-문화콘텐츠 제작 [문화기술(CT)융합분야] 1

컴퓨터교육과

알고리즘(컴퓨터과학) 1

시스템 소프트웨어 1

화학생명공학과 바이오/생명화학공학 1

산림과학과 산림경영학 1

패션라이프

스타일학과 테크니컬 디자인 1

첨단재료공학과 반도체 또는 신소재 공학 1

전자공학과 전자공학 전 분야 1

스마트센서공학과 바이오응용 전자기센서·디바이스 1

교양교육원

영어교육 1

글쓰기 및 토론 1

10개 학과 및 1개부서 13개 분야 13명

2. 지원자격 : 가. 공통사항 : 1) 고등교육법 제16조에 따른 교원의 자격이 있는 자 중 교육공무원 임용에 결격사유가 없는 자

2) 서류제출일 현재 박사학위 소지자(학위취득예정자 인정불가)

다만, ① K-문화콘텐츠 제작 [문화기술(CT)융합분야] 분야는 석사학위 이상

② 테크니컬 디자인 분야는 석사학위 이상

3) 최근 3년 이내(2020.6.1.~2023.6.9.) 연구실적물(최종학위논문 제외) 200% 이상

나. 세부요건 : 홈페이지 참조

다. 특정대학 출신 학위 소지자의 채용 제한 : 홈페이지 참조

3. 임용조건 : 최종합격자는 관계법령 및 본교 인사규정에 따라 계약제로 임용되며, 성과급적 연봉제 적용 대상임

4. 심사기준 : 본교 전임교원공개채용심사지침 참조

5. 제출서류 : 홈페이지 참조

6. 원서접수 : 가. 교수초빙지원서는 인터넷에서 작성하여 인쇄 후(날인 또는 서명) 위 5.제출서류와 함께 서류제출 기간 내에 제출

나. 인터넷 접수 : • 기간 : 2023.5.26.(금) 09:00 ~ 6.9.(금) 16:00 (15일간)

• 방법 : 안동대학교 홈페이지(www.anu.ac.kr) 상단 팝업 존 → 안동대학교 교수초빙

인터넷 접수→ 순서에 따라 작성 → 저장 후 교수초빙지원서 출력(날인 또는 서명)

※인터넷 접수 입력방법 참조

다. 서류 제출 : • 기간 : 2023.5.31.(수) 09:00 ~ 6.9.(금) 18:00 (10일간)

• 제출처 : 안동대학교 교무과[대학본관(별동) 2층]

※ 우편접수는 2023.6.9.(금) 18:00까지 도착된 것에 한하여 접수함

[우 36729, 경북 안동시 경동로 1375 (송천동) 국립안동대학교 본관별동 교무과]

7. 문의처 : 가. 교수초빙 관련사항 : 교무처 교무과 (054) 820-7024

나. 인터넷 입력 관련사항 : 정보통신원 (054) 820-7261

※ 자세한 사항은 안동대학교 홈페이지(www.anu.ac.kr) 참조

2023년 5월 26일

국립안동대학교 총장

몸을 떼놓고 영혼만으로 가르칠 순 없다…삶과 경험의 언어로 연구하기

천하제일연구자대회

㊴ 언어·정체성·사회·교실을 엮어내는 응용언어학 연구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

나는 20대 초반부터 미국을 거쳐 일본에서 이주여성으로 살았다. 젊은 한국인 여성의 몸으로 영어를 가르쳐야 하는 딜레마.

연구자는 진공 속에 갇힌 지식을 생산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구자는 몸을 입고 있고, 몸은 싫든 좋든 사회 안에 담겨 있다.

연구, 연구자, 연구자의 몸, 연구자의 사회. 이 넷은 전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향신료 가득한 음식으로 빚은 정체성

2000년대 초반. 대구 북부정류장 구석에 있던 아시아 마트. 나는 거기서 무엇을 파는지도 몰랐고, 글자를 읽을 수도 없었다. 알파벳처럼 보이는 글자에 점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는데 당연히 영어는 아니었다. 무슨 식품인지도 몰랐고,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케찹 뿌린 계란후라이만 먹을 정도로 입이 짧았던 초등학생에게 낯선 향신료와 글자가 가득한 식품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아빠는 2000년대만 해도 아직 흔하지 않던 국제결혼을 했다. 재혼이었다. 현수막을 만들어야 했던 아빠가 어느 날 말했다. “베트남어로 현수막 하나 만들라카이 컴퓨터에 베트남어가 없어 가, 영어로 먼저 뽑아 가 거 위에다 점을 찍어야 된다 안 카나.”

알파벳 위에 모르는 점이 막 찍힌 문자. 향신료가 강해서 계속 거부감이 들었던 음식. 이 문자와 음식은 내 십대 정체성의 일부로 달라붙었다.

쌀국수가 일상 음식이 된 것처럼

아버지의 재혼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다문화가정에서 자라게 된 삶의 경험은 그대로 연구 관심사로 옮겨가게 되었다. 석사과정 중이던 2010년 대 초반에는 결혼이민자와 영유아 다문화 자녀에 대한 연구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다문화학생의 영어학습에 대한 연구는 석사논문 1편, 박사논문 1편 정도가 고작이었다. 다문화주의와 이민의 역사가 긴 북미에서는 학생의 언어학습, 언어발달, 언어 정체성 등에 대한 연구가 매우 많

았지만, 상대적으로 ‘단일민족’의 이데올로기가 매우 강한 한국의 상황은 달랐다.

당시는 ‘지식 자본’이라는 개념을 빌려와서 분석했다. 학생의 다문화 배경을 한국 사회 적응의 걸림돌로 보는 게 아니라, 학생 고유의 지식 자원으로 바라보는 개념이다. 이 개념을 활용하여, 이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언어와 다문화 경험을 영어 학습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이 학생들의 경험과 언어를 어떻게 한국 사회 안에서 중요한 자원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 학생들에게 ‘낙인’을 찍는 대신 이 사회를 어떻게 더 포용적인 사회로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질문으로 석사 연구를 이어갔다.

석사 연구 동안 네 명의 다문화 학생을 만났다. 이 학생들은 납작한 위계 안에 갇혀 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 사회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촘촘한 위계를 가지고 놀며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미디어에 재현되는 것처럼 차별받는 피해자로 남아 있지도 않았으며, 일방적 지원이 필요한 존재도 아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다언어를 자원으로 활용하여 영어를 배우는 학생도 있었고, 자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하여 학교에서 인기를 끄는 학생도 있었다. 피해-가해, 약자-강자, 한국인-외국인 등의 납작한 구도로 다문화 학생의 영어학습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다문화 학생이 이중언어 환경에서 자라나는 것은 분명히 장점이었다. 그러나 이 이중언어의 경험이 한국 사회에서 가치 있는 자원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어머니가 영어 관련 전문직 일을 하던 학생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영

김미소 교수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다양성 수업에서 활용하는 자료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이 무엇인지 찾아 이미지를 만든다. 그리고 고정관념과 자기 자신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서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어 발음이 학교의 미국 중심의 영어 발음과 다르다는 이유로 미국식 학교 영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학생도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자원’이라고 여겨지는 언어 경험의 폭이 너무 좁은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면 이 자원의 외연을 어떻게 넓힐 수 있을까.

내가 초등학생이던 2000년대, 쌀국수는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에서나 쌀국수, 월남쌈, 반미를 파는 가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베트남어 간판을 단 집이 진짜 맛집이라며 일부러 멀리서 찾아가기도 한다. 다문화 학생의 경험과 언어도 이렇게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할까.

영어를 다양성의 언어로 가르치기

베트남 새엄마는 20대 초반에 한국에 와서 이주여성의 삶을 시작했다. 가족의 연은 국적을 넘어 이어지는 것인지, 나도 20대 초반부터 미국을 거쳐 일본에서 이주여성으로 살게 되었다.

이주여성이 언어를 가르치는 직업에 종사하

면, 교사로서의 특권과 자신의 소수자성이 어지럽게 엇갈린다. 학생 앞에 서서 지식노동을 하고 학생의 성적을 매긴다는 점은 분명히 특권이다. 그러나 인종, 젠더, 사회경제적 계층, 결혼 여부, 가족의 압박 등이 여성을 억누른다. 가족을 우선하라는 압력에 공부나 일을 그만둬야 하기도 하고, ‘원어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움츠리기도 한다. 최근 응용언어학계는 원어민-비원어민의 이분법을 넘어, 제스처·기호·눈짓·대화전략·다언어 등을 모두 활용하는 ‘초언어하기’ 개념을 교육환경에 가져오기도 하고, 인종언어학이라는 분야를 만들어 언어교육에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개념이 현실에 걸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 걸까? 박사 이후, 이주여성으로 일본에 와서 영어를 가르치며 온갖

일을 겪었다. 미디어에 대서특필되는 것처럼 노골적인 혐오는 아니었다. 언제나 내가 너무 예민한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를 고민하게 되는 아리송한 일이었다. 젊은 여성 선생에게 불공평하게 지워지는 온갖 기대. 그 모든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박. 온통 새까만 정장을 입은 중년 남성 속에 가뭄 속 콩나물만큼, 그것도 문과나 예술계열에만 있는 여성 교수. 외국인과 대화해 보는 것 자체가 처음인 대다수의 사람들. 일본어와 영어로 말할 때 묘하게 달라지는 주변 사람의 태도. 분명히 칭찬하고 싶어서 한 말일 텐데 전혀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 말. 영어라고 하면 바로 금발 백인을 떠올리는 사회 분위기 안에서, 젊은 한국인 여성의 몸을 입고 영어를 가르쳐야 하는 딜레마. 이런 미세공격(microaggression)을 계속 마주하다 보니 몸에도 마음에도 생채기가 났다. 심리학자들은 미세공격을 설명할 때 “천 개의 상처로 인한 죽음”이라는 비유를 사용한다. 상처 하나 둘 정도는 금방 낫지만, 그런 상처가 천 개쯤 쌓이다 보면 목숨을 위협하니까. 소수자로 산다는 건 계속 생채기

를 입는 거였다.

이즈음 교사의 정체성을 교육방법에 활용하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그 간의 연구를 보면 비원어민 영어 교사로서 미국 영어, 영국 영어, 인도 영어 등에 촘촘히 매겨진 위계를 깨는 것, 자신이 가사를 잘 하는 남성이라는 걸 어필하며 젠더 고정관념을 깨는 것 등이 포함된다. 교사는 몸을 떼 놓고 영혼만 쏙 교실에 들어갈 수 없다. 가르친다는 것은 언제나 몸과 경험을 입고 하는 행위다. 사회가 이 몸과 경험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가르친다는 행위가 완전히 달라진다.

삶 연구 가르치기를 촘촘히 엮어내다

금발 벽안의 미국 출신 남성은 교실에 그냥 걸어 들어가는 것 자체만으로 영어 교사의 권위를 얻는다. 영어 교사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온 젊고 작은 여자가 교실에 걸어 들어가면, “학생 아니야? 왜 저기 있어”라는 관념을 먼저 깨야 하고, 그 다음엔 “왜 영어 선생이야? 한국어 선생 아니야?” 의 벽을 또 뛰어넘어야 한다. 그 이후 “영어 제대로 하는 거 맞아? 왜 한국인이 영어를 가르쳐?”라는 편견을 학위와 논문, 화려한 경력 등으로 맞서야 한다.

이렇게 몸을 입고 한 경험은 그대로 다양성 수업으로 연결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 수업에는 백인 남성의 영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의 프리젠테이션, 임신한 CEO의 연설, 일본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영어 인터뷰, 방에서 은둔하는 사람의 사회 재적응을 돕기 위한 원격 카페 아르바이트 영문기사 같은 자료가 내 교실을 채웠다. 영어는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이 서로 연결되기 위해 쓰는 언어라고 소개하고 싶었다. 영어는 선진국 백인 남성의 언어가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의 언어니까.

이 다양성 수업은 그대로 연구 결과로 이어졌다. 최근 출판한 논문에서는 교과서에 녹아 있는 특정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을 지적하고, 이 교과서를 반면교사 삼아 어떻게 다양성을 촉진하는 수업으로 바꾸어 갈 수 있는지 다루었다. 2022년에 출간한 논문에서는 한국, 미국, 일본 3개국의 사잇공간에 서 있는 연구자의 정체성 발달을 다루었다. 이 논문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 주었고, 이 바뀐 시선은 다시 내 삶과 이어졌다.

연구자는 진공 속에 갇힌 지식을 생산하지 않는다. 연구자는 몸을 입고 있고, 그 몸은 싫든 좋든 사회 안에 담겨 있다. 사회는 몸에 이런저런 라벨을 붙이고, 특권을 입혀 주기도 하고,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연구, 연구자, 연구자의 몸, 연구자의 사회. 이 넷은 전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삶은 교육과, 교육은 연구와, 연구는 시선과, 그리고 시선은 다시 삶과. 연구자는 이 모든 걸 촘촘히 엮어 짜내어 태피스트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닐까.

김미소

다마가와대학 공통어로서의 영어센터 전임교원

기존의 언어 체계로 설명하기 어려운 틈새의 경험과 정체성에 관심이 많다. 경험과 정체성을 설명하는 언어를 찾다 보니 중앙대에서 다문화가정 학생의 영어학습 연구로 석사학위를,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취업준비생의 영어학습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학생들과 함께 다양성의 언어로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한국어 에세이 『언어가 삶이 될 때』(한겨례출판, 2022)를 냈고, 『지금 시작하는 평등한 교실』(동녘, 2022)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mkim@lab.tamagawa.ac.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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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과학 위해 더 나은 공동체 필요하다”

빅데이터에 기반한 서지분석학으로 과학의 과학 연구가 가능해졌다. 분명한 건 과학논문이 탄생하기 위해 사회적 자본과 제도적 기반, 협력적 네트워크 등 사회적 요소들이 개입한다는 사실이다. 사진=픽사베이

과학의 과학 ⑦_빅데이터로 본 과학논문

과학이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과연 어떤 안목이 필요할까. 과학은 이해하기 힘들고 때론 소통이 힘들때도 있다. 이에 화학을 공부하고 과학기술정책학을 전공한 전준 충남대 교수가 ‘과학의 과학’을 연재한다. 이 연재는 과학기술을 사회학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며 성찰하고자 한다. 일곱 번째는 빅데이터로 본 과학논문이다. 전 교수는 같은 공동연구를 해도 남성은 소통의 능력이 있는 걸로, 여성은 무임승차를 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 문장에 눈길이 간다. “남성은 공동연구를 많이 수행할수록 종신교수직 획득 확률이 크게 높아졌지만, 여성은 그렇지 않았다.”

