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경쟁력 하락 부추기는 값싼등록금
데이터로 읽는 대학④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지표(2021) 자료에 따르면, OECD 국가 38개국 중에서 사립대학 비중이 높은 한국(86.6%)‧미국(73.5%)‧일본(77.3%)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고등교육재정을 국가가 지원하되 독립적으로 운영하거나 국공립으로 저렴하게 운영한다.그리고 ‘OECD 교육지표 2022’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 사립대학의 등록금(8,621 달러)은 14개국 중 미국(31,875 달러)‧스페인(10,344 달러)‧에스토니아(9,281 달러)‧호주(9,239 달러)‧일본(8,741 달러)에 이어 6번째였다.초중등보다 낮은 고등교육 투자과연 한국의 대학등록금은 적절한 것인가? OECD 회원국의 교육단계별 학생 1인당 공교육비 투자 규모에서 한국과 그리스만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가 초·중등교육보다 더 낮다.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국가경쟁력을 보자. 최근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는 한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32개국)으로 지위를 변경하였다. 2021년에는 세계 10위 무역국으로 무역액이 1조 달러를 넘은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중국‧미국‧독일 등 10개국뿐이다. 2020년 GDP 기준 세계 10위교육단계별 학생 1인당 공교육비 규모 비교(2019년 36개국 기준) (단위: ppp $, %)
구분 초등교육(비율) 중등교육(비율) 고등교육(비율)[순위] IMD 국가경쟁력 IMD 대학교육경쟁력OECD 평균 9,923(100.0) 11,400(100.0) 17,559(100.0) - -한 국 13,341(134.5) 17,078(149.8) 11,287(64.3) [30위] 27위 46위미국 13,780(138.9) 15,538(136.3) 35,347(201.3)[ 2위] 10위 16위영국 11,936(120.3) 13,041(114.4) 29,688(169.1)[ 3위] 23위 29위캐나다 10,570(106.5) 14,564(127.8) 22,335(127.2)[ 6위] 14위 12위일본 9,379(94.5) 11,493(100.8) 19,504(111.1)[13위] 34위 59위프랑스 9,312(93.9) 13,475(118.2) 18,136(103.3)[15위] 28위 37위자료: 2022 「OECD Education at a Glance」, 기획재정부, 2022년 IMD 국가경쟁력 평가결과경제 규모, 2021년 세계 7대 우주강국, 2022 세계 6위의 군사력, 원자력 산업 6위, 항공우주산업 7위, 방위산업 8위, 세계 국가별 국력평가 6위 등 대단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어떠한가? 2022년 IMD 국가경쟁력 순위는 27위(64개국), 2022 IMD 대학교육경쟁력 46위(64개국), 2021 OECD 세계인적자원경쟁력 24위(38개국)로 국력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은 어떠한가? 영국의 대학 평가 기관 QS의 2021년 ‘세계대학평가’에서 한국 대학 39곳 가운데 23곳(59%)의 순위가 지난해보다 하락했다. 100위 안에 든 우리나라 대학은 서울대(36위)·카이스트(41위)·고려대(74위)·연세대(79위)·포스텍(81위)·성균관대(97위) 등 6곳이다. 2003년 QS 세계대학평가가 시작된 이후 18년째 한국 대학은 톱 30위 안에 들지 못했고, 역대 최고 순위는 2014년 31위를 한 서울대이다.
QS가 공동으로 실시한 ‘2021 아시아 대학 평가’에서 우리나라 대학들이 2년 연속 10위 안에 들지못한 반면 아시아 대학평가 상위 10위 대학 소속 국가는 중국 5개교, 싱가포르 2개교, 홍콩 2개교, 말레이시아 1개교이다. 논문수 톱100에서도 중국·일본 49곳, 한국 5곳 뿐이다. 2014년 2위였던 카이스트는2021년 14위로 내려갔고, 서울대는 4위에서 18위로 밀려났다. 한국 대학의 77%는 지난해보다 순위가 내려간 것으로 집계되었다.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날로 높아 가는데, 한국의 고등교육경쟁력은 날로 떨어지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대학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는 이유는 ①디지털시대에 뒤처진 열악한 교육 환경 ②정부 규제에 의한 획일적 대학정원 관리와 학사운영 ③지난 15년간 지속되고 있는 반값 등록금정책에 의한 등록금 동결 ④OECD 국가 38개국의 평균 수준에도 못미치는 정부의 재정지원과 세제규제 등으로 인한 재정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이로 인해 한국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국가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가 경쟁력의 핵심인 고등교육경쟁력의 추락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우리나라 대학이 세계 수준의 대학과의 경쟁은 차지하고서도 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쟁에서도 추월당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미 아시아 주요국들의 2022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싱가포르(3위)‧홍콩(5위)‧대만(7위)‧중국(17위)에 크게 뒤처지고 있다. 이들 국가의 주요 대학
경쟁력도 우리 대학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인성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사무처장대학평가와 고등교육 전문가로 교육통계 분석 작업에 참여해 왔다.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을 거쳐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정보공시센터장과 기획조정실장을 지냈다.
“‘학술기본법’ 제정, 국가 성숙성장에 기여한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토론회 개최
‘학술기본법 어떻게 제정할 것인가’▶1면에서 이어짐“이제는 국가의 개발을 통한 성장이라는 패러다임에서 ‘국가의 성숙을 통한 성장’이라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단계다”‘학술기본법’ 제정이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김월회 서울대 교수(중어중문학과)는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열린 ‘학술기본법 어떻게 제정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 때 취했던 모방형·추격자형 개발성장 패러다임으로는 성장과 발달을 지속할 수 없다며 ‘학술기본법’ 제정이 ‘성숙성장 발전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김 교수는 발제에 앞서 ‘인문’의 개념을 정의 했다. 그는 ‘인문’이 ‘사람다움’을 뜻한다는 점에서 ‘인문학’처럼 분과학문에 기초한 개념보다 사회적 함의도 포함한 광범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른 국가 인문정책도 단순한 인문학 진흥을 넘어 정부가 인간다운 삶과 사회의 실현을 위한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학술기본법’의 제정이 ‘인문학의 진흥’에만 한정될 게 아니라 사회 개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라고 강조했다.
‘학술기본법’ 제정 근거 중 하나로 김월회 서울대 교수는 선진국형 ‘성숙성장 발전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주장했다. 그는 산업화 시기 과학입국 단계에서는 과학기술만으로도 성장할 수 있었지만, 3베터리·3반도체·3방산 등 첨단기술을 보유한 과학흥국의 단계에서는 인문사회학술을 기반으로 국가를 경영해야 한다며 “선진국 문턱을 넘어섰기에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또한, 사회 내부 부조리와 갈등을 진단하고 해결 방법을 찾는 데 있어서도 인문 정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말로 활용되는 피로사회·위험사회 등의 용어를 소개하며 “우리나라는 선진국 단계에 있음에도 시민들의 삶과 생명이 총체적으로 소모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학술기본법’ 제정이 국가 인문역량의 제고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선진국 단계에서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일구기 위해서는 어느 정파가 집권하는지와 무관하게 국가의 현실 개선, 미래 기획은 중장기적으로 지속돼야 한다”라며 이를 위한 토양 조성을 ‘학술기본법’이 뒷받침할 수 있다고 봤다.“인문사회 학술정책 전문기구 신설 필요”이강재 서울대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학술진흥법’의 확대가 필요한 것인지 ‘학술기본법’을 제정할 것인지 앞으로 논의돼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사진=강일구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강성호 순천대 교수(사학과)도 ‘학술기본법’ 제정에 동의하며 가칭 ‘한국인문사회기획평가원’ 신설도 제안했다. 강 교수는 “이공 분야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같은 과학기술정책 전문기구가 있지만, 인문사회 분야는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서 인문정책특별위원회 등에서 학술정책을 부분적으로 담당하고 있다”라며 “인문사회학술 정책 전반을 체계적으로 다뤄야 하는 전문기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정병호 고려대 교수(전 전국사립대학인문대학장협의회장)는 ‘학술기본법’ 제정도 중요하지만, 인문교육의 통합적 생태계 구축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03 사업을 보면, 인류세, 디지털 대전환, 기후위기 등 다양한 선도적 요구 부응하는 연구가 진행된다. 그런데 HK 사업이 끝나면 연구하던 사람들이 기존 학과로 돌아가 책임시수를 채운다. 사업 때만 선도적 문제의식에 부응한 연구를 하고 학과에서는 기존 교육을 한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학술기본법’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기초 자연과학의 진흥에 머물지 않고 기초학술 분야의 자생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학술과 교육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방향으로 설계돼야 하며, 이렇게 됐을 때 법률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강태경 전국대학원노동조합 전 정책위원장도 ‘학술기본법’의 제정 취지에 공감했다. 강 전 위원장은 “고등교육 교원은 해외 박사들로 충원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고, 고등교육 양성과정도 해외 대학에 의존하며 국내 대학들은 박사 양성에 소홀했다”라고 비판하며 “냉정히 말해 인문사회 분야 운영 실패의 뼈아픈 현실”이라고 짚었다.
또한, 아직 인문사회분야에 국가 연구과제를 하려면 4대보험 가입을 포기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있다며 이는 대학에서 가르칠 사람을 양성할 체계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B유형이 인기있는 데에는 이러한 제도의 부재 탓도 있다고 말했다.
“기초학술 개념도 의견 조율 필요하다”이날 토론회의 좌장을 맡은 인문정책특별위원회위원장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사회과교육과)도 의견을 보탰다. 그는 ‘학술기본법’이 제정돼야 하는 이유로 대학을 평가할 수 있다는 근거를 들었다.김 교수는 “정병호 교수가 말한 것처럼 인문학이 교육과 연결이 되지 않고 인문 관련 연구지원이 어려운 것은 대학이 세상의 변화에서 가장 동떨어진 곳이기 때문"이라며 “그다지 선호하지 않지만 대학을 바꾸는 방법은 평가밖에 없다. 이전까지는 인문·사회와 관련된 평가가 없었다”라고 강조했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인문정책특별위원회 위원 이강재 서울대 교수(중어중문학과)는 ‘학술기본법’ 제정 방법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이 교수는 ‘학술기본법’이 제정되면 앞서 언급된 사안들은 해결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학술진흥법’의 확대가 필요한 것인지 ‘학술기본법’을 제정할 것인지 앞으로 논의돼야 한다”라고 했다.또한, 기초과학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서도 고민할 지점이 있다고 했다. ‘학술기본법’이라고 법의 이름을 정할 때 “기초과학과의 관계에 있어 인문사회계에서 생각하는 기초학술 개념과 외부에서 보는 게 다를 수 있다”라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2023년 상반기 올해의 청소년교양도서
선정 및 보급사업 신청 안내(재)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과 (사)대한출판문화협회가 공동 주관하여출판문화진흥과 청소년들의 독서생활화 및 건전한 정서함양을 위하여 1984년부터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선정 보급 사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가. 일 정① 신청기간 : 2023. 04. 24.(월) 09:00 ~ 05. 12.(금) 18:00② 발표일자 : 2023. 06. 30.(금) 예정나. 대상도서① 2022. 11. 01. ~ 2023. 04. 30. 기간 내에 납본을 필한국내발행 초판 도서② 선정 분야(6개 분야)구분 독자대상 분야별내용 ① 초등도서② 중ㆍ고등도서① 인문ㆍ사회② 문학ㆍ예술③ 과학ㆍ기술③ 제외도서- 재단 임원이 대표인 출판사 제외- 정부 및 공공기관, 타 재단(단체) 등으로부터 선정되고재정적 지원을 받은 도서- 출판사 산하에 계열사가 나눠서 신청한 경우중복신청으로 인정한다.다. 신청방법① 재단 홈페이지(www.tkpf.or.kr) 공지사항에 공개된네이버 폼 양식으로 온라인 신청서 작성 (신청기간에만 작성가능)② 도서 소개글을 출력하여 도서 2부 동봉 재단 사무국으로 발송* 접수 마감 당일 소인분까지 유효※ 네이버 폼 온라인 신청서 작성 → 도서 소개글 포함 도서 2부 발송라. 기타사항① 선정 종수: 우수선정도서 40종, 추천도서 60여종* 추천도서를 포함하여 선정도서 리스트를 작성② 선정도서 보급- 우수선정도서 40종에 대하여 약 250만원 상당의 도서를 정가에 구매- 전국 작은도서관, 청소년 관련 기관 등에 무상 배포③ 선정도서 홍보- 우수선정도서, 추천도서 각각의 인증마크 수여- 전국 도서관 및 학교에 홍보④ 신청도서 발송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봉로 95, 101동 201호(견지동, 대성스카이렉스)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 청소년 교양도서 담당자⑤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tkpf.or.kr) 참조재단법인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新刊
군자의 논어군자출판사“라이즈, 국가 역할 따라 갈림길에 섰다”
포럼 사의재, 윤석열 정부 교육정책 진단
라이즈, 6~8개 초광역단위로 설정 제안“고등교육의 지방분권을 통한 지역·대학의 동반 성장이냐 아니면 대학의 지자체 예속을 통한 준 시장주의적 구조개편이냐.”홍창남 부산대 교수(교육학과)는 지난달 25일 민주당 교육위원회가 주최한 윤석열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을 진단하는 토론회에서 라이즈(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가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책무성 강화 여부에 따라 성장과 개편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고 말했다.홍 교수는 정부가 고등교육 공공성 강화를 위해 국가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충하고 대학의 자율적 혁신을 유도하면 지역·대학의 동반 성장이 가능하겠지만, 현 수준의 재정 지원 규모를 유지한 채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면 준(準)-시장주의적 구조개혁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이날 토론회에서 홍 교수는 먼저 라이즈의 대학 관할 범위가 비효율적이라고 진단했다. 가령 같은 광역단체 단위이지만 대구에는 4년제 대학이 2곳밖에 없고 경북에는 20곳이 있다며 “대다수 대구 출신 학생들이 다니는 대학의 소재지는 경북이다. 학생들의 거주지와 대학이 많은 곳을 분리해 라이즈를 운영하는 것은 우리나라 현실과 맞지 않다”라고 짚었다. 홍 교수는 라이즈를 광역이 아닌 초광역단위로 설정하고 생활경제권, 지역의 특성, 규모의 경제 등을 고려해 전국을 6대 혹은 8대 권역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했다.
라이즈의 거버넌스 문제도 짚었다. 중앙 부처의 지역인재정책관과 라이즈센터, 광역지자체의 라이즈센터와 라이즈 추진단, 지역고등교육위원회 등 라이즈 관련 기관이 많아 그 관계가 모호해 거버넌스가 제 역할을 못 할 것이라고 봤다. 특히, 지역고등교육위원회와 라이즈센터 간 관계가 가장 모호하다며 라이즈센터는 독립된 특수법인으로, 지역고등교육위원회는 센터의 이사회로서 성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홍 교수는 “부산이나 충북은 여전히 지자체의 관계 기관이 라이즈센터를 맡고 있다. 이를 법적근거와 재정 기반을 갖춘 특수법인으로 전환해 독립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라이즈 구축이 대학의 자율적 변화 추진 동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홍 교수는 “기존 대학의 산학협력단회계로 편성됐던 RIS, LINC3.0, LiFE, HiVE 등의 사업이 라이즈 법인으로 편성돼 산학협력단회계가 대폭 축소된다”면 대학 자율성이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홍 교수는 정부가 라이즈를 통한 지역 문제 해결을 기대하고 있지만, 지자체가 관할하는 대학의 수가 적으면 보다 촘촘하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대학 운영에 관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포럼 사의재와 국회 교육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25일 윤석열 정부의 교육정책을 진단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포럼 사의재
교육의 역할을 산업 인재 양성으로 규정한 대통령 방침에 따라 지자체가 대학을 지역산업 발전의 수단으로만 활용하려고 시도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대학 구조가 지역 수요 중심으로 재편되면 해당 지역의 산업 수요가 낮은 분야는 소외되어서 기초학문 보호도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라이즈와 연계된 글로컬대학은 ‘글로벌’보다는 ‘로컬’의 역할이 강조될 것이라며 지역국립대의 위상 저하와 지역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도 약화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단기적인 대안으로는 △권역별 라이즈 체계 구축 △법적 지위와 재정 기반을 갖춘 라이즈 센터의 특수법인화 △국립대와 사립대로 이원화 한 글로컬대학 선정 등을 제안했다. 중장기적으로는 △한시적 사업 기반 지양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국가 균형발전회계 조 원 확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200억으로 세계적 대학 못 만들어”
반상진 전북대 교수(교육학과)는 윤석열 정부의 지방대 정책에 대해 “지역 대학 살리기가 아닌 대학 구조조정과 경쟁 구도를 가속화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 교수는 글로컬대학 사업에 대해 ‘언 발에 오줌누기 식 대처’라고 비판했다. 그는 “서울대 1년 예산이 !천억 원이고 서울 주요 사립대는 5천~6천억 원, 국립대는 3천억 원이다. 반면, 하버드대나 스탠포드대는 1년 예산이 10조 원이고 도쿄대도 3조 원은 된다. 200억 원으로 세계적 대학을 만들겠다는 것은 립서비스다”라고 비판했다.현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이 실효성 없는 사업기반 정책이라고도 비판했다. 반 교수는 “고등교육 관련 국정과제 !개 중 교육부 단독 과제는 4개이고, 나머지는 과기정통부(2개), 산업부(1개), 중기부(1개), 국토부·금융위·고용부·중기부·교육부· 국방부·국조실(1개)에서 벌이고 있는 것은 사업기반의 정책”이라며, “이 정책은 정권이 끝나면 사업이 일몰되기에 큰 실효성이 없다는 게 과거 정부에서 입증이 됐다”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예고한 ‘대학설립·운영규정’ 개정에 대해서는 규제완화로 대학의 시장화를 확산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겸·초빙 교원 비율을 늘려 교수의 질 저하와 대학의 미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익용기본재산 기준 완화에 대해서는 “사학법인이 건물과 땅을 자유롭게 상업 시설로 전환하거나 법인·사학소유주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운영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짚었다.
