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득구 의원,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악 선택해야 하는 기로”
유기홍, “대학설립 준칙주의 원죄
이주호 장관…여·야 설득 나서야”▶1면에서 이어짐상품성이 떨어지는 재단 재산을 해산장려금으로 구매하는 것이, 공공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강민정 의원(더불어민주당)의 질의에 대해 하 교수는 “구성원 보호 뒤 남은 재산이 사학진흥재단 청산계정으로 들어간다. 청산계정에 들어갈 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면 그 가격대로 들어간다. 사학진흥재단이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가격으로 재산을 사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전윤구 교수는 정책의 역효과 문제를 들었다. 전 교수는 “대학 학교법인 청산 후 잔여재산은 초중등 법인보다 상당히 크다. 지급받는 금액에 따라 상속세보다 적은 세금을 내며 결과적으로 우회 상속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 했다. 아울러, “국고 귀속 잔여재산이 클수록 받을 수 있는 해산장려금의 규모가 커지기에 설립자 입장에서는 청산 후 잔여재산 중 교직원에 대한 퇴직위로금이나 학생 편입학 지원금 금액을 가급적 낮추고 억제하려는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라고 했다.한편, 김경희 명지대 석좌교수도 해산장려금의 효과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는 “청산 후 사학진흥재단에 귀속되는 재산의 30% 범위에서 재산을 환원하는 것으론 적극적 구조조정 요인이 되지 않는다”라며 “출연재산 환원금이 학교법인 재산 출연에 비해 적고 그 금액이 확정되는 데 오랜 기간이 걸려 구조개선 촉진 효과가 적다”라고 했다. 해산 장려금보다는 잔여재산처분계획서에서 정한 자에게 잔여재산을 귀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발적 구조개선 유인 효과가 크다고 했다.
사학법인연합회 회장 “위기대학 신속히 퇴출되도록”공청회에서는 사립대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불신이 재확인되기도 했다. 강민정 의원은 “‘고등·평생교육 특별회계’ 때도 대학 당사자들은 절박했지만, 시민들의 공감도는 떨어졌다. 사학비리도 문제지만, 시민 대다수가 사학 출신이기에 사립대학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라며 사립대를 사유재산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을 비판했다. 임 연구원도 “국회의원들도 사립대 정책을 펼 때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사립대 지원에 대한 명분을 구하는 게 어렵다. 정부가 지원해도 경쟁력이 나아지지 않았고 시민들 인식도 좋지 않다”라며 “법이 통과되면 사립대에 대한 인식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구조개선 법의 필요성에 관해서는 법을 발의한 여·야 의원만이 아니라 패널 간에도 견해차가 크지 않았다. ‘사립대 구조개선법’을 발의한 강득구 의원(더불어민주당)은 현재 구조개선을 해야 하는 근본적 원인은 대학설립 준칙주의와 정원자율화 정책이라면서도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최선이 아니더라도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기로에 놓여 있다”라고 말했다.이태규 의원(국민의힘)은 “대학설립 준칙주의나, 대학자율화 정책도 원인이 있겠으나,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최악의 저출생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이에 관한 모든 문제를 사립대의 잘못으로 몰고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라고 말했다.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도 “사립대는 기본적으로 공공재다. 그럼에도 사유재산적 성격을 담고 있는 법안에 대해 전면 반대 입장을 취하기는 어렵다”라며 “학령인구 감소란 큰 변화를 생각해 이 법안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한시적으로 해당 법이 필요하고, 이에 따른 폐해 해소도 고려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사립대 구조개선 문제에 대해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하기도 했다. 유기홍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대학설립 준칙주의의 원죄를 진이주호 장관이라고 지칭하지 않더라도, 사회부총리인 장관이 대안을 갖고 앞장서서 여·야 의원을 설득해야 한다. 또한, 법이 통과된 후의 실제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청문회에서 제기됐다.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도 교육부가 책임 있게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공청회를 찾은 유재원 한국사학법인연합회 회장은 “세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빨리 제정돼서 어려운 사학은 퇴출이 되고 나머지 대학이 발전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최선이 아닌가 싶다”라며 “여러 의견이 분분할 수 있으나 청산했을 때 그동안 교육에 매진한 인센티브로 잔여재산의 30% 정도를 설립자에게, 할애해 주시면 고맙겠다. 그 기준선 설정이 어려우면 사학진흥재단에 각 대학의 기초자금이 보고돼 있을 것이니 이를 감안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세계 500위 안 국내 대학, 연구중심대학으로 길러야”
교육·국제경제학회 ‘고등교육 개혁 방향’
“학생 등록률 70% 미만, 지원도 중단해야”세계대학 순위에서 500위 안에 드는 국내 10여 개 대학을 대학원 중심의 연구중심대학으로 키워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규제 완화와 재정지원을 통해 자율에 따른 대학 생태계를 유형별로 특성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경제·인문사회연구회, 한국국제경제학회, 한국교육학회는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고등교육 개혁방향’이란 주제로 지난 1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교육정책포럼을 열었다.김진영 건국대 교수(경제학과)는 먼저 한국 대학 생태계의 중심에는 연구중심대학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연구중심대학에 속하거나 연구중심대학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은 4년제 대학 중 20곳을 넘지 않는다며 소수 대학을 대학원 중심의 연구중심대학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또한, 연구중심대학은 학부보다는 대학원이 학교 운영의 중심이 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대학원생의 비중 자체가 높아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재 서울대를 제외한 종합대학 중에는 대학원생 비중이 3분의 1이 넘는 경우가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향후 학령인구 감소라는 상황에서 대학원생 비중이 소수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연구 역량이 집중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김 교수는 대학의 고등직업교육을 내실화할 것도 제안했다. 대학교육이 전통적인 학문교육에 바탕을 두고 있더라도 변화하는 경제 구조와 노동시장에 적합한 직업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근거다. 그는 “고등직업교육이야말로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기존의 학부 교육을 통해 그 수요를 맞춰야 한다”라고 했다.
김 교수는 정부의 대학 지원에 대학 개혁 방향을 설명하며 민간 대 정부의 투자 비중이 6:4 정도 돼야 하고, 등록금 인상이 계속 통제된다면 5:5 정도를 유지하며 전체 재정 규모를 키워야 한다고 했다. 또한, 재정지원과 병행된 규제도 새로워져야 한다며 수월성을 추구하는 대학에는 규제를 최소화하고 혁신을 유도하는 기관지원을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고등교육의 방향을 결정하고 이를 충족한 소수 대학에 집중 지원하는 기존의 방식은 이제 피해야 한다고 했다. 그간 재정지원의 사각지대였던 직업교육-산학협력에 대한 지원도 보강돼야 한다고 했다.재정지원 대학을 결정할 때는 지원 자격이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학생의 등록률이 일정수준(가령, 70%) 미만일 때는 신입생부터 대학 지원을 중단하고 졸업생의 취업 후 학자금 상환 실적을 성과지표에 포함시키자고도 했다. 대학의 규경제·인문사회연구회, 한국국제경제학회, 한국교육학회가 주최한 이번 행사에서 김진영 교수는 소수의 대학을 연구중심대학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진=한국국제경제학회
제 방향에 대해서는 사전규제보다는 엄격한 사후 관리 방식이 돼야 한다며 “비리를 막기 위한 규제보다는 교육의 질 향상을 전제로 한 규제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재정지원 제한 대학에는 국가장학금 재정지원도 중단해야 하는 필요성도 제기됐다.
대학의 변화에 대해서도 참고해야 할 사례를 제시했다. 그는 교양 교육을 적극적으로 개편해서 대학 강의 전체를 전공 수준으로 가르쳐야 한다며 “현 수준의 교양 교육은 유튜브에게 맡기고 대학 강의는 철저한 학문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전공’ 수준으로 가르쳐야 한다”라고 했다. 또한, 대학이 젊은 교수 채용에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도 했다. 기존의 성과만을 바탕으로 한 교수 채용은 신임교수 연령을 높게 만들어서 대학의 활력을 떨어트린다며, 잠재력과 학문적 기여 등을 주요한 평가 요소로 고려할 것은 제안했다. 아울러, 학생이 대학 개혁의 중요한 동력이라며 교육과정개편위원회 등에 참여시킬 것을 제안했다.라이즈·글로컬대학, 학생 이동·생활권 권역 고려돼야
백승주 한국교육개발원 대학역량진단센터 소장은 대학 개혁에 빠져선 안 될 부분으로 교수 혁신을 들었다. 그는 대학의 가장 밑단에서 변화를 끌어내는 교육과정의 설계, 수업의 방식 변화, 디지털 학습 도구의 활용 등에 대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교수에 대한 재교육이 필요하고, 교수 사회가 변화를 만드는 주체가 돼야 한다고 했다.또한, 특정 대학 출신이 아니라, 특정 전공의 지원자가 인정받는 사회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각 대학이 잘할 수 있는 것에 선택과 집중하는 개혁이 필요하고, 시장이 그것을 인정할 수 있도록 동일 전공과 학문에서 질 관리를 보장하는 체계가 작동해야 한다고 했다. 의학 분야에서 운영되는 프로그램 평가 인증 제도가 미국에서는 50곳 이상의 전공과 학과를 중심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고 했다.
라이즈와 글로컬대학 사업에 대해서는 고등교육의 판을 흔들 수 있는 과격한 변화라 평가했다. 그는 교육행정과 일반행정이 추진 과정에서 함께 고려돼야 한다며 “기초·광역지자체가 대학 사무 분담, 적절한 조직 편제, 공무원의 대학에 대한 이해 등의 사안이 고려돼야 한다”라고 했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의 범위도 고려 대상이라고 했다. 백소장은 “경북 경산시에 위치한 대학은 13개지만 이들 대학은 대구를 생활권으로 두고 있고, 부산에 인접해 있는 창원과 창원 김해 등 경남에 소속된 대학은 하나의 생태계로 형성돼 있다”라며 “광역시·도 편제에 기반한 라이즈 체계가 자칫 지역 갈라치기 정책으로 갈 우려가 있다”라고 했다.그는 학생 이동과 생활권 권역에 기반한 ‘지역의 범위’를 다시 규정해야 한다고 했다. 백 소장의 문제의식은 지난해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에서도 지적한 바가 있다. 지난해 사교련은 지역균형발전과 대학을 살리기 위한 거버넌스 모델로 (가칭) 광역고등교육청을 제안했다. 광역고등교육청을 제안하며 “대학은 수천 명의 규모로 거주지의 지리적 위치와 무관하게 소재하는 경우가 있고 고등교육 기관은 주변 지자체와 협력할 필요도 있기에, 도·광역시를 넘어선 기구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박윤수 숙명여대 교수(경제학부)는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재원조달 구조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민간에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선 등록금 규제를 완화해야 하고, 공공에서의 재원 조달을 위해선 유초중등교육에 집중된 교육재정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고학력자는 많아도 ‘고역량자’는 드물다며, 고역량 인력의 양성 책임이 고등교육에 있기에,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와 경쟁력 강화가 절실하다고 했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한국전자출판협동조합 10주년 기념 세미나
코로나19 이후 급변하는 전자출판, 디지털출판의 현재와 미래1. 일 시 : 2023년 6월 14일 (수) 12 : 00 ~ 13:30분2. 장 소 : 서울국제도서전 행사장내 세미나 룸(책만남홀2) 삼성동 COEX3. 참석대상 : 출판계, 일반인, 저자, 언론계, 정부 및 정책연구자4. 주 최 : 한국전자출판협동조합5. 사 회 : 조윤정 전 이사장(현 조합 전무)■ 제1부가. 인사말 : 김일철 이사장나. 전자출판 10년의 역사 와 함께한 한국전자출판협동조합 간략소개다. 급변하고 있는 출판 디지털 환경1) 인공지능을 활용한 영유아 에듀테크 시장 (발표 10분 : 미니게이트 정훈 대표)2) chatGPT를 활용한 책만들기 솔루션 위메이크 북 (발표 10분 : 이새의 나무 신정범 대표)3) 코로나 19이후 웹소설의 변화된 시장 (발표 10분 : RNC 이경미 대표)4) 코로나 19이후 웹툰시장의 현황과 변화 (발표 10분 : 유주얼미디어 김유창 이사장)5) 코로나 19이후 글로벌 전자출판 시장의 현황과 전망 (발표 10분 : 인사이트 브리즈 임신희 대표)(5분 휴식 및 장내 정리)■ 제2부 질문과 답(의자에 앉아서 청중의 질문에 답하고, 추가 인사이트 발표)주제 : 위 발표내용을 포함한 현 코로나19와 비대면의 일상화, 인공지능 기술의 급격한 발달에 따른 출판 시장에 대한 질문과 대답(위 발표자 와 사회자 진행으로 20분 진행 )(질문을 미리 카톡창을 통해 받음 + 급 현장 질문 3개 받음)총 90분(1시간 반) 소요예정 (2시간 안에 종료 예정)김정근 심리에세이
너의 거울이 되어 줄게어느 아이비리그 대학생의 심리 치유 에세이다우덩치만 키운 ‘1도 1국립대’…지역 소멸 앞당기는 ‘지방대 시대’
대학지원체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대학개혁 정책이 추진되고 있지만, 정작 대화는 부족하다.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와 전면 폐기의 주장이 맞서고 있다. 넓은 시각에서 대학의 체제를 진단하고, 현실에 기반한 문제 제기와 현실적·구체적인 대안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고자 한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대학정책 TF가 정부 정책의 난맥상을 짚고, 자성이 필요한 대학 내부와 교수사회의 문제까지 솔직하게 드러내 놓고 대학지원체계 원칙을 제안한다.
대학지원체계 원칙을 제안한다① 대학지원체계 현주소:무엇이 문제인가?② 국립대학지원체계 원칙:국립대 정체성에 합당한 지원 방안③ 사립대학지원체계 원칙:학교법인 평가 연계 지원 방안④ 대학지원체계 3원칙과 집행 방안86%, 85%, 73%. 2021학년도 일부 국립대의 신입생 충원율이다. ‘국립대도 미달 속출!’ 심지어 ‘부산대나 경북대 등 거점 국립대조차 추가모집!’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헤드라인이었다. 오래전부터 회자되던 벚꽃 엔딩의 속설이 입증이라도 된 듯 언론은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 언론보도의 이면에는 은연중에 국립대학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담겨 있다.
초창기부터 우리나라 대학은 설립 주체에 따라 국립대와 사립대로 구분되었고, 이 구분은 각기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기준이었다. 1도 1국립대의 원칙에 따라 국가는 대개 도청소재지에 국립대(경북대·전남대 등)를 설치하였다. 특히 1970년대에는 경북대의 전자·전기공학, 부산대의 기계공학, 전남대의 화학공학, 충북대의 건축·토목공학 등 국가가 지역의 산업구조와 결부하여 캠퍼스별 특성화를 추진하였다. 이 정책은 급속한 경제발전과 맞물려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고, 그 결과 국립대는 대한민국의 대표 대학으로서의 번듯한 위상을 획득했다.1970년대 말 이후 중위권 국가로 도약하는 단계에서 국가는 고등교육 인력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중소규모의 핵심 도시에 국립대(창원대·목포대·안동대 등)를 확대 설치하였다. 이렇게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보장하는 국민적 자산으로 서 국립대는 지역과 규모의 특성에 맞추어 적절한 역할 분담 속에서 국가균형발전의 토대이자 급속한 산업화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하는 요람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국립대는 군부 독재시절의 민주화 투쟁을 주도하는 지성의 전당으로서 역할도 유감없이 발휘했다.특성 무시한 획일화, 국립대 위상 저하
오늘날 국립대의 위상 저하는 인적·물적 자원의 과도한 수도권 집중이라는 우리 사회의 기형적인 발전 탓이다. 그러나 급속한 사회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국가정책의 반복적인 오류의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지역불균형이 파국으로 치닫는 가운데 학령인구 감소가 시급한2000년대 들어 강행한 국립대의 무분별한 통폐합은 양적 축소와 질적 약화를 초래하고 말았다.