▶1면에서 이어짐

전 세계의 과학적 연구 결과를 일목요연하게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그 편수와 인용 횟수, 공동 연구자 네트워크와 연구 결과의 파급력까지도 측정할 수 있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다국적 기업 클라리베이트와 엘스비어를 비롯한 출판사가 각종 학술논문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학술적 영향력을 정량화 하면서부터 그런 분석이 가능해졌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지금은 운영을 중단한 ‘MAG(Microsoft Academic Graph)’라는 서비스를 통해 과학기술 문헌분석 연구를 지원했다. 대학과 연구자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정량화된 영향도 크다. 북미의 연구자들은 대개 정량·정성평가를 골고루 임용-승진-종신교수직 획득에 활용한다. 한국의 경우 정량평가의 비중이 훨씬 높다. 이 모든 평가 지표는 결국 출판사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활용하여 집계된다. 원하든 원치 않은 모든 학문적 성과는 국제적인 연결망의 맥락에서 평가되고 집계되는 시대가 됐다.

서지분석학으로 ‘과학의 과학’ 연구

사회에 대한 새로운 데이터가 등장하면 사회과학자들은 새로운 연구영역이 개척된 것으로 보고 앞다투어 뛰어들기 마련이다. 스스로를 ‘과학의 과학’ 연구자라고 부르는 일군의 학자들이 서지분석학적 접

“과학이 공동체의 산물이라는 메시지만큼은 명확한 것 같다. 빅데이터를 통해 이제 우리는 한 편의 과학논문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회적 요소가 개입되는지 명백하게 알게 됐다.”

근을 통해 과학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들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과학기술의 연구가 수행되는 사회적 구조에서 어떤 패턴을 찾을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과학자들은 어떤 구조로 협동연구를 수행하고, 그 효과는 무엇일까? 높은 파급력을 가진 논문은 지식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더 많이 인용되거나 혹은 더 적게 인용되는 과학자 사이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을까? 각국의 다양한 과학자는 각자 얼마나 서로 다른 연구 분야에 매진하고 있을까? 과학자는 나이가 들수록 연구 생산력이 감소할까? 이들의 가장 영향력 있는 걸작은 어느 시점, 어느 상황에서 탄생할까?

이러한 질문은 일견 개인적이고 소소해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학의 과학 연구자들이 세밀한 데이터와 미시적으로 보이는 현상을 통해 큰 패턴을 찾아내고, 이러한 패턴에 기여하는 지식장의 속성과 사회구조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는 점을 간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학자의 젠더에 대한 연구를 사례로 살펴보면 성별이 개별 과학자의 커리어와 영향력에 광범위한 영향을 주고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미국 하버드대의 사슨스 교수 연구팀은 남성과 여성 연구자가 각각 공동연구로부터 서로 다른 사회적 보상을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 대학에서 종신교수직을 수여받는 경제학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이들이 종신교수직을 획득하기까지 써야 하는 논문의 수는 성별에 상관없이 비슷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남성은 공동연구를 많이 수행할수록 종신교수직 획득 확률이 크게 높아졌지만, 여성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여성은 독자적으로

연구를 수행할수록 남성에 비해 종신교수직에 이르게 될 확률이 크게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한가지 설명은 공동 연구에서 여성 연구자는 의존적이거나 무임승차자인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고, 남성 연구자는 소통과 협력 능력까지 겸비한 연구자인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대 라비에르 교수 연구팀이 이미 10년 전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여성 과학자가 주요 저자인 제1저자 혹은 교신저자로 참여한 논문은 그것이 단독 저자 논문이든, 국내의 공동연구이든, 국제적인 공동연구이든 가리지 않고 더 적게 인용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2008년에서 2012년까지 출판된 550만 건의 논문과 2천700만 명의 저자를 대상으로 하여 빅데이터 연구를 수행했는데, 이를 통해 과학계에서 공공연히 여성 과학자를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음을 실증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이 사례에서 알수 있듯이 과학의 과학은 종신교수직을 얻는데 얼마나 많은 논문 혹은 공동연구를 수행해야 하는지, 어떤 연구자가 더 많이 인용되는지 등 다양한 ‘사소해 보이는’ 경험연구를 통해 학문장의 현상태에 대한 진단과 더불어 이 안에서 여전히 사회구조와 맞물려 작동하고 있는 불평등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연구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실증적이고 망라적이라는 데 있다. 명확하게 현 상태를 진단해주기 때문에 정책 영역에서의 활용도도 높다. 빅데이터 연구의 가장 큰 강점이다.

빅데이터 경향성이 곧 인과관계일까

그러나 한계도 있다. 첫째로, 실증적 데이터를 활용해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과정이 더욱 엄밀해져야 한

다. 빅데이터를 통해 특정 경향성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인과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특정 경향성을 보이는 개인과 조직 차원의 동인과 문화에 대한 질적 연구가 병행돼야 한다. 둘째로, 데이터 불평등이 연구의 불평등과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이미 체계적으로 잘 정리된 과학기술 서지정보를 보유한 SCI·SSCI학술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가능하지만 아직 이러한 데이터가 수집되지 않은 수많은 국가의 국내 단위 학술지는 빅데이터 연구의 대상으로 편입되지 못하고 있다. 가령 한국의 KCI 저널만 해도 빅데이터 연구의 대상이 되기 매우 어렵다. 오로지 SCI·SSCI를 출판하는 연구자만 글로벌 지식장의 참여자인 것으로 상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공동체의 산물이라는 메시지는 명확한 것 같다. 지식의 근본은 내용 그 자체가 아니라 행위라는 과학기술학(STS)의 오래된 관점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빅데이터를 통해 이제 우리는 한 편의 과학 논문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회적 요소가 개입되는지 명백하게 알게 됐다. △사회적 자본 △제도적 기반 △국가 정책 △젠더 관념 △보상 경쟁 △국가 간 불평등 △협력적 네트워크 등 그 요소를 모두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다. 이것의 함의는 무엇일까? 바로 더 나은 과학을 위해서는 우리가 더 나은 공동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더 나은” 과학이 무슨 의미인지, 이를 위해 사회를 어느 방향으로 “더 낫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는 오랜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토론을 시작할 수 있도록 실증적 자료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빅데이터는 그 몫을 톡톡히 한 것은 아닐까?

전준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

카이스트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과학기술정책학 석사를 했다.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회미래연구원에서 부연구위원으로 일했다. 현재 과학기술사회학, 환경사회학, 사회 이론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의사·교수·엄마’의 삶…‘열심히’가 아니라 ‘그냥’ 해라

여성과학기술인 이야기 ㉔ 김지은 이화여대 교수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이 시대 여성과학인 소개 캠페인 ‘She Did it’을 펼치고 있다. <교수신문>은 여성과학기술인이 본인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경력 성장에 도움을 주기 위한 다양한 이야기를 공동으로 소개한다. 여성과학기술인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생생한 목소리가 교수 사회에 진심을 담아 전달되길 기대한다. 스물네 번째는 김지은 이화여대 교수다.

인지과학은 주가변동부터 신경법학까지 일상과 맞닿아 있다. 김지은 이화여대 교수(뇌·인지과학과)는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드문 의사이자 과학자인 ‘의사과학자’이다. 김 교수는 정신의학 전문의 자격을 얻은 후에 의학박사를 땄다. 그는 중개연구·융합연구를 통해 뇌·인지과학을 질환치료 등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관시켜 연구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 의학의 미래를 이끌고 세계 의학의 선두주자가 될 젊은 연구자로 인정받아 ‘LG미래의학자상’ 등을 수상했다.

중개연구는 기초과학의 연구 결과를 임상과학에서 사용하도록 연계해주는 연구를 뜻한다. 즉, 기초의과학과 생명과학 분야에서 밝혀낸 기전·치료법 등을 사람에게 적용하는 분야다. 실험 벤치에서 밝혀낸 것을 환자에게 가져온다고 해서 ‘Bench to bedside’라고도 부른다. 기초과학적 발견을 창의적으로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이 바로 중개연구의 역할이다.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동물에서 뇌의 특정 세포에 있는 특정 수용체를 차단했을 때 어떤 뇌기능이 소실되는 것을 관찰했다면, 이것이 사람에게는 어떤 질환이나 증상과 관계가 있겠는지, 어떤 방법으로 증명해 낼 수 있겠는지 등을 사람의 뇌와 임상 연구에 대한 노하우와 이해를 바

탕으로 밝혀내는 것이다.”

신경경제학·신경법학 융합연구 조금씩 확대

김 교수는 중개연구를 넘어 융합연구도 하고 있다. 신경경제학·신경법학 분야로도 조금씩 연구를 확대하는 중이다. 예를 들면, 내가 대주주라고 가정했을 때 자식에게 주식을 증여하려면 증여세를 내야 한다. 증여세는 증여 시점 전후로 2개월 내의 주가를 평균해서 부과된다. 그렇다면 언제 증여를 하는 게 좋을까? 맞다. 주가가 가장 저점일 때이다. 그 시점을 데이터와 공시자료 등과 연동해 분석한다. 김 교수는 “스타트업 타키온뉴스와 협업해 사회로 이어지는 커뮤니티 연구를 하고 있다”라며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는 것도 연구의 즐거움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예는 법심리학이나 신경법학이다. 사람이 어떤 폭력적인 행동을 한 후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거짓말이거나 약물의 부작용일 수 있다. 어떤 약물의 영향으로 그런 행동이 나타나는지를 밝혀내면 그 약물의 위험과 해악에서 벗어날 수 있다. 김 교수는 법학자들과 함께 융합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경제나 법과 융합된 연구는 짧은 집중력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나

김지은 이화여대 교수(뇌·인지과학과)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정신과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과에서 인턴, 정신과에서 레지던트를 했다.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임상연구소 뇌영상센터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2011년부터 이화여대에서 연구하고 있다. 현재 이대목동병원·이화의료원 겸임교수이기도 하다. 사진=WISET

처럼 육아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는 용이한 측면이 있다"라며 "중개연구·융합연구는 특정 질환만 연구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 방법론만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목적에 따라, 융합 분야에 따라, 중개하고자 하는 발견에 따라, 질환과 대

상과 방법이 유연하게 바뀐다. 이러한 유연성과 창의성이 김 교수 연구의 특장점이다.

정신건강·뇌과학 연구를 이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자폐장애와 관련된 연구를 책으로 펴냈던 것이다. 사실 자폐장애의 뇌이상 중 편도체, 그중에서도 아주 작은 세부구조 이상에 대한 연구였기에 원인 규명과 치료법 개발에 작은 퍼즐 하나를 해결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당장 근치법(根治法)이 발견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계속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라던 말했던 이가 있다. 김 교수는 “아무도 연구하지 않는다면 난치병 환자들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얘기”라며 “이때 연구의 의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라고 회상했다. “이 연구 하나로는 단정할 수 없지만 여러 연구를 종합해 볼 때, 자폐장애가 ‘발달 초기의 뇌염증’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에 대한 날것 상태의 가설을 갖고 있다. 이 방향으로 연구를 계속할 수 있다면 예방이나 치료법에도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 교수는 세 아이의 엄마다. 그는 출산·육아를 통해 계획대로 안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특별한 계획이나 청사진보다 큰 방향을 따라서, 또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그날그날의 일을 해나가려 한다. 김 교수는 “후배들에게도 ‘그냥 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열심히 하라’, ‘최선을 다해 하라’가 아니라 ‘그냥 하라’는 말이다”라며 “최고를 향해, 원대한 계획과 꿈을 가지고 시작하면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고 지칠 수도 있는데, 그냥 하루하루 하다 보면 의미 있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당부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저널리즘 선언

바비 젤리저 외 2인 지음 | 신우열·김창욱 옮김 | 오월의봄 | 168쪽

오늘날 저널리즘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후퇴 중인데 이 사회의 더 나은 공공선을 위해, 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저널리즘은 기여하고 있는가? ‘기레기’라는 단어를 보듯이 오늘날 대중들은 저널리즘을 더는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 저널리즘이 권력 감시, 진실 추구 등 어떤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도 크지 않은 듯하다.

더티 워크

이얼 프레스 지음 | 오윤성 옮김 | 한겨레출판 | 496쪽

우리 사회는 혐오스럽고 오염된 것을 부단히 ‘뒤편’으로 격리시켜왔다. ‘문명화’의 이름은 물리적으로 더러울 뿐 아니라 규범 문화에서 벗어나거나 ‘야만적’인 모든 부적절한 것들을 허용하지 않는다. 미국 사회 역시 불결한 것들을 ‘치워버림’으로써 번듯하고 깨끗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존재는 보이지 않을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늘날 비가시화된 더러운 존재들은 어디로 갔는가?

안티-재팬

리오 T. S. 칭 지음 | 유정완 옮김 | 소명출판 | 257쪽

이 책은 식민주의 폭력에 맞서고 궁극적으로 그 극복을 시도할 수 있는 초국적, 국가 내적, 그리고 세대 간의 친밀감과 관계의 형식을 검토하고자 했다. 반식민주의적, 반제국주의적, 반권위주의적 민족주의 투쟁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한국인들에게는 추정컨대 연약하고 이상주의적인 이런 접근이 직관에 반하고 비생산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한반도에는 민족 통일의 열망이 미완의 기획으로 남아있다.

일본의 정당정치는 왜 무너졌을까

미쿠리야 다카시 지음 | 윤현명 옮김 | 소명출판 | 147쪽

이 책은 미쿠리야 다카시 도쿄대 명예교수가 쓴 『정당정치는 왜 자멸했는가』의 한국어판이다, 19세기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일본의 정당정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근대 일본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수용되고 몰락해 버렸는지 그 과정을 잘 묘사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에 나타난 저자의 최대 문제의식은 “왜 근대 일본 정치에서 정당이 몰락하고, 군부가 대두했을까?”이다.