반 교수는 ‘대안 법안’을 마련도 제안했다. ‘사립대구조개선법’에 대한 대안으로 ‘사립대학법’을 제정하고, 지방대 지원 계획수립 권한을 지자체에 이양하는 관련 법령 개정에 대응해 ‘대학균형발전을 위한 지원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했다.라이즈 연착륙 위해 시범지역 7곳 분석해야
전국교수연대회의 공동대표인 신정호 목포대 교수(중국언어와문화학과)는 홍 교수의 발제 내용에 동의하며 정책이 합리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등교육 재정의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또한, 신 교수는 지자체에 대학 재정 지원 권한 이양은 한계 사립대의 퇴출 시기를 늦추고 공공재정 지원의 감소나 역차별로 국립대와 건전한 사립대가 오히려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 라고 봤다. ‘사립대구조개선법’에 대해선 국가와 지자체의 고등교육 관련 공공재원이 부실 대학과 한계 대학의 구조개선과 자산 매입 등에 과도하게 투입되는 길을 열어줄 가능성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백정하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 소장도 라이즈에 대해 의견을 보탰다. 백 소장은 라이즈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7곳을 통해 라이즈의 문제점과 장점을 분석해 라이즈를 연착륙시켜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성공사례를 만들기 위해서는 컨설팅과 자문이 필요하다고 했다. 라이 즈 수행 과정에서 지자체 내의 고등교육기관들의 역할분담도 검토돼야 한다고 했다.
강일구 기자 onening@kyosu.net수도권 2000년 이후 첫 정원 순증
서울대 218명·경북대 294명 늘어교육부, 첨단h보건의료분야 정원 배정
수도권 817명, 비수도권 1천12명 순증2024학년도 첨단분야 학생정원 배정결과, 수도권 19개 학과에서 817명, 비수도권 31개 학과에서 1천12명의 학부 학생정원이 추가로 늘어난다. 수도권에서 가장 많은 정원이 배정된 대학은 서울대로 4개 학과(전공)에서 218명이 순증된다. 비수도권에서는 경북대가 가장 많은 정원을 받았으며 6개 학과(전공)에 294명이 늘어난다. 비수도권 사립대 중에서는 울산대와 연세대 분교만 첨단분야 학생정원을 배정받았다.교육부는 2024학년도 일반대학 첨단분야와 보건의료분야 정원 조정 결과를 확정해 대학에 통보한다고 지난달 27일 밝혔다.2024학년도 일반대학 첨단분야 정원배정 결과
순 대학명 학과(전공) 수 순증(명)
1 서울대 4 2182 가천대 3 1503 세종대 3 1454 성균관대 2 965 고려대 1 566 동국대 1 457 이화여대 1 308 서울과기대 1 309 연세대 1 2410 덕성여대 2 23계 10교 19 817비수도권
순 대학명 학과(전공) 수 순증(명)1 경북대 6 2942 전남대 5 2143 충북대 5 1514 충남대 2 825 연세대 분교 3 756 전북대 3 717 부경대 2 388 금오공대 1 309 부산대 1 20울산대 1 17안동대 1 10창원대 1 10계 12교 31 1,012※교육부 자료학생정원이 늘어난 첨단분야는 반도체(654명), 에너지·신소재(276명), 미래차·로봇(339명), 바이오(262명), 인공지능(195명), 소프트웨어·통신(103명) 등이다. 첨단분야와 관련해 서울대 다음으로 수도권에서 많은 정원을 배정받은 학교는 가천대(150명), 세종대(145명), 성균관대(96명), 등이다. 비수도권의 경우 경북대 다음으로 많은 정원을 배정받은 대학은 전남대(214명), 충북대(151명), 충남대(82명) 등이다. 특히, 비수도권에서 첨단분야 정원을 배정받은 12개 대학 중 사립대는 울산대(17명)와 연세대 분교(75명) 2곳뿐이다.
첨단분야 학과의 학생 증원을 위한 주요 심사기준은 특성화·지역산업·관련 학과 간 연계, 교육과정 개편, 교원확보 우수성, 실험·실습 기자재 보유여건이 기본지표였다. 이 외에도 융합형 인재양성을 위한 학과 간 연계융합 노력등 대학의 의지를 함께 고려했다고 교육부는 밝혔다. 첨단분야 순증 신청은 총 7천41명으로 이중 수도권 21개 대학이 5천734명(81.4%), 비수도권 12개 대학에서 1천307명(18.6%)을 신청했다. 이에 대해 박준성 교육부 대학규제혁 신총괄과장은 “수도권의 신청이 많았으나 지방대의 어려움을 고려해 최소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라고 밝혔다.
수도권의 입학정원 순증을 허용한 것은 2000년 이후 처음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박 과장은 “1998년 수도권 정비심의위원회에서 수도권 일반대의 총량 규모를 정했고, 현재는 총량 규모에서 7천 명 정도 미달 돼 있다. 이번 정원의 증원도 이 범위 내에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수도권에서 첨단분야 정원을 배정받은 대학 중 2곳을 제외하고 모두 국립대인 것에 대해서는 “신청 자체가 연세대 분교와 울산대를 포함해 4곳 정도였다. 4곳밖에 신청하지 않은 이유는 신청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추측한다”라고 밝혔다.
비수도권의 반도체 등 첨단학과에서 벌어지는 미달사태와 관련해 이번 정원 배정에서 증원이 되더라도 생길 수 있는 수도권 인재 쏠림에 대해서는 “첨단분야 인재를 양성하려면 기자재도 갖춰야 하고 필요한 교원도 확보해야 한다. 이번에 여건과 역량이 되는 대학들 위주로 신청을 했다”라고 말했다.한편, 보건 분야의 경우 간호학과는 39개 대학에서 410명, 임상병리학과는 11개 대학에서 27명, 약학과는 8개 대학에서 17명, 치과기공학과는 1개 대학에 30명, 작업치료학과는 5개 대학에 48명을 배정했다.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2023년 아산재단 학술연구지원 안내우리 학술장의 ‘소통 공간’ 함께 키워 갑시다
천하제일연구자대회
기획위원 일동 editor@kyosu.net
김신현경(서울여대), 김헌주(한밭대), 박지훈(중앙대), 서민우(경남대), 이시윤(공주대), 이우창(서울대), 장수희(동아대), 천정환(성균관대), 최은혜(고려대), 최혜미(강릉원주대), 추주희(전남대)2022년, <교수신문>이 30주년을 맞아 연재한 특별 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이하 천하제일)’를 통해 우리는 35명의 신진 연구자들을 만났다. 여기에서 우리가 본 것은 인문사회과학의 붕괴가 목전으로 다가온 오늘날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역량을 키워온 신진 연구자들이라는 ‘희망’의 조각이었다.
다양성과 독창성, 깊이에 있어서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던 신진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서 우리 학술장이 가진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이 자신의 연구 분야를 일구어 가면서 마주해야 했던 우리 학술 공간에 대한 성찰적 증언은 그 자체로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비판’이었다.5월 초, 이제 <교수신문>은 ‘천하제일’의 두 번째 여정을 시작한다. 지금의 학술장이 맞이하는 위기의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한 분과 간의 높은 장벽과 소통의 단절, 건전한 학술 담론의 실종은 신진 연구자들의 동력마저도 앗아가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는 ‘천하제일’은 이제 두 번째 여정을 통해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
천하제일연구자대회 두 번째 여정을 시작한다.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좋은 연구와 연구자의 존재를 확인하고 힘을 얻고,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작은 소통의 공간을 만들어 작은 희망을 함께 키워갈 것을 기대한다.이고, 좋은 연구와 연구자의 존재를 확인하고, 힘을 얻고, 그리하여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작은 소통의 공간을 만듦으로써 작은 희망을 함께 키워갈 것을 제안한다.
지난 2월, 첫 번째 시즌에 대한 평가회가 있었다. 다양한 의견이 오갔지만 스스로 후속세대 신진 연구자 자신이기도 했던 참가자들은 ‘천하제일’의 의미를 바로 소통에서 찾았고 또한 소통의 강화를 주문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제기되었던 첫 시즌의 가장 큰 한계는 기획위원들의 노력에도불구하고 참여한 신진 연구자들의 구성이 ‘서울/주요 명문대’ 출신으로 쏠려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천하제일’이 위기의 시대에 각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인문사회과학 신진 연구자들을 소개하고 성찰적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목표를 두려 하는 이상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하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획의 의지나 역량과는 무관하게 제한된 지면에 분과·소속·연령·성별·지위 등을 모두 고려한, 결점 없는 고른 소개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이다. 이 상황은 복잡하게 얽힌 우리 인문사회과학장의 문제적 현실 그 자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위기의 원인과 그것을 고쳐나가는 방법에 대한 답은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함께 고민할 때 비로소 얻어질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고민을 안고 ‘천하제일’을 다시 시작한다. 두 번째 여정을 위해 기획위원의 수를 늘리고 분야를 더 다양화 했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한계가 많겠지만 단점을 보완하여 오늘날 각지에서 애쓰고 있는 신진 연구자들에게 마이크를 주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여러모로 궁리하고 노력하려 한다. 연재와 병행하여 다양한 연계 활동도 기획 중이다.
모쪼록 학술장의 많은 성원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기를, 또한 이번 기획과 기획위원들에게 비판과 질책, 조언을 던져 주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소개되었고 이제 앞으로 소개될 신진 연구자들에게는 그보다 훨씬 더 뜨거운 관심과 응원이 쏟아지기를 기대한다.양적 성과로 내달리는 ‘학계의 가속화’…“우리에게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서울리뷰오브북스의 『한국에서 박사하기』 서평에 대한 답변 2
『한국에서 박사하기』 공저자로서 앞서 서평 답변을 쓴 이우창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결코 쉽지 않은 대화에 나서 주신 서평자 김두얼(명지대 경제학과) 선생님께 감사 말씀을 먼저 전하고 싶다. 무엇보다 현직 교수가 우리 책에 서평을 썼다는 소식은 그 자체만으로 놀랍고 기쁜 일이었다. 서평자가 언급하듯 책에서 “지적하는 많은 문제의 원인 제공자이면서 해결의 열쇠를 쥔 집단”인 교수가 읽어주기를 내심 바라면서도, 경험상 그럴 일이 없을 거라며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대가 없던 상태에서 교수 신분을 의식해 응원과 독려 또는 자책과 반성만 담기기보다 책 내용에 충실한 비판적 서평을 받아 들고 나니 인사치레 대신 서평 내용에 응답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과 서평, 그에 따른 반성과 응답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대화가 한국 대학원과 학계 발전을 위해 저자들이 구상한 내용 너머의 논의로 이뤄지길 바란다.
양적 연구성과 가속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서평의 주된 비판과 답변은 지난 4월 24일자 교수신문 기고(이우창)에서 상당 부분 다뤄졌다. 때문에 해당 내용을 반복하기보다 책에서 주된 문제의식으로 다뤄졌지만, 서평에서는 다소 지엽적인 문제로 치부된 ‘학계의 가속화’ 현상을 다시 논의의 장으로 끌어올리고자 한다. 서평이 해당 주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은 것이 아쉬워 상기하려는 게 아니다. 저자들의 학문에 대한 인식이 한국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어 실망스럽다는 서평의 비판이 지금의 학계를 계속해서 가속시키는 힘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그 힘에 저항하는 의미를 가진 책인 만큼 쉽게 받아들이거나 지나치기 어려운 지점이다.책은 학계의 가속화를 주로 대학원생을 비롯한 신진 연구자들의 경험과 감각을 통해 설명한다. 학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개 양적인 연구성과 지표를 채우거나 늘리기에 급급한 우리의 모습이 너무도 익숙해서 별다른 부연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다. 빨라지는 속도에 맞추느라 몸과 마음이 힘들고 아픈 연구자를 묘사하기도 하지만 저자들이 가속화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책은 가속의 목적과 방향을 물으며, 내달리기만 하느라 놓친 사항은 없는지를 검토한다.
예컨대 인문사회학계가 생산하는 지식의 쓸모를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는 진단은 우리가 효율적으로 더 많은 지식을 생산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엇을, 또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답하는 작업이 생략되었음을 암시한다. 획일화된 양적 기준의 연구 평가체계와 역시 ‘전임교원 되기’로 획일화된 진로계획을 다변화할 필요성을 논하며 우리에게 다른 방향이 없지 않다는 가능성을 떠올리기도 한다. 몇몇 심각한 침해 사건이 언론을 통해 교문 밖으로 알려지고서야 대학이 대학원생 인권 보호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이곳이 누군가 집요하게 문제 삼지 않는 이상 정말 기본적인 것조차 애써 눈감고 지나치곤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좋은 연구·연구자·대학원’은?
다시 말해 『한국에서 박사하기』는 가속화된 한국 학계가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질문들, 좋은 연구란 무엇이고 좋은 연구자란 누구인지, 또 좋은 연구를 만들고 좋은 연구자를 기르기 위한 좋은 대학원은 어때야 하는지를 논의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좌담회 내용을 바탕으로 쓰인 글이다 보니 형식적인 한계로 인해 서평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다소 일관되지 않은 개선방안을 늘어놓은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소 추상적인 담론으로 흐를 수 있는 문제를 현실에 가까운 언어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훨씬 구체적인 후속 논의를 가능케 하지 않았나 싶다.우리에게 필요한 건 한국 박사 개개인이 세계적인 슈퍼스타 학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한국 대학원과 학계에서 창출하는 지식이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게 만들어줄 기준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는 국경이 아니라 함께 기준을 세우고 적용하기 위한 제도를 설계할 시간 조차 허용하지 않는 가속의 늪이다. 이 견고한 울타리를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건 다름 아닌 브레이크다.이러한 맥락에서 서평을 다시 살펴보자. 서평자는 한국이 몇몇 산업이나 스포츠, 문화와 예술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것처럼 한국의 대학원과 학계 역시 글로벌 위상을 드높일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의 학문에 대한 인식이 좁은 나머지 ‘한국에서 박사하기’가 ‘세계를 향해 박사하기’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이와 함께 책에서 다뤄지지 않아 아쉬웠다며 논의 주제 하나를 제시한다. 바로 좋은 학술지에 좋은 논문을 많이 실어 세계적인 슈퍼스타 교수가 되는 방안이다. 물론 서평자가 개별 연구자의 입신양명만을 중시해서 이와 같은 쓴소리를 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논의라고 하기엔 또 다른 의미에서 서평자의 좁은 인식에 기인한 비판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우기가 어렵다. 저자들이 책에서 다루고자 했던 좋은 연구와 좋은 연구자에 대한 고민과 논의를 또다시 배제한 채 지금껏 학계가 그래왔던 것처럼 학문의 목적과 방향
을 하나의 차원으로 축소하려는 관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약탈적 학술지에 실린 무수한 논문들 서평에서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한 획일적인 정량 성과 지표에 기반한 연구 평가나 약탈적 학술지와 같은 부실 학술활동 역시 책에서 직간접적으로 다루는 질문 ‘좋은 연구란 무엇인가?’에 답하기 위해 논해야만 했던 주제들이다. 최근 MDPI, Hindawi와 같이 부실한 운영에 대한 의심이 꾸준히 제기되어온 출판사의 학술지들이 SCI 및 SSCI 목록에서 등재 취소되는 일이 일어났다. 자세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루에 1개 이상의 특별호(Special Issue)를 모집해 거의 절반에 달하는 게재율을 바탕으로 한 해 수만 편의 논문을 싣는 비정상적인 행태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물론 이 사실만으로 해당 출판사의 학술지에 실린 연구를 모두 부실 학술활동으로 규정해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 학계에서 게재한 이른바 SSCI급 논문 4편 중 1편 이상이 앞서 언급한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학술지에 실렸다는 사실과 이 수치가 다른 국가와 비교하더라도 유독 높다는 사실 뒤에는 분명하고도 불편한 원인이 자리를 잡고 있다.(2021년 기준) 바로 SSCI 등재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이 곧 좋은 연구이며 그런 논문을 많이 쓰는 연구자가 곧 좋은 연구자라는 인식에 갇혀 있는 우리 자신 말이다.
