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기반 수업 ‘미니 프로젝트’, 학생 창업까지 자극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최고의 강의 ㉔

조성배 한동대 교수

학생들에게 기존의 대학 수업은 때때로 재미있는 ‘베스트셀러 게임 매뉴얼’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게임 자체는 정말 재미있지만, 게임을 직접 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매뉴얼을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은 상당히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이다. 게임 매뉴얼을 완벽하게 숙지하지 못했더라도, 우선 게임을 경험해본 사람은 금방 게임의 묘미에 빠져들고 재미를 느낀다. 게임에 재미를 느낀 플레이어는 숨겨진 규칙이나 요령을 파악하기 위해 매뉴얼에도 관심을 갖고 이를 더욱 파고들려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관련 게임의 공략법을 찾아 공부하기까지 한다. 배운 지식을 활용할 기회없이 계속해서 배우는 삶에 익숙해진 학생들에게는 근본적인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나는 이를 위해 배운 지식을 활용하는 경험을 최대한 많이, 최대한 앞당겨서 할 수 있도록 수업을 설계하였다.

프로젝트기반학습(Project based learning)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학기 후반까지 이론 중심으로 배우다가 학기 말이 돼서야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힘들게 이론을 배운 학생들도 배운 내용을 잊어버리고, 학습동기도 상실해버린 상태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면 교수의 입장도 난처해진다. 이런 방식으로 학습자가 새로운 기술을 접하게 되는 학습자는 그 기술의 장점과 구조를 파악하기도 전에 지쳐버린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산업계는 이미 다른 접근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회사는 학습자에게 기본을 가르치기 전에 기술 관련 공식 웹사이트 자료를 보면서 간단하고 흥미로운 튜토리얼 프로젝트를 경험하도록 해서, 기술의 장점을 이해하고 흥미를 느끼도록 해준다. 학습자는 구체적인 궁금증과 관심을 가진 상태로 만든 후에야 해당 기술을 폭넓고 깊이 있게 습득하게 된다.

근사한 수업경험, 학생의 호기심 촉발

필자가 운영하는 ‘모바일 앱 개발’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첫 주부터 앱을 개발하는 미니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앱 개발에 필요한 새로운 컴퓨터 언어의 구체적인 문법이나 프레임워크의 구조를 아직 배우지는 못했지만, 근사한 앱을 만드는 경험을 먼저 제공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미니 프로젝트를 통해서 앱 개발의 전반적인 과정과 한 학기 수업의 목적을 생생하게 파악한다. 무엇보다 학생들은 간소하게라도 앱을 제작하며 갖게 된 각자의 호기심을 중심으로 수업을 듣게 된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개강 2주차에 학기 말까지 완성해야 하는 팀프로젝트를 위한 주제 선정과기획 설계를 해야 한다. 학생 스스로 평소에 만들

조성배 한동대 교수는 학생들에게 창업 관련 교육을 지도하며 디자인 스프린트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해당 방법을 통해 학생들은 창업 아이템 기획부터 사용자들로부터의 피드백에 이르기까지 창업의 전 과정을 경험했다. 사진=조성배

고 싶었던 주제를 구체화하는 고민과 기획을 선행한 학생들은 프로젝트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된다. 학생이 흥미를 갖게 한 뒤 이론 강의를 진행하면, 학생들은 자기가 만들고자 하는 결과물인 앱을 위해 기술을 잘 파악하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된 상태에서 수업을 듣게 된다.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은 작고 큰 앱을 4~5개 만드는 경험을 하면서, 이론 강의를 통해 궁금해하는 필요한 지식을 적극적으로 배운다. 이러한 경험을 돕기 위해 수업에서 가르칠 ‘기술 스택’(웹사이트나 웹 앱을 만들기 위한 언어·데이터베이스·프레임워크 등의 집합)을 선택하는 기준도 달리했다. 전통적으로 대부분의 수업에서 채택해왔던 게 아니라 산업계 수요에 따라 빠르게 발전하고 효과적인 개발이 가능한 기술을 채택해 수업을 진행했다.

예를 들면, 플러터(Flutter)라는 기술은 하나의 코드로 웹, iOS(아이폰), 안드로이드 등 6개 이상의 플랫폼을 지원할 수 있는 혁신적인 장점이 있다. 플러터를 활용하면 완성도 높은 앱을 빠르게 개발할 수 있다. 학생들은 플러터를 통해 예전과 달리 개발한 코드를 2개 이상의 플랫폼에서 구동하며 성취감과 이후에 있을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된다. 개발 경험이 적은 대학생들도 빠르게 배울 수 있고, 짧은 기간 내에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여러 플랫폼에 배포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교내 창업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학생들에게 경험을 제공하면 학업에 대한 동기부여와 자기주도적인 프로젝트의 최종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창업으로까지 이어진다. 또한, 창업 프로젝트의 활성화 결과, 많은 학생팀에게 좋은 성과가 있기도 했다. 최근 몇 년간 받아온 상금과 지원금은 11억 원이 넘었고, 국내와 해외 창업 관련 대회에서 우승하는 경우도 많았다. 재학생들의 결과물이 앱스토어 인기 순위에 있기도 했다. 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경험’을 중심으로 한 수업 생태

계 구축은 확실한 효과가 있다.

협업·의사결정·피드백 수용 능력도 ‘경험’으로

창업 프로젝트에 도전한 학생들이 많은 덕분에 창업 관련 교육을 방학마다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창업 교육 내용을 참고해 세법과 지적재산권 등을 중심으로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졸고 있는 학생들을 깨우기 바빴고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보람이 없었다. 과감하게 몇 개월간 준비한 강의 내용을 폐기하고, 학생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다시 고민했다.

창업 아이템에 확신이 없고 불안해하는 학생들에게 수업 초기에 법적 의무와 행정적인 절차를 가르치는 것은 이들의 도전을 막는 행위에 가까웠다. 그래서 아이템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고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수업 방향을 틀었다. 고심한 끝에 선택한 수업 방법론은 디자인 스프린트(Design Sprint)다.

디자인 스프린트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에 성공한 구글벤처스(Google Ventures)에서 고안한 기획 프로세스다. 이 방법은 단 4~5일간 빠르게 팀 내 협업과 의사결정을 통해 시제품을 만들고, 사용자 테스트를 통해 시장 반응을 살핀다.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효율적 팀내 협업과 서로가 납득하는 체계적 의사결정을 경험한다. 또한, 팀내 탁상회의가 아니라 사용자 테스트를 통한 피드백으로 본인의 아이템이 좋은 솔루션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경험도 한다. 하루만에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획 경험과 사용자가 자신들의 시제품을 사용하며 만족하고 꼭 출시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는 구체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확실한 경험을 하고 동기부여가 된 학생들은 그 이후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적극적인 자세로 모든 것에 임한다. 수업 과제였다면 절대 나오지 않았을 상당한 완성도의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제품 출시 자금 마련을 위해 공모전·경진대

회·지원사업에 참가해 1등도 차지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 기술에 관련된 구글의 인공지능 글로벌 챌린지에도 참가해 국내 유일 위너팀에 선정되고, 졸업 전 재학생이 1억 원이 넘는 지원금을 확보한 사례도 있다.

게임이 된 학습, 전공 간 융합도 문제 없어

결과적으로 학생들이 본인의 창업 아이템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 지적재산권 확보 등 관련 법률에 대한 딱딱한 교육을 별도로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필요한 시기에 탐구하고 해결한다. 이렇게 학습과 경험의 순서만 바꾸었는데도 굉장한 변화가 생겼다. 확실한 경험 이후의 학습은 강요받는 의무가 아닌 모험이 되었고 게임이 되었다. 이렇게 모든 혁신은 누구나 이미 알고 있고 이미 느끼고 있는 힌트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다양한 프로젝트 활성화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학문간 융합을 필요로 한다. 다른 게임(다른

전공)을 통해 본인의 게임 실력을 늘리고 싶은 경우도 생기고, 게임 간 재미있는 요소를 융합할 때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깨닫는다. 전공 간 협업 또한 필수적이고 당연한 것이 된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창업팀들은 디자인, 경영 등 여러 전공의 학생들과 활발하게 협업을 하며 융합 프로젝트의 경험을 게임처럼 하고 있다. 이러한 기특한 학생들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교수

들은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진다.

조성배

한동대 전산전자공학부 교수

모바일 컴퓨팅, 클라우드 컴퓨팅, Applied AI와 스타트업 육성에 관심이 많아, 매년 5개 넘는 창업팀을 배출하고 있다. 멀티플랫폼 SW개발 교육, Design Sprint 교육, Design System을 활용한 다학제간 융합 교육에 관련된 논문을 발표하고, 국내외 여러 학교에서 특강 및 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기초과학 신진 연구자

공동연구 160억 지원

교육부, 램프 기본계획 발표

8개 대학 연구소 선정 예정

정부가 기초과학 박사후연구원의 공동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올해 8개 대학을 선정해 160억 원을 투입한다. 5년간 지원한다.

교육부가 이번에 신규 추진하는 ‘램프(LAMP)’의 기본 계획을 지난 3일 발표했다. 램프 사업은 대학이 연구소를 관리·지원하는 체계를 갖추고, 신진 연구인력이 공동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대학은 △수리·통계과학 △원자과학 △천체·입자·우주과학 △분자수준과학 △나노단위과학 △물질·에너지과학 △DNA·RNA분자생물학 △진화·종의 다양성 △지구·해양·대기과학 △뇌·신경과학·기초의학 분야 중 1개 분야를 선택해 학내 연구소 관리 체계를 구축한다.

기존 연구개발사업(R&D)은 대부분 개별 과제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형식이었으나, 이번 사업은 대학의 ‘연구소 관리‧지원 체계 구축’을 전제로, 연구인력 선발, 시설‧장비 확충, 연구과제 확정 등을 대학이 직접 총괄하도록 지원한다.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박사후연구원과 신진교원을 집중 지원 할 예정이다. 박사후연구원은 매월 정액의 보수, 램프 펠로우십 기회, 가족생활관 우선 배정 등을 지원한다. 전임교원은 연구비 지원, 책임시수 감면, 공동실험실습관 기기 사용료 추가 감면 등을 지원한다. 단, 박사후연구원은 박사학위 취득 7년 이내인 자, 전임교원은 임용된 지 7년 이내인 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교육부는 올해 8개 대학을 선정해 한 대학 당 20억 원씩 총 160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최소 6개 대학은 비수도권 소재 대학을 선정할 예정이다.

선정된 대학은 3년 동안 사업비를 지원받은 뒤 성과 평가를 받고 2년을 추가로 지원받을 수 있다.

사업에 지원하려는 대학은 기초과학 10개 분야 중 1개 분야를 선택해 공동연구 포트폴리오를 자율적으로 구성해 7월까지 제출해야 한다. 교육부는 선정 평가를 거쳐 8~9월에 최종 지원 대학을 확정해, 10월부터 램프사업을 개시한다.

이윤홍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은 “램프사업의 시작이 대학 기초과학 연구의 저변을 확대하는 중요한 기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신다인 기자 shin@kyosu.net

춘천교육대학교 2023학년도 2학기 교수초빙 공고

1. 초빙분야 및 인원

학과 (심화과정) 전공분야 모집인원 담당 교과목 비 고

초등교육과

(과학교육과)

과학교육

(생명) 1명

- 초등과학교육1

- 생명영역탐구

- 물질과생명현상의이해

- 환경과우리생활 등

-교육학박사 학위 취득자

-대학학부 수준의 <생물학개론>, <식물분류>,

<식물생태> 강의 가능자

초등교육과

(미술교육과) 미술교육 1명 - 초등미술교육Ⅰ -미술교육을 전공한 교육학 박사 학위자에 한함

계 2명

※ 교육공무원임용령 제4조의3제1항의 특정대학 학사학위 소지자 채용 제한 : 미술교육과는 서울대학교 동일 전공분야 학사학위 소지자 지원 불가

2. 지원자격

가. 교육공무원법 제10조의4(결격사유)에 의한 결격사유가 없는 자

나.해당 분야 박사학위를 소지한 자(학위 취득예정자는 제외)

다.대학교원 자격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2조‘별표’의 자격기준에 해당하는 자

라. 지원서 접수마감일 현재 학위논문을 제외한 최근 4년간 (2019. 5. 25. ~ 2023. 5. 24.) 국제저명학술지

(SCI, SSCI, A&HCI, SCIE, SCOPUS) 또는 한국연구재단 등재(후보) 학술지에 게재된 연구실적물이 200% 이상인 자

3. 심사기준 : 「전임교원신규채용인사관리지침」적용: 춘천교육대학교 홈페이지 공지사항 (채용공고) 참조

4. 접수기간 및 장소

가. 접수기간 : 2023. 5. 22.(월) 09:00 ~ 5. 24.(수) 18:00

나. 접수방법 : 코러스 대외서비스 인터넷 접수 https://cnue.korus.kr

다. 파일형식으로 제출할 수 없는 저서 등은 방문 및 우편접수 가능

- 방문 : 춘천교육대학교 석우관 2층 교무처(033-260-6124)

- 우편 : (24328) 강원도 공지로 126, 춘천교육대학교 교무처 ※ 우편물은 5.24.(수) 18:00까지 도착분에 한해 인정

5. 기타 세부 사항

가. 춘천교육대학교 홈페이지(http://www.cnue.ac.kr) 공지사항(채용공고)에서 확인

나. 기타 문의사항은 교무처로 문의(033-260-6124)

2023. 5. 8.

춘 천 교 육 대 학 교 총 장

군자의 논어

新刊

군자출판사

우수 논문, 경력으로 인정…산학협력 ‘겸·초빙’ 확대

교육·연구능력에 산업체 경력까지 평가해 채용

박수형 건국대 교무처장

건국대는 올해 하반기에 17개 분야에서 17명의 신임교수를 채용한다.

학교의 발전계획이 교육·연구·산학협력 분야에 맞춰진 만큼 해당 분야에 대해 골고루 능력을 보유한 교원을 채용할 계획이다. 교육능력과 연구능력, 산업체 경력 등을 모두 평가해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대응 가능한 우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교수를 뽑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건국대는 대학지원사업과 LINC+사업, 소프트웨어중심대학 사업, 디지털 신기술 인재양성 혁신대학 사업 등 주요 국가사업 수주를 통해 신임교수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설과 인프라를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대학의 중장기 발전전략 계획에 따라 전임교원 상시채용 제도를 2022학년도부터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학과별 교수 채용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면 채용 요청의 기한을 별도로 설정하지 않고 비정기적으로 개별 접수해 채용절차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신임교수를 대상으로 한 연구비 지원도 진행하고 있다. 별도의 절차 없이 신청자 전원을 대상으로 KU학술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신임교수를 대상으로 책임시수를 감면하고 있고 대학 병원 진료비 감면과 건강검진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취업·연구·창업 위한 산학중점 교수 활성화

장윤석 경희대 교무처장(국제캠퍼스)

경희대는 이번 학기에 70여 명의 신임교수를 채용한다. 학기별 공개채용과 더불어 S&R위원회를 통해 발굴된 우수 연구자를 상시 채용하는 시스템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경희대는 우수 연구자를 영입하기 위해 4대 운영 기조를 적용하고 있다. 4대 운영기조는 △

첨단산업 분야를 선도함으로써 인류 문명 발전에 기여 △교육과 연구의 탁월성으로 학계 평판도 제고 △기초학문 분야 육성 발전 및 융·복합 연구역량 강화 △창학정신에 기반한 글로벌 공공협력 및 국제 공동연구 선도 등이다.

경희대는 교육·연구·창업·취업 지원 활동을 중점 추진하기 위해 산학협력중점교수 제도를 활성화하고 있으며 선진 교수법 개발과 에듀테크 접목을 위한 학술연구교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교육과 학술 업적이 상당한 외국 거주 학자와 외국인 학자는 초빙교수로 임용하고 있다. 초빙교수로 임용된 연구자는 학생에 대한 강의와 대학원생 논문지도, 학교의 전임교수와 공동연구를 수행한다.

경희대는 교수 채용의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해 지원자 실적에 대한 교차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교내외 전문가 풀에서 각 단계별 심사위원을 위촉해 소요 시간도 단축하고 있다. 또한, 신임교수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 교내 연구비 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임용 후 2년간 책임 강의시수 감면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올해에는 부교수 이하 교수를 대상으로 맞춤형 연구사업의 유형과 지원금을 확대했으며, 새로운 지원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전공 분야 경력과 업적 월등하면 직명 상향

전종기 공주대 교무처장

공주대는 올해 43명의 전임교수를 선발한다. 정년퇴임하는 교수의 증가와 교수정원 증원에 따라 대규모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공주대는 올해 교육부로부터 5명의 교수정원을 배정받았으며 현재 첨단분야에 2명의 교수를 이미 채용했고, 1명을 추가로 채용해 첨단분야 인력확보에

신경을 쓸 계획이다.