선가귀감

휴정 지음 | 전갑배 그림 | 정길수 편역 | 돌베개 | 356쪽

불교 경전은 기원전 1세기경부터 기록되기 시작했고 ‘8만4천의 가르침’이라고 말할 정도로 방대한 양의 경전과 어록이 존재한다. 그 내용이 매우 철학적이어서, 한 가지 경전을 깨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바다처럼 넓은 대장경의 세계에서 중생을 감발할 수 있는 절실한 문장을 뽑는다는 건 지극히 중생을 사랑한 서산대사 휴정의 마음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한국 과학소설사

최애순 지음 | 소명출판 | 344쪽

이 책은 SF가 2천년대 이후 한국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다고는 하나 한국 SF의 계보를 살펴보는 과정은 생략된 채 서구의 SF 역사만 반복되고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를 담았다. 따라서 한국에서 ‘과학소설’이란 표제를 달고 창작된 작품의 계보와 개념을 정립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과학소설’이라는 용어에 걸맞게 지금의 SF가 포괄하는 영화 등의 다른 매체보다 ‘과학소설’에 집중했음을 밝힌다.

땅속의 용이 울 때

이어령 지음 | 김태완 편집 | 파람북 | 232쪽

현재의 관점에서 기술한 이 책은 기념비적인 고전의 완결편이다. 저자가 20대 청년 시절 치열한 문제의식으로 기록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3년 출간)가 그 원전. 이 최초의 한국문화론은 1962년 경향신문에 처음 연재됐고, 이듬해 단행본으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오늘까지 한 번도 인쇄기가 멈춘 적이 없는 스테디셀러로서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 책은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산불 관리의 과학적 근거

이창배 외 19인 지음 | 지을 | 280쪽

지구온난화로 인한 평균 기온 상승과 가뭄은 산불의 발생과 확산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고 진화를 어렵게 한다. 또한 산불은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배출하며 지구온난화를 촉진한다. 기후변화가 산불의 연중화, 대형화를 촉진하고 산불은 다시 기후변화의 기폭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산불로 인한 피해를 줄여야 한다.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백자 여행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40쪽

대중들의 조선백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실로 대단하다. 한·일 영부인이 함께 관람했고, 베르나르 아르노 LVMH 루이비통 회장도 빡빡한 2박 3일 일정 속에서도 들러 백자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했다. 이 책은 눈에 보이는 조선백자의 미(美)뿐만 아니라 미처 피우지 못한 잠재된 미(美), 제작 당시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오늘에 이르러 재평가받는 백자의 미감(美感)에 이르기까지 조선백자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한다.

역자가 말하다_『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 신지영·김정연·김예나·문현 옮김 | 갈무리 | 224쪽

‘마녀’ 후손이 펼치는 저항…여성주의적 공동체 꿈꾼다

라틴 아메리카·인도·아프리카와 한국의 지금 여기

자본에 의해 착취·전유 당하는 혐오·박해의 현재

배제와 조롱이 담긴 호명을 저항의 슬로건으로 바꾸는 빛나는 예들이 있다. 게이·퀴어·장애·홈리스 등. 폭력과 차별이 상식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차별당한 바로 그 위치에서 변화를 꿈꾸는 힘이 그 빛남의 원천이다. 그중에서도 최근 여성들의 손에 힘차게 들려진 슬로건은 ‘마녀’이다.

2017년 2월 4일,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는 트럼프 정권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저항하는 시위가 열렸다. 한 여성의 손에는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라고 쓴 피켓이 들렸다(104쪽). 이 슬로건은 2018년 3월 8일, 스페인 카탈로니아의 국제 여성의 날 시위에서도 다시 등장한다. 여성주의 학자이자 투사인 실비아 페데리치의 『Witches, Witchhunting,and Women』 (PM Press, 2018)을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라는 제목으로 3월 8일 여성의 날에 번역 출간한 것은, 스스로를 ‘마녀’의 후손이라 명명하는 활동에 기꺼이 함께 하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페데리치에 따르면 마녀사냥은 한번 일어나고 사라지는 ‘전근대적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 형태가 변화하는 순간마다 새로이 평가절하되는 존재에 대한 박해의 ‘현재’다. 여성, 자연, 동물, 난민·이주민, 장애인, 가난뱅이 등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고 삶을 전유 당하는 존재에 대한 혐오와 박해 말이다. 특히 이 책에는 ‘마녀=여성’이라는 공식을 넘어 다양한 마이너리티의 투쟁과 접속할 여지가 충분하다. 아울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녀사냥의 다양한

양상을 비추며, 그 폭력과 배제의 원인을 드러냄으로써 피해를 호소할 수 있는 논리를 주고 새로운 관계를 상상하도록 한다.

이 책은 페데리치의 대표작인 『캘리번과 마녀』 의 ‘대중적인 소책자’로 기획된 만큼 읽기 쉽고 예시가 풍부한 것도 매력이다. 1부가 마녀사냥의 정치경제적 발생 원인을 풍부한 예들과 함께 깊이 짚어 준다면 2부는 라틴 아메리카, 인도, 아프리카 등에서 급증하고 있는 현재의 마녀사냥을 선명히 부각시킨다.

무엇보다 이 책은 여성 신체에 대한 시초축적(始初蓄積)이 바로 마녀사냥이었음을 밝힘으로써, 자본주의 분석을 여성주의적으로 전환한다. 그러자 시초축적이 공동체 파괴를 그 핵심으로 했고, 현재에도 그 현상은 심화·확대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마녀사냥은 공동체적 관계를 지키려는 여성, 여성의 신체, 여성주의적 공동체에 대한 역사·현재적인 통제·관리·파괴이다.

페데리치는 이를 공동체의 역능(力能)에 대한 강조로 한층 전진시킨다. 현재 마녀

사냥이 잔혹한 형태로 확대되는 것은 자본이 바로 이 통제불가능한 역능(재생산 능력, 관계 형성 능력)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결국 마녀사냥에 대한 비판을 통해 선명해지는 것은 자본의 힘이 아니다. 오히려 공동체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존재들의 이 통제불가능한 역능이다. 따라서 여성 사이의 연대·우정·앎을 의미하던 ‘가십’을 불화의 씨앗이나 한심한 말로 평가절하해 버린 것이다.

이 책은 여성주의적 공동체를 만들고 지

키는 투쟁에 힘을 실어주는 질문을 전해준다. 왜 마녀사냥은 폭력과 범죄로 인정되지 않는가? 왜 마녀사냥은 그렇게까지 잔혹하고 폭력적일까? 마녀사냥을 부추기는 위로부터의 선동·혐오에 어떻게 대항할 수 있을까? 왜 마녀사냥은 페미니즘의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는가?

마녀사냥에 대항할 무기를 쥐여 주는 이 질문을 통과하며, 이 책은 채굴주의(extractivism)에 대한 비판으로 끝난다. 채굴주의란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제3세계의 천연자원을 고갈시킬 정도로 뽑아내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환경오염, 생태계의 파괴, 원주민 공동체의 파괴와 강제이주를 낳는다. 공동체가 파괴되자, 이웃하고 있던 존재들은 세계자본의 이간질에 의해 서로를 적대시하고 경쟁하게 된다. 이러한 채굴주의가 현재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새로운 프런티어, 그것이 곧 ‘여성’의 신체라고 페데리치는 이야기한다.

이 논점은 현재 산업노동 및 재생산노동 전 분야에서 ‘자연화된 신체(여성·동물·무생물 등)’가 어떻게 재구성(복제, 유전자 편집 등)되고 착취·전유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를 폭로하며, 이 예고된 새로운 마녀사냥에 페미니즘이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를 묻는다.

신체에 재갈이 채워지려는 순간들을 거부·거절하는 여성·비/국민·비/인간 존재의 힘과 용기와 지혜를 북돋는 공동체적 앎이 되길 바라며, 기꺼이 마녀의 후손이 되고 싶다.

신지영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

저자가 말하다_『동아시아 인정투쟁: 패전국 일본, 분단국 중국, 식민지 한국의 국교정상화』 오승희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312쪽

‘인정투쟁’의 각축장 한·중·일…지역 협력의 가능성은?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가? 어떤 부분을 인정받고 있고, 어떤 부분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가? 한국은 일본과 중국을 인정하고 있는가? 인정하고 있다면 어떤 부분을 인정하고 있으며, 어떤 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가?

이 책은 국가들의 관계에서 상대방을 인정하고 또 상대방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관계로 엮인 사회 속에서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무시와 차별에서 벗어나려는 욕구, 동등한 권리를 쟁취하려는 욕구,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욕구 등 다양한 인정욕구

권력·이익의 물질 중심적 국제관계로부터 전환

한·중·일 우선순위 분석으로 화해의 논의 심화

는 국제사회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인정은 자아(self)와 타자(other) 간 상호관계에 기반하고 있다. 자아는 스스로 인정받기 위한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있지만, 타자에 대해서는 인정을 할 수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떠한 타자를 인정할 것인지의 여부가 국제사회의 주요한 의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한 국가는 다른 국가를 인정하거나 또는 인정하지 않는가? 한 국가의 행동에 대한 인정 여부, 상대 국가에 대한 인정 여부, 역사문제 등에 대한 인정 여부 등 국제관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를 인정의 개념을 통해 살펴보는 것이 가능하다. 주로 권력투쟁이나 이익투쟁의

관점에서 설명해왔던 국제관계를 인정투쟁의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물질 중심적 시각에서 간과되거나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국가이익을 구성하며, 더 나아가 국가이익의 최우선 순위로 자리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대외 전략을 살펴보면, 패전 이후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선진국으로, 강대국으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다. 중국의 인정 투쟁은 무엇보다 ‘하나의 중국’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 중요한 목표는 바로 중국 전체를 대표하는 정통 정부로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인정받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1965년 국교를 정상화했으나 2023년 현재까지도 서로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사과를 통해 식민지였던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한다. 패전국 일본, 분단국 중국, 그리고 식민지 한국의 인정 욕구는 국가이익과 불가분이고, 외교 전략의 핵심이기도 하다.

한중일의 관계에서 흥미로운 것은, 전후 냉전기 중국과 한국이 분단되었고, 일본이 중국과 한국의 두 정부 중 어느 정부를 인정할 것인지의 선택에 놓인다는 점이다. 중국과 한국에 대해 인정 부여의 권리를 가진 일본이라는 구조가 전후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형성해왔으며 오늘날의 한중일이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일본 정부가 중국과 한국에 대한 인정을 부여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은 전후 동아시아 질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1965년의 한일국교정상화와 1972년 중일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인정보다도 정부 대표성 인정 문제가 우선적으로 다루어지면서 과거사에 대한 인정이 모호하게 처리되었다. 전후처리의 애매모호함과 불완전성은 1945년 이후 지금까지의 한중일 관계에 여전히 제약으로 남아있다. 당시 일본측에서 한국과 중국의 인정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져 왔으며, 일본 외교정책의 전반적인 맥락에서 어떻게 다루어져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후 78년간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살펴본다면, 한중일 간의 인정투쟁은 치열하게 전개되었지

만, 상호 인정은 제한적 수준에서 나타나고 있다. 오히려 영토갈등이나 역사 인식에서 나타나는 갈등은 서로에 대한 비인정/불인정을 위한 ‘부정투쟁’으로 전개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동아시아를 둘러싼 갈등 쟁점에도 자신은 인정받으려 하면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자 하는 다양한 외교 전략이 사용되고 있다.

한중일은 여전히 전후 극복을 위해 인정 투쟁 중이다. 한중일이 자신의 국가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서로를 인정하고 있는지, 얼마나 인정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중일이 상호 인정을 심화시켜나갈 수 있어야만

동아시아 지역 협력의 가능성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오승희

서울대 일본연구소 HK연구교수

저자가 말하다_ 『오월의 정치사회학: 그날의 죽음에 대한 또 하나의 시선』 곽송연 지음 | 오월의봄 | 216쪽

우리 곁의 학살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

5·18은 과거에 대한 논의 아닌 문제적 현실

제노사이드·정치심리학 이론적 논의로 분석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 등의 잔학행위를 제노사이드(genocide)로 규정했다. 바이든의 언급은 까다로운 법적 요건을 요구하는 제노사이드 개념의 한계로 국제사회에서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20세기 이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학살에서는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나 르완다의 사례처럼 명백한 인종적·종족적·민족적 집단의 말살 의도가 밝혀지는 경우가 오히려 드문 까닭이다.

사실 지금 이 시각에도 시리아,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등 도처에서 민간인에 대한 학살과 잔학행위는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광범위하고 잔혹한 집단살해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분명한 문서 증거의 확보를 포함한 국제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으니, ‘아직은’ 그저 제노사이드가 아닐 수 있다는 신중한 관전의 자세를 견지해야 할까? 무엇보다 학살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 처한 현실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의 불행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특정 사례가 제노사이드건 잠정적으로 그렇지 않더라도 학살을 비롯한 반인권 범죄에 대한 감시와 견제에 관심을 두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성원이 반드시 갖춰야 하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즉 인권 없는 민주주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학살의 실행 요건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학살의 가해자는 어떤 동기와 행동양식으로 비무장 민간인을 살해하는가?”, “대중은 왜 반인륜 범죄에 침묵하는가?”와 같은 학살의 실행 요건에 관한 근본적인 해명을 추구한다. 바꿔 말해서 이 책의 문제의식은 학살이 대니얼 골드하겐의 주장대로 “특정 시대 특정 사회에 누적된 역사적 편견이 특수한 형태로 분출된 고도의 잔학 행위” (Daniel Jonah Goldhagen, Hitler’s Willing Executioners: Ordinary Germans and the Holocaust, Knopf, 1996)가 아니라 어떤 구조적‧역사적 조건이 결합된 곳에서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근대의 삶 속에 잠재적으로 내장된 위험”이라면, 이에 대한 학문적 천착은 학살 그 자체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악의 평범성’에서 ‘악의 합리성’으로: 홀로코스트의 신성화를 경계하며」,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임지현 옮김, 당대비평, 2003, 12~32쪽)

한편으로 이 책은 수십 년 전 한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그 소재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미 5·18은 과거에 대한 논의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이행과 공고화 기간을 거치며 끊임없이 정치적 현안이 되어온 가장 논쟁적인 사안이자 정치적 갈등의 뿌리로 불거진 문제적 현실에 대한 직면이다.

