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한계·챗지피티의 도전…PBL이 답이다
코로나 시대, 최고의 강의㉒
장경원 경기대 교수2020년 2월 말에 코로나19로 개강이 몇 주 연기됐고 이후에는 비대면으로 수업을 해야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 학교 수업 운영 정책은 장기적인 것이 아니었다. ‘우선 2주간 비대면으로 수업을 운영한다. 그리고 1주 더 비대면으로 수업한다.’ … 그렇게 2년 동안 비대면 수업을 했다.처음 몇 주는 영상으로 강의를 녹화하여 온라인 학습관리시스템(LMS)에 업로드했다. 일단 2주만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기간이 길어지면서 더 이상 강의를 녹화해 올리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후 학생들에게 줌을 통해 문제중심학습(이하 PBL)으로 수업하겠다고 공지했다.PBL, 비대면 상황서도 교육 효능감 느끼게 해
필자는 본래 대부분의 수업을 문제중심학습이나 프로젝트기반학습으로 운영한다. PBL은 학생들에게 실제적이고 어려운 문제를 제시하여,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과 결과를 통해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운영하는 교수학습방법이다. PBL에서는 팀을 구성하여 팀원들이 함께 논의하고 각자 학습한 내용을 공유하고, 이를 분석·종합·적용해 최종 결과물을 도출한다. PBL에서 학생들의 상호작용과 협업은 수업의 핵심이 된다.이전에도 온라인 PBL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으나 교실 수업과 온라인 활동을 병행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PBL의 전 과정을 온라인 공간에서 운영해야 하기에 고민이 컸다. 우선 학생들의 학습환경이 완벽하지 않았다. 20~25%의 학생들은 카메라나 스피커도 없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학생들은 장비를 마련해 PBL 수업을 하는데 익숙해졌고, 소그룹 회의실을 이용하여 팀별로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며 협업했다.종강 후 한 학생은 비대면 상황에서 진행된 PBL 방식 수업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다른 수업은 대부분 온라인 영상을 올려주신다. 그래서 학생들과 이야기하거나 교수님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것 같지 않았어요. 교수님 수업은 다른 학우들과 이야기하고 상의하고 질문할 수 있어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19가 수업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도 PBL이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었다.학생 수업을 적극적으로 만드는 메타버스와 PBL2021년이 되자 메타버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많은 대학들이 메타버스를 이용하여 대학 신입생 환영회와 동아리박람회를 운영하였고, 학술대회 등도 이 공간에서 이뤄졌다.교육공학 전공자로서 의무감으로 메타버스 공간장경원 경기대 교수(교직학부)는 메타버스 온라인 플랫폼 게더타운을 통해 PBL방식의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장교수로부터 환경을 바꿀 권한을 요구하기도 했다. 사진=장경원
을 이용하는 시도를 시작했다. 우선 몇 가지 메타버스 플랫폼을 알아보았다. X세대인 필자에게 3차원으로 제공되는 공간은 어지럽고 적응이 어려웠다. 마치 예전 싸이월드의 미니미와 같은 캐릭터가 등장하여 움직이는 게더타운(Gather Town)을 선택하고 여기서 수업하기로 했다.
처음 게더타운으로 수업하던 날 필자는 접속에 장애를 겪었다. 학생들은 모두 접속했는데, 필자만 접속이 안 된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재접속하는 사이 게더타운에 이미 접속한 학생들은 팀별로 수업관련 논의를 하고 있었다. 게더타운에서 학생들의 움직임과 상호작용을 보면서 학생들은 원래 이 공간에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게더타운에서 학생들은 나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었다. 학생들은 수업 공간이 과제발표에 최적화된 공간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필자에게 환경을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요청하기도 했다. 게더타운은 2차원이어서 클래식하긴 하지만 학생들은 게임을 하듯 자신들의 과제 성격에 맞게 공간을 꾸미고 발표도 멋지게 진행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강의만 했다면 학생들도 나도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PBL은 학생들에게 기회와 재미를 함께 제공하였다.챗지피티에게 질문하는 과정이 학습대면수업이 가능해진 2023년이 됐다. 내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학생들이 아니라 챗지피티(ChatGPT)였다. 그렇지 않아도 챗지피티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학생들이 과제 수행에 이를 활용할 것이라 생각했다. 챗지피티는 사용해보니 정말 똑똑한 것 같았다. 그러나 챗지피티가 제시한 답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는 질문하는 우리 인간이 판단해야 할 문제였다.만약 강의 중심 수업에서 학생에게 어떤 개념이나 원리에 대한 조사, 번역, 문제풀기 등의 과제를 낸다면 학생들은 챗지피티의 도움을 받아 쉽게 이를 수행할 것이다. 수업 중 이미 교수가 어떤 내용을 설명하셨으니 그 내용을 토대로 챗지피티의 답안을 비교적 쉽게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과제를 제시해야 하겠는가.
PBL은 실제적이고 복잡한 과제를 제시하는 것으로부터 학습이 시작된다. 즉 교수자가 먼저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나 과제를 제시해 학생들이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마도 학생들은 챗지피티를 이용해서 필요한 자료를 쉽게 수집할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챗지피티를 이용하기 위해 자신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파악하고, 챗지피티에게 정확한 질문을 제시하고, 제시된 답변의 정오를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학습은 그 과정에서도 이루어진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와 과제를 제시하여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찾고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수업하기 어려운 시대다. 코로나19는 학생들이 학교에 오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메타버스는 새로운 온라인 공간을 사용하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챗지피티는 학생들에게 어떤 과제를 어떻게 제공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PBL 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고 새로운 기회와 재미도 제공하였다. 학생들이 상호작용하고 협업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PBL은 우리의 수업 문제도 해결해 주는 것 같다.장경원
경기대 교직학부 교수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교육방법 및 교육공학’, ‘교육과정 및 교육평가’ ,‘학교컨설팅’, ‘교수설계세미나’ 등을 가르치고 있다. 『PBL로 수업하기』, 『액션러닝으로 수업하기』 등 교수학습방법을 안내하는 저서를 집필했고, 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수원 등에서 PBL, 토의 등에 대해 특강과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일반학과 ‘계약정원제’로 반도체 인재 취업 보장
첨단분야 계약학과는 전체 입학정원의 50%까지 확대 가능앞으로 대학이 별도 계약학과 설치 없이도 계약정원을 활용해 반도체 등 첨단산업분야의 인재 양성이 가능해진다. 교육부는 지난 21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연협력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일부 개정안’이 의결됐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디지털 대전환과 반도체산업 등의 인력 부족 현상에 대응해 대학이 별도의 계약학과를 설치하지 않고도 이미 설치돼 있는 일반학과에 계약정원을 추가 증원해 산업체가 요구하는 인재를 신속하게 양성할 수 있도록 했다.계약정원제는 산업체가 채용을 조건으로 맞춤교육을 의뢰하면, 기존 일반 학과 정원의 20% 이내에서 한시적으로 증원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번 개정을 통해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첨단 분야의 계약학과는 전체 입학정원의 50%까지 확대할 수 있다.2003년에 도입된 계약학과는 산업체 요구에 따라 특별한 교육과정을 설치해 운영하는 학과이다. 대학과 기업이 계약을 맺고 학과를 개설하고 운영하는 전공 과정을 말한다. 교육부는 비수도권에 한해 산업체 부담도 줄였다. 비수도권 대학의 경우 첨단산업 분야의 계약학과를 신설할 때 기업의 경비 부담률도 절반 미만으로 가능하도록 했다. 다만 기업의 부담금이 줄어도, 학생이 수업료로 납부하는 금액이 계약학과 운영비의 절반을 넘어서는 안 된다. 학생의 선택권도 확대했다. 둘 이상의 산업체가 참여하는 공동계약 형태의 계약학과의 경우, 학생은 동일 계약학과 내 1개 기업에만 지원할 수 있었으나, 이번 개정을 통해 2개 이상의 기업에도 지원이 가능해졌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대학이 보유한 기술 및 연구 성과를 사업화하는 기술지주회사의 이익배당금 사용처 또한 ‘연구개발 기획 업무’에서 ‘연구개발 업무’로 확대됐다.기술지주회사가 자회사로 편입할 수 있는 범위도 중소기업의 경우 해당 대학이 보유한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에 한정됐으나, 해당 대학 또는 다른 대학이 보유한 기술을 활용하는 중소기업까지 확대됐다. 한편,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학교 도서관을 학교 주 출입구 등과 가까이 두도록 한 조항을 없앤 ‘학교도서관진흥법 시행령’ 개정안도 통과됐다.신다인 기자 shin@kyosu.net일반대 ‘온라인 수업’만으로 학사학위 취득 가능해진다
사이버 대학이 아닌 일반대학에서도 첨단분야는 온라인 수업만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게 됐다. 교육부는 지난 24일 ‘일반대학의 온라인 학위과정’ 심사 결과 4개 대학의 4개 학사과정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승인된 대학은 △동서대 문화콘텐츠경영학과(해외공동) △동의과학대 스마트생산공정관리과(국내 단독) △수성대 AI 빅데이터과(국내단독) △우송대 솔브릿지경영학부(디지털 BBA과정‧해외공동)이다. 이번 승인으로 유학생이 국내에 입국하지 않더라도 현지에서 국내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을 온라인으로 이수하고 국내 대학의 학사학위를 취득하는 길이 열렸다.‘일반대학의 온라인 학위과정’은 교육부의 사전 심사 및 승인을 통해 원격대학이 아닌 일반대학에서 대면수업 병행없이 온라인 수업만으로도 학사 또는 석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제도다.2021년 2월 도입된 이후, 2차례 승인 심사를 거쳐 2023학년도 현재 22개 대학원이 27개 석사과정을 온라인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다. 기존에는 일반대학의 온라인 학사 과정의 경우 국내 대학-외국대학 공동과정만 운영이 가능했으나, 교육부는 2024학년도부터 운영되는 학사과정 중 첨단‧신기술분야에 대해서는 국내대학 단독 또는 국내 대학 간 공동교육과정으로도 온라인 학사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했다.
이해숙 교육부 대학규제혁신국장은 “이번에 승인된 온라인 학위과정을 통해 국내 대학과 해외대학이 학사과정 단계에서부터 시공간적 제약을 넘어 상호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라고 강조했다. 이 국장은 “이번 승인심사를 통해 선정된 인공지능(AI), 지능형(스마트) 생산 공정 온라인학사학위과정이 첨단・신기술 분야 인재 양성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신다인 기자 shin@kyosu.net이슈 중신의 교육학개론“지자체-대학, ‘수평적 관계’ 가능할까”
교육부 글로컬대학 공청회 어떤 질문 오갔나
“글로컬대학은 참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비수도권에 있는 대학은 150개가 넘고 이중 국공립대가 20개가 넘는다. 글로컬대학 선정에 국·사립을 분리하는 게 어떤가.” “한 지자체에 여러 대학이 있는 경우에 수평적인 관계가 유지될지 의문이다. 정부가 지자체에게 대학과 잘 협력하라는 신호를 줘야 한다”
교육부는 지난 20일 대구시청(산격청사)과 부산시청(대강당)에서 ‘글로컬대학30 추진방안 공청회’를 열었다.이날 글로컬대학 추진방안을 설명하며 윤소영 교육부 지역인재정책과장은 이렇게 강조했다. “잘못하면 글로컬대학으로 선정된 대학이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사업단 중심으로 지원할 때는 100~200개의 사업단이 공개되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큰 논란이 없었다.그러나 이번에는 대학 단위로 선정해 집중 지원한다. 왜 다른 유수 대학을 제치고 선정됐는지를 대학이 국민을 납득시켜야 한다. 명확하게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이번에는 프로세스 상 평과과정 등이 모두 공개된다.”라이즈 체계(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와 글로컬대학 사업의 차이도 강조했다. 윤 과장은 “라이즈는 지자체가 주도하는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라이즈 체계에서도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원하는 것을 대학이 맞춰야 하는 게 아니다. 교육부가 대학 지원을 지자체 주도로 한 것은 대학의 의견을 들으라는 것이다. 상호 소통으로 지역에 밀접한 것을 하라는 것이다. 글로컬대학 사업은 대학 자체가 변해야 하는 것이기에 라이즈보다 대학의 의견이 더 존중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날 공청회에서 나온 대학 관계자들의 질문과 윤소영 과장의 답변을 정리한 것이다.국립대 교수 파격 인센티브 가능① 지방대가 살아남으려면 우수한 인재의 영입이 가능해야 한다. 우수한 교수들이 위상에 걸맞은 보수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글로컬대학에 이 같은 부분을 포함시킬 수 있나? (부산지역 대학교수)“결론적으로 가능하다. 국립대 교수는 국가공무원이기에 봉급 조정은 어렵다. 그러나 다양한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가능하다. 교육부 재정지원사업 중에 교수에게 보수를 안 주는 게 있는데, 글로컬대학 사업에는 이를 배제하려 한다. 장기적으로 는 ‘교육공무원법’에서 보수 관련 사안도 들여다볼 것이다. 글로컬대학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고민하고 있다.”
② 대학이 그간 추진했던 혁신이 글로컬대학 선정 때도 인정받을 수 있나? (대구지역 대학교수)“대학마다 혁신의 수준은 모두 다르다. 대학들이 혁신을 해왔지만 아직 세계적으로 내놓을 만한 대학이 없는 단계다. 그런데 교육부가 생각하는 혁신은 지금 수준에서 상대적으로 조금 더 혁신하는 게 아니라, 특정한 수준까지 도달하는 것을 가리킨다. 만약 혁신 수준이 낮은 대학이라 할지라도 앞으로 2년간 과감하게 진행한다면 해당 대학이 글로컬대학으로 선정될 수도 있다. 현재 혁신의 수준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선정되기는 어렵다.”대기업 인력 ‘겸임’ 적극 권장
③ 혁신 추진 과정에서 속도와 구성원 간 합의를 요구했다. 그런데 과감한 혁신을 위해서는 대학평의회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글로컬대학에 선정되면 대학평의회를 거치지 않고 추진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경남지역 대학교수)“혁신의 내용이 대학 구성원의 동의를 얻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올해부터라도 대학 구성원 간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대학 구성원이 동의하지 못하는 것을 교육부가 밀어줄 수는 없다.”④ 울산에는 대기업이 많다. 글로컬대학을 통해 대기업의 인력을 겸임교수로 활용할 수 있나? (울산지역 대학교수)“적극적으로 권장할 생각이다. 서울대에서 구글의 AI전문가를 교수로 겸임할 수 있게 하는 모델을 만들고 있다. 교육부는 이와 관련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지원하자는게 큰 방향이다.”⑤ 예비지정 때 혁신기획서를 ‘지자체를 경유’하도록 했다. 지자체가 혁신기획서의 특정 부분을 수정할 수 있는 것인가? (대구지역 대학교수)“예비지정 단계에서도 ‘지역적 특성’ 영역에서 지자체의 역할이 있다. 본지정을 할 때는 이를 구체화한다. 그래서 예비지정 혁신기획서를 쓸 때도 지자체가 무엇을 지원하는지가 담겨 있어야 한다. ‘경유’라는 말은 대학이 지자체가 약속할 수 없는 내용대구와 부산에서 열린 글로컬대학 공청회에는 대학생을 비롯해 대학, 산업계, 지자체의 많은 관계자들이 모여 사업에 대해 질의 했다. 사진은 대구에서 열린 글로컬대학 공청회다. 사진=강일구
을 담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또한, 혁신을 기획할 때 지자체가 재정지원을 할 것인지, 재정지원은 없더라도, 외국인 유치 때 비자 문제처럼 제도적 역할을 해줄 것인지, 그도 아니면 신산업 기업과 대학을 엮어주는 것도 가능하다. 본지정 단계에 지자체 평가가 있다. 지자체에서 할 역할을 예비지정 단계 때 어떤 지원을 할 것인지 들어가 있어야 한다.”