신임교수에게는 정착연구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지급 기준은 임용된 날로부터 1년 6개월 이내인 교수다. 정착연구비는 전공에 상관없이 전 학문 분야에 대해 지원을 하고 있다. 교육 연구 및 학생지도비는 한 해에 1천420만 원을 실적에 따라 차등 지급하고 있다.

신임교수의 직명(조교수, 부교수, 교수)을 정할 때는 국제전문학술지에 대한 가산점도 부여하고 있다. 전공과 관련 있는 분야의 경력과 업적이 월등한 경우에는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직명을 상향 조정하고 있다.

이번 채용에서 산학협력중점교수를 3명 채용할 계획이며 정책융합전문대학원, 디자인컨버전스학과, 보건행정학과 등에서 선발할 계획이다. 현재 공주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겸임·초빙교원은 총 67명이다. 학과의 추가 수요가 있을 경우 올해 2학기에 재직하고 있거나 재임용에 합격한 강사 등을 제외한 범위에서 겸임·초빙교원 채용계획을 수립해 5월에 공개채용 할 예정이다. 강사 채용 또한 5월 중으로 수립해 공고할 계획이다.

반도체 국내·외 특허도 연구실적으로 인정

김승룡 부산대 교무처장

부산대는 2023년 하반기에 57명을 채용한다. 39개 학과(전공)에서 교수를 뽑고 있으며, 이번 학기에는 특별히 반도체 관련 첨단분야로 많은 인원을 배정했고 반도체 관련 산업체 경력과 높은 전문성(연구와 기술개발 실적 등)을 가진 우수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다. 아울러 반도체 공

정설계 혹은 반도체 첨단분야 시뮬레이션 분야에 대해서는 산업체 경력의 우수한 인력을 채용하기 위해 국내외 특허를 연구실적물로 인정해 채용할 계획이다. 반도체 분야와 관련해 부산대는 AI반도체설계(디지털 회로 및 시스템) 분야와 반도체 재료·공정·소자 분야 반도체·레이저 및 응용 전 분야에서도 우수 교수를 찾고 있다.

신규 임용된 교수는 임용 직후 1년간 학기당 6시수를 강의하고 있다. 아울러, 신임교수의 연구 정착을 돕기 위해 신임교수연구정착금 지원사업(계열에 따라 1억~1억5천만 원) 등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겸임교원의 경우 △실무·실험·실기 등 현장 실무 경험이 필요한 교과 교수 가능자 △조교수 이상 자격 기준을 갖춘 자 △원 소속기관의 상시 근무자로 3년 이상의 근무경력 등 세 조건을 모두 갖춘 자를 채용할 계획이다. 초빙교원의 연구 프로젝트나 정부 사업을 추진하는 각 부서에서 필요한 인력을 수급하고 있다. 부산대는 오는 6월에 강사 채용계획을 확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임팩트팩터 높은 저널에 논문 게재, 경력에 가산

조장천 인하대 교무처장

인하대는 2학기에 공과대학, 소프트웨어융합대학, 사범대학, 예술체육대학, 의과대학 등 22개 분야에서 29명의 전임교수를 채용한다. 4단계 BK21사업 등 대형 국책과제 운영과 신규 수주를 통한 대학 특성화, 반도체, 인공지능 등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는 교육·연구·산학협력 경쟁력 제고,

대학 비전 실현과 학문의 균형발전 등을 고려해 교수 채용 분야를 결정했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인재 육성을 위해 교과과정 개편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새로운 교과과정에서의 특수한 교과목을 전담할 초빙 교원과 산업현장의 실무교육을 담당할 겸임교원을 초빙할 계획이다. 연구비 지원 제도도 확대해 급여와 강사료의 단계적인 인상 또한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우수 연구실적을 보유한 교수초빙을 위해, 국제 논문 인용 횟수를 교수 채용 평가의 정량 요소로 반영해 연구 역량이 뛰어난 신임교수를 발굴할 계획이다. 높은 임팩트팩터를 가진 우수한 저널에 논문을 게재한 실적이 있는 신임교수에게 경력을 가산하는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학문후속세대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학문후속세대 우대전형을 반영한 강사 채용 모집분야가 인하대에서 점점 늘고 있다. 박사과정 재학생과 박사학위 신규취득 후 3년 이내인 지원자에게 가점을 부여해 학문후속세대의 안정적인 재생산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특히, BK21 4단계 사업에 참여하는 모든 학과에서 해당 전형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

R&D지원실, 장비 이용료·학술활동 지원

어 윤 창원대 교무처장

창원대는 올해 2학기 초빙에서 18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초빙 규모는 기본적으로 정년퇴임으로 인한 빈자리를 채우는 성격이 있으며 이에 따라 교수초빙 규모는 더욱 증가할 예정이다.

강사, 겸임·초빙교원의 채용 자격요건에 관한 특례 규정 등은, 앞으로의 생존과 도약을 위한 전

반적인 구조조정 전략과 교원인사시스템의 변화에 따라 심도있게 검토하고 있다. 주력해서 채용할 분야는 앞으로 있을 대학의 구조개혁과 특성화, 발전계획 등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정부 시책 관련 학과에 우선적으로 정원을 배정할 계획이다. 또한, 전임교수의 양성평등 활성화 차원에서 여성교수 확대와 전임교수 확보율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겸임교원은 매년 1월과 7월에 채용계획을 수립해 임용 절차를 진행하되, 단과대 수요조사도 거치고 있다. 초빙교원은 채용부서의 채용계획에 따라 수시채용으로 진행하되, 범죄유무 조회 등 임용 절차만 교무과에서 진행하고 있다.

신임교수의 적응을 돕기 위해 학기별 워크숍을 개최해 주요 업무를 안내하고, 주요 시설 견학, 선배 교수와의 멘토링, 보직교수와의 간담회 등을 실시하고 있다. R&D지원실에서는 연구비 미확보 신임교수의 장비 이용료, 신임교수 연구기획 학술 활동 등을 지원하고 있다. 정리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첨단분야로 몰리는 교수채용

반도체·AI·SW 모시기 경쟁

2023 2학기 신임교수 어떻게 채용하나①

첨단분야 신임교수 채용에 대한 대학의 갈증이 올해부터는 해소될 수 있을까. <교수신문>은 ‘신임교수 채용 조사’에서 첨단분야 교수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대학의 목소리를 들었다.

교육부는 국립대 전임교원 확보율 기준을 80%에서 70%로 완화하고 산업 전문가를 교수로 활용할 수 있게 겸임·초빙 자격요건도 유연화한다고 했다. 반도체 인재양성을 위한 정부 지원이 연이어 발표되는 가운데 대학은 인재를 키워낼 교수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서울시립대는 반도체 인재양성을 추구하는 정부 정책에 맞춰 올해 대학원에 지능형반도체학과를 신설했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무처장은 “첨단분야 인재양성을 위해 세무·예체능만이 아니라 인공지능과 도시과학 분야에서도 교수를 채용할 계획”이라며 “산학협력 활성화를 위해 산학협력 중점교수 채용도 고려하고 있다” 라고 밝혔다. 지난달 첨단분야 학부 학생정원 배정에서 인공지능학과에 24명이 순증된 연세대도 이번 교수채용의 주력 분야로 인공지능·빅데이터·반도체·디스플레이·첨단신소재를 꼽았다. 첨단분야 학생정원 배정에 따른 신임교수 채용은 올해 상반기 정기채용 이후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하대는 대학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첨단분야 교수 정원을 늘려 뽑는다. 올해 29명의 신임교수를 뽑는 인하대는 컴퓨터공학과·인공지능공학과·데이터사이언스학과·스마트모빌리티공학과 등 소프트웨어융합대학에서 만 6명을 채용한다. 경희대도 소프트웨어융합대학에서 6명을 채용한다. 전공은 인공지능·소프트웨어 전 분야다.

비수도권 대학도 첨단분야 교원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 정책에 발맞춰 자체적으로 신임교수 채용계획에 이를 반영하고, 첨단분야 교수 정원을 늘렸다. 57명의 교수를 채용하는 부산대는 이번에 반도체 관련 첨단분야 신임교수를 뽑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교육부로부터 첨단분야 교수 확보를 위해 6명의 정원을 배정받았고, 학교의 자체 계획에 따라 AI반도체설계·반도체공정 등 6개 분야에서 반도체 관련 교수를 채용할 계획이다.

올해 초 교육부에서 5명의 교수정원을 받은 공주대는 이미 첨단분야에 2명의 교수를 충원했고 1명 이상을 더 채용할 계획이다. 16명을 채용하는 창원대도 공과대학과 메카트로닉대학에서 7명을 채용한다.

사립대는 첨단산업 분야의 재직 경험을 보유한 전문가 채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동의대는 학과(전공) 관련 산업 분야에서 다양한 현장 경험과 실무 지식이 많은 산업계의 전문인력을 겸·초빙교원으로 채용할 계획이다.

항공분야에 특화된 경운대는 항공교통물류학과 교수와 소프트웨어학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 최신 기술을 보유한 전임교원을 채용할 계획이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한국전통문화대학교

2023학년도 2학기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임교원 채용

1. 채용분야 및 인원

학 과 채용분야 인원 담 당 교 과 목 지원자 요구능력

전통

건축학과

건축설계 1명

전통건축설계기초, 한옥주택설계,

근대건축복원·활용설계, 현대건축론,

한국근현대건축, 건축법규/제도

전통건축을 이해하고 설계 경험을 가진 현대건축 설계 전공자

※ 건축학교육 인증 교육 유경험자 우대

전통건축 1명

한국건축역사, 동양건축사,

관방복원설계, 전통건축시공,

전통건축미학, 고고융합설계

전통건축 이론 및 계획 전공자

(전공시기 : 고대 ~ 조선후기에 한함)

※ 영어강의 가능자 우대

※ 담당 교과목은 학과 사정상 변동될 수 있음

2. 채용분야에 대한 설명

채 용 분 야 채 용 분 야 설 명

건축설계

전통건축학과는 전통건축 설계 및 문화재 수리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학과로, 현대설계에 대한 경력과 전통건축 분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건축설계 전문인력 양성, 건축학교육 인증, 건축 연구 및 교육 역량을 갖춘 전문가

전통건축

전통건축학과는 전통건축 설계 및 문화재 수리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학과로, 전통건축 전공자로서 전통건축 전문인력 양성,

건축학교육 인증, 건축 연구 및 교육 역량을 갖춘 전문가

3. 지원자격 * 아래의 자격요건을 모두 갖춘 자

가. 『교육공무원법』 제10조의 4조(결격사유)에 정한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자

나. 『대학교원 자격기준 등에 관한 규정』의 자격기준에 적합한 자

다. 박사학위 소지자(단, 건축설계 분야의 경우, 박사학위 소지자 또는 석사학위 소지자로서 석사학위 취득 후 3년 이상의 교육 또는 연구 경력이 있는 자)

라. (건축설계 분야 해당) 건축사법 제2조 1항에 따른 건축사 자격 취득자

마. 지원서 접수 마감일(‘23. 5. 8.) 기준으로 3년 이내(‘20. 5. 9.~ ‘23. 5. 8.)에 발표된 연구실적물[학위논문 제외(석사학위 소지자의 경우 학위논문과 대표 연구실적물 제외)]이 200% 이상인 자

※ 건축설계 분야 포트폴리오 필수 제출

4. 임용조건

가. 최종합격자는 교육공무원임용령 제5조의 2 및 본교 인사규정에 따라 임용직급, 임용기간, 급여, 근무조건 등을 조건으로 하여 계약제로 임용함

나. 임용직급은 조교수로 임용함을 원칙으로 하되, 교육경력 및 연구실적에 따라 부교수 이상 임용 가능

다. 4년제 대학(교)에서 교수 또는 부교수로 일정기간 재직한 경우, 연구 또는 교육경력이 특히 우수한 자는 각각 동일 직급으로 임용 가능

5. 제출서류 ※졸업증명서, 경력증명서 등은 최근 3개월 이내에 발급된 것을 제출해야함.

가. 교수 임용지원서(전자파일 별도 제출) 1부

나. 연구실적 목록 및 요약서(전자파일 별도 제출) 각 1부

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동의서 1부

라. 학위 및 성적증명서(학사, 석사, 박사) 각 1부

마. 경력증명서(지원서에 기재한 전체경력) 1부

바. 자기소개서(자유양식, 주요 연구업적과 이력 등, 전자파일 별도 제출) 1부

사. 교육 및 연구계획서(자유양식, A4용지 3장 이내, 강의 가능과목과 중‧단기 연구계획 및 목표 등 포함, 전자파일 별도 제출) 1부

아. 최종학위 논문(요약서 1부 포함) 1부

자. 심사대상 연구실적물 각 1부

※ 별도 제출하는 전자파일은 문서작성용 프로그램(한글, MS워드) 형태로 제출하되, 원서접수마 감일까지 goodjung@korea.kr로 발송

6. 서류제출방법

가. 접수기간 : ‘23. 5. 1.(월) ~ 5. 8.(월), 18:00까지

[근무시간(09:00 ~ 18:00)에 접수하며, 점심시간(12:00~13:00)과 공휴일은 제외됩니다.]

나. 접수방법 : - 우편접수(응시원서 봉투에 ‘전임교원 채용 응시원서 재중’ 표기 요망, 우편 접수는 마감일, 마감시간까지 도착한 것만 접수합니다.)

- 방문접수 또는 대리접수

다. 접 수 처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무과(채용담당 앞) (주소 : 충남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367)

7. 기타 사항

상세한 사항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무과(전화 041-830-7111, E-mai goodjung@korea.kr)로 문의 바랍니다.

2023. 4. 21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총장

사립대학 재단 너머로 들여다본 ‘사립 공화국’

천하제일연구자대회

㊱ 한국 사립대학체제 형성과 재단법인의 정치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

시시각각 변화했던 사립대학 재단의 모습을 염두에 둔다면, 단순히 이들의 ‘공공성 결여’를 규범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만족스러울 수 없다. 오히려 재단법인을 매개로 구축되는 한국 사회 특유의 ‘사적인 것’에 대한 관념 실천 구조가 무엇인지를 더 면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사립 공화국’의 견고한 틀을 넘어설 가능성도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복지국가가 내건 구호다. 출생부터 교육을 받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다가 나이가 들거나 병에 걸려 누군가의 돌봄에 다시 의존하게 되는 전 과정을 ‘사회’가 함께 책임진다는 원칙이 압축되어 있다. 이 모든 삶의 과업을 개인이 악전고투하며 오롯이 떠안기에는 우리 모두 너무나 취약한 존재이며, 언제나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코로나19 사태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가 타인의 노동과 서비스에 의존해야 하는 많은 순간에 ‘사립’ 기관의 문턱을 드나들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사회’혹은 ‘공공’의 존재를 느끼기 어렵다는 점이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산후조리원, 대학교와 전문학교, 동네 의원과 종합병원, 각종 사회복지 및 요양시설…. 초중등교육 정도를 제외하면, 사회 구성원을 돌보고, 가르치고, 치료하는 이 모든 공적인 사안이 대부분 ‘사립’ 기관에 맡겨져 있다. ‘사립 공화국’이라는 어색한 단어 조합이 너무나 적절하게 받아들여질 정도다.(천정환, 「‘사립’공화국에서의 교육」, 경향신문 2018.10.24)

역설로 가득 찬 재단법인의 기본 구조

나는 최근 ‘사립 공화국’ 한국의 모습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종 ‘재단법인(財團法人)’ 조직의 구조를 면밀하게 뜯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으로 관련 연구를 진행해왔다. 잘 알려져 있듯 한국의 사립학교와 중대형 병원, 다수의 사회복지시설은 대부분 ‘학교법인’, ‘의료법인’, ‘사회복지법인’ 등 특수법인 형태로 개편된 재단 형태의 조직에 의해 설립·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조직을 누가 통제하는지, 재정 자원은 어디서 충당되는지, 민주적 감시와 참여의 통로는 어떻게 마련되는지 등의 사안은 그 자체로 대단히 첨예한 정치적 문제다. 이것이 때때로 종교적·이념적 갈등과 정국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는 광경 역시 그리 낯설지 않다. 한국 ‘복지정치’의 간과할 수없는 핵심 장소가 여기에 있기도 하다.

물론 이에 관한 앞선 연구들이 적지 않다. 다만 보다 근본적인 지점으로 돌아가 재단법인 조직 자체의 성격과 그 변화상을 역사적·사회학적 관점에서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연구는 의외로 드물다. 많은 경우에 ‘재단’은 각기 다른 입장에서 사립기관의 ‘공공성’을 훼손하는 주범으로, 혹은 ‘자율성’ 수호를 위한 최후 보루 정도로 상정되어 왔을 뿐이다.