이를 위해 이 책은 크게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첫째, 학살의 가해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왜

시민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가? 둘째, 대중들이 잔학행위를 방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셋째, 학살의 과정과 그 직후 가해자와 국가는 어떻게 사실을 부인하는가? 넷째, 도대체 학살은 왜 일어나는가?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등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은 제노사이드 이론, 정치심리학, 기억의 정치의 이론적 논의를 도입했으며, 특히 각각의 주제에 대한 현재 논의를 담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예를 들어 이 책 4장의 결론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학살과 제노사이드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에 몇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구체적으로 반인권 범죄의 대상이 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 개입의 유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관련 학자들과 국제 인권운동가들이 모색해 온 보다 현실적인 외부 개입 수단을 제안한

다. 바로 ‘naming and shaming’이다(Matthew Krain, “J’accuse! Does Naming and Shaming Perpetrators Reduce the Severity of Genocides or Politicides?”,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 56(3), 2012, p.574~589.). 학살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가해자를 학살자, 반인륜 범죄자로 부르고, 수치심을 주는 효과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를 비롯한 각 장의 새로운 논의에

대한 독자들의 ‘두텁게 읽기’가 새로운 학문적 논쟁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곽송연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

서평_『역사학 너머의 역사: 빅히스토리, 문명의 길을 묻다』 김기봉 지음 | 문학과지성사 | 328쪽

“우주 만물 이해해야 인간중심주의 벗어난다”

김기봉 경기대 교수(사학과)는 빅히스토리 플랫폼을 운영하며 전문가 세미나를 운영 중이다. 그 결과물이 ‘역사학 너머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 빅히스토리는 데이비드 크리스천 호주 맥쿼리대 교수가 창시했다. 1989년 크리스천은 우주-지구-생명-인류의 역사를 연결하는 ‘빅히스토리’ 교과목을 개설했다. 크리스천은 19세기 러시아사를 전공했는데, 러시아사를 이해하려면 인류 전체의 역사를 알아야 가

구성 요소·복잡성 증가·골디락스 조건이 서사 공식

역사적 상상력으로 새로운 미래 개척할 내비게이션

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빅히스토리는 정치사·경제사·사회사·문화사 등처럼 분류사로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아마추어 역사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빅히스토리가 역사학계에서 저평가되는 이유는, 하나의 분류사로 고유한 역사학적 지식을 생산하지 못하고 과학사 지식을 병렬적으로 연결하는 스토리텔링에 머물러 있다고 여겨지는 데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역사학과)의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등의 인기에 힘입어 빅히스토리는 최근 대중학술서의 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역사학 너머의 역사』의 핵심은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자는 것이다. 인류가 아니라 우주와 지구의 태초를 알면, 더욱 먼 미래

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판단이다. “기억의 반대말은 망각이 아니라 상상이다.” 김 교수는 “빅히스토리가 내비게이션으로서 작동하려면, 과거에 대한 역사 지식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인간중심주의를 탈피해야 현재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 인공지능의 진화, 인수공통감염병의 확산 등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간주했다. 그는 “빅히스토

리는 인간이 과학과 인문학으로 탐구해낸 세상과 인간에 관한 모든 지식을 연결해 집단 학습을 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이야기다”라며 “무엇보다 먼저 인간의 가치관과 경험에 근거해 만물을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먼지로부터 생성된 작은 존재다”라고 지적했다.

빅히스토리의 세 가지 서사 공식은 구성 요소, 복잡성의 증가, 골디락스 조건이다. 구성 요소는 92종에 달하는 우주의 원소들이다. 복잡성의 증가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열역학 제2법칙이다. 점점 더 무질서한 상태가 돼가는 게 우주의 변화다. 그런데 생명은 ‘음의 엔트로피’를 먹고산다. 즉, 생명은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끌어와 질서를 유지하고자 한다. 골디락스 조건은 우

주에서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딱 알맞은 상태를 뜻한다.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내용은 4장 ‘전통 시대 동서양의 인문학’에 나온 천륜이 인륜보다 앞섰던 시대상이었다. 1907년 1만 명 가까이 모인 의병 운동은 ‘13도 창의군’ 대장이었던 이인영은 낙향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에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일제의 대한제국 침탈에 맞서 모인 집결 운동은 부모와 자식이라는 천륜 앞에서 무너졌다. 물론 그 당시 인문학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중요한 건 시대적 흐름에 따라 인문학 역시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예는 눈을 가진 최초의 동물이 삼엽충이라는 사실이다. 김 교수

는 해양생물학자 앤드로 파커를 인용하며, “눈의 탄생이 포식자로서 동물의 생존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생명 역사의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눈을 이용해 피식자를 피하고, 포식자가 돼 가는 과정에서 운동해야 할 필요성이 증가했다. 김 교수는 “그런 선택압으로부터 여러 다양한 운동기관이 발생하는 폭발적 진화가 일어났다”라고 적었다.

인문학의 세 가지 질문은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이다. 『역사학 너머의 역사』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라기보다 최선의 대응이다. 김 교수는 “‘뇌의 나’로 태어난 인간이 ‘나의 뇌’로 살려는 불굴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인간 정체성과 존재 의미를 성찰하는 인문학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전기수 설낭

김동진 지음 | 싱긋 | 432쪽

충군 당한 선비 이옥, 과제 급제라는 희망을 품고 그와 함께 한양으로 향한 사람들 그리고 그 시대의 절대권력을 꿈꾸던 사람들. 이 책은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조명받지 못한 인물들의 삶을 현대적 감각으로 흥미롭게 되살리는 데 탁월한 솜씨를 보여온 저자의 새 역사소설이다.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과 임진왜란 초기의 명장인 황진 장군을 재조명한 소설 『임진무쌍 황진』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이다.

대사질환에 도전하는 과학자들

남궁석 지음 | 바이오스펙테이터 | 264쪽

이 책은 현대인을 위협하는 주요 질환이 어떻게 발견되고 치료됐는지를 신약 개발 중심으로 엮어 낸다. 이는 곧 현재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과학자가 달성하고 있는 성과이기도 하다. 의료 기술 미비로 편견이 가득했던 20세기부터 인간 게놈 프로젝트 이후 고도로 발전하는 유전자 연구까지, 현대 의학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큰 반향을 일으킨 혁신적인 연구나 한때는 추앙받았지만 부작용으로 얼룩진 약물 등을 통해 심혈관 질환 및 대사질환 치료의 가능성을 진단한다.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3

동아시아 사랑방 포럼 외 2인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568쪽

21세기판 조선통신사를 꿈꾸는 ‘동아시아 사랑방 포럼’의 일본 덕후들이 다시 한번 모였다.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3』에서는 코로나19 시국의 상징이 된 에도시대 요괴 아마비에, 사람이 입어서 완성되는 예술 기모노, 일본의 부동산과 첨단 로봇 산업 등 더욱더 새롭고 공감되는 일본 문화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LGBTQ로 살아가기

켈리 휘걸 매드론 지음 | 김혜림 옮김 | 징검돌 | 392쪽

10대 성소수자의 ‘생활+생존’ 국내 유일 가이드북이다.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청소년만이 아니라 부모, 교사, 친구도, 나아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길 희망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국·영·수보다 이 책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혐오와 차별, 등수와 경쟁으로 얼룩진 공간을 벗어나 존중과 연대 가득한 무지갯빛 학교를 만들어가야 한다.

ArcGIS Pro 기초와 공간분석 실무

김남신 지음 | 한울아카데미 | 464쪽

4차 산업, 그리고 인공지능이 화두로 떠오른 이 시대에 공간과학과 지리정보시스템에도 새로운 변화와 분석 기법들이 도입되고 있다. 그 속에서 지리정보시스템은 공간현상을 통계나 공간분석 기법으로 설명하거나 훌륭히 예측해 왔다. 그럼에도 기존의 분석 도구만으로는 예측하기 어려운, 불가해한 이상한 세계에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이 책은 ArcGIS Pro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초입문서다.

장인과 닥나무가 함께 만든 역사, 조선의 과학기술사

이정 지음 | 푸른역사 | 404쪽

세계 굴지의 박물관에서 문화재 복원에 우리 전통 한지를 쓴다는 이야기는 이제 구문(舊聞)이다. 길고 복잡한 닥섬유로 만들어진 한지는 얇고 잘 찢어지는 다른 종이와는 달리 두껍고 튼튼해 문화재 복원계의 슈퍼스타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내구성이 1천년 이상이라는 닥나무로 만든 닥종이, 전통 한지에 대해 잘 모른다.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물론 우리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무심하다.

필사의 시간

유한빈 지음 | 을유문화사 | 348쪽

을유세계문학전집에 속한 작품들 중 명문장만을 엄선해 필사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한 이 책이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됐다. 특히 이 책은 1945년 창립 이래 첫 번째 도서로 『가정 글씨 체첩』을 출간한 바 있는 을유문화사의 전통을 잇는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또한 단순히 글씨를 따라 쓰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풍부한 작품 및 작가 소개를 곁들여 인문학적 깊이도 더한 것이 특징이다.

편향된 기술 문화는 어떻게 작동해 왔는가

홍남희 지음 | 컬처룩 | 320쪽

포르노그래피의 확산에 인터넷의 대중화만큼 영향을 미친 일이 있을까. 포르노그래피는 인터넷이라는 글로벌 네트워크의 연결성과 개방적 성 문화를 드러내는 지표로 떠오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이유로 사회적 규제 대상으로 부상했다. 포르노그래피는 여성을 재현하는 특정 시각 문화를 고착시켜 왔을 뿐 아니라,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 여성 혐오적 밈과 기술화된 젠더 폭력의 양상으로 유통돼 왔다.

분야별 신간

역사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3 | 동아시아 사랑방 포럼 외 2인 지음 | 지식의 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568쪽

안티-재팬 | 리오 T. S. 칭 지음 | 유정완 옮김 | 소명출판 | 257쪽

장인과 닥나무가 함께 만든 역사, 조선의 과학기술사 | 이정 지음 | 푸른역사 | 404쪽

정치-사회

더티 워크 | 이얼 프레스 지음 | 오윤성 옮김 | 한겨레출판 | 496쪽

일본의 정당정치는 왜 무너졌을까 | 미쿠리야 다카시 지음 | 윤현명 옮김 | 소명출판 | 147쪽

저널리즘 선언 | 바비 젤리저 외 2인 지음 | 신우열·김창욱 옮김 | 오월의봄 | 168쪽

의학

대사질환에 도전하는 과학자들 | 남궁석 지음 | 바이오스펙테이터 | 264쪽

대학 교재

ArcGIS Pro 기초와 공간분석 실무 | 김남신 지음 | 한울아카데미 | 464쪽

문학-에세이

전기수 설낭 | 김동진 지음 | 싱긋 | 432쪽

한국 과학소설사 | 최애순 지음 | 소명출판 | 344쪽

된다! 엑셀 수식 & 함수 | 정태호 지음 | 이지스퍼블리싱 | 520쪽

인문

땅속의 용이 울 때 | 이어령 지음 | 김태완 편집 | 파람북 | 232쪽

AI 빅뱅 | 김재인 지음 | 동아시아 | 388쪽

LGBTQ로 살아가기 | 켈리 휘걸 매드론 지음 | 김혜림 옮김 | 징검돌 | 392쪽

전국대학 여교수 역량강화 심포지엄

여교수 26.1%…국공립은 19.3% “대학 내 성평등 갈길 멀다”

“지난 20년간 전임 여교수 비율은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국공립대 여교수 비율은 19.3%다. 이 비율이 과연 충분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민무숙 전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원장)

“총장이나 학장 같이 지위가 높아질수록 여교수의 비율은 급격히 줄어든다. 주요 보직에 좀 더 많은 여교수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김제영 전국여교수연합회 제23대 회장)

대학의 유리천장은 여전히 공고하다. 여교수 할당제 시행 이후에도 여교수 비율과 지위가 여전히 낮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여성위원 의무할당제 등의 정책 제안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여교수연합회(이하 전여연)는 국공립대학여교수연합회와 함께 ‘전국대학 여교수 역량강화 심포지엄’을 지난 18일 전북대에서 열었다.

민무숙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전 원장, 김제영 백석대 교수, 전정임 충남대 교수, 이미옥 서울대 여교수회장, 김송자 공주대 여교수회장이 주제 발표를 맡았다.

“여성 대학원생 절반 넘어도 여교수 여전히 30% 안 돼”

민무숙 전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원장은 지난 20년 동안 대학 사회의 여성 대표 정책과 성과를 분석하고 향후 과제를 발표했다.

민 원장은 “20년 전에는 여교수를 뽑는 게 어려운 시기였다”라고 말했다. 2003년 기준으로 여성박사 비율이 23.9%까지 증가했으나, 국공립대학의 여교수 비율은 9.2%로 사립대학(16.9%)의 절반에 불과했다. 대학의 낮은 여교수 비율은 고학력 여성인력이 사장된다는 문제와 함께 여대생의 역할 모델 부재와 동기부여 미흡 등의 문제가 제기됐다.

2003년 김대중 정권 때 여성 인적자원 육성과 활용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국·공립대학 여교수 임용 목표제가 실시됐다. 국립대 교수 정원을 천 명 증원 시 20%는 여교수로 배정했다. 민 원장은 “이는 정부의 의지와 국회의 호응, 전여연 같은 시민단체의 지지 등 3박자가 합이 맞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책이 시행된 2003년부터 20년 동안 대학사회에서 여

지난 18일 전북대에서 열린 ‘전국 대학 여교수 역량강화 심포지엄’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서울대, 공주대, 전북대 등 전국 대학에서 온 여교수들이 자리했다.

학생과 여교수의 비율은 꾸준히 증가했다. 여성 석사과정 비율은 44.1%에서 55.8%로 늘었고, 박사학위 취득 여성 비율은 23.7%에서 40.8%까지 늘었다.

2022년 기준 4년제 일반대 전체 여교수 전임 비율은 26.1%다. 반면, 국공립 대학 여교수 전임 비율은 19.3%로 사립대(28.7%)에 훨씬 못 미친다.

민 원장은 “지금은 노골적인 성차별 관행은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정책의 효과”라며 “하지만 4년제 일반 대학 여교수가 여전히 30%를 넘지 못하는 현실이다. 주요 보직 비율은 11.9%, 주요 위원회는 15~20%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민 원장은 “특히 비전임 여교수가 많다. 그 비율이 어떻게 변하는지 추적하고 다른 처지의 여성 학자들을 적극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각종 위원회에 여성위원 의무할당제 등을 총장선거 공약에 포함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교수 참여를 통해 대학 사회의 행정과 관점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 이것이 전여연의 일이다”라고 당부했다.