내달리느라 무시해온 질문을 논의하자『한국에서 박사하기』의 저자들은 한국 학계와 대학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동안 우리가 빠르게 내달리느라 애써 무시해온 질문들을 논의하자고 제안한다. 좋은 연구란 무엇이고, 좋은 연구자란 누구이며, 이들을 생산하고 배출하는 좋은 대학원은 어때야 하는가? 책의 출발점은 분명 저자들이 발 딛고 서 있는 바로 지금 여기지만, 다루는 문제의식은 결코 한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우리에게 필요한 건 한국 박사 개개인이 세계적인 슈퍼스타 학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한국 대학원과 학계에서 창출하는 지식이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게 만들어줄 기준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는 국경이 아니라 함께 기준을 세우고 적용하기 위한 제도를 설계할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는 가속의 늪이다. 이 견고한
울타리를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건 다름 아닌 브레이크다.
전준하
『한국에서 박사하기』 공저자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 「대학평가와 ‘제3의 임무’ 제도화 : 산학협력선도대학(LINC) 육성사업 사례연구」라는 논문으로 석사를 했다. 대학 및 학술정책, AI 정책에 관심이 많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주간 <교수신문>과 온라인 교수신문에 선생님의 이야기를 정성껏 담겠습니다 자유 기고는 물론, 제보와 보도자료는editor@kyosu.net 으로 보내주세요과학 연구, 바이오안보와 균형 찾기 시급하다
실험실에서 유출되는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가 위협받고 있다. 과학 연구도 좋지만, 생물학적 위험을 규제하는 감독이 필요하다. 사진=픽사베이
▶ 1면에서 이어짐
‘엠폭스·조류인플루엔자’변이로 팬데믹 우려 확산지난달 26일 기준, 국내 엠폭스(MPOX: 원숭이두창) 누적 환자가 34명이 됐다. 엠폭스는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급성 발열·발진성 질환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엠폭스는 1958년 실험실 사육 원숭이에서 최초로 발견됐다. 1970년에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인체감염 사례가 처음 보고됐다. 변이를 통해 진화해온 엠폭스는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중앙아프리카·서아프리카의 풍토병인 엠폭스 환자가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바이오 안보(biosecurity)에 대한 염려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바이오 안보는 감염성 질병의 전파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동식물에 유해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등 유기체의 유입·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말한다. 바이오 안보는 야생뿐만 아니라 연구실험실과 군사시설에도 적용된다.일일 코로나19 확진자가 여전히 1만 명을 넘고 있다. 지난달 25일 신규 확진자는 1만6천383명이었다. 조류인플루엔자(AI: 조류독감)도 전 세계적으로 유행 중이다. 국내외 보도에 따르면, 수천만 마리의 조류가 살처분되는 가운데, H5N1 변이 조류인플루엔자가 확산되고 있다. 변이 조류인플루엔자에 의해 사람이 사망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현재 일본은 사상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살처분할 땅을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특히 중국과 칠레
에서는 인간이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돼 사망했다. 변이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향후 수년 내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미확인 병원체 연구로 오히려 감염 확산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은 병원체에 대한 연구가 오히려 위험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분석기사에 따르면, 미국은 2012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인간과 동물 모두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와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을 퇴치-예방-감시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지출했다. 미국 연방 정부는 전 세계 최소 78개국과 10개 이상의 지역에서 인수공통감염병 연구에 약 30억 달러(4조 65억 원)을 투자했다.
열대우림을 탐사하는 연구원들은 동남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 비료로 채굴되는 박쥐의 배설물 등 박쥐의 분비물과 직접 접촉함으로써 감염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수년 동안 바이러스를 분류하는 별도의 작업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 연구에 투입된 과학자들은 박쥐에게 물리거나 할큄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또한박쥐의 소변·혈액이 눈과 얼굴에 튀는 경우도 생겼다.
바이러스나 세균의 실험실 유출 사고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1903년 실험실에서 연구하던 과학자는 비저균(말·당나귀에서 유행하고 사람도 감염시키는 감염성 질환 유발 병원균)에 감염됐다. 접종을 마친 기니피그를 부검하며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는 일하던 중에 손가락에 상처를 입었으나 다행히 살아남았다. 1967년 통일 전 서독에서는 마르부르크 바이러스로 인한 질환이 발생했다. 연구를 위해 수입한 아프리카 녹색 원숭이의 피부조직에 노출된 실험실 노동자 31명이 마르부르크 출혈열이 발병했고, 7명이 사망했다.
전쟁으로 파괴되는 공중보건연구소바이오 안보는 전쟁 중에도 문제가 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수단의 교전 단체 중 하나가 하르툼의 국립 공중보건연구소를 점령함으로써 극도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핵과학자 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에 따르면, 전쟁은 소아마비와 콜레라를 포함한 다양한 병원균 샘플을 수용하는 시설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연구소를 점령한 후에 모든 기술자를 실험실에서 쫓아내버서 생물학적 위험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아울러, 연구소에 대한 공격으로 전기·물 공급이 중단되어 공중보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 때문에 수단 시민들이 말라리아·콜레라·뎅기열 등의 위험에 노출된다. 수단에 내전이 발생한 이후, 14건의 의료시설 공격이 확인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도 러시아군이 공공·동물보건연구소를 장악해 병원균이 유출될 위험에 놓인 적이 있다.
보스턴대 과학자, 기괴한 코로나바이러스 개발그레고리 코블렌츠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에 따르면, 그동안 미국은 실험실 사고와 고위험 과학의 오용을 방지하기 위해 사후적이고 무계획적인 접근 방식을 취했다. 특히 전 세계로 고위험 연구를 수행하는 100개 이상의 실험실이 존재한다. 그래서 지난 1월 바이오 안보를 위한 국가과학자문위원회의 전문가 패널들이 만장일치로 바이러스에 대한 이중 용도의 연구를 감독하는 방법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을 권고했다. 연구의 목적이 평화적이더라도 악의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병원체나 정보는 이중 용도로 간주된다. 권고안은 당장 위험해 보이지 않더라도 감독 대상 병원체의 범
위를 확대하고, 민간 자금 지원 연구도 감독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주문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미 바이오 안전과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18억 달러(2조4천57억 원)의 예산을 의회에 요청했다.
예를 들어, 정부 자금을 사용하지 않았던 보스턴대 과학자들은 정부의 감독 없이 향상된 특성을 지닌 비현실적인 코로나바이러스 변이를 만들었다. 코블렌츠 교수는 자금 출처에 관계없이 위험한 병원체를 다루는 모든 연구기관은 감독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국가교통안전위원회나 원자력 규제위원회와 같이 강력한 감독 권한과 자원을 가진 독립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캐나다·스위스·네덜란드·영국·독일이 이미 바이오 안보에 대해 강력한 감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 연구를 저해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최소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즉, 과학과 바이오 안보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손으로 만드는 창의성, 되찾을 수 있을까
유만선의 ‘공학자가 본 세상’ ⑳
누구나 창조하는 ‘무한상상실’ 그 시작과 끝창작 즐길 여유 허용하지 않는 문화 바꿔야지금으로부터 거의 10년 전 과학관이란 곳에 막 적응한 나는 신기한 프로젝트를 하나 맡게 됐다. 이름하여 ‘무한상상실 구축 및 운영사업’. ‘메이커 운동’이라는, 당시 한국에는 생소했던 개념의 문화를 널리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메이커 운동은 사람들이 소비에서 벗어나 저마다 가치 있는 무언가를 상상하고 또 만들며 주변에 공유하는 활동으로 메이커는 이러한 창조 활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메이커 운동은 대량생산과 소비에 익숙해진 현대 시민들에게 잃어버린 창의성을 되찾아 주는데 그 의미를 뒀다. 당시 새로 부임하신 단장님이 주신 크리스 앤더슨의 『메이커스』라는 책을 읽고 서울 대전 등에서 활동하던 메이커분들을 만나 자문을 구해가며 무한상상실의 공간과 시설, 운영 프로그램 등을 계획했다. 몇 달 뒤인 2013년 8월 1일 당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님을 모시고 진행된 개소식과 함께 한국의 무한상상실은 첫발을 뗐고, 이후 전국 곳곳에 무한상상실이 생겨났다.
처음 운영된 무한상상실은 나에게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낯설었다. 창작활동에 큰 도움을 주는 ‘디지털 제조장비’가 강조되다 보니 부모님들이나 교사들에게 3D프린팅 수업을 주로 하는 교육공간으로 오해받은 적도 있다. 아이디어가 있는 일부 청소년과 성인들에게는 발명품의 설계·제작을 무료로 대리해주는 가공서비스 공간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공간을 운영하면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머리를 쓰는 ‘발상’과 관련된 창의교육은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손을 사용해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 보는 ‘창작’은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이 시기 독일의 교육전문가 한 분과 만나서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독일은 발상 수업 이전에 풀이나 가위, 더 나아가 못이나 망치, 끌 등의 수공구 사용법을 먼저 아이들에게 가르친다고 했다. 이와 반대로 한국은 인문계 중심의 교육구조 때문인지 아니면 이웃한 제조공장, 중국에서 넘어오는 값싼 제조품의 ‘풍족함’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스스로 만들어 보는 문화가 자리 잡기에 좋은 분위기는 분명 아니었다.
2014년 확장된 무한상상실에서는 발상을 위한 프로그램보다 창작을 위한 기술 학습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더 많이 제공했다. 3D프린터, 레이저 컷과 각종 설계프로그램 등의 활용에 필요한 안전 기본교육을 진행했고 각 교육을 이수하고, 장비들의 기본 활용 테스트를 통과한 시민들에게는 해당하는 장비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무한상상실을 기획하고 운영한 경험은 국내에서 활동하는 창작자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게 해준 고마운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한 여자아이는 CAD를 이용한 설계부터 3D프린무한상상실에서 제작된 걸음마 훈련로봇이다. 창작활동은 기술을 문화로 즐기는 여유가 중요하다. 사진=유만선
터, 레이저 커팅 작업까지 손수 진행하며 기괴하고 신기한 놀잇감들을 마구 만들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건축가로 활동하던 한 메이커는 생활하던 산속에 도로가 깔리면서 근처에 서식하던 맹꽁이들의 길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차량의 과속방지턱과 맹꽁이들의 생태통로를 결합한 시제품을 만들었다. 갓난아기를 키우던 한 엔지니어 부부는 주말마다 무한상상실을 방문해 아기의 걸음마 훈련 로봇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렇듯 기존 국내 창작자들에게 좋은 환경과 기회를 제공하며 무한상상실 사업은 일정 부분 성과를 냈지만, ‘창작활동’을 일반 대중에게 널리 확산시키는 것에는 한계를 보였다. 시민들에게 창작을 시작할 충분히 좋은 이유를 제공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시민들이 기술을 즐기기에 충분한 ‘여유’가 없던 것이 사업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본 ‘여유 시간의 기술’을 즐길 기회가 아직 우리 시민들에게는 허락되고 있지 않았다.
무한상상실 사업은 작년에 최종 중단됐고, 현재는 창업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메이커 스페이스’ 사업이 창업진흥원 등에 의해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창업 기반’이 아닌 ‘문화’로서도 우리나라 시민들의 ‘창작활동’은 계속해서 응원받아야 할 것이라 믿는다.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 고유의 것이라 여겼던 ‘창의성’을 위협하는 요즘, 손으로 직접 창작하며 얻게 되는 감각과 그로 인한 학습 경험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도 소중하게 여겨
지기 때문이다.
유만선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사회주의·현실주의 아닌 ‘인본주의’ 문학을 펼치다
백석의 절명시 ‘물길 따라’
봄부터 ‘한국 지역문학의 옹이와 결’이라는 기획으로 전주 지역 계간지 <문예연구>에 연재를 시작했다. 그 첫걸음은 백석(1912∼1996)이 북한문학사회에서 마지막으로 활동했던 해인 1964년의 작품 가운데서 절명시 두 편을 알리는 글로 뗐다. 1964년, 백석의 절명시 「동창생」과 「물길 따라」가 그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백석의 문학 생애 끝자리 발표 작품 「물길 따라」의 앞뒤 사정과 뜻을 짧게 소개한다.백석은 여러 가명을 썼다. 글쓴이가 굳힌 것은 리세희, 박일파(일파), 리식이다. 그 중에서 리식은 1955년 번역동화집 『동물 이야기』를 처음으로 1961년 경희극 작품평을 거쳐 1964년까지 7편의 작품에 올렸다. 각별히 1964년에는 번역 시, 기사문, 독후문과 창작 시에 걸쳐 5편에 이 이름을 썼다.리식은 백석의 마지막을 지켜준 이름이었던 셈이다. 백석 나이 쉰세 살. 그 뒤로 이승을 뜰 때까24세 백석의 함흥 영생고보(永生高普) 교사 시절 모습이다. 박태일 경남대 명예교수가 백석의 「동창생」과 「물길 따라」를 소개했다. 사진=위키백과
지 서른 해를 넘는 동안 백석은 북한 문학사회에서 이름을 묻고 살았다.
「물길 따라」를 9월 8일자 <문학신문>에 올릴 무렵 백석은 평양 북쪽 먼 자강도 만포군의 압록강가 별오제재공장에서 사무원이자, <문학신문> 통신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1958년 해밑에 양강도 삼수로 첫 현지 파견을 떠났던 백석이다. 그곳에서 북한 축산 정책과 맞물린 장편 가극까지 창작했다. 그런 성과를 바탕으로 1960년 11월 무렵 백석은 평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961년에는 함경남도 신포수산사업소로 단기 현지 파견을 다녀왔다. 그러다 1962년 하반기 만포로 다시 내려간 것이다. 그리고 성공적인 그곳 적응 사실을 알리듯, 가명이나마 두 해 만에 북한 중앙 문학사회에 작품을 선뵀다.
“저녁노을 붉게 타는 계벌장에 / 내 떼를 대이고 나서면, / 헤여짐을 아쉬워하는가, 물결도 처절썩…… / 발목을 감쓸며 모래불에 뒹구누나”로 시작하는 「물길 따라」는 일곱 토막으로 짜였다. 말하는 이는 유벌공 ‘나’다. 계벌장까지 옮겨 온 벌채목을 하류 저목장까지 끌고 가는 일을 맡은 사람이 유벌공이다. 「물길 따라」는 계류장을 떠나 압록강 물길을 좆아 떠내려 온 ‘나’가 저녁 저목장 모래불로 나서는 ‘오늘’ 이 자리를 바탕으로 삼았다.