⑥ 글로컬대학 추진에 누가 주도할 권한을 갖고 있고, 지자체가 나름 고안한 모델이 있으면 대학에 역제안을 해도 되는 것인가? (창원지역 대학교수)“글로컬대학의 추진 주체는 대학이다. 그러나 지자체도 제안은 할 수 있다. ‘제안과 강요’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이는 소통의 문제다. 지자체와 대학이 대등하게 소통하면서 혁신 방향을 정해야 한다.”⑦ 지자체가 대학에 지원하고 있는 여러 재정지원 사항을 혁신기획서에 포함해 제시해도 되는가? (경북지역 대학교수)“금액의 크기는 주요하지 않다. 지역마다 발전 포인트는 다를 수 있다. 가령, 농업이나 지역의 문화처럼 대학 중에는 산업과 관련이 없는 지역협력을 하는 곳도 있을 수 있다. 발전 포인트와 관련돼 재정이 필요한 곳도 있을 수 있고 없을 수 있다. 혁신의 방향도 아닌 곳에 지자체가 지원한다고 선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⑧ 글로컬대학 예비지정은 통과했으나 본지정에서 탈락한 대학이 차기 년도에 지원할 때 예비지정을 패스할 수 있나? (경남지역 대학교수)
“검토는 됐으나 글로컬대학위원회가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⑨ 혁신 계획을 5쪽짜리 혁신기획서 외에 별첨할 수 있나? (경남지역 대학교수)“혁신기획서는 요약서가 아니다. 본문이다. 별첨은 안 된다.”“학생들이 선택할 것인지가 관건”⑩ 글로컬대학위원회 위원 중에 지방대를 잘 이해하고 있는 인사가 없어 보인다. 글로컬대학 선정에 서울 중심의 시선이 사업을 위기에 빠트릴 것으로 생각한다. (부산지역 대학교수)“위원회 구성에서 공정성을 위해 일부러 지방대 관련 인사를 배제했다. 그러나 자문위원을 통해 지방대의 사정을 들을 것이고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국가교육위원회의 지방대 관련 특위의 의견도 반영할 것이다.”⑪ 글로컬대학 사업이 대학 간 통폐합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닌가, 학생들이 체감할 수 있는 사업인가?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학생)“교육부가 인위적으로 구조조정을 해서 통폐합하려는 게 아니다. 대학의 혁신에 대해서는 교육부가 아니라 대학이 학생에게 물어보고 지역에도 물어볼 사안이다. 글로컬대학을 선정했을 때 과연 이 대학을 미래 학생이 선택할 것이냐가 가장 큰 관건이다.”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지방대 특위 위원장 김무환 포스텍 총장
국교위, 대학입시・과학인재양성 등 5개 특위 구성국가교육위원회(위원장 이배용, 이하 국교위)가 대학입시와 지방대 발전 등 주요 교육현안과 관련해 5개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4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대학입시제도 개편·지방대학 발전·전인교육·직업평생교육·미래과학인재양성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69명의 위원을 선임했다고 지난 17일 밝혔다.지방대발전 특위는 각 지방대의 어려움을 살펴보고 개선 방향을 모색한다. 위원장으로 김무환 포스텍 총장이 임명됐다. 위원은 홍원화 대교협 회장(경북대 총장), 노찬용 한국대학법인협의회 회장(영산대 이사장), 김응권 한라대 총장과 박진배 전주대 총장,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어영문학과), 홍창남 부산대 교수(교육학과) 등 16명이 참여한다.지방대발전 특위는 저출산·고령화와 수도권 대학 선호 등으로 인해 위기에 놓인 지방대 육성을 위한 발전 방향 마련에 주력한다.국가교육위원회는 지난 17일 지방대 발전과 미래과학인재양성 등 5개 분야에 특별위원회 위원을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대학입시제도개편 특위는 대입제도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반영한다. 김창수 중앙대 전 총장이 특위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위원은 학계·교사·학부모 17명으로 구성됐다. 대학입시제도개편특위는 장기적 대입제도 개선 방향에 관한 논의와 더불어 교육부의 2028년도 대입제도 개편 사안에 대한 전문적 검토를 수행한다.
미래과학인재양성 특위는 우수한 연구역량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양성 방향을 고민한다. 강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재료공학)가 위원장을 맡았다. 위원은 학계와 연구계를 망라하는 전문가 11명으로 구성됐다. 미래과학인재양성특위는 AI·우주·반도체·바이오·디지털 등 주요 분야의 창의적 과학인재양성을 위한 구체적 지원 방향을 모색한다.직업·평생교육 특위는 평생학습시대 변화에 부응해 현재의 다양한 경험과 축적된 지혜를 통해 실질적인 발전 방향을 모색한다. 박호군 전 과학기술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다. 위원은 학계, 연구계, 산업계 등의 전문가 12명이다. 직업·평생교육 특위는 직업계고·전문대학 활성화 등 현장이 체감할 수 있는 중장기적 정책 방향에 관해 논의한다.전인교육 특위는 최근 이슈가 학교폭력 문제 등의 중요성을 감안해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직접 위원장을 맡았으며 총 13명의 전문가가 참여한다.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누가 내집마련의 꿈을 빼앗아갔는가?
이준구문우사가난한 서민을 울리는 나쁜 부동산 정책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시대의 지성,서울대학교 이준구 교수의 통렬한 고발!ㆍ 높은 부동산 가격은 어떻게 경제에 해를 끼칠 수 있는가 ㆍ 다주택 소유자에게 중과된 세금은 세입자에게 그 부담이 전가된다 ㆍ 도대체 무엇을 위해 임대사업자에 대한 특혜를 부활시키려 하는가 이준구 지음 ││││쪽 │││,,,,원ㆍ 무엇이 주택시장 거품을 일으키는가 도서출판 │ XXX.NVOV.DP.LS │ -- -----고재남 | 152*225|464쪽 | 27,500원
푸틴 시대의 러시아 외교정책,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러시아 외교정책의 이해대립과 통합, 푸틴의 길장영숙 | 152*225|316쪽 | 18,900원한성신보가 기획한근대 한국의 표상일본은 어떻게한국 근대사를 조작했는가장덕준 | 140*220|432쪽 | 32,000원북방정책의 이상과 현실북방정책의 이상과 현실고종의 ‘인아거일’ 정책부터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까지,통시적 북방정책의 흐름을 살펴본다!주소 | 04000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19길 52-7 PS빌딩 4층 문의 | 02-725-8806 블로그 | https://blog.naver.com/jgonggan도서출판 역사공간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21년 3월 기준 코로나19 백신 부작용 사례 가운데 79.1%가 여성이었다. 성별에 따른 투여량이나 생물학적 면역 반응 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결과였다. 사진=픽사베이
성별 특성 반영한 연구가 기초과학 연구 혁신 이끈다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교수신문 공동기획
‘젠더혁신, 연구와 삶을 바꾸다’ ①① 기초 뇌과학과 젠더혁신
② 임상의학과 젠더혁신③ 인공지능(AI)와 젠더혁신④ 산업현장과 젠더혁신⑤ 지속가능발전과 젠더혁신“국내에서도 논문 발표 과정에서 성별 특성을 고려하는 것이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뇌과학은 다른 분야에 비해 성별 특성이 더 많이 고려될 수밖에 없다.”최근 과학기술 연구에서 성별 편향을 줄이는 젠더혁신(Gendered Innovations)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생물학적인 성(sex)과 사회문화적인 젠더(gender)의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생명분야는 물론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데이터를 활용하는 과학기술·산업현장·생태계 등에서도 젠더혁신이 주목받고 있다. 이에 교수신문은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GISTeR, 소장 이혜숙)와 공동으로 총 5회에 걸쳐 과학기술과 산업현장 등에서 젠더혁신의 중요성과 동향, 앞으로의 과제를 조명해보는 연재를 마련했다.
입덧 완화제·코로나19 백신의 교훈제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 유럽의 많은 사람이 불면증에 시달렸다. 당시 독일의 한 제약회사가 의사의 처방이 없더라도 진정제와 수면제로 사용할 수 있는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라는 약을 개발했다. 1957년 출시된 이 약은 특히 입덧 완화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50여 개 나라에서 많은 임산부가 복용했다. 하지만 결과는 끔찍하고 치명적이었다. 1962년 판매가 금지되기까지 탈리도마이드 부작용으로 1만2천명의 기형아가 탄생했고, 사산(死産)된 아이도 부지기수였다. 임산부를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발생한 비극이었다.최근 코로나19 백신 부작용 사례도 의생명 분야의 연구에서 성차와 성별 특성 요소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21년 3월 기준 코로나19 백신 부작용 사례 가운데 79.1%가 여성이었다. 백신의 개발 과정에서 성별에 따른 투여량이나 생물학적 면역 반응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결과였다. 앞서 2014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이 발표한 약품 부작용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이 남성보다 약에 대한 부작용이 컸고, 심지어 일부 약은 여성에게 약효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기초과학 연구의 젠더혁신 강화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생명 분야를 비롯한 기초연구에 임산부를 포함한 남녀노소 모두를 대상으로 충분한 과학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성별과 젠더 차이를 인식하고 고려하는 연구 방법을 도입해 과학기술 연구에서 성별 편향을 줄여야 한다는 이른바 젠더혁신이다. 최근 들어 과학기술 연구에 젠더혁신을 반영하기 위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실제 『네이처』나 『셀』 등 세계적 학술지의 경우 논문 게재 시 성별 특성 등을 고려한 보고 항목이 강화되고 있다.뇌 오가노이드(유사장기신생물)를 이용해 장기적인 뇌 발달 과정을 추적·관찰 중인 박상준 가톨릭의대 연구교수(영상의학과)는 “지난해와 올해 초 네이처지 계열과 셀 프레스 계열지에 논문을 투고했는데 성별 균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보고하는 항목이 있었다”며 “단순히 연구자의 남녀비율뿐 아니라 실험에 사용한 동물이나 세포의 성별을 고려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저의 연구 주제에서는 성이나 젠더가 민감한 변수는 아니었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후속 연구에서는 성차나 젠더 관련 변수를 좀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라고 덧붙였다.왼쪽부터 김은준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석좌교수, (기초과학연구원 시냅스뇌질환연구단장), 박상준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셀』이나 『네이처』 등 세계적 학술지의 경우 논문 게재 시 성별 특성 등을 고려한 보고 항목이 강화되고 있다. 사진=셀, 네이처
성별 특성 고려한 뇌과학 연구성과 속속 도출
일선 연구 현장, 특히 기초 뇌과학 분야에서 젠더혁신과 관련된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가 속속 도출되고 있다. 2019년 기초과학연구원(IBS) 김은준 시냅스 뇌질환 연구단장(카이스트 생명과학과석좌교수)은 남자가 자폐에 더 많이 걸리는 이유를 규명한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팀이 자폐증을 일으키도록 유전자를 결핍시킨 생쥐를 관찰한 결과, 수컷은 신경전달 균형이 무너진 데 반해 암컷은 균형시스템을 유지시키는 유전자가 발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남녀의 뇌 발달 장애 차이 기전을 처음 규명한 것으로, 국내의 대표적인 젠더혁신 연구 사례로 꼽힌다.이러한 연구 결과가 축적되면서 이제 뇌질환이나 기능 연구에서 성차와 성별 요소에 대한 고려는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실제 남성이 여성보다 자폐스펙트럼은 4배, 파킨슨병은 2배 이상 발병율이 높고,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의 경우 약2배, 치매는 2.4배 이상 발병율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성차의 정신건강 분야에서 성별 특성을 반영한 연구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에서 2022년 웹 오브 사이언스를 이용해 성별 특성을 반영한 키워드가 포함된 SCI(SCIE) 논문 현황을 조사한 결과, 뇌과학 분야 논문이 2017년 800여 편에서 2021년에는 1천200여 편으로, 정신의학 분야 역시 같은 기간 550여 편에서 800여 편으로 증가했다.김은준 단장은 “수컷만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면 신경전달 저하가 자폐 원인이라는 점만 찾아냈을 텐데 암수를 따로 봤더니 결과를 잘 해석할 뿐 아니라 자폐를 치료하는 메커니즘도 찾을 수 있었다”라며 “국내에서도 논문 발표 과정에서 성별 특성을 고려하는 것이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으며, 특히 뇌과학은 다른 분야에 비해 성별 특성이 더 많이 고려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 단장은 또 “예전에는 주로 남성 샘플만 분석하다 지금은 양성을 비교 분석하다 보니 연구 기간이 길어지고 비용 측면에서도 부담이 커지는 만큼 성별 특성 연구가 더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연구비 증액이나 평가제도 개선과 같은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라며 “그래야 성별 특성을 잘 고려한 진화된 실험 디자인이 나오고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체질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혜진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 선임연구원김봉억 기자 bong@kyosu.net젠더혁신 이란?
연구혁신 넘어 사회문화·경제까지 영향젠더혁신은 남녀의 생물·생리학적 변수는 물론 사회·문화적 변수도 함께 고려하여 연구의 수월성을 높이고, 이로 파생된 기술, 제품, 서비스 등이 궁극적으로 사회, 문화, 산업, 경제의 영역까지 영향력을 넓히는 개념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론다 시빙어(Londa Schiebinger) 교수는 지난 2005년 이 용어를 도입한 데 이어 2009년부터 유럽연합집행부(EC) 지원으로 전문가 60여 명과 함께 관련 연구 방법과 사례를 구축하는 젠더혁신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그의 주장은 “성과 젠더 차이를 고려해 연구하면 모두를 위한 발견과 혁신을 이룰 수 있다”로 요약할 수 있다 .국내외 과학기술계에서는 성별 특성을 고려한 연구개발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려는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지난 2014년부터 동물과 세포를 사용하는 모든 전임상 시험에서 성별 균형을 맞추도록 규정을 개선했다. 유럽(EU)은 대규모 연구 혁신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에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젠더 요소를 포함하도록 했으며, 『네이처』 등 세계적인 학술지는 성별 특별 변수(SABV)를 연구에 반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2021년 2월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GISTeR, 소장 이혜숙)가 공식 출범한 데 이어 12월에는 성별 등 특성 분석을 반영하도록 과학기술기본법이 개정됐으며, 2023년부터 시행되는 제5차 과학기술 기본계획에 ‘성별 특성을 반영한 연구기반 확보 및 적용’을 추진내용으로 포함했다.지나치게 뜨거웠던 융합의 위태로움
學而思
이덕환 편집인서강대 명예교수 /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융합과 통섭의 열기가 뜨거웠던 때가 있었다. 융합을 표방하는 학과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융합을 강조하는 지식경제부가 설치됐고, 교육부도 창의적 융합인재 양성을 지향하는 STEAM을 들고나왔다. 융합만 앞세우면 만사형통이었다. 낯선 과학 용어를 들먹이는 인문사회학자와 동서양의 철학자·시인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입에 올리는 과학자·공학자들이 당당하게 석학의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 융합·통섭의 성과가 도무지 분명하지 않다. 대학에서 문과와 이과의 장벽은 여전하다. 고등학교의 교육과정과 수능을 문·이과 통합형으로 바꿨지만 대학의 현실은 요지부동이다. 인류학과와 경제학과는 여전히 문과로 분류된다. 현대 생명과학이 꼭 필요한 고(古)생물학과 현대 수학을 총동원하는 거시경제학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에게는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다. 떠들썩하게 만들어놓은 융합학과와 융합대학원도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대학에도 작은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는 한다. 실제로 문과 계열의 학생들이 이과 계열의 과목을 수강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코딩 과목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영어만 잘하면 출세가 보장된다고 믿었던 10년 전의 모습이 되살아나고 있는 양상이다. 그마저도 융합·통섭의 결과가 아니다. 이과 졸업생을 선호하는 취업 시장에 적응하기 위한 학생들의 절박한 몸부림이 만들어낸 변화일 뿐이다.어설픈 융합·통섭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인간과 자연의 정체·역사·미래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자극적·감성적·선동적인 궤변에 밀려나고 있다. 인류의 피와 땀으로 이룩해놓은 엄중한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대중화의 탈을 쓰고 희화화(戲畫化)되고 있다. 그래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실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지구’가 아니라 지구의 표면에서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라는 명백한 진실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다.현대 과학의 개념과 용어의 오남용도 심각하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uncertainty)과 ‘이중성’(duality)이 철학의 주제가 돼버렸다. ‘엔트로피’(entropy)는 언제나 증가하는 것으로 잘못 소개되고 있다. ‘평형’(equilibrium)과 ‘균형’(balance)을 구분하지 않는다. 비평형 열역학의 ‘자기 조직화’(self organization)가 사회학의 핵심 이론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정치와의 담합에 맛을 들인 대기과학·기후학이 ‘인류세’를 앞세워 지질학을 파고든다. 현대 과학이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성을 말살하고 있다고 우기는 어설픈 인문학자들도 인류세에 열광한다.