소규모 국립대가 사라진 도시에서는 지역에 밀착된 고등교육 서비스와 평생교육 기능이 사라지면서 지역 소멸이 가속화되고 있다.문제로 대두되면서 역대 정부는 수많은 대책을 쏟아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대학의 특성화와 다양화, 재정지원과 연계한 대학 평가를 통한 부실대학의 퇴출 유도, 지방대 육성법에 근거한 지방대학 특성화와 정원 감축 등이 바로 그런 대책이었다.
1994년도에 최초로 전국 대학을 대상으로 한 평가작업이 시행되었다(대학종합평가인정제). 이때부터 국가는 국립대와 사립대의 특성을 무시하고 획일적인 지표에 따라 대학을 평가하고 지원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대학의 설립목표, 개별적 입지여건, 규모, 기능과 특성을 무시한 평가가 국립대의 학문적 특성과 경쟁력을 무너뜨렸다. 정부가 표방했던 정책 목표와 정반대의 획일화 정책이 국립대의 위상 저하를 초래했음에도 정부는 그런 시책을 고집스럽게 무한 반복해왔다.국립대의 무원칙 통폐합, 여전한 갈등
2000년대에 들어 노무현·이명박 정부 시절에 강행한 대학 구조조정은 부실 경영이나 비리를 저지른 일부 사립대를 정리하는 방안을 택하는 대신, 나름대로 역량과 기능을 고려했지만 국립대를 무분별하게 통폐합해 국립대의 양적 축소와 질적 약화를 초래하고 말았다. 설립 취지도 다르고 지역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던 국립대의 무원칙한 통폐합으로 인하여 대개의 국립대마다 내부 구조조정의 숙제, 구성원들의 갈등, 다수 캠퍼스의 운영에 따른 비용부담 등의 어려움에 시달리게 되었다. 불합리한 통합은 거점 국립대학의 ‘순수기초학문+특성화 첨단분야’의 특성을 희석시켜버렸고, 거점대학에 흡수된 과거 소규모 대학의 실용적 전공 역시 효과적인 운영이 어려워졌다. 비대해진 외형에 낮아진 지표의 부조화가 거점 국립대를 덩치만 큰 지방대학으로 전락시켜버렸다. 그런 사실은 입시 결과에서 분명하게 확인되었다.한편 통합으로 소규모 국립대가 사라진 도시에서는 지역에 밀착된 고등교육 서비스와 평생 교육의 기능이 사라지면서 지역 소멸이 가속화되고 있다.1950년대 ‘1도 1국립대’, 21세기 비전인가
현 정부는 ‘지방대 시대’를 표방하며 국립대 육성지원을 약속하면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의 구축과 글로컬대학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일견 수긍이 되는 정책 목표이며 방향 설정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점도 눈에 띈다. 우선 라이즈 체계와 글로컬대학 사업에는 충분한 재정 증가가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기존 정책과 마찬가지로 경쟁을 통한 혁신을 표방했지만, 국·사립대의 구별이 없고, 사실상 정원국립대 통폐합 연혁
대학 년도 추진 내용부경대공주대강원대부산대전남대강릉원주대전북대경북대제주대한국과학기술원인천대한국교통대서울과기대한밭대경상국립대한경국립대1996200520062006200620072008200820082009201020122012201220212023부산수산대+부산공업대 통합공주대+천안공업대학 통합, 2001년 공주대+공주문화대학 통합,1992년 공주대+예산농업전문대학 통합강원대+삼척대 통합부산대+밀양대 통합, 1976년 밀양농잠전문대 국립으로 이관전남대+여수대 통합강릉대+원주대 통합, 2009년 교명 변경,1982년 원주전문대 국립으로 이관 및 교명 변경전북대+익산대학 통합경북대+상주대 통합, 1999년 상주대 일반대로 전환제주대+제주교육대 통합한국과학기술원+한국정보통신대 통합인천대+인천전문대 통합충주대+한국철도대 통합 및 교명 변경,2006년 충주대+청주과학대학 통합, 2010년 충주대 일반대로 전환일반대로 전환일반대로 전환경상대+경남과기대 통합, 1995년 경상대+통영수산대학 통합,1984년 경상대+경남간호전문대학 통합한경대+한국복지대 통합, 1999년 한경대 교명 변경감축과 대규모 구조조정을 노골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혁신과는 거리가 먼 정책이다.
국립대 체제를 약화시켰던 거점 국립대+중소 규모 국립대의 통합도 다시 거론되고 있고, 심지어 중소 국립대의 통폐합과 시·도립화 소문도 무성하다. 많은 언론도 이에 부화뇌동하여 1950년 대의 정책 목표였던 ‘1도 1국립대’를 21세기의 비전인 양 합창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립대 체제를 70년 전으로 되돌리자는 무책임한 언론 보도는 결국 ‘국립대의 자살을 교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국립대는 국가의 학문적 표준이며 얼굴이다. 또 고등교육의 비전과 실천을 담보하는 공적 그릇이다. 정부는 국립대가 21세기의 선진국 대한민국의 위상에 맞는 역할을 하도록 그에 합당한 지원체제를 조속히 구축하여야 한다.국립대와 사립대, 지원체계 분리해야
먼저 국가는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기존의 획일적인 대학정책을 과감하게 개편하여 기본원칙으로 설립 목표와 기능이 다른 국립대와 사립대에 대한 관리 및 행·재정지원체계를 확실하게 분리해야 한다. 국립대에 대해서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고 합리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사립대에 대해서는 라이즈 체제를 수정하여 합리적인 규모로 지역단위를 편성하고, 책임과 권한이 있는 고등교육지원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이로써 대학이 지역정치 구도에 휩쓸리지 않고 실효적인 맞춤형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두 번째, 사립대가 감당하기 어려운 첨단학문분야와 기초학문의 보호·육성을 거점 국립대가 담당하도록 하고 이를 집중 지원해야 한다. 특히 첨단산업 분야의 인재들이 국립대의 교수직을 자랑스럽게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조속히 강구해야만 한다.
세 번째, 중소규모의 국립대는 고등교육 공공성과 대학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장치로서 지금과 같은 경쟁 방식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고 대학과 협의하여 지역사회의 산업적·문화적 요구에 부응하는 합리적이고 과감한 재구조화를 추구해야 한다. 정부가 30년 전부터 부르짖던 대학의 다양성과 특성화를 실천할 수 있는 주체가 바로 이들 국립대임을 재인식하여야 한다. 이미 목포대와 순천대 등이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도를 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서 국가가 이들 대학의 노력을 최대한 지원해야 마땅하다.마지막으로 국립대가 정책 난맥상에 따른 부작용에 시달리지 않고 정상적인 발전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국립대학법’의 제정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불필요한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고, 급변하는 시대적·산업적 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며 지속적인 혁신과 상시적인 구조조정을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기초를 마련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김유경
전 경북대 사학과 교수독일 괴팅엔대에서 유럽 중세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북대 교수회 부의장,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대학교수노동조합연맹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 『유럽 대학의 역사』를 번역했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중세 필사본 속 명화’ 삽입!
누구나 막힘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최고의 고전!!LINN 인문고전 클래식나의 세계유산 등재 경험기…사회에 기여하는 한국사 연구
천하제일연구자대회
㊳ 역사학, 세계유산과 소통하기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심사 과정에서 평가자들의 가장 중요한 요구는 동아시아에서 ‘한국 성리학’이 무엇인지 설명해달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전개된 성리학의 역사가 아닌, 한국의 성리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존재한 유학들과 비교하여 어떠한 특징과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가가 평가자들의 관심사였다.
세계유산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발굴·보호·보존하기 위해서 유네스코가 운영하고 있는 제도다. 2023년 현재 1,157건의 세계유산이 등재되어 있다. 세계유산 등재의 전체적인 과정은 세계유산협약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서 규정한 절차에 근거하여 진행된다. 이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등재신청서다. 목차별로 서술해야 하는 내용이 규정되어 있고, 지도의 축척까지 포함해서 각 장별로 글자 수까지 제한한다.
대한민국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유산은 총 13건이며, 북한과 중국에도 한국 고·중세사와 관련된 세계유산이 있다. 이외에도 세계유산에 등재된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중에서 군함도에 강제 징용 사항을 기술하느냐의 문제도 한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점에서 세계유산은 역사학, 그중에서도 한국사와 무관한 영역일 수 없다.필자가 세계유산을 접한 것은 2012년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실무자로 참여하면서였다. 시작은 조선시대사 연구자로서 대표적 주제의 하나였던 서원과 관련한 경험을 쌓아보겠다는 단순한 관심에서 출발했지만, 실무자로서 세계유산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연구 주제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한 다양한 경험은 지금도 역사학 연구자의 시선에서 연구와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동아시아사를 이해하는 키워드, 유학과 학교동아시아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이해할 때, 이를 대표하는 주제 중 하나가 유학(儒學)이다. 유학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국·일본·베트남 등에 전파된 이후 20세기 초까지 동아시아의 주요한 사상의 하나로 기능했다. 유학의 발전에 기여한 제도로 과거(科擧)를 들 수 있다. 관료를 시험으로 뽑는 제도인 과거는 유학 경전을 시험과목으로 채택하였기 때문에 유학의 사회적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와 함께 국가나 지역, 시기별로 유학 연구가 심화됨에 따라 독자적인 이론과 학풍이 발전하게 되었다.
동아시아 어느 나라를 가도 유학과 관련된 학교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수도에 위치한 곳에 국학(國學)에 해당되는 학교들이 있다. 한국의 개성과 서울, 중국의 베이징과 난징, 일본의 도쿄, 베트남의 하노이와 후에 등에는 유학을 가르쳤던 학교들이 현존한다. 지방에도 다양한 형태의 학교가 있었다. 향교(鄕校), 부학(府學), 번교(藩校)와 같이 국가나 권력자들이 설립한 경우도 있지만, 서원(書院), 정사(精舍), 사숙(私塾) 등 민간에 의해 자발적으로 설립된 학교도 존재한다. 이러한 학교는 각 국가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해왔으며, 이에 따른 다양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한국사에서 출발해 동아시아사로 확장
필자는 현재 두 가지 관점에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하나는 서원을 중심으로 한 지역사와 동아시아사를 결합한 연구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시대 성리학의 구조와 특징에 대한 연구이다. 해당 연구는 석·박사 과정에서 다루었던 주제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 참여하면서 그 고민의 폭이 넓어지기도 했다.우선 박사학위를 마치고 서원을 주제로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로 선정된 덕분에 이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 이 중에서도 중점적 연구 주제로 다룬 대상은 세계유산에 등재되지 않은 서원들이었다. ‘한국의 서원’에는 총 9개의 서원만 포함되었다. 실무자로서 한국 서원 전체를 조망하는데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다. 실제로 연구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등재신청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 심심세계유산과 관련한 규정과 보고서. 운영지침을 포함한 세계유산 관련 자료는 문화재청에서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사진=문화재청 홈페이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에는 세계유산과 관련된 규정과 함께 이미 등재된 유산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사진=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
치 않게 확인되기도 한다.
서원이 향촌사회에 존재했던 교육기관이란 측면에서 연구의 시작은 지역사로 출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지역사라는 단계에서만 바라보면 서원의 진정한 역사적 가치를 도출할 수가 없다. 특정 학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서원의 역할이나 정치적 사안에서 서원의 건립과 사액, 혹은 훼철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사상사·정치사의 영역에 해당된다. 서원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문서를 분석하는 작업에서 당대의 사회·경제운영과 관련된 편린을 바라볼 수도 있다. 또한 근대 이후 서원들의 변화양상은 유림(儒林)으로 범주화한 근대 유학의 추이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심사 과정에서 평가자들의 가장 중요한 요구는 동아시아에서 ‘한국 성리학’이 무엇인지 설명해달라는 것이었다. 흔히 ‘한국 성리학’을 이야기하면, 고려말 성리학이 도입되어 20세기초까지 전개된 성리학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는 ‘한국 성리학’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평가자들이 궁금했던 점은 한국에서 전개된 성리학의 역사가 아닌, 한국의 성리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존재한 유학들과 비교하여 어떠한 특징과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였다.
이러한 요구가 필자의 연구에서 중요한 문제의식으로 자리잡았다. 그 덕분에 박사과정부터 현재까지 율곡 이이와 이로 인해 파생된 다양한 형태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필자는 학맥(學脈), 정파(政派), 경세론(經世論), 문집(文集), 인물, 개념 등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성리학의 특질을 어떻게 도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고민의 여지가 많다. 언제 그것을 해명할 수 있을지는 확언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이 조선시대사가 가진 사상적 특질을 도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이 연구의 최종적인 목적은 결과적으로 동아시아사라는 거시적 틀에서 조선이라는 국가가 가진 시대적 특징을 도출하는 것이다. 서원뿐만 아니라 세계유산을 등재하는 다양한 사례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의외로 동아시아에 대한 비교 연구가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이 지리적으로는 가까울 수는 있어도 그것이 한국과의 비교 연구로까지 확장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유학이라는 주제는 이러한 비교 연구의 시작점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조선사회에서 500여년간 주요한 사상으로 기능했던 성리학은 동아시아사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세계유산 등재, 한국사 연구의 시사점세계유산 등재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사실은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요구되는 사항들이 현재 한국사 연구자로서 고민하고 있는 대부분의 내용을 유사하게 담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중 몇 가지를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등재기준, 속성, 서술 사이의 일관성과 가독성이다. 세계유산은 유네스코에서 규정하는 6가지 등재기준 중 1가지 이상을 충족하여야 한다. 등재기준을 서술하기 위해서는 속성(attributes)을 도출해 내야 한다. 해당 등재기술문의 서술을 충족하기 위해서 이 유산은 어떠한 속성을 몇 가지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등재신청서 상의 일관적이고 논리적인 서술을 제시해야 한다.아울러 신청유산의 훌륭함을 일방적으로 과시하는 대신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유산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한 가독성 있는 어휘 선택이 필요하다.국·내외 비교연구이다. 등재신청서의 작성에는 의무적으로 신청유산과 관련된 유사한 유산과의 구체적인 비교가 요구된다. 그것은 국내 유산과의 비교도 필요하지만, 최소한 동일문화권 내에서의 위상도 고려해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에는 전 세계의 세계유산과 관련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동아시아 유산별 등재신청서에 수록된 비교연구는 연구의 다양한 상상력을 더해주는 내용으로 가득채워져 있다.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비교연구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한국사 연구의 현재와 세계유산의 비교연구는 서로 맞닿아 있는 것이다.
문화콘텐츠·디지털과 결합된 역사학의 역할유산의 가치를 증진시키기 위한 연구와 활용 계획을 제시하여야 한다. 세계유산 등재는 이후에도 유산이 해당 가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시민사회 및 세계와 소통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등재 이후에도 해당 가치를 증진시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하며, 그런 노력은 그 가치와 연계되는 연구와 활용을 통해 구현되어야 한다. 또한 유산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의견을 청취하고 조율하는 역할도 수행하여야 한다. 이는 문화콘텐츠, 디지털과 결합된 역사학의 역할을 고민하게 한다.