그런 위에다 강 아래로 내려오면서 겪었던 여러 경관 변화와 그에 맞물린 감회를 혼잣말 형식에 얹은 시가 「물길 따라」다. 유벌공의 자랑스럽고도 만족스러운 노동의 기쁨이 부드러운 숨길을 탄 셈이다. 백석 후기시가 보여 준, 조곤조곤 유려한 말씨에다 특유의 개성적인 조어 역량까지 잘 담긴 작품이다. 그 무렵 북한 시의 대종이었던, 도식적인 발상에 상투적인 목소리와는 다른 고유하고도 개별적인 표현 특성이 오롯하다. 노골적인 정치 감각과도 거리를 두었다.사회역사적 맥락에서 유벌과 유벌공이라는 글감과 주제는 비통하고도 고난스러운 겨레의 지난 날을 되비추어 준다. 나라 잃은 시대, 울창한 우리 밀림에 대한 왜적의 무자비했던 대규모 산림 수탈 책략과 맞물린 까닭이다. 거기다 북한 사회에서 압록강은 다른 맥락을 더한다. 김일성의 이른바 혁명 전통이 아로새겨진 곳이라는 뜻이 그것이다. 「물길 따라」는 압록강과 만포 지역이 지닌 그러한 역사 맥락이나 장소성에는 눈을 감았다. 오히려 압록강 긴 유벌의 풍광과 마주친 시인의, 타자를 향한 애정과 찬탄이 오밀조밀 옹근 맵시다.
압록강 저목장 지구, 만포군 별오 마을에서 백석은 이름과 자리를 낮춘 채 문학 생애 마지막을 견뎠다. 무명의 심지를 고요로이 마음속에 켜들었을 백석.절명시 「물길 따라」는 이른바 천리마 기상 드높은 북한의 사회주의·현실주의 집체 문학, 집단 문학 정치 속에서도 백석이 끝까지 실천하고자 했던 시의 중심을 가늠하게 이끈다. 곧 참과 개성이다. 압록강가를 거닐고 제재공장 사무실을 드나들며 개인 백석은 놀랍게도 인본주의와 문학의 문학다운 형식이라는, 자기식의 문학 정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셈이다.박태일
경남대 명예교수·시인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20쪽사상사 연구자이자 칼럼니스트인 김영민 서울대 교수가 들려주는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사는 법. 인류의 보편적 문제인 ‘허무’에 대한 오래된 사유의 결과물을 그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포착해내고 재해석했다. 허무라는 주제를 다룬 만큼 죽음과 해골이 등장하지만 김영민식의 유머와 통찰 덕분에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도 너무 가볍지 않게 허무를 직면한다.
대동민주주의와 21세기 유가적 비판이론의 모색
나종석 지음 | 예문서원 | 984쪽생명위기, 기후위기, 소외와 갈등, 물신주의, 현대의 위기를 나타내는 수사는 너무나도 많다. 바야흐로 위기의 시대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미래사회를 향하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겠지만 이 책의 저자는 특히 우리의 전통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다. 이는 인류가 시도했던 ‘전통의 파기’라는 근대적 도전의 실패로부터 비롯된 반작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린키피아
아이작 뉴턴 지음 | 박병철 옮김 | 휴머니스트 | 960쪽위대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의 이 책은 과학 혁명과 그로부터 이어진 근대 과학의 발전에 압도적인 공헌을 한 책이다. 고전역학의 바탕을 만들고 과학적 탐구 방법을 제시하며 현대 문명의 주춧돌을 세웠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인류의 역사를 바꿨다. 하지만 그간 국내에는 연구자와 일반 독자가 두루 읽을 만한 한국어판 번역서가 마땅치 않은 실정이었다. 박병철의 정확하고 유려한 번역을 통해 『프린키피아』를 소개한다.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
필립 드와이어 외 17인 지음 | 책과함께 | 688쪽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는 인류사에서 “문명화과정에 따른 폭력성의 순화와 평화화”로 인해 폭력성이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는 낙관적 주장으로 대대적인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사회과학 전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비판받아왔다. 이 책은 전 세계의 권위 있는 역사학자들이 ‘폭력의 역사’에 대한 왜곡에 바탕을 둔 핑커의 저술을 전면적으로 논박한다.좋아요만 좋아하는 세상
제니 몰렌 지음 | 김옥수 옮김 | 청송재 | 360쪽재능은 있지만 직장은 없는 카피라이터 메간 체르노프가 둘째 아이를 낳은 뒤로 정체성 혼란을 겪으면서 이야기는 펼쳐진다.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가족 전체가 뉴욕으로 이사하는데, 이곳에서 메간은 우아하고, 화려하고, 유명한 ‘엄마 인플루언서’ 다프네 콜을 만난다.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가운데, 다프네 콜은 메간한테 엄청난 관심을 보이면서 찬사와 관심과 선물 세례를 하고 거대한 디지털 플랫폼으로 연결한다.나는 내 인생이 참 좋다
메리 파이퍼 지음 | 허윤정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332쪽『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얼마든지 우아하게 성장하고 지혜로운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과 위로를 전한 심리치료사 메리 파이퍼의 신작이 출간됐다. 전작이 노년에 집중했다면 이번 책에서는 인생 전반을 차례로 되짚으며 힘겹고 막막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어떻게 삶의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고 한 발씩 나아갈 수 있었는지를 삶의 기술과 태도를 곁들여 이야기한다.정조의 군주상
김백철 지음 | 이학사 | 485쪽정조는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이었을까? 주목할 점은 1980년대까지도 정조에 대한 평가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까지 역사서나 사극 등에서 정조의 모습은 주로 나약한 임금이자 유약한 왕세손으로 형상화됐고, 정조 연간이 개혁의 시대로 그려지기 시작해 ‘정조신드롬’으로 명명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재평가된 것은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였다.아리스토텔레스의 심리철학
유원기 지음 | 아카넷 | 564쪽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진 생물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작용에 관심을 가졌고, 따라서 그의 이론은 정신과 두뇌의 관계나 의식의 문제를 다루는 현대 심리철학보다 범위가 넓다. 그러므로 정신적 작용과 육체에 대한 그의 진술들에만 초점을 맞춰 그것들이 마치 그의 대표적인 견해처럼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
강수돌 지음 | 그린비 | 368쪽이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 아이, 어떻게 키워야 좋을까? 20년 전에 처음 나온 이 책은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서 나름 성공한 저자가 난생처음 ‘학부모’가 되던 때부터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던 경험담은 물론, 그 속에서 얻은 진지한 성찰을 담아낸 작품이다. 저자는 전국의 부모와 교사, 학생들이 이 책의 개정판을 읽고 친구나 이웃들과 진지하게 토론하면서 우리가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저자가 말하다_『이방인들의 영화』 | 이도훈 지음 | 갈무리 | 384쪽
이름 없는 ‘독립영화’, 영화 언어를 혁신하다사회적 사건에 관찰·기록자로 참여하는 독립영화
미학적 실험으로 에세이 영화·포스트 시네마 지향2003년 여름, 나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 간 어느 극장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한국 독립영화를 보았다. 평소 영화는 오락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내 편견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때 본 작품들은 평소 내가 신문을 통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사회적 이슈를 다루거나,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영화적 문법으로 내 감각적 경험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작품을 관람하는 동안 나는 한국 독립영화가 사회적 변화를 열망하는 동시에 영화적 형식의 쇄신을 지향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은 한국 독립영화는 관객에게 이름 없는 영화의 상태로 존재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름 없는 영화가 관객의 관심 바깥에 있어서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를 가리킨다. 극장 개봉을 해도 관객이 보러 가지 않는 영화, OTT에 서비스되어도 추천 목록에 뜨지 않는 영화가 그러하다. 이외에도 영화산업 시스템 바깥에서 만들어졌기에 관객과 만날 기회가 적은 영화, 특히 ‘예술영화·독립영화·실험영화·대안영화’로 분류되는 작품이 이름 없는 영화에 속한다.
이름 없는 영화의 상태는 이방인의 처지와 흡사하다.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에 따르면, 이방인은 “오늘 와서 내일 가는 그러한 방랑자가 아니라 오늘 와서 내일 머무는 그러한 방랑자”이다. 이방인은 그가 일시적으로 속해 있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어떤 경향으르도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관객은 한국 독립영화를 이름을 알 수 없는 이방인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한편, 한국 독립영화는 이방인에 의해 만들어진, 그리고 이방인을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업영화 시스템 바깥
에서 활동하는 영화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회적으로 안식처가 불분명하거나 그것을 잃어버린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전반부는 한국 독립영화가 사회적 사건에 개입하는 방식에 대해 주로 다룬다. 한국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사회적 이슈가 발발하는 현장에 관찰자·기록자·참여자로 개입한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작품들은 각각 △광주민주화운동 △도시화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미투 △코로나19를 다룬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 독립영화에서 현장이 의미하는 범위가 현실의 공간에서 가상의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의 주요 요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기술의 발전과 매체 환경의 변화이다. 오늘날 한국 독립영화는 동시대 매체 환경의 변화에도 기민하게 반응하면서 물리적 세계와 가상 세계를 두루 매개하는 방식으로 현실에 개입하고 있다.
이어서 이 책은 한국 독립영화가 미학적인 실험을 통해서 영화 언어를 혁신하는 과정에 주목한다.그 내용은 에세이 영화(essay film)와 포스트 시네마(post-cinema)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 독립영화는 2010년대 중후반 이후로 연출자의 사유를 형상화하는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왔다. 그런 작품들은 극영화, 다큐멘터리, 실험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감정, 정서, 무의식, 관념과 같이 시각적으로 구체화하기 힘든 것을 주로 다루었다. 이처럼 한국 독립영화 진영 내에서 나타난 새로운 영화에 대한
열망은 포스트 시네마라는 용어를 통해서 설명될 수 있다. 문자 그대로 영화 이후의 영화를 뜻하는 포스트 시네마는 전통적인 영화의 제작, 유통, 상영의 모델이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에 유효했던 영화에 대한 정의와 영화와 관련된 관객의 경험은 오늘날 무의미해지고 있다.
일부 한국 독립영화 감독은 미학적으로 새로운 영화를 꿈꾸면서 영화의 개념적변화에 대해 고민한다. 이 책의 독자들 또한 한국 독립영화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내일의 영화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해 숙고해보길 바란다.
이도훈
영화연구자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박사서평_『군자의 논어』 김균태 엮음 | 군자출판사 | 552쪽
사서삼경 으뜸 ‘논어’…과감한 재편집으로 새롭게 읽다『군자의 논어』를 읽었다. 『논어』야 사서삼경의 으뜸이니, 오랫동안 우리 서가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경서로 자리잡고 있었다. 전통시대에는 과거시험 준비를 위한 필독서였고, 그래서 ‘얼음 위에 박밀 듯’ 달달 외워야 하는 책이었다. 지금이야 그때보다는 당연히 열기가 사그라들었지만, 교양인으로서 읽어야 하는 책의 으뜸에 놓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미국 대학생의 필수 독서 목록 중 유일하게 동양의 서적으로 들어간 것이 바로 이 논어였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주석
도와 덕·인·예로 시작해 인물에 대한 평으로 마무리
공자, 말에 앞서 행동으로 모범 보이는 실천궁행 강조서‧번역본이 나왔겠는가. 그런데 다시 논어가 나왔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논어와 달랐고, 그리고 그러한 차이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먼저 보이는 것은 엮은이의 논어 편집이었다. 논어의 첫 번째 편명(篇名)은 “자왈(子曰)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로 시작하는 ‘학이(學而)’이다. 모든 편명이 이처럼 처음나오는 말로 이루어졌다.
예전 같으면, 사서(四書)의 으뜸이니 그 전개를 해체하여 다시 편집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조금도 바꾸지 않고 지금까지 내려왔다. 편명을 처음 나오는 말로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붙이면 전체의 내용과 아무런 연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편명을 어떻게 붙일까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마치 시조의 제목이 없으니 작품의 제목을 ‘청산리 벽계수야’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엮은이는 논어를 일관하는 기본 개념어인 ‘도와 덕, 인, 예’에 관하여 언급한 글을 먼저 배치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논어가 이 기본 개념어를 드러내기 위하여 만들어진 책이구나 하고, 바로 느끼게 될 것이다. 다음에 제시된 편명은 이 기본 개념어의 습득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상적인 인간상, 바로 ‘군자’이다. 공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군자를 설명했다.소인과의 대비를 통해서도 말하고, 군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래서 같은 듯 다른 의미를 가지는 선비와도 구별했다.
제3장은 논어 속에서 드러난 공자의 삶과 세계관을 엮은 것이다. 공자는 자신의 인생 역정을 ‘십유오이지우학(十有五而志于學)~’ 과 같이 요약하여 제시한 바 있다. 공자는 실천궁행을 강조했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며 말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말에 앞서 실천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를 좋아했고, 바른길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주저 없이 힘든 정치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리고 옆의 사람이 힘들어하는데 혼자 즐기지 않았다. 상중(喪中)에 있는 사람 옆에서는 배불리 먹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어른이 우리 옆에 좌정해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모
습을 한곳에 모아놓으니 더욱 공자는 피가 돌고 숨을 쉬는 살아 있는 이웃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제4장은 공자가 다른 사람을 평하는 글을 모아놓았다. 공자는 제자들에 대하여 좋은 점, 고칠 점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이는 대상에 대한 애정과 깊이 있는 성찰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보면서 아, 선생이란 제자를 이렇게 대해야 하구나 하는 생각·반성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이렇게 제자에 대한 글만이 아니라 역사상의 인물과 성현에 대한 글, 나아가 한 인물의 부정적인 면을 꼬집어 강하게 질책하는 글도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을 선발하는 직책에 있으면서 써야 할 사람을 빠뜨린 것을, 공자는 ‘지위를 도둑질한’ 것이라고 호되게 비판했다. 이로 보면 고위직에 임명되는 사람의 자질을 평가하며 인사의 잘되고 못됨을 얘기하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하다.
이처럼 논어를 일정한 방향을 따라 재편집하여 읽어보니, 공자의 언행, 그리고 공자가 말하고자 한 진실한 의도가 더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성인의 글이니 조금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논어를 저 선반 위에 놓고 받들어 모시는 사람들이 아닌 경우에는 말이다.군자를 지향하는 엮은이와 출판사가만든 책을 읽으면서 품격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쉽게 읽히면서, 오랜 여운이 남는 책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될 것이다.
정병헌
전 숙명여대 교수·국어국문학저자가 말하다_『증오를 품은 이를 위한 변명』 엄한진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 416쪽
사회 중심부 진입한 ‘증오’…이해·공존이라는 차선책
‘혐오·적대감·거부감’ 아우르는 개념인 증오
객관적 요인 분석보다 주체들에 대한 비난먼저 제목에 한껏 멋을 부린, 그래서인지 모호한 이 책의 정체에 대해 다소 길게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외국인, 여성, 이슬람, 빈민, 장애인 등 사회적으로 무언가가 ‘결여된’ 집단을 향한 혐오나 서구, 기독교, 백인, 부자, 남성과 같이 무언가를 ‘가진 자’에 대한 강한 적대감, 자신과 다른 정체성이나 견해를 가진 이들에 대한 거부감 등을 ‘증오’라는 개념으로 아우르고 있다.
유럽과 중동·북아프리카, 미국과 동아시아 등 지역이 다르고 이주, 젠더, 종교, 민족, 계급 등 영역은 다르지만 이 현상들이 유사한 배경과 기제를 지닌다는 점에 주목하여 증오 현상에 관한 총론을 시도한 것이다. 시기적인 유사성도 이러한 과감한 시도를 부추겼다. 2014년경 중동 지역에 화려하게 등장한 IS라는 단체가 극단적인 행태를 통해 이슬람 테러리즘과 이슬
람 혐오의 흥행을 주도했고, 같은 시기 흑인, 여성, 아시아계 주민 등을 대상으로 한증오범죄가 각박해진 미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주었다. 유사한 시기에 한국에서도 여성혐오 현상과 이를 둘러싼 논쟁이 사회 갈등의 전면을 장악하게 된다.