하지만 “일정한 목적에 바쳐진 재산에 의해 구성된 법인”으로 밋밋하게 정의되는 재단법인은 사실 재미있는 역설들로 가득한, 그 자체로 흥미로운 탐구대상이다. 몇 가지만 꼽아보자. 우선 민간 행위자에 의해 설립된 재단법인에는 출연된 자산의 ‘사적’성격과 그것이 전제하는 ‘공익적’ 목적 사이의 긴장이 존재한다. 이렇게 설립된 재단법인은 자산을 투자하거나 시설을 운영하며 이윤을 벌어들이지만, 이러한 경제행위는 비영리성이라는 구속복으로 묶여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역설은 재단법인이 근본적으로 ‘설립자 의지’에 종속된 조직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공적 목적을 띤 재산” 그 자체인 재단법인에는 애초에 인적 구성원이 전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소유주’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

앤드류 카네기와 존 록펠러의 자선재단 설립을 풍자한 그림이다. 닐센은 미국 자선재단이 지닌 ‘평등주의 사회 내의 귀족주의적 조직’으로서의 면모를 지적한 바 있다. 그림!EQIVMGEREJJEMVWNSYVREP.SVK

2011년 6월 ‘비리재단 반대z재단정상화를 위한 전국대학생 공동대책위원회’ 학생들의 시위 모습이다. 신화화된 ‘설립자’의 지위야말로 ‘비

리재단 복귀’의 논거였다. 사진=한겨레

고 ‘설립자 의지’를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특정 집단에 의한 영속적 지배가 나타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요컨대 설립자의 인격에 단단하게 묶인 재단법인은 시민사회 내의 다른 어떤 조직보다 외부이해관계로부터 차단된 조직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근대 이후 재단의 역사에는 고귀한 헌신과 강렬한 소유의식, 찬양과 의혹, 미담과 추문의 양면이 공존해왔다.

임마누엘 칸트부터 소스타인 베블런에 이르는 일부 지식인들은 재단이 사심 없는 증여를 내세워 설립자의 영향력을 영속화하는 ‘봉건적’ 장치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20세기 중반 이후에도 재단 조직에 굴레를 씌우려는 시도와 이를 피하려는 움직임 사이의 충돌은 곳곳에서 이어졌다.

따라서 재단은 그 존재 방식 자체가 중대한 정치적 사안이 되는 몇 안 되는 조직이라 할 만하다. 도금시대와 세계대전, 냉전과 전후 복지국가, 신자유주의와 사유화의 물결로 이어진 ‘장기 20세기’의 격랑을 통과하며 재단 역시 변신을 거듭해왔다. 재단이야말로 그 시대의 경제적·정치적 구조와 역사적 변화를 감지하게 해주는 지진계(地震計)라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다.

재단법인과 함께 한 20세기 한국 사립대학

박사학위논문인 「한국 사립대학체제의 형성과 재단법인의 정치」에서 내가 시도한 것은 재단법인을 둘러싼 복합적 정치의 맥락에서 191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한국 사립대학의 역사를 다시 읽어내는 작업이었다. 앞서 언급한 내용을 고려한다면, 논쟁과 갈등으로 점철된 사립대학 재단의 역사도 단지 파행의 증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 한국의 압축적 사회변동을 읽어내는 중요한 준거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물론 최근 시도되고 있는 한국 대학사 서술에서 재단 문제는 사립대학 난맥상의 원인으로 자주 언급되어 왔다. 뉘앙스는 다르지만, 각 대학이 펴낸 자기 역사도 연구와 교육 못지않게 재단과 설립자의 행보를 공들여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고려되지 못한 근본적인 질문은 여럿 남아있었다. 두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한국에서 사립대학은 왜 하필 ‘재단법인’의 형태로 제도화되었을까? 이는 기존 논의에서 하나의 대전제에 가까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학문적 자치’를 표방하는 대학과 ‘설립자 의지’의 존중이 핵심인 재단법인 사이의 결합은 생각보다 낯선 것일 수도 있다.

사립대학이 재단법인 형태로 설립·관리되는 ‘재단법인형 사립대학’의 역사적 기원은 식민지 시기에서 찾을 수 있다. 1915년 개정된 「사립학교규칙」 이후 사립전문학교에는 예외 없이 재단법인 설립이 요구되었던 것이 계기였다. 해방 이후까지 이어지는 사립대학 재단 역사의 출발점이었다.

여기에는 물론 사립전문학교를 면밀하게 감독하고자 했던 식민권력의 의도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원형인 일본 내지(일본 제국시대의 일본 본토)의 제도다. 소수의 관립 제국대학에 재정을 집중하는 대신, 급증하는 고등교육 진학 수요는 사립 고등교육기관으로 충족시킨다는 것, 그리고 이를 재단법인 형태로 관리하는 것이 1911년 개정된 「사립학교령」 이후 일본 교육정책의 일관된 방침이었다. 다분히 민간 자원의 동원과 관리를 위한 개발주의적 성격의 제도가 식민지 조선에도 거의 그대로 이식되었던 것이다.

일본적 제도의 영향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미군정기 교육관료들은 사립대학은 재단법인만이 설립·운영하도록 한다는 전전(戰前) 일본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았고, 재단법인을 규율했던 구 식민지 법령의 효력도 그대로 지속시켰다.

대학 특유의 자치적 요소보다는 재원 확보·관리에 초점을 두었던 일본적 제도는 1950년대의 사립대학 팽창에는 물론 개발독재기의 대학정책과도 잘 부합했다. 대학의 ‘설립주체’인 재단만을 법인으로 하고, 대학은 재단 산하의 ‘시설’이 되는 현재 사립대학의 모습은 이렇게 탄생했다.

‘출연 없는 지배’의 탄생

둘째, 그렇다면 한국 특유의 사사화(私事化)된 사립대학 지배구조는 언제, 어떻게 출현했을까? 이는 사립대학 운영에 재단법인을 활용하면서 나타난 필연적 결과였을까? 사립대학 재단의 역사에서는 오히려 재단의 소유와 통제, 정당성을 둘러싼 치열한 사회적 경합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재단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 면에서 농지개혁 이후의 여파는 특히 흥미롭다. 흔히 지주들의 농지 기부를 통해 사립대학 재단설립을 촉진했던 요인으로 꼽히는 농지개혁은 소작료 수입에 의존했던 재단 경제를 붕괴시키는 요인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대다수 재단이 대학재정 운영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는 상태로 빠져들었다. 심지어 1950년대 중반부터 사립대학 재단은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기능을 상실하고 등록금 수취에만 열을 올리는 ‘기생적’ 존재로 표상되기까지 했다.

자연스레 설립자 권위에 의존한 사립대학 재단 운영의 정당성 역시 근본적으로 의문시되기 시작했다. 학부형과 교수가 재단 이사회에 참석하는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논의, 심지어 재단 폐지론까지 등장하는 상황이었다. 경제적 출연 기능은 마비되었음에도 독점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는 이사회에 대한 불만은 4·19 이후의 ‘학원 분규’를 계기로 폭발적으로 분출됐다. 다른 형태의 제도화 가능성이 열려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대안적 가능성은 5·16 이후 일련의 법제개혁, 그리고 1963년 「사립학교법」 제정을 통해 봉쇄되고 말았다. 기존 사립대학 재단은 공공성 강화를 명분으로 모두 ‘학교법인’으로 재편되었다. 일부 국가 규제가 강화되었으나, 위협받았던 이사회의 권한도 확고하게 보장되었다. 경제적 출연 기능을 상실했음에도 이사회가 사실상 전권을 행사하는 ‘출연 없는 지배’ 현상 역시 이후 한층 강화되었다.

1970년대 이후 여러 대학에서는 사후적인 ‘설립자 신화’ 구축을 통해, 혹은 가족 경영을 통해 사적지배가 공고화되었다. 1980년대 이후 대학 대중화, 보편화가 사립대학 팽창에 의존하는 형태로 진행된 것도 이를 토대로 한 것이었다.

‘커먼즈’로서의 재단법인은 가능한가

연구와 교육기관인 ‘대학’보다는 그 설립·운영 주체인 ‘재단’에 초점을 맞추었던 학위논문의 연장선에서, 나는 이러한 결과가 한국의 사사성(私事性)을 이해하는데 그 함의가 무엇일지 고민하고 있다.

시시각각 변화했던 사립대학 재단의 모습을 염두에 둔다면, 단순히 이들의 ‘공공성 결여’를 규범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오히려 나는 재단법인을 매개로 구축되는 한국 사회 특유의 ‘사적인 것’에 대한 관념·실천·구조가 무엇인지를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사립 공화국’의 견고한 틀을 넘어설 가능성도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삐걱거리는 마찰음은 점점 커지고 있다. 정부의 각종 재정지원이 크게 늘어났고, 공익법인의 책임성에 대한 요구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지속적 경제성장과 인구증가라는 개발연대의 조건은 이미 송두리째 붕괴되고 있다.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탄생했던 재단법인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 애초에 ‘소유주 없는 공적 자산’의 성격을 내포하는 재단법인은 과연 커먼즈(commons)로 기능할 수 있을까? 어떤 정치사회적 과정이 이를 가능하게 할까? 이런 쉽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도 찬찬히 찾아보고 싶다.

김일환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객원연구원

2022년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한국 사립대학체제의 형성과 재단법인의 정치」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논문에서는 식민지기부터 1970년대 후반에 이르는 시기에 걸쳐 한국 특유의 사립대학 재단 지배구조가 출현하는 역사적 과정을 추적하고자 시도했다. 최근에는 한국의 교육·복지·의료 등 여러 영역에 뿌리내린 민간 재단의 독특한 구조와 성격을 구체적으로 해명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져왔다. 저서로 『절멸과 갱생 사이: 형제복지원의 사회학』(공저), 논문으로는 「‘부재지주’, ‘영리기업’에서 ‘기생적 존재’로: 1950년대 문교재단의 경제적 실천과 한국 사립대」,「지역에서의 ‘부랑인’ 수용과 민간 사회복지: 1960-70년대 부산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알고리즘 비공개한 지피티-4…“빅테크 욕망이 반영된 결과”

‘인공지능의 몸과 노동’ 학술대회

지피티-4 모델의 내부 알고리즘 비공개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모든 데이터셋, 코드가 닫히면서 어떠한 논리로 인간의 질문에 답하는지 알 수 없게 됐다. 이광석 서울과기대 교수(IT정책전문대학원)는 “최대 주주인 마이크로소프트(MS)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라고 비판했다. 그는 “디지털 코드의 개방성에 기댄 인공지능의 개발 문화와 개방 철학의 기조 또한 점차 자본주의 인클로저(종획)의 사유화된 질서로 편입되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지난달 28일, 중앙대 인문콘텐츠연구소 HK+ 인공지능인문학사업단이 주최하는 제27회 인공지능인문학 국내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는 ‘인공지능의 몸과 노동’이었다. 이 교수는 「인공지능과 물성: 기술 생태학적 조건」을 발표했다. 인공지능이 인류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계산부터 소통까지 대부분이 알고리즘 연산 과정에 ‘위임’되고 있다. 이 교수는 “인공지능의 자동화 수준은 대체로 데이터 수집·저장 능력(빅데이터, 플랫폼, 클라우드), 효과적인 기계학습 능력(지도·비지도·강화 학습), 연산처리 속도와 처리량(CPU, GPU, 반도체), 정밀 수행 능력(알고리즘, 프로그램)에 달려 있다”라고 설명했다.

인공지능이 사회에 도입되면서 크게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첫째, 인간의 물리적 사회관계가 SNS 등 AI 알고리즘인 ‘소셜’ 관계·소통으로 흡수·대체되고 있다. 둘째, 생성형 AI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인간의 사유 과정과 대상 세계의 탐구 행위가 인공지능에 위탁되고 있다. 즉, 인공지능에 의해서 사회관계마저 자동화되는 것이다. 인간의 물리적 사회관계가 ‘소셜’ 전산학적 알고리즘 연결로 교체돼왔다.

탄소 배출과 인간의 노동이 투입되는 자동화

그런데 문제는 인공지능의 자동화가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디지털은 막대한 양의 희귀금속과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는 에너지를 소비한다”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구글 검색에 5~10밀리그램의 탄소가 배출된다. 인터넷 브라우징에 주전자 물을 끓일 정도의 초당 20밀리그램의 탄소가 배출된다. IT 업계는 지구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4%를 차지한다. 전 세계 생산 전기의 10% 정도를 끌어다 쓰고 있는 셈이다. 데이터센터는 이러한 과정에서 탄소 배출의 70%를 차지한다.

지난달 28일 열린 제27회 인공지능인문학 국내학술대회 ‘인공지능의 몸과 노동’에서 이광석 서울과기대 교수(IT정책전문대학원)가 「인공지능과 물성: 기술 생태학적 조건」을 발표했다. 사진=중앙대 인문콘텐츠연구소

“인류가 원유 등 화석원료의 채굴로 산업 기계를 돌리는 물질 에너지원을 찾았던 것처럼, 인간 데이터와 정보는 인공지능의 연산처리 공정을 원활하게 하는 비사물 땔감이자 원료 구실을 한다.”

- 이광석 서울과기대 교수

구글에서만 인공지능이 전체 전력 사용량의 10~15%를 차지한다. 2021년에만 2.3테라와트시(TWh: 1 와트시는 1시간 동안 생산·소비되는 전력량을 뜻한다. 1 테라와트시는 1조 와트시이다)를 소비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2.3테라와트시는 애틀랜타시의 모든 가정이 매년 소비하는 전력량과 맞먹는다. 또한 챗지피티-3 훈련에 1천287메가와트시(1메가와트시는 100만 와트시이다)의 전력을 소비했다. 더불어 총 18만5000갤런(70만 리터)의 냉각수 물을 사용하고, 552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이는 미국 자동차 110대가 일 년에 배출하는 탄소 배출량과 비슷하다.

더욱이, 인간마저 원료로 활용된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간이 기계의 전력원으로 배양되는 모습과 같다. “인류가 원유 등 화석원료의 채굴로 산업 기계를 돌리는 물질 에너지원을 찾았던 것처럼, 인간 데이터와 정보는 인공지능의 연산처리 공정을 원활하게 하는 비사물 땔감이자 원료 구실을 한다.” 이 가운데 노동의 계급화도 심화된다. 이 교수는 이

탈리아 사상가 조지 카펜치스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남반구 광물 채굴 노동, 반도체 부품노동, 휴대폰 조립노동, 성·폭력 영상 필터링 등 콘텐츠조정 노동, 가상화폐 채굴 노동, IT기술 지원노동, IT실험실 청소노동, AI 사물 식별과 강화학습을 돕는 미세노동 등이 가상 자본을 떠받치는 하류노동에 속한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사물성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이 교수는 “인공지능의 반생태적 ‘독성’”이라고 비판했다.

토론자로 나선 문규민 중앙대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는 지피티-4의 폐쇄적 조치에 대해 “코드개발 문화, 개방성의 철학, 오픈소스의 기조와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렇다면 이렇게 경쟁적인 사유화와 폐쇄의 경향을 어떻게 견제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했다.

광고수익 10억 원 버는 가상인간 ‘로지’

이정현 중앙대 인문콘텐츠연구소 HK연구교수는 「가상인간을 ‘생산’하는 몸, 노동, 미디어: 가상인간 로지 사례를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실제로 가상인간 ‘로지’는 2021년 광고모델로 데뷔해, 지난해 2월 첫 싱글 앨범을 출시했다. 올해 4월, 로지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5만 명이고, 연 광고수익은 10억 원 이상이다. 로지는 영원한 22세를 표방하며 광고모델, 홍보대사, 소셜미디어, 방송활동 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교수는 로지 사례의 세 가지 특징을 제시했다. 첫째, 가상인간을 생산하는 기술·미디어다. 둘째, 춤추고, 연기하고, 포즈를 취하는 인간의 얼굴 없는 몸이

다. 셋째, 대역을 섭외하고 합성하는 등의 생산 노동이다.

이 교수는 “자율성·유연성·불안정성으로 대표되는 창의노동과 다른 맥락의 노동이 출현했다”라며 “미디어 유통·배포, 알고리즘 연구, 인프라 연구 등을 결합한 생산자 연구의 새로운 지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블랙박스화된 인공지능 생산 노동연구, 생산 환경·가치체계·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 생산과정 연구를 제안했다.