등재신청서는 영어 혹은 불어로 작성하여야 한다. 번역은 전문 번역가에게 맡기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신청서를 쓴 연구자와 번역가 사이에는 전문 용어나 표현에 대한 끊임없는 검수와 교정이 필요하다. 등재가 결정되면, 당사국에서 제출한 등재신청서는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에 게재된다. 전 세계 누구나 어떠한 제한 없이 열람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해당 문화유산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습득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국제학술지에 연구논문을 제출하거나 K-History 사업을 통해 해외에 한국사를 알리는 것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끝으로 세계유산은 역사학 연구의 현재적 고민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인문학, 그리고 역사학에 대한 인식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연구논문 생산과 학부 및 대학원 강의, 그리고 역사의 대중화 등 전통적인 역사학의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한편 역사학의 사회적 기여에 대해서는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의 접근이 요구된다. 특히 이것은 연구자로서 논문을 통해 학계에 기여하는 것과 함께 학문적 전문성을 기반으로 교육과 시민사회로까지 지식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이경동
공주대 백제문화연구소 연구교수
고려대에서 『조선후기 정치』사상계의 栗谷 李珥 인식 변화 연구』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율곡 이이를 비롯한 조선후기 정치·사상계의 주요 인물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서원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의 가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조선후기 역사적으로 다루어지는 인물의 해석과 평가, 그리고 경세론을 중심으로 당대인들이 고민했던 문제의식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전문위원 등 국내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조선후기 율곡 이이 문집 편찬의 추이와 의의』, 『세기 사상계의 율곡 경세론 수용과 전개』, 『조선시대 ‘경장(更張)’의 의미와 변천』, 『16세기~17세기 초 영남지역 서원 원규의 구조와 변화』, 『목재 홍여하의 현실인식과 경세론』이 있다. 저서로는 『(校勘本)栗谷全書』(공저), 『동아시아 서원 아카이브와 지식 네트워크『(공저), 『서울길에서 만나는 인물史』(공저)가 있다. geistl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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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자가 본 인공지능_윤진혁 숭실대 교수
교수신문은 지난 ‘인공지능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에 이어 ‘과학기술자가 본 인공지능’을 특집으로 마련했다. 창작의 영역까지 넘보는 생성형 AI의 등장은 인간 사회의 모든 영역에 균열을 내고 있다. 과연 과학기술자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바라볼까. 윤진혁 숭실대 교수(AI융합학부)는 서비스 뒤에 숨어 있던 기술이 화면에 드러나며 사람이 체감할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 가운데 거짓말도 할 수 있는 대규모 언어 모델인 챗지피티가 등장한 것이다.지난 몇 년간 봄 학기에는 학부 4학년을 대상으로 빅데이터 프로그래밍 과목을 강의했다. 첫 주 수업은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어 내기 위해 본격적인 수업에 앞서 기술적인 측면에서 최근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야기한다. 올해 첫 강의는 3월 7일이었다. 전체적인 기술 발전에 대해 다루지만, 올해는 특히 챗지피티(ChatGPT) 열풍을 핑계로 대규모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s: LLM)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언어 모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언어 모델을 실제로 써 본 적이 있냐는 질문을 던졌다. 지난해에는 아무도 직접 언어 모델을 다뤄본 학생이 없었는데 올해는 많은 학생들이 챗지피티를 써 보았다고 했다. 챗지피티가 2022년 11월 마지막 날에 출시됐으니, 기말고사를 치르고 겨울방학이 지나는 사이에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몇 년간 언어 모델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왔다. 여기서 크다는 것은 매개변수의 수가 많다는 뜻이다.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모델 내부에서 데이터를 다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의 가중치를 가진 신경망이 연결돼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보통은 다양한 목적에서 큰 모델일수록 성능이 좋다. 단순히 성능만 좋아지는 것뿐만 아니라 큰 모델에서는 작은 모델에서 불가능했던 인지 능력이 생긴다는 보고도 있다. 과학 뉴스에서는 몇 주에 한 번씩 대형 IT기업의 새로운 모델과 그 성능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대단한’ 언어 모델을 실제로 다뤄보거나 그 능력을 체감한 사람은 극소수였다.
사용할 수 있는 언어 모델의 최대 크기는 가지고 있는 GPU(그래픽 처리 장치)의 메모리 크기에 의존한다. 현재 계산용으로 파는 전문 제품이 아닌 일반적인 사람이 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GPU는 겨우 24기가바이트 메모리를 가지고 있고, 현시대의 대형 언어 모델을 다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크기다. 이런 GPU 몇 개를 모은 정도로는 대형 모델을 사용하는 것은 어렵다. 이런 모델을 학습하는 데는 사용하는 것 보다도 훨씬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일부 대형 IT회사가 아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만큼의 자원을 동원할 수 없다. 결국 대형 IT 업체들이 사활을 걸고 대형 언어 모델을 개발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윤진혁 숭실대 교수(AI융합학부)는 챗지피티의 핵심 기술은 이미 2017년에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사진=픽사베이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것을 물어야 한다. 과연 모델이 만들어내고 있는 편향성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언어 모델에서 충분히 다루고 있지 않은 영어가 아닌 언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의 사람들은 이런 대형 언어 모델의 능력을 체감하기 어려웠다. 기술은 서비스 어딘가 뒤에 숨어 있었다.
대형 언어 모델과 대화형 인터페이스의 결합그런데 갑자기 숨어 있던 기술이 눈앞에 나타났다. 챗지피티는 매우 큰 언어 모델과 대화형 인터페이스를 결합해 마치 사람과 대화하듯 언어 모델이 추론하는 정보를 끌어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챗지피티가 사람들에게 많이 와 닿은 이유는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모두가 챗지피티를 마치 인공지능의 대표주자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기시감이 든다. 몇 년 전 바둑을 보며 말하던 것들을 이제 챗지피티를 보며 이야기한다.아쉽게도 모델 자체가 공개되지 않은지라 기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알려진 사실만으로 이야기해보자. 먼저 연구자 입장에서 보면 챗지피티는 잘 만들어진 모델이지만, 핵심 기술 자체가 매우 새롭지는 않다. 큰 기반이 되는 어텐션 메커니즘(Attention Mechanism)은 이미 2017년에 소개됐다. 2017년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지만, 요즘의 기술 발전 속도에서 5년은 마치 산업혁명 전과 후를 비교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여기에 사람이 모델의 결과에 대해 평가하는 피드백을 더하는 방식(RHEL: Reinforced Learning from Human Feedback)을 추가했다. 언어 모델은 기본적으로 다음 토큰, 즉 언어의 최소 단위를 예측하는 형태로 작동하는데, 좋은 글을 만들어낼수록 좋은 언어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좋다”라는 말을 정의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매우 어렵다. 기존에는 학습에 사용된 문장들을 잘 재현하는지, 혹은 미리 정의된 정답을 얼마나 잘 맞추는지 BLEU(Bilingual Evaluation Understudy) 같은 테스트를 통해서 확인해 왔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인간이 잘 쓴 글은 창의적이고, 사실에 어긋나지 않아야 하며, 자연스러워야 한다. 이 모든 점을 만족하는 것을 수치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우므로, 사람의 피드백을 더해서 좋은 글을 판별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우리가 익숙한 ‘채팅’을 덮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기계와 대화를 하는 느낌으로 모델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사실은 이전의 모델들도 꽤나 설득력 있는 텍스트를 만들어 주었다. 덜 정확했지만 꽤나 괜찮은 프로그램도 만들어 줄 수 있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검색, 이메일, 페이스북 포스팅에는 이미 그런 LLM을 통한 기술들이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언젠가부터 구글의 이메일 서비스인 지메일은 사용자가 입력한 글의 문법을 고치는 기능이 생겼다. 언어 모델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언어 모델이 실생활에 사용될 때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많지 않다. 예를 들면 언어 모델은 사람의 편향을 그대로 학습한다. 차별적인 사고방식을 그대로 익히고, 그것을 반복한다. 소위 “확률론적 앵무새”라고 부르는 현재의 언어 모델은 그 거짓말이 꽤나 그럴싸하다면 거짓말도 할 수 있다. 이런 문제는 사실 수년간 많은 사람들이 경고해 왔던 것이다. 기술이 숨어 있었기에 우리는 그 무서움을 잘 모르고 있었는데, 챗지피티에서 체감한 언어 모델을 통해 사람들은 그런 문제도 깨닫기 시작했다.언어 모델은 실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수업의 말미에 학생이 “우리가 이렇게 대화하면서 행동을 하듯, 언젠가는 대규모 언어 모델 기반으로 사람처럼 움직이는 정밀 로봇 제어가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했다. 어릴 때 즐겨 보던 만화 「신세기 사이버 포뮬러」가 떠올라서 웃음이 나왔다. 사실은 지금도 시간이 날 때 돌려본다. 1991년에 첫 화가 방영된 이 만화는 사람처럼 대화하고, 운전자의 지시에 따라서 시속 600킬로미터로 달리는 자동차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로봇이 나온다. 그 말을 듣고 “언젠가는 그날이 오겠지만, 꽤 먼 미래가 아닐까요”라는 답을 했는데, 강의에서 돌아오는 길에 구글이 자연어를 통해 로봇을 제어할 수 있는 ‘PaLM-E’라는 모델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첫 강의는 항상 “오늘 내가 한 말의 반 정도는 내년에는 틀린 말이 될지도 모른다”라는 말로 마무리한다. 그리고 그 말도 틀린 말이었다.사실은 몇 년 전부터 모두가 너무나 빠르게 날아가는 로켓 위에 타고 있었는데, 그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는 것같다. 이미 출발한 로켓을 멈추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이 바꿔놓을 세상을 기대와 우려로 바라보며, 어떤 직업이 나타나고 없어질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그런 것이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것을 물어야 한다. 과연 모델이 만들어내고 있는 편향성을 지워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언어 모델에서 충분히 다루고 있지 않은 영어가 아닌 언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러니하게 챗지피티 덕분에 이런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이 우리가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 할 지를 이야기할 적기일 수도 있다.
윤진혁
숭실대 AI융합학부 교수카이스트에서 열 및 통계물리로 학·석·박사를 했다. 네이버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성별에 따른 연구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과 그 상관관계」 등의 논문을 썼다.
학문후속세대 없는데 ‘철학’ 교양교육은 늘었다
▶1면에서 이어짐
박정하 성균관대 교수“인문학자 중심의 교양교육 전문가 집단 필요”지금, 철학의 설자리는 과연 어디일까? 최근 경북대 철학과의 경우, 전공 수업 수강생의 절반 정도가 타학과 학생이다. 철학은 10여 년 사이 논리적·비판적 글쓰기로 각광을 받아 왔다. 특히 대학 입시나 공직적격성평가(PSAT), 법학적성시험(LEET) 등에서 유용한 사고력 교육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도 서울대 철학과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가 로스쿨 진학을 위한 발판이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오늘날 우리 대학 교육에서 철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이다.한국연구재단의 「변화와 위기의 인문학 연구와 교육의 역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공동연구진은 “교양 수업에 있어서도 철학과는 논리 관련 과목 및 기타 교양과목에서 비교적 많은 수요를 누리고 있다”라며 “특히 교양 기초 수업에 해당하는 ‘논리와 비판적 사고’와 기초 논리학 교과목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양질의 교육을 담당할 학문후속세대가 지속적으로 양성돼야 하는 데 사정은 여의치 않다. “철학과의 경우 대학원 진학률이 상당히 낮고, 특히 동양 철학이나 고전 철학 분야는 미래에 학문 자체의 유지가 힘들어질 수 있을 정도로 재학생이 줄어들었다.”철학이 교양교육으로서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역왼쪽부터 홍윤기 동국대 명예교수,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박정하 성균관대 교수이다.
시 중요하다. 박정하 성균관대 교수(학부대학·철학)는 「대학교육을 배반하는 대학평가-인문교양교육을 중심으로」 발표에서 “인문교육으로서의 교양교육의 의미를 잘 이해하는 인문학자를 중심으로 하는 교양 교육 전문가가 교양교육 평가의 기획과 시행에 핵심 주체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 교수는 “교양교육의 올바른 이념을 실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라며 “전문성을 갖춘 평가 주체가 확보되어야 비로소 바람직하고 전문적인 평가가 가능하므로 무엇보다 인문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교양교육 전문가 집단이 교양교육 평가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다”라고 제언했다.
‘대학운영·교육·사회참여’에서 철학의 소외홍윤기 동국대 명예교수(철학)는 세 가지 측면에서 철학의 소외를 분석했다. 첫째, 한국 대학의 철학과는대학교 운영 면에서 학부생 취업 전망 확보의 압력 아래 지속적으로 학과 규모의 축소·합병이나 폐과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둘째, 국어-영어-수학-과학 중심의 교과체계에서 철학은 교양선택과목으로 방치돼있다. 셋째, 사회적 문제에 대한 철학적 개입·참여가 철학과 연구진들에게는 거의 가동되지 않고 오랜 기간 무관심 속에 소외돼 있다.
철학과의 축소는 교양교육의 외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는 “지난 약 15년 취직이 보장되지 않고, 그래서 입학생이 줄어들고, 대학의 재정에 도움이 안 된다는 등의 이유로 많은 대학에서 철학과를 비롯한 인문학 관련 학과를 줄지어 폐지하는 일이 자행되고 있다”라며 “이는 교수와 학생 모두 철학과 인문학을 중심으로 한 대학 교양교육의 약화를 당연하게 여기는 풍조를 낳을 수밖에 없다”라고 우려했다.대학의 교양철학과 더불어 시민철학이 강조되기도한다. 물론 철학의 사명은 이론 연구로서 기초를 포함한다. 조 대표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대학 교양 철학은 인문학적 삶의 동기를 부여하고, 이론 철학은 인문학적 영역에서 폭과 깊이를 더하는 기초로 작동하고, 시민 철학은 이들의 역할에 힘입어 시민이 평생 인문학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건강한 삶을 위해 셋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시대의 요구에 맞게 진화하는 철학철학이 본질에서 벗어나 응용에 목매다는 현상은 중·고등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철학박사인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는 2023 한국철학자연합대회에서 「철학교육도 진화한다-삶 자체에로!-」를 발표했다. 그는 “현재 내가 알고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오로지 철학만 가르치는 정교사는 딱 한 명뿐”이라며 “대부분은 도덕‧윤리, 국어, 역사 등 다양한 과목을 함께 가르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철학적 사고’의 대부분이 ‘과학적 사고’라는 명목으로 과학교육과정에 들어가버렸다.철학이 이 땅에서 확산되고 있는지, 도태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안 교사는 오히려 “철학은 시대의 요구에 맞게 진화하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철학의 물음과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은 자기계발서, 기업 경영의 HRD, 각 분과 학문의 철학 분야(교육철학, 정치외교학과의 정치철학, 과학 관련 학과들의 과학철학 등)으로 흩어져 버렸다”라고 지적했다.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역사를 바꾼 권력자들
이언 커쇼 지음 | 박종일 옮김 | 한길사 | 720쪽예외적인 시대는 예외적인 일을 해내는 예외적인 지도자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그 예외성의 공통요소는 다름 아닌 ‘체제의 위기’다. 이 책은 그러한 예외적인 지도자들, 특수한 방식의 권력행사가 가능했던 예외적 상황이 만들어낸 20세기 유럽 지도자들에 관한 사례연구다. 각자 다른 배경과 다른 정치체제로부터 등장한 그들이 어떻게 권력의 자리에 올랐을까.