김제영 전국여교수연합회 제23대 회장(백석대)은 전여연의 25년 활동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여교수 할당제 같은 이슈 파이팅 필요하다”

김 교수는 “국공립대 여교수 비율은 매우 더디게 증가하고 있다”며 오세정 서울대 전 총장의 시뮬레이션을 인용했다. 2020년 오 전 총장은 국공립대 여교수 비율은 해마다 평균 0.5% 정도 증가하고 있다며, 국공립대가 대학의 양성평등 실현에 모범이 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분석한 바있다. 오 전 총장은 국공립대 여교수 비율이 25%가 되려면 20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여교수의 낮은 보직 진출도 지적됐다. “여교수의 지위를 보면 시간 강사가 제일 많고, 그 다음 조교수, 부교수, 교수, 총장 순으로 지위가 높아질수록 비율이 점점 줄어든다”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2021년 4년제 대학 ‘총‧학장’ 여성 비율은 8.4%로, 교수(17.7%), 부교수(30.1%), 조교수(36.1%)와 비교해 크

게 낮았다.

김 교수는 “전여연은 초기에 여교수 할당제를 주장했던 것처럼 다시 여성 관련 이슈를 제기하고 국가 자문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19 동안 침체기였지만, 이제 정책 자문 세미나를 만드는 등 이슈 파이팅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독려했다.

전정임 국공립대학여교수연합회 회장(충남대)은 여교수연합회의 활동과 여교수회의 각 대학 내 공식 기구화 방안을 발표했다.

국공립대학여교수연합회는 여교수회 간 정보교류와 연대를 통해 대학 내 성평등 실현을 목적으로 한 기구다. 총 23개의 기관 및 대학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전 회장은 “사립대와 다르게 국공립대는 여교수의 비율이 훨씬 적고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국공립대 여교수 비율과 인권 등을 높여보자는 취지에서 국공립 대학여교수연합회가 설립됐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여교수의 공식 기구화가 바람직한지 질문을 던졌다. 최근 충남대 여교수회의 공식 기구화에 대한 토론이 오갔다. 찬성의 입장으로는 여교수회가 공식 기구화 돼야만 여교수의 위상이 정립되고, 여교수 관련 사안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반대 입장에서는 여교수도 교수회의 일원인데 왜 여교수가 별도로 떨어져 나와 여교수회 활동을 해야 하느냐. 이런 활동 자체가 여교수의 위상을 떨어뜨린다는 입장도 있었다. 여교수회와 교수회의 분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전 교수는 함께 고민해볼 주제라고 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는 양오봉 전북대 총장, 서거석 전라북도 교육감, 김관영 전라북도 도지사, 우범기 전주시장, 윤석정 전북애향운동본부 총재, 송철규 전북대 부총장, 임계순 한양대 명예교수가 축사를 했다.

이어 김성숙 제18대 전국여교수연합회 회장의 격려사와 우크라이나 유학생 장학금 전달식이 진행됐다. 손욱 전 삼성부회장과 구자순 전국여교수연합회 8대 회장이 기조강연도 이어졌다. 신다인 기자 shin@kyosu.net

전국여교수연합회·국공립대학여교수회연합회 소통의 장

급변하는 시기 ‘섬세한 역량’의 새로운 질문들

지난 18일 열린 ‘전국 대학 여교수 역량강화 심포지엄’에서 ‘미래를 창조하는 여교수의 역할과 가치 구현방안’을 주제로 토론이 진행됐다. 여교수 비중 확대와여교수연합회의 활성화 방안, 성평등한 대학 만들기 등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국공립대학여교수회연합회와 전국여교수연합회가한자리에 모여 토론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유주현 공주대 교수(지리교육학)는 대학 내 여교수비중 확대를 주장했다. “대학 교육현장의 성별 편중성이 불러오는 비가시적인 차별성은 차별적 교육 결과를초래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여학생들이 무의식적으로유리천장, 유리벽을 받아들일 수 있다.”유 교수는 “교육활동은 단순히 수업시간에 국한돼있지 않고 자신의 의식, 태도, 경험 등이 현장에 투영되기에 여교수의 존재 여부만으로 학생들에게 균형있는성장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학내 여교수 비중, 보직자 여성 비율, 사회적 참여 등 충분한 목소리를 만들어야 양성평등 교육 현장이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마인숙 전북대 교수(수학과)는 대한수학회와 여성수리과학회 활동을 동시에 하며 후배 여성 수학자들의 연구 활동을 지원하는 사례를 들며 “여교수는 교수와 여교수라는 이중 책무를 지닌다”고 말했다. 마 교수는 “여교수는 왜 따로 모이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약자끼리 모여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사회는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교육부 정책 학문발전을 위한 것인가

이어 그는 “연구와 교육만으로 많이 바쁘겠지만 여교수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힘을 모아 정부와 사회에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며 “전국여교수연합회와 국립대학여교수연합회는 서로 연합해 여교수의 권익 향상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라고 했다.

박경혜 충남대 교수(경영학부)는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박 교수는 전국국공립대학 경영경제 분야 최초의 여교수다. 그는 2003년의 경험을 들려줬다. TO가 별도로 생겨서 여교수를 신청하자고 했더니 다른 교수들이 박 교수가 있기 때문에 여교수를 뽑지 않겠다고 했다. 이때 박 교수는 “앞으로 어떤 권한이나 역할이 주어지면 여성 후배 교수들에게 도움을 많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양성평등 정책이 더 확대될 수 있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하자”며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여

전국여교수연합회 회원 5명과 국공립대학여교수회연합회 회원 4명이 ‘미래를 창조하는 여교수의 역할과 가치 구현방안’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교수가 많이 기여해 여성 인력의 장점을 대외적으로 과시해 후배들에게 더 많은 길을 열어주길 바란다”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박규연 군산대 교수(음악과)는 “기존의 고전적인 학문 간의 장벽이 허물어졌다”며 “자기 설계 맞춤형 수요자 중심 교육으로 빠르게 급변하는 시기에 여교수의 섬세한 역량을 잘 발휘해보자”라고 했다.

교육부 주요 정책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강경숙 원광대 교수(중등 특수교육과)는 “최근 교육부가 라이즈와 글로컬 대학 사업을 발표했다. 이는 선택과 집중으로 지역별 거점 대학 2~3개에 재정을 집중하는 것인데, 선정되지 못하는 대학은 시장 논리에 맞춰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렇게 고등교육정책이 급변하는 시기에 전국여교수연합회 일원으로, 사립대 여교수회 회장으로서 교내 여교수회를 이끌어가기 위한 고민이 적지 않다”며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인 대학에서 학문균형 발전, 대학 균형 발전을 이루는데 한걸음 다가가는 여교수연합회, 여교수회가 되기를 소망한다”라고 말했다.

김순남 신한대 교수(교양학부)는 전국여교수연합회가 국가정책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김 교수는 “전국여교수연합회가 국가 정책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인원이 더 많아져야 한다”며 “활성화를 위해서는 학술지 운영이 한 예가 될 수 있겠다. 학술지 운영은 단체를 단합시키고 지속 가능성을 높인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전국여교수연합회가 저출산 문제에 대한

정책도 제시하자고 제안했다. 여성들이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안경환 대전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과)는 여교수가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인플루언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생은 전공에 따른 경제 활동을 준비하는 단계에 있다. 여교수는 영향력 있는 전문가로서 역할을 발휘해야 한다. 예를 들어 탄소중립 실천과 같이 학생들의 경제적 활동에 발판이 되는 비교과 활동을 만드는 노력을 하자.”

AI시대,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미자 광주교대 교수(교육학과)는 AI 시대 여교수의 정체성과 가치를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래 사업으로 AI나 가상화폐 등이 대두되고 있다. 그저 편리하고 빠름의 속도만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야 한다. 여성 지식인이자 여성 리더로서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신혜은 충북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여교수회는 사라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립대에는 여교수회가 없는 학교가 많지만 국공립대는 여교수회가 다 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여교수회가 왜 필요한지 의문을 갖는 분도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학회 회장이나 총장같은 사회 지도층을 생각했을 때 60대 남자를 떠올린다. 한학회 기념사진을 보면 주요 보직 6명 중 5명이 남자였다. 그 자리에 여자들이 절반정도 되면 여교수회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여교수회가 사라지는 날까지 같이 분발하자.” 신다인 기자 shin@kyosu.net

전국여교수연합회 25년 활동史

여교수채용 목표제

고급여성인력 양성 기여

이은희 전국여교수연합회 회장은 개회사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역량을 발휘해 후진 여교수 양성을 위해 힘을 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여교수연합회(이하 전여연)는 올해로 창립 25주년을 맞았다.

전여연은 여교수들의 권익 보호와 여교수 역할의 증대를 도모하고 연구 활동을 지원해 회원 상호간의 유대강화를 목적으로 1998년에 창립됐다.

전여연의 창립계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총장인 이경준 선문대 총장의 취임이다. 창립멤버인 구자순 한양대 명예교수는 “당시 이경준 총장 축하모임에 여교수 30여명이 참가해, 여교수의 역할과 지위향상을 논의하게 됐다”며 “이때 대학뿐만 아니라 여성의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학문적 축적이 이뤄진 여교수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감으로 전여연이 결성됐다”고 설명했다.

전여연은 창립이후 25년간 학술활동 및 사회기부 활동을 확대해 여교수의 역량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초기에는 교수되기에 집중하며 여교수채용 목표제 및 할당제, 고급여성인력 활성화 대책, 고급여성 인력양성을 위한 대학 내 여학생의 커리어 개발 및 지도 등에 힘썼다.

전여연 정기 활동으로는 뉴스레터 발행과 연 2회 학술세미나를 열고 있다. 이외에 비정기적으로 포럼 등 전국지회와 상호 교류를 통해 여교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 18일 전여연은 ‘2023 전국 대학 여교수 역량강화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은희 전여연 회장은 개회사에서 “여교수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학문적 상호교류, 여교수들의 연합을 통해 이뤄가야 할 과제와 사회적 역할, 연합의 필요성과 의미를 찾고자”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를 통해 연합체의 정체성을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전국여교수연합회와 국공립대학 여교수 연합회가 처음으로 대면하는 자리였다. 이 회장은 이를 강조하며 “대한민국 여교수를 아우르는 두 기구가 만나 분명 뜻있는 가치를 창출하리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신다인 기자 shin@kyosu.net

서울시 대학 용적률 완화…고려대·연세대·한양대 등 신·증축

서울시의 대학 공간 규제 완화에 발맞춰 여러 대학이 건물 증축에 나섰다.

대학의 용적률과 높이 규제를 완화한 서울시 도시계획조례 개정안이 오는 7월 말 시행될 예정이다.

앞서 서울시는 대학의 미래경쟁력 강화를 위한 혁신성장 시설을 확충하는 경우 조례용적률을 완화하고 주변에 영향이 없다면 자연경관지구 내 대학시설의 높이 규제를 완화하는 서울시 도시계획 조례 개정안을 지난 3월 입법예고 했다. 개정 조례는 7월말 시행 될 예정이다.

조례가 시행되면 용적률이 부족하거나 높이 규제 때문에 연구실‧실험실 등 공간 확보가 어려웠던 대학이 공간 재배치, 건물 신‧증축, 노후시설 정비 등을 추진할 수 있게 된다.

이에 한양대와 연세대는 융복합 의료클러스터 구축을 위해 단계별 순환 정비계획을 수립했고, 서울시는 이를 지원하는 도시계획 변경결정 고시

를 지난 11일 완료했다.

한양대는 용적률 사용률이 약 99%에 달하고, 약 58%가 자연경관지구 내에 있어 대학 내 노후 의료시설 개선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의과동 신축사업을 시작으로 순환 정비에 착수할 수 있게 됐다.

연세대의 연세의료원은 의료 및 교육 클러스터를 분리하는 공간 재배치와 활용계획을 담은 마스터플랜 등을 재정비했다. 의과대학 신축을 시작으로 필요한 구역에는 혁신성장구역 도입도 연이어 검토 중이다.

그밖에도 서울대는 치의학 대학원을, 고려대는 최첨단융복합의학센터를 증축할 예정이다. 한국외대는 학교 경계를 조정한다. 이화여대‧숙명여대‧서강대 등도 현재 공간 재배치 등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수립 중이다.

2023 상반기 5개교 도시계획 변경 완료

연 대학 주요 내용 추진 현황 향후 계획

1 서울대 치의학 대학원 증축

(실험실, 강의실, 회의실) ’23. 1.19. 결정 '23.12. 착공

2 연세대 학교 부지 확장

(연세의료원 행정동 편입) ’23. 5.11. 결정 ’25. 착공

(의과대학 이전신축)

3 고려대 최첨단융복합의학센타 증축

(의료시설 병동부, 연구실) ’23. 5.18. 결정 ’23.10. 착공

4 한양대 의과동 신축

(자연경관지구 높이 완화) ’23. 5.11. 결정 ’24. 5. 착공

5

한 국 외

학교 경계 조정 (경계부 캠퍼

스타운사업거점공간 조성) ’23. 5.11. 결정 ’24. 1. 착공

자료!서울시

조남준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은 “대학이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고 기술혁신을 선도해 나갈 수 있도록 과감한 도시계획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다인 기자 shin@kyosu.net

박병호 서울대 명예교수, 제4회 한국학저술상 수상

박병호 서울대 명예교수(사진)가 쓴 『한국법제사고(韓國法制史攷)』가 제4회 한국학저술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이 책은 한국법제사 분야의 체계를 세운 대표적인 학술서로 손꼽힌다.

박병호 명예교수는 한국법제사라는 기초법 분야를 체계화하고, 독자적인 학문 분야로 자리 잡게 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특히, 서울대 규장각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에서 한국학 관련 자료의 수집과 정리를 통해 한국학의 굳건한 기반을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를 토대로 실증적 사료에 근거한 한국의 법문화를 탐구할 수 있는 연구 여건을 조성했다.

『한국법제사고』는 1974년 법문사에서 처음 간행됐다. 2021년 민속원에서 개정증보판이 발간됨으로써 이 분야에 대한 저자의 지속적 연구와 축적된 성과를 잘 보여주는 저서이다.

책은 크게 5장으로 구성돼 있다. 제1장 부동산거

래법은 부동산매매법, 매매에서의 공증제도, 구문기(舊文記)를 대신하는 공증제도, 지계제도(地契制度)와 가계제도(家契制度), 증명제도, 관습상의 공증, 부동산보관법에 관한 연구로 이뤄져 있다.