토론자인 허유선 동국대 강사(철학)는 가상인간을 작동시키기 위한 인간의 노동이 드러나지 않는 점을 비판했다. “‘왜’ 생산자 관점인가? 가상인간 로지는 MZ 세대의 선호에 부합하며 이를 리드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물상으로 제시되지만, 새로운 것처럼 드러나기 위해 인간의 무수한 노동을 비가시화한다”라며 “얼굴 표정, 신체 대역, 음성 데이터, 광고 기획, 인스타그램 포스트와 댓글 관리 등의 인간 노동은 기존과 다르지 않은 방식이지만 새로이 생성된 ‘로지’라는 이미지와 캐릭터에 가려진다”라고 지적했다.

그림자 노동으로 구현되는 인공지능 시스템

전철 한신대 교수(신학과)이자 신학대학원 원장은 「인간, 기계, 몸: 종교와 과학의 대화 담론을 중심으로」 발표에서 챗지피티의 작동에 가려진 인간의 ‘그림자 노동’을 우려했다. 전 교수는 “챗지피티의 유해한 콘텐츠를 제한하는 안전하고 유용한 AI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데이터 레이블 작업에 투입된 케냐 노동자들의 ‘그림자 노동’ 시급은 1.32달러에서 2달러 사이였다”라고 일갈했다. 그는 “새롭게 진화한 초거대 인공지능 머신들은 수많은 인간의 손과 발과 몸을 더욱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다”라며 “데이터 확보와 데이터 레이블링은 결국 인간의 작업이 동원된다”라고 분석했다.

특히 전 교수는 “인공지능 몸 담론이 초지능의 동맹과 네트워크를 둘러싼 거대한 몸들의 확산을 예견한다”라며 “그것은 인공지능 자본주의의 과제이기도 하지만, 신학적으로는 고도의 상징체계로서의 ‘신령한 몸’(soma pneumatikon)이 인공지능 문명이 구현하는 ‘디지털 몸’과 어떠한 대면과 공존을 취할 수 있는지를 타진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그는 “거대한 디지털 인공지능 마음·몸의 탄생, 체화, 지향에 대한 논의는 ‘몸의 구원’에 관한 인공지능 시대 종교와 과학 담론의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수포자’보다 ‘수호자’ 늘어나는 사회 꿈꾼다

여성과학기술인 이야기 ㉓

권오남 서울대 교수

수학 박사 후 교육학 석사학위도 취득

한국 수학교육의 국제화 이끄는 소명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이 시대 여성과학인 소개 캠페인 ‘She Did It’을 펼치고 있다. <교수신문>은 여성과학기술인이 본인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경력 성장에 도움을 주기 위한 다양한 이야기를 공동으로 소개한다. 여성과학기술인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생생한 목소리가 교수 사회에 진심을 담아 전달되길 기대한다. 스물세 번째는 권오남 서울대 교수다.

권오남 서울대 교수(수학교육과)는 수학교육자들의 교육자이다. 권 교수는 우리나라 수학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수학교사들을 육성하는 일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수학교육 국제 학술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국제화에 노력했다. 특히 지난해 4월, 아시아권에선 최초로 스웨덴 스톡홀롬대에서 수학·과학교육 혁신을 이끈 이들에게 주는 ‘스벤드 페데르센 교육상’을 수상했다.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귀류법이라는 증명 방법을 접하면서 수학에서 사실을 정당화해나가는 과정이 무척 논리적·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극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무한 개념을 다루는 것이 무척 도발적이라는 생각도 했다. 자연스럽게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권 교수는 감수성이 풍부한 어린 시절부터 수학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며 결국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길에까지 나아갔다.

권오남 서울대 교수(수학교육과)는 이화여대에서 수학교육을 전공하고, 서울대에서 수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인디애나대 블루밍턴에서 복소해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교수를 역임했다. 사진=WISET

수학-젠더-창의성을 개척하다

권 교수는 1990년대 초,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참석자 500여 명 중 여성은 20명 정도였다. 강연자도 자신 한 명뿐이었다. 그는 “수학에서 여성의 자리가 턱없이 적다는 것과 한국 유학생들의 창의적인 논문집필의 어려움이라는 두 사실을 직면했을 때 이것을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에 대한 문제로 인식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권 교수는 박사학위 취득 후, 교육학 석사학위를 따로 취득했다. 수학과 젠더, 창의성은 권 교수가 개척하는 분야다.

권 교수의 주요 연구 분야는 대학의 수학교육이다. 교수 방법뿐만 아니라 교수-학습에서 일어나

는 현상을 연구해왔다. 창의적 사고 계발을 위한 교육환경, 교육내용, 교육방법 등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크리스 라스무센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교수와 공동으로 20년 전에 미분방정식 과목에서 탐구 지향 교수법을 개발했다. “보통 수학 학습은 ‘정의-개념-응용문제’ 순서가 전통적이다. 탐구 지향 교수법은 수학적 현상에서 수학적 아이디어와 개념을 개발하는 접근이며 전통적인 방법의 역순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수학적 현상이 담긴 맥락을 통해 정의와 개념을 재발명(혹은 재발견) 하는 과정이다.”

탐구 지향 교수 방법에 관한 일련의 논문은 2000년 초반부터 꾸준히 국제 학술지에 발표됐다. 선형대수학, 현대대수학, 해석개론 등 대학 수학교과목까지 전 세계 여러 연구자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권 교수와 라스무센 교수의 공동연구논문이 탐구 지향 교수법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권 교수는 한국 수학교육학계의 국제화에 힘쓰고 있다. 그는 “모든 학문이 그렇겠지만 연구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논문의 인용 횟수가 중요하다”라며 “인용 횟수를 높이는 방법은 국제적인 학술대회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것과 함께, 국제적인 학자와 공동 연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권 교수는 “서구 중심의 수학 이론이 아닌 우리만의 이론을 만들기 위해선 결국 네트워킹이 중요하다”라며 “지도 학생들과 해외 학술대회에 참석할 때 나를 따라다니지 말고 공동 연구할 인연을 만들어 오라고 권유한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권 교수는 2000년 일본 동경에서 개최된 ‘제9차 국제 수학교육대회(4년에 한 번 열리는 수학교육의 올림픽)’에서 한국인 최초로 초청 강연자로 선정됐다. 2002년 그리스 크레타섬에서

개최된 ‘국제 학술대회’에서 기조 강연자로 초청됐던 적도 있다. 기조 강연자 5명 중 유일한 여성이며 최연소였다. 2008년 ‘국제수학위원회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150명 중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초청되기도 했다. 그때 동양에서는 일본인 2명, 중국인 2명뿐이었다.

하지만 수학교육자로서 ‘수포자’라는 말이 너무 안타깝다. 수포자라는 말이 유행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수학을 시험 문제만으로 평가하는 시스템 때문이다. 수학은 암기가 아니라 사고하는 학문이다. 권 교수는 “탐구 지향 교수법 등이 학교 현장에 적극적으로 시행되고, 평가내용과 방법도 교수 방법과 일관성 있게 변화할 수 있는 교육환경이 절실하다”라며 “‘수포자’ 보다 ‘수옹자(수학을 옹호하는 사람)’나 ‘수호(好)자’와 같은 긍정적인 단어가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국제적 네트워크 구성과 도전하는 수학자 양성

권 교수는 우리나라 수학교육계의 차세대 학자들이 세계적인 학자로 성장하는 데 온 힘을 다해 도와주고 싶어한다. 국제적으로는 아프리카와 아시아국 학자들의 네트워크 구성에 힘쓸 생각이다. 구체적으로는 2025년 서울대에서 열리는 ‘제9차 동아시아 수학교육 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이 안에서 젊은 학자들이 네트워크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 계획이다. 수학교육의 연구가 우리나라 교육 정책에 반영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권 교수는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은 경우가 꽤 있다. 도전하는 수학교육학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나라 수학교육계가 크게 발전하리라 기대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두 뇌, 협력의 뇌과학

우타 프리스 외 2인 지음 | 대니얼 로크 그림 | 정지인 옮김 | 김영사 | 348쪽

신경과학 분야의 저명한 두 교수 프리스 부부가 들려주는 사회 인지에 관한 논픽션 그래픽 노블. 개별적 뇌가 아닌, 사회적 상황에서 작동하는 뇌에 관해 최신 연구를 바탕으로 설명한다. 인생의 동반자이자 학자로서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함께 경력을 쌓아가면서 두 사람은 ‘자유의지’와 ‘의식’ 등 심리학과 신경과학의 굵직한 연구들을 수행해왔다.

루소의 『사회계약론』 입문

크리스토퍼 D. 레이트 지음 | 박호성 옮김 | 서광사 | 186쪽

이 책은 저자가 쓴 ‘Rousseau’s The Social Contract’ (2008)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독자들이 서양 철학의 고전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고 간결하게 해설한 리더스 가이드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옮긴이 박호성 수석연구위원은 루소의 정치사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비롯한 정치사상 저작들 및 『에밀―교육에 관하여』 등 대표 저작을 우리말로 옮겨 출간한 연구자이다.

20세기, 그 너머의 과학사

존 에이거 지음 | 김동광·김명진 옮김 | 뿌리와이파리 | 848쪽

흔히들 그렇게 생각한다. 마치 수도승처럼, 골방에 틀어박혀 묵묵히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들이 새로운 법칙과 물질을 발견하고, 그것이 우리를 진보로 이끌어 현대 문명이라는 찬란한 성과를 이룩했다고. 환경 오염과 전쟁 같은 것은 과학의 오용이며, 과학의 진보에 있어서 그것은 일종의 부작용같은 것이라고.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선입견에 강력한 반론을 제기한다.

유튜브, 온라인 매체와 참여 문화

진 버지스·조슈아 그린 지음 | 권재웅·노광우 옮김 | 한울아카데미 | 248쪽

유튜브는 전 세계 사람들의 일상생활 한편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지배적인 매체가 되었다. 2005년 유튜브가 혁신적인 스타트업으로서 서비스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유 브의 사업 모델은 명확하지 않았고 어떻게 발전할지 알 수 없었다. 유튜브의 등장으로 TV, 신문 중심이었던 콘텐츠 전송 방식은 급격하고 커다란 변화를 맞았다.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를 사용하고 기존의 주류 매체와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한국의 주택

주남철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 436쪽

한국 고건축 학계의 1세대 연구자이자 전통 건축 복원과 보존에 진력을 다한 저자의 유작이 별세 1주기를 기념하며 출간됐다. 이 책은 저자가 타계하기 직전까지 애정을 기울여 교정을 거듭했던 결과물로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사람은 생활에 필요한 공간을 상고시대부터 찾고 구축해 왔다. 곧 ‘주거’를 위한 공간을 주택이라 명명했으며, 주택은 자연환경, 시대, 지역, 문화에 영향을 받으며 끊임없이 변모해 왔다.

인권으로 살펴본 기후 위기 이야기

최우리 외 6인 지음 | 철수와영희 | 208쪽

이 책에서 기후 위기는 사람들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인 인권을 침해당하는 문제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초한 위험이기에, 사람들이 힘과 지혜를 모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기에, 모두가 뜻을 모아 현명한 답을 찾자고 말한다. 또 기후 위기를 인류 전체의 탐욕과 도덕적 해이의 결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기후 위기의 해결책은 정의와 평등에 있다.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역사

헬레나 로젠블랫 지음 | 김승진 옮김 | 니케북스 | 488쪽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적 이데올로기로 이해되는 자유주의의 개념은 20세기 중반에야 만들어진 비교적 새로운 개념이다. 그러나 고대 로마 이래 오랫동안 자유주의는 공공선과 의무, 자기희생 등에 바탕을 둔 도덕적 기획이었다. 이러한 자유주의의 역사는 어쩌다 잊히고 말았을까? 이 책은 오늘날 정치 담론의 장에서 자유주의의 역사와 변천 과정을 면밀하게 추적한다.

분자 조각가들

백승만 지음 | 해나무 | 340쪽

신약을 개발하는 화학자들은 분자를 조각하는 현대의 연금술사들이다. 분자 조각가들은 화합물에 탄소, 수소, 산소 같은 원자를 붙이거나 제거하고, 커다란 분자를 연결해 형태를 만든다. 하지만 분자 조각가들의 최종 목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조각한 화합물이 나쁜 단백질에 찰싹 달라붙어 기능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도시 오목눈이 성장기

오영조 지음 | 자연과생태 | 172쪽

도시 공원에서 살아가는 오목눈이를 4년 동안 꾸준하게 관찰한 기록이다. 오목눈이는 그저 앙증맞은 새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환경에서 비슷하게 아등바등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웃’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는 사랑스러운 생김새나 용감무쌍한 순간만을 들어 오목눈이를 특별한 존재처럼 예찬하지 않는다. 정확한 눈과 애틋한 마음으로 썼다. 세세하게 살핀 생태를 가감 없이 전달한다.

저자가 말하다_『말: 감각의 형태』 정지은 지음 | 은행나무 | 172쪽

말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실존·체험’의 언어

말의 부차적 요소가 오히려 본질이 아닐까

인공지능이 만드는 언어 속 인간의 말 고찰

디지털 기술에 더해서 AI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들이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서 우리의 생활양식을 바꿔놓고 있다. 친구들이나 지인들 사이에서 통화보다는 문자 메시지가 더 일상적인 소통의 수단이 되고, 식당과 카페에서도 키오스크 주문이 늘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음성 언어보다 텍스트 언어가, 표현보다 필요한 메시지의 전달이 이루어지는 시대다.

그런데 언어가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일까? 우리는 여전히 시와 소설을 읽고, 노래를 들으며, 써진 말들과 함께 그 속에 담긴 감정에 공감한다. 이 감정이 작품을 창작하면서 저자가 품었던 것과 같은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아무튼 언어는 메시지 이외의 것을 전달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더 근본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말을 통해 관계를 맺고, 사회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한다. 문자 언어와 달리 말은 목소리와 어조를 통해서 말하는 자가 의식하지 않은 감정과 태도까지 전달해준다. 말은 신체를 동원한다. 즉 말은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말하는 자를 드러내고 타인과 관계를 맺게 해준다. 실존주의 현상학자 메를로 퐁티는 자신이 후설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점을 충분히 밝히면서도 수학의 기호와 같은 순수 언어를 지향했던 후설의 언어 관념을 비판하고, 그가 간과했던 실존적 의미의

언어를 강조했다. 삶과 신체의 능동성이 표출되는 말은 당연히 노래할 때처럼 우리의 목소리를 끌어낼 것이다.

말에 대한 나의 관심은 코로나 시기 동안 생겨났다. 비대면으로 강의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 나는 강의 내용을 떠나서 나의 말이 어떤 식으로 학생들에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비대면 환경 속에서 모든 주의가 말에 집중되기 때문에, 음성과 어조, 말의 속도 등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며, 내용을 잘 전달하려면 말의 그런 부차적인 요소들을 정확하게 의식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음성, 어조, 말의 속도 등이 실은 말에서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과 함께 나는 말이 갖는 폭넓은 함의를 고찰하게 됐다.

루소는 확실한 문법 체계를 세우려는 당대의 경향에 맞서 언어의 기원을 상상하면서 말의 정념성과 자연성을 회복하기를 원했다. 루소처럼 자연과 문화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보다는 인간 신체의 실존 안에서 그 둘의 공존을 보았던 현상학자 퐁티는 자신의 방식으로 인간의 말 안에서 본래적이면서 가장 원초적인 지향성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 두 철학자, 루소와 퐁티의 언어 이론에 대한 독서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이자 시작점이 됐다.

이 책은 우선 말에 대한 책이다. 말의 발

생과 정의, 말의 실존적 의미, 말속에 녹아있는 감각과 체험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첫번째 장에서는 루소, 자크 라캉과 프로이트, 그리고 소쉬르의 언어이론이 간략하게 소개됐다. 루소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언어의 시작에 대한 가설을 세웠다면, 프로이트와 라캉은 한 개인의 역사 안에서 어떻게 언어가 도착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소쉬르는 최초로 언어 자체를 연구 대상으로 삼은 학자이다.

두 번째 장은 말의 실존적 측면을 다뤘다. 퐁티의 신체 현상학 안에서 말을 조명했고, 들뢰즈의 무인도 이론을 통해서 타인의 존재 여부가 한 개인의 지각과 말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 세 번째 장은 체험과 감각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문학 작품들과 문장 속에 들어와 있는지를 논했고, 이를 위해서 퐁티의 키아즘, 들뢰즈의 프루스트론, 조지 레이코프와 마크존슨의 은유이론을 참고했다.

AI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언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AI가 간단한 기사는 물론 소설과 시를 써내는 시대다. AI와 함께 앞으로 전개될 미래가 어떨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할 테지만, 적어도 인간의 말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면 AI와 함께 살아갈 인류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조금은 덜 수 있지 않을까.