문학과 의학의 접경
이병훈 지음 | 소명출판 | 439쪽의료문학은 태생적으로 현대의료의 미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것은 의료문학이 의료와의 연관성을 지렛대 삼아 의료의 인간성 회복이라는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의료문학은 초고속으로 발전하고 있는 의료기술과 인간이 직면할 새로운 상황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의료문학이 다른 문학과 달리 미래의 인간 삶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탐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날개 위의 세계
스콧 와이덴솔 지음 | 김병순 옮김 | 최창용 감수 | 열린책들 | 560쪽거대한 바다를 건너고, 가장 높은 산 위를 날아가고, 몇 달 동안 쉬지 않고 이동하는 철새의 비행 능력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철새의 몸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매년 지구 반대편을 오가는 철새가 마주하는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세계 철새의 날에 맞춰 출간하는 이 책은 알래스카에서 황해를 거쳐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이어지는 철새 이동에 관한 생생한 현장 탐사 기록이다.중국 그림책의 출발 『아동세계』
권애영 편집 | 소명출판 | 396쪽『아동세계(兒童世界)』는 우리나라 『어린이』 및 일본의 『아카이토리』와 마찬가지로 근대적인 아동관을 담아 간행된 중화민국 아동잡지이다. 1922년 1월 16일 상무인서관에서 창간해 1941년 6월까지 무려 20여년 동안 발간됐다. 이 잡지는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일본의 점령과 국공내전으로 혼란스럽던 시기에 낡은 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계를 열망하며 ‘아동을 중심’에 놓고 만든 아동 전문잡지였다.카본 퀸
마이아 와인스톡 지음 | 김희봉 옮김 | 플루토 | 328쪽이 책은 탄소의 형태와 성질을 연구해 나노과학의 선구자가 된, 뛰어난 여성 물리학자 밀드레드 드레셀하우스의 전기이다. 드레셀하우스는 흑연, 버키볼, 나노튜브, 그래핀 같은 탄소 동소체가 가진 중요한 성질을 발견했다. 이러한 탄소 연구는 전자공학에서 항공, 의료, 에너지까지 우리의 세계를 수없이 많은 방법으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 드레셀하우스의 다양한 기초연구는 나노 규모의 물질 연구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에밀리 디킨슨 지음 | 조애리 옮김 | 을유문화사 | 308쪽19세기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 가운데 한 명인 저자는 아버지 에드워드 디킨슨의 교육열 덕분에 당시 여성으로선 드물게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발병으로 애머스트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마운트 홀리요크 여성 신학교에 입학한 지 10개월 만에 고향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후 그녀는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며 시를 썼다. 생전에 발표한 시는 1886년 죽은 후 여동생 라비니아가 발견하고 공개했다.일본산고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176쪽한국 문학사에 다시없을 걸작을 남긴 저자의 유고 산문집인 이 책이 다산책방에서 새롭게 출간됐다. 작가가 『토지』를 완간한 이후 본격적인 일본론의 기획 아래 쓴 미발표 육필원고와 생전에 발표한 일본 관련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1926년생으로 식민지 체험 세대였던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세대가 사라지면 이러한 글을 쓸 사람이 없으리라며 다음 세대를 위한 일본론을 남기겠다고 말했다.논바이너리 마더
크리스 맬컴 벨크 지음 | 송섬별 옮김 | 오렌지디 | 300쪽벨크는 태어날 때 의학적·법적으로 여성 성별을 지정받았으나 대부분의 세월을 남성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왔다. 남자 형제들과 함께 자라며 그들이 당연하게 가진 것들을 질투하고, 스포츠에 재능을 보이며, 누구보다 아버지에게 장남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모습은 사뭇 뚜렷한 남성 성 정체성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벨로의 심정은 복잡해진다.묘비 세우기
정은우 지음 | 창비 | 296쪽서사적 완결성과 빠져들 수밖에 없는 문체로 2019년 창비 신인소설상, 제46회 오늘의작가상을 받으며 작가적 입지를 단단히 다진 소설가인 저자의 첫 소설집이 출간됐다. 등단 이후 꾸준히 쌓아온 내공으로 엮은 여덟편의 작품이 실린 이번 소설집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생의 본질적인 문제들까지 세심하고 살뜰히 살피는 이번 소설집은 든든하고 따스하다.저자가 말하다_ 『호혜와 협동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정헌목 외 5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408쪽
공유재 둘러싼 갈등…‘경제인류학’에서 실마리를 찾다조선시대 선물교환부터 현대 협동조합까지 분석
정상성 넘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구축의 과제2000년대 후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 이후, 주류 경제학과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대안 모색이 여러 방면에서 전개되었다. 특히 국내·외 학계에서 중요한 대안 이론으로 부상한 것이 바로 마르셀 모스(1872∼1950)와 칼 폴라니(1886∼1964) 등을 중심으로 한 인류학의 학문적 유산이다. 모스의 『증여론』(1925)이나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1944)에 담긴 인류학적 논의는 경제를 인간의 삶을 경유하여 사회 내 다른 영역과의 복합적인 상호 관계 속에서 파악할 것을 주문한다. 인간의 행위 동기를 합리적 선택과 개인의 이기심에서 찾으려는 시장 중심 논리를 넘어, 바야흐로 ‘경제’에 관한 인류학적 상상력이 요구되는 시대인 것이다.
호혜성·공동체·공유재 등은 이 같은 대안적 논의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개념이다. 이 책은 이들을 아우르는 ‘호혜와 협동’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하여 그와 관련한 이론과 개념의 심층적 분석을 제시한 학술서이다. 전체 12장에 걸친 책의 내용은 호혜성과 선물(증여)교환, 나눔, 공동체 등 기본 개념에 대한 분석과 함께, 조선시대 양반 사족층의 선물 관행에서부터 최근의 협동조합에 이르는 구체적 사례에 대한 이론적 분석을 담고 있다. 필자를 포함해 6명으로 구성된 공저자들은 3년에 걸친 공동연구를 수행하며 매달 함께 모여 아이디어를 나누고 서로의 논의를 점검하는 자리를 가졌다. 어찌 보면 이 책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연구진의 ‘호혜와 협동’을 실천하는 과정이기도 했던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자들이 문자 그대로의 호혜와 협동을 긍정적인 가치로만 보고 전통적인 공동체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호혜성·공동체·공유재 등을 낭만화하는 시각을 지양하고,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의 대안 모색을 위해 각 개념을 현실적인 차원에서 재조정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를 위해 각각의 현상을 둘러싼 개념에 관한 이론적 분석을 중심으로 이들이 과거와 현대의 다양한 사례에서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진단했다.이를테면 책의 첫 장은 호혜성 개념의 학사적(學史的) 계보를 추적하여 국내에서 주로 ‘호혜성’이라 번역되는 ‘reciprocity’ 개념 자체가 어떤 도덕적 당위성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사회의 조직 원리라는 점을 밝혀낸다. 따라서 호혜성의 좋은 점만을 강조하여 차가운 현대사회의 대안이자 잃어버린 전통사회의 이상향으로 호혜적 관계가 대두될 때, 집단 내 약자의 위치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호혜적 관계의 복원이 위계적인 보호나 착취 관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장에서는 공동체와 관련한 기존 관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공동의 이해관계나 공통의 가치 및 정체성과 같은 일반적인 기준만으로 공동체를 판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성장 위주의 자본주의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소수자와 난민 등 타자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정상성에 매몰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시급한 과제임을 강조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조선시대에서 현대사회에 이르는 한국의 사례들을 한국적 특수성으로만 재단하는 대신 보편학문으로서 인류학의 이론과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폭넓게 분석한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각종 공유재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등 현대 한국 사회의 사례 연구는 물론, 조선시대의 선물교환에 대해 경제인류학 이론을 적용한 분석까지 다양하고 참신한 이론적 접근을 진행했다. 이 같은 접근은 한국의 사례를 활용하여 인류학 분야에서의 이론적 정교화를 모색하는 시도인 한편, 동시에 ‘지역학으로서의 한국학’을 넘어 특수성에 매이지 않은 한국학을 추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인류학의 논의를 이론적 자원으로 삼아 한국학의 외연 확장에 기여하고자 하는 시도 역시 이 책에 담겨 있는 것이다.‘호혜와 협동’이라는 측면에서 과거 한국의 사례를 다룬 역사학계의 연구나, 사회과학 일반에서 진행되어 온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 관련 연구가 드물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류학의 이론 및 개념에 초점을 맞춰 과거와 현재의 사례를 아우르며 집중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쉽게 찾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이 지금까지와는 차별화된 관점을 제시하며 새로운 논의의 장을 열 수 있길 기대한다.
정헌목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류학전공 교수시가 있는 풍경_ 『넝쿨장미에 대한 의혹』 류근조 지음 | 나남 | 164쪽
“시는 가난해도 할 수 있는 공인된 예술행위”오래된 우리 아파트에는 철따라 수목이 우거져 꽃피고
새소리 어울려 황홀하던 한철이 가고 어느덧 느릅나무속잎이 피어나 그늘을 드리웠네하지만 마치 심심한 주민들 눈길을 끌기 위함인가철책 울타리엔 하루가 다르게 작은 꽃봉오리 앞세워 연일장미넝쿨 그 화려한 모습이 아름답게 피어 있네내가 예전 이태리 성지 아시시 여행 중 실제 클라라 성녀의시신이 누워있는 그 앞을 지나 프란체스코 성인이 참회하며뒹굴었다는 장미 밭에서 실제로 장미의 가시 없음을 본,새삼 그 뿌리 깊은 신앙심을 떠올려 보네그런데 지금 철책을 감아 오르는 우리 아파트 넝쿨장미들은 왜가까운 주민들의 손길을 거부하고 가시를 방패 삼아횡포를 들이대는가나는 출근길 앞둔 이 시간에도 그 의혹 때문에 이 글을 쓰고 있네.- 넝쿨장미에 대한 의혹중앙대 명예교수인 류근조 시인이 열네 번째 시집을 세상에 선보였다. 책 제목과 같은 이름의 이 시는 넝쿨장미의 이중적인 면을 드러낸다. 프란체스코 성인들은 참회를 위해 장미 밭에서 뒹굴어 가시가 다 없어졌다. 하지만 아파트 넝쿨장미는 이방인을 경계하듯 날선 가시를 앞세운다. 시인은 왜 그럴까 의혹을 품었다.
류 시인은 출판의 변에서 시집을 낸 이유를 간략히 밝혔다. 그건 바로 60 평생 이어온 직업의식으로서 흔적남기기이다. 그는 “사실과 다른 삶의 충격과 그 정서적 반응의 창조적 행위”라며 “물론 이 행위가 현실적 폭력과 맞설 수 있는 직접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간접적 치유능력을 지닌 것”이라고 설명했다.시인에게 시를 읽고 쓰는 행위는 과연 무엇일까? 시 감상과 창작은 류 시인에게 가난해도 할 수 있는 공인된 예술행위였다.이번 시집에는 자전 에세이인 「결핍과 충만 사이」가 실려있다. 한 시인의 지나온 세월은 가난한 유년시절부터 풋풋한 첫사랑의 청년, 학위를 마치고 강단에서 보낸 중장년을 지나 노년으로 흘러왔다. 류 시인은 막바지 명심하고 실천해야 할 키워드로 사람을 살리는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모습, 그리고 건강관리를 강조했다.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저자가 말하다_ 『중국의 MZ세대와 미래』 김동하 지음 | 박영사 | 436쪽
361개 설문으로 본 ‘독생자녀’…중국의 미래가 보인다
‘빈부 격차·성적 차별’ 불공평 인식하는 주링허우 과반수가 중국사회 관리감독 시스템 못 믿어
2019년부터 시작되어 이제는 우리 경제·사회 곳곳에서 쓰이고 있는 단어 중 하나가 MZ세대이다. 연구자와 기관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MZ세대는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 출생자)와 Z세대(1995~2009년 출생자)를 의미한다. 14세 부터 42세까지 이들을 포괄하는 범위가 너무 커 연도별 기준이라기보다는 기성세대와 다른 이들 계층의 특성을 강조하는 목적으로 주로 쓰인다.
이 책은 중국 MZ세대의 경제·사회적 특성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중국 미래를 전망하겠다는 목적으로 집필됐다. 중국에서는 계층을 바링허우(八零後, 1980년대 출생자)·주링허우(九零後, 1990년대 출생자)·링링허우(零零後, 2000년대 출생자)으로 구분하는데 공교롭게도 MZ세대 구분과 일치한다.중국은 1979년부터 2010년까지 32년간 전 세계 어떤 국가도 실행하지 않았던 1가정 1자녀라는 가족계획 정책을 강력하게 실행했다. 이러한 산아제한 정책을 위반하면 공무원과 국유기업 종사자는 파면·해고됐고, 민간기업 직원은 연봉의 절반이 넘는 벌금을 물어야만 했다. 그 결과 형제자매 없이 ‘독생자녀’로 자라난 인구가 1억 8천만 명으로 현재 중국 인구의 12.7%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독생자녀’가 바로 중국의 MZ세대이다.
이 책을 위해 우선 국내 외에서 발표된 바링허우·주링허우·링링허우 관련 논문, 기사, 연구 리포트 등을 분석했다. 특히 중국 내에서 발표된 361편에 달하는 석·박사학위 논문 내 설문조사 결과를 추출하여 이를 분석해 미래 예측에 활용했다. 이를 통해 중국 MZ세대의 가치관(국가·노동), 소비행태, 직업관, 결혼관을 분석했다. 그 중 한 장면을 살펴보자.우리나라 MZ세대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공정’(公正)이다. 그렇다면 과연 중국의 주링허우들은 공정에 대해서 어떠한 시각을 가지고 있을까? 이에 대해 주링허우 대학생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조사를 보면, 먼저 설문 대상의 51.8%는 공평이라는 개념과 가치에 대해서 안다고 답을 했으나, 잘 모른다고 답을 한 학생들도 43.5%나 되었다. 이는 중국 중·고교 과정에서 ‘공평·공정’이라는 개념에 대해 교육받을 기회가 없었음을 의미한다. 반면에 공평이라는 관념을 수립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85%가 필요하다고 답을 하여, 대학 재학 중 공평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하고 그필요성을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설문에서는 ‘빈부 격차’, ‘성적 차별’ 등을 대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경험한 불공평한 현상으로 예를 들었다.
그렇다면 공평을 관리·감독해야 할 중국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주링허우의 평가는 어떨까? 중국 사회의 관리·감독 체제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관련 직능 부서가 관리·감독과 처벌을 잘하고 있다는 답변은 3.6%에 불과했다. 반면 관리·감독과 처벌이 결핍되어 있어 수준이 아주 낮다는 평가는 39.2%에 달했다. 또한 어떤 방면에는 관리·감독이 이루어지나, 어떤 곳에서는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답변은 57.2% 수준이었다. 따라서 과반수의 주링허우들은 공평 실현을 위한 지금의 중국 사회의 관리·감독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보고 있었다.필자는 매 장마다 결론을 내어 MZ세대를 통해서 본 중국의 미래에 대해 단정적으로 예측하지는 않았다. 또한 361편의 설문조사 분석만으로 거대 중국의 미래를 온전하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이 이 책 곳곳에 서술한 필자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미래 중국의 모습 중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김동하
부산외대 중국학부 교수이 책을 말하다_ 『추상과 감정이입』 | 빌헬름 보링거 지음 | 권원순 옮김 | 계명대학교출판부 | 1982 | 167쪽
‘추상·감정이입’ 충동…예술창작의 근원적 두 성향현대미술 작품을 감상하노라면, 뜨거운 추상과 차가운 추상 또는 서정적 추상과 기하학적 추상 그리고 이지적 추상 등 추상화에 대한 얘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사실, 추상이라는 말이 미술론에 도입된 것은 현대미술에서 추상화의 경향이 일어나기 시작한 때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보링거(1881~1965)의 저서 『추상과 감정이입: 양식심리학을 위한 기고』(Abstraktion und Einfühlung: Ein Beitrag zur Stilpsychologie,사실적 묘사는 외부세계에 대한 범신론적 친화관계
추상은 정신적 공간 공포의 해소, 독일 표현주의 미술과 조우1908)와 깊은 관련이 있다.