합리성·객관성을 추구하는 과학의 개념과 용어는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고 분명하게 정의된다. 정교한 과학 개념과 용어는 복잡한 과학에 대한 소통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애매하고 모호할 수밖에 없는 상상력의 산물인 인문학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특성이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유’와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는 상당히 다른 개념이다.어설픈 융합형 석학에 의한 소모적인 혼란도 심각하다. 인문사회계 학생들의 필독서가 돼버린 『엔트로피』가 대표적인 경우다. 스스로를 ‘경제학자’가 아니라 ‘행동가’라고 밝히는 제레미 리프킨이 열역학에서 ‘고립계’(isolated system)를 뜻하는 ‘우주’(universe)를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으로 착각해버렸다. 실제로 추운 날 저절로 얼음이 얼 때는 명백하게 엔트로피가 줄어든다. 엔트로피가 언제나 증가한다는 리프킨의 전제는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이다. 온 나라를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던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도 정확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
사실 융합과 통섭은 일제가 우리에게 남겨준 ‘문과’(인문계)와 ‘이과’(자연계)의 강고한 장벽에 대한 때늦은 반성에서 시작된 일이다. 그런 융합·통섭을 과도한 환원주의를 강조하는 현대 생물학 중심의 흡수통합 시도라고 우기는 모습은 절망적이다. 도가(道家) 사상에 관심을 보였던 프리초프 카프라와 전일주의(holism)를 닮은 비평형 통계열역학을 창시한 일리야 프리고진을 최고의 과학자로 신봉하던 ‘한국판’ 신(新)과학의 흔적도 여전하다.이제 현란한 구호만 앞세운 무늬만의 융합·통섭은 설 자리를 상실해버렸다. 21세기의 시대정신이고 인문정신으로 자리잡은 ‘과학정신’이 융합과 통섭의 새로운 목표가 되어야만 한다. 우리 모두가 비판적 이성과 실증적 증거에 바탕을 둔 열린 자세로 무장해야만 진정한 융합과 통섭이 가능하다는 뜻이다.온전한 ‘한국철학사’ 발간…남북이 함께 하는 그날까지
▶1면에서 이어짐
‘능력주의·남북철학’ 다룬 한국철학회 학술대회이번 한국철학회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눈여겨볼 섹션은 바로 ‘남북철학을 말한다’이다. ‘원효, 지눌·퇴계·율곡·다산·혜강’에 대한 북한의 이해를 남한의 시각에서 다뤘다.김원명 한국외대 교수(철학과)의 「남(南)의 철학자가 보는 북(北)의 원효: 북한에서의 원효철학 연구 동향」에 따르면, 북한에서 저술하는 원칙은 ‘계급주의적 원칙’과 ‘역사주의적 원칙’ 두 가지다. 이를 통해 한국(조선)철학사와 불교철학을 분석 평가한다. 김 교수는 “북한에서는 한국(조선)철학사와 불교철학을 기술할 때 ‘마르크스-레닌의 유물론’과 ‘주체사상’이 한결같이 적용된 ‘주관적 관념론으로서 봉건지배 착취계급에 기여했다’는 일관된 평가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관점·서술 원칙은 시대적 내용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예를 들어, 원효철학 연구 관련 김 교수는 “북한에서 원효철학 연구와 기술은 철 지난 사회주의 체제의 유물론적 관점의 기조와 ‘철학사적 우민화를 노리는 주체철학의 이데올로기’의 기조를 갖고 있다”라며 “ 앞으로 북한에서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라고 우려했다.특히 김 교수는 “남북이 원효철학 특징의 한국적인 기원을 설명해야 한다”라며 “신라의 원효가 새롭고 독특하게 고안한 ‘화쟁’ 사상과 그것을 그 바탕에 전제한 불교의 ‘일심’ 사상과 다르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을 이해하고 한국적인 철학 틀이 무엇이었는지 물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정세근 한국철학회 회장(충북대 철학과 교수)은 기획의도에 대해 “남북의 철학자가 만나고자 하는 시도는 이미 2019년 9월부터 연변을 통해 계획됐다”라며 “그러나 시국의 매서움으로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한국철학회는 북한의 한국왼쪽부터 김원명 한국외대 교수(철학과)와 선우현 청주교대 교수(윤리교육과)이다. 김 교수는 북한의 원효철학 연구, 선우현 교수는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 담론을 분석했다. 사진=김원명, 교수신문
김원명 한국외대 교수 “북한에서 원효철학 연구와 기술은 철 지난 사회주의 체제의 유물론적 관점의 기조와 ‘철학사적 우민화를 노리는 주체철학의 이데올로기’의 기조를 갖고 있다.”
선우현 청주교대 교수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결함을 상당 수준 해결한 바탕 위에서 능력주의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여 재가동시키는 것이 좀 더 나은 방안일 수 있다.”철학사를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이미 북한은 조선철학전사 십수 권을 정리했다. 반면 한국철학계는 한국철학회에서 논문집의 형태로 3권의 책을 낸 것이 고작이다. 정 회장은 “우리는 일단 북한의 연구 동향을 정리한 이후, 점차 온전한 한국철학사 발간을 목표로 한다”라고 밝혔다.
학벌 패거리주의·서열주의와 교수채용선우현 청주교대 교수(윤리교육과)는 「능력을 사회적으로 규정짓고 통용시키는 주체는 누구인가?」를 발표했다. 그는 “능력주의의 파기와 해체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비록 능력주의가 불완전하며 온전치 못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우리는 능력주의를 ‘능력과 보상의 비례를 뜻하는 형평이라는 공정성 원칙’으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우현 교수는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결함을 상당 수준 해결한 바탕 위에서 능력주의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여 재가동시키는 것이 좀 더 나은 방안일 수 있다”는 견해를 하나의 제언으로 개진했다. 현실적으로 능력주의의 대안이 없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또한 선우현 교수는 현 한국사회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외양만 근대적 시민 사회일 뿐 실체는 전근대적인 패거리 사회의 양상을 취하고 있다”라며 생활전선 도처에서 “비합리적인 정실주의적·연고주의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여전히 허다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오히려 능력주의가 잘 반영되길 바란다.예를 들어, 교수를 채용하는 학문의 전당인 대학은 “개인적 자질이나 역량, 실력보다는 출신 학교를 최우선적 평가 항목으로 고려하여 이루어지는 학벌 패거리주의와 서열주의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거리낌 없이 자행되는 공간”이다. 능력주의에 근거한 공정한 공채 방식도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능력주의 자체의 문제점보다도 능력주의가 잘 적용되지 못하는 것을 더욱 부당하다고 느끼는 셈이다. 그래서 선우현 교수는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지금처럼 학벌 패거리주의에 기초한 연고성을 통해 공채되는 방식보다, 익명성을 담보한 가운데 치르는 이른바 ‘교수 공채 시험’이 있다면 그것이 보다 ‘상대적으로’ 공명정대하지 않겠는가?”
특히 능력 개념에 대한 비판을 따져보면, “모든 능력 개념은 지배 계급의 이익을 반영하고 관철하는 데기여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능력 개념은 계급에 연루돼 있다. 가령 지식인은 학술 분야에서 토론 능력이 가장 탁월하다고 간주된다. 그러기에 경제 이슈와 관련해서 계급적 충돌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현장의 육체노동자와 경제학자가 토론으로 담판을 지어야 하면 경제학자가 유리하다. 그래서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쳐 능력 개념과 능력주의를 재구성해야 한다. 사정은 이렇지만, 능력 개념을 폐기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능력 개념은 개인의 잠재적 및 현실적 역량과 성취도 나아가 그에 따라 보상을 측정 평가하는데 불가피하게 동원되는 필수적 개념이기 때문이다.”선우현 교수는 능력주의 원칙이 작동되는 터전으로서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결함과 폐해를 지적했다. 이 때문에 불공정성·불평등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의 병폐를 재구조화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이 작업과 병행해 능력주의도 비판적 재구성이 필요하다. 그는 “능력주의 자체를 ‘근본악’으로 간주하여 폐기 처분하는 대신, 공정성 원칙을 나름 공정하게 재가동시키는 방안을 모색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다.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인간 흔적 뚜렷한 환경오염…“인류세’ 용어 확산될 것”과학자가 본 인류세@ 김해동 계명대 교수
‘인류세’가 지질학계에서 공식 용어로 아직 채택되지 않았음에도 사회 전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100년 미만의 기간 동안 퇴적층에 남겨진 인간의 흔적이 과연 지질시대에 시기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교수신문은 과학자와 인문학자 본 인류세에 대한 특집을 마련했다. 지난호 최덕근 서울대 명예교수(지질학), 김기봉 경기대 교수(사학과)에 이어 김해동 계명대 교수(지구환경과학과)가 기후변화·환경오염에 따른 인류세 담론 확산에 대해 기고했다.
“인류세로 간주되는 기간에 형성된 해양 퇴적층이 너무 얇다고 하지만 양극 지방에 두껍게 쌓여있는 빙하 속에는 깊은 층에 걸쳐서 인간에 의한 환경오염의유엔환경회의의 한 행사에서는 ‘인류세에 온 걸 환영한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상영하며 문제를 부각시킨 적이 있다.
사진=「유네스코 꾸리에 (Unesco Courier)」(April-June 2018)에 실린 표지사진흔적이 뚜렷하게 발견된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천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지질시대를 홀로세라고 한다. 홀로세에서도 기후가 급변하는 시기가 반복적으로 발생했지만 상대적으로 꽤 안정적인 상태가 지속됐다. 이러한 기후의 안정화가 인류문명 발달과 인구 폭증의 배경이 됐다. 홀로세는 ‘인류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었던 온전한 시기’라는 말이다.18세기 중엽에 시작된 산업혁명을 계기로 인간이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산업혁명이 시작될 당시에 3억 명 정도였던 인구는 20세기 중반에 25억 명을 넘었고, 현재 80억 명에 이르렀으며, 2050년에는 100억 명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된다.인구 폭증으로 시작된 자연의 착취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생산한 제품을 먼 곳까지 빠르게 대량으로 수송할 수 있게 됐다. 산업혁명 이후에 인간은 화학지식을 이용해 플라스틱·비닐·합성섬유 등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고 콘크리트와 같은 새로운 건축 소재를 개발하기도 했다. 20세기 중반에는 핵무기를 만들고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했다. 과학기술의 성과로 물자가 풍족해졌고 인구가 폭증했다. 인간은 더욱 많은 물자와 생활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됐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연과의 공존을 넘어서 자연 착취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기후 위기, 지구환경 오염, 그리고 생물 대멸종 사건이 발생했고, 인류의 종말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인간이 유발시킨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간 중심의 편협한 사고방식을 벗어나서, 인간도 지구생태계의 일부라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에서 ‘인류세(Anthropocene)’ 개념이 나왔다.인류세라는 용어는 1980년대에 미국의 생물학자 유진 스토머(1934∼2012)가 처음으로 사용하였지만, 이것이 유명해진 것은 1995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네덜란드의 대기화학자 파울 크레첸(1933∼2021)이 2000년 2월에 멕시코에서 개최된 국제환경회의장에서 현재의 지질시대를 인류세로 부르자고 제안하면서부터이다. 인류세란 과학기술문명의 폭발적인 증가로 인류가 지구환경을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바꿔놓은 지질시대를 말한다.
국제지질과학연맹 산하 국제층서위원회는 2009년에 12개국 34명의 층서학 전공의 지질학자로 구성된 인류세 워킹그룹(AWG)을 구성하여 현재까지 관련 연구(인류세의 정의, 인류세의 시작점과 특징 등)를 주도하고 있다. 애당초 AWG는 2021년까지 인류세 지정에 대한 공식 제안서를 국제지질과학연맹에 제출할 계획이었지만 계속 지연되고 말았다. 그런데 지난해 크리스마스 경에 AWG가 인류세의 특성을 확인하기 위한 대상 후보지(Golden Spike, 황금 못)를 선정하고 인류세 시작 시점을 언제로 정할 것인지 등을 결정하는 투표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투표는 올해 봄에 마무리될 전망이라고 한다. 황금 못이란 인류세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특정의 지질 장소를 말한다.인류세가 공식적으로 새로운 지질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위원회에서 60% 이상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지질학자들 사이에서는 인류세 신설이 널리 지지를 얻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학문적 용어를 채택하는 데에는 사회적 이슈로서 유명세보다 학문적 엄밀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이유로 현세를 인류세로 규정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고 무리한 일이라는 주장도 상존한다. 이 문제를 살펴보자.AWG는 2019년 5월에 투표로 인류세 시작점을 20세기 중반으로 하는 데에 합의했다. 인류세를 규정하는 키워드로는 방사능 잔재, 플라스틱 쓰레기, 콘크리트 건축 소재, 유해 화학물질(농약 등) 등이다. 그래서 인류세의 시작은 핵폭탄이 사용된 1945년으로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1945년에 인류세가 시작됐다고 결정한다면 아직 80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이기간 동안에 형성된 해양 퇴적층의 두께는 1밀리미터 정도에 불과하다. 인류세가 너무 짧아서 별도의 지질시대로 확정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말이다.크루첸, 18세기 후반부터 인류세로 제안인류세의 개념을 창안한 크루첸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18세기 후반을 인류세의 시작으로 제안했었다. 대기 중의 온실가스 농도는 제임스 와트가 뉴커먼의 증기기관을 훨씬 뛰어넘는 새로운 증기기관을 발명해 증기기관에 대한 첫 번째 특허를 획득한 18세기 후반부터 증가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높다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이 홀로세로부터 인류세를 구분하는 것에 지지를 보내는 가장 큰 이유도 산업혁명 이후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으로 대기 중에 온실가스 농도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기후 위기가 찾아왔고 그것이 현존하는 생물종의 대멸종을 유발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있다고 한다. 아울러 인류세를 규정하는 대표적인 물질들인 콘크리트는 1824년, 플라스틱은 1869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도 인류세의 시점을 20세기 중반이 아니라 산업혁명이 시작된 18세기 후반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새로운 지질시대로 인정될지와 무관하게 인류세라는 용어는 앞으로 더욱 널리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국제학술지에 인류세와 관련된 논문이 연간 수백 편씩 게재되고 있고, 인류세를 다루는 전문 학술지도 창간되고 있다.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리우유엔환경회의(1992)가 끝나고 10년이 지나서 개최된요하네스버그 유엔환경회의(2012)에서는 행사를 시작하면서, ‘인류세에 온 걸 환영한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상영되기도 했다.인류세로 간주되는 기간에 형성된 해양 퇴적층이 너무 얇다고 하지만 양극 지방에 두껍게 쌓여있는 빙하 속에는 깊은 층에 걸쳐서 인간에 의한 환경오염의 흔적이 뚜렷하게 발견된다. 그린란드와 남극의 얼음 코어 속에 산업혁명 이래로 메탄과 이산화탄소 농도가 뚜렷하게 증가한 공기가 확인되고, 오존홀을 만든 프레온가스의 폐해도 1945년에 사용된 핵폭탄과 후속 핵폭탄실험에서 나온 방사성 물질도 선명하게 발견된다. 해양에는 폐플라스틱 섬이 형성되고, 수많은 해양생물이 희생되고 있다. 그래서 설령 인류세가 지질학적 공식 용어로 채택되지 않더라도 일반 대중들과 다른 학문 분야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폭넓게 사용할 것이며 먼 훗날에 지질학적 증거로도 남겨질 문제임에 틀림없다.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학과 교수교수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에서 대기과학 전공으로 박사를 했다. 기상청 기상연구관을 역임했다. 현재 대구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기후위기 과학특강: 도와줘요, 기후박사』, 『내일 날씨, 어떻습니까?』, 『기후변화와 미래사회』 등을 썼다.