정지은

홍익대 교양과 교수·현상학

서평_『대학은 어떻게 운영되는가』 존 V. 롬바르디 지음 | 윤영섭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 352쪽

‘명성·순위’에 목매다는 대학…경쟁력은 어디에 있을까

“대학 랭킹(순위 매김)은 전염병 수준이다.” 존 V. 롬바르디 전 미국 인디애나대 교수(역사학과)는 최근 번역·출간된 『대학은 어떻게 운영되는가』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고도로 경쟁적인 대학 비즈니스가 각 대학이 자신을 최고라 선전하고 뛰어난 질을 홍보하며 많은 색다른 성취물들을 전시하게 만든다”라고 비판했다. 롬바르디는 플로리다대 총장, 메사추세츠대 에머스트 캠퍼스 총장, 루이지애나대 총장, 존스홉킨스대 부총장 등을 역임하며 체험한 대학경영에 대한

기록을 책으로 남겼다.

명성-기반 설문조사에 의존하는 대학 랭킹

조사방법에 치명적 결함 있는 순위에도 집착

전 세계 학생들이 미국의 대학

에 모여든다. 하지만 대학 순위에 목매는 건 매한가지다.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 <포브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대학 랭킹의 상업적 가치를 경쟁적으로 좇는다. 롬바르디는 대학 랭킹에서 주된 이슈는 바로 순위를 결정하는 방법론이라고 꼬집는다. “미국에서 대학 랭킹은 주로 입학생의 질, 대학의 부, 그리고 확인 가능한 통계적 특성을 고려하는 명성-기반의 설문조사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언론들은 매년 대학 랭킹 설계하는 방법을 조금씩 바꿔서 순위를 조정한다.

롬바르디는 “명성-기반의 평가는 단지 역사적 권위와 연관된 ‘입에서 입으로’의 개념”이라며 “랭킹이 동문과 정치가에게 가치가 있기 때문에 대학들은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미국에서 랭킹은 누구나 즐기는 게임이고, 거의 모든

대학이 방법론에 치명적 결함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좋은 랭킹 결과를 웹사이트에 올린다”라며 “대학은 명성의 원천이 어디에 있든지 권위 있게 보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다”라고 일갈했다. 정작 중요한 건 티칭·연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학 경쟁력은 무엇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흔히 어떤 좋은 학술지에 얼마만큼의 출판물을 출간했고, 논문 인용 수가 어떤지를 측정한다. 하지만 롬바르디는 “학술지에 출판된 모든 논문이 같은 가치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때로는 어디에 인용이 되었는가의

이슈가 중요해진다”라며 대학 경쟁력 평가의 어려움을 지적했다. 그래서 대안으로 제시한 건 ‘글로벌연구벤치마킹시스템(GRBS)’이다. 이 시스템은 250개 이상의 세분화된 주제를 영역별로 측정해서 창의적 연구 평가의 방법을 제시한다. 글로벌연구벤치마킹시스템은 유엔대학과 미국의 대학성과측정센터가 협업해 개발했다. 다른 대학과의 비교가 아닌 국제적 표준에 따라 연구성과를 측정한다.

롬바르디는 “대학경영은 언제나 과학이라기보다 예술로서 창의성과 책임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날이 갈수록 교육의 수요가 증가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지속적 연구와 성장이 필요하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고임금 일자리 제공과 지역 경제의 발전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은 ‘질(質) 엔진’으로써 작동해야 한다. 저자에 따르면, 대학의 목적은 외부에 연구성과물·졸업생·공공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은 최고의 교수진과 최고의 학생, 최고의 학술환경 등의 자원을 확보해서 최고 수준의 교육과 연구, 그리고 최대의 질을 끊임없이 빠르게 몰고가는 ‘질 엔진’이다. 그런 면에서는 상업활동을 수행하는 일반기업과 같다.” 예를 들어, 디즈니월드는 단순히 오락프로그램이 아니라 오락과 관련된 최고의 질을 판매함으로써 가치를 높이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다.

대학의 핵심 경영원리는 돈-성과-시간으로 압축된다. 대놓고 “이 책은 돈을 좇는다”라고 적었다. “대학 리더들이 영감을 줄 목적으로 잘 표현한 전략계획과 사명 헌장보다 돈 배분의 기준이 훨씬 더 강한 인센티브를 창출한다.” 교수들의 연구는 한마디로 “본질적으로 돈 잃는 사업”이기도 하다. 물론 교수들의 연구에서 언젠가 세상을 바꾸는 좋은 기술을 만들어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정말 어렵고 흔치 않다.

다음의 대화는 연구가 대학의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 “교수들이 하는 연구라는 거 정말 쓸데없는 일이에요. 연말에 잘 되면 전 세계에서 단지 10명 정도가 이해하는 논문을 쓰겠지만 프로젝트가 끝나면 보통 보여 줄 것이 없어요.”, “만약 연구를 안 했더라면, 우리 같은 나이 먹은 사람들은 지금 살아 있지도 못하고, 아이폰은 존재하지 않고, CD 플레이어는 작동하지도 않을 겁니다.”, “네, 그래요. 몇 개는 건져요. 그런데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바보 같고 괴상한 아이디어에 엄청난 시간과 돈을 낭비해요.”, “그럴지 모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실상은 연구란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한 것이고, 또 우리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리 알 수는 없지만 맞을 때는 세상을 바꿉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저자가 말하다_『기후로 다시 읽는 세계사』 이동민 지음 | 갈매나무 | 288쪽

인류의 흥망성쇠, 기후가 이끈다

고대 미노스 문명은 엘니뇨 남방진동으로 쇠락

21세기 말, 지구 평균기온 최소 1.5~2도 상승 예측

올봄 날씨는 유별나다. 4월이 지나서야 만개할 벚꽃이 3월 하순에 모두 피었다가 평년보다 훨씬 일찍 져버렸다. 결국 전국의 벚꽃축제와 꽃놀이 축제는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이어진 4월에는 기온이 널뛰듯해서 초여름 날씨와 늦겨울 같은 날씨가 며칠 간격으로 오고 갔다.

세계 곳곳에서 봄꽃이 너무 빨리 피고 빨리 지거나, 과도한 일교차와 같은 이상 기후 현상이 이어졌다. 아프리카에서는 매년 경상남북도와 전라남북도를 합한 정도에 맞먹는 면적이 사막이나 사헬 등의 건조지대로 변하고 있다. 몽골 역시 사막화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유목 생활의 터전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ISIL, 탈레반, 보코하람 같은 극단주의 테러단체는 사막화로 인해 빚어진 기근과 빈곤, 치안의 부재를 자양분 삼아 세력을 키우며, 세계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와 안보를 심각하게 위

협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머지않은 미래에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사라질 섬나라 이야기도 심상치 않다.

사실 인류는 선사시대의 기후변화, 정확히는 빙하기와 간빙기의 주기적인 교대가 때맞춰 일어난 덕분에 아프리카 남부를 벗어나 전 세계로 퍼져갈 수 있었다. 그리고 1만여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농경에 적합한 기후가 조성되고, 덧붙여 그러한 기후변화로 인해 경작할 수 있는 식물과 사육할 수 있는 동물이 대거 등장한 덕

분에 인류는 지구상에 등장한 지 무려 19만 년이나 지난 시점에서야 비로소 문명의 싹을 틔울 수 있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20만 년이 넘도록 이어진 기후변화, 그리고 마지막 빙하기의 종식이 가져온 지구 환경의 변화가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까지도 아프리카 남부에나 서식하는 머리 좋고 도구를 쓸 줄 아는 야생동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명이 태동한 뒤의 역사 역시 기후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고대 미노스 문명은 지중해 동부를 잇는 교통의 요지 크레타섬에 입지한 덕분에 천 년이 넘도록 번성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입지 조건이 엘니뇨 남방진동이 초래하는 기근에 유달리 취약한 덕분에 결국 몰락한 뒤 문명의 중심지를 그리스 본토로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로마, 한(漢), 몽골 제국, 명(明) 등과 같은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대제국

의 흥망성쇠, 그리고 신대륙으로의 이주나 프랑스 혁명과 같은 인류사의 방향을 크게 바꿔놓은 대사건 역시 기후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요컨대 기후는 인류 문명을 태동케 하고 역사와 사회를 이끌어 온 상수였던 셈이다. 이러한 점에서 인류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기후라는 시각에서 역사를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후변화는 근대 이전의 기후변화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인간이 배출한 각종 온실가스로 인해, 기후

변화의 속도와 폭이 전근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고 커졌기 때문이다. 사실 인류는 문명을 이룩한 이래 산업혁명 직전이었던 18세기 말까지 불을 사용하고 논밭을 일구면서 지구 평균기온을 0.8도 정도 올려 왔다. 하지만 이렇게 지구 평균기온이 0.8도 오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게 잡아도 수천 년에서 길게 잡으면 1만 년이 넘었다. 그동안 지구는 기온이 계속해서 변해 왔는데, 평균기온이 불과 1도만 오르거나 내려도 위대한 문명과 대제국의 운명이 달라질 정도였다.

산업혁명 이후 20세기 후반까지 인류는 지구 평균기온을 0.6도나 올렸다. 산업화 이전이라면 수천 년에 걸쳐 일어날 변화가 고작 2백 년 만에 일어난 셈이다. 더욱 암울한 사실은, 오늘날 세계 각국이 파리 기후협약에서 결정한 온실가스 감축 기준을

충실히 따른다 할지라도 21세기 말이 되면 지구 평균기온이 최소 1.5~2도는 상승하리라고 예측된다는 점이다. 전근대 같으면 있을 수도 없었고 감당하기도 극히 어려웠을 기후변화가 이미 현실화된 것이다.

우리는 기후가 인류 문명과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쳐 왔는가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후위기 시대에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기후로 세계사를 다시 읽기는 기후변화 시대의 우리가 꼭 수행해야 할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이동민

가톨릭관동대 지리교육과 교수

문화 비틀어보기_『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 윤태진·김지윤 지음 | 몽스북 | 268쪽

여성은 ‘게이머 법칙’에 어울리지 않는다?

게임이 남성의 문화라는 것을 게임 산업과 개발자, 그리고 게임 이용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여성 게이머는 게임 문화의 침입자로 취급된다. 여성 게이머는 불공정한 방법으로 레벨을 올린 사람이나 남성들에게 애교를 부리거나 이기적으로 게임을 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지만 그 게이머의 실제 성별을 확인할 수 있는 명확한 방

여성은 남성 중심 게이머 문화에 방해자일 뿐일까

다양성·포용성 없는 게임 내 폭력과 여성 배제

법은 없다. 그저 여성이 게임이라는 남성적 영역의 외부자라는 이유만으로 ‘게이머 법칙’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여성이라고 미루어 짐작하며 비난 대상으로 삼아 배제하려는 것이다.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는 게임과 젠더 이슈를 연구해왔던 온 저자들이 이제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서 “남성 게이머를 탓하는 것을 넘어서” 게임 문화의 대안을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이 책은 방영 당시에도 여성 혐오적 묘사로 논란이 됐던 플레이스테이션 코리아의 광고(2016)가 상징적으로 드러낸 남성 문화로서의 게임에 대한 인식과 게임 문화의 방해자인 여성 이미지를 비평한다. 이제까지 게임 문화에서 여성 게이머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서구에서 밈화된 여성 게이머에 대한 인식은 우리나라의 여

성 게이머에 대한 경멸적인 멸칭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여성이 게임에서 재현되는 방식에 대한 논의가 전통적인 성적 대상화 논의보다 한발 더 나아갈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물론 한국의 게임 문화에서 여성 이미지 재현은 여전히 문제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성적 대상화된 여성 게임 캐릭터에 대한 비판

이 제기되어도, 여성 캐릭터의 의상 노출이 적어지거나, 가슴이나 엉덩이에 대한 묘사 방식이 달라지면 이용자가 항의를

하기 때문에 게임 산업 측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고집한다.

하지만 재현과 현실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꾸준히 추적하다 보면 사회 변화를 추동하기도 하고 반영하기도 하는 게임 내 여성 재현의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디아블로4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이미지에 대한 한국 남성 게이머의 반발이 게임 비평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가시화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발은 이미 AAA(초대작) 게임에서부터 나타나는 다양한 여성들과 이 캐릭터를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의 복합적 수행 양상 변화에 비추어 볼 때 “구체제의 복원(250쪽)”을 꿈꾸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제기한 중요한 문제의 식은 현재 게임 문화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이는 문제가 일종의 퇴행적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자연스럽게 사라질 어떤 것으로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에 개입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2016년 클로저스게임에서부터 시작된 게임 업계 내 여성 프리랜서에 대한 사상 검증 논란은 지금까지도 게임 업계의 여성 노동자에 대한 억압으로 작동하고 있다. 여성 게이머들은 게임 내 채팅에서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성차별적 혐오표현에 시달리면서 피로를 호소한다. 하지만 게임 산업은 이를 ‘이용자’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페미니스트 게임비평가의 입장에서 이 모든 문제가 ‘남성게이머’ 문제라고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게임 산업이 다양성과 포용성이 없는 게임 내 재현, 폭력성이 내재한 게임 내

상호작용 문화, 여성 게이머에 대한 배제를 정당화하는 각종 밈과 소통 방식의 유행에 대해 이를 개선하거나 바꾸어나가려고 하기보다는 ‘남성 게이머’가 원하는 것이라는 핑계로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게임 업계의 책임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활성화는 중요하다. 물론 실제 ‘독성 문화’적 양상은 게임 업계의 변화와 더불어 게이머 문화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게임을 하는 모두에게 즐거움이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한다는 이 책의 당부는 앞으로 수행될 게임 문화에 대한 연구와 실천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교수

만들어진 붕괴

데이비드 A. 스톡맨 지음 | 한다해 옮김 | 한스미디어 | 332쪽

이 책은 미국의 워싱턴 정가와 월스트리트 금융계에서 40년 동안 경력을 다져온 저자가 눈앞에 닥친 경제 시스템의 붕괴에 대해서 쓴 책이다. 그는 미시간주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고, 바로 뒤이어 레이건 행정부에서 예산관리실 국장직을 수행한 인물이다. 저자는 미국 사회 정·재계의 심장부에서 있었고, 그런 까닭에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가장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렇게 진짜 마케터가 된다

고현숙 지음 | 미래의창 | 280쪽

마케터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 ‘마케터’라는 단어 자체는 제법 익숙한데, 그것이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이냐는 질문에는 의외로 답하기가 쉽지 않다. 마케터를 꿈꾸는 취업준비생이나 갓 마케터가 된 신입 마케터들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다. 이들에게 마케터가 되어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광고 만들고 싶다’ 혹은 ‘팝업 행사를 진행해보고 싶다’ 같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마케터가 하는 수많은 일들 중 겉으로 보여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장자중독(莊子重讀) : 소요유

박원재 외 3인 지음 | 궁리출판 | 276쪽

시대를 초월하며 다양한 해석들을 끊임없이 생산한다는 점은, 모든 고전들의 보편적인 특징이기는 하지만, 『장자』의 경우는 좀더 주목할 만하다. 『장자』는 제자백가의 치열한 사유들이 빚어낸 중국 선진(先秦) 철학사의 정수가 녹아있는 철학서로 여겨지는가 하면, 상처 입은 삶을 위로해주는 지혜가 담긴 우화집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한국 현대문학과 민족의 만화경

이경재 지음 | 소명출판 | 462쪽

이 책이 관심을 갖는 것은 민족의 실체와 그 기원을 밝히고, 그것을 문학연구의 장에 적용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민족주의가 한국인의 삶과 한국 현대문학의 핵심적인 결정 요인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그것을 둘러싼 여러 문인들의 대응양식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살핀다. 그것은 책의 제목에도 나오는 만화경이라는 단어가 시사하듯이, 민족(주의)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보여준다.

브랜드 심리학자, 메타버스를 생각하다

김지헌 지음 | 갈매나무 | 256쪽

2023년 상반기, 전 세계가 챗GPT로 떠들썩했다. 불과 1~2년 전을 더 뜨겁게 달궜던 메타버스는 정작 그 열풍이 사그라지며 역풍을 맞은 듯 보였다. 하지만 초거대 인공지능(AI)이 오히려 웹 3.0시대 메타버스 구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동시에 부상하고 있다. 메타버스에 대화형 인터페이스를 갖춘 생성AI가 활용된다면, 이용자들이 대화만으로 자유롭게 광활한 공간과 기회를 활용할수있다.

별 너머에 존재하는 것들

아메데오 발비 지음 | 김현주 옮김 | 황호성 감수 | 북인어박스 | 380쪽

수십 년 동안 ‘암흑 성분’은 그 존재가 유력하게 예측됐지만, 정황적인 증거만 쌓였을 뿐 그 결정적인 실체가 입증되지 못하며 위기에 봉착해 있다. 암흑 물질로 유력해 보였던 신비한 입자의 발견이 지연되고 암흑 에너지에 관한 물리적 난제가 풀리지 않으면서, 일반상대성이론에 기초해 빅뱅으로 정점을 찍은 표준 우주 모형이 그 아성마저 위협받고 있다.