모두 다섯 개 장(제1편: 제1장 추상과 감정이입, 제2장 자연주의와 양식, 제2편: 제3장 장식미술, 제4장 추상과 감정이입의 관점에서 골라낸 건축 및 조각의 예, 제5장 르네상스 이전이 북방예술)으로 묶여진 책이다. 부록(「예술에 있어서 초월성과 내재성」)이 첨부된 현재의 판형은 1910년에 다시 출간된 제3판에서 시작되었다.저자는 ‘조형예술 영역에 속한 예술작품의 미학에 대해 얼마간의 기여’를 하고자 이 책을 저술한다고 밝혔다(11쪽). 특히, 당시 독일 미학계에 있어서 예술에 대한 하나의 이론, 즉 테오도르 립스(1851~1914)의 감정이입 개념을 받아들이는(12쪽) 동시에 미술 발전의 내재적 동인으로서 미술사학자 알로이스 리이글(1858~1905)이 주장한 예술의욕(Kunstwollen) 개념을 광범위하게 참조하면서(19쪽), ‘추상충동(Abstraktionsdrang)에서 출발하는 하나의 미학’(13쪽)을 감정이입충동(Einfühlungsdarng)에 반대극으로 간주하는 견해를 통해, 이 두 가지 충동이 예술창작의 근원적인 두 뿌리임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선다(제1장).
보링거에게 있어서 유럽의 전통적인 미술은 ‘인간과 외부 세계의 현상 사이에 행복한 범신론적 친화관계를 조건’(27쪽)으로 하는데, 특히 그리스나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속에있는 유기적인 생명으로 돌아가려는 ’행복감의 가치‘(Beglückungswert)(24쪽)를 추구하는 예술로 간주한다. 반면에 외계 현상으로 야기되는 인간의 커다란 내적 불안에서 생긴 결과인 추상 충동은 정신적 공간 공포(geistige Raumsheu)라고 부르며(27쪽), 특히 피라미드의 생명 없는 형태나 비잔틴의 모자이크에 나타나는 것 같은 생명 억압의 표현(25쪽)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보링거는 인간과 외계 현상 사이의 행복한 범신론적 친화관계에 근거하는 감정이입 충동과, 외부 세계에 의해 야기되는 인간의 내적 불안에서 기인하는 추상 충동이라는 두 가지 심리적 방향을 들어, 특히 후자의 개념을 통해 그동안 등한시 되어 왔던 원시민족이나 동방민족의 미술을 정당하게 평가하고자 했다. 더욱이 추상 충동은 원시민족에서와 같은 인식 이전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식을 넘어선것이라고 한다(28쪽).
당시 왕성한 활동을 보인 독일 표현주의 그룹 청기사파(Der Blaue Reiter)는 보링거의 『추상과 감정이입』을 접하며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었다. 즉, 이 책을 읽은 이 그룹의 일원인 프란츠 마르크(1880~1916)가 칸딘스키(1866~1944)에게 보낸 편지에서 추상에 대한 보링거의 인식이 자신들의 그룹에서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추구하는 추상회화의 이론적인 초석을 보링거의 『추상과 감정이입』을 통해 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그룹은 현대미술사에서 서정적 추상을 이끈 아방가르드로 평가한다.미술에서 추상은 현대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독일의 미학적 미술사학의 계보에 위치한 보링거는 『추상과 감정이입』 책에서 독일 표현주의 미술과 같은 아방가르드 운동과 연관된 당대의 추상미술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추상 충동으로 해석되는 과거의 예술(고대동방의 미술이나 비잔틴의 모자이크 등)을 정당하게 바라보는 폭넓은 시야를 제공해 주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링거 덕분에 미술의 역사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밝은 눈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 즉 심리적인 부분에 기초한 그의 예술이론이 서로 다른 문화의 영역이나 시간적인 간극을 아우르는 예술 의욕에 관한 양식심리학의 미술사로서 말이다.이승건
서울예술대 교수·미학낭만 고고학
김선 지음 | 장누리 그림 | 홍림 | 256쪽땅을 파기 위해 일 년 중 6개월 이상을 외지에서 생활하는 고고학 전공자들의 일상과 경험이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표현된 면도 없지 않다. 남들이 보든, 보지 않든 추울 때나 더울 때나 날씨에 상관없이 자신의 현장에서 묵묵히 삽질과 호미질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과, 이 일이 땅으로부터 보물을 캐는 일이 아니라 유적과 유물이라는 과거의 일상을 발견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레비나스, 타자를 말하다
우치다 타츠루 지음 | 박동섭 옮김 | 세창출판사 | 296쪽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우치다 다쓰루는 다양한 저서들로 일본 문예계의 엄청난 위상을 자랑하는 신서대상, 탁월한 저작을 남긴 작가에게 수여하는 이타미 주조상, 고바야시 히데오상을 휩쓸었다. 그런 그가 일본 문예계에 크나큰 충격을 던질 수 있던 사상적 저변에는 레비나스 철학이 단단하고도 깊게 박혀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그의 사상적 깊이, 설명하는 방식 등 그의 사상적 지반과 학문적 태도는 레비나스의 저작과 글을 저술하면서 배웠다.이용희의 정치학과 정치사상
이용희 외 7인 지음 | 연암서가 | 340쪽이 책은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넘나드는 폭넓은 지식과 실천적 체험을 토대로 한국정치의 역사적·장소적 성격을 주체적으로 파악했던 동주 이용희의 정치학과 정치사상을 분석한다. 이 책에서는 거시적·이론적 조명보다는 텍스트와 언어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통해 냉전 현실과 보편적 정치학에 대응하면서 이해한다.모래는 뭐래
정끝별 지음 | 창비 | 148쪽시 창작과 평론 활동을 병행하며 독특한 상상력과 빼어난 언어 감각으로 독보적인 시 세계를 다져온 정끝별의 신작 시집인 이 책이 창비시선으로 출간됐다. 올해 등단 35년을 맞이한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경쾌한 어조와 그윽한 서정이 결합된 작품으로 삶의 비밀한 일상과 가족·여성·사회·생태 등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 말미에 실린 황인찬 시인의 해설은 풍성함을 더한다.없음의 대명사
오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56쪽시인 오은의 여섯번째 시집인 이 책이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585번째로 출간됐다. 전작 『나는 이름이 있었다』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시집이라 반가움이 크다. 오랜만의 새 시집이긴 하지만 그사이 시인은 다양한 앤솔러지와 산문집, 청소년 시집 등을 출간했을 뿐 아니라 2018년 4월부터 2023년 현재까지 온라인 서점 예스24의 도서 팟캐스트 책읽아웃에서 ‘오은의 옹기종기’를 맡아 현재까지 진행해오고 있다.가족 서사의 욕망과 상상력
이지하 지음 | 소명출판 | 359쪽고전 장편소설에는 당대의 사회상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군상의 구체적 숨결들이 담겨있으며, 이 소설들이 이루어낸 성취는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채 주변화되었던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와 여성을 비롯한 타자들의 결합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러한 특성에 주목해 고전 장편소설들을 분석한 학술적 연구 결과물이지만 그 안에 담긴 문제의식은 현재 우리의 삶과 소통한다.자본주의 세미나
김규항 지음 | 김영사 | 199쪽주류 경제학은 수요-공급을 기반으로 한 시장 현상과 그 인과관계, GDP, 금리, 물가상승률 등 시스템의 표면과 현상에 매달리느라 자본주의가 자본의 이윤 축적에 목적을 두고 물질적 재생산을 이루는 메커니즘을 해명하지 못한다. 이 책은 상품과 노동가치론, 물신 세계와 신자유주의, 평등을 삼킨 공정, 공황과 인플레이션, 청년 실업 문제와 잉여노동, ESG 경영까지 자본주의를 해부한다.치매
캐슬린 테일러 지음 | 강병철 옮김 | 김영사 | 224쪽‘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흔한 사망원인’이자 ‘우리나라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 치매. 급격한 고령화와 더불어 유병 인구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지만 아직 효과적인 치료법은 없는 이 질환에 관하여 지금까지 밝혀진 과학적 사실을 간결하면서도 포괄적으로 소개한다. 치매의 정의, 역사부터 유형, 발생 기전과 증상, 진단과 치료, 주목받고 있는 연구, 사회적 비용의 문제까지 한 권에 담았다.분야별 신간
자연과학날개 위의 세계 | 스콧 와이덴솔 지음 | 김병순 옮김 | 최창용 감수 | 열린책들 | 560쪽치매 | 캐슬린 테일러 지음 | 강병철 옮김 | 김영사 | 224쪽카본 퀸 | 마이아 와인스톡 지음 | 김희봉 옮김 | 플루토 | 328쪽효소 | 폴 엥겔 지음 | 최가영 옮김 | 김영사 | 236쪽역사
낭만 고고학 | 김선 지음 | 장누리 그림 | 홍림 | 256쪽일본산고 |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176쪽정치-사회논바이너리 마더 | 크리스 맬컴 벨크 지음 | 송섬별 옮김 | 오렌지디 | 300쪽이용희의 정치학과 정치사상 | 이용희 외 7인 지음 | 연암서가 | 340쪽자본주의 세미나 | 김규항 지음 | 김영사 | 199쪽
문학-에세이가족 서사의 욕망과 상상력 | 이지하 지음 | 소명출판 | 359쪽모래는 뭐래 | 정끝별 지음 | 창비 | 148쪽묘비 세우기 | 정은우 지음 | 창비 | 296쪽없음의 대명사 | 오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56쪽의학
문학과 의학의 접경 | 이병훈 지음 | 소명출판 | 439쪽인문레비나스, 타자를 말하다 | 우치다 타츠루 지음 | 박동섭 옮김 | 세창출판사 | 296쪽역사를 바꾼 권력자들 | 이언 커쇼 지음 | 박종일 옮김 | 한길사 | 720쪽신냉전 시대, 우리에게 ‘냉전’은 무엇이었나 ⑦ 제3세계 재평가
식민지 관계사를 넘어선 제3세계 사회주의 건설사‘제3세계’라는 말이 처음 나온 1952년 이후에도 각국의 경제력과 발전 정도를 가지고 국가를 분류하는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냉전기 제1세계는 여전히 선진국이고, 지난 연재에서 다뤘듯이 제2세계의 현재는 여전히 복잡하다. 제3세계는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으로 명명된다.
60년대 중반 국내에 등장한 제3세계냉전기 대한민국-제3세계 관계사는 무척 흥미롭다. 국내 언론은 1960년대 중반부터 제3세계(제3세력, 제3지대)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이때 제3세계는 자유진영(서구)과 공산진영(동구)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비동맹’ 세력을 가리켰다. 당시 신문에서 네루(인도)·나세르(이집트)·은크루마(가나)·수카르노(인도네시아)와 같은 지도자의 사진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1980년대 초반부터 ‘제3세계’는 후진·약소·저개발(저발전) 등의 개념과 연동됐고,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를 포괄적으로 의미했다. 남미에서 개발된 개념인 종속이론도 ‘제3세계’와 결부돼 지면에 실렸다. <경향신문>이 1985년 10~11월 사이 게재한 연재에서는 아시아(인도·파키스탄·인도네시아), 아프리카(이집트·케냐·나이지리아), 라틴아메리카(아르헨티나·콜롬비아·칠레·페루)에 나간 특파원들이 일종의 글로벌 반면교사를 서울로 송신했다.냉전기 한국은 선진국도 아니었고, 제3세계도 아니었다. 제1세계(미국·일본·서유럽)의 자본·시장·기술을 열망했던 한국에게 제3세계는 북한과 경합하는 무대였다. 한편 한국은 1979년도 OECD 연례보고서에 처음 등장한 개념인 신흥공업국가(NIC)의 대표로 인정받는다. 1996년, 한국은 아시아에서는 일본(1964)에 이어 두 번째이자 유이한 OECD 회원국으로 거듭난다.제2·제3세계와 야심 찬 외교 펼친 북한
반면 북한은 국제적으로 정당성을 얻기 위해 제2·제3세계를 대상으로 야심 찬 외교를 펼쳤다. 1960년대 중후반, 평양은 독자적으로 제1세계(영국·일본·네덜란드) 및 제2세계로부터 자본·기술을 들여오려고 노력하는 한편, 반제(反帝)와 주체의 슬로건을 내걸고 제3세계와의 동일시에 나선다. 호응이 적지 않았다. 미국의 무장흑인단체 흑표당(Black Panther Party) 대1979년 한국의 TV 조립 라인의 모습이다. 사진=OECD Observer (1979년 1월)『Ripe for Revolution』(2021)의 표지
제3세계의 사회주의 ‘혁명’은 어려움과 곤란, 교훈의 연속이었다.
인도네시아·칠레·탄자니아·앙골라·이란은 공산주의 강대국(소련·중국)에 경도되지 않고 독자적인 사회주의를 만들려고 했다.표가 평양을 방문(1969~1970)했고, 유럽 사회학자들은 북한식 경제발전의 비밀을 『Socialist Korea』라는 제목으로 출간(1976)했다. 1980년대 북한은 ‘록색혁명’의 기적을 약속하며 ‘주체농법’을 아프리카에 수출했다.
냉전 강대국의 제3세계 탐구는 비교적 일찍 시작됐다. 1950년대부터 미국 사회과학계가 한반도와 인도차이나반도의 ‘적’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산물인 냉전문화나 미국 사회과학의 군사화는 현재 활발히 탐구되는 역사학적 주제이다.‘문서고 혁명’ 이후 미국의 베트남학계·중동학계·남미학계·아프리카학계의 성장과 유관 학자들의 활약은 사뭇 놀랍다. 2000년에는 강대국 중심의 제3세계사 연구를 극복하고 냉전사의 전개에서 제3세계의 중심성을 강조하는 주변중심적(pericentric) 접근이 제기되기도 했다. 아쉽게도, 한국이나 북한은 이러한 제3세계 연구 흐름의 바깥에 놓여있다.
독특한 공산주의 이념의 역사 간직한 제3세계냉전 강대국과의 관계사 위주로 진행되는 제3세계 연구 중 최근 나온 가장 독창적인 성과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역사학 교수 제레미 프리드먼의 『Ripe for Revolution』(2022)일 것이다. 이 연구는 지구적 남반부(Global South)에서 공산주의 이념의 역사를 인도네시아·칠레·탄자니아·앙골라·이란의 사례를 가지고 살핀다. 다섯 나라는 공산주의 강대국(소련·중국)에 경도되지 않고 독자적인 사회주의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제3세계의 사회주의 ‘혁명’은 어려움과 곤란, 교훈의 연속이었다.한때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야권 공산당이던 인도네시아공산당(PKI)은 사회주의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길로 독재자 수카르노를 지지했다. 하지만1965년 쿠데타에 이은 대규모 학살로 PKI는 괴멸했다. 이 사건을 통해 소련은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에서 다당제 의회주의와 종교(이슬람)의 역할에 대해 재고한다.
1970년 칠레의 마르크스주의 정치인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소련은 선거와 연정을 통한 평화적인 사회주의 이행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중국은 동의하지 않았다. 아옌데의 인민연합(UP)은 평화적 이행 개념을 두고 내홍을 겪다가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에 의해 전복됐다. 소련은 “혁명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라는 교훈을 얻었다.오늘날 제3세계를 규정하는 사회주의적 기원
한편 계급 갈등보다 인종 갈등이, 공업보다 농업이주가 된 아프리카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실패(탄자니아) 또는 절충(앙골라)이었다. 포르투갈제국을 몰아낸 앙골라 집권당은 사회주의 건설에 드는 재원 확보가 절실했다. 그들은 쿠바 병사들과 함께 제1세계 회사들이 지배하는 유전(油田)을 지키기 위해 미국·중국의 사주를 받은 대항 세력과 싸우는 광경을 연출했다.이란에서는 이란민중당이 소련과 동독의 조언을 수용, 사회주의 혁명에서 이슬람을 이용하고자 했다. 이란 공산주의자들은 아야톨라 호메이니를 아옌데 같은 인물로 보고 그를 적극 지원했다. 그 결과는 민중혁명을 통한 왕정의 전복과 신정(神政)의 수립이었다.프리드먼의 메시지는 간결하다. 제3세계 사회주의 건설사를 단순히 제1·제3세계 관계사, 또는 냉전기 식민모국-식민지 관계사로 환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해 14개국 문서고에서 수집한 데이터로 재구성한 냉전기 제3세계 연구사의 획을 긋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동현
카이스트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조교수UCLA에서 과학기술사(북한-소련 관계사)로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국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The Historical Journal』에 한국인 최초로 논문이 게재됐다. 역서로는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 『플루토피아』, 『저주받은 원자』, 국제공산주의운동을 2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풀어낸 『전쟁의 유령』(가제)이 있고,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총서 36권 및 38-39권을 공역했다. 주요 관심사는 냉전사, 핵역사, 환경기술사, 디지털역사학이다.