공감의 비극 차라리 공감하지 마라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56쪽저자는 이 책에서 ‘선택적 과잉 공감’의 비극을 말한다. 선택적 과잉 공감은 자기 성찰의 의지와 능력이 전혀 없는 가운데 내로남불을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집단이 자신들은 천사로 여기면서 자신들이 마땅치 않게 여기는 집단은 악마로 몰아가는 것을 말한다. 선택적 과잉 공감을 하는 사람들은 증오와 혐오를 먹고산다.
현대 중국의 탄생
클라우스 뮐한 지음 | 윤형진 옮김 | 너머북스 | 908쪽흔히 오늘날 중국의 부상이 1978년 덩샤오핑 집권 후 40년 동안 이뤄졌다고 여기지만 이 책은 다르게 말한다. 클라우스 뮐한은 냉전 경쟁과 국가적 부활이라는 표준적 해석을 넘어서 창조적 적응의 긴 역사 속에 21세기 중국을 위치시키며, 제도라는 렌즈를 통해 청제국에서 시진핑까지 중국 현대화 4백년의 궤적을 풀어낸다. 이 책은 저자가 2009년 존 페어뱅크상을 수상한 후 10여 년에 걸친 새로운 도전의 산물이다.
들뢰즈 이후 페미니즘
한나 스타크 지음 | 이혜수·한희정 옮김 | 이상북스 | 252쪽이 책은 들뢰즈의 주요 개념을 명확하고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동시에 들뢰즈 철학이 페미니즘의 이론과 실천에 가져다준 긍정적 영향에 대해 핵심 내용을 짚어준다. 페미니즘 전반을 소개하고 특히 들뢰즈 철학에 영향을 받은 페미니즘을 소개하는 이 책은 난해하기로 유명한 들뢰즈 철학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또 들뢰즈 철학이 페미니즘 논쟁에 가져다줄 활력을 모색한다.헤겔의 미학과 예술론
서정혁 지음 | 소명출판 | 477쪽이미 국내에는 헤겔의 미학 강의들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를 토대로 헤겔 미학의 번역서들이 하나둘 출간되고 개별 연구들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많이 발표돼 왔다. 그런데, 아쉽게도 아직 헤겔 미학에 대한 본격 국내 연구서는 없는 실정이다. 이 책은 저자가 십여 년간 헤겔 미학을 연구하고 번역도 하면서 발표한 연구결과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엮으며 나온 결과물이다.루소 사상의 새 지평
박호성 지음 | 서광사 | 264쪽이 책은 저자가 장자크 루소의 사상에 관해 저술한 책이다. 저자는 루소의 사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비롯한 정치사상 저작들 및 『에밀─교육에 관하여』 등 대표 저작을 우리말로 옮겨 출간한 연구자이다. 근대 학문과 과학의 발달로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었던 계몽주의 시대에, 루소는 유럽 사회의 현실을 재검토하고 비판을 제기했다.권리란 무엇인가
주디스 자비스 톰슨 지음 | 이민열 옮김 | 에피스테메 | 664쪽우리가 일상 속에서 흔하게 내세우는 ‘권리’라는 개념은 실제로는 도덕적·정치적·법적 사고의 기본을 이루는 것이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선택적이고 단편적으로 그것을 사용하곤 한다. 다툼에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권리의 속성에 직관적으로 호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책은 인간과 사회의 권리에 대한 전면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을 제공한다.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
리처드 C. 르원틴 외 2인 지음 | 이상원 옮김 | 한울아카데미 | 432쪽이 책은 사회적 쟁점을 다룬 정상급 과학자 3인이 쓴 논쟁서이며 연구서이다. 뒤표지 글에 등장하는 한 서평의 일부에서 나오는 “가장 요구가 많은 전문가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그 분석을 꼼꼼하게 유지하고 있다”라는 표현처럼, 이 책은 심도 있는 연구서이되, 가독성을 갖춰 일반 독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저자들이 열의를 가지고 노력한 책이다.화학고고학
더글라스 프라이스·제임스 버턴 지음 | 곽승기 옮김 | 사회평론아카데미 | 418쪽이 책은 고고학자들과 고고학 전공 학생들에게 고고화학의 원리와 그 적용을 소개할 목적으로 저술된 고고화학 개론서이다. 최근에 이르러 고고학 분야에서 주요한 발견들은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고고화학자들은 토기, 뼈, 돌, 토양, 염료, 지질 등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물질문화를 연구한다.인간기계론·인간식물론
쥘리앵 오프레 드 라 메트리 지음 | 이충훈 옮김 | b(도서출판비) | 264쪽이 책은 저자의 두 편의 저작 『인간기계론』과 『인간식물론』의 번역이다. 라 메트리는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기반으로 전개된 프랑스 17세기 자유사상가들의 계보에 속하는 동시에 의사로서 당대 최신 의학 및 자연사 연구의 성과들을 자신의 유물론 철학에 적극적으로 반영한 인물이다. 그의 의학-철학 이론은 이름을 밝히지 않거나 여러 필명으로 발표한 짧은 팸플릿에서 찾을 수 있다.저자가 말하다_『문학의 깊이와 철학』 박유정 지음 | 인간사랑 | 300쪽
‘문학 철학’을 꿈꾸며바슐라르를 오마주 하며
문학과 철학의 해석학적 만남: 영혼의 깊이와 그 실존적 지평카뮈의 『이방인』에는 어머니의 부고를 받고 불경하게 행동하다가 바닷가에서 햇빛이 따갑다는 이유로 아랍인을 살해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이야기는 그야말로 부조리하지만, 소설은 일관되게 주인공이 어머니에게 잘못했기 때문에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즉 어머니의 이미지가 소설 전체를 압도해서 소설의 서사적 부조리성이 곧 어머니의 이미지에 바쳐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카뮈가 술회했듯이 그의 마음을 최초로 열게 했던 이미지가 어머니라는 영상(映像)이고, 그 영상은 곧 대답 없는 존재의 부조리를 가리키며, 따라서 카뮈의 부조리 문학은 어머니의 이미지에 바쳐진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바슐라르의 문학 철학 속에서 카뮈를 ‘물의 작가’로 분류할 수 있는 이유이다.이렇게 작품의 몽상을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기반한 무의식을 발견해 내는 비평론이 바로 바슐라르의 문학 철학인데, 이 책은 이러한 그의 문학 철학의 길을 꿈꾸며 신비평과 해석학을 통해 또 하나의 문학 철학의 길을 가고자 했다. 즉 신비평에서 말하는 작품 속에 있는 ‘깊은 나’(Moi au fond)와 그것을 드러내는 지평이 곧실존적 지평이라고 해석함으로써 문학이 곧 철학이 되는 해석학적 탐구를 시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문학과 철학은 서로 다른 학문성을 갖지만, 문학이 깊어져 그것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실존의 지평을 노정할 때 그러한 실존적 지평으로서의 영혼의 깊이는 곧 모든 인간이 그 앞에 서는 보편적 지평으로서 문학과 철학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문학 철학, 즉 영혼의 깊이로서의 실존적 지평을 통해 문학과 철학의 해석학적 만남을 꾀한다. 우선 고전 명작이 왜 우리에게 책 읽기의 괴로움을 주는지를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고전 명작이 누구나 아는 책이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되곤 하는 것은, 그것이 종종 책읽기의 괴로움을 주기 때문이다.이는 고전 명작이 일상적 경험이나 교육 혹은 상식을 통해 이해되지 않는 실존적 투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상성의 일차원을 넘어서는 문학의 깊이에서 문학의 본질적 가치가 있음을 경험과 체험의 해석학적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 그리고서 시·소설·수필·시나리오에서 그러한 깊이를 담고 있는 작품들을 고찰하는 것이 이 책의 2부의 내용이다.그 밖에도 철학 편에서는 박이문(1930∼2017)과 문학 편에서는 조동일의 일종의 문학 철학이라 할 수 있는 선구적 논의를 다루었고, 그 논의들과 비교해 이 책의 문학 철학이 해석학적으로 우선성을 가질 수 있음을 결론에서 언급했다. 왜냐하면 깊이의 문제는 존재자가 아니라 존재의 지평에서 이야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문학 속의 삼각관계, 문학 속의 광기, 문학 속의 음악과 같은 주제들을 스토리텔링의 방식으로 다루면서 깊이의 문제를 짚어보기도 했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의 주제들은 이 책의 문학 철학이 견고해질수록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음을 또한 알려두었다.
요컨대 이 책은 문학과 철학이 해석학적으로 만나는 인간 정신의 깊이와 그 실존의 지평을 통해 문학 철학을 꿈꾼 것이다. 나아가 깊이의 문제는 오늘날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의 문명 속에서 물상화된 우리 존재를 치유할 이정표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싶다. 즉 불나방이 불로 날아들 듯이 욕망의 추구로 병들어가는 현대문명 속에서 그러한 시대의 가난을 지적하고 우리가 되돌아가야 할 깊이의 실존적 지평을 자각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여겨진다. 이에 이 작은 책이 문학 철학을 통해 조금이나마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담론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박유정
대구가톨릭대 프란치스코 칼리지 교수·철학저자가 말하다_『불승인주의: 미국의 동아시아 외교정책과 한반도문제』 최형익 지음 | 진인진 | 512쪽
한미관계의 가설을 뒤집다…‘전복적 해석학’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과연 어떤 존재일까? 그런데 이 점을 좀 더 올바르고 사실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미국에게 우리는 무엇인가’로 문제의식을 바꿔 살펴보는 것이다. 이 글은 1871년 조선과 미국이 전쟁을 통해 첫 조우한 이래, 한 세기 이상의 한미관계를 미국의 외교 관념과 대외 인식, 그리고 동아시아 외교정책의 틀 속에서 재해석하는 데 목적이 있다.
‘문호개방원칙’과 ‘불승인주의’는 20세미국 외교정책의 백년지대계 ‘문호개방원칙’
윌슨주의의 이중 적용…유럽은 중립, 일본은 항복기 시작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한반도·동아시아 대외정책을 떠받쳐온 양대 지주였다. 문호개방원칙은 미국 외교정책의 백년지대계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국제주의 외교문법 수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윌슨 대통령이 표방한 국제주의의 기원 역시 문호개방원칙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미국 동아시아정책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스팀슨 독트린으로 잘 알려진 ‘불승인주의’이다.
스팀슨 독트린은 일본의 후견 아래 건설된 만주국을 괴뢰정부로 간주해 승인하지 않을 것을 천명한 외교 원칙으로 처음 등장했다. 이때도 미국이 내세운 불승인의 핵심 기준은 만주국 수립이 문호개방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한 세기 이상 지속된 미국의 동아시아와 한반도문제에 대한 접근법은 윌슨식 국제주의와 문호개방원칙, 그리고 불승인주의 등 세 가지 주요 외교 원칙의 조합과 변주에서 발견할 수 있다.
불승인주의의 적용은 대단히 이중적이었다. 스팀슨 독트린을 공표한 1932년 당시, 정작 미국에서는 고립주의와 중립 외교가 절정을 이뤘다. 미국은 유럽에는 중립노선을 적용하여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을 모두 철수시켰다. 하지만 아시아는 예외였다. 아시아에서는 윌슨주의가 살아남아 스팀슨 독트린으로 부활했고,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무조건 항복론’으로 이어졌다.프랭클린 루스벨트와 트루먼 대통령이 일본에 내건 ‘무조건 항복론’은 만주에서의 일본의 군사·외교적 결정뿐만 아니라 메이지 헌법 체제 하에서 행해진 일체의 정치 행위를 부정하는 형태, 곧 ‘일본제국 자체의 불승인’으로 이어졌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을 앞장서 승인한 나라가 미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식의 윌슨주의에 내재한 이중 기준의 적용이었다. 또한 그런 만큼 놀라운 사태의 반전이기도 했다.
한반도 문제가 다시 미국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무조건 항복론’에 따른 일제에 대한 불승인주의의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미국의 이러한 입장 변화가 「카이로 선언」(1943) 말미에 “한국인들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여”란 문구가 담기게 된 대표적 이유라 할 수 있다. 미국의 대일본 정책의 급격한 반전은 식민지 조선에게는 당연히 자주적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기회의 창을 제공했다.
놀랍게도 정작 미국은 개항 이래 지금껏 한반도에 한정해서 유의미한 정책을 수립한 적이 없다. 해방 직후 한반도 문제의 해결책으로 미국이 제시한 ‘신탁통치안’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한반도 정책은 미국 외교에서 미미한 비중을 차지했을 뿐이다. 그럴 때조차 중국과 일본을 우선하는 동아시아 정책의 일부로 취급하거나 종속변수였을 따름이다.미국의 외교정책은 한반도 문제와 결합하거나 아니면 분리되는 식으로, 일련의 마주침과 헤어짐의 과정을 겪어왔다. 상식적으로는 미국의 외교정책과 한반도 정책의 일치, 곧 미국의 강한 개입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우호적 상황을 만들어줄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데 역사적 반전의 묘미가 숨겨져 있다. 이점에서 이 책의 숨겨진 의도는 기존 한미관계 가설을 상당 부분 뒤집는 ‘전복적 해석학’에 속한다.종래 대부분의 연구는 한반도 문제를 중심으로 미국의 외교 정책을 논의했지만, 반대로 이 연구는 미국 외교 정책의 주요 특징을 고찰하는 가운데 한반도 문제를 살펴본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미국의 외교정책사는 기존 유럽 나라들과는 결이 다른 정치 문법을 채택해온 역사이기 때문이다. 외교정책 상의 변형과 변주, 애매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흐르는 미국 외교정책의 내적 핵심과 독특한 문법이 있다는 게 이 글의 핵심 주장이다.최형익
한신대 글로벌인재학부 교수저자가 말하다_ 『메가 체인지시대 메가 학문정책』 강성호 지음 | 선인출판사 | 258쪽
기술 ‘지상·종속주의’ 극복, 인문사회 투자가 답
인문학 기반 메가 프로젝트로 거대 위기 해결
인문사회 분야 학술정책 활동 20년 경험 담아『메가 체인지 시대 메가 학문정책』은 급변하는 현재 세계의 거대 위기를 ‘거시적으로’ 극복하는 데 필요한 메가 학문정책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쓴 책이다. 글로벌 세계의 대전환기 또는 거대 위기를 거시적 차원에서 해결해보자는 뜻에서 ‘메가체인지 시대 메가 학문정책’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필자는 2000년부터 전국인문학연구소협의회, 국무총리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연구위원회, 한국서양사학회장, 인문한국(HK)사업단장, 한국연구재단 학술지발전위원장,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장, 국가중심국공립대학원장협의회 회장 둥으로 활동했다. 이런 활동 과정에서 한국 인문사회 분야의 학술지, 학술 지원, 인문 정책 기관, 대통령 직속 인문사회학문위원회, 대학원 관련 정책 등에 참여했다.지난 20년 동안의 학문정책 활동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진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동안 인문사회 분야 학문정책활동이 분산적이고 지속적이지 못했던 탓에 진전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학문정책 제안 배경·과정·결과 등을 정리하는 것이 학문 정책활동의 지속성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이 책에서 한국 인문사회 분야 학문정책들과 연구 지원 제도와 현황들을 살펴보려고 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 ‘해외 학문정책과 학술 지원’은 해외의 새로운 학문정책 이론, 학제 간 연구와 교육, 인문학 지원 기관을 다루었다. 해외 학문정책 이론으로 임마누엘 월러스틴과 「사회과학 재구조화에 관한 괼벨키안 위원회」 보고서를 검토했다. 학제 간 연구·교육으로 미국의 UC 버클리, MIT, 하버드대의 사례를 살펴봤다. 해외 인문진흥기관으로 영국의 인문‧예술연구지원회와 미국 국립인문재단을 소개했다.