톱니바퀴와 괴물

다이앤 코일 지음 |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356쪽

경제학은 문제인가, 해결책인가. 저자의 이 책은 이 질문에 답한다. 한마디로 경제학(자)은 문제로서 면모를 지니며 문제인 적도 없지 않지만, 해결책으로서 측면을 더 많이 가진다는 것이다. 경제학의 비생산적 습성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칼날을 들이대지만, 합리적인 경제학은 두둔한다. 저자의 독창적 통찰력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경제학이 미래 사회에 적응할 로드맵을 제공한다.

독일현대정치사

문수현 지음 | 역사비평사 | 456쪽

독일의 정당 기민련은 1949년 2차대전 이후 패전국 독일에서 치러진 최초의 선거 이래 2021년 선거까지 70년간 20번 치러진 연방의회 선거 가운데 단 4번(1972년, 1998년, 2002년, 2021년)을 제외한 16번의 선거에서 집권 여부와 무관하게 제1당이었다. 서방통합을 넘어선 유럽통합, 사회적 시장경제, 독일통일 등 독일 현대사의 굵직한 틀이 기민련 집권 시기에 만들어졌다.

분야별 신간

문학-에세이

나의 친구, 스미스 | 이시다 가호 지음 |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170쪽

사랑에 빠진 레이철 | 팻 머피 지음 | 유소영 옮김 | 허블 | 544쪽

사랑이라고 쓰고 나니 다음엔 아무것도 못 쓰겠다 | 최여정 지음 | 틈새책방 | 236쪽

서울 이야기 | 김남일 지음 | 학고재 | 428쪽

작별 곁에서 | 신경숙 지음 | 창비 | 268쪽

해피엔드 에어포트 | 무라야마 사키 지음 | 이소담 옮김 | 열림원 | 288쪽

SF 보다 Vol.1 얼음 | 곽재식 외 7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32쪽

인문

낯선 사람: 뒤흔들거나 균열을 내거나 | 김도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80쪽

안락사, 죽음과 그 밖의 것들 | 아드리아노 페시나 지음 | 박은호 옮김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 143쪽

IT’S MY LIFE 이츠 마이 라이프 | 박미라·한경은 지음 | 그래도봄 | 288쪽

과학

근대과학 형성과 가내성 | 도널드 오피츠 지음 | 한정라 옮김 | 한울아카데미| 416쪽

내 장은 왜 우울할까 | 윌리엄 데이비스 지음 | 김보은 옮김 | 북트리거 | 416쪽

역사

조선우선주식회사 25년사 | 조선우선주식회사 편집 | 하지영·최민경 옮김 | 소명출판 | 384쪽

정치-사회

미세먼지의 과학과 정치 | 김인경 외 9인 지음 | 한울아카데미 | 320쪽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나라 | 김성회 외 3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40쪽

신냉전 시대, 우리에게 ‘냉전’은 무엇이었나 ⑥ 제2세계 재평가

무심하게 ‘동구’로 분류돼버린 공산주의 세계…제2세계는 다양하다

역사학계에서 ‘제2세계’(Second World)는 냉전기 사회주의권을 지칭한다. 이 단어의 기원은 195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2년 8월, 인구학자 알프레드 소비가 저명한 뉴스 잡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에 「세 개의 세계, 하나의 행성」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성직자·귀족·평민을 각각 제1·제2·제3 신분으로 나누던 혁명 이전의 구(舊)체제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글의 메시지는 간명했다. ‘제3신분’에 빗댄 ‘제3세계’가 서구(Occident) 자본주의와 동구(Orient) 공산주의의 무시·착취·경멸을 받으면서도 ‘무언가가 되길 바란다’는 뜻이었다.

공산주의 세계는 단일하지 않았다

소비가 무심하게 ‘동구’로 분류해버린 공산주의 세계는 결코 단일하지 않았다. 오늘날 중국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권위주의’로 묶이고, 유럽연합 내에서도 동유럽과 발트 국가들의 정치적 입장도 다양하다. 북한과 베트남도 제3세계로 분류된다. 요컨대, 제2세계의 현실은 매우 복잡하다.

냉전기 미국 대외정책을 주도한 헨리 키신저 같은 학자-관료는 제2세계가 이질적이라는 점을 간파했다. 대공산권 수출통제 위원회(코콤) 등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미국·유럽의 기업들은 동유럽의 노동력과 자원을 이용하고 시장을 개척하려고 했다. 이에 적극 동조한 루마니아의 사례가 흥미롭다. 1960년대 중반부터 부쿠레슈티는 모스크바와 거리를 두면서 서구주도의 세계 시장에 참여하기 위해 계획경제를 조정하고 자국 노동력을 값싸게 유지했다.

주목받는 제2세계 문화·외교사

제2세계, 특히 동유럽의 개별 국가사 연구는 1990년대 ‘문서고 혁명’ 이후 탄력을 받아 2010년대 들어서면서 수많은 성과가 산출되기 시작했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앵거맨의 관찰처럼,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바로 ‘제2세계의 제3세계’이다. 제2세계의 문화사·외교사는 냉전사의 가장 유망한 분야다.

『Cold War Crossings』(2014)와 『Socialist Internationalism in the Cold War』(2016)는 제2세계와 제1·제3세계의 접촉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탐구한다. 여기에서 소개되는 폴란드 농부들의 소련 집단농장 방문이나 소련과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 사이의 애매한 관계는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다. 『Soviet

1950년대 중반 북한에서 간행된 사회주의권 국가들 안내서. 동독,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베트남, 몽골, 불가리아, 알바니아, 폴란드, 헝가리의 국기가 보인다. 중국 안내서의 경우, 표지에 국기가 없다. 북한의 적극적인 제2세계 동일시는 1960년대 들어서면서희 미해지기 시작했다. 사진=우동현

제2세계는 냉전기 사회주의권을 지칭한다. 그런데 알프레드 소비가 무심하게 ‘동구’로 분류해버린 공산주의 세계는 결코 단일하지 않았다. 유럽연합 내에서도 동유럽과 발트 국가들의 정치적 입장은 다양하다. 북한과 베트남은 제3세계로 분류되기도 한다.

지금도 제2세계의 현실은 매우 복잡하다.

Internationalism After Stalin』(2015)은 1950년대 이후 전개된 소련-라틴아메리카의 관계사를 서술한다.

역사적 ‘일탈’로서의 동유럽 사회주의 실험

『Warsaw Pact Intervention in the Third World』(2018), 『Alternative Globalizations』(2020), 『Socialism Goes Global』(2021)은 제2·제3세계 사이의 다양한 교환의 양상을 살핀다. 이 저서들은 동유럽 국가의 이니셔티브에 주목한다.

핵심 메시지는 모스크바가 동유럽의 외교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고, 1989년도 혁명들은 꽤 이른 시기부터 준비됐다는 것이다. 이 메시지는 동유럽의 사회주의 실험은 역사적 ‘일탈’이었고, 자신들

은 어디까지나 러시아와는 다른 ‘유럽’이라는 정치·문화적인 주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역사학자 아르테미 칼리노프스키의 『Laboratory of Socialist Development』(2018)는 소비에트 타지크의 사례를 통해 사회주의 개발 드라이브가 어떻게 지역에서 굴절·변용되었는지를 추적한다. 타지크는 전통을 청산하고 사회주의 근대가 실현되는 소련의 내부 식민지이자 냉전의 진열장이었다.

하지만 제2세계의 역사가 보여주듯, 두샨베(타지키스탄의 수도로 1929~1961년엔 스탈리나바드)와 모스크바의 관계도 결코 일방적이지 않았다. 타지크의 지식인과 관료 등 현지 행위자들은 각자의 이해관계를 최대화하기 위해 전통과 문화 등의 요소를 근대화 프로젝트와 결합시키려고 했다.

정치사 위주의 서술에서 벗어나 물질사·생활사처럼 제2세계의 미시사를 살피는 연구도 존재한다. 『Pleasures in Socialism』(2010)은 소련·동유럽의 일상을 사치품(디오르로 대변되는 명품, 샴페인, 자가용, 모피), 기호품(흡연, 음주), 여가생활(티브이 시청, 캠핑, 사냥), 애정 생활 등을 소재로 탐구한다. 『The Socialist Car』(2011)는 소련·동유럽의 자동차 생산·분배·소비, 도시 계획, 자동차로 인해 향상된 이동성이 불러온 문화사를 탐구한다. 인구 1인당 자동차 수가 소련보다 거의 10배나 많았던 동독에서는 차 주인들이 모여 부품과 기계 관련 지식을 공유하고, 공식적으로는 받기 불가능했던 수리를 서로 제공해주기도 했다.

남북한 찾아 보기 힘든 제2세계 역사 연구

동유럽 국가사의 틀 안에서 문화와 정치의 관계를 재구성한 저작들도 주목된다. 소련-폴란드 관계사인 『Soviet Soft Power in Poland』(2015), 소련-체코슬로바키아 관계사인 『Empire of Friends』(2019), 불가리아의 문화 외교를 다룬 『The Cold War from the Margins』(2021), 헝가리의 냉전사를 재조망한 『Hungary's Cold War』(2022), 폴란드·동독의 문화사를 공론장 개념으로 재해석한 『Communism's Public Sphere』(2023) 등은 알바니아의 독특한 행보를 다룬 『From Stalin to Mao』(2017)와 함께 제2세계의 보편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와 같은 제2세계 관련 저작들 대부분은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다. 아울러 이러한 연구 지형에서 남북한은 찾아보기 힘들다. 냉전기 서·동독의 국내사에 북한 고아와 같은 제3세계의 존재를 결합시킨 역사학자 홍영선의 『Cold War Germany, the Third World, and the Global Humanitarian Regime』(2015) 같은 저작이 앞으

로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우동현

카이스트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조교수

UCLA에서 과학기술사(북한-소련 관계사)로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국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The Historical Journal』에 한국인 최초로 논문이 게재됐다. 역서로는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 『플루토피아』, 『저주받은 원자』, 국제공산주의운동을 2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풀어낸 『전쟁의 유령』(가제)이 있고,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총서 36권 및 38-39권을 공역했다. 주요 관심사는 냉전사, 핵역사, 환경기술사, 디지털역사학이다.

글로컬 오디세이

세계 최대 인구대국 인도의 어두운 그림자

김미수

한국외대 인도연구소 HK교수

인도 네루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인도 FDI, 통상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한 논문과 저서 등을 출판했다.

지난해와 올해 인도 예산안 발표에서 유독 눈에 띄는 대목이 ‘포용적 개발(Inclusive Development)’을 강조

한 것이다. 독립 이후부터 빈곤과 불평등 문제는 인도의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었고, 인도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분배에 중점을 둔 다양한 정책을 시도해왔다. 더욱이 사회주의식경제 체제에 익숙한 국민들의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과격한 포퓰리즘 정책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4년부터 총리를 역임하고 있는 나렌드라 모디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서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고용을 확대해 경제 성장과 함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함께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과거와 달리 모디노믹스가 사회·경제적 약자를 배려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어 빈곤 인구 숫자가 늘어나면서 불평등의 확대로 복지와 분배 정책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2021년 옥스팜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상위 1%

부자의 재산이 인도 전체 부의 40.5%를 차지하고 있으며, 백만장자의 숫자는 2020년 102명에서 2022년 166명으로 늘어났다. 반면, 하위 50%의 사람들은 인도 전체 부의 3%만을 차지하고, 빈곤 인구는 여전히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대로 해결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다. 발라(Bhalla), 바신(Bhasin), 비르마니(Virmani) 공동연구(2022) 논문에 따르면, 불평등 수준을 나타내는 지니 계수가 회계연도 1994년에 0.284를 기록한 이후 점차 감소해 불평등이 완화되는 듯했으나 2021년에는 다시 0.299로 상승했다. 경제적 불평등은 지역과 성별 등 사회적 불평등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모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포용적 정책으로는 적정 가격의 주택 공급, 금융 서비스 제공, 교육 기회 확대 등이 있다.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의 사람들은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생활을 해결해주는 것이 급선무이다. 2015년부터 추진해온 ‘프라단 만트리 아와스 요자나’(Pradhan Mantri Awas Yojana, PMAY: 2022년 3월 31일까지 2억 2천만의 저렴한 주택을 짓는 것을 목표로 도시 빈곤층에게 저렴한 주택을 제공하는 인도 정부의

이니셔티브) 정책은 “모두에게 주택을(Housing for all)”이라는 의미로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에게 적정 가격으로 주택을 구입할 수 있도록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공공 주택을 건설해주는 정책이다. 이와 더불어 농촌 지역에 깨끗한 식수를 공급해주는 식수관을 내년까지 설치하겠다는 잘 지반 계획(Jal Jeevan Mission)도 추진하고 있다. 식수관을 통해 식수를 조달하게 되면 여성들이 우물로 물을 길으러 가야 하는 수고로움도 덜 수 있을 뿐 아니라 보건위생 전반을 개선할 수 있다.

또한,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은 금융 서비스의 이용이 어려워서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

인도는 최근에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인구대국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불평등과 빈곤 문제가 사회,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져서 지속적인 경제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사진은 인도의 슬럼가. 사진=위키피디아

렵다고 알려져 있다. 모디 정부에서는 소규모 및 극소기업의 금융 지원을 위해 ‘프라단 만트리 MUDRA 요자나’(Pradhan Mantri MUDRA Yojana, PMMY)라는 정책을 2015년부터 시행 중이다. MUDRA(Micro Units Development and Refinance Agency)를 통해 상업은행을 포함한 다양한 금융 기관들은 담보 없이 10lakh(약 1천 600만 원)까지 소규모 또는 극소기업에게 대출해 주는 정책이다. MUDRA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3년까지 PMMY를 통한 대출 규모는 13조 루피에서 45조 루피로 늘어났고, 계좌수도 3천500만 개에서 6천200만 개로 크게 확대됐다.

이 외에도 지역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농업 기술 개발과 농촌 지역을 활성화시키는 정책

도 실시하고 있으며, 인프라 개발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기술 교육 등 교육 부문도 강조하고 있다. 인도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는 지역, 카스트, 종교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엮여있는 복합적인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에 다른 국가에 비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 성장률과 14억 명이 넘는 인구 덕분이다. 그러나 불평등과 빈곤 문제가 사회,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져서 지속적인 경제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인도 경제가 높은 성장률을 달성한다고 해도 포용적 경제 성장을 등한시하기 어려워 보인다.

“전문대 직업교육, 지역 살리는 정주형 인력 키워 ‘계층 사다리’ 역할”

인터뷰_ 남성희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

교수신문이 지난 4월 실시한 ‘윤석열 정부 대학개혁 정책 인식조사’에서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대학개혁 정책 가운데 정책 필요성과 실현 가능성을 가장 높게 평가한 정책은 ‘전문대학의 직업교육 강화’였다. 77.5%의 교수들이 전문대학의 직업교육 강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설문조사 응답자 622명 중 일반대 교수가 528명으로 84.9%를 차지한 걸 고려하면, 전문대 교수뿐 아니라, 일반대 교수들에게도 ‘전문대학의 직업교육 강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은 주목할만하다. 교수들은 무엇보다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의 역할 구분과 정체성 확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일반대학은 학문·연구 중심으로, 전문대학은 직업교육 중심으로 고등교육체제를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남성희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대구보건대 총장)은 “정부의 책무성 차원에서 전문대학에 필수적인 재정을 투입해 전문직업인 양성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며 “직업교육 기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와 직업교육법 제정을 통해 5년 기본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 회장은 특히 고등교육기관 재구조화에 대해 전문대학과 일부 일반대학이 고등직업교육 기관으로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학생들의 선택에 따라 1~4년 학위 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수업연한은 자유롭게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 회장은 지금 교육부가 규제 개혁을 통한 자율 혁신을 강조하고 있지만, 전문대학 정책은 아쉬움이 남는다는 밝혔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모든 정책이 일반대학 위주로 가고 있고, 전문대학 정책은 우선순위에 밀려 소외되고 있다.”

전문대학의 차별화된 발전 방향은 명확했다. “지역과 상생하고, 지역에 기반을 둔 지역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인력 양성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난달 25일 서울 충정로에 있는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실에서 남 회장을 만났다.