글로컬 오디세이
중동서 외면당한 ‘팍스 아메리카나’, 몰락의 신호탄일까정진한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요르단대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문명교류사와 중동학을 전공했고 한국이슬람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다. 「이슬람 세계관 속 신라의 역사: 알 마스우디의 창세기부터 각 민족의 기원을 중심으로」 등 논문을 썼다.
중동에서 트럼프의 공화당 정권이 복귀하기를 희망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거 오바마 민주당 정권은 아랍의
봄 당시 혁명세력을 지지하고 아랍의 권위주의 정권들의 붕괴를 방관하거나 지원하면서 현재의 중동 지도자 다수에게서 신망을 잃었다.
이때 상실한 협력관계를 미국은 숱한 논란을 일으켰던 트럼프의 공화당 정권 동안 회복했다. 공화당 정부는 민주당이 추진해온 이란에 대한 제재 해제 프로세스를 중단시키고 이스라엘과 순니 아랍국들을 주축으로 한 반(反) 이란 고립 전선을 공고히 하는 한편, 20세기 후반 중동 국제질서의 헌법과도 같았던 반 시오니즘 연대를 해체했다. 트럼프 정부는 1993년 이후 근 30년간 불가능해 보였던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의 수교를 단숨에 4건이나 성사시켰다.기독교국 미국의 주선 아래 유대교 이스라엘과 이슬람 아랍국들이 협력한 ‘아브라함 협정’은 아프리카 서쪽 끝 모로코부터 아랍의 남쪽 끝 수단 및 아라비아 반도 동단의 UAE와 바레인까지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이어나갔다. 공화당 정부의 이처럼 거침없던 행보는 트럼프의 재선과 함께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수교를 달성시켜 서구와 이스라엘 대(對) 이슬람이라는 기존 대립구조를 순니·서구·이스라엘 대 이란·중국으로 전환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고 바이든 정부가 이란의 국제사회 복귀를 추진하면서 반 이란전선 국가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특히 이스라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을 통해 이란을 타격하겠다고 미국을 협박하다가, 결국 시리아의 알레포 공항을 비롯한 다수의 시설들을 해외 이란 비밀 군사기지로 의심된다는 명목으로 폭격하면서 이란과의 무력 충돌을 유도했다.네탸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과거 트럼프와 합을 맞춰 아랍국들과의 수교와 이란의 고립이라는 숙원들을 성취했다. 하지만, 지금은 기존 선거제를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형태로 개편하면서 바이든과 마찰을 겪고 있다. 그의 새 연립 내각에 참여한 극우 인사들은 정착촌의 합법화와 같이 팔레스타인에 적대적인 정책을 쏟아내어 팔레스타인의 극렬한 반발을 불렀고, 카디르 아드난이라는 한 운동가의 옥사를 계기로 양측은 전쟁에 돌입했다.바이든 정부는 네타냐후에게 민주질서의 유지와 팔레스타인인들의 기본적 인권보장을 요구하지만, 네타냐후는 자신의 지지층 결집을 위해 작금의 국제적 갈등이 필요하므로 자신의 정책을 지지하고 이란과 팔레스타인을 고립시켜줄 트럼프의 복귀를 선호한다.한편, 바이든은 이란의 복귀를 위해 지지가 필요한 사우디와도 척을 졌다. 언론인 카슈끄지 암살의 배후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지목했고 그를 반민주·반인권 인사로 규정했다. 그는 사우디의 현 실권자를 배제한 채 국왕과의 협력만으로도 정책목표의 달성이 가능하리라 낙관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이 전략은 실패했다.폭등한 유가 조정을 위해 바이든 정부는 크게 체미국 민주당은 국제사회의 복귀를 도와주려 한 이란으로부터도, 민주주의 맹방인 이스라엘로부터도 배제되고 있다. 사진은 아랍 연맹 회담에 참석중인 바이든과 존 캐리. 사진=미 국무부 홈페이지
면을 구겨가며 왕세자에게 협조를 구했지만, 그는 노골적으로 이를 외면했다. 이란마저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국에 협조하던 유럽마저 이란의 복귀 지지를 철회했다.
사우디가 중국을 끌어오며 스텝은 더 꼬였다. 엑스포부터 네옴 시티까지 초대형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려면 사우디는 이란발 불안정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이란의 지원을 받은 예멘의 반군은 사우디의 정유공장과 공항을 공격하며 사우디를 투자하기 불안한 대상으로 만들었다. 바이든의 도움만큼은 받고 싶지 않았던 사우디는 차라리 중국을 이란과의 중재자로 끌어들였다. 이란도 자신의 복귀와 제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미국 대신 중국의 개입을 환영했다. 이로써 중국은 미국을 대신해 중동에 개입할 공간을 확보했고, 대신 민주당은 밀려났다.최근 내전 중인 수단 정부 역시 트럼프의 주선으로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빠지고 이스라엘과 수교한 인연이 있다. UAE도 마찬가지로 바이든이 추진한 이란의 복귀보다는 트럼프의 이란 고립책에서 더 큰 경제적 실익을 거둘 수 있다. 12년 만에 반인권의 대명사 시리아 아사드 대통령을 복귀시킨 아랍 연맹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미국 민주당이 부담스럽다. 바이든마저 단죄의 대상인 그의 복귀를 한탄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이 조치가 역내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인정했다.
인류의 보편 가치로 민주화를 소프트파워로 내세운 민주당은 중동의 권위주의 정부들로부터 점점 더 외면받고 있다. 심지어 국제사회의 복귀를 도와주려 한 이란으로부터도, 민주주의 맹방인 이스라엘로부터도 배제되고 있다. 미 대선에 앞서 트럼프의 재판 결과가 더 궁금해지는 이유이다.고려대·부산대·서울대 등 16개대, 고교기여 대학 평가 미흡
경기대·숙명여대 등 17개대 ‘우수’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연차평가에서 ‘미흡’ 평가를 받은 고려대·부산대·서울대 등 16개 대학의 올해 정부 지원금이 삭감된다.교육부는 17일 발표한 ‘2023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연차평가’ 결과에 따르면, 경기대·숙명여대·제주대 등 17개교가 ‘우수’, 동국대·성균관대·이화여대 등 58개교 ‘보통’ 등급을 받았다. 고려대·부산대·서울대 등 16개 대학이 ‘미흡’ 등급으로 분류됐다.교육부는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91개교에 올해 총 575억 원의 예산을 지원한다.이번 연차평가는 ‘수험생 부담 완화’, ‘고교교육 연계성 강화’ 등의 평가영역을 중점으로 2022년 사업 운영 결과와 2024~2025학년도 대입전형시행계획을 점검했다.‘우수’ 대학은 20%의 추가 사업비를 배분받지만, ‘미흡’ 대학은 사업비가 20% 감액 조정되고, 사업관리기관(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실시하는 추가 상담에 참여해야 한다.
지난 2월 교육부는 올해 연차평가 지표를 변경해 ‘2015 개정 교육과정 취지에 맞는 전형(학생부/수능) 운영’에 10점을 배정했다. 이는 ‘미적분/기하, 과학탐구 응시’ 같은 이공계열 지원자에게 요구하는 수능 필수 응시과목 폐지 등 통합형 수능 취지에 맞도록 운영하는지 보겠다는 것이다.교육부 관계자는 “자연계 수능 필수 응시과목을 유지한 대학 중 감점을 받은 대학도 있었지만, 이 때문에 꼭 미흡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다”며 “다른 평가 지표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만회한 사례도 있다. 개별 대학마다 세부사항은 다르다”고 밝혔다.신다인 기자 shin@kyosu.net2023 고교교육 기여대학 사업 연차 평가 결과
■ 유형 |평가결과 대학우수(총 14개교)강남대, 경기대, 대구교대, 대진대, 동의대,명지대, 부산가톨릭대, 숙명여대, 인하대,제주대,차의과대, 충북대, 한남대, 한동대,보통(총 50개교)가톨릭대, 가톨릭관동대, 강릉원주대, 강원대,건국대, 경북대, 경인교대, 경희대, 계명대,공주대,광운대, 광주교대, 군산대, 금오공대,단국대, 대구대, 대구한의대, 덕성여대, 동국대,동아대,부경대, 부산교대, 서울과기대, 서울여대,선문대, 세종대, 성균관대, 성신여대, 순천향대,숭실대,아주대, 안동대, 연세대, 영남대, 원광대,이화여대, 인천대, 전남대, 전북대, 전주대,조선대,중앙대, 청주교대, 한국교통대, 한국외대,한림대, 한밭대, 한양대, 한양대(에리카), 호서대미흡(총 13개교)건국대(글로컬), 경상국립대, 고려대, 국민대,대구가톨릭대, 목포대, 부산대, 상명대, 서강대,서울시립대, 서울대, 충남대, 한국교원대■ 유형 ||
평가결과 대학우수(총 3개교) 신라대, 한라대, 한성대보통(총 8개교) 고신대, 남서울대, 대전대, 배재대,삼육대, 상지대, 우산대, 한국공학대미흡(총 3개교) 동명대, 중원대, 홍익대전북대 “대학 체질 바꿔 학생 중심 대학으로”
양오봉 총장, 학사구조 개편 추진
“글로컬대학30 사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뼈를 깍는 마음으로 대학의 체질을 바꿔 학생 중심의 대학을 반드시 만들겠습니다.”전북대(총장 양오봉·사진)가 지난 17일 학사구조 개편 방향에 대한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양오봉 총장은 “우리대학 학사구조 개편의 기본 방향은 학생들이 오고 싶고, 다니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대학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뼈와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대학의 존폐를 좌우하게 될 글로컬대학30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담대한 변화와 혁신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이날 백기태 전북대 기획처장이 학사구조 개편안을 설명했다. 기존 학과나 학부 중심의 학사구조에서 전공(트랙) 중심의 학사구조로 바꾸겠다고 밝혔다.학문 분야나 모집단위별 광역화를 통해 단과대학 간, 학과 간 벽을 허물고 유사 교과목을 통합해 학생들이 전공 선택의 폭을 넓히는 데 방점을 뒀다고 했다. 이를 통해 유연한 맞춤형 전공을 운영하고, 일정 수준의 학생 충원율을 확보할 수 있어 학령인구 감소에 유연한 대처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학제 간 집단연구 활성화도 모색할 수 있어 세계 100위권에 진입하는 학문분야 육성도 기대하고 있다.
전북대는 지역 간 벽도 허물어 이차전지와 수소에너지 등 지자체나 지역 산업체가 요구하는 연계전공 등을 신설해 지역 맞춤형 산업 인력을 양성한다. 14개 시·군 특화산업 중심의 지역발전연구소 운영으로 대형국책사업 등을 발굴해 지역발전을 이끄는 ‘플래그십대학’을 지향하고 있다.전북대는 지난 2일부터 10일까지 단과대학 순회간담회와 15일에는 학생 대상 설명회를 열었다.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경희대, 지자체 평가 가능한 ‘공공 ESG 평가 모형’ 개발
ESG 위원회 출범
경희대는 지난 16일 ESG 위원회를 출범하고, 공공 ESG(P-ESG) 평가 모형을 발표했다.경희대가 개발한 이번 평가 모형은 E(환경·Environment), S(사회·Social), G(지배구조·Governance) 분야별로 각각 32개, 28개, 30개의 세부 지표로 구성됐다.세부 지표로 E는 △기후변화 △오염물질 배출 △자원관리 △환경관리 등을, S는 △인구‧경제 △주거‧안전 △사회‧인프라 등을, G는 △전략과 정책 △행정성과 △재정관리 등을 기준으로 분류된다.연구팀은 ESG(P-ESG) 평가 모형으로 도시와 지역을 평가했다. 그 결과 E분야에서는 제주도가 1위를, 서울시가 2위를 기록했다. 제주도는 기후변화와 오염물질 배출, 환경관리, 자원관리 등에서 모두 높은 결과를 받았다. 서울은 환경 평판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S분야에서는 세종시가 1위를, 전북이 2위를 차지했다. 세종시는 인구‧경제, 주거‧안전, 사회 ‧인프라 등 지표가 모두 높았고, 전북은 사회‧인프라와 주거‧안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G분야에서는 서울시가 1위, 경기도가 2위의 결과를 받았다. 서울시는 투명성과 이해관계자, 전략과 정책에서 특히 높은 점수를 받았고, 경기도는 내부통제, 투명성, 행정성과 등이 높았다.공공 ESG 평가 모형 소개를 맡은 오형나 경희대 교수(국제학과)는 “지속 가능한 발전에서 도시가 차지하는 역할과 책임이 더욱 커지고 있다”며 “구조화된 접근법을 제공해 보다 나은 거버넌스를 구축할 수 있게 유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균태 경희대 총장은 축사를 통해 “ESG 위원회의 출범은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중요한 결정”이라며 “경희대는 ESG 경영을 추구하며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변화를 이끌고자 한다”라고 위원회 설립 이유
를 밝혔다.
한편, 경희대 ESG 위원회는 호주 에코 서밋에서 공공 ESG 평가 지표 공표할 예정이다.건국대·성균관대·세종대
메타버스 융합대학원 선정건국대·성균관대·세종대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메타버스 융합대학원 사업에 선정됐다.
메타버스 분야의 융합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이번 사업은 선정 대학에 1년차 5억 원, 2년차부터 연간 10억 원씩 총 6년 간 55억 원을 지원한다.과기정통부는 지난해 한국과학기술원과 서강대를 메타버스 융합대학원으로 선정했다. 이어 올해 3개 대학을 추가 선정해 연간 대학당 20명 이상의 석·박사급 융합 인재를 양성한다. 빅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 등 메타버스 기술 구현에 필요한 요소 기술과 마케팅·관광·공연기획 등 인문사회 분야를 융합한 전공과목 및 다학제 교과목을 운영한다. 또한, 협력기업들과의 산학협력 프로젝트도 수행한다.건국대는 문화콘텐츠·예술디자인·컴퓨터공학을 아우르는 다학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산학 연계 사업을 통해 기술수요 변화에 대응이 가능한 융합인재를 양성을 목표로 한다.
성균관대는 실감매체 기술·콘텐츠 분야의 특화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기업체 협력 기반 팀티칭 과목 등을 통해 산업 현장에 직접 적용될 수 있는 메타버스 기술개발 및 인력양성을 도모한다.세종대는 메타버스 4대 핵심연구 분야를 중심으로 산업 분야별 수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메타버스 신산업 분야 사업 중심형 교과 운영을 통해 고급인재를 양성할 계획이다.오용수 과기정통부 소프트웨어정책관은 “앞으로도 메타버스 융합분야의 기술 특성을 반영한 교육 및 산업 현장과 연계한 연구역량 확충을 통해 고급인재 양성을 적극 지원하겠다”라고 밝혔다.경북대·부산대·전남대·충남대에 반도체 공동연구소 설립
권역별 반도체공동연구소 사업에 경북대·부산대·전남대·충남대가 선정됐다. 교육부는 4개 대학에 657억 원을 지원한다.