제2부 ‘체계화되는 인문사회 학술 지원체제와 지원’은 한국에서 인문사회 분야 학술 지원 체제와 정책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체계화되었고 그 한계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인문사회 분야 학문 정책이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까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검토하면서, 인문정책 전담연구 기관 설립, 대통령 직속 인문사회학문위원회, 인문사회 분야 학술 지원 재편 등을 중심적으로 다루었다.제3부 ‘후발형에서 선도형 학문정책으로’는 한국의 학술지와 인문사회연구소를 세계적 수준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기에서는 한국연구재단 학술지 등재 제도 개선을 통해 한국형 A&HCI인 ‘우수 등재 학술지’ 육성 정책이 나오게 된 과정을 다루었다. 또한 인문사회 분야 대학연구소의 현황을 정리하고,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 활동을 소개하면서, 한국 인문사회 분야 연구소가 세계적인 연구소로 발전해가기 위한 고민과 노력을 소개했다.
앞으로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비 지원 규모와 비율을 확대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 5년 동안 인문사회 분야 연구지원 액수를 공적 R&D의 1% 수준에서 2% 수준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매년 0.2%씩 확대해 나가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인문사회 분야 연구 지원액을 공적 R&D의 5%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확대해야 한다.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사업 수행 과정에 인문사회적 분석 반영을 의무화해 기술 지상주의가 초래할 윤리 문제와 인간의 기술 종속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미국에서 인간 게놈 프로젝트 연구 진행 시총 연구비의 5%를 인문사회 연구(Ethical, Legal, Social Implication)에 투자했던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지난해 12월에 국회에서 ‘인문사회 분야 메가프로젝트의 필요성과 가능성’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여기에서 기존의 낡은 분과에 갇힌 학문 체계와 분산적이고 소규모적인 연구 지원으로는 메가체인지 시기 거대 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공유됐다. 올해 인문사회 학계는 교육부와 국회 등과 협력하여 인문사회 분야메가프로젝트를 현실화하려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이 한국형 인문사회 메가프로젝트 실현 과정에 이론적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강성호
국립순천대 사학과 교수·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 회장이 책을 말하다_『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레온 골든 英譯 | 하디슨 주니어 해설 | University Presses of Florida | 1981 | 308쪽
최고의 예술이론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서양 예술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이론서를 집필한 사상가를 꼽으라면 단연 아리스토텔레스가 뽑힐 것이다. 그는 스승 플라톤의 미학사상을 계승하여 예술을 모방 개념에서 접근하면서도, 외면세계의 수동적이고 충실한 복제로서 예술(모방)을 이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예술적 모방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상태보다 더 아름답게 혹은 덜 아름답게 나타낼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그리 길지 않은 한 권
고전 독서에는 좋은 길라잡이 필요
예술학의 선구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집필했다.
더욱이 그는 예술가가 자기 나름의 모방 방식으로 실재를 나타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예술창작에 관한 이론적인 언급에서는 언제나 그의 『시학』이 전범(典範)으로 작용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브왈로(1636~1711)의 『시학』(1674)과 알베르티(1404~1472)의 『회화론』(1436, 라틴어 본은 1435)을 들 수 있다. 회화의 이론을 성문화할 때 이렇다 할 만한 고전이 없었던 후자의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시 이론의 고전을 그 모델로 삼았을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은 자신이 직접 공표한 공개적인 저작과 아소스와 리케이온에서 강의를 위해 쓴 기록물인 강의용 저서로 구분한다. 『시학』은 후자의 저서 무리에 속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현존하지는 않지만, 희극을 다룬 『시학』의 2부 역시 이 부류에 속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움베르토 에코(1932~2016)가 『장미의 이름』(1980)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에 관한 저서를 소설의 소재로 삼은 바 있다.
고전 서적의 독서는 언제나 만만치가 않다. 그러나 좋은 길라잡이 주석서를 만난다면 책 읽기의 어려움은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으며, 즐거움 또한 폭발적으로 커질 수 있다. 레온 골든의 『문학도를 위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Aristotle’s Poetics: A Translation and Commentary for Students of Literature, University Presses of Florida, 1981) 역시 이런 부류의 책으로 흔히 만날 수 없는 수준 높은 주석서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 책은 『시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두 명의 학자에 의해, 각각 앞 부분은 원 저작에 대한 레온 골든의 영어 번역(translation, 3~52쪽)을 담고, 뒷부분은 하디슨 주니어의 주석(commentary, 55~296쪽)을 위치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뒷부분 주석 부분에서 「서론: 해석의 기초들」(55~62쪽)과 「에필로그: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에 관하여」(281~296쪽)를 통해 『시학』 텍스트 자체의 의미는 물론이거니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관에 대해 낯선 탐방인을 친절하게 인도하고 있다. 더욱이 서문(Ⅴ~Ⅵ쪽)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에 관한 종래의 풍성한 연구들을 송두리째 섭렵한 채 전문 주석가로서 나름의 해석을 붙이고 있다.
원래 『시학』의 그리스어 책 제목은 작시술(作詩術, peri poietikes)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 책의 제목을 통해 『시학』이 ‘시를 짓는 기술’을 다루는 예술창작에 관한 이론서임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이 형이상학적·윤리학적 가치 판단에 의해 미와 예술의 본질을 구명하여 한 것과는 거리가 있는, 예술에 관한 독창적이고 확고한 미학적 견해를 『시학』에서 마음껏 뿜어낸다. 이와 같은 그의 모습은 미학으로부터 예술학을 독립시키고자 한 19세기 반(反)관념론적 미학으로서 예술학의 태동 이전에 예술에 대한, 예술에 의한, 예술을 위한, 예술을 논한 예술학(Kunstwissenschaft)의 비조(鼻祖)로서 손색이 없다. 이 지점에서 그의 『시학』은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승건
서울예술대 교수·미학반구대 이야기
전호태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 352쪽울산 태화강 거슬러 대곡천 물줄기를 따라간 깊은 골짜기. 일부러 사람이 닿을 수 없게 마련된 듯한 자리에 반구대 암각화는 펼쳐져 있다. 옛사람들은 과연 이곳에 무슨 이야기들을 새겨둔 걸까. 다양한 연구와 집필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전호태 울산대 교수(역사문화학과)가 이에 응답한다. 이 책은 그가 56가지 연결어로 빚어낸 반구대 암각화 스토리텔링 에세이다.괴테의 식물변형론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 이선 옮김 | 이유출판 | 168쪽『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등 불멸의 작품을 남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문학가로서 이룬 눈부신 업적 때문에 가려진 그의 또 다른 모습이 여기 있다. 바로 자연과학자의 면모이다. 대학 시절부터 문학 외에도 광학과 해부학에 관심이 많았던 괴테는 “마흔이 되기 전에 공부 좀 해야겠다”라며 이탈리아로 떠난다. 이 여행에서 낯선 기후와 지리, 이국적인 삶과 예술을 접하고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지금, 역사란 무엇인가
헬렌 카·수재너 립스컴 엮음 | 최파일 옮김 | 까치 | 440쪽『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E. H. 카는 역사란 역사가의 해석에 따라 재해석되는 구성물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세계 곳곳에서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의 역사를 반성하며 다양한 주체들의 목소리를 포함하고자 하는 오늘날, 역사는 어떻게 재구성돼야 하며, 여기에는 어떤 어려움들이 있을까?비건
상헌 지음 | 두남 | 262쪽활동가로서 거리에서, 채식주의 강의 및 비거니즘 강연, 줌을 통해 만났던 국내외 수천 명, 그리고 특강을 들었던 수만 명의 사람들이 궁금해 했던 내용을 책으로 정리하고 싶었다. 채식 관련 비거니즘에 대해서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질문을 받아왔다. 지금도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현대의 삶에 바쁜 사람들과 충분한 시간으로 소진하는 토의는 드물다.마키아벨리, 가면 뒤의 얼굴
파트리크 부슈롱 지음 ` 손주경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 208쪽섬세한 정신을 소유한 사상가이면서도 뛰어난 행동가 및 실천자였던 마키아벨리는 여전히 가면 뒤에 갇혀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현실을 왜곡하지 않는 가운데 정치를 인간적인 행위의 전개 그 자체로 파악한 자, 민중에게 도움이 되는 글쓰기를 실천한 자, 우연에 의해 전개되는 역사 속에서 비르투(탁월함)를 지닌 자의 정신과 행동의 필요성을 역설한 자이다.17세기 군주와 신하의 소통 방식 김백철 지음 ` 그물 ` 248쪽
17세기 조선사회는 문치주의 시대로, 글의 힘이 어느 때보다도 사회 전반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였다. 각기 학문적 이념에 따라 정치세력이 결집되고, 붕당 간 경쟁을 통해 국정의 운영을 책임지는 시기였다. 각 붕당을 대표하는 산림은 학파의 학문을 대변하고, 그것이 기반이 돼 정책화된다는 점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다. 왕위에 오른 숙종은 어렸지만 정세 판단이 정확했다.가정폭력과 포퓰리즘
에디 하르트만 외 15인 지음 | 사월의책 | 224쪽현대인은 폭력을 혐오한다. 학교폭력 가해자에게 응당한 처벌을 요구하고 피해자에게 공감을 표시한다. 언론의 주목을 끄는 ‘눈에 보이는 폭력’에 대해서라면 우리 모두가 폭력에 적극 반대한다. 그러나 가정의 영역, 친밀성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사태가 달라진다.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폭력에 대해 우리는 전혀 민감하지 않다. 그곳에는 여전히 침묵만이 존재한다.중국식 현대화와 시진핑 리더십
이희옥 외 8인 지음 | 책과함께 | 386쪽중국공산당은 치열한 당내 권력투쟁과 노선투쟁을 겪으면서 관례와 관행, 규범을 통해 정치의 기술을 발휘해왔다. 특히 덩샤오핑이 이끌었던 개혁개방 시기 이후에는 대체로 이러한 비공식적 정치과정이 작동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시진핑 시기를 거치면서 기존의 정치 문법과는 다른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집단지도 체제가 무너진 자리에 ‘개인 지배’가 강화됐다.|분야별 신간|
인문단어 형성에 대한 표현론적 접근 | 파볼 슈테카우어 지음 | 구본관 외 2인 옮김 | 사회평론아카데미 | 264쪽문장의 비결 | 정희모 지음 | 들녘 | 324쪽언어와 독일의 분열 | 패트릭 스티븐슨 지음 | 신명선 외 5인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484쪽한국어 의미론 | 박철우 외 13인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452쪽
현대소설교육론 | 김성진 외 7인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452쪽경제세상 친절한 경제상식 | 토리텔러 지음 | 미래의창 | 296쪽역사전쟁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 마거릿 맥밀런 지음 | 천태화 옮김 |공존 | 512쪽
중화의 성립 | 와타나베 신이치로 지음 | 이용빈 옮김 | 한울아카데미 | 248쪽한없는 한 | 존 리 지음 | 이윤청 옮김 | 소명출판 | 316쪽문학-에세이거침없이 내성적인 | 이자켓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74쪽나의 마지막 엄마 | 아사다 지로 지음 | 이선희 옮김 | 다산책방 | 400쪽두근거리는 고요 | 박범신 지음 | 파람북 | 312쪽
사랑의 꿈 |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396쪽순례 | 박범신 지음 | 파람북 | 320쪽영원한 가설 | 이상 지음 | 김동희 옮김 | 읻다 | 160쪽저녁의 신 | 이학성 지음 | b(도서출판비) | 143쪽추운 봄 | 다니엘 살나브 지음 | 이재룡 옮김 | 열림원 | 288쪽20세기 역사를 재평가하는 새로운 눈 ‘장기 냉전 구조’
신냉전 시대, 우리에게 ‘냉전’ 무엇이었나 ④
소련 재평가 국내 연구자두 역사학자의 학술은 지구사, 장기사, 기술사 등 냉전사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 유용한 렌즈를 제공한다. 최근 냉전사 연구는 관습적 의미의 냉전(1945~1991) 구조와 1920~1930년대 전간기와의 연속성에 주목한다.
지난 연재에서 경제(대외무역)에 주목하는 소련 재평가의 흐름을 살펴보았다. 아쉽게도, 소련에 대한 선입견은 냉전이 끝난 후에도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러시아의 공세적 행보(2014년 크림반도 합병과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으로 ‘과거에 대한 향수’가 지목되는 만큼, 소련사에 대한 오해는 지속되고 있다. 한편 냉전사·소련사 연구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에서 소련 재평가를 주도하고 있는 연구자는 누구일까?
소련사를 연구하는 한국인 역사학자2022년 봄, 서울시 서초구에 있는 유럽인문아카데미에서는 소련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과 좌절’이라는 제목으로 10주간의 무료 기획특강이 열렸다. 소련의 70년 역사를 한국어 교재로 배울 수 있는 매우 드문 기회였다. 흥미롭게도, 강연자는 소련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두 명의 한국인 역사학자였다.서울대에서 서양사를 가르치고 있는 노경덕 교수는 국내 러시아사·냉전사 학계의 중추적인 학자이다. 서구 소련사 학계에서 (전체주의론에 대항한다는 의미에서) ‘수정주의론’을 선도한 세계적인 사학자 쉴라 피츠패트릭의 지도 아래 시카고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2010)한 후 소련사, 냉전사, 현대 러시아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꾸준히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박사학위논문의 제목인 「스탈린의 싱크탱크」가 보여주듯, 노경덕 교수는 소련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외교 노선을 뒷받침한 경제학자 집단 연구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이다. 그는 학위논문에서 1925년에 세워져 20년 넘게 기능한 소련의 세계경제세계정치연구소(IMKhMP), 이 연구소의 소장으로 복무한 헝가리 출신 경제학자 예브게니 바르가를 비롯한 경제학자들의 연구와 담론을 재조명했다. 2018년에는 영어 저작을 펴내며 한국인 역사학자로는 선구적으로 서구 학계와 대등한 수준에서 연구를 이어 나가고 있다.
광주과학기술원에서 서양사를 가르치고 있는 김동혁교수는 국내 러시아사·냉전사 학계를 견인하고 있는 학자이다. 1950년대 후반 소련 경제학계를 주도하며 1965년 소련 경제개혁을 추동한 집단인 이른바 ‘수리경제학파’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박사학위논문(2015)을 썼다.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시 소련의 경제건설에 기여한 대표적인 수리경제학자 바실리 넴치노프, 레오니드 칸토로비치, 빅토르 노보쥘로프의 삶과 활동, 주요 논쟁 등을 조명했다. 칸토로비치는 선형계획법 연구에서 기여를 인정받아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1975)하기도 했다.
소련 경제와 외교의 실체를 밝혀내다두 역사학자는 공통적으로 방대한 양의 러시아 문서고 자료에 대한 검토를 바탕으로 소련 내 경제학의 부침과 정치사회적 파급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한다. 이러한 접근은 소련 경제와 외교의 실체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이를테면, IMKhMP를 이끈 바르가의 경제사상은 과잉생산을 강조한 루돌프 힐퍼딩, 과소소비에 주목한 로자 룩셈부르크 등 ‘마르크스주의노경덕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김동혁 광주과학기술원 인문사회부전공 교수
Stalin’s Economic Advisors
(2018) 표지경제학’과 깊은 관련을 가지면서도, 경기순환(business cycle)을 실증적으로 연구한 미국의 경제학자 웨슬리 미첼에게서도 지대한 영향을 받은 산물이었다.