제2장 토지소유의 법과 법의식은 근세의 토지소유권에 관한 연구, 구 관습상의 토지이용권과 그 근대화로 구성돼 있다. 제3장 재판의 제도와 기능은 부동산소송법, 현종 2년의 한성부(漢城府) 결송입안(決訟立案), 재판제도의 근대화, 변호사 및 사법서사제도의 연혁을 다루고 있다.

제4장 가족법은 솔서혼속(率婿婚俗)에서 유래

하는 친족과 금혼범위(禁婚範圍), 이성계후(異姓繼後)의 실증적 연구, 조선말의 승적관행(承嫡慣行)과 생전양자(生前養子)를 살폈다. 마지막 장인 5장 법원·기타에서는 조선 초기의 법원, 한말의 형사입법의 연혁, 법제 면에서 본 일제의 통치방식, 17세기 이후 토지담보제도의 발달과 경제적 변화를 다루고 있다. 부록으로 조선 후기에 번역된 판례 3건이 원문과 함께 수록돼 있다.

이 책은 저자의 민사법제사적 관심을 반영하는 연구서이지만, 한국법제사의 방법과 과제를 확대하면서 법사학도뿐만 아니라 법학도 일반에게 교훈하는 바가 큰 책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올해로 제4회를 맞이한 한국학저술상은 우수한 한국학 관련 도서를 발굴해 학문 발전과 학계 연구 분위기 조성에 이바지하고자 한국학중앙연구원과 재단법인 산기가 공동으로 제정한 상이다.

신다인 기자 shin@kyosu.net

‘모르는 데이터’ 구별하는 AI 나왔다

지스트(광주과학기술원) 이규빈 교수(융합기술학제학부) 연구팀은 학습한 적이 없는 ‘모르는 데이터’를 구별해 내는 AI 기술을 개발했다.

AI 기술은 2016년 알파고 등장 이후 급속도로 발전해 실생활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오늘날 이용되는 대부분의 AI는 정답이 없으면 가장 비슷한 답을 찾도록 설계됐다.

특히 딥러닝 모델은 답을 몰라도 가장 유사한 값을 정답으로 잘못 인식한다는 단점이 있다. 이 경우 자율주행 차량이 장애물을 잘못 인식하는 등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이를 보완할 AI모델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AI모델은 여러 블록으로 구성돼 있는데, 각 블록은 똑같은 작업을 수행한다. 연구팀은 이 중 ‘모르는 데이터’ 탐지에 적합한 블록을 찾아내기 위해 직소 퍼즐을 이용했으며, 블록의 활성도를 기준으로 모르는 데이터를 탐지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연구팀은 모르는 데이터의 예시로써 이미지를 직소퍼즐처럼 잘게 쪼갠 뒤 무작위로 섞어서 입력했다. 실제 이미지와 유사하지만 정답은 아닌 데이터를 입력한 후 활성도에 따라 모르는 데이터 탐지에 적합한 블록을 찾기 위해서다.

기존 연구에서는 가장 많은 데이터를 학습한 마지막 블록을 사용했으나, 연구팀은 마지막 블록이 과도한 학습으로 인해 모르는 데이터도 아는 데이터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번 연구 성과로 딥러닝 모델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지능을 증강하는 형태의 AI 모델도 개발할 수 있게 된다.

또, 자율주행, 의료 진단 등 안전이나 생명과 직결되는 민감한 분야에서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규빈 교수는 “이번 연구성과를 발전시키면 딥러닝 모델이 인식된 결과를 스스로 인지하는 메타인지 능력을 얻을 수 있다”며 “모르는 것을 아는 것으로 잘못 인식해 발생할 수 있는 막대한 피해를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능 증강과 같은 다양한 기술로 응용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승현·조태홍 한양대 교수, 백남석학상 수상

김승현 한양대 교수(의학과)와 조태홍 한양대 교수(영어영문학과)가 ‘제 11회 백남(白南)석학상’을 수상했다.

백남 석학상은 한양대를 설립하고 교육 사업에 전념한 백남 김연준 박사의 뜻을 기리기위해 제정된 상으로, 교육과 연구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보인 학자들에게 해마다 시상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한양대학병원 세포치료센터장으로서 신경계 희귀난치성질환을 중심으로 다학제 진료관리 시스템 구축을 통한 환자 체감형 진료모델을 제시했다. 또한, 세계 최초로 루게릭병 줄기세포치료제 상용화 및 한국인 맞춤형·정밀의학 관련 연구 성과로 보건복지부·과기부 장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김 교수는 “루게릭병과 난치성신경계 질환영역에서 새로운 진단 및 예후 예측 표지자 개발과 치료제 개발을 통해 난치성 질환의 정복을 위해 매진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조 교수는 언어학의 실험음성학 분야에서 지난 20여 년간 국제학술지 SSCI와 A&HCI에 80

왼쪽부터 김승현, 조태홍 한양대 교수.

여 편의 논문을 게재하는 등 활발한 국제 학술 활동을 지속해왔다. 이를 통해 음성언어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밝히는 데에 학문적 기여를 했다.

조 교수는 “음성학 연구는 인문학적 측면에서 인류가 언어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근간이 되는 말소리를 연구하는 것이지만, 학문적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말소리에 기반을 두고 공학과 예술, 언어학을 아우르는 초학제적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광주‧대구‧배재‧신라‧부산외대 ‘맞손’

글로벌 문화산업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광주‧대구‧배재‧신라대‧부산외대가 상호협약을 체결했다.

지난 24일 배재대 총장실에서 상호협약식이 진행됐다.

이번 협약은 대학 간 인적‧물적 자원을 공유해 우수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동남권, 충청권, 호남 제주권, 대경권의 주요 대학이 지역간, 대학 간 벽 허물기를 통해 교육선진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날 5개 대학은 △인문사회 융합 컨소시엄 형성 △신산업 기술을 활용한 대학 간 공동 교육과정 구성 △교육과정 및 인적‧물적 인프라

5개 대학이 지역 간 벽허물기를 위해 상호협약을 체결했다.

공유 등에 대한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김욱 배재대 총장, 김갑용 광주대 부총장, 유영명 신라대 인문상경대학장, 정명숙 부산외대 국제교류처장, 이희정 대구대 한국학연구소 소장 등 각 학교의 주요 관계자가 참석했다.

박유철 한신학원 이사장 취임

한신대는 지난 22일 경기캠퍼스 샬롬채플에서 ‘학교법인 한신학원 이사장 이·취임식 및 한신대 개교 83주년 기념 예식’을 진행했다.

박유철 신임 이사장(사진)은 취임사에서 “한신대가 21세기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대학, 개혁주의의 학풍을 이어가는 대학, 글로벌 평화리더를 양성하는 대학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총

장님과 한신의 교직원 그리고 학생들과 힘을 모아 한신을 이 시대 가장 빛나는 대학으로 만들기 위해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개교 83주년 기념행사에서 강성영 총장은 “한신대가 단순히 생존에 급급한 대학이 아닌 생존을 넘어 혁신적인 도약으로 건학 목적과 정체성을 지켜내는 대학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창섭 충북대 총장 취임

고창섭 충북대 총장(사진) 취임식이 지난 24일 충북대 대강의실에 개최됐다.

고창섭 총장은 취임사를 통해 “좋은 대학은 모든 구성원이 자부심을 갖는 대학”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거점국립대학의 위상에 어울리는 규모를 갖추고, 글로컬대학30 사업과 RISE사업 등 충북대가 지역사회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도록 착실히 준비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고 총장은 선거의 핵심공약으로 △Gap-Zero 자기주도 취업 프로그램 운영 △미래지향적 교육을 통한 창의융합형 인재양성 △글로벌 수준의 연구 역량 확보 △워라밸이 있는 Great Work Place △특성화된 네트워크형 혁신 캠퍼스 조성 등을 제시했다.

한편, 고창섭 총장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충북대에서는 전자정보대학장, 기획처장, 학연산공동기술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송신근 창원대 교수, 한국국제회계학회 회장 선출

송신근 창원대 교수(회계학과‧사진)가 한국국제회계학회 제25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송신근 차기 회장은 “4차 산업혁명과 AI 시대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관련 회계교육과 연구 방향에 대한 학술대회와 세미나 및 연구 지원을 활성화할 계획이다”며 “특히 ESG 관련 기준과 실무 등의 국내외 동향과 발전 방향에 대한 산학세미나 및 연구 또한 활발히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한국국제회계학회는 전국 대학의 회계학 전공 교수와 실무 회계전문가를 회원으로 두며, 다양한 학술대회와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의 등재 학술지인 <국제회계연구>를 매년 6회 발간하고 있다.

이영석 충남대 교수, 한국공업화학회·한국탄소학회 최고논문상 수상

이영석 충남대 교수(응용화학공학과‧사진)가 학회 발전을 견인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공업화학회와 한국탄소학회로부터 연이어 공로상 및 최고 논문상을 수상했다.

이 교수는 2015~2022년에 걸쳐 한국공업화학회 학회지 영문지(SCI) 『Journal of Industrial and Engineering Chemistry』의 편집이사직을 수행해 학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와 2021년 JIEC 학회지

에 최다 인용돼 학술지 피인용지수 향상에 지대한 기여를 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영석 교수는 “한국공업학회와 한국탄소학회는 공업화학 분야의 가장 권위 있는 두 학회로부터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기쁘다”며 “앞으로도 교수 본연의 임무인 연구 지도 및 후학 양성에 진력하겠다”고 말했다.

은종방 전남대 교수, 한국차학회 학술상 수상

전남대 은종방 교수(식품공학과‧사진)는 한국차학회 정기총회 및 춘계학술대회에서 학술상을 수상했다.

한국차학회는 차 분야의 학술 업적이 우수한 연구자를 3년에 한 번 선정해 학술상을 수여한다.

은 교수는 하동 세계 차(茶) 엑스포, 세계 차 학술대회와 함께

열린 이번 학술대회에 연사로 초청돼 ‘효율적인 녹차의 기능성 물질 추출 방법’을 주제로 기조 강연에 나서기도 했다.

은 교수는 한국차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차 과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농림식품과학기술대상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바 있다. 푸드 케미스트리 등에 40여편의 차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김용표·이경림 이화여대 교수, 제19회 이화학술상 수상

이화여대는 제19회 이화학술상 수상자로 김용표 이화여대 교수(화공신소재공학전공‧왼쪽 사진)와 이경림 이화여대 교수(약학과‧오른쪽 사진)를 선정했다.

김용표 교수는 대기환경과 기후변화 관련 분

야에서 전문가들을 배출하고, 이화여대를 해당 분야의 전문 연구기관으로 이끄는데 앞장섰으며, 한국공학한림원과 한국환경한림원 회원으로서 학술·연구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대기환경학회 학술상(2009) 및 한국대기환경학회 학회지발전 공로상(2020)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이경림 교수는 신약개발 역량 발전 및 차세대 약과학자 양성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으로 선정됐다. 이 교수는 이화여대 약학대학장, 임상보건과학대학원장, PHC센터장 등을 역임하고, 제47회 과학의 날 대통령 표창 및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공로상(2014)을 수상했다.

‘이화학술상’은 이화여대 교수 중 탁월한 연구 성과를 통해 학문 및 학교 발전에 크게 기여한 교원에 대해 평생 1회에 한해 수여되며 올해로 19회째다.

탈진실·개소리 떠들썩한 시대…‘빼기의 철학’이 진리 비춘다

저자 인터뷰_『소크라테스 스타일』(김영사 | 560쪽) 쓴 김용규 작가

심사위원 만장일치 우송철학상 대상

‘생각-이성-융합의 시대’ 3부작 기획

지금까지 이런 철학 책은 없었다. 바로 지난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송철학상 대상을 수상한 『소크라테스 스타일』이다. 미켈란젤로(1475~1564)는 3년 동안 망치와 정으로 차가운 돌덩이를 내리쳤다. 아름다운 「다비드상」(1501~1504)을 만들기 위해 신체 이외의 것들을 전부 제거한 것이다. 바로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경~기원전 399년)의 스타일인 ‘빼기의 철학’이다.

스티브 잡스(1955~2011)는 어떤가? 11년 만에 돌아온 애플에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20가지가 넘는 제품군을 4가지로 축소한 것이었다. 잡스는 나이키의 최고경영자에게 컨설팅 할 때도 쓰레기는 다 버리고 최고의 제품에만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용규 작가(철학박사)는 책에서 “선택지가 많다는 것은 장점이 아니라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스타일의 삶을 살았으며,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철학의 장중한 역사를 관통하며 서술했다. 특히 재미와 의미를 두루 갖췄다. 수사학을 활용한 대중성과 논증 차원의 학술적 깊이가 상당하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가 태어날 때, 그는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그가 죽을 때, 그는 기뻐했고, 세상은 울었다”라는 문장은 해학과 성찰을 동시에 던진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자신의 로고스를 따르는 것이었다. 지난 16일, 김 작가를 서면 인터뷰했다.

말과 삶의 일치, 죽음 초연한 철학자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다만, 자신의 신념과 철학이 강한 사람은 죽음마저 도 초월한다. 김 작가는 “소크라테스는 말(logos)과 삶(bios)이 일치해야 한다는 비판적 태도의 모범을 아테네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라며 “그럼으로써 아테네 시민들의 삶과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에 기여하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소크라테스에게 이성과 실천, 말과 행동은 하나였다.