증오 현상이 노동자들의 투쟁이나 민주화운동과 같은 전통적인 이슈 못지않은 비중을 가지게 되면서 이제 주변부나 음침한 지하에서 나와 사회의 중심부에 진입했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그러면서 본격적인 증오론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제도권 정치에서 극우파의 존재가 더 이상 불경스럽지 않고, 증오범죄가 사회갈등의 주된 양상 중 하나가 되고, 혐오 현상이 일상의 주제가 되어 버린 현실은 기존과는 다른 접근 방법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였다. ‘외로운 늑대’나 테러 집단, 또는 시대착오적인 극소수가 아니라 인구의 다수가 적어도 하나쯤은 가지게 된 이 꺼림칙한 감정에 대
해 구분하고, 격리하고, 처벌하고, 계몽하는 식의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증오와의 공존을 불가피한 현실이라고 얘기하고, 집단면역이라는 비유를 사용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제목에 쓰인 ‘변명’이라는 표현에도 이러한 문제의식이 반영돼 있다. 증오는 계몽되지 못한 또는 사악한 어떤 이가 사회에 퍼뜨리는 독소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정조이며 그 안에 있는 모두가 앓고 있는 질병이다.
따라서 우연히 이 시대의 한계를 떠안은 불행한 개인들에 집중된 관심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증오를 품은 이들’에 대한 손쉬운 비난의 이면에는 다양성과 소수자와 관련된 확신에 찬 신념과 그것에서 나오는 쉬운 낙관주의가 존재한다. 그런데 민도(民度)가 높고 관련 제도적 장치가 잘 갖추어진 나라에서도 증오 현상이 결코 약화되지 않는 현실은 증오 영역에 확신과 낙관주의는 어울리지 않음을 보여준다. 소수자에 우호적인 담론이나 정책이 반동적인 흐름을 초래하는 역설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의지를 다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양자 간의 내재적인 관계에도 주목해야 한다.
출판사에서 책의 부제에 ‘사회학’이라는 표현을 쓰자고 했을 때 식상하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 책은 여러모로 사회학적이었다. 다양한 유형의 사회집단에 대해 가지게 되는 증오의 감정이나 행동을 유전적·심리적 요인이나 성장환경과 같은 개인적인 요인보다 사회의 구조와 조건으로 설명한다거나, 증오 현상이 항상 그래왔던 것이 아니라 특정 시기의 산물이며 정치권력, 언론, 학문 등 위
로부터 만들어진 측면이 강하며, 그렇지만 우리는 증오를 낳은 객관적 요인에 주목하기보다 증오의 주체들에 대한 비난으로 내몰린다는 등의 얘기들이 그러하다.
돌이켜보면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데 신경을 썼던 것 같다. 반면에 다소 서둘러 출간한 탓에 각 부분의 완성도가 떨어지고 가설이나 필자의 직관 정도인 내용이 많다. 난삽한 서론에 비해 상대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가면 부분 부분 새로운 시각을 접할 수 있다는 변명을 해본다.엄한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책으로 보는 세상_『편집자의 시대』 가토 게이지 지음 | 임경택 옮김 | 사계절 | 296쪽
그림자 같은 존재 ‘편집자’, 노하우 공유 필요하다가토 게이지(思言敬事)는 잊히지 않는 한 권의 책으로 1947년판 『소년아사히연감』(아사히신문사)를 꼽았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이 책을 볕이 잘 드는 마루 끝에 앉아서, 그야말로 배부른 상태에서 온종일 탐독했고, 저녁에 목욕하다가 코피가 터져 목욕물이 붉게 물드는 것을 아찔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미스즈서방 편집자 가토 게이지 유고 산문집
20세기 후반 일본 인문 출판 융성기의 기록가토는 1940년생이다. 책을 좋아했지만, 패전 직후의 일본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새로운 책이 거의 없어 열다섯 살 위의 형이 읽던 소년 잡지를 읽었다. 로맹 롤랑의 『장크리스토프』, 허버트 조지 웰스의 『세계 문화사』 등을 경쟁적으로 읽던 고교 시절을 지나 도쿄대에 진학한 가토는 1960년에 일어난 안보반대투쟁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권력과 폭력에 약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다. 그리고 “한순간의 용감함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저항을 지속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고, 인류학·미술사·철학·역사학 등 여러 수업을 틈나는 대로 청강하며 교양을 쌓는 데 주력한다.
가토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취직한 출판사가 미스즈서방이다. 그는 이곳에서 1965년부터 35년간 근무하며 제2대 편집장을 역임한다. 미스즈서방 창립자 겸 초대 편집장이던 오비 도시토는 가토가 입사하자 함께 강독할 책을 하나 내밀었다. 다름 아닌 스탠리 언윈의 『출판개론-출판업에 대한 진실』이었다. 그 즈음 미스즈서방 대졸 신입사원 교육용 도서는 마셜 매클루언의 『미디어는 마사지다』 라는 영문 원서였다.
출판사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46년에 창립한 이 출판사는 한나 아렌트, 카를 슈미트, 레비스트로스, 롤랑 바르트 등 서구 지성들의 저작을 번역 출간해 명성을 쌓았다. 번역서 목록
을 프랑크푸르트국제도서전에 가지고 가서 해외 출판인들에게 보여주자 일본에 이런 꿈같은 출판사가 있느냐면서 모두 놀랐다고 한다.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강의』의 세계 최초 외국어 번역서가 바로 1928년에 나온 일본어판이다. 20세기 후반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이 책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번역된 것은 당시 일본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가토 게이지가 마지막 교정을 보다가 2021년 타계하는 바람에 유고집이 되어 버린 『편집자의 시대』에는 실로 많은 책과 저자, 번역자, 편집자의 이름이 등장한다. 가토 게이지가 읽었거나 만났거나 친분이 있는 이름들이다. 이들 각각의 일화를 따라가다 보면 편집자와 저자, 번역가가 함께 지적 토양을 일구어가던 20세기 후반 일본 지식인 사회의 열기를 확인할 수 있다.
가토 게이지는 이 책의 초고를 출판사에 건네주고 나서도 새로 쓴 원고 두 꼭지의 오류 가능성 때문에 출판을 망설였다. 그런데 얼마 후 자신이 설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내가 말하지 않으면 미묘하게 틀렸다 하더라도 이제 아무도 말할 사람이 없다”라고 결심해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편집자는 “모든 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자,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그 전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두루 알면서 최소한 한 분야는 깊이가 있는, 도요타가 제시했던 T자형 인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편집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림자 같은 존재다. 그래서 이들의 회고록은 특별하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까지의 과정을 실제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회고록은 흔치 않다. 한국에서는 더욱 드물다.
꼭 출판 편집자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오늘날 한국에는 세계적인 콘텐츠를 기획하고 수많은 과정을 거쳐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해 내는 다양한 분야의 기획자나 프로듀서들이 있다. 이들의 경험은 두루 공유되어야 한다. K-컬처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한 바탕이 되기 때문이
다. 지식과 권력은 나눌수록 더 커진다.
김정규
한국대학출판협회 사무국장시민 교통
조중래 외 2인 지음 | 빨간소금 | 272쪽오랫동안 계량 분석 방법과 시뮬레이션으로 교통 문제를 다뤄온 교통학자 조중래와 함께 현행 예비타당성조사 모델이 지닌 논리와 전제, 그리고 편향성을 이야기한다. 이야기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GTX 계획이 불확실한 수요 예측 위에 놓여 있으며, 수도권 중심주의라는 잘못된 국토발전 방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해, 교통 정보 공개의 필요성까지 이어진다.호혜와 협동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정헌목 외 5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408쪽이 책은 먼저 제1부에서 호혜와 협동, 그리고 공동체를 둘러싼 개념과 이론을 살펴본 후 제2부에서는 이러한 개념과 이론이 실제 사례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보여준다. 먼저 ‘호혜성’ 개념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초기의 대표 학자 모스, 폴라니, 말리노프스키, 레비스트로스, 살린스 등의 이론을 비교 검토한다. 또 다른 주요 개념인 공유재와 관련해서는 위드록의 이론을 토대로 사회 구성원들이 자연적·사회적 자원에 접근하며 관계 맺는 방식을 살펴본다.미디어, 종교로 상상하다
박진규 지음 | 컬처룩 | 268쪽2023년 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는 공개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미디어의 강력한 의제 설정 기능을 통해 종교란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무엇이어서는 안 되는지를 놓고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종교 없이 살고 있으며, 반사회적 종교의 범죄 사실에 대해 비난하기는 쉽다.부패한 중국은 왜 성장하는가
위엔위엔 앙 지음 | 양영빈 옮김 | 한겨레출판 | 372쪽일반적으로 부패는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현실은? 중국은 1978년 개혁 개방 이후 만연한 부패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이룩했고 이제 미국과 어깨를 견주는 초강대국으로 우뚝 섰다. 또한 시진핑의 부패 척결 노력은 오히려 성장률 둔화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러한 부패와 성장의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항미원조
백지운 지음 | 창비 | 388쪽이 책의 저자인 백지운 서울대 교수(통일평화원구원)는 동아시아 평화의 관점에서 중국문화를 연구한 성과로 각광받아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중국 현대사의 흐름에서 한국전쟁이 기념되고 작품으로 형상화돼온 과정을 면밀하게 살피고 최근 중국 애국주의의 발흥 과정에서 항미원조전쟁이 재소환되는 맥락을 보여준다. 이제껏 제대로 탐구되지 못한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사를 알아보자.천년의 독서
미사고 요시아키 지음 | 하진수 옮김 | 시프 | 308쪽이 책은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의 답을 찾아가며 고전부터 현대 작품까지 오랜 세월 수많은 이에게 읽혀온 책들, 그리하여 ‘지혜의 목록’이라고 불러도 좋을 200여 권의 책들을 페이지 가득 펼쳐놓는다. 전국 1천500개 지점을 보유한 일본 최대 서점 체인 츠타야(TSUTAYA)에서 단 13명뿐인 ‘북 컨시어지’를 맡고 있는 저자는 독서학교의 기획자로도 유명하다.에픽테토스 강의 3·4
에픽테토스 지음 | 김재홍 옮김 | 그린비 | 418쪽노예로 태어나 여러 가혹한 외적 조건을 겪어 낸 에픽테토스는 오히려 그러한 경험들로 인해 물질적 풍요함을 누리는 사람들의 무능력을 비판하고 한 인간으로서의 위엄과 자존심, 마음의 평정을 가르칠 수 있었다. 코스모폴리탄적인 사고를 지닌 그의 철학은 자신만의 고유한 문체와 독특한 표현 형태를 통해 스토아 철학이 다루는 중요한 문제이자 개념들에 대해 생각한다.우리말이 국어가 되기까지
최경봉 외 5인 지음 | 푸른역사 | 384쪽공기처럼 너무나 흔하고 당연해서 존재하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국어’도 마찬가지이다. 언제나 곁에 있기에, 늘 읽고 쓰고 듣고 말하기에 ‘우리말이 어떻게 국어가 됐나’라는 근원적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국어’가 항상 ‘국어’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아예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고, 해방 후에는 갈등과 논쟁의 대상이었다.분야별 신간
인문니체, 사랑에 대하여 |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 울리히 베어 편집 | 최성희 옮김 | 세창미디어 | 264쪽바이스마르의 존재론 | 벨라 바이스마르 지음 | 김형수 옮김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 319쪽역사도쿄재판 전범 일본을 재판하다 | 청자오치 지음 | 정동매·오림홍 옮김 | 최윤곤 감수 | 예문서원 | 352쪽
문학-에세이문명의 바깥으로 | 나희덕 지음 | 창비 | 280쪽자기계발거인의 노트 | 김익한 지음 | 다산북스 | 292쪽과학
새로운 창세기 사회들의 기원에 대하여 | 에드워드 윌슨 지음 | 데비 코터 카스 파리 그림 | 김성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168쪽대중음악왬! 라스트 크리스마스 | 앤드류 리즐리 지음 | 김희숙·윤승희 옮김 | 마르코폴로 | 356쪽정치-사회
DJ에게 배워라 | 최용식 외 14인 지음 | 새빛 | 216쪽어린이의 눈으로 안전을 묻다 | 배성호 외 5인 지음 | 철수와영희 | 216쪽경제-경영저성장시대에 상품기획을 잘하는 10가지 방법 | 최낙삼 지음 | 새빛 | 386쪽『지배받는 지배자』가 『한국에서 박사하기』에게
학문의 주먹⑨
현대국가는 지식국가다. 지식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대학에서 나온다. 그런데, 대학과 학문이 붕괴되고 있다. 한국만큼 대학에 투자하지 않는 국가도 없다. 대학과 학문, 교육에 대한 비판적이고 통찰력있는 분석이 필요한 때다. 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쓰고, ‘지식과 권력’ 3부작을 내놓았던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과)가 도발적인 문제 제기에 나섰다. 학문과 정책(정치)의 연결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교육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사회적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최근 출판했다. 지식과 권력 3부작인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지민의 탄생: 지식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지성의 도전』, 『하이브리드 한의학: 근대, 권력, 창조』를 출간했다.
‘교수보다 훨씬 낫네!’ 내가 『한국에서 박사하기』를 읽고 난 후에 느낀 전체적인 소감이다.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거나 갓 박사학위를 받은 8인이 한국의 대학과 학계에 펀치를 날렸다. 이 책은 도발적이고, 재미있고, 또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준다. 교수보다 훨씬 나은 이유는 이들의 문제의식 때문이다. 논문을 찍어내는 ‘생활인으로서의 교수’들은 아이러니하게 한국의 학계와 대학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정도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책에서도 지적하듯이 한국 교수들은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알았지?’ 나는 책을 읽다가 여러 번 빵터졌다. ‘논문 양치기’(양으로 때우는 사람들)이기에 생각할 시간이 없다.
정치적이고 발랄한 정책도 제시
이 책은 그저 학계 경계인들의 경험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가속화된 학계’(필립 보스탈), ‘철장 속 일차원적 연구자’(베버와 마르쿠제), ‘시민사회와 단절된 게토로서의 대학과 학계’ 등 상당한 이론적 통찰력도 제공한다. 이 책은 또한 한국의 대학과 학계를 변혁하기 위해 정치적 의사 결정에의 참여, 인문 사회 연구자의 사회적 역할 확장, 사회적 아젠다를 주도할 수 있는 슈퍼스타 만들기 등의 정치적이고 발랄한 정책도 제시한다.하지만 이 책은 한편으로는 걱정·불안·우울로, 다른 한편으로는 도전·희망·학문에의 열정으로 널뛴다. 이런 현상은 내가 이미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에서 심도 있게 설명한 것이다. 학문은 ‘감정적 작업’이며 이는 학문 공동체로부터 부여받는 학문 자본(부르디외)과 학문에 대한 집단적 열정(뒤르케임)에 의해 유지된다. 따라서 학문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다.교수 집단조차도 어쩔 수 없는 장벽
‘한국에서 박사하기’는 글로벌 렌즈나 로컬 렌즈만으로는 이해될 수 없다. 이는 학문의 글로벌 내셔널 로컬의 구조와 상호작용에 의해서 다층적으로 이해돼야만 한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한국의 학계는 미국 대학의 글로벌 위계와 한국의 SKY라는 로컬의 위계로 이루어진다. 이는 개인의 학문적 열정으로 극복하기에 매우 힘든 장벽이다. 따라서 교수들은 대학원생들에게 ‘유학을 가라’(91쪽)고 조언할 수밖에 없다. 이 장벽은 교수 집단조차도 어쩔 수가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서 박사하기』는 패배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이 책은 한국의 학계와 대학을 저격한 책으로 대단히 뜨겁게 달구어져 있다. 하지만 나는 매우 차갑게 이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학계와 대학을 저격한 사람은 많지만, 똑바로 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세계 대학사를 연구하면 세계적인 대학 시스템의 구축‘한국에서 박사하기’는 글로벌 렌즈만으로도 로컬 렌즈만으로도 이해될 수 없다. 학문의 글로벌 내셔널 로컬의 구조와 상호작용에 의해서 다층적으로 이해돼야만 한다. 한국의 학계는 미국 대학의 글로벌 위계와 한국의 SKY라는 로컬의 위계로 이루어진다. 개인의 학문적 열정으로 극복하기에 매우 힘든 장벽이다.
은 똑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경쟁과 특성화의 원칙에 의해 연구중심대학을 전국에 세우는 것이다. 독일·미국·중국이 19·20·21세기에 똑같은 방식으로 세계적인 대학 체제를 구축했다. 연구중심대학은 대학원 중심대학이며 이공계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계도 포함한다.