1950년대에 부각된 수리경제학자 집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서구 학계에서는 이들의 등장을 보그다노프나 부하린 등 1920년대를 풍미한 소련 혁명가들과의 관계에서 찾거나, 20세기 영·미권에서 부상한 신고전파 경제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추정할 뿐이었다. 하지만 김동혁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수리경제학파’는 계획경제의 관리·운용이라는 소련의 국내적 맥락이 만든 ‘소련식’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었다.
독창적 소련 냉전사 해석두 소련사 학자는 소련사 연구를 통해 독창적인 냉전사 해석을 전개한다.
소련의 ‘팽창욕’에 집착하는 기존의 서술과 달리, 노경덕 교수는 스탈린 외교의 수세적이고 실리 지향적인 성격을 증명했다. 그 궁극적 목표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반소(反蘇) 연합 결성을 저지해서 그들과 의 전면전을 피하는 것이었다.관·학 관계도 새롭게 조망했다. 기존 서술이 정치에 대한 학문의 종속을 강조한 반면, 소련 학계는 집권당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일정 수준의 자율성을 확보했다. 바르가 집단은 스탈린 시대 내내 독자적인 전문지식과 연구를 바탕으로 국가에 대한 학문적 서비스를 이어 나갔다. 스탈린 사후의 수리경제학자들은 경제성장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며 학문적·제도적 권력을 얻었다.두 역사학자의 학술은 지구사, 장기사, 기술사 등 냉전사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 유용한 렌즈를 제공한다. 최근 냉전사 연구는 관습적 의미의 냉전(1945~1991) 구조와 1920~1930년대 전간기(interwar period)와의 연속성에 주목한다. ‘장기 냉전 구조’를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노경덕 교수는 1917년 혁명 이후 러시아의 국제사적 의미와 외교 전략, 얄타회담을 재해석하는 연구를 수행했고, 김동혁 교수는 소련 경제의 실상과 제도 변동, 원자력 개발을 살폈다. 앞으로 이들의 연구가 기대된다.
다음 연재에서는 소련만큼이나 중요한 냉전사의 핵심 주제인 중·소 관계를 고찰하는 연구를 개괄할 것이다.우동현
한국과학기술원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조교수UCLA에서 과학기술사(북한-소련 관계사)로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국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The Historical Journal』에 한국인 최초로 논문이 게재됐다. 역서로는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 『플루토피아』, 『저주받은 원자』, 국제공산주의운동을 2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풀어낸 『전쟁의 유령』(가제)이 있고,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총서 36권 및 38-39권을 공역했다. 주요 관심사는 냉전사, 핵역사, 환경기술사, 디지털역사학이다.
글로컬 오디세이
환락가에서 ‘환각’으로 결핍 채우려는 아이들조관자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19세 일본 청년의 자작곡 「Overdose」(과다복용)는 한국의 10대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일본어를 몰라도 몽환적 음
색과 빠른 전자음, 애절함과 경쾌함이 절묘한 퇴폐 감성을 빚어낸다. 그 첫 소절은 “Dose, give me, give me. 사실은 알고 있었어, 그러면 안되는 거. 알고 있었지만, 이 손 틈을 빠져나가는 모든 게 사랑으로 보였어”로 시작한다.
집안의 비리를 폭로한 전우환 씨가 스스로 ‘마약을 하고 진실을 말한’ 것처럼, 그 노랫말은 환각 속에서 사랑을 말한다. 신주쿠의 거리 영상에서는 감기약을 과다 복용한 소녀가 행인들에게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치다가 드러눕는다. 여린 감성으로 올바름을 찾는 이들은 세상에 대한 허탈과 낙망을 환각으로 채운다. 투명하지 못한 사회에서 ‘해상도 낮은 꿈’을 꾸려고 약을 찾는다. ‘바름’과 ‘사랑’에 대한 결핍은 갈망을 낳고, 결핍과 갈망이 클수록 집착과 중독으로 이어진다.일본어로 오버도스를 검색하면 알고리즘이 ‘도-요코 키즈’(トー横キッズ)로 안내한다. 코로나 시기 생겨난 이 용어는 SNS를 통해 가부키쵸의 TOHO 시네마 빌딩 옆에 모여든 10대, 주로 지방에서 가출한 청소년들을 가리킨다. 처음 그곳은 부모에게 학대받고, 학교에서 환영받지 못한 또래들이 비슷한 감성을 나누는 ‘해방구’였다. 하지만 유흥업소가 밀집된 환락가가 안전할 리 없다. 편의점이나밤이 되면 가부키쵸의 TOHO시네마 빌딩 옆으로 10대들이 모여든다. 이들은 일본의 우울한 현주소를 보여준다. 사진=조관자라면집에서 아르바이트도 가능하지만, 성매매와 원조교제를 시도하는 소녀들과 호스트로 스카웃되는 청소년들이 늘어났다. 10대가 연루된 노숙자 상해치사 사건, 보호단체 대표의 성추행 사건도 있었다. 언론이 ‘도-요코 키즈’를 집중 보도하자, 경찰의 단속도 강화됐다. 그 결과 매일 30~40명씩 보이던 ‘도-요코 아이들’은 줄었지만, 오사카의 글루코상 다리 아래 등, 대도시의 지하로 흩어지는 추세라고 한다.
10년 만의 가부키쵸 배회, 필자는 호스트 산업의 비대한 팽창에 두 눈을 의심했다. 호스트의 얼굴, 지명도와 수입을 선전하는 대형버스가 쉴 새 없이 가부키쵸 주변을 달리고, 한국 음식점과 장터가 있는 대로변 건물에도 호스트클럽의 간판이 걸려 있었다. 가부키쵸를 잠입 취재한 서적과 인터넷 기사를 촘촘히 찾아 읽고 나니, 머리가 무거워졌다. 호스트 업계의 장치는 교묘해서 여성들이 호스트를 지명할 때 지불되는 금액에 경합이 붙는다. 아이돌의 팬덤처럼 여성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호스트의 인기를 높이려고 수십, 수백 만 원을 건다. 호스트에 열광하는 여성 중 9할 이상이 성매매로 번 돈을 호스트에게 바친다. 호스트클럽 경영자 A씨는 “그녀들은 호스트클럽에 다니기 위해 일해요. 호스트클럽이 사라지면 그녀들도 출근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성매매가 불법인 일본에서 유흥업 종사자로 직업의식을 갖고 자신의 생계를 지키는 여성들도
있다. 하지만 성매매녀(風俗嬢)로 불리는 여성 다수가 한 남성 고객에게 1~2만 엔 받은 돈을 모아서 호스트에게 몽땅 소비한다면, 그 삶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렇게 몰입하다가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자살도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청소년 사인 중 1위가 자살이니, 그 수가 적지 않을 것이다.
가부키쵸에 있는 공익법인 ‘일본가케코미테라’(日本駆け込み寺: 에도시대 여성들이 남성의 폭력이나바람에 시달리다가 도망쳐 들어간 절의 이름을 딴 상담소)의 현수성 소장은 “연애를 하기 때문이지. 상대에게 집착하기 때문에 벗어날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가케코미’는 ‘엔키리’(縁切り)의 의미이다. 절에 뛰어 들어간 여성은 상대 남성과 연을 끊고 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현 소장에게는 남성의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그 곁을 떠나지 않는 여성의 상담도 들어온다. “헤어질 결심을 한다면 그 남자로부터 벗어날 방법을 알려주고 자립을 도와주지. 결심 못하는 여자들도 있어요. 집착 때문이야” 오버도스의 노랫말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은 집착과도 거리가 멀 듯하지만, 약물 중독과 절연하지 못하면 그 삶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지 싶다. 젊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약물 중독과 자살이 늘어난다.대학의 연구자로서 나는 이 젊은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재일교포인 현수성 소장과 “가치관을 바꾸고 싶다”는 다나카 요시히데(田中芳秀) 씨에게 “함께 연구해보자”는 약속을 하고 3년만의 도쿄 출장을 마무리했다.도쿄대 대학원에서 일본사상사를 공부하고 학술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의 국학, 한일의 지식 교섭을 연구하고, 내셔널리즘의 충돌을 넘어선 사상과제를 찾아 동시대의 사회문제를 조사·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일본 내셔널리즘의 사상사-'전시-전후체제'를 넘어서 동아시아 사상과제 찾기』, 『포스트 코로나: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등이 있다.교수‧학회 “정부 강제동원 배상안 철회하라”… 잇단 비판 성명
정부의 일본 강제동원 배상안에 반대하는 교수들의 비판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6일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안의 핵심은 피고인 일본 기업이 아닌 국내 기업이 자발적 기여로 마련한 돈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교수‧연구자 단체들이 잇따라 비판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는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은 해법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새로운 문제와 갈등의 출발점이 될 뿐”이라며 정부의 배상안 철회를 요구했다.지난 15일 한국역사연구회를 비롯한 49개 역사단체들이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의 사죄 없는 배상안 철회를 요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역사단체들은 “한·일정상회담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인권을 대가로 한 굴욕외교의 연장고려대 교수들은 22일 “강제동원 배상안은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며 강제동원 배상안 철회를 요구했다. 사진=연합뉴스.
선”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동국대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는 지난 17일 ‘국가수반의 임무를 저버린다면, 차라리 내려와야 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교수들은 “윤석열 정부는 3월 6일에 발표한 해법이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는 결정임을 인정하고, 즉시 철회해야 한다.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기업의 진심 어린 사죄와 책임을 엄중하게 묻는 대한민국
정부로서의 당연한 책무를 다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지난 22일 고려대 교수 80여명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숙원과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며 추진한 윤 대통령의 방일은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며 “일본 정부의 반성과 사과, 가해 기업의 배상 참여는 없었다. 참으로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밝혔다.한신대 교수협의회와 전국교수노조도 22일 날 성명을 내고 “윤석열 정부는 매국적 강제동원 해법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밝혔다. 이들은 성명에서 “무엇보다 일제강점의 역사적 불법성을 입증하면서 민주주의와 평화 등의 보편적 가치를 내걸고 오랜 기간 연대해 싸워온 피해자들과 한일 시민사회의 노력을 짓뭉개버리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이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신다인 기자 shin@kyosu.net“기본에 충실한 대학, 학생 중심 대학으로 변화”
양오봉 전북대 총장 취임
“기본에 충실한 대학, 학생 중심 대학으로 과감한 변화를 추진해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전북대만의 ‘JBNU Pride’를 만들겠다.”양오봉 제19대 전북대 총장(사진)이 지난 22일 취임식을 가졌다. 양오봉 총장은 취임사를 통해 전북대가 세계 인재들이 모여드는 글로벌 허브로서, 글로벌 Top 100 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 학생 중심 대학, 플래그십(Flagship) 대학,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대학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양 총장은 기업과 기관, 더 나아가 지역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 전북대의 목표를 ‘플래그십(Flagship) 대학’으로 설정
해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양 총장은 “지금까지 모든 대학은 교육과 연구를 통해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것이 대학의 본질이라 생각해 왔는데, 전북대는 지역사회와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 교육과 연구를 수행하겠다고 근본 생각을 바꾸려 한다”며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들처럼 지역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교육과 연구를 수행하고, 지역사회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플래그십 대학으로 나아가겠다”고 밝혔다.양 총장은 지역사회와 협력하는 대학시스템도 강조했다. 그는 “지자체와 공공기관, 연구기관, 산업체와 협력 시스템을 구축해 우리 지역의 번창을 이끌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역이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이러한 변화를 위해 캠퍼스 안보다는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세일즈 총장이 되어 대학 운영에 필요한 기금 조성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취임식에는 전임 총장단과 정영택 총동창회장, 김관영 전북도지사, 서거석 전북교육감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신다인 기자 shin@kyosu.net10여년 대학 강의 마치고 전문대 입학
김성우 씨 “제주의 지역 브랜드 만드는데 일조하고파”
올해 제주한라대에 일반대학 교수 출신인 김성우 씨(68세‧사진)가 입학했다. 일반대학 국제지역학부 겸임교수였던 그는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고자 제주한라대 관광중국어과 새내기가 됐다. 김 씨는 대학에서 동북아경제 및 일본의 정치를 10여 년 동안 강의했다.
김성우 씨는 “동북아경제 등을 강의하면서 원서 및 번역물 등을 통한 연구를 했지만, 중국의 정치·경제 등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데는 늘 한계가 있었다. 한 국가의 정치·경제, 문화 등을 이해하고 연구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언어 구사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중국어 학습을 통해 양국의 상호이해와 협력의 관계를 유지·발전시키는 것에 일조하고 싶다” 고 진학동기를 밝혔다.
김 씨는 지역 관광산업 활성화 비전을 보고 전문대학 진학을 선택했다고도 말했다. 그는 “제주도가 국제 관광도시로 재도약하고 새로운 지역 브랜드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고, 제주도에 입국하는 요우커 대상으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데도 이바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성우 씨 이외에도 2023학년도 전문대에 독특한 사연의 이색 입학생들이 입학해 눈길을 끈다. 유턴 입학한 쌍둥이 자매 오지은, 오지현씨(21세)는 대구과학대 레저스포츠과에 입학했다. 조혜은 씨(26세)는 일반대학을 졸업 후 간호 분야에 도전을 위해 한림성심대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예술대생에서 의료보건인으로 전공을 바꾼 이하은씨(21세)는 대구과학대치위생과에 들어갔다. 카페 창업을 목표로 한림성심대 바리스타제과제빵과에 입학한 만학도 이병주 씨(65세)도 있다.고종이 선물한 ‘나전흑칠삼층장’
130년 만에 한국에 돌아오다고종이 130여 년 전 아펜젤러 선교사에게 선물했던 ‘나전흑칠삼층장(螺鈿黑漆三層欌)’이 최근 배재학당역사박물관으로 돌아왔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은 이번 기증을 계기로 ‘2023년 국외소재문화재 관련 민간단체 사업’에 선정돼 국외 문화재 실태조사와 활용 및 보존 콘텐츠 개발 등을 하게 된다.이번에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이 기증 받은 나전흑칠삼층장은 아펜젤러 가문의 가보로 여겨질 정도로 귀한 가구다. 아펜젤러 선교사(Appenzller·1858~1902)는 1885년 조선에 입국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 교육기관 배재학당과 최초의 개신교 교회 정동 제일교회를 세웠다.
고종의 선물한 나전흑칠삼층장은 높이 180.3㎝, 가로 114.9㎝, 세로 54.6㎝로 검은 옻칠 바탕에 나전 빛고종이 130여 년 전 배재학당 세운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에게 선물한 ‘나전흑칠삼층장'.
이 어우러진 최고급 공예품으로 꼽힌다.
이번 기증은 아펜젤러 선교사의 증손녀 다이앤 다지 크롬이 100년이 넘은 귀중한 유물을 한국에서 보존·보관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이뤄졌다.구한말 고종은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도자기, 병풍, 팔찌 등을 선물로 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삼층장처럼 대형 가구를 선물한 기록은 없다.배재학당역사박물관은 올 가을 ‘고종이 아펜젤러에게 하사한 나전흑칠삼층장의 유산적 가치 규명 및 보존·관리 방안’이라는 학술세미나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번 학술세미나에서 최고급 나전칠기 공예의 진수로 꼽히는 삼층장의 가치를 돋보이게 할 예정이다.
카이스트, 녹색성장대학원 설립
“탄소중립 산업 인재 양성”탄소중립을 실현할 인재 양성 본격화카이스트는 탄소중립산업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을 신설했다. 가을학기부터 신입생을 모집한다.