소크라테스를 닮고자 했던 인물이 바로 세네카(기원전 4년경~기원후 65년)이다. 김 작가는 책에서 “신적 영원성과의 합일이라는 ‘존재론적 승화’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살 줄도 알고 죽을 줄도 아는 이러한 용기는 미국 시카고대 교수였던 파울 틸리히(1886∼1965)가 이름 붙인 ‘존재에의 용기’이다. 그래서 어떤 조각가는 ‘소크라테스-세네카 쌍둥이 흉상’을 만들었다. 3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흉상은 독일 베를린 고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소크라테스 스타일』은 디오게네스부터 키르케 고르를 거쳐 비트겐슈타인과 바디우, 지젝 등 철학사를 ‘빼기의 철학’으로 뒤집어 봤다는 점에서 전복

김용규 작가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와 튀빙겐대에서 철학·신학을 공부했다.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선택하고 그것을 향해 스스로 변화하게 하는 것이 철학의 본분이라 여기며, 대중과 소통하는 길을 끊임없이 모색해왔다. 『생각의 시대』, 『신』, 『데칼로그』 등을 썼다. 사진=김용규

적이다. “소크라테스는 ‘빼기’라는 원칙을 통해 석상을 만드는 석공이 아니라 진리와 삶을 조각하는 석공이 됐다.” 김 작가는 “그가 세상을 뜬 이후에는 이 빼기의 원칙이 후세 사람들에 의해 한편에서는 사유의 방식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삶의 방식으로 계승이 되어 내려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탈진실·개소리가 난무하는 시대에 소크라테스 스타일은 더욱 긴요하다. 소크라테스의 사유 방식은 그의 스타일이 됐고, 지금까지 영향(이펙트)을 끼치며 개소리와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을 깨우친다. 누구든 진리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억견, 궤변, 편견 등을 하나씩 제거해가야 한다. 김 작가는 “오늘날 각종 매체와 인터넷에는 날조된 지식과 왜곡된 신념, 숱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황당한 미신과 궤변, 터무니없는 가짜 뉴스가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다”라며 “포퓰리스트는 거짓말을 식은 죽 먹듯 하고, 각종 경제적·사회적·정치적·종교적 이익집단은 이데올로기화돼 대중을 기만·선동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소크라테스가 소환되는 이유다.

소크라테스는 50세 전까지 석공 일을 했다. 가업을 이어 받은 것이다. 특히 소크라테스가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는 몇 날 며칠이 걸리는 델포이 신전에까지 무리하게 가서 아들의 미래를 신탁했다. 소크라테스가 공부를 해도 되는지, 교육의 차원에서 물어본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어렸을 때 가난해 교육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자 친구인 크리톤이 소크라테스가 공부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왔다. 소크라테스는 전쟁에 참여했고,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소크라테스는 친구의 딸과 두 번째 결혼도 했다. 27년이나 지속된 펠레폰네소스 전쟁으로 고대 그리스에 과부가 많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빼기의 철학’은 기독교의 사랑, 불교의 무나 공, 도가의 도를 연상하도록 한다. “동서고금의 모든 도덕적·종교적 교훈과 수행·수련의 공통점이 자신의 사유와 삶에서 ‘빼기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작가는 “소크라테스는 논박을 통해 우선 상대가 논리적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다시 말해 경건, 절제, 용기, 아름다움, 정의와 같은 미덕들에 대한 편견과 억견을 버릴 수 있게 하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라며 “그 결과 아테네 사람들이 진실하고 아름다운 윤리적 삶을 살게 함으로써 진리와 정의가 바로 선 이상적인 도시국가로 변화시키려고 했다”라고 답했다. 독일의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자기 수련,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1926∼1984)의 자기 돌봄 등이 같은 맥락이다.

‘자기 수련-돌봄’으로서 빼기의 원칙

소크라테스 스타일인 ‘빼기의 철학’을 학습하는 방법은 “내적으로는 안락과 사치 및 과시를 추구하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 불복종하고, 외적으로는 소비물질주의를 강요하는 후기자본주의 체제의 부당한 요구에 불복종하자는 것”이다. 김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올해 1월 24일, 미국 핵과학자 회의(BSA)는 ‘최후의 심판일 시계’의 초침을 파멸을 상징하는 자정쪽으로 10초 더 이동시켰다. 이제 지구 종말까지 남은 시간은 90초다. 지구는 이미 이산화탄소 한계치인 400ppm을 넘어섰다. 재앙을 피하려면, 2015년에 체결된 파리기후변화협약의 목표치인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50년까지 0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자국 이기주의는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김 작가는 “빼기 혁명은 우리 시대의 요청이자 정언명령(定言命令)”이라며 “소크라테스를 소환해 ‘사유방식의 혁명’, ‘삶의 방식의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소크라테스 스타일』은 2022 우송철학상 대상을 받았다. 김 박사는 “우송철학상은 철학의 현실화, 현실의 철학화를 위해 애쓰셨던 우송 김태길 전 서울대 철학과 교수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든 상”이라며 “시민들이 진실하고 아름다운 윤리적 삶을 살게 함으로써, 사회를 진리와 정의가 바로 선 공동체로 변화시키려고 했던 김태길 교수의 뜻을 받들라는 준엄한 명령으로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김 작가는 ‘생각-이성-융합의 시대’ 3부작을 기획해 추진하고 있다. 이성의 시대는 추후 ‘플라톤 스타일’, ‘아리스토텔레스 스타일'로 이어질 예정이다. 다만, 출판 시장의 굴곡에 따라 사정은 바뀔 수 있다.

이 책의 3장에는 빅토르 위고(1802~1885)의 명언이 담겨 있다. “역사란 미래에 울려 퍼지는 과거의 메아리다.” 그 옛날 소크라테스가 진리를 비추기 위해 논박술과 죽음으로 외친 역사는 지금도 어디선가 울림을 주고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겹겹의 신화에 둘러싸인 ‘가족’…실체 직면할 때다

學而思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5월 뒤엔 ‘가정의 달’이 후렴처럼 따라붙는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는 『아동의 탄생 』을 통해 아동은 “발견”되었다는 주장을 폈고, 독일의 사회학자 엘리자베스 벡 게른스하임은 『모성애의 발명』을 통해 모성은 “발명”되었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고 보니 건강가정이라 칭하고 다문화가족이라 부르는데, 이 미묘한 차이는 어디서 연유하는지 새삼 궁금하다.

가족 연구자들은 가족을 정의하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가족이란 이름 아래 숨겨진 다채로운 이면(裏面)을 드러내는데 시선을 돌리고 있다. 와중에 연구자가 규정하는 ‘가족’ 자체가 심리학의 롤샥 테스트에 해당된다는 주장도 나왔고, 가족을 “미친 제도”(mad institute)라 명명한 정신분석학자도 등장했으며, 가족이야말로 “고통의 세계”(worlds of pain)임이 분명하다는 사회심리학자도 나타났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족을 “문화적 음모”(cultural conspiracy)라 부른 학자도 있었다.

가족은 진정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보다 ‘무엇을 말해서는 안 되는가’에 관한 규범이 보다 정교하게 발달돼 있는 제도임이 확실하다. 덕분인가, 가족은 “신비화(mystified)”된 제도이자 겹겹의 신화(神話)에 둘러싸인 제도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여기서 신화라 함은 과학적 증거나 객관적 탐색작업을 거치지 않은 채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통념이나 믿음을 의미한다.

지금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네 가족 인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대표적 가족신화를 살펴보면, 먼저 전통사회 가족은 안정되고 조화로운 집단이었으리란 믿음이 있다. 그러나 가족의 황금시대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족사(史) 연구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오히려 산업화 이전의 가족은 높은 신생아 사망률과 전쟁·전염병·기근 등으로 인해 누군가의 사망이 일상화되어 있었고, 어린 자녀의 유기 및 아내 구타 등 가족폭력도 빈번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으며, 특별히 출산은 여성에게 죽음과 직결된 경험임을 보여주는 사료도 발굴되고 있다. 전통사회의 가족을 이상화하거나 미화함은 현대사회 가족을 위기 및 해체로 보는 정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물론이다.

두 번째 가족신화로는 ‘정상가족’을 둘러싼 고정관념을 들 수 있다. 가족의 정상성을 둘러

싼 견고한 기준에 부합하지 못할 경우 비정상적이거나 부끄러운 문제 상황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1인 가구나 한 부모 가족의 증가와 다양한 복합가족의 등장은 물론, 동거, 선택적 무자녀 가족, 동성 부부, 공동체 가족, 초국적 가족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정상가족 신화에 도전하는 가족양식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상가족에 대한 신념 및 이미지가 비교적 강하게 남아 있음은 유감이다. 하지만 ‘정상가족’은 자연스러운 형태도 아니요 보편적인 형태도 아니다. 문제는 정상가족 규범이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누구에 의해 강화되고 있는가이며, 정상가족 규범에 의한 피해자가 누구인가를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상가족 대비정상가족의 이분법은 정상가족에게도 상당한 압력이 된다. ‘무늬만’이라도 정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 내부의 균열과 갈등을 위장하는 “요새가족(fortress family)”이나 “빈 조개껍데기 가족”이 출현하고 있음은 정상가족을 향한 압력이 낳은 부정적 폐해의 실례라 하겠다.

세 번째 가족신화로는 부부와 부모자녀 사이엔 공통의 욕구와 삶의 양식 그리고 경험의 공유가 이루어지고 있으리란 가정을 들 수 있다. 가족 간에는 이타적 사랑이 우러나오며 가족 내 의사결정은 조화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미지는, 실제 상존하는 가족 내 권력관계,

부모 형제 친족 간 경쟁관계, 가족생활의 정서적 측면에 내재한 부정적 측면을 부인하거나 애써 숨기는 기능을 한다. 사랑과 헌신, 배려와 결속을 이상화하는 가족 감정의 이면에는 경쟁과 갈등, 증오와 이기심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고 있음에도, 어느 한 면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네 번째 가족신화로는 ‘가족-사적영역’, ‘사회=공적영역’으로 영역으로 이분화하거나, 가족과 사회가 분리된 것인 양 개념화하는 경향을 들 수 있다. 가족과 사회를 분리된 영역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성 역할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기 위함이요, 가족과 일터 사이의 스필 오버(spill over) 효과를 감추기 위함이다. 공사영역의 이분법은 가족과 사회를 좌우대칭에 둠으로써, 가족은 무자비한 세상 속의 천국이요, 가족관계는 사회관계와 달리 이타적이고 비경쟁적이라는 착시에 빠지도록 한다. 동시에 가족은 자족적 집단이요, 독립적 실체이며, 사회와 무관하게 고고함을 유지해갈 수 있는 제도로 간주하도록 한다. 그 결과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가족은 불건강하고 부적절한 가족으로 비판과 우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제 겹겹으로 둘러싸인 가족 신화를 벗어 버리고, 가족의 오롯한 실체에 솔직하게 직면할 때다.

글로컬 오디세이

‘맨발의 겐’ 둘러싼 표현의 자유, 창작자들 뿔났다

김효진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학·석사를, 하버드대 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HK조교수를 거쳤다. 오타쿠문화를 중심으로 한 현대 일본사회의 대중문화 및 젠더 정치학, 한일문화 교류와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등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BL진화론: 보이즈러브가 사회를 움직인다』(역서, 2018), 『원본 없는 판타지: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공저, 2020), 『퀴어돌로지 전복과 교란, 욕망의 놀이』(공저, 2021) 등이 있다.

2023년 2월말, 히로시마 교육위원회는 지금까지 사용해 오던 평화교육 프로그램 교재에서 나카자와 게이지의 만화 「맨발의 겐」의 교

재사용을 중지하고 다른 피폭경험자의 수기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일본 국내 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주목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맨발의 겐」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작가인 나카자와 게이지 본인이 주인공이 작가 본인임을 명시하고 있으며, 히로시마 원폭 투하 시 본인을 포함한 가족 전원이 피폭을 당했던 피해자이자 당사자로서 히로시마를 덮쳤던 원폭의 비극과 그를 전후한 전전 일본과 전후 일본의 상황, 나아가 전쟁의 비극을 가장 극적으로 증언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로시마시 교육위원회의 결정 이전에도 「맨발의 겐」은 일본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시돼온 작품이었다. 1970년대에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만화잡지인 <주간소년점프>에서 연재된 후 그 내용의 파격성과 전쟁체험의 묘사에 대한 논쟁으로 인해 이후 여러 매체를 전전한 결과, 연재가 마무리된 것은 1980년대 후반이었다. 가까운 사례로는 2013년 시마네현 마쓰에시 교육위원회, 2014년 오사카부 이즈미사노시 교육위원회에서 각각 이 책에 잔혹한 장면이 대량 포함돼 있다는 이유, 그리고 현대의 기준에서는 인권적으로 문제가 있는 차별적 표현이 사용됐다는 이유로 각각 초등학생에 대해 열람제한 조치가 취해지기도 했다.

이중에서 전자의 경우, 전후 일본사회를 관통하는 과거사 문제, 즉 일본제국주의와 아시아태평양전쟁이라는 과거를 둘러싼 지속적인 논쟁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반면, 후자의 경우는 그 양상이 조금 다르다. 특히 후자의 경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맨발의 겐」의 열람을 둘러싼 쟁점이 작품에서 사용된 표현에 대한 문제 제기이고 그 근거로서 제시된 것이 아동과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라는 점이다. 즉 과거에는 「맨발의 겐」을 둘러싼 논의는 좌파와 우파라는 정치적 입장의 차이, 그리고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 부각됐다면 2010년대 이후 「맨발의 겐」에 대한 논의의 초점이 점차 작품의 의미나 가치, 세계관의 문제

에서 벗어나 표현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이후 일본사회는 '다양성'을 강조하는 흐름이 두드러졌다. 가장 확실한 변화는 지방자치체 차원의 동성 파트너쉽제도 도입, 그리고 통칭 「헤이트스피치 규제법」의 제정 및 시행이다. 일견 이는 일본사회의 진보적인 흐름으로 보인다.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표현 대신 바람직하고 부드러운 표현을 쓰자는 것은 반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창작의 영역, 특히 과거 역사를 다룬 창작물의 영역에 오면 문제가 달라진다.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2010년 대 이후, 「맨발의 겐」과 같은 비판적인 시각에 입각해 과거사를 그려낸 작품을 아동과 청소년이 열람하는 것을 막는 합법적인 이유로서 등장한 것이 바로 잔혹한 장면, 그리고 차별적 표현 사용이었기 때문이다. 당사

자로서 작가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바탕해 과거의 참상과 죄악을 재현한 작품에 대해서 현재의 기준으로 이를 평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그리고 흔히 이런 상황에서 대안으로 제시되는 '일부 표현을 수정'한다는 식의 해결

「맨발의 겐」은 히로시마를 덮쳤던 원폭의 비극과 그를 전후한 전전 일본과 전후 일본의 상황, 나아가 전쟁의 비극을 가장 극적으로 증언하는 작품이다. 사진=북워커 웹사이트

방안은 과연 어떤 것을 놓치고 있는가? 이런 문제는 결코 일본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작가들이 먼저 나서서 이런 상황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창작물을 내놓고 있다. 2천년대 큰 인기를 끈 라이트노벨 「도서관전쟁」 시리즈에서는 표현의 검열이 극도로 진행돼 문제표현이 있는 책이 무조건적으로 압수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자 그에 대항하기 위해 도서관이 스스로 도서관군대를 조직해 검열에 대항하는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최초로 여성으로 펜클럽회장에 취임한 기리노 나쓰오가 신작 「일몰의 저편」에서 가상의 미래에서 문제적인 표현을 강제로 수정하도록 지시받는 작가의 고통을 묘사한

바 있다. 현실의 잔혹함과 차별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표현만을 바꾸고자 하는 욕망은 가장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맨발의 겐」을 둘러싼 논쟁이 증명하고 있다.