이번 사업은 국립대학이 반도체 인력양성의 지역거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권역별 공동연구소를 건립하는 것이 핵심 골자다.이번에 선정된 4개 권역 반도체공동연구소(권역 HUB)는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중앙 HUB)와 연계해 전국·개방형 공정 서비스 연결망을 구축한다.교육부는 지역 내 협조체계를 이끌어내기 위해 권역별 반도체공동연구소 선정 대학 외에 차순위 대학을 권역SUB대학으로 지정해 각 연구소 간 연계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이는 공동연구소 지정이 안 된 대학이더라도 거점대학과 협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를 통해 완성된 반도체 팹(Virtual Fab)은 전국을 1시간 단위 내로 묶어 권역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교육 수요자에게 공평한 교육·실습 기회를 제공하며, 반도체 인재양성 지도를 완성하는 거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특성화 분야는 대학별 신청 분야 간 중복이 없도록 권역별 반도체공동연구소 협의체에서 조정한다.교육부는 연구소별 특성화 분야가 확정되면 곧바로 설계에 착수할 수 있도록 설계비를 각 대학에 배정하고, 2025년 공사 완료를 목표로 사업추진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신다인 기자 shin@kyosu.net이병운 순천대 제10대 총장 취임
이병운 순천대 총장 취임식이 지난 12일 순천대 우석홀에서 개최됐다.
이 총장은 이날 취임식에서 새로운 비전인 ‘혁신과 융합! 지·산·학 협력 거점, 글로컬 순천대학교’를 선포하고, “지역 발전의 구심점으로 거듭나는순천대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총장은 취임사를 통해 △4대 필수사업 선정을 통해 국내 30위권으로 도약하는 대학 △지·산·학 협력의 허브 대학 △정주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 △지역이 원하는 교육을 실현하는 대학 △세계로 뻗어가는 글로컬 대학 등 5가지 혁신·융합 모델을 제시했다.이어 글로컬대학 30, RISE사업, 국립대학육성사업 등 주요 정부재정지원사업 선정을 바탕으로 전남 1위 국립대학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국내 30위권 대학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또한, 앞으로 ‘정주형 인재’를 양성하고, 지역 산업체와 협력해 지역 인재 채용 확대를 모색하며, 기업이 함께하는 시민 콘텐츠 개발·보급, 지역 주민을 위한 디지털 교육 등 수요자 맞춤형 평생직업교육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홍성화 한국해양대 교수, 한국해사법학회장 연임
홍성화 한국해양대 교수(항해융합학부‧ 사진 )가 지난 12일 열린 ‘2023년 한국해사법학회 정기총회 및 춘계 공동학술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차기 한국해사법학회 회장에 재추대됐다.
홍 교수는 “해사법 분야의 젊은 신진학자들이 활발한 학술활동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한국해사법학회의 외연을 확대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해사법학회는 국제해양법, 해양형법, 해상노동법, 국제해사협약, 해상법, 해상운송법, 해상보험법, 해사정책 등 국내외 해사법 분야의 연구와 발표, 산·학·연·관 간 협력증진 등을 목적으로 하는 학회다.한국해사법학회에는 해사법학 분야의 대학교수, 연구기관의 연구원뿐만 아니라 해양전담 판사, 검사, 변호사, 해양경찰은 물론 해양수산공무원, 공공기관 전문가, 도선사, 해기사, 선급협회 검사원, 해운회사 종사자 등 각계각층에서 약 500명의 전문 종사자들이 참여하고 있다.김범준 카이스트 교수, ‘현우 카이스트 학술상’ 수상
김범준 카이스트 교수(생명화학공학과‧ 사진 )가 ‘현우 KAIST 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 교수는 고무처럼 늘어나면서도 이온 전달 특성이 매우 우수한 새로운 개념의 고분자 전해질 소재를 개발하고, 이를 이용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가지는 전고체전지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이번 연구는 ‘네이처(Nature)’ 2022년 1월호에 발표됐으며, 과총에서 선정한 ‘올해의 10대 과학 기술뉴스’로 선정되는 등 큰 주목을 받았다.
김 교수는 이와 함께 고무처럼 늘어나면서도 높은 전기적 성질을 가지는 극한 물성을 가지는 새로운 고분자 전자소재 개발을 통해 세계 최초의 소재고유형 웨어러블 태양 전지를 개발했다. 2022년에 ‘에너지 및 환경과학(Energy Environmental Sci)’, 6편의 ‘어드밴스드 머터리얼스(Advanced Materials)’ 등 관련 연구 결과를 세계적 학술지 다수에 출판했다.최윤성 포스텍 교수, 2023년도 대한수학회 교육상 수상
최윤성 포스텍 교수(수학과‧ 사진 )가 ‘2023년도 대한수학회 봄 연구발표회’에서 교육상을 수상했다.
최 교수는 서울대에서 수학전공 학사학위를, 미국 로체스터 대학에서 함수해석학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8년부터 35년간 포항공대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그는 함수해석학 분야의 무한차원 함수이론에서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했다.
최 교수는 2009년부터 태광그룹 일주학술문화재단의 후원을 바탕으로 매년 일주수학학교를 개최하고 있다. 일주수학학교는 대학원생을 포함해 국내외 연구원과 교수들이 격의 없이 토론할 수 있는 개방학교다. 최 교수는 연구자들이 세대 간에 긴밀하게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함으로써 한국의 젊은 연구자들이 세계를 선도하는 연구진으로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김병대 신라대 교수, 최고 교육봉사상 수상
김병대 신라대 교수(광고홍보영상미디어학부‧사진 )가 2023년 신라 최고 교육 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 교수는 방학특강 및 합숙특강, 스터디그룹 지도교수, 유학생 간담회 및 상담, 연구 논문 및 학위 논문 지도 등 학생들의 전공역량 강화 및 다양한비교과 활동에 헌신했다.
정해용 신라대 교육지원처장은 “우수한 교원을 발굴하고 모범 사례를 널리 전파해 학생 성장을 위한 교육 실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AI시대 글쓰기, AI와 심리의 분업 시대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
다섯 번째 주제_‘AI시대의 심리학’② 챗GPT와 글쓰기‘내 삶의 심리학 마인드’와 <교수신문>이 함께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 공동 기획을 마련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주제탐구 방식의 새로운 기획이다. 한 주제를 놓고, 심리학 전공 분야의 마음 전문가들이 다양한 시각과 분석을 통해 독자의 깊이 있고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마음 전문가들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다. 몸과 MBTI, 학교 정글, 중독에 빠진 대한민국에 이어 다섯 번째 주제로 ‘AI시대의 심리학’을 다룬다. 정혜선 한림대 교수(심리학과)의 두 번째 글이다.정혜선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미국 피츠버그대에서 인지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림대에서 인지심리와 학습심리를 강의 중이다. 공유인지, 학습 문제, 테크놀로지의 활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최근에는 인공지능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요즘 챗GPT와 같은 생성형 언어모델이 화제다. 아직 정확도에서 문제가 있지만, 글을 요약하거나 전문적인 텍스트를 만들어 내는 일을 놀라울만큼 잘 한다. 이러한 능력 앞에서 사람들은 “놀랍다”, “두렵다” 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인간의 도구 사용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증기기관이나 인쇄기 등의 발명처럼 큰 영향을 끼친 기계부터 클립이나 포스트잇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구들이 인간이 하는 일을 대신 수행하여 인간의 수고로움을 덜어주었다.
글을 작성하는 것은 오랫동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기계가 인간보다도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적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계가 육체적 노동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주었듯이 인간을 지적인 노동에서도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글쓰기
글쓰기와 관련해서 인공지능이 자유롭게 해 줄 인간의 정신적인 노동은 무엇일까? 인간이 글을 이해하거나 작성할 때 어떤 정보처리가 일어나는 것일까? 글을 작성할 때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선정하고 이를 문장과 글의 형태로 표현해야 하는데, 이 과정은 어휘, 문장, 그리고 글이라고 하는 다차원의 처리를 요구한다. 이 과정에는 활자의 형태에 대한 지식, 단어 의미, 통사적 규칙에 대한 이해, 그리고 문장이 모여서 만들어 내는 텍스트의 구조와 장르 등에 대한 지식, 그리고 글이 다루는 영역에 대한 지식, 독자에 대한 지식 등 수많은 지식이 관여한다.글쓰기는 크게 계획하기(planning), 아이디어를 글로 옮기기(translating), 그리고 작성한 글을 검토(reviewing)하는 단계로 구분된다. 글쓰기 전문가와 초보자 간에 뚜렷한 차이가 존재한다. 초보자들은 글을 작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을 글을 작성하는 데 사용하고 계획과 수정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을 할애한다. 작성한 초고를 수정할 때도 글의 표면에 주목하는데, 오탈자가 있는지,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었는지를 수정하는 데 집중한다. 반면 글쓰기 전문가들의 경우 계획과 수정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수정을 하는 경우 오탈자 뿐만 아니라 글의 메시지, 의미 수준의 수정에 더 집중한다. 글쓰기의 핵심 활동은 글이 전달하는 의미를 명료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글쓰기에서 인간과 AI의 분업
챗GPT 같은 언어 생성 모델은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지만 내용에 있어서 아직은 검증이 필요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생성 능력만으로도 인간에게 유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아이디어를 말로 구현하는 작업을 인공지능이 담당해주면 인간은 인공지능이 쓴 작업을 검증하고 검토하는 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 이를 인간과 인공지능의 분업 관계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이 주제를 주고 가이드라인을 정해주면(계획하기) 인공지능이 초고를 작성하고(글로 옮기기) 이를 인간이 검토하고 수정하여(검토하기) 최종적인 글을 완성한다는 것이다.이는 초고를 작성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단축하는 효과를 가져오겠지만, 인간이 글 쓰기를 계획하고 검토한다고 할자신의 작품에서 노동자를 기계적으로 묘사했던 프랑스의 화가 레제는 기계가 인류를 육체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행복한 삶을 열어줄 것이라고 믿었는지 모른다. 생성형 언어모델이 우리를 지적 노동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을까. 페르낭 레제, 기계공, 캔버스에 유채, 1920.
이젠 글쓰기에서 AI와의 분업이 필수가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글쓰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생각을 멈추지 않는 한. 사진=펙셀
인간 사고의 많은 부분은 아직 미개척지로 남아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인간의 사고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인간이 과연 사고하는 존재로 남을 것인지에 대한 물음과 도전을 제공한다. 이제는 인간 사고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고 탐색하기 위해서 인공지능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때 이 작업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글을 검토하고 평가한다고 할 때 이는 단순히 글이 생성한 지식의 진위를 따지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글의 전체 메지시가 일관되는지, 글 전체에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며 해당 메시지가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판단도 필요하다.
글이 가진 메시지의 가치에 대한 판단은 글 자체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글 밖에 존재하는 지식을 함께 고려할 때 가능하다. 글을 통해서 전달되는 메시지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 작성된 글이 과연 가치있는 메시지인지에 대한 판단과 그러한 아이디어를 만드는 작업은 인간의 작업이 된다.글쓰기와 사고글을 쓴다는 것은 정보를 정리하고 전달하는 것(knowledge-telling)뿐만 아니라 정보를 변형하고 새로 창조하는 것(knowledge transforming)을 의미한다. 정보 전달을 주 목적으로 하는 글이라면 정보를 양식에 따라 기계적인 방식으로 결합하여 작성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조금이라도 만들어지는 글쓰기는 사고와 분리할 수 없다.
글을 쓰는 과정은 ‘생각’을 언어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이다. 의미나 생각은 글을 쓰기 이전에 온전한 상태로 존재하다가 한 번에 글로 표현되지 않는다. 주제와 메시지가 정해져 있어도 세부적인 메시지와 논리의 전개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말로는 그럴듯한 내용도 글을 작성하다 보면 논리의 허점이 발견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글의 흐름과 논리는 물론 메시지가 바뀌기도 한다(이 글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의미를 만들어 내는 글쓰기는 가장 난이도 높은 사고 활동 중의 하나이다.생각이 멈추지 않는 한, 글쓰기는 계속된다
글이 중시되고 사회의 대중적인 소통 수단으로 자리잡으면서 무의미한, 경우에 따라서는 해로운 글이 양산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인공지능이 기계적인 글쓰기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지만 동시에 의미 없는 글쓰기가 더 많이 양산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중요한 것은 기계적인 글쓰기가 아닌 의미를 창조하는 글쓰기이다. 인공지능과의 경쟁이 쉽지 않겠지만, 인간이 사고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글쓰기 또한 포기할 수 없는 활동이다. 인간이 어떻게 의미를 만들어 내고 창조하는지, 인간과 기계가 만들어 내는 수많은 글이 인간의 삶과 지식을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점이다.안타깝게도 인간 사고의 많은 부분은 아직 미개척지로 남아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인간의 사고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인간이 과연 사고하는 존재로 남을 것인지에 대한 물음과 도전을 제공한다.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서 인간의 인지를 연구하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인간 사고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고 탐색하기 위해서 인공지능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인생이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
책 광고로 보는 시대의 표정㉒
김수영의 『시여, 침을 뱉어라』작가의 손을 떠난 예술작품은 누가 어떻게 향유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김수영(1921~1968) 시인의 「풀」은 많이들 알고 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어떤 문학인은 「풀」을 권력에 저항하는 시로 읽었지만, 실연당한 사람은 똑같은 시를 사랑의 아픔으로 읽을 수도 있다. 시인은 기득권과 권력자를 비꼬는 시를 많이 썼다. 그러면서도 모든 사물이 시가 될 수 있고 모든 사물에서 시어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과감하고 전위적인 시를 써서 알려주었다.민음사의 ‘김수영 책 특집’ 광고에서는 “김수영 문학의 결정판”이란 헤드라인을 써서 이미 나온 책 2권과 새로 나올 책 2권을 소개했다(동아일보, 1976. 9. 28.). 선을 그었을 뿐인데 부리부리한 눈매를 강조한 시인의 인상에 한 눈에 파악되는 펜화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책을 소개하는 카피에 비문(非文)과 무미건조한 표현이 많아 실망스럽다. 언어의 경제성과 세련미를 추구한 시인의 시집과 산문집을 소개하는 카피가 겨우 이 수준이라니, 책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 같다.시집 『거대한 뿌리』(1974)를 설명하는 카피를 확인해보자. “김수영의 시적 주제는 자유이다. (…) 그것의 실현을 불가능케 하는 여건들에 대해 노래한다. 그의 시가 노래한다라고 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절규한다.” 책값 500원의 시집을 알리는 카피는 영어의 번역 문장처럼 대명사(‘그것’)가 너무 많다. 책값 880원의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1975)를 설명하는 카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시대 이상의 숲을 피투성이가 되며 헤쳐간 시인 김수영. 시만으로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풀기 위하여 써낸 주옥같은 수필, 고해 같은 일기, 포효 같은 시론 등, 그의 산문의 정수를 우리는 이 책에서 한 눈에 볼 수 있다.” 서술이 매끄럽지 않고 억지로 쓴 느낌이며 번역투의 문장이 많다.