카이스트 관계자는 “세계적 난제인 탄소중립과 녹색 성장의 실현을 위해 국가 핵심 인재를 양성하고, 사회, 경제, 환경 분야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해결할 연구 수행을 하기 위해 카이스트가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배경을 설명했다.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은 탄소중립 혁신기술 개발을 위해 이종 학문의 융복합을 지향한다. 공대 및 인문사회경영 분야 15개 학과의 43명의 교수진이 △탄소중립이행평가 △탄소중립기술시스템 △에너지기술시스템 △자원순환기술시스템 등 4대 중점분야에서 교육과 연구를 수행한다.이 대학원을 졸업하면 국내외 에너지·기후분야 융합대학 및 연구기관에서 교수나 연구자로 활동하거나, 국제기구와 민간기업, 투자사 등에서 ESG 분야 사업개발자 및 컨설턴트로 활약할 것으로 기대된다.엄지용 책임교수는 “카이스트는 2050 탄소중립의 시급성과 기후 위기대응을 위해 학문 분야 간 장벽을 과감히 허물고, 기존의 교육과 연구의 체계를 혁신하고 있다”면서 “특히, 탄소중립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려면 정책 및 금융 측면의 평가와 분석이 수반돼야 하는데, 이 같은 초학제적 시도는 카이스트가 유일하다”고 전했다.입학에 관한 내용은 카이스트 입학 홈페이지 또는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권경득 선문대 교수, 다문화 정책 연구 총서 발간
권경득 선문대 정부간관계연구소 교수(행정학과·사진) 연구팀이 사회통합적 관점에서 다문화사회 융합을 통한 정책 등을 모색하기 위한 ‘다문화국가의 사회융합을 위한 정책수단 비교연구 총서 10~14권’을 발간했다.한국연구재단 지원사업으로 추진된 총서는 미국·캐나다·호주·영국·독일·프랑스·스웨덴·한국·일본 등 9개 국가의 다문화 정책 수단을 비교 분석으로 대한민국의 다문화 정책과 지원사업을 더욱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2017년부터 시작됐다. 이번에 발간된 총서는 △저출산・고령화 사회와 다문화 정책 △한국의 정착 단계별 다문화 정책의 개선 방향 △다문화 이론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한국 다문화 연구의 경향 분석 △외국인 학생의 다문화 수용성 조사 △한국 다문화 교육 정책의 쟁점과 과제 등 다문화 정책의 모든 것을 담은 결과물이다.
선문대 정부간관계연구소(소장 권경득)는 '다문화국가의 사회융합을 위한 정책수단 비교 연구 총서' 총 14권을 발간했다
권경득 교수는 “총서는 다문화 국가의 사회융합을 위해 8개 정책 분야별로 비교 분석으로 정책적 함의를 도출하고, 다문화의 이론·교육·정책·국내외 주요 도시들의 다문화 정책 운영체계 등을 분석해 시사점을 도출했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기존 지원 중심의 다문화 정책이 사회참여 중심의 다문화 정책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번 연구 결과는 다문화 정책을 연구하는 전문가·실무자에게 사회융합을 위한 다양한 다문화 정책 수단을 개발하는데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서울시 ‘혁신성장구역’도입
대학 시설 용적률 제한 없애올해 하반기부터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등 공공시설의 용적률과 높이 규제가 완화된다.서울시가 공공시설의 도시계획 규제를 완화한다는 내용의 ‘서울시 도시 계획 조례’ 개정안에 대한 입법예고를 거쳐 본격 실행에 나선다. 지난해 말 발표한 대학과 병원시설 도시계획 지원방안의 후속 조치 일환이다.이번 개정안은 △대학 용적률 1.2배 완화 △자연경관지구 내 도시계획시설 높이 관리 유연화 내용을 담고 있다.서울시는 대학이 미래 인재를 양성하고 창업이나 연구, 산학협력에 필요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용적률 제한이 없는 ‘혁신성장구역’을 도입하고 용적률 상한을 없앴다.대학이 완화 받은 용적률은 혁신성장구역에만 사용할 수 있다. 혁신성장구역은 미래인재 양성을 위해 필요한 첨단학과 실험실과 연구소 등 산학연계와 창업지원시설과 평생교육시설 등 지역에 필요로 하는 시설로 우선 배치된다.올해 7월 서울시 조례가 시행되면 대학이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시설을 원하는 만큼 증축할 수 있게 된다.이번 개정 조례안은 자연경관지구 내 도시계획시설의 높이 규제 조항을 없앴다. 그간 자연경관지구 내 도시계획시설은 3층(12m) 이하를 원칙으로 일부 시설은 최고 7층(28m) 이하까지 완화 받을 수 있었으나, 이번 조례개정으로 주변에 영향이 없는 경우엔 7층(28m) 이상도 가능해진다.자연경관지구 내에 있는 고려대와 서울시립대는 건축제한 완화 사항을 적용해 시설 증축을 검토 중이며, 조례개정 즉시 도시계획 변경에 착수할 예정이다.한편, 종합병원의 용적률을 1.2배 완화한다는 내용의 도시계획조례는 지난해 7월 개정 및 시행 중이다.조남준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은 “도시계획시설의 규제혁신을 통해 가용지가 부족한 도심지 내 공공시설의 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다양한 지역 필요시설이 확충되도록 유도할 것”이라며 “도시경쟁력 향상과도 직결되는 도시계획 혁신에 대한 시도를 꾸준히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신다인 기자 shin@kyosu.net불안·충돌의 한국 이념사, 화려하게 꽃피다
네이버 열린연단 r자유와 이성s ㊶
박명림 연세대 교수(지역학협동과정)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9를 맞이해 「자유와 이성」을 주제로 총 44회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본성, 재난과 질병에 대한 제약과 해방 등을 역사, 정치, 철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살펴본다. 지난 4일 박명림 연세대 교수(지역학협동과정)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역학 관계」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42강은 전재성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의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의 위기」, 제43강은 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과)의 「동서양의 ‘자유’ 비교」,제44강은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국제대학원)의 「미·중 관계와 패권 경쟁의 미래」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거시적 관점으로 한국에서 자유의 발전 문제를 접근할 때 가장 중요한 준거의 하나는 국제질서의 변화였다고 할 수 있다. 즉 역사적으로 한국에서 자유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일차적으로는 외부로부터 주어졌던 것이다.
2차대전 종전 이후의 국제분할점령 및 세계전쟁으로서의 한국전쟁의 결과에 따른 세계 분단으로서의 휴전선을 경계로 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난 80년 동안의 자유의 향유 정도가 보여주고 있는 거의 완전한 대비처럼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없다. 그러나 세계적 차원의 냉전의 해체에 따른 동구의 자유화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북한의 ‘부자유’ 상태는 이 문제가 외부요인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먼저 오늘의 지표를 보자. 무엇보다 강조돼야 할 점은 표면적 자유와 민주주의의 안정과 지속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 절차적 최소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도전받지 않았다. 한 세대에 달하는 오랜 군부는 권위주의 통치의 역사와, 북한과의 안보 대치상황을 고려할 때 민주주의가 한 세대 이상 안정적으로 지속됐다는 점은 상당한 성취였다. 군부독재로 인한 장기간의 인권탄압과 억압의 역사를 고려할 때 한국에서 자유의 발전은 주목할만하다. 정부별로 약간의 후퇴와 변동을 보여주었지만, 국가 자유등급 및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권리에 대한 프리덤 하우스의 지표는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을 확인시켜주는 한 거시적 발전지표로 삼기에 충분하다. 즉 이 거시지표는 근대로의 진입 이래 한국사회 발전의 뚜렷한 표징이기에 충분하다.표면을 볼 때, 1987년 이후 한국사회는 점차 근대 이후 인류가 오랜 투쟁을 통해 성취한 가장 중요한 가치인 자유와 뛰어난 통치양태인 민주주의 지배양식의 효과를 처음으로 전면적이면서도 안정적으로 누리기 시작했다. 이는 짧게는 1948년 건국 이래, 그리고 길게는 한말의 초기 공화주의 등장 이래의 국가 차원의 최초의 전체적인 향유였다. 이 점에서 한국민들의 자유와 민주주의 성취는 산업화의 업적 못지않게 상찬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각각 추동하는 쌍방 압력의 폭발적인 분출은 상호 간의 격렬한 충돌과, 그 충돌에 바탕한 빠른 전진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요컨대 자유로의 전진이라는 세계 보편적 역사의 매우 빠르고도 압축적인 성공사례였던 것이다.한국은 전통 질서하에서 세계 어느 곳보다도 전쟁이 가장 적은 지역이었다. 이른바 전통 제국질서 하의 한국의 안정적인, 다른 말로 해 평화적인 초장기 반주권국가를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공동체의 자유 발전, 특히 하층과 피지배층의 자유의 발전 문제에 관한 한 크게 불리하게 영향을 끼쳤다. 국제체제의 안정과 장기지속은 국경의 빈번한 이동과 국가·왕조 사이의 치열한 권력투쟁에 따른 체제 변동과 민중 동원의 가능성을 낮춤으로써, 대신 조공국가의 정통성과 안정성을 확고하게 보장함으로써 자유와 권리의 확장에는 매우 소극적이며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한국에서 노비제의 동요와 해체로 대표되는 하층의 자유 문제가 막간적으로는 임진왜란과 양차 호란의 결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동서조우로 인한 중화체제의 붕괴와 개항으로 인해 비롯됐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세계인식에 있어 한국의 사유체계에는 두 번의 예외주의 시기가 존재했다. 사상과 역사로서의 종속과 지배·간섭의 시기, 그리고 성리학과 주자학 시기의 독점과 정의 대 불의 양분 시대와 그 연장의 시기를 말한다. 이후부터 위정척“한국은 동서조우 이후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불안과 동요가 컸고, 또 가치와 이념, 제도와 문명의 충돌 정도가 높았다. 그러나 일단 생존에 성공한 한국에서는 그 동요와 충돌만큼 보편적 가치로서의 자유의 수용과 확산이 빠르고 깊었던 것이다.”
사를 거쳐 일제 강점시기를 겪는다. 후자의 예외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항일 대 친일, 민족 대 외세, 아와 비아, 법통 대 이단, 두 가지 길, 반공 대공산, 분단 대 통일 등이, 고전적인 한국 주류 사상 및 역사와는 크게 다른 대표적인 예외주의들이자 비융합적, 비공존적 사유와 특질들이었다.
우리는 이제 국제문제에 관한한 한국 역사와 사상의 본질과 특성을 짧은 예외주의 시기의 그것과 단절하고 전체 한국에 걸친 역사와 사상의 그것으로 다시 확장하고 전환해야 할 때가 됐다. 성리학·주자학의 ‘사문난적’으로 시작된 이분법, 흑백논리, 양자택일, 선악 강요, 정의 독점의 사관과 결별·지양할 때가 온 것으로 보인다.지금은 예외주의 시기를 넘어 한국 사상과 역사 본래의 융섭, 융합, 경계, 절충, 화융, 화충, 통합, 변융, 화합, 공존, 교량, 통섭, 보편의 특질을 회복해야 할 때다. 일제 강점과 냉전·분단 시대에 한정해 제한적으로 사유와 적용이 가능했던 아와 비아, 분단 대 통일, 자주 대 종속, 애국 대매국, 민족과 통일지상주의, 두 가지 길론(위로부터의 길 대 아래로부터의 길), 분단시대론, 분단체제론은 현실에서는 더 이상 적실하지 않아박명림 연세대 교수(지역학협동과정)는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가 각각 추동하는 쌍방 압력의 폭발적인 분출은 상호 간의 격렬한 충돌과, 그 충돌에 바탕한 빠른 전진을 가능하게 했다”라며 “자유로의 전진이라는 세계 보편적 역사의 매우 빠르고도 압축적인 한 성공사례였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보인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주류적 대안적 사유체계에 대한 반대진술이기에, 이 언명은 이론적 분석적으로는 옳을지 몰라도 가치적 현실적으로는 비판받을 소지가 매우 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문제제기는 불가피해 보인다. 물론, 우리는 예외주의 시기의 이분법 사상이 갖는 시대적 도덕과 힘의 결집역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신채호를 잇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보수적 혁명사관과 진보적 반성사관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빈곤과 가난 시대의 박정희와 제국주의 강점시대의 함석헌 사관에 의해 대표된다. 현대 한국을 대표하는 사상가 함석헌의 경우는 고난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과 반성을 위한 사유라는 점에서 출발은 크게 다르다. 또 전형적인 동서, 내외융합 사상의 완성이라는 점에서도 다르다. 그러나 과거 역사해석은 크게 보아 신채호의 범주에 가깝다.
한국 사상이래야 불교 사상 아니면 유교 사상일 것이요, 불교나 유교가 모두 남의 것이 아니냐고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논법으로 일관한다면, 서양의 여러 문명국에는 하나의 문화밖에 없고, 아마도 이렇다 할 각자의 독자성들은 없어야 할 것이다. 아니, 서양 문화라는 것의 독자성마저 엄밀하게는 없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분명히 동양에서 시작된 종교이었기 때문이다. 서양 문화의 특색이 없다고 한다면, 그에 대해 그사람들 자신이 누구보다도 먼저 반대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한국에 있어서만 불교나 유교가 외방에서 전래됐다고 해 사상적인 독자성이 없으란 법이 어디 있을 것인가.
한국사회의 한 특징으로서 보편의 수용과 한국적 통합에 유능한 한 이유는, 과도한 민족주의와는 상당히 다른 관점에서, 하나의 인간공동체로서 자기애와 자기 안정성의 장구한 보지(保持)가 아닐까 싶다.사실 자기와 또 다른 자기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우애, 타자 수용, 상호성은 자기 주체성, 자기애 및 자기 안정성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타자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와 가까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 자기가 안정되지 않고는 주체적으로 타자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철학적으로 말해 하나의 보편으로서 자유의 상호 수용에 관한 한 자기 주도권과 타자 주도권, 내부와 외부의 논란은 불필요해 보인다. 거시적으로 볼 때 둘 사이에 일정한 단절과 요동을 거쳐 현대에 들어와 세계질서와의 길항과 타협을 이룬 한 경로가 한국사회가 아니었나 싶다.한국에서 과도한 종족주의랄까 민족주의는 일제 강점과 분단 및 한국전쟁이라는 예외적인 시기의 예외상태로 인한 단기적 현상이며, 그 이전에는 사랑과 충성의 대상은 종족과 민족과 혈통이 아니라, 거의 항상 국가·주권·나라·국민(백성)·조정이었다. 그 점에서 한국의 최초 민족주의조차 일본과 서구를 향한 종족적 저항적 민족주의가 전혀 아니라. 중국을 향한 근대적이며 시민적인 민족주의였다.이미 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듯 독립문, 독립관을 포함해 당시 사용된 초기의 ‘독립’ 개념조차 전적으로 중국을 향한 것이었지 일본과 서구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을 향한 의미는 추후 일본의 침략기도 이후 추가된 의미였다. 한국은 동서조우 이후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불안과 동요가 컸고, 또 가치와 이념, 제도와 문명의 충돌 정도가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생존에 성공하자 한국에서는 그 동요와 충돌만큼 보편적가치로서의 자유의 수용과 확산이 빠르고 깊었던 것이다.전기차 주행거리 10배 늘리는 ‘쿨롱의 힘’
박수진·김연수·류재건 교수 공동연구층상 전하 고분자로 안정한 고용량 음극활물질 개발포스텍-서강대 공동연구팀이 기존보다 10배 이상의 용량을 가진 실리콘 음극활물질을 개발했다. 이에 따라 전기차 배터리의 에너지밀도와 함께 주행거리가 상당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전 세계 전기차 매출이 누적 1조 달러(약 1천283조 원)를 돌파하면서 주행거리를 늘려주는 고용량 배터리에 대한 요구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 포스텍의 박수진 교수(화학과)·김연수 교수(신소재공학과) 연구팀은 류재건 서강대 교수(화공생명공학과) 연구팀과 공동으로 기존 음극활물질인 흑연을 대체하는 안정적인 고용량 음극활물질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재료공학 분야 권위지인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티리얼즈』 표지논문으로 게재됐다.실리콘과 같은 고용량 음극활물질은 상용화 소재인 흑연보다 10배 이상의 용량을 낼 수 있어 고에너지밀도 리튬 이차전지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하왼쪽부터 포스텍의 박수진 교수(화학과), 김연수 교수(신소재공학과), 류재건 서강대 교수(화공생명공학과)이다. 사진=포스텍
다. 그러나 고용량 음극활물질은 리튬과 반응할 때 부피팽창을 일으켜 전지 성능과 안정성을 떨어뜨린다. 팽창을 억제시켜줄 수 있는 고분자 바인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된 이유다.