이를 위한 최상의 방책은 당연히 ‘서울대 10개 만들기’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최대의 수혜자는 학문 후속세대다. 왜냐하면 전국에 1만 명의 교수를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중 절반은 인문사회계에 돌아갈 것이다. 나는 ‘SKY’ 교수들이 책도 읽어보지 않고 비판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는 누가 보더라도 황당한 짓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기 제자들의 밥상을 걷어차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학문의 자식들에게 밥을 먹여주지는 못할망정 남이차려준 밥상은 차지 말자.
물론 학문 후속세대 모두가 교수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대학 인프라의 확장은 교수들뿐만 아니라 대학과 학계에 종사하는 모두에게 이득을 준다. 한국의 박사들에 대한 구조적인 차별 때문에 40~50% 정도의 교수직은 일정기간 동안 쿼터제를 도입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는 대부분의 미국 유학파 교수들도 동의하는 사안이다. 왜냐하면 이들도 한국 제자들을 길러내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이다.문제는 예산과 정치적 설득
문제는 예산과 정치적 설득이다. 예산 문제는 매우 복잡한 사안이지만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대학지원을 넣는 것이다. 국세의 20.79%를 초중등교육에 강제적으로 배당하기 때문에 한국의 초중등교육 1인당 투자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반면 한국 대학은 이 책에서 지적하듯 기득권 대학과 학계의 무관심 때문에 아사 직전이다.이 법이 매우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 기획재정부조차 반드시 바꾸어야 할 법으로 인식하고 있는 마당에 새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만드는 것은 가능성이 거의 없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대학지원을 넣는 것은 큰 정치적 싸움이다. 이를 위해 누가 싸울 것인가? 가장 답답한 사람들이 싸워야 한다. 8명이 모였으면 80명, 나아가 800명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한국에서 박사하기』 저자들은 대학원에서 인권 여성 노동 문제 등으로 운동을 해 온 사람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학계와 대학에 대한 정치적 의사 결정에 직접 참여해 본 경험이 있어 정치인 원로들과의 연대 형성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여기서 나는 이들이 결정적으로 사태를 잘못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권 당시 진보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교육부 국가교육회의 교육청을 완전히 장악해 교육 권력의 삼위일체를 성취했다. 하지만 대학과 학계에 이들이 이룩한 업적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반박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비빌 언덕은 없다
이 책의 저자들도 이를 알고 있다. 하지만 학계의 주류가 아니라 경계인들이기에 비빌 언덕이라도 찾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비빌 언덕은 없다. 이것이 이들의 비극이다. 이들 젊은 세대의 문제 제기는 훌륭하였으나 똑같은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려 한다. 이들이 새로운 성공의 역사를 쓸 수 있을까? 조직적으로 끝까지, 정말 끝-까-지 싸운다면 나는 조그마한 승산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 앞에 놓인 거대한 장벽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또한 이상주의는 간직하되 『지배받는 지배자』의 마지막 결론을 명심하는 편이 좋으리라. Academia Immunda(학문은 더럽다).글로컬 오디세이
기독교-이슬람 불편한 동거, 정치적 노림수 있었다정진한
한국외대 아랍어과 강사요르단대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문명교류사와 중동학을 전공했고 한국이슬람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다. 「이슬람 세계관 속 신라의 역사: 알 마스우디의 창세기부터 각 민족의 기원을 중심으로」 등 논문을 썼다.
“부활절을 기념해 대통령께서는 수감자들에게 특별 면회의 기회를 제공한다.”
어느 기독교 국가의 보도 내용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구의 약 90%가 무슬림인 이집트 내무부의 발표다. 이집트는 헌법 2조에서 이슬람을 국가의 종교로, 아랍어를 국가의 공식어로, 이슬람 법인 샤리아를 입법의 주요 원천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집트 대통령 중 처음으로 교회 미사에 참여한 현 대통령 알시시는 올해도 어김없이 기독교 명절에 맞춰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군중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천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키고, 이슬람 원리주의 정당들을 해산시키고, 한 번에 백명 이상의 무슬림 과격 분자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엄격한 독재자이다. 그런 그가 기독교도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자상한 무슬림 위정자이다.
다른 중동 군부 정권과 마찬가지로 이집트 정부는 이슬람 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무슬림 대중들을 규합해 정권에 위협이 될 여지가 있는 여러 무슬림 단체들을 극렬하게 탄압해왔다. 대표적으로 5년 뒤 100주년을 맞는 유서 깊은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들의 대부 무슬림 형제당은 이집트 군사정권으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반면 기독교도들은 일시적인 갈등기를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군사정권과 상호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현 알시시 정권이 기독교도들을 배려하고 이들과 협력하는 배경에는 정치경제적 동기가 있다. 2024년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알시시에게 경제개발에 필요한 해외투자와 대외원조 수급에 있어 국내외 기독교인들의 지지는 필수적이다. 잔인한 진압과 철권통치로 인권탄압 논란에 휩싸여 있는 그에게는 국제 사회의지지와 협조를 획득하기 위해서 소수 종교 신자들 특히 기독교인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정권 유지를 위해 인구의 약 10%를 차지하는 기독교인들로부터의 득표 역시 절실하다.
한편, 왕정 종식 후 근 70년간 이어져 온 군부 정권의 몰락 후 요동쳤던 이집트의 민심은 기독교도들이 군정을 더욱 굳건히 지지하도록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011년 무바라크 대통령 하야부터 2013년 현대통령의 쿠테타 사이의 짧은 기간 동안 기독교도들이 목격한 이집트 사회의 흐름은 무슬림 형제당 출신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집권과 이집트 내 이슬람주의 세력의 급격한 영향력 확대였다. 자신들에게 최악인 상황으로 흘러가는 것을 목도했던 이들은 결국 군정이 제공하는 안정과 보호를 더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정권과 기독교계 사이의 협력관계가 마냥 낙관적일 것으로 전망할 수는 없다.이집트 알시시 대통령이 기독교도들을 배려하고 이들과 협력하는 배경에는 정치경제적 동기가 있다. 경제개발에 필요한 해외투자 및 대외원조 수급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사진=위키피디아
선의에 의한 행동이 늘 선한 결과로 돌아오지 않듯 무슬림 대통령들의 친기독교 행보는 종종 일부 무슬림들의 반기독교 정서를 초래했고, 때로는 기독교도들에 대한 테러를 유발하기도 했다.
최근 더 크게 불거진 관건은 경제문제다. 인류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듯, 이집트 역시 극심한 경제난으로 인해 적체된 사회 불만으로 다수 집단이 소수자들을 공격한 사례가 있다. 알시시 집권 전반기에 견실한 성장세를 이어가던 이집트는 코로나로 인한 세계적 불경기와 함께 그 성장 속도가 주춤했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심한 타격을 입은 국가 중 하나가 돼버렸다. 세계 최대 밀 수입 국가인 이집트는 기록적인 식료품 가격 폭등에 허둥대다 닭고기 대신 닭발 소비를 장려하는 무리수를 펼치다 큰 반발만 불러일으켰다.
중앙은행이 거듭 금리를 대폭 인상했음에도 지난달 10일 이집트 중앙 통계청(CAPMAS)이 발표한 3월 이집트의 인플레이션이 연중 최고점인 33.9%를 찍었다.작년 12월부터 IMF의 구제금융 관리를 받는 와중에 최근 환율 급등까지 겹치면서 이집트의 경기 회복 시점은 요원해졌다. 거기에 급변하는 대외 정치 환경까지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달 15일 쿠테타를 일으킨 수단의 반군은 이집트 공군 교관과 전투기 등을 억류하며 정세 불안을 부추기고 있고, 최근 불거진 미국의 비밀자료 유출 스캔들 역시 악재로 발전할 잠재적 위험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슬림 대통령이 던지는 기독교 명절 축하 메시지는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이집트의 무슬림 이웃들은 이미 여러 차례 대중 소요로부터 기독교도들을 보호한 전례가 있다. 이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자신들이 라마단 월 한 달간 지키는 단식보다 더 긴 단식을 기독교도 이웃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같은 땅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기리며 함께 인내한 이들 모두에게 종교적 차이를 초월해 서로 화합하는 이집트인이 되자는 대통령의 메시지가 모든 이들의 가슴에 와닿기를 기도한다.
세명대 “교육 불만족으로 자퇴 시, 등록금 전액 환불”
권동현 총장, “대학은 ‘교육의 질’로 평가받고 선택돼야”
“입학 후 교육 불만족으로 학교를 떠나는 학생에게 해당 학기 등록금을 그대로 돌려준다.”세명대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어 2024학년도 신입생부터 등록금 책임환불제를 국내 최초로 시행한다고 밝혔다.등록금 책임환불제는 학생이 교육에 대한 불만족으로 자퇴할 때 해당 학기 등록금을 전액 환불해주는 정책이다. 세명대는 ‘교육 불만족’에 대한 별도의 증빙자료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자퇴를 결정한 모든 학생에게 해당 학기 등록금을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환불금액은 국가장학금 등을 제외한 순수하게 학생 본인이 등록한 해당 학기 등록금 기준이며, 해당 학기 기말고사 종료일 이전까지 자퇴를 신청해야 한다.
팬데믹 시기 제대로 된 대면 수업이 진행되지 않았을 때 장학금을 지원하는 형태의 환급 정책은 있었으나, 입학 후 교육 불만족에 대해 등록금 100%를 환불하는 정책은 세명대가 국내 최초이다.권동현 세명대 총장(43세)은 “등록금을 환불한다는, 대학으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을 하게 된 것은 교육과 학습 환경에 관한 자신감, 학생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기때문”이라고 밝혔다.
권 총장은 “교육 수요자인 학생은 질 높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자신이 받은 교육을 당당하게 평가할 권리도 있다”며 “세명대에서 처음으로 도입하는 등록금 책임환불제는 그러한 권리보장을 향한 의미있는 첫 걸음”이라고 취지를 밝혔다.권 총장은 지방대 위기를 언급하며 서울 집중화 현상도 지적했다. 수험생들이 대학마저 서울과의 거리로 결정한다며, 대학은왼쪽부터 이승현 세명대 학생회장, 권동현 총장, 제정임 저널리즘 대학원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세명대
오직 ‘교육의 질’로 평가받고 선택돼야 한다고 이번 정책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번 세명대의 ‘등록금 책임 환불제’라는 도전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대학의 본질인 ‘교육의 가치’를 회복하고 학생의 권리가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간담회에는 권동현 세명대 총장과 김호현 부총장 등 교수진 5인이 참석했으며 한상익 홍보센터장이 사회를 맡았다.신다인 기자 shin@kyosu.net이광석 교수 ‘디지털 폭식 사회’, 과학기술도서상 최우수 출판상 수상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올해 우수과학기술도서 194종 접수
이광석 서울과기대 교수(IT정책전문대학원)가 쓴 『디지털 폭식 사회』(인물과사상사)가 제40회 한국과학기술도서상 최우수 과학기술 출판상을 수상했다. 수상자는 강준우 인물과사상사 대표이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상장·부상을 받는다.심사평은 『디지털 폭식 사회』가 “디지털 신기술을 성찰없이 폭식하는 우리 사회의과잉 경향을 특징적인 사례들을 통해 분석했다”라며 “저자는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에 디지털 기술의 폭식 과정에서 불거진 반생태적인 모습을 밝히고 공생과 호혜에 기반을 둔 기술 대안 제시도 덧붙여 큰 평가를 받았다”라고 밝혔다.
지난달 25일, 메디테리움 의학박물관 3층사진 왼쪽은 장주연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회장, 제40회 한국과학기술도서상 최우수 과학기술 출판상을 수상한 강준우 인물과사상사 대표이다. 사진 오른쪽은 『디지털 폭식 사회』(인물과사상사)를 쓴 이광석 서울과기대 교수(IT정책전문대학원)이다. 사진=하영
세미나실(군자출판사빌딩)에서 시상식이 열렸다. 올해는 우수과학기술도서 194종이 접수돼 열띤 경쟁을 벌였다.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는 과학기술 분야 도서의 질적 향상과 저술·출판에 대한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1983년도부터 한국과학기술도서상을 재정해 우수과학기술도서 분야별(출판, 저술, 번역, 출판기획 등)로 시상하고 있다.
우수 과학기술 번역상은 『공기 전쟁』(해나무)을 번역한 황성원 씨가 받는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상장·부상이 수여된다.
이외에도 △우수 과학기술 저술상(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 상장·부상)은 『노화학 사전: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노화의 모든 것』(서해문집)의 최현선 전 성균관대 의과대학 내과 교수 △특별상(과학기술 기획 공로상: 대한출판문화협회장 상장·부상)은 『과학의 창으로 본 생각과 논리의 역사』(한울엠플러스)의 김종수 대표 △우수 과학기술 출판상(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장상장·부상) 출판 부문은 『현장 전기설비 트러블 해결사례』(도서출판 기다리)의 김복순 대표, 저술 부문은 『거의 모든 물질의 화학』(현암사)의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 스쿨 겸임교수, 아동 부문은 『미스터리 과학 조사단』(아이세움)의 신광수 대표가 수상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교수들 “尹 외교정책 전면 쇄신하라”…대학가에 번지는 시국선언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달 정부의 한일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 발표에 이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 미국 정보기관의 도‧감청 의혹이 이어지면서 성균관대, 가톨릭대, 아주대 등이 시국선언에 합류했다.
지난달 21일 가톨릭대 교수 108명은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을 대일 굴욕 외교라고 비판하면서 이번 방안의 즉각 폐기와 책임자 해임을 촉구했다.가톨릭대 교수들은 “양국 간에 불행했던 과거사를 극복하고 미래를 함께 하며 공존과 번영하기 위해서는 가해자 측의 진정한 사과와 책임 인정이 필수적”이며 “이에 반하는 현재의 배상안은 무지하고 맹목적이며 굴욕적”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를 향해 △제3자 변제안의 즉각 철회 △일본정부의 책임있는 반성 요구 △협상 책임자의 해임 △대국민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 △올바른 역사 교육정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지난달 24일 성균관대 교수 248명과 아주대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성균관대 교수들은 “윤석열 외교정책을 비판하고 전면적인 국정쇄신을 요구한다”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교수들은 제3자 변제안은 헌법을 부정하는 행태이며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에 반한다고 주장하며 일본 강제동원 배상안 철회를 요구했다.또한 한미일 동맹도 언급하며 “군사적 긴장 상태에 놓인 한반도에서 능동적으로 균형을 잡지 못하는 외교는 무능과 굴욕을 넘어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교수들은 지적했다.
최근 불거진 미국 정보기관의 대통령실 도청 의혹과 대통령실의 대응도 비판했다.“이 정권의 미국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일방적인지 드러났다. 대통령이 국익과 한반도 평화를 생각한다면 외교·안보 정책을 전면 재고해야 한다.”아주대 교수들은 제3자 변제안,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 미국 정보기관의 도‧감청 의혹을 언급하며 윤석열 정부의 외교성균관대 교수들이 24일 명륜캠퍼스 앞에서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정책을 비판했다.
이들은 제3자 변제안은 국익을 위한 외교가 아닌 “이미 산적한 문제에 또 다른 짐더미를 올리는 무익한 행위”라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도 지적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강력한 반대와 항의를 일본 정부에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일본 정부의 심기를 살피는 하인처럼 보였다.” 또한,미국 정보기관의 도‧감청 의혹과 대통령실의 대처에 대해 “미국 정부의 눈치를 보는 저자세 굽신 외교로 일관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정부가 강자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처량하고 굴욕적인 처지에 있음을 만천하에 드러낸 셈”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아주대 교수들은 △ 제3자 변제안 즉각 철회 △외교안보 정책 조직 구성 전면 쇄신 △국민 자존의 원칙과 실용의 외교 정책 수립 △윤석열 정부의 사과를 요구했다.
지난 3월 서울대 교수들을 시작으로 고려대, 경희대, 동국대, 인하대, 전남대, 창원대, 전북대, 부산대, 한양대, 동아대 등 10곳이 넘는 대학에서 교수들이 시국선언 발표에 나섰다. 대학가의 시국선언을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신다인 기자 shin@kyosu.net국가교육위, “지방대 활성화 위해 ‘혁신도시법’ 개정기업 유치 필요”
부산지역 대학 총장과 함께 지역 교육정책 방향 논의
국가교육위원회(이하 국교위)에서 지난 달 26일 부산교육청과 부산시청에서 ‘미래 교육 현장 소통 간담회’를 열었다. 경북과 전북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리는 소통간담회다.미래교육 현장 소통 간담회는 국교위가 직접 지역을 찾아가 지방자치 단체, 교육청, 교사 등을 만나 지역 교육의 현안과 중장기교육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다.