딸깍발이

달 탐사와 뉴욕시의 쥐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지구에서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왜 달에 가나. 1969년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1호의 발사 전날 플로리다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기지에 몰려간 흑인 시위대가 던진 질문이다. 인간을 달에 착륙시킨 위대한 나라가 어떻게 슬럼과 마약 범죄, 극심한 기회 불평등, 열악한 의료보장에 시달릴 수 있을까? 혁신이론의 대가 리처드 넬슨이 1977년 『달과 게토』에서 제기한 질문이다. 세계 최강의 나라가 눈부신 과학기술 혁신에도 불구하고 사회 문제에 관한 한 최빈국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모순적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오랜만에 뉴욕시에 출장을 갔다가 이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카이스트 미래정부리더십센터 연수과정의 일환으로 카이스트-NYU 공동캠퍼스 방문 중 뉴욕시 소상공인 담당 커미셔너가 갑자기 던진 질문 때문이었다. 이 센터에는 현재 20여 개 부처와 공공기관의 중견 관리들이 10개월간 교육을 받고 있는데, 뉴욕시의 비즈니스 진흥 정책을 토론하던 커미셔너가 갑자기 한국은 어떻게 쥐를 박

멸했냐고 물었다.

베테랑 경찰관 출신인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이 가장 높은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문제가 바로 뉴욕시에 들끓고 있는 쥐의 퇴치라는 것이다. 급기야 쥐 퇴치 전문관리직을 신설하고 무력 17만 달러(약 2억 원)의 연봉을 내걸었다. 자격요건에 “쥐 소탕 동기가 충만하고 피에 굶주린(highly motivated and bloodthirsty)”이라는 위트까지 덧붙였는데, 900명이나 지원했다고 한다.

그런데 뉴욕시의 모든 주민마다 쥐 한 마리씩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뉴욕시의 쥐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뉴욕시가 갑자기 쥐 난리를 겪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사람만큼이나 쥐도 뉴욕시의 오랜 구성원(?)이다. 뉴욕시에 쥐가 살기 시작한 것은 대략 250년 전 부터였지만, 개체 수가 현저하게 늘어난 것은 1950년대 이후였다. 맨해튼과 브루클린의 급격한 도시화와 난개발로 쥐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개선(?)된 탓이었다.

그런데 지난 코로나19 시기에 갑자기 쥐가 더 늘었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실내 취식 불가 정책으로 식당들이 보도에 테이블을 내놓으면서 길거리에 음식 냄새와 찌꺼기가 늘어나고, 재택근무로 빌딩과 지하철역이 한산해지면서 쥐들이 땅위로 더 많이 기어 올라왔다. 우연의 저주인지 지난 두 해는 뉴욕시 평년보다 유난히 더웠던 탓에 쥐가 번식할

수 있는 기간이 크게 늘어났다.

뉴욕 시민들은 음식물이나 플라스틱을 분리하지 않고 한꺼번에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서 버린다. 대체로 뉴욕의 쥐퇴치 전문가들은 길거리에 그런 쓰레기 봉지가 쌓여 있는 한 쥐를 완전히 없애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뉴욕시에서는 이번에 쓰레기를 딱딱한 상자에 담아서 버리도록 하는 규정을 도입하려는데 이게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단다. 우리처럼 쓰레기를 분리하지 않기 때문에 뉴욕시의 수많은 식당에서 쓰레기를 상자에 넣어서 버릴 경우 모든 거리가 쓰레기 상자로 채워질 수 있다. 상자의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소상공인들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

찾아보니 이처럼 쥐박멸을 전담하는 전문관리직을 선발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줄리아니 시장 시절에 초대 쥐박멸 전문담당관을 임명했고, 블룸버그 시장 때는 시공무원 대상으로 3일간 ‘설치류 아카데미’라는 속성 코스를 열어 쥐잡기 노하우를 가르쳤다.

인간을 다시 달에 보내겠다는 아르테미스 계획을 비롯해 여전히 과학기술의 프런티어를 열고 있는 미국이 어떻게 일개 도시의 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나. 달에 가는 것보다 지구에서의 문제가 더 해결하기 어렵다는 반증이 아닐지. 뉴욕시 커미셔너는 한국이 어떻게 1970~1980년대에 쥐를 몰아냈는지 비법을 꼭 알려달라고 했다.

갤러리 초대석

「밀접한 사회 展」

당신의 자리에 꽃이 피었습니다. 윤종석.

오산시립미술관이 오는 6월 6일부터 8월 27일까지 한국·독일 수교 140주년 특별기획전 「Close Society_밀접한 사회 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140년 역사의 한국과 독일의 협력 관계를 기리고, 양국 교류 활성화를 위해 기획됐다.

이번 전시는 ‘관계’라는 키워드로 예술가들의 시선을 빌어 코로나 19 이후의 사회를 들여다본다. 6인의 작가가 회화, 조각, 영상, 설치 미술 등 작품 60점을 통해 사회 경제적 구도의 인간 문화 속 ‘관계’에 대해 ‘예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다양한 관점을 드러낸다. 참여 작가는 케스틴 세쯔(Kerstin Serz), 글랩 바스(Gleb Bas), 윤종석(Jongseok Yoon), 베티나 바이스(Bettina Weiss), 임정은(Jeoungeun Lim), 박종규(Jongkyu Park)다. 작가들은 자신들의 시선을 빌어 1전시실에 ‘틈에서_우연성에 깃든’, 2-3전시실에 ‘틈에서_적극적 탈주’란 테마로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전시 입장료는 무료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신다인 기자 shin@kyosu.net

제공=오산시립미술관

한민의 문화등반 58

진정한 행복의 조건

행복이란 무엇일까.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심리학에서는 행복을 상당히 쉽게 정의한다. 살면서 경험하는 긍정적 정서의 총합이라는 것이다. 너무 간단해서인지 삶의 의미라는 개념이 조금 덧붙여지긴 했지만.

그러나 긍정적 정서를 경험하는 원천은 사람마다 매우 다르다. 또한 부정적 정서라고 해서 긍정적인 구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삶의 의미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는 부족함 없는 사람이 있다. 건강도 좋고, 일도 잘 풀리고, 가족도 화목하다. 이 사람의 행복도는 매우 높아야 마땅하다. 그리고 이 사람은 사회에도 관심이 많다. 봉사활동에도 참여하고, 작지만 여러 기관에 후원도 하고 있다. 삶의 의미 또한 충분히 느끼고 있을 삶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가슴이 아프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불행한 사건이 가슴을 후벼판다. 학교 앞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죽어가는 아이들, 자기 아이를 데리고 세상을 버리는 부모들, 경쟁에서 밀려나 도태되고 제도에서마저 소외된 이웃들을 생각하면 늘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이 사람은 행복할까 불행할까. 학술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행복의 정의(?)에 따르면 이 사람은 불행하다. 이 사람이 느끼고 있을 부정적 정서의 총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사람은 본인의 건강이나 직장에서의 성취, 가족의 화목에서 느껴지는 행복에서 죄책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우리 사

회에 불행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행복을 느껴도 될까.

이 사실은 한국인의 낮은 행복도를 설명하는 하나의 요인이다. 한국인은 사회에 관심이 많다. 정치에도 관심이 많고, 경제와 사회구조, 그리고 복지에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세상은 가슴 아프고, 속 썩일 일 천지다. 인구 5천만 명이 넘는 나라에서는 어디에선가 누군가에게 불행한 일은 끊이지 않고 일어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복지 사각지대에서 외롭게 죽어간 이웃에 슬퍼하고, 피어나지도 못한 어린 생명이 스러져가는 것에 분노하며, 꿈을 펼쳐야 할 젊은이가 우울증에 빠져 있는 현실에 좌절한다. 때로는 수십 년 전에 돌아가신 분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불안과 초조에 빠지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이 ‘지금 그리고 여기’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또한 이런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이 중에는 본인의 삶에는 큰 부정적 요소가 없는 이가 태반이다. 행복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마음의 습관은 행복에 대단히 마이너스가 된다. 과연 우리는, 한국인은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이 땅에 불행한 이가 아무도 없어야 한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죽어가는 아이도, 생활고에 죽어가는 이웃도, 부당한 권력과 권위에 희생되는 이도 없어야만 한다. 청년이 살집을 구하지 못하는 일도, 집 살 돈이 없어서 결혼을 포기하는 일도, 출산과 육아 때문에 여성의 경력

이 단절되는 일도 없어야만 한다.

그것이 행복의 조건이라면 우리는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종교의 믿음에서 존재하는 천국이 그런 곳일까. 적어도 인류 역사상 그런 사회 또한 존재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존재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에 구원과 영생, 천국을 약속하는 사이비 교단이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

어쩌면 애초에 행복처럼 주관적 판단이 중요한 개념을 측정하고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일지도 모른다. 마음의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오늘도 우리는 이웃의 불행에 가슴 아파할 것이며, 바뀌지 않는 현실에 좌절할 것이고, 나와 이웃의 행복을 가로막는 모든 것에 분노할 것이다.

한편, 오늘도 행복연구는 계속되고 한국인의 행복도가 세계 밑바닥 수준이라는 기사가 일간지의 지면을 장식한다. 그런 기사에는 역시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불행하다고 자조하는 댓글이 넘쳐날 것이고 사람들은 다시금 우리의 불행을 되새기며 다시 한번 불행의 늪에 빠져들 것이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 및 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한국에서 박사하기』와 서평을 읽고

‘미국{서울에서 박사하기’

넘어선 실천을 기대한다

『한국에서 박사하기』는 양면으로 포위되어 있다. 『서울 리뷰 오브 북스』에 실린 김두얼 명지대 교수의 서평은 이들에게 ‘일국가적 사례(특수)가 아닌 이론(보편)으로서의 학문(이라 쓰고, K-학문이라고 읽는다)’을 요구한다. 김종영 경희대 교수는 <교수신문> 기고에서 이들에게 대학과 학계를 기만하고 착취해 온 기성 정치, 제도와의 연대를 기대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두 편의 글은 관점도 지향도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이 책에서 ‘학술 엘리트(의 미달태)’를 읽어내고, 이들에게 보다 거시적이고 대국적인 지향과 실천을 기대하고 있다. 두 논평자 모두 ‘미국에서 박사하기’를 경험했다는 점이 내게는 문제적으로 보였다. 그들에게 『한국에서 박사하기』는 너무나도 소박하고 ‘로컬한 기획일지도 모르겠다.

김종영의 조언과는 달리, ‘한국에서 박사하기’의 문제의식과 비판정신은 오히려 기성 제도와 정치를 상대하며 예리하게 벼려진 것이다. 필자들은 대학원생의 인권·노동권·학습권을 쟁취하기 위해 연대하고, 대학·학술기구·정치인들을 테이블로 불러내어 개선의 약속을 받아내고, 이를 통해 대학원생과 연구자들을 규합하는 지난한 작업을 지속해온 이들이다.

나는 대학원생노조 조합원으로 활동하며 이들의 활동을 지근거리에서 목격했다. 이들의 동기는 김두얼이 비판한 1980~1990년대식 학술운동에 대한 지향과 무관하다. 과거 학술운동의 주체들이 역사와 변혁의 주인으로 스스로를 의미화했다면, 이들은 ‘학술운동이 곧 사회변혁’이라는 거대한 기치가 상실된 이후, 가속화된 학술장과 각자도생의 논리가 만들어낸 폐허의 주민이다. 혹자는 폐허 따위는 버리고 떠나라고 하겠지만, 폐허에서 함께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자들도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입장에서의 비판도 있다. “명문대 대학원은 은마 아파트”(『한국에서 박사하기』, 185쪽)라는 비유로 표상되는 서울-수도권 중심성에 대한 비판이다. 필자들이 지방대학을 의도적으로 타자화하지는 않았다고 믿는다. 다만 저 비유가 모든 독자에게 고르게 가 닿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한마디 쓴소리를 더하지 않을 수 없다. 단지 은마아파트가 서울 공화국의 상징이라서가 아니다. 이 책이 서울-수도권과 지방을 부러 구

분하지 않고, 한국의 대학원과 학계 일반을 이야기하는 이상, 이러한 표현은 매우 부적절하다.

사실 진짜 문제는 비유나 수사가 아니다. 고려대·서울대·성균관대·카이스트 등 이른바 ‘명문대생’으로 이루어진 필진들에게 ‘한국에서 박사하기’는 곧 ‘서울-수도권에서 박사하기’였을 테니까(카이스트가 대전에 있다는 점은 넘어가자). 김종영이 이들을 “학계의 주류가 아니라 경계인”으로 지칭한 것이 내게는 대단히 생경했는데, 이들은 학계에서 어떤 형태로든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학벌 피라미드의 상부에 위치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지방대학(원)의 문제는 이 책에서 다루지 않는다. 학력주의와 서울 중심주의가 존재하는 한, 지방에서 연구와 교육을 이어나가는 연구자들에게 이 책은 ‘지배받는 지배자’들의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해결책으로 제시된 ‘학문 공동체’, ‘연구자 네트워크’, ‘학술지식의 대중화’는 서울-수도권에서보다 지방에서 훨씬 더 실현되기 어렵다. 생색내기용으로 지방대 소속 필진을 한두 명 배치하는 정도로 가려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의 시도는 도리어 정직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한국에서 박사하기』는 지방(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다.

물론 이 책에는 장점이 훨씬 더 많다. ‘심슨 짤’로 대표되는 대학원 문제의 희화화 경향을 비판하고 논의가 ‘불행 배틀’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다 보니, 대학 간의 차이와 위계에 집중하지 못한 점 또한 이해할 수 있다. 대학원과 학계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이토록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연구를 지속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크게 공감했다. 나의 관심은 결국 이 책이 열어젖힌 가능성과 이후의 실천으로 수렴된다.

연구의 의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학력주의와 서울 수도권-중심성을 해체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에서 박사하기’ 팀의 다음 행보를 응원하고

연대하겠다.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김상돈의 교수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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