포스텍-서강대 공동연구팀은 화학적 가교와 수소결합에 집중한 기존 바인더 연구에 양전하와 음전하 사이의 인력인 쿨롱의 힘(250 kJ/mol)을 더했다.기존의 화학적 가교 방식은 결합이 단단하지만 한 번 끊어지면 회복할 수 없고, 수소결합 방식은 가역적 분자 결합이지만 세기가 약했다. 쿨롱의 힘은 강력한 이차결합인 동시에 가역적이어서 기존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며 부피팽창을 쉽게 억제시켜주었다.또한 전극 내 리튬이온의 이동을 쉽게 하고, 물성을 조절하는 폴리에틸렌글리콜을 통해 두꺼운 고용량 전극도 만들어 음극활물질이 활용된 리튬이차전지의 에너지밀도를 극대화했다고 공동연구팀은 전했다.박수진 교수는 “이번 연구는 고용량 음극활물질의 도입으로 리튬이차전지의 에너지밀도를 많이 증가시켜서 전기차의 주행거리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실리콘 음극활물질로 주행거리도 10배 이상 늘리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조준태 기자 aim@kyosu.net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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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노동자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경직된 52시간제로는 디지털 시대 글로벌 경쟁에 대응할 수 없다”는 이유로 노동부가 내놓았던 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이 MZ세대의 싸늘한 여론에 좌초하고 말았다. 대통령실은 노동약자를 위한 개편이라고 역설하며 주당 최대 노동시간의 조정을 지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토부 장관은 전국의 건설현장에서 타워크레인 불법행위를 특별점검 하겠다고 나섰다. “타워크레인에서 내려와 30분, 1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성실의무 위반”이라며 ‘운행기록장치’를 장착해 시간 내 작업을 종료하지 못할 경우, 태업으로 간주해 면허를 정지시켜 버리겠다고 했다.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우리나라는 이미 휴일·휴가도 반납하고 일만 하다 죽는 과로사회로 전락하였다. 35m의 ‘높고 좁은’ 크레인 공간이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현장이 되기도 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노동문제를 보며 이땅의 노동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한다.
한국의 노동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다. 노동자의 근무시간이 주 55시간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WHO의 권고는 오래 전 의미를 상실해버렸다. 2021년 기준으로 한국의 노동자는 1천915시간을 일했다. OECD 연평균 1천716 시간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의 1천349시간과는 비교조차 어려운 형편이다. 법으로 보장된 연차휴가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2년 전국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에 따르면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를 5일이나 사용하지 못했다. ‘연차수당으로 받기 위해’(20.1%), ‘대체인력이 부족해서’(18.3%), ‘업무량 과다’(17.6%) 등의 이유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또 다시 일을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바짝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장시간 쉴 수 있다’는 정부의 말은 사실상 어불성설이다. 유연·탄력근로제라는 이름으로 노동시간은 연장될 것이 분명하다. 경영자가 이를 악용할 경우 노동자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것이다.노동자의 권리가 무너지고 있다. 정부의 기업 중심 정책 구도에서 노동자는 점점 투명인간이 되고 있다. ‘노동개혁’을 운운하며 노조의 회계장부를 들추고 압수수색으로 노동자 집단을 밀어붙여도 그들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잘 들리지 않는다. 노동자가 자신의 존엄성을 훼손당하지 않도록, 그들의 자유와 주체성을 위협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인데, 거꾸로 노동부가 나서서 노동자의 권리를 훼손하고 있다. 일하는 현장 곳곳이 기계화, 자동화, 무인 로봇 등으로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에, 장시간 노동은 여전히 일상이 되고 일과 삶의 워라밸은 아득히 멀기만 하다. 특히 건설 및 제조업의 경우 장시간 노동은 가뜩이나 취약한 안전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에게는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지킬 방법이 법밖에 없다.” 그러나 한진중공업 사태 때 크레인에 올랐던 『소금꽃 나무』의 김진숙은 법이 권력의 편이라고 했다. “법이 노동자에 대해서 단호한 만큼 권력에 대해서도 그렇게 냉정하고 단호했으면 좋겠어요. 노동자들에 대해선 가차 없기가 추상같지 않습니까? 만날 힘없는 사람들에게만 호통 치지 말고 진짜 단호할 데서 단호했더라면 이땅에 부정과 비리는 애초에 근절되지 않았겠습니까.” 이처럼 노조 상생의 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한한국 사회에서 법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미래 세대의 운명”을 위한 개혁이라고 현 정부가 강조하는 ‘자유’의 깃발은 무엇을 위해 나부끼는 것인지 묻게 된다.
벼랑 끝으로 밀려나고 있는 노동자의 삶이 위태롭다. 노동자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사회적 지지가 절실하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정지아는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민중이 마늘 반접 따위 훔치지 않고도 배곯지 않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며, 진작 아버지 말을 들을 걸 그랬다고 말한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 미래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노동자의 불안한 삶을, ‘오죽하면 그럴까’ 먼저 헤아리는 마인드가 없는 권력 엘리트가 지배하는 지금, 생계를 꾸리느라 고단한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 높고 좁은 작업장인 크레인에서 위험노동을 하는 이들을 위한 정의롭고 평등한 나라는 잃어버린 꿈이 되고 있다.갤러리 초대석
미야지마 타츠오 개인전 「무한한 숫자(Infinite Numeral)」체인징 랜드스케이프/체인징 룸’, 2023, 289 x 556cm갤러리 바톤 제공.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미야지마 타츠오 개인전 「무한한 숫자(Infinite Numeral)」가 오는 4월 8일까지 서울 한남동의 갤러리 바톤에서 열린다. LED로 실험적 융합의 연대기를 시현했던 미야지마 타츠오는 이번 전시에서 기존 디지털 소자를 활용한 작품 외에 비즈 페인팅 작품을 최초로 선보인다.
미야지마의 모든 작품에서 LED는 각기 다른 속도로 1부터 9까지의 숫자를 역순으로 반복한다. 작가는 ‘시간’이라는 추상적이고 비물질적인 개념을 LED로 치환해 카운트다운의 속도와 광색의 차이로 그 대상들의 개별성을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했다. 미야지마의 미학은 “계속 변화한다, 모든 것은 연결된다, 영원히 계속된다”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LED는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이기도 한 셈이다. 숫자를 표기한 작은 구슬들과 회화가 어우러진 이번 신작도 여전히 시간과 공간에 집중한다. 이번 주말 미야지마의 세계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신다인 기자 shin@kyosu.net한민의 문화등반 56
지식과 믿음 사이
한민
문화심리학자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 및 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넷플릭스 다큐 「나는 신이다」가 화제다. JMS, 구원파, 아가동산, 만민중앙교회, 그 외에도 한국에는 다큐에 포함되지 않은 수많은 사이비 교단들이 존재한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서양에서 유래한 한 종교에서 분화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통 종교와 민족 종교 계열의 사이비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그 공통점은 바로 메시아(구세주) 신앙이다.
이 세상은 죄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곧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가 오는데 자신들의 교주가 곧 구세주라는 식이다. 메시아 신앙은 외래 종교인 기독교의 핵심 교리지만 한국문화와 한국인들의 심성과도 관련이 깊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져온 미륵(彌勒)신앙이 바로 메시아 신앙이기 때문이다.계속되는 전쟁과 삶의 고통에 지쳤던 민초들은 새 세상을 열어줄 구세주를 원했고 미륵이 바로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후고구려의 궁예 등 나라가 어려울 때 미륵을 자처했던 인물들이 줄줄이 나타났던 이유이며, 구한말 전래된 기독교가 그토록 짧은 시간 안에 교세를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다큐에 등장한 교단들은 대개 1980년대와 1990년도에 설립되었다. 당시는 소위 ‘세기말’로 온갖종말론이 판을 치던 시기였다. 100년이 끝나는 그냥 세기말이 아니라 연도의 앞자리가 1에서 2로 바뀌는 밀레니엄의 마지막 시기였으니까. 21세기가 시작될 2000년은 서력 기원의 기준이 되는, 예수가 태어난지 2000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에 그 심각성(?)은 더 컸다.
다큐를 통해 드러난 메시아를 자처하는 교주들의 행태는 실로 충격적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교주들의 그러한 만행을 용인하고 거기에 동참하는 신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좋은 대학을 나오고 훌륭한 직업을 가진 인물들도 많다. 뛰어난 두뇌와 지식을 갖춘 지성인들마저 사이비 종교에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간단히 말하자면 맹목적인 믿음이다. 내가 가진 믿음이 절대적이라는 생각과 내가 한번 믿기 시작한 것은 끝까지 믿으려 하는 인간의 심리적 특성이 결합하면 놀라운 결론에 이른다.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오직 믿음을 위한 믿음만 남게 되는 것이다.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인들마저도 사이비에 빠져들어 한 인간에게 절대적 충성을 바치게 된다.문제는 수많은 사이비 교단을 양산하고 셀 수 없이 많은 피해자들을 만들어낸 이 맹목적 믿음을 사이비가 아닌 일반 교단에서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이비 교단들이 파생된 그 종교는 소위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말한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믿고 따르듯이 일체의 의심이 없는 순수하고 절대적인 믿음을 신도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다.그리고 그 믿음이 절대자가 아닌 절대자의 대리자 또는 구세주로 믿어지는 어떤 인물을 향할 때 일반 교단의 평범한 종교활동은 삽시간에 사이비로 화한다. 따라서 현 시대 종교인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도마(토마스)의 호기심이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를 믿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생긴 손과 발의 못 자국을 보여달라고 말한 사람이다.
예수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 하셨으나 도마와 같은 태도가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이제껏 존재했던 사이비 교단의 신도들 중 자칭 메시아의 신성을 의심하는 이들이 좀더 많았다면 그런 사이비 교주들이 판을 치는 일도, 단지 순수한 믿음을 가졌을 뿐인 수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신의 실재 여부는 과학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는 지식과 믿음을 분리하는 태도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왔다. 신이 존재한다고 해도 신의 뜻과 섭리를 일개 인간이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주를 창조한 신이 개인의 소소한 소망에 반응할 거라는 기대는 어떤 면에서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그러한 존재를 전조작기 수준의 인지로 믿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는 사실을 현대사회의 신앙인들은 깨달아야 한다. 전조작기란 발달심리학자 장 피아제의 용어로서 대략 2세에서 7세 수준의 인지발달 단계를 말한다. 전조작기는 사물의 상태가 달라져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보존개념을 깨닫기 전이며, 나의 관점 외에 다른 사람들의 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문자 그대로 ‘어린아이와 같은’ 인지 수준을 말한다.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지방대 박사학위 어디다 쓰겠어”국내 박사과정생의 ‘연구력’에 영향 미치는 구조적 환경은 무엇일까? 누군가 이 같은 질문을 한다면 올해 1월 발표된 「인문‧사회분야 학문후속세대의 연구력 강화를 위한 실태조사 및 과제」를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이 연구는 박사과정생들의 입장과 시선에서 바라본 국내 연구생태계를 묘사하고, 이들의 연구력 향상을 위해 필요한 제도적 개선안을 제시하고 있다. 연구참여자들은 그간 대학원 내에서 단지 ‘개인적 불만’으로 치부됐던 여러 문제 제기가 사실은 국내 대학원의 학문 재생산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라는 점을 성찰적으로 비판하고 있다.나 역시 연구참여자로서 깊이 공감하며 보고서를 읽었다. 그런데 읽고 나니, 새삼 새롭게 질문을 바꿔 다시 묻게 되었다. ‘지방대’ 박사과정생의 ‘연구력’에 영향 미치는 구조적 환경은 무엇일까? 보고서에서는 ‘연구자원의 지역적 불균형’이 지방대생의 연구력을 저해하는 요인이라 지적한다. 물론 맞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사회의 학력·계급차별과 서울 중심주의 속에서 만들어지는 지방대 멸시의 정서가 있다.누구에게나 내면화된 이 태도는 지방대 대학원생의 연구력의 한계를 구획 짓는다. 예를 들면, “부산대 박사학위를 어디다 쓰겠어?”와 같은 말이다. 이러한 말은 너무나 폭력적이지만 실제로 들을 수 있다.이런 멸시적 태도는 언어화되지 않더라도, 교수 임용 같은 대학·학계 내 여러 중요한 결정 속에서 적극적으로 작동한다. ‘지방대 위기’를 논하는 어느 ‘지방대’ 학술행사장에서 터져 나온 “왜 우리 대학은 서울대박사만 교수로 뽑나요?”와 같은 질문이 바로 이러한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였을 것이다. 자기 공부의 가치가 ‘지방대’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당하는 일상에서 학생들이 연구 의욕을 갖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현실이 지방대생의 능력 부족 문제로 인식되기도 한다.대학 바깥의 지역주민들도 역시 ‘지방대’를 차별한다. 이따금 공공기관이나 지역단체가 지역 문제를 논하는 전문가로 서울 연구자를 섭외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지역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지역민의 관점에서 문제해결을 고민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전문가일 확률이 높다. 그러나 ‘지방대’에 대한 차별, 그리고 그 반대항으로 존재하는 ‘인서울’에 대한 선망은 서울 연구자들이 더 좋은 결과물을 보여줄 것이라는 맹목적 믿음을 만들어 낸다. 이는 지역 사람조차도 지역 연구자에게 관심을 갖거나 신뢰하지 못하고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지역 연구자들에게 자신의 지역에 대해 더 잘 알 기회와 지역을 위해 일할 기회, 연구력을 향상 시킬 기회를 박탈해버린다.
사실 대학원생의 ‘연구력’에 관한 인터뷰가 진행될 때, 이러한 사례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그러나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웠다. 이런 말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몹시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자칫 괜한 피해의식으로 비추어질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적 갈등은 지역에 대해 말해야 할 때, 혹은 나 자신, 그러니까 지방대생으로서의 경험을 전하는 자리에 언제나 존재한다. 그렇다면 실은 그 주저함 속에 ‘지방대 박사과정생’으로 경험하는 특수한 맥락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다시 말해 지방대 학문후속세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지방대’라는 이유만으로 자원과 기회를, 그리고 공부를 지속할 이유와 의지를 빼앗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실이 지방대 대학원생의 연구력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했던 것 같다.그러니 다시 나에게 ‘지방대’ 박사과정생의 연구력에 대해 말해보라고 한다면, 이 뿌리 깊은 학력 차별에 대해 더욱 힘주어 말하고 싶다. 많은 지방대 학문후속세대들에게 제안하고 싶기도 하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 있다는 ‘차이’가 어떻게 ‘지방대’라는 차별적 의미를 구성하게 되는지, 무엇이 지방대라는 공간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지, 그리고 지방대라는 꼬리표가 우리의 연구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나아가 우리는 어떤 주저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고민해 보자고 말이다.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를 더 자주, 더 큰 목소리로 함께 말할 기회가 많아졌으면 한다.최나현
부산대 여성연구소 강사부산에서 강의하고 연구하여 먹고 사는 사람. 2022년에는 논문 「지역×청년×여성의 여성주의 실천 경험에 관한 연구- '충전소'를 만들고, '기피시설'로 여겨지다」를 발표했다. 최근에는 지역 노동시장이 청년여성의 일자리를 구조화하는 방식에 관심 갖고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김상돈의 교수만평
교수신문The Professors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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