이번 간담회에는 이성권 부산경제부시장, 장제국 대교협 회장, 차정인 부산대 총장, 이해우 동아대 총장, 김대식 경남정보대 김대식 총장 등이 참석했다.차정인 부산대 총장은 지방대 활성화를 위해 기존 ‘혁신도시법’에서 정하고 있는 적용지역의 단위를 현재의 ‘이전지역’ 이외에 별도로 ‘이전지역 외의 비수도권’을 추가하는 혁신도시법 개정을 제안했다. 또한, 차 총장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 지방대학과 지역인재가 핵심요소라며 수도권-비수도권 대학 정원 동률 감축과 우수 유학자원 유치・양성 방안을 제시했다.
이해우 동아대 총장은 대학이 지역 맞춤형 인재 양성을 통해 지역혁신을 선도할 수 있도록 부산 내 기업의 정책적 육성, 지역인재 의무채용비율 확대 등을 주장했다.김대식 경남정보대 총장은 양질의 일자리 확보를 위한 기업유치, 지・산・학 거버넌스구축을 통한 안정적인 취・창업 채널 운영, 정주형 유학생 유치 등을 제안하며 부산 발전을 위한 전문대학 역할 강화를 강조했다.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은 “부산은 우리나라의 제2의 수도로서 20여개의 대학이 자리잡고 있는 교육 경쟁력이 매우 높은 지역”이라며 “이런 교육 인프라를 적극 활용해 부산 지역에 맞는 교육 모델을 찾아 낼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신다인 기자 shin@kyosu.net거점국립대 명예교수회 상임회장에 김명길 교수
김명길 부산대 명예교수회장(법학전문대학원‧사진)이 ‘거점국립대학교 명예교수회 연합회’ 상임회장에 선출됐다. 임기는 1년이다.
김 교수는 지난달 11일과 12일 이틀간 제주대에서 개최된 ‘2023년도 거점국립대 명예교수회 연합회 정기총회’에서 차기 상임회장에 선출됐다.
거점국립대 명예교수회 연합회’는 부산대를 비롯해 강원대·경북대·경상국립대·전남대·전북대·제주대·충남대·충북대 등 전국 9개 거점대를 회원으로, 상호 정보교류와 친목을 도모하고 평생교육의 실현과 사회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총회에서는 2030 부산EXPO 유치를 적극 지지한다는 결의안이 의결되기도 했다.차석원 서울대 교수,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제10대 원장 취임
차석원 서울대 교수(기계공학부‧사진)가 지난달 21일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제10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임기는 2년이다.
차 교수는 서울대에서 학사학위 취득 후, 2004년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에서 기계공학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연료전지, 미래 모빌리티, 스마트 제조, 에너지·환경 등으로 폭넓고 다양한 융합연구를 왕성하게 해오고 있어 융기원을 이끌 적임자로 선임됐다.
차 교수는 서울대 공과대학 대외부학장, 국제협력본부 부본부장, 산업통상자원부 대학산업기술지원단 단장 등을 역임했다.한천구 청주대 교수, 과학의 날 대통령 표창
한천구 청주대 명예교수(건축공학과‧사진)가 2023년 과학·정보통신의 날을 맞아 과학기술의 진흥 유공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한 교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주최로 한국과학기술관에서 열린 과학·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한 교수는 건축재료·시공 분야 연구와 교육에 매진해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등 건축 학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2023 과학·정보통신의 날은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진흥 유공자 등에 대한 정부포상을 통해 과학·정보통신인의 자긍심과 명예심을 높이고, 대한민국 과학·디지털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자리로 마련됐다.류상완 전남대 교수, 한국물리학회 반도체학술상 수상
류상완 전남대 교수(물리학과‧사진)가 한국물리학회 반도체학술상을 수상했다.
류상완 교수는 4월 19일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한국물리학회 정기총회에서 우수한 연구성과와 학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같이 수상했다. 반도체학술상은 반도체물리학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학자에게 수여된다.류상완 교수는 새로운 반도체 소재의 개발, 나노 반도체 구조연구 및 재생 에너지 소자 응용에서 탁월한 연구성과를 달성했으며, 현재 나노 LED 분야 국가핵심소재연구단 단장을 역임하고 있다. 류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을 거쳐 2004년부터 전남대에 재직 중이다.
묵인희 서울대 의대 교수, 과학기술진흥 혁신장 수상
묵인희 서울대 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장(의대‧사진)이 지난달 21일 ‘2023년 과학기술·정보통신의 날’기념식에서 과학기술진흥 혁신장을 수상했다.
묵 교수는 알츠하이머병 조기진단 기술의 식약처 품목승인 성과 창출 등을 통해 치매 기초연구부터 실용화와 200여 편의 논문 발표 등의 연구 수행으로 관련분야 의학 발전에 기여했다.묵인희 교수는 “과학기술인의 영예인 과학기술훈장을 받게 돼 기쁘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치매극복을 위해 연구자로서 또 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장으로서 국내 치매연구 활성화 및 기반구축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인호 군산대 교수, 한국전산구조공학회 최우수 논문발표상 수상
김인호 군산대 교수(토목공학과‧사진)가 한국전산구조공학회 최우수논문발표상을 수상했다.
한국전산구조공학회는 정기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 중 우수 논문을 선정해 최우수논문발표상을 수여한다. 김 교수의 논문의 주제는 ‘전단력 및 비틀림 모멘트에 의한 병진 변형 및 비틀림 변형의상호 작용 효과’이다.
(사)한국전산구조공학회는 1988년 창립 이후 전산기술을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및 기술개발에 기여해 왔으며, KCI 등재학술지인 한국전산구조공학회 논문집을 발간하고 있다.기독교의 자유 개념 ‘세속화’, 현실에 성스러움 물들였다
네이버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끝
최신한 한남대 명예교수(철학상담학)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9를 맞이해 「자유와 이성」을 주제로 총 46회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본성, 재난과 질병에 대한 제약과 해방 등을 역사, 정치, 철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살펴봤다.지난 8일, 이번 시즌9의 마지막 회로 최신한 한남대 명예교수(철학상담학)가 「기독교와 자유」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기독교는 자유의 종교이다. 이 사실은 기독교 경전의 해석과 세계사를 통해 입증돼 왔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2) 이 성구는 기독교와 자유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기독교의 진리는 자유에 있으며 자유는 진리를 깨달을 때 달성된다는 의미이다.
기독교의 가르침, 진리, 자유, 이 셋은 분리할 수 없다. 기독교의 가르침이 자유로 귀결된다는 사실 때문에 자유에 반하는 현실은 비판을피할 수 없었으며 역사적 계기마다 자유를 향한 투쟁과 맞닥뜨렸다. 서양사와 기독교를 떼서 생각할 수 없다면 서양사의 전개와 기독교의 자유 정신도 분리할 수 없다. 기독교 정신은 세속화 과정에서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종교적 의미의 자유는 종교 언어와 일반 언어 사이에 간격이 좁아지면서 세속적 의미의 자유로 전이됐다
1517년에 시작된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은 가톨릭 교회에 대한 저항이자 그 지배에 맞서는 개신교의 자유 쟁취 사건이다. 프로테스탄트를 가톨릭 교회와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신앙인 개인의 신 의식, 즉 개인의 자기의식 가운데 구원자가 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신앙인의 내면성 가운데 자기의식과 신 의식이 교차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에서 신앙인은 오로지 교회를 통해서만 신과 접촉할 수 있으며 교회의 매개 없이 신과 관계 맺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면에 프로테스탄트 신앙인은 교회를 통하지 않고 내면 가운데서 신과 직접 만날 수 있다. 종교개혁 이후의 신앙인은 교회에 대한 복종과 사제의 매개 없이 신과 직접 대면할 수 있게 됐다.
정신의 확장은 종교개혁의 사고방식이다. 개인의 내적 체험이 표현됨으로써 먼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의사 소통이 이뤄지고, 이것은 국가와 사회의 소통과 정화로 이어진다. 개인의 사고와 사회적 의사 소통은 같은 뿌리를 갖는다. 개인의 신-관계(Gottesverhältnis)가 사회적 관계로 이어지면서 종교적 자유는 사회적으로 확장된다.
종교적 근본 형식은 자기와 결합한 사회 관계와 세계 관계를 상징화한다. 종교개혁을 통해 개방된 종교적 주관성은 가족과 직업이라는 세속적 삶의 형식으로 확대되고, 종교적 주관성의 자유는 사회적 자유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한다. 프로테스탄티즘은 개인의 신앙에서 출발하여 개인 간의 상호 전달을 거치면서 종교적 보편에 토대를 둔 문화를 만들어낸다.
개인이 신과 맺는 관계는 사회적 관계로 확대되고 가족, 경제, 정치에 대한 책임으로 이어진다. 종교적 의사 소통은 세속적 세계 안에 내재하는 타자, 즉 세속을 정화하고 성화(聖化)하는 타자로 기능한다. 타자는 세속 가운데 비세속적인 것, 즉 성스러운 것을 작동하게 하는 힘이다. 상호주관적 삶의 규범적 가치는 성스러움에 달려있다.프로테스탄트 신앙은 신에게 용서받고 인정받았다는 감정, 즉 죄와 고통에서 해방되고 자유를 얻었다는 감정에서 출발한다. 신앙인은 내면 가운데 직접적으로 느끼는 신에 대한 의“기독교의 자유가 세속세계와 다른 지평을 지향하려면 부분이 아닌 전체를 아울러야 한다. 자유는 전체로 나타나야 하며, 전체와 자유는 서로에게 스며들어야 한다. ‘신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만인은 양심의 자유를 갖는다’에서 보이는 전체의 자유는 초월적 자유를 알고 실천하는 신앙인에 의해 실질적인 현실이 될 수 있다.”
존감정에 토대를 두고 세상에서 자유의 존재로 살아간다. 신에 대한 의존감정과 신뢰는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원동력이다. 신앙인이 홀로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의 내면에는 신과 통일돼 있다는 확신이 존재한다. 종교적 자유의 근거는 신앙인의 자기의식 가운데 내재하는 구원자이다. 그는 한편으로 자기의식을 가지며 다른 한편으로 그와 동반하는 신 의식을 가진다.
신과 통일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 속에서 자유롭게 살며 늘 새롭게 산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자의적 삶은 새로운 삶이 아니다. 기독교인의 자유가 인정받으려면 세상의 기준과 구별되는 삶을 보여줘야 한다. 세상과 구별되는 삶의 기준은 반사실적이다. 반사실적인 모티프가 없는 자유는 세속적 삶과 구별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종교의 빛깔을 잃거나 사이비로 전락한다.
기독교의 자유가 세속세계와 다른 지평을 지향하려면 부분이 아닌 전체를 아울러야 한최신한 한남대 명예교수(철학상담학)는 “기독교의 자유이든 헌법에 명기된 자유이든 그 의미가 고정돼 버린다면 자유의 힘도 멈춘다. 자유의 원천이 현실이 아니라 반사실적 지평에 있다는 것은 그 개념이 늘 새로운 모습으로 발견되고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뜻한다”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자유의 세속화는 이미 완성됐어야 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 사진=네이버문화재단
다. 부분의 자유도 자유이긴 하지만 그것은 지속할 힘을 잃을 때 금방 사라져버린다. 자유는 전체로 나타나야 하며, 전체와 자유는 서로에게 스며들어야 한다. ‘신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만인은 양심의 자유를 갖는다’에서 보이는 전체의 자유는 초월적 자유를 알고 실천하는 신앙인에 의해 실질적인 현실이 될 수 있다.
신앙인이 획득한 자유 의식은 개인의 자유로 그칠 수 없다. 자유가 개인적인 차원에 머문다는 것은 자유의 속성에 모순된다. 나의 자유는 불가피하게 우리의 자유로 전개된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자유도 존속할 수 없다. 나는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로 인해 제한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므로 정신의 법칙은 모든 사람의 자유가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자유의 자기의식은 결코 홀로 존립할 수 없으므로 자유는 개인이 아닌 전체의 정신을 대변한
다. 이것은 기독교 사상뿐 아니라 그와 뗄 수 없는 근대철학의 근간으로서 결국 자유의 이념으로 연결된다.
기독교 자유 개념의 세속화는 현실 가운데 반사실성을 실현하고 있다. 초월적인 것이 현실 가운데 실현될 때 문제의 현실은 새로운 현실로 개선되었다. 세속화(secularization)는 번역어의 부정적 뉘앙스와 달리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성스러움의 활동이다. 이것은 성스러움을 속되게 만들어버리는 세속주의(secularism)와 구별된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 자유 개념의 세속화는 개인과 공동체의 인간화를 가능하게 했다. 자연과 자유가 대비된다면 기독교는 자연적 인간의 본능적 상태를 자유롭고 인격적인 상태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기독교 내적인 언어를 일반적인 언어로 세속화했다. 세속화된 자유 개념은 성스러움과 무관한 현실을 변화시키고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마무리되지 않았으므로 자유 개념의 세속화는 지속돼야 한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지속이 요구되는 것과 같다.기독교의 자유이든 헌법에 명기된 자유이든 그 의미가 고정돼 버린다면 자유의 힘도 멈춘다. 자유의 원천이 현실이 아니라 반사실적 지평에 있다는 것은 그 개념이 늘 새로운 모습으로 발견되고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자유의 세속화는 이미 완성됐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세속화는 확정된 의미의 분화(슐라이어마허/루만)로 이어지며 그때마다 새로운 자유의 의미가 드러나야 한다.
세속화는 종교적 내면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이를 세상에 실현하는 것이다. 고유한 의미는 기존의 것에서 분화된 것이거나 개인이 처음으로 사용한 의미이다. 의미 발생과 실천에 개인이 직접 관여한 세속화는 바깥에서 주입된 것이나 강압적인 것이 아니다.
분화로서의 세속화는 규정적이며 구체적이다. 나로부터 규정적이고 구체적인 자유가 발생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는 여전히 존속해야 한다. 이러한 분화는 기존의 가르침을 반복하거나 번역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종교와 확실히 구별된다.그동안 ‘열린연단 시즌9 「자유와 이성」을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홍합 단백질로 관절염 치료 나선다
포스텍·동국대 공동연구팀 줄기세포 접착제 개발홍합의 접착단백질과 히알루론산을 사용해 손상된 연골 치료를 돕는다. 상처 부위에 줄기세포를 이식해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액상형 접착제를 개발한 것이다. 최근 포스텍 화학공학과·융합대학원 차형준 교수, 화학공학과 통합과정 맹성우 씨, 박태윤 박사, 주계일 연구교수(이화여대 교수)는 동국대 의대 일산병원 임군일 교수·고지윤 박사, ㈜네이처글루텍 하성민 박사 공동연구팀과 이 같은 성과를 냈다. 이번 연구결과는 화학공학 분야에서 영향력이 높은 학술지인 『케미컬 엔지니어링 저널』에 게재됐다.
연골은 외부 충격으로부터 뼈를 보호하고, 관절이 원활하게 움직이도록 돕는다. 그런데 연골은 자연적인 치유 능력이 없어 염증이 생기거나 연골이 손상되는 경우, 줄기세포 이식을 통해 연골 재생을 유도한다. 하지만 연골의 표면이 매우 매끄럽고, 연골 주위에 끈끈한 윤활액이 있어 이식된 대부분의 줄기세포는 이식 초기에 산산이 흩어져 사라져 치료 효과가 미미하다.
공동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홍합에서 유래한 접착단백질과 고분자량의 히알루론산을 결합한 액상형 접착제를 개발했다. 홍합 단백질과 히알루론산은 서로 반대의왼쪽부터 이번 공동연구를 이끈 차형준 포스텍 화학공학과 교수, 임군일 동국대 의대 일산병원 교수이다. 사진=포스텍
전하를 띠고 있어 둘 사이에는 서로를 끌어당기는 정전기적 인력이 발생한다. 이러한 강력한 힘을 이용해 끈적끈적한 점성은 있지만 물에서도 풀어지지 않는 고점도의 액체를 만들었다. 줄기세포를 이 액체에 넣어 원하는 부위에 단단하게 고정할 수 있는 줄기세포 이식용 접착제를 만든 것이다.