책값 980원의 산문집 『퓨리턴의 초상』(1976)을 설명하는 카피는 이렇다. “누가 김수영이를 잊어버릴 것인가, (…) 자기 자신을 온몸으로 폭로하는 서한집 등 불타는 김수영 열정의 메시지가 이 책을 채우고 있다.” 시인을 ‘김수영이’라며 하대하는 듯 표현한 점도 조금 거슬린다. 시집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1976)는 책값이 750원이었는데, 제목 앞에는 시집이라 명명하고 보디카피에서는 사화집이라고 설명했다.“우리 시대를 가장 적나라하게 충돌하고 고민하다가 사거(死去)한 진정의 대변자 김수영이 그의 충격의 시선 ‘거대한 뿌리’ 이후에 미발표 유작에서 정선한 사화집(詞華集)이다.” 사화집이란 한 명이나 여러 명의 시나 문장을 어떤 기준에 따라 골라 모아 엮은 책인데, 보디카피에서는 시 선집인데도 선집의 특성을 매력적으로 강조하지 못했다.광고 카피의 수준은 낮았지만 김수영의 시와 시론집은 잘 팔렸다. 이는 광고의 영향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시인의 이름값과 무게감 덕분이었다. 그의 시와 시론집은 독자에게 죽비처럼 강하게 다가갔지만, 특히 『시여, 침을 뱉어라』는 한국 문학계에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민음사 『시여, 침을 뱉어라』 초판(1975)
민음사의 『김수영 전집』 광고(동아일보, 1976. 9. 28.)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시에 대한 그의 생각이 오롯이 압축된 이 문장은 한국 시사(詩史)에 남을 중요한 경구로 자리 잡았고, 후배 시인들은 금과옥조로 삼았다고 한다. 결국 그의 시론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온몸의 시학’이라 명명할 수 있다.
깊은 사유가 스며있는 시와 산문에서 시인은 현실의 부조리한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시인이 주로 활동했던 1960년대는 경제개발 시기로 한국 사회가 역동적으로 돌아갔지만, 그만큼 혼돈과 탐욕이 판을 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런 시절에 김수영은 시집 제목처럼 자신이 자신에게 박는 ‘거대한 뿌리’ 같은 존재가 되기를 소망했다. 그는 혼돈의 역사에 휘둘리지 않고 일상에서 시적 소재를 발견하는 탁월한 감수성으로 시를 썼다. 그는 현실의 부조리한 문제를 짚어내는 사회적 발언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혼돈과 탐욕스런 현실에 눈 감지 말고 치열한 대결 의식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시대의 표정을 제시했다.
민음사에서 오늘의 산문선집을 기획하며 『시여, 침을 뱉어라』를 제1권으로 선정한 데서도 책의 무게와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1975년 6월 15일에 초판이 나왔는데 시인이 세상을 떠난 다음이었다. 225쪽의 갈피마다 시인의 깊은 사유가 스며있다.나는 훗날 광고 카피를 쓰며 힘들 때마다 종종 이 책을 펼치며 시란 단어를 광고로 바꿔 읽었다. “광고 창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다른 모든 삶도 똑같지 않겠나.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편집기획위원딸깍발이
윤정부 1년, 쏟아지는 ‘시국선언’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숙명여대 캠퍼스에도 현 정부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곳곳에 붙어 있다. 총학생회와 단대 학생회 이름의 대자보는 “대한민국 대통령실의 ‘대통령’은 누구를 대표하는가'”라는 제목으로, “검찰권력을 앞세운 일방적인 국정운영을 중단하고 화합과 통합의 정치를 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공정과 상식, 상생과 평화의 국정운영을 요구하는” 교수자 일동은 “윤 대통령의 망국 외교와 폭력적 정부 운영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시국성명서”를 게시판에 내걸었다. 윤정부 출범 1년, 대학가만이 아니라 다양한 시민단체들의 시국선언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는 시국선언으로 시작되었다. 민주주의가 빈번하게 시험을 받던 시대, 시국선언은 권력의 전횡에 대한 저항이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애끓는 호소였다. 현재 불거지고 있는 각종 시국선언은 윤정부의 ‘굴욕외교’로 촉발되어 노조탄압, 이태원 참사, 검찰에 의한 공안통치 등을 비판하며, 국정운영 전반에 걸친 규탄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민주민생평화미래가 위기에 처했다고 말한다. 국민이 없는 ‘국민의 힘’ 정부로 인해 서민들의 삶은 황폐화되고, 현재 한국은 자본가와 정치인·관료·엘리트·기득권 언론이 각자 이익을 추구하는 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누구나 평등한 한 표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할 수 있음만 의미하진 않는다. 민주정치의 본질은 사회적 약자도 예외 없이 동등한 권리와 자유를 누린다는 점이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노조활동이 ‘건폭’으로 낙인찍혀 노동자들의 일상이 무너지고, 급기야 ‘노동절’에 노동자가 분신했다. 윤정부가 내세운 노동개혁이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튼튼한 안보, 탄탄한 경제’를 만든 1년이었다는 자화자찬식 현수막 구호로, 실정이 포장될 순 없다. “법치라는 구호를 외치지만 사실 반(反)법치에 가깝다”는 시국선언에 왜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지, 그 의미를 엄중히 헤아려야 한다. 국민의 선택에 의해 선출되지만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하거나 부당한 행위를 한다면 이를 비판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그동안의 민주주의 역사였다.윤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30%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취임 1주년 여론조사 결과, ‘잘한다’는 긍정적인 인식보다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은 현실에 반성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당연히 바라보는 방향이 바뀔 수밖에 없다. 정치·경제·외교·국방 등 많은 분야에서 관점과 결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당시 대통령의 판단과 결정이 옳았는지는, 결국 시간이 지난 후에야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내 편을 만드는 일이다. 진영 밖의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이해를 구하고, 조급함을 버리고, 국익을 위해 최선의 결정인지 심사숙고하는 것이 민주정치의 본질이다.
시국선언 상황을 풀어가는 해법은 그리 간단치 않다. 그러나 국민들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 먼저 듣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대통령 취임식에서 약속했던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무겁게 인식하고, 국정의 최고 정점에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신중하게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국민을 섬기는 자세에서 진솔하게 소통하고, 지난 1년 동안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야당 대표와도 만나 대화하는 것이다. 상대방도 보듬을 수 있는 노력과 아량, 협상과 설득, 이것이 최선인지 끝없는 질문을 한 후에 행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 사회는 더 분열되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길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에리히 프롬은 “체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쇄신하지 않은 채 이런저런 개혁안을 아무리 내놓은들, 그것은 조만간 무산되고 말 것”이라고 했다. 『소유냐 존재냐』에서 그는 정치가들이 자신의 이익과 권력 소유를, 존재와 공유, 이해의 가치로 대체해야 새로운 사회가 건설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각자의 존엄을 지키는 존재지향적인 새로운 사회는, “인간을 사물처럼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휴머니즘이 자리 잡는다면,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윤대통령 취임 1주년, 왜 시국선언이 쏟아지고 있는지 겸허히 성찰하고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각계각층의 시국성명이 용산 대통령실의 벽을 넘는 ‘담쟁이’가 되길 소망한다.제공=조현화랑 해운대
갤러리 초대석
「Lee Bae」‘숯의 작가’ 이배 개인전 「Lee Bae」가 조현화랑 해운대에서 7월 30일까지 열린다. 이배 작가는 30년간 숯을 사용해서 작품 활동을 하며 시간의 영속성과 어둠 이면의 빛을 표현했다. 작가는 1,000도 와 1,100도 사이의 가마에서 2주간 나무를 태우고 2주간 식혀 숯을 만든다. 숯의 보편성과 영속성을 변주하듯, 아크릴 미디엄 작품 위로 글씨인 듯 그림인 듯 양의적인 형상이 부유한다. 그려진 형태 위로 반투명 아크릴 미디엄을 바르고 말리기를 세 번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화면에 공간이 만들어지면서 형상은 흐릿해진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팔레트 중 빨간색이 최초로 전시된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매일 규칙적으로 작업을 하는 과정 동안 생겨나는 모티브들은 때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형태를 띠거나 몇 년 전 그린 것과 비슷한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는 의식이 아닌 신체가 담고 있던 기억의 파편들로, 규칙적이고 꾸준한 태도를 통해 생성되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현대미술은 영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태도나 과정에서 나온다”라고 말하는 이배 작가는 신체와 기억을 정제해 가는 과정으로 작업을 하기에 삶 자체가 하나의 화면과도 같다.신다인 기자 shin@kyosu.net학문후속세대의 시선
대학이 없는 세상뉴스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학생을 유치하지 못하는 대학들이 존폐 위기이거나 폐교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대학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세계 자체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갈 수 있는 직장이 정말 말 그대로 사라지고 있다. 또, 대학과 대학생, 교직원과 함께 생계를 이어나가던 분들의 세계도 무너진다. 어떤 지역은 지역 자체가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런데도 사라짐을 가속화하는 일만 계속해서 일어난다. 극단으로 치닫는 자본주의로 인한 세계의 황폐화와 전쟁, 기후위기 등등은 세계의 멸망까지 남은 숫자를 점치는 것이 화제다. 사람들이 모이면 세계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언제나 이야깃거리가 되지만, 그 폭주하는 열차에서 아무도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열차를 멈추지도 못하고 있다.
물론 공부를 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원래부터 불안한 고용을 견디며 살아야 했던 것은 여전하다. 뛰어날 것도 별로 없는 인문학 전공자는 시간 강사를 꿈꾸기에도 언제나 벅찼다. 문제는 공부한다고 나이만 먹는 바람에 더 이상 취업 시장에서 상품성도 없어져 버렸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기에 불평할 수는 없지만 불안과 쓸모없음, 그야말로 ‘쓰레기’가 된 것 같은 삶을 견뎌내야 하는 것도 현실이다. 게다가 여러 가지 IT기술의 발전으로 더 이상 인간 강사는 필요하지 않게 될 지도 모른다는 전망이다. 교육 콘텐츠를 메타버스 공간에서 공유하는 세계는 멀지 않았고, 실제 인간 강사는 지금처럼 학교마다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기존 논문을 정리하는 것도 AI의 속도나 정확성을 따라잡을 수도 없다. 현재 교수는 역할은 물론 수도 축소되는 쪽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고, 학력을 인증해주는 코디네이터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을 들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2020)은 세상을 먼저 등지려고 한 주인공에게 세상이 먼저 망해버린 디스토피아를 다루고 있다. 이것이 지금 여기를 감각하는 징후적 텍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 안에서 은둔하며 살 수 있을 때까지만 살다가 가려고 했는데, 바깥세상 또한 감히 짐작할 수도 없는 방식으로 파괴되어 조용히 죽지도 못하게 만든다. 대학원생을 포함한 이 시대 노동자와 노동자가 될 사람들이 겪어내고 있는 공통감각으로 읽힌다. 어쨌거나 공부하는 사람으로 나를 정체화한 이상 체득한 것을 적용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문득 올라왔다. 대중문화 전공자인 나는 문화콘텐츠를 보고, 그 작품 안의 하나의 세계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것을 경유하여 현실을 성찰하고 비판한다.성찰은 지금 여기 자연화되어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구조에 작은 구멍을 내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지금의 세계가 얼마 남지 않았다면 도저히 타파할 수 없을 것 같은 골리앗같은 제도를 즉, 대학이라는 공룡을 한 번 해체, 구축해 볼 수 있는 기회로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투명가방끈이라는 단체를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이 단체는 2011년 대학거부선언, 대학입시거부선언을계기로 설립되었으며, 경쟁과 차별 중심의 교육과 사회를 바꾸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이라는 학교 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심하게 하는 ‘몇 학번이세요'’라는 폭력적인 질문에 경종을 울린다. 그들이 소개해준 비(非)진학(進學)이라는 모토는 고민도 없이 정해진 길로 무조건 나아가지 않는 삶을 말하는 것 같다. 또한 비진학이라는 하나의 분과 학문을 세울 수 있을 만큼 현재의 제도가 변화를 요구하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현재 대학 안에 여러 가지 불합리함을 느끼는 사람들과 소위 능력주의라는 탈을 쓰고 있는 사회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지점이 대학이라는 거대한 구조를, 그리고 미래의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를 포기하지 말고 같이 바꾸어나갈 사람들에게 언제나 열려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스콧 핏츠제럴드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예컨대 우린 상황이 희망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상황을 바꾸려는 단호한 결심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김예나
한양대 대중문화 시나리오학과 박사수료영국 리즈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한양대 대중문화 시나리오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드라마에서 한국현대사 성찰과 재현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으며 최근 실비아 페데리치의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를 공역했다.
교수논평
대학위기의 원인, 다시 진단해야국가의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로 교육 분야를 내세울 만큼 현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의지로 고등교육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학사회에 희망의 불씨가 살아난다는 느낌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많은 대학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정부 정책에 따르거나, 심지어 그럴 여력도 없어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는 대학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학 위기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대학의 본질이 교육과 연구임을 고려할 때 교육과 연구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바로 대학 위기의 원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고등교육은 분명히 위기에 처해 있고, 위기의 핵심 원인은 크게 다섯 가지다.첫째,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지나치게 많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원 1인당 학생 수를 최소한 OECD 평균 정도로 줄여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학령인구 감소가 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기회를 살리기는커녕 오히려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지금보다 늘어날 수도 있는 무차별적인 구조조정을 강요하고 있다.둘째, 사학의 부정과 비리이다. 대학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사립대학 운영자들에 의해 교권과 학습권이 얼마나 처참히 망가질 수 있는지를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수없이 확인해 왔다. 교수들의 교권과 학생들의 학습권이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 대학에서 질 좋은 연구와 교육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내놓은 고등교육 정책 중 사학의 부정과 비리 척결을 위한 정책은 전무하다.
셋째, 서울 중심의 수도권 대학과 비수도권 대학 간의 양극화로 인해 수많은 지역대학이 대학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 또한 고등교육 위기의 핵심 원인이다. 현재 정부가 지역대학을 살리겠다며 추진 중인 라이즈(RISE) 사업이나 글로컬대학 사업은 안 그래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기울게 해 대학 간 양극화를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2024학년도 일반대학 첨단분야 및 보건의료분야 정원 조정’ 심의 결과에 따르면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일반대학 첨단분야학과 정원이 수도권 소재 대학에서 817명이 증원된다. 지역대학을 살리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말뿐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넷째, 전임교원과 비전임교원, 정년트랙 전임교원과 비정년트랙 전임교원 사이의 차별로 인한 대학 내 양극화 현상 또한 대학 교육과 연구의 질을 끝없이 하락시키는 요인이다. 전체 전임교원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은 정년트랙 전임교원에 비교해 터무니없이 높은 수준의 강의시수와 연구업적에 대한 압박으로 제대로 된 교육과 연구를 수행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전체 대학 강의의 20% 이상을 비전임교원인 강사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올해 배정된 강사 처우개선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이들의 생존권을 짓밟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고등교육의 황폐화뿐이다.
마지막으로, 위에 열거된 네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충분한 고등교육재정인데, 현재 정부가 책임지는 고등교육재정은 OECD 평균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야말로 고등교육 위기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고등교육재정의 안정적이고 충분한 확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을 위해 그 어떠한 노력도 하고 있지 않다.정부의 고등교육 개혁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학이 직면한 위기의 진짜 원인은 그대로 둔 채 잘못된 진단에 근거해 엉뚱한 대책만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정부가 지금과는 반대의 길을 가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대학 문제를 지자체와 개별 대학에 떠넘기고 있다. 하지만 위의 다섯 가지 문제 중 지자체나 개별 대학 차원에서 해결이 가능한 문제는 단 하나도 없다. 모두 중앙정부가 책임을 지고 국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면에서 세계 10위이며, 1인당 소득으로는 OECD 중 18위인 고소득 국가이다. 그리고 2020년 기준 전국 일반고 졸업자의 대학 진학률은 79.4%이다. 고등학교 졸업생 10명 중 8명이 대학에 진학하는 경제대국에서 초중등교육뿐만 아니라 고등교육까지 국민의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국가가
완전히 책임지지 못할 이유는 없다. 정부의 의지가 없을 뿐이다.
김일규
강원대 글로벌인재학부 교수현재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을 맡고 있다. 교수노조 강원지부장과 민교협 대외협력위원장을 지냈다.
김상돈의 교수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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