△ 전문대학 관련 고등교육정책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대학평가체제 개편에 따른 후속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전문대교협은 평가인증의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해 인증기준 개선을 위한 정책연구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문대학은 일반대학에 비해 졸업생들의 지방 정주율이 높은 점을 감안해 지자체와 연계 협력을 강화하고 지역발전과 연계한 산학협력, 평생 직업교육을 통해 ‘지역인재 양성-취·창업-정주’의 선순환 구조가 마련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중장기적으로 체계적인 고등직업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직업교육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교육부는 최근 교육개혁 3대 정책(돌봄·디지털 교육·대학개혁)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직업교육법이 제정돼야 합니다. 직업교육법에 따라 5년 기본계획을 세우고 전문대학 직업교육 정책이 소외되지 않게 더 강화해 줄 것을 당부드립니다. 결국 지방을 살리고 지방에 맞는 인재를 길러 지역에서 정주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정부의 선택과 집중 방식에 따라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거예요. 양극화 문제가 사회적 현안으로 대두될 것입니다. 전문대학 학생에 대한 지원이 양극화 해소 방안입니다.”

△ 교육부는 ‘규제 제로화’를 선언하고, 규제 개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남성희 회장은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KBS 아나운서로 일했으며, 영남대에서 교육학 박사를 취득했다. 국무총리실 정부업무평가위원, 대통령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회장, 한국전문대학 법인협의회 회장, 아시아·태평양대학협의회 회장 등을 지냈다. 2002년부터 대구보건대 총장을 맡고 있으며, 2020년 9월부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제20대 회장에 이어 제21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교수 77.5%가 “전문대 직업교육 강화 필요” 공감

직업교육법 제정, 고등교육기관 재구조화 필요

지역 정주 인력 많고 현장 중심 전문대가 지역 살려

교육부 규제 개혁 조치는 ‘구조조정’ 위한 것인가

전문대-일반대-사이버대 ‘벽 허물기’에도 소외 느껴

전문대 ‘수업연한’ 일반대와 같이 자유롭게 풀어줘야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모든 정책이 일반대학 위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 교육부가 규제 개혁을 통한 자율 혁신을 강조하고 있지만 전문대학은 많이 배제돼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학령 인구 감소에 이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전문대학 정책마저도 배제된다면 똑같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일반대학과 전문대학 통합시 일반대학에 전문학사를 줄 수 있게 하는 건, 구조조정 개념이지 규제 개혁 개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똑같이 길을 열어 주고 경쟁을 붙여서 개선하는 게 맞죠. 전문대학의 수업연한을 풀어 주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 대학은 글로컬대학30 선정과 관련해 집중하고 있습니다. 별도 예산이 책정돼 있지 않아서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그렇죠. 예산 확보가 잘 안된 것 같습니다. 사립대는 지방대 활성화 사업비의 인센티브 예산을 활용해 글로컬대학을 지원하는데요. 지방대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지방대 활성화 사업비를 배정해 지원하기로 한 예산인데, 거기서 일부를 빼내서 어느 특정 대학을 밀어주면 다수 대학의 반발을 초래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는 14년간 등록금 동결에 따른 재정 부족분을 메워 주기 위해 도입이 된 겁니다. 특별회계 도입에 따라 대학지원이 대폭 늘어나길 기대했는데, 당초 안보다 많이 축소됐고, 증액된 재원도 약 30~40%는 평가해서 인센티브로 주겠다고 하고, 인센티브 금액의 일부를 당초 계획에 없던 글로컬대학 집중 육성에 활용하겠다는 겁

니다. 지금 몇몇 대학이 등록금을 올리고 있는데, 이렇게 가면 다른 대학들은 다 포기하고 등록금 인상으로 몰려갈 수도 있죠. 그런 걱정도 됩니다.”

△ 교수신문이 창간 31주년 특집으로 진행한 ‘윤석열 정부의 대학개혁 정책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 전국 대학교수 622명 중 77.5%가 ‘전문대학 직업교육 강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고등직업교육체제를 어떻게 개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무척 의미 있는 설문조사 결과이자 사회의 공적 아젠다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책무성 차원에서 전문대학에 필수적인 재정을 투입해 전문직업인 양성이 필요합니다.

일반대학은 학문·연구 중심대학으로, 전문대학은 직업교육 중심대학으로 역할과 기능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고등교육체제가 개편된다면, 기능 중복에 따른 비효율과 국가재정 낭비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전체 고등교육 차원에서도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올해 3월 직업교육법 제정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기초 직업교육은 초등학교 때부터 다 하고 있잖아요. 전문적인 직업교육은 고등직업교육 기관에서 하는데 중구난방으로 일반대와 전문대, 폴리텍에서 하고 있죠. 직업교육법을 제정해 5년마다 성장 가능한 직업에 대한 기본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맞춰 인력을 양성한다면, 고등교육기관도 재구조화가 필요합니다.

일반대학 중에서도 직업교육으로 갈 곳은 전문대학과 함께 2년 전문학사부터 4년 학사과정까지 풀어 주고, 전문대

학 중에서도 잘하는 곳은 마이스터대로 지정해 기술 현장에서 쓸 수 있는 석사까지 할 수 있죠. 이렇게 고등교육체제 개편이 필요합니다. 직업교육법 제정은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의 역할 분담을 수직적으로 구분하던 것을 수평적으로 분담해 정체성을 확립해 주는 계기가 될 겁니다.”

△ 전문대학의 경쟁력 강화 방안과 정부 지원 방안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전문대학이 필요한 이유는 지역 사회·산업과 긴밀하게 연계된 산학협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업현장은 첨단신기술 개발 능력을 갖춘 R&D인력과 실제 생산을 맡고 있는 현장 인력으로 구성됩니다. 균형있는 인력 양성 정책을 마련해 주시길 요청드립니다.

전문대학 졸업생의 경우 지방 정주율이 높아 지방소멸 완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전문대학 졸업생의 약 60% 이상이 중소·중견기업에 취업해 우리 사회의 안전망 구축과 계층 이동사다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요.

직업교육이 살아야 대한민국 경제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직업교육은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안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이런 현실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중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직업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정책적·재정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 마지막으로 한가지 말씀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전문대학 유턴’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취업난이 극심한 상황에서 전문자격, 전문기술을 갖출 수 있어 일반대학(4년제) 졸업 후 전문대학으로 다시 입학하는 ‘유턴 입학’ 사례도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문제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유턴 입학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겁니다. 지난 5년 동안 전문대학으로 유턴 입학한 학생들이 입학 전 일반대학을 다니면서 지출한 학비와 생활비는 약 4천억 원으로 파악됩니다. 여기에 전문대학을 다니면서 다시 지출한 비용을 합치면, 7천 3백억 원대로 추산됩니다.

일반대학 평균 졸업 기간이 5년 2개월로 늘어나는 등 휴학과 구직, 입시에 들어간 직·간접 비용을 고려하면, 사회적 비용은 더 늘어납니다. 처음부터 합리적인 진로 설계가 있었다면, 얼마든지 줄일 수 있었던 비용인 셈입니다. 결국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본인의 진로나 적성에 맞는 대학 진학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런 부분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교육 아젠다라고 생각합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명확한 근거 없는 ‘직업교육’, 직업훈련과 분리 필요”

직업교육법 제정, 왜 필요한가

직업교육법은 지난 3월 2일,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했고 입법예고까지 마친 상태다. 올해 하반기에 국회 입법 심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1949년 제정된 교육법(현 교육기본법)에는 유아교육, 초중등교육, 고등교육, 평생교육에 대한 하위 기본법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직업교육은 선언적 내용 이외에는 별도의

법적 기반이 마련돼 있지 않다.

현재 직업교육 관련 법에는 직업교육의 개념이나 목적, 내용 등 구체적인 근거 규정이 없다. 직업교육을 다루는 용어도 ‘직업교육훈련’, ‘산업교육’, ‘직업능력개발훈련’ 등으로 법안마다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직업교육법은 용어부터 정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발의된 직업교육법에 따르면, 직업교육이란 ‘학교 혹은 평생교육기관에서 직업에 대한 소양, 직업에 필요한 지식·

교육기본법 관련 주요내용

구분 제20조

(유아교육)

제9조

(학교교육)

제9조

(학교교육)

제10조

(평생교육)

제21조

(직업교육)

법 명칭 유아교육법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평생교육법 -

적용 대상 만3세-초등학교 취학전 어린이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대학원생 모든 국민 -

기본 계획

유아교육발전

기본계획(5년)

교육과정

후속지원계획

고등교육재정지원

기본계획(5년)

평생교육진흥

기본계획(5년)

-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이라고 정의한다. 직업교육은 다시 기초직업교육과 전문직업교육으로 구분하고, 이 중 전문직업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을 ‘직업교육기관’으로 정리한다.

전문직업교육은 기초직업교육을 통해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파악한 학생의 취업과 직무 수행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전문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을 뜻한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는 이렇게 직업교육의 개념이 정립되면, ‘직업교육’과 ‘직업훈련’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고등직업교육기관인 전문대학과 직업훈련기관인 한국폴리텍대학의 역할을 나눠서 상생할 방안도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직업교육법이 시행되면, 법령에 기반한 5년 주기 직업교육 기본계획 수립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예측 가능하고 체계적인 직업교육을 실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행 교육기본법에서는 고등교육·유아교육·평생교육법에 따라 5년 동안 각 교육의 정책목표 등에 대한 구체적

인 기본계획을 세우도록 하고 있다. 직업교육도 단기 교육계획이 아닌 앞으로의 교육정책 목표와 재정지원의 근거를 수립하고 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성희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은 “직업교육에 대한 하위의 기본 법령이 미비하다 보니 5년 주기 기본계획을 수립할 수 없으며, 정책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해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직업교육을 실시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일반대학-전문대학 간, 전문대학-폴리텍대학 간 기능 중복으로 비효율과 막대한 재정 낭비가 발생하고 있으며, 초중등-고등-평생 직업교육 간 연계도 미흡한 실정이다.

남 회장은 “직업교육법이 제정되면, 직업교육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를 통해 직업교육기관 간 기능과 역할을 명확히 분담해 직업교육 추진과정에서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며 “국가재정 낭비를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우리는 자유로운 시대에 살고 있나…‘불평등’ 깊어져

네이버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좌담회

네이버 열린연단 시즌9 ‘자유와 이성’이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이번 강연시리즈는 지난해 4월부터 1년 동안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의 「자유주의의 이념·현실·기풍」부터 최신한 한남대 명예교수(철학상담학)의 「기독교와 자유」까지 총 46회 열렸다. 철학, 정치(외교)학, 사회학,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경제학, 행정학, 국제관계학, 국어국문학, 신학, 화학, 생명과학, 기후과학, 보건학, 한국학 등 다양한 전공 교수들이 강연자로 나섰다.

시즌9 ‘자유와 이성’을 마무리하며, 네이버 열린연단 자문위원들이 지난달 28일,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특별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이번 시즌9 ‘자유와 이성’이 학문간 경계를 넘나드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를 두었다. 특히 향후 우리 사회의 자유의 이해·실현의 성취와 한계를 그려나가는 데 이론적·현실적 토대를 다졌다고 평했다.

열린연단 시즌10은 ‘오늘의 세계’를 다룬다. 오는 20일부터 총 54회 강연시리즈가 예정돼 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

“공학·임상의학은 최선진국 반열에 들어갈지는 모르나, 기초학문으로서 이론을 다루는 역량은 부족하다.

문화적·지적 자원을 만들어가는 이론으로서 기초학문은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

이덕환 <교수신문> 편집인

“고고한 민주·자유·평등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현실적 기반이 반드시 필요하다.

식량, 자원, 에너지, 건강 등에 대한 일차적 욕구가 만족되고 나서, 철학적·거시적 담론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 기반이 저절로 얻어지는 것처럼 오해하는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철학)

“학제를 넘나들며 대화하고 소통하는 강연이 지속됐으면 좋겠다. 다양한 학문들의 만남은 다른 어떤 자리에서도 볼 수 없었다.

이러한 기회는 소중하다.

앞으로 학문 공동체의 시금석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한다.”

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과)

“18 19세기 선조들이 서양의 근대적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받은 충격이나 대안을 살펴보자.

이 땅에서 자유주의·민주주의를 수용하면서 발생한 장애·한계가 무엇이었는지 한국사를 중심에 두고 살펴보면 의미 있을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지역학협동과정)

“개별적 자유의 증진과 유적 존재로서 자유의 위축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체로 보면 자유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다 자유로운 시대에 살고 있지 못하다. 국가별 불평등 지수가 높고 계급화가 심하다. 자유의 조건보다 필연의 조건에 얽매여 있다.”

이번 좌담회는 열린연단 시즌9 ‘자유와 이성’의 역할부터 나아가야 할 방향, 우리 사회의 지적담론, 지역과 경제에 토대를 둔 자유의 다양성과 서구식 자유주의의 한계 등 다양한 논의가 펼쳐졌다.

우선 이번 강연시리즈의 역할과 방향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뜻깊었다고 평가했다. 다양한 학문 분과가 참여한 것과 이들 간 토론이 이뤄진 점이 의미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자유와 이성’은 학문 간 만남·소통의 차원에서 ‘학문 공동체의 시금석’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는 “우리 사회의 가치와 운영 원리인 ‘자유와 이성’을 다각도로 다뤘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번 열린연단 시즌9의 교육적·문화적 가치 확산 측면에서 대학의 토론 등으로 이어지지 못해서 아쉽다”라며 “열린연단 강연 내용은 학부 고학년이나 대학원 등에서 교육용으로 활용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한국의 연구자들이 최선을 다해서 지적영역을 펼친 과정 자체가 의미 있었다”라면서 “열린연단은 사회에 열어 놓고 하는 강연이기에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어떤 형태로든지 영향을 끼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 가운데 <교수신문>이 대학사회와의 소통에서 역할을 해주길 당부했다.

이덕환 <교수신문> 편집인(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은 “이번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은 현실에 확실히 발을 딛고 펼쳐졌기 때문에 훨씬 매력적이었다”라고 평했다. 특히 이 교수는 “과학·공학기술에서도 자유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의미 있는 시도였다”라고 말했다.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철학)는 “자유는 인간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보편가치로서 많은 논의 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라며 “모든 삶의 영역·학문 분야에서 고루 경청하고, 더불어 대화할 수 있는 보편가치를 더 발굴하고 강연기획으로 꾸려가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학제를 넘나들며 대화하고 소통하는 강연이 지속됐으면 좋겠다”라며 “다양한 학문의 만남은 우리 학계의 다른 어떤 자리에서도 본 적이 없다. 이러한 기회는 소중하다. 학문 공동체의 시금석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지역학협동과정)는 자유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건 정말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자유의 문제와 세계적 차원의 자유의 문제를 같이 다룬 것도 독특했다. 일상적으로 가장 자주 맞닥뜨리는 자유에 대해서 그 본질을 파악하고, 현실에서 실현하는 문제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근대 이후 인류사회가 자유의 실현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어떻게 노력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과)는 “그전까지는 인문학 위주의 이론·사상이 주제였다면, 이번 ‘자유와 이성’은 좀 더 현실 밀착적인 것에 초점을 두었다”라며 “그래서 지난해부터 시작한 강연시리즈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김교수는 “이번에 다양한 강연을 통해 민주주의 내의 내적 긴

장 등 정치철학적 부분들에 대해 식견을 접할 수 있었다”라며 “배움의 과정에서 정리할 수 있는 뜻깊은 한 해였다. 관념을 넘어, 생생한 현실을 다루는 향후 기획이 이어지면 좋겠다”라고 바람을 내비쳤다.

민주화 이후 놓쳤던 자유의 문제

우리 사회의 지적담론은 이론으로서 기초학문 연구,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 바탕, 한국인의 역사적 경험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최장집 교수는 “공학·임상의학은 최선진국 반열에 들어갈지는 모르나, 기초학문으로서 이론을 다루는 역량은 부족하다”라며 문화적·지적 자원을 만들어가기에는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이덕환 교수는 “심오하고 지당하다고 간주하던 개념들이 너무 이상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라며 “고고한 민주·자유·평등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현실적 기반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식량, 자원, 에너지, 건강 등에 대한 일차적 욕구가

만족되고 나서, 철학적·거시적 담론에 관심을 갖게 된다. 우리가 그런 기반을 너무 당연시했다. 그런 기반이 저절로 얻어지는 것처럼 오해하는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이 교수는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현실적 바탕을 마련하는 일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라며 “꿈보다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외면당하는 게 아쉬웠는데, 이번 강연시리즈를 통해 담담하게 펼쳐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박명림 교수는 “그동안 우리 사회 지적담론이 현실에서 주어진 과제에 적응하는 차원이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보편적으로 자유와 이성을 다뤘다”라며 “우리 사회 지적담론은 ①국가·

분단 ②근대화 ③민주화 ④평화와 통일 ⑤자유의 흐름을 거쳤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민주화 이후에 놓쳤던 자유의 문제를 이번에 가장 중요한 담론으로 다뤄서 좋았다”라고 평했다.