아울러 공동연구팀은 토끼의 손상된 연골 부위에서 액상형 접착제에 들어있는 줄기세포가 풀어지지 않은 상태로 고르게 이식됨을 확인했다. 특히 줄기세포가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고정돼 있어 손상된 연골이 정상 연골로 재생되는 등 치료 효과도 확인했다. 액상형 접착제는 물리화학적으로 추가적인 공정이 필요하지 않은 자연 접착제라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번 연구를 이끈 차형준 교수는 “대한민국 원천소재인 홍합접착단백질을 활용해 줄기세포 치료 효과를 크게 증대시킬 수 있었다”라며 “주사가 가능한 제형이기 때문에 내시경과 유사한 관절경을 통한 줄기세포 이식에 활용한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연골을 치료할 수 있을것”이라고 밝혔다.
홍합 접착단백질 소재 기술은 ㈜네이처글루텍에 기술 이전이 완료됐고, 공동연구로 개발된 관절염 치료 줄기세포 접착제는 ‘카티픽스(CartiFix)’라는 제품명으로 조만간 임상을 진행할 예정이다.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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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이 사건을 아십니까…부산 학생들의 ‘상호주의’
김경화 편집기획위원
동의과학대 경찰경호행정과 교수·기획처장최근 세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1년 이상 지속되고 있고, 그 시야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최근 한미일 간에는 국가 정상 간의 회담이 연이어 계속되는 등 국가 간 국익을 위한 외교도 첨예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외교적 대응이나 성과에 대해 여야나 보수, 진보 간에 의견 차이 등이 너무나 커서 메울 수 없는 간극을 보이며 날 선 대립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길이 옳은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면 본원적이고 순수한 시각 즉 ‘젊은이의 눈’으로 한 번 살펴보면 어떨까? 일본과의 관계로 범위를 한정하면,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민족적·국가적으로 매우 특수한 상황이라고 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하의 엄혹한 압제가 그리 먼 일이 아닌데다 그 시기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아직 살아 있는 ‘피해자 세대’가 지속적으로 환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 강
점기 젊은 세대의 시각을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시간을 거슬러 80여 년 전으로 돌아가서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기로 하자.
1940년은 일제가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키고 1941년 패망의 결정적 동인이 되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기 바로 전 해이다. 일제 식민지배 정책의 변화에 비추어보면, 무단통치기와 문화통치기를 거치고 난 이후인 ‘민족 말살’시기에 해당한다. 그해11월 23일 발생한 것이 소위 ‘노다이(乃台) 사건’인데, 아마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사건’으로 격하되어 불릴 것이 아니라, ‘부산 항일학생의거’라고 적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당시 일제는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후 침략 전쟁 수행과 식민 통치 안정을 위해 전시 체제에돌입하였고, 급기야 조선 학생들의 군사교련 훈련을 강화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1940년 11월 23일 부산·마산·진주 등 지역 학생들을 모집하여 제2회 ‘경남 학도 전력증강 국방 대회’가 개최된다. 제1회 대회에서는 조선인 학교인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가 우승하였기 때문에, 당시 일제는 “제2회 대회에서 반드시 일본인 학교를 우승시켜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차질이빚어졌고, 대회 마지막 ‘장거리 구보행군’을 남겨둔 시점에서 동래중학교의 우승은 더욱 확실해졌다. 여기서 동래중학교가 실격하더라도 총점에서 부산중학교(당시 일본인 학교)를 0.5점 앞서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 총점을 계산한 결과 뜻밖에 부산중학교가 1위가 되었다. 이에 동래중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조선인 학생에 대한 부당한 차별 대우라고 판단하고 항의하였다. 그러
나 심판장 노다이(乃台)는 “심판의 판정은 신성하고 절대 불가하므로 판정을 따르라”며 교사와 학생들의 항의를 일축하였고, 일제가 내세웠던 ‘내선일체’가 얼마나 허구적인지 깨닫게 된 학생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울분을 참지 못한 동래중학교와 부산제2상업학교(현 개성고등학교) 학생들은 함께 구덕운동장 밖으로 나가 정렬한 뒤 노래를 우렁차게 부르며 시가지로 행진을 하였고, 학생
안위를 우려한 교사의 해산 권유도 듣지 않고 운동장 근처에 있는 노다이의 집으로 몰려가 돌 세례를 퍼부었다. 이 때문에 일제는 각 경찰서에 지시를 내려 귀가하는 학생들을 대거 검거하게 되었고, 붙잡힌 학생들이 200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또한 일본 관헌의 압력에 못 이겨 두 학교는 자체적으로 학생
처벌을 실시하였는데, 그 숫자는 퇴학 총 21명, 정학 44명, 견책 10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이 ‘노다이 사건’의 전말이다.
두려움을 떨치고 분연히 일어났던 10대의 어린 학생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그 어린 학생들은 “어제의 우리였고, 오늘의 우리이며, 내일의 우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부산 동래구 소재 동래고등학교 교정에 있는 ‘항일 운동 기념탑’은 이러한 순수한 ‘항일정신’을 지금도 지속적으로 웅변하고 있다.‘역사 속 그날’의 그들은 이야기한다. “네가 주기 때문에 내가 준다”라고. 이것은 라틴어 격언 ‘도 우트 데스(Do ut Des)’를 번역한 것이다. 이것은 ‘기브 앤 테이크’라는 개념과 구분되는 것인데,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상호주의’라는 원칙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특히 국제관계와 조약에서 상대가 우호적이면 우호적으로 대응하고, 상대가 비우호적이면 역시 비우호적으로 대응한다는 상호원칙은 철
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험적 사실에 따르면 우리는 일본을 병탄하고 말살하고자 한 역사적 사실이 없다.
향후 우리나라가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가르는 선택과 결정을 할 때 위정자는 ‘도 우트 데스’라는 법언과 국가 간 ‘상호주의’ 원칙을 가슴에 새기면서 임해야 한다. 잘못이 있을 때는 반드시 ‘징비(懲毖)’하기를 국민이 명령하고 있음도 더불어 새겨야 한다.제공=아르코미술관
갤러리 초대석
아르코미술관 주제기획전, 「기억공간」윤향로, 태깅-K(2023)설립 50주년을 맞은 아르코미술관의 주제기획전 「기억‧공간」이 7월 23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의 공간을 동시대 작가들의 경험과 사회적 기억을 통해 새롭게 인식하고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을 재조명한다. 회화, 조각, 퍼포먼스, 영상, 음향 설치 등을 포함해 국내외 작가 9명의 23점 모두 신작으로 구성된다. 전시장을 비롯해 아카이브라운지, 야외 로비, 계단 등 미술관 곳곳에서 펼쳐진다. 참여 작가는 김보경, 박민하, 윤향로, 안경수, 황원해, 이현종, 양승빈, 문승현, 다이아거날써츠이다.세로 3미터, 가로 8미터의 거대한 캔버스에 검정 물결이 그려져 있다. 그 위에 무수한 하얀 색 점과 선이 눈길을 끈다(태깅-K). 이 대형 회화에는 윤향로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선택된 아르코미술관 관련 텍스트가 그라피티와 같은 스프레이 페인팅 기법으로 화면에 새겨진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아르코미술관이라는 장소에 내재한 개인적 기억을 발화하고 장소의 이야기를 새롭게 재구성한다. 아르코미술관은 월요일은 휴관이며, 입장료는 무료다.신다인 기자 shin@kyosu.net기고
강소국가 이스라엘, 이공계 르네상스를 시도해야기업에 작지만 강하다는 뜻을 가진 ‘강소’라는 단어를 붙여 ‘강소기업’이라고 한다. 국가에도 ‘강소국가’가 있다. 우리에게는 아마도 스위스나 이스라엘이 대표적인 강소국가로 떠오를 것이다. 유럽에 있는 스위스에 대해서는 대체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의 서쪽 끝자락에 위치해 우리와 크게 이해관계가 없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그동안 무관심 했을 수 있다. 하지만 지역 환경의 유사성과 기술에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적 환경과 다양한 경제지표의 유사성을 가진 이스라엘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스라엘’하면 키부츠와 모샤브 집단 농업 형태의 공동체가 생각난다. 그것이 과거의 이스라엘을 생각나게 해준다면,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혁신적인 국가가 현재의 이스라엘이다. 현재의 이스라엘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이스라엘의 저돌성과 도전정신이다.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후츠파 정신에서 그 답을 찾는다. 후츠파 정신은 과거의 형식과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종교와 민족적 신념에 따라 몸에 익힌 ‘질문하여 답을 찾으려는’ 당당함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수 천 년을 실체적 국가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했던 유대인이 1948년 독립하여 세운 국가가 현재 전 세계 벤처 투자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나스닥 상장기업의 30~40%를 보유하고 있다. 스타트업 기업이 인구의 10% 이상을 고용하고 있고, 국가경쟁력이 가장 앞선 국가 중에 하나다. 2019~2020년 기준으로 GDP 대비 R&D 비중이 4%가 넘는 주요 국가는 한국(4.5%)과 이스라엘(4.3%), 단 2개뿐이다. 그만큼 이스라엘과 한국은 주변국의 복잡한 변수와 함께 기술개발에서 국가경쟁력을 찾아야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통계 수치로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살펴보자. 2021년 인구 통계를 보면, 이스라엘은 950만 명 정도이고, 대한민국은 5천150만 명이다. 수출액은 인구 1만 명 당 이스라엘은 1.2억 달러, 대한민국은 1.25억 달러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대한민국이 세계 25위이고, 이스라엘은 34위이지만 소득금액으로 보면 큰 차이가 없다. 또한 인구밀도도 이스라엘은 425명/㎢(세계 35위)이고 대한민국은 507명/㎢(세계 26위)이다. 그러나 1만 명 인구 당 스타트업 기업수는 대한민국은 5.8개이
지만 이스라엘은 10.5개로 2배에 가깝다. 벤처창업 부분에서 대한민국의 분발이 필요하다.
기술 인력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인구 1만 명 당 경제활동 인구 중에 엔지니어의 숫자는 2021년 기준으로 이스라엘은 39.4명인데 대한민국은 32.8명뿐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제조업 강국이었고, 앞으로도 그런 사정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엔지니어의 숫자만 보면 그 차이가 분명하다. 이스라엘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벤처창업이 왕성하고 엔지니어가 최고의 직업으로 여기는 국민이 많고 인구가 증가하는 경쟁력 있는 국가로 지속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어떤가? 저돌성이나 도전정신은 사라지고 안전한 것만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분명히 현재 대한민국은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청년층이 엔지니어 직종을 선택하지 않는 탈(脫)이공계의 가속화가 심화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인구 감소와 지방소멸에 맞물려 탈이공계 현상이 단기간에 해결될 것으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고착화가 많이 진전되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석유와 가스를 생산하는 산유국이지만, 대한민국은 천연자원의 혜택을 누리지 못해 인력만으로 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탈이공계로 그 근간인 제조업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이공계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가동해서 국가의 기간산업을 재활성화 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과 차별화된 이스라엘의 ‘질문이 일상화된 사회’, ‘저돌적인 후츠파 정신’, ‘창업이 일반화 된 사회구조’ 등 다양한 성공사례를 배워 그 프로젝트를 실효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손호재
거제대 기계공학과 교수학문후속세대의 시선
바닥에서 본 대학나는 비정규교수 노동조합의 활동을 지켜보며 대학에서 다르게 머물고 있다.
2012년 가을, 부산대 본관 앞 땅바닥에 앉아서 들었던 숫자들이 있다. “25년이 넘는 연구와 강사 생활...53세...연봉 1천만 원...퇴직금 0원” 그것은 나의 스승이자 선배, 그리고 나의 미래를 가리키는 숫자였다. 그 숫자들이 생소했던 건, 우리의 가난은 종종 탄식과 한숨으로만 이야기되곤 한 탓일 테다. 대학원에 들어와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여기는 생계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걱정어린 조언이었다. 아주 오래되고 익숙한 열패감이 은은하게 느껴졌다. 소망과 계획을 ‘사치’로 만들어 사그라뜨리는 무력함. 장학금, 알바, 휴학이라는 선택지들을 허물고 세우는 것이 연구생활의 일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우리가 가난을 발설하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또한 연구의 조건이자 윤리와 연관된 말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연구가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 가난은 독립의 다른 이름이며 연구의 조건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독립은 우리가 무엇에 기대어야 하는가를 다시 묻는 일이어야 한다. 연구가 향하고 닿아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묻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물음이 없는 연구의 행방은 연구비 확보를 향한 선정 경쟁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아직 스스로 연구자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어색하던 때 반지하의 연구공간에서 사람들과 같이 공부하면서, 오직 글을 쓰게 하는 장면들과 인용들을 보듬고 있던 그때, ‘가난’과 ‘무력함’을 다른 말로 바꾸려고 부단히 애를 썼던 것 같다. 그것이 가능했던 건, 우리의 만남과 ‘함께 함’의 비용을 생활의 대차대조표로 써보려고 애쓰던 사람들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2010년 즈음의 필자가 살던 부산의, 그
리고 한국의 거리 곳곳에서 나는 그런 싸움을 하는 이들을 만났고, 들었고, 배웠다. 존엄과 평등이라는 함께 사는 방식을 실패하면서도 또다시 시도하는 이들의 말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배운 말들과 장면들을 지금도 내 연구의 조건이라고 여긴다.
2012년 대학 본관 앞 땅바닥에서 울리던 숫자들은 열패감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것은 비정규교수 노동조합의투쟁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숫자는 대학의 제도, 교육환경과 학문 공동체의 일과 연결되자 다른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무엇도 그냥 주어지는 것은 없다.’ 거리 곳곳에서 들었던 그 말을 본관 앞 천막에서 도 들을 수 있었다. 천막을 치자, 사람들이 모
였다. 가까이에서 또 멀리서 사람들이 와주었다. 대학은 존엄과 차별철폐를 외치는 현장이 되었다. 천막에서 사람들과 함께 앉아서 나는 다른 말을 그렇게 또 배우기 시작했다. 단결권, 단체교섭, 단체행동, 그러니까 노동3권과 대학.
단체교섭의 과정, 결렬의 과정은 한 편의 연극과도 같았다. 그 과정은 숫자의 근거들, 숫자들에 봉인되었던 대사를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장이다. 우리는 교섭과정에서 숫자를 둘러싼 우리의 대사들을 확인할 수 있다. 강사는 연구하는 자가 아니라는 등의 차별과 배제의 말들, 혐오발화들, 듣기 힘든 말들이 쏟아지지만, 그런 장에서 우리의 대사들을 연극처럼 무대 위에 올려놓을 때만 우리는 우리의 말을 확인하고, 논쟁하고, 문제를 삼고, 이의를 제기하며, 마침내 대사를 수정할 수 있다. 그것은 내가 연루된 말의 수정이기도 하기에 지난하고 불화하고 깨어
진다.
투쟁의 지난함에 비하자면 결실은 소박해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1000원을 둘러싼 경우도 있지만, 전원 해고를 막는 일이기도 하다. 그 사소함은 우리의 연구와 생활을 보듬고 지킬 수 있도록 한다. 셈법과 차별적 언어를 확인하고 폐지하고 바꿔가는 일은 존엄한 삶을 외치는 수많은 차별철폐의 싸움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연구의 조건을 생각하면 언제나 나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존엄의 말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대학의 땅바닥에서 싸우는 이들을 생각한다. 대학, 연구, 노동, 구조조정, 지역, 교육 이런 말들과 함께 땅에서 주워 품었던 문장을 지문처럼 생각한다.
여러 이유로 한국에서 노동조합이 있는 대학은 많지 않다. 물론 노조가 있다고 해서 문제가 곧장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가 우리의 차별적 언어를, 그런 생활의 몸짓을 바꾸기를 시도할 수 있는 장을 여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조의 경험을 전하는 까닭은 무소용해 보이는 우리의 연구와 글이 어떤 세계와 접속하고 우리의 몸과 언어를 바꾸고 삶과 세계가 바뀌는 일을 소망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것
들을 찾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수경
부산대 철학과 강사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부산대분회 조합원이다. 「발터 벤야민의 이미지공간: 복수의 기억과 아이들의 기억」을 썼다.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와 거리의 이야기들을 잇는 데 관심이 있다.
김상돈의 교수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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