김상환 교수는 한국인의 역사적 경험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18∼19세기 선조들이 서양의 근대적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받은 충격이나 대안을 살펴보자”라고 제안했다. “자유주의·민주주의를 소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돌아보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서양의 자유주의·민주주의 이론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땅에서 자유주의·민주주의를 수용하면서 발생한 장애·한계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한국사를 중심에 두고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다음 기획인 ‘오늘의 세계’에도 이런 측면에 반영되면 좋겠다.”

이승환 교수는 대학 내 동양철학·중국철학 수요가 낮아지는 현실을 우려했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혐중 정서가 심각해지고, 여성이나 특정 집단에서 유교를 싫어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는 “아직도 한국에서 여성의 지위가 높지 않다. 형식적 민주주의 발전 속도에 비해서 여성의 인권 향상은 더디다”라며 “유교-불교-도가를 통해서 근대·현대문명의 한계에 대해, 어두운 면에 대한 보완적 시사점을 제공해주는 방향의 지적 자원 발굴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농경사회 공동체 윤리, 현대사회 개인주의 윤리

자유의 다양성에서는 동서양의 구분보다는 각 나라가 지닌 문화적 정체성이 더욱 강조된다. 특히 농경사회에서는 공동체 윤리,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개인주의 윤리가 나타난다. 서구식 자유주의의 한계는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자유주의가 억압되는 계급화 문제로 귀결된다.

최장집 교수는 “서구의 근대성(모더니티)이 확산됐으나, 불교‧힌두교 등 다른 문명권 국가까지도 이러한 서구적 사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중국의 정치·경제적 부상은 유교에 대한 관심에 영향을 미친다”라며 “한국은 한국대로 전통문화가 있다. 그 전통문화가 수백 년을 지속하며 존재했던 역할이 있기 때문에, 가족 공동체가 완전히 서구화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서구 중심적인 철학을 하지만, 동양사상이 낙후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승환 교수는 ‘동서양 지리적 경계에서 자유의 차이를 논의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카를 만하임(1893~1947)을 인용하며 “지식사회학적 관점에서는 불가능하고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인간의 지식체계를 떠받치는 토대(기반)가 있다. 경제·사회적 토대인 하부구조와 이론·사상의 상부구조로 나뉜다. 여기서 이 교수는 ‘사유의 존재 구속성’(seinsverbundenheit)을 강조했다. 토대에 따라 사유가 좌우된다. 농경사회는 가부장적 사회로서 공동체 윤리를 갖는다. 하지만 현대 산업사회는 한 개인이 경제 주체가 되면서 개인주의·자유주의가 나오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구조가 요청된다.

박명림 교수는 불평등이라는 필연의 조건에 갇힌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개별적 자유의 증진과 유적(類的) 존재로서 자유의 위축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라며 “전체로 보면 자유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다 자유로운 시대에 살고 있지 못하다”라고 비판했다. 국가별 불평등 지수가 높고 계급화(불평등)가 심하다. 자유의 조건보다 필연의 조건에 얽매여 있다는 것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딸깍발이

교수들의 ‘관태기’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교수에 임용됐다는 소식을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신발 끈을 조여매던 첫 출근의 기쁨도 잠시, 해를 거듭할수록 인간관계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교수들이 많다. 하기야 사람 사는 모든 곳에는 갈등 요소가 스며들 수밖에 없다. 관계가 유발하는 감정의 날씨를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아무리 좋은 사이라도 항상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만 계속될 수는 없는 법이다. 흐린가 싶다가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올 때도 있으니 사람의 성격에 따라 피로감이나 상실감을 더 크게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관태기’라는 신조어가 나왔지 싶다. 권태기는 자주 쓰는 말이지만 관태기란 말은 생소할 수도 있겠다. 관태기는 ‘관계’(關係)와 ‘권태기’(倦怠期)의 합성어로, 사람과 관계 맺는 일에 권태를 느끼는 기간을 일컫는다. 결혼한 부부 사이에도 권태기가 있듯, 이미 알던 사람끼리의 관계에서도 권태기를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인맥을 쌓는 과정에서도 권태감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이 모든 것을 뭉뚱그려 관태기라고 한다. 대면 소통을 꺼리던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관태기는 이제

보다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교수들의 전화나 회의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대면 소통을 꺼리는 심리를 넘어, 선뜻 전화 걸기를 망설이다가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소통을 대신하기도 한다. 회의하는 풍경도 달라졌다. 교수들은 직접 만나서 하는 대면 회의보다 각자의 공간에서 잠시 접속하는 화상 회의를 선호한다. 소통 방식을 바꾸면 시간이 절약된다는 효율적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관계의 회피를 효율성 향상으로 포장하는 측면도 강하다. 꼴도 보기 싫은 관계는 아닐지라도, 만나기 부담스러운 사람끼리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만나기에는 화상 회의처럼 편리한 시스템도 없으리라.

대학 사회에서 마주치는 교수들의 관계에서도 좋은 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러나 어떤 사안을 놓고 언쟁한 다음에 곧바로 화해하지 않고 나쁜 감정을 계속 쌓아두거나 다시는 마주치려 하지 않는 사례가 교수 사회에서 생각보다 많다. 어떤 경우에는 과도한 자존심 때문에 교수들이 마치 초등학생 같은 면모를 보일 때도 있다. 굳이 감정을 애써 만들어 관계를 좋게 회복하고 싶지 않다는 고집과 자존심이 관계를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다른 교수와의 관계 맺기가 불편하거나 귀찮아졌다면 그 교수는 관태기를 겪고 있는 셈인데, 벌써 ‘관태족’이 되었을 수 있다.

관태기를 극복할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의

조언을 종합하면 5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해야 하며,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기대하지 말아야 하며, 인간관계에서도 다이어트를 시도해야 하며, 한동안 소셜미디어 활동을 중단할 필요가 있고,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성찰하며 관계 일기를 써보라는 것이다. 댄싱스네일이 지은 『적당히 가까운 사이』(2020)라는 책에서는 외롭지도 피곤하지도 않은 너와 나의 거리두기를 강조한다. 적당한 거리두기를 통해 안전하고 편안하게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것을 ‘면역 공간’이라 명명하며, 관태기를 극복하라고 권고했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교수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관태기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온라인에서 누구와도 서슴없이 친구를 맺는 ‘후렌드(Who+Friend)’ 세태에 공감하면서도, 정작 동료 교수끼리는 친구 되기를 꺼려하는 교수들도 늘고 있다. 이 또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대학이 아닌 다른 직장에 다니는 일반 직장인들이 겪는 인간관계의 피로감은 교수들이 느끼는 피로감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교수들은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인간관계란 억지로 어찌할 수 없으니 교수들에게 하루 빨리 관태기에서 벗어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일반 직장인들과 달리 교수들은 상하관계에서 느끼는 피로감은 거의 없을 테니, 관태기에서 벗어날 속도 조절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만은 특별히 강조하고 싶다.

제공=수원시립미술관

갤러리 초대석

현대미술기획전 「어떤 Norm(all)」

장영혜중공업, 불행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 5분 41초

가족을 주제로 한 현대미술기획전 「어떤 Norm(all)」이 수원시립미술관에서 8월 20일까지 열린다. 전시명인 「어떤 Norm(all)」은 ‘정상적인’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노멀(normal)’과 ‘모두’를 뜻하는 ‘올(all)’의 합성어다. 정상가족 관념에 질문을 던지고, 어떠한 형태의 가족이라도 차별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건강가정기본법 제1장 제3조는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2023년의 가족은 사뭇 다른 모습이다. 1인 가구의 급증, 제도적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 생활 공동체의 대두, 생활동반자법 논의 등은 가족이 더 이상 사전적·법적 정의에 구속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혼인과 혈연 위주의 정상가족을 공고히 하는 사회제도는 언어와 법 그리고 관념에 남아있고, 규범밖에 위치한 수많은 가족들이 차별을 겪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강태훈, 김용관, 문지영 등 총 11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회화, 사진, 영상, 다큐멘터리와 같이 다양한 장르의 작품 56점을 통해 작가들은 ‘가족’이라는 개념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가족의 정의를 재구성한다. 신다인 기자 shin@kyosu.net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이론과 실제의 경계

어느 전공분야에서든 이론과 실제의 괴리와 그에 따른 혼란과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이론과 실제의 적용은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더 나은 학문적인 발전을 가져오기도 한다. 나는 교육행정의 연구자로서 대학원 석사과정을 시작하면서부터 충북대 교육혁신본부라는 조직에서 일을 병행했고, 이러한 경험은 나를 자연스럽게 고등교육 분야의 연구자이자 실무가로 이끌었다.

나의 대학원 과정은 연구와 학습을 통해 얻어지는 이론과 대학의 현장에서 필요한 실제를 맞춰나가는 과정이었다. 연구자와 실무자의 역할을 병행하는 입장에서 대학원 과정에서 습득한 이론과 대학 현장에서 경험하는 실제 간의 괴리가 연구자와 실무자로서의 역할을 병행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 고민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갈등과 혼란은 대학 현장에서 일하며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는 동료들의 공통적인 고민이기도 하다. 연구자들이 이론과 실제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가 연구하고, 일하는 이곳인 지방대학의 상황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방대학은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환경에 처해있고 더 나아가 생존의 위기에까지 놓여있다. 몇 년간 지속된 세계 최저 출산율의 경신은 자연스럽게 학령인구의 감소로 이어져 왔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대학이 정원을 못 채울 수 있다는 위기가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안 그래도

부족한 학령인구는 더 나은 학벌과 더 나은 직업을 위해 수도권 지역으로 모두 이동하고 있으며, 지방대학은 더이상 지식의 상아탑으로서 기능하는 것만으로는 생존의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게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방대학은 지역사회의 평생교육, 지역의 산업 기반 인력양성 및 직장 재교육 등 다양한 역할과 기능으로 변화하기를 요구받고 있다. 지방대학의 변화는 과거의 이론적 관점에서 고등교육의 기능과 역할을 설명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서, 새로운 대학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 담론을 요구하고 있다.

지방대학에서 근무하고 대학원 과정을 보내고 있는 연구자이자 실무자인 입장에서는 이론 중심의 학습 내용을 대학 현장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우리 나름대로 대학의 생존을 위한 실제적인 방안을 만들어야만 한다. 또한, 대학의 변화뿐만 아니라 연구자 스스로 지방대학이 생존을 위해 변화해야 하는 것처럼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 대응하기 위해 누구보다 유연하게 사고하고, 이를 통해 연구하고 실제에 대응해야 한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요구는 연구자 개개인에게 혼란과 갈등의 상황으로 치닫게 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긍정적인 변화의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하는 관점에서도 이론과 실제의 경계를 연결 지어 볼 수 있다. 한번은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교육학과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준비하며, 나는 왜 대학원에 진학했을까

를 떠올려본 적이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학문 분야에 대한 관심, 탐구하고자 하는 마음과 같이 거창한 이유가 아닌 학부생 때 연구소에서 근로학생으로 일해본 경험이었다. 이론에 대한 탐구와 설정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 없이 중요지만, 실제를 경험하는 것 역시 연구자로서 진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중요하다. 아울러 대학원 과정에 들어온 후 연구자로서 내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분야를 선정할 때도 실제를 경험하는 것이 핵심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박사학위를 받고 난 지금, 여전히 지방대학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학령인구의 급감이 예상되는 2035년 전후까지는 이러한 상황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변화에 따른 혼란의 과정에서 나를 포함한 일과 학문을 병행하고 있는 고등교육 분야의 연구자들이 이론적 근거와 실제의 경험을 토대로 위기의 대학에서

새로운 대학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박태양

충북대 교육혁신본부 교육성과 혁신센터장

충북대 교육학과에서 「대학혁신지원사업 효과성 분석」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충북대 교육혁신본부 교육성과혁신센터에서 대학의 성과관리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초·중등교원 수급정책, 고등교육 재정지원사업 등 교육정책, 교육성과와 관련된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중국대학은 지금

소비에트의 코민테른, 중국의 코민테른

20세기 초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총본영이었던 코민테른은 워싱턴회의에 실망한 억압받던 민족들에게 한 줄기의 희망과 같은 조직이었다. 경제적 사정이 녹록지 않던 중국과 한국에게, 코민테른이 두 나라에 쏟아부은 금액만 하더라도 현재 가치로서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모 독립운동가의 회고록에 따르면 “빨간 물 묻은 돈은 죄다 쓰고 싶지 않다며 손을 저어댔지만, 그 돈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은 단언컨대 몇 안 될 것”이라 할 정도였으니 돈 앞에서 애국인사들 역시 무너졌던 아픈 사실도 있다. 코민테른이 창설된 직후 얼마간은 정확하고 통일된 강령이 없었기에 설령 피압박민족 국가의 민족주의자일지언정 적어도 코민테른에게 이들은 모두 교섭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코민테른이 자선단체도 아니었는데 소비에트 러시아(이하 ‘소아’로 통칭)가 국내 정세도 안정되지 않은 마당에 그렇게 돈을 뿌려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코민테른의 본심은 10월 혁명의 성공과 공산주의 사상을 전파하고 세계 각지에 공산당 지부를 설치해 소아를 중심으로 전 세계의 위성국화를 시도하고자 했다. 그리고 구미에 대항해 소련식 가치를 내세웠고 소련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외국 국적의 활동가가 필요했다. 코민테른이 해체된 지는 80여 년이 흘렀는데 뒤늦게 누군가 이 길을 꼭 빼닮아 따라가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중국이다.

3년 전 필자의 모교인 중국인민대는 국제문화교류와 학술연구 협력을 혁신하고 중외 문화교류의 중대한 문제를 공동으로 연구한다는 취지로 ‘국제문화교류학술연맹’(이하 연맹)을 조직했다. 중국에서 내로라하는 베이징대와 칭화대를 제치고 필자의 모교가 선정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추측건대 필자의 학교가 세칭 제2의 중앙당교(학교가 열린 학문의 장이라기보다는 당의 이익을 대표하는 나팔수라는 의미에서 사용)라고 불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연맹은 대단히 광폭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들은 문화교류라는 기치 아래 전 세계 우수 국가의 대학들과 교류 협정을 맺고 중국식 가치를 전파했다. 신장 위구르나 티베트 자치구 같이 서방이 국제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민감한 문제를 제기하면, 중국의 뜻을 대변할 외국 인사들을 초청한 학술대회(사실상 발표대회)를 개최해 대응했다. 필자 역시 단골손님으로 초청받는 인사 중 하나인데 중국의 이와 같은 행보는 코민테른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한번은 신장인권포럼에 참여해 필자가 지

난번 방문했던 신장의 모습에 대해 말해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 사실 필자가 다녀온 도시는 신장의 성회(省會)인 우루무치였다. 서방이 말하는 수용소 같은 곳과는 대단히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인권탄압의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었다. 당연히 원고에서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사실들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인상깊었던 광경은 버스를 탈 때 위구르족과 한족이 나누어 앉아 타고 가는 것 정도였다. 필자는 이 모습에 대해 “‘이질감’을 느꼈다”라고 원고에 적었는데 얼마 후 수정요구가 들어와 ‘차이’라는 단어로 변경했다. 이 원고의 통과 과정은 현실 외교현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귀한 기회였다.

중앙당 주관으로 열린 행사는 규모가 크고 예산도 많기에 손님들에게 고급 호텔과 질 좋은 음식을 대접한다. 북경에서 열린 행사에서는 내게 그럴듯한 명찰도 나왔다. 가만 보니 이 모습은 마치 20세기 초 모스크바

크렘린궁에 초청된 피압박민족국가 주요 인사들의 회고와 꼭 빼닮아 있었다. “번쩍이는 샹들리에와 고풍스러운 장식들 그리고 이들이 내게 베푼 대접, 10월 혁명은 확실히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견인차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일개 한국 학생이 중국 TV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주요 인사들과 나란히 마주했었던 경험은 분명 얻기 힘든 기회였다.

감사한 것은 감사로 그치면 되는 것이지 찬양으로 이어지면 그것은 또 별개의 문제가 돼 버린다. 나는 그 밖에 여러 행사에 참여하며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개발도상국 학생들의 원고를 주의 깊게 경청한 적이 있다. 대부분 중국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찬양 일색이었다. 다시 크렘린궁이 떠올랐다. 이들에게 중국은 과거 코민테른이 존재하던 때 소아(蘇俄)와 같을 것이다.

희망을 품을 수도, 기대도 할 수는 있겠지만 다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그들의 나팔수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중용을 견지하자. 중용은 중국이 좋아하는 중국식 가치 중에 하나다. 그리고 중용의 태도는 분명 중국에게도 이로

울 것이다.

조대호

중국인민대학 역사학원 박사과정

중국인민대학 역사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시베리아지역 화교와 한인 공산주의자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근현대사가 전공이다. 주요 연구영역은 중국공산당사, 국제공산주의운동이다.

김상돈의 